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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유정의 영화in]매뉴얼 오브 러브

    ‘매뉴얼 오브 러브’는 섹시한 영화이다. 실상 이 영화에는 섹스신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서로의 속살을 만져보지 못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눈빛과 같은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고백처럼, 이 작품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나를 들뜨게 해요.”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한다. 에로스와 포르노, 섹스와 음란 사이에 놓인 비밀한 사랑의 방식, 행복하고 난감한 욕망의 아이러니가 ‘매뉴얼 오브 러브’인 셈이다. ‘매뉴얼 어브 러브’는 ‘러브 액추얼리’처럼 옴니버스식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새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으로 인증된 구성방식이 아니다.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옴니버스식 영화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간 사랑의 비밀한 내면인 에로스를 들여다보는 태도이다. 영화 전반을 이끄는 주제인 사랑은 ‘에로스’로 압축된다. 하반신 마비가 된 환자의 성기마저 부풀어 오르게 하는 뜨거운 격정, 그것이 바로 사랑의 다른 이름인 에로스라고 말이다. 영화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하반신 마비 환자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니콜라는 사고로 인해 하반신의 감각을 잃게 된다. 마비가 영원히 지속될까 두려워 하던 니콜라에게 루시아(모니카 벨루치)라는 물리치료사가 나타난다. 그녀는 방금 스크린을 찢고 나온 배우처럼 육감적인 몸매와 촉촉한 입술을 지니고 있다. 니콜라는 그녀의 치료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와 몸매에 온통 정신이 팔린다. 하반신이 마비된 니콜라의 성욕은 뇌수를 가득 채워 공상으로 뻗어나간다. 그의 정신은 이미 한껏 발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에로스가 결국 그를 일어서게 한다는 사실이다.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 니콜라와 루시아가 나누는 정사가 섹스가 아님에도 에로틱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에로스란 늘 마술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것일까. 마지막 에피소드는 에로스의 서글픈 양가성을 느끼게 한다.50대 레스토랑 지배인인 어네스토에게 자신은 나이든 남자에게 끌린다며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20대 여자, 세실리아가 나타난다. 세실리아는 어네스토에게 담을 넘어 남의 집 온천에 들어가자고 유혹하고 화장실에서 은밀한 섹스를 나누자고 재촉한다. 어네스토에게 그녀의 제안은 심장이 멎을 만큼 짜릿하고 강렬하다. 문제는 일탈을 하기에는 어네스토가 너무 늙었다는 데에 있다. 섹스는 약으로 해결되지만 20대 여성 세실리아를 감당할 에너지는 약으로 충당되지 않는다. ‘매뉴얼 오브 러브’는 섹스와 에로스에 관련된 네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은밀히 꿈꿔왔던 욕망과 판타지를 입체화해준다. 지오바니 베로네시 감독은 섹스와 에로스의 환상 뒤편에 놓인 부담과 책임, 위험을 가볍지만 진중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불임부부, 동성애인 등을 통해 조형해낸 그의 세계는 둘만 잘되면 만사형통식의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 에로스로 환원되는 사랑의 비밀, 그 매력적 양가성이 이 영화 ‘매뉴얼 오브 러브’에는 녹아 있다.
  • 이번엔 ‘리얼라이크 드라마’ 뜬다

