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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단풍이 중부 지방 일대까지 내려왔다. 먼 강원의 산을 찾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겐 근교의 숲길을 찾아 움직이기 좋을 때다. 이맘때라면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제격이다. 성곽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는 데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멀지 않다.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이 오롯하고, 단풍 빛깔도 제법 곱다.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딱 1년째다. 이쯤 되면 찾아갈 명분도 그럴싸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산성이 깃든 곳은 중부면이었다. 이게 남한산성면으로 바뀌었다. 지난 16일 일이다. 주민 96%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명칭을 바꿨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한산성이 백숙 먹고 노는 곳쯤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조치가 얼마나 실효를 얻을지 걱정이 앞선다. 남한산성 들머리가 붉다. 8㎞에 이르는 진입로의 나무들이 죄다 단풍으로 물들었다. 남한산성 주변을 흐르는 오전리 계곡, 불당골 계곡, 검북리 계곡 등을 따라 들어갈수록 가을 풍경도 깊어진다. 북한산성에 견주자면 남한산성은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산성이다. 통일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뒤 완공했다. 성벽 둘레는 11.76㎞. 성벽 외부는 급경사인 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분지 형태다. 주민들이 머물거나 전쟁 등 유사시에 농성하기 맞춤한 구조다. ●병자호란 아픔 지켜 본 나무들, 그 위로 내려앉은 단풍의 향연 남한산성에는 단풍보다 붉은 처절한 역사가 깃들었다. 1637년 1월 30일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산성 서문(西門)을 나서 한강 동쪽 삼전도(현재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일대)로 간다.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기 위해서다. 청나라 10만 대군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농성한 지 47일 만의 일이다. 인조의 항복으로 병자호란(1636~1637)은 일단락된다. 그 치욕의 순간들이 풀 한 포기, 벽돌 하나하나에 맺혀 있다.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모두 5개다. 거리도 4㎞부터 8㎞까지 다양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3시간 20분 안팎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산성로터리→전승문(북문)→우익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지화문(남문) 순으로 돌아본 뒤 다시 산성로터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5㎞,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에서 영월정으로 오른 뒤, 숭렬전→수어장대→우익문(서문)→국청사를 지나 산성로터리로 돌아오는 코스도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 4㎞,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를 들머리 삼을 경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행궁이다. 왕의 임시거처 노릇을 했던 곳. 조선의 행궁 가운데 종묘와 사직을 둔 곳은 남한산성 행궁이 유일하다. 규모는 작아도 임금이 늘 머물던 법궁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는 뜻이다. 전쟁 등 유사시엔 임시수도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 병자호란(1636년) 때 인조가 남한산성 행궁에서 47일간 머물며 항전했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들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행궁을 들러 갔다. 행궁은 순조 때인 1805년까지 증축을 거듭했다. 이후 1907년 일본의 군대 해산령과 함께 허물어졌다가 2002년부터 10년간 복원 공사를 벌인 끝에 2012년 완공했다. 행궁 복원 도중 행궁터와 산성터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초대형 기와와 건물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정문인 한남루를 지나면 숱하게 많은 전각들과 만난다. 초입의 침괘정, 연못이 있는 지수당 등 볼거리가 많다. ●산성 걷기 들머리로 남문 인기… 서문 앞 언덕은 ‘서울 전망’ 최고 포인트 가장 많은 이들이 산성 걷기 들머리로 삼는 곳은 남문(南門)이자 정문인 지화문이다. 1636년 12월 14일 새벽 도성을 버린 인조의 행렬이 들어갔던 문이다. 남문을 찾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관광객들이다. 우리와 달리 전승의 기억을 갖고 와서인지 표정들이 밝다. 성벽은 능선을 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흙길을 걷고 돌계단도 오른다. 영춘정이 첫 번째 풍경 전망대다. 팔각정이라고도 불리는데, 원래 남문 아래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다. 이어 수어장대(守禦將臺). 산성 안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장수가 휘하 장졸들을 지휘하기 위해 높은 곳에 세운 건물을 장대라 부른다. 산성 안에는 총 다섯 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게 현재의 수어장대다. 건물은 2층이다. 기단 위에 자리잡은 자태가 옹골차다. 오래전 장대 위에서 호령하던 장수의 굵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수어장대 옆 보호각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조가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며 지은 글이다. 수어장대에서 15분쯤 더 가면 서문(우익문)이다. 서문 앞 언덕은 남한산성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 등 수많은 명산을 헤아리기 숨가쁘다. 야경 명소로도 꼽힌다. 평일에도 서울 야경을 보기 위해 서문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광주에서 꼭 돌아봐야 할 명소 몇 곳 더 소개하자.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습지로 변한 곳이다. 강변을 따라 2㎞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가을 향 맡으며 자박자박 걷기 좋다. 산책로 주변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다. 연 밭 위로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뒀다. 철새 조망대도 있다. 겨울 철새들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하면 큰고니 등 다양한 철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남종면, 남한산성면, 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다. 조선 영조 28년 궁중 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광주에 설치된 이후 약 130년간 285곳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고 한다. 옛 분원초등학교 폐교사를 리모델링해 2003년 개관한 분원백자자료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선 도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자박물관도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순백자, 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관요에서 생산된 전통 도자기와 그 전통을 계승하는 현재 작가들의 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분원백자자료관 인근의 박물관 얼굴도 돌아볼 만하다. 연극 연출가 김정옥 대표가 40여년간 수집해 온 석인, 목각인형 등과 여러 나라의 인형 등 다양한 얼굴 조각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글 사진 광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1) →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으로 나가 헌인릉, 세곡동, 복정사거리 등을 차례로 지나면 남한산성 남문이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겠다면 경안 나들목으로 나가 광지원을 지나면 남한산성 동문이다. 주말 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경우 하남 나들목으로 나가 국도를 따라가는 방법도 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곧 남한산성 등산로다. 서문까지 1시간쯤 걸린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www.ggnhss.or.kr) 777-7500. → 맛집 남한산성 위 산성리 마을에 닭·오리 백숙거리가 조성돼 있다. 행복한 식탁(797-5299)이 많이 알려졌다. 산성에서 좀 떨어진 불당리 낙선재(746-3003)는 깔끔한 한정식이 자랑이다. 두 집 모두 맛 못지않게 업소 분위기가 그윽하다. 남종면 등 경안천 쪽엔 민물 매운탕집이 많다. 분원붕어찜(옛 강촌매운탕·767-9055, 1011) 등이 많이 알려졌다. → 잘 곳 도척면 곤지암 리조트(1661-8787)는 가족 단위로 묵기 좋다. 스키장을 비롯해 스파, 레스토랑,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찼다. 요즘엔 화담숲을 돌아볼 만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남한산성과 팔당호 주변 등에 펜션, 모텔 등도 많다.
  • [의정 포커스] “장충체육관~다산 팔각정 성곽길 예술 거리로”

    [의정 포커스] “장충체육관~다산 팔각정 성곽길 예술 거리로”

