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패권 전쟁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선관위 조사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총체적 문제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멸종 위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생태공원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02
  • 한중수교 설계자 덩샤오핑...김일성 두 번째 남침 야욕 꺾어

    한중수교 설계자 덩샤오핑...김일성 두 번째 남침 야욕 꺾어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과 한중 수교 27주년이다. 두 나라는 한국전쟁(1950~1953) 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등 적대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 수교한 뒤 세계 외교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빙하기’를 맞았다.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이에 1970년대 미중 화해를 시작으로 20여년 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까지 우리나라와 중국이 어떤 진통을 겪었는지 살펴보고 두 나라 관계의 미래도 함께 전망해보고자 한다. 전·현직 중국 주재 외교관·특파원 등이 만든 계간지 ‘한중저널’ 창간호(9월)의 내용을 중심으로 여러 문헌·자료를 요약 정리했다. ●“덩샤오핑 복귀 거대한 사건...한중 수교에도 큰 영향” 한중 수교의 산실이 되는 외교부 동북아2과는 1973년 신설됐다. 기존 동남아과 한 구석에서 별도의 출입문도 없이 셋방살이처럼 시작했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중국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청와대로 중국의 정세와 지도자들에 대한 보고가 속속 올라갔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보고서는 덩샤오핑(1904~1997)의 복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1966~1976) 초기 베이징대에 반대 대자보가 붙자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각해 유배 생활을 했다. 그 때부터 줄기차게 마오쩌둥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편지를 보내며 재기를 노렸다. “제 잘못을 인정하오니 부디 직접 만나뵙고 지시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1967), “죽어라고 마오쩌둥 사상만 공부했다”(1969), “제 가장 큰 잘못은 마오쩌둥 사상이란 위대한 깃발을 높이 쳐들지 않은 것이다”(1972) 등 내용을 담았다. 결국 그는 고희(古稀)를 앞둔 1973년 2월 어렵사리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외교부 동북아2과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덩샤오핑의 복귀는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모르는 거대한 사건이다. 한중 수교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외교부의 전망은 꽤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덩샤오핑이 중국 정치무대에 다시 등장한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은 한중 교류를 권유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이야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두고 맞서는 라이벌 관계지만 그때만 해도 중국은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되레 미국은 중국의 국민소득을 높여 자연스레 서구화의 길을 택하도록 도우려고 했다. 중국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해 자유주의 진영을 위협할 대국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시각은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이 시기 일본 정부개발원조(ODA)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은 국토가 너무 크고 지역간 편차도 심하다. 국가 전체가 균일하게 성장하기 어렵다”면서 “중국이 발전은 하겠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릴 것”으로 보고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하지 않았다면 미일 두 나라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을 수도 있다.●덩샤오핑 “한국과 수교하면 해는 없고 이득만 두 가지” 중국이 긴 잠에서 깨어나 경제발전에 매진하던 1980년대만 해도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1919~2005)과 후야오방(1915~1989)이 실각했고 개혁개방 방향을 둘러싼 논란도 컸다. 특히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빈부격차가 커지자 덩샤오핑의 개방 노선을 두고 보수파 천윈(1905~1995)의 반대가 상당했다. 그가 혁명가 출신이다보니 덩샤오핑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덩샤오핑 당시 외교부장으로 한중 수교 때 중국 측 대표로 서명한 첸지천(1928~2017)은 회고록 ‘외교십기’에서 “수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갖 반대파가 생겨났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중한수교에 대해 ‘무해양득’(손해는 하나도 없고 이득이 두 가지나 있다는 뜻)이라는 논리로 굽히지 않고 밀어 붙였다”고 적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고 한국과 대만의 외교 관계도 단절시킬 수 있어 1석2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덩샤오핑은 ‘한국과의 수교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식으로 페타콩플리(기정사실화)하며 반대파를 모두 설득했다. 덩샤오핑은 한중수교의 설계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中, 김일성 남침 지원 요청 거부...“北, 남한과 대화해야” 특히 그는 제 2의 한반도 전쟁을 막아내기도 했다. 미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최근 발굴한 옛 공산권 국가의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1975년 4월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은 급히 중국을 찾아갔다. 김 주석이 방중한 전후인 4월 17일과 30일에 캄보디아 프놈펜과 베트남 사이공이 공산반군에 함락됐다. 그는 인도차이나 공산혁명에 고무돼 남한에서 군사행동을 감행하고자 중국의 지원을 얻으려 했다. 앞에서는 남한과의 화해 분위기를 띄우는 듯 했지만 뒤로는 또 한 번 전쟁을 기획한 것 같다. 자칫 한반도에서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베이징에 간 김 주석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오쩌둥(1893~1976) 주석과 저우언라이(1898~1976) 총리를 각각 한차례 면담했다. 자신이 원하던 답을 얻지 못한 그는 덩샤오핑 부주석과 19, 20, 21, 25일에 걸쳐 마라톤 담판을 벌였다. 덩 부주석은 “더 이상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지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되레 그는 김 주석의 도발 의지를 만류하며 1971년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으로 시작된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중국은 1976년 8월 북한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벌였을 때도 유보적 반응을 보이며 김 주석을 편들어 주지 않았다. 수교 이전부터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北, 한미공중훈련 계획에 “인내심 한계…지켜만 보지 않을 것”

    北, 한미공중훈련 계획에 “인내심 한계…지켜만 보지 않을 것”

    권정근 北외무성 순회대사 명의로 담화문 발표“합동군사연습, 중대 조치 재고로 떠밀고 있다”‘비질런트 에이스’ 명칭 미사용에 “달라질 것 없다”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 실시 계획에 대해 “인내심이 한계점을 가까이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권정근 외무성 순회대사는 6일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결코 미국의 무모한 군사적 움직임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권 대사는 “우리는 이미 합동군사연습이 조미(북미) 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우리가 이미 취한 중대 조치들을 재고하는 데로 떠밀 수 있다는 데 대하여 한두 번만 강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 최근 미 국방성은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 이후 중지하기로 공약했던 남조선군과의 연합공중훈련을 12월에 재개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면서 “스톡홀름 조미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한달 만에 미국이 연합공중훈련 계획을 발표한 것은 우리에 대한 대결 선언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미 관계 전망을 놓고 온 세계가 우려하는 예민한 시기에 우리를 반대하는 전쟁 연습을 공공연히 벌여 놓으려 하는 미국의 처사는 세계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장본인, 군사적 힘을 문제 해결의 만능 수단으로 여기는 패권주의 국가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권 대사는 또 “미국의 무분별한 군사적 광기는 점점 꺼져가는 조미 대화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대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극히 도발적이고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우리 군 당국이 예정된 한미 연합공중훈련에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해서는 “훈련의 명칭이나 바꾼다고 하여 전쟁 연습의 침략적 성격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복수의 한국 정부 소식통은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협상을 군사적 차원에서 뒷받침하도록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질런트 에이스를 실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군 당국도 비질런트 에이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되 규모가 조정된 연합훈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을 지낸 권 대사는 최근 해당 자리를 조철수에게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스톡홀름 북미실무협상에서 차석대표로 데뷔한 그가 ‘순회대사’라는 직책으로 이날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볼 때 북미실무협상 관련 업무만 하고 있다는 게 재차 확인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美, ‘생물의학’ 도용 혐의 중국계 연구진 대대적 조사”

    “美, ‘생물의학’ 도용 혐의 중국계 연구진 대대적 조사”

    미국 학계와 의료계가 중국계 연구진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생물의학 관련 정보나 연구 결과를 중국 등 제3국에 빼돌린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정보를 받은 미 국립보건원(NIH)의 요청에 따라 이와 같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미 71개 대학·의료기관이 모두 180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대상 대부분은 중국계 연구진으로 이들 가운데는 미 시민권을 획득한 인사들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에 대한 견제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약 12명의 연구진이 소속 기관으로부터 스스로 물러나거나 해고됐다고 NYT는 전했다. 미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NIH로부터 소속 교수 5명에 대한 조사를 요청받았다. 이들 가운데 한명은 중국 내 인사에게 특허 테스트 물질을 보내려 했고 다른 한명은 중국의 ‘천인계획’에 따라 7만 5000달러(약 8700만원)를 받는 조건으로 특정 연구자료를 중국 측에 제공하겠다고 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인계획은 해외 고급인재를 유치해 과학기술을 육성하고자 중국 정부가 2008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참여 과학자들에게는 높은 연봉과 주택, 의료 등 혜택이 주어진다. MD앤더슨암센터 측은 이들 5명 가운데 3명은 사직을 하고 1명은 해고됐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미 애틀랜타 에모리대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중국계 연구진 2명이 해고됐다. 이들은 중국 천인계획에 따라 자금을 지원받았다. 지난달에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아동병원에서 근무하던 중국계 부부 연구진이 병원에서 기술을 훔쳐 중국에서 특허를 신청하고 바이오기업을 설립한 혐의로 기소됐다. NYT는 “중국이 미 과학계의 개방성을 악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면서도 “일부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이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계 연구진이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기고] 국립해양조사원, 외청으로 승격할 때다/고충석 국제평화재단이사장·전 제주대 총장

