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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너를 보니 봄… 섬진강 따라 남도 밝히는 꽃등불

    그래, 너를 보니 봄… 섬진강 따라 남도 밝히는 꽃등불

    바야흐로 봄꽃들이 흐드러질 때다. 매화는 벌써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산수유꽃도 노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달 하순께면 ‘꽃전선의 북상경로’ 섬진강을 따라 남도 전역에서 꽃등불이 켜질 전망이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봄꽃 축제는 취소됐다.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의 확산 우려 탓이다. 그래도 봄꽃 감상에는 문제가 없다. 사람이 만든 일정이 취소됐을 뿐 자연의 프로그램은 변함없이 진행된다.광양 섬진마을 달콤한 벚굴 한입 화신(花信)의 봉홧불은 전남 광양의 섬진마을(매화마을)이 켜 든다. 국내 최대 매화 군락지다. 섬진강을 따라 수만 그루의 매화가 꽃물결을 이룬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역시 청매실농원이다. 농원에 들면 희고 붉고 푸릇한 꽃망울들이 객을 반긴다. 비탈진 언덕엔 수업이 많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세트장이었던 초가집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구름처럼 피어난 매화꽃과 섬진강, 그리고 강 건너 하동의 평사리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강변 드라이브도 제격이다. 진월에서 월길, 신구, 신아 등의 마을들을 지날 때마다 화사한 매화꽃이 반긴다. 이맘때 광양에서라면 벚굴을 맛봐야 한다. 벚꽃 필 무렵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녀석이다. 몸피가 건장한 남도 사내의 손바닥을 넘어설 정도로 크다. 제철은 2월부터 4월까지다. 5월 초까지도 먹는데, 그 이후는 독성이 생기기 시작해 채취를 하지 않는다. 광양 끝자락의 망덕포구가 주산지다.하동 녹색 융단이 품은 단아한 매화 섬진강 너머 경남 하동 땅에서 맞는 매화 향도 범상치 않다. 특히 청매실농원과 섬진강을 두고 마주한 흥룡리 흥룡마을과 먹점마을 등이 소문난 매화마을이다. 지리산 골짜기와 밭두렁, 고샅길과 개울가 등이 온통 매화나무다. 하동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특히 인상적인 풍경이 야생 차밭이다. 꼭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이맘때면 야생 차밭 사이사이에 매화꽃이 핀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자태가 일품이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로 알려진 화개면 일대에 야생차 재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시대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머지않아 차 애호가들의 ‘로망’ 우전차(곡우 전에 따는 차)가 나온다. 첫 수확한 찻잎을 덖을 때면 손 데는 줄 모르고 향기에 환장한다던 바로 그 차다. 남도 먹거리로 배를 채웠다 해도 차 한 잔 들어갈 여유는 그래서 남겨 둬야 한다.구례 돌담길 감싸안은 산수유의 여유 전남 구례는 국내 ‘산수유 감상 1번지’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 마을들이 몰려 있다. 가장 이름난 곳은 상위마을이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 산수유꽃과 어우러져 풍경화를 그려 낸다. 마을 안쪽의 오래된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이웃한 반곡마을은 계류 사이에 핀 산수유꽃이 일품이다. 산수유 마을 전경은 상위마을 위쪽의 팔각정이나 산수유 사랑공원 전망대에서 보면 된다. 계천리 현전마을에선 한적하게 산수유꽃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 입구 연못에 산수유꽃이 반영되는 풍경이 백미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곳이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떨어져 있다. 3월 말~4월 초 사이에 구례를 찾을 예정이라면 화엄사 각황전 옆의 홍매화를 놓쳐선 안 된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 중건을 기념해 심었다는데, 색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린다.순천 선암사 휘감은 깊고 진한 매향 전남 순천에선 봄꽃과 어우러진 절집을 찾아야 한다. 봄의 선암사는 ‘화훼사찰’이라 불린다. 200년 된 영산홍과 300년 된 철쭉, 목련 등이 번갈아 피고 진다. 특히 절집의 내력만큼이나 오래된 매화가 많다. 각황전 담장을 따라 핀 늙은 매화들의 자태가 일품이다. 이달 말부터 새달 초순께면 흙 담장을 따라 홍매와 백매, 청매 등의 매화가 일제히 꽃등불을 켠다. 620년 이상 살았다는 ‘선암매’와 각황전 돌담길의 550살 홍매 등은 천연기념물(488호)이다. 송광사는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와 마주하고 있다. 덜 알려졌을 뿐 송광사에도 늙은 매화는 있다. 이른바 ‘송광매’로, 대웅전 앞마당 오르는 계단 옆을 지키고 섰다. 수령은 200년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는 바닥에서 다섯 가지로 뻗어 올랐다. 호사가들은 이를 보고 오지벽매(五枝碧梅)라 부르기도 한다. 봄의 송광사를 꽃대궐로 만드는 건 산수유다. 당우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의성 마늘밭 바라보는 산수유의 미소 경북 의성의 숲실마을도 산수유 군락지로 이름난 곳이다. 숲실마을은 다래덩굴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골이 깊고 벼농사가 잘된다고 해서 화곡(禾谷),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풍년이 든다고 해서 전풍(全豊)이라고도 불렸다. 요즘엔 산수유 꽃피는 마을로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화전2리에서 3리에 이르는 십리길이 온통 산수유꽃 일색이다. 이 일대의 산수유는 수령이 얼추 300년을 오르내린다. 늙은 나무들이 전하는 풍경의 깊이와 기품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3만여 그루에 달하는 산수유 노거수들이 화석 같은 나뭇가지에서 노란색 꽃을 틔워 내는 모습은 어디서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노란 산수유꽃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것이 연초록의 마늘밭이다. 노란색이나 초록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화사한 풍경을 연출한다. 양반마을로 이름난 산운마을, 이웃한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405호) 등도 묶어 돌아보면 좋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광진구, 3억원 들여 등산로 2.9㎞ 새단장

    광진구, 3억원 들여 등산로 2.9㎞ 새단장

    “쾌적하고 안전한 등산은 우리 구가 으뜸입니다.”서울 광진구는 도심 속 쉼터인 ‘근교산 등산로 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태풍 등 자연재해와 많은 이용객 탓에 훼손된 등산로를 체계적으로 가꿔 주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광진구는 올해 3억여원을 투입해 고구려정길·해맞이길(1.4㎞), 팔각정길(0.9㎞), 아차산 둘레길(0.6㎞) 등 2.9㎞를 정비한다. 계단·펜스 설치, 노후 시설물 교체 등을 한다. 오는 7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해엔 2억 5000만원을 들여 아차산성길 등 7㎞를 새로 가꿨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친환경적으로 정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등산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등산로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붉은 닭의 첫 울음, 정유년 새 아침 깨운다