    ‘책임을 다하고 양심을 지킨다.’ 김기래 중구의회 부의장의 의정 철학이다. 10일 집무실에서 만난 김 부의장은 “기본을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임기 동안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고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주민과의 약속 중 그가 중점 추진하려는 것은 문화관광 분야다. 그동안 유럽을 다니며 오스트리아의 구 시가지 등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한다. 김 부의장은 “미래 먹거리는 문화와 관광이라 생각한다”면서 “중구는 관광자원이 많은 만큼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동시에 이를 토대로 발전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성곽 예술문화 거리 조성’ 사업이다. 중구는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다산 팔각정에 이르는 1050m 규모의 성곽길을 예술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이 길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대상에 오른 한양도성 구간에 있다. 김 부의장의 집무실 한쪽에는 그가 직접 찍은 성곽길 곳곳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김 부의장은 “나도 직접 가보기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북촌과 삼청동 등이 옛 거리의 아름다움을 살린 것처럼 우리 구의 성곽길도 사랑받는 명소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례를 제·개정하는 데에도 힘 쓰고 있다. 7대 의회 들어서는 처음으로 ‘홀몸 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한 조례’를 발의하기도 했다.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 부의장은 “우울증세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외로우실까 봐 바빠도 매일 꼭 전화를 드린다”며 “고독사에 두려움을 가진 홀몸 노인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의정 활동으로는 5대 때 관내 첫 구립도서관을 만든 것을 떠올렸다. 직접 제안하고 예산을 발의해 완공을 이끌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대형 상용차 시장에도 수입차 맹위

    국내 시장에서 상용차 부문에서도 수입차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7일 국내 수입 대형 상용차 점유율 1위인 볼보트럭코리아는 중형 트럭인 FL 시리즈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열린 FL 시리즈 출시 행사에 참석한 크리스토프 마틴 볼보그룹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트럭 총괄사장은 “볼보트럭코리아는 향후 5년 동안 중대형 트럭 판매량을 현재의 두 배 이상 높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국내 상용차 시장은 중소형 분야에서는 국산차들이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나 대형 이상 크기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25.6%를 기록하며 수입차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김영재 볼보트럭코리아 사장은 “볼보트럭코리아는 올해까지 국내 누적판매 1만 5000대를 예상하고 5년 후에는 현재의 두 배인 누적 3만 2000대 이상의 판매가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출시된 볼보트럭코리아 FL 시리즈는 8800만원(부가세 포함, 자동변속기 기준)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한여름 억새는 억세다

    한여름 억새는 억세다

    예년과 달리 장거리 여행은 다소 삼가는 분위기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도 꺼린다. 가뭄에 메르스가 겹친 탓이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가까운 산을 찾아 맑은 공기로 머리와 가슴을 씻는 것도 좋겠다. 수도권 명산으로 꼽히는 명성산을 찾은 건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억새꽃 필 무렵의 가을 명성산만 기억한다. 하지만 명성산을 잘 아는 이들은 여름 풍경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입을 모은다. 능선 전체를 푸르게 붓질하는 억새의 기교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억새가 만든 초원, 그 모습 보자고 행장을 꾸린다. 명성산(923m)은 경기 포천과 강원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정상 부분은 철원 지역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의 등산로는 포천 쪽 산정호수 주변에서 시작된다. 명성산(鳴聲山)은 궁예(?∼918)의 한이 서린 산이기도 하다. 왕건에게 패해 진한 울음을 울었다고 해서 산 이름도 울 명(鳴)자에 소리 성(聲)자를 쓴다. 궁예의 흔적은 곳곳에 이름으로 남았다.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폈다는 산정호수 뒤편의 ‘망봉’(望峯), 패한 궁예의 군사들에게 항서를 받았다는 ‘항서받골’, 패주하던 궁예가 지나갔다는 ‘가는골’(패주골), 궁예가 흐느끼며 넘었다는 ‘느치고개’(눌치), 궁예가 은신했다는 ‘궁예왕굴’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등산로 주변 샘물도 ‘궁예약수’다. 억새밭은 삼각봉 아래 능선에 걸쳐 있다. 억새밭까지는 산정호수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등룡폭포 방향으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명성산 등산로는 모두 4개다. 1코스는 주차장에서 시작해 비선폭포와 등룡폭포, 억새밭을 지나 팔각정까지 간다. 명성산의 급경사 지역을 크게 우회하는 코스라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주차장에서 팔각정까지 3.5㎞,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의 산행이라면 1코스를 권할 만하다. 2코스는 1코스와 같이 주차장에서 시작해 비선폭포에서 갈라진다. 책바위를 올라 팔각정에 이른다. 거리는 짧은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급경사다. 게다가 암릉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구간도 있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가급적 하산 코스로 잡길 권한다. 3코스는 자인사에서 출발해 팔각정까지 간다. 돌계단을 따라 급경사 구간을 올라야 해 힘든 코스로 분류된다. 4코스는 산안고개에서 시작해 정상을 찍고 삼각봉과 억새밭을 지나 주차장까지 가는 코스다. 거리가 길어 최소 6시간 이상 소요된다. 팔각정에서 내려가는 코스는 여러 갈래다. 2코스인 책바위 코스를 택할 경우 발 아래 산정호수를 두고 걸을 수 있다. 삼각봉, 책바위 등 거대한 암벽들의 암릉미를 감상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3코스 자인사 구간은 거리가 짧다. 하지만 경사는 급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산행의 들머리는 산정호수 주차장이다. 답답했던 포장도로는 금세 끝나고 길은 곧 조붓한 산길로 올라붙는다. 이어 선녀가 노닐었다는 비선(飛仙)폭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군데군데 너덜이 깔린 비탈길을 한참 오르면 산은 또 하나의 폭포를 펼쳐 놓는다. 등룡폭포다. 폭포 아래 소에 살던 용이 물안개를 따라 하늘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가늘다. 가뭄 탓이다. 물색도 맑지 않은 편. 하지만 졸졸대는 물소리마저 없었다면 산행은 몹시 힘들었지 싶다. 암벽 위 철제 다리를 오르면 물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계곡도 끝이 난다. 이어 또다시 너덜길. 오른쪽으로는 철망이 이어진다. 군 사격훈련장을 알리는 경고판도 철망 곳곳에 붙어 있다. 숲엔 야생동물이 흔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것에 견주면 뜻밖의 현상이다. 다람쥐는 지천이고 겅중대며 뛰는 족제비도 눈에 띈다. 초록빛 이파리에 숨은 파란 깃털의 큰유리새, 계곡물에서 첨벙대는 물까마귀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등룡폭포를 지나 30분쯤 오르면 땀범벅이 된 머리 위로 느닷없이 하늘이 열린다. 그 아래로 초록빛 너른 능선이 펼쳐져 있다. 명성산을 명산 반열에 오르게 한 억새군락지다. 삼각봉 아래쪽 능선 전체를 점령한 억새가 시나브로 제 키를 키워 가고 있다. 억새밭은 가르마를 탄 듯 양 기슭으로 갈라졌다. 면적은 20㏊(약 6만평)에 이른다. 초원 군데군데 물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서 있다. 이곳이 습지라는 증거다. 버드나무 가지엔 ‘울음터’ 푯말이 걸려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왕건에게 패한 궁예가 목놓아 울었다는 뜻일 터다. 언덕 오른쪽엔 ‘천년수’(궁예약수) 푯말이 서 있다. 안내판은 “이 약수는 궁예왕의 망국 한을 달래 주는 듯 눈물처럼 샘솟아 예로부터 극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오래전 궁예는 이 능선에 임시 거처를 만들고 왕건과 대적했다고 한다. 사방이 트여 조망이 좋고, 식수 조달이 쉬웠기 때문이다. 바람이 능선을 스칠 때마다 여린 억새들이 가늘게 흔들린다. 손 뻗어 보듬어 주고 싶은 장면이다. 한데 부디 조심하시라. 한여름의 억새는 억세다. 잎새의 날도 서슬 퍼렇다. 스치기만 해도 살갗을 찢고, 붉은 피를 탐할 만큼 혈기방장하다. 줄기엔 작은 가시들이 나 있다. 여기에 베면 으악 소리 난다. 억새의 다른 이름은 ‘으악새’다. 옛노래 ‘짝사랑’의 첫 구절에도 나온다.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라고. 울음산과 억새와 ‘짝사랑’은 그래서 잘 어울린다. 억새 군락지 정상은 팔각정이다. 정자 옆에 빨간 우체통 하나가 서 있다. 1년 뒤에 편지를 배달해 주는 느린 우체통이다. 하산은 책바위 쪽으로 내려선다. 우람한 자태의 암릉들을 보며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대한 암릉을 딛고 서니 발 아래 산정호수가 손거울처럼 작다. 수량도 바짝 줄었다. 40년 만이라는 최악의 가뭄이 그제야 실감난다. 포천에선 현무암들이 만든 풍경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아주 오래전, 북한 땅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리며 조탁한 풍경들이다. 이처럼 용암이 만든 풍경들만 모아 따로 ‘한탄 8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가운데 으뜸은 역시 비둘기낭(천연기념물 제537호)이다.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들이 만든 폭포다. 폭포수가 고인 비췻빛 소와 이를 감싼 검은 주상절리 절벽이 기이한 풍경을 펼쳐 낸다. 구라이골도 매우 독특하다. 창수면을 흐르는 운산천이 한탄강과 몸을 섞는 끝자락에 형성된 현무암 협곡이다. 구라이골은 둥근 공동(空洞)의 형태를 하고 있다. 평지 아래로 용암이 흐르며 파 놓은 흔적이다. 길이는 1㎞ 남짓하다. 글 사진 포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의정부역 앞에서 138-6번 버스가 산정호수까지 오간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나들목으로 나와 내촌을 거쳐 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43번 국도~의정부~포천~성동리~문암리 우회전~78번 지방도로~산정호수 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포천 하면 이동갈비다. 이동리 일대에 20여곳의 갈비집이 몰려 있다. 샘물매운탕(533-6880)은 메기매운탕만 파는 집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저녁에는 맛보기 쉽지 않다. 관인면 냉정리에 있다. 모내기(535-0960)는 쌈밥으로 이름났다. 포천시내 청성체육공원 앞에 있다. →잘 곳:가족 단위로 간다면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534-5500)가 제격이다. 온천수를 이용한 사우나 등 부대시설도 잘 갖춰졌다. 산정호수 바로 앞에 있다. 국립운악산자연휴양림(534-6330)도 예약이 쉽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숙소다. 산행의 피로는 온천욕으로 푸는 게 좋겠다. 일동제일유황온천(536-6000), 일동용암천(534-5500) 등이 널리 알려졌다. 온천수에 유황 성분이 많아 퀴퀴한 냄새는 나지만 수질은 좋은 편이다.
  • 남산 일대 성곽길 문화 놀이터로 변신

