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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1대책 영향 토지거래 사실상 끊겼다

    8·31대책 영향 토지거래 사실상 끊겼다

    토지 시장이 전반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8·31대책’이후 전국의 토지 시장은 전반적으로 가수요가 끊기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 거래가 중단되면서 호가도 떨어지는 추세다. 반면 개발 호재를 안고 있는 지역은 여전히 대기 수요자가 많아 땅값이 쉽게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 오히려 상승이 우려된다. ●실거래가 신고, 토지시장 직격탄 토지 거래를 주눅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실거래가신고. 내년부터 모든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실거래가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그동안 거래 가격이 공시지가 이하로 신고됐다. 지가가 급등하는 지역의 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60% 이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거래가와 비교하면 신고 가격이 30∼40%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으로 실거래가신고가 의무화되면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인정작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현재 땅을 사고팔 때는 계약서를 실거래가보다 낮게 꾸미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땅주인이 원하는 금액만 받아주면 나머지는 중개업자가 일정 정도 붙여서 팔도록 묵인하는 거래 관행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중개업자들이 적극 나서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노력이 사라진다. 땅주인이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다운계약서 작성을 요구해도 매수인이 이를 거절, 성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매수인의 경우 다운계약서를 용인하면 앞으로 토지를 되팔 때 이전 사람 세금까지 덤터기를 쓰게 되는 만큼 가격을 낮춰 계약서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부과되면 늘어난 세금 때문에 투자자들이 적극 달려들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땅을 보유했다가 팔 경우 양도세가 엄청나게 부과돼 매도인도 팔짱을 낄 것으로 전망된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사장은 “토지 시장을 옥죄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실거래가 신고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조치”라며 “8·31대책 발표 이후 전국 토지 시장은 침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의 전매기간 강화도 투기 수요 발목을 잡고 있다. 8·31대책에서 다음달 13일부터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목별로 6개월∼1년인 전매 금지기간이 2∼5년으로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토지 매입 자격도 강화됐다. 농지 및 임야 취득을 위한 사전거주 요건을 가구원 전원이 해당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현재 6개월)하도록 강화하고 임야 취득을 위한 거주지 요건도 그동안에는 연접 시·군에 살아도 됐지만 농지와 마찬가지로 해당 시·군에 살도록 하면서 가수요를 막고 있다. ●거래 위축, 호가 하락 수도권 토지는 실거래가신고, 허가구역 전매제한 강화 등의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6월부터 거래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군기지 이전과 평화도시 건설 호재를 안고 있어 거래가 빈번했던 평택시에서는 거래 건수가 6월 2561건에서 7월에는 2136건으로 줄었다. 오산시도 649건에서 374건으로 감소했다. 택지개발과 대형 주택건설 사업이 진행 중인 화성시는 3331건에서 1599건으로 거래량이 절반 이상 줄었고, 경춘선 복선전철과 서울∼춘천고속도로 건설로 투자자들이 몰렸던 가평지역도 1608건에서 1358건으로 거래가 줄어드는 양상을 띠었다. 거래가 끊기면서 호가 오름세도 멈췄다. 이천에서 중개업을 하는 성찬호 공인중개사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가격도 안정세를 띠고 있다.”면서 “일부 지주들이 땅값을 하향 조정해 매물을 내놓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거래 침체와 호가 조정에도 불구하고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은 아직 가격 움직임이 없다. 연기군의 경우 거래는 뜸하지만 값은 빠지지 않고 있다. 당진·태안 등 충남 서해안 일대도 땅값이 아직 강세를 띠고 있다. 기업 투자가 약속된데다 기업도시 건설 등이 이뤄질 경우 주변 땅값이 크게 오를 것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팔도 유명축제 부산서 즐긴다

    전국의 내로라 하는 축제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대한민국 축제박람회 조직위원회는 8일 내년 4월 1일부터 열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제1회 대한민국 축제박람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축제박람회는 고양 세계 꽃박람회와 이천 도자기축제, 보령 머드축제, 함평 나비축제, 담양 대나무축제 등 50여개에 달하는 전국의 대표적인 축제와 각 지방의 전통민속놀이를 한 곳에 모아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도록한 행사다. 또 1000여 종류의 전국 각 지역 특산물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국비 및 시비 2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박람회장은 ▲대한민국 대표 축제관 ▲농·수산물 및 특산물 전시관 ▲팔도 전통 먹을거리관 ▲축제산업·공예품 전시관 등으로 구성되며, 전통민속 체험 한마당과 팔도사투리 경연대회 등 120여개의 부대행사도 열린다. 또 역사적인 APEC 정상회의장인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는 전국 시·도지사들이 모여 지역의 문화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도 열릴 계획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축제박람회는 전국 축제들의 홍보무대일뿐 아니라 벤치마킹을 통해 지역 축제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좋은 기회가 될것”이라고 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거래세 1.15%P 내린다

    거래세 1.15%P 내린다

    정부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 부지와 남성대 골프장 등 200만평에 5만가구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 오는 2008년부터 분양하기로 했다. 판교 신도시의 경우 25.7평 이하는 내년 3월,25.7평 초과는 내년 8월에 각각 분양할 예정이다. 판교를 포함해 공공택지내 아파트 분양권의 전매 제한도 3∼5년에서 5∼10년으로 강화된다. 개인간 주택을 사고 팔 때 내는 거래세율을 취득세는 2%에서 1.5%로, 등록세는 1.5%에서 1%로 각각 내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취득 및 등록세에 각각 부과되는 농어촌특별세와 교육세까지 포함하면 거래세는 4%에서 2.85%로 1.15%포인트 인하된다. 정부는 31일 오전 열린우리당과의 고위 당정협의를 마친 뒤 과천 종합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담은 ‘부동산 안정 종합대책’을 공식 발표한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강남권의 주택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송파 거여지구에 신도시를 건설,2008∼2010년 분양을 마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김포 신도시와 양주 옥정지구 등 4∼5개 지구에 1000만평의 택지를 추가로 확보,14만 가구를 더 짓기로 했다. 공영개발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분양이 올해 6월에서 11월로 계속 연기된 282만평 규모의 판교 신도시는 공급 물량을 중·대형 아파트를 당초 계획보다 10%(2600가구) 늘려 내년 3월과 8월에 걸쳐 분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총 주택공급 물량은 2만 9404가구가 된다. 세제강화와 관련해 현재 0.15%인 종합부동산의 실효세율(주택매매가 대비 세금 비율)을 오는 2009년까지 1%로 높이는 등 보유세는 강화하고 취득·등록세 등 거래세는 대폭 낮추기로 확정했다.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도 주택은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나대지는 6억원에서 3억원으로 각각 낮아져 대상이 확대된다. 종부세 상승 제한폭은 50%에서 200%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그러나 서민들의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재산세의 과표를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올리려던 방침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상승 제한폭 50%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50%로 무겁게 매기되, 수도권과 광역시는 1억원 이하, 그 이외 지역에서는 3억원 이하의 주택은 중과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도세를 무겁게 매기는 시점은 오는 2007년으로 1년간 유예, 이 기간에 2주택자가 집을 팔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취업이나 이사 등 일시적 사유로 2주택자가 된 경우도 중과 대상에서 빼주기로 했다.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공공택지내에서 분양되는 주택에는 원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중·대형 아파트에는 채권입찰제를 적용키로 했다. 공영개발 차원에서 개발부담금제를 부활하고, 기반시설부담금제를 이른 시일 안에 도입키로 결정했다. 서울 강북 등 옛 도심권의 광역개발 지구에서 용적률을 확대하고, 층고제한을 완화하는 한편 토지거래 허가 요건을 1년 이상 거주자로 강화하고 토지 의무사용기간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고유가시대 “한 방울이라도…”] 美 자전거 통근자에 하루 3弗 지원

    미국 하와이주는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사라진 휘발유값 상한제를 다음달 1일부터 재도입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와 멕시코만 연안의 평균 휘발유 도매가와 연동해 매주 상한가를 매긴 뒤 그 이하로만 팔도록 한다고 CNN머니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하와이 휘발유값 상한제 시행 하와이주는 수송비 부담으로 휘발유값이 본토보다 갤런당 20센트가량 비싸다. 이 때문에 상한제를 통해 석유 회사들의 생산 및 유통 비용 절감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 압박을 받게 된 이들은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에선 “석유 회사가 이윤을 좇아 하와이를 떠난다면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각 기업과 개인 차원의 노력도 다양하다. 애틀랜타주의 조지아 파워와 제너럴 일렉트릭 에너지 등은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연료비를 삭감하는 대신 재택근무를 허용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전했다. 금융기관 피서브는 자전거 통근자에게 하루 3달러씩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비숍랜치 공단은 ‘나홀로 운전’ 출근을 금지하고 카풀 차량의 주차료를 절반으로 깎아준다. 텍사스주 휴스턴 주택가에서는 소규모 유정 개발이 성업 중이다. 상업성이 없거나 채굴이 끝나 폐쇄된 유정을 동네 주민들이 합심해 다시 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加서 차량 대신 말타고 우편 배달 캐나다의 한 우편배달부는 폭등하는 연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차량 대신 말을 타고 배달을 나가기 시작했다. 온타리오주 시골마을인 스미스 폴즈의 이 배달부는 우체국에서 지급하는 연료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배달용으로 쓰던 자신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세워둔 채 말로 바꿔탔다고 지역신문 토론토 스타가 전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美 ‘MS결정’ 우회압력 나서나