    붉은 닭의 첫 울음, 정유년 새 아침 깨운다

    기상청, 1월 1일 ‘구름 조금’ 예보 전국 대부분 일출·일몰 관측 가능 AI 확산 우려… 탐방 자제 요청도 지진, 폭염, ‘최순실 국정 농단’, 대통령 탄핵 등 한 해 동안 국민의 어깨를 짓눌렀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있다. 한쪽에서는 붉은 닭의 기운을 품은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국정 안정, 경기 회복, 가족 건강, 취업, 시험 합격 등 새로운 희망을 기원하는 국민의 마음은 벌써 일출 명소로 향하고 있다. 다만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적으로 확산해 중앙·지방정부 모두 해돋이 명소 탐방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정유년 새해 첫 일출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올해 마지막 날 해넘이도 구름 사이로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새해 첫날인 1월 1일 전국 날씨를 ‘구름 조금’으로 예보했다. ●한반도 가장 이른 해 뜨는 울산 간절곶 28일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정유년 새해 첫 일출은 2017년 1월 1일 오전 7시 31분 울산 간절곶에서 시작된다. 울산 간절곶, 부산 해운대, 포항 호미곶, 강릉 정동진, 제주 성산일출봉 등에는 각각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해돋이를 즐길 것으로 예상한다. 병신년 마지막 해는 오는 31일 오후 5시 40분 전남 신안 가거도에서 볼 수 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는 말로 유명한 울산 간절곶은 한반도 육지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 해마다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광객은 매년 12월 31일 밤부터 새해 첫날 아침까지 하룻밤을 꼬박 새워 해를 맞는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경기 회복, 가족의 건강, 자녀의 취직, 연인의 사랑, 학생 수능 합격 등을 기원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소망우체통에 엽서를 보내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속설도 있다. ‘2017년 해돋이 행사’는 AI로 취소됐지만, 편의시설은 정상 운영된다. ●부산 해운대·통영 미륵산·포항 호미곶 부산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함께 즐길 수 있다. ‘2017 해맞이 부산축제’가 해운대에서 열린다. 해운대 백사장에 모인 관광객들은 새해 첫해를 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뜨거운 마음을 바다수영으로 식히기도 한다. 해맞이 행사는 축하 공연, 새해 인사, 해맞이 감상, 헬기 축하비행, 바다수영 순으로 진행된다. 경남 통영의 미륵산 케이블카에서 맞는 일출도 명품이다. 정유년 첫날 케이블카 탑승권을 1일 오전 5시부터 판매하고, 탑승은 오전 6시부터다. 탑승 예약은 받지 않는다. 1인당 구매 한도도 50장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미륵산에 올라 보는 일출이 장관이다. 해발 1915m의 지리산 천왕봉에선 7시 35분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다. 지리산 모든 대피소의 ‘31일 숙박 예약’은 이미 끝났다. 경북 포항 호미곶도 전국적인 해돋이 명소다. 매년 새해 첫날 10만명 이상이 호미곶을 찾아 붉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새해 희망을 기원했다. 올해는 AI로 해맞이 행사를 취소했다. 포항시는 1일 새벽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을 대비해 호미곶 새천년광장 일대에 차량 안내원과 안전요원들을 배치한다. ●강릉선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행사 강릉 경포 해변 특설무대에서는 해넘이·해돋이 행사가 이어진다.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기원 오륜기 촛불 밝히기, 무사 기원 신년 운세 보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선보인다.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에서는 지름 8.06m, 폭 3.20m, 모래 무게 8t로 세계 최대 규모의 모래시계 시간을 다시 돌리는 모래시계 회전식이 새해 첫날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열린다. 속초 해변에서는 오징어채낚기 어선 해상 퍼레이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붐 조성 문화도민카페 등 관람객을 위한 부대행사가 진행된다. 동해 망상해변, 양양 낙산 해변, 등에서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제주 한라산·고흥 팔영산 코스도 인기 제주 한라산에서도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다. 정유년 첫해를 맞으려는 탐방객을 위해 1월 1일 0시부터 성판악 탐방로를 개방한다. 1950m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 정상에 올라서면 제주 전역에 있는 360여개의 봉긋한 오름과 그 사이로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성판악 탐방로를 제외한 나머지 탐방로는 오전 6시 이전 입산을 제한한다. 제주 올레길 일출도 매력적이다. 특히 제주올레 1코스가 장관이다. 1코스 말미오름 정상에서는 성산 일출봉 앞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과 만날 수 있다. 전남 고흥의 해돋이도 좋다. 고흥 1경 팔영산에서 편백건강숲, 남포미술관, 우주발사전망대, 커피마을, 중산일몰전망대로 이어지는 1박 2일 코스가 인기다. 우주발사전망대에는 연간 수십만명이 찾는 명소다. 해돋이 이후에는 커피마을에서 한국산 커피를 맛보면 좋다. 해남 땅끝전망대에서는 일출, 일몰을 한 장소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서울 도심 곳곳서도 ‘소원 빌기’ 등 행사 서울에도 수백만명의 인파가 몰려 일출을 즐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서울 도심에 있는 남산과 인왕산에서는 소망 박 터트리기, 가훈 써 주기, 소원지 작성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남산 팔각정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관광 명소로, 합창 및 중창단 공연, 주민 새해소망 영상, 소원지 작성 등을 마련한다. 인왕산 청운공원에서는 풍물패 공연을 시작으로 소망박 터트리기, 가훈 써 주기 등을 진행한다. 서울 도심의 해맞이 행사 장소로는 성동구 응봉산, 동대문구 배봉산, 성북구 개운산, 서대문구 안산, 양천구 용왕산, 강서구 개화산 등이 있다. 응봉산 팔각정은 한강, 서울숲, 잠실운동장 등 서울 동부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으로 해맞이 장소로 제격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강남·서초·중구 “새해 해맞이 오세요”

    2017년 정유년 새해 해맞이를 서울 강남권에서 다채롭게 준비했다. 강남구는 새해 첫날 해발 293m 대모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를 한다고 27일 밝혔다. 대모산은 강남구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지역주민 1000여명이 매년 새해 가족과 함께 찾고 있다. 구는 산 정상에서 ‘대북 타고’ 행사, 한 해 나라·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축하박 세리머니’로 새해 의미를 되새길 계획이다. 사랑의 우체통에 연하장 쓰기, 소원지 쓰기 등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신연희 구청장과 구 체육회는 행사가 끝난 뒤 주민들과 떡국을 나눠 먹는 시간도 마련했다. 신 구청장은 “2017년은 육십갑자 중 붉은 닭의 해로, 부지런한 닭의 기운처럼 현안사업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는 한 해가 되길 빈다”고 말했다. 서초구민들은 산세가 평탄한 우면산을 오르며 새해 소망을 빌 수 있다. 서울시 교육연수원 우면관 앞에서 출발해 보덕사~성불암약수~덕우암계곡~소망탑 정상~예술바위~서초구청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우면산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주민들이 좋은 기운을 얻어 가시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의 중심 격인 중구에선 오전 7시 남산 팔각정 앞에서 최창식 구청장이 구민들과 함께 새해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연다. 최 구청장은 “합창, 만세삼창과 함께 남산 일출 시간에 맞춰 참가자 전원이 힘찬 함성으로 새해 첫 해를 맞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2007년 黨도 ‘삼성동팀’ 존재 알아… 우려 많았다”

    “2007년 黨도 ‘삼성동팀’ 존재 알아… 우려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들만 곁에 뒀고 직언하는 이들을 멀리했어요. 그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까지 가능하게 한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맡아 ‘박근혜의 입’이라 불렸던 전여옥(57)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작금의 사태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전 전 의원은 17대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2007년 4월 박 대통령과 경쟁을 벌이던 이명박 캠프에 합류한 뒤 박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 관계의 문제점 등을 폭로해 왔다. 그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와 최순실이 속한 비선조직 ‘삼성동팀’의 문제를 당시 당에서도 알고 있었다”며 “정상적인 보고를 올려도 비선팀의 말만 듣고 움직여 ‘이대로 가다간 큰일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고 밝혔다. 최씨는 당시 정윤회 실장 뒤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지만 이미 캠프 내에선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끈끈한 사이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 전 의원은 이와 관련,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종교와 가족적인 유대감이 섞여 끊으려야 끊기 어려운 관계”라며 “당시 육영재단 안에 팔각정이 있었는데 사람들 말로는 박 대표와 최태민, 최순실이 거기에 들어가서 한참 있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걸 예배라고 해야 하는지, 종교모임이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 전 의원은 연설문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미 그때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거론했다고 한다. 그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수정된 연설문을 들고 올 때면 초안보다 훨씬 더 이상해져 얘길했는데, 박 대표가 ‘정호성이 쓴 게 내 생각을 잘 표현하고 맞는 것 같다’고 해 더 말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문고리 3인방’과 관련해선 “안봉근·이재만·정호성은 박 대표와 정윤회·최순실 간의 심부름꾼이었지 자신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능하지만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기에 그 자리까지 갔고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등산로 묻지마 칼부림 40대 징역 18년·치료감호

    광주지법 형사 11부(부장판사 강영훈)는 12일 등산로에서 등산객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김모(49)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다중 장소에서 불특정인을 상대로 범행하는 등 죄질이 중한 점 등을 들어 중형을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4월 17일 오후 광주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지인들과 등산 중이던 이모(63)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씨가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어 경찰에 신고하는 줄 알고 전화기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돌려주지 않아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범행 당시 잔류성 정신분열병 증세를 나타냈으며, 범행 전에는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받고 입원 권유를 받았으나 입원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경약도 30년 가까이 복용했다. 연합뉴스
  • ‘오늘 별똥별 어디서 보지?’ 서울 별관측 명당 10곳