    남산 일대 성곽길 문화 놀이터로 변신

    서울 중구 다산동 성곽길 일대가 예술문화거리로 변신한다. 중구는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다산 팔각정에 이르는 1050m 규모 성곽길을 ‘성곽 예술문화거리’로 조성한다고 28일 밝혔다. 사적 제10호 서울성곽 인근에는 장충단공원 내 장충단비, 수표교, 승정전 등 문화재를 비롯해 남산, 장충체육관, 국립중앙극장 등 문화시설이 즐비하다. 하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낡은 주택이 밀집해 있고 휴식공간, 판매시설, 주차장 등이 부족해 관광객 유입에 한계가 있었다. 이로써 구는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모을 문화거점 공간과 다양한 문화행사 콘텐츠를 도입해 활기 넘치는 거리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구는 사업 첫 단계로 지난해 6월 문을 연 다산아트공영주차장의 지상 2~3층에 카페와 문화예술 놀이터인 ‘꼬레아트’를 설치해 거점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또 이 일대 무허가건물을 문화시설로 조성해 2단계 문화거점시설로 활용한다. 리모델링을 거쳐 하반기 중 갤러리, 북스튜디오, 디자인 스타트업 카페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2018년까지 성곽길 중간 지역에 지하 3층~지상 4층 규모의 공영주차장을 건립해 또 다른 문화거점시설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공연장, 전시공간, 교육장, 체험장 등이 들어선다. 성곽길 입구 녹지공간에 문화예술 전시장을 만든다. 구는 지역 문화재 및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전시실, 공방, 카페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민간 투자자를 적극 유치할 방침이다. 구는 이 같은 문화시설을 뒷받침할 공공지원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한다. 인근에 공영주차장을 건립해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을 폐지하고 주택 인접 지역에 보행전용 공간을 설치한다. 주민 주도 성곽예술문화거리 축제도 매년 개최할 계획이다. 최창식 구청장은 “다산동 성곽 예술문화거리 조성 외에도 한양도성과 인접한 지역의 숨은 명소를 발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서애대학문화거리, 광희문 문화마을, 남소영 복합문화거리, 남산주변(명동~회현동) 역사문화 거리 조성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 역사문화 유산을 발굴해 명동처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김효진-신세경-전혜빈 등 여배우 7인의 순백 화보

    김효진-신세경-전혜빈 등 여배우 7인의 순백 화보

    배우 김효진, 신세경, 전혜빈, 김소연, 도지원, 이윤지, 김향기 등 연예기획사 나무액터스의 여배우 7명이 친환경 라이프 특집 화보를 통해 청초한 매력을 발산했다. 화보 속 7명의 여배우는 순백의 옷을 입고 여신의 자태를 뽐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 김효진은 최근 ‘장수동 개지옥 사건’에 충격받아 유기견과 동물 보호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 하나하나에까지 관심을 두며, 자연스럽게 모피보다는 자연 소재의 옷을 입게 되었고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신세경은 ‘살아 있는 지구(Planet Earth)’라는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동물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자신의 노력이 분명 그 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며 소신을 전했다. 전혜빈은 동물 프로그램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핸드폰 케이스를 제작해 판매 수익금으로 유기견을 돕는가 하면, 유기견을 위한 화보 촬영에도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나무액터스 7명의 여배우가 참여한 그린 얼루어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4월호에서 만날 수 있으며, 친환경 삶의 방식을 독려하는 얼루어 그린캠페인 행사는 오는 4월 27일 서울 남산 N서울타워 팔각정 광장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진제공=얼루어 코리아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포토영상]김효진-신세경-전혜빈 등 여배우 7인의 순백 화보

