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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수 前회장“한보철강 돌려주면 3년후엔 정상가동”

    정태수(81) 전 한보그룹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한보철강을 돌려주면 부채 6조 1000억원을 모두 갚고 당진제철소를 2년내 완공해 2007년에는 정상 가동하겠다고 했다.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기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정 전 회장은 20일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내 전 한보그룹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입찰 참가자 중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채권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총 부채 6조 1000억원 중 3개월내에 아라비아 금융기관으로부터 4억 5000만달러의 외자를 도입해 5000억원을 상환하겠다고 밝혔다.또 인천 서구와 용인 신갈,안산 등에 보유한 토지에 아파트를 건설한 뒤 공사이익금과 토지대금 회수를 통해 3년내 추가로 1조원을 갚을 계획이다.나머지 부채 4조 6000억원은 2008년부터 16년간 매년 3000억원씩 상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금조달 계획은 대부분 외부 차입을 통한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채권단도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영화 2편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드라마 2편을 소개한다.30일 나란히 개봉하는 일본 거장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2001년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과,스페인에서 날아온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두 작품은 이래저래 공통분모를 갖는다.인간내면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발한 욕망을 섹스코드를 빌려 경쾌한 어조로 풀어낸,아주 독특한 연애담들이라는 점.소규모 배급망 탓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막내릴 여지도 크다는 점.끝으로 하나 더.일단 보기만 하면 틀림없이 산뜻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설 것이란 사실이다. ●동성애 다룬 스페인 영화 ‘엄마는‘ 유럽영화를 지루하고 어려운 관념의 이미지틀에 가둬놓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계기로 그만 해방돼도 될 듯싶다.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화제작 ‘그녀에게’에서 발레리나로 나왔던 레오노르 와틀링이 상큼한 이미지로 코믹드라마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띄워 올린다. 제목에는 사실과 오해가 반반씩 들어 있다.엄마가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란 암시는 ‘사실’.어감으로는 왠지 페미니즘 영화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진 않다.엄마의 동성애 때문에 세 딸이 빚는 해프닝을 그렸으되 성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공박하지는 않는다. 아빠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엄마 소피아(로사 마리아 사르다)가 생일파티에서 폭탄고백을 한다.스무살이나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짐짓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론 경악한 세 딸들이 엄마의 여자애인을 떼놓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낸다. 영화는 소심한 둘째딸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에게 무게중심을 옮겨,엄마의 동성애가 빚은 가족간의 갈등과 개개인의 혼돈을 여러 각도에서 투영해낸다.물론 전체 분위기는 코미디다.출판사에 다니는 엘비라는 인기작가 미구엘과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하지만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사랑의 취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자신 속에도 있을지 모를 동성애 기질을 애써 찾고 또 부정하기를 거듭한다.세 자매들 중에서도 유독 소극적인 엘비라를 이야기의 축으로 세운 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매사에 주눅들어 살던 엘비라가 뜻밖에 마주친 갈등을 딛는 과정에서 보기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여주인공의 초라한 내면세계를 유쾌한 시선으로 이끌어낸 점에서는 심리드라마 같기도 하다.또 보수이미지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엄마가 오랜 사회금기인 동성애에 빠진다는 설정은 성(性)을 단순한 코미디 소재로만 끌어들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농담 속에 알쏭달쏭 진담이 섞인,독특한 질감의 유럽산 코믹드라마다. 스페인 출신인 와틀링은 이 영화로 최근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에서 깜찍한 외모로 사랑받는 오드리 토투의 국내팬층을 앗아갈 것 같다.이네스 파리스,다니엘라 페허만 등 스페인의 두 여성감독이 공동연출했다. 황수정기자 sjh@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78) 감독의 2001년 작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 30일 개봉된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도 영원한 현역 정신을 자랑하는 거장의 이번 작품은 ‘포르노적인 상상력’에 팬터지라는 옷을 입힌,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버티는 40대 가장 요스케(야쿠쇼 고지)는 자신이 묻어둔 금부처를 찾아서 가지라는 ‘거리의 철학자’ 다로(기타무라 가주오)의 유언에 따라 교토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간다.그가 붉은 다리 옆에 있는,보물을 숨겨뒀다는 2층집에 사는 이상한 여인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 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영화는 팬터지와 우화의 세계로 접어든다. 이따금 몸에 물이 차오르고 그 때마다 성욕이 발동하는 병에 걸린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는 이 고통을 절도행각으로 누르고 있다.이를 알게 된 요스케는 임시 선원으로 일하며 그녀가 사인을 보낼 때마다 달리기선수보다 더 빨리 달려가 섹스로 달래준다.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달래주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는다. 정사 도중 사에코의 몸에서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장면이나,그 물이 계단을 지나 수로를 타고 강으로 흘러들면 물고기떼들이 몰려오는 기상천외의 상상력에서 이마무라 쇼헤이만의 저력이 느껴진다.조금 황당해보이는 기발한 상황 설정 속에는 ‘성장 신화’를 향해 질주하느라 메말라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을 풍자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21세기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별로 없어요.”(사에코)나 “자본주의 사회는 감옥과 같아.말없이 일만하는 바보를 원해.”(요스케) 등의 대사에 현실을 향한 감독의 시선이 녹아 있다.실직 뒤의 구직난,아내의 생활난 불평, 구직 독촉에 시달리는 요스케는 일상에 억압받는 현대인들을 상징한다.감독은 그 탈출 방법으로 ‘욕망의 힘’을 강조한다.“욕망에 충실하는게 진짜 삶이야.”라거나 “요즘 인간은 다 병자야.진정한 욕망을 외면한다.”“쫀쫀하게 굴지 말고 욕망에 충실해.” 등의 대사가 곳곳에 포진하면서 원초적인 에너지를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웃음을 더하는 것도 이마무라 쇼헤이의 연륜이 빛나는 대목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커닝엄·볼쇼이’ 국내 공연-세계 최정상 무용단 자존심 대결