    ‘오늘 별똥별 어디서 보지?’ 서울 별관측 명당 10곳

    12일 밤 10시부터 13일 0시 30분까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2009년 이후 최대 규모의 ‘우주쇼’로 시간당 150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는 뚫어져라 밤하늘을 쳐다봐도 보이는 건 인공위성뿐. 그렇다고 당장 한적한 시골로 갈 수 없다면 서울에 숨은 ‘별자리 명당’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서울시는 지난 2010년에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조언을 얻어 ‘서울에서 별보기 좋은 장소 10곳’을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곳들은 주위가 탁 트여 있고 주변 건물의 조명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별이 잘 보이고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10곳은 다음과 같다. ▲종로구 동숭동 낙산공원: 대학로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낙산공원은 주위 건물이 많지 않고 조명도 세지 않다. 산책로를 따라 조용히 걸으며 별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 ▲양천구 신정동 계남공원: 맑은 날 계남공원에 가면 망원경을 들고 별을 관측하는 아마추어 천체관측 동호회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과 대성사: 서울에서도 공기가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예술의 전당 야외 마당 등을 산책하다 뒤편 우면산에 올라 대성사까지 가면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서대문구 연희동 안산공원: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북쪽에 있는 안산에 오르면 하늘의 별뿐만 아니라 서울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산이 높지 않아 오르는 시간은 15∼20분이면 충분하다. ▲성북구 돈암동 개운산 공원: 성신여대와 고려대 옆 개운산에 오르면 넓은 운동장이 있다. 가로등이 켜 있기는 하지만 가로등을 비켜서 하늘을 보면 넓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성동구 응봉동 응봉산 공원: 정상의 정자에 오르면 서울숲이 내려다보이고 한강을 따라 흐르는 자동차 행렬도 볼 수 있다. 야경이 좋아 사진찍기 명소로도 유명하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타거나 산책하면서 별을 보기 좋은 곳이다. 주위 아파트 불빛만 잘 피하면 별을 볼 수 있다. ▲서초구 반포동 한강공원: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천체망원경을 들고 별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잔디밭에 누워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별을 감상하기 좋다.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ㆍ난지지구: 상암동 일대에서 가장 어두운 난지지구는 별 보기 좋은 명당이다. 노을공원은 해가 지고 1시간 후 출입이 제한되니 노을공원에서 노을을 보다 난지지구로 옮겨 별을 보는 것이 좋다. ▲종로구 북악산 팔각정: 별을 보는 동시에 남산 아래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차를 타고 갈 수 있어 편리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통일의 염원’ 불타는 중구

    오는 12일 남산에서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봉화가 피어올라 북녘 하늘로 전해진다. 서울 중구는 광복 71주년을 맞아 통일을 기원하는 ‘2016 남산 봉화식’을 이날 오후 7시 남산 팔각정 앞에서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중구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중구협의회와 함께 치르는 행사로, 지난 1992년 시작돼 올해로 25번째다. 서울의 중심인 남산에서 평화를 알리는 봉화를 올려 통일과 화합 의지를 다지기 위한 취지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의 한양 천도 이후 약 500여년간 존속하며, 전국 각지의 봉수망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병조에 종합보고하는 중앙봉수소 역할을 했다. 이번 봉화식은 ‘평화·화합·주인’을 주제로, 구민 대표들이 행사에서 조선시대로 돌아가 봉화를 올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 관내 15개 동별로 3명씩 총 45명의 구민들이 별장, 감고, 봉군 등 봉수군으로 분장해 참여한다. 민주평통 자문위원들도 영의정과 육조판서(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역할로 변신한다. 기념식에 앞서 스파르탄브라스밴드의 밴드공연,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의 공연이 30여분간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 준다. 최창식 중구청장과 양우진 민주평통 중구협의회장은 평화통일의 마음을 담아 대북을 25회 울린다. 이어 최 구청장 등이 직접 횃불을 점화해 봉수대로 이동해 평화통일 메시지를 낭송한 뒤 봉수대에 봉화를 피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높이 3300m의 수직 빙벽 앞에 서면 실로 압도되는 느낌이 대단합니다. 베이스캠프에서 곧바로 달라붙어 캠프1부터 캠프5까지 설치한 뒤 다시 내려와 하루에 한 캠프씩 올라가 엿새째 정상을 공략하고 다시 닷새 걸려 내려옵니다. 두 발을 동시에 붙이고 서 있을 만한 틈도 없어요. 낙석도 많고 강풍도 불고 정말 힘든 곳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남동쪽에 붙어 있는 로체(8516m)를 발아래 둔 이는 많다. 하지만 남벽을 통해 정상을 밟은 이는 아직 없다. 러시아 군인팀과 일본 등반대가 올랐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 인증을 받지 못했다.  다음달 중순 출국해 ‘4전5기’에 나서는 홍성택(50) 대장을 지난 20일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만나 ‘이제 그만 가라’는 소리를 듣는데도 한사코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는 허영호(62), 엄홍길(56),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서 저세상으로 떠난 박영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셋 모두와 함께 세 차례 이상 등반을 한 귀하디 귀한 존재다. 로체 남벽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세계 두 번째로, 그것도 아홉 봉우리에 새 루트를 내고 4곳은 동계에 올랐던 예지 쿠쿠츠카(폴란드)가 1989년 10월 24일 추락사한 곳이다. 1979년 로체 정상을 밟았던 쿠쿠츠카는 14좌 완등 2년 뒤 다시 이곳 직벽에 도전했다가 8300m 지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홍 대장은 “첫 14좌 완등자 라인홀트 메스너(72·이탈리아)가 ‘21세기에나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포기한 것은 이곳을 오르는 게 14좌 완등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네 차례 도전해 쓰라리지만 값진 교훈을 쌓았다. 1999년 8월 첫 원정 때 7000m밖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멋모르고 덤볐던 것 같다. 원정 비용을 미처 다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다가 철수하면서 장비들을 팔아 대원들 밥을 먹일 정도였다. 빚을 갚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을 아내 몰래 빼돌려 갚았다”고 돌아봤다.  홍 대장은 8년 뒤인 2007년 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원정대를 꾸렸다. 엄 대장은 로체샤르(8400m)로 진행해 후배들 시신을 화장하는 끔찍한 충격을 견뎌내며 ‘16좌 완등’에 성공했으나 로체 남벽으로 향하던 홍 대장은 또 물러나야 했다. 소수 정예 원정대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2014년 9월 세 번째 도전 때는 캠프4(8200m)까지 올랐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70일의 등반 기간이 지나 또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네 번째 도전. 3억 5000만원을 들여 21명으로 원정대를 꾸려 캠프4에서 정상 공략에 나섰지만 시속 150㎞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 정상을 300m 남기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전에는 셰르파들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지난 6월 7일 출국해 한 달 동안 네팔에 머무르며 셰르파들을 훈련시키고 정찰을 마쳤습니다. 현재 대원 둘은 알프스에서, 셰르파 둘은 K2에서 고소 적응 중입니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100%는 아니지만 성공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해외 등반가들도 성공할 것이라고 응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GC)이 원정 비용 일부를 부담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도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믿는다는 방증이다. 로체 남벽의 세계 초등은 산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된다. 해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산악인에게 주어지는 황금피켈상도 한국인 최초로 그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 이런 흔들림 없는 도전, 집착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제가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 ‘세컨드 스텝’을 개척한 것을 보고 박 대장이 ‘너 참 대단하다.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지나가듯 얘기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박 대장이 마지막 산행을) 떠나기 사흘 전 ‘안나푸르나 다녀오면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를 산에서 극지로, 탐험가의 길로 이끈 것도 박 대장이었다. 