    [오늘의 포토영상]김효진-신세경-전혜빈 등 여배우 7인의 순백 화보

    배우 김효진, 신세경, 전혜빈, 김소연, 도지원, 이윤지, 김향기 등 연예기획사 나무액터스의 여배우 7명이 친환경 라이프 특집 화보를 통해 청초한 매력을 발산했다. 화보 속 7명의 여배우는 순백의 옷을 입고 여신의 자태를 뽐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 김효진은 최근 ‘장수동 개지옥 사건’에 충격받아 유기견과 동물 보호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 하나하나에까지 관심을 두며, 자연스럽게 모피보다는 자연 소재의 옷을 입게 되었고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신세경은 ‘살아 있는 지구(Planet Earth)’라는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동물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자신의 노력이 분명 그 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며 소신을 전했다. 전혜빈은 동물 프로그램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핸드폰 케이스를 제작해 판매 수익금으로 유기견을 돕는가 하면, 유기견을 위한 화보 촬영에도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나무액터스 7명의 여배우가 참여한 그린 얼루어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4월호에서 만날 수 있으며, 친환경 삶의 방식을 독려하는 얼루어 그린캠페인 행사는 오는 4월 27일 서울 남산 N서울타워 팔각정 광장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진제공=얼루어 코리아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살랑살랑 봄바람 머무니 울긋불긋 달아 올랐네~

    살랑살랑 봄바람 머무니 울긋불긋 달아 올랐네~

    섬진강은 대한민국 ‘꽃전선’의 북상 경로다. 남해를 휘휘 돌아온 봄바람이 발 디딘 자리마다 매화와 산수유, 벚꽃, 배꽃 등이 줄지어 핀다. 전남 광양과 구례, 경남 하동 등 해마다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리는 곳들이 섬진강 자락에 몰려 있는 건 이런 이유다. 올해 산수유와 매화는 다소 늦다. 21일 이후에나 볼만하고, 이달 하순께 절정에 이를 듯하다. 먹거리도 덩달아 풍성해진다. 참게들이 소상하고, 재첩잡이가 기지개를 켠다. 벚굴(강굴)이 제 몸피를 한껏 키우는 것도 이맘때다. 눈이 즐겁고 입은 행복하니,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싶다. 섬진강에 봄 소식을 알려주는 꽃은 산수유다. 봄의 전령 자리를 두고 매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며 핀다. 산수유 감상 1번지로 꼽히는 구례에서도 가장 이름난 곳은 산동면 상위마을이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 산수유와 어우러져 풍경화를 그려낸다. 마을 안쪽의 오래된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이웃한 반곡마을은 계류와 어우러진 정취가 일품이다. 산수유 마을 전경을 보려면 상위마을 위쪽의 팔각정이나 산수유 사랑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한적한 꽃동네를 찾는다면 계천리 현천마을이 제격이다. 마을 입구 연못에 산수유꽃이 반영되는 풍경이 백미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마을이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떨어져 있다. 화엄사 각황전 옆의 홍매화도 놓칠 수 없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색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린다. 국보 35호인 4사자 삼층석탑 주변에는 동백꽃이 만개했다. 베풂의 정신을 실천한 99칸짜리 운조루, 구례 최고의 전망대 사성암 등도 잊지 말고 돌아보자. 구례를 지난 섬진강은 하동을 지나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한껏 그 폭을 넓힌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쯤부터 재첩이 익어간다. 재첩은 민물에서 자라고 바닷물에 맛이 든다. 기수역 위쪽에도 재첩은 있지만 어민들의 손길이 이르지는 않는다. 하동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가 야생 차밭이다. 꼭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특히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진 화개면 일대에 야생차 재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머지않아 차 애호가들의 ‘로망’ 우전차(곡우 전에 따는 차)가 나온다. 첫 수확한 찻잎을 덖을 때면 손 데는 줄 모르고 향기에 환장한다던 바로 그 차다. 남도 먹거리로 배를 채웠다 해도 차 한 잔 들어갈 여유는 그래서 남겨 둬야 한다. 쌍계사 인근에 차 시배지 비석이 있다. 화개골 끝자락엔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얽힌 칠불사가 있다.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이나 간다는 신비의 온돌 아자방(亞字房)도 만날 수 있다. 화개장터를 지나 차로 십분 쯤 하동 방면으로 내려가면 평사리 최 참판댁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기와집으로, TV드라마 ‘토지’ 세트장이었던 초가 20여 채와 더불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올라 앉으면 평사리 너른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담장 주변엔 영춘화(迎春花)와 매화, 산수유가 흐드러질 채비를 마쳤다. 최 참판댁에서 섬진교를 건너면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이다. 봄철 매화 꽃놀이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홍매는 벌써 빠알갛게 익었고, 청매는 이제 막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에 꽃들이 일찍 핀다고 호들갑이지만, 정작 자연의 시계는 더디거나 이르지 않게 꽃소식을 전하고 있다. 광양 끝자락의 망덕포구는 섬진강의 끝이자 남해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맘때면 한적했던 포구가 외지인들의 발걸음으로 들썩대기 시작한다. 벚굴 때문이다. 이른바 벚꽃 필 무렵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녀석으로, 크기가 건장한 남도 사내의 손바닥에 견줄 정도다. 보통 15∼30㎝, 큰 놈은 40㎝까지 자란다. ‘강굴’이라고도 불리는 벚굴은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 자생한다. 하동 쪽에서는 고전면 전도리의 신방, 선소, 전도마을, 광양 쪽에서는 망덕포구 일대가 주산지다. 제철은 2월부터 4월까지다. 5월 초까지도 먹는데, 그 이후는 독성이 생기기 시작해 채취를 하지 않는다. 망덕포구에선 정병욱(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가옥을 찾아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친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견된 고택이다. 2007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안내판은 “윤 시인이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건네준 육필 원고를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이 마루 밑에 숨겨 두었던 집”이라 적고 있다. 글 사진 구례·하동·광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구례·광양 061, 하동 055)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분기점에서 익산~포항간 고속도로를 탄 뒤 완주분기점에서 다시 완주~순천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구례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산수유와 만난 뒤 하동, 광양 순으로 돌아본다. 광양 망덕포구를 먼저 가겠다면 순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진월나들목으로, 하동 끝자락인 남해대교에서부터 되짚어 오겠다면 하동나들목으로 각각 나온다. 남해대교 주변에 신노량항, 남해 충렬사 등 볼거리가 많다. 하동 최참판댁은 입장료가 어른 1000원이다. →맛집:구례 사람들은 이맘때 참게를 ‘영등게’라 부른다. 음력 2월 영등철에 잡히는 참게를 이르는 말이다. 다리마다 살이 꽉 찬 참게는 주로 탕으로 먹는다. 섬진강 참게에 겨우내 말린 시래기 넣고, 된장 풀어 끓여낸다. 구례읍내에서 곡성으로 가는 섬진강변에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지리산회관 (782-3124), 노고단식당(782-2171), 노고단산장(782-1877) 등이 그중 유명한 참게탕집들이다. 구례읍내 영실봉(782-2833)은 갈치조림만 40년 넘게 해 온 집이다. 구례터미널 인근의 동아식당(782-5474)은 가오리찜과 족발탕이 유명하다. 하동에선 아무래도 재첩 잘하는 집을 찾게 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쪽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청송회식당(883-2485)과 혜성식당(883-2140)은 이십년 넘는 라이벌 맛집이다. 1990년대 화개장터에 이어 현 위치로 이사 온 뒤에도 대문을 마주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부흥재첩식당(884-3903)과 하옹촌(883-8261), 부두횟집(883-8288), 금양가든(884-1580) 등도 이름난 재첩 맛집들이다. 한국 3대 차 생산지로 꼽히는 화개 지역은 찻잎 파는 가게만 많고 정작 찻집은 보기 쉽지 않다. 산유화(884-5262)와 다우찻집(883-0765) 등이 정갈하다. 광양에선 벚굴(강굴)이 제철 음식이다. 주로 2~4월을 제철로 치는데, 망덕포구 일대 식당 십여 곳에서 구이와 찜 등을 낸다. 이름이 조금 알려지면서 가격은 많이 뛰었다. 광양읍사무소 뒤편 금목서(761-3300)는 등심과 생고기, 달달한 불고기 등으로 이름난 집. 반찬을 ‘남도 한정식 급’으로 가득 차려낸다. 도선국사마을 아래 옴서감서(762-9186)는 피리(피라미)탕을 잘한다. 예약해야 한다. 시내식당(763-0360), 대중식당(762-5670) 등도 광양불고기로 이름난 집들이다. →잘 곳:구례 쪽에선 지리산 화엄사 초입의 한화리조트, 산동면 산수유마을 맞은편의 지리산온천호텔(783-8100) 등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묵어가기 좋은 숙소다. 마산면의 전통 한옥 쌍산재(www.ssangsanje.com)도 이름난 한옥 스테이다. 하동 화개면의 쉬어가는 누각(884-0151∼2)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굿 스테이’ 숙박업소이다. 건물 앞쪽으로 섬진강 상류의 계곡물이 흐르고, 맞은편 산자락에는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다. 수류화개(882-7706)는 한옥 펜션이다. 화개장터에서 5분 거리다. 광양읍내 필레모 호텔(761-8700)은 깔끔해서 가족단위 투숙객들이 묵기 좋다.
  • 송해 “아들 보내고 낭떠러지 투신했는데 나뭇가지에 떨어져”

