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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이라크 파병과 國益

    정치권은 25일 정부가 제안한 이라크 전쟁 파병 동의안을 놓고 치열한 찬반 논쟁을 벌인 끝에 국회 표결을 연기했다.우리 국민 여론은 81·4%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보도되고 있다.정부는 실리를 선택하고 국민은 명분을 선택한 것인가.아니면 정부 결정은 옳은데 국민이 잘못 이해하는 것인가. 이번 전쟁은 석유를 둘러싼 패권전쟁임에 틀림없다.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 것은 그곳이 세계의 석유고(石油庫)였기 때문이다.중동국가 상호간에도 지역 패권경쟁이 계속됐고 강대국들은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중동을 향한 ‘접근전쟁’(struggle for access)을 계속해왔다.바트당을 중심으로 중동 패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후세인은 1979년 이란을 공격했고,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공격을 받아 원상회복시킨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중동패권을 둘러싼 후세인과 미국 및 영국간의 오랜 대결,충돌의 연장선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또 다른 패권경쟁의 양상은 강대국간 대결이다.영국과 미국에의존했던 이라크의 후세인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보호받으려,그리고 이제 패권확대에 장애물이 된 미·영과 대결하기 위해 러시아,프랑스,중국을 끌어들여 원유개발권을 나눠 주었다.그 결과 이라크전쟁은 후세인의 패권저지나 대량살상무기의 무장해제를 넘어 세계 제2위의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의 원유지배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미·영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러·프·중간의 대결로 비화된 것이다. 국가이익을 둘러싼 패권 각축에서 명분은 국가이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수천명의 쿠르드족을 학살했고 미국을 위협하며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후세인정권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9·11 테러로 수천명이 희생된 상황에서 새로운 안보란 곧 위협적 테러세력에 대한 예방전쟁(preemptive war)이거나 정권교체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반면 국제여론의 대세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그렇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며,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일방적 방식으로 진행돼선 안 되고 국제적 합의를 통해 하라는 것이다. 패권이라는 국가이익과 이를 치장하는 각종 명분이 바로 우리가 목도하는 이라크 전쟁이다.그야말로 모든 나라,모든 세력의 패권과 이익이 함께 걸려있는 것이고 모든 명분이 함께 어우러진 냉혹한 국제정치의 장이다.미국이 밉다고 해서 우리가 1968년 이후 38년간 패권정치를 일삼고 아들,사촌 그리고 사돈 등으로 이루어진 족벌적 반 민주,반 평화 독재체제를 옹호하거나 미국이 전쟁에 지기를 바라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그렇다고 후세인의 장기독재와 패권정치가 싫다고 해서 미국,영국이 자기 국익차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방적 전쟁추구 행위가 정당한 것도 물론 아니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 한반도 현실과 국가이익이다.선악(善惡)의 개념이 결부되기 어렵기도 하지만 ‘전쟁반대’라는 명분만 가지고는 지금 펼쳐지고 있는 전쟁의 성격을 다 싸안을 수 없기 때문이다.한국은 세계 제6대 석유소비국이다.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석유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석유의존도가 가장 크면서 석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의 하나라는 현실이 제3자적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이라크의 후세인이냐,아니면 미국이냐,그것도 아니면 러시아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논리는 향후 전개될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과정에서도 적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오직 남북 8000만 한민족의 생존과 평화,그리고 자유와 번영이라는 국익과 명분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 광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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