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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크전 뜨거운 열기… 관람객 5만명 돌파

    뭉크전 뜨거운 열기… 관람객 5만명 돌파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찾은 관람객이 5만명을 돌파했다. 뭉크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는 16일 하루에만 2200명 이상의 발길이 이어지며 전날까지 다녀간 인원(4만 8400여명)에 더해 모두 5만명을 넘겼다. 지난달 22일 전시를 개막한 지 23일 만에, 관람객 1만명을 돌파한 지난달 26일 이후 18일 만이다. 휴관일(매주 월요일)은 제외했다.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였던 이달 초에는 나흘간 1만명을 훌쩍 넘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연휴 첫날인 6일에는 전시 시작 1시간 만인 오전 11시 티켓 발권 인원이 1000명을 넘어서고 티켓 구매처 중 한 곳인 인터파크 티켓에서는 준비한 수량이 매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3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날씨에도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줄을 지어 관람을 이어 가는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전 세계에서 단 2점뿐인 ‘절규’(1895) 채색판화가 있는 ‘섹션4’였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인증샷’을 남기며 전시를 온몸으로 즐겼다. 전시장 바깥 벽에 마련된 ‘절규’ 포토존은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이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아이들은 포토존 안에서 ‘절규’ 포즈를 익살스럽게 따라 하며 추억을 남겼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을 소재로 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아트숍도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뭉크전의 추억을 가볍게 소장할 수 있는 엽서는 이날까지 1만 1000장 넘게 팔려 나갔다. 두툼한 도록도 1600부 이상 판매됐다. 관람객들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관람평을 남기며 전시의 여운을 공유했다. 인스타그램 등에 ‘#뭉크전’을 검색하면 ‘절규’ 외 전시에서 확인된 뭉크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감상을 적은 게시물들이 다수 보인다. 이날 5만 번째 관람객으로 도록, 포스터 등 기념 선물을 받은 회사원 신윤찬(53)씨는 “전시를 보면서 집어삼켜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주변 지인들에게도 전시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 뭉크의 명작, 그리그의 선율… ‘피오르’가 빚은 낭만을 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뭉크의 명작, 그리그의 선율… ‘피오르’가 빚은 낭만을 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세계문화유산, 피오르, 그리그, 뭉크.’노르웨이 서부 해안 도시 베르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행 키워드다. 문화,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낭만과 힐링’의 도시 베르겐은 네 가지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베르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 역사지구’가 있고, ‘피오르 여행’의 관문 도시답게 탁 트인 바다가 도시를 마주하고 있다. 베르겐 출신의 세계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가 살았던 ‘트롤하우겐’과 노르웨이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베르겐미술관’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아렌델 왕국의 모티브가 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낸다. 여름은 북유럽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지난달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새롭게 떠오른 시원한 인기 여름 휴양지’로 베르겐이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덥지 않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베르겐을 꼽았다.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베르겐을 돌아봤다.# 세계문화유산 ‘브뤼겐 역사지구’ 베르겐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항구를 따라 이어진 파스텔 색조의 아름다운 목조 건물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구시가지 중심인 브뤼겐 역사지구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뾰족한 삼각형 지붕으로 이뤄진 붉은색, 노란색, 흰색 건물들은 북유럽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원색의 건축미가 뛰어난 브뤼겐 역사지구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베르겐은 1070년 올라프 3세(1050~1093)가 세운 도시로 12~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로 번성했다. 중세 북유럽 상인연합체인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현재는 인구 25만명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다. 역사지구 골목 안에는 한자동맹 당시 부유한 독일 상인들이 부둣가에 정착하며 세웠던 목조건물을 만날 수 있다. 여러 번 큰 화재를 겪었지만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이어 오고 있다. 지금도 62채가 남아 있다. 1702년 건립된 한자박물관은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인근에 있는 베르겐 어시장에는 청정 바다 북해에서 잡아 올린 연어와 대구 등 다양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11세기 초부터 이어 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시장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플뢰위엔산(해발 320m)에 오르면 베르겐의 탁 트인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베르겐 어시장 인근에 있는 탑승장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정상까지 8분 정도 걸린다. 플뢰위엔산은 일몰 시간에 맞춰 올라가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는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 운행된다. # ‘피오르’ 여행 관문서 만나는 장엄함 많은 사람들이 베르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덮고 있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 낸 협곡인 ‘피오르’를 보기 위해서다. 노르웨이 북서쪽은 말갈기처럼 들쑥날쑥한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피오르가 만들어 낸 협곡이다. 피오르 여행의 출발점은 ‘피오르의 수도’로 불리는 베르겐이다.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4대 피오르인 ‘송네 피오르’와 ‘게이랑에르 피오르’가 있고, 남쪽으로는 ‘하르당게르 피오르’, ‘뤼세 피오르’ 등 많은 피오르가 얽혀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는 길이가 204㎞에 이른다. 베르겐에서 북동쪽으로 140㎞ 떨어진 구드방겐에서 플롬까지 2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가며 피오르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U자형 협곡에는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 낸 폭포와 에메랄드빛 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노르웨이 관광청에서 개발한 여행 코스인 ‘넛셀투어’는 고속열차, 버스, 페리, 산악열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480㎞를 횡단하며 웅장한 자연과 송네 피오르를 감상할 수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 그리그의 숨결 ‘그 겨울 지나 봄이 가고, 봄이 또 가고 여름이 가면, 한 해가 저무네….’ 베르겐은 ‘솔베이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이다. 솔베이의 노래는 문학의 거장 헨리크 입센(1828~1906)의 극시에 곡을 붙인 ‘페르퀸트 모음곡’에 나오는 노래로, 노르웨이 민요에서 영향을 받았다. 솔베이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난 남편 페르퀸트를 기다리며 부르는 애틋한 사랑 노래다. 노르웨이인들의 서정이 느껴지는 애절한 곡이다. 그리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은 그가 1885년부터 죽기 전까지 22년간 살았던 저택인 트롤하우겐이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한적한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바다가 굽어보이는 트롤하우겐에서는 박물관, 별장, 콘서트홀, 오두막집 작업실 등을 볼 수 있다. 오두막집에서는 그리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피아노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그는 이곳의 절벽 묘지에 성악가인 아내 니나와 영면에 들었다. 트롤하우겐은 도심과 베르겐공항 사이에 있다. 시내에서 1번 트램을 타고 호프역에 내려 20여분(1.8㎞) 걸어야 한다.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 뭉크의 진화 볼 수 있는 베르겐미술관 베르겐미술관(KODE)은 오슬로 뭉크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뭉크 작품을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베르겐미술관은 주제별로 4개(KODE 1~4)의 전시관 건물이 있는데 뭉크 작품은 3전시관(KODE 3)에서 볼 수 있다. 베르겐미술관은 1889년 사업가 크리스티안 순트가 소장품을 기증한 이래 부자들의 작품 기증과 기부로 세워졌다. 1916년 노르웨이 최고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라스무스 마이어가 뭉크 작품 등을 포함한 유명 작가의 작품 962점을 기증했다. 미술관은 뭉크를 비롯해 하리에트 바케르, 니콜라이 아스트루프, 요한 크리스티안 달 등 노르웨이 대표 화가들의 작품 등 4만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KODE 3에서는 뭉크의 예술적 진화 과정에 따라 ‘카를요한거리의 아침’(1892), ‘해변의 달빛’(1892), ‘여자의 세 시기’(1894), ‘소녀’(1884), 멜랑콜리(1894~1896), ‘질투’(1895), ‘임종’(1895), ‘병실에서의 자화상’(1909) 등 초기 작품부터 후기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겐미술관의 작품과 동일한 모티브로 뭉크가 그린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회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 볼 수 있다. 뭉크는 한 가지 모티브로 시기와 계절에 따라 유화, 파스텔화, 판화 등으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한가람미술관에는 ‘카를요한거리의 저녁’(1896~1897)과 ‘여자의 세 시기, 스핑크스’(1899), 멜랑콜리 III(1902) 등 핸드 컬러드 판화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여행수첩] ■항공 : 서울에서 베르겐까지 직항편은 없다. 오슬로,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유럽 도시에서 편도 항공료는 10만~30만원이다. 베르겐공항에서 도심까지는 12㎞ 떨어져 있으며, 1번 트램(44크로네)이나 공항버스(169크로네)를 이용하면 된다. 도심까지는 45분 정도 걸린다. ■호텔 : 베르겐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이다. 브뤼겐 역사지구 주변 호텔을 이용하면 여행하기 편리하다. 호텔은 위치와 시설 규모, 요일에 따라 1박에 20만~40만원까지 다양하다. ■관광 : 베르겐 카드를 구입하면 버스와 트램 무료 탑승과 함께 미술관, 박물관, 수족관, 콘서트홀, 관광명소 등을 무료 입장하거나 할인받을 수 있다. 카드는 여행자센터나 앱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24시간 380크로네, 48시간 460크로네 등이다. 1크로네는 128원(6월 현재)이다.
  • 광장 공포증을 앓는 뭉크가 본 세상 [으른들의 미술사]

    광장 공포증을 앓는 뭉크가 본 세상 [으른들의 미술사]