    송해 “아들 보내고 낭떠러지 투신했는데 나뭇가지에 떨어져”

    송해 송해 “아들 보내고 낭떠러지 투신했는데 나뭇가지에 떨어져”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1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그대가 꽃’에는 송해가 출연해 외아들을 잃은 슬픔에 자살시도를 한 겸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큰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바로 뛰어갔다. 수술실에서 새어 나온 아들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릴 들었다. 살려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죽고 나서 6일 동안 정신이 없었다”며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란 프로그램을 신나게 할 때였는데 암만 마음을 다잡고 부스에 들어가도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집안의 기둥이었다. 약수동에서 조금만 가면 남산 팔각정이다. 거기에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괴로운 마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뛰어내렸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런데 운명이 참 이상하다. 나뭇가지 위로 떨어졌다. 죽지 말라는 신호구나 싶었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 병원생활도 6개월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낭떠러지에서 투신 시도” 충격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낭떠러지에서 투신 시도” 충격

    송해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낭떠러지에서 투신 시도” 충격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1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그대가 꽃’에는 송해가 출연해 외아들을 잃은 슬픔에 자살시도를 한 겸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큰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바로 뛰어갔다. 수술실에서 새어 나온 아들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릴 들었다. 살려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죽고 나서 6일 동안 정신이 없었다”며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란 프로그램을 신나게 할 때였는데 암만 마음을 다잡고 부스에 들어가도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집안의 기둥이었다. 약수동에서 조금만 가면 남산 팔각정이다. 거기에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괴로운 마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뛰어내렸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런데 운명이 참 이상하다. 나뭇가지 위로 떨어졌다. 죽지 말라는 신호구나 싶었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 병원생활도 6개월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해 감동적인 사연 “아들 떠난 뒤 낭떠러지 투신” 대체 왜?

    송해 감동적인 사연 “아들 떠난 뒤 낭떠러지 투신” 대체 왜?

    송해 송해 감동적인 사연 “아들 떠난 뒤 낭떠러지 투신” 대체 왜?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1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그대가 꽃’에는 송해가 출연해 외아들을 잃은 슬픔에 자살시도를 한 겸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큰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바로 뛰어갔다. 수술실에서 새어 나온 아들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릴 들었다. 살려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죽고 나서 6일 동안 정신이 없었다”며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란 프로그램을 신나게 할 때였는데 암만 마음을 다잡고 부스에 들어가도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집안의 기둥이었다. 약수동에서 조금만 가면 남산 팔각정이다. 거기에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괴로운 마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뛰어내렸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런데 운명이 참 이상하다. 나뭇가지 위로 떨어졌다. 죽지 말라는 신호구나 싶었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 병원생활도 6개월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투신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충격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투신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충격

