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팔레스타인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알츠하이머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금융위기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타이거 우즈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92
  • 이, 요르단·埃 연쇄 정상회담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 오는 11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3국 정상회담에 앞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와 연쇄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바라크 총리가 8일 압둘라 2세의 초청으로 요르단을 방문,암만에서 회담을 갖고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에서 제시할 이스라엘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라크 총리는 또 10일 미국으로 가는 길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잠시 들러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도 만날 예정이다. 한편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바라크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분쟁 종식을 선언하는 공동성명서에 서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을 또 바라크 총리가 이스라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에 추가적인 군사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예루살렘 AFP DPA 외신종합
  • 美 중동평화 ‘마지막 도박’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22년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역사적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던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중동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쪽 모두 11일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거듭된 협상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고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또 레임덕에 빠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절반의 성공 가능성만 보고 마련된 이번회담은 클린턴 대통령의 ‘도박’에 비유될 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배경] 중동평화협상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기 때문이다.지난달말 중동지역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3국 정상회담 개최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그러나 1주일 사이에 사태가 급박하게돌아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2일 평화협상 타결 여부와 관계없이 최종협상 타결시한인 9월13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독립선언을 강행할 경우 요르단강 서안을 합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사로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임기를 일곱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자신의 외교치적으로 남기고 싶어한다.그러나 최근까지 계속됐던 바라크,아라파트와의개별회담을 통해 양쪽의 팽팽한 이견만 재확인하고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그는 “회동을 미루거나 교착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수 없다”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망]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평화협정이 타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클린턴이 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자치정부의 연장과 국경문제에 관한 클린턴 대통령의 절충안에 합의하는 정도로 그칠 것으로 본다.동예루살렘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등은 장기과제로 남겨놓을 가능성이 높다.바라크와 아라파트 모두 내부 반발로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않은 것도 협상에 암운을 드리운다.3국 중동정상회담 발표직후 이스라엘의연정 파트너들이 연정탈퇴를 선언했고 러시아 이민 출신의 나탄 샤란스키 이민자정당 당수는 내무장관직을 사퇴했다.이민자정당과 민족종교당의 연정탈퇴로 바라크 정부는 의회에서 과반에 미달,연정와해 위기에 몰렸다.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관계자들도 성공하지 못할 회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평화협상에 합의해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라크 총리나 아라파트 수반 모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하지만 회담이 실패하면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정만 악화돼 중동평화는 요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온다.이번 회담에서 합의점 도출에실패,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1월 미 대선과 2월 취임 사이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을 취하며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어그러진 중동문제를 다시 수습하는 짐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이·팔 정상회담 11일 워싱턴서 개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정상회담이 오는 11일 워싱턴 근교에 있는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미 행정부 관리들이 5일 말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와 관련,이날 오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정상회담추진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평화 문제와 관련,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3자 회담 개최를 당사자들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회담 제안을받아들였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 외신종합
  • PLO “9월13일 독립선포”

    [가자시티 AFP AP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협상 시한인 오는 9월13일 이스라엘과의 협정 체결 여부에 관계없이 독립을 선포키로 했다. 이에 대해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독립을선포할 경우 요르단강서안 지역의 합병 등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응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국도 일방적인 독립 선포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PLO는 2,3일 이틀간에 걸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열고 독립선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토의했다.
  • 철학박사 탁석산씨 ‘한국의 주체성’

    핵 무장,한글 전용,국가 기반시설 보호,공기업 민영화 반대,환경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론,우리의 시각으로 세계 보기…. 철학박사 탁석산씨는 ‘한국의 정체성’에 이어 펴낸 ‘한국의 주체성’(책세상)에서 우리가 현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책으로 약소국이면서 주체성을 지키는 길을 꼽고,그러기 위해서는 이같은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대담한주장을 편다. 우선 정신 뿐 아니라 물리적 힘도 갖춰야 한다며 핵 무장을 촉구한다.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영어 공용화론에 반대하는 대신 교사들의 해외연수를 제안한다. 한글 전용과 함께 사전을 주체적으로 편찬해야 한다고 외친다.예를 들어 ‘이성’을 理性과 異性,異姓 등 한자별 3개 표제어로 사전에 싣지 말고 한글만을 기준으로 삼아 한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로 적자는 얘기다.영어의 air와 heir는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동음이의어지만 air 자체만도 9가지 뜻을갖고 있다는 것. 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면 안중근의사도 테러리스트냐며 미국등 강대국 위주의 시각이 아닌우리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값 3,900원. 김주혁기자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하)가자지구