    이번엔 ‘리얼라이크 드라마’ 뜬다

    ‘드라마의 자가분열 혹은 외연확장’ 케이블TV 채널을 중심으로 페이크 다큐, 다큐드라마, 리얼드라마 등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리얼라이크 드라마’(Real-like drama)를 표방한 드라마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은 22일부터 ‘리얼라이크 드라마’로 이름 붙인 ‘돌싱클럽’(화요일 오후 11시)을 내보낸다.‘돌싱클럽´은 ‘돌아온 싱글’ 즉 이혼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시선을 끄는 것은 주연 배우 4명이 실제 이혼녀라는 점. 이들은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인터뷰를 통해 에피소드 구성에도 참여한다. 드라마는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모두 허구다. 온미디어 콘텐츠개발국 전광영 국장은 “작가들이 100여명 가까운 실제 돌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의 모티브를 얻었다.”면서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이혼녀들을 출연시켰는데, 이들이 마치 자신의 삶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촬영 때도 대사의 80% 가량을 애드리브로 처리한다. 이밖에 드라마 중간에 삽입되는 4인 토크, 출연자의 본명·본직업 사용 등도 드라마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그러면 이런 ‘리얼라이크 드라마’는 기존의 유사 장르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페이크 다큐’는 재구성된 이야기를 연기자의 재연을 통해 마치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게 하는 장르다.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위험한 동영상 sign’이 이에 해당한다. 또 ‘다큐드라마’는 허구에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해 리얼리티를 부각시킨 드라마다. 주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데 많이 이용됐으나 요즘은 ‘막돼먹은 영애씨’(3월 시즌3 방영 예정)처럼 멜로드라마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페이크 다큐’와 ‘다큐드라마’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연기한다는 점에서 같지만,‘페이크 다큐’가 다큐에 방점이 찍힌다면 ‘다큐드라마’는 드라마가 주축이 된다. 어쨌거나 이들이 드라마의 형식으로 리얼리티에 근접하려 한다면,‘리얼드라마’와 ‘리얼라이크 드라마’는 거꾸로 실제상황을 토대로 판타지를 가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리얼드라마’는 기본적인 설정만 주어진 채 본인이 자신의 실제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일반인 출연자가 자신의 사연을 직접 연기한 채널 올리브의 ‘악녀일기’가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리얼라이크 드라마’는 무엇일까. 이는 실제 경험이 있는 일반인을 주연으로 출연시켜 사실감을 높이지만, 극중 설정이 허구이고 주연 외 나머지 등장인물도 모두 전문 연기자로 구성되는 드라마다. 이런 새로운 측면들은 다큐와 드라마의 퓨전화된 특성을 보이는 기존 유사 장르들과도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제4의 드라마’라고 부를 만하다. 장르의 확장은 ‘소재 및 시각의 차별화’와 병행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토리온 최인희 총괄팀장은 “그동안 이혼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이들의 고민과 갈등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드물었다.”면서 “이혼자들의 경험을 보다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장르 개척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와 찬사가 엇갈린다. 실험적인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선정성·자극성이 우려스럽다는 것. 또 ‘페이크 다큐’처럼 시청자 기만, 눈속임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돌싱클럽’ 제작을 담당한 콘텐츠하우스 김완진 대표는 “드라마 시작 전 ‘이것은 픽션이다.’라는 것을 자막을 통해 충분히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최근 케이블에서 초기의 실험적인 수준을 넘어 ‘별순검’‘정조암살미스터리 8일’ 등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면서 “케이블 채널에서 계속되는 의미있는 실험들을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치게 관심끌기와 시청률에 치중하다 보면 오히려 시청자들이 외면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책꽂이]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이선애 외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 일간지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과 신작시를 함께 엮은 시집. 문단에 첫발을 내디디는 새내기 시인들의 열정과 응축된 시적 긴장을 엿볼 수 있다.8000원.●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도종환 지음, 좋은생각 펴냄) ‘접시꽃 당신’으로 친숙한 시인이 5년간 요양하던 산방(山房)생활을 담은 산문집. 황량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산속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느낀 맑고 투명한 삶에 대한 기쁨이 녹아 있다.1만 2000원.●영웅 조조(한종량 지음, 김태성 옮김, 신원문화사 펴냄) 진정한 영웅 혹은 간웅.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삼국지의 조조를 중국 후한말 대혼란 시기의 진정한 개혁가로 그린 대하역사소설. 전5권 가운데 1권이 나왔다.1만원.●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김남극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3년 계간 ‘유심’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문명과 단절된 강원도 산간벽촌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 시작활동을 해오고 있다.7500원.●대왕세종(전2권, 김종년 지음, 아리샘 펴냄) 위대한 인간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종과 그의 삶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재조명한 소설. 말보다는 행동이, 행동보다는 신중한 사고와 결단력을 보여 주는 리더십을 오늘의 관점에서 되살렸다. 각 9800원.●위키드(전3권,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임재서 옮김, 민음사 펴냄)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변주한 판타지 소설.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에 맞선 초록색 마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렸다.1권 1만 1000원,2권 1만원,3권 1만 2000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사이(間)의 예술’이라고 한다. 미국의 스콧 매클루드(48)는 만화계 천재이자 만화이론을 체계화한 학자로 유명하다.1993년 출간된 그의 저서 ‘만화의 이해’는 전세계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각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1300만부 이상 팔려 그는 2003년 한국을 방문, 만화산업의 미래를 진단한 바 있다. 이때 만화가 형편없는 상업주의의 소산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을 의식하면서 21세기 문화산업의 축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위대한 글과 그림이 결합하면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게 가능한 것이 바로 만화다. 장면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역할을 그림이 맡아주면 글은 보다 넓은 영역을 탐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만화의 강점이다.” 그러면서 칸과 칸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마술과 미스터리가 일어나는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만화를 그저 오락물이나 심심풀이로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클루드의 말처럼 만화는 분명 무한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함을 던져주기에 인류역사와 함께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즐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으로, 어른들은 옛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생각나게 한다. 이쯤해서 문득 떠올려지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국민만화가로 유명한 이원복(62) 덕성여대 교수.‘먼나라 이웃나라’‘가로세로 세계사’‘부자국민 일등경제’‘신의 나라 인간나라’ 등 그가 펴내는 만화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특히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초판 이래 현재까지 무려 1300만부 이상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출간돼 해외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천대받던 만화시장에서 어른들도 즐기는 교양만화의 장르를 개척해냈음은 물론, 글로벌시대의 문화통역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 속에 그만의 해박한 지식을 담아 많은 학생들의 세계사 공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강남의 집필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캐나다에 막 다녀온 직후였다. 이유를 묻자 “8년 전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아내를 캐나다에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의 물방울´보고 편견 바로잡고자 집필 그는 요즘 와인에 푹 빠져 있다. 최근 ‘와인의 세계’(1권·김영사)라는 만화책을 펴낸 데 이어 ‘세계의 와인’(2권)을 집필 중이다. 지금까지 역사나 경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그가 다소 생뚱맞게 ‘와인만화’를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고나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뻥이 심한’책이라는 것. 예를 들어 와인 한 모금 마시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 등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막 와인 붐이 생겨나는 마당에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기 십상이라는 생각에서 와인만화를 그리게 됐다. “우리나라 최고 경영자 가운데 80%가량이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돈 주고 사먹는 와인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죠. 그저 입맛에 맞는 와인을 내 방식대로 즐기면 그만입니다.” 와인 이름을 외우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는 그는 어느 프랑스 와인업자의 말처럼 “한국인들은 와인을 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마신다.”고 했다. 특히 와인열풍과 함께 관련 책이 봇물처럼 나오지만 대부분 보고 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는 것. 때문에 이번에 펴낸 ‘와인만화’도 와인에 얽힌 역사·문화적 에피소드 위주로 쉽게 꾸몄다고 했다. 그가 와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8년 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당시나 지금도 칠레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저는 결코 와인전문가가 아니며 단지 애호가일 뿐입니다. 와인을 즐기다보니 흥에 겨워 책을 내게 됐지만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차례 와이너리에 직접 가보기도 했지요. 오는 4월에 나올 두번째 책에는 와인에 대한 편견을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세계의 와인’이 마무리되는 대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스페인편(완간편)을 집필할 계획을 밝혔다.“이제 독자들은 멋있는 정보를 원한다.”면서 “와인만화는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외도”라고 했다. 화제를 바꿨다. 알다시피 그는 ‘현대문명진단’이란 주제로 13년간 만화칼럼을 연재하면서 ‘현대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문명은 어떻게 변화할까. 지체없이 그는 “첫째는 여성중심으로 변하는, 즉 여성문명이 점차 확대되는 특징을 이룬다.”고 했다. 일부일처의 결혼관이 붕괴되면서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한 예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생활패턴의 변화라고 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서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20세에 대학 들어가 군복무를 마치고 27세에 취직을 한다는 생각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런 패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성공이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행복추구를 우선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등 나름대로 현대문명을 진단한다. ●만화는 영구적 발전… 교육소재는 무조건 대박 만화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은 만화책을 어른들은 신문으로 만화를 즐기고 있다. 만화의 독자는 무궁무진하고 영구적으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만화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는 “인류판타지의 최초 스케치”라고 전제한 뒤,“만화는 돈이 안든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내 생각을 얼마든지 펼쳐보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학습만화는 단군 이래 매년 호황을 이뤘다. 교육을 전제로 한 것은 뭐든지 잘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만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1960년대 중반 공과대학이 인기를 끌었을 때 건축학도가 그저 멋있게 보여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만화가로 소질을 발휘한 것은 1962년 경기고 1학년 때였다. 소년한국일보에 아르바이트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야망의 그라운드’‘미니 바람 꽃구름’‘치티치티 뱅뱅’‘사랑의 학교’ 등을 그렸다. 이 교수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날 ‘만화는 나를 표현하는 무한한 놀이터’라는 생각에 진로 수정을 하게 됐고 ‘세계문학전집’과 만화를 닥치는 대로 읽으며 소양을 쌓았다. 아울러 틈만 나면 외국만화를 보고 그렸다. 대학 때 독일 유학을 떠났고 유학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새소년 잡지에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 만화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했다. 그의 유학시절은 나중에 만화이면서 인문서로 인정받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연재를 펑크내지 않았는데 이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습관 덕분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도대체 선생님의 만화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질문했다.“자료와 현장이다. 한권 한권 낼 때마다 자료와의 전쟁을 치른다.”며 껄껄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충남 대전 출생. ▲6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수료. ▲75년 독일 뮌스터 대학 디자인 학부 유학. ▲81년 동대학원 졸업,Diplom Designer 학위취득. ▲81∼86년 동교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 전공(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85년 독일 뮌스터시 초청 개인전. ▲88년 한국 도서 잡지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89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학습만화세계사 계몽사). ▲93년 한국색동회제정 눈솔상 수상. ▲94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간행물, 윤리상(저작부문:현대 문명진단). ▲98년 한국 애니메이션 학회 회장. ▲84∼현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주요작품 먼나라 이웃나라(87년), 자본주의 공산주의(90년),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91년),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93년), 국제화 시대의 세계경제(94년), 현대 문명 진단(94년), 세계로 가는 우리 경영(95년), 사랑의 학교(95년), 펜 끝으로 여는 세상(96년),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97년),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2003년), 와인의 세계(07년)
  • [올바른 자녀교육] 집안 곳곳에 책 놓아두기