    카를 요한 거리는 노르웨이 왕궁에서 중앙역에 이르는 1㎞ 남짓한 거리다. 거리 주변에 시청, 국회의사당, 상점, 레스토랑이 있어 늘 북적인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관공서 건물과 상점으로 카를 요한 거리는 19세기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한 거리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에 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봐서 초겨울이다. 북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해가 늦게 뜨고 오후 3~4시 경이면 벌써 어둡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절규’에서 본 것과 같다. 무질서와 불안정한 느낌 강조한 ‘저녁’폐쇄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쏟아지듯 걸어 나오고 있다. 이들의 눈은 공포에 질린 듯 동그랗게 뜨고 있고 입은 꾹 다물고 있다. 누구 하나 대화하거나 소통하는 사람이 없는 삭막한 풍경이다. 추위 속에서 다들 바삐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람들 속엔 여성이 끄는 유모차 속 두 아이도 있다. 아이들 역시 사람들과 같은 표정이다. 한쪽으로 치우쳐 중심에서 벗어난 구성은 무질서와 불안정한 느낌을 강조한다. 뭉크는 전에 카를 요한 거리 먼 발치에서 밀리를 본 적이 있었다. 남편 카를이 밀리의 뒤를 쫓는 장면을 본 적도 있었다. 그날 뭉크는 아직도 밀리를 못 잊는 마음이 들킬까 얼른 몸을 숨겼다. 또 다시 카를 요한 거리를 서성이던 어느 날 밀리는 남편 카를이 아닌 다른 남자와 걷고 있었다. 하마터면 밀리와 마주칠 뻔 했다. 뭉크는 이 거리를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넓은 거리를 당장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갑자기 그는 모든 것이 공허해졌고 너무나 외로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낯설고 어색해 보였고 마치 자신만 군중 속에서 이탈해 혼자 동떨어진 듯 보였다. 표정 없는 사람들 한 무리와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학자들은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이 남성을 뭉크 자신으로 본다.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뭉크는 광장공포, 폐쇄공포, 대인 기피 등 다양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뭉크의 불안함은 길 건너편 불쑥 솟아오른 나무의 그림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뭉크의 작품에서 그림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의 공포를 나타낸다. 특히 초기 그림에서 그림자는 크고 어둡게 표현되어 뭉크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검은 그림자는 암울한 분위기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로 읽힌다. 신인상주의 기법으로 밝은 햇살을 담아낸 ‘봄날’1년 전 뭉크가 그린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과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을 비교해 보면 뭉크의 기법과 심리는 많이 변화했다.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은 화창한 어느 봄날의 카를 요한 거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밝고 따뜻한 색채로 그린 봄날의 카를 요한 거리는 사람들마저 밝고 경쾌해 보인다. 뭉크는 프랑스에서 접한 신인상주의 기법을 통해 밝은 햇살을 담아 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난 나무는 여기서는 위협적이지 않다. 또한 카를 요한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면이지만 폐쇄공포와 같은 구성은 보이지 않는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에서 드러난 뭉크의 불안한 미래를 드러낸 작품이며 끝을 모르는 불안함은 불길한 예감을 더한다. 뭉크는 객관적 현실보다 주관적인 감정을 강조했다. 즉 같은 거리를 그렸으나 감정이 다르면 다른 그림으로 보인다. ‘칼 요한 거리의 저녁’은 뭉크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한 작품이다. 1892년 세 차례의 프랑스 국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뭉크는 뭐 하나 이룬 게 없어서 두려웠다. 29살의 청년 뭉크에게 미래는 검은 밤하늘처럼 어두웠고 군중들 속에 파묻혀 있듯이 답답했다. 이번 전시에는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에는 손으로 채색한 석판화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한 점을 선보인다. 유화 버전과 좌우가 동일하며 아래 숨어서 관음하는 사람들의 눈을 모아둔 것이 특징이다.
  • ‘절규’ 그 너머, 무지개 너머 저편… 언제든 갈 수 있는 내 곁의 낙원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절규’ 그 너머, 무지개 너머 저편… 언제든 갈 수 있는 내 곁의 낙원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편안함·새로움 함께 선물하는 곳지하철만 타면 갈 수 있는 접근성음악분수의 무지개만 봐도 편해언제 봐도 명불허전인 ‘절규’ 감동미움·분노·절망 드러낸 보물창고뭉크의 숱한 실험에 전시장 후끈발소리 죽인 ‘찬란한 집중의 시간’당신만의 행복의 나라 찾는다면머나먼 런던이나 파리 아니어도내 일상 속의 아늑한 장소 찾기를 “작가님, ‘힐링 스페이스’ 연재에는 왜 머나먼 외국의 장소들만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번개를 맞은 듯 아찔했다. 당연히 나에게도 자주 방문할 수 있는 일상의 힐링 스페이스가 외국보다는 국내에 더 많다. 다만 국내의 장소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에 기획의 차별화를 위해 주로 이국적인 장소들을 소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특별한 치유의 장소는 외국에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었나 보다. 그동안 힐링 스페이스 연재에서 외국의 장소를 주로 소개했던 이유는 사진과 글을 통해 ‘아주 머나먼 장소로 떠난 듯한 상상의 기쁨’을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앉은 자리에서 세계 여행을 하는 기쁨이야말로 내가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일상의 희열이었다. 사실 치유적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우주 공간 그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다. 외국의 아름다운 장소는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을 충족시켜 주어서 좋고, 국내의 아름다운 장소는 ‘언제든 내 마음속에서 나만의 작은 천국을 찾을 수 있다’는 기쁨을 주어서 좋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건축가 구마 겐고의 ‘작고, 낮고, 느린 건축’을 좋아한다. 거대한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건축이 아니라 일상 속의 작은 평화를 추구하는 건축은 파리나 런던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마 겐고는 “쓰나미 이후 건축의 기준은 겸손함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건축가들이 느낀 심각한 혼란과 그 뒤의 겸허한 깨달음을 너무도 냉철하게 요약한 말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에 집착한 나머지 마치 하늘에 닿을 듯 높디높은 마천루만을 고집한다면,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의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구마 겐고는 작고, 낮고, 느리게, 세상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고요히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건축, 겸허한 건축을 추구한다. 구마 겐고의 건축이 세계 각국에서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 내는 이유는 이런 ‘자연 속으로 온전히 합일되는 건축’에는 유행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 위에 군림하거나 자연을 정복하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세계에 서서히 녹아들어 가는 ‘낮은 건축’의 사상은 재난이 일상화되고 기후 이변이 속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긴요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런 나에게 편안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선물하는 장소는 바로 예술의전당이다. 편안함은 언제든 지하철만 타면 도착할 수 있다는 접근성에서 나오고, 새로움은 늘 새로운 전시와 공연으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데서 나온다. 남부터미널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을뿐더러 굳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지 않아도 그저 ‘모차르트502’라는 예술의전당 카페에 앉아서 음악에 맞춰 신명나게 춤추는 음악분수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즘은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이라는 야심찬 전시회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이나 예술의전당을 방문했다. 한 번은 ‘전례없이 방대한 규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새로운 뭉크전이 열린다’는 엄청난 설렘 때문에, 두 번째는 ‘뭉크전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오직 전시 관람에만 집중하여 뭉크전의 열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두 번째 방문 때는 여동생과 어린 조카까지 함께하여 그야말로 가족끼리의 작은 소풍 같은 느낌이 나서 더욱 좋았다.나는 뭉크전의 테마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비욘드 더 스크림’, 그러니까 ‘절규’ 그 너머, 그 이상을 보게 하고 싶은 기획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뭉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절규’가 물론 언제 봐도 명불허전이긴 하지만 뭉크는 ‘절규’ 이외에도 수없이 다채로운 테마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다. 사랑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에서도 질투, 미움, 분노, 착취, 버려짐, 절망이라는 온갖 어둡고 쓰라린 면모를 드러내는 뭉크의 그림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보물 창고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처참하게 버려지다니’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어둡고 쓸쓸한 그림들이 관객의 가슴에 커다란 멍자국을 남긴다. 따스하고 화사한 그림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주제의 석판화를 서로 다른 색상으로 알록달록하게 찍어 내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설움과 분노마저도 아름답게 채색하는 듯한 작가의 수많은 실험의 열기로 전시장은 후끈 달아오른다. 게다가 뭉크는 날이 갈수록 더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의 작품이 다른 예술 장르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절규’는 영화나 포스터, 문구 디자인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끊임없이 오마주, 콜라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때마다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에게 뭉크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가 깊은 우울과 절망에 닻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마치 천형처럼 주어진 ‘끝없는 불안’이라는 주제는 뭉크에게 필생의 주제였으며 남들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 어둡고 쓰라린 주제를 뭉크는 결코 손쉽게 피해 가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자식은 오로지 그림뿐이다”라는 그의 선언이 가슴 아프면서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혹독한 정신적 불안과 우울 속에서도 평생 그림을 그리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림이란 단지 화가로서의 재능을 펼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에 드리운 우울과 불안의 그림자를 해독하는 일이었으며, 그 정신적 고통이 결코 자신만의 것이 아닌 현대인 전체의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실천이었다. ‘비욘드 더 스크림’, 절규 그 너머에는 진정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인류의 고통과 절망이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나는 한가람미술관에서 ‘비욘드 더 스크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흐르던 조용한 열광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 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기에 셔터 소리도 꽤 났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림 감상에 집중하기 위해 최대한 말소리를 줄이고 발소리도 죽이며 그야말로 ‘찬란한 집중의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그토록 조용한 집중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내는 것’에 놀랐다. 뭉크를 함께 관람하는 우리는 마치 조용하고 열광적인 ‘합창’처럼 ‘침묵’이라는 또 하나의 절규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절규’ 한 작품뿐만 아니라 뭉크 예술세계 전체의 외침을 들으려 하고 있었다. 소리 내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이를 악물어도 솟아 나오는 고통의 외침을, 나는 반드시 듣고 싶었다. 전시장에는 그런 은밀한 열광, 믿을 수 없이 질서정연한 침묵의 집중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뭉크가 들려주려는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아름다운 침묵의 합창 속에서는 장난꾸러기 우리 조카도 발소리를 살금살금 죽이며 조용히 ‘절규 그 너머’의 무지갯빛 예술의 합창을 제법 열심히 들으려 하는 듯했다. 그날 우연히 “노래는 끝났지만 멜로디는 남는다”(미국의 작곡가 어빙 벌린)는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노래가 끝나도 멜로디는 남는 날. 하루의 일과는 끝났어도 하루의 여운은 오래오래 남는 날이었다. 예술의전당에서 저녁 6시부터 시작되는 음악분수는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흥겨운 볼거리다. 음악에 맞춰 시원하게 분수의 물줄기가 올라오면 가끔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가운데 분수 물줄기에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채를 확연히 드러내는 무지개가 아른거리기도 한다. 음악분수에서 흥겨운 왈츠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가브리엘스 오보에’가 장엄하게 연주되기도 하며 ‘위풍당당 행진곡’이 들려오기도 했는데, 그 모든 멋진 음악들 사이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찬란하게 빛을 발한 것은 ‘오버 더 레인보’였다. 누구나 다 아는 노래라도 음악분수의 시원한 물줄기가 춤을 추며 그려 내는 ‘눈에 보이는 음악’은 정말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도 낯선 감각으로 우리의 심장을 두드렸다. 정말 시각적으로 ‘무지개 너머 저 어딘가’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음악분수의 찬란한 물줄기 사이로 일곱 색깔 무지개가 떴으며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춤을 추고 어른들은 찬란한 무지개의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그 순간 내 눈에는 그 음악분수의 무지개 너머로 까르르 미소 지으며 신명나게 막춤을 추고 있는 나의 어린 조카가 보였다. 뭉크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큰이모랑 놀러 간다’는 생각에 학교가 파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열살 소년. 그러면서도 뭉크의 ‘절규’를 따라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 하나는 그럴듯하게 찍어 주는, 웃음이 참 많은 아이. 이 세상 어딘가 무지개 너머의 이상향이 나에게는 해맑은 조카의 미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우리는 자꾸만 머나먼 무지개 너머 그 어딘가를 향해 그리움의 촉수를 뻗으려 하지만, 가끔은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무지개 너머의 천국이 바로 여기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나의 지칠 줄 모르는 개구쟁이 어린 왕자, 어린 조카와 함께 뭉크전을 관람하고 분수 쇼를 감상하느라 예술의전당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나는 ‘무지개 너머 그 어딘가’의 아름다움이 바로 내 마음속에, 조카의 눈망울 속에, 그날 나와 함께 예술의전당 곳곳을 행복하게 걸었던 사람들의 미소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무지개 너머 저편 그 어딘가에서 당신만의 행복의 나라를 찾는다면, 머나먼 런던이나 파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당신의 마음을 지금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일상 속 아늑한 장소를 찾기를. 동네의 작은 도서관도 좋고 당신이 매일 커피를 마시러 가는 익숙한 카페도 좋으며 자기 방의 키 작은 책상 위도 좋다.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는 곳, 그러면서도 당신이 지닌 창조성의 불꽃을 피워 올리게 만드는 곳, 그곳에서 오래오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창조하고 싶은 곳을 찾으라. 그곳이 바로 치유적 공간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의 ‘머나먼 무지개 너머 낙원’일 테니.
  • N차 관람·SNS 리뷰… 뭉크전 향한 발길, 연휴 나흘간 1만명 넘었다

