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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커는 추억이다] ‘자유로운 영혼’ 나카타 히데토시

    [사커는 추억이다] ‘자유로운 영혼’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 축구의 영웅이었던 사람이 있다. 축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선수가 있다. 그는 2002년 2월,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후지TV에서 기념으로 방영된 ‘월드컵 전사들의 사생활’에서 “저는 즐겨보는 TV프로가 정기국회 중계방송이에요.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요. 정말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정치, 사회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던 선수이기도 했다. 아시아 선수로서 처음으로 세리에A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고 인정받는 ‘나카타 히데토시'(Hidetoshi Nakata·39)의 이야기다. 2006년 월드컵을 끝으로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길이 있다”고 밝히며 29세의 나이에 갑작스런 은퇴선언을 했던 그는, 이후 모델과 여행가로 활동하며 TV에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송종국과 안정환처럼 TV예능 게스트로도 많은 출연을 했다. 한 번은 그가 게릴라 데이트를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었다. 한 팬이 나카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모델CF와 예능)TV에 왜 이렇게 많이 나오시는 거예요? 저희 딸에게 당신이 축구선수라고 말했는데 믿지 않더라구요. 하하” 그러자 그는 “사람은 왜 살까요?”라고 오히려 역질문을 했다. 팬은 그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카타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누릴 행복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저는 제가 사는 이유인 ‘행복’을 위해서 방송에 나오는 겁니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 그게 축구 다음으로 행복하거든요”라고 답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에 감동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당연한 명제에 그제서야 눈을 뜬 사람들이 많았다. 축구로 자신이 사랑받고 행복했던 그 마음을 팬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서 예능에 출연하고, 자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다양한 모습을 언론에 비추는 남자. 그가 바로 은퇴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왕년의 축구스타 ‘나카타’였다. 98/99시즌 나카타의 세리에A 데뷔전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델 피에로(Del Piero)와 부폰(Buffon), 파비오 칸나바로(Fabio Cannavaro), 마우로 카모라네시(Mauro Camoranesi) 같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주축을 이루고 있던 유벤투스를 맞아 멀티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펼친 것이다. 팀은 비록 3대4로 패했지만 페루자가 갓 세리에B에서 올라왔던 구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많은 이들에게 ‘Nakata’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2년간 페루자에서 뛰면서 48경기 동안 12골을 기록한 나카타는 자신이 단순이 유니폼을 팔러 동양에서 온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나카타의 활약은 페루자에 아시아 선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그것이 간접적으로 훗날 안정환의 영입에 도움을 주었다) 그 후 이탈리아 언론은 나카타를 보고 ‘세리에A 내에서도 손꼽히는 테크니션’이라며 호평을 했고 그는 떠오르는 명문구단 AS로마로 이적했다. 나카타가 이적했던 당시의 AS로마는 야심차게 스쿠데토 획득을 준비하던 구단이었다. 리그 최고의 골잡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Gabriel Batistuta)와 영구결번이 된 백넘버 6번의 소유자 ‘알다이르’(Aldair), 고속 열차 ‘카푸’(Cafu), 로마의 심장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등. 신구의 조화가 절묘했다. 로마는 나카타에게 중책을 맡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1군과 후보선수의 기량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정도의 두꺼운 스쿼드를 원했던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현 감독) 감독은 나카타의 영입을 주장했고, 구단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나카타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팀에서 나는 서브 조커다. 자신이 팀에 필요할 때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는 인터뷰까지 했다. 남은 99/00 시즌동안(겨울 이적이장에서 이적했다) 나카타는 선발과 교체 출장을 합해 총 15경기를 출전했다. 친정팀 페루자를 상대로 한 21라운드의 동점골, 28라운드 우디네세 원정 동점골과 같이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했다. 00/01 시즌에도 15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으며 역사상 로마의 세 번째 리그 제패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이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한 진기록이었다. 이듬해, 당시 상위권에서 우승경쟁을 하던 AC파르마는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약 312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나카타를 영입했다. 이는 나카타가 이탈리아 내에서 얼마나 수준급의 대우와 실력을 인정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부진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볼로냐로 떠나 임대 생활을 해야만 했다. 2004년, 피오렌티나로 이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페루자 시절의 파괴력 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EPL의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하며 세리에 팬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예선 브라질전은 나카타가 선수로 뛴 마지막 경기였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부상도 없었고,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29살이라는 나이였지만 그는 자신이 다짐한 마음을 번복하지 않았다. 파르마 시절부터 이어진 기량 하락, 일본 대표팀과의 불화설, 감독과의 불화설 등 당시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그가 밝힌 은퇴의 이유는 이러했다. “승패에 냉정한 프로선수로 살아가며 어렸을 적부터 느꼈던 축구에 대한 순수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일본의 모든 국민들은 그라운드에서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냉철한 플레이를 했던 그를 강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일본에서 그 누구보다도 ‘섬세한 모습을 가진 감성적인 선수’였던 것이다. 승리와 패배에서 비롯되는 주체할 수 없는 환호와 견디기 힘든 비난들, 그리고 그에 따른 부담감.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축구에 대한 마음이 순수함에서 퇴색되는 것을 느끼게 된 순간에 나카타는 결국 축구화를 벗었다. 그 순간 나카타는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부터 약 20년 넘게 함께했던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이제는 축구선수가 아닌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평범한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아프지만 힘찬 도약을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축구선수로써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카타는 은퇴 직후에 홀로 스위스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취재온 스포츠 매거진의 카메라를 향해 웃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29세, 무직, 나타카 히데토시입니다” 김용표 인턴기자 nownews@seoul.co.kr
  • ‘130일 혈투’ 코바니서 IS 몰아낸 쿠르드족의 힘

    ‘130일 혈투’ 코바니서 IS 몰아낸 쿠르드족의 힘

    130여일간 이어진 혈투 끝에 얻은 값진 승리였다. 쿠르드족 민병대(YPG)의 시리아 코바니 탈환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발호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치열한 교전 끝에 몰아낸 첫 장기전으로 기록됐다. IS는 첫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갔으나 쿠르드족과 IS를 합쳐 15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1일(현지시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쿠르드족이 힘을 합해 IS로부터 되찾은 코바니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의 공세를 버텨낸 옛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에 비유하며 승전보를 전했다. 코바니에 IS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해 9월 17일. 탱크를 앞세운 IS의 파상공세로 코바니 일부와 인근 60여개 마을이 열흘 만에 IS에 함락됐다. 쿠르드족 여전사가 폭탄을 두른 채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이 코바니에 폭격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무려 700여 차례 공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IS와 몸을 직접 부닥친 것은 쿠르드족이었다. 지난해 10월 코바니의 절반이 IS의 수중에 떨어지자 코바니의 쿠르드족 주민 4만 5000여명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피란을 떠났고, 1000여명의 YPG는 5배가 넘는 IS의 침략군에 맞섰다. 이때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은 터키에 사는 쿠르드족 청년 1800여명이었다. 이들에 이어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거주하는 쿠르드족까지 이 전투에 합류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할 무렵 쿠르드자치정부군인 페시메르가 소속 정예병 160여명과 시리아자유군 400여명도 전장에 도착했다. 터키 난민촌의 한 쿠르드족 노인은 자신의 아들 3명을 모두 전장으로 떠나보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5000명이 넘는 IS 대원들은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보급로가 끊기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18세 미만의 소년병까지 전투에 투입했으나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YPG는 현재 코바니 인근 마을까지 탈환하기 위해 IS와 교전 중이다. YPG 소속의 안와르 자메시(33)는 “400여명의 쿠르드족 전사자가 발생했고, 집과 도시가 폐허로 변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승리를 자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바니 승전의 배경에는 터키 오스만제국에 복속된 뒤 독립을 꿈꿔 온 쿠르드족의 뼈아픈 역사가 자리한다. 1980년대에는 이라크군의 화학무기 살포로 10만명의 쿠르드족이 학살당했다. 신문은 “코바니는 애초 다국적군이 관심을 기울일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으나 IS의 침략과 이에 맞선 쿠르드족의 혈전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평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사드 배치’, 의미 있는 ‘안보 공론’ 모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남북한문제연구소장

    [열린세상] ‘사드 배치’, 의미 있는 ‘안보 공론’ 모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남북한문제연구소장