    [가자지구 남정호특파원]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관문인 에레츠검문소는 ‘국경’ 통제가 삼엄하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의 황색 번호판을 단 차량들을 검문소 옆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세워두고 이스라엘측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증명서를 교부받아야 한다.출국증명서를 다시 이스라엘군 검문소에 제시,통과 허락을 받고 300m쯤 되는 중간지대를 걸어가면 팔레스타인 깃발이 날리는 팔레스타인 입국관리사무소가나타난다. 이곳에서 입국사증을 발부받은 후 다시 경찰 검문소를 통과하면 팔레스타인인 택시기사들이 몰려 있는 정류장에 닿는다.외지인이 나타나면 10여명의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어 서로 손님을 차지하려고 아수라장을 연출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과 데릴라의 도시.2,000년 전부터 이집트와 시리아간의 교역통로로 그리스인,로마인,아랍인,터키인,영국인,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들의 발자취가 어지럽던 고장이다.1994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된 가자지구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정부청사들과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집무실,관저가 있다. 가자지구엔 1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이 가운데 약40만명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역 등지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다.가자지구에서 에레츠 검문소를 통과,매일 이스라엘 땅으로 노동을 하러 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때 8만명이 넘을때도 있었으나 95년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측의 통제로 하루 평균 2만5,000명선으로 숫자가 격감했다.이들은 가자지구 경제의 기둥같은 존재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가자지역의 생활상.“가자지구에는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가난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듯,그들의 분노는 격렬한 데모로 나타나곤 한다. 가자시내 중심부에 있는 재학생 1만6,000명의 알 아자르 대학교 교정에서만난 정치학 전공의 알와디 살나(23)군은 기자에게 “학교 앞 단식농성장에가보자”고 했다.섭씨 32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텐트 안에는 84명이 이스라엘군에 체포돼 구속당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석방을 호소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농성자들의 가족과 친지들 100여명이 웅성거리는 속에서 대학생들은 “우리는 꼭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고 엄지손가락을 펴며 고함을 질러댔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천연의 관광도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호텔 시설의 태부족과 출입의 부자유 때문에 관광객 대량유치가 쉽지 않다.현재 해안에는 팔레스타인 호텔,아담,크립,비치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이미 세워져 있고 미국계 자본으로 로얄가자,초이스,원맨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현재건축중이다. 가자지역 안에는 현재 유태인 정착촌이 20여개 형성돼 약 4,000여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구쉬 카티프라는 가자시 남쪽 지역에 주로 조성돼 있는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선포되는데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가자지역 안의 행정과 경찰 업무 등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장하고 있지만 국경통제와 국방 등 안보 문제는 이스라엘측이 장악하고 있다.가자지구를 출입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출입허가를 얻어야 한다.같은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 일부나 예루살렘 방문시에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감옥속에 있는 신세와 같다”는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전직교사 출신이라는 한 팔레스타인 노인의 말은 전체 가자주민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의 산실인 이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지,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창설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중)분단 현장 골란고원

    [메달샴즈(골란고원) 남정호특파원]이스라엘 북부 골란고원 최북단 정착촌메달샴즈 마을 뒤 시리아쪽 접경지역에 ‘절규(絶叫)의 계곡’이 자리잡고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 키프르 전쟁’ 때 헤어진가족과 친척들이 이 계곡에 모여 철책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수동 마이크를통해 절규하듯 서로 안부를 묻는 계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랍어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을 지닌 메달샴즈 마을은 인구 6,500여명의 골란고원 지대 최대의 두르즈인 마을.이슬람 교도들과 같이 알라신을믿는 종파지만 언어도 땅도 없는 종족으로 골란고원 일대와 시리아,레바논일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다.비록 이스라엘 군대에 점령돼 있지만 두르즈인들은 아직도 친시리아적이며 이스라엘에 대단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메달샴즈에서 태어나 자란 후 현재 시내 중심가에서 환전가게를 운영하고있는 알람 슈피(55)씨는 자신도 금요일이 되면 시리아쪽에 살고 있는 친척을만나기 위해 절규의 계곡을 찾는다고 했다.그는 “메달샴즈는 전쟁이 가져온분단 비극의 관광무대가 되었다.금요일이 되면 이산가족들의 절규 속 상봉을 구경하려고 관광버스들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남북 길이 70㎞,동서 폭 25㎞에 넓이 450㎢에 달하는 골란고원은 1967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고 1973년 전쟁 때점령지가 더 확대됐다.골란고원 일대는 드문드문 정착촌과 키부츠 마을만이눈에 띌 뿐 두차례의 전쟁으로 옛 시리아 마을들은 철저히 파괴되고 건물들에는 지금도 총탄 흔적이 벌집처럼 남아 있다.‘욤 키프르 전쟁’때 1,500대의 시리아 탱크 가운데 1,200대가 1주일 사이에 파괴된 곳이다.지금도 부서진 탱크의 잔해가 도처에 남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말해주고 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측에 전략적 요충지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땅.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군대는 골란고원 일대를 전격적으로점령해 버렸다.그러다 73년 시리아군이 영토 탈환을 위해 침공해오자 이스라엘군은 다마스커스를 향해 진격,골란고원 일대를 다시 손아귀에 넣어버렸다. 그 뒤 이지역에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정착촌들을 넓히며 81년 이스라엘영토로 병합,오늘에 이르고 있다. 골란고원은 현재 이스라엘과 시라아와의 사이에 UN 평화유지군이 관장하는완충지대가 형성돼 UN군이 순찰을 하고 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집권하면서 시라아와 평화협상을 추진하다 현재 봉착 상태에 빠져 있으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마무리되면 골란고원의 운명은 다음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예정.