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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아브라함의 잘못/이현주 목사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조상으로 모시는 인물이다. 누가 만일 아브라함을 비판한다면 유대인들은 자기네가 비판당한 것처럼 저항할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의 실수라 할까, 과오라 할까 아무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행실이 유대인들의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닐는지 모르나 사실이다. 물론,“이렇게 해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언급은 아무데도 없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끝에 ‘가축과 은과 금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 어디쯤에 정착한다. 그런데 그곳은 두 사람에게 살 만한 곳이 못되었다. 땅이 척박하거나 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재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무슨 말일까. 땅에서 나는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마시고 살아야 하는 가축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두 집안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롯에게 말한다.“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참 근사하게 들리는 말이다.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어 그가 차지하고서 남은 땅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얘기 아닌가? 결국 롯은 좀더 기름져 보이는 요르단 분지를 차지하기로 하여 그리로 옮겨갔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두 집안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결과가 그렇지 못했다. 롯은 기름진 땅의 여러 도시를 두루 거쳐 마침내 소돔에 정착했고 소돔이 고모라와 함께 멸망할 때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아내는 죽고 살아남은 두 딸과 어느 이름 모를 동굴에서 구차스레 목숨을 이어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무엇이 그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갔던가. 혹시, 기름져 보이는 땅을 숙부에게 양보하고 자기가 나머지 땅을 가졌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는지 모를 일이나, 그러면 롯 대신 아브라함이 소돔에서 패가망신할 가능성을 피할 길이 없다. 더구나,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말이 언뜻 보면 양보의 미덕을 두루 갖춘 꽤 그럴 듯한 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다. 네가 어느 쪽을 택하든지 그로써 야기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너에게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성서는 직답을 피하고, 그 대신 이런 방식의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말없이 말한다. 이제 우리는 그 말없는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나마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는 말 그대로 눈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어서” 그 땅을 나눠가지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나눠가질 공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옛날 아브라함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성서의 절박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한정된 수량(水量)으로도 사이좋게 살 수 있도록 가축 수를 줄일 생각을 못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난하게 살면 조카를 사지(死地)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실을 몰랐던 것이다. 비만과 전쟁하는 시절이 되었다고들 한다. 반가운 일이다. 체중을 조금만 줄여도 얼마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비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야흐로 인류는 풍요가 축복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 뜻에서, 이제까지 말해온 공생공영(共生共榮)은 처음부터 무리였고, 길은 오직 공생공빈(共生共貧)에 있을 따름이라는 쓰지다 다카시 교수의 말에는 인류에게 무거운 짐을 보태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을 함께 덜어보자는 진정어린 권면이 담겨있다 하겠다. 이현주 목사
  • 프랜차이즈 창업 도사린 함정

    정부가 무분별한 창업을 막기 위해 프랜차이즈 창업 유도 방침을 내놓으면서 최근 프랜차이즈 업체의 창업 설명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창업에 따른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어 프랜차이즈가 더이상 중소 자영업자를 위한 보호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품 가격 인상으로 곤욕… ‘패가망신’ 신세도 S레미콘 현장 요원으로 명예퇴직했던 박성곤(52·가명)씨는 지난 2003년 7월 명퇴금 6000만원과 처남으로부터 빌린 돈 등 총 9800만원을 투자해 농협에서 운영하는 치킨 프랜차이즈 ‘또래오래’ 지점을 냈지만 현재 남은 건 빚 3000만원이 전부다. 박씨는 “농협측에서 처음에 ‘고정가로 닭을 공급한다.’고 약속했지만 닭값을 지난해 2950원에서 올 들어 3700원으로 올려 남는 게 없어졌다.”면서 “아내와 둘이 일해 순이익으로 월 150만원 남겨 인건비도 못 건진다.”고 성토했다. 농협측은 이에 “계약서에 닭을 고정가로 준다는 조항이 없고 값이 오른 것은 본사도 어쩔 수 없다.”면서 “본사도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최규정(38·가명)씨는 대한상사중재원에서 화장품 전문 프랜차이즈인 ‘더페이스샵’과의 분쟁 중재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서울 천호동에매장을 열었으나 10일후 현대백화점 천호점에 다른 매장이 생겼고, 한달 뒤에는 200m도 안 되는 거리에 또 다른 점포가 생기면서 매출이 40%나 줄었다. 계약서에는 500m안에 프랜차이즈를 또 낼 경우 사전 협의한다고 했지만 최씨는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는 1년반 사이 가맹점을 300여개로 늘렸다. ●“가맹본부만 챙긴다” 분쟁 속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와 창업자간의 분쟁은 이처럼 가맹본부의 유명도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10일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관련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지난해부터 5월 현재까지 총 622건이나 된다. 국내 매출 1위 외식 브랜드인 제너시스의 BBQ를 운영하는 한 가맹점측은 “제너시스는 BBQ가 포화상태라 신규 점포를 내주지 않는다고 홍보하면서 또 다른 자사 닭 튀김 브랜드인 BHC 등 프랜차이즈는 계속 늘려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제너시스측은 “BBQ(1750개)는 전국에 바둑판처럼 포진해 있어 신규점은 내주지 않고 있다.”면서도 “BBQ가 배달 안 되는 상권에 제너시스의 다른 닭 브랜드인 BHC(600여개)나 닭익는마을(250개) 등 가맹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맹한 뒤 본사가 사라지거나 인테리어 부실공사로 피해를 입는 일도 많다.”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프랜차이즈들은 정부 정책에 편승해 창업전략 운운하며 ‘간판장사’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직영점의 성공을 바탕으로 가맹점을 늘리는 대신 단기간에 수백개 가맹점을 여는 본사의 가맹점 관리가 잘될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1894년 4월27일, 전주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전봉준은 휘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특명을 내렸다. 궁을(弓乙)이란 부적을 불살라 동학농민군들에게 먹이라는 것이었다.“궁을부는 신통력이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관군의 총탄과 화살도 무력하게 만드는 게 궁을부다. 그 효력은 이미 큰 스승 최제우 선생께서 밝히신 바다. 궁을은 이미 너희가 잘 아는 ‘정감록’에도 나와 있다.” 그 명령대로 동학군은 모두 궁을부를 태워 나눠마셨다. 그 다음날 동학군은 호남제일성인 전주성을 함락시켰다. 궁을부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13자를 쓴 종이 쪽지로, 본주(本呪)라 한다. 이 글귀의 뜻은 한울님을 모시면 조화가 이뤄진다, 이 진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면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동학의 근본 교리를 압축해서 표현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궁을부엔 궁을이란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왜 동학에선 이 부적을 궁을부라 했을까? ‘궁궁을을’(弓弓乙乙) 또는 ‘궁을’이 정감록의 가장 중요한 핵심어였다는 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수많은 민중이 그 참뜻을 알고 싶어했기 때문에 민중 종교의 지도자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정감록의 핵심어라면 ‘진인’과 ‘십승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감록을 꿰뚫고 지나가는 숨은 키워드는 ‘궁궁을을’이다. 문제는 그 뜻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궁을’이란 두 글자를 뜯어보면 평이하다.‘弓’은 활이요,‘乙’은 갑(甲)에 이어 이른바 두 번째 십간(十干)이다. 그런데 누구나 빤히 알고 있는 이 두 글자의 뜻을 아무리 조합시켜도 무슨 말인지 감감하다. 뜻이 분명하지 않은 이 용어는 정감록에서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과 원불교에서도 중시되었다. 그 내력을 알아보자. ●‘정감록’에 보이는 ‘궁궁을을’ ‘감결’(鑑訣)에 이런 구절이 있다.“모름지기 인간 세상에서 몸을 피하는 데 산도 이로울 게 없고 물도 이로울 게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양궁(兩弓)이다.”는 것이다. 양궁은 궁을 두 번 쓴 글자다. 그런 점에서 ‘궁궁’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선생가장결’(李先生家臧訣) 중에도 “이로움이 을을궁궁에 있다.”는 대목이 있다. 정감록의 다른 곳에서는 ‘궁궁을을’이라 적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한국의 민속을 연구한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은 ‘궁궁을을’을 한 글자로 줄여 약(弱)이라고 보았다. 궁과 을 두 글자를 포개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이로움이 약함에 있다.”는 뜻이 되어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다. 또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과 같은 강대국에 약한 태도로 의존적일 때만 살아갈 수 있다고 비꼰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선비결’(道詵秘訣)에도 ‘궁궁’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병자(丙子)에는 북쪽 오랑캐가 나라에 가득 찰 것이다. 산도, 물도 이롭지 못하고 이로운 것은 오직 ‘궁궁’이다.” 이것은 아마도 병자호란 때의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궁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피란처다. 요컨대 여러 예언서에서 자꾸 눈에 뛴는 ‘궁을’,‘을을궁궁’ 또는 ‘궁궁’은 난리를 피하는 최고의 장소임이 분명하다. 정감록엔 피란지로 손꼽히는 십승지가 있는데 왜 하필 ‘궁궁’이란 용어를 또 사용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1748년 ‘정감록’ 사건에 언급된 ‘궁궁’ 실록에도 ‘궁궁’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처음 언급된 것은 1748년(영조 24) 5월이었다. 청주의 몰락 양반 이지서 등이 괘서, 즉 불온한 내용이 적힌 벽보를 붙인 혐의로 체포되어 왕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용어였다. 이지서는 6촌 형제가 반란에 가담해 처벌된 일이 있어 꼼짝없이 연좌제에 걸려들었다. 그는 관직에 등용될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이 사건의 피의자인 박민추가 한 말 중에 ‘궁궁’이 언급되어 있다.“도선비기(道詵秘記)를 보면, 왜인(倭人) 같지만 왜인이 아닌 것이 남쪽에서 올라온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는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닌 궁궁이 이롭다고 했지요.” 박민추 역시 우리가 앞에서 검토했듯이 ‘궁궁’을 피란처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인지 그도 잘 알지 못했다. 박민추가 읽은 18세기의 ‘도선비기’는 오늘날 남아 있는 ‘도선비기’와 비슷했다.“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궁궁이 이롭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은 현재의 도선비기에도 똑같이 되어 있다. 다만 그 이야기가 전제하고 있는 시대상황은 완전히 다르다.18세기의 도선비결에는 “왜인 같지만 왜인이 아닌 것”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의 도선비기에 보면,‘병자년 북쪽 오랑캐’가 문제다. 