    2013년 북한의 2·12 3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심대한 전환점에 직면했다.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 실전 배치에 이어 3차 핵실험으로 소량화 및 탄두화된 핵무기를 갖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는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꼴”이 돼 버린, 즉 남북한 간의 군사적 균형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어떠한가. 잘 알려진 대로 한국군은 항공기 방어용 저고도 미사일인 PAC2를 실전 배치했지만, 북한의 중고도 스커드미사일과 고고도 노동미사일에 대한 요격 능력은 전무하다. 지난해 중고도 요격용인 PAC3의 구매를 결정했지만 실전 배치는 2017년 이후이며 실질적으로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해 대응이 미흡하고 속수무책인 셈이다. 즉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충분한 억지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만약 북한이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탄두화된 핵폭탄 공격을 감행한다면 수십만이 희생되는 대참사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에 대한 검토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에 대해 한·미 양국 간에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음에도 일부 학자와 언론 등 일각에서는 진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라 곡해(曲解)와 선동으로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를 정치화시키고 있다. 우선 이들은 사드 배치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참여로 규정하고 반대함으로써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 구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런 논리는 사드를 구실로 한·미 동맹을 근거 없이 배척하고, 민족을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과거 ‘햇볕정책’의 재판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사드는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체계로 탐지반경(통상 1000㎞ 이내)과 요격고도(150㎞), 사거리(200㎞)를 감안해 본다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MD와 관련이 없다. 둘째, 일부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주관적으로 예단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해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군사 전문가와 언론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천명한 적은 없다. 어떤 중국 학자는 “사드 자체는 중국의 억지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결정되지도 않은 중국의 입장을 미리 대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숭중’(崇中)의 사대주의, 아니면 친북의 패배주의가 아닐까. 셋째, 좀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천문학적 비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사드 1포대는 약 8억 달러(8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하기에는 국방비 측면에서 큰 액수라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사드 배치와 운용에 약 2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하면 이를 반대할 필요가 없다. 한·미 양국의 ‘방위비분담금’ 규정은 총액제로 사드 배치 자체 비용을 우리가 전액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0여년이 넘는 한·미 동맹에서 미국이 새로운 무기 체계를 한국에 배치했을 때, 그 비용을 전적으로 우리가 떠안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사드를 통한 ‘충분 억지력’의 확보 효과가 한·미 방위비분담금의 부분 증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현재 탄두화된 북한의 핵무기 위협으로 우리의 전쟁 억지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됨으로써 한·미 간 대북 도발과 전쟁 억지력을 구축하는 것이 이슈가 됐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 변화에 따라 지난해 한·미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시기’가 아닌 ‘조건’에 따라 재연기하고, 한미연합사의 용산 기지와 동두천의 1개 미군 여단을 잔류시키기로 했다. 또한 미 2사단 예하 국군기갑여단을 창설해 한·미 연합사단을 만들고 평시에 독립적으로 운영하다가 ‘전시’에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대북 핵억지 능력과 관련한 사드 배치는 국내 정치적 이념의 선택이나 중국과 미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줄타기의 대상이 아니다. 엄정한 군사전략적인 현실적 판단과 미래 대비라는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국민적 공론(公論) 과정을 거쳐 배치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 [속보]새누리 새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속보]새누리 새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에 ‘원박(원조 박근혜계)’으로 분류되는 대구 출신의 3선인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이 2일 당선됐다. 원내대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는 비박계(비박근혜계)로 간주되는 경기 출신의 4선인 원유철 (경기 평택갑) 의원이 선출됐다. 유 의원은 정책과 정무 능력을 두루 겸비한 3선 중진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원박(원조 친박근혜)’으로 분류된다. 현재 친박 주류측과는 상대적으로 소원해 ‘탈박(탈 친박)’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정치적 활동기와 칩거기의 명암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굴곡진 행보를 이어왔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선 주류측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제치고 쇄신과 과감한 변화를 내세워 당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청관계를 비롯해 당 전반에 걸친 폭넓은 개혁 작업을 선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 의원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냈고, 2000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에 전격 발탁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당시 총재의 ‘경제 선생님’이자 최측근으로서 2002년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고, 대선 패배 후 1년여 공백기를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사퇴후 대구 동을에 출마해 지역구로 배지를 갈아다는 진기록을 세웠다. 야당 시절의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과는 대표와 비서실장 사이로 첫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본선만큼 치열했던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 공약을 성안한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격 전략도 최선봉에서 진두지휘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장기간 정치적 칩거를 이어가다 2011년 전당대회에서 친박 대표주자로서 홍준표 당시 대표 최고위원 당선인에 이어 2위로 지도부에 입성, 화려하게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넉달만에 같은당 최구식 당시 의원 수행비서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 총사퇴를 유도하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후 특별한 당직은 맡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 취임 후엔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김 대표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사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치러진 19대 총선 당시 현재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에 강하게 반대한 것을 비롯해 복지와 분배 강화를 요구하는 개혁 성향 목소리를 선명하게 내며 박 대통령을 비롯한 주류측과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박 전 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시기다. 올해 초에는 김무성 대표의 수첩 사진이 공개되며 불거진 청와대 문건유출 ‘KY(김무성·유승민)’ 배후설 파문에 휘말려, 청와대 일부 비서진과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 바 있다. 한때 자신의 휘하에 있었던 청와대 비서진을 향해 “얼라들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10월 새누리당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과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스스로는 한결같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주류측에도 스킨십을 강화한다는 평이다. 유수호 전 의원(13·14대)의 차남. 배우자 오선혜(56)씨와 1남1녀.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시안컵 반짝반짝 빛난 4인방