    [올바른 자녀교육] 집안 곳곳에 책 놓아두기

    집은 책으로,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워라. -앤드류 랑그- “거실을 책으로 덮어라. 이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법이다.” 누군가 했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책 좀 읽어라.”라고 말하기보다는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집은 가는 곳마다 책으로 쌓여 있다. 질서정연하지는 않지만 가는 곳마다 책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는 분위기다. 나는 재형이가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서 책을 둔다. 재형이 방에도 책상 위에, 침대 머리맡에, 그리고 책가방을 두는 곳에, 방바닥에 각종 책을 둔다. 재형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 위주로 갖다 놓는 것이다. 그러면 재형이는 공부하다가도 그 책을 펴 보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문득 집어 들곤 한다. 화장실에도 가면 책을 놓는 곳이 있다. 세면대 옆 타월 넣는 작은 장식장에도 책이 있고, 변기 앞에도 바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 책을 둔다. 재형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재형이가 그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때에는 안타까워진다. 재형이가 자주 가는 곳마다 그 책을 옮겨 놓는 일도 허사가 되어 버릴 때쯤, 나는 이런 방법을 쓴다. “재형아, 엄마가 이 책을 읽었는데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영 이해가 안된다. 네가 읽고 요약 좀 해 줘 봐.” 그러면 재형이는 좋아라 하며 그 책을 읽고 요약해 준다. 가끔은 신문 논술이나 잡지에서 좋은 글을 발견했을 때에도 이런 방법을 쓴다. 출력해서 건네주고 요약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 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어봐. 그러면 내가 퀴즈 낼 게 있거든. 퀴즈 세 문제를 맞추면 상 줄게.” 그러면 재형이는 신나 하며 얼른 읽고는 빨리 퀴즈 내라고 한다. 퀴즈는 유치해도 된다. 애가 그 글을 익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고등학생은 책 읽을 시간이 물론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런 습관을 들여 주는 것도 좋다. 이를테면 잠들기 전 30분은 책을 읽고 잠을 자게 하는 것이다. 또는 집에 와서 간식을 먹고 난 후 30분이라든지, 30분도 없으면 15분만이라도 꼭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 주자.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재형이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틈만 나면 손에 책이 들려 있고, 책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또 주로 내가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을 재형의 시선에 놓아두기 때문에 나와 읽은 책이 같게 되어 대화가 통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비슷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문체도 비슷하게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에 대해 논하고, 신현림 문체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음악 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요즘의 판타지 문학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음악가들의 인생에 대해 논하고, 철학자들의 괴벽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강제로 책을 읽으라고 하고, 논술 문제에 나오는 책을 골라서 억지로 읽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인식되면 정말 안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냥 눈길이 머무는 곳에 있기에 들어서 읽어보았더니 재밌더라, 엄마가 읽길래 무슨 책인가 해서 봤더니 그게 참 유익하더라. 이렇게. 책 읽는 것이 놀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논술이나 글짓기 훈련도 학원에서 억지로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런 독서 습관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독서 습관은 아이의 유머 능력과 토론 능력을 길러 준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게 해 주고, 아이의 얼굴을 지성으로 빛나게 해 준다. 글 송정림 그림 유재형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여행·레저 단신]