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시리아측이 주장하는 골란고원의 완전반환을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입장이다.이스라엘 정부와 의회내 강경파들은 전략요충지인 골란고원을 반환할 경우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을 들어 반환에 반대하고 있다. 이 구약과 신약성서의 발자취가 널려 있는 골란고원 일대는 점차 관광지로각광받고 있다.특히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과 키부츠에서 재배하는 과일과포도주는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다.중부 골란고원의 베론 골란 촌락에 거주했었다는 모데사이 모르템(55)씨는 “요즘 골란고원 지역에 관광객 버스들이부쩍 늘어났다”면서 훌라계곡 쪽을 손으로 가르켰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땅,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한치도 양보하기 어려운골란고원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의 이목이 항시 이곳에 쏠리는 이유는 이 지대가 중동지역의 화약고로 언제 어느 때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聯政 와해되나

    정통 유대교 정당인 샤스당이 20일 연정 탈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에후드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의 연정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120석의 크네세트 의석가운데 68석을 차지하고 있는 연정에서 17석의 샤스당이 빠지면 바라크 정권은 소수정부로 전락하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도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없다. 샤스당의 탈퇴는 사퇴서 제출 후 48시간이 지나야 효력을 발휘한다.따라서바라크 총리가 22일 오후 8시53분(한국시간) 전까지 샤스당과 타협,탈퇴 의사를 철회시킨다면 연정은 유지될 수 있다.실제로 샤스당은 전에도 여러차례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가 이를 백지화한 바 있다. 샤스당이 연정 탈퇴를 결심한 것은 그들이 운영하는 방송국의 자금난에 대한 지원 부족과 종교학교 운영을 둘러싼 마찰 때문.바라크의 양보 여부에 따라 연정 유지가 판가름나게 된다. 팔레스타인과의 항구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내걸고 총리에 당선된 바라크로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 연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할 형편이다.국내 지지기반이 흔들리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의 정상회담 등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팔레스타인측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바라크가 국내정치불안을 이유로 평화협상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일부에서는 더이상 협상을 지체시키는 것은 자존심 문제라며 협상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으로서도 바라크가 물러날 경우 평화협상이 완전히 무산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바라크만큼 적극적인 인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제까지이뤄온 협상의 성과를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바라크로서는 결국 양보를 통해 샤스당과의 연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선택인 것으로 보인다.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체결도 당장은 어렵지만 설사 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이를 국내에서 승인받으려면 소수정부로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유세진기자 yujin@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 (상)레바논 접경 이스라엘 표정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유혈사태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중동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까지 배출해냈지만 평화는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겉돌고있다.레바논주둔 이스라엘군이 22년만에 전격 철수하던 지난달 말 본사 남정호 프랑크푸르트 특파원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 등지를 찾았다.중동분쟁의 배경과 쟁점,남특파원의 현지 르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메툴라(이스라엘) 남정호특파원] 예루살렘에서 90번 국도를 따라 레바논과접경한 이스라엘 최북단 마을 메툴라로 북상하던 지난달 20일 하늘엔 짙은먹구름이 깔려 있었다.곧 닥칠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지역 철군 후 다가올 북부 이스라엘 변경지역의 불안한 장래를 하늘마저 걱정하는 듯했다. 국경선 너머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해지던 헤즈볼라 게릴라들의 카추샤 포격과 총성은 사라졌다.그러나 접경지대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안감은도처에서 느껴졌다.메툴라와 인근 휴양마을인 키리야트 쉬모나의 중간지역키부츠 등지에는 새로운 ‘임시 난민촌’이 형성돼 혼잡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레바논 남부지역 민병대원 2,500여명과 그들의 일부 가족 등 6,000여명이이스라엘군의 철군 소식에 서둘러 도망쳐 나온 것이다.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에 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중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으며 남은 사람들도 떠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이스라엘군의 급작스런 철군으로 어느날 갑자기 헤즈볼라 게릴라들과 철조망을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게 됨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주민들의 마음을억누르기 때문이다. 키리야트 쉬모나에서 휴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예후다 샤비트씨(45)는 “이제는 이 마을이 관광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좀더 안전한 남쪽지방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부 유럽 지역에서 고국으로 이주해온 부모를 따라 이스라엘땅에 돌아와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왔다는 메툴라 주민 에풀라 추로프씨는 “이제 새삼스레 접적(接敵)지역에 살게 됐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밝혔다.30년 이상을 살아온 메툴라는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처럼장래에 대해 두려움을 내비치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지역 철군이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쇼크를 주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메툴라나 키리야트 쉬모나 등 레바논 접경지대 주민들이 고향이나다름없는 정든 마을을 떠나려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지난 22년간 끊임없이무장공격을 감행해온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중동지역 최강인 이스라엘 군을레바논 영토에서 쫓아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마당에 언제 또다시 공격을감행해 올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24일 전격적으로 실시된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으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메툴라는 인구 350여명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접경 최북단 정착(定着)촌이자 관광 휴양촌.레바논과 접경된 ‘굿 펜스’라는 검문소에 레바논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있어 오랜 세월 관광객들이몰려들던 명소였고 남부지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끓어 관광수입이 짭짤했던 부촌이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군당국이 신변 안전을 위해 이지역 출입을 통제할 방침이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을경제가 더욱 타격을받게 됐다. 