    [기고] 국립해양조사원, 외청으로 승격할 때다/고충석 국제평화재단이사장·전 제주대 총장

    # 장면 1 우리나라에서 역사상 바다를 가장 중요시한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도 장보고일 테고 그다음은 이순신이다. 장보고는 일찌감치 바다의 중요성을 알고 중국으로 건너가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했다. 장보고는 생각했다. 중국은 대륙이요 바다는 관심 밖이라고. 그래서 바다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겼다. 중국에서 돌아와 청해진에서 바다 공략을 나섰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동남아까지 활동 무대를 확장하려고 했다. 이게 장보고의 야망이었다. 왜? 육지보다는 무한정 뻗어 나갈 수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 장면 2 이순신은 당초 육군이었다. 그는 47세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면서 해군으로서 바다를 냉철하게 보기 시작했다.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저 바다가 낭만이지만 적들이 쳐들어올 수 있는 흐름’이라고 했다. 당시 천대받았던 뱃사람들을 불러 모아 바다를 연구했다. 이들을 통해 바닷길을 손금 보듯이 익혔다. 이때 익힌 바닷길을 지형지물로 삼아 전쟁을 했다. 쳐들어온 일본 군인은 수병이 아니고 육군이었다. 이들이 승선해서 칼을 쓸 것에 대비해 거북선을 만들었다. 전쟁 전에 축적해 놓은 철저한 해양 조사 활동이 세계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렇다. 바다의 중요성이다. 미국의 저술가 피터 자이한은 얼마 전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은 미국을 상대해서 결코 안 된다. 미국은 해양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없다. 에너지 자원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못 당한다. 중국은 식량주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바다도 없고 자원도 없는 나라다. 앞으로 100년은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것이다.” 우리나라로 돌려 보자.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조사원이라고 있다. 주요 임무는 우리나라 해양에 관한 조사 업무다. 수로 조사 및 관리를 하고, 해양 영토를 획정하고 군사정보를 제공하면서 종합적인 해양 정책 및 레저 활동을 지원한다. 국제기구 및 해양선진국과 교류협력 등도 한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해양조사원은 1949년 11월 해군본부 작전국 수로과에서 시작했다. 1996년 해양수산부 출범과 동시에 해수부에 예속돼 그 역사가 70년에 이른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양 조사 활동이 필수적이다. 그런 만큼 해양조사원의 역할은 정말로 중차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원의 역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조사원을 외청으로 승격시키는 문제를 이제 고민할 때다. 체계적이고 활발한 해양 조사 없이 바다에 미래를 걸 수 없는 것 아닌가.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방위비 분담금 50억弗, 이번엔 미군의 병참기지가 되라는 말인가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방위비 분담금 50억弗, 이번엔 미군의 병참기지가 되라는 말인가

    지난 10월 18일 한국진보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 침입해 방위비 분담금 폭증을 요구하는 미국을 규탄했다. 정치권과 언론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개탄했다. 그들이 왜 대사관저에까지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해선 외면했다. 미국이 강요하는 ‘분담금 50억 달러’의 의미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50억 달러는 내년도 우리 국방 예산의 12%. 한국군 전력증강사업비를 통째로 내주고 자주국방을 포기해야 하는 규모다. 2018년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경비 예산은 11억 달러. 50억 달러면 주한미군과 군속의 인건비는 물론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인건비, 기지 이전비, 군사시설 유지 보수비, 군수지원비 등을 모두 충당하고도 20억 달러 이상 남는다. 적어도 이 나라를 운영하는 당국자, 세금의 씀씀이를 감시하는 정치인과 언론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따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이 먼저 나설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우리에게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 그 돈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래도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북한의 핵위협이 문제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방위비 분담금 제도는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전 세계 35개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에서만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다. 일본은 1952년 맺은 옛 미일행정협정으로 부지 및 시설을 포함해 주일미군 주둔 경비의 50%를 냈다. 2차 대전 후 전쟁 피해 배상을 면제받은 대신 미국에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를 제공하고 주둔 경비의 일부를 제공한 것이다. 일종의 점령비였다. 그마저도 1960년 미일행정협정을 개정하면서 삭제됐다. 그것이 부활한 것은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심각한 달러 강세로 경상수지 적자가 늘고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국방비가 폭증해 재정적자도 늘었다. 달러 가치를 절감한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절상되면서 주일미군 주둔 경비도 늘었다. 결국 미국은 1987년 방위비 분담금 제도를 불러냈다. 일본은 안보에 관한 한 미국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응했다.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분담금을 요구했다. 일본 침략의 피해자이지만, 한국 정부는 버티지 못했다. 1991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5조에 대한 예외를 규정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체결했다. 다만 지원 대상을 한국인 인건비와 시설 관리 및 군수지원으로 제한했다. 1991년 합의한 1차 분담금은 1073억여원(1억 5000만 달러)이었다. 그것이 올해(10차) 1조 383억원으로 늘었다. 11차엔 6조원(50억 달러)으로 증액하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일본의 지원 규모와 비교했다. 한국의 보수언론도 일본의 분담률이 70%인 데 반해 한국의 분담률은 40~50%라며 트럼프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한국의 주한미군 경비 분담률은 70%를 넘으면 넘었지 밑돌지 않는다. 분담금에 포함되지 않는 직간접 지원이 막대하다. 2015년의 경우 미 통신선 및 연합C4I체제 사용 비용, 카투사 병력 지원, 부동산 지원, 기지 주변 정비, 공무집행피해 배상 등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되지 않은 직접 비용이 1조 5000억여원이었다. 무상공유 토지 임대료, 훈련장 사용지원 등 기회비용이 8277억원, 관세·지방세 등 세금 면제와 상하수도·전기·가스·통신 등 공공요금 감면, 도로·항만·공항·철도 이용료 면제 등 간접지원은 1312억여원이었다. 분담금까지 모두 3조 4000여억원이었다. 여기에 반환기지 오염 정화, 반환공여구역 토지 매입, 기지이전 비용 2조 700여억원을 더하면 5조 4000억여원에 이른다. 토지임대료의 경우 정부는 7105억여원만 산정했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2018년 용산미군기지 81만평의 임대료만 최소 1조 7000억원에서 최대 4조 4000억원으로 평가했다. 평택 미군기지가 완공되기 전 미군에 공여된 토지는 모두 3030만평이었다. 2012년 일본의 분담금은 4조 4000억원, 한국은 8361억원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직간접 지원 비용을 모두 포함한 것이어서 산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주일미군은 6만여명으로 우리(2만 8000여명)의 두 배 이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규모로도 한국은 0.68%이고 일본은 0.064%이다. 예산 대비 규모는 한국이 0.254%, 일본은 0.200%이다. 함부로 비교하고 멋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지금의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한다. 2014년부터 2018년(9차 협정)까지 잉여 분담금은 5317억원으로 전체의 13.1%였다. 2008년 8차 협정 협상 과정에서는 미군이 미사용액 1조 1000억원을 예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3년 4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미2사단 박물관을 짓는 데 분담금 1040만 달러(약 116억원)를 쓰는 등 한국의 분담금을 ‘공돈’처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의 혜택을 한국만 챙긴다는 것도 웃기는 주장이다. 1995년 2월 미국의 동아시아전략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미국의 납세자에게는 미군을 해외에 두는 것이 본토에 배치하는 것보다 부담이 적다. 그 좋은 예가 운영유지비를 지원하는 한국과 일본이다.” 주한미군이 본토로 철수한다면 미국 정부는 한국이 지원하던 5조여원을 대야 한다. 2016년 매케인 의원과 주한미군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육군 대장은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묻고 답했다.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게 미국에 주둔시키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데 맞는가?” “물론!”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말했다. “미군의 한국 주둔은 반드시 필요하며 정말로 우리에게 거대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의 패권을 지키는 최전방 최선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 배치한 사드 레이더만으로도 중국의 전략거점들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다. 신속이동군으로 전환되고 있는 주한미군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도전을 억제한다. 무엇보다 유사시 한국을 대리 전장으로 쓸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가 더 착잡한 이유는 돈의 성격 때문이다. SOFA와 특별협정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해서만 경비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50억 달러’에는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작전준비태세 등 미군에 대한 작전 지원도 포함돼 있다. 괌이나 오키나와에서 발진하는 전략 폭격기나 항공모함 전단의 훈련비도 지원하라는 것이다.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나 준비태세는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을 미군의 병참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 러시아에 맞서는 병참기지다. 일제 때 한국은 일본의 병참기지였다. 스탈린은 그 이유만으로 연해주 한인들을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미군의 병참기지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 미국의 의도는 한미 동맹위기관리 각서의 개정 협상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미국의 유사시 한국군의 참전’을 명기해 미군이 개입하는 분쟁에 한국군의 참전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 충돌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국군은 앞으로 이란과도 싸워야 하고 중국과도 맞서야 할지 모른다. 유명무실한 유엔사의 권한을 강화해 전시작전권 이양 후 한국군을 계속 통제하려고도 하고 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험프리스 개리슨)를 방문해 ‘원더풀’을 연발했다. 430만평 규모의 험프리스는 세계 최대, 최고의 해외 미군기지로서 대중국 전진기지다. 한국이 전체 비용의 94%(18조원)를 대서 지었다. 그러나 험프리스의 주소는 대한민국 경기도가 아니라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이다. 식당에선 한국 카드도 못 쓴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미국으로 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는 한국이 주권국가가 아닐 수 있다. 그가 ‘전화 몇 통화면 5억 달러가 나온다’고 한국을 조롱할 때에도 광화문광장에서는 정치인들이 성조기를 온몸에 두르고 흔드는 자들과 대한민국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우리 군이 미군의 용병이 돼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 맞설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야당은 국사를 작파하고 선거운동만 한다. 날로 벗겨 먹어도 정신 못 차릴 나라로 간주하는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1973년 중국외교 전담 조직 창설...독자 대중외교 본격화