    아시안컵 반짝반짝 빛난 4인방

    성숙했다…중원 지킴이 ‘캡틴’ 기성용 한국 대표팀의 ‘캡틴’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아시안컵 전 경기에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해 대표팀의 중원을 지켰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대표팀의 중심을 잡았다. 그는 “월드컵과 아시안컵을 비교할 수 없지만, 브라질에서 실망만 안겨 드려 이번 대회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고 다짐했다”며 “이것이 (4강까지) 무실점 경기로 이어졌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결승전을 마친 뒤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가짐과 태도가 모두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시원했다…역시 해결사 ‘손날두’ 손흥민 대표팀 막내 손흥민(23·레버쿠젠)은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0-1로 뒤져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폭발했다. 한국 대표팀이 역대 아시안컵에서 남긴 100번째 골이었다. 그는 아쉬운 패배를 당한 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손흥민은 “다른 선수들도 모두 아쉬워했을 것”이라며 “많은 축구팬에게 죄송하고 (이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차두리 형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많다”면서 “한국 대표팀과 빅리그 클럽에서 더 무서운 골잡이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놀라웠다…두 골 터뜨린 ‘군데렐라’ 이정협 이정협(24·상주 상무)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최고의 ‘신데렐라’로 각광받았다. 이전까지 무명 선수에 가까웠던 그는 두 골을 터뜨리며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각인시켰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발굴한 ‘흙 속의 진주’로 평가를 받는 그는 “이제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며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해서 이 자리에 다시 오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육군 상병 신분인 그는 “팀에 돌아가서 바로 동계훈련에 들어간다”며 “올해 세계군인체육대회도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도록 잘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든든했다…5경기 무실점 ‘거미손’ 김진현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은 아시안컵을 통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두 골을 내줬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 가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무실점 우승 기록을 세우고 싶었다”며 “아쉽고 또 아쉽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승규(울산 현대), 정성룡(수원 삼성) 등과의 주전 골키퍼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평을 듣게 된 그는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이 대회가 끝이 아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을 갖고 더 발전하고 박수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항모 수장”...김정은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항모 수장”...김정은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최근 북한이 서해와 동해에서 잇따라 미국 항공모함에 대한 대규모 타격 훈련을 실시하고 김정은이 “미국 항공모함을 얼마든지 수장해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도대체 어떤 전력과 전술을 가지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항공모함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말 동해 원산 앞바다에서 실시된 훈련에서 “빨치산식 전법으로 적의 중추를 호되게 공격하기 위한 전법을 부단히 연구·완성한다면 항공모함도 얼마든지 수장해버릴 수 있다”면서 “미 해군역사에 수치스러운 한 페이지를 우리 세대가 또 한 번 써주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객관적인 전력을 보자면 북한이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해 격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유사시에도 미국 항공모함이 북한 연안에 바짝 붙을 일도 없을뿐더러 미 항모 주변에는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과 핵잠수함들이 철통같은 방어선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전력이라고는 30년 넘은 구형 잠수함과 제대로 비행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전투기들뿐이니 이러한 전력으로 미 항모전단을 향해 돌격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을 넘어 ‘메추리알로 바위치기’에 가깝다. 하지만 아무리 전력 격차가 크게 나더라도 북한에서 ‘최고 존엄’이 지시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북한은 이미 반세기 전에 미국의 대형 순양함을 입으로 격침시켰던 화력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발찌모르 격침사건 평양에 있는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 가면 실내에 검은색 어뢰정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1950년 7월 2일 주문진 앞바다 해전에서 미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제2어뢰정대의 소형 어뢰정 가운데 1척이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4척의 소형 어뢰정으로 편성된 제2어뢰정대는 1950년 7월 2일 새벽 주문진 앞바다에서 미 해군 중순양함 1척과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척으로 구성된 함대와 조우했다. 미 군함들은 북한 어뢰정대를 발견하고 치열한 함포 사격을 퍼부었으나, 북한 어뢰정들은 미 해군의 탄막을 뚫고 근거리까지 돌격했다. 4척 가운데 2척은 중순양함을 향해 돌격했고, 1척은 연막탄을 치며 구축함을 유인하는 역할을, 다른 1척은 경순양함에 어뢰 공격을 퍼부었다. 전투 결과는 북한군의 압승이었다. 북한 어뢰정들은 자신보다 100배 이상 큰 1만3,600톤급 중순양함 ‘발찌모르'(USS Baltimore)를 격침시키고, 같이 있던 경순양함을 대파시켰으며, 구축함을 퇴각시켰다. 17톤짜리 어뢰정이 1만 톤이 넘는 순양함 함대를 상대로 이러한 승리를 거둔 것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첩이었고, 어뢰정대 지휘관 김군옥은 공화국영웅칭호를 받고 부대는 최정예 부대에만 부여되는 ’근위칭호‘가 주어졌다. 북한은 이 ‘발찌모르 격침사건’을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한 인민군 전사들이 빨치산식 게릴라 전술을 활용해 미국의 대형 전투함을 수장시킨 사례이며, 사상 무장만 잘 되어 있다면 미국의 대형 전투함들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1950년 7월 2일 새벽 북한이 격침시켰다는 ‘발찌모르’ 순양함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이 순양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6년 퇴역했다가 1952년에 미사일 순양함으로 개조하는 공사를 받고 1955년 재취역했기 때문에 1950년 7월 2일에는 미국 서부 워싱턴주에 있는 브레머톤(Bremerton)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었다. 7월 2일 새벽 주문진 앞바다에서 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이 해역에는 미 해군 경순양함 주노(USS Juneau), 영국해군 순양함 자메이카(HMS Jamaica), 호위함 블랙 스완(HMS Black Swan) 등 3척의 전투함이 있었다. 미 해군과 영국해군이 남긴 교전 기록에 따르면 북한 해군 어뢰정 4척과 기관포 탑재 경비정 2척이 출현해 함포 사격을 실시했고, 이 가운데 1척이 격침, 1척 대파, 1척 파손 피해를 입고 해안으로 도주했으며, 살아남은 1척 역시 바다로 도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교전에 참가했던 3척의 UN군 함정 가운데 2척은 북한 해역에서 계속 작전했고,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만 보급을 위해 사세보 항에 기항했는데, 기항 당시 자메이카는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고, 이후 1957년까지 세계 각지를 누비다가 정상 퇴역했다. 북한이 격침시켰다는 배가 교전 시간대에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북한은 “미국이 날조한 것이며, 실제로 격침된 배는 발찌모르 순양함과 동형인 보스턴함”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허위사실임을 증명하는 사진들이 여러 장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한 바 있었다. 더 우스운 것은 북한이 격침시켰다는 순양함은 건재하고, 4척이 무사 귀환했다는 북한 어뢰정은 1척만 남아 육상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살아남은 어뢰정은 당시 도주했던 1척일 것이며 생환 후 패배를 숨기고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 보고를 한 것이 ‘발찌모르 격침사건’ 조작의 시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빨치산식 타격 전법, 항모 격침 가능할까? 이번에 두 차례나 김정은이 현지 지도했던 항공모함 타격훈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모하다 못해 우습기까지 하다. 현대적인 해상 전투와는 거리가 대단히 먼 무기와 전술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해와 동해 해안과 가까운 작은 무인도를 미국 항공모함으로 가정해 훈련을 시작했다. 가상의 미군 항공모함이 나타나면 항공 및 반항공군의 전파탐지기구분대(레이더 부대)가 이를 포착해 경보를 전파하고, 전투기가 출격해 공습을 하면서 수중에서 매복해 있던 잠수함들이 어뢰 공격을 퍼붓는 방식이다. 훈련에 동원된 전투기는 북한 공군이 56대 가량 보유하고 있는 MIG-23 전투기였다. 애초에 공대공 요격기로 개발된 이 전투기는 대함 미사일 등 정밀 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없어 대함 공격능력이 없다. 북한군은 이 전투기에 유도가 되지 않는 ‘멍텅구리 폭탄’과 로켓포드, 기관포 등을 탑재해 공격하는 원시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기가 적함 상공까지 날아가 폭탄을 투하하고 로켓탄으로 공격하는 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나 있었던 전술이며,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근래에는 구사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미 해군 항공모함 타격전단은 이지스 순양함 1척과 이지스 구축함 4~6척,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2척 등으로 구성된다. 항모 전단의 상공에는 E-2D 조기경보기와 F/A-18E/F 전투기 4~6대가 공중 초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공군 전투기가 이륙하면 이륙 단계에서부터 즉각 포착이 가능하다. F/A-18E/F 전투기는 사거리 70km 이상의 AIM-120C 공대공 미사일을 최대 8발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공군이 보유한 모든 MIG-23 전투기가 동시에 공격해 오더라도 MIG-23의 레이더 탐지거리 밖에서 이들을 모두 격추시킬 수 있다. 굳이 전투기가 동원되지 않더라도 항모 전단에 배속된 이지스 구축함들만 요격에 나서더라도 북한의 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각각의 이지스함은 18개 안팎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7척의 이지스함은 아무리 그 능력을 낮게 평가하더라도 126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즉, 미 항모를 노리는 모든 북한 전투기는 항모 반경 100km 이내 접근이 불가능하다. 북한에게는 MIG-23 이외에도 구식인 H-5 폭격기를 개조해 공대함 미사일 발사용으로 운용 중인 기체가 있지만, 그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전력으로도 미 해군 항모전단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잠수함은 어떨까? 북한이 이번 훈련에 동원한 잠수함은 북한 해군의 주력 잠수함인 1,800톤급 ‘무한(武漢)’급으로 1960년대 개발된 구소련제 로미오(Romeo)급 디젤 잠수함의 중국제 복제 생산형의 부품을 가져다가 북한이 건조한 구형 잠수함이다. 이러한 구형 잠수함들이 미 해군 항모를 격침시키는 것은 미 항모가 호위 전력 없이 혼자서 북한 영해 깊숙이 들어갈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주력 함재 전투기의 전투행동반경이 1,000km에 육박하는 마당에 미 해군 항모가 북한 영해에 접근할 이유가 없다. ▲‘메추리 알로 바위 치기’ 미 해군은 대잠수함 작전 시 항공모함 주변을 다수의 구축함들이 둘러싸고 구축함의 소나와 대잠헬기를 이용해 여러 겹의 대잠 저지선을 편다. 미 해군은 십 수 년간 환태평양군사훈련(RIMPAC) 기간 중 여러 나라의 디젤 잠수함을 대상으로 재래식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과 무기체계를 개발해 왔고, 잠수함이 내는 미세한 소음이나 자기 변동, 통신 추적 등을 통해 잠수함을 잡아내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장비,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형 디젤 잠수함 몇 척이 항모 전단의 방어선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북한 잠수함이 미 해군의 대잠 저지선을 뚫고 항공모함에 어뢰를 발사해 명중한다 하더라도 철저한 수밀 설계가 되어 있는 대형 항공모함을 어뢰 1~2발로 격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미 해군은 접근하는 어뢰를 교란 및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준비해 놓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호언장담한 것처럼 북한 잠수함이 미 해군 항모를 수장시키는 것은 김정은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김정은 역시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군인들의 사기 진작과 내부 결속을 위해 그는 “빨치산식 전법으로 항공모함도 수장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고, ‘최고 존엄’의 독려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북한군 조종사들과 잠수함 승조원들은 미 해군 항모를 향해 자살돌격도 마다하지 않는 ‘수령 결사옹위를 위한 총폭탄’을 기꺼이 자처할 것이다. 손으로 계란을 들고 바위에 내리친다면 깨지는 것은 계란이지 손이 아닌 것처럼 죽어 나가는 것은 북한 군인들이지 김정은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일신 안위를 위해 군인과 백성들을 사지로 내모는 지도자의 말로(末路)는 언제나 비참하다는 것은 오늘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김정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단독][2월 정국 전망] 與·野·政·靑 동시다발 인물 교체… 치열한 주도권 경쟁