요컨대 청나라가 침입해온 병자호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필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혹은 아유가이나 호소이 같은 일제 어용학자들이 슬며시 단어 몇 개를 바꿔 쓴 데서 빚어진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들로선 정감록에서 일본이란 나라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간다.1748년 사건 당시 충청도 문의 지방의 관리였던 김재형은 이지서의 벽보 사건을 직접 취조했던 사람이다. 그는 벽보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벽보에는 왜인 같지만 왜인이 아닌 것이 남쪽에서 오는데 물도 이롭지 않고 산도 이롭지 않고 궁궁이 이롭다. 이 고을에 대인(大人)과 명장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피란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김재형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더라도 ‘궁궁’은 피란의 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어디로 피란해야 되는가로 압축된다. 벽보에서 말한 “왜인 같지만 왜인이 아닌 사람들”이란 누구일까. 이지서는 이렇게 설명했다.“어떤 사람들은 곧 왜인이 쳐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실은 왜인이 아니고 누군가가 거짓으로 왜인의 모양을 꾸며가지고 쳐들어온다. 이들은 무신년의 잔당(餘黨)들이다. 해도(海島)에 가 숨어 있던 사람들이다.” 사건 피의자 오명후는 그 정체를 울릉도에 숨어 있는 황진기(黃鎭紀) 일당이라고 말했다. 영조4년(1728) 무신년에 있었던 일부 소론과 남인들이 일으킨 반란에 가담한 장수가 황진기다. 요컨대 울릉도에서 황진기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올 때 피란할 만한 곳이 궁궁이란 이야기다. 이지서의 일당인 오수만은 ‘궁궁’의 뜻을 좀더 명확히 정의했다.“궁궁은 활의 허리(弓腰)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구부러진 곳(劣處)에 숨으라는 뜻이지요.” 실록 편찬자는 이 대목에 주를 달아 놓았다.“궁요는 그 음이 열(劣) 자의 뜻을 해석한 것과 같다.” 정리하면,‘궁궁’은 궁요와 같고 그 뜻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곳이란 것이다. 이를 테면,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에서도 꽤나 후미진 곳이 ‘궁궁’이란 말이다. 18세기 내내 ‘궁궁’에 대한 해석은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끼리도 해석이 엇갈리는 판이었다. 이지서 사건의 피의자 이영손은 ‘궁궁’을 머문다는 뜻을 가진 유(留) 자로 보았다. 다른 곳으로 피란가지 말고 집에 머무는 것이 최상의 피란법이요, 궁궁이란 견해였다. 사건의 주모자 이지서는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궁궁’은 광활하다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만일 광활한 지역이라면 태백산이나 소백산 기슭에 위치한 십승지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혹은 십승지 중에서도 비교적 터가 넓은 지역을 가리켰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지서가 ‘궁궁’을 개활지로 보았다는 점은 다른 피의자들도 증언했다. 어떤 피의자는 ‘궁궁’이 활활(闊闊)을 가리킨다고도 했는데 그 역시 광활하단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지서 사건의 피의자들은 ‘궁’의 음이 ‘활’인 점에 착안해 ‘궁궁’을 ‘활활’한 곳, 달리 말해 터가 널찍한 피란처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40년쯤 지난 1787년(정조 11)에 또 다른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는 ‘궁궁’에 대한 해석이 상당히 달라졌다. 사건 피의자 김서달의 진술이 주목된다.“근래에 떠도는 말을 들으니 청의(靑衣)가 남쪽에서부터 오는데 왜인 같지만 왜인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때는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으며 궁궁(‘좌’(坐)의 고자(古字))이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전에도 ‘궁궁’을 ‘머물 유(留)’자로 보는 견해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1787년 사건에서 김서달은 ‘궁궁’을 ‘앉을 좌(坐)’의 옛날 글씨체로 보았다. 피란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본 점에서는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서체에 대한 지식이 해석의 기준이 되었다는 점은 주목된다. 한마디로 말해,‘궁궁’이 피란처란 점에 대해서는 다들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어떤 피란처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골짜기일 수 도 있었고, 넓은 터, 또는 자기 집으로 규정되는 등 사람마다 견해가 달랐다. ●동학의 ‘궁궁’ 19세기 말 새로 등장한 동학은 ‘궁궁’이란 표현에 종교적 의미를 불어넣었다.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의 ‘포덕문’에 보면 최고의 명약과 부적은 바로 태극이자 ‘궁궁’이라고 했다.‘궁궁’은 어느새 태극이 됐고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변형되었다. 오랫동안 특정한 공간을 뜻했던 ‘궁궁’이 추상적인 명사로 둔갑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동학의 ‘궁을’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명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동학에서는 ‘궁궁’을 영원한 생명, 완전무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한 것은 틀림없다. 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나오는 ‘궁궁’이란 표현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정감록에 의지하였고 참된 ‘궁궁’을 찾아 십승지를 비롯해 각처로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제우 자신도 한 때 그런 체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정감록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이미 지나간 임진왜란 때는 이로움이 송송(松松)에 있었다. 평안도 가산과 정주에서 서쪽 도적이 일어났을 때는 이로움이 집집에 있었다. 여보소, 세상 사람들아, 이런 일을 본받아서 살길을 찾아보세.” 최제우는 정감록의 내용을 연상하면서 임진왜란 때는 이여송·이여백 형제가 도와 살아났고, 서북에서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때는 도리어 집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이로웠다고 회상했다. 최제우의 정감록 패러디는 계속된다.“우리도 이 세상에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력자도 마음 다해 궁궁을 찾고, 돈과 곡식을 쌓아두고 사는 부자 영감들도 마음 다해 궁궁이라. 떠돌아다니는 거지와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마음 다해 궁궁이라. 풍수에 현혹된 사람들은 더러 궁궁촌 찾아서 혹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고, 혹은 천주교에 들어가 제 생각이 옳다하지만 그 말들도 따져보면 궁궁 뿐이네.” 최제우는 누구나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궁궁’이라 하였다. 심지어 천주교 신자들이 갈망하는 것도 ‘궁궁’, 즉 난리를 피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발견해낸 ‘궁궁’의 궁극적인 의미는 종교적인 수련이었다. “제 몸 닦고 집안 살피지 않고 명당 찾아 두루 강산을 돌아본단 말인가. 덕이 없는 세상 사람들, 가서 볼 것이 무엇인가? 가련한 세상 사람들,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 하여 찾는다면 웃을 일 아닌가. 세상 잘못 만났다 한탄하지 말고 세상구경하세. 이로움이 송송에 있단 말 집집에 있단 말은 이제 알았지만,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는 뜻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은 ‘용담유사’에 실린 한 구절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해서 원망하지도 말고 길지를 찾아 헛되이 여기저기 헤매지 말라 했다. 최제우가 찾아낸 답은 간단명료했다.“한울님을 모시면 조화가 이뤄진다. 부디 이런 진리를 항상 염두에 둔다면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된다.” 이것이면 다 되었다. 한울님을 믿기만 하면 절로 후천개벽이 되는 것이었다. 이밖에 따로 ‘궁궁’이 있을 턱이 없었다. ●원불교의 ‘궁궁을을’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감록’에 매료되어 ‘궁궁’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많은 길지를 놓고 ‘궁궁’이 어딘지를 점쳤다. 원불교를 창건한 박중빈 대종사는 그런 세태를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최제우와 같은 입장이었다. 대종사는 ‘궁궁을을’의 종교적 의의를 새롭게 정리하려 했다. 그는 정감록을 신앙하는 민중을 원불교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해방 전 그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정감록’ 비결에 궁궁을을의 사이에 이로움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궁궁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일원(一圓)이다. 또 ‘정감록’에 도하지(道下地)란 말이 있다. 그것은 도하지(道下支), 즉 일원 대도(大道)에 의지해야 산다는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좌우간(左右間)이라 말하는 것은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싸우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너희들은 좌익이나 우익이나 어느 편도 들지 말라. 그 싸움에 끼어들면 죽기 쉽다. 양심만 지켜라. 양심, 그것이 곧 일원이다.” ‘궁궁을을’을 대종사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일원’이란 종교적 개념으로 보았다. 달리 말해 ‘일원은’ 바로 양심이라고도 했다. 양심을 기르는 원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되지 따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 때문이었겠지만 원불교 신자들은 ‘궁을가’(弓乙歌) 라는 일종의 예언적이고 종교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은 북창 정염(1506∼1549)이라고 하는데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정염은 남사고와 더불어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예언가였다.‘궁을가’엔 구한말의 중요 사건과 8·15해방까지 예언되어 있다. 그 일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갑신년에 큰 별이 태양을 돈다/ 태양과 태음이 자리를 못 잡아 외국 여러 나라가 시끄럽다 (중략) 매번 끝 구절에 이 여섯 자로 궁궁을을 성도로다./ (중략) 지성으로 늘 부르면 외국군대가 못 쳐들어온다.//(중략) 부모처자 다버리고 길지(吉地) 찾는 저 백성아/ 예로부터 피란해도 그 얼마나 살았더냐./ 인의예지(仁義禮智) 어진 마음 사람 다치게 않고 물건 부수지 않으면// 오복(五福)이 내 몸이라 길한 별 비춤이 따로 어디인가/ 살아날 방법 내게 있어 부모처자 안전히 보존한다.” 노랫말에 보면,“궁궁을을성도”라는 6자 주문을 자주 외워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했다. 원불교 3대 교조 대산종사는 이 주문을 나무아미타불로 바꿔 불렀다. 또한 위 인용문에서는 갑신년에 외국 세력이 시끄럽게 군다고 했다. 갑신정변(1884, 고종21) 당시 청나라와 일본이 개입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인용문의 말미에선 길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고 단언했다. 내 마음의 인의예지를 기르는 것이 그보다 낫다며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마디로 ‘궁을’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보았다. 대산종사는 ‘궁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두 손을 들어 둥글게 만들면 그것이 궁이다. 그 안에 ‘∽’을 하면 궁을이 되어 태극이 된다. 태극을 유교에서 무극이라고 하고 원불교에서는 일원이라고 하는데, 대종사님께서 이렇게 손을 들어 궁궁을을을 가르쳐주셨다. 우리 한국도 좋아진다. 태극기가 궁궁을을 아닌가? 또 이 한국에 일원 대도가 나왔으니 이 나라가 잘 될 것이다. 태극이 궁궁을을이다.” 궁궁을을은 태극이란다. 18세기만 해도 정감록의 ‘궁궁을을’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한 개의 빈 사발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중들은 꿈으로 그 그릇을 여러 가지 생각으로 채우기에 바빴다. 이 그릇은 결국 동학과 원불교에 이르러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바뀌었다. 빈 그릇이 많은 정감록은 여전히 민중의 희망이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서울광장] 수신제가는 여전히 유효하다/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수신제가는 여전히 유효하다/이용원 논설위원