    ●스키장 ‘이벤트 행사속으로’ 극성수기를 맞은 스키리조트들이 다양한 축제와 할인 행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휘닉스파크는 11∼12일 ‘변선생’ 변기수의 사회로 가수 소녀시대 등의 콘서트를 연다. 뉴스쿨스키 무료클리닉 (13일) 등 행사도 준비됐다. 용평리조트는 총 4회의 소나타데이 이벤트를 벌인다. 홈페이지에 연인과의 동영상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숙박권 등을 제공한다. 오크밸리는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을 가져올 경우 리프트권 2인 이상 발권 시 1만∼2만원의 유류비를 지급한다. 현대성우는 생일을 맞은 고객에게 리프트권을 무료로 제공한다.2008년 졸업자 및 졸업 예정자들의 리프트권은 반값이다. ●신년大축제 에버랜드 희망 한마당 에버랜드(everland.com)는 3월2일까지 새해 첫 축제 ‘희망 한마당’을 오픈한다. 신규 민속 퍼레이드 ‘둥둥 희망 한마당’과 퓨전 뮤지컬 ‘코리아 판타지’ 등이 공개될 예정. ●필리핀 국가포털 ‘온필’ 오픈 온필(www.onfill.com)은 필리핀과 관련된 서비스를 한 곳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국가 포털사이트. 사이트 오픈을 기념해 경품 이벤트도 갖는다. ●야외 온천 파도풀 개장 한화리조트 설악 워터피아가 천연온천수를 이용한 야외 파도풀 운영 등 겨울 온천 이벤트를 선보였다. ●사랑의 소망 우체통 이벤트 대명리조트 설악은 리조트 로비에 마련된 소망우체통에 엽서를 보내면 무료로 배달해주고, 참여자 중 추첨을 통해 객실 무료 초대권, 아쿠아월드 이용권 등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 2008년 기대되는 신작들 관전포인트

    2008년 기대되는 신작들 관전포인트

    무자년 새해를 맞은 영화계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다. 특히 2008년은 위기론에 시달린 한국영화와 승승장구한 블록버스터 외화의 대작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마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을 꿈꾸는 2008년 스크린 기대작들을 살펴본다. ●한국영화, 대작 프로젝트로 ‘전열정비’ 지난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에 몸살을 앓았던 한국영화는 마케팅 비용까지 합치면 총제작비 100억원대의 대작프로젝트로 대반전을 노린다. 우선 1930년대 경성의 모던보이가 겪는 연애모험담 ‘모던보이’는 당시 시대표현을 위해 세트·CG·의상 등에만 총 77억원의 순제작비를 들였다. 1448년을 배경으로 세계 최초의 로켓화포가 소재인 ‘신기전’ 역시 100억원 가까운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고증과 대규모 전투신,CG 등 후반작업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이병헌·정우성·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역시 순제작비만 115억원이 들었다.1930년대 만주벌판을 배경으로 한 만큼 세트와 엑스트라 동원 등에서 한국판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다.‘라디오 스타’,‘즐거운 인생’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영화 완성판 ‘님은 먼곳에’ 역시 태국 로케와 베트남 전쟁신에 70억원의 순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속편으로 승부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캐리비안의 해적’ 등으로 재미를 봤던 외화들은 올해도 속편으로 화려한 라인업을 갖췄다. 우선 올해 65세의 해리슨 포드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년 만에 재회한 인디아나 존스 4편 ‘인디아나 존스: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각종 설문조사의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크리스천 베일 콤비가 전작에 이어 호흡을 맞춘 ‘배트맨 비긴즈2-다크 나이트’가 여름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될지도 관심사. 판타지문학계의 거장인 C S 루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니아연대기의 속편 ‘캐스피언 왕자’도 오는 5월 ‘인디아나 존스 4’와 맞붙는다. 올여름 개봉 예정으로 만화가 원작인 ‘헐크2’도 에드워드 노튼의 새로운 면모에 관심이 쏠린다. ●유명감독들의 자존심 건 신작 대결 2008년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유명감독들의 신작대결도 볼 만하다. 우선 영화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쇼스키 형제의 신작 ‘스피드 레이서’는 가수 비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별다른 홍보가 필요없어 보인다.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이 6년 만에 손잡은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의 유명 감독들의 신작 복귀도 눈에 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적벽대전’은 약 6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진청우(金城武), 량차오웨이(梁朝偉) 등이 출연한다. 리롄제(李連杰), 류더화(劉德華)가 주연을 맡고 ‘첨밀밀’,‘퍼햅스 러브’로 유명한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연출한 ‘명장’은 중국과 홍콩에서 흥행몰이를 계속 하고있다. 국내에서는 충무로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한반도’ 이후 2년만에 ‘강철중(공공의 적 1-1)’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공공의 적1’에서 4년 뒤의 설정으로 설경구가 강철중 형사로 정재영과 호흡을 맞춘다. 한국 감독의 신작들이 얼마나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위력을 발휘할지 관심을 모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양이 학교/문학동네 펴냄