    美 ‘MS결정’ 우회압력 나서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끼워팔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우회적으로 압력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MS도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전원회의 심의에서 최소한 16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시간벌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23∼24일 이틀에 걸쳐 심의를 끝내고 빠른 시일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22일 “미국 정부가 MS의 끼워팔기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결정을 앞두고 진척사항 등을 묻고 있다.”면서 “미국측은 점잖은 표현을 쓰지만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정위의 MS 결정 앞두고 직·간접적 관심 표명 이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아시아 등지에서 MS의 영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가 잘 아는 것 같다.”면서 “유럽은 하루만에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 정부가 시간을 두고 숙고하자 계속 관심을 표명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관심을 표명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미국 정부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MS의 반독점 행위 여부에 대해 미국은 지난 2001년말 윈도 바탕화면에 당시 끼워팔기의 대상으로 지목된 익스플로러의 아이콘 삭제 등 가벼운 제재만 해 MS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법원은 앞서 MS에 회사 분할을 통해 윈도와 미디어플레이어를 분리하라고 명령했으나 MS와 유착된 부시 행정부는 중재에 나서 MS측에 유리한 ‘화의’를 이끌어 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MS에 6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윈도에서 미디어 플레이어를 분리하도록 판결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이번 결정은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와 남미 등지에서 MS의 끼워팔기와 관련해 중요한 법적 선례로 남게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속전속결,MS는 장기전 구상 재판에 비유하면 ‘피고’ 입장인 MS측은 이번에 끼워팔기 대상으로 지목된 ‘윈도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16시간 이상이 필요하다고 공정위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달 13일에 이어 23∼24일의 전원회의만으로 MS의 설명은 충분하며 미국과 유럽에서의 소송자료도 입수했다는 입장이다. 최종 결론을 내릴 때 전원회의를 한번 더 열겠지만, 내부 논의과정을 거칠 뿐 MS측 설명은 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다른 관계자는 “‘원고’측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심의관인 공정위의 입장까지 듣는 점을 감안할 때 MS측이 16시간 이상을 요구한 것은 전원회의를 연장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유리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MS가 장기전을 치르겠다는 생각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MS의 끼워팔기에 대한 공정위의 최종 결정은 다음달초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앞서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미국의 리얼네트워크는 “MS가 메신저 등을 끼워파는 것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과 관련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면서 2001년과 2004년에 각각 제소했다. ●제재는 불가피, 국제 소송 잇따를 듯 시장에서는 무혐의 처리가 내려질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MS측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으며, 시장 1위 업체도 국내의 네이트온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제재의 수준이 달랐을 뿐 미국과 유럽에서 MS의 끼워팔기 문제점을 인정했기 때문에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MS 윈도에서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를 분리해 팔도록 하거나 ▲미국에서처럼 윈도 초기화면에서 아이콘을 삭제하는 방안 ▲경쟁업체들과 윈도 정보를 공유하는 조치 등이 예상된다.MS 매출액에 대한 최고 5%의 과징금도 함께 부과할 수 있다. 업계는 네이트온이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이번 결과에 따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남미지역에서 MS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 (문헌,지도) 1. 삼국사기:(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열전) 이사부조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있음. 2. 세종실록지리지: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과 무릉 두 개의 섬이 현(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기록이 있음. 3. 신증동국여지승람: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음 4. 팔도총도(동람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우리나라의 전도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져 있음(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위치가 수정됨) 5. 장한상 울릉도사적기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이 있음.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 6. 문헌비고, 통문관지, 매천야록 등 # 독도의 역사1.512년:이사부가 신라영토에 귀속시킴(신라 지증왕 13년) 2.930년:고려에 귀속(고려 태조 13년)→백길과 태두가 토산물을 바침(고려사) 3.1401년:공도정책(조선 태종) 4.1407년:대마도주 종정무가 동해 무릉도(울릉도)에 마을을 옳겨 살게해 달라고 간청함에 조의를 거쳐 거절(태종실록) 5.1425년:우산도로 호칭(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삼봉도’,‘가산도’,‘가지도’ 등으로 호칭) 6.1693년: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있었으나 안용복의 활약에 의해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써 일단락(숙종실록) 7.1881년:울릉도 개척령의 반포(고종 18년) 8.1883년:조선 태종 이후 실시해온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54명을 울릉도에 들여보냄. 9.1900년: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게 함(대한제국 광무 4년) 10.1905년 2월:시마네현 고시로써 일본 영토로 불법 편입(러·일전쟁 때) 11.1906년: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독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 12.1914년:경상북도에 편입. 13.1946년:연합군 최고사령관이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SCAPIN 제677호) 14.1953년:독도의용수비대가 창설되어 독도를 수호. 15.1982년:천연기념물로 지정(제336호) 16.1998년:‘신한일어업협정’의 체결(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 17.2005년:민간인의 출입 허용 ●문제 독도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1)‘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2)‘고려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온다. (3)‘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경상북도 울진현 소속으로 구분하고 있다. (4)일본 막부는 1699년에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는 문서를 조선 조정에 보냈다. (5)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최초의 지도는 팔도총도(동람도)이다. ●풀이 및 정답 정답 3번. 울릉도와 독도는 하슬라주(신라) 또는 강원도(조선)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심태섭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열린세상] 지역문제 극복하려면 차라리 합당을/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오래전 얘기이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부터 시작한다.1987년 양 김씨의 분열은 한국 민주주의 전개 과정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흔은 너무 깊어서 많은 국민들의 내면에까지 깊숙이 패어 있다. 오래전 얘기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다. 군부 독재 앞에서 하나가 됐던 민주화 세력이 지역으로 분열된 이후 90년 3당 합당은 그 상처를 종양 수준까지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이 종양을 질병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양 생각하는 쪽도 있다. 이런 한국 정치의 난치병에 정면으로 도전한 용감한 정치인이 한 명 있었다. 바보 노무현. 그가 대통령이 됐다. 임기 절반이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그는 지역 문제 해결을 들고 나왔다. 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대통령 권력까지 내놓겠다며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시절 ‘노무현 문제의 해답은 민주노동당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제법 긴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정치 발전의 치명적 걸림돌인 지역 중심의 정당 구조를 해체시키는 것은 너무 중요해서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발전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바보처럼 도전하고 있는 노무현의 진정성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비극은 노무현은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의 해답을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역 분열 자체가 존재 조건인 보수적 지역정당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어떤 훌륭한 정치인도, 그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가 계급정치, 정책정당 구도로 바뀌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쟁과 협력 구도가 구축될 때 비로소 한국 정치의 천형처럼 비치는 이 문제는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의 근거, 특히 대연정의 당위성을 지역 정치 해소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런 방식으로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종양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걸 유지하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보다 강한 카운터 파워가 없으면 종양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힘은 노무현의 또 다른 이미지였던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성공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었다. 서민은 대한민국 팔도에 가장 많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역변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현재 그 힘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만약 지역문제를 가지고 난국을 돌파하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것은 수순이 완전히 잘못된 바둑을 두고 있는 꼴이다. 다음으로는 그 방법 또한 잘못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방법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앞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보면 지역정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말하는 대연정은 사실상 합당으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대통령이 고백했듯 주요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그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보수정당 하나를 튼튼하게 만들어내는 게 지역문제 해결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동시에 지역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고, 다른 정당들도 ‘이론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동의하고 있는 독일식 1인2표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제안한 국민투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특정 지역의 ‘말뚝’이 아니라 ‘정당’ 자체를 후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 “독도는 한국땅” 16세기 지도 발견