    ‘수신’과 ‘제가’에 자신이 없으면 ‘치국’을 하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수신·제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실만 드러나 패가망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초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임명된 지 사흘만에 사퇴하더니 뒤이어 이헌재 경제 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줄줄이 낙마했다. 며칠전에는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들이 물러난 원인은 부동산 투기 또는 비리 연루 의혹이었지만, 그 의혹에는 ‘집안 문제’가 덧붙기 일쑤였다. 자식의 병역기피·국적포기와 취업 특혜, 부인의 위장전입 등이 드러나면 국민은 더욱 분노하였고 당사자는 어김없이 백기를 들었다.‘집안 문제’가 고위 공직자들에게 덫으로 작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2500년전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되었다. 공자는 유학의 4서 중에서도 핵심인 ‘대학(大學)’에서 군자가 이루어야 할 목표를 제시한 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8조목을 밝혔는데, 그 가운데 후반 4가지 단계가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이다. 즉 자신의 몸을 닦고(수신), 집안을 제대로 거느린(제가) 뒤 나라를 잘 다스리면(치국), 마지막에는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평천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이 시대 한국사회에 적용해 보자. 공자가 생존한 당시는 중국의 춘추시대로서 영토는 주(周)나라와 수십 제후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따라서 ‘치국’의 국은 지금의 나라 개념과는 다르다.‘치국’을 하는 사람이란 이 시대에는 각 부문의 지도자, 곧 고위 공직자를 비롯해 CEO와 각 기관·단체장쯤이 될 것이다. 결국 ‘치국’하기 전에 ‘수신’하고 ‘제가’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은, 한 분야의 지도자로서 행세하려면 그에 앞서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제대로 건사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올 들어 낙마한 고위 공직자들은 ‘집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대다수는 가족이 관련된 의혹에서 제 발을 빼느라 급급했다. 부인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행위를 한 것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며 아내가 멋대로 한 짓”이고 아들의 국적포기에 관해서는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특혜 논란의 대상이 된 기업체에 자식이 취업한 일도 “그 회사가 원했기 때문”이지 자신은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대학’에서도 ‘수신·제가’의 어려움은 인정한다. 사람에게는 친애하는 마음, 천하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마음, 두려워하거나 공경하는 마음 등이 있기 때문에 가령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악한 점을 알게 되거나 싫어하는 이의 미덕을 아는 이란 천하에 드물다고 했다. 특히 자식의 잘못됨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렇더라도 먼저 집안(가족)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으며, 가족 개개인이 정당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정당함을 요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학’의 가르침이다. 21세기 한국은 더이상 지도자가 앞장서 구호를 외치면 국민이 무작정 뒤쫓아가는 사회가 아니다. 또 지도자가 부정을 저지르면 국민 개개인이 이를 적발하고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는 열린 사회이다. 지도자가 되어 ‘치국’을 하려는 이는 먼저 ‘수신’과 ‘제가’를 해야 한다. 거꾸로 ‘수신’과 ‘제가’에 자신이 없으면 ‘치국’을 하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수신·제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실만 드러나 패가망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지극한 선, 곧 지선(至善)이 이루어지는 이상향을 꿈꾸었고 이를 실천할 의무를 지닌 지도자(군자)가 나아갈 길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제시했다.2500년전 탄생한 이 진리는 우리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ywyi@seoul.co.kr
  • [사설] 청와대 사칭 사기가 통하는 나라

    아직도 청와대나 정권의 실세를 사칭한 사기가 통한다면 웃을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가. 사기에 속는 사람도 문제지만 이런 사기가 통할 수 있는 풍토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경찰이 최근 청와대의 모 수석과 사돈관계에 있다면서 한전사장에 발탁시켜주겠다고 속여 한전 전 고위간부로부터 2억 3000만원을 받은 건축업자를 적발했다. 또 다른 건축업자는 같은 사람에게 여권의 실세와 친분이 있다고 속여 2억 600만원을 우려냈다고 한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사례는 더 있다. 청와대 수석이 편지를 보낸 것처럼 꾸며 공사수주를 부탁한 모 일본신문 기자가 입건됐다. 또 청와대 집행관을 사칭한 사기꾼과 짜고 부동산 계약금을 받아내려 한 변호사도 수배됐다. 청와대나 정권의 실세가 뒤를 봐주면 공기업의 사장자리가 굴러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나 이를 이용하는 사기꾼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후진사회라는 것을 입증한다. 몇몇 사람의 사기행각이지만 그 저변에는 권력의 실세면 통한다는 후진형 사회병리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이 이번 정권에서도 청와대 사칭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기꾼을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기가 기생할 수 있는 토양을 없애야 한다. 청와대에 부탁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게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기꾼이나 속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권력 스스로가 청탁과 부패로부터 떳떳해져야 할 것이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1733년 7월 전라도 남원성벽에 괴벽보가 나붙었다. 머지않아 영조 임금이 쫓겨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벽보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남원 부자 김영건의 아들들이었다. 이 벽보에는 김씨들의 숙적인 이유성 일가의 이름이 도용돼 있어 이씨들을 모함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처럼 단순하고 우발적이었을까? ●이여매와 이여진 형제의 이름으로 된 벽보 남원성벽에 내걸린 벽보는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와 숙부 이여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형방은 문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문서에 제 이름 석자를 붙여 걸어둘 바보가 과연 있겠는가? 형방은 박 호장, 최 이방 등과 이 문제를 상의한 다음 이씨 집안과 다투고 있던 김영건 부자에게 혐의를 두었다. 일차로 김영건 부자를 연행한 다음 그 집안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벽보의 초안이 발견돼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김씨들이 괴문서의 말미에 이여매 형제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러나 원수의 이름을 빌려 반역의 의지가 명백한 벽보를 붙일 만큼 김씨들은 무지몽매했을까? 벽보를 손수 쓴 김원팔로 말하면 제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그 정도 계산도 못할 만큼 청맹과니는 결코 아니었다. 김원팔 형제가 남문 옆 성벽에 벽보를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간 직후, 세 사람의 괴한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둘은 좌우에서 망을 보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벽보의 맨 끝에 “이여매와 이여진 씀”이란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씨체는 영락없이 김원팔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올라간 것이 눈에 띌 만도 했다. 눈썰미가 남다른 이방 최정도는 그 점을 이미 정확히 짚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필체의 미세한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남원은 헤어날 길이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의 근원적인 규명이 아니다. 확대 수사는 도리어 민심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여기서 종결시키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사적 원한에 근거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하자.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차피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남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던, 아니 18세기 한국사회의 물정을 정확히 파악했던 최정도 이방의 생각이었다. ●김영건 일가를 저버린 지하조직 따지고 보면 그랬다. 조직은 김원팔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작정했다.18세기에는 하삼도만 해도 남원 운봉 함양의 지리산, 부안의 변산, 충청도 계룡산과 오서산, 합천의 가야산 등지를 잇는 지하조직이 결성돼 있었다. 조직원의 수가 얼마나 됐고 조직의 구성이 어땠는지 전모를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지만, 수십 수백 명이 가담한 비밀결사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 지하조직의 최종 목표는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고 용화세계 또는 미륵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동학에서 말하는 지상천국, 후천세계의 원형이 이미 18세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지하조직은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을 앞세워 민심을 선동했다. 조직은 나라를 원망하는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점조직으로 편성했다.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처의 부자들을 포섭하거나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남원부자 김영건 같은 이는 지하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쓸모있는 인물이었다. 김영건은 천민출신이라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반대했으며 자금력도 어느 정도 충분한 데다 김원팔과 같이 유능한 아들이 있어 지하조직의 한 귀퉁이를 맡길 만했다. 김영건 자신은 아마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지리산에 근거지를 둔 지하조직은 오래 전부터 김영건 일가를 포섭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지하조직의 지도부는 김영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원, 운봉, 함양 일대를 제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탁발승들이 바로 조직의 중추였는데,17세기 후반 영건의 어머니 분금이 무작정 노씨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지리산에서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남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어느 탁발 승려 덕택이었다. 그 인연은 영건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됐었다. 나중에 분금이 아들 영건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부처님의 원력을 말한 것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양반 정 노인의 신분시비 사건으로 김영건은 큰 충격을 받아, 현세를 지배하는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천품이 온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희생을 바칠 사람은 못 되었다. 지하조직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들에게 더더욱 큰 기대를 걸었다. 지하조직은 지도부에 속한 변산의 승려 태진과도 연줄이 있는 최봉희를 시켜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3형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최봉희는 우선 비결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고, 가장 먼저 그 먹이를 문 사람은 김영건의 막내아들 김원택이었다. 그 덕분에 김원팔과 김원하를 조직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732년 가을부터 김원택은 조직을 이탈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김원택은 지하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조직 활동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김씨 일가의 담당인 최봉희 보기를 꺼려했다. 그는 형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다. 