    머스 커닝엄과 볼쇼이발레단.현대무용과 고전발레를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의 두 무용단이 잇따라 서울에 온다.머스 커닝엄은 15∼17일,볼쇼이발레단은 21∼24일 각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다.지난 반세기 가장 혁신적인 무용가로 꼽히는 머스 커닝엄은 지난 84년 이후 20년 만의 내한 공연이고,정통 고전발레의 대명사로 통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도 99년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초청 공연 이후 모처럼의 한국 나들이다.무용팬들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된 셈.두 무용단의 공연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본다. ●85세 현역 무용가와 모던 록그룹의 만남 현대무용을 얘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머스 커닝엄(작은 사진)이다.인간의 내면세계나 심리적 묘사에 치중하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움직임 그 자체에 몰두하는 그의 무용 철학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포스트모던무용의 기초가 됐다.즉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인도 무용수가 될 수 있고,어떠한 움직임이든 무용에 사용될 수 있으며,우연에 의한 순간적인 동작과 즉흥성을 중시하는 그만의 독특한 안무 기법은 20세기 무용계 전반에 핵폭풍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존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동양의 선 사상과 주역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점,음악 미술 사진 영상 등 타 매체와의 긴밀한 교류를 모색한 점 등도 머스 커닝엄의 무용세계를 특징짓는 독창적인 요인들이다. 20년전 예술적 동지이자 연인인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와 함께 서울에 왔던 그는 이번 공연에선 모던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시거 로스의 음악을 동반한다.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여전히 무대에 서는 고집스러운 면모만큼이나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열정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공연작은 지난해 10월 뉴욕 BAM(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극장에서 초연된 머스 커닝엄 무용단 50주년 기념작 ‘Split sides’와 92년 사망한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Ground level overlay’,그리고 시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Pond way’ 등 3편. 이중 ‘Split sides’는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공연 내용이 다르게 진행된다.그가 추구하는 ‘우연성의 미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여기에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젊은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시거 로스가 음악 작업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시거 로스는 이번 내한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02)537-0300. ●비극적 버전의 ‘백조의 호수’ 200년 역사의 볼쇼이발레단이 마린스키(옛 키로프)발레단을 누르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4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직후부터였다.당시 37세에 불과했던 그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기량으로 단숨에 볼쇼이를 정상에 올려놓았다.‘잠자는 숲속의 미녀’‘호두까기 인형’‘스파르타쿠스’‘로미오와 줄리엣’ 등 그가 현대적으로 재안무한 작품들은 볼쇼이발레의 간판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에 공연되는 ‘백조의 호수’역시 그가 1969년에 재안무한 것.기존 작품에서 단순하게 그려졌던 악마의 캐릭터를 달리 해석해 왕자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천재적인 악마로 설정함으로써 보다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지난 2001년과 2003년 국립발레단에 의해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전 공연과 다른 점은 결말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원래 ‘백조의 호수’의 결말은 왕자가 악마를 물리치는 해피엔딩과 두 남녀가 죽음을 맞는 비극,두가지 버전이 있으나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해피엔딩 버전을 무대에 올렸었다. 오데트 공주와 악마 흑조 오딜 역은 95년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갈리나 스테파넨코가 맡았다.지그프리드 왕자는 볼쇼이 주역 무용수 블라디미르 네포르지니가 열연한다. 12년째 이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 배주윤도 나폴리 예비신부역으로 고국 팬들에게 인사할 예정이다.(02)751-9685. 이순녀기자 coral@˝
  • 할머니 춤꾼 7인의 삶·예술 오롯이…12~13일 국악원 예악당서

    세상이 알아준다해서 영화로울 것도,알아주지 않는다해서 서운할 것도 없었다.그저 춤이란 제 멋에 겨워 허공에 그리는 자화상이며,돌아서고 나면 사라지는 허망한 꿈 한조각에 불과하지 않던가. 12·13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이는 ‘여무(女舞),허공에 그린 세월’은 세간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한평생 전통춤을 품고 살아온 일곱 여성 춤꾼들의 고집스러운 삶과 예술이 오롯이 담긴 무대이다.평균 연령 70대 중반.이들중 절반은 기녀로,무녀로 혹은 스님으로 남다른 인생을 살면서 춤을 삶의 동반자로 삼았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진옥섭씨는 “승무나 살풀이 등 1∼2종의 유파가 전통춤의 본류인양 취급되는 세태속에서 우리 춤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풍부한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출연자들 대부분이 70대 고령인지라 이들의 춤을 한자리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에 삼고초려의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지난 2002년 가을 ‘남무(男舞),춤추는 처용아비’로 남성 전통 춤꾼들의 호방한 춤사위를 선보였던 그로선 여성 춤꾼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무대이기도 하다. 최고령 출연자는 올해 팔순이 된 강선영.태평무 예능보유자인 그는 이번 무대에서 스승인 한성준에게 직접 사사한 승무를 선보인다.승무는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이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고,후에 이매방의 호남류가 지정받았다. 민살풀이춤을 추는 장금도(76)는 `먹고 살기 위해 소리 배우고,춤 배운’군산 소화권번 출신의 춤꾼.서울 종로 요정가에서 탁월한 춤솜씨로 인기와 재물을 모으기도 했으나 전쟁통에 군산에 내려가 이집저집 잔칫상을 떠돌다 세월에 묻혔다.민살풀이춤은 수건없이 맨손으로 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주 명무 김수악(78)이 추는 교방굿거리춤의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칠순을 넘기면서 허리가 굽고,키가 줄어 공연 때마다 치맛단을 잘라내야 하지만 춤의 `태’만은 여전히 정정하다. 만신 김금화(72)는 황해도굿 가운데 큰거리에 해당하는 거상춤을 선보인다.황해도 출신의 김금화는 황해도굿의 예술성을 널리 알려 주목받은 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서해안 풍어제 보유자이다. 최연소 출연자인 한동희(59)는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이수자로,비구니로서는 처음 범패승 계보에 올랐다.지난 95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불교의식을 최초로 무대화한 작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서울 돈암동 자인사에서 수행하며,범패 전수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이번 무대에서 나비춤을 춘다. 대구 춤꾼 권명화(70)와 최희선(74)은 대구 전통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박지홍류의 살풀이춤과 달구벌 입춤을 춘다.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추던 허튼 춤에서 발전한 살풀이춤은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달구벌 입춤은 박지홍류의 춤을 최희선이 추면서 붙여진 이름으로,춤을 배울때 첫 발을 떼는 춤이기도 하다.(02)3446-6418. 이순녀기자 coral@˝
  • 티베트 16회 탐험… 야생화 500종 찾아내/팔순의 현역 산악인 박철암 씨