    송해 송해 “아들 떠나보낸 뒤 투신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충격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1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그대가 꽃’에는 송해가 출연해 외아들을 잃은 슬픔에 자살시도를 한 겸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큰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바로 뛰어갔다. 수술실에서 새어 나온 아들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릴 들었다. 살려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죽고 나서 6일 동안 정신이 없었다”며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란 프로그램을 신나게 할 때였는데 암만 마음을 다잡고 부스에 들어가도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집안의 기둥이었다. 약수동에서 조금만 가면 남산 팔각정이다. 거기에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괴로운 마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뛰어내렸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런데 운명이 참 이상하다. 나뭇가지 위로 떨어졌다. 죽지 말라는 신호구나 싶었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 병원생활도 6개월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지난해에 큰 맘 먹고 거금 120만원을 주고 3D TV를 샀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눈을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보는 TV에 ‘사치’를 부린 거죠.” 서울 강북 지역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A(55)씨의 ‘재산목록 1호’는 TV다. 3년간 매달 3만~4만원씩 모은 돈으로 최신 TV를 샀다. 그가 공사판에서 버는 한 달 수입(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치품’이다. 다른 가구들은 재활용센터 등에서 헐값에 사들이거나 버려진 걸 주워 왔지만 TV는 달랐다. 스포츠뿐 아니라 평소 즐겨 보는 SF 영화도 기존에 쓰던 구형 브라운관 TV 대신 3D TV로 보니 현장감이 훨씬 살아났다. A씨는 “TV가 없으면 딱히 낙이 없고 뉴스라도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서너 달 생활비 전부를 TV 사는 데 썼어도 별로 아깝지 않다”고 했다. 놀기 위해서는 돈과 여유가 필요하다. 먹고사느라 고달픈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래서 TV가 유일한 여가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저 켜놓는 것만으로도 온갖 ‘문화생활’을 브라운관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 B(76)씨에 비하면 A씨는 ‘호사스러운’ 축에 든다. B씨는 TV를 보고 싶어도 전기요금 걱정에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B씨가 단칸방에서 매일 아침 눈뜨는 시간은 오전 4시. 하지만 딱히 할 게 없다. 아직 밖이 깜깜해 산책할 수 없는 시간이다. TV라도 보고 싶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처지라 전기비 걱정에 잘 틀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10시쯤 동네 경로당을 찾는다. 거기서 인근 노인들과 어울리며 줄곧 TV를 시청한다. B씨는 “집에서는(공중파만 나와서) 채널이 몇 개 안 되지만(케이블 채널을 갖춘) 경로당 TV는 채널이 많아서 더 볼 게 많다”면서 “저녁 때 집에 오면 밥 먹으면서 TV를 잠깐 보다가 끄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경기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C(83·여)씨는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TV 시청이다. 하지만 낮 대신 밤에만 본다.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기에는 전기요금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C씨는 “오후 6시 이후 3시간이 TV 시청 시간”이라면서 “TV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공중파에서는) 늦게 영화를 틀어 주니까 요즘엔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빈곤층은 PC방에서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매입임대빌라에 사는 D(45)씨는 2주에 한 번꼴로 일 없는 날을 골라 PC방에서 ‘게임 데이’를 즐긴다. 보통 한 번 가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한때 20시간 연속으로 죽치고 앉아 게임에 몰입한 적도 있다. 1만원이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컵라면 등 간식을 먹어도 2만원이면 하루를 날 수 있다. D씨는 “게임방에서 오락을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가 있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게임 도중 채팅에서 만난 사람 소개로 경기 인근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막노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 빈곤층은 제대로 된 여행을 꿈꾸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비수급 빈곤층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번 이상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빈곤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은 98.0%로, 전체 가구 평균(22.4%)의 4배가 넘는다. C씨는 평생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명절 때 고향인 광주를 오고 간 것 외에는 순전히 여가를 위해 버스 등을 타고 나간 적이 없다. 더욱이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요즘 들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재작년 노인복지관에서 여는 무료 나들이에 따라 갔다가 몸살이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 지냈다”면서 “사는 게 심심하고 따분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라고 했다. 빈곤층 아이들 역시 여행이나 나들이를 쉽게 가지 못한다. 부모가 형편이 안 되는 데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 때문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짬이 없는 탓이다. 아름다운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서울 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강에서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강에 처음 와봤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쉽사리 가지 못하는 빈곤층의 약점을 노리는 ‘사기’도 종종 벌어진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빈곤층 E(74·여)씨는 지난가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낯선 이들이 E씨가 자주 가는 동네 경로당을 찾아 “공짜로 세종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전세버스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E씨와 주변 노인들은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곳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 외곽의 허름한 가건물 강의실이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앉힌 뒤 녹용과 옥장판 등을 파는 강의를 4시간 넘게 진행했다.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자꾸 이러면 못 간다”며 윽박질렀다. E씨는 “강의와 호객 행위가 끝난 뒤 차로 다시 경로당에 데려다준 게 다행이었다”면서 “그 이후에는 누가 ‘공짜 여행을 보내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따라간다”고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는 수준을 도와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지원 시스템으로는 빈곤층이 여가라는 걸 누릴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정보 검색’에 능한 빈곤층 중 복지단체에서 지원하는 무료 여행의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 싱글맘 E(40)씨는 2013년 여름 강원도 속초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왔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과 2살 딸 외에 100일이 갓 지난 막내딸까지 네 식구가 함께했다. 그러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모 복지재단이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주최한 여름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숙박과 교통, 식사비 일체를 무료로 제공했다. 앞서 그녀는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이 역시 싱글맘 관련 협회의 후원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E씨 역시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E씨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서 “집에만 있는 애들을 생각하면 무료 여행을 갈 좋은 기회가 없을까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E씨는 미혼모 관련 협회가 여는 ‘부모 교육’ 강의를 20차례 수강하면 제주도 여행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덕택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관람도 빈곤층에게는 쉽지 않다. 노년 빈곤층에서는 최근 수십년간 영화관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특히 한창 영화 관람에 맛을 들일 젊은 층이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스튜던트 푸어’ F(27)씨는 밥 먹을 돈을 아껴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애호가다. 하지만 영화 관람비는 지갑이 가벼운 그에게 큰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신 스크린을 적게 내거는 군소 영화관에 주로 간다. F씨는 “멀티플렉스는 관람비는 1만원에 가깝지만 단관 극장은 6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면서 “이것조차 부담스러우면 인터넷으로 영화 파일을 공짜로 내려받아 본다”고 했다. SF 영화를 즐겨 보는 G(34)씨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원이나 내야 하니 최근 6년간 극장 문턱도 밟지 못했다”면서 “대신 가끔 동대문시장 등에서 복제한 최신 영화 DVD를 5편에 1만원 주고 사서 집에서 본다”고 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예나 지금이나 빈곤 노년층의 놀이터다. 강서구에 사는 H(82)씨도 매일같이 정오쯤 탑골공원으로 출근한다. 공원 팔각정 주변에 자리 잡은 뒤 허리에 찬 소형 카세트 라디오를 들으며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다. 팔각정에 앉아서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달 소득이 국민연금 40만원에 노인연금 16만원 정도가 고작인 처지라 탑골공원 만큼 ‘경제적인’ 소일거리 공간이 없다. 주변 식당들의 밥값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키면 6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한두시간은 훌쩍 간다. H씨는 “지하철 요금은 공짜이니 밥값 정도를 빼면 돈이 별로 들 일이 없다”면서 “날씨가 좋을 때는 청와대 앞까지도 놀러간다”고 했다. I(71)씨도 매일 아침 경기도 성남에서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터줏대감’이다. 그는 “밖에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면 한 달 용돈은 10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잠실 석촌호수 부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라고 했다. 봉사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빈곤 노년층도 일부 보인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J(82·여)씨는 10년째 지역 노인복지센터 뜨개질 교실에서 다른 노년층을 가르친다. 그녀는 “그냥 놀 바에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훨씬 보람 있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지친 몸에 활기 ‘친환경 생태 조경’ 뜬다

    지친 몸에 활기 ‘친환경 생태 조경’ 뜬다

    “조경이 별로면 선택지에서 지워지죠. 요즘 웬만한 아파트는 내부 구조가 별 차이 없거든요.” 집을 알아보고 있는 직장인 이모(32)씨는 새집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조경을 꼽는다. 팍팍한 일상에서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하고 지친 몸에 활기를 채워 주는 휴식 공간은 소비자들이 삶의 터전을 선택하고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기준이 돼 가고 있다. 건설사들이 아파트든 상가든 건물을 지을 때 친환경 생태 조경에 공들이는 이유다. GS건설은 오는 31일 분양 예정인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센트럴자이에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 교수인 니얼 커크우드 교수가 설계하는 기후변화 대응형 생태 조경을 선보인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커크우드 교수는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기술환경센터(CTE) 설립을 주도하는 등 도시 디자인 분야의 선두주자다. 커크우드 교수는 단지 조경 전체를 자연 그대로 살리면서 인공미를 최대한 배제한 생태 조경을 만든다는 복안이다. 단지 외곽에는 0.7㎞의 완충녹지를 만들고 흙길로 포장된 1㎞의 ‘에코로드’, 빗물로 만드는 생태연못 ‘크리스털 폰드’, 가족 캠핑장과 직접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자이텃밭’ 등을 구성한다. 대우건설도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들에 조경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24일 분양을 시작한 충남 천안 레이크타운 푸르지오와 경기 양주신도시 푸르지오 모두 ‘로맨스 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실버세대 맞춤형 생태 조경을 만들 예정이다. 거동의 불편함을 고려해 잡고 이동할 수 있는 핸드레일을 만들었다.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장독과 항아리를 배치해 된장, 간장 등을 직접 담그거나 배추, 화초를 가꿀 수 있도록 텃밭을 설계했다. 상가나 직장인을 위한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4일 오픈한 롯데건설의 서울 덕수궁 롯데캐슬 상가 ‘뜨락’은 인근 한양도성길 방문객을 단지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해 덕수궁과 단지를 잇는 공간에 팔각정자, 돌담 등 전통미를 강조한 어린이공원을 만들었다. 또 계절별 색상에 맞는 식재나 수목을 사계절별로 조성할 수 있는 이동식 텃밭도 만든다. 허리 부담을 줄여주고 공간 활용이 좋은 이동식 플랜터(대형 화분)는 내년 8월 입주 예정인 대구 수성롯데캐슬 더퍼스트부터 적용한다. 대명건설이 서울 송파구 문정지구에 짓는 ‘문정역 대명벨리온’ 지식산업센터의 옥상정원은 다양한 나무, 야외 테이블 등을 설치해 회의뿐 아니라 바비큐 파티까지 즐길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구로 올레길에서 힐링해요