    1973년 중국외교 전담 조직 창설...독자 대중외교 본격화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과 한중 수교 27주년이다. 두 나라는 한국전쟁(1950~1953) 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등 수십년간 적대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 수교한 뒤로 세계 외교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약적으로 교류 발전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은 뒤로 ‘빙하기’를 맞고 있다. 반면 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북중 관계는 지난해 북미 핵협상 재개를 계기로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이에 1970년대 미중 화해를 시작으로 20여년 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까지 우리나라와 중국이 어떤 진통을 겪었는지 살펴보고 두 나라 관계의 미래도 함께 전망해보고자 한다. 전·현직 중국 주재 외교관·특파원 등이 만든 계간지 ‘한중저널’ 창간호(9월)의 내용을 중심으로 여러 문헌·자료를 요약 정리했다. ●1970년대 미중 화해로 데탕트 시대 돌입 1960년대 말 전 세계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가운데 공산권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민주화 운동)과 이를 막으려는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사회주의 수호를 위해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겠다는 주장), 1969년 중소 국경분쟁(아무르 강 유역 영유권을 두고 두 나라가 벌인 전쟁) 등으로 사분오열했다. 자유주의 국가들도 1969년 미국의 ‘닉슨 독트린’(각국의 안보는 미국 개입 없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주장) 천명으로 위기감이 감돌았다. 진영에 관계없이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다.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간 화해 분위기가 싹텄다.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부터 ‘제3세계론’(미국과 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세력을 키우자는 주장)을 역설한 마오쩌둥(1893~1976)은 중소 국경분쟁 당시 소련의 군사력을 실감하고 두려워했다. 리처드 닉슨(1913~1994) 미 대통령 역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소련의 팽창을 봉쇄할 필요를 느꼈다. 미중 모두에게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1800년 가까이 지나 다시 한 번 국제정치 무대에서 구현됐다. 1971년 중국이 미국 탁구 대표팀에게 초청장을 보내 ‘핑퐁 외교’의 물꼬를 텄다. 같은 해 7월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아시아 국가 순방 중 몸에 탈이 났다며 잠적한 뒤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을 찾아가 저우언라이 총리와 비밀회담을 가졌다. 10월 중국은 미국의 도움으로 유엔에 공식 가입하고 대만의 상임이사국 자리도 이어받았다.이듬해 2월 닉슨은 미 대통령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다. 국교도 맺지 않은 상태였지만 두 나라 정상은 환하게 웃으며 악수했다. 데탕트 시대의 막이 열렸다. 닉슨은 ‘골수 반공주의자’였지만 중국 문제만큼은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과거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에 기고한 글에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영토도 큰 나라(중국)를 마치 지구에 없는 듯 지내는 것은 바람직한 외교가 아니다”라고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관계도 미중관계 반영…한국도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 나서 미중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남북 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 등으로 제3공화국의 정치적 정당성이 도전받았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북한도 중소 국경분쟁 등 공산진영의 분열을 지켜보며 독자적인 생존 노선을 찾았다. 북한이 먼저 남북회담을 원했고 우리 정부도 이에 화답해 1971년 9월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렸다. 이후 양측이 합의한 내용을 정리해 통일 원칙 등을 담아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것이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기본 정신은 2000년대에 들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 회담에서도 부각됐다.그간 남북 사이에는 1968년 ‘1·21 사태’(북한군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사건) 등 특수부대를 보내 상대를 타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7·4 선언을 계기로 무장도발을 자제하기로 해 남북관계도 잠시나마 ‘봄날’을 맞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외교적 외연 확장 의지를 드러냈다. 곧바로 이듬해인 1973년 우리나라 외교부에 중국을 전담할 ‘동북아2과’가 만들어졌다. 이곳은 훗날 한중수교의 산실이 된다. ●韓, 미국에 대한 서운함·중국에 대한 기대감 속 외교부 내 중국 전담 조직 마련 당시 박정희 정부는 미중 수교 당시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에 반감이 컸다. 미 조지워싱턴대 자료에 따르면 1971년 10월 열린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간 두 번째 비밀회담 때 저우 총리는 키신저에게 김일성 북한 주석이 작성한 8개항의 메모를 전달했다. ‘미중 수교 때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다. 중국은 비밀회담이었음에도 혈맹인 북한에 이를 통보하고 상의했다. 저우 총리는 회담 직후에도 평양을 찾아가 김 주석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정부에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미중 관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만 살피다보니 남한이 느낄 소외감은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로서는 이런 미국의 태도가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반영하듯 당시 조선일보에는 박 대통령이 초조하게 청와대 경내를 오가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분명히 뭔가 진행되고 있는데…”라고 토로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미국은 1972년 말에 가서야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서울로 보내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 정부의 서운함을 달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외교부가 동북아2과를 창설할 때에는 당시 미국에 대한 불만과 국제무대에 새로 등장한 중국에 대한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3] 좌파 농사꾼 정성헌 “두 아들 이름이 평과 화”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3] 좌파 농사꾼 정성헌 “두 아들 이름이 평과 화”