    ‘쇠바위(철암 鐵岩)’.히말라야에 첫 도전장을 냈던 대한민국 산악 역사의 산증인이자 팔순의 현역 탐험가에 딱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는 첫인상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그가 살아온 햇수를 나타내는 ‘80’이란 숫자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년의 기운이 흘렀다.투박하고 거무튀튀한 손은 티베트의 모래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10월 16번째 티베트 고원을 탐험하고 돌아온 박철암 옹은 만나자마자 대뜸 “산을 아느냐.”고 물었다.“잘 모른다.”고 하자 “그럼 인생은 아느냐.”고 물었다.역시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별로 없다.”며 먼저 자리를 뜨려는 깐깐한 할아버지를 간신히 붙잡았다.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한 탐험담과 인생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기에는 한참의 침묵이 필요했다. ●무인구(無人區)의 꽃을 찾아 박 옹이 처음 티베트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90년 6월20일.적막한 고원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 은은한 풀피리 소리가 들렸다.멀리서 양떼를 몰고 오는 목동들의 손에는저마다 잉카르빌리아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풀피리가 들려 있었다. 박 옹은 이때부터 잉카르빌리아와 목동,그리고 피리 소리에 이끌려 티베트 고원을 계속 찾았다. 16차례의 티베트 탐험은 전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하며 그가 걸은 길을 모두 합치면 9만 5000㎞나 된다.500여 종류의 야생화를 찾아내 ‘티베트의 꽃’이란 책으로 집대성했으며,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구를 탐험한 기록은 ‘지도의 공백지대를 가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특히 3년을 헤맨 끝에 92년 메코노프시스를 찾았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그대로다.히말라야와 티베트의 접경 지역인 좌촐라파스산 4900m 지점에서 발견한 메코노프시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꼽힌다. 그는 “손이 떨려 사진기 셔터를 누를 수조차 없었다.”면서 “꽃을 바라보며 ‘하느님’만 외쳤다.”고 말했다. 타클라마칸사막 밑으로 흐르는 물이 타림분지의 끝자락에 고여 이루어진 로프노르 호수는 며칠 사이에 형상이 변하는 신비한 자태로 박 옹을 매료시켰으며,실크로드 중간에 자리잡은 허탠 근처에서는 옥이지천에 널린 강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사막에서 천지를 집어 삼킬 듯한 돌개바람을 만났으며,야루창푸강을 건널 때는 급류에 휘말려 100여m를 떠내려 갔다. “말커차카 호수를 처음 발견하고 기뻐 날뛰다 길을 잃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지.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떠나지만 막상 죽음이 엄습해오면 당황스럽더라고…”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 지난 62년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박 옹은 한국 산악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변변한 지도조차 없이 나선 첫 히말라야 등정은 다울라기리봉 7751m 지점에서 그쳤지만 그의 도전은 언제나 한국 등반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경희대 중문과 교수를 지낸 박 옹은 “당시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에 가겠다고 하자 문교부장관까지 나서서 말렸다.”면서 “누군가가 가야 할 히말라야라면 내가 첫 발을 내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65년 겨울에는 타이완 옥산을 등반했으며,67년에는 일본 북알프스 등반대장을 맡았다.71년에는 최초의 로체샬 원정에서 한국인 최초로 해발 8000m 선을 넘었다.84년에는 홀연히 히말라야 쿰부지역을 탐사하더니 90년부터 티베트의 대자연을 찾아 나섰다. 그는 타고난 탐험가다.평남 영원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2000m가 넘는 험준한 동백산과 낭림산을 동네 뒷산 오르듯 했다.고산지대에 지천으로 널린 마타리꽃은 소년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박 옹은 “동백산과 낭림산 어느 골짜기에 난파한 배의 파편과 조개 화석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이 된다면 어렸을 때 올랐던 그 산들을 탐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은 인내’ 평생 고원과 산악을 탐험한 박 옹은 무엇을 얻었을까? “참는 것을 배웠지.인생은 인내야.” 박 옹은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 참지 못할 일이 없다.”면서 “한순간만 참으면 곧바로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이란 멀고 험한 탐험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 박 옹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많다.불혹을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나이를 세보지 않았다는박옹은 “젊은이들의 이상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한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눈을 맞추고,사하라사막을 품을 만한 넉넉한 가슴을 가져야지.” 지난 97년 명예교수직마저 내놓은 박 옹은 1년에 3∼4개월은 티베트를 탐험하고,나머지는 대부분 설악산 용대리 농가에서 꽃을 가꾸며 지낸다.“티베트가 나를 부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찾아 가겠다.”고 말하는 박 옹의 눈은 어느새 티베트 고원을 향하고 있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1924년 평남 영원군 출생 ▲1949년 경희대 산악부 창립 ▲1961∼97년 경희대 중문과 교수 ▲1962년 국내 최초 히말라야 원정 ▲1963∼72년 대한산악연맹 이사 1965년 타이완 옥산 등반 ▲1967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 ▲1971년 로체샬 원정 ▲1990년 티베트 탐험 시작 ▲2003년 16번째 티베트 탐험
  • [임영숙 칼럼] 어머니의 새우잠