조직은 김원택에 대해 다각도로 회유책을 폈으나 전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직은 마지막 수단을 고안했다. 김영건 일가에게 괴벽보를 작성해 남원읍성에 부착하도록 지시했다.3형제가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묶어두지 않으면 장차 조직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김원팔 형제가 벽보를 붙이는 순간에도 조직은 멀리서 그 광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약속한 3형제가 아니었다. 김원택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담당책 최봉희는 상부와 긴급히 상의했고, 그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김씨 일가를 희생시켜라! 그리고 최봉희 넌 멀리 도망쳐라! 우리 조직의 남원 지부는 당분간 활동중지다! 그러나 이 벽보를 계기로 민심을 한 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김원택과 최봉희의 머리싸움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면, 남원의 일부를 담당한 최봉희는 부자 김영건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김원택에게 접근했었다. 최는 세상 물정에 두루 밝은데다 붙임성이 대단히 좋았다. 게다가 남원에선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후예였다. 집이 가난한 것만 빼놓으면 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비였다. 출신이 미천해 고민하고 있던 김원택 일가로선 그런 최봉희와 사귀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었다. 최봉희의 지식에 매료된 김원택은 장형 원팔과 중형 원하에게 차례로 최를 소개했다. 김원팔 등은 매일 같이 최봉희를 만났고 그 때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의를 베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최봉희가 김원팔의 식객(食客)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봉희는 김씨 일가의 내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김원택은 바로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원택은 최가 자기 형들과 함께 만든 필묵계에도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는 두 형과 아버지 김영건에게 최를 멀리하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벽보를 붙이는 문제가 집안에서 거론되자 김원택은 최가 배후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충직한 종 남산을 성밖으로 내보내 최봉희가 숨을 만한 곳을 미리 수소문하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 관가에 연락해 최봉희가 즉각 검거되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 김원택은 장차 아버지와 형들이 벽보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 게 너무 억울했다. 만일 집안에 화가 닥치면 최를 비롯한 지하조직도 분쇄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하조직은 점조직이라 최봉희 위에 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원택은 그동안 최봉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 보았다. 문득 변산 승려 태진의 이름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태진과 최봉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원택은 배후조종자로 태진을 고발했다. ●‘정감록’ 사건의 마무리 김영건 4부자를 비롯해 최봉희, 태진 등은 제각각 검거된 장소와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창덕궁의 정문인 인정문(仁政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끌려가 엄한 취조를 받았다. 때로 국왕 영조가 직접 심문에 나설 정도였다. 제1급 시국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삼사십 명이나 됐고, 전라도 각처에서 일시 검거돼 취조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인정문 앞에선 열흘 넘게 날마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됐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인두로 몸 지지기, 정강이뼈 뒤틀기, 무릎 관절 부수기 등은 이를테면 선택사항이었다. 혐의자들은 차례로 단독 심리를 거쳐, 관련자와 대질 신문을 받은 뒤 다시 재심리를 받았다. 중간에 말이 바뀌면 모든 수사과정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된 고문과 그 중간에 잠깐 끼어든 달콤한 회유, 그리고 교활한 유도신문이 연달았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의금부 관리들을 비롯해 조정대신들 그리고 국왕 영조까지 직접 심문에 나섰기 때문에, 그 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은 여간한 배짱과 지능으로는 조금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었다. 며칠만 닦달을 하면 고분고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 심리의 초기 단계에는 가능한 모든 범위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털끝만큼이라도 혐의가 있어 뵈는 사람은 연일 추가로 체포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원팔과 그의 아버지 김영건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형틀에서 죽고 말았다. 실상 벽보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김원택도 맞아 죽었다. 고문을 잘 견뎌 용케 살아남은 이는 김원하였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또다시 두들겨 맞은 다음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럴 때도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지하조직의 하급간부 최봉희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외딴섬으로 귀양가는 데 그쳤다. 본래 점조직으로 운영된 조직이다 보니 김영건 부자는 최봉희의 윗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수사과정에서 최봉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최봉희는 노련했다. 최는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의 비밀은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제침으로써 수사본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수사본부는 최봉희를 미치광이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사를 매듭지었다. 조직의 거물이자 당시 전라도내에서 이름난 승려였던 변산의 태진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사고 비결’을 소장했다는 점만 인정했을 뿐, 벽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다. 영조는 “태진의 대답이 범행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하여 태진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태진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조정은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당시 도승지 홍경보는 영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지금 영남 하도(下道, 경상남도)와 호남의 인심이 매우 험악합니다. 만약 수사를 여기서 멈춘다면 괴수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각별히 헤아려서 연루자를 체포해야겠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뜻으로 공문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영조는 홍경보의 말이 옳다며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조직에 음양으로 관련돼 있었던 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정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조직에 대거 참여할 기세였다. 이런 판국에 혐의자들을 함부로 붙들어다 고문하게 되면 조정이 정말로 우려하는 반란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처럼 될 수도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임기에만이라도 그저 별일 없이 조용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애를 써서 얻은 벼슬자리인가. 아직 본전을 다 뽑지도 못했는데 만일 난리가 일어나 벼슬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엄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별탈은 없는 듯합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생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됩니다. 이번 사건은 배후에 무슨 특별한 조직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시골의 무식하고 못돼 먹은 반역자 김영건 4부자가 사적인 원한으로 엉뚱한 짓을 벌인 것입니다.” ●영조의 선택 영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역적 놈들은 과인의 목을 요구한다. 놈들은 이 나라가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축소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소행이라고!” 결국 왕의 생각이나 조정대신들, 지방관들의 뜻은 남원 이방 최정도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왕의 마음은 께름칙했다. 하필 왜 남쪽 지방, 그것도 전라도에서 이런 고약한 무리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왕은 자기의 친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의 미천한 나인인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산란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눅이지 못한 채 목청을 돋워 각도의 관찰사들을 독려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잡술을 가장 숭상한다고 들었다. 근래 태진이란 중놈의 예언서를 보면 그 폐해의 심각성을 알만 하다. 예언서를 엄금해야 한다. 너희들 휘하의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체 그런 불온서적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 삿된 경전(邪經)을 버리고 성리학에 힘쓰게 하라.” 왕은 ‘정감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낡은 성리학으로 ‘정감록’을 이길 수 있을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그곳에 다시 가봤섬 (2) 푸껫

    그곳에 다시 가봤섬 (2) 푸껫

    ‘미소의 나라’ 태국의 푸껫이 아름다운 미소를 되찾았다. 높고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푸르다. 마치 언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냐는 듯 바다는 평온했고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거리와 해변, 호텔 등에서는 관광객들을 밝은 미소로 맞았다. 세계적인 휴양지 푸껫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여행지. 저렴한 비용으로 달콤한 휴식과 각종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해 다양한 밤문화가 있으며, 치안상태가 좋아 밤거리를 맘껏 활보할 수 있다. 여기에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는 타이 음식을 실컷 즐길 수 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면 거리 곳곳에서 맛깔스러운 음식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재탄생한 푸껫. 이제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다.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푸껫섬 남단에 위치한 나이한 비치. 푸껫 현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해변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다.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나는 푸른 바다를 반달 모양으로 휘감은 해변. 당장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밀려올 정도로 아름답다. 남국의 태양이 내려쬐는 해변에는 가족 단위 휴양객들이 파란색 파라솔 아래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고, 수십여척의 요트가 바다에서 넘실댄다. 이 곳에는 특히 누구의 시선에도 간접받지 않는 자유가 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꺼리낌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누드 상태에서 선탠을 즐기는 외국인 휴양객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해변가 언덕에 위치한 ‘르 로얄 메리디앙 요트클럽’에서는 해변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허니무너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이 곳은 천상에서의 휴식을 배가시키는 스파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어 서쪽 해변을 따라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까따노이 비치와 까따비치, 까롱비치의 모습이 잇따라 펼쳐졌다. 