    “싸움은 조금 말린다. 서초동 집회나 광화문 집회나 할 얘기 다 했으니 그만 하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얘기했다. ‘우리가 더 많이 모였네’ 다투는 건 애들 짓이다.” 정성헌(75)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지난 10일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 근처 서화리의 평화생명동산을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 이사장은 11년째 평화통일 교육과 생명 운동을 일구고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등이 후원하는 청소년 영상축제가 진행됐는데 미리 만나 하 수상한 시절 얘기를 나눴다. 정 회장은 1964년 강원 춘천고를 나와 196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부터 1995년까지 카톨릭농민회를 이끈 ‘좌파 농사꾼’이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장도 지냈고 협동조합 운동의 원조 격이다. 20년 가까이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에서 일했고 2010~1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해 2월부터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이끌고 있다. 그와 함께 동산을 돌아보는데 금강산 방향으로 두 대의 탱크 ‘평화’와 ‘통일’의 포신이 뻗어 있는데 들꽃들이 꽂혀 있었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에 유익한 식물들을 심은 정원도 눈길을 끌었다. 용기가 참 대단하다고 말했더니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재미있게 해내면 된다”는 소신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1964년 6·3시위 때부터 한결같이 운동에 매진했고 지금도 좌우 어느 쪽으로든 대화가 되는 몇 안되는 어른이란 평가를 듣는데. → 기분 좋게 운동하자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인상 쓰고 상대를 미워하는 운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 -평화생명동산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다섯 살에 6·25를 경험해 전쟁은 싫다, 평화가 좋다는 것이 논리 이전에 의식의 심층에 있다. 형제 이름을 외자로 ‘평’과 ‘화’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카톨릭 농민회 회원인데 카농 활동은 유신이나 전두환 정권을 상대로 민주화 투쟁과도 연결됐지만 그보다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느냐를 더 고민했다. 자연과의 공존이 최고의 평화다. 평화와 생명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절실한 것을 앞에 놓자는 뜻에서 한국전쟁 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을 ‘평화생명동산’이라고 이름지었다. 하지만 기조는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자’는 것이다. 남북 평화도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 군사적 얘기로 시작하면 군사적 얘기로 끝난다. 인간과 뭇생명이 어울려 사는 터전을 만들 수 있느냐로 대화의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보면 갑갑함을 많이 느낄 것 같다. → 모순의 뿌리가 복잡해 착착 풀리지 않는다. 늘 길게 생각하고 내부 평화에도 주력해야 한다. 내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교섭할 때 힘이 따르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이들은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배제의 정치를 하게 되니 더 심해진다. 그런 점이 아쉬울 뿐이다. 외국과는 이익을 놓고 얘기하면 되고 타협할 수밖에 없고, 군사적 얘기만 하면 사정하게 된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화석연료가 바닥나면 생명이 깃들 수가 없다. 너희 북한은 시간도 많지 않고, 산에 나무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해야 한다. 대개 군사적 힘의 관계나 논리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국제적 관계나 논리를 뛰어넘지 못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걸려도 근본을 얘기해야 한다. 바탕을 얘기하지 않고 DMZ 안의 GP를 없애면 기분은 좋지만 나중에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얘기해야 한다. -말씀대로라면 대화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겠다. → 그러면서도 패권 질서의 향방을 잘 봐야 한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당신의 임무는 이 지구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게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에게 그런 말이 먹히겠느냐고 회의하지 말고 그래도 해야 한다. 트럼프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 더 망가뜨리는 것이다.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성심성의껏 추구할 때 일본과 중국의 괜찮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된다. 아베의 턱도 없는 소리가 말발이 덜 먹히게 된다. 과거사를 갖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어 싸움밖에 안 벌어진다. 아무도 못 사는 동네에 원자폭탄이 있으면 뭐하고, 개헌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었는데 기후 이탈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 김정은과 아베에게 얘기해야 한다. 2040년 중반에 한창 때가 되는 청소년들이 이산화탄소를 줄이자고 학교 파업을 하고 있다. 2030년대로 예상되는 기후이탈을 늦추거나 완화시키려면 지금이라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제정신 가진 이들은 10여년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감수성 민감한 유럽 아이들이 학교 파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 태어난 이들이 스무살이 됐을 때 좋은 환경에서 숨쉬게 하는 게 민족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밥을 먹는 입이나 말하는 입이나 한 가지란 지론은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이 매한가지란 것이다. 누구나 들어가는 밥은 신경 쓰는데 나가는 것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가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 둘 다 중요하다. 조국 근대화를 얘기하면 ‘촌놈’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온전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다 달라고 한다. 그게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나. 주인은 잘못된 것은 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계속 달라고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줄 때도 있어야 하고 작은 잘못은 덮어줄 수 있다. 그런게 주인이다. 가치나 생활습관, 제도가 민주주의인데 온전하지 않다. 부부 간에도 자기 주장만 하면서 살 수 없다. 남북 문제를 놓고도 투명성을 앞세워 다 밝히자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그런다. 밝히지 말아야 할 일도 있는 법이라고,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 지난해 2월 28일 22%가 거부하는 가운데 취임했다. 110일 동안 3000여명과 얘기를 했고, 들어도 봤다.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70% 정도 됐다. 날 따르라고 한 건 아니다. 현장 조직을 돌아보며 의견을 나눴더니 합의도가 80%로 올라갔다. 오래된 조직이어서 관성과 타성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는데 스스로 바꾸는게 가장 확실하다. 힘에 의해 바뀌면 안된다. 용어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껍데기를 바꾸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더 안되는 이유는 난 옳고 넌 틀리다고 마음먹고 말로만 그래서다. 치유나 개량을 할 수도 있다. 개혁이란 단어에 다 집어넣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과 압축 민주주의를 했으니 건강한 몸으로 바꾸자, 함께 하자는 뜻에서 치유라고 하는 게 옳다. 개량도 많이 해서 개혁보다 나은 성과가 축적되면 그만이지 않은가. 땅을 구해서 ‘나눔의 과수원’ 광고를 한다. 5000원 이상 내면 묘목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구나 따서 드세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 다섯 개 더 따가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와 나의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마을운동회에서도 올해 몇십 군데 만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평화운동이라고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고 아름다운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 진짜 운동이다. 인제 글·사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미중 ‘스몰딜’로 세계경제 안도...최종 합의는 ‘산 넘어 산’

    미중 ‘스몰딜’로 세계경제 안도...최종 합의는 ‘산 넘어 산’

    미국과 중국이 지난해 7월 관세폭탄을 주고 받으며 무역전쟁을 시작한 지 15개월 만에 제한적이나마 1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1단계 합의’에 성공했다. 전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그간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완전한 합의) 아니면 노딜”이라며 중국을 밀어붙였다. 중국도 “미국의 패권에 굴복한다면 역사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며 강하게 버텼다. 하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며 재선이 불투명해지자 미국은 ‘국면 전환용’ 카드가 필요했다. 중국 역시 경기 침체와 홍콩·대만 독립, 물가폭등 문제 등이 동시에 쏟아져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합의는 양측 간 절박한 이해관계가 절묘히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매체들은 “일단 긍정적 협상 결과가 도출됐지만 향후 난관도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AP통신은 “두 나라는 ‘중국이 자국 시장에 진출하는 대가로 외국 기업에 대해 거래 기밀을 넘겨주도록 강요한다’는 미국의 주장을 포함해 더 어려운 문제들은 차후 협상 때까지 남겨놨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번 합의는 양국 경제에 타격을 준 무역전쟁에서 가장 큰 돌파구였다”면서도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논쟁거리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주요 목표인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이전 강요, 중국의 자국 산업 보조금 지급에 대한 불만 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와 관련한 이슈도 이번 협정이 아닌 별도의 절차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를 마무리짓는 동시에 2단계 합의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2단계에서 모든 합의가 끝날 수도 있고 3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완전한 딜”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무역협상을 단계별로 쪼개서 진행하기로 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도 큰 합의여서 섹션별로, 단계별로 하는 게 더 낫다”고 답했다. 현재 트럼프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잇딴 악재가 쏟아져 재선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유권자에게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보여줘 지지율을 끌어 올리고자 ‘빅딜’ 카드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핵심 지지층인 농민들에게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농산물 수출길이 열릴 것”이라며 “농부들은 땅과 트랙터를 사서 중국 특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주장해 온 포괄적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해외 기술 빼앗기’ 경제 관행에 대한 우려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비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내용이라고 밝힌 미국산 농산물 구매나 위안화 평가절하 자제 등은 이미 중국이 미국에 약속한 것들”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 서명 직전까지 갔던 합의안과 이번 합의안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더 크다”고 답했다. 하지만 류허 중국 부총리는 “협력”이라고만 답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이번 합의 최종 조율 과정에서 양측 간 이견이 드러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번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많았지만 협상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면서도 “이번 협상에서 양국이 실질적 합의를 거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거에도 협상이 진전될 때마다 양측 모두 ‘자국이 손해 봤다’는 주장이 나와 다시 충돌이 빚어졌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자신들이 손해라는 주장은 유치한 것으로 중국이든 미국이든 이런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최종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광장] 신중국 70주년과 동북아 신냉전체제/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신중국 70주년과 동북아 신냉전체제/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중국의 건국 70주년 기념식은 동북아 신냉전(新冷戰) 체제가 엄습하고 있다는 상징적 행사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은 패권국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다는 G2의 군사굴기 선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날 톈안먼 망루에 올라 70년 전 “중국인이 일어섰다”고 외친 마오쩌둥처럼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의 굴욕과 치욕을 딛고 1949년 10월 1일 신중국을 건설한 중국 공산당이 세계 최강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일종의 출사표인 것이다. 시 주석이 밝힌 것처럼 신중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의 길은 명확하다. 중국식 사회주의, 즉 정치적으로 마오쩌둥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 영도와 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귀결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양대 축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갈수록 증폭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최근의 홍콩 사태,그리고 경제침체·빈부격차 등 대내외적 난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단합된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함성과 비례해 이웃 나라들의 우려는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는 덩샤오핑의 유언(도광양회)을 받들어 은인자중하는 측면이 컸다. 때론 유연하고 때론 포용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주변 이웃 국들과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과 대중 포위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민족주의 역시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해 갔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화민족주의는 더욱 거칠어졌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대표적이다. 힘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려는 패권주의적 본질도 서슴없이 드러냈다. 작금의 호전적 중국 민족주의의 뿌리는 마오쩌둥에 맥이 닿는다. 미중 패권 전쟁 개시와 함께 중국인들은 미국과 소련에 맞서 당당하게 ‘노’라고 말한 마오를 그리워한다.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東風壓倒西風)는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 당시 슬로건이 2019년 지금 중국 곳곳에서 나부끼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 있다. 글로벌 세계에서 자유, 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존경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대국으로 성공하고 군사대국으로 근육질을 자랑한다고 해서 ‘중국 모델’이 세계인들의 박수 갈채를 받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전후 경제적 성공 모델로 주목을 받았던 일본이었지만 그들의 추한 탐욕 때문에 ‘이코노믹 애니멀’(경제 동물)로 지탄을 받았지 않았던가. 세계의 리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경제와 군사 측면의 하드웨어 이외에 보다 매력적인 정치적 이념과 문화 등의 소프트 파워가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경제·군사적 성공은 하루아침에 국제사회의 역풍을 잉태한 대국주의로 변질될 소지가 많다.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이웃이나 남의 나라를 무시하거나 교만해지면 결국 퇴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최근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홍콩 사태를 보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패권경쟁으로 확대되면서 대한민국 역시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했다. 미중 간 패권 싸움은 단기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향후 10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장치이지만, 중국을 포위하는 식으로 동맹을 확대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한미동맹은 중국이 간섭할 수 없지만,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자 동북아 중견국으로서 숙명적인 지정학적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우리의 국익 극대화 법칙은 자명하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 한반도는 미중 대립을 완화하는 완충·중립지대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국익은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이자 최대 경제협력국인 중국 사이에서 있는 만큼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시각은 위험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쪽을 골라 잡는 식의 편승외교는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면서 영구 분단을 자초하는 길이다. oilman@seoul.co.kr
  • [고든 정의 TECH+] 반값 공세 나선 인텔, 고성능 데스크톱 시장 자존심 찾을까?