    며칠전 TV 드라마 ‘대장금’을 보다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다.아니 답을 찾았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을 한마디로 요약한 단어와 맞닥뜨리고,오래 묵어 거의 화석화된 가슴속 깊은 상처 하나가 다시 생생하게 살아 남을 느꼈다. 의녀 장금이가 당돌하고 맹랑하게도 대비마마에게 낸 수수께끼 문제에 그 단어가 들어 있었다.장금이는 어떤 사람인지 맞히는 수수께끼 문제를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이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식의(食醫)로서 그 집안의 노비나 다름이 없으나 실은 그 집안 모든 사람의 스승이옵니다.” 이 수수께끼의 답은 ‘어머니’다. 내 가슴속 묵은 상처는 어머니의 새우잠 자는 모습이다.어린시절 명절은 풍요롭고 즐거운 축제였는데 그 축제의 기억 한쪽에는 항상 어머니의 새우잠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큰댁인 우리 집을 찾은 일가친척들이 돌아가고 북적이던 집안이 잠시 조용해질 때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셨다.바느질 솜씨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 난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오빠들의 설빔과내 색동옷은 물론 차례음식까지 장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명절을 그렇게 마무리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낮잠을 주무시지 않던 어머니가 명절날 오후 늦게 이불은 물론 베게도 없이 건넌방 한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태산 같이 든든하던 어머니가 한없이 작고 고단해 보이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김승희 시인은 한국에서 직업을 가진 기혼여성들의 삶을 “아프거나 바쁘거나-그 둘 중 하나만을 산다.”고 표현했다.이 글을 읽으면서도 직업을 가진 내 삶보다 어머니의 새우잠이 먼저 떠 올랐으니 어지간히 깊게 각인된 기억인 듯싶다.장금이의 수수께끼처럼 한 집안의 노비이자 스승인 어머니의 모습은 내게 새우잠으로 압축돼 남아 있는 것이다. 올 설에 나도 새우잠을 잤다.그러나 어머니와 올케랑 함께 친정집 안방에서 잔 새우잠은 참으로 달콤했다.결혼 후 처음 친정에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올케 덕분이었다.명절이 끝나는 날 상경하는 기차표까지 마련해 놓았으니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몇번씩 전화를 거는 올케의 성화에,조카가 차례상을 차리는 시댁 대신 친정에서 설 명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다른 관계로 만났으면 좋았을 사람도 시댁의 ‘시’자가 들어가면 어색해지고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도 싫어하는 여성들이 있다지만 올케는 명절에 시누이를 불러 들일 만큼 스스럼없다.게다가 팔순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똑소리나게 야무진 살림꾼인 그 올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어머니 못지않게 뛰어난 올케의 음식 솜씨에 감탄하면서,서울보다 시골 채소와 고기가 더 맛있다고 바리바리 싸주는 꾸러미들을 쑥스럽게 받으면서 혈육과 다름없는 따뜻함을 느낀다. 그 올케에게도 이른바 명절증후군,명절이 골치 아프고 짜증나는 여자들의 증세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친정집 부엌에서 잠시 떠올랐다.어머니는 내게 집안일을 가르치지 않으셨는데(솜씨 좋은 여자가 오히려 고생하게 된다고 생각하셨던 듯싶다) 올케도 조카딸에게 애써 부엌일을 가르치고자 하는 듯이 보이진 않았다.거꾸로 집안일 못하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나는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에게 먹이는 즐거움과 보람’을 강조해 왔고 부엌일을 하도록 부추겨 왔다.그런 내게 한 친구는 “딸이 결혼하면 지겹도록 할 부엌일을 왜 지금부터 하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우리가 새우잠을 자는 사이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즐겁게 놀았다.올케의 헌신으로 아직도 푸근한 명절을 누리는 그들이 훗날 어머니가 됐을 때 딸들을 어떻게 키울까.조카딸은 지금 자기 어머니의 새우잠을 어떤 모습으로 가슴에 담고 살까. 주필 ysi@
  • “빨갱이 누명쓴 해외인사 초청 큰 보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형규 이사장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문제에 깊이 관여해온 박형규(朴炯圭·8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맞는 갑신년 새해는 남다르다.팔순을 이미 넘겼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탓인지 여전히 젊었다.그는 4월 총선에 대해 “정치인들에게 ‘제발 정직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총선에서는 ‘내 한 표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유권자는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특히 송 교수의 한국 방문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그는 정부 당국의 조치에 대해 서운해 하면서 “유죄판결이 나면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송두율은 분단의 희생양” 지난해 9월 기념사업회의 주선으로 입국한 송 교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변함없었다.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송 교수를 민주화 인사로 생각한다.”고 밝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 서명은 70년대 입북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통과의례였기 때문에 ‘빨갱이’로 봐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논리이자 신념이다. “90년대 초 일본계 미국인 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헤겔 철학을 끌어다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을 정당화한 논문 ‘역사의 종언’을 처음으로 제대로 반박한 사람이 송 교수입니다.송 교수는 민족적인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미국식 세계화로만 해석될 수 없는 제3세계의 사상과 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정부와 옛 ‘동지’들인 고영구 국정원장,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등 이른바 정권의 ‘실세’들에 대해 못내 섭섭해했다.그는 “송 교수 문제가 꼬이니까 처음에는 ‘(정부가)이 정도도 못 하나.’ 싶더라.”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이어 “철학적으로 양쪽의 입장을 아우르는 ‘경계인’을 정치적인 현실 문제로 재판을 통해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남북 정권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송 교수는 분단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는 현재진행 중” 기념사업회도 ‘송 교수 유탄’으로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그는 국감에서 송 교수 문제로 일부 의원들과 고성을 주고받는 바람에 정치권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보수 언론도 기념사업회를 도마에 올려놓고 흔들었다. 이 때문에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30억원이나 깎여 50억원만 책정됐다.해외민주화운동 인사 초청 등 기념사업회의 올해 사업에 적잖은 차질을 빚게 됐다.그는 “지난해 말 한나라당의 홍사덕 총무,이재오 의원 등 잘 알던 의원들에게 연락도 했지만 최병렬 대표 등 ‘칼자루’를 쥔 의원들은 전화도 잘 안 받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돌려 말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지만 다 채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가 “송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사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생각에는 변함없다.송 교수에 대한 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다. 송 교수의 일로 우리의 정치적이고 법제도적인 현실을 실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그는 “훨씬 ‘과격한’ 인사들도 문제삼지 않는 국정원과 검찰이 송 교수를 걸고 넘어지는 처사는 생명력을 잃고 있던 국가보안법에 햇볕을 보여주기 위한 ‘술책’”이라면서 “유신 본·잔당들이 정계와 검찰에 남아 있는 만큼 여전히 ‘실질적 민주화’는 멀다.”고 주장했다.또 “진정한 변화는 대통령이 말하는 한순간의 혁명이 아니라 끈질긴 의지의 소산”이라면서 “민주화 세력이 배척당하는 것은 역사는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단언했다.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 그는 70년대부터 문익환·계훈제씨와 함께 재야의 버팀목이었다.2002년 1월부터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기록·교육하기 위해 출범한 기념사업회를 이끌었다. 70년대 이후 그의 삶은 치열했다.한국 민주화운동사의 축소판으로 불려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73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74년 민청학련 사건,그리고 87년 6월 항쟁까지 민주화 현장을 지켜왔다.구속수감된 것만 해도 6차례나 된다. 2년 남짓 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그래도 보람으로 느끼는 일은 ‘빨갱이’라는 누명에 고국을 찾지 못하던 해외 민주화인사를 초청한 것이다.그래서 그들에게 갖고 있던 ‘마음의 빚’을 청산했다고 여긴다.그는 “해외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통해 민주화된 우리,한국을 알리는 게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하는 것 못지 않게 의미있다.”면서 “일본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이식받은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얻어낸 우리를 부러워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민중신학 목사’다.60·70년대 ‘해방 예수’라는 깃발을 들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기독교장로회 출신이다.한국적 신학을 끊임없이 고민했다.70년대 초부터 우리 전통과 신학과의 만남을 모색하기도 했다.찬송가와 판소리를 접목시키는 작업도 꾀했다. 그는 “일본 중학교 시절 국악을 처음 접하면서 ‘우리 것’이라는 자각이 싹텄다.”면서 “목사가 된 뒤 개신교가 한국의 사상과 전통,특히 민중 전통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적 신학을 실험했다.”고 말했다. 자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옥고도 치렀다.맏아들 종렬(56)씨도 목회자다.종렬씨는 ‘괭이부리말 마을’로 널리 알려진 인천 만석동에서 노숙자,외국인노동자 등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부인 조정하(趙丁夏·77)씨는 70년대부터 20여년 동안 남편과 자식을 옥바라지했다. 그는 부인에 대해 “73년 권호경 목사와 둘만 수감됐을 때 울기만 하던 온순한 사람이 민청학련 사건 때는 구속된 학생들 뒷수습에 앞장서더라.”면서 부인 조씨의 변화를 설명했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우리 나라가 극심한 경제·사회적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민주화’가 이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직을 팔십 인생의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는 그는 “있는 날까지 기념사업회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 ▲23년 경남 창원 출생 ▲50년 부산대 철학과 중퇴,59년 일본 도쿄신학대 대학원 졸업 ▲8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82∼91년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이사장 ▲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92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고문 ▲95년 노동인권회관 이사장 ▲2001년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2002년 1월∼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 방탄조끼 입고 영업전선 누빈다/김갑수 대우인터내셔널 암만·바그다드 지사장