홍 대장은 1992년 카자흐스탄 칸뎅그리(7110m)를 오른 것을 시작으로 5극지(1993년 에베레스트, 1994년 남극, 2005년 북극, 2011년 그린란드, 2012년 베링해)를 세계 최초로 모두 밟았다. 2013년에 그 경험을 책 ‘아무도 밟지 않은 땅 5극지’에 녹였는데 산악계 원로 중의 원로인 김영도 선생이 이끄는 ‘산서회’에 불려나가 분에 넘치는 찬사를 들었다. 산에 가면 볼펜을 쓰지만 영하 35도면 “아 따듯하네”라고 말하는 극지에서는 고추장과 된장만 빼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연필로 쓴다. 로체 남벽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20년의 경험을 오롯이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그에게 탐험이란 무엇일까. “사실 14좌 완등은 이미 2000년대 들어 세계 산악계의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형들이 다 올랐고. 극지야말로 내게 도전과 시련,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련으로 여겨졌습니다. 베링해 횡단에 한 차례 실패했던 영석 형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는데 우리가 무사히 횡단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극지에서의 위험과 산에서의 그것은 비교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등반보다 탐험이 훨씬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우리 시대 탐험가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우에무라 나오미(1984년 사망)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더니 그는 “아뇨, 그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 우에무라와 대원들을 데리고 한 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로체 남벽이란 거대한 도전을 마치고 나면 허탈감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해서 조심스레 그 다음 행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홍 대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청소년들을 모아 북위 66도 33분을 가상의 원으로 연결한 ‘아틱 서클’을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NGC에도 얘기해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산에 가거나 탐험을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하는데 한 나라와 민족이 성장하기 위해선 먼저 도전정신이 활짝 피어나야 합니다. 모든 나라의 성장에 탐험이 선행됐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광화문에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도 일본은 히말라야 원정대를 보냈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우고 싶습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지면에 미처 옮기지 못한 홍성택 대장의 삶 얘기를 온라인에만 공개한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다. 용인대 85학번인데 2학년 말 상대 선수와 연습하다 상대 선수가 다쳐 유도복을 벗었다. 보리 팔아 유도 시키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집안 반대가 말할 수 없었다. 괴로움을 떨쳐 내려고 산으로 향했는데 잘 맞았다.  형(허영호, 엄홍길, 박영석)들의 눈에 든 것이 타고난 체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형들이 그냥 서 있으라고 하면 서 있는 등 뭐든 시키는 대로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유도만 했더라면 체육관을 운영하며 애들만 상대했을텐데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껴 후회는 털끝만큼도 없다.  등반가와 탐험가의 길 가운데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1992년 러시아 칸뎅그리(7010m)에 갔을 때일 것 같다. 눈사태가 텐트를 덮쳐 옆의 후배 둘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가위눌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눈더미에 눌린 텐트 천장이 얼굴을 덮쳐 누르고 있었다. 정말 조금씩 미세하게 손을 움직여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텐트를 찢었는데 칼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나중에 보니 손에 피범벅이었다. 그렇게 텐트를 째서 숨쉴 틈을 만들자 로프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벼랑을 올라온 후배들이 손으로 눈을 파내고 있었다. 이틀을 굶은 채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1996년 다울라기리(8167m)에 이어 오른 시샤팡마(8026m)도 잊을 수 없다. 엄홍길, 박영석 대장과 셋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뭉친 산행이었다. 캠프 2를 출발했는데 카메라 필름을 빠뜨린 것을 깨닫고 형들에게 혼날까봐 얘기도 못한 채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챙긴 뒤 다시 캠프 2로 향하다 크레바스에 빠지고 말았다. 50m쯤 되는 아가리 입구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들릴 리 없었다. 어쩌다 천신만고로 빠져나와 합류했더니 온갖 상소리와 함께 “젊은 놈이 빠져 가지고 형들에게 저녁 짓게 하고 어디서 놀다 온다”고 혼났다. 2005년인가 영석 형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왜 이제야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더라.  베링해 횡단이 가장 힘들고 무서웠다. 북극해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유빙을 타고 넘어야 한다. 그 속도가 대단해 정말 위협적이다. 유빙끼리 충돌하며 내는 굉음도 소름끼친다. 그 유빙 위에서 어느 순간 1m 이상 높은 곳으로 개썰매를 들어 올리고 뛰어 올라야 한다. 동상은 기본이고. 그렇게 베링해를 건넜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대단한 미치광이들이 왔다며 반겼다. 시애틀 한인회 분들이 그곳까지 비행기로 날아와 환영해주시고 현지 방송과 인터뷰도 주선해주셨는데 서둘러 귀국하고 말았다. 한인회 분들은 “출연하면 미국 전역에도 방영돼 어렵게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는데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고 말하고 싶다. 로체 남벽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박 대장 인솔 하에 한왕용(50·세계 13번째 14좌 완등자), 나관주(37) 등과 올랐는데 한국 산악의 미래를 이끌 주역들이 뭉쳤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내가 세컨드 스텝의 30m 직벽을 개척한 것을 보고 영석 형이 “너 참 대단하다. 나중에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했다. 당시는 스쳐 지나가듯 말해 그저 그런가 했다.  2011년 영석 형이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떠나기 사흘 전 신동민과 술 먹다가 느닷없이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무작정 함께 가자고 했다. 난 당시 베링해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형이 안나 성공하고, 내가 베링해 횡단 끝내면 뭉치자고 해 그러자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박 대장, 강기석과 함께 운명한 동민이가 유독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가 목사셔서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다. 산이나 극지에서도 곧잘 기도를 올린다. 유치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기도다. 살려달라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환청을 자주 듣는 편인데 라틴어를 들은 적도 있다. 그때마다 멈추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그렇게 해서 신기하게 목숨을 구한 적도 여러 번이다.  칸뎅그리 등반에서 돌아와 빚으로 남은 원정 비용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비서실 아가씨와 눈이 맞아 1996년 결혼했다. 프로포즈도 하지 않고 으레 결혼해야지 하면서 식을 올렸다. 형들에게 결혼한다며 아내 사진을 보여줬더니 농담하지 마라, 이런 미인이 너랑 결혼할 리가 있느냐고 했다. 나중에 직접 신부를 만난 영석 형이 자꾸 너 같은 게 무슨 결혼이냐고 하지 말라고 했다. 신혼 집들이라며 2박3일 내내 술을 마셔대 아내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다. 내가 산에서 생을 마쳐도 혼자서 자식들 건사하고 키워낼 수 있는 여자여야 결혼한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없더라도 잘 살라고 얘기한다.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로체 남벽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산에 가면 이 훌륭한 음식을 그때 한숟갈이라도 더 먹을걸 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큰 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라고 물을 때가 있다. 여기 있으면 산이 그립고, 산에 있으면 여기와 가족이 그립고. 가족이 결국은 원동력 아니겠는가. 갈 때와 올 때가 똑같아야 한다. 사고로 죽거나 대원들이 다치면 정상을 밟아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홍성택이 걸어온 길 ▲1966년 3월 13일 ▲경북 구미 출생 ▲구미 고아초-구미 현일중·고-용인대 유도학과-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석사 ▲1992년 칸뎅그리 등정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 1994년 남극점 스키·도보 탐험 1999년 로체 남벽 1차 도전 2005년 북극점 스키·도보 탐험 2007년 로체 남벽 2차 도전 2011년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 2012년 베링해 도보 횡단 탐험 2014년 로체 남벽 3차 도전 2015년 로체 남벽 4차 도전 2016년 로체 남벽 5차 도전 예정 ▲1994년 대한민국 체육포장, 2011년 한국 탐험대상
  • [The Best 시티] 스토리 넘치는 골목 역사가 흐르는 거리… ‘서울의 심장’ 중구