지중해 연안의 레바논 접경지역 최북단 마을이자 관광 명소인 로쉬 하니크라와 모래사장,수영장으로 유명한 나하리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인근의 악지브 국립공원과 함께 로쉬 하니크라 해상 동굴은 연간 수만명의 관광객들을끌어모아왔던 관광명소.그러나 이제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게 된 마당이라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지중해와 접해있는 로쉬 하니크라에서 레바논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의 899번 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의 키리야트 쉬모나로 향하던 중간중간에 들러본쉐툴라와 나투라라는 변경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지역 철군 이후 주민들의 불안감은 어느때보다 고조돼 있었다. 오랜 준비후에 이뤄진 철군이었지만 미국의 ‘사이공 철수’를 연상시켰던 ‘패주(敗走)’의 인상이 이스라엘 국민들 가슴에 깊이 심어졌다. 또 헤즈볼라 게릴라들에게 ‘짓밟힌 듯한’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따라서 레바논 남부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의 철군과 맞바꾼 국경지대의 평화가 어떻게 이 지역 에서 정착되느냐는 세계가 지켜보는 ‘도박’이 됐다. jhn@. *이·팔 분쟁…50년간 전면전만 4차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팔레스타인.하지만 이곳은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로서 젖과 꿀 대신 피로 물든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반목은 과거 2,000년 동안 쌓인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됐다.이 기간동안 유대인과 아랍인은 4차례의 전면전과 수천번에 달하는 교전을 하면서 최근 50년래 1만5,000여명이 죽고 3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만 갔다. ■분쟁의 배경/ 유대인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팔레스타인에 정착,나라를 세웠으나 기원전 100년경 로마제국의 박해를받자 대부분 국외로 이주했다.그뒤부터 19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그러나 나라없는 설움이 뼈에 사무쳤던 유대인은 19세기 말 반유대주의가대두되자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1917년 11월유대인의 국가건설을 지지하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그로부터 30년 뒤인 1948년 5월14일 유대인은벤 구리온을 초대 총리로 내세워 감격적인 독립선언과 함께 2,000년 동안의방랑생활을 끝내게 된다.반면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수난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국가 선포 다음날부터 시작된 1차 중동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주변 아랍국과 전면전을 치러야 했으나 모두 이겨 당초보다 국토를 4배나 넓히는 성과를 얻었다.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1차 중동전쟁때 발생한 난민을 포함,모두 35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국가에서 떠돌이 신세로 지내야하는 등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평화의 싹 /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되풀이되던팔레스타인에 평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93년 9월13일 양측이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면서부터.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에 힘입어 이듬해 7월1일 자치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96년 1월에는 아라파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이스라엘은 또 98년 11월 요르단강 서안내주둔군 일부를 철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유혈사태/ 이스라엘과 PLO는 평화정착의 노력이 진전을 보일 때마다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94년 2월 군복입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무차별 난사,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96년 3월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의 폭탄테러,99년1월 헤브론 총격전 등이 모두 평화의 악수를 나눈 직후에 나온 유혈사태였다. ■향후 전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지난 13일 평화협상을재개했으나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다 14일에는급기야 협상을 일시 중단했다.또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10일갑자기 사망,중동의 중심축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시리아로넘어가 팔레스타인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지난해 5월 당선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차기이스라엘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평화정착에의 의지가강해 향후 전망은 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중동분쟁 일지.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 5월15일 1차 중동전쟁. ■1956년 10월 2차 중동전쟁.이스라엘,시나이반도 점령.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골란고원·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예루살렘 점령.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 ■1978년 9월 이집트-이스라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1982년 4월 이스라엘,시나이반도 이집트에 반환.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봉기) 시작. ■1993년 9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양측상호 승인. ■1994년 5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 팔레스타인경찰에 이양. ■1995년 11월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1996년 1월 아라파트 PLO의장,초대 대통령 당선. ■1998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와이리버 평화협정 체결. ■1998년 11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내 주둔군 일부 철군. ■1999년 5월 에후드 바라크,이스라엘 총리로 당선. ■1999년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재개. ■2000년 1월 이스라엘-시리아 골란고원 반환 관련 평화협상 재개. ■〃 5월24일 이스라엘,남부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
  • 이·팔 워싱턴서 협상 재개

    [워싱턴 AP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 최종 시한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측은 13일 워싱턴의 공군기지 2곳에서 미국의 후원 아래 협상을 재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자들은 첫날 협상에서 성과가 있었는지 여부와 상호간에 오고간 이야기들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9월의 협상 시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록하트 대변인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협상 대표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시간이 없으며 우리는 지금 평화 절차의 결정적 순간에 도달해 있다”고지적하고 “모든 협상 참가자들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견을 좁히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4일 미국에 도착해 다음날빌 클린턴 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을 만날 예정이다.