    [고든 정의 TECH+] 반값 공세 나선 인텔, 고성능 데스크톱 시장 자존심 찾을까?

    인텔은 2006년 코드네임 콘로(Conroe)로 알려진 코어2 듀오 프로세서를 출시한 후 10년 넘게 CPU 시장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CPU는 물론 반도체 업계 1위 기업이긴 했지만, 경쟁자인 AMD가 20년 전쯤 애슬론 계열 프로세서를 내놓은 이후 종종 수세에 몰리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펜티엄4 프로세서는 한때 AMD CPU를 앞서기도 했지만, 클록을 높일수록 급격히 늘어나는 발열 때문에 결국 사라지고 아키텍처를 대대적으로 혁신한 콘로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이때 AMD와의 격차를 크게 벌려 놓은 인텔은 더 이상 적수가 없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회생불능처럼 보였던 AMD는 2017년 라이젠 프로세서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젠(Zen) 아키텍처 기반의 라이젠은 인텔 코어 프로세서보다 더 작은 코어를 사용하고 여러 개의 다이를 하나의 CPU에 넣는 방식으로 코어 개수를 크게 늘려 인텔을 압박했습니다. 인텔에는 설상가상으로 3세대 제품부터는 인텔의 14㎚ ++보다 크게 앞선 TSMC의 7㎚ 공정으로 제품을 생산해 코어 숫자와 성능 모두 대폭 개선했습니다. 이제는 AMD가 인텔을 추격하는 게 아니라 인텔이 AMD를 추격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인텔은 올해 10㎚ 공정을 도입하고 기존의 아키텍처를 개선한 서니 코브 아키텍처를 개발에 대응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아직 10㎚ 공정 반도체 생산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 내년 상반기까지 14㎚++ 공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새 공정을 적용한 신제품을 대거 투입할 수 없다면 인텔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의 카드는 가격 인하입니다. 그리고 인텔은 고성능 데스크톱 CPU인 캐스케이드 레이크-X(Cascade Lake-X)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대폭 인하했습니다. 그것도 10-20% 낮추는 게 아니라 최대 절반을 낮췄습니다. 18코어 36스레드 최상위 제품인 Core i9-10980XE은 공식가격 979달러로 전 세대인 스카이레이크-X Core i9-9980XE의 1979달러보다 50% 저렴합니다. 14코어 28스레드 제품인 Core i9-10940X 역시 전 세대 제품보다 600달러 저렴한 784달러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12코어 24스레드인 Core i9-10920X는 500달러 낮춘 689달러, 10코어 20스레드인 Core i9-10900X는 399달러 낮춘 590달러가 됐습니다. 인텔이 공개한 슬라이드에서는 이와 같은 공격적 가격 인하로 경쟁 상대인 2세대 스레드리퍼 대비 가격 대 성능비가 더 커졌지만, (사진) 사실 이번 가격 인하는 스레드리퍼보다 가성비가 우수한 라이젠 12/16코어 제품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12코어 24스레드인 라이젠9 3900X는 499달러로 이미 시장에 출시됐고, 16코어 32스레드인 라이젠9 3950X는 749달러로 올해 11월 출시 예정입니다. 라이젠이 12~16코어까지 제품 라인업을 늘리면서 10코어 이상 CPU 가격을 대폭 낮췄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가격을 절반으로 낮춘 덕에 캐스케이드 레이크 – X는 스카이레이크 – X 대비 가성비가 두 배 정도 좋아졌습니다. 다만 이런 공격적인 가격 인하가 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캐스케이드 레이크 – X가 속한 HEDT (high-end desktop) 제품군은 CPU 이외에 부대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고가의 X299 메인보드, 4채널 DDR4 메모리, 높은 발열량을 감당할 수 있는 고성능 공랭 혹은 수랭식 쿨러, 그리고 이 시스템을 감당할 고용량 파워서플라이까지 포함하면 시스템 구축 비용은 메인스트림 제품군인 12/16코어 라이젠보다 상당히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14㎚++ 공정 제품이라 7㎚ 공정의 3세대 라이젠 대비 전력 소모가 높아 사용 시간이 긴 사용자의 경우 전기 사용료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반격은 인텔이 차세대 미세 공정 기반 CPU를 투입할 수 있는 내년 이후가 되겠지만, 캐스케이드 레이크 – X의 가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불과 2년 전인 2017년에 등장한 10코어 20스레드 Core i9-7900X의 출시 가격은 999달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에 18코어 36스레드 CPU인 Core i9-10980XE를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몇 년간 고성능 CPU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텔 vs AMD의 CPU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은 인텔이나 AMD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사례입니다. 사진=인텔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韓과 냉랭, 北과 화해, 러와 밀착… 한반도문제 전환기에 선 중국

    韓과 냉랭, 北과 화해, 러와 밀착… 한반도문제 전환기에 선 중국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과 한중 수교 27주년이다. 그간 두 나라는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세계 외교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약적인 교류 발전을 일궜지만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빙하기에 들어갔다. 반면 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북중 관계는 지난해 북미 핵협상 재개를 계기로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여기에 ‘반미’를 매개로 중러 관계도 새로 정립되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는 모습이다. ●사드 배치로 어그러진 한중 관계 2일 중국 외교가 등에 따르면 중국은 수교국과의 관계를 크게 5단계로 분류한다. 단순 ‘수교관계’에서 ‘선린우호관계’, ‘동반자관계’, ‘전통적 우호협력관계’, ‘혈맹관계’의 순으로 협력 수위가 높아진다. 한중 두 나라는 1992년 선린우호관계로 시작해 1998년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이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2003)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2008)로 단계를 높이며 꾸준히 거리를 좁혔다. 이제 한국은 중국의 3대 교역 대상국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대상국으로 발돋움했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중진국의 덫’(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전후해 국가 성장이 지체되는 현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본다.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딸과 함께 시 주석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시 주석과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올라 항일전쟁 승리 기념(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봤다. 같은 해 12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발효됐다. 이 시기가 두 나라 관계의 최절정기였다. 하지만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북한 압박의 키를 쥔 중국의 반응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다. 중국은 사드를 미국의 대중 견제무기로 여겨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한국 연예인과 문화 콘텐츠를 규제하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도 보복을 가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도 크게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양국 관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사드 이전 관계’로 복원하려면 갈 길이 멀다. 두 나라 모두 냉엄한 지정학적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외교관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악화일로 걷던 북중 관계는 데탕트 2017년 12월 중국 권력서열 4위 왕양 부총리는 중국을 방문한 야마구치 나쓰오 일본 공명당 대표에게 북중 관계에 대해 “과거에는 피로 굳어진 관계였지만 지금은 핵 문제 때문에 대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최고위급 인사가 북한과의 관계를 ‘대립’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북중 관계는 심각한 균열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시 주석에게 보낸 축전에서 “우리는 중국 당과 정부와 인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언제나 (중국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6일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방중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가 읽힌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 내 조선인들이 만든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 근거지인 산시성 옌안에서 팔로군과 항일활동을 벌였다. 중국도 6·25전쟁 때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를 명분으로 인민지원군을 파견했다. 이렇게 맺어진 두 나라의 혈맹 관계는 1961년 북중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극에 달했다. 하지만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맺은 뒤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중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핵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중국이 지속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 관계가 급변했다.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전통 우방인 중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중국도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더 이용할 필요를 느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중국은 비핵화 과정에서 자신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북한이 중대 외교 사안을 결정할 때 중국에 자문하는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미 매개로 러시아와도 관계 개선 북한과 마찬가지로 2일 수교 70주년을 맞은 러시아와의 중국 관계도 한층 끈끈해지고 있다.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빈이 됐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과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중국과 러시아가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갑자기 밀착했다. 그만큼 미국이 이들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미국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러 양국이 힘을 합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66년간 대통령 8명에 안보 전략 제공한 ‘펜타곤 추기경’

    66년간 대통령 8명에 안보 전략 제공한 ‘펜타곤 추기경’