    “이틀 뒤면 설이지만 다시 사지(死地)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난 18일 바그다드에서 대규모 차량 폭탄테러가 일어났지만 대우인터내셔널 암만·바그다드 지사장 김갑수(51) 상무는 설날 직후 바그다드로 향한다.현지에서 승용차와 컴퓨터 모니터,에어컨 수출계약을 하기 위해서다. ●설에도 死地 넘나들어 김 상무는 바그다드의 상황이 워낙 심각해 회사의 지시로 암만에서 부인 김성주(47)씨,외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라크 바이어들로부터 물품문의가 잇따르고 있고,계약체결을 위해서는 수시로 바그다드행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지난해 오무전기 근로자들의 피살 직후부터는 본사에서 지급한 방탄조끼를 입고 영업전선을 누비고 있다. 그는 “이라크 상황이 종전 이후에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한국 제품을 수입하겠다는 바이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포화가 난무하는 속에도 이라크를 떠나지 않았던 게 현지인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악조건에서 최근 프린스 등 대우의 중고차 1000여대(200만달러상당)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더 나아가 전후 본격화되고 있는 정부사업과 민간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올해 이라크 수출목표인 1500만달러를 넘어 4000만∼5000만달러의 수출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각오다. ●“팔순 부모님이 마음에 걸려” 그는 설날이 다가올수록 서울 시흥동에 거주하고 계신 팔순의 노부모가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고백한다.“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멀리 떠나지 말라는 게 옛 어른들의 말씀이셨는데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하면 늘 죄를 짓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로 이라크에 온 지 5년째라는 김 상무는 전쟁이 발발한 뒤 직원들을 철수시키고 혼자 바그다드와 암만 지사를 오가고 있다. 세일즈맨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영원한 세일즈맨’으로 불리길 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그가 전쟁이라는 악조건에서도 회사의 수익을 증대한 공로을 인정,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이사에서 상무로 승진시켰다.이종락기자 jrlee@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3)노모와 이별하는 농촌가장-아기 울음 끊긴 농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13일 새벽,대구의 한 재래시장.채소가게 한 모퉁이에 짐꾼 서너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무척 추워 보이는 4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지난해 2월 인근 농촌에서 빚 때문에 이곳으로 피신해 온 김모(49)씨였다. “참,뭐라고 말할 수가 없죠.빚 때문에 가정이 산산조각났고,정든 고향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요.돌아가신 어머니를 제 손으로 모시지도 못….” 김씨는 지난 2년여간의 처참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의 짐꾼생활은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야반도주한 뒤부터 시작됐다. “하늘이 캄캄했어요.당장 먹고 잘 곳이 있어야 말이죠.막무가내로 시장을 찾았지요.” 김씨는 2∼3년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어머니를 모시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인건비를 줄이려고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빌려 거액의 농기계도 구입했다.그러나 태풍으로 농사를 연거푸 망친 데다 빚보증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다.아내와다툼이 잦아졌고,술로 날을 지샜다.그렇게 보낸 허송세월이 1년.아내와 이혼도 했다.결국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남몰래 고향을 등졌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 전액을 보증서 준 고향 친구들에게 떠넘긴 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할머니와 함께 살던 고등학생 딸은 가출했다.아들은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지만 연락할 길이 없다.지난 여름에는 어머니가 숨졌으나,고향 사람들 뵐 면목이 없어 장례식에도 못갔다.“어느 날 한밤중에 어무이 산소를 찾아가 목놓아 울었어요.못난 자식이라 그 옆에 계신 아부지도 뵐 면목이 없었어요.”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하루 수입 3만∼4만원으로 끼니를 때우며,쪽방에서 근근이 산다는 김씨는 “제발 고향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한마을 46명중 44명 환갑넘어 농촌에서 희망과 미래를 뜻하는 갓난 아기 울음소리가 멎은 지 오래다.대신 상여꾼들의 구슬픈 소리는 더 높아만 간다. 농촌이 출산율 급감과 노령·사망률 증가로텅 비어가고 있다.적은 수나마 농촌을 지켜왔던 젊은이들도 폐농으로 정처없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농촌은 이제 풍전등화다. ●26년째 아기 없어 27세가 막둥이 2002년 말 기준 주민 평균연령이 44.8세로 전국 최고령 지자체인 경북 의성군의 구천면 청산2리는 아기울음 소리가 사라진 지 벌써 26년이 넘었다.이 마을 박종하(55) 이장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막둥이가 올해로 27살이 됐다.”고 말했다. 군위군 산성면 무암리도 신생아 출생이 20여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 됐다.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명이 넘던 주민이 해마다 줄어 지금은 46명만 남았다.그것도 노인들밖에 없다.50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60대 이상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인구 2만 9762명인 군위군의 주민 사망자 수는 연간 411명으로,출생 143명을 3배 가까이 웃돈다.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박영언 군수는 “계속되는 농촌 인구 감소로 지자체의 존립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농촌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축사·사육하던 소까지 경매 인구 감소에다 빚을 감당하지 못한 농촌 일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의 야반도주를 택한다. 의성군 점곡면 김모(50)씨는 빚으로 2개월 전 자신의 축사와 먹이던 소들이 몽땅 경매처분되자 가족과 함께 마을을 몰래 빠져 나가 지금은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다. 김씨는 한때 알부자였다.1995년 축협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축사를 짓고 소도 들여왔다.빚을 추가로 내 소를 계속 불려 나갔다.소가 새끼를 낳으면서 금세 50여마리로 늘었다.남부러울 게 없었다.그러나 98년부터 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소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결국 6억원의 빚더미에 깔려 신음하다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군위군 효령면 박모(34)씨도 2년전 어느날 갑자기 도시로 사라졌다.1000여평에서 오이 시설농사를 짓던 그는 면내 지인들의 대출보증을 섰다 전재산을 날렸다.보증서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야반도주해 버렸기 때문이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에다 이들의 빚 1억여원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농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정든 땅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이런 이유로 지난 한해 동안 의성·군위·고령군에서만 고향을 등진 농민회원만도 2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충남 청양군 비봉면 한모(48)씨도 쌀농사와 돼지 등을 기르며 진 빚 2억원이 부도로 이어지자 연대보증을 서 함께 망가진 장인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농촌의 보루’라는 영농후계자들도 속속 농촌을 떠나고 있다.80년대 중반 농민후계자로 선정됐던 이모(44·군위군 군위읍)씨는 2년 전부터 농사를 포기했다.의성군 금성면 김모(50)씨도 마늘 등 복합영농을 하면서 진 빚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때 귀농인 다시 도시로 IMF사태 이후 농촌으로 몰려 들었던 도시 실직자들도 다시 농촌을 떠나고 있다.경북도에 따르면 97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도시근로자 1028가구가 농촌으로 돌아왔다.그러나 영농 경험부족에다 영농비 폭등,농산물 가격 하락 등 열악한 농촌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재이농 행렬을 이루고 있다. 4년 전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고추,배추,벼 등 복합영농을 하던 전모(47)씨는 지난해 가을 다시 대구로 돌아갔다.기상이변과 농산물값 하락으로 2년 연속 ‘쭉정이 농사’만 지었다.경북도 및 군 관계자들은 “도시 귀농인들이 정착에 실패,지난해 하반기부터 농촌을 떠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군위군의 한 관계자는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는 농민들이 삶의 터전인 농촌에 머물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고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취재팀 ■‘나홀로 농사' 팔순의 母情 “큰 아들이 도회지로 달아나다시피했지.제발 잘 살아 줬으면 해.여기 일은 하루빨리 잊고….”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사는 박분순(83) 할머니.돈 때문에 곁을 떠난 아들식구 생각에 자나깨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그래서 언제부턴가 늘 염주를 손에 들고 다닌다.노령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의 매일 절에도 간다.아들(50)이 잘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박 할머니의 기도생활은 1년 전부터 시작됐다.함께 살던 큰 아들 부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대구로 도망치듯 떠난 뒤부터다.애지중지하던 손자·손녀도 ‘할머니,할머니…’라고 울먹이며 따라갔다. 할머니는 농사짓는 것 밖에 모르던 아들에게 빚이 그렇게 많아진 게 못내 답답할 따름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농산물 개방이니,농가부채 탕감이니 하는 말은 잘 몰라.하지만 농사지으면 빚만 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늘 재롱을 피우던 손자·손녀들이 아른거리는지,할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할머니를 더 안타깝게 하는 건 연락이 뜸한 나머지 세 아들과 딸들.울산 사는 둘째 아들 내외도 지난 추석 때 잠깐 얼굴 본 게 마지막이다.구미에 사는 딸도 생활이 어려운지 좀처럼 기별이 오질 않는다.모두들 살기가 바빠 그런 줄 알지만,섭섭한 속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할머니는 아들이 넷이나 돼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해 최소한의 생계비도 지원받지 못한다.살기가 고달플 땐 면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로지정해 달라고 떼도 써 보지만 ‘그저 알았다.’고 할 뿐 별 소식이 없다.매월 교통비로 나오는 8400원과 이웃들이 틈틈이 도와주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고 있다.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도 고달프기만 하다.병마와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신경통,고혈압,위장병….병이란 병은 다 달고 다닌다.그래서 요즘엔 자신이 어찌될까봐 늘 불안하다. “이웃들 보고 매일 아침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죽었는지,살았는지 봐 달라고 하지….” 할머니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최근 들어 부쩍 자식들보다 이웃들이 소중하다고 말한다.그래도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손자·손녀와 다시 오순도순 사는 게 소원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하루빨리 농사꾼들이 잘 사는 세상이 돼 큰 아들이 돌아와 같이 사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특별취재팀
  • “金心여부 해석은 자유”김성재前장관 민주 입당