    [단독][2월 정국 전망] 與·野·政·靑 동시다발 인물 교체… 치열한 주도권 경쟁

    ‘2월 정국’을 주목하라. 이달 들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당·정·청과 야당의 인물 교체가 곧바로 ‘설 밥상’에 오르며 올 한 해 정치판의 변화를 추동할 역학 관계와 방향성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에서다. 특히 설 민심은 연말 이후 정체됐던 정치를 자극하면서 향후 치열한 정국 주도권 경쟁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2일 신임 원내대표 선출은 당·청 관계 재정립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8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 대표와 지도 체제를 출범시키며 4월 재·보선을 첫 시험대로 맞게 된다. 9~10일로 예정된 책임 총리를 표방하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와 이달 내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김기춘 비서실장 거취 등 청와대 후속 인사와 개각도 정치적 휘발성이 만만치 않은 국정 변수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 생일인 2일 대중에게 공개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의 이 전 대통령 증인 채택 여부와 맞물려 연쇄적인 정치·외교적 갈등을 유인하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일] 새누리 원내대표 경선 친박 vs 비박… 여권 내 권력 구도 변화 예고 2일 마무리되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는 향후 당·정·청 관계 및 여권 내 역학 구도 변화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 중 하나다. 특히 지난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취임 이후 당·청 간 잦은 잡음이 나오는 상황에서 누가 원내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정책 추진 등을 둘러싼 당·청 간 주도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이번 선거에서 맞붙은 기호 1번 유승민·원유철 의원 조와 2번 이주영·홍문종 의원 조는 친박근혜계 대 비박근혜계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유·원 의원 조가 청와대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민심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당이 당·청 관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이에 이들 조가 승리할 경우 당이 여권 내 혁신을 주도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홍 의원 조는 당·청 간 협력을 주장하고 있다. 불필요한 잡음보다는 당·청 소통을 강화해 여권 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기존 이완구 전 원내대표 체제와 비슷한 원만한 당·청 관계가 예상되며, 청와대가 당에 정책 협조를 당부하는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8일] 새정치연 전당대회 6개월 만에 비상위 탈출… 야당성 드러낼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8일 전당대회를 통해당 지도부를 교체하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벗어난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한 지난해 3월 이후 10개월 만에, 7·30 재·보선 패배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무너진 지 6개월 만에 조직과 지도부를 모두 갖추게 된다. 문재인·박지원·이인영 당 대표 후보 모두 공통적으로 ‘선명한 야당성’을 내세우고 있고, 야당성을 드러낼 만한 정국 조성도 예상된다. 청와대 비선 개입 의혹 사건, 연말정산 개편 파문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권의 리더십이 흔들렸고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외교 국조, 야당 텃밭 위주의 4월 보궐 선거가 예고되어 있다. 역으로 ‘네거티브 선거전’의 후유증을 추스르고 당내 계파 정리를 하는 일이 새 대표에게 급선무가 될 수도 있다. 재야 진보인사들로 구성된 ‘국민모임’의 신당 추진, 나아가 진보정당 간 통합 논의 등 야권 전체의 재편 움직임도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결과와 연계돼 있다. 지난달 29일 국민모임이 신당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30일 원외 진보정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로 ‘정의당과의 통합 공약’을 내건 나경채 후보가 선출됐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1일 “정의당은 어떻게든 진보재편 논의를 되는 판으로 만들 책임이 있다”며 의지를 보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9 ~10일]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 박근혜 정부 ‘내각·당·청 관계’ 분수령 될 듯 이달 중순쯤 예상되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탄생은 현 정부의 내각과 당·청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첫 정치인 출신 총리 후보자라는 점이 여·야·정 간의 원활한 소통과 책임총리제 실현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키워 놓았기 때문이다. 당초 정치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 총리 기용을 기피한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번에는 3선 의원인 이 후보자를 지명하며 ‘전향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총리 후보자의 두 번의 낙마 탓도 있겠지만 국회와의 소통에 방점을 찍고 여권에 악화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이 후보자가 오는 9~10일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별 탈 없이 통과할 경우 향후 내각 운영과 당·청 관계가 기존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청 간 불협화음이 줄어들 뿐 아니라 총리가 ‘대독총리’라는 오명을 씻어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물론 부동산과 관련한 연이은 의혹 제기로 인해 낙마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이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치명상을 입게 돼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초~중순] 청와대 개편·개각 김기춘 교체 여부·신임 비서실장 후보에 관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이래 진행 중인 청와대 개편과 개각 역시 정국의 향방을 가를 주요 변수이다. 특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 시점과 신임 비서실장이 누가 되느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김 실장은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시도됐던 국무총리 교체 과정에서 빚어진 후보자 낙마와 추가 인사 추천 실패, 거듭된 인사 검증의 실패, 정윤회 사건에 대한 대처 미흡, 각종 정책 혼선 등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떠나는 만큼 정국의 흐름을 바꾸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권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이미 새 국무총리 내정, 청와대 조직개편과 수석비서관 교체 등이 단행됐음에도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 것도 민심이 ‘책임 소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실장은 재임 기간 ‘정치의 영역’을 축소시킴으로써 청와대 비서실에 ‘불통’ 이미지를 더한 측면이 있는 만큼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 및 내각 등과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 신임 비서실장의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개각은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이후인 이달 중순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개각의 폭과 인선에 박 대통령의 정국 운용 방향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18~20일] 설 연휴 설날 ‘밥상 민심’ 촉각… 정치권 여론전 나서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의 ‘밥상머리 민심’도 정치 지형을 좌우할 요소 중 하나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나눈 정치 화두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매년 여야 정치권이 설날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책 홍보물 배포’, ‘귀성 인사’ 등 여론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올해는 설날을 앞두고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연말정산 논란’ 등이 최대 이슈로 ‘밥상머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유출’ 문제와 ‘조류인플루엔자’(AI), ‘6·4 지방선거’ 등이 설날 민심의 최대 화두로 꼽혔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8일 새롭게 선출되는 당 대표를 중심으로 전선을 형성해 대여 견제력을 강화하고, 새누리당은 당·청 관계를 새롭게 정립,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동력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윤희웅 민 여론분석센터 센터장은 “최근 박근혜 정부에 대해 악화된 여론이 회복의 기류로 갈지, 악화된 흐름이 그대로 이어질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정권을 뒷받침하던 장년층인 50~60대의 지지율 회복을 놓고 여야가 각자의 노력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씨줄날줄] 삼성-애플의 ‘사이즈 대전’/정기홍 논설위원

    수년 전 삼성전자 관계자와 “아이패드의 시장 확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삼성은 크기를 더 작게 하는 게 어떨까”라며 태블릿PC 시장을 전망한 적이 있다. 아이패드가 덩치 작은 동양인의 호감을 사기 어려울 것이란 게 이유였다. 애플의 아이폰에 이은 아이패드(2010년 1월 출시)가 관심을 끌었고, 삼성의 태블릿PC 갤럭시탭이 출시되기 전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이패드에 대한 찬사와 희망가를 앞다퉈 내놓았다. 그 뒤 삼성 관계자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과 애플간의 ‘사이즈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애플이 그제 발표한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이면에 ‘패블릿’(스마트폰+태블릿) 돌풍이 자리해서다. 패블릿은 화면 크기가 5~7인치인 스마트폰이다. 애플은 지난해 후반기에 출시한 ‘아이폰6 시리즈’의 인기에 힙입어 지난해 4분기에 7000여만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과 판매량이 비슷해졌다. 4인치대를 고수하다 대화면으로 바꾸면서 중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지역은 대화면 스마트폰을 좋아한다. 패블릿 점유율은 올해 스마트폰 시장 10%를 넘어서고, 2019년에는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태블릿PC 시장은 화면을 키운 패블릿에 의해 타격을 입으며 애당초 예상과 달리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 삼성과 애플은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사사건건 물고 물리는 싸움을 치러 왔다. 처음엔 삼성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아이폰 출시(2007년)때다. 그러나 삼성은 아이폰의 모서리 디자인을 베꼈다는 논란에서도 2011년 3분기에 보란 듯이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애플이 “아이폰 크기를 키우지 말라”는 스티브 잡스의 신주 같은 지침을 따르면서 삼성의 추격을 허용한 것이다.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잡스의 생각이었다. 이후 삼성에 일격을 당한 애플은 이번에 아이폰6로 삼성 따라 하기에 나서면서 삼성에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애플은 삼성의 선점에 고심하다가 4인치대의 제품을 내놓았지만 이도저도 아니란 혹평을 받기도 했다. 패블릿 시장은 벌써 지난해 1억 7500만대에 이어 올해 3억 1800만대로 늘어나 앞으로 스마트 기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사이즈 싸움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제 차별성마저 없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 업체들의 공세도 만만찮아졌다. 글로벌 리더인 두 기업은 디자인과 기술특허 등을 놓고 벌인 1차 대전에 이어 지금은 2차 대전을 준비 중이다. 다음 타깃은 태블릿PC와 패블릿 시장과 달리 시계만 한 작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시장이다. 둘 간의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다. 잡스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사용층과 용도가 차별화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빗나갔다. 승자의 자리는 창조적이고 시장 지향형의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고 접목하는 쪽이 차지할 것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바다 위 설탕 무역, 동·서양 역사의 물줄기 바꾸다