    N차 관람·SNS 리뷰… 뭉크전 향한 발길, 연휴 나흘간 1만명 넘었다

    한때 티켓 매진… 추가 오픈하기도“‘절규’보다 마음 움직인 작품 만나”“말년에 그린 작품들에 주목하길”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 동안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찾은 관람객이 1만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가람미술관 등에 따르면 뭉크전에 지난 6일 하루에만 3345명이 다녀가는 등 연휴 내내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져 1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연휴 첫날인 6일에는 전시 시작 1시간 만인 오전 11시에 티켓 발권 인원이 1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시 티켓 구매처 가운데 한 곳인 인터파크 티켓에서는 준비 수량 매진으로 6~7일 티켓 1000장, 8~9일 티켓 600장을 추가로 오픈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시를 보고 간 관람객들은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통해 관람평을 남기며 전시의 여운을 전했다. 특히 ‘비욘드 더 스크림’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절규’ 외에 뭉크의 다른 작품을 소개한 게시물이 많았다. 아기와 함께 뭉크전을 찾은 한 관람객은 “아기를 데리고 미술관에 온 건 처음이라 긴장되고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면서도 “(비록) 작품을 느긋하게 모두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아기의 첫 예술작품 관람이 뭉크전이라 너무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2회차 관람에 대한 평을 남겼다. 그는 “전시된 ‘마돈나’에는 해골을 연상시키는 배아가 등장하는데, 다그니 율의 관능과 지적인 매력을 마돈나(절대 공존할 수 없는 아이템)에 투영해 그린 뭉크 멋지다”고 평했다. 8일 뭉크전을 찾은 직장인 김성수(43)씨는 “뭉크를 잘 아는 화가라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보고 나서 그동안 뭉크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걸 알게 됐다”며 “‘절규’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전시 오디오가이드 녹음을 맡은 이세라 아츠인유 대표는 “뭉크는 60년에 달하는 화업을 이어 간 작가인 만큼 ‘비욘드 더 스크림’이라는 이번 전시 제목에 주목해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며 “특히 이미 성공을 거둔 뭉크가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은둔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미술을 했다고 여겨지는 말년 에켈리 시절 그린 작품들에 주목하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화사한 자연에 영감을 받아 색감은 밝아졌지만 주제 면에서는 여전히 고독과 절망을 탐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밖 뭉크 회고전으로는 최대 규모인 이번 전시는 뭉크의 대표작 ‘절규’ 채색판화와 ‘키스’, ‘마돈나’, ‘병든 아이’ 등 140점의 작품을 14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 19일까지.
  • 위험하고 음산했던 파리… 어떻게 예술·낭만의 도시가 됐나

    위험하고 음산했던 파리… 어떻게 예술·낭만의 도시가 됐나

    곳곳에 권력과 시민 충돌의 흔적시대 흐름 따라 도시 성장사 탐구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를 얘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왜 아니겠는가. 발자크, 보들레르, 졸라, 드가 등 수많은 예술인이 파리를 사랑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루이 14세 때 건설된 대로에 자리잡은 파리는 과거 좁고 오래된 골목이 뒤엉키고, 도시의 오물이 거리에 나뒹구는 곳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그런 파리를 두고 ‘위험하고, 어둡고, 음산하다’고 했다.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아버지의 출판사인 페르낭 아장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출판인이자 작가다. ‘파리의 발명’은 파리 토박이인 그가 혁명과 예술이 발원하고, 음울과 환희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 파리 곳곳을 활보하며 과거의 흔적과 성장사를 탐구한 역작이다. 샤를 5세부터 앙리 4세, 루이 14세 등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왕들의 흔적은 권력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상티에 구역의 클레리 거리와 아부키르 거리는 샤를 5세 시대에 만든 성곽길을 따라 조성됐고, 루아얄 거리 끝의 루아얄 정자와 파크루아얄 거리 끝의 렌 정자는 앙리 4세의 의지로 만들어졌다. 에티엔마르셀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의 두 건물 역시 루이 14세 시대 건축물이다. 권력의 흔적만큼이나 봉기의 흔적도 분명하다. “1827년 11월 며칠간 밤의 바리케이드와 1871년 파리코뮌 70일간 대낮의 바리케이드 사이에 50년이 흐르는 동안 파리에서 일어난 시위, 폭동, 급습, 봉기, 반란의 목록은 너무 길어서 유럽의 어떤 수도도 파리에 필적하지 못한다.”(407쪽) 인구와 자본이 팽창하면서 갈등도 늘어났다. 18세기 말 쇼데를로 드 라클로는 파리가 복잡해져 길을 찾기 어렵게 되자 거리에 지번을 매기는 체계를 고안했다. 하지만 ‘평등한 방식의 도시 정비’는 민중과 구분되길 바랐던 부르주아의 반대에 부딪혔다. 샹젤리제, 몽마르트르, 마레 등 익히 알려진 관광지를 넘어 파리를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파리의 이면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외젠 아제의 사진, 피에르 보나르의 석판화 등 다양한 예술가의 도판과 지도, 사진 자료 등을 풍부하게 수록해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준비 과정까지 ‘블록버스터’… 한국 미술전시史 다시 쓰다 [뭉크의 명작 속으로]

    준비 과정까지 ‘블록버스터’… 한국 미술전시史 다시 쓰다 [뭉크의 명작 속으로]

    세계 각지 개인 소장가 찾아 설득140점 공수 ‘메이저 미술관 전시’‘주도적 해석’ 큐레이터 재조명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은 전시 수준뿐 아니라 준비 과정도 한국 미술전시사에 길이 남을 전시다. 뭉크 전시의 미술사적·미술행정적 의의를 이해한다면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미술계에서는 한 작가 또는 화풍을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를 일반 전시와 구분해 ‘메이저 미술관 전시’라고 부른다. 해당 작가 또는 화풍에 대한 전문 큐레이터가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들을 선별한 다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장품들을 모아 한자리에 전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에 대한 깊은 지식뿐 아니라 개인 소장처 정보도 파악해야 하며 수십 군데의 기관과 협상해 각 기관의 조건에 맞춰 보험, 운송, 보관 등을 진행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고 준비 기간은 보통 3년에서 5년이 소요된다. 이런 전시를 할 수 있는 미술관은 선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이번 뭉크전은 노르웨이,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 멕시코 개인 소장가 작품들까지 모두 140점(개인 소장작 126점)이 공수된,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메이저 미술관 전시다. 뭉크는 생전에 이미 노르웨이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았고 전업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판매했다. 따라서 뭉크가 말년에 남은 작품들을 오슬로시에 기증했음에도 많은 주요 작품들이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개인 소장가들은 미술관과 달리 자신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지 않고 작품 보호를 이유로 대여에도 소극적이다. 이번 전시의 주최 측은 각국의 뭉크 전문가들을 통해 뭉크의 주요 작품을 가진 개인 소장가들을 찾아내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선보인 126점의 개인 소장품들이 언제 다시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다. 특히 뭉크가 판화 위에 직접 채색한 핸드컬러 프린트의 경우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에서도 이번 전시와 같은 대규모 전시가 이뤄진 바 없다. 개인 소장품을 모아 오는 절차가 매우 어려운 까닭이다. 한국의 뭉크 전시를 전해 들은 유럽의 미술 애호가들이 개인 소장품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의 4대 요소는 작품, 전시장, 관객 그리고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전시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과거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곤 했지만 이제는 깊이 있는 해석을 요구하는 관객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뭉크를 전공하고 수많은 뭉크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뭉크를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의 교두보를 마련한 혁신가로 소개한다.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작품, 전시의 제목과 내용 선정, 전시장 동선과 디자인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뭉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 ■전시 팁: 작품을 감상하며 소장처를 확인할 것. 뭉크는 사후 작품을 모두 오슬로시에 기증했기에 전시된 개인 소장품은 대부분 생전 판매된 것이다. 뭉크 생전 어떤 작품들이 팔렸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 [문화마당] 피카소 도자기 파편에서 뭉크까지

    [문화마당] 피카소 도자기 파편에서 뭉크까지

    지난 5월 22일 뭉크 전시회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의 막이 올랐다. 모네, 피카소, 클림트 같은 세계적 예술가들의 국내 전시가 성공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합스부르크 전시나 영국 내셔널 갤러리 전시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요즘 중장년들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문화생활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화려하진 않으나 격식에 맞는 정장이나 세미 정장 차림으로 조용히 관람한다. 그래서 만져 보고 헤드폰을 써 보고 작품의 일부가 돼 보는 요즘 전시들을 어색해한다. 웬만해선 전시회장에 그어진 선을 넘지 않는다. 반대로 젊은이들의 관람 형태는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자기가 즐긴 문화 관람 행위를 바로바로 기록한다. 해시태그를 달며 다른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생소한 전시들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 20~30대 젊은층은 엄마 손에 이끌려 어렸을 때부터 전시회장을 찾아본 경험이 많다. 어린아이들에게 전시장은 참 무료한 곳이다. 소리 내면 안 되고, 만져도 안 되고, 뛰어서도 안 되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실제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상상 이상이다. 필자는 중학생 시절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회에 처음 가 보았다. 학교 단체 관람이라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전시였는데,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말로만 듣던 피카소의 작품을 직접 본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회가 드물 때였다. 사실 그때 본 피카소 전시회 작품들은 대개 판화, 습작, 도자기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도자기 파편이다. 지금이야 피카소 작품을 일별해 볼 줄도 알고 도자기 파편 중심으로 펼쳐진 전시회에 대해 쓴소리를 할 정도의 지식 수준을 가졌지만 당시로서는 피카소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면 파편이라도 좋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네의 작품 한두 점만 포함돼도 ‘모네 전시’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귀한 작품이 오고 뭉크 예술이 통째로 전시되고 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비행기값을 치르지 않아도 그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대중들의 뜨거운 열기와 반대로 미술사 인기는 시들해졌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각 대학원 미술사학과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각종 시험 및 구술, 논술, 영어 필기 고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실력을 가려냈다. 한 학기 대학원 학생수가 2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각 대학교 미술사 대학원 진학률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예술을 즐기려는 인구는 늘었는데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은 점점 줄고 있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인적 자원이 줄어든 후과는 10~20년 뒤에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다. 국내에서 1970년대 처음 미술사학과가 개설된 이래 순수미술사 학문 전공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융합, 문화, 콘텐츠 등의 복합적인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한 의료계, 과학계 인력 수급 방안을 모색하느라 이 작은 목소리를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현대판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으른들의 미술사]