  • 남북 정상회담/ ‘태평양 무역개발회의’ 세미나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하루빨리 구성해 남북관계를 체계화시키고 남북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북한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다자간 국제협력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만(李相萬) 중앙대교수는 13일 배포한 ‘제26차 태평양 무역개발회의(PAFTAD,13∼16일·서울교육문화회관)’의 주제발표문 ‘정상회담 이후 경제협력을 위한 정책방향’에서 “남북공동경제위원회가 조속히 구성돼 남북관계를 체계화시켜야 한다”며 “정경분리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정치·군사적 불안으로 경제협력이 위축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회담은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와 함께 북한이 세계 경제질서로 원활히 편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특히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돼 미국,일본 등으로부터 투자유입이 증가할 것으로기대된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장형수(張亨壽)연구위원은 주제발표문 ‘북한경제재건을 위한 국제협력방안’에서 “북한의 경제재건자금 조달은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이나 무상에 가까운 양허성 자금 조달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북한 외채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장위원은 이와 관련,최근 KIEP가 발간한 세계경제 5월호에서도 같은 주제의보고서에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기 전이라도 신탁기금을 활용하거나 특별신탁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기구에 맡겨놓은 신탁기금을 기금예탁국의 동의를 받아 기술지원에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신탁기금이 조성됐던 것처럼 ‘북한 특별신탁기금’을 만들어 국제사회가 북한 지원에 나설수 있다는 얘기다. 장위원은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고 나면 국제통화기금(IMF)의 빈곤감소 및 성장지원제도(PRGF)자금,세계은행의 국제개발협회(IDA)자금,아시아개발은행(ADB)의 아시아개발기금(ADF) 등에서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현기자 jhpark@
  • 아사드 별세 이후의 중동 전망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망은 중동평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전문가들은 일단 단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보고 있다. 30여년간 이스라엘이 익숙하게 상대해온 중동 맹주가 급작스레 사라짐에 따라 평화협상의 장래에는 불확실성이 가중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누구보다 노련한 이스라엘 통으로 평화협상 타결에 강렬한의지를 불태워온 인물. 그는 평화의제를 둘러싼 이스라엘과의 담판에서 번번이 강경론과 유화책을 적절히 구사하는 탁월한 협상력을 보여줘 레바논은 물론,전체 아랍권으로부터 존경받아왔다.그의 사망은 이같은 강력한 리더십의진공상태를 의미한다. 누가 집권하든 대 이스라엘 협상에서 아사드만한 정치력을 보여주기는 당분간 불가능할 전망이다.때문에 상당기간 중동평화협상은 답보상태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아사드는 최근 골란고원 문제와 관련,이의 전면반환을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그의 후계자가 갑작스레 대 이스라엘 유화론으로 선회하기란 어려울수밖에 없다.아사드가 후계자로 찍은 아들 바샤르는 시리아 정가에서의 취약한 영향력을 군부와 국민지지로 메워나가야 하는 상황이므로 이스라엘에 대해 상당기간 비타협적인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이와 관련,미국의 중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중동평화협상 재개일정의 차질을 우려하고 나섰다.탤코트 실리 전 시리아주재 미국 대사는 “아사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내부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지도자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은 심각한 타격”이라고 말했다.리처드 머피 전국무부 근동담당 차관보도 권력공백 등으로 인해 시리아가 상당기간 혼란에빠져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아사드의 사망이 평화협상의 기조를 뒤흔들 수는 없을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요르단 후세인 국왕의 사망을 기점으로 몰아닥친 세대교체 바람을 평화협상에 플러스 요인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상대적으로 이스라엘과의 분쟁 역사에서 자유롭고 서구친화적인 인물들로 중동의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대이스라엘 접근도 보다 유연성을 띌수 있으리라고보이기 때문이다.이스라엘 측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의 사망 이후 양국간 평화협상이 수개월 연기되더라도 시리아에 새로운 지도체제가 확립되면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아사드 대통령 재임 주요 연표. ◆70년 11.13 국방장관이던 아사드,쿠데타로 집권. ◆71년 3.12 아사드 대통령 취임. ◆73년 10.6 67년 이스라엘에 빼앗긴 영토 회복 위해 시리아가 시나이 반도 및 골란고원 기습공격.11월 11일 휴전. ◆74년 6.15 리처드 닉슨 미국대통령 시리아 방문.67년 단절된 양국 외교관계 회복 선언. ◆76년 4.12 레바논 사태 개입. ◆77년 12.5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으로 시리아-이집트 외교관계 단절.양국관계 12년 후 회복. ◆80년 10.10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시리아의 이란 지지로 시리아-이라크국교단절.82년 4월 이라크 국경 폐쇄. ◆81년 12.14 이스라엘,점령지 골란고원 점령. ◆83년 6.24 시리아,아사드와 불화빚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추방. ◆2000년 5.24 이스라엘,남부레바논서 철수. *아사드 별세 이모저모. [예루살렘·카이로·워싱턴·베이징 외신종합] 레바논과 요르단,이란 등 아랍국가들은 10일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일제히 애도성명을 내는 등 대대적으로 애도했다.또 미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아사드 대통령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그의 중동평화 노력을 치하했다. ◆에밀레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은 애도 전문을 통해 아사드 대통령이 자신과 전화통화를 하던 도중 사망했다면서 “그의 죽음은 레바논에 ‘엄청난 재난’”이라고 애도.레바논은 이날 1주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의 TV와 라디오방송들도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아사드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보도.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성명에서 “시리아 국민들의 슬픔을 이해한다”면서 “우리는 시리아와 평화협정을 이룩하기 위해 애써왔으며 새 지도부가 누구든 같은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강조. ◆외국 국가원수로는 마지막으로 지난 21일 아사드 대통령을 면담한 압둘라요르단 국왕 역시 아사드 대통령의 후계자인 바샤르 아사드에게 전화를 걸어위로의 뜻을 전하고 40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이 중동의 평화를 보지 못하고 숨졌지만 중동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과 낙관적 전망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것”이라며 애도.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와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아사드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모리 총리는 “시리아 국민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시리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를 희망한다”고 애도. 장주석은 “그의 죽음은 시리아의 큰 손실이며 중국으로서도 존경할만한 친구를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 ◆한편 미국의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사설에서 아사드 대통령을 전혀덕(德)을 갖추지 못한 무자비한 전제군주였다고 힐난해 눈길.이 신문은 “아사드 대통령은 비타협주의적 태도로 이스라엘을 적대했으며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등 대개는 부정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혹평.