    바다 위 설탕 무역, 동·서양 역사의 물줄기 바꾸다

    3000년 전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건 동양이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주도권은 서양으로 넘어갔다. KBS 1TV의 4부작 다큐멘터리 ‘바다의 제국’은 동양과 서양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에서 동양의 패배를 상징하는 아편전쟁까지 약 400년의 역사를 교역과 자본축적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지금은 흔한 일상용품이 된 후추, 면직물, 설탕, 차를 둘러싸고 근대의 바다에서 동서양이 충돌하고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순간을 되살린다. 30일 밤 10시 방송되는 2편 ‘부(富)의 빅뱅’은 설탕을 통해 왜 동양이 서양에 역전당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동양에 마땅히 팔 물건이 없었던 서양이 선택한 것은 삼각무역이었다. 네덜란드는 아시아시장에서 삼각무역을 하며 부를 키워 나갔다. 이런 무역 방식을 본격적인 산업에 적용한 것이 영국이었다. 영국은 설탕이라는 세계 상품의 중요성을 알고 노예무역과 아메리카 식민지를 연결하는 설탕 플랜테이션 산업을 시작하며 엄청난 부(富)를 얻게 된다. 동서양 역전의 밑바탕에는 바다를 보는 관점의 차이가 깔려 있었다. 서양은 바다를 단순한 ‘길’로 본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설탕 플랜테이션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생산 양식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인류 역사의 가장 참혹한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4부작의 촬영을 위해 총 제작 기간 1년, 이동거리 3216만 4458㎞에 제작비 8억원이 소요됐다. 영화 ‘명량’, ‘해적’ 등에서 바다 그래픽을 담당했던 특수영상팀이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근대의 바다를 복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아시안컵] 골보다 빛난 ‘무실점’… 별보다 빛난 ‘팀’

    [아시안컵] 골보다 빛난 ‘무실점’… 별보다 빛난 ‘팀’

    스물셋 김진수(호펜하임)가 27년 만의 결승행에 앞장섰다. 슈틸리케호의 막내 김진수는 26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 경기에서 전반 20분 결정적 크로스로 이정협(상주)의 선제골을 도와 2-0 완승에 힘을 보탰다. 이로써 대표팀은 27일 오후 6시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호주-아랍에미리트연합(UAE) 승자와 31일 같은 시간 결승을 벌여 55년 만의 우승을 겨냥한다. 2007년 대회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 이라크의 사상 첫 우승에 길을 터줬던 한국은 이 한을 통쾌하게 되갚으며 조별리그에 이어 8강전, 4강전까지 다섯 경기 (8득점)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1979년 이란의 네 경기 연속 무실점 우승을 넘어 여섯 경기를 치른 대회에서 가장 완벽한 우승을 꿈꾸게 됐다. 아울러 이날 후반 5분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추가골까지 대회 통산 99호골을 기록함으로써 31일 결승에서 누가 대회 100호골의 주인공이 될지 관심을 모은다. 선제골을 넣은 이정협, 쐐기골을 뽑은 김영권보다 더 돋보인 건 김진수였다. 전반 2분 깔끔한 태클로 상대의 공을 가로챈 그는 16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강력한 중거리슈팅으로 이라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4분 뒤 상대 오른쪽 진영에서 날카로운 ‘택배 크로스’를 올려 이정협의 헤딩 선제골을 이끌었다. 나흘 전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 전반 날카로운 패스로 ‘절친’ 손흥민(레버쿠젠)의 선제골을 도왔던 김진수의 두 경기 연속 알토란 같은 도움이었다. ‘맏형’ 차두리(FC서울)와 함께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고 중원과 때로는 상대 깊숙한 진영까지 압박해 이라크의 발목을 붙잡았다. 상대 공격을 예리한 태클로 막아낸 것만 네 차례나 됐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직전 발을 다쳐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김진수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지휘한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 금메달을 따내는 데 공을 세웠다.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어 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 든 그는 이번 대회 다섯 경기에 모두 풀타임으로 뛰며 ‘진짜 황태자’임을 증명했다. 선제골의 주인공 이정협은 후반 5분 손흥민의 코너킥 이후 문전 혼전 상황에 공을 몸으로 밀어 떨어뜨려 김영권의 강한 왼발슛을 유도, 1골 1도움으로 결승행에 앞장섰다. 차두리는 7분 뒤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두르감 이스마엘이 시도한 슈팅을 엉덩이로 막아내는 투혼으로 이라크의 공세를 벗어나는 데 공헌했고, 38분에도 상대 공격수의 쇄도를 페널티지역 안에서 지능적인 어깨 싸움으로 이겨내는 등 승리의 주춧돌을 깔았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KT, 스마트 에너지 대형사업 나선다