    “독도는 한국땅” 16세기 지도 발견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지도 4개가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재불(在弗) 독도 연구자인 파리7대학 이진명 교수는 5일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도서출판 삼인) 개정판을 통해 16∼20세기에 걸쳐 제작된 독도 지도 4장을 공개했다.1550∼1600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전도,17세기 후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 프랑스 라루스출판사가 발간한 1959년판 세계지도책,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도 중 최초로 독도 명칭을 표기한 1971년판 ‘아시아’지도 등이 그것이다. 이 교수가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고문서 보관소 등을 뒤져 그 사본을 직접 수집했다. 조선전도는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의 수집품으로,1911년 경매 때 프랑스국립도서관이 구입했다. 이 지도에는 당시 다른 조선 지도와 마찬가지로 독도가 울릉도의 동쪽에 있고 두 섬이 인접해 나타나 있다. 여지도 역시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르게 표시한 가장 오래된 지도의 하나로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12장의 지도로 구성된 지도첩으로 그 중 팔도총도와 강원총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타나 있으며, 경상총도의 오른쪽 바다에는 ‘동해(東海)’라 표시돼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의 고관)에 이르렀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무엇보다도 도술에 능했다. 그는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신승(神僧)이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은 사실에 토대를 둔다. 하지만 기억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기억은 무척이나 선택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특히 민중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승돼 온 기억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숨쉬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의 기억은 역사에 대한 민중의 바람이라고 해야 옳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모르는 것, 못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앞날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했다. 서산대사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서산대사비결’이란 책자를 낳았다. 비슷한 이유에서 민중은 신라 고승 원효가 지었다는 ‘원효비결’이란 예언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원효비결’은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했다. 그와 달리 ‘서산대사비결’은 조선 후기에 출현해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서산대사는 왜 서산대사로 불리는가? 그는 오랫동안 관서지방의 묘향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 속성은 최씨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멀지 않은 평안도 안주(安州)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호국불교의 상징 타고난 운명이 기구했던지 대사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사춘기엔 방랑을 떠나 멀리 남부지방까지 떠돌았다. 그는 지리산에 매료돼 숭인장로(崇仁長老)란 고승의 문하에 들어갔고, 선승(禪僧)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서산대사는 이 사건에 연루돼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결백이 입증돼 국왕의 특명으로 석방된다. 평소 대사는 즐겨 시문을 지었다. 옥사 사건 때 조정 대신들은 그 글들을 세밀히 검토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서산대사의 글이 단아한데다 그 대부분이 국왕을 위한 기도로 가득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국왕 선조 역시 대사의 충성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친필로 시를 써주었다. 아울러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점을 주어 대사의 마음을 위로했다(실록, 선수 23년4월1일 임신).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팔도를 유린했고 선조는 의주까지 밀려났다. 국운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수년 전 서산대사를 깊이 신뢰하게 된 국왕은 대사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서산대사는 전국 각지의 사찰에 연락해 의승군(義僧軍) 5000명을 조직한다.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은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 탈환에 참여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덕분에 국왕은 서울로 환도한다. 서산대사는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승군의 지휘를 맡기고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정을 왜군 진영에 보내 정전회담을 모색하게 했다. 그런데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따르면, 서산대사의 승군은 전쟁터에서 직접적인 공적을 별로 쌓지 못했다 한다. 살생을 금기로 삼고 있는 승려들인 만큼 접전(接戰)엔 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군은 성실해서 요새의 경비에 뛰어났다. 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축성하는 데도 그만이었다. 승군의 이런 장점은 널리 인정을 받게 돼,“각 도가 모두 승군에 의지하였다”(선수 25년7월1일 무오). 왜란 중 서산대사의 처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그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 방자하여 행궁(行宮) 어문(御門) 밖에서까지 말을 타고 횡행(橫行)하였다. 심지어는 대궐 출입까지 허락받기도 했다.”(선조26년7월19일 신미) 평소 불교계를 배척해온 유학자들로서는 서산대사가 궁궐출입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방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워 도보로 먼 거리를 출입하기란 불가능했다. 왕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대사에게 말을 타고 궁궐을 드나들게 허락했다고 봐야 옳다. 선조가 자신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자 서산대사는 그 기회에 불교를 중흥할 꿈을 키웠다. 대사는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삼아 분열된 교단을 통합하려 했고, 이를 위해 몇 권의 책자를 저술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선종의 입장에서 모범이 될 만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선교석’(禪敎釋)과 ‘선교결’(禪敎訣)은 선종과 교종을 비교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 참선수도에 필요한 주문을 모아 ‘운수단’(雲水壇)을 짓기도 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산대사의 뜻대로 불교가 중흥되지는 못했다. 대사는 결국 금강산에서 입적했는데, 자신의 의발(衣鉢 승려의 유품)을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 두라고 유언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들은 대흥사 경내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대사의 은덕을 추모했다. 뒷날 정조는 표충사라는 현판을 사액했다(정조12년7월5일 을축). 대사가 오래 주석했던 묘향산(妙香山)에도 수충사(酬忠祠)라는 사당이 봉헌됐다(정조 18년3월16일 계묘). 정리하면, 서산대사는 고대부터 이어진 호국불교의 전통을 따른 고승이었다. ●서산대사는 만능의 도사 국가가 편찬한 역사기록은 믿을 만한가? 역사상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은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기록되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역사책에 기록될 사실은 어차피 선택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의 선택은 이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주관적 해석이다. 심지어는 왜곡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서산대사가 호국불교의 화신이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그걸 확인하는 방편으로 조선시대 민중이 서산대사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알아볼 수도 있다. 민중의 견해는 민간설화로 남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설화에서 보이는 서산대사의 모습은 도술의 대가였다. 물론 대사가 정말 도술에 능했을 리는 없다. 다만 민중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대사의 모습에서 참된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대사는 그런 영웅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마음대로 도술을 부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서산대사의 도술 이야기는 임진왜란에 관한 것이 많다. 한 번은 서산대사가 제자 사명당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부적(符籍) 하나를 건네줬다고 한다. 이 부적 덕택으로 사명당은 일본의 왕성에 있던 병풍에 적힌 시구를 모두 알아 맞힌다. 일본인들은 사명당을 무쇠 방에 집어넣고 불을 때 태워 죽이려 했지만 사명당은 방안에 고드름이 맺히게 해 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병이 오게 된 것도 서산대사 덕분이라 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중국의 큰 부자에게 살아 움직이는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주었다. 그림 값으로 수표 한 장을 받았는데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린다. 나중에 그 집 딸이 큰 부잣집에 시집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게 한다. 명나라 장수로 조선에 파견돼 온 이여송이 생떼를 부리자 이를 무마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여송은 용의 간과 소상강 반죽을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렸는데 대사가 개입해 백마의 간과 백두산의 대나무로 대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기생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게 된 것도 실은 서산대사의 지도로 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설화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사명당의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서산대사의 부적 때문에 공을 세웠다곤 볼 수 없다. 명나라가 조선에 이여송을 파견한 것, 이여송이 방자하게 굴었던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산대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논개의 죽음을 서산대사와 연결시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도술시합 민중은 영웅인 서산대사와 그 제자 사명당의 도술 시합도 창안해 냈다. 사제관계였던 두 명의 고승이 도술시합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점쳤던 것이다. 어느 날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찾아 금강산 장안사로 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법당문이 열리며 서산대사가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었다. 사명당은 대사에게 말싸움을 건다. 사명당은 마침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대사에게 묻는다. “지금 제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대사는 이렇게 응수한다.“내 한 쪽 발이 법당 안에 있고, 또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다. 내가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애초 나오실 생각이 없으셨다면 문은 왜 열며, 벌써 한 발은 왜 밖으로 딛으셨겠습니까?” “맞다. 네가 손에 쥔 참새도 마찬가지다. 불승이 어찌 살생을 하겠느냐?” 얼핏 막상막하로 뵈지만 서산대사의 판정승이다. 사명당은 고작해야 발의 동작에 주목했다. 하지만 서산대사는 일시적인 몸동작이 아닌 승려 본연의 자세를 논했기 때문이다. 사명당은 등에 졌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그 안엔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이 있다. 사명당은 잠시 그 바늘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자 바늘이 먹음직한 국수로 변한다. 사명당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대사에게도 함께 먹기를 청한다. 두 사람은 맛있게 바늘국수를 먹는다. 잠시 후 서산대사의 입에선 바늘이 줄줄 흘러나온다. 사명당은 얼른 패배를 인정하기가 싫다. 이 번엔 백 개의 계란을 꺼내어 땅바닥에서부터 한 줄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신기에 가깝다. 서산대사는 그 모양을 보고 빙긋 웃더니 계란을 공중에서부터 거꾸로 쌓아 내려온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사명당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자 여태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인다. 금방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친다. 밧줄처럼 굵은 빗줄기가 한참동안 쏟아져 내린다. 서산대사는 한바탕 껄껄 웃고 나서 소낙비를 멎게 한다. 뿐만 아니라 땅바닥을 적신 빗방울까지 몽땅 하늘로 거둬 버린다. 사명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다. 그 순간부터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신다. 조선시대 민중은 스승과 제자의 서열을 뒤집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당도 서산대사 못지않게 뛰어난 고승이었건만 민중의 공론은 명백했다. 감히 제자가 스승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예언가 서산대사의 비결(訣) 절세의 영웅 서산대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여인이 광주리에 달걀을 가득 담은 채 손을 팔팔 휘저으며 걸어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 본 대사는 광주리 안의 달걀이 64개임을 대번에 알아 맞혔다.“팔팔(八八)” 걸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것은 민중이 지어낸 익살이다. 그러나 장난끼어린 익살 속에도 서산대사의 투시력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숨어 있다. 실제로 서산대사는 한두 가지 예언을 남겼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한다. 그는 임종시 유품(遺品)을 해남 대흥사에 두게 했다. 제자들은 왜 하필 그렇게 멀고 구석진 곳이냐고 물었다. 대사는 그곳이 “천년 병화(兵火)가 미치지 않아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불교의 법통이 돌아갈 곳”이라 말했다. 과연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게 되자 이 절은 크게 융성했다. 이 절엔 서산대사의 금란가,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음은 물론, 초의대사(草衣大師)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이 배출됐다. 조선 후기가 되어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예언서를 찾게 되었다. 만일 서산대사 같은 분이 살아 계신다면 앞일을 무어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산대사비결’이란 신종 예언서가 탄생했다. 실상 서산대사와는 무관한 예언서였다. 생전에 조선왕실의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 대사의 이름을 빌려 그 왕실의 패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름을 빌린 이 예언서의 내용은 대개 이렇다.1. 조선 말년에 당목 넷이 지나면 지혜 있는 선비는 반드시 떠나갈 것이다.2. 만일 성스러운 해를 만나면 천척의 배가 갑자기 인천, 부평의 넓은 들에 정박하리라.3.10년 동안 들에서 밥을 먹으니 집 생각하는 마음이 무궁하고, 천리에 곡식을 운반하니 편안하고 한가할 날이 기약이 없다.4. 코가 검은 장군이 여진에서 나와서 오얏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덤불을 벤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는 실상 오얏나무를 베는 도끼다. 첫째는 난을 피해 길지로 숨을 시기를 예언한 것이고, 둘째는 진인이 이끄는 천척의 배가 쳐들어올 시기를 말한 것이다. 셋째는 혼란기에 벌어질 전쟁이 1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고 본 것, 넷째는 이씨 왕조(‘오얏나무’)를 뒤엎을 세력이 북쪽에서 나온다는 예언이다. 이런 내용은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감결’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넷째 번은 좀 색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 살핀 대로 ‘토정비결’에선 요동에서 곽 장군이 나와 진인왕을 돕는다고 했다.‘서산대사비결’에선 바로 그 곽 장군을 ‘코가 검은 장군’으로 바꿔 썼다. 게다가 그 곽 장군이 진인왕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편을 드는 척하다 결국 왕조를 뒤엎어 버린다고 예언한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예언서들이 자꾸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곧 조선왕조는 망한다. 그 다음엔 진인왕이 새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왕조교체의 과도기엔 오래 혼란이 지속된다. 그 때 사람들은 길지로 피란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이 ‘정감록’의 핵심이다. 조선 후기의 술사들은 민중이 기억하는 역사상의 대 예언가들의 이름을 빌려 이런 메시지를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조(浮彫) 수법이었다. 때론 다른 이유도 작용했다.‘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를 수정하거나 보충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언은 미래를 겨냥한 것이고 따라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점괘는 늘 달리 풀이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이 늘 필요했다. 엄밀한 의미로 ‘서산대사비결’은 ‘정감록’의 개정판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민화 배우고 백설기 빚어볼까