모두 안다만해의 모습을 품은 해변이지만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푸껫은 높은 산, 높은 언덕이라는 뜻의 말레이어 ‘푸낏’에서 유래됐다.”는 현지인들의 설명처럼 해변을 따라 작은 언덕이 줄이어 있고, 어디에서 보나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이 들어왔다. 푸껫 최대의 해변인 빠통비치에 이르자 가슴이 활짝 열렸다. 이곳에 쓰나미 피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지인들은 “쓰나미로 바다 물길이 뒤집혀 바다가 개발 이전의 모습과 같이 깨끗해 졌다.”고 설명했다.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해변의 풍경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빠통비치 인근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클리프 리조트(www.diamondcliff.com). 창문을 열자 상쾌한 바닷바람과 함께 빠통비치 멀리 일몰의 장관이 연출됐다. 푸껫의 석양은 특히 아름다워 바라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낙조는 한순간이지만 아쉬운듯 여운은 길게 갔다. ●빠통비치의 화려한 밤거리 하루의 절반은 밤. 푸껫의 나이트라이프 또한 화려하다.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즐길거리가 충분하다. 나이트라이프의 중심지는 빠통 비치.150여개의 바와 스몰펍이 있다. 숙소인 다이아몬드 클립 리조트에서 택시처럼 활용되는 송태우로 5∼10분 거리에 있다. 송태우는 인원에 관계없이 편도에 약 100바트. 해변을 따라 세로로 이어진 타웨웅로드와 가로로 이어진 빠통비치로드, 방라로드 주변이 불야성을 이룬다. 젊음을 불사르는 나이트 클럽, 자극적인 붉은 불빛이 환상적인 노천카페 등은 이국적인 모습이다.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비록 가짜지만 세계 각국의 명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무명 작가들의 그림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이색적인 장소는 에로틱 음악에 맞춰 스트립쇼를 보여주는 아고고빠. 속칭 삐끼(호객꾼)들의 손에 이끌려 입장료 50바트를 내고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올누드쇼는 아니며 쇼가 비교적 단순하다. 간단히 맥주 한잔하기에 적당하다. 최대 쇼는 웅대한 스케일의 ‘판타시쇼’(Fantasea). 팬터지와 바다를 접목한 말로 볼거리중 하나다. 쇼는 코끼리와 닭 등 동물쇼와 마술, 태국의 전통무예인 무에타이, 서커스 등 2시간여동안 관객의 혼을 쏙 뺀다. ●몸으로 즐기는 타이 마사지 태국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 타이 마사지. 푸껫 빠통 시내에 가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타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2시간 온몸을 지압하는 마사지를 받고 나면 하늘을 날듯 가뿐하다. 마치 온몸의 뼈를 다시 조합해 놓는 느낌이랄까. 특히 묘한 중독성(?)까지 있어 대부분 여행객들이 짧은 여행에도 2∼3번 더 마사지를 찾는다. 마사지를 받기전 알아두어야 할 필수 용어는 ‘낙낙’(세게)과 ‘바오바오’(약하게). 타이 마사지는 지압식으로 처음 받을 경우 무척이나 아프다. 때문에 간단한 용어를 알아두면 적당한 세기로 받을 수 있다. 간혹 용어가 헷갈려 바꿔 말하는 경우가 많아 고생을 하기도 한다. 한 여행객이 용어가 헷갈려 ‘낙낙’을 외치다 결국 ‘으악’하는 비명을 질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마사지 숍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신 마사지는 1시간에 200∼250바트,2시간에 400∼500바트 정도이며, 발 마사지만 1시간 받을 경우 250바트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다. 여행객들이 농담삼아 타이마사지 외에 2가지 마사지가 더 있다고 하는데 왕족들이 받는 로열마사지와 은밀하게 이뤄지는 퇴폐 마사지인 ‘스페셜’(?) 마사지. 그러나 스페셜 마사지는 뒷골목에서 성행하는 만큼 범죄 타깃이 될 위험성이 높은 데다 병에 걸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어 절대 금물. 럭셔리하게 마사지를 즐기고 싶다면 호텔을 이용하면 된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안다만해에 위치한 푸껫은 제주도의 절반 크기로 방콕에서 890㎞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인구는 23만여명이다.평균기온은 29도로 4∼5월이 가장 더우며,11∼3월은 건기,6∼10월은 우기다.언어는 태국어지만 호텔과 시내에서 영어가 통용된다. 화폐는 바트화로 1바트에 30원 정도. 달러가 통용되지만 한국 돈은 환전하기 쉽지 않다.교통수단은 택시처럼 이용되는 송태우(일명 툭툭이)가 있는데 대개의 거리는 100바트 정도에 흥정을 하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가격을 미리 정해 놓아야 나중에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여행상품은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에서 푸껫 최고의 리조트인 르 로얄 메르디앙 요트클럽과 힐튼 아카디아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준비했다. 이달말까지 판매하는 요트클럽은 3박 5일에 59만 9000원,4월 한달 동안 판매하는 힐튼 리조트는 56만 9000원이다(02-536-4200).
  • “억대 내기골프 도박 아니다”

    1심 법원이 내기 골프는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내기 골프에 유죄를 선고해 온 판결을 처음 뒤집은 것이다. 학계에서는 내기 골프가 도박이라는 게 다수설이며 대법원 판례도 내기 골프에 상습도박죄를 적용, 유죄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20일 우승자에게 거액을 배당하는 등 수십차례에 걸쳐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60)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 등은 2002년 12월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서 각자 핸디를 정하고 18홀을 9홀씩 전·후반으로 나눠 최소타를 친 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방식의 내기 골프를 했다. 이들은 전·후반 각각 1타에 50만원,100만원씩 걸고 전반전 우승자에게 500만원, 후반전 우승자에게 1000만원을 배당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까지 32회에 걸쳐 8억원,26회에 걸쳐 6억원의 ‘판돈’을 건 이들을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기소,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이 판사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화투처럼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된다면 도박이지만 운동경기인 내기 골프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승패를 좌우해 도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판사는 “경마나 경륜은 타인의 경기에 대한 승패를 맞히는 것으로 우연적 요소가 지배적”이라면서 “내기 골프가 도박이라면 홀마다 상금을 걸고 승자가 이를 차지하는 골프의 스킨스 게임도 도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내기 골프가 도박죄가 성립된다.’는 다수설과 ‘안된다.’는 소수설이 갈려 있다. 두 주장의 출발점은 모두 승패에 ‘우연’이 작용하느냐 안 하느냐로 같다. 다수설은 일본의 판례를 들어 내기에서 기량이 주된 요소라 하더라도 우연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면 도박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2003년 9월 10억원대의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기소된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에게 상습도박죄를 적용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는 등 유죄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판사는 “현재의 논리로 따지면 프로 선수들이 출전비를 내고, 성적에 따라 상금을 받는 골프대회는 물론 시즌의 성적 결과에 따라 돈을 받거나 도로 내놓는 프로야구의 ‘마이너스 옵션’ 계약도 모두 도박죄”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강원랜드의 카지노나 경마, 경륜은 패가망신, 자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공공연한 도박인데도 국가가 허용한다고 처벌이 안 되고, 국가가 허용하지 않으면 도박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라는 것도 무죄 판결의 이유로 들고 있다. 국가나 기업이 상금을 걸고 벌이는 운동경기는 적법하고 개인이 상금을 거는 비공식 경기는 도박으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 판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법률 전문가들도 많다. 시민단체와 네티즌들도 국민정서와 상식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판사는 지난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관심을 모았지만 항소심에서 파기됐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57)

    儒林 270에는 ‘萬世師表(일만 만/대 세/스승 사/본보기 표)’가 나온다.‘아주 오랜 세대에 걸쳐 학식과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萬’자는 전갈을 본뜬 글자의 變形(변형)이다.‘艸(풀 초)’로 굳어진 윗부분은 먹이를 집을 때 쓰는 집게였으며,‘田(밭 전)’으로 정착된 가운데 부분은 몸체, 그리고 나머지는 꼬리 부분의 毒針(독침)이다. 그러나 萬은 곧 숫자를 표시하는 글자로 자리잡았다. 당시에 숫자 1만의 개념은 있었으나 글자가 없었는데,萬과 발음이 같아 숫자의 槪念(개념)으로 借用(차용)한 것이다. ‘世’자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돗자리를 짜고 새끼를 꼬는 데 쓰이는 도구’,‘葉(잎 엽)자의 古文(고문)으로 줄기와 잎을 그린 象形字(상형자)’,‘세 개의 十자로 30년을 나타냄’,‘(서른 삽)자를 잡아 늘린 형태’라는 등의 설이 있다.世의 뜻에는 인간, 시세, 세대, 대(代), 해, 평생 등이 있다. 그 용례에는 ‘世態炎(세태염량: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름)’‘蓋世之才(개세지재: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주)’ 등이 있다. ‘師’자의 자원에 대해서는 ‘정찰에 유리한 언덕의 상형인 왼쪽 부분과 군부대의 표지로 세운 깃발의 상형인 오른쪽 부분이 합쳐진 글자’라는 설과 ‘큰 물고기 토막의 상형인 왼쪽부분과刑(경형:죄인의 이마 따위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에 쓰이던 끌 모양을 한 刑具(형구)의 상형이 합쳐졌다.’는 설이 있으나 뜻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본래의 뜻은 ‘주둔지’였으나 점차 ‘스승’‘우두머리’ 등의 파생된 뜻으로 일반화되었다.用例(용례)에는 ‘師承(사승:스승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음)’‘銳師(예사:날랜 군대)’ 등이 있다. ‘表’자는 ‘毛(털 모)’와 ‘衣(옷 의)’가 합쳐진 會意字(회의자)로 원래의 뜻은 ‘털옷’ 혹은 ‘갖옷’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外套(외투)처럼 늘 바깥에 입었으므로 表는 ‘겉’을 뜻하게도 되었다.用例로는 ‘表裏不同(표리부동:마음이 음흉하고 불량하여 겉과 속이 다름)’‘表情(표정: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을 들 수 있다. 師表는 師法表率(사법표솔)의 省略(생략)으로 學識(학식)과 人格(인격)이 높아 남의 模範(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일컫는데, 이 말을 처음 使用(사용)한 이는 司馬遷(사마천)이라고 한다. 큰 富者(부자) 三代(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주의 최부잣집은 만석꾼의 전통을 무려 300년 동안 12대나 이었다. 그 秘訣(비결)인 家訓(가훈)은 우리 모두에게 龜鑑(귀감)이 될 만하다.“(1)절대 進士(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2)財産(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3)나그네를 후하게 待接(대접)하라.(4)凶年(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買入(매입)하지 마라.(5)집안에 며느리를 들이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6)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자 家門의 마지막 명맥을 이었던 최준씨의 결단은 또 하나의 人生 師表이다. 조국 광복의 熱望(열망)으로 대학을 設立(설립)하고 獨立資金(독립자금)을 支援(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金言(금언)을 平生(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財物(재물)은 糞尿(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惡臭(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주변에 큰돈을 거머쥔 猝富(졸부:벼락부자)들이 많다.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쓰는 것임을 안다면 이들이 敗家亡身(패가망신)할 이유가 없으련만.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스타들의 입영전후