    제국의 전략가/앤드루 크레피네비치·배리 와츠 지음/이동훈 옮김/452쪽/2만원무기 대신 냉철한 이성으로 싸운 마셜 中 ‘은둔 제갈량’ 日 ‘전설의 전략가’ 불려 현대 군사전략 탄생·굴곡진 역사 더듬어중국 고전을 읽다 보면 수많은 책사를 만난다. 삼국지 유비에겐 제갈량이, 손권에겐 주유가 있었고, 초한지의 유방에겐 장량, 항우에겐 범증이란 비범한 책사가 있었다. 한신처럼 탁월한 전략가이면서 직접 전장을 누볐던 장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려 육십갑자(60년) 동안 한 나라의 최고 전략가 지위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 그런 인물이 있다. 음지에서 미국의 실질적인 안보 전략을 설계했다는 ‘국방 설계자’ 앤드루 마셜(1921~2019)이 바로 그다. 책은 무기 대신 냉철한 이성으로 싸운 한 인물의 발자취를 통해 현대 군사전략의 탄생과 그 굴곡진 역사를 서술한다. 냉전 시대에서 출발해 이슬람 테러리즘의 발호를 거쳐 중국의 부상에 이르는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그에 따라 세계의 군사지도는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살피고 있다.마셜이 내놓은 핵심 개념은 ‘총괄평가’다. 미국의 무기체계와 전력, 군수 등 국방의 모든 영역을 경쟁국과 철저히 비교해 군비 경쟁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미래의 문제와 전략적 이점을 예견하는 것이 평가의 목표였다. 이런 총괄평가의 개념 구조는 1970년대 초반 냉전체제 때 처음 등장했지만 정밀 유도무기와 중국의 급부상, 핵무장 국가의 증가 등 과거와 크게 변한 전쟁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셜은 1973년 국방장관 직속의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ONA) 초대 국장에 취임한 후 2015년 93세 때 공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42년간 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1949년에 들어간 국책기관 랜드연구소(RAND) 재직 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66년에 달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그는 대통령 8명, 국방장관 13명에게 각종 안보 전략을 제공했다. 그의 경력을 두고 미국과 유럽에선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에 비유했고, 옛 소련에선 ‘펜타곤의 추기경’, 중국에선 ‘은둔의 제갈량’, 일본에선 ‘전설의 전략가’로 불렀다.마셜의 공적은 베일에 싸여 있다가 이제야 조금씩 드러난다. 대표적인 업적 하나는 냉전시대 소련을 대상으로 세운 ‘경쟁전략’이다. 1970~80년대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소련의 군사비 규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였다. 당시 중앙정보국(CIA)은 소련이 GNP의 6~7%를 군비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마셜은 30%를 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과도한 군비 지출이 소련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판단한 뒤, 계속해서 과잉 투자하도록 유도해 소련 붕괴를 재촉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용 강요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쟁전략은 결국 소련 해체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소련 해체 후엔 미군의 군사혁신 논쟁을 주도했고, 향후 안보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제시했는데, 이 역시 중국으로 하여금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되는 해군력 증강으로 출혈을 강요하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재 양성도 주요 공적 중 하나다. 마셜은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엘리슨, 새뮤얼 헌팅턴 등 얼추 120명에 이르는 기라성 같은 인재를 키워내 국방부 등에 포진시켰다. 마셜의 제자들로 이뤄진 이 집단 지성은 훗날 ‘성 앤드루 학당 동창회’라고 불리게 된다. 미국의 외교·정책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마셜의 삶은, 단순히 ‘미국 전략 노장’의 전기가 아니라 세계 강대국의 이익 셈법과 더욱 복잡해지는 국제관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의 마셜’을 향한 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단점이랄까.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美,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 제재 검토…中 “내정간섭 말라”

    美,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 제재 검토…中 “내정간섭 말라”

    美 “내년 솔로몬제도 대한 원조 재검토” 펜스, 이달말 예정된 총리와 회담도 취소 수교 조건으로 100억원 제공 약속한 中 태평양 요충지 확보…“작은 전투서 승리”남태평양의 소국 솔로몬제도가 미중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를 미국이 강력히 비난하며 사실상 제재를 검토하자 중국이 “내정에 간섭 말라”고 반발했다. 두 나라가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에 이어 대만 문제로 힘겨루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의 글로리아 스틸 아시아국 부국장 대행은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2020 회계연도에 솔로몬제도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나라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것으로 사실상의 제재 조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머내시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와 이달 말로 예정된 회담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솔로몬제도 측 요청으로 다음주 열리는 유엔총회 기간에 맞춰 워싱턴DC에서 회동할 계획이었다.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재대만협회(AIT)도 성명을 통해 “미국은 크게 실망했다. 중국이 대만과의 단교를 압박하는 것은 역내 안정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솔로몬제도가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한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무슨 자격으로 중국과의 수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가”라면서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고 인민일보는 전했다. 화춘잉 대변인도 “우리는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외교적 관계 단절을 결정한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솔로몬제도가 역사적 기회를 잡은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자 1971년 유엔에서 탈퇴했고, 시간이 갈수록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비공식적 동맹인 대만의 위상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솔로몬제도는 인구 63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2130달러의 빈국이다. 중국은 수교를 조건으로 개발기금 850만 달러(약 100억원)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으로서는 홍콩 시위로 흔들리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요충지도 확보했다. 미국과의 패권전쟁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고 지난해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호주와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를 연결하는 전략)에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문 대통령, 특허증 직접 서명 “우린 당당한 세계 4위 특허강국”