    여름방학을 맞아 종로구 지역에 있는 박물관들이 각기 특색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참가비용 및 일정 등 자세한 내용은 각 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짚풀생활사박물관(www.zipul.com) 다음달 31일까지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어린이 짚풀만들기 체험학습’,‘부모님과 함께 하는 체험학습’ 등을 운영한다.(02)743-8787. 가회박물관(www.gahoemuseum.org) 내달 21일까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민화교실’‘부적찍기’‘기와탁본’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회박물관은 북촌 한옥마을 내에 위치해 주변 문화재와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02)741-0466. 떡부엌살림박물관(www.tkmuseum.or.kr) 다음달 16∼19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전통음식 만들기-칠월칠석(백설기, 편수)’,‘팔도김치만들기-콩나물김치’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02)741-5447. 세계장신구박물관(www.wjmuseum.com) 31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영어로 진행되는 미술교실’이 운영된다.100% 영어 수업이며, 자신만의 아이템 만들기-발표하기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02)730-1610.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그분의 시대’가 왔다. 만병(萬病)을 통치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묘약, 웃음이다. 고종 황제 때였다. 유성기(留聲機)가 황실에 처음 나타났다. 이를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시험해보려고 소리꾼 박춘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는 박춘재는 황제의 거듭된 독촉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기계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부른다.‘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에∼’ 이어 고종은 유성기 기술자를 불러 기계 작동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계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타난다. 박춘재의 목소리가 그대로 재현된 것.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한 물체를 통해 흘러나오자 박춘재는 깜짝 놀라 거의 까무러쳤다. 이를 본 고종 황제가 “수명이 십년은 줄었겠구나. 자네의 정기를 기계에 빼앗겼으니.”라고 했다. 이때부터 ‘십년감수’란 말이 생겨났다.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소리꾼이기도 했지만 임금의 심사(心思)를 즐겁게 해주는 공인된 재담가였다. 팔도의 온갖 장사꾼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도 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가무별감(歌舞別監)의 직책까지 얻었다. 이런 까닭에 학계에서는 박춘재를 현대 코미디언의 효시로 해석한다. 구한말의 박춘재 재담에서 오늘날의 만담가-코미디언-개그맨 등으로 변천돼 왔다는 것이다. 김웅래(60)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우리나라 개그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한국 코미디 역사를 한달음에 관통할 만큼 많은 연구와 발품을 통해 내로라하는 이 시대의 ‘웃음스타’들을 배출했다. 임성훈 최미나 고영수 정광태 곽규호 김학래 임하룡 심형래 전유성 김형곤 김미화 김한국 이봉원 김국진 이창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금도 김 교수를 ‘형님’ ‘스승’ 으로 깍듯이 모신다. 김 교수를 더욱 주목케 하는 것은 그가 최근 국내 처음으로 ‘웃음문화학회’를 만든 일. 웃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진지한 연구를 통해 더욱 많은 웃음을 창출해보자는 취지로 학회 창립을 선언했다. 학자와 개그맨들이 함께 뭉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회장은 서대석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맡았고, 김 교수는 수석 부회장. 전유성 김성녀씨가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오는 27일 첫 임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과 향후 계획을 논의한다. 이뿐만 아니다. 김 교수는 강원도 평창에 200여평 규모의 ‘코미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쯤되면 김 교수의 ‘웃음 열정’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33년동안 방송에서 개그프로 연출만 전문적으로 맡아오다 지난해 3월 정년 퇴임한 뒤 인덕대를 비롯, 몇몇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방학이었지만 방송국을 오가며 개그맨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으랴, 대학로 모 극장에서 개그맨 조련을 하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KBS개그프로인 ‘개그콘서트’와 ‘폭소클럽’에 최근 두 팀씩을 투입해 웃음작전을 지휘 중이다. 먼저 국내 코미디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춘재에 이어 ‘신불출’을 거론했다. 구한말의 박춘재를 거친 재담은 일제시대의 신불출을 만나 ‘만담’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신불출은 월북한 문예인 중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유일무이하게 별도의 연구소가 생길 만큼 북한 내에서도 최고의 만담가로 명성을 날렸다. 자료에 따르면 신불출은 월북 후 1957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1961년 국립만담연구소 소장,66년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로 활동했다. 서울의 전력난을 풍자한 ‘서울의 전기세’, 미국을 비난한 ‘승냥이’ 만담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남한에서는 장소팔 고춘자 부부, 김영운씨 부부, 김뻑국씨 등으로 대표되는 만담이 TV가 생기면서 코미디를 이어주는 웃음사(史)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웃음문화학회 출범과 관련,“현장에 있는 연기자들과 여러 학자, 교수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생겨난다.”고 했다.“PD 활동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가 ‘코미디가 저질이다.’ ‘소재가 한정돼 있다.’라는 말이었다.”면서 “앞으로 웃음 연구를 통해 이 두가지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방송프로 ‘웃찾사’ ‘웃으면 복이 와요’ ‘개그콘서트’ 등도 사랑받아야 하지만, 잊혀져 가는 만담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조선시대의 ‘앙천대소’ ‘소천소지’ 등 과거의 유머를 알리고 미래의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 격월간지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기자와 학자들이 상호협력할 경우 극대화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웃음도 패션이듯, 복고풍도 있고 시대에 맞는 웃음도 있게 마련이 아니냐는 반문도 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쇠퇴하고 대신 개그가 살아났다는 그는 웃음 발전을 위해 매년 ‘올해의 웃음대상’을 제정하겠단다. 올 연말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웃긴 사람을 선정,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것. 국내 처음 개관될 코미디 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웃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단다. 고 서영춘씨의 유물도 처음 공개하며, 고구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PD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각종 자료 100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왕년의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개그맨 전유성 심형래 등이 박물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방법과 포크댄스도 배웠지요. 학교 시험이 있던 전날에도 이기동 서영춘씨가 등장하는 ‘웃으면 복이와요’ 프로그램을 꼭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학교 수업 빼먹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 극장의 연극관람도 자주 했지요.” 김 교수는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6·25전쟁으로 서울로 피신해 수색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성동이 낳은 인물이 아니냐고 하자 웃을 뿐이다. 이곳엔 아직도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유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73년 동양TV에 입사했다. 면접 때 코미디프로를 맡고 싶다고 해 ‘코미디전망대’의 고 김경태 PD와 사수-조수로 만났다. 이어 양훈-양석천 콤비 프로그램인 ‘좋았군 좋았어’를 처음으로 맡았다.75년에는 ‘살짜기 웃어예’라는 최초의 개그프로를 연출했다. 외국잡지를 들여다보고 대학 축제 현장을 다니며 꾸준히 개그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학 다닐 때 다 외우다시피했던 ‘세계 해학전집’(정음사刊) 등의 자료도 많은 참고가 됐다. 밤이면 서울 무교동 일대를 뒤지며 DJ쇼에 출연했던 임하룡 김학래 주병진 등을 만나 방송에 출연시키는 등 웃음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동서고금 어디를 가나 웃음처럼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웃음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내친김에 서울 대학로에 개그 전용극장을 짓고 있다.160석 규모로 이달 말 간판을 내걸 예정이다. 그동안 거쳐간 수백명의 후배와 제자, 여러 개그맨들이 드나들 것으로 보여 ‘웃음의 메카’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경기 파주 대성리 출생 ▲66년 배재고 졸업 ▲73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73년 동양방송PD ▲80년 한국방송공사PD ▲93년 중앙대 신문방송학 석사 ▲94년 제34회 골든로즈상 심사위원(이후 4회) ▲98∼2000년 한국방송공사 코미디프로그램 담당 전문프로듀서 ▲2002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현재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 주요 작품 최초 개그프로 ‘살짜기 웃어예’ 연출(75년),‘유머1번지’연출(82∼92년), 시트콤 ‘아무도 못말려’ 연출(97년)시카고 코미디페스티벌 참가(2000년) ■ 주요 저서 유머개그야사(91년), 입술터진 하마도 노래방 가냐(92년), 웃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93년), 훔쳐보는 공포(94년), 김웅래PD폭소카세트북(96년), 한국을 웃긴 250가지 이야기(96년), 잡담으로 성공하기(98년) km@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연중기획 교육이 미래다(EBS 오후 11시40분) 내 아이가 부자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기 전에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줄 알도록 가르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린이 경제교육 전문가인 김정훈 교수의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경제교육에 대해 알아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1시25분) 캐나다 한인 유학생이 코카인을 통조림 속에 숨겨 들여오다 긴급구속됐다. 이 유학생은 통조림은 물론 코카인 운반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근 국제 마약조직이 마약 운반을 위해 일반인을 이용하는 사례가 자주 있어 이 유학생도 피해자일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시장실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자 용빈은 문틈으로 시장실을 훔쳐본다. 철호는 시장실 기물을 때려 부수면서 홍섭 때문에 박 의원이 자기까지 의심한다며 앞으로는 봐주는 일이 없을 거라 한다. 이에 홍섭이 계속 철호를 자극시키자 철호는 너 하나쯤 밟아버리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고….   ●유쾌한 두뇌검색(SBS 오후 7시5분) 신비한 동물의 비밀을 두뇌검색에서 벗긴다. 정글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가 왕일 수밖에 없는 놀라운 비밀은 혀에 있다고 한다. 혀의 비밀을 살펴본다. 또 대한민국 최고의 재주꾼으로 통하는 달이가 스튜디오에 등장해 놀라운 재주를 선보이고, 귀여운 강아지들도 총 출동한다.   ●피플 세상 속으로(KBS1 오후 7시30분) 전국 팔도를 무대 삼아 자신의 노래를 알리는 박상원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이건만 무거운 테이프 보따리에 음향기기를 메고 장사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한시도 몸을 쉴 수 없는 장돌뱅이로 살며 보낸 세월, 힘들 때도 많았지만 가수의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장돌뱅이 박상원씨의 인생을 엿본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미르와 가온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없는 아라는 ‘피터팬’동화책의 웬디 대신 뱃머리에 묶이게 된다. 아라를 찾아 나선 미르네 가족은 채석장에서 암흑전사들을 만나지만, 해가 저물며 암흑세계로 가는 블랙홀이 열리고 아라는 동화책 안에 갇힌 채 암흑세계로 끌려간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은 대단한 기인(奇人) ‘조선왕조실록’엔 토정의 풍모를 전해주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이라 불렀다. 이지함이 거처하던 곳이 토정(土亭)이었기 때문이다. 토정은 일찍이 한양의 마포 항구(麻浦港口)에 흙을 쌓아 언덕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 굴을 팠으며 위에는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큰물이 졌을 때도 토정이 만든 흙 언덕은 언제나 그대로였다(실록, 선조 수정 11년 7월1일 경술). 토정은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이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특히 발이 무척 컸다고 한다. 토정의 얼굴은 둥글고 검은 편이었고 눈빛이 강렬했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맑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토정은 보통 선비들과는 차림새도 확연히 달랐다. 그는 짚신을 신고 죽립(竹笠)을 쓴 채 걸어 다녔다고 한다. 초립(草笠)에 나막신을 신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는 진술도 있다. 그 당시 선비들은 당연히 조랑말이라도 타고 다녀야 되는 줄로 알았고, 항시 의관을 정제했다. 고급스러운 말총으로 꾸민 큰 갓을 쓰고 가죽신을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토정은 이런 풍습을 도외시했으므로,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기 마련이었다. 담화를 나눌 때도 토정은 수수께끼나 농담을 즐겼고,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다(실록, 선조 수정 6년 5월1일 경진). 한마디로, 토정은 격식을 초월했다. 혼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의외의 행동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놀라게 했다. 모처럼 새로 지은 도포를 입고 외출한 토정은 어느 다리 밑을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세 명의 거지아이를 만났다. 