  • 포커스 투데이/ 이스라엘 차기 대통령 유력 페레스

    에제르 와이즈만 이스라엘 대통령의 조기 사임 발표에 따라 오는 7월26일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인 노동당 후보로 선출된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전 총리의 당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페레스 전 총리가 의원 53명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야당인 리쿠르당의 후보로 나설 모쉬 카트사브 의원(전 관광장관)은 38명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후드 바라크 총리도 “페레스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 “그가당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1923년 폴란드 태생인 페레스 전 총리는 이츠하크 라빈 총리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맡으면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회담을 주도,93년 역사적인 오슬로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그 공로로 이듬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라빈 총리 등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95년 라빈 총리 암살 이후 출범한 노동당과 리쿠드당의 연정에서 총리로 취임했으나 이듬해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전 총리의 리쿠드당에게 패한데 이어 에후드 바라크 현 총리와의 당권경쟁에서도 밀려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차기 이스라엘 대통령은 7월26일 120명 이스라엘 의원의 비밀투표를 통해선출되며 8월2일에 취임한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이스라엘 철군…분쟁 불씨는 여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에서 전격 철수함에 따라 이같은 사태진전이 중동평화의 큰 협상틀을 어떤 방향으로 몰고갈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이스라엘측은 24일 22년간 점령해온 남부 레바논에서 일정표보다 이른 완전철수를 완료했다고 발표,중동평화의 변수 하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같은 철군이 중동전체 분쟁의 마침표로까지 이어질수 있을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현재 중동평화협상의 궁극 당사자인 시리아 입김에 좌우되는 레바논 입지는 물론,레바논 내부적으로도 무수한 분열의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 1978년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 명목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점령은 이스라엘 정부에 줄곧 부담으로 작용해왔다.대외적으로는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의 상환압력을,내부적으로는 안전지대에서의 인명손실 등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반대여론에 직면해야 했다.이스라엘군 통계에 따르면 78년레바논 침공이후 900여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안전지대에서만 250명이 전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안전지대를 떠안아 온 것은 철군에 따른 국경불안 등 안보문제 외에도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 입김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43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레바논은 종교가 기독교,이슬람교 등 17개교에 이르러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해왔다.76년 이같은 분열상이 본격 내전으로 표출된뒤 이의 중재를 명목으로 들어온 시리아군은 베이루트 등 레바논 전역 군사기지에 눌러앉아 사실상의 섭정을 폈다. 시리아가 회교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전격 지원하자 레바논 기독교도들은 남부레바논군(SLA)으로 결집했다.안전지대를 둘러싼 헤즈볼라와 SLA간 충돌은 결국 레바논 민중들이 둘로 나뉘어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위한 대리전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다. 네타냐후 전 총리 이래 강·온파 정권들이입을 모아 천명하면서도 결단 내리지 못했던 남부 레바논 철군의 전격 단행역시 이같은 시리아와의 역학관계속에서 요인을 찾아야 할 것으로 풀이되고있다.에후드 바라크 총리 정부가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시리아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일이 아닐수 없다는 것이다.바라크 정부는 그간 골란고원의 조건부 반환을 통해 시리아와 평화협정을 체결한뒤 시리아,팔레스타인,레바논을 포함한 아랍진영과 포괄적 평화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추진해왔으나 골란고원의 무조건 반환이 전제돼야 한다는 시리아 및 내부 강경파 반발에 부딛쳐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레바논 철군 카드가 이같은 이스라엘 목표달성에 순방향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완충지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스라엘 북부지역이 헤즈볼라에 강타당할 경우 이것이 곧바로 시리아-이스라엘간 감정싸움으로 이어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개연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군이 떠난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등 이슬람 강경파들의 처신,시리아·이스라엘간 협상추이가 향후 중동평화의 진전에 일차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이 정보기관 모사드 클린턴 e메일 도청

    [런던 연합]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클린턴 미 대통령이 고위참모나국가안전보장위원회,정부부처 등에 보낸 e-메일을 도청해왔다고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보소식통을 인용,가장 최근의 도청은 98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시절 중동평화협상의 방향에 대한 강력한 추측이 나도는 가운데 백악관컴퓨터시스템에 침입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같은 폭로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클린턴 대통령과 중동평화협상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던 예정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간유혈충돌 악화를 이유로 취소한 가운데 터져나와 주목된다. 당시 백악관 컴퓨터 해킹은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이 미국내 최대의 통신업체인 노텔로부터 백악관 작업을 하청받은 텔라드사에 침투해 가능했다고이 신문은 밝혔다.