    [The Best 시티] 스토리 넘치는 골목 역사가 흐르는 거리… ‘서울의 심장’ 중구

    서울 중구는 서울특별시의 심장부이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살아 숨 쉰다. 조선시대 사대문을 품에 안고, 근현대사의 굴곡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새겨져 있다. 최첨단 한류를 추종하는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쇼핑 천국 명동뿐 아니라 남대문과 명동성당, 중림동 약현성당 등 중구 한복판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1일로 재선 임기 반환점을 도는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이 ‘1동(洞) 1명소 사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최 구청장은 7일 “중구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발굴해 세계가 주목할 중구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게 1동 1명소 사업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주민과 젊은 예술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역사와 스토리를 입힌 거리를 만들면, 구는 이를 착착 지원해 중구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골목문화의 발견’, ‘구도심에 활력 불어넣기’ 두 가지가 키워드다. 기술고등고시(13회) 출신으로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지낸 도시계획전문가인 최 구청장은 중구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을 관광으로 연결시켜야 일자리, 미래 먹거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소신이다. 텅 비어가던 옛 도심이 되살아나는 건 덤이다. 올해 2월 첫 삽을 뜬 중구 서소문 역사공원을 비롯해 필동 서애대학문화거리, 다산동 성곽예술문화거리, 광희문 문화마을, 을지로 도심산업 특화거리, 정동길, 남산 역사문화거리 등 1동(洞) 1명소를 따라가 보자. ●국내 최대 천주교 순교지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서울 한복판인 서울역 근처에 우리나라 최대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지금의 서소문공원 근방은 조선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로 죄인들을 처형했던 장소다. 특히 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 때 희생된 순교자 중 44명이 성인으로 시성됐고 추가로 25명이 시성될 예정이다. 규모로 볼 때 가히 세계 최대급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재작년 방한 때 이곳을 방문했다.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지만 그동안 서울역 철길에 가로막혀 접근이 쉽지 않았다. 서울역 노숙자들이 공원을 점령하면서 분위기도 어두웠다. 한마디로 방치된 공간이었다. 중구는 이곳을 성지순례객은 물론 일반인도 즐겨 찾을 수 있는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주변 천주교 명소인 중림동 약현성당, 명동성당, 절두산성지, 새남터, 당고개 성지와 연결하면 서울 전체를 꿰뚫는 세계적인 성지순례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다. 올해 말까지 서소문 공원 일대 2만 1363㎡를 지상은 역사공원으로, 지하는 순교 성지를 표현하는 기념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게 포인트다. 최 구청장은 “현재 서소문공원은 경의선 철로 때문에 단절돼 있지만 공원과 중림동 일대를 철도 복개로 연결하고 서울역에 새로 건설되는 컨벤션센터 녹지 축과 연결하면 약 4만 1000㎡의 대형 녹지 공간이 생긴다”고 귀띔했다. ●딸깍발이 선비 문화도, 젊은 예술도… 필동 서애대학문화거리 중구 퇴계로 4가의 한 주유소 앞(퇴계로 44길 10)에는 조선시대 명재상인 서애 유성룡의 집터 표석이 서 있다.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중기 대실학자. 국보 132호인 징비록을 남겼고 청렴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주인공이다. 그의 호를 본떠 근처 서울침례교회부터 필동 방향 800m 구간이 ‘서애길’로 불린다. 집터와 서애길을 중심으로 동국대, 남산 한옥마을, 충무로를 연계하는 필동지역은 ‘서애대학문화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최 구청장은 “특히 주민과 문화기업, 젊은 예술가들이 먼저 나서 필동 일대 골목문화가 변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산 딸깍발이 선비 정신을 간직한 필동, 1970~8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구가했던 충무로를 밟아보자. 버려진 골몰 자투리땅엔 개인이 세운 거리 미술관 8개가 들어섰고,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동네 주민들이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로 바뀌었다. 한 민간업체는 남학당(조선시대 아이들을 가르쳤던 한성 4학당 중 하나)터에 독서, 세미나를 즐길 문화공간(24번가 서재 남학당)을 열었다. 길 건너편에는 소극장 ‘코쿤뮤직’이 자리한다. 중구는 보도를 걷기 좋게 바꾸고 가로등 설치, 불량 공중선 지중화, 차 없는 거리 지정, 간판 개선 등 후방지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제1회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藝術通)은 이렇게 열렸다. 주민들 스스로 축제조직위원회를 만들었고 120여명의 예술가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한 자생적인 골목축제다. 유성룡 기념공간 등 서애문화광장은 2018년까지 조성된다. ●성곽길 따라 걸으면 남산 야경 한눈에… 다산동 성곽예술거리 서울 성곽길은 도심 속 숨겨진 보물이다. 이 길은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다산팔각정까지 이르는 동호로 17길 일대 약 1050m구간. 신라호텔 옆길로 올라가면 사적 제10호인 서울 성곽이 남산을 끼고 국립중앙극장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각종 규제에 묶여 방치됐던 외딴 성곽길도 요사이 북적이고 있다. 최 구청장은 “예비 사회적기업 등에 문화시설 위탁운영을 맡겨 동네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다산아트공영주차장 지상 2~3층에 문을 연 카페·문화예술 놀이터 ‘꼬레아트’가 중심 축이다. 지난해 11월 맞은편에 오픈한 ‘The 3rd Place’에는 갤러리, 문화강좌가 열리는 북 스튜디오, 디자인 창업 상담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카페가 입주했다. 원주민도 즐기고, 삼청동처럼 공방문화도 만들자는 취지다. 특히 중구는 지난 4월부터 빈 건물을 임대해 청년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름하여 ‘문화창작소’다. 1호는 유리공예 창작·체험공간으로, 2호는 서울여대 출신 도예팀이 작업·전시장으로 쓰고 있다. 봄·가을로 성곽예술문화거리 축제가 열려 아트 마켓, 퓨전국악공연, 버스킹이 성곽길을 수놓고 있다. ●칙칙한 광희문·을지로 환하게… 도심산업 특화거리로 광희동의 광희문은 조선시대 때 ‘사대문 밖으로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으로 불렸다. 1975년 원래 위치에서 15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됐고, 2014년 일반에 개방됐다. 하지만 근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동대문패션타운과 비교하면 외지고 낡은 탓에 인적도 드물었다. 중구는 올해부터 이 동네를 리모델링 활성화구역으로 지정, 재건축 시 최고 30%까지 용적률을 높여줬다. 또 광희문 주변 벽화 조성, 점포 간판개선으로 칙칙한 거리를 환한 경관으로 바꿨다. 광희문과 흥인지문, 대장간 거리, DDP, 동대문패션타운, 중앙아시아 거리까지 코스별로 주민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광희문 달빛로드’ 탐방 프로그램은 호응이 뜨겁다. 이어지는 을지로 3~5가 일대는 공구, 조명, 미싱, 타일·도기, 조각, 가구 등 도심산업 특화거리로 조성됐다. 상품 제조와 소비자 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고객 친화형 거리로 만들겠다는 게 중구의 구상이다. 을지로는 ‘도심 공동화’의 상징처럼 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옛날 모습을 간직한 을지로를 되짚어보는 골목길투어 ‘을지유람’으로 역사 유산, 맛집, 영화촬영지를 보러오는 이들이 늘면서 ‘낭만 골목’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정동 밤길 걸어볼까 덕수궁, 대한성공회, 영국대사관, 러시아대사관…. 한국 근대문화유산이 오롯이 남아 있는 정동의 밤길을 걸으며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정동야행(夜行)’ 프로그램은 올해 3회째다.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밤축제로 올해 13만명이 다녀갔다. 고궁음악회, 성공회 수녀원·영국대사관 관람, 버스킹 등 즐길거리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정동야행은 문화재청이 선정한 ‘2016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 10선, 세계 축제의 오스카상 격인 ‘피나클 어워드’ 뉴프로그램상 수상 등 대표적인 도심축제로 자리잡았다. ●명동 만화의 거리부터 남산옛길까지 명동역 3번 출구부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는 명동 만화의 거리다. 뽀로로와 둘리, 달려라 하니, 키오카 등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을 골목 어귀에서, 아기자기한 가게에서 마주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만화애니케이션 페스티벌도 명동에서 열린다. 중구는 명동에서 회현동까지 남산 역사문화거리로 만들고 있다. 만화 캐릭터로 동심을 느껴 본 뒤 소파로·소공로 사이 숨은 옛길을 따라 시범아파트까지 남산옛길을 걷자면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 터, ‘오성과 한음’ 일화 속 한음 이덕형 집터, 칠패시장(미곡·포목을 팔던 한양 3대 시장 중 하나) 터, 안중근 기념관 같은 역사적 흔적은 물론 남대문시장, 신세계백화점, 옛 제일은행 본점 등 상업지역이 뒤섞여 과거와 현재가 현존한다. 중구는 남산옛길 코스에 안내표지판과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치안에도 신경 썼다. 남대문시장 내 글로벌 먹거리 개발도 명소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주민들도 2012년부터 회현동 은행나무축제를 열고, 걷기 동아리에서 걷기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동네 알리기에 신바람이 났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묻지마 칼부림 김씨, 아침부터 흉기들고 배회…경찰, 구속영장 신청

    광주 어등산 등산로에서 ‘묻지마 칼부림’으로 1명을 숨지게 한 김모(49)씨가 사건 당일 아침부터 흉기를 들고 어등산 속을 배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흉기로 목 등을 찔러 등산객 이모(63)씨를 숨지게 하고 산 정상으로 도주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등산객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위협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18일 김씨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7일 오후 5시 17분쯤 광주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등산객 이씨의 목 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김씨는 당시 길이 20㎝가 넘는 흉기를 들고 이씨를 위협했고 이씨가 “칼을 버리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목과 가슴, 등, 허벅지 등을 9차례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범행 직후 산정상인 동자봉(해발 154m) 부근으로 달아나며 또다시 흉기로 등산객을 위협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우연히 마주친 한 남성을 향해 “사람 하나를 죽였다”며 또다시 흉기를 휘둘렀으며 남성이 달아나자 다시 산 위로 도주했다. 경찰은 당시 사건 지점에서 산 정상부로 1㎞가량 쫓아가 찾아낸 김씨가 흉기로 위협하자 테이저건을 쏴 범행 30여분만인 5시 45분쯤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지난 16일 가출한 뒤 비닐하우스에서 군복과 흉기를 주워 인근 대학을 돌아다녔고, 17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어등산을 배회해 하마터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경찰은 김씨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도 아닌데다 횡설수설을 반복하는 점, 신경약을 30여년간 복용하다가 지난 1월부터 중단한 점 등을 토대로 ‘묻지마’식 범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 어등산에서 60대 등산객 피살…40대 남성 체포