    김성재(56)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12일 민주당에 입당해 이낙연 의원과 공동으로 17대 총선기획단장을 맡았다.그래서인지 이날 입당회견은 민주당을 분당시킨 노무현 정부와 ‘차떼기’ 한나라당을 싸잡아 심판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선거전 대중연설을 방불케했다.김 전 장관은 “노 정부가 준비되지 않은 개혁으로 혼란과 갈등만 부추긴다.”면서 “서민 애환에는 무관심하고 측근들과 부부회동으로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분노마저 느꼈다.”고 말했다.이어 “더 기가 막힌 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4년을 더 갈 수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장관의 이같은 입당변에 ‘김심(金心)’이 실렸느냐가 관심이다.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고 지금도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이사장과 김대중 도서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등 최측근이다.DJ 팔순잔치 사회도 그가 했다. 김 전 장관은 DJ로부터 “소신껏 잘 하라.”는 격려를 받았다.김심 여부에도 “해석은 자유”라며부인하지 않았고 DJ 주변인물 영입과 관련 “총선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며 추진의사를 밝혔다. 한편 지역구 출마 여부에 대해 그는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점을 감안해 주기 바란다.”며 비례대표 희망을 내비쳤지만 당에선 서울 도봉이나 성북에 나서주길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경기자 olive@
  • [씨줄날줄] 용서

    미국 스탠퍼드대에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좌가 있다.강좌이름은 ‘과거경험 치유(Healing Our Past Experience)’의 머리글자를 딴 HOPE.1999년 여름 북아일랜드 30년 내전에서 부모,형제자매,애인을 잃은 남녀 십여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게 시발점이 됐다. 90분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번 6주간 계속되는데 지금은 참가자가 300명 가까이로 늘었다.분노를 삭이는 과정,상대를 용서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체계화돼 있는데 교육효과가 매우 높다고 한다.설립자인 프레드 러스킨교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용서가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다.분노를 품고 살아간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3년만에 열린 재심법정에서 당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가한 신군부를 “인간적으로 원망하지 않고 마음으로나 종교적으로 용서했다.”고 말했다.캄캄한 지하실에서 욕설과 고문을 당했고 함께 구금된 민주인사들이 바로 옆방에서 지르는 비명소리를들어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그 분노가 오죽했을까.하지만 팔순의 그는 용서하는 길을 택했다.그들을 질타하는 어떤 웅변보다도 더 값진 용서다. 용서의 전범을 보인 이로 교황을 빼놓을 수 없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성베드로광장에서 자신을 저격한 터키청년 알리 아그자를 감옥으로 찾아가 그를 용서하고 당국에 그의 사면까지 청했다.나치의 만행을 묵인한 죄,십자군전쟁으로 이교도를 탄압한 교회의 죄를 참회한 데는 용서를 구함으로써 상대의 분노를 덜어주려는 배려가 담겨있다. 반면 세밑 이승을 떠난 허주(虛舟)김윤환은 자신을 내친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키워 스스로에 해가 된 경우일 것.그가 진작 스탠퍼드대의 HOPE강좌를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물론 세상에는 쉽게 용서되지 않는 죄목도 있다.힐러리는 자서전에서 남편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부정을 털어놓을 때 “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힐러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를 용서한다는 말은 자서전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이기동 논설위원
  • DJ ‘팔순잔치’도 성황/국민의정부 실세등 대거 참석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6일 산수(傘壽·여든 살)가 됐다.저녁에는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이한동·김석수 전 국무총리가 공동주최한 생일상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감사의 말을 통해 “국민의 정부에서 성취한 것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발전에 계속 기여해 달라.”고 주문했다.이어 “평생 건강하게 살았는데 청와대에 들어가서 신장이 나빠졌다가 요새 좋아졌다”면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일생을 지키려 노력했고,대통령이 돼서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내 가족을 괴롭힌 사람 모두를 용서하고 한 사람에게도 보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퇴임한 사람은 한계가 있으며,현직 맡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고,“국내정치는 물론 개입하지 않겠지만 남북문제와 세계평화를 위해 정부가 잘 해나가도록 격려하고 분수를 갖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나갈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총리의 축사에 이어 중국 음식에 한두잔의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 도중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헌재 전재경부 장관 등 10여명이 잇따라 김 전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비는 건배를 제의했다.이 자리에는 전윤철 감사원장,이상주 전 교육부총리,정세현 통일장관,임동원 전 통일특보 등 국민의 정부 시절 각료와 청와대 수석 등을 지낸 150여명이 참석했다.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의장은 전 노사정위원장,민주당 김중권 상임고문은 전 청와대 비서실장,김영환 대변인은 전 과학기술부장관 자격으로 각각 참석했다.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심재권 비서실장을 동교동에 보내 난을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정초 1500여명의 세배객이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다녀간 데 이어 이날 잔치도 성황을 이루자 DJ가 조심스레 정치를 재개하는 것 아니냐고 관측하기도 한다.하지만 동교동측은 “김 전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일절 없을 것”이라고 못박는다.신년하례 때도 DJ는 “할 말은 많지만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거리를 뒀었다. 박정경기자 olive@
  • 최대표 DJ면담 ‘삼고초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팔순 잔치를 하루 앞둔 5일 동교동을 방문했다.DJ는 최 대표 취임 후 두 차례나 면담요청을 거절한 적이 있다.한나라당이 그간 DJ의 ‘햇볕정책’을 이적행위 등으로 규정,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것과 무관치 않은 듯했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호남민심’에 미칠 DJ의 정치적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면담이 주목됐다.하지만 주로 경제문제를 얘기하고,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 얘기만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경제가 주저앉는 데다 한·미관계도 영 과거같지 않고 북핵문제는 되는지 안 되는지 오리무중이어서 국민이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좋지 못하다.”고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은근히 부각시켰다.그러나 DJ는 “제1당이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대표가 노사문제와 관련,“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서 오면 단단히 기합 좀 부탁한다.”며 농담을 하자,DJ는 “최 대표가 그런 문제에서는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답했다. 최 대표는 또 “시일은 촉박한데,공천 문제도 바쁘고….”라며 운을 뗐다.이에 DJ는 “한나라당 지구당 경선에는 일반 국민도 포함된다는데 그러냐.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만 언급했다. 한편 DJ는 6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국민의 정부 장·차관,수석 등 200여명이 마련한 8순 잔치에 참석한다.이한동·김석수 전 총리,전윤철 감사원장,김진표 경제부총리 등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생일상을 차려주기로 했다고 한다. 전광삼기자 hisam@
  • 인생행로 바꾼 2인의 성공스토리