  • 이·팔 최악 유혈충돌…중동평화 또 암운

    [예루살렘·라말라(요르단강 서안)AFP AP 연합]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영토에서 15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지고 양측에서 500여명이 부상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져중동평화 앞날에 또다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4년만에 최악으로 꼽히는 이번 충돌은 52년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유민이 발생한 ‘알-나크바(대재앙)’를 기념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전역에서 나흘째 계속되면서 발생했다. 시위에 참가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1,6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이날 충돌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시(市) 북쪽 베이트-엘 마을 부근에서 발생했다.지붕위의 팔레스타인 경찰과 도로 주변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팔레스타인 기자 등 민간인 수십명이 부상했다다. 또 요르단강 서안 북부의 나블루스 마을에서 벌어진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도중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1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나블루스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이스라엘 관할지역에 있는 요셉의 무덤주변에서 행진을 벌이면서 심야까지 충돌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20대 팔레스타인청년 1명이 또 숨졌다. 이날 충돌로 이스라엘군 병사 6명이 부상하고 이 가운데 1명은 중상이라고이스라엘측은 밝혔다.이번 유혈 사태는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인근 마을3곳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하는 등 일련의 유화 제스처를 취한 가운데 발생해 평화협상 전도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이스라엘 의회는 이날내각이 제출한 예루살렘 인근 3개 마을 이양안을 찬성 56,반대 48,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한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충돌에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확산을 막아주도록 요구했다.바라크 총리는 또 팔레스타인측이 이날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밝힌 뒤에만 3개 마을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사태가 악화되자 데니스 로스 중동 특사를 다시 현지로 급파했으며양측에 폭력을 자제하도록 촉구했다.
  • 이·팔 4년만에 최악 총격전, 모두 1명 사망·200명 부상

    [예루살렘 AP AFP 연합]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15일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영토내에서 4년만에 가장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양측에서 200여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하고 팔레스타인 10대 1명이 사망했다. 총격전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등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3일째 이어진 가운데 발생했다. 이날 이스라엘 내각은 아부 디스 마을 등 예루살렘 근처 요르단강 서안 마을 3곳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결정했으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석방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유혈충돌로 번졌다.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6)라빈 아라파트 회담

    *93년 이스라엘 - PLO 오슬로협정 체결. “이미 너무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전쟁터에서 죽어간 동료와 가족들을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1993년 9월13일 미백악관.역사적 오슬로협정 테이블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마주앉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축사라기엔 엄숙한 한마디를 던졌다.이날 양국 정상이 체결한 오슬로협정은 결코화해할수 없을듯 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랜 적대감을 끊고 이끌어낸 평화 총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그러나 협정시효가 훨씬지난 지금까지도 그 각론이 합의되지 않은채 유혈충돌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동평화의 가시밭길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평화의 청신호는 80년대 후반부터 찾아왔다.국제사회 압력과 극심한 경제난이 옥죄는 가운데 90년대초 소련의 붕괴는 그 지원에 의존하던 아랍 투쟁기구들로 하여금 노선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다. 70년대 내내 반이스라엘 테러의 선봉에 섰던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88년 임시 유엔총회 연설을통해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국제사회의 요구에 발맞췄다.이스라엘에도 92년 선거에서 라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강경 리쿠드당을 대체,화해분위기가 무르익었다.오슬로 협정은 양국정상의 평화의지 외에도 이같은 유화정세의 산물이기도 했다. 양국 대표단이 노르웨이 오슬로에 모여 오랜 물밑회담끝에 선보인 협정문은당시까지의 중동관계로 미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협정원칙(Declaration of principles;DOP)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된 문서는 △99년 5월까지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의 이스라엘 철군△이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자치 3년내 독립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지위 논의 등을 규정하고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국 건설까지도 인정하겠다는 것.협정문이 제시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 정신은 향후중동협상의 대원칙이 됐다. 오슬로협정 규정에 따라 라빈과 아라파트는 94,95년 1,2차 자치협정에 나란히 서명했다.양국 정상간에 직통전화가 놓이고 총선거를 거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94년엔 요르단이 이스라엘과의 46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협정에 조인,중동평화 도미노에 대한 예감으로 지구촌이들떴다. 그러나 94년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사회 갈채의 안쪽에서라빈과 아라파트는 국내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려 진땀을 흘려야 했다.점령지에 정착중인 이스라엘인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역시 잊을만하면 폭탄테러를 자행,평화일정을 지연시켰다.결국 95년 11월라빈 총리가 반대파에 암살당하면서 한축을 잃은 중동평화호는 일탈이 불가피해졌다. 