    현대판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으른들의 미술사]

    뭉크의 대표작 ‘절규’의 배경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에케베르크 언덕이다. 뭉크는 이곳에 오면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누나의 장례식을 치른 곳이 이 언덕 근처였으며 레우라가 수용된 고스타드(Gaustad) 정신병원도 이 근처에 있었다. 뭉크는 여름 해 질 녘에 친구들과 함께 에케베르크 언덕을 산책 중이었다. 뭉크는 현기증이 나서 잠시 멈춰 섰다. 뭉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갑자기 해가 지고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고 불처럼 혀를 낼름거렸다. 나는 지쳐서 난간에 잠깐 기대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불안에 떨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을 가로지르는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뭉크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이 증상은 공황발작 증상이다. 가슴이 뛰고 어지럼 증세를 보인 뭉크는 난간에 기대섰다. 친구들은 뭉크의 상태를 알지 못해 앞으로 걸어갔고, 남겨진 뭉크는 기진맥진해서 불안에 떨었다. ‘절규’는 뭉크가 그 순간 느꼈던 현기증과 불안, 공포를 그린 것이다. 핏빛 하늘과 일렁이는 움직임은 뭉크의 신체와 정신 상태를 알려준다. 공황장애, 불안, 고독 등 현대인의 일상이 된 불안장애를 그린 이 그림은 ‘현대판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되었다. 낙서, 뭉크의 소심한 복수핏빛 구름 속에 자세히 보면 “이 그림은 미친 사람만 그릴 수 있다”라는 작은 낙서가 있다. 이 낙서는 작품이 제작되고 10여 년 흐른 1904년 처음 발견되었다. 미술관은 관람 도중 이 작품에 불만을 품은 어느 관람객이 낙서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2021년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작품 복원 과정에서 필체 감정을 통해 이 낙서는 뭉크 본인이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박물관은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뭉크가 1895년에 낙서한 것으로 보았다. 1895년 이 작품이 전시되자 뭉크의 정신 상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의학도인 샤펜베르크(Scharfenberg)는 뭉크 집안은 유전적으로 정신질환을 보유한 집안이라 뭉크 예술도 병들었다고 비난했다. 뭉크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왜냐하면 뭉크 자신도 강박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데다 여동생 레우라 마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샤펜베르크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라서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뭉크는 일기에 “나는 예술을 제작할 때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나의 예술은 늘 건강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뭉크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상처받은 뭉크가 홧김에 낙서했다고 결론 내렸다. 요즘 말로 하면 뭉크가 작품 댓글에 대댓글로 응수한 셈이다. 이처럼 뭉크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언쟁을 하면 화를 참지 못하고 반드시 어떻게든 복수했다. 뭉크와 언쟁을 벌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돼지나 두꺼비로 변하는 귀여운 형벌을 받았다. 뒤끝이 긴 뭉크는 복수도 소심하게 그러나 위대한 예술로 한 셈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4점의 채색본을 포함해 50여 점에 달하는 판화본이 있다. 뭉크는 채색본을 1893년에 두 점, 1895년과 1910년에 각각 한 점씩 그렸다. 4점의 작품들은 재료도 각각이며, 작품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4점 모두 유명해서 절도범들의 단골 표적이 되었으며 도난사고도 빈번했다. 뭉크의 ‘절규’는 노르웨이에서 국보로 대접받는 작품들이다. 뭉크는 판화 위에 채색을 가해 유일무이한 판화본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채색 판화본 두 점 가운데 한 점을 만날 수 있다.
  • 심경 써넣고, 채색하고… 혁신적 판화가 뭉크 뒤엔 ‘절규’가 있었다

    심경 써넣고, 채색하고… 혁신적 판화가 뭉크 뒤엔 ‘절규’가 있었다

    서울 온 ‘절규’ 채색판화의 의미판화로 찍은 뒤 채색… 전 세계 두 점하나의 주제 파고드는 예술적 집착독특한 질감 표현 매체로 판화 활용뭉크 판화의 핵심 ‘병든 아이’그림 기초로 채색해 모티프 강조 조각별 잉크칠 후 조립한 ‘두사람…’“과감한 실험, 판화에 생명력 부여” ‘나는 자연을 꿰뚫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Ich fülte das grosse Geschrei durch die Natur) 노르웨이 국민화가이자 표현주의 선구자인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대표작 ‘절규’(1895) 판화에 독일어로 이런 문장을 직접 써넣었다. 앞선 ‘절규’ 파스텔·유화(1893)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화가가 작품에 포착해 내려 했던 강렬한 감정이 이 문장과 함께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뭉크는 유화뿐 아니라 판화의 대가이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850개에 달하는 판을 만들었고 그렇게 남긴 판화 작품이 3만점이나 된다. 그가 생전 판화에 얼마나 애착을 뒀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의 작품 140점 중에서 판화는 절반이 훌쩍 넘는 91점, 그중에서 그가 직접 채색까지 한 건 22점에 이른다. 판화가로서 뭉크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 10점을 소개한다.원판만 있으면 작품을 얼마든 찍어낼 수 있는 판화는 분명 ‘복제가 가능한’ 예술이다. 서양화에서 판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15세기쯤으로 추정된다. 독일 미학자 발터 베냐민이 짚었던 본격적인 복제 예술인 사진이나 영화보다도 훨씬 일찍 출현해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중에서도 뭉크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판화가로서 혁신적인 표현기법을 도입해 판화가 현대미술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된다. 뭉크가 판화 기법을 처음 시도한 것은 1894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1893년 파스텔과 유화로 각각 먼저 그려졌다. 절규하고 있는 남성 위로 보이는 강렬한 붉은 선은 유화에서 확인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뭉크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다시 판화로 찍어냈다. 그림 속 인물의 심경을 담은 문장을 적어 넣은 것도 이때다. 지금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는 ‘절규’(섹션4) 판화는 작품을 찍은 뒤 화가가 직접 물감으로 채색한 ‘채색판화’로 전 세계 단 두 점뿐인 희귀한 그림이다. 판화 버전의 ‘절규’는 1895년 말 파리 예술잡지 ‘라 레뷔 블랑슈’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절규’의 세계적인 명성은 회화가 아니라 판화 덕분이었던 셈이다.이미 완성한 그림을 다시 판화로 찍는 것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집착’이다. 뭉크는 자신이 정한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화가였다. 한번 그린 걸 판화로 찍고 거기에 직접 색칠까지 하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한 단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겠다는 뭉크의 예술적 의지다. 판화가로서 뭉크의 역량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그림은 바로 ‘병든 아이’(1896·섹션5)다. 한 살 터울의 누나 소피의 죽음을 겪고 충격을 받은 열네 살 소년 뭉크가 평생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인데, ‘절규’와 마찬가지로 판화로 찍은 뒤 채색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변주를 줬다.원판 그림을 기초로 삼아 수채화 등으로 칠해서 모티프를 더욱 강조하는 시도로도 보인다. 이런 기법이 잘 드러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뱀파이어Ⅱ’(1895·섹션5), ‘카바레’(1895·섹션1)가 있다. 시인 겸 미술평론가 장소현은 저서에서 뭉크를 “과감한 실험을 통해 풍부한 표현의 세계를 개척해 단순한 복제기술로 전락해 생명을 잃었던 서양의 판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뭉크가 판화로 표현한 자화상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섹션1)이다.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창백한 얼굴 그리고 앙상한 팔뼈와 상단의 묘비를 연상시키는 장식은 죽음에 대한 비유다. ‘마돈나’(1895~1902·섹션8)도 상당히 인상적인 판화다. 치명적인 관능미를 뽐내지만 동시에 병약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여성의 그림을 뭉크는 회화 외 동판화와 흑백석판화, 채색판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 그림에는 태아, 정자 등 임신과 관련된 모티프들이 그림 곳곳에 담겨 있다.이와 함께 뭉크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판화 기법이 다양하게 녹아든 ‘해변의 두 여인’(1898~1917·섹션13)도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 주는 ‘불안’(1896·섹션5)은 ‘절규’와 비교해서 볼 만하다. 고갱의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달빛Ⅰ’(1896·섹션2), 각 조각에 따로 잉크를 칠한 다음 판화를 찍기 전 다시 조립하는 혁신적인 방법이 적용된 ‘두 사람. 외로운 이들’(1899~1917·섹션10)도 있다. 미술사학자인 우정아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뭉크는 판화를 단순히 대량으로 복제가 가능한 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라 거칠고 독특한 표면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 봤다”며 “판화에 직접 채색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것은 그러한 양식적인 실험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우 교수는 또 뭉크가 같은 작품을 판화로 반복적으로 표현했던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작품에 집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던 뭉크에게 판화는 그런 반복의 강박을 충족시켜 주는 매체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뭉크가 채색한 ‘절규’ 판화 단 2점… 그중 하나가 서울에 걸려 있다”

    “뭉크가 채색한 ‘절규’ 판화 단 2점… 그중 하나가 서울에 걸려 있다”