     광주 광산경찰서는 17일 광산구 어등산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김모(49)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오후 5시 17분쯤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지인들과 등산 중이던 이모(63)씨의 목을 등산용 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와 등반을 함께 한 지인들은 경찰 조사에서 “전혀 모르는 사이인 예비군복 차림의 남성이 갑자기 다가와 이씨를 흉기로 찔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은 저지른 후 산 정상 부근까지 달아났다가 5시 50분쯤 검거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체포 당시 자신의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가족들이 나를 정신병자 취급한다”는 등 횡설수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자세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 조선통신사 외교의 징검다리였던 섬, 일제강점기의 한恨이 서린 섬, 조선 마지막 황녀의 흔적이 남은 섬. 대마도를 여행한 시간은,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이었다. 그 섬을 찾는 이유 부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닿는다. 일본에서는 쓰시마つしま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겐 대마도로 더 익숙한 섬이다.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데, 거리로는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여서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그래선지 여권을 들고 출국심사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영 얼떨떨하다. 그래도 외국은 외국이라 면세 쇼핑의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엔 양손에 바리바리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뱃삯만 내면 되니 부산 사람들은 면세 쇼핑을 위한 당일치기 대마도 여행을 자주 한단다. 멀미약을 입에 털어 넣고 꾸벅꾸벅 졸았더니 금세 도착이다. 배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이 민망할 정도로 금방이다. 거리 분위기는 영락없는 일본 시골마을인데, 가는 곳마다 온통 한국어 표지판이라 한국 같기도 하다. 식당과 호텔 직원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한국말을 구사하고, 주요 관광지마다 있는 조그마한 커피트럭에서는 한국 돈으로 값을 치를 수 있을 정도다. 알고 보니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마도를 찾는 여행객의 95%가 한국인이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한 해 대마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은 10만명 이상. 사실 오늘날 대마도가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로 개발된 것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도발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의 대마도 전공 박사이기도 한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대마도 여행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독도 앞바다에 찾아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운동을 수십 번 하다가, 그냥 놔둬도 우리 땅인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독도를 사수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1997년,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한국 땅’이란 슬로건을 들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 14명과 대마도로 갔다. 당시엔 부산-대마도 뱃길이 없었기 때문에 후쿠오카를 경유해 가야 했다. 4박 5일 일정 동안 배를 탄 시간만 왕복 42시간. 첫 순례 이후 부산의 선사들을 찾아가 부산-대마도 직항 운항을 적극 권유했고 마침내 1999년 부산-대마도 뱃길이 생겼다. 지금은 발해투어 말고도 많은 여행사들이 대마도 여행 상품을 팔고 있고, 낚시·캠핑·등산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번 여행에선 대마도 여행길을 처음 열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황백현 박사와 함께 대마도에 남겨진 우리 역사의 흔적을 훑었다. 대마도는 실제로 우리 땅이었다 솔직히 대마도를 가기 전까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말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관심했고 무지해서였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우리 조상들이 대마도에 남긴 수많은 흔적들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황백현 박사는 그의 저서 <대마도 통치사統治史>와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문화재>를 통해 대마도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기록들을 세세히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일본 천태종 승려 현진이 1197년에 집필한 <산가요약기>에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며,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듬해인 1420년 대마도 8대 도주島主가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대마도 사람들을 조선에 의탁한다”는 문서와 함께 대마도를 조선에 바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켰으니 앞으로 모든 보고와 문의는 반드시 경상도를 통해 하도록 하라”는 답서를 보냈고 그때부터 대마도는 공식적인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황 박사는 ‘대마도’와 ‘쓰시마’라는 이름도 우리말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에 말馬이 없었던 2세기에 ‘말 마馬’자가 들어가는 ‘대마도對馬島·말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섬’라는 지명이 생길 수 있었던 건, 고대부터 말을 키우던 우리나라에서 붙여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쓰시마’라는 이름 또한 ‘두 섬Tu-Sem’이라는 한국어 발음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대마도에서 1,500년 전 백제 사람이 심은 은행나무를 만났다. 나이로는 일본에서 첫 번째, 크기(높이 23m, 둘레 12.5m)로는 두 번째다. 본래는 ‘백제 은행나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몇 해 전 일본이 그중 ‘백제’라는 말을 삭제했다고 한다. 일본은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쓴 안내판도 새로 설치했다. 이 은행나무는 1789년 벼락을 맞아 나무속이 불타기도 했고, 1950년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은행나무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 역사를 잊지 말자.’ 대마도의 생명줄이었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200년 동안 겨우 12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한 번 일본을 오가는 데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렸고, 매번 300~5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였다는 걸 생각하면 적은 횟수가 아니다. 이 조선통신사의 길을 연 것이 대마도다. 평지가 없고 땅이 척박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공급 받아 먹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조선과 교역이 끊기자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됐다. 당시 대마도 도주였던 소宗 요시토시義智는 국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일본 막부와 조선 왕실의 외교 회복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렇게 성사된 조선통신사는, 말하자면 대마도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였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치는 기항지였다. 한양에서 출발한 일행은 부산을 거쳐 대마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수로와 육로를 이용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갔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조선 왕실에서는 통신사의 출발일이 결정되면 관리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궁으로 불러 어사주를 내렸고, 그날 밤에는 영의정이 남대문 밖에서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출발 전날엔 마포나루터에 통신사 일행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송별연을 가졌고, 부산에 도착하면 무사왕복 기원제를 올렸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그 숙소에는 조선의 학문과 예술을 전수받으려는 일본 문인들과 유학도들이 몰려들었다. 조선 선비들의 한시漢詩 한 수를 보물처럼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한류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 대마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다.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이즈하라에는 지금도 그 역사를 기억하는 ‘조선국통신사의 비朝鮮國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다. 그 앞의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는 길이 16.58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소장되어 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마쓰리’ 축제도 개최된다. 친일의 기록과 항일의 흔적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어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과거 이즈하라에는 한국어 학교가 두 개나 있었다. 먼저 1727년 세워진 한어사韓語司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던 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던 곳이다. 3년 동안 하루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듣고 매달 월말고사를 치렀던, 속된 말로 ‘빡센’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일본인들은 조선 선비들보다 한글을 더 잘 썼다는데, 당시 조선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하며 잘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어사 건물은 지금도 개인주택으로 대마도에 남아 있다. 한어사에서 불과 200m 거리에 1872년 세워진 한어학소韓語學所는 설립 취지가 불순했다.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한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통역비서로 일했다. 고쿠분 쇼타로는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과 한일 합병문 초안을 작성하는 일까지 맡았고, 조선총독부 인사국장을 거쳐 내부차관까지 지냈다. 그런 사람이 죽자 통탄해 하면서 묘비명을 쓴 사람이 바로 매국노 이완용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꼽혔던 이완용은 그 묘비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쓰다侯爵 李完用 書’라고 자랑스레 새겼다. 스스로가 매국노라는 증명을 길이길이 남긴 셈이다. 이 묘비를 황백현 박사가 대마도에서 2007년 발굴했고 3년 동안 다수의 서예가들과 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이완용의 필체임을 밝혀냈다. 한국에는 없는 이완용의 매국 증거물이 대마도 땅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런 친일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대마도에는 항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즈하라의 절 ‘슈젠지修善寺’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선봉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과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선생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대마도 감금 3년 형을 받고 이송당하면서도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며 양쪽 짚신 바닥에 고국의 흙을 한줌씩 담아 신고 갔다고 한다. 결국 “원수가 주는 끼니로 몸과 입을 더럽힐 수 없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대마도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슈젠지는 최익현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장례를 치른 곳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부산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전망대다. 일제강점기 대마도에 잡혀 온 우리 선조들은 명절만 되면 이곳에 올라 바다 건너 고향땅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설움을 달랬다 한다. 그 자리에 1997년 한국에서 공수한 자재를 이용해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을 본뜬 모양으로 이 전망대를 지은 것이다. 찬 바닷바람이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는 한국전망대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되겠다고. *이토 히로부미 |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죽었다. 조선 마지막 황녀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기울어 가는 국가의 왕녀로 태어나 불운한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대마도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마도에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있다. ‘결혼 봉축’이라고 하니 축복받은 결혼인 건가 싶었는데, 그 반대였다. 덕혜옹주는 19살이던 193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인 ‘소宗 다케유키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시댁이 대마도였던 셈인데, 결혼식은 도쿄에서 올렸고 덕혜옹주가 대마도를 찾은 건 결혼한 해에 단 한 번 인사차 방문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연고로 대마도에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세워지게 됐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61세 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으려 7살 때 약혼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은 덕혜옹주를 13살 때 도쿄로 강제 유학을 보내 고종황제와 떼어 놓았다. 덕혜옹주는 식민지의 공주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질환까지 얻게 됐다. 일본은 그런 덕혜옹주를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완전히 하나의 국가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조선 통치 정책’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과 결혼시켰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 역시 갖은 차별 대우와 따돌림을 당하다 어머니처럼 정신질환을 얻었다. 결국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써 놓고 실종되었다. 그 일 이후 덕혜옹주의 우울증과 몽유병은 날로 더 악화되었다. 1955년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이혼했고,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외롭게 수감되었다. 그 사실을 조선일보 기자가 폭로해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귀국시킴으로써 마침내 덕혜옹주는 고국에 돌아왔다. 7년간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宗伯爵家結婚奉祝記念碑’라고 쓰여 덩그러니 놓인 회색 비석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맺혔다. 탄생부터 결혼, 출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축복받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의 인생. 그와 너무나 상반되는 ‘결혼 봉축’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 삶을 더 기구하게 비추는 듯했다. 때마침 흩날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꼭 덕혜옹주의 눈물 같아 더 속상했다. *대마도 도주島主 | 오랜 세월 대마도를 지배했던 ‘소宗’가家는 에도시대 이전까지 도주였고, 이후에는 번주藩主가 되어 대마도의 모든 것을 통치한 지방 토착세력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조선의 교류 재개에 노력을 기울여 조선통신사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를 영접하는 등의 임무도 수행함으로써 당시 일본 막부와 조선 모두에게 공을 인정받았다. ▶travel info 대마도 FERRY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대마도 히타카츠항, 이즈하라항을 연결하는 쾌속선이 매일 운항된다. 히타카츠까지는 1시간 10분,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다수의 페리회사가 부산-대마도 노선을 하루에도 수차례 운항하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Shopping대마도 대형마트 티아라 쇼핑몰 대마도 이즈하라에는 대형마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티아라 쇼핑몰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는 큼지막한 한국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마트에는 일본 본토에서 만날 수 있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이 모두 들어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PLACE5,000엔 화폐 속 여인의 사랑 나카라이 도스이 기념관 대마도 이즈하라 태생 소설가이자 기자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기념관이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5,000엔 화폐 속 인물인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문학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한국말에 능통했고,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뒤에는 <춘향전>을 번역해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히구치 이치요는 1891년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를 찾아가 소설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히구치 이치요는 20살, 나카라이 도스이는 32살이었다. 히구치 이치요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키재기>, 창부들의 삶을 그린 <흐린 강>,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나 때문에> <매미> 등 작품들을 쏟아내고 25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도스이를 연모한 그녀의 마음은 사후 발표된 일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마도판 하롱베이 에보시다케 전망대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는 아소만의 수많은 섬이 펼쳐진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7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들쑥날쑥한 해양 지형이 특징인 아소만은 진주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전망대는 석양과 일출이 아름다워 연말연시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오키나와를 닮은 해변 미우다 해수욕장‘일본 해수욕장 100선’에 속하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마치 오키나와의 해변인 듯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낸다. 물이 맑아 물고기, 성게 등 해양 생물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하기 좋다. 근처엔 캠핑장도 있어 여름철엔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캠핑과 해수욕을 하러 찾아온다. Food대마도 도주가 좋아했던 간식 카스마키‘대마도 명물’이란 별명이 붙은 카스마키는 달콤한 팥소를 카스테라로 돌돌 만 것이다. 대마도 도주가 특히 좋아했던 간식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리로 유명한 일본답게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대마도 여행 중 간식으로 먹거나 선물용으로 사 가기에 좋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발해투어 051-253-588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개나리 옷 입은 응봉산