곧이어 집권한 강경 네타냐후 정권 아래서 오슬로 플랜은 19개월가량 정지되기도 했다.98년10월 와이리버 협정이 가까스로 체결됐으나 오슬로 시계에의하면 이미 이뤄졌어야 할 요르단강 서안 완전철군,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정 등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또한번 정상간 회담에 의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손정숙기자 jssohn@. *라빈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힘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그의 오랜 군경력 때문에 ‘철권을 쥔 평화의 병사’,‘미스터 안보’로 불렸다. 1922년 예루살렘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카두리 농업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곧바로 하가나부대, 팔마치 부대를 돌며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32세의 나이로 소장에 오르고 40세에 참모총장으로 진급, 67년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68년에는 2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이끌어 내 대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73년 귀국,74년에는 골다메이어 총리정부에 노동장관으로 입각했으며 같은해 6월 메이어의 사임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란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77년 부인의 미국내 은행 불법계좌가 드러나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84년에는 국방장관으로 복귀하여 레바논 전쟁을 종식시켰다. 92년 다시 총리가 된 뒤 주변 아랍국들과 평화협상에 힘을 기울여 93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에 합의하고 오슬로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공로로 페레스,아라파트와 함께 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으나 95년 11월 4일 평화집회를 마친 직후 극우파 유태인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송하기자. *아라파트 당시 PLO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1929년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4살 때 모친이 죽고 예루살렘의 삼촌 밑에서자랐다. 그러다 46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무기밀매를 하며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아랍과 이스라엘의 첫 전투 이후 UN은 팔레스타인에게 자치 정부를 약속하지만 이행되지 않고 갈 곳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다.이후 팔레스타인 동료들과 연계하여 64년 군소 저항단체들을 통합해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창설한다. PLO는 게릴라전과 테러를 이스라엘에 행하여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길들이기에 나선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으로 요르단 본부를 빼앗기고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긴다.계속되는 테러와 마찰로 아라파트의 PLO는 세계의 불한당이 되었지만 72년 UN 옵저버 자격을 획득한다. 88년 모든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 그해 70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90년 걸프 전쟁으로 신뢰도에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93년 평화를 위한 기초 합의를 이스라엘 총리 라빈과 이루었다.96년 자치 수반으로 취임하여 98년 중동 평화의 결실이자 상징인 와이 리버 합의를 이끌어냈다. 황인철기자
  • 바라크·아라파트 전격회동 팔 최종지위협정 타결 논의

    [카이로 연합]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7일 밤(현지시간) 라말라에서 회담을 열어 난항을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상의 타결방안을 논의했다. 바라크 총리와 아라파트 수반은 2시간 가량 계속된 이날 회담에서 최종지위협정과 당면 현안 전반에 대해 협의했으며 지난 2일 중단된 최종지위협정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이스라엘 총리실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 성명은 회담이 “우호적이고 실무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이모두생산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양측이 합의한 최종지위협정의 기본협정 타결시한(13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열린 이날 회담에서두 지도자는 팔레스타인 국경선 문제와 난민귀환 등 최종지위협정의 주요 내용을 두루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지도자는 또 예루살렘 인근 마을 아부-디스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서안 3차 철군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이스라엘은 지난주 협상에서 요르단강 서안의 66% 지역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지도를 제시했으나 팔레스타인측은 이에 반발,회담장에서 철수했다. 양측은 다음 실무협상을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 장소에서 열기로 했으나 양측간의 뚜렷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 한 13일로 정해진 기본협정 타결시한을 지키기는 어려우며 타결시한이 6월말 또는 7월까지로 연기될 것이란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8일카이로에서 회담을 열어 중동평화협상 전반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이집트 관리들이 밝혔다.
  • 北, ADB가입 가능할까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으로 사상 처음 국제금융기구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리고 있는 ADB 총회에서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외교소식통들은 “북한이 ADB에 가입하려면 경제통계·정책자료 공개 등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쌓여있다”고 말해 북한의 가입에 적지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가입 전망. 북한은 97년 ADB 가입의사를 밝혔지만 좌절됐다.각각 13.5%의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 주주’인 미국과 일본이 반대했기 때문이다.한반도 긴장완화에 소극적이고 경제개방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6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북일 수교협상 등으로 여건은 성숙돼 있다.하지만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북한의 ADB 가입은 근본적으로 미국과 해결해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대북 지원. 북한의 가입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더라도 정식가입까지는 ▲북한-ADB 출자금 협상 ▲이사회 승인 ▲회원국 투표(3분의2 찬성) ▲출자금납입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회원국으로서 자금지원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이 비회원국으로서 당장 실질적인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하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대표적인 사례가 팔레스타인 방식.세계은행은 정치적인 문제로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이 어려운 팔레스타인에게 1993년부터 미국·영국 등의 26개 회원국으로부터 2억9,000여만달러를 출연받아지원했다. ●가입이후. ADB의 저리 자금과 기술을 지원받을 수 있다.아시아개발기금(ADF)은 역내 회원국에게 이자율 1∼1.5%의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221억달러의 개발자금(ADF) 가운데 북한에 1억∼2억달러가 지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신명호(申明浩)ADB부총재가 전했다. 북한의 1인당 GNP는 573달러(UN자료)여서 ADF만 지원받을 수 있다.하지만북한의 1인당 GNP가 925달러가 넘어서면 ADB의 정규재원(OCR)도 지원받을 수있다.북한이 ADB에 가입하면 IMF 가입 여건도 좋아지게 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최대규모는 25억∼45억달러로추정되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