    “서울에서 전시되는 채색 판화 ‘절규’는 뭉크가 직접 제작한 작품으로 매우 아름답고 멋진 작품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의 전시를 총괄하고 있는 전시·컬렉션 부문장인 카스페르 테글레고르 코크는 “‘절규’ 채색판화는 뭉크미술관에서도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뭉크가 판화를 찍은 뒤 그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빨간색, 파란색, 녹색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대를 졸업했으며 2022년부터 뭉크미술관 전시·컬렉션 부문장을 맡고 있다.그는 “서울 전시는 뭉크미술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전시회”라면서 “뭉크미술관에서 이번 전시에 중요한 작품 9점을 보냈다”고 밝혔다. 뭉크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공개된 적이 없다. 이 중 1895년 파스텔로 그린 ‘뱀파이어’와 1906 ~1907년 작품 ‘표현적으로 그린 헨리크 입센의 유령 세트 디자인’, 1915년 작품 ‘해안의 풍경’과 ‘옐로야의 봄날’ 등 4점은 뭉크미술관을 제외하고는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는 뭉크미술관을 비롯해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대여받은 ‘절규’, ‘마돈나’, ‘뱀파이어’ 등 뭉크의 대표작 140점이 총출동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절규’는 판화 위에 뭉크가 채색한 핸드 컬러드 작품이다. 채색판화는 전 세계에 두 점이 있는데 서울에 온 것은 뭉크미술관 것이 아닌 개인 소장품이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이은경 도슨트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뭉크미술관서도 적극 지원대여 9점 대부분 아시아 미공개작‘뱀파이어’ 등 4점은 외부 첫 전시뭉크 예술세계 들여다볼 수 있어 -서울 전시에서 뭉크의 ‘생의 프리즈’ 연작 전시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뭉크미술관에서도 이런 형식으로 전시가 이뤄지나. “현재 우리 미술관은 상설 전시 형태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뭉크 작품 전시가 ‘생의 프리즈’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전에는 우리 미술관도 ‘생의 프리즈’ 형식으로 구성한 기획 전시를 했다. 2021년 새롭게 오픈한 뒤엔 뭉크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에 세 가지 버전의 ‘절규’가 있는데 어떻게 전시되나. “‘절규’만을 전시하는 별도 공간에서 유화, 파스텔, 판화 3가지 버전이 돌아가며 전시된다. 3면의 가벽 속에 작품이 한 점씩 들어 있고, 30분 간격으로 한 개의 벽만 오픈되는 방식으로 선보인다. 유화나 파스텔 버전보다는 판화 버전을 더 자주 공개하고 있다.”‘절규’는 오해가 많은 명화작품 속 인물, 비명 지르는 게 아냐자연의 절규에 놀라 귀 막은 것뿐뭉크 수작업 채색판화 매우 희귀 -세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지 않는 이유는. “작품들이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만일 유화 버전을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전시한다면 작품의 색이 바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은 아니지만 50년 후에는 어두운 붉은색이 핑크색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화 버전은 하루 중 2시간, 즉 30분씩 4번만 전시된다. 변질 속도를 늦춰야 하기 때문에 항상 볼 수는 없지만 정해진 시간에 감상할 수 있다. 파스텔과 판화 버전도 같은 이유로 전시 횟수가 조정되는 것이다.” -‘절규’가 다른 작품에 비해 빛에 민감한 이유는. “‘절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 중 하나인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빛에 매우 민감한 종이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절규’는 어떤 작품인가.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판화 버전이지만 그 위에 수작업으로 채색한 핸드 컬러드 작품이다. 개인 소장품으로 매우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다.” -판화는 뭉크가 직접 채색한 작품인가. “물론이다. 뭉크가 흑백으로 판화로 찍은 후에 그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빨간색, 파란색, 녹색을 직접 그려 넣은 것이다.” -‘절규’ 속 인물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절규’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손으로 볼을 감싼 게 아니라 자연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자연의 절규에 너무나 놀라 소리도 낼 수 없이 입만 벌리고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절규’는 아마 이 세상 명화 중 가장 오해가 많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뭉크미술관에서 서울 전시에 보낸 9점은 어떤 작품인가. “서울 전시회를 맡은 큐레이터인 디터 부흐하르트 박사가 우리 미술관에 대여를 요청해 선정한 것이다. 요청을 받은 여러점 중에서 파손되기 쉬운 작품이나 이동할 때 진동 등에 취약한 작품들을 제외하고 9점을 골랐다. 9점은 모두 뭉크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리 미술관에서도 서울 전시회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뭉크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매일 좋아하는 작품이 달라지는데 ‘절규’나 ‘마돈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생명의 춤’(Dance of Life)이다. 뭉크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연극 무대와도 같은 방식으로 보여 준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등장해 사랑에 대한 종합적인 감정을 한 화폭에서 보여 주기 때문이다.” -2004년 ‘절규’와 ‘마돈나’ 도난 사건 이후 작품의 보안은. “예전의 미술관은 보안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출입이 용이해 들어가서 그냥 들고 나오면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 지은 뭉크미술관은 보안관리 대책을 단단히 세웠다. 작품을 가지고 미술관을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었다. 보안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작품들이 모두 벽에 잠금 장치로 고정돼 있다.” -도난당했던 작품의 상태와 복원은. “‘절규’와 ‘마돈나’가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왔을 때 두 작품 모두 파손이 심한 상태였다. 특히 ‘마돈나’의 파손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마돈나’는 작품 뒤편을 지탱하던 프레임이 뜯겨서 제거된 상태로 발견돼 어렵게 복원과 보존을 해야 했다. ‘절규’는 작품 아래쪽을 보면 색깔이 변한 걸 볼 수 있다. 어두운 빨간색이 조금 옅어졌다. 도난 때 발생한 손상이다. 물이 작품에 스며들면서 색깔이 변질됐는데 이런 부분은 복원이 불가능하다. 우리 미술관에는 탁월한 작품 복원 실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 작품이 변질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대응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의 전시 형식은유화·파스텔·판화 버전 ‘절규’ 보유 빛에 민감한 종이에 그려져 있어한 작품당 30분씩 돌아가며 공개 - 마지막으로 작품 관리는.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품의 보존과 보호다.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한 수장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장고는 기후에 따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어 작품의 상태를 장기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빛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색이 바래지 않도록 전시실의 조도를 낮춰 작품이 빛에 덜 노출되도록 하고 있다.”
  • 진주 출신 이성자 화백 작업실, 프랑스 문화유산 되다

    진주 출신 이성자 화백 작업실, 프랑스 문화유산 되다

    경남 진주 출신인 이성백(1918~2009) 화백 프랑스 작업실이 현지에서 건축·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29일 진주시는 프랑스 투레트시에 있는 이 화백 작업실(아뜰리에 은하수)이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프랑스 문화부가 지정하는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은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100년 미만 건물이나 건축단지·구조물 중 건축·기술·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말한다.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로 지정되려면 프랑스 문화부와 주정부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지정 이후에는 중앙정부·주정부 각종 간행물을 통한 홍보, 주요 도로 표지판에 소재지 안내, 건물 보존을 위한 기술적 협력 등을 지원받는다. 이 화백의 화실 ‘은하수’는 이 화백이 설계하고 지역건축가 크리스토프 프티콜로가 지었다. 1993년 완공돼 이 화백이 작고하기 전까지 화실과 주거공간으로 사용됐다. 진주시는 이번 프랑스 문화부 결정을 두고 ‘이 화백 작업실이 한국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건축·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진주 출신 이성자 화백의 프랑스 소재 화실이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된 것은 진주시뿐만 아니라 한국의 큰 자랑”이라며 “전통적인 문화예술도시 진주를 대내외에 알리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자 화백은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다. 평생에 걸쳐 동양적 이미지를 담은 회화, 판화, 공예 등 1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화백은 2008년 미술작품 375점을 진주시에 기증했다. 2015년 진주시는 이 화백 이름을 딴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을 개관했고, 상설전시 등으로 이성자 화백 작품을 알리고 있다. 이달 진주시는 프랑스 투레트시 시장, 관계자들과 화상회의를 열고 이성자 화백을 매개로 한 파트너십 구축 방안도 논의했다. 시는 오는 7월 프랑스에서 투레트시 시장 면담과 국제교류 업무협약 체결도 준비 중이다.
  • 존재의 근원 파고든 ‘자화상’ 혁신가적 면모 ‘절규’… 놓치지 마세요 [뭉크展 하이라이트 작품]

    존재의 근원 파고든 ‘자화상’ 혁신가적 면모 ‘절규’… 놓치지 마세요 [뭉크展 하이라이트 작품]

    노르웨이 국민화가이자 표현주의의 선구자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개인의 내면을 보편의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화가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 절대 지나쳐서는 안 되는 주제가 바로 ‘자화상’이다. 자신을 열심히 그린 건 뭉크도 여느 화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안, 고독 등 인간 존재의 근원까지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포착한 화가는 뭉크만 한 사람이 없다.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소장처에서 작품 140점을 공수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53) 큐레이터가 직접 꼽은 중요한 그림 15점을 소개한다.오스트리아 빈 쿤스트할레 크렘스미술관 디렉터 등을 역임한 부흐하르트는 뭉크를 비롯해 장미셸 바스키아, 파블로 피카소, 에곤 실레 등 19~20세기에 활동했던 세계적인 화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미술사학자다. 140점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도 이 그림들만큼은 꼭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히 감상하시길. 자신에게 몰두한 화가전시의 처음과 끝 장식한 ‘자화상’젊은 시절 초기 작품 중에 손꼽혀 노인이 된 모습, 절대적 고독 표상조각으로 표현한 신체는 죽음 은유 부흐하르트가 “뭉크만큼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화가는 찾기 어렵다”고 했을 만큼 뭉크는 다양한 ‘자화상’을 남겼다. 유화 70점, 판화 20점, 드로잉·수채화 100점 이상으로 확인되는 뭉크의 자화상은 그가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일에 몰입했는지 알려 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것도 그래서 ‘자화상’이다. 뭉크의 젊은 시절을 화폭에 담은 ‘자화상’ (1882~1883·섹션1)은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뭉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게 미술사가들의 평가다. 젊은 뭉크와 마주했던 관람객은 그의 예술세계를 탐미하다가 전시 마지막에 노인이 된 뭉크를 만난다. 뭉크가 생의 끝자락에서 그린 ‘자화상’(1940~1943·섹션14)은 늙어감과 거기에서 오는 인간의 절대적인 고독을 표상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뭉크는 신체를 여러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라는 한 존재가 작은 원자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죽음을 은유한 것이다. 절망을 넘어선 관능강렬한 여성 이미지 앞세운 작품기존 이미지에 새 이미지 덧입힌‘목욕하는 여인들’ 실험정신 빛나‘키스’ 1892년과 1921년작을 추천 불안과 고독의 화가로만 알려진 뭉크에게 중요했던 주제 중 하나가 ‘관능’이었다는 점은 새롭게 다가온다. 강렬한 여성 이미지를 앞세운 ‘목욕하는 여인들’(1917·섹션3), ‘재’(1896·섹션5)나 사랑의 환희와 고통을 한 그림 안에서 포착한 ‘뱀파이어’(1895·섹션5)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특히 ‘목욕하는 여인들’의 경우 뭉크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게 부흐하르트의 평가다.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 위에 독립적인 이미지를 투명하게 덧입히면서 마치 이중으로 노출된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입맞춤으로 하나가 된 남녀를 표현한 ‘키스’는 뭉크가 죽기 전까지 반복적으로 그렸던 그림이다. 뭉크가 그린 ‘키스’는 판화로는 10점, 회화로는 12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키스’가 소개되고 있는데 부흐하르트는 1892년작(섹션2)과 1921년작(섹션12)을 추천했다. 1892년작은 뭉크의 연작 기획인 ‘생의 프리즈’에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사랑에 빠진 커플을 마치 하나의 몸처럼 그리고 있으며 창문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비교했을 때 1921년작은 더욱 과감해진 붓질과 두꺼운 선을 통해 키스하는 커플과 배경을 분리하고 있다고 부흐하르트는 짚었다. 그는 “창문 대신 달빛이 반짝이는 밤바다 부근 숲속에 커플을 배치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우리의 감정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독창적인 매체 미학‘절규’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판화에 회화적 요소 적극 도입‘카바레’ 무용수의 현란한 다리동작 분해해 보여준 방식 시초 부흐하르트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절규’(1895·섹션4) 채색판화와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1896~1897·섹션4)을 통해 “판화에 회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뭉크의 혁신가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무성영화에 심취했던 뭉크가 그림에 영화적인 기법을 도입한 것처럼 보이는 ‘벌목지’(1912·섹션6)와 빛 반사 등 사진의 요소를 그림에 활용한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1911·섹션12), 서로 다른 그림이지만 종이 양면에 그려져 한 작품으로 치는 섹션3의 ‘난간 옆의 여인’(1891)과 ‘목소리’(1891)에서 그의 독창적인 매체 미학이 엿보이기도 한다.이와 함께 ‘카바레’(1895·섹션1)는 무용수의 현란한 다리 움직임을 조합해서 하나의 화면 속에 포착하고 있다. 이것은 당대 굉장히 혁신적인 기법으로 현대 미술에서 동작을 분해해 보여 주는 표현 방식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한 인물을 여러 기법으로 그리면서 그의 다양한 성격을 나타내고자 했던 기획의 일환인 초상화 ‘잉에르 바르트’(1921·섹션11)도 눈여겨볼 만하다. 뭉크를 상징하는 감정인 절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생클루의 밤’(1893·섹션2)도 걸작이다. 전시는 오는 9월 19일까지 이어진다.
  • 뭉크, 동병상련을 느끼다 [으른들의 미술사]