토정은 입고 있던 새 도포를 벗어 세 폭으로 찢어서 그 아이들에게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종일 바깥에서 일을 보았다. 토정은 이처럼 호방한 성격이었다. 도인의 면모를 보인 적도 많았다. 그는 열흘 정도는 굶어도 거뜬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냉수 한 모금 마시는 일이 없었다. 요즘의 건강상식에 크게 어긋난 행동이었다. 토정은 간혹 천리 길을 걸어 어딘가를 바람처럼 다녀오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방랑하기를 좋아해 제주도를 여러 번 찾았다는데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거센 날을 용케 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간혹 여행 중에 기생들이 별의별 수단을 다 써 유혹했으나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토정은 정욕마저 완전히 끊어버린 이를테면 속세의 신선이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설화도 그래서일까. 토정에겐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장인에게 화가 닥칠 것을 미리 알았다 한다. 명종 초년의 일이다. 하루는 토정이 그 부친에게,“아내의 가문에 불길한 기운이 있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 라고 아뢴 뒤 식구들을 이끌고 서둘러 한양을 떠났다. 바로 그 다음 날, 토정의 장인은 사화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일말의 의문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실록’은 토정의 예언 능력을 무척 칭찬한다. 한 번 사람을 만나보면 그 성품은 물론, 앞날의 길흉까지 환히 알아 맞혔다 한다. 토정은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에 사태를 예언했다는 구비설화가 남아 있다. 만년에 그는 조선 팔도를 두루 유람했다고 한다. 당연히 천하명산 금강산에도 들렀다. 하루는 날이 기울자 토정은 지친 몸을 이끌고 암벽 위에 서 있는 초라한 암자를 찾아갔다. 워낙 피곤해서 제대로 자리를 펴고 누울 겨를도 없이 방안에 들어가 한 쪽 벽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었다. 조금 있다가 꿈속에 스님 두 분이 나타났다. 그들은 병풍과 자리를 깔며 부산을 떨었다. 토정은 스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러 산의 산신령들이 모여 장차 다가올 난리를 의논할 거라는 답변이었다. 과연 전국 명산의 산신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여러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자 금강산 산신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왜놈들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놈들을 물리치자고 주장했다. 놀란 토정은 퍼뜩 깨어났다. 조금 전 기대어 잠을 청했던 암자는 오간 데 없었다. 암벽 위엔 한 그루 늙은 소나무만 외롭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토정은 왜란이 일어날 줄을 짐작했다. 이것은 한낱 설화다. 토정을 뛰어난 예언가로 간주하게 된 후대의 민중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가 있다. 역사 속에서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것이 민중들로선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본래 토정이 특이한 선비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설화를 덧붙여 민중의 스승으로 이상화했다고 풀이된다. 왜란에 관해선 또 다른 이야기가 토정의 문집에 실려 있다. 일찍이 그는 상중(喪中)에 있던 제자 조헌(趙憲)을 조문하였다. 그날 혜성(彗星)이 밤하늘에 뻗쳐 조헌이 그 조짐을 물었고, 토정은 이 혜성이 천하에 큰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라며 그때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한다(실록, 영조 30년 11월27일 임인).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긴 조헌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돼 금산에서 북상하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문집의 기록은 사제간의 문답을 확대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토정이란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일상적인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이다. 토정은 다분히 도가적(道家的)이었지만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선비였다. ●사화에 얽혀 불우했던 토정 사실 토정은 국가경영에 관심이 컸다. 평상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내가 일백 리 되는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되면 가난한 백성을 모두 부자로 만들고 야박한 풍속을 돈독하게 바꿀 것이다.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아 나라의 평안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토정은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명종5년(1549년) 토정이 33세 되던 해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토정의 장인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했고, 연좌법에 걸린 토정은 벼슬길이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죽마고우(竹馬故友) 안명세(安名世)마저 필화를 입고 죽었다. 사관(史官)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명세는 명종 연간 을사사화(1545년)에 관련해 윤원형과 이기 등 소윤(小尹)이 윤임 등 대윤(大尹)을 모함해 몰살했다고 적었다. 윤원형 일파는 몰래 사초를 들여다보았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안명세를 제거한 것이다. 이후 토정은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기인(奇人)으로 처세하게 됐다. 지지난 호에 소개한 정렴은 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의 아들이라 스스로 세상을 피했던 데 비해, 토정은 억울하게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해 기벽(奇癖)을 갖게 됐다고 해야 맞다. 어찌 보면 세상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기가 참 쉬웠을 텐데, 토정은 절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및 의학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조헌과 이산보를 비롯해 여러 제자를 키웠다. 조정이 토정에게 벼슬길을 열어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을사사화의 주도세력이 조정에서 물러난 선조 초년이었는데, 그 사이 토정은 이미 늙어버렸다. 그는 60이 가까운 나이에 사실상 초임이나 다름없는 아산군수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평생 닦아온 선비의 웅지를 펼칠 겨를도 없었다. 토정이 남긴 글은 뒷날 ‘토정유고’(2권1책)로 정리됐다. 이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주역(周易)에 관한 ‘월영도’, 풍수지리를 다룬 ‘농아집’ 등을 토정의 저술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실상 ‘토정유고’에는 위에 언급한 어떤 책자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만일 실증주의의 입장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토정비결’이나 ‘토정가장결’ 등은 토정의 저술이 될 수 없다.‘토정유고’외에는 이지함의 저술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후대의 위작으로 볼 것인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토정비결의 매력 물론 어느 쪽도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책은 몰라도 ‘토정비결’만은 토정의 붓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토정은 의학과 점에 능통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와 운수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반의 그런 요구가 많아지자 토정은 아예 한 권의 책을 지어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기를 도모했을 법도 하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역과는 다르다. 주역의 기본 괘는 48개인데 비해 ‘토정비결’은 32개다. 괘를 짓는 방법도 달라 이른바 사주 가운데 시(時)를 뺀 년(年), 월(月), 일(日)을 사용할 뿐이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계가 없어 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주역을 이용하면서도 조선의 특성을 십분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점괘의 총수도 주역과는 다르게 됐다. 주역에는 총 424개의 괘가 있으나 ‘토정비결’은 총 144개뿐이다. 훨씬 간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토정 이지함처럼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시구(詩句)로 적어 놓았다.“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점괘다. 각 항목마다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낙관도 실망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결과적으로,‘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며, 일마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처리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이 있다기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토정비결’은 단순히 점을 봐주고 금품을 요구하는 직업적인 점쟁이의 저술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눈엔 그것이 점을 통해 점을 치는 사람들이 점에만 의존하지 않게 유도하는 기능이 숨겨진 반점술서(反占術書)로 보인다. 토정 이지함과 같이 점에 능통하면서도,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철학을 신봉한 큰선비가 남겼을 법한 저술이다. ●그럼 ‘토정가장결’은? 정리하면, 토정은 살아생전에 이미 기인, 도사 그리고 큰선비로 세상에 유명했다. 더욱이 후세에는 ‘토정비결’과 같은 명저의 지은이로 민중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됐다. 그가 만일 무수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면, 나라의 운수인들 모를 까닭이 있었겠느냐는 의견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맴돌았음이 틀림없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토정이 남긴 예언서가 어디선가 발견돼야만 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토정가장결’이 탄생한 문화적 배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토정가장결’에 앞서 ‘정감록’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진인 정씨가 새 나라를 세운다는 ‘정감록’의 예언을 참작해 ‘토정가장결’이 쓰였다.“내 비록 재주 없으되 우러러보고 굽어 살피며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보니 한양이 5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토정가장결’은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점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본 결과, 조선왕조의 운수를 짐작하게 됐다고 했다. 천문에 중점을 두고 예언을 했다는 점이 ‘토정가장결’의 특징이다.‘감결’을 비롯해 다른 예언서들이 풍수지리에 의존해 국운을 점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참고로, 천문 점의 전문가들은 서북지방에 많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천문지식은 중국 사람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토정가장결’에 보이는 두 번째 특징은 압록강 이북의 요동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잠시 비결을 인용하겠다.“장류수(계사) 운은 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침략한다. 이때 전읍(奠 , 즉 鄭姓 眞人)이 바다 섬의 군사를 이끌고 방성, 두성의 장수와 함께 갑오년 섣달 즉시 금강을 건너면 다시 천운이 커질 것이다.(중략) 곽 장군이 요동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 및 서남 오랑캐를 무찌르며,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편들고 이씨를 공격하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니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계사년에 외침이 있는데 만일 그 때 요동의 곽 장군이 나서서 정씨를 도우면 동아시아의 정치질서가 재편된다고 했다. 곽 장군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인데, 곽 장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늦어도 19세기 후반엔 고구려의 옛 땅이던 만주가 가난에 쫓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간 상당수 민중들의 손길로 개발되고 있었다.‘토정가장결’에 등장하는 곽 장군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달리 말해, 간도에 진출한 빈농들이 이상적인 지도자로 여겼을 법한 가상인물이다. 셋째,‘토정가장결’은 난세의 피란지로 전혀 새로운 장소를 거론했다.“만약 요동 간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삼척부 대소궁기를 향하여 부지런히 힘을 기울여 곡식을 쌓을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정감록’은 주로 삼남 지방에 십승지 또는 길지를 설정해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상도의 풍기, 충청도 공주 및 전라도 운봉이었다.‘토정가장결’은 이를 정면에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요동과 삼척이란 뜻밖의 장소를 최고의 길지로 내세운다. 확실히 새로운 변화였다. 여기서 나는 ‘토정가장결’이 출현한 시기를 좀더 정확하게 짐작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간도로의 ‘불법이민’이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이 예언서가 창작된 것은 아닐까. 참고로, 삼척이 길지로 대두된 이유를 헤아려 보겠다. 토정에 관한 구전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때 토정은 삼척에 머문 적이 있었다는데 거기서 스님 행색으로 위장한 왜놈 첩자를 붙들었다. 이 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은 토정이 살던 삼척에는 아예 얼씬도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신기하게도 구전설화는 예언서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모양이다. 물론 거꾸로 됐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토정은 정치적으로 무척 불우한 재사였다. 그래서 그는 기인이자 도사가 되기도 했고,‘토정비결’ 같은 책을 지어 고난 받는 민중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토정은 민중의 스승으로 자리매김돼 ‘토정가장결’의 저자로도 둔갑됐다.‘토정가장결’은 ‘정감록’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19세기 후반의 변화된 사회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알 자는 알리라.” (푸른역사연구소장)
  • 만화책으로 더위를 잊는 방법 5+1