    스타들의 입영전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잊혀진다.’는 말은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말이 아닐까. 특히 신체 건장한 일부 남성 연예인들이 갖은 병명을 들이대며 군대라는 곳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렇다.2년이란 공백은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는 이들에게 너무도 긴 세월이다. 그러나 군대는 결코 ‘무덤’이 아니었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마치고 오히려 연예계를 씩씩하게 행보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또 다른 차원에서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차인표, 서경석, 이휘재, 홍경민, 이훈 등등. 이들은 모두 인기라는 달콤함을 맛볼 무렵 군입대라는 ‘입에 쓴 약’을 달게 받아 먹은 스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TV연예정보프로그램들을 통해 몇몇 스타들의 군생활이 중계되다시피 해 잊혀지기는커녕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전기를 맞기도 했다. 차인표가 그런 경우. 늦깎이로 데뷔해 트렌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후속작 대신 군대를 선택했다. 그가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점과 연인 신애라가 있었기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은 그의 군생활은 이미지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만약 인기에 연연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천태산’(MBC ‘영웅시대’)이란 인물을 맡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경석도 연착륙한 케이스. 방송으로 돌아오자마자 MBC ‘타임머신’ MC 자리를 꿰찼다. 결혼 직후 입대한 탤런트 이훈도 현재 MBC와 KBS를 오가며 입담을 뽐내고 있다. 새달 말 제대를 앞두고 있는 가수 홍경민은 민감한 시기에 방송에 복귀하는 터라 더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가 오히려 그의 컴백에 ‘윤활유’가 된 셈. 그의 성실한 병역의무 이행은 특히 남성팬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군대는 앞을 길게 내다본 사람들에겐 영광이요, 근시안을 가진 이들에겐 뼈에 사무친 후회와 한탄으로 남았다. 새달 군입대를 통보받은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은 드라마 출연 무산으로 ‘민폐’를 끼쳤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중고’를 자초했다. 가수 유승준도 ‘패가망신’을 스스로 부른 대표적인 경우. 군입대를 약속해 놓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국 입국 자체가 금지됐다. 결혼과 출산이 더이상 여배우들의 멍에가 아니듯 군대가 남자 연예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일 수 없다. 최근 병역 파동을 계기로 군입대가 이미지 유지 또는 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자리잡아가는 느낌이다. 원빈, 이동건 등 톱스타들이 앞다투어 군입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제대뒤 뜬 스타 윤영준 두려웠다. 일찍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통해 아역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공룡 선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얼굴도 알렸는데….26개월이란 공백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공백을 메우는 데는 두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픔도 컸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친구(이정재)가 그 기간동안 일약 스타로 떠올라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을 그저 내무반에 앉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다. 그 잊혀짐의 시간들이 오히려 연기자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데 둘도 없는 약이 됐으니…. 연기자 윤영준(29)처럼 요즘 회자되고 있는 연기자들의 병역문제가 가슴에 와닿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최근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극중 한기주(박신양)의 비서로, 앞서 ‘태양의 남쪽’에서는 나이트클럽 사장 용태(명로진)의 부하로 나오는 등 ‘의리의 사나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얼마 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그림자놀이’에서 주인공을 꿰찼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섭외도 줄을 이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실 저도 군 입대를 비켜가기 위해 별 짓을 다했어요. 하지만 결국 연기자를 믿는 시청자에게 서운함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인기는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는 ‘당시 군대를 면제 받고 연기생활을 계속 해왔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아역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에 짓눌린 채 더 큰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단다. 중1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그는 20살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연기자 윤영준’을 기억해 주는 이가 없었다. 이후 5년여 동안을 ‘일반인 윤영준’으로 지내야 했다.“제 스스로 최면을 걸었죠.‘이건 나의 옛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차원의 연기자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전화위복의 시간들’이라고요.” 그의 판단은 옳았고, 이후 아역 출신 연기자로서 흔치 않은 ‘대기만성형’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섰다. 올해로 연기 데뷔 17년째인 그는 나름대로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다.“연기는 바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의 경험이 드라마 캐릭터에 녹아들 때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거든요.”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가령 26세의 남자 역할을 맡으면,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제가 태어나서 26살까지의 경험들을 작문하듯 정리하죠. 그리고 ‘드라마는 그 26살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연기톤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대사, 행동 하나 하나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죠.” 그는 팬들의 사랑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는 현재 98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LONG RUN 배우 윤영준’이란 그의 팬카페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군입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저를 잊지 않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죠. 연기자는 팬들과 함께 커나간다는 것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발언대] 茶山이 자식들에게 준 가르침/최진규 충남 서산시 서령고 교사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은 그를 총애하던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경상도 장기로 유배에 처해지고,그해 말 다시 전남 강진으로 옮겨진다.그곳에서 정약용은 집에 있는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벼슬하여 자식들에게 물려줄 밭뙈기조차 장만하지 못하고 오직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정신적 유산으로 남길 터이니 너희들은 야박하다 여기지 말고 항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산은 선비 신분인 자식들에게 책만 읽지 말고 직접 몸을 움직여 나무를 심고 과일을 가꾸며 채소를 재배하도록 당부한다. 즉 살아가면서 헛된 것을 바라지 말고,자신이 부지런히 노력하여 얻은 결실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다.그렇게 얻어진 결실은 함부로 낭비하지 말고 아끼고 절약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근(勤)과 검(儉)’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지할 바가 없으니 반드시 실천하라고 강조한다.결국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결실 말고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담은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대박 열풍’이 하나의 문화적 양상으로 자리잡아간다.복권을 포함해 사행심을 조장하는 유혹의 손길은 무수히 널려 있다.매스컴도 하루 아침에 팔자 고친 사람들의 얘기를 줄줄이 쏟아내며 한탕주의를 더욱 부채질한다.‘과욕을 부리지 말고 노력에 의한 대가를 소중히 하라.’는 다산의 가르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루 아침에 거부의 반열에 올라선 사람이 차분하고 조리 있게 물질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어차피 피땀 흘린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흥청망청 쓰게 마련이고 얼마 못가 패가망신했다는 후일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이처럼 일시에 거액의 물질적 만족을 가져오는 대박은 그 이면에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무서운 비수를 품고 있다.따라서 물질은 누가 봐도 땀과 노력이 스며들어 얻어질 때만이 의미 있고 떳떳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지난 한해 로또 매출액이 3조 6000억원에 이르고,경마·경륜 같은 레저형 도박의 규모가 무려 14조원대인 것으로 추정됐다.이처럼 사행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요행을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세수 확보에만 혈안이 된 국가의 정책에도 원인이 있다.물론 국민의 여가생활을 진작하고 그 수익금은 교육·복지 등 공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문제는 무슨 일이든 도에 지나치면 탈이 난다는 사실이다.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한탕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노력에 의한 소득이 아닌,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은 분명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일임에 틀림없다.이처럼 너나 없이 대박의 신기루에 사로잡힌 지금 선비인 자식들에게 허황한 마음을 버리고 땀의 가치를 강조한 다산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 불경기 싼값 유혹…불법 ‘대포車’가 넘친다

    불경기 싼값 유혹…불법 ‘대포車’가 넘친다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이 ‘대포차’ 거래소로 전락하고 있다.대포차란 명의이전이 되지 않아 싼값에 거래되는 불법 차를 말한다.경기불황이 깊어지면서 인터넷이나 생활정보지에서나 은밀하게 거래되던 대포차가 자동차 매매시장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남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각종 세금이나 책임보험료를 내는데 어려움이 많다.무한보상을 하는 종합보험은 대부분의 보험회사들이 아예 받아 주지도 않는다.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운전자는 패가망신하기 일쑤고,피해자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뺑소니칠 가능성이 높지만 운전자를 추적하기는 어렵다.따라서 다른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그야말로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는 ‘대포(大砲)’차다.지난 5월27일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으로 결혼 축의금을 챙긴 사기사건의 용의자도 대포차,대포통장,대포폰을 사용하는 바람에 경찰은 아직까지도 붙잡지 못하고 있다.그럼에도 장한평 등 서울의 대표적인 중고차시장을 찾으면 “차값도 싸지,세금도 내지 않아도 되는 대포차는 어떻냐.”고 권유하는 불법중개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2002년까지는 거래물량의 5%를 넘지 않았던 대포차가 지난해부터 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전체의 30%에 이르고 있다.장한평 매매시장의 중개상 나모(45)씨는 “대포차를 팔겠다는 사람도 많고,사겠다는 사람도 많아 어쩔 수가 없다.”면서 “경기가 좋으면 거절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고….”라고 털어놓았다. 장한평 시장은 1000여명의 중개인이 64개의 중고차 거래회사에 몰려 있는 대형시장이다.하지만 양재동과 상봉동에 고급차와 외제차 손님을 빼앗긴 데다,경기침체까지 겹치는 바람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대포차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렇게 매매시장에서까지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달리는 대포차는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불법차 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 현장단속에 나서고 있는 서울시에 따르면 이런 대포차가 서울에만 모두 1만 600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포차가 만들어지는 통로는 통상 두가지.