    뭉크, 동병상련을 느끼다 [으른들의 미술사]

    ‘멜랑콜리’는 뭉크의 동료 야페 닐슨(Jappe Nilssen)이 오스가르스트란 해안가에 앉아 수심에 잠긴 듯 손으로 턱을 바치고 있는 장면이다. 이곳은 뭉크가 1889년부터 여름을 보낸 오스가르스트란이다. 오스가르스트란 해안가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구불거리는 선은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젊은이의 마음 선이다. 이 작품은 ‘우울’, ‘저녁’, ‘질투’라는 여러 제목으로 불린다. 뭉크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닐슨의 무기력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보면 닐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안 풍경 저 멀리 부둣가에 한 커플이 서 있다. 부둣가에 닐슨이 짝사랑한 연인 오다 크로그가 남편 크리스티안 크로그와 함께 배를 기다리고 있다. 크로그 부부는 배를 타고 섬으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갈 것이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들이 즐긴 자유연애오다와 크로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의 핵심 구성원이다. 크로그는 뭉크의 예술 초기 뭉크의 그림을 수정해주며 뭉크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넨 스승이다. 오다도 크로그의 미술 수업을 듣던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오다는 제자라는 인연에서 스승 크로그의 아내가 되었다.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에서 사랑, 연애, 질투, 불륜은 구분이 없었다. 크로그, 오다, 예게르는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이들 셋이 사회적 제약이 없는 연애를 즐겼다. 오다는 남편 크로그 뿐 아니라 예게르와도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다. 오다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 내에서 크로그, 예게르와 시끌벅적한 사랑을 한 오다는 다시 열 살 연하 닐슨에게 추파를 던졌다. 닐슨은 유부녀인 오다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순진한 닐슨은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이 권장하는 자유연애가 맞지 않았다. 닐슨의 사랑은 오직 오다만을 향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남편과 함께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닐슨의 심정은 무너졌다. 그러나 닐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의 상실감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심정에 대해 뭉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뭉크 역시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인 유부녀 밀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는 닐슨의 상실감을 잘 알고 있었다. 뭉크 역시 밀리와의 사랑을 정리했다고 믿었지만 오슬로 카를 요한 거리에서 밀리를 보자 마음이 요동쳤던 기억이 있다. 뭉크는 6년 전 감정이 되살아났다. 한 공간, 두 개의 감정이날의 감정은 뭉크가 어느날 해안가를 걷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돌 틈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고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뭉크는 만사가 허무했고 갑자기 죽음이 떠올랐다. 그 순간 선창가에 세 사람이 보였다. 뭉크는 휜 옷을 입은 여성이 밀리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밀리가 아니라 오다였다. 뭉크는 닐슨을 맨 오른쪽에 배치하고 크로그 부부를 저 멀리 배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강조했다. 사실 이들 사이의 거리는 급격한 원근법으로 표현한 것보다 더 멀었다. 한 공간에서 두 개의 다른 감정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았지만 뭉크는 닐슨의 감정만을 부각시켰다. 사랑하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못해 절망감에 빠져 우울한 닐슨은 뭉크 자신이었다. 이 작품이 1891년 오슬로에서 전시되자 또 많은 이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이 작품 역시 완성작이 아니라 초벌이나 습작 정도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많은 비난 중에서 유일하게 크로그만 이 작품을 극찬했다. 크로그는 ‘이 작품에서처럼 색채가 울려 퍼지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라며 노르웨이의 상징주의 그림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크로그는 이 작품의 배경에 하나의 점으로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인 줄 몰랐다. 이번 전시에는1891~1894년 뭉크는 ‘멜랑콜리’를 여러 유화본으로 그렸다. 또한 뭉크는 목판화로 ‘멜랑콜리’ Ⅰ-Ⅲ까지 여러 번 변조해 목판본의 질감과 색상 변화를 실험했다. 뭉크는 닐슨이 느낀 이 상실감에 대해 모티프를 여러 차례 변화를 선보였다. 이후 이 작품의 무대는 뭉크 작품의 주 무대가 되며 비극적인 감성은 ‘절규’로 이어진다. 특이하게 이 작품은 유화본과 판화본이 좌우가 바뀌지 않았다. 이는 뭉크가 판화본을 제작할 때 미리 좌우를 뒤집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미리 좌우를 뒤집어 제작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뭉크는 좌우가 바뀌는 판화를 유화와 동일하게 하고 채색함으로써 판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개인 소장본에서는 채색이 되어 유화와 같은 닐슨의 심리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뭉크, 살아남은 자의 속죄와 치유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뭉크, 살아남은 자의 속죄와 치유

    노르웨이의 거장 에드바르 뭉크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잇따른 질병과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경험했다. 이는 “공포, 슬픔, 죽음의 천사들은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내 곁에 있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내내 질병은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죽었다”라는 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뭉크의 어머니는 1868년 결핵을 앓다가 30세로 세상을 떠났고 뭉크가 가장 좋아했던 누나 소피도 결핵에 걸려 1877년 15세로 사망했다. 뭉크의 남동생 안드레아스는 1895년 29세에 폐렴으로 죽었고 뭉크 자신도 어렸을 때 결핵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뭉크는 결핵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서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생존자증후군’이라 불리는 심적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런 어두운 감정은 뭉크의 삶과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죽음, 불안, 절망 등의 주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뭉크가 가장 의지하고 따랐던 누나 소피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을 담은 ‘병든 아이’ 연작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상실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뭉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이었던 누나의 임종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겪은 고통과 속죄의식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다. 1885년부터 1926년까지 40여년 동안 유화, 석판화, 목판화,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사용해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구하고 해석하며 수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병든 아이’는 뭉크의 예술적 성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며, 그의 예술의 핵심을 담고 있다. 뭉크는 “‘병든 아이’와 함께 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내 예술의 돌파구였다. 나의 작품 대부분이 이 이미지에서 탄생했다”라고 썼다. ‘병든 아이’ 연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소피가 임종 순간에 겪었던 죽음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개를 떨군 채 두 손으로 조카의 손을 꼭 잡고 오열하는 이모 카렌의 모습은 인간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을 보여 준다. 뭉크에게 누나의 죽음을 그리는 작업은 상실의 아픔을 직면하고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병든 아이’ 연작을 통해 개인적인 비극을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승화시켰다. 이는 그의 예술적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 [데스크 시각] 뭉크전과 K문화의 위상