    만화책으로 더위를 잊는 방법 5+1

    어린 시절, 만화책을 펼치려하면 공부 안한다고 잔소리하시던 부모님들, 좁디좁은 동네 만화방에 학생들이 없나 살펴보러 다니시던 선생님들. 중고등학생만 되도 만화를 보려고 하면,“애들이냐.”는 핀잔도 들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만화는 어른들도 당당히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의 한 장르가 됐다. 그것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느끼고, 지식을 얻고 또 다른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만화책을 손에 쥐는 모습들도 늘어가고 있다. 올 여름 한 번쯤은 만화를 즐기며 더위를 잊어보는 것은 어떠한지. 신나는 여름에 휴가. 그렇지만 왠지 방에 틀어 박히고 싶은 그대를 위해 만화책을 골랐다. 잔뜩 빌려오거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구입해서 소장하는 것도 좋다. 어쨌든 한아름 안고 돌아와 만화 보따리를 풀어놓고,‘뒹굴뒹굴’ 삼매경에 파묻히는 것도 여름나기의 방법일 듯. 한 번쯤은 볼 만한 만화를 소개한다. 특별한 기준은 없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1) 작가로 고르기 ‘전작주의’를 내세워 특정 작가의 만화를 훑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라사와 나오키는 이제 국내 만화팬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 일본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작품을 내놓는 작가로 손꼽힌다. 폭넓은 배경지식에 매력있는 그림체가 돋보인다. 스포츠 명랑 만화 ‘야와라!’(학산·29권 완결)나 ‘해피!’(학산·23권 완결) 같은 작품도 유명하지만, 이후 ‘마스터 키튼’(대원·18권 완결)이나 ‘몬스터’(세주·18권 완결)도 깊이있는 내용으로 끊임없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SF물 ‘20세기 소년’(학산)이 18권까지 출간되고 있다. 모든 작품이 읽어볼 만하지만, 여름에는 고고학자이자 보험사 조사원의 모험담을 담은 ‘마스터 키튼’과 희대의 범죄자로 키워진 소년과 누명을 쓴 의사의 대결을 그린 ‘몬스터’를 추천한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반전이 눈에 띄는 ‘몬스터’는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이보그짱G’나 ‘어둠의 인형사 사콘’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린 오바타 다케시는 ‘고스트 바둑왕’(서울·23권 완결)으로 한껏 인기몰이를 했다. 그의 최근작 ‘데스노트’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아직 4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열혈 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사신 루크가 지구에 떨어뜨린 ‘살생부’를 우연히 얻게 된 뒤 범법자에 대해 단죄를 내리는 천재 소년 야가미 라이토와, 이를 막으려 하는 또 다른 천재 소년 L의 치밀한 두뇌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다소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 음악이 흐르는 만화 음악을 좋아한다면 ‘벡’(학산문화사)이나 ‘노다메 칸타빌레’(대원씨아이)를 권하고 싶다.‘벡’은 록을,‘노다메’는 클래식을 소재로 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음악을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을 그린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 사쿠이시 해럴드가 그리는 ‘벡’. 평범한 중학생 다나카 유키오는 어느날 별나게 생긴 ‘벡’이라는 강아지를 구해주게 되고, 그 인연으로 류스케를 만나게 된다. 뉴욕에서 온 류스케는 인디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인물. 그를 통해 록에 대한 재능을 찾게 되는 유키오. 또 다른 멤버 타이라, 치바 등과 밴드를 만들고, 해체하며 다시 모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영국 인디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하는 내용을 담은 22권까지 발매됐다. ‘노다메’는 클래식을 배우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요즘 한국 안방 극장을 달구고 있는 ‘비틀린 테리우스’의 전형인 치아키가 남자 주인공. 또 어리벙벙하고, 만화 여주인공 사상 최고로 게으르고 더럽다(?)는 노다메가 상대역이다. 삼순이·삼식이과의 주인공들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열광한 팬이라면 한 번 펼쳐보자. 치아키는 유명 피아니스트를 아버지로 뒀다. 집안도 유복하고, 피아노에 바이올린까지 못하는 게 없는 천재. 지휘자를 꿈꾸는 치아키가 피아노에 대한 재능은 뛰어나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하는 노다메를 만나게 되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간다.12권까지 나왔다. (3) 음식만화는 어때 드라마 ‘대장금’의 열풍은 아직도 동남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음식을 다룬 갖가지 만화도 인기를 끌었다. 정작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신토불이’ 작품은 없을까?있다. 허영만의 ‘식객’(김영사)이다. 쌀에서부터 출발해 굴비, 전어, 전통 술, 매생이국, 과메기, 갓김치, 홍어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음식 문화를 총망라하며, 읽는 이의 침을 꼴딱꼴딱 삼키게 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남녀 주인공은 ‘음식 협객’을 자처하며 팔도를 누비는 성찬과 음식 잡지사 여기자 진수. 이들 이름을 합치면 진수성찬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작가가 발품을 팔며 전국을 돌아 취재한 소재들이 네모난 칸에 생생히 담겼다. 후기도 무척 재미있다. 음식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에 얽힌 가족 이야기까지 풀어내는 등 심금을 울리는 에피소드가 많다.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 소개된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찾아가서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듯.9권 완간. (4) 더위엔 역시 호러물 어떤 작품을 소개해야 할지 고심이 되는 장르다. 혹자는 ‘공포신문’의 쓰노다 지로,‘무서운 책’의 우메즈 가즈오 등을 권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1999년부터 국내에 소개돼 호러 만화의 붐을 일으킨 이토 준지의 작품을 골랐다. 시공사에서 ‘이토 준지 공포 콜렉션’이라는 제목으로 17권을 출간한 바 있다. 이외에 영화로 만들어진 ‘소용돌이’나 ‘공포의 물고기’ ‘어둠의 목소리’ 등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20권을 훌쩍 뛰어 넘는다. 공포 컬렉션 가운데 살해당한 뒤 끊임없이 자신을 증식시키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토미에 시리즈’와 엽기적인 장난으로 공포와 웃음을 전달하는 ‘소이치 시리즈’가 볼 만하다. 작가의 기괴한 상상력에다 초절정 엽기적인 그림은 독자들의 예측을 불허하며 혀를 내두르게 한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으스스한 공포 심연으로 스멀스멀 빠져들게 한다. 토막 살인 등의 잔인한 장면이 끊이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어린이가 읽으면 좋지 않다는 점에 유의하자. (5) 만화보며 미술공부 호소노 후지이코의 ‘갤러리 페이크’(서울문화사)는 일본에서 15년 가까이 연재되며 아직도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 일찌감치 전문적인 직업에 대해 숱한 작품이 쏟아지고 있는 일본 만화계에서도 독특한 소재를 택한 이 작품은 ‘악덕’ 미술상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본 등 동양 미술은 물론이고, 서양 미술사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지식을 즐겁게 접할 수 있다. 각 에피소드에 나오는 미술품 복원 과정이나, 그림을 둘러싼 뒷 얘기 등은 만화를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더해 준다.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는 미술품 복원과 감정에 일가견이 있는 전직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큐레이터. 현재는 도쿄에서 ‘갤러리 페이크’라는 작은 화랑을 경영한다. 실제로는 장물을 거래하는 뒷골목 화랑이다. 얼핏 돈만 밝히고 삐딱한 성격을 가진 후지타 같지만 속내는 따뜻함으로 넘쳐난다. 조수 사라 핼리퍼와 함께 하는 미술품에 대한 모험 이야기는 26권까지 발매됐다. (6) 추리소설 모음집 ‘시원한 얼음물에 발 담그고, 수박 한 조각 먹으며 추리소설을 읽는다.’ 상상만으로도 더위가 한풀 꺾이는 듯하지 않은가. 바야흐로 추리소설의 계절이다. 아쉽게도 ‘다빈치 코드’를 능가할 만한 대형 베스트셀러는 눈에 띄지 않지만 읽는 맛이 색다른 추리소설들이 속속 쏟아지고 있다. 역사추리물로는 스페인 작가 훌리아 나바로의 ‘성 수의 결사단’(랜덤하우스중앙)과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있다.‘성 수의 결사단’은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알려진 성 수의를 둘러싼 암투를 흥미진진하게 다뤘고,‘열녀문의 비밀’은 거짓 열녀 적발을 위해 시작된 수사에서 또다른 비밀과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그렸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초기작 ‘디지털 포트리스’(대교베텔스만)도 눈길을 끈다. 국가 안보와 테러방지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감청하는 국가 기관과 이에 맞서는 프로그래머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볼 만하다. 이언 피어스의 ‘라파엘로의 유혹’은 사라진 라파엘로의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미술추리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유명 작가들의 공포소설만을 모은 책이 나왔다.‘세계 호러단편 100선’(책세상)은 찰스 디킨스, 안톤 체호프, 마크 트웨인 등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호러 단편들을 묶었다. 라틴환상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공동집필한 추리소설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북하우스)도 출간됐다. 설명이 필요없는 인기 추리작가 존 그리샴의 신작 ‘브로커’와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기수로 꼽히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환상소설도 빠질 수없다. 밀리언셀러 ‘드래곤 라자’의 저자인 이영도가 내놓은 ‘피를 마시는 새’(황금가지)가 대표적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신곡 ‘인생은 레디 고’ 발표한 남보원