자동차의 주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는 기업체는 부도나 폐업신고로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채권자나 봉급과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한 기업체 직원들이 회사명의 자동차를 무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넘겨 버린다. 또 하나는 ‘할부금융’이나 ‘캐피털’ 등의 그럴 듯한 간판을 내건 군소 사채업자들이 돈을 빌려 주었다가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아 놓은 자동차를 대포차로 내돌리는 것이다. 위험부담이 큰 데도 대포차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무엇보다 싸기 때문이다.2500만원짜리 고급차도 대포차라면 1000만∼1500만원에 불과하다.여기에 주차위반이나 과속을 해도 벌과금 통지서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얌체족’ 사이에 대포차가 인기를 끄는 이유의 하나다. 중개상 심모(37)씨는 “대포차를 운행하다 자동차세를 내지 않아 구청에서 떼어간 번호판도 밀린 세금만 내면 되찾아올 수 있다.”면서 “구청에서는 고지서가 없어도 자동차세를 받으니 걸렸을 때만 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제도의 맹점을 설명했다. 대포차는 자동차등록법 위반에 해당한다.이 법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운전면허도 취소되지만,경찰도 훔쳤거나 범죄에 이용된 차가 아닌 한 대포차인지 알 수가 없다. 목영욱 서울시 자동차관리팀장은 “대포차가 급증함에 따라 피해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면서 “10월부터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자동차검사도 받지 않으며,세금을 체납하는 차량을 중심으로 대포차를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열린세상] 정당한 처벌과 포상 필요하다/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청산은 학자들에게 맡기자고 했다.같은 당 여의도연구소도 대응책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는데,그 내용도 겨우 ‘학술단체가 정리하는 수준’이다.또 수사권부여도 반대하면서,현재 의문사조사위원회가 가진 조사권도 인정하지 않겠단다.과거사를 청산할 의지가 없는 셈이다.이제까지 비민주적인 정치권력이 역사해석의 방향뿐 아니라 실정법의 적용조차 왜곡해왔는데,연구 차원의 역사청산을 논한다면 위선일 것이다.당시 법에 따라 처리되었기에 청산은 필요 없다는 말도 구차한 변명이다. 중요한 관건은 악법의 적용이 아니라,죄에 걸맞은 처벌이다.개혁의 실마리를 놓친 듯했던 대통령이 이 문제는 제대로 짚었다.“프랑스는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받고 포상을 받았는데,우리는 일제 36년,의병시기까지 합치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는데 아직 1만명밖에 포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독립운동하면 대대로 패가망신당하는 세월속에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으니,그 손은 ‘더러운 손’이었다. 포상을 하지 못한 과거는 처벌을 하지 못한 과거와 표리관계에 있다.1949년부터 활동에 나설 때 반민특위는 반민족자 7000여명을 파악했으나,실제로 취급한 건수는 682건에 그쳤다.영장발부 408건,체포 305건이었으며,검찰에 송치된 559건 중에서도 기소는 221건에 지나지 않았다.결과도 대부분 무죄 혹은 가벼운 자격정지로 끝났다.그 결과를,침탈 기간이 우리의 10분의1에 지나지 않았던 프랑스의 부역자처벌 결과와 비교해 보자.법원에서 조사받은 사건만 16만 827건에 이르렀고,최종적으로 703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1500명에 대해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그리고 3000명 정도가 중노동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공적으로 나라를 위해 선행을 하고도 포상을 받기는커녕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면,얼마나 참담한가.근대 이후 처벌권을 독점한 국가가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광복 후 법과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과 태도가 온전할 수 없었다.좋은 일 해 봐야 억울한 피해자만 된다면,사람들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사람들은 공적인 책임을 신뢰하지 않고,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로 ‘몰래 가해자’가 될 것이다. 피해자가 되면 피곤하기만 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을 때,사람들은 공적으로 죄가 될 만한 사건에 대해 신고도 하지 않는다.형사사건의 범죄 신고율은 1998년에 22.7%로,독일의 48.0%,영국의 58.7%,프랑스의 60.8%와 비교해 매우 낮다.신고해 보았자 범죄가 법대로 처벌되지도 않고 또 재판 과정에서도 이차적인 피해만 입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작 사람들의 피해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졌느냐 하면,오히려 거꾸로다.1997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고소·고발 사건 수는 80만 1893건으로,일본의 1만 2174건에 대해 66배이며 인구를 감안할 때는 무려 170배에 달한다.고소사건의 73.5%가 불기소 처분될 정도로 죄가 되지 않는 민사사건이라고 하니,시민들은 재판을 통한 공적 처벌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해 사적인 원한만 키우고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그 결과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이제라도 청산을 해야 한다.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보수를 자처할 수도 없다.지금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다.최소한 기록이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더구나 지금 제대로 해보았자,이류 청산밖에 안 된다.그것도 안 하면 역사는 삼류·사류로 더러워질 것인데,그 경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열린세상] 경기가 나쁘다는 말, 말, 말/김민숙 소설가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오랜만에 고향 부산에 다녀왔다.몇 년만에 친척들과 만나 서로의 안부도 묻고 하루쯤은 피서 온 흉내도 내어볼 참이었는데,날씨 못지않게 그 고향길도 덥고 힘들었다. 택시에서 만난 운전수부터 재래시장의 장사꾼은 물론이고,몇 년만에 보는 친척들까지 하나같이 하는 말이 “경기가 나쁘다.힘이 든다.”는 말이었다.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는 이야기가 마치 녹음기라도 튼 듯이 되풀이되었다.나이 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해야지 지금 새삼스레 옛날 일은 들춰서 뭐하냐? 그 시절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딨냐? 할일이 그렇게 없어서 수도이전이냐? 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그 모든 잘못은 결국 대통령에게로 떠넘겨졌다.남의 나라 대통령도 아니고,우리가 뽑은 우리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적대감이 너무나 적나라해서 그 더위 속에서도 마음이 선득 추워졌다. 그들의 말은 모두 어디선가 들은 듯한 것이었고,나는 그들이 무슨 신문을 읽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젊은 조카들 몇이 수도가 아니라,행정수도만 이전한다,역사청산 없이는 나라의 정체성을 세울 수가 없다라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그것도 그냥 혼잣소리에 불과했다.아버지와 아들이 각자 상대의 의견에는 귀 한 번 기울여보지 않고 서로의 주장만 내세웠는데,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결국 오랜만의 가족잔치에서 화합을 깰까봐 조카 하나가 민주주의 국가니까 각자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마무리를 하는 바람에 모두들 쓴웃음을 지으며 그 일방통행 대토론(?)은 끝이 났다. 바다에 바싹 붙어 길게 누운 산 밑에 좁게 뻗은 부산의 지리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운동화 공장도 문을 닫고 대기업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부산은 언뜻 보기에 삼십년 전이나,십년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경기가 좋지 않다는 그들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조카가 사는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올라서자 별천지가 펼쳐졌다.그 도저한 바다의 위용은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곳에 들어선 위락시설들에 그만 입이 벌어졌다.서울 손님들을 데려가면 하나같이 뿅간다는 화려한 사우나에 가서 바다가 보이는 노천온천에 앉아 양평 촌년인 나도 넋이 나갔는데,그 속에서까지 따라온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곱씹으며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마치 지구의 양극처럼 나누어진 한 도시의 두 얼굴.도대체 얼마나 호황이 되어야 우리가 만족하게 될까? 그 어렵다는 국민소득 이만달러 목표를 달성할 때일까? 그때는 또 얼마나 목표치를 올릴 것인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금방 죽을 듯이 호들갑을 떨지만,사람들은 소비를 줄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국내에서 돈을 써야 경제가 산다며 정부까지도 국민의 돈지갑을 열지 못해 아우성이다.많이 들어본 말이다.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도 돈을 써야 한다며 외국여행을 장려했었다.바로 그 몇 년 후에 외환위기를 맞은 것을 기억하자.카드 빚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줄을 섰어도 아직도 소비가 미덕이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남이 장에 간다고 너도 썩거름 지고 장에 갈 거냐는 꾸지람을 자주 하셨다.직업도 직업인데다 그다지 능력도 없어 백수나 진배없는 나부터도 그동안 늘어난 씀씀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 마음이 켕긴 탓에 가끔 그 꾸지람을 그리워한다.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그래도 아직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정말 어려운 사람들,경기 따위와는 애당초 상관도 없는 사람들,너무 어려워서 어렵다는 말조차 남에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마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우리는 모두 지난 이십년동안 너무 분에 넘친 소비를 해온 것은 아닐까.그 흥청망청이 모두 좋기만 한 것일까.이제 제발 경기 타령은 그만하고,조금 더 간소한 생활을 꾸리고,조금더 풍족한 마음을 가꾸는 삶,나보다 더 어려운 이와 함께 나누는 삶을 생각해보자면 시대착오적일까. 김민숙 소설가
  • 신기남 “우리당과 싸우면 패가망신”

    “대통령과 우리당에 전면전의 기세로 싸움을 걸다 패가망신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많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25일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신 의장은 이날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박 대표가 ‘선진화’와 ‘미래’를 많이 얘기하던데 진정 이를 추구한다면 과거사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신 의장은 박 대표의 ‘전면전’ 발언 이후 지난 며칠간 “진의가 아닐 것”이라며 공세를 자제해 왔다.그러나 이날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는 “‘전면전’이니 ‘간첩천국을 만들려 한다.’느니 하며 색깔공세를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한나라당이 과거사 규명 문제 때문에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맞불을 놓으려 하는 것 같은데…정체성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또 “과거사 진상규명은 정치적 이득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서 “나라의 미래를 혼란으로 빠뜨려 놓지 않겠다면 과거사 규명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내가 대표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도됐는데 그렇지 않다.만나면 좋은 것이고,만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만나 달라고 사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신기남 “우리당과 싸우면 패가망신”