    문 대통령, 특허증 직접 서명 “우린 당당한 세계 4위 특허강국”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요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자립화 과제가 우리 경제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대두됐는데, 그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이른바 특허기술을 둘러싼 일종의 기술패권 다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200만호 특허증 및 100만호 디자인 등록증 수여식’ 행사를 가졌다. 200만번째 특허는 ‘엔도좀 탈출구조(세포내 흡입에 의해 만들어지는 막주머니) 모티프 및 이의 활용’이라는 제목의 특허다. 이는 치료용 항체를 종양세포 내부로 침투시켜 암 유발물질의 작용을 차단하고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바이오 기술이라고 청와대가 설명했다. 특허 발명자는 아주대 김용성 교수이며, 특허권자는 주식회사 오름 테라퓨틱 이승주 대표다. 200만호 특허 등록은 1946년 특허제도가 도입된 이후 73년만의 성과로, 미국·프랑스·영국·일본·독일·중국에 이은 세계 7번째다. 아울러 이날 100만번째 디자인으로 등록된 제품은 ‘스마트 안전모’다. 이는 근로자의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도록 안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이다. 디자인 창작자는 울산과학기술원 김관명 부교수이며, 디자인권자는 주식회사 HHS의 한형섭 대표다. 특허청장이 서명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대통령이 직접 특별증서에 서명하는 공개 행사를 마련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국·중국 무역전쟁 등 전 세계적인 기술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기술자립을 독려하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지금 1년에 21만건 정도 특허가 이뤄지는데, 건수로 세계 4위에 해당하며 GDP(국내총생산)당, 국민 1인당 특허 건수로도 세계 1위”라며 “우리가 아주 당당한 세계 4위 특허 강국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아직도 과제가 많다”며 “가장 많이 제기되는 과제는 아직도 우리 특허가 원천기술, 소재·부품 쪽으로 나아가지 못해 (특허) 건수는 많지만 질적으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지속해서 적자인데, 다행스러운 것은 적자 폭이 빠르게 줄어 조만간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진다”고 덧붙였다.문 대통령은 “우리가 기술 자립화를 하려면 단지 R&D(연구개발)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기존 특허를 회피하고 그에 대해 새로운 기술·제품을 개발했을 경우 특허 분쟁이 일어나면 이길 수 있게 정부가 충분히 뒷받침해 지원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을 확보했을 경우엔 빨리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특허출원해 우리 기술이 보호받는 노력을 특허청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 특히 벤처기업이 열심히 노력해 특허·지식재산권을 확보할 경우 제대로 평가되는 게 필요하다”며 “대기업이 함부로 기술을 탈취하지 못하게 기술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좋은 아이디어가 특허로까지 활용됐지만 마케팅·자금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특허 같은 것을 담보로 충분히 평가해 벤처기업의 초기 운용비용으로 사용되도록 하면 벤처기업 육성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국내 출원은 아주 왕성한데 수출 규모보다 해외 출원은 상당히 약한 편”이라고 지적한 뒤 “특허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특허권자가 그 기술을 해외에서도 출원하는 부분도 특허청에서 각별히 뒷받침해달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한미 통화스와프 필요하다/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미 통화스와프 필요하다/전경하 논설위원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11일 엄낙용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보는 ‘미스터 엔’이라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대장성 차관을 만났다. 일본 금융기관의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체결 등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속한 환율로 일정 시점에 교환하는 거래다. 즉 다른 통화로 된 마이너스 통장에 가깝다. 결과는 불가였다. 외환위기 관련 이런저런 기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알려진 대로 한국 정부는 그해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신청했다. 재경원 출신 관료는 IMF에서 자금이 들어오기로 했는데도 미국 금융기관의 대출 회수는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결국 재경원 간부가 로버트 루빈 당시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루빈 장관이 나서자 미 금융기관들 움직임이 멈췄단다. 국제금융시장은 미국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한 뼈아픈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11년 뒤인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원달러 환율은 뛰었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 외환위기를 겪어서는 안 되기에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를 한 달여간 설득해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체결된 통화스와프 규모는 300억 달러. 당시 한 달 수입액이 300억 달러 전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체결 소식에 10월 30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1427원)보다 달러당 177원 떨어진 1250원에 마감됐다. 사상 최대 변동폭이다. 한국 원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제 통화인 기축통화가 아니다.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나 유로화, 엔화에 비해 변동폭이 크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의 전일 대비 변동폭은 4.9원으로 7월(3.4원)보다 커졌다. 올 들어 변동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을 넘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대되고, 일본의 무역보복이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에 유리하지만, 변동폭이 커지면 기업 경영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져 문제다. 가뜩이나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높아진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3월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이 오래갈 거라고 본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문제이고, 기술전쟁으로까지 번진 상태라 장기적 관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애석하게도 원화는 중국 위안화에 연동돼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지난달 5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 사이 17.3원 올랐다. 변동폭을 줄이는 것은 물론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외환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 말 기준 4015억 달러로 전달보다 16억 달러 줄었다. 달러화가 강세라 유로화 등 다른 통화로 표시된 자산가치가 줄어서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라지만 지난달 말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채권 652조원(약 5500억 달러)보다 적다. 외국인 투자자가 다 팔지는 않겠지만, 한국 금융시장은 그들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간주된다. 다른 신흥국에 비해 증권을 팔아 현금으로 찾기 쉽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아르헨티나 등 남미 신흥국의 금융불안 등 세계 경제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퍼지고 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다. IMF는 2016년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타당성’이란 보고서에서 주요 신흥국이 위기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조달 수단 중 통화스와프가 가장 유용하다고 제시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흥국인 한국은 스위스, 캐나다, 호주, 중국 등 7개국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2008년 체결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2010년에, 2011년 체결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는 2015년에 각각 끝났다. 지금의 통화스와프로는 달러화나 엔화를 조달할 수 없다. 중일은 지난해 2000억 위안(약 28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지만 한일 통화스와프는 재개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미국과는 해 볼 여지가 있다. 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할 가능성도,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으로 기업의 대미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한미 간 경제적 신뢰 관계는 더 돈독해질 수 있다. 존재만으로 심리를 안정시키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사태가 터진 뒤 나서기보다 미리 시도해 보자. 그래야 안 될 경우에 대비한 차선책에 들일 노력을 계산할 수 있다. lark3@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 국강필패론과 사마소의 심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국강필패론과 사마소의 심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강필패’(國强必覇)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국가가 강해지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2009년 영국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케임브리지대에서 한 연설에서 “국강필패, 중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국강필패론)고 언급하면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중국 외교 관리들이 이를 간혹 거론했을 뿐 국제사회에서 언급된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2014년 시 주석이 독일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서 중국 국방예산 두 자릿수 증가에 대해 “중국같이 큰 대국의 국방 건설에 필요하다”며 “중국은 절대로 국강필패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국제 무대에 본격 등장했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해 왕이 부장 등 외교부 관리들도 가세해 앞다퉈 전파한 덕분에 ‘국가논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시 주석은 올 들어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국강필패론을 언급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그는 지난달 28일 우즈베키스탄 총리를 만나서도 “중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가 추구했던 ‘국강필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겉으로는 국강필패론을 내세우면서도 남중국해의 90%에 해당하는 지역에 구단선(해상경계선)을 그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일대일로(육상·해상 신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개발은행(NDB) 설립을 주도하는 등 대외 확장정책 추진에 골몰한다. 더군다나 한국과의 마늘 분쟁과 사드 배치에 대한 전방위 경제보복, 노르웨이의 노벨평화상에 대한 연어 수입 금지,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가쿠열도) 분쟁에 대한 희토류 수출 금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맞붙은 필리핀에 바나나 수입 금지, 베트남에 자국 내 입찰 및 관광 제한, 달라이 라마 방문을 허용한 몽골에 차량 통관세 신설을 했으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부회장 체포를 도와준 캐나다에 인적·경제 보복을 하며 무릎을 꿇렸다. 중국이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걸핏하면 주변국에 힘자랑을 하는 까닭에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강필패론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그다지 곱지 않는 이유다. 중국에는 ‘사마소의 심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들도 다 안다”(司馬昭之心 路人皆知)에서 나왔다. 사마소(司馬昭)는 위·촉·오 삼국시대(220~280) 촉나라 제갈량(諸葛亮)과 쌍벽을 이룬 위나라의 군사전략가 사마의(司馬懿)의 둘째 아들이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마소가 황제 조모(曹髦)의 황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는 뜻이다. 권력을 찬탈하려는 야심이 빤히 보이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중국이 국강필패론을 내걸고 “중화민족의 부흥은 중국 인민의 행복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더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외치더라도 국제사회에는 한낱 구두선(口頭禪)으로만 들릴 뿐이다. 국강필패론이 ‘사마소의 심보’로 치부되지 않고 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책임과 행동을 보여 주는 게 가장 빠른 첩경일 것이다. khkim@seoul.co.kr
  • 아슬아슬한 미·중·일, 그 위험한 삼각관계

    아슬아슬한 미·중·일, 그 위험한 삼각관계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리처드 맥그레거 지음/송예슬 옮김/메디치미디어/568쪽/2만 9000원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제관계에서 변함없이 통용되는 명언으로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1971년 적대국가 중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 이유를 일본 억제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정부는 그 목적이 중국·북한에 맞서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동아시아가 요동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종료,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모두 세계를 들썩들썩하게 만들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새판 짜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리처드 맥그레거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은 최근 펴낸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를 통해 최근 동아시아 지역에서 진행 중인 사건들의 역사적 맥락을 파헤쳐 눈길을 끈다. 그것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전후 체제의 산물임을 콕 짚는다. 미중일 정부의 중요 문건과 인터뷰를 엮은 책은 동아시아속 한중일 3국의 패권 경쟁을 큰 축으로 삼고 있다. 아쉽게도 그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종속 변수쯤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해제대로 행간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는 귀한 자료로 눈길을 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린 것은 미국의 패권적 지도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미래엔 강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진행 중인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정서 부활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책을 읽다 보면 25년 전 ‘아시아의 미래는 유럽의 과거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의 일갈이 떠오른다. 아시아의 미래가 유럽의 과거처럼 대립과 반목, 그리고 전쟁으로 점철될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그렇다면 미중일 3국 간 불안정이 구조화되고 비관론이 팽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주저없이 지정학과 경제 경합,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역사의 망령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과 마찰을 복판에 놓아 주목된다. 전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중국·한국에 충분히 사과했다고 믿었고 양국은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이를 표면적으로는 받아들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마오쩌둥·덩샤오핑은 일본에 과거사를 잊고 양국의 미래만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그와는 달리 장쩌민과 후진타오·시진핑은 애국주의를 표방, 과거사 문제에 불을 지폈다. 물론 과거사와 관련한 중국의 반일 감정은 일방적인 게 아니다. 저자는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개정, 센카쿠열도 국유화 논쟁이 중국을 자극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우려도 깊다고 주장한다. 아베 내각이 유독 미국에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강조하지만 저변엔 불신이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베가 언제든 역사수정주의 어젠다를 정치 쟁점화할 수 있다고 본다. 책에서 눈여겨볼 대목 중 하나는 정치지도자들의 신념과 개인적 배경이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도자 중심론’이다. 이를테면 하토야마 유키오의 동아시아중심주의와 친중 노선이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았고,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와 반중·친미 정책도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영향이 큼을 밝힌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를 미국 국내의 정치적 변수와 연동시킨 점도 흥미롭다. 나아가 고립주의 정책이 ‘팍스아메리카나’의 쇠퇴를 재촉하고 ‘팍스시니카’라는 중국 중심의 질서 출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모두 전쟁에 휘말리는 삼각 치킨게임.’ 지금의 형세를 ‘팍스아메리카나의 종언’으로 묘사하면서도 저자는 미국이 아시아를 조용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머리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미국의 선택과 상관없이 중국이 기존의 역내 질서를 영원히 뒤바꿀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美·대만 보란듯… 中, 동중국해서 대규모 군사훈련