    [어떻게 지내세요] 신곡 ‘인생은 레디 고’ 발표한 남보원

    “백년을 살아봤자 삼만육천 오백일이지요. 인생은 항상 레디 고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웃음을 선사하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죠.” 남보원(70)씨. 우리나라 원맨쇼의 ‘대부’격이다.1960∼70년대 팔도를 넘나드는 특유의 성대모사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겐 그의 이름만 들어도 “진짜 넘버 원이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다. 서울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때 그쇼를 아십니까.”라는 타이틀로 현미 박상규 트위스트김 등 동료 연예인과 2주전부터 주말마다 전국 투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해남과 목포 광주 등을 다녀왔단다. ●“45년만에 내 노래 발표 감개무량” 특히 남씨는 최근에 신곡 ‘삐에로’와 ‘인생은 레디 고’ 두곡을 발표, 식지 않은 열정으로 추억의 인기를 다시 되살리고 있다. 즉석에서 ‘삐에로’를 부른다.‘나는 나는 삐에로 삐에로로 살아갈래/슬플 때도 웃어야 하고 기쁠 때도 웃어야 하는/연지곤지 분바르고 멋쟁이로 차려입은/나를 보고 웃어봐∼.’(윤삼육 작사·박재권 작곡) “그동안 남의 노래만 45년 불렀지요. 내 노래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중간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랩 가사까지 삽입했거든요. 딸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투어쇼에는 새로 선보인 것이 몇가지 더 있다. 우선 광복 60주년을 맞아 역대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 예를 들어 ‘이승만 박사가 첫단추를 잘못 끼어 박정희 대통령 총 맞아 죽었지∼.’라는 대사에 즉흥곡을 붙였다. 또한 ‘타타타’의 곡에다 팔도 사투리, 정주영 전 회장의 목소리, 찬송가, 찬불가 등을 섞어가며 세상을 풍자하다 보면 두시간 동안 거뜬히 원맨쇼를 펼칠 수 있다는 것. ●“北안내원들 알아보고 반가워해” 북한에서도 그의 명성을 입증했다.5년 전 방북했을 때 안내원들이 남씨를 가리켜 “입술재간꾼 선생이 아니냐.”며 반가워했다. 또한 북한에 사는 누이와 50년 만에 상봉했을 때 “우리 동생이 남쪽에 가서 공훈배우가 됐네. 어릴 적부터 흠칠거리는 끼가 많았지.”하는 칭찬과 회한의 말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후배들 임기응변 아닌 개인기 갖춰야”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70부터라고 강조하는 그는 건강을 위해 매니저이자 운전기사인 부인과 함께 동네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30년 넘게 한 동네에 살았기에 주민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영원한 현역임을 자처하는 그는 “요즘 코미디는 임기응변으로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개인기를 갖지 않으면 나중에 설 땅이 없어진다.”고 후배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남씨는 평안남도 순천에서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다.6·25전쟁 중에 월남, 서울 성동공고를 졸업했다. 부친이 경찰공무원을 권유해 57년 동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본명은 김덕용.63년 연예계 데뷔 당시 대부분 ‘후라이보이’‘스리보이’ 등의 예명이 많아 고민끝에 ‘넘버 원’이라는 영어와 남쪽 보물의 으뜸이란 뜻을 합쳐 남보원(南寶元)이라고 지었다. 영화 ‘공수특공대작전’‘귀신잡는 해병’‘오부자’‘새알각하’ 등의 영화에도 출연, 인기를 모았다. 연예인 축구부를 만들었으며 한때 ‘남펠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군가로 벨소리·컬러링 하세요”

    “군가 벨 소리와 컬러링(통화연결음)을 무료로 다운받으세요.” 육군은 12일부터 군가(軍歌) 휴대전화 벨 소리와 컬러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육군은 ㈜SK텔레콤의 협찬으로 군가 휴대전화 벨 소리와 컬러링을 개발,12일부터 자체 홈페이지(www.army.mil.kr)를 통해 무료로 제공한다고 11일 밝혔다.SK텔레콤 가입자(010·017·011)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벨 소리에는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에게 친숙한 ‘진짜 사나이’와 ‘팔도 사나이’를 비롯, 특전 장병들이 즐겨 부르는 ‘검은 베레모’ 등 10곡의 군가가 포함됐다. 또 컬러링은 “자기, 군대 갔다 왔어.” “군가한다. 군가는 진짜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등 특색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육군은 앞으로 벨 소리와 컬러링의 종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육군 관계자는 “현역 장병들에게 군 복무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국민과 함께하는 육군’이라는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MS 끼워팔기’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 앞두고 ‘이견 팽팽’

    ‘MS 끼워팔기’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 앞두고 ‘이견 팽팽’

    불공정거래행위인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른 결과인가.5년여를 끌어온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가 이번주 시작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위는 13일 재판부에 해당되는 전원회의를 열고 MS의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 끼워팔기에 대한 심의를 시작한다. 이번 사안은 디지털 제품의 융화·복합화가 추세인 IT산업을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사례로, 향후 IT분야의 분쟁에서 공정위의 판단 잣대가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MS 입장에서는 불공정거래행위로 결론이 날 경우 거액의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데다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소송에 휩싸일 수 있어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국제적 관심 집중 지난 2001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국내 컴퓨터 운영체제의 시장점유율 1위인 MS가 윈도에 메신저를 끼워파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제소했다. 인터넷 상에서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신저는 MS의 윈도메신저와 MSN메신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다음메신저, 네이트의 네이트온 등이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이어 미국의 리얼네트워크도 2004년 MS 본사와 한국 지사가 미디어플레이어(동영상이나 음악을 재생하는 프로그램)를 부당하게 끼워팔아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제소했다. 리얼네트워크는 지난 1995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동영상 재생프로그램인 리얼플레이어를 내놓았으나 지금은 MS에 밀려 세계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장점유율이 99년까지 90%를 넘었으나 이후 급락, 지금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MS가 미국의 간판 대기업이라는 점, 리얼네트워크가 유럽, 한국에 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MS를 제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세계 IT업계는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04년 MS를 상대로 100억원대의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메신저 끼워팔기가 위법으로 판명되면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 제작업체들도 똑같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끼워팔기냐 기술발달이냐 MS측 논리는 여러 프로그램이 하나의 운영체제(OS)로 통합되는 것이 소프트웨어 업계의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기술 발달로 카메라 기능까지 추가되면 카메라 제조업체가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제소할 수 있는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이치다.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소한 메신저는 윈도메신저이며 현재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메신저는 내려받기를 해야 하는 MSN메신저라고 강조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 메신저를 내려받는 데 별 무리가 없다는 점도 MS측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다음측은 MSN메신저와 윈도메신저는 핵심 기능을 공유하고 있어 같은 소프트웨어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판단은 다르다. 미국은 2001년 11월 MS의 익스플로러 끼워팔기에 대해 바탕화면에 익스플로러 설치 금지,MS 운영체제 정보 공유, 경쟁사가 호환 가능한 소프트웨에 개발 지원 등의 명령을 내려 MS측 입장을 대거 반영했다. 반면 EU는 지난해 3월 리얼네트워크의 제소에 대해 MS에 4억 9700만유로(623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미디어플레이어를 제거한 운영체제 출시를 명령했다. ●가을쯤 결론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보통 전원회의가 열리면 당일에 결론이 나거나 연기되더라도 두 차례 정도 심판하는 것이 관례인데 MS건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심의속개 형식으로 심의가 여러 차례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MS에 대한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만 1500페이지나 된다. 전원회의에는 MS 본사측 변호인 7∼8명도 참여한다. 이들은 미국과 EU에서 ‘독점적 지위남용’에 대한 대형 소송을 해본 베테랑들이다. 공정위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위법성 판단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에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MS의 끼워팔기가 위법이라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부과될 과징금 자체는 한국에서의 MS의 매출액과 매출액의 최고 5%에 해당하는 과징금 등을 고려하면 큰 의미는 없다. 문제는 시정명령이다. 가령 ▲윈도에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를 분리해서 팔도록 하는 조치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가 갖춰진 윈도와 그렇지 않은 윈도를 출시해 소비자들이 선택하게 하는 방법 ▲해당 프로그램은 그대로 두되, 윈도 초기화면에 아이콘이 뜨지 않도록 하고 경쟁업체들과 윈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라는 조치 등이 내려질 경우 MS는 물론,IT업계에 미칠 파장은 커질 전망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잠실 주공5단지 ‘금요 알뜰시장’

    잠실 주공5단지 ‘금요 알뜰시장’