    고양이 학교/문학동네 펴냄

    고양이 ‘버들이’가 7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버들이 윤기 나는 털 속엔 버들이가 쏘다니며 만난 세상의 온갖 이야기가 묻어 따라왔다. 사뿐사뿐 버들이 발걸음은 ‘한국형 판타지’를 창조했고, 성큼성큼 버들이 뜀박질은 아이들 가슴에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아동문학가 김진경(55)의 장편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문학동네 펴냄)의 3부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2001년 8월 첫 번째 책이 태어난 후 7년여 만이다.1부 5권,2부 3권까지 합해 모두 11권이다. 마침내 완간이다. 1985년 시를 쓰던 고등학교 선생님 아빠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됐고, 출소 후 교육민주화운동을 하다 해직됐다. 학교로 되돌아가고 몇 년 후인 2000년 봄날이었다. 갑자기 집을 찾아와 가족이 된 도둑고양이 버들이가 갑자기 늙어 죽기 위해 집을 나갔다. 버들이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딸을 위해 아빠는 고양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딸이 버들이를 잊어갈 때쯤 아빠의 이야기는 한국 어린이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한국형 판타지’가 됐다. 10여년간 신화를 연구해온 김진경은 한국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에 깔고 세계의 신화와 전설에 접속했다. 버들이는 한국을 넘어 이집트, 인도, 중국, 북유럽 곳곳을 뛰어다니며 발자국을 남겼고, 신화와 전설이란 문학 코드는 지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버들이가 퍼져 나간 길은 오랜 옛날 인류문명이 낳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퍼져 나간 길과 같다.‘고양이 학교’는 프랑스 아동문학상 앵코티블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일본, 중국, 타이완 등으로 번역판권이 수출됐으며, 프랑스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이 진행중이다. 어린 아이들과 고양이가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며 펼치는 판타지적 모험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지만, 작가가 11권의 책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은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인간과 자연, 문명과 야만, 나와 너, 친구와 적을 이분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이자 생태학적 성찰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이야기의 대장정이다. 특히 3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인권을 비유적으로 곱씹게 하고,‘그들’을 배제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지난 7년간 고양이와 함께한 김진경의 글쓰기는 아이들에게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화라는 ‘씨실’은 하루하루 변해 가는 아이들의 미래, 그 오지 않은 시간까지 ‘날실’로 이어낸다. 그가 ‘고양이 학교’를 두고 “새천년이 시작되고부터 급격히 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문학적 답변”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김진경이 준비하는 차기작도 판타지다.‘잃어버린 것들의 도시’란 제목을 단, 무려 30권 분량의 연작 동화다. 작가는 벌써 두 권 집필을 끝마쳤다. 초등 3학년 이상. 각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2007년 스크린 누빈 스타들의 이면

    EBS ‘시네마천국’은 연말을 맞아 한 해 동안 스크린 안팎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한다.28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되는 ‘연말특집 2007, 그 영화가 있었다’에서이다. 먼저 ‘비하인드 컷’에서는 ‘시네마 천국’이 만났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배우들의 숨겨진 면면들을 살펴본다. 너무나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던 유아인을 비롯해 촬영 중간중간 깜찍한 모습을 선보인 엄정화, 그리고 보석같은 배우들 윤진서, 이하나, 김혜수, 봉태규까지. 촬영장을 달군 그들의 뜨거운 호흡을 포착했다. 또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세 명의 거장도 추억해 본다.‘하나 그리고 둘’ 등으로 타이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에드워드 양,‘제7의 봉인’‘화니와 알렉산더’ 등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세계를 돌아본다. 또 ‘정사’‘욕망’을 남겨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으로 불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작품세계도 다시 본다. 이와 함께 기억할 만한 영화 세 편을 조명한다. 먼저 감상할 영화는 황규덕 감독의 ‘별빛 속으로’.1970년대 말 혼란스러웠던 시대,‘삐삐소녀’(김민선)가 민주화 구호를 외치다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한 후, 수영(정경호)이 겪게 되는 이상한 경험들을 그리고 있다.1990년대 초반 리얼리즘 영화의 시작을 연 황 감독은 이 영화에서 몽환적 판타지를 결합한 새로운 리얼리즘을 선보였다. 또 치명적인 사건을 겪은 한 소년의 내면변화를 그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라노이드 파크’, 인간의 본질을 노골적이고도 숨막히게 이야기하는 이안 감독의 신작 ‘색, 계’도 다시 이야기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현실·가상 혼돈시대 온다”