    [데스크 시각] 뭉크전과 K문화의 위상

    “원래는 160점까지 모았어요. 한국에서 뭉크전을 하겠다니 전 세계 소장처들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사인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뭉크의 대표작 ‘절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가 잘 몰랐던 뭉크의 첫 노르웨이 밖 공개 작품 등 명작 140점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전시 이름처럼 ‘절규를 넘어’ 뭉크를 더 알고 싶고 그의 예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다. 서울신문이 뭉크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큐레이터 디터 부흐하르트 박사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을 비롯해 미국, 멕시코, 스위스 등 전 세계 23개 소장처에 흩어져 있던 뭉크 작품들을 정성껏 모았다. 160점까지 늘었다가 비슷한 작품을 정리하는 등 엄선해 최종 140점이 추려졌다. 126점의 방대한 개인 소장작에다 최초 공개(뭉크미술관 외)된 네 작품을 비롯해 ‘절규’ 채색판화 등 아시아에서 대부분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끈다. 개막식 전후로 여러 차례 만난 부흐하르트 박사는 “한국 문화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져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고, 그런 평가 속에 유럽 밖 최대 규모의 뭉크전을 한국에서 열게 된 것”이라며 “K팝 전도사인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미술을 좋아하고 작품 소장도 많이 했다는데 이번 뭉크전을 꼭 보러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그가 K문화를 잘 알고 특히 RM 등 한국 연예인들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한 것이다. ‘한류’의 본격화는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한동안 소강상태를 겪기도 했는데 2013년 보이그룹 BTS의 등장으로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히트를 치면서 K문화는 이제 어느 나라에서나 즐기는 삶의 한 부분이 됐다. K팝이 견인한 한류 2라운드는 한국어 배우기와 한식 즐기기 등으로 이어졌고, 한국 방문 외국인 여행객도 증가하는 추세다. 뭉크전 현장에서 만난 한 외신기자는 “이번 전시는 외국인 관광객들한테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렇지만 K문화의 갈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이 2019~22년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영화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 소식을 전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후보에서도 한국 작품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 빌보드 등 세계 유수의 차트 정상에 계속 오르고 있는 ‘21세기 팝 아이콘’ BTS는 2020~22년 3년 연속 후보에 올랐던 그래미 시상식의 올해 후보에 포함되지 못했다. BTS의 그래미 수상 도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또 2016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처음 수상한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에 올해 도전했던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 아쉬움을 남겼다. 게다가 최근 불거진 ‘하이브 vs 민희진 사태’와 가수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은 K문화의 앞날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 특히 2022년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를 둘러싼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간 공방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들 사태와 관련해 “사회적인 병리현상”이라며 “걱정도 되고 실망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K팝도 잘 가고 있지만 그 마음속에 욕심이 있는 것이다. 서로 내가 잘했다고 얘기하는 것이 (한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문체부는 밑바닥에서 열심히 하면서 바꿔 나가는 분들을 더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K문화가 그동안 쌓아 온 위상을 더 높이려면 개개인의 욕심보다 대의를 추구하고, 민관이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다. 김미경 문화체육부장
  • ‘절규’의 시작을 만나다… 뭉크, 그 이상을 남기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절규’의 시작을 만나다… 뭉크, 그 이상을 남기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노르웨이 오슬로는 표현주의 창시자인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도시다. 뭉크가 예술가로 성장한 도시이자 삶의 마지막을 함께한 도시다. 그가 작품으로 표현했던 삶과 죽음, 고독, 사랑, 질투, 우울, 불안 등 실존적 주제의 중심에는 오슬로라는 예술 공간이 있었다.뭉크는 ‘아버지로부터 광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정서적인 불안과 고독이 평생을 따라다녔지만 이를 그림으로 세밀하게 승화시켰다.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전시회는 9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올해는 뭉크 사망 80주기가 되는 해다. 뭉크의 흔적을 따라 오슬로를 돌아봤다.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절규’는 오슬로 시내와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며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괴로워하는 얼굴은 인간의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됐고, 세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작품이 됐다. ‘절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절규’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 앨범 표지는 물론 이모티콘 등에도 활용되면서 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뭉크의 삶과 예술이 함께한 도시 오슬로 곳곳에는 뭉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 화실, 그가 속해 있던 예술 그룹 회원들과 다니던 카페 등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가 영면에 들어간 ‘우리 구세주 공동묘지’도 오슬로에 있다. 뭉크가 평생 어두운 그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낙천적으로 변했고, 풍경과 인물을 그렸다. 노르웨이 옛 화폐인 1000크로네(NOK) 지폐에 나오는 ‘태양’은 밝고 웅장한 작품으로 노르웨이 국민들이 ‘절규’와 함께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유화 1100여점, 판화 1만 8000여점, 드로잉·수채화 4500여점, 조각 6점과 92권의 스케치북, 편지, 다량의 석판 등을 남겼다. 그는 죽기 전 작품 2만 8000여점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절규’와 ‘마돈나’ 등 상당수 작품들은 유화, 파스텔, 판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했다.●‘절규’ 영감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 뭉크의 그림 속 풍경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절규’의 영감을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이다. 뭉크는 1892년 1월 22일 쓴 일기에서 ‘어느 날 저녁 나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길 한쪽에 도시가 있었고 아래에는 피오르가 있었다. 나는 피곤함과 아픔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서서 피오르 너머를 바라보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비명을 느꼈다. 비명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장면을 그렸다. 구름을 실제 피로 그렸다. 그 색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것이 ‘절규’가 되었다’고 적었다. 절규에는 크리스티아나(오슬로의 옛 이름) 피오르의 짙고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일그러진 풍경에 동요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뭉크가 에케베르그 언덕에서 하이킹을 하다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 언덕에서는 뭉크가 ‘절규’에 담았던 핏빛 하늘의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 19번 트램을 타고 에케베르그 공원에 내린 뒤 전망대를 지나 숲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들어가면 뭉크가 산책했던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뭉크가 화폭에 담은 곳은 에케베르그 언덕 외에도 오슬로의 메인 거리인 카를요한 거리다. 카를요한 거리는 오슬로 최대 번화가로 노르웨이 왕궁까지 이어지며 뭉크의 삶에서 중요한 여러 장소와 이어진다.●아파트·화실·카페 등 흔적 가득 남아 뭉크가 첫 스튜디오를 임대한 곳은 의회 건물 바로 건너편에 있다. 또 1800년대 후반 예술가들의 인기 장소였던 그랜드 카페와 뭉크가 많은 전시회를 열었던 미술관도 근처에 있다. 또 뭉크가 1904년 그의 대작 ‘생의 프리즈’를 전시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카를요한 거리를 모티브로 시기와 계절에 따라 다양한 거리 모습을 그렸다. 1890년 작품 ‘카를요한 거리의 봄날’은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그렸지만, 1891년 그린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이라는 작품은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살았던 아파트와 묘지가 남아 있다. 뭉크는 노르웨이 북쪽 농가 마을인 오달스브루크 뢰텐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은 오슬로에서 보냈다. 당시 오슬로는 ‘크리스티아니아’로 불리던 곳이었다. 뭉크는 군의관인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1817~1889)와 어머니 라우라 카테리네 비욀스타(1838~1868) 사이에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누나 요한 소피와 남동생 페테르 안드레아스, 여동생 라우라와 잉게르 등 3명의 동생이 있었다. 오슬로의 삶은 뭉크가 한 살 때인 1864년 아버지가 아케르스후스 요새의 의료 책임자로 임명돼 오슬로로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군의관인 아버지의 봉급은 매우 낮았고, 개인 사업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그의 가족은 늘 빈곤에 시달렸다. 그들은 값싼 아파트를 찾아 이사다니며 시내 여러 곳에서 살았다. 처음 거주한 집은 오슬로 네드레 슬로츠게이트9에 있는 아파트로 5살 때까지 살았다. 이 집은 아버지의 직장인 아케르스후스 요새와는 도보로 10분(700m) 떨어진 카를요한 거리 인근으로 지금은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거리로 변했다.●가난과 죽음의 공포 화폭에 담아내 이후 그는 필레스트레데트 30, 토르발트 마이어스 게이트 48, 포스베이엔 7, 올라프 라이스 4번가, 슈우스 광장1 등 1889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오슬로에서 살았다. 뭉크는 이후 프랑스와 독일 등을 오가며 활동하다 말년에는 다시 오슬로 외곽에 있는 에켈리(1916~1944)에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외부와 고립된 채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필레스트레데트 30에 살던 1869년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가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뭉크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담은 그림이 1897~1899년 그린 ‘죽은 어머니와 아이’다. 포스바이엔 7에 살던 1877년에는 누나 소피가 어머니와 같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의지하던 누나의 죽음은 1893년 작품 ‘병실에서의 죽음’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폐 질환에 대한 공포가 평생 집요하게 엄습해 고독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런 성품은 그의 작품과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세 버전의 ‘절규’ 품은 뭉크 미술관 뭉크는 죽은 뒤 ‘우리 구세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묘지에 가려면 중앙역에서 37번 버스를 타면 된다. 묘지에는 노르웨이 유명 인사들이 함께 묻혀 있는데 뭉크 묘지 인근에는 노르웨이 대표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1828~ 1906)의 묘지가 있다. 오슬로에서는 뭉크가 기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뭉크 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오슬로 시청 뭉크의 방, 호텔 콘티넨털 바보만,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 등에서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은 뭉크 미술관이다. 미술관에서는 뭉크가 사용하던 그림 도구 등도 볼 수 있다. 미술관은 1963년 시 외곽에 있었으나 전시실이 좁아 뭉크의 작품을 모두 전시할 수 없게 되자 오슬로시에서 2016년 새로운 뭉크 미술관을 세우기로 했다.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현재 뭉크 미술관은 2021년 10월 새로 문을 연 곳이다. 뭉크 미술관은 현대식으로 지어진 13층 건물로 11개의 전시실이 있다. 미술관 총면적은 약 2만 1367㎡로 옛 뭉크 미술관보다 전시 면적이 5배 늘었다. 미술관에서는 3점의 ‘절규’를 만날 수 있다. 절규는 4점의 유화·파스텔 그림과 46점의 석판화 프린트로 제작됐다. 1893년 파스텔과 유화로 1점씩 그렸고 1895년 석판화가 제작됐다. 1895년 파스텔로 1점을 더 그렸고 1910년에도 템페라 작품을 남겼다. 별도의 독립 전시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3점의 ‘절규’는 30분 간격으로 1점씩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미술관에는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에 그렸던 벽화 ‘태양’을 전시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 밖에도 ‘마돈나’, ‘아픈 아이’, ‘마리의 죽음’, ‘병실에서의 죽음’, ‘자화상’ 등 많은 작품이 있다.●국립박물관엔 ‘생의 프리즈’ 연작 미술관은 중앙역에서 도보로 8분(600m) 거리에 있는 오슬로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수~일 오후 9시)다. 입장료는 160크로네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는 뭉크의 ‘생의 프리즈’ 연작을 별도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뭉크의 작품 58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4점의 ‘절규’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1893년 유화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병실에서의 죽음’, ‘사춘기’, ‘재’ 등 초기 작품부터 1920년까지의 작품이 있다. 특히 노르웨이 브륀율프 불스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1891년 뭉크의 작품 ‘니차의 밤’을 사들인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다. 국립박물관은 1837년 세워진 노르웨이 최초의 공공 박물관이다. 2003년 국립미술관, 건축 박물관, 장식 예술 디자인 박물관, 현대 미술관 등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2022년 새로 지어진 국립박물관은 독일 건축가 클라우스 슈베르크가 설계했다. 박물관의 전체 면적은 5만 4600㎡에 달하며 90여개의 전시실이 있다. 박물관에는 그림은 물론 19~20세기 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뭉크 작품 외에도 노르웨이 화가 라르스 헤르테르비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등도 소장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은 브륀율프 불스 광장에 있으며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월요일 휴무)다. 입장료는 200크로네다.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에 있는 벽화 ‘태양’은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다. 오슬로대 100주년 기념식에 지어진 새 홀을 장식하기 위해 1916년 현장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당시 이 대형 그림들은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스타일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작품은 토요일 특정시간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한다. ●시청·대학·호텔 곳곳에도 뭉크 작품 오슬로 시청의 뭉크 방에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큰 그림이 있다. 이 방은 시청의 정규 개장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콘티넨털 바 보만에도 뭉크의 그림이 걸려있다. 1932년 호텔 소유주 아르네 보만 한센이 오슬로 미술상에서 뭉크의 그림 12점을 사들인 것이다. 뭉크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도 많이 남아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속한 예술 그룹 크리스티나 보헴의 아지트였던 그랑카페와 잉에브레트 카페 등이 남아 있다. 뭉크의 아지트인 그랑카페는 카를요한 거리의 랜드마크와 같은 그랜드호텔 1층에 있는 카페로 많은 예술가가 영감을 떠올린 곳이다. 내부에는 1874년 문을 연 이래 간직해 온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극작가 헨리크 입센도 매일같이 방문했다고 한다. 메뉴판에는 입센의 글이 적혀 있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메뉴가 있을 정도로 그와 깊은 인연이 있는 레스토랑이다. 그랜드호텔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숙박하는 공식적인 호텔로 뭉크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857년에 문을 연 잉에브레트 카페는 뭉크가 수십 년간 자주 찾던 곳이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의 회원인 크리스티안 크로흐, 한스 예거, 오다 라손과 함께 구석진 방에 주로 앉았다고 한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뭉크가 오슬로 예술가협회 회원 자격을 취소하는 편지가 담긴 액자가 전시돼 있다. 뭉크는 잉에브레트에서 긴 밤 파티를 즐긴 후 이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행수첩] →항공 : 오슬로까지는 특정 시기에 운항하는 전세기를 제외하고는 직항편이 없다. 파리, 암스테르담, 뮌헨 등 유럽 도시나 중동의 두바이, 카타르 등을 경유해야 한다. 요금은 출발일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120만~180만원(일반석 기준) 정도다. →호텔 : 오슬로는 유럽 도시들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이다. 오슬로 중앙역 근처 2~3성급 호텔이 1박에 20만~40만원 정도다. 중앙역 인근에 숙박하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Oslo Lufthavn)이나 시내 이동이 편리하다. 중앙역에서는 뭉크 미술관이나 카를요한 거리를 도보로 갈 수 있다. →교통 : 오슬로 공항에서 공항 쾌속 열차인 플뤼토게를 이용하면 중앙역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240크로네다. 오슬로 패스를 구입하면 오슬로 시내의 버스, 트램, 지하철, 페리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노벨평화센터 등 주요 관광지 30여곳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요금은 24시간 520크로네, 48시간 760크로네, 72시간 895크로네 등 3종류를 판매한다. 플뤼토게나 오슬로 패스는 앱을 깔아 구입하면 편리하다. 5월 현재 1크로네는 127원이다.
  • 다신 없을 희귀작 행렬… 혼자, 둘이, 단체로 뜨거운 발길 [막 오른 뭉크展]