    개나리 옷 입은 응봉산

    30일 완연한 봄 날씨 속에 성동구 응봉산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응봉산 팔각정 일대에선 다음달 1일부터 사흘간 ‘응봉산 개나리 축제’가 열린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서울포토] 개나리와 함께 하는 산행

    [서울포토] 개나리와 함께 하는 산행

    30일 완연한 봄날씨속에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사흘 동안 응봉산 팔각정 일대에서는 ‘응봉산 개나리 축제’가 열린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서울포토] 개나리로 물든 응봉산

    [서울포토] 개나리로 물든 응봉산

    30일 완연한 봄날씨속에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사흘 동안 응봉산 팔각정 일대에서는 ‘응봉산 개나리 축제’가 열린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29일, 바람이 거세게 부는 북한산 최정상. ‘백운대, 해발 836m’라고 쓰인 거대한 화강암석 옆 4m 높이 깃대에서 태극기 한 장이 마지막 겨울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북한산 등산객들에게 ‘백운대 전속 사진사’로 잘 알려진 박현우(70·현 명동성당 미화원)씨가 30여 년 전인 1985년 처음 깃대를 세우고 15년여 동안 교체 관리해 온 태극기다. 2000년쯤부터는 정왕원(66·개인택시 기사)씨도 함께하고 있다. 태극기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화강암석 위에는 기미년(1919년)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정재용(1886~1976)의 ‘3·1운동 암각문’(고양시 향토유적 제32호)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박씨는 원래 1968년부터 백운대 등산객을 상대로 사진사로 일했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에 태극기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 뒤로 17년쯤 지난 1985년 전후로 박씨는 나무 막대로 깃대를 세워 태극기를 처음 달았다. 백운대의 모양새가 훨씬 좋아졌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섰다. 백운대로 부는 바람이 워낙 거세 나무로 만든 깃대는 수시로 부러졌고 태극기도 가장자리가 쉽게 해졌다. 한 장당 1만 2000원씩 하는 태극기를 한 달에 3~4차례는 바꿔 달았다. 박씨의 외로운 ‘태극기 지킴이’ 활동은 우연히 백운대를 찾은 전관(72·예비역 소장) 백마부대장의 눈에 띄었다. 전 소장은 며칠 뒤 부대원들을 백운대로 보내 쇠로 된 깃대를 세워 주고 부대로 초청해 식사도 같이했다. 특별한 예우였다. 당시 서울의 한 구청장은 “좋은 일을 한다”며 1년여간 태극기를 지원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가 등장하자 ‘백운대 사진사’인 박씨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무렵 택시 운전을 하는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박씨에게서 사진사로는 생계 유지가 안 돼 더는 산을 오를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태극기 교체 관리’라는 짐을 대신 지기로 약속했다. 이후 15년 가까이 정씨의 태극기 사랑은 조용히 이어져 왔다. 정씨는 사흘에 한 번씩 백운대에 올라 태극기 상태를 살핀다. 15년 동안 1350여회 백운대를 오르내렸다. 연간 태극기 30~40장이 필요한데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최근 수년 동안은 태극기 공장에서 직접 구입해 부담을 절반으로 줄였다. 박씨와 정씨는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며 사진 찍기를 극구 사양했다. 이창우(75) 전 파주부시장은 “6·25전쟁 때 장단에서 피란 온 탓에 태극기의 소중함을 잘 안다. 백운대 태극기를 볼 때마다 두 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통 잇는 한옥… 문화 있는 쉼터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통 잇는 한옥… 문화 있는 쉼터