    “현실·가상 혼돈시대 온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의사가 될 수도 있고,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 평소 갖고 싶던 차를 타고 질주할 수도 있고, 비행기도 탈 수 있다. 회사를 가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마음대로다. 벌어들인 돈은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모니터 앞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키는 것만으로 가능한 정보통신(IT)이 만들어낸 세계다. ●인구 1000만명의 새로운 세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IT기업 ‘린든 랩’이 2003년 첫 선을 보인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이름부터 ‘두 번째 인생’이다. 현재 가상공간인 세컨드라이프에 사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무려 1000만명에 이르고, 갈수록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초 세컨드라이프 거주자는 고작 10만명에 불과했다. 지난달 말 정식서비스가 개시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십만명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무료로 가입한 뒤 분신인 아바타를 만들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물론, 장사를 할 수도 있고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린든 랩은 그들이 창조한 세계를 현실 세계를 나타내는 ‘유니버스(universe)’라는 말 대신 ‘가공·추상’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부른다. 세컨드라이프가 ‘리니지’ 또는 ‘뮤’ 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다른 점은 ‘현실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기존의 게임이 가상 공간 속에서 마법사나 전사, 성직자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내세웠다면 세컨드라이프는 철저하게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인물로 구성돼 있다. 사용자들은 판타지 세계에 빠져 들었다 깨어나는 공허함 대신, 새로운 인생을 가지고 현실의 꿈을 꾸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MIT가 발간하는 ‘테크놀로지 리뷰’는 “세컨드라이프에는 신이 존재한다. 그가 손을 대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났다. 그는 수백만 명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다.”며 세컨드라이프를 만든 필립 로즈데일을 창조주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용자가 만드는 통제없는 세상 글로벌 기업들도 세컨드라이프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실과 비슷한 휴대전화 홍보공간을 마련했고, 자동차 회사들은 실존하는 차는 물론 차세대 컨셉트카도 판매한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쓰이는 돈 역시 게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기존의 게임머니와는 다르다. 세컨드라이프 내에서 사업을 하거나 회사를 다녀 번 돈은 현금화가 가능하다. 화폐인 린든달러는 270대 1의 비율로 현실의 1달러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매일 100만 달러 규모의 경제활동이 이뤄진다. 세컨드라이프는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개인화 서비스나 유튜브 같은 사용자제작콘텐츠(UCC)에서 좀 더 발전해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뒤흔드는 킬러 콘텐츠다. 일각에서는 세컨드라이프의 등장을 ‘인터넷’의 등장과 비견될 만한 사건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현실감은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상당부분 실현됐고, 실제 사용자들 중 일부는 세컨드라이프를 현실보다 더 믿는 현상도 보고되고 있다.‘사이버 섹스’가 가능하고, 수백개의 도박장이 개설돼 있으며 성희롱이나 절도 등의 범죄도 급속히 늘고 있다. 전문가들도 세컨드라이프가 어느 수준까지 현실과 가까워질지 섣불리 예측하지 못한다. 몸에 장치를 부착하는 것만으로 촉각, 후각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장치가 시제품 단계에 접어든 점을 감안하면 세컨드라이프와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시대가 곧 열릴 수도 있다. 실제로 전신마비 환자를 위해 뇌파를 이용해 세컨드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린든 랩측은 “세컨드라이프는 3차원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플랫폼”이라며 “회사는 세컨드라이프가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술적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세컨드라이프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지는 다른 문명의 이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얘기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세밑 극장가 누가 웃을까?

    세밑 극장가 누가 웃을까?

    2007년의 마지막 흥행작은 어떤 영화가 될까. 세밑극장가는 초반 기세를 잡기 위해 개봉일을 앞당기는 등 신작들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올 한해 강세를 보인 외화와 자존심을 건 한국영화의 경쟁으로 요약되는 연말극장가의 흥행기상도를 살펴본다. ●‘연말용 맞춤영화’로 승부하는 한국영화 ‘디워’ 등을 제외하곤 올해 전반적인 부진에 시달렸던 한국영화는 크리스마스와 연말분위기를 돋우는 맞춤영화들로 전열을 갖췄다. 톱스타들의 인해전술은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자타공인 ‘오락영화’임을 자처하는 섹시코미디 ‘색즉시공2’나 김태희의 티켓파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싸움’은 개봉일을 당초 13일에서 12일로 앞당기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차주인 18일엔 TV드라마 캐릭터로 인기를 모은 한예슬의 스크린 데뷔작 ‘용의주도 미스신’과 감우성, 최강희, 정일우, 이연희 등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옴니버스식 영화 ‘내사랑’이 관객들을 맞는다. 그러나 ‘미녀는 괴로워’,‘조폭마누라 3’,‘중천’ 등이 줄줄이 개봉했던 지난해에 비해 올 연말엔 대선과 투자 급감으로 인해 대작이 줄어든 가운데 소규모의 작품들이 얼마큼 선전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아무리 연말이지만 기존 캐릭터와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로맨틱 코미디물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소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국내 영화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외화의 초강세 분위기가 계속된 데다, 뚜렷한 화제작이 없어 최근 한국영화 관객 감소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화, 블록버스터로 연말까지 총공세 올초부터 ‘캐리비안의 해적3’,‘스파이더맨3’,‘트랜스포머’등으로 맹공을 퍼부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연말에도 SF와 판타지 등 대작 공세를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동명의 SF 호러소설 원작인 블록버스터 ‘나는 전설이다’(12일 개봉)는 한국에도 친근한 스타 윌 스미스 주연에 할리우드 대작이라는 기대심리가 겹쳐 신작 중 가장 먼저 예매순위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전설이다’와 함께 연말 외화 2강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타지 블록버스터 ‘황금나침반’도 개봉일을 18일로 하루 앞당기며 연말 대작 경쟁에 가세했다.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을 제작한 뉴라인 시네마의 작품이라는 점과 니콜 키드먼 주연임을 내세워 한국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링컨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비밀의 책’(19일 개봉)은 젊은 관객을 겨냥한 어드벤처 영화를 표방한다.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애니메이션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24일 개봉)도 지난해 연말 500만 관객을 동원한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흥행을 이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올 연말 외화는 SF 호러, 판타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등 장르 구분이 뚜렷해 마니아 관객층이 구분되는 만큼 어느 한 작품의 완벽한 흥행을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구관이 명관?’ 입소문 탄 화제작 선전하나 이처럼 신작들의 흥행전선이 오리무중인 가운데,11월 극장가에서 선전한 화제작들의 인기가 12월까지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이들 작품은 일단 관객들의 검증을 거쳤고, 연말에 특정영화가 부각되지 않을시 롱런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최근 관객 3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식객´은 요리라는 부담 없는 소재와 주연배우 김강우의 토리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등으로 화제에 올랐다. 또한 지난 8일 타이완 금마장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휩쓴 ‘색, 계´ 역시 양차오웨이, 탕웨이의 파격 정사신 등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2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날 29일 개봉해 13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음악영화 ‘어거스트 러쉬’의 뒷심이 어디까지 발휘될지도 관심거리다. 이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한 감동을 원하는 연인과 가족관객들의 호평을 얻으며 같은 시기 화제작인 한국영화 ‘세븐데이즈’,‘우리동네’,‘열한번째 엄마’ 등을 줄줄이 낙마시켰다. 국내 최대 영화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이상무 부장은 “이월된 화제작을 포함해 총 10~12편이 넘는 영화들이 걸리는 올 연말극장가는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면서 “크게 보면 연인용 한국영화와 가족용 외화로 양분되지만,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영화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입소문이 워낙 빨리 퍼지므로 대선일(19일)을 기점으로 연말 영화대전의 승자가 가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전문직 드라마… 새 트렌드로 뜰까