    KT, 스마트 에너지 대형사업 나선다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황창규 KT 회장이 26일 새해 첫 기자 간담회을 열고 “조만간 스마트 에너지 분야에서 대형 사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KT광화문빌딩 웨스트(구사옥) 내 기자실을 찾아 “100% 충분하진 않지만 미래 비전을 세우고 통신을 성장산업으로 만들고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지난 1년을 돌아봤다. 이어 “취임 첫날부터 줄곧 소모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개발이나 품질개발,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통신시장의 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면서 “미래 신사업의 준비 성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가 위기의 KT를 추스르는 한 해였다면 올해는 제대로 성과를 내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최근 불법 보조금, 3밴드 LTE-A 최초 상용화 등 경쟁사와의 잇단 분쟁에 대해서는 “경쟁사 간 소모적인 경쟁은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정부도 공정 경쟁을 위해 잘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통신 경험이 전무하다는 우려에도 황 회장의 지난 1년을 평가하는 안팎의 시선은 긍정적이다. 그는 비슷하거나 중복된 보직을 정리하고 임원을 30% 이상 감축하는 등 방만해진 KT 조직에 거침없이 메스(수술용 칼)를 들이댔다. 최대 규모의 명예 퇴직도 단행했다. 문어발식 경영에서 탈피해 ‘기가 인터넷’ 등 KT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만 골라 키우는 ‘선택과 집중’의 묘도 빛났다. KT 관계자는 “패배 의식이 만연한 위기 상황에서 (황 회장은)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KT의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선 부문 가입자는 지속적인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유선 부문도 경쟁 업체의 추격이 거세 앞으로 황 회장의 경영 능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받을 전망이다. 한편 KT는 이날 KT 서초 사옥을 정리하고 지상 25층, 지하 6층 규모의 신사옥 KT광화문빌딩 이스트에 정식 입주, ‘새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 신사옥에는 서초 사옥에 있던 회장 집무실과 비서실은 물론 경영기획, 재무, 인사 등 그룹의 핵심 인력이 대거 옮겨 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루쉰 ‘아Q정전’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루쉰 ‘아Q정전’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迅), ‘고향’ 중에서- 얼마 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생’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됐던 말이다. 미생이란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은 돌’이라는 뜻의 바둑 용어다. 이를 좀 더 넓게 해석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완전하게 살지는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의미다. 드라마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완생을 ‘희망’하는 모든 미생에게 남기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한 루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누구나 한번쯤 접해 보았을 ‘아Q정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으며 그는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중국의 작가 루쉰은 1881년 저장성 사오싱의 저우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은 15세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난징으로 가서 광무철로학당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공부에 매진하였으나, 강의시간에 동포가 처형되는 장면을 담은 시사 영화를 보고 국민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는 정신 개혁이 급선무라 여기고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러나 도쿄에서 잡지 ‘신생’을 발간하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좌절에 빠진다. 글쓰기를 권하는 친구에게 루쉰은 가령 쇠로 된 방이 있는데 사방이 막혀 죽을 판이라면 잠자는 그들을 깨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중국의 현 상황을 우회하여 반문한다. 그때 친구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몇 사람이라도 깨어 있다면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있다고. 이 말을 듣고 루쉰은 마음을 바꿔 중국의 미래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청나라가 망하고 쑨원(孫文)을 총통으로 추대한 ‘중화민국’이 출범하였지만 국내에 지지 세력이 약했던 쑨원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총통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위안스카이는 황제가 되기 위해 외국 차관에 의지하고 일본의 굴종적인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가 병사한 뒤에는 각지에서 군벌이 할거하면서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때 루쉰은 귀국하여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원으로 참가해 베이징에 이주하지만 신해혁명에 대한 실망과 어두운 현실을 보며 방황한다. 루쉰은 1918년에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를 써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광인(狂人)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는 봉건왕조를 청산하려는 중국 젊은이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언문일치의 문학 혁명을 일으켜 중국 신문예를 탄생시켰다. 1921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Q정전’에서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정신승리법의 우매성과 약점을 냉철하게 풍자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사회의 의식개조를 목적으로 수많은 글을 발표한 루쉰은 1936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상하이 만국공원에 묻혔다. 그가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민족의 고뇌를 몸소 체험하고 중국민족을 각성하고자 실천한 열망 때문이었다. 진정한 문학이란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작품 속에 진실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데, 이러한 진실이 인간을 바꾸고, 희망을 주므로 독자들에게 삶을 긍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근대화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중국민족을 문학을 통해 치료하고자 한 루쉰. 그의 작품 대부분은 봉건적 습속이 혼재된 반식민지 상태라는 어두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변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의도가 ‘아Q정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Q정전’은 신해혁명을 전후로 한 농촌을 배경으로 성명도 본적도 불확실한 날품팔이꾼 아Q의 이야기를 정전의 형식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웨이짱 마을 토곡사에 사는 아Q는 집도 없고 일거리도 없으며 탈모 흉터로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볼품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매우 강하여 마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항상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는 동네 지주인 짜오 영감이나 가짜 양귀신에게는 비굴하게 몸을 조아리는 반면 자기보다 약한 비구니에게는 남에게서 받은 수모를 앙갚음한다. 어느 날 웨이짱 마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온다. 아Q는 평소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혁명당을 보고 허둥대자 투항하여 원한을 갚으려고 한다. 하지만 아Q는 혁명당원들이 짜오 영감의 집을 약탈하는 것을 본 뒤 짜오 영감의 집을 털었다는 누명을 쓴 채 어이없는 총살을 당한다. 루쉰은 아Q의 정신승리법이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마취시키는 병리적 현상으로 중국인의 잘못된 민족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정신승리법이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머릿속에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여 만족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기와 불안, 실패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겨 나가려 하지 않고 정신 속으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을 얻은 다음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심리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영웅주의와 패배주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약한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아첨한다. 루쉰은 아Q가 가진 이러한 성향이 청나라 말기 유교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자아정체성을 상실한 중국인의 표본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아Q가 즉흥적으로 혁명당에 투항하기로 한 것이나, 혁명을 변발의 자유나 가슴에 단 은복숭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통해 당시 중국민족이 신해혁명을 매우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해혁명을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의식적인 활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부화뇌동하는 정도로 보았던 것이다. 혁명의 완성이란 거대한 목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개체가 변화되는 것이라고 볼 때 그 한계는 극명해 보인다. 또한 아Q의 총살을 형편없는 사형수법으로 인식하는 군중의 한계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중국인들의 의식구조의 문제점과 신해혁명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자조적인 태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중국민족에게 희망의 출발은 근대 주체로서의 자기 발견, 비극적인 현재를 정확히 각성하여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루쉰의 이러한 시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구한말 억압적이고 굴종적인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반봉건, 반외세의 이중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중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결국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외침이었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일어서라는 절규였다.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근대화의 시행착오 속에서 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만의 자주적 근대화였고, 통합된 외침이어야 했으며,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개개인 주체 모두의 각성이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작품 속 아Q는 우리에게 희망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고통 속의 자각이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제주섬 굽이굽이 길에 서린 진한 삶의 향기를 느끼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제주섬 굽이굽이 길에 서린 진한 삶의 향기를 느끼다

    제주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속살을 보여 준다면 제주 유배길은 유배 문화에 빠져 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선시대 제주 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한번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절망의 제주 유배길, 치열한 당파 싸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패배 역사가 유배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유배된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에게 제주 유배는 패배의 시간이 아니라 완성과 창조의 시간이었다. 당대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유배 흔적을 찾아가는 제주 유배길은 제주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 유배길은 추사 유배길과 제주성안 유배길, 면암 유배길 등 세 곳이 있다.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는 추사 유배길은 제주의 대표 유배길이다. 추사 김정희는 헌종 6년(1840) 9월 당시 정치권력이었던 안동 김씨의 음모에 의해 제주에 유배된다. 군신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와 그 아들의 상소문을 추사가 작성했다고 안동 김씨 세력이 주장하면서 유배돼 헌종 14년(1848) 12월까지 8년 3개월 동안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 김정희는 70 평생 벼루 10개를 갈아 닳게 했고 1000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한다. 추사 유배길은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 추사 유배 1길은 제주 대정읍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어졌다. 제주 유배 생활에서 추사가 쓴 글씨와 그림 등이 전시돼 있어 추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제주에 와 추사가 머물렀던 추사 유배집 강도순의 제주 초가집은 복원돼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가 매일 바라봤던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인 바굼지 오름(단산)도 볼거리다. 추사 2길에선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제주 전통 옹기를 만들었던 도요지가 있어 제주의 옹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제주의 바다, 오름, 계곡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대정향교에서 시작,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시내 구도심에는 제주성안 유배길이 있다. 옛 제주성을 중심으로 유배인들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성안 유배길은 제주목 관아에서 시작해 유배지를 거쳐 다시 제주목 관아로 돌아오는 3㎞ 순환코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목 관아는 탐라국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배인이 제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 제주목 관아였다. 광해군, 우암 송시열, 추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이곳에 들러 일개 제주목사에게 자신의 당도를 아뢰어야만 했다. 당장은 유배인이지만 정치범인 이들은 다시 중앙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할 가능성이 있어 제주목사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반면 제주목사와의 잘못된 인연은 유배의 고통을 더했다. 정조 때 유배인 조정철은 원수 집안 사람인 김시구가 제주목사로 내려오면서 험난한 유배 생활을 했다. 그를 돌봐 주었던 제주 여인 홍윤애는 목숨을 잃었고 훗날 유배에서 풀려난 조정철은 제주목사로 부임해 그녀의 묘를 돌보며 안타까워했다. 성안 유배길에서는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하다 제주에 유배돼 5년을 지낸 간옹 이익(?~?),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했다가 탄핵된 면암 최익현(1833~1906)의 유배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왕세자 책봉을 반대했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1689년(숙종 15년) 83세 고령의 나이로 제주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1607~1689), 제주 유배인 가운데 유일하게 왕이었던 광해군(1575~1641)은 5년의 유배살이 끝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제주의 마지막 유배인인 3·1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1864~1930)의 제주 유배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 면암 최익현이 걸었던 면암 유배길은 제주시 오라동 연미마을에서 조설대~정실마을을 거쳐 방선문에 이르는 5.5㎞의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1873년 11월 제주 유배길에 오른 면암 최익현은 제주목 관아 부근에 있던 아전 윤규환의 집에서 유배 생활에 들어간다. 면암 최익현은 1875년 3월 제주에 온 지 1년 3개월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지만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라산에 오른다. 제주성 남문에서 출발해 방선문을 거쳐 지금의 관음사 코스인 탐라계곡~개미목~삼각봉~용진각으로 백록담에 올랐다. 그는 한라산에 오르면서 들른 방선문 계곡과 백록담, 영실, 오백 장군 등을 구경한 소감을 ‘유한라산기’에 기록해 놓았다. 영주 십경의 하나인 방선문 마애명에는 면암 최익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그가 유배 당시 이곳에 왔음을 보여 준다. 제주 유배길을 개설하고 이야기를 더한 스토리텔링연구센터 소장 양진건 제주대 교수는 “유배라는 고난의 시기에도 자신을 다스리며 삶의 큰 발자취를 남긴 유배인에게 유배는 자신의 신념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라며 “제주 유배길에서는 그들의 진한 삶의 향기를 느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일본, UAE에 승부차기 패배 ‘혼다-카가와 에이스 무너졌다’ 하이라이트 보니