    조선 후기 사대부 한옥 14동 그대로 복원 주말 관람객 200여명… 휴식 장소로 역사민속관은 민속 자료 보존·체험 학습 경남 창원시에 있는 사라져 가는 전통 한옥과 지역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시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로와 창이대로 인근(사림동), 주택지역 안에 나란히 있는 ‘창원의 집’과 ‘창원역사민속관’이 바로 그곳이다. 21일 창원시에 따르면 두 시설은 도심에 있어 접근이 편한 데다 입장료가 없어 동시에 둘러보며 전통문화와 역사를 두루 체험할 수 있어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게 방문한다. 옛 창원·마산·진해 3개 시가 합쳐 출범한 통합 창원시 가운데 옛 창원시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한 계획도시다. 1973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창원지역을 둘러보고 그해 8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을 확정해 공업단지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인구 50만명 수용 규모의 산업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에 따라 도시건설 예정지에 포함된 논밭과 임야, 마을을 모두 수용했다. 수용한 지역은 공업용지, 주거지, 공공용지, 도로 등으로 구분해 터를 닦아 산업도시를 조성해 경남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 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 창원지역은 논밭·구릉지·야산과 함께 옹기종기 자연마을을 형성한 인구 3만 5500여명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자연마을에는 명문가 집안 등이 몇 대에 걸쳐 대대손손 살던 오래된 전통 한옥도 많았다. 그러나 공업도시 개발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한옥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나 현대식 단독주택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경남도청 인근 주택단지 안에 있는 창원의 집은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 한옥 보존과 함께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한 전통 한옥 체험 시설이다. 조선 후기 한학자인 퇴은 안두철(1809~1877) 선생이 건립해 당호(堂號·집이름)를 ‘성퇴헌’(省退軒)이라 짓고 살았던 전통 한옥 옛집이 있었던 곳이다. 퇴은을 비롯해 순흥 안씨 7대가 성퇴헌에서 대대로 살았다. 창원시는 성퇴헌 건물과 부지를 매입한 뒤 1984년 9월부터 1986년 6월까지 새 성퇴헌 건물(사랑채)을 비롯해 여러 동의 한옥을 복원·신축해 ‘창원의 집’으로 이름을 붙여 문을 열었다. 1만 208㎡ 널찍한 부지에 솟을대문, 중문, 곁문, 사랑채(성퇴헌), 안채, 민속교육관, 정자, 팔각정, 연자방아 등 모두 14동의 한옥 시설을 조성했다. 이들 한옥은 성퇴헌 건축 구조와 양식을 그대로 따라 지어 조선시대 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갖추고 있다. ‘창원의 집’ 표지판이 걸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커다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분수가 치솟는 연못이 있다. 중문채를 지나면 사랑채와 본채가 앞뒤로 위치해 있다. 대문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있는 안채는 집안 주인마님을 비롯해 여성들의 생활공간이다. 정면 6칸, 측면 1.5칸 크기로 정지(부엌)와 온돌방 3칸, 대청 2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손님을 맞이하는 집인 사랑채는 사랑방과 서당, 주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온돌방 3칸과 대청 1칸이 있다. 농기구 전시관 건물에는 갖가지 농기구와 베틀, 생활 도구 등 4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민속교육관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다도와 예절 등 전통생활과 풍습을 배우고 익히는 장소로 사용한다. 가축의 힘을 이용해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 시설도 마당 한쪽에 보존돼 있다. 갖가지 나무와 꽃, 자연석으로 곳곳에 크고 작은 정원과 화단을 조성해 놨다. 맨 뒤쪽 언덕에 있는 2층으로 된 팔각정에 오르면 한옥 전체 모습이 기와지붕과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전문해설사가 근무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 창원역사박물관 쪽으로 연결되는 후문 옆에 빨간색의 느린 우체통 하나가 서 있다. 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주소가 적힌 곳으로 1년 뒤 배달이 된다. 창원의 집 안에 있는 한옥시설과 마당은 전통혼례식장으로 개방했다.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빌려준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 주말에는 전통 혼례식이 자주 열려 외국인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구경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김옥순(68·여) 문화해설사는 “하루 평균 방문객이 평일에는 100명, 주말과 휴일에는 200여명에 이르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소개했다. 지난 15일 창원의 집을 찾아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던 23세 동갑내기 친구인 대학생 성진영·한가혜씨는 “옛날에 지었던 모양 그대로 복원해 놓은 한옥을 둘러보니 당시 생활 모습과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전통 한옥의 멋과 여유,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창원의 집이 접근이 편한 도심에 있는 덕분에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체험학습이나 휴식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고 밝혔다. 창원의 집과 나란히 있는 창원역사민속관은 창원의 역사와 민속문화를 다양한 자료와 영상 등을 통해 시대별로 전시해 보여 주는 전시관이다. 3135.1㎡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립해 2012년 8월 24일 문을 열었다. 1층에 있는 역사관과 현대관은 선사시대부터 산업도시로 발전해 통합시에 이르기까지 창원의 역사를 유물과 모형, 영상 등을 이용해 알기 쉽게 전시해 놨다. 2층에 마련된 제1민속관은 연도여자 상엿소리, 마산 오광대 등 지역 내 각종 무형문화재의 유래와 공연모습을 보여 준다. 무형문화재를 재현할 때 사용하는 전통악기 소리도 들어 볼 수 있도록 꾸며놨다. 제2민속관은 조상들이 사용했던 농기구와 의복, 가옥형태 등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3차원(3D) 영상을 관람하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다. 방문객들이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쉴 수 있게 건물 밖에는 공간이 넉넉한 누각이 들어서 있다. 창원의 집은 일년 내내 개방하고 창원역사민속관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문을 닫는다. 두 시설 모두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두 곳 다 주차공간도 여유 있게 조성돼 있다. 글 사진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1분 먼저 해 뜨는 아차산… 함성으로 새해 깨울 북한산

    1분 먼저 해 뜨는 아차산… 함성으로 새해 깨울 북한산

    1월 1일 새해에 서울에서 해맞이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강원도 설악산이나 남해 암자로 가면 좋겠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서울시가 도심과 인근 일출 명소를 28일 소개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새해 1월 1일 서울의 일출 예정 시간은 오전 7시 47분이다. 서울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광진구 아차산에선 이보다 1분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아차산은 특히 산세가 완만해 노약자들도 새해 첫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다. 일출을 봤다면 광진구가 준비한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해 보자.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맞이 광장에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길운을 불러온다는 북 울리기 행사와 포토존, 윷 점보기, 희망 풍선 날리기 등이 진행된다. 행사가 끝난 뒤 동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떡국 나눔 행사가 열리니 속을 든든히 채워도 좋다. 서울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북한산 시단봉에선 오전 7시 20분부터 해오름 함성과 만세 삼창, 새해 인사 나누기 등 다양한 해맞이 행사가 진행된다. 또 도봉산 천축사도 오전 7시 30분 새해 기원문을 읽는 행사를 진행한다. 도봉구 관계자는 “산세가 높고 좋은 만큼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열리는 해맞이 행사는 오전 7시 30분쯤 열리지만, 올라가는 데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만큼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노원구 불암산에선 중턱 헬기장이 해맞이 장소다. 오전 7시부터 열리는 행사에는 트럼펫 공연, 타고, 새해 덕담, 축시 낭송, 소망기원 박 터뜨리기, 풍물놀이, 떡국 나누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도심에서 가까운 중구 남산 팔각정과 인왕산 청운공원도 추천됐다. 한강과 서울숲, 잠실운동장 등 서울 동부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응봉산에선 오전 7시부터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경사가 완만해 가벼운 등산 삼아 전망대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동대문구 배봉산과 전국 최초로 순환형 무장애 숲길이 만들어진 서대문구 안산 봉수대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어 좋다. 낮은 산도 오르기 힘들다면 공원 해맞이 행사도 좋다.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 정상에서는 오전 7시 20분부터,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몽촌토성 망월봉에서는 해맞이 축가, 희망 대합창 등이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 나머지는 시 홈페이지(http://www.seoul.go.kr/story/sunrise/)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생각나눔] 노인들 “갈 곳 잃었다” vs 구청 “세계유산 보호”

    [생각나눔] 노인들 “갈 곳 잃었다” vs 구청 “세계유산 보호”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종묘나 탑골공원에 오는 건데 ‘재정비한다’, ‘단속한다’ 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달 30일 오후 2~3시경 서울 종로구 종로2가의 탑골공원. 노인들로 발 디딜 틈 없다던 공원은 전과 달리 눈에 띄게 한산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던 공원 내 팔각정조차 더는 노인들의 차지가 아니다. 단체로 온 학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노인들은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학생들이 돌아간 뒤에야 슬그머니 제자리인 양 찾아갔다. 곳곳에는 ‘주폭, 노()폭 등 질서를 해치는 자를 집중단속해 처벌하겠다’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같은 날 종묘는 재정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빙 둘러쳐진 철제 담장 주변을 맥없이 서성이는 노인들이 보였다. 담장 샛길의 빈 공간에서 한 연합회가 ‘애국 연설’을 시작하며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다. 노인들은 그제야 의자 주변으로 모여 앉았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최근 본격적인 재정비에 들어갔다. 노인들이 음주와 고성, 내기 바둑, 정치적 이념논쟁으로 나이를 잊고 서로 주먹질을 하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탑골공원 역시 문화유산 보호 차원에서 상시 단속반이 운영되면서 왁자지껄한 풍경은 사라졌다. 치마정장을 입고 서성이던 일명 ‘박카스 아줌마’도 이날 오후 내내 볼 수 없었다. 탑골공원 단속 담당자는 “사적 제354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상시적인 계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종묘는 이달 말 정비사업을 일부 마치고 광장을 재개방할 계획이지만 이곳도 3인 1조의 단속반이 계속 운영될 예정이다. 아내와 사별하고서 3년째 이 일대를 찾고 있다는 김정한(75)씨는 “아내가 죽은 뒤 자식들 발길도 끊기고 외로워서 동질감을 느끼려고 이곳에 오게 됐다”면서 “최근에는 앉을 곳도 줄어들고 오가는 사람 쳐다보는 것 외에는 눈치가 보여 거리만 헤맬 때가 많다”고 한탄했다. 노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고 입을 모았다. 종로구청은 문화재도 보호해야 하고 또 탑골공원과 종묘에 모인 수도권의 노인들을 외면할 수도 없어 답답하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문화유산 보호와 노인 복지 모두 중요한데 상충해 고심이 크다”고 했다. 구 관계자는 “종로구 어르신뿐만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어르신들까지 모두 모이는 ‘특별한’ 장소인데 구청 재정으로는 무료급식 배식 등도 부족한 만큼 서울시의 재정 투입 등이 절실하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탑골공원과 종묘에 이동도서관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고 시가 운영하는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있는데 공간이 부족하다”고 털어놨지만, 추가적인 센터나 노인 쉼터 등 상시적인 노인 공간 마련에 대해서는 “예산이나 입지 등 여러 문제가 걸려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현재 종로2가와 3가 쪽에 실버극장이나 카페가 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이 매일 이용하기 쉽지 않고 노인복지관은 서울시민이나 종로구민만 이용할 수 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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