    美는 남중국해 中인공섬 12해리 내 항해 中 건국 70주년 때 사상 최대 열병식 개최 美소매업계 “트럼프 추가 관세 취소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9월 1일부터 예정대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관세를 강행하기로 하면서 무역전쟁 재개 후폭풍 속에 미중 간 안보 위기마저 고조되고 있다. 미 신발업계 등 소매분야 업체 수백곳이 추가관세 부과를 취소해 줄 것을 요구하고, 미군과 중국군이 무력시위에 나서는 등 미중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지난 27일부터 미국이 대만에 무기 판매를 승인한 것을 직접 겨냥해 동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29일 보도했다. 훈련 범위는 주로 저우산다오 주변 해역으로 저장성 저우산시 동남쪽, 타이저우시 동북쪽이다. 대만 자유시보는 훈련 지역이 대만 푸구이자오에서 400㎞쯤 떨어진 곳이라고 전했다. 자유시보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 국방안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강온 양면 전략과 함께 군사훈련과 여론 조작으로 교란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 해군 7함대 소속 미사일 구축함인 웨인메이어함이 28일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한 인공섬 인근을 항행했다고 CNN이 전했다. 리안 몸젠 7함대 대변인은 웨인메이어함이 “국제법의 수로 접근권을 지키고 (중국의) 과도한 해양 영유권 주장에 도전하기 위해 (인공섬이 건설된) 피어리 크로스(중국명 융수자오)와 미스치프(중국명 메이지자오) 암초 12해리(약 22㎞) 이내로 항해했다”고 밝혔다. 미 함정이 중국 인공섬 12해리 이내로 항해한 것은 인공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은 패권을 절대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28일 “중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가 추구했던 국강필패(國强必覇·국가가 강대해지면 반드시 패권을 도모한다)의 옛길을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건국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국경절(10월 1일) 행사에서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연다고 왕샤오후이 당중앙선전부 부부장이 29일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 업체 수백곳이 추가관세를 취소하거나 연기해 줄 것을 호소하면서 추가관세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신발업체 200여곳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 취소 촉구 서한에서 “중국산 신발 대부분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 소비자가 연간 40억 달러(약 4조 8500억원) 규모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미소매협회와 소매업지도자협회, 장비제조업협회 등에 속한 160여 기업들도 연말 쇼핑시즌에 미 중산층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추가관세를 연기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부과 중인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의 관세율을 10월부터 25%에서 30%로 인상할 계획이어서 6∼9개월 뒤 글로벌 경기 침체마저 우려된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일본이 지난 28일 예정대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강행했습니다. 이날 밤 12시를 기해 일본 기업들의 대(對) 한국 수출 절차가 대폭 강화된 겁니다. 지난 24일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바 있는데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리한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경제, 안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도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자성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반성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죠. 도대체 아베 총리는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일방독주’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아베 총리의 모든 것, 7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습니다.<아베와 세 친구(?)> 현재 아베 총리는 과거 한국 침략했던 일에 대한 사과 없이 개헌을 통해 전쟁국가로 거듭나려 합니다. 여기에 영향을 준 인물이 세 사람 있는데요.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A급 전쟁범죄 용의자로 구속 수사를 받았고, 군국주의의 화신이라 불리는 인물이죠. 총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어머니이자 기시 전 총리의 딸인 기시 요코는 “아베 정책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두 번째는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조선정복론)을 주장하고 조선 침략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길러낸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일본 우익 사상가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 현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카스기 신사쿠’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데요.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두 사람 모두 이 사람의 ‘신(晋)’이라는 한자를 함께 씁니다. 세 친구(?)를 보면 아베 총리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겠죠.<비선 실세? ‘일본 회의’> 비선 실세는 권력을 가진 자의 뒤에서 은밀히 실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베 총리에게도 이러한 비선 실세가 있는데요. 바로 ‘일본 회의’라는 조직으로 우익세력의 정점에 있다고 지목되는 곳입니다. 사실상 공개된 조직이니 비선실세라기 보다 아베 총리의 지지세력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여하튼 이들은 “헌법개정을 통해 패망 이전처럼 자위대를 군대 화 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아야 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 회의 소속 국회의원 모임인 ‘일본 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입니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 안에 만든 모임인데요. 여기 속해 있는 각료가 전체의 80%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회의가 일본 정계를 주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아베 총리는 특별 고문이고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주변 친구들을 보라고 하는데요. 아베 총리의 주변 인물과 조직을 보면 아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느낌이 오실 겁니다. <‘매파의 젊은 기수’ 아베> 아베 총리는 1993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 야마구치현을 물려받습니다. 이후 한국의 국무총리실 역할을 하는 내각 관방부의 ‘넘버 2’에 오르는 등 이른 나이에 중요한 자리에 오릅니다. 집안의 후광을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정치인 개인으로서 ‘아베 신조’의 능력을 널리 알리는 데는 실패하죠. 그러다가 2002년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함께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로 방북하면서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사과와 인정을 하지 않자 아베 총리가 “안이한 타협은 없다. 차라리 도쿄로 철수하자”라며 강경하게 대응한 거죠. 국내로 돌아온 뒤 아베 총리의 강경한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아베 총리는 ‘매파의 젊은 기수’로 떠오릅니다. 2004년에는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는데 아베 총리가 “(피해자들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내면 안된다”라고 역시나 강하게 주장합니다. 자연스레 ‘납치 피해자 문제=아베’ 이런 공식이 생겼죠. 이 사건으로 북한과 일본은 외교적으로 갈라섰지만 ‘아베 신조’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최연소 총리, 최장수 총리(올해 11월 이후)라는 타이틀도 달 수 있었던 거죠.<왜 개헌에 집착할까> 앞서 말했지만 아베 총리와 세 친구들이 꿈꿨던 세상은 군사적으로 강한 일본입니다. 아베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 뒤 “나의 맡겨진 임무로 남은 임기 동안 당연히 헌법 개정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도 “일본이 헌법 9조를 버릴 때가 됐다”라고 말했고요. 이들은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요. 현재 일본 헌법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패망한 직후다 보니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내용(헌법 9조)이 들어갔죠. 일본이 직접적으로 군사행동을 못 하게 한 겁니다. 실제로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신들만을 지키기 위한 부대인 자위대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정리해보면 일본 헌법은 아베가 꿈꾸는 ‘군사대국’ 일본으로 가는 데 걸림돌인 겁니다. 그래서 헌법, 특히 헌법 9조의 내용을 바꿔서 전쟁 도발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아베 총리 인생의 과업이지만 국회와 국민들의 찬성이 있어야 해서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사학 스캔들’의 중심, 아베 아키에> 아베 아키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입니다. 현재 일본은 ‘혼인한 부부는 동성(同姓)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민법 750조에 따라 부부는 서로 다른 성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름은 남편의 성인 ‘아베’를 따라 쓴 거죠. 여하튼 아키에의 아버지는 대형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사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재계 사람인 거죠. 이러한 이유로 1987년 두 사람의 결혼 당시 정재계의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아키에는 매우 사교적이고 술 마시기를 좋아해 아베 총리와는 좀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키에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가 됐을 때 술집을 연 겁니다. 최근에는 사학 스캔들의 중심에 서면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아베의 한국 인맥은> 아베 총리 한국 인맥의 핵심은 롯데가(家)입니다. 유명한 일화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 한국 이름은 신유열씨의 결혼식 피로연장에 아베 총리가 등장한 건데요. 그냥 얼굴만 내민 게 아니라 실제 축사를 하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롯데가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재일교포로서 대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일본 유력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신 회장이 결혼할 때도 주례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맡고 그 외에 2명의 전현직 총리가 참석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국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일간에 물밑 인맥이 중요하던 시절에는 정계에서 아베 총리가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불매운동의 중심’ 유니클로> 요즘 불매운동의 직격타를 맞은 유니클로의 본사는 야마구치현에 있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야마구치현 출신이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과 같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정재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죠. 여하튼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일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매년 부자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기업의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가 엄청났던 건 아니고 시작은 야마구치 현에서 조그맣게 오고리 상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1984년까지는 아버지가 사장을 맡아서 하고 이후에 야나이 다다시가 사장으로 취임해서 운영을 한 겁니다. 같은 해 6월 일본 서부 히로시마 시에 유니크한 의류라는 뜻의 유니클로 1호점을 열었고요. 지금은 전 세계에 매장만 2000여 개 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G2 ‘강대강’ 대치 지속…글로벌 침체 공포 확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무역협상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내년 미국 대선 전까지 미중 간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높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최근 경기 불황과 일본 수출 규제 여파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가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라는 더 큰 악재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26일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 근본 원인은 기술 패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미중 양국이 일시 휴전으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내년 대선 전까지 지지 기반인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해 쉽게 매듭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중국이 협상에 일시 복귀할 수는 있어도 기술 패권과 관련한 미중 갈등은 어느 한쪽의 양보가 없다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추가적인 경기 하락 가능성에 대비하고 기업 경영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에 이어 중국과의 경제 단절을 의미하는 국제비상경제권법 발동을 거론했고 중국도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국의 대미 강경 기조는 홍콩 시위 무력 진압 가능성을 높이면서 아시아 전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관측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재선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입장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단기전에서 지구전으로 전략을 바꾼 듯한 모습”이라면서 “자칫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6%를 밑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가 거의 소진된 미국은 중국과의 협상 강도를 조절하는 게 거의 유일한 부양책”이라면서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할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