    일본, UAE에 승부차기 패배 ‘혼다-카가와 에이스 무너졌다’ 하이라이트 보니

    일본, UAE에 승부차기 패배 ‘혼다-카가와 에이스 무너졌다’ 하이라이트 보니 ’일본 UAE 하이라이트 승부차기’ 일본 UAE 아시안컵 경기 결과가 화제다. UAE가 승부차기 접전 끝에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4회)인 일본을 상대로 승리했다. 23일 오후 6시30분(이하 한국시간)부터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스타디움에서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일본과 UAE 경기가 펼쳐졌다. 첫 골은 UAE가 넣었다. 전반 7분만에 UAE의 마브코트가 아메르 압둘라흐만이 이어준 패스를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하며 일본의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골을 내준 일본은 이누이와 혼다, 카가와 등 주력 선수들을 중심으로 골망을 노렸으나 동점골을 뽑는데 실패했다. 이어 후반 8분 일본은 시바사키를 교체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36분 혼다와 패스를 주고받은 시바사키는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1-1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에서도 양 팀은 치열한 혈투를 펼쳤지만 득점하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첫 주자로 나선 일본의 에이스 혼다와 6번째 키커 카가와의 실축으로 8강에서 탈락했다. 사진=SBS sports 방송캡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시안컵] 승부차기에 운 우승 후보들

    ‘혈전, 승부차기, 이변.’ 23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키워드다. 우승 후보로 점쳐졌던 이란과 일본이 3시간 접전 끝에 나란히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이란은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숙적 이라크를 상대로 3-3으로 승부차기에 돌입, 6-7로 졌다. 대회 통산 4번째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전반 43분 이란 수비수 메흐다드 풀라디의 퇴장이 치명적이었다. 1-1로 연장전에 접어든 이란은 연장 전반 3분 이라크에 역전골을 허용했다. 10분 뒤 모르테자 푸랄리간지의 헤딩골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11분 이라크에 페널티킥 실점해 또 한 차례 위기에 빠진 이란은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이란 레자 구차네지하드의 기적 같은 헤딩슛으로 경기를 승부차기로 끌고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6-6 팽팽한 상황에서 이란의 8번째 키커 바히드 아미리가 득점에 실패했다. 반면 이라크의 살람 샤키르는 오른발슛을 침착하게 성공시켜 팀에 준결승행 티켓을 안겼다. 한편 대회 최다 우승국(4회)이자 직전 대회 우승국인 일본은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1-1로 승부차기에 돌입, 4-5로 무릎을 꿇었다. 최근 3차례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UAE는 강호 일본을 잡아 4강에 오르며 대회 최고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UAE는 전반 7분 알리 맙쿠트의 오른발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다. 끊임없이 UAE의 골문을 두들긴 일본은 후반 36분 가까스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어느 쪽도 추가 득점하지 못한 채 연장전까지 끝났다.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일본의 6번째 키커 가가와 신지의 발끝에서 승패가 갈렸다. 4-4 상황에서 가가와의 슛은 왼쪽 골대에 맞고 튕겨 나갔다. 이어 UAE의 이스마일 아메드가 오른발슛을 정확히 골문 안에 넣어 일본을 떨어뜨렸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사담 후세인 딸 “직접 만든 보석으로 IS 돕겠다”

    사담 후세인 딸 “직접 만든 보석으로 IS 돕겠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딸인 라가드 후세인(46)이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제작한 보석을 팔아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라가드 후세인은 요르단에서 가장 호화로운 보석 매장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반지와 목걸이, 팔찌, 펜던트 등을 공개했다. 그녀는 “아버지는 수 년 전 내게 터키석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물려주셨다. 나는 3년 전까지 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좋아하거나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슷한 디자인의 팔찌를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와 함께 이라크를 본단 형태의 펜던트도 공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바그다드는 이라크의 심장이다. 그래서 나는 펜던트 다이아몬드를 넣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귀걸이에 대해서는 “내 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원래는 고인이 된 남편이 내게 준 것인데 이를 귀걸이로 바꿨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한 컬렉션 대부분은 그녀가 독재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죽은 남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리를 사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아버지와 매우 유사한 성향과 성격으로도 유명하며, 그녀가 보석 디자이너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일가와 IS의 관계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해 9월 파이낸셜타임즈(FT)의 보도에 따르면, IS의 자금줄이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 시절 구축된 석유 밀매망인 것으로 알려졌다.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 밀매를 통해 하루 평균 100만~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비록 라가드는 IS가 지향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이라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IS 덕분이었다”면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길 원하며, 사담 후세인이 몸담았던 수니파 정당인 바스당은 IS가 이라크 북부를 장악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IS를 돕는데 쓰겠다고 공언한 액세서리들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의 몇몇 독점 숍에서만 판매된다. 펜던트의 가격은 약 165만원, 터키옥 팔찌는 약 217만원 상당이다. 한편 사담 후세인은 1979년 이라크 대통령에 취임한 뒤 걸프전을 일으켰으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체포돼 2006년 사형당했다. 그의 첫째 딸인 라가드 후세인은 아버지의 사형 이후에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7년에도 수니파 무장새력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혐으로 이라크 내무장관으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손성진 칼럼] 김홍섭과 뇌물 판사

    [손성진 칼럼] 김홍섭과 뇌물 판사

    세상은 온통 탐욕으로 끓어 넘친다. 권력을 좇고 돈을 밝히고 육체를 탐하는 무리로 주변은 어지럽기만 하다. 도덕의 보루라고 할 종교집단과 학교도 타락한 지 오래다. 또 한 번 양심을 수호해야 할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현직 판사가 쇠고랑을 차는 치욕적인 사건이 사법부의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권력에 휘둘리고 금전에 속박되어 법조계는 이미 썩어 가고 있다. 검찰이 그렇고 변호사 업계는 더하다. 그래도 사법부만은 몇몇 비리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세파의 물이 덜 든 청정 지역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보면서 희망과 기대는 점점 사그라진다. 오염된 법조계를 보고 한탄하면서 다시금 떠오르는 인물이 ‘사도 법관’으로 불리는 김홍섭(1915~1965) 판사다. 서울고등법원장 자리까지 오른 김 판사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특권과 부귀를 멀리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늘 중고 싸구려 양복 차림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오버코트는 미군 모포에 물을 들여 지어 입었다. 점심은 단무지 도시락으로 때웠다고 한다. 김 판사가 추앙받는 이유는 검소한 생활보다는 죄수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압도당한 패배자들 앞에 ‘좋은 법관’이기 전에 또는 그와 동시에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어야겠다.” 김 판사는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을 단죄할 수 있는지 늘 고민했다. 그래서 판결 후 피고인들에게 “부덕한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 무척 죄송하다”고 했다. 또 자신이 사형을 선고한 사형수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는 봉급의 대부분을 가난한 죄수들을 돌보고 사형수들의 묘지를 사는 데 썼다. 죽고 나서도 사형수들 곁에 묻혔다. 오늘날 고위 법관들은 가난과는 거리가 멀다. 재산이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이들이 수두룩하고 봉급도 적지 않다. 퇴직하면 한 해에 수억, 수십억원을 벌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런데도 사건 관계인들과 어울리고 접대를 받고 급기야 수억원의 뇌물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늘에 있는 김 판사가 혀를 끌끌 찰 일이다. 작금의 법정은 재판장과 피고인이라는, 기업과 협력업체보다도 더 수직적인 갑을 관계가 지배하고 있다. 재판장에게 피고인은 대등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거리낌 없이 막말을 퍼붓는다. 시정잡배보다 더한 ‘막말 판사’들을 볼 때 법관이기 이전에 먼저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김 판사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규정을 방패 삼아 자기 판결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 차 있는 법관은 없는가. 법관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판결이 절대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설혹 자신의 판결에 대해서라도 법관은 겸허해야 한다. 피고인도 같은 인간이라고 하면서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괴로워하고 도리어 용서를 빈 김 판사의 행동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법관도 사람인지라 세상을 초월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직업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검은돈과 냄새 나는 향응은 과감히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 피고인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인격체로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진실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도 다하되 자신이 내린 판결 앞에 겸허할 줄 알아야 진정한 법관이다. 법으로 사람을 다스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법관마저 세속에 깊이 물든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마지막 등불마저 꺼져 버린 어둠뿐이다. 올해는 김 판사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년이 되는, 김홍섭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뜻깊은 해다. 그가 남겨 놓은 고귀한 정신을 되새겨 볼 때다. 혼탁한 사회의 길잡이가 되어 줄 김홍섭 같은 큰 어른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후배들 중에는 매년 추모회를 갖고 그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에 아부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법조계를 위해서는 ‘김홍섭 정신’이 살아서 숨 쉬어야 한다. 그래서 김홍섭의 후예가 수십, 수백 명씩 뒤를 이어 나가야 한다.
  • 사담 후세인 딸 “보석팔아 IS(이슬람국가) 돕겠다”