    구로 올레길에서 힐링해요

    주말 가족·이웃과 함께 도심 속 명품 올레길을 걸어보세요. 구로구는 지역 체육회와 함께 11일 명품 구로올레길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가족단위로 건강한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명품 구로올레길 3, 4코스 걷기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특히 새로 만들어진 코스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주민들도 많아 이번 행사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휴식공간을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명품 구로올레길은 산림, 하천, 도심을 연결해 만든 총 길이 28.5㎞의 산책로다. 2011년 11월 착공해 2012년 말 산림형 1코스(계남근린공원), 2코스(매봉산~와룡산) 3코스(천왕산), 2013년 말에 하천형 3개 코스(안양천, 도림천, 목감천)를 완공했다. 올해 5월에는 도심형 2개 코스(중앙로, 디지털로)와 산림형 4코스(개웅산)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올레길 걷기대회는 오전 8시 푸른수목원을 출발해 천왕산, 생태터널, 개웅산 팔각정을 지나 천왕2지구 학교예정부지 광장으로 연결되는 산림형 3, 4코스에서 진행된다. 총 길이 2.2㎞로 소요시간은 약 1시간이다. 걷기 행사 후에는 천왕2지구 학교예정부지 광장에서 푸짐한 경품 추천 행사도 마련된다. 참여를 원하는 이는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당일 행사장으로 방문하면 된다. 구 관계자는 “걷기 코스가 완만하고 경관이 뛰어나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즐길 수 있다”면서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란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도로에서 시간 버리는 휴가는 그만… 경남 마산 기차로 떠나 볼까

    도로에서 시간 버리는 휴가는 그만… 경남 마산 기차로 떠나 볼까

    거리가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흔하다. 먼 거리를 장시간 운전해서 다녀와야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절정의 휴가철에 승용차로 이동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데 기차라면 다를 수 있다. 이동할 때만큼은 두 손과 두 발이 자유로우니 말이다. 그렇게 경남 마산(현 창원)을 다녀왔다. 현지에서의 이동은 카셰어링으로 해결했다. ●귀머거리 남편의 애틋함… 무학산 만날고개 옛 마산은 독특한 곳이다. 빼어난 산과 바다, 그리고 19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낡은 골목 풍경이 어우러져 있다. 먹거리도 풍성하다. 마산어시장에서 쏟아 내는 싱싱한 해산물이 마산 맛의 근간이다. ‘맛라도’라 불리는 전라도와 견줄 만하지 싶다. 여정의 첫걸음은 무학산(舞鶴山·761m)이다. 무학산 둘레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마산의 전경을 굽어보자는 뜻이다. 무학산은 마산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진산이다. 둘레길은 무학산 능선을 따라 21㎞가량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시간과 체력을 안배해야 하는 외지인은 핵심 구간만 선택해 걸을 수도 있다. 대개의 도보꾼들은 만날고개에서 팔각정까지 왕복 코스, 또는 서원곡 유원지나 봉화산 봉국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호한다. 만날고개에서 서원곡 유원지까지는 세 시간 안팎, 봉국사까지는 네 시간 안쪽에 닿는다. 시간이 없다면 만날고개 인근의 편백숲까지만이라도 발걸음하길 권한다. 만날고개는 딸을 귀머거리에게 시집보내야 했던 어미와 청상과부가 된 딸,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린 귀머거리 남편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곳이다. 지금도 이 전설을 토대로 해마다 음력 8월 17~18일에 만날고개 일대에서 ‘만날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추석날에 이웃과 갖던 만남 행사였는데 이제 이 지역의 대표 민속축제로 자리 잡았다. 마산을 찾은 날,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이런 날씨에도 모기는 쉼 없이 달려든다. 기피제를 뿌려도 별무신통이다. 숲은 깊다. 장끼와 까투리가 고개 하나 돌 때마다 푸드덕대며 난다.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두꺼비도 곧잘 눈에 띈다. 무엇보다 편백숲이 인상적이다. 둘레길 곳곳에 편백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만날공원 왼쪽과 무학농장 일대엔 편백숲 삼림욕장도 조성돼 있다. 무려 1만그루에 달하는 편백나무가 식재됐다고 한다. 둘레길에서 보는 마산은 확실히 남다르다. 곳곳에서 쇠락한 항도의 서정과 마주할 수 있다. 길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지만 간혹 된비알도 만난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가고파 꼬부랑길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은 ‘골목길 투어’에 맞춤한 곳. 성호동 달동네의 452m 골목길을 벽화로 다듬었다. 좁디좁은 골목이지만 어디서나 마산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오션 뷰’다. 무학산 둘레길의 서원곡 유원지 코스 아래에 있다. 벽화마을 아래엔 옛 임항선(臨港線) 철길이 남아 있다. 전북 군산의 경암동 철길처럼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는 철로다. 예전엔 마산항 제1부두선, 또는 마산임항선 등으로 불렸다. 마산항에서 석탄과 부두화물 등을 싣고 도심을 가로지르다 보니 당연히 시민들에겐 불편하고 위험한 길이었을 터. 철길은 2011년 폐선됐고, 요즘은 주민들이 산책로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철길이 새로 얻은 이름은 ‘그린 웨이’다. 아마 낡은 잔재를 털고 푸르고 밝은 길로 조성하겠다는 뜻을 담았을 텐데 정체성을 잃은 영어식 이름을 듣자니 쓴웃음만 거푸 나온다. 옛 철길의 길이는 5.5㎞다. 주변에 코스모스 등의 꽃을 심고 조형물도 세웠다. 번듯해진 철길 대신 낡은 풍경을 보고 싶다면 성호동 쪽으로 가면 된다. 이 구간도 분단장한 흔적은 역력하지만 철길 주변의 옛집 등에서 희미하게나마 옛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사계절 꽃향기가 솔솔… 황금 돼지섬 ‘돝섬’ 마산 앞바다엔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다. 돝섬이다. ‘돝’은 ‘돼지’의 옛말이다. 김해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이 섬에 들어와 금빛 돼지로 변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황금돼지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섬은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화계원과 3.2㎞의 산책로, 마창대교와 어우러진 출렁다리, 공작 등 새들을 사육하는 조류원 등으로 이뤄졌다.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작품 20점도 전시돼 있다. 산책로는 해안길(1.4㎞)과 숲속길(1.8㎞)로 나뉜다. 걷는 데 각각 40여분쯤 걸린다. 바다와 산을 훑어보았다면 이제 허기진 배를 채울 차례다. 마산은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맛집 순례를 여행 아이템으로 삼아도 될 정도다. 중심지는 마산어시장이다. 예서 반경 1㎞ 안에 맛집이 수두룩하다. 마산의 별미로 꼽히는 아귀찜을 먹기 위해서는 오동동 ‘아구찜거리’로 가야 한다. 표준어는 아귀찜이지만, 마산에서는 어디를 가도 ‘아구찜’이라 부른다. 마산 아귀찜은 한겨울 찬바람에 20~30일 말린 아귀가 주재료다. 요즘 식감 좋은 생아귀를 쓰는 경우도 많은데 토박이들이 권하는 아귀찜 재료는 단연 육질 단단하고 쫄깃한 말린 아귀다. 말린 아귀를 요리 직전에 불려 콩나물, 미더덕을 넣고 재래식 된장과 고춧가루로 버무려서 쪄 낸다. ●눈과 배를 채워 줄 쫄깃한 아귀· 개운한 복 맑은탕 아구찜거리 아래쪽엔 복거리가 형성돼 있다. 매콤한 매운탕도 좋지만 개운한 국물 맛으로 보자면 역시 맑은 탕이 제격이다. 가격도 무난한 편. 가장 싼 은복은 1인분 8000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까치복은 1만 5000원 정도다. 참복은 2만원, 복껍질무침도 1만원 안팎에 맛볼 수 있다. 장어골목은 어시장에서 큰길 건너 바닷가를 끼고 형성돼 있다. 족히 400~500m 정도 되는 거리 양쪽에 장어집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다. 글 사진 창원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유카(www.youcar.co.kr)는 코레일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카셰어링 프로그램이다. 30분 단위로 쪼개 차를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렌터카와 다소 다르다. 유카 거점은 전국 67개 역에 마련돼 있다. 보유 차량은 150대. 경차 레이와 소형차 프라이드가 운행되고 있다. 프라이드(휘발유) 차량의 경우 표준요금은 시간당 7700원이다. 유카 회원은 성수기와 비수기, 주말과 주중에 따라 다양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유카 이용자와 유카 회원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앱 스토어에서 유카 앱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에 깔아야 차 문을 여닫는 스마트 키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이용할 경우엔 일일 요금이 적용된다. 이 기준에 따라 목요일 오후 1시에 차를 빌려 이튿날 오후 6시 30분 반환했을 때 카셰어링 요금은 8만 9140원이었다. 총 29시간 30분을 쓴 비용이다. 여기에 유류비가 가산된다. 차 안에 비치된 신용카드로 먼저 주유를 하면 비용은 유카 회원 등록 시 함께 등록한 신용카드(법인카드도 가능)로 나중에 결제된다. 결제액은 주유량과 관계없이 자신이 운행한 총거리에 ㎞당 190원을 곱한 금액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2명까지는 기차가 승용차보다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할 것”이라며 “10시간 이상 유카를 이용하면 렌터카보다 비용이 비싸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에서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강점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반드시 차를 빌린 역에 반납해야 한다. 돝섬까지는 월포동 돝섬유람선터미널에서 오전 9시부터 30분 단위로 유람선이 오간다. 소요 시간은 10분 남짓. 선비는 왕복 6000원이다. →잘 곳 온천욕을 겸하고 싶다면 마금산 근처 북면온천 단지를 찾으면 된다. 다만 관광지가 몰린 마산합포구 등과 떨어져 있어 오가는 데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수 있다. 시내에선 돝섬유람선터미널 주변에 깔끔한 모텔이 몰려 있다.
  • 남산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