    전문직 드라마… 새 트렌드로 뜰까

    올 한 해 대한민국을 설레게 한 ‘사극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안착할 드라마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전문직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각 방송사에서 새롭게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전문직 드라마는 현재까지만 해도 세 편.MBC는 12일부터 흉부외과를 배경으로 한 20부작 수목드라마 ‘뉴 하트’를,1월6일부터는 성형외과를 배경으로 한 시즌드라마 ‘비포&애프터 성형외과’를 방영할 예정이다.‘태왕사신기’와 ‘옥션 하우스’의 인기를 이어갈 후속작으로 의학 드라마를 연이어 편성한 것.SBS는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20부작 수목드라마 ‘온 에어’를 내년 2월 27일부터 방영한다. 작가와 프로듀서, 배우와 매니지먼트사 등 TV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뉴하트´·‘온에어´ 등 전문직 드라마 줄줄이 대기 이처럼 전문직 드라마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년에는 전문직 드라마 열풍이 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전문직 드라마는 2007년 한 해에도 적잖이 선을 보였다.‘하얀거탑’‘히트’‘에어시티’‘개와 늑대의 시간’‘외과의사 봉달희’‘옥션하우스’‘로비스트’ 등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 속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로비스트, 비밀 요원, 경매사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이 전문직을 소재로 했다는 시도는 인정되지만, 아직은 대부분 실험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는 전문직의 실상을 드러내기보다 무조건 선망받는 직종 위주로 설정해 외형상 화려함을 부각하는 데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오히려 전문직에 대한 허상을 키우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전문직에 대한 허상만 키운다” 전문직 드라마에 의학드라마나 법정드라마, 수사드라마가 많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의사, 법조인, 경찰은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극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현실에서도 선망받는 직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드라마의 작품성은 소재가 아니라 대본의 완성도에 있으며, 얼마나 디테일을 잘 갖췄느냐에 달려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는 사실 개념이 불분명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잘 살린다면 주부나 그밖의 직업군을 다룬 드라마도 전문직 드라마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윤석진 교수도 “전문직에 대한 판타지도 중요하지만, 우선 개연성에 바탕을 둔 리얼리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한 드라마들의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긴 했지만 충분한 사전 취재와 준비로 디테일을 잘 살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개와 늑대의 시간’은 스릴러적인 성격으로 장르 드라마에 가까웠고,‘에어시티’는 과도한 애정구도로 유사 멜로로 흘렀으며,‘로비스트’도 개연성없는 억지스러운 전개로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하얀 거탑’은 완성도는 인정되지만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온전히 우리 드라마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치밀한 디테일, 리얼리티가 성공의 핵심 어쨌든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수한 미드(미국 드라마)와 일드(일본 드라마)를 많이 접한 영향이기도 하고, 영화적인 재미를 TV드라마에서 충족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커진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한 소재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SBS 드라마국 고흥식 책임프로듀서는 “전문직 드라마의 제작 활성화는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다뤄 한국 드라마의 지형을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제 드라마의 성패가 유명 배우 캐스팅에 달려 있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 in]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는 유럽판 ‘웰컴투 동막골’이라고 할 수 있다.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은 전시(戰時)라는 비인간적 상황에서의 판타지를 그려내고 있다. 환상적 비약을 통해 전쟁이라는 현실로부터 일탈해 버린 셈이다.‘메리 크리스마스’ 역시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상처를 ‘화해’라는 윤리로 회복하고자 한다. 너무도 착해서 마음이 훈훈해지기는 하지만 어딘지 현실감이 떨어지는 동화처럼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북부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독일, 프랑스, 영국군이 마주한다. 추위와 공포 속에서 매일 밤 포격이 일어나고 크리스마스만큼은 평화롭게 보냈으면 하고 바란다. 이 극심한 공포 속에서 신부였던 스코틀랜드 병사는 백파이프를 연주한다.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참호 위에 세우고 노래로 화답한다. 낮 동안 국적과 언어가 다른 군인들의 시체가 쌓였던 완충지대, 그 곳에 세 나라의 장교들이 모이고 하루 동안의 휴전을 제안한다. 샴페인과 음악을 나누고 함께 성탄절 미사를 올리는 그들, 이제 그들은 서로에게 낯모를 적이 아닌 전쟁이라는 공포 앞에 내던져진 동료가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적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점들을 따뜻한 감동의 지점으로 선택한다. 백파이프와 캐럴이 섞이고 포도주와 샴페인이 전쟁의 공포를 녹인다. 화해의 지점에 가족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독일 장교는 프랑스 장교가 잃어버렸던 아내의 사진을 돌려주고 스코틀랜드 장교는 자신의 편지를 적에게 부탁한다. 복잡하고 두려웠던 완충지대의 긴장은 ‘가족’과 ‘사랑’,‘신의 은총’이라는 대의 명제 앞에서 휘발된다. 그렇게 평화는 다가오는 듯 싶다. 영화는 결국 완충지대의 평화가 단 하루의 몽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이 현실적 결말이 아닌 환상적 화해의 공간이다. 매일 아침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커피를 끓이는 당번병,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포격을 뚫고 찾아온 애인, 애인과의 달콤한 하룻밤을 뒤로 한 채 동료들에게 돌아오는 오페라 가수.‘메리 크리스마스’에는 꼭 있어야만 하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사랑으로 무장한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가 착한 영화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착한 영화는 보는 이들의 내면적 갈등을 잠재운다. 사람이란 욕망과 윤리, 당위와 선택 가운데서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역사의 상흔은 거시적 담론의 폭력으로 전도되고 그 가운데 개인들은 선량한 피해자로 채색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메리 크리스마스’에는 체온과 혈액을 지닌 진짜 사람의 흔적이 없다. 이를테면 그들의 종교가 모두 달랐더라면, 크리스마스가 공유된 명절이 아니었더라면과 같은 질문들이 빠져 있다. 전쟁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닌 약점에서 시작된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20세기 디자인 혁명-베르너 팬톤’展