    올해 국내경기는 바닥을 모를 만큼 침체일로를 치달았다.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이라는 ‘오륙도’와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은 이미 옛날 얘기로 치부됐다.직장인이 38세면 명퇴 대상이라는 ‘삼팔선’이 신조어로 떠올랐고,이십대의 태반이 실직자라는 ‘이태백’도 나왔다.그러나 역경을 도전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많았다.연말을 맞아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 두고 난 다음,험난한 사회 적응기를 거쳤던 30·40대 이웃 2명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본다. ■제과점 운영 김유중씨 김유중(42)씨는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벌써 5년째다.겨울 새벽 바람을 가르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김씨가 도착한 곳은 서울 도봉구 창동의 제과점 ‘브레드 이쉬(Bread Yysh)’.언제 봐도 든든한 이름이다.네가족 이름의 영문 앞글자만을 따서 지은 간판을 보면 피로도 잊고 흐뭇해진다.제과점을 오픈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지난해 9월에는 상계역 앞에 2호점까지 냈다.직원만 8명,신선한 빵으로 인근에서는 이미 소문이자자하다. 그는 원래 빵과는 인연이 없었다.1988년 LG반도체에 입사,생산기술팀장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안정된 직장이었다.그러나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당시 현대반도체와 합병이 이뤄지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김씨는 한 가족처럼 지내온 자신의 팀원을 내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는 가슴앓이를 하다 결국 사표를 냈다.부인은 충격으로 앓아누웠지만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할 일이 없었다.전문성을 살릴 만한 재취업의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이런 그에게 둘째 형이 ‘힘들지만 해볼만한 일’이라며 제빵업을 권했다.팔순 노모는 학원비에 보태라며 쌈짓돈을 모은 100만원을 쥐어줬다.3개월 만에 제빵기술자격증을 땄지만 경험 부족으로 개업은 무리였다.그는 제과점을 전전하며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으로 경험을 쌓아나갔다.월급 60만원에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해 밤 8∼9시까지 일해야 하는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청소에서 설거지,빵판 닦기,재료 나르기 등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러나 60만원으로는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연봉 4000만원 이상 받았던 생활에 비하면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다.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위해 몰래 집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울음을 삼켰다.그 때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년 후 그는 개업을 결심했다.그러나 유명 브랜드 체인점을 열기에는 자본금이 턱없이 모자랐다.그는 대신 발로 뛰었다.사람이 많이 모이는 ‘목 좋은’ 곳을 찾아 여름 뙤약볕 아래 3개월을 헤맸다.결국 권리금도 없고 전세금도 비교적 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7월 창동에 1호점을 연 뒤 최근에는 2호점까지 냈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직접 땀흘려가며 배우면 못할 것이 없다.”면서 “내가 만든 빵만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있는 빵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포부를 다졌다. ■공인회계사 한신석씨 한신석(37)씨는 요즘 새로운 계획에 한껏 부풀어 있다.조만간 동료 회계사들과 함께 회계법인을 출범할 예정이다. 그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것은 지난 7월.‘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했지만 결국 이뤄내고야 말았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삼성그룹에 입사,신라호텔에서 직원 교육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불만이 쌓이다보니 업무에도 충실하기 어려웠다. 그는 결국 지난 97년 MBA유학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다.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곧바로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유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세번째 유산을 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던 그는 선배를 통해 보습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힘든 생활이었지만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99년 9월 태어난 첫 아이를 볼 때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0년 초 그는 공인회계사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로 책과 멀어진그에게 시험 준비는 만만찮았다.국사학과라는 대학 전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네 도서관과 독서실을 전전했지만 늦깎이 수험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학교를 가고,도서관을 가도 항상 외톨이였다.스터디 모임에 끼고 싶었지만 사전 지식이 부족해 같이 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가족이었다.아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다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첫 시험에 낙방한 뒤 2002년 1차에 합격한 데 이어 올해 7월 2차시험까지 통과했다.3년 만에 일군 성과였다. 그는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면서 “쉽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불만을 털어놓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씨줄날줄] 좌탈입망(坐脫立亡)

    중풍으로 반신불수된 채 12년 동안 안방만 지키다가 팔순에 타계한 한 친척의 영안실.비슷한 또래의 친인척 5∼6명이 대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한결같이 ‘깨끗하게,고통없이 가야 할 텐데….’라며 고인의 기나긴 투병생활이 몸서리치게 와닿는 모양이다.그래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죽음이 두렵단다.미련이 남아서 두려운 게 아니라 행여 이승을 떠나는 순간에도 자손들에게 못할 짓을 하지나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새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번뇌가 실감난다.이런 이유로 잠자듯이 떠났다는 망자의 얘기는 부러움으로 포장돼 두고두고 회자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3일 밤 입적한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이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든 좌탈입망(坐脫立亡)의 모습이 공개됐다.근자에 들어서도 경산,경봉,성철,기산,탄연 스님 등 고승들이 좌탈입망했다지만 흔치 않게 공개된 임종 모습은 범인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좌탈입망이 생전에 쌓은 법력을 증명하는 징표라지만 청담 큰 스님도 성불(成佛)에 이르는 열단계 중아홉번째 단계라고 하지 않았던가.헌 옷을 벗듯 아무 때고 육신의 허물을 벗어던질 수 있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님의 지난했던 수행보다는 육신의 허물이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을 보면 중생의 눈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스님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꼴이라 할까. 서옹 스님의 입적 모습이 공개된 날 허주(虛舟) 김윤환 전 민주국민당 대표도 세상을 떠났다.1987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만난 한 기인이 지어준 아호라고 했던가.불교와 도교가 묘하게 뒤섞인 듯한 뉘앙스가 좋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허주라고 소개했다고 한다.하지만 허주도 끝내 자신을 버리지 못했다.‘팽(烹)’당한 울분을 삭이지 못해 육신의 병이 깊어진 듯하다.어차피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것을.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떠나는 은퇴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한 조각 뜬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고 했다.뜬 구름이 무슨 욕심을 부릴 것인가.서옹 스님의 좌탈입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 차범석 선생 팔순기념작 무대에/이윤택 연출 ‘옥단어!’ 20일까지

    한국 연극계의 버팀목이 돼왔던 원로극작가 차범석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팔순을 기념하는 연극 ‘옥단어!’가 지난 13일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옥단어’(옥단아의 사투리)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전남 목포에 실존했던 인물 ‘옥단’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어릴 때부터 옥단을 가까이서 봐온 차 회장이 수년간 희곡 구상을 해온 끝에 최근 탈고했고,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연출가가 이를 팔순 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날 저녁공연이 끝난 뒤 극장 로비에선 차 회장 내외를 초청한 가운데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이 자리에는 원로배우 김길호·백성희,극작가 윤대성,극단 신시의 박명성 대표 등 연극계 원로와 중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팔순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작혼을 불태우는 ‘현역 대선배’에게 아낌없는 존경의 예를 표했다. 차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보잘 것 없는 작가에 비해 연출가의 실력이 뛰어나 작품이 잘 나온 것 같다.”며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이어 “요즘 연극계 불황의 근원은 좋은 작가가 없다는 것”이라며 “‘척하는’ 작품이 아닌,쉽게 읽히는 작품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차 선생님이 원고지에 쓴 원본을 제게 주시고,당신은 복사본을 갖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밀양에서 연습하는 동안 차 선생님이 직접 그곳까지 내려와 일일이 지도하시는 바람에 나이 50을 넘어서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연극 ‘옥단어’는 배운 것 없고,가진 것 없고,정신마저 온전치 않지만 타고난 낙천성과 흥으로 만인의 벗이었던 옥단의 파란만장한 생을,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이윤택 특유의 공연양식으로 풀어내 많은 갈채를 받았다. 특히 옥단역의 남미정은 온몸을 던지는 혼신의 연기로 극의 맛을 더했다.목포 사투리를 위해 한달 가까이 현지에서 지냈고,그것도 모자라 아예 목포에서 활동하는 배우 한 명을 데려오는 정성을 쏟았다. ‘목포의 눈물’을 비롯한 흘러간 노래가 구성지게 흐르는 장면에선 자연스레 객석에서 박수 장단이 나와흥을 돋웠다. 원로 여배우 백성희는 “차 선생의 작품에 여러번 출연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연극은 처음”이라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부르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공연은 20일까지.(02)763-1268. 이순녀기자
  • 故 석동 윤석중 옹의 삶/아이들과 한평생 ‘아흔두살 어린이’