    남산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

    25일 서울 용산구 남산 N서울타워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2014 아디다스 락스타 서울 볼더링 대회’에서 세계적인 클라이머 샤샤 디줄리안(오른쪽)과 국내 남자 랭킹 1위 민현빈(왼쪽) 선수가 볼더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볼더링이란 6∼7m가량의 돌출된 바위를 전문적인 장비 없이 오르는 것을 말한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교통, 자연, 배후수요 삼박자 갖춘 ‘영천 가와인’ 할인 분양

    교통, 자연, 배후수요 삼박자 갖춘 ‘영천 가와인’ 할인 분양

    통일그룹 계열 선원건설이 경북 영천시 경부고속도로 영천IC 인근에 공급하는 영천 가와인(家와人) 아파트가 최대 20% 할인 분양에 나서 수요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경북 영천시 봉동 304번지 일대에 들어서는 영천 가와인 아파트는 지하 1층~지상 15층 8개 동 규모다. 전용면적 59㎡ 125세대, 84㎡ 144세대, 84㎡ 150세대, 84㎡ 54세대 등 4개 주택형이며 총 473세대로 구성됐다. 특히 영천 가와인은 인근에 산업단지가 여럿 조성돼 배후수요가 풍부한 편이다. 뿐만 아니라 편리한 시내∙외 교통망을 갖추고 있으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기에 트인 경관을 누릴 수 있어 교통과 자연, 배후수요 등을 갖췄다는 평이다. 단지는 경부고속도로 영천IC 바로 앞에 위치해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을 이용해 전국 어느 곳으로도 이동이 용이하다. 또한 중앙선과 대구선이 교차하는 자리에 입지해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라 볼 수 있다. 영천 가와인 측은 입주민들이 편리하게 시내를 오갈 수 있도록 단지와 영천 시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기증할 계획이다. 제 2탄약창의 일부 이전 계획에 따라 신설되는 직선도로(2.5km)가 완공되면 영천도심까지 5분이면 도달할 수 있어 시내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영천 가와인 아파트는 친환경 단지로 조성된다. 아파트 주변으로 높은 건물이 없으며 남향 위주로 단지를 배치해 조망권과 일조권을 확보했다. 단지 내에도 녹지공간이 조성되며 주민편의시설인 어린이 놀이터, 팔각정, 휴게공간 등이 들어선다. 주차 공간은 총 477대를 주차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또한 타워형과 판상형을 조화롭게 배치해 타워형 세대는 2면 개방으로 조망권을 확보했다. 판상형 세대는 3BAY 및 3.5BAY로 채광과 통풍을 높여 쾌적한 주거공간을 확보했다. 세대별로 원격 검침 시스템과 일괄 소등 시스템 그리고 주차관제 및 차량도착 알림 시스템과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비롯한 첨단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주민들의 편의를 배려했다. 배후수요도 풍부한 편이다. 단지 인근에 위치한 본촌농공단지를 비롯해 영천IC 인근에는 채신공단, 영천일반산업단지, 채신2공단 등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어 근로자를 비롯한 직장인들의 주택 수요가 있다. 우수특구로 지정된 한방진흥특구와 도남농공단지 및 영천일반산업단지가 사업지에 인접해 있어 아파트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관계자는 “영천시는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 계획에 따른 향후 미래가치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영천 가와인 아파트는 최대 20%할인 분양을 실시, 가구당 약 3,000만~4,000만원 정도 분양 프리미엄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돼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모델하우스는 경북 영천시 영천역 앞에 있으며 분양가는 3.3㎡ 당 440만원 대 부터다. 계약조건은 계약금 5%, 중도금 60% 무이자융자를 지원하며 입주는 2014년 6월 예정이다. 문의 : 054-338-2266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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