    서울 송파구 잠실 5단지 주공아파트. 매주 금요일 오전 8시면 한쪽 주차장에서 ‘알뜰시장’이 열린다. 감자·배추·양파 등 야채와 수박·참외·토마토 등 과일, 오징어·고등어 등 생선, 건어물, 곡류, 밑반찬 상인이 원을 그리며 좌판을 편다. ●도매시장·산지서 농·수산물 ‘직송´ 장터로 들어선 주부들의 발길도 분주하다. 손수레를 끌고 나온 주부 이상미(48)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도매시장이나 현지에서 곧바로 온 물건이라 할인점이나 백화점, 마트보다 싱싱해요. 값도 저렴하고요.” 이씨는 사려고 맘먹었던 상품이 동날까봐 아침 일찍 서둘렀단다. 직장인 김정민(37)씨는 출근길에 잠시 장터를 들렀다. 바삐 수박과 양파·감자를 고르더니 아파트까지 배달해달라고 주문한다.“물건도 좋지만, 집까지 갖다주니까 편리하죠. 재래시장과 백화점, 마트의 장점만 모아놓은 셈이에요.” 손님이 밀려들면 배달이 다소 늦어지는 게 유일한 불만이라고 했다. 아파트 알뜰시장이 큰 호응 속에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할인점 열풍으로 재래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박리다매 전략에 집안까지 배달 10여년전 서울·경기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알뜰시장은 대전을 거쳐, 천안, 충주, 청주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500가구가 넘는 서울·경기지역 아파트 단지에선 알뜰시장이 열리지 않는 곳이 없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성공비결은 이윤을 적게 보더라도 많이 판매하는 것. 서울수산 전성삼 사장은 “일반 소매상의 마진이 20%라면 알뜰시장은 5∼7%를 넘지 않는다.”면서 “단골을 확보해 꾸준히, 많이 판매하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했다. 알뜰시장 상인들은 ‘5일장 장돌림’ 만큼이나 바쁘다. 새벽 3∼4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나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달려가 상품을 구매한다. 좋은 상품을 할인점에 뺏기기 않으려 서두르는 것. 트럭에 야채·과일·생선을 가득 싣고 알뜰시장이 서는 아파트로 직행한다. 안산·수원·인천까지도 단숨에 달려간다. 밑반찬 상인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대전에서 ‘팔도맛김치’를 운영하는 김남일(65) 할머니는 목요일 아침부터 김치를 담근다. 포기김치·오이김치·열무김치를 만들어 하루 동안 숙성시키는 것. 금요일엔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겉절이를 만든다. 하루종일 아삭아삭한 맛을 유지하는 노하우다. ●취업난 반영… 상인 중엔 대졸자도 아침 6시에 대전에서 출발하면 8시쯤 잠실에 도착한다.“30년 동안 국산만 고집하며 김치를 만들었어. 조미료 대신 멸치·다시마·무를 끓여 양념하고. 끝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고 단골들이 좋아해.”김 할머니는 젊은 주부들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재미 덕에 서울나들이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좌판이 펼쳐지면 주부들이 물밀듯이 쏟아진다.30여명의 젊은 상인들이 물건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취업난에 대졸자들도 알뜰시장을 찾아 일을 배운다. 야채는 1000원을 기준으로 팔린다. 깻잎을 비닐봉지에 맘껏 담아도 1000원, 바구니에 가득한 야채도 1000원, 어른 팔뚝보다 굵은 무도 1000원, 당근 3개도 1000원이다. 돈바구니엔 1000원짜리 지폐가 쌓여간다. 생선 장터엔 오징어·갈치·고등어 등이 얼음 위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흰색 이름표엔 원산지가 시·도까지 표시돼 있다. 수입품도 눈에 띈다.“요즘은 주부들이 상품을 더 잘 알아요. 어설프게 수입산을 국산이라고 장난쳤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죠. 교환·환불은 기본입니다.”한 상인의 말이다. 과일가게에선 수박 맛보기가 한창이다.1만원짜리 수박을 큼직하게 썰어 시식하도록 하는 것. ●오후 4시 지나면 50%까지 할인 판매 잠실 5단지에선 야채·과일·생선·건어물·먹을거리·곡류 등 기본 품목만 판매된다. 옷과 생활용품 등 공산품도 나오는 다른 알뜰시장과 사뭇 다르다. 알뜰시장 운영위원회 조희철(66) 위원장은 “주변 상가 상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계약할 때 공산품 판매를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계약전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계약전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뜨거운 태양볕을 하루종일 받은 야채와 생선이 늦은 오후엔 고개를 숙인다. 이때부터 세일을 시작한다.‘그날 물건은 그날 다 판다.’는 알뜰시장 원칙 때문이다.20∼30%로 시작한 할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50%까지 높아진다. 야채를 판매하는 합동물산 임기선 사장은 “지친 야채를 물에 넣으면 금세 살아나지만, 다음날 판매하긴 어렵다.”면서 “원가보다 싸게 내놓는 게 버리는 것보단 이득”이라고 말했다. 생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잡은 지 2∼3일 지난 생선이라면 알뜰시장 보단 할인점에서 사는 게 낫지요. 소상인이 기업의 냉장·냉동시설을 따라가지 못하니까요.”전성삼 사장의 말이다. 생선은 2∼3시간 단위로 가격을 낮춰서 몽땅 팔고 있다. 뜨겁던 태양이 뉘엇뉘엇 아파트 사이로 넘어가자 상인들은 장터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트럭을 나눠 타고 떠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치열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 안타까워 야채·과일을 판매하는 합동물산 임기선(44) 사장은 아파트 알뜰시장을 처음 만든 사람에 속한다. 1995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미도아파트 앞에서 1t트럭에 채소·과일을 싣고 장사를 할 때였다. 아파트 부녀회장이 ‘일주일에 한번씩 아파트 안에서 장사를 해보라.’고 제안해 왔다. 아파트로 들어가니 매출이 10배 늘었다. “5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일 장사해도 주민들은 문밖에선 남이라 생각하지요. 아파트로 들어오니까 신기하게도 식구로 받아주고 믿더군요. 상품에 문제가 있어도 일주일 기다려서 바꿔가고….” 품목을 다양화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평소 알고 지내던 생선, 건어물, 먹을거리 상인들을 불러모았다. 알뜰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알뜰시장 전문업체인 합동물산을 세워 사업을 확장했다.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백화점이나 마트보단 알뜰시장을 찾게 된 것. 임 사장은 현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야채·과일 30∼40%가 알뜰시장에서 판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3년전부터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시작됐다고 안타까워했다.“브로커들 때문에 계약금이 너무 부풀어 올랐어요.3억원이 넘는 곳도 생겼으니. 장사란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계약금 때문에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점점 불가능해져요.” 청춘을 바친 알뜰시장이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됐으면 한다고 임 사장은 소망했다. ■ 품질·가격 주민의 신뢰 얻어야 살아남아 생선을 취급하는 서울수산 전성삼(45) 사장은 ‘악연´으로 알뜰시장을 만났다.1995년 서울 노원구 하계 7단지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생산을 팔다 알뜰시장이 들어서 크게 손해를 입었다. 이에 전 사장은 전업을 결심하고 알뜰시장에 뛰어들었다. 싸고 싱싱한 생선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인천수협과 옹진수협으로 달려갔다. 도매상 없이 고깃배에서 생선을 사기 위해서였다. 4월∼6월이면 꽃게를 무더기로 사와 이윤없이 팔았다. 아침이면 30∼40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주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해요. 좋은 꽃게를 2개월만 싸게 팔면 1년내내 장사가 쉬워지죠.”‘박리다매’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내는 물론 처남 2명과 처남댁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데다 수입이 많으면 많이 나눠쓰고, 적게 벌면 조금씩 가져가니 사업이 훨씬 수월했다. 웰빙 열풍에 오히려 요즘 힘들다고 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어요.10여년 전에 보다 생선이 20분의1로 줄었으니….”수십년 동안 어린 생선까지 긁어모아 젓갈과 어묵을 만드는 바람에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한숨졌다. 꽃게를 싸게 파는 행사도 2년 동안 하지 못했다. “근해에 잡은 싱싱한 생선이 없으면 알뜰시장은 망해요. 냉동처리한 수입산이야 할인점에서 사는 게 낫지요.”알뜰시장이 도시속 5일장 풍속으로 살아남기를 전 사장은 기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176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병직 건교장관 문답

    [176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병직 건교장관 문답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24일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착실히 추진되면 지방은 신성장 동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은 이날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클러스터 건설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환경개선 대책, 정비발전지구 지정 등의 내용을 담은 수도권 대책을 다음주 화요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부 지자체와 노조가 반발하는데. -이전 기관의 대상지는 그 지역의 발전 전략과 산업 특성을 고려해 형평성과 효율성을 살려 결정됐다. 대부분의 지자체도 정부 발표에 수긍하고 있다. 다만 1∼2개 지자체가 섭섭함을 표현하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와 시·도지사 간에 이전기본협약을 체결했으니 수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비용은 얼마나 되나. -이전 기관의 구체적 입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데다, 이전 뒤 청사 규모도 불확실, 여러 변수가 있어 현재로서는 산정할 수 없다. 앞으로 1년 뒤에나 어느 정도 비용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 방지책은 있나.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어떤 개발이익도 정상적인 것 외에는 향유하지 못하도록 강구할 계획이다. 입지가 결정됨과 동시에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토지투기지역으로 묶을 방침이다. 향후 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선 이전기관이 시·도내에서 어느 지역으로 배치될 것이냐 하는 기준을 국토연구원에서 다음달 말까지 만든다. 이후 이전 대상기관과 시·도지사 정부부처가 오는 9월 말까지 이행협약을 체결한 뒤 부지를 선정한다.2012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일부 기관들은 사옥을 매각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부의 의지는 강력하다. 이전 대상 기업들은 사옥과 부지를 확실하게 팔도록 하겠다. 도 단위에서는 이전기관이 군별로 분산 배치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답변)그런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집단 이전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키우는 촉매제 역할을 하도록 기관들이 지나치게 분산되지 않도록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보낼 계획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HD역사스페셜(KBS1 오후 10시) 박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왔다는 신라의 건국 신화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알려진 경주 나정(蘿井)이 발굴되면서 신라 건국의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 것. 믿기지 않는 엄청난 사실, 나정에서 출토된 대형 건물터와 수많은 유물들을 통해 그 비밀에 접근해 본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우리 몸의 중심에 자리해 건강한 신체의 기본이 되는 골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기 때문에 특히 골반의 건강이 중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서울시립대 김설향 교수와 함께 골반의 비밀과, 몸속까지 건강해지는 골반 건강에 대해 알아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정부가 현행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계속된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는가 하면 전국 곳곳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과 함께 그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과 보완책을 짚어본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어릴 때 집에서 ‘시킴’을 받으며 자란 기억이 전혀 없다는 전세일 박사. 그는 부모의 말없는 가르침을 기억하고 결혼할 때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는 부모가 되자.’고 아내와 약속했다고 한다. 한국 재활의학계의 원로 학자이자 의사인 전세일 박사의 양육관을 들어본다. ●논스톱5(MBC 오후 6시50분) 승기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K양 혜선. 신문에는 혜선과 승기가 껴안고 있는 듯한 사진까지 실린다. 혜선은 이정에게 사진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려 하고, 승기는 혜선에게 제대로 된 고백을 해보기로 한다. 한편, 진우는 슬픈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곡을 만들기 위해 감정을 다잡는데…. ●VJ특공대(KBS2 오후 9시55분) 각양각색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전국 팔도의 낚시꾼들을 만난다. 걷기도 힘든 산을 뛰어서 넘는다. 불암산 수덕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5산을 종주하는 산악 울트라마라톤대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좌충우돌 산악마라톤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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