    9일 타계한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 선생은 풍요로운 우리말 표현을 담은 아름다운 동시와 동화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였다.선생의 작품은 어느틈엔가 사라져버린 전래동요의 빈 자리를 메우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새로운 ‘국민동요’였다. 선생은 13세 때인 1924년 동시 ‘봄’을 ‘소년’지에 발표하여 등단한 이후 80년 가까이 어린이 문학운동에 몸을 바쳤다.방정환·윤극영 등과 일제강점기 문화적 암흑상황을 아동문학으로 극복하려 노력한 주역이기도 하다.남의 책에 서문을 안 써주기로 유명했던 춘원 이광수도 그의 동요집에는 주저없이 글을 실었다고 한다. 1941년 일본 상지대를 졸업한 선생은 해방을 맞은 1945년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여 본격적인 어린이 문학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한국전쟁을 거치며 동요가 사라질 위기가 닥치자 어린이 노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쳤다. 그의 동시는 한국적 정서에 충실하면서도 서양식 동요의 운율에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그가 남긴 1000여편의 동시 가운데 무려 80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낮에 나온 반달’은 대표적인 사례이다.리듬감 있는 그의 동시는 우리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퐁당퐁당)와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집 보는 아이),‘기차길 옆 오막살이/아기 아기 잘도 잔다…’(기차길 옆 오막살이)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밖에 ‘날아라 새들아…’(어린이날 노래)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졸업식 노래)는 한국사람이라면 노래를 들으며 한번쯤 환희를 맛보거나 눈물을 흘렸을 명곡들이다. 그는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필치로 동화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열손가락 이야기’ ‘멍청이 명철이’ ‘열두 대문’ 등 동화집은 그 결실이었다. 선생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3·1 문화상(1961)과 국민문화훈장(1966),‘외솔상(1973),막사이사이상(1978),대한민국문학상(1982),세종문화상(1983),대한민국 예술원상(1989),인촌상(1992) 등을 수상했다.팔순을 맞아 동요집 ‘여든 살 먹은 아이’를 출간하기도 한 선생의 노작(勞作)은 ‘새싹의 벗 윤석중 전집’에 대부분 실렸다. 황수정기자 sjh@
  • [길섶에서] 편지

    책꽂이 한 모퉁이에는 생일 때마다 아들 두 녀석이 보낸 편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년에 한차례씩 보낸 편지들이다.한결같이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착한 아들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내용들이다.그리고 두 녀석은 한번도 빠짐없이 편지 끝에는 커다란 ♡ 표시와 함께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로 맺는다. 읽고 또 읽어도 싫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가 보다.그러고 보니 군에서 편지를 보낸 이후 나는 한번도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지 않은 것 같다.1∼2주에 한번 전화하는 것이 고작이다.습관적으로 안부를 묻곤 끊는다.그러나 정작 전화를 받는 순간 팔순에 가까운 부모님이 심하게 앓고 계셨다는 사실은 훨씬 후에야 듣는다.객지에 있는 아들이 걱정할까봐 알리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아들 녀석이 올해 아빠 생일선물을 무얼로 할까 하고 묻는다.“당연히 편지를 보내야지.”하면서도 내심 불편하다.내가 아비로서 누리는 행복을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하는 탓이리라. 우득정 논설위원
  • [박진환의 덩크슛] ‘KBL 패밀리’

    농구계에는 아름다운 전통 하나가 있다.한국농구인동우회(회장 강병건)에서 해마다 팔순,칠순,육순을 맞은 농구원로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를 베푸는 것.올해도 오는 17일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팔순을 맞은 유재진 장갑진 문석기씨를 비롯해 김종만(칠순) 이인표 하의건 이병국 김재웅 정봉섭 김승규 장창환 김황시 정진봉 김영순 정종화(이상 육순)씨 등이 합동으로 잔칫상을 받는다. 이들은 젊은 시절 운동을 한 탓인지 여전히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특히 장갑진씨는 지금도 서울대 농구부를 맡아 현역 최고령 코치로 노익장을 뽐낸다.장씨는 1970년대초부터 30여년간 서울대 농구부를 지도해 지난달에는 학교측으로부터 ‘관악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이인표 한국농구연맹(KBL) 경기위원장,정봉섭 중앙대 체육부장(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 김황시 대한농구협회 경기이사 등은 여전히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하의건 김재웅 정진봉씨 등도 KBL 경기기술위원으로 맹활약중이다. 출범 8년째를 맞는 프로농구에도 최근 ‘KBL패밀리’가 조직돼 그동안 한솥밥을 먹은 식구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KBL패밀리’는 프로농구 출신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KBL 임직원,각 구단 프런트,경기 관계자 등이 현직을 떠난 이후에도 친목을 도모하고 프로농구 발전에 한몫을 거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백남정 전 KBL 심판위원장을 초대 회장에,최상철 전 기아농구단장을 부회장에 각각 선임하고,윤세영 전 KBL 총재를 고문으로 위촉하는 등 회장단 구성에 이어 회원 모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백남정 회장은 “현역시절의 노하우를 살려 프로농구 활성화의 조언자가 되겠다.”고 모임의 방향을 제시했다. ‘KBL패밀리’는 각 구단의 협조를 얻어 회원들에게 프로농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ID카드를 발급하고,동반하는 가족들에겐 입장료의 50%를 할인해주는 혜택 등을 제공해 참여의 열기를 높일 방침이다. 모쪼록 ‘KBL패밀리’가 프로농구 발전을 위한 ‘건전한 압력단체’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월간 ‘점프볼’ 편집인 pjwk@jumpball.co.kr
  • [길섶에서] 휴대전화 상봉

    “누님,나 선정(가명)이라요.잘 들리세요.” “그래 선정이라고.들려 들리고 말고….” “누님,이게 몇년 만이라요.말씀 좀 해보시라요.울지만 말고….” “…” “다음 이산가족상봉 행사때 누님을 만나겠다고 신청할 테니,그리 아시라요.부디 건강하시라요.” 팔순을 훌쩍 넘긴 한 실향민이 얼마전 ‘휴대전화 이산상봉’을 했다.자초지종은 이렇다.그이는 해방과 더불어 중국 연변과 북한으로 갈라진 형제들의 근황을 최근 어렵게 알아냈다.곧 중국으로 가 북한에 있는 누나에게 연락을 취했고,중국 거주 조카들이 친지 상봉 비자를 받아 휴대전화를 가슴에 품고 북한의 국경도시로 건너갔다.조금 뒤 벨이 울렸고,중국 땅에서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이 실향민은 50여년 만에 누나와 감격의 전화상봉을 했다. 민간 차원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교환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7∼9월에 생사확인 101건,서신교환 262건,상봉 78건 등 모두 441건의 이산상봉이 중국 등지에서 이뤄졌다.특히 첨단 통신기기인 휴대전화가 남과 북의 벽을 허무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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