    다신 없을 희귀작 행렬… 혼자, 둘이, 단체로 뜨거운 발길 [막 오른 뭉크展]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이 22일 개막하면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뜨거운 열기를 반영하듯 이날 인터파크 티켓 예매는 매진을 기록했으며 현장 티켓부스가 있는 로비는 한때 관람객이 대거 몰리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입구에 마련된 ‘절규 포토존’은 전시와 곁들여 관람객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얼굴을 부여잡고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했다. ●예매 매진… 숨길 수 없었던 뭉크 사랑 개막일인 만큼 평소 뭉크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관람객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 딸과 함께 뭉크전을 찾은 김춘자(70)씨는 “평소 뭉크 작품을 좋아해서 관련 책도 찾아 읽고 지난해에는 노르웨이 뭉크미술관까지 다녀왔다”며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뭉크의 작품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화콘텐츠 박사 과정을 수료한 박진영(46)씨는 “조금이라도 사람이 없을 때 작품을 오래 감상하고 싶어 ‘오픈 러시’를 했다”며 “특히 섹션12가 가장 좋았는데 제1차 세계대전을 목도한 작가의 유화 작품 속 붓 터치나 모델의 표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나 고통스러움 등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부모와 함께 미술관으로 체험학습 평일임에도 부모와 함께 전시를 찾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가족과 뭉크전을 보러 온 최신우(9)양은 “‘병든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같은 제목의 작품이라도 색에 따라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개교기념일이라 학교 대신 미술관을 찾았다는 배은빈(15)양은 “교과서에서 봤던 뭉크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절규’ 판화에 대만족한 동아리 회원들 단체로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도 있었다. 미술 관련 서적을 함께 읽는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왔다고 밝힌 한 여성은 “동아리원들과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좋은 전시를 보러 다니는데 다들 뭉크전을 보고 싶다고 해서 개막에 맞춰 방문했다”며 “140점이나 되는 작품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데다 희귀한 작품들도 많이 포함돼 있어 너무 만족한 전시였다”고 밝혔다. 14개 섹션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곳은 단연 ‘절규’(1895) 채색판화가 자리잡은 섹션4였다. ‘절규’를 감상하기 위한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 뭉크전에 전시된 ‘절규’는 석판화 위에 다시 채색해 독자성을 부여한 작품으로 유화와 마찬가지로 단 한 작품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높다. 전시 중간중간 오디오가이드에 귀 기울이는 관람객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 퍼즐 전시도 관람객의 흥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뭉크는 직소퍼즐 방식의 판화기법을 개발해 1896년 파리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퍼즐 전시는 이 부분에 착안해 최신 기법으로 제작된 직소퍼즐로 구성했다. 퍼즐 전시는 뭉크가 1902년 베를린과 1903년 라이프치히에서 직접 기획했던 ‘생의 프리즈’ 전시를 재현했다. ●개인 소장 작품들 공개… 호기심 자극 전시장 밖에는 도록과 엽서, 마그넷, 퍼즐, 배지 등 뭉크전 아트 상품을 사기 위한 줄이 다시 한번 이어졌다. 정다미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과장은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몰린 이유는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뭉크의 작품들과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한 희귀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유럽 밖 뭉크전으로는 최대 규모인 이번 전시는 9월 19일까지 계속된다.
  • 뭉크가 전하는 인생 사용 설명서… 빛과 어둠 ‘생의 프리즈’를 만나다 [막 오른 뭉크展]

    뭉크가 전하는 인생 사용 설명서… 빛과 어둠 ‘생의 프리즈’를 만나다 [막 오른 뭉크展]

    청년 뭉크가 묻고 노인 뭉크가 답생로병사 겪는 인간의 삶 떠올라20세기 초 전시 방식 그대로 체험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그림은 뭉크의 청년 자화상이다. 전시의 마지막 역시 뭉크의 자화상으로 끝맺음으로써 이번 전시는 뭉크로 시작해 뭉크로 끝난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무 살 청년의 불안한 시선에선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불확실성이 더 커 보인다. 반면 마지막 자화상은 ‘세상 살아 보니 살 만하더라’라고 답하는 것 같다. 스무 살의 뭉크가 인생을 묻고 여든 살의 뭉크가 그 해답을 주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섹션은 섹션4 ‘생의 프리즈’다. ‘생의 프리즈’란 뭉크만의 전시 방법으로 뭉크의 작품을 테마 순서에 따라 띠 형태로 늘어놓은 것을 말한다. 뭉크는 전시를 마치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의 삶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현재 ‘생의 프리즈’ 방식대로 전시하는 곳은 오슬로 국립미술관뿐이다. 이곳 한가람미술관에서도 ‘생의 프리즈’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마지막에 퍼즐룸을 마련해 20세기 초 ‘생의 프리즈’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생의 프리즈’는 뭉크의 삶을 그린 그림일기다. 뭉크의 사랑은 밀리 테울로브의 감미로운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여름밤: 목소리’에서 뭉크의 사랑도 ‘생의 프리즈’도 시작된다. 그러나 사촌 형수를 사랑한 뭉크의 사랑은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테울로브와의 사랑은 늘 어둠, 숲속, 달빛 아래였다. 테울로브와 첫 키스를 나눈 기억을 그린 ‘키스’와 ‘재’의 무대 역시 어둠 속이다. ‘마돈나’는 또 다른 뮤즈 다그니 율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율은 뭉크의 인생에서 독특한 역할을 한 여성이다. 뭉크는 율을 사랑했지만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뭉크는 ‘마돈나’에서 율의 신성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담았다. 판화본에만 있는 태아와 정자 모양 형태는 임신, 출산,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돈나 도상이다.‘절규’는 ‘생의 프리즈’의 중심 테마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판화 위에 채색을 가함으로써 판화이자 유화라는 독특한 판화본을 선보인다. ‘절규’는 고독과 불안, 강박을 겪는 현대인의 일상을 예언한 그림이다. 우리는 우울증, 수면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절규’ 속 주인공과 같은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뭉크 예술의 특징은 개인의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하게 하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이 테마는 19세기를 정의하는 언어가 됐다. 섹션4의 네 번째 벽면은 죽음 테마다. 이 벽면을 장식한 것은 엄마와 누나의 죽음에 관한 기억들이다. 뭉크는 엄마의 죽음에 관해 ‘매우 슬펐던 것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열네 살 사춘기에 겪은 누나의 죽음은 뭉크 인생 내내 따라다녔다. 뭉크는 ‘병든 아이’를 40여년에 걸쳐 여섯 번이나 반복해 그렸다. 뭉크는 ‘병든 아이’ 얼굴만 클로즈업해 여러 색의 판화본으로 제작했다. 뭉크는 영양실조에 걸린 소녀를 모델로 ‘병든 아이’를 그렸다. 어느 날 중년 여성이 뭉크를 찾아왔다. 자신을 ‘병든 아이’ 모델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뭉크에게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뭉크는 여성이 원하는 만큼의 액수를 쥐여 주고 돌려보냈다. 뭉크 예술의 힘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뭉크는 67세에 일시적 시력 손상을 겪었다. 그러나 뭉크는 건강한 눈과 건강하지 않은 두 눈으로 본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뭉크는 절망과 공포를 외면하거나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해서 마주하며 아픔을 치유했다.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140점은 뭉크가 전한 ‘인생 사용 설명서’다.
  • 사랑해선 안 될 사람, 뭉크의 질투 [으른들의 미술사]

    사랑해선 안 될 사람, 뭉크의 질투 [으른들의 미술사]

    독일 베를린의 술집 ‘검은 새끼 돼지’ 클럽에는 매일 밤 뭉크, 스트린드베리, 프지비셰프스키와 다그니가 모였다. 홍일점 다그니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 클럽에 모인 남성들은 다그니를 ‘정신, 영혼’이라는 의미에서 폴란드어 ‘두하’(Ducha)라고 불렀으며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나 다그니는 만인의 연인에서 한 사람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만인의 연인’ 다그니결혼 상대는 뭉크도, 아우구스스트린드베리도 아닌 프지비셰프스키였다. 만난 지 5개월 만에 1893년 8월 다그니와 프지비셰프스키는 결혼했다. 그러나 프지비셰스스키와 다그니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프지비셰프스키는 사실혼 관계의 여성과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그니와 결혼을 했다. 그는 이 결혼 생활 마저도 충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그니는 프지비셰프스키를 원망하지 않았다. 남편 프지비셰프스키의 무관심 속에서 다그니는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그니는 제3의 인물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뭉크는 이 모든 일을 말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멀어지는 친구 사이남편 프지비셰프스키는 자기 부부와 뭉크 얘기를 담은 실화 소설로 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했다. 프지비셰프스키는 소설 ‘배 밖으로’를 발표했다. 소설 속에서 프지비셰프스키는 뭉크를 파렴치한으로 묘사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뭉크는 크게 화를 냈다. 다그니는 남편과 친구 사이인 뭉크 사이가 벌어질까 둘 사이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뭉크가 느꼈던 이때의 분노, 화, 불쾌함은 ‘질투’에 반영되었다. 엉뚱한 삼각관계‘질투’에는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의문의 남성이다. 이 작품은 뭉크와 다그니, 프지비셰프스키와의 삼각관계 이야기다. 사실 프지비셰프스키와 다그니는 부부이며 뭉크는 남이다. 그러나 뭉크는 자신과 다그니를 주인공인 아담과 이브로 그렸으며, 다그니의 남편 프지비셰프스키를 질투에 사로잡힌 남성으로 만들어 엉뚱한 삼각관계를 그렸다. 뭉크는 다그니가 결혼한 이후 자신의 속마음을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뭉크는 다그니를 친구의 아내로만 대했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다그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했다. 사랑의 감정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뭉크의 두 번째 뮤즈, 다그니뭉크의 인생에는 네 여자가 있다. 첫 번째, 아픔만 남긴 첫사랑 밀리, 두 번째 다가설 수 없었던 다그니, 세 번째 스토커 툴라 라르센, 네 번째 끝사랑 에바 모두치가 그녀들이다. 다그니는 뭉크 예술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마돈나’ ‘뱀파이어’ ‘사춘기’의 모델이었다. 만약 다그니와 뭉크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둘 다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지 않았을까. 역사가 스포일러라 우리는 두 사람의 마지막을 이미 알고 있다. 2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해 오는 9월19일까지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전시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 전시에는 개인과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의 석판화 한 점씩 전시된다. 두 작품 모두 다그니와 뭉크는 에덴 동산에 있는 모습으로, 프지비셰프스키는 혼자 외로이 앞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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