    사담 후세인 딸 “보석팔아 IS(이슬람국가) 돕겠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딸인 라가드 후세인(46)이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제작한 보석을 팔아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라가드 후세인은 요르단에서 가장 호화로운 보석 매장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반지와 목걸이, 팔찌, 펜던트 등을 공개했다. 그녀는 “아버지는 수 년 전 내게 터키석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물려주셨다. 나는 3년 전까지 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좋아하거나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슷한 디자인의 팔찌를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와 함께 이라크를 본단 형태의 펜던트도 공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바그다드는 이라크의 심장이다. 그래서 나는 펜던트 다이아몬드를 넣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귀걸이에 대해서는 “내 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원래는 고인이 된 남편이 내게 준 것인데 이를 귀걸이로 바꿨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한 컬렉션 대부분은 그녀가 독재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죽은 남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리를 사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아버지와 매우 유사한 성향과 성격으로도 유명하며, 그녀가 보석 디자이너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일가와 IS의 관계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해 9월 파이낸셜타임즈(FT)의 보도에 따르면, IS의 자금줄이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 시절 구축된 석유 밀매망인 것으로 알려졌다.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 밀매를 통해 하루 평균 100만~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비록 라가드는 IS가 지향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이라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IS 덕분이었다”면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길 원하며, 사담 후세인이 몸담았던 수니파 정당인 바스당은 IS가 이라크 북부를 장악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IS를 돕는데 쓰겠다고 공언한 액세서리들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의 몇몇 독점 숍에서만 판매된다. 펜던트의 가격은 약 165만원, 터키옥 팔찌는 약 217만원 상당이다. 한편 사담 후세인은 1979년 이라크 대통령에 취임한 뒤 걸프전을 일으켰으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체포돼 2006년 사형당했다. 그의 첫째 딸인 라가드 후세인은 아버지의 사형 이후에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7년에도 수니파 무장새력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혐으로 이라크 내무장관으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시안컵] 경고 경보

    [아시안컵] 경고 경보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 변수로 ‘파울 트러블’이 떠올랐다. A조 1위 한국과 B조 2위 우즈베키스탄은 22일 8강전을 벌이는데 주전급 선수들이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옐로카드를 한 장씩 받았다. 한국은 5명, 우즈베키스탄은 7명이나 된다. 이번 대회에서 옐로카드를 두 번 받는 선수는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악성 파울이나 비신사적 플레이 때문에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한 선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 경고를 하나씩 받은 차두리(FC서울), 김창수(가시와 레이솔), 장현수(광저우 푸리), 남태희(레퀴야), 한교원(전북 현대) 등이 8강전 도중에 또 경고를 받으면 이겨 준결승에 오르더라도 경기에 뛸 수 없다.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차두리와 남태희를 뺐던 것도 경고가 누적되면 8강전에 결장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8강을 확정한 채 조 1, 2위만 다투던 호주전과 달리 우즈베키스탄전에는 모든 힘을 쏟아야 할 상황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마인츠)과 오른쪽 날개 이청용(볼턴)을 대신해야 하는 남태희와 한교원은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 또 수비의 핵 김창수와 차두리도 우승으로 가는 여정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고 대체할 선수도 마땅찮아 조심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조별리그에서 받은 한 차례의 경고 효력은 8강전이 끝난 뒤 소멸되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전을 무사히 버티면 4강 이후 총력전을 펼 수 있게 된다. 또 우즈베키스탄의 옐로카드가 주전 수비진에 집중돼 우리 공격진이 이를 잘 활용하면 손쉽게 공격을 풀어갈 수 있을 전망이다. 센터백 샤브카트 물라스자노프(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안주르 이스마일로프(창춘)는 각각 중국과의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3차전에서 경고를 받았는데 둘 모두 조별리그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그만큼 감독이 믿고 쓰는 선수들이다. 좌우 풀백 비탈리 데니소프(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 아크말 쇼라크메도프(분요드코르)도 각각 사우디전, 북한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았다. 데니소프 역시 세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섰고, 쇼라크메도프는 1, 2차전에 선발로 뛰었다. 여기에 오른쪽 풀백 슈크라트 무사카마디에프(나사프 카르시)마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경고를 받았다.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겠다고 공언한 미르잘랄 카시모프 우즈베키스탄 감독으로선 총력을 다할 수도, 선수를 아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몰렸다. 두 팀의 감독과 선수들이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겠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라 코루냐 팬들의 심금을 울린 두 경기를 기억하십니까? [2편]

    라 코루냐 팬들의 심금을 울린 두 경기를 기억하십니까? [2편]

    -센떼나리아쏘의 기적, Centenariazo 2000년대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경기를 봤던 팬이라면 잊지못할 두 경기가 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데포르티보의 전성기시절이지요. Centenariazo라고 하는 2002 Copa del Rey 결승전과 안첼로티의 AC밀란을 기적적으로 홈에서 꺽은 챔피언스리그 8강전 경기 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센떼나리아쏘의 기적’은 2002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 경기입니다. Copa del Rey는 스페인어로 '국왕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Copa는 cup, Del은 From the(De=from, El=남성 관사), Rey는 King의 의미를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Copa del Rey가 '스페인 국왕컵'이라고도 번역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 경기가 ‘센떼나리아쏘'(Centenariazo)라고 불릴까요? 센떼나리오(Centenario)는 스페인어로 ‘100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1902년 3월 6일 마드리드 풋볼 클럽으로 창단했던 것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2002년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100주년이 되는 기념일 이었던 것이죠. 운이 좋게도 그해 결승전 장소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eu)였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이었죠. 결승전에 올라온 그들은 자축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때마침 숙적 바르셀로나도 결승전에 올라오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스스로 우승을 자축할 최상의 시나리오를 꿈꾸던 레알 마드리드. 은하계 군단(갈락티코 1기)이라는 별명처럼 모든 정예 맴버들이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상대팀은 결승전에 오랜만에 올라온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였습니다. 하비에르 이루레타(Javier Irureta) 감독은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던 적장 중 한명이었습니다. 빌바오, 산탄테르, 소시에다드, 셀타 비고 등의 감독 직을 역임하면서 그 당시 비센테 델 보스케와 가장 많이 대결한 감독 중에 하나였으니까요. 그래서 맞불 작전을 사용합니다. 아래는 당시 라인업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 César Sánchez(세자르 산체스,GK), Míchel Salgado(미셀 살가도), Hierro(이에로), Pavón(파본), Roberto Carlos(호베르투 카를로스), Makélélé(마케렐레), Iván Helguera(이반 엘게라), 피구(Figo), 지단(Zidane), 라울(Raúl), 모리엔테스(Morientes), SUB(교체) : McManaman(맥마나만), Jose Maria Guti(호세 마리아 구티), 솔라리(Solari)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 몰리나(GK, Molina), 스칼로니(Scaloni), 세자르(César), 네이벳(Naybet), 로메로(Romero). 세르히오(Sergio), 마우로 실바(Mauro Silva), 후안 세바스티안 발레론(Valerón), 빅토르(Víctor), 디에고 트리스탄(Diego Tristán), 프란(Fran) SUB(교체) : Djalminha, Capdevila, Duscher 442의 갈락티코에 맞서 데포르티보가 내놓은 전술은 442였습니다. 이루레타 감독은 전반전에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이죠. 그 결과는 적중했습니다. 5분만에 터진 세르히오의 골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37분에 디에고 트리스탄에게 추가골을 내주게 됩니다. 이루레타는 전반전을 2:0으로 압승하게 됩니다. 그 후에 이루레타는 카프데빌라, 두셰르 같은 선수들을 교체하면서 잠금모드로 경기에 임합니다. 데포르티보의 우승을 위해 디에고 트리스탄을 제외한 발레론, 빅로르, 프란을 모두 수비적인 선수들로 교체합니다. 다급해진 델 보스케의 마드리드는 맥마나만과 구티, 솔라리를 투입하며 경기에 실마리를 잡으려고 애쓰지만 이미 경기는 데포르티보에게 살짝 기울어진 상태였습니다. 58분에 넣은 라울의 만회골 공격을 제외하고는 라 코루냐의 철저한 수비벽에 가로막혔고, 이에 경기는 2-1로 마무리됩니다. 2002년 3월 6일, 1902년 3월 6일에 창설된 마드리드 풋볼 클럽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수만명의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충격적인 패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엘 센떼나리아쏘’는 마드리드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단어로, 데포르티보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단어로 스페인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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