    “대통령과 우리당에 전면전의 기세로 싸움을 걸다 패가망신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많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25일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신 의장은 이날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박 대표가 ‘선진화’와 ‘미래’를 많이 얘기하던데 진정 이를 추구한다면 과거사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신 의장은 박 대표의 ‘전면전’ 발언 이후 지난 며칠간 “진의가 아닐 것”이라며 공세를 자제해 왔다.그러나 이날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는 “‘전면전’이니 ‘간첩천국을 만들려 한다.’느니 하며 색깔공세를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한나라당이 과거사 규명 문제 때문에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맞불을 놓으려 하는 것 같은데…정체성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또 “과거사 진상규명은 정치적 이득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서 “나라의 미래를 혼란으로 빠뜨려 놓지 않겠다면 과거사 규명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내가 대표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도됐는데 그렇지 않다.만나면 좋은 것이고,만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만나 달라고 사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수도이전 논란 ‘끝장’ 보나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이전 강행을 위한 전국 순회 공청회를 12일부터 개시하고,‘수도이전 위헌 헌법 소원 대리인단’도 같은 날 수도 이전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 소원을 제기키로 해 대립 국면이 심화되는 가운데 여야의 공방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반대 여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위기 의식 아래 야당측을 강력히 성토하면서 행정수도 건설의 타당성 홍보에 나섰다.반면 야당은 행정수도 건설 반대를 ‘대통령 불신임·퇴진운동’으로 연계한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대대적인 공세에 돌입했다. ●한나라 “盧대통령 정치목적 집착” 한나라당 김덕룡 대표권한대행은 9일 원내 대책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밀어붙이면 무서운 국민 저항에 부딪힐 임기 3년밖에 안 남은 대통령 개인의 신임,불신임 문제가 결코 아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그는 “사슴을 쫓는 사람이 산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노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에 집착한 나머지 국가 장래는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박희태 국회 부의장도 “노 대통령은 사슴 쫓는 데만 열중하지 말고 산천경계도 둘러보고 어렵게 사는 민생 경제도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가세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도박판에서 ‘올인’하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수법에 이젠 익숙한 국민”이라면서 “올인하는 도박사는 패가망신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당 “반대는 구태정치의 전형” 열린우리당은 신행정수도 건설이 무산되면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국정과제가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대야 비판은 물론 홍보에도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일부 신문의 보도태도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의원 총회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16대 국회가 입법을 통해 결정한 것”이라면서 “자신들이 찬성해 만든 법안을 그대로 두면서 국론 분열만 획책하는 행태는 구태정치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확대 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폐기안을 내든지 수정안을 내든지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민병두 기획조정위원장은 “신행정수도 반대는 일정한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라며 “정부에서 외교사절,해외 투자자를 초청해 설명하고,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는 등 다양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사설] 인사청탁 의혹 규명해야

    정동채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이 교수임용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오지철 문화부 차관이 정 장관의 부탁을 받아 서모씨의 부인 김모씨를 교수로 임용해 달라고 청탁했다고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청와대 인터넷 신문고에 올린 정 교수의 주장에 정 장관은 물론 오 차관,서씨 등 모든 관련 인물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정 장관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정 교수에게 의심이 드는 대목도 있다.그는 오 차관과 김씨를 직접 만나 정 장관의 청탁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1일 인터뷰에서는 “김씨가 정 장관이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말을 바꾸었다.‘청탁했다’와 ‘청탁했을 것’이라는 표현은 다르다.이를 보면 오 차관이나 김씨가 정 장관의 이름을 대고 이용한 것을 정 교수가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아니면 실제 청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정 장관의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고위 공직자의 청탁이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노무현 대통령은 ‘패가망신’까지 거론하며 인사청탁을 배격하겠다고 강조해왔다.그런데도 암암리에 인사청탁이 행해지고 있음이 확인됐다.정부는 이번 일을 명명백백하게 조사해 청탁에 개입한 공직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아울러 앞으로 인사청탁 비리를 차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름까지 적시해 인터넷에 올려진 제보를 왜 5일이 지나도록 처리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장관 후보의 이름이 명기된 투서가 있었다면 임명 전에 사실 여부를 확실히 밝혀냈어야 옳았다.청와대의 민원 처리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도 점검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서울광장] 초선의원 187명이 할 일/오풍연 논설위원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백성의 뜻을 모으는 크고 화려한 집을 말한다.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다음 달 개원과 함께 정식 입주를 한다.이제부턴 의사당의 주인으로서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63%를 차지하는 초선 의원 187명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하겠다.16대 때는 초선의원 비율이 41%(111명)에 머물렀다.이는 새 정치를 바라는 민의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 만큼 초선들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적을 알고,나를 알아야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얘기다.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들이 있다.먼저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대학에 들어가면 책을 손에서 떼듯,‘금배지’를 단 뒤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상임위를 지켜보면 의원 개개인의 실력을 금세 알 수 있다.각 당 스터디 그룹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환영할 만한 일이다.초심을 잃지 말아야 연구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또 오는 13일부터 이틀간 실시되는 ‘의정 과외’를 통해 비법(法)을 전수받기 바란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국회 도서관을 자주 이용해야 한다.학위논문실,국제기구·통일자료실,정간·신문열람실,비(非)도서자료실,마이크로폼자료실,멀티미디어실,의회·법령자료실 등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보유 도서만도 180여만권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그런데도 4년 동안 한 번도 들르지 않는 의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지난해 1년 동안 의원열람실을 이용한 의원은 연인원 2880명에 불과했다.하루 평균 8명꼴이다.창피한 이용률이다. 소신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의원은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이라 할 수 있다.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권한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여야를 불문하고 중진들이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다.벌써부터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후문이다.뜻을 같이하는 의원끼리 만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의도는 없다.그러나 모임이 잦아지면 파벌이 생기고,사당(私黨)화를 초래할 가능성은 커지기 마련이다.그보다는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돈 안 쓰는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선거법 및 정당법 개정으로 돈 안 쓰는 토대는 마련됐다고 본다.돈 쓰는 정치를 하다 보면 유혹에 빠져들기 쉽고,그로 인해 패가망신하기도 한다.지금 서울구치소에는 10여명의 여야 의원들이 돈 수수혐의로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민원(民願)을 멀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또 자세를 낮추기 바란다.여의도에 입성한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선량이 자기과시를 해서는 안 된다.이는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다.공복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다음 번도 보장된다.그런 점에서 의원사무실의 문턱을 낮출 것을 당부한다.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좌진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의총에서 발언을 많이 하는 게 좋다.의총에는 매번 ‘단골손님’만 나온다.의총은 당론을 모으고,개인의 소신을 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의총장에서 뒷짐을 진 채 남의 집 닭 보듯하는 선배의원들의 뒤를 밟으면 안 될 것이다.의총이 활성화된 당은 미래도 밝은 법이다. 지역구도 잘 챙겨야 한다.수도권 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얼굴을 내미는데,그래서는 곤란하다.이 경우 다음 선거에서 당선은 힘들어 진다.계획표를 잘 세워 후회없는 의정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4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
  • [남상국씨 자살파장] 청와대 반응

    청와대는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 차원에서 돈을 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이날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듣고 한강에 투신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관계자들은 “대형 악재가 터졌다.”면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곤혹스러워했다.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에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만한 성공적인 기자회견이었다.”고 평가했다.‘철저한 대통령 측근 관리’ 및 ‘인사청탁시 패가망신’ 사례 등을 적시,변화하는 권력의 흐름을 보여줬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남씨가 투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여론의 악화를 걱정했다. 악화된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이 탄핵 표결을 강행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아직 상황파악이 끝나지 않아 논평을 할 만하지 못하다.”며 말문을 닫았다.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안희정씨 등 측근과 형 건평씨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 반면,건평씨에게 인사청탁을 한 인사나 야당에 대해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또 너무 시시콜콜하게 말을 많이 했다는 지적도 있다. 노 대통령은 안희정·최도술씨의 불법자금 모금과 관련,“착복 고의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성심껏 변호했다. 남상국 전 사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고 인사청탁을 했던 건평씨에 대해서도 “돈을 탐해서 전화할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서 적극 옹호했다. 건평씨의 3차례 청탁을 모두 외면한 사연도 소개했다. 문소영기자 sy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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