    ‘20세기 디자인 혁명-베르너 팬톤’展

    못, 나사 하나 쓰지 않고 엿가락처럼 매끈히 구부려 만든 빨간 신소재 플라스틱 의자.‘팬톤 의자(Panton chair)’를 알고 있다면 9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하는 ‘20세기 디자인 혁명-베르너 팬톤(1926∼1998)’전을 꼭 한번 찾아 가봄직하다. 디자이너의 개인전이 대형 기획으로 열리기는 국내 처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용 디자인 작품들을 대거 소장한 곳으로 유명한 독일 비트라디자인미술관에서 팬톤의 작품들을 가져왔다.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팬톤은 실생활에 적용하기 쉬운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감각적인 형태, 강렬한 색채, 기하학적 도안을 한데 접목시킨 디자인들은 한눈에도 ‘팬톤 표’임을 웅변해줄 정도로 독창적이다. 1960년대의 대표작 ‘팬톤 의자’를 비롯해 기하학 형태의 디자인이 기발한 ‘화분 모양 램프(Flower pot)’‘하트 콘 체어(Heart cone chair)’ 등이 그의 이름을 세상에 새긴 베스트셀러들. 팬톤 의자는 프라치 한센, 비트라, 로열 코펜하겐 등에서 제작된 것이 특히 주목받았다. 의자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디자인의 힘으로 입증한, 팬톤은 20세기 세계 디자인계의 대가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팬톤의 작품목록 가운데서도 195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의 대표작들이 집중 소개된다. 다리·팔걸이가 없는 획기적 디자인에다 당시 신소재였던 플라스틱을 활용한 팬톤의자는 디자인계의 혁명이었다. 탁구공을 모아 만든 모양의 ‘볼(Ball) 램프’나 나선형 램프 등 독특한 가구조명들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가구뿐만 아니라 팬톤은 텍스타일(직물) 디자인에도 선구적 안목을 발휘했던 작가다. 벽, 천장, 바닥으로 나뉘어 있던 전형적 공간개념을 탈피해 새롭게 조화를 이룬 직물 디자인을 개발했다. 이번은 그의 텍스타일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전시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흥미있어야 할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판타지 룸’일 듯싶다. 팬톤은 인체곡선을 본뜬 의자들로 채워진 동굴형 방을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특히 사각형이나 곡선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디자인의 직물로 공간을 꾸민 룸 디자인 ‘비지오나’를 한가람미술관에 특별히 재현했다. 팬톤의 디자인 작품들로 꽉차 있기도 한 ‘판타지 룸’은 팬톤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한번에 10명씩 입장해 의자모양의 작품에 앉아볼 수도 있다. 부대행사가 풍성하다. 전시 개막 전날인 8일에는 비트라디자인미술관의 마티아스 렘멜 큐레이터 등 디자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베르너 팬톤 심포지엄이 열린다. 방학맞은 어린이들에게 맞춤한 프로그램도 있다. 내년 1∼2월, 비트라디자인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한 어린이 워크숍이 마련된다.5세부터 12세까지를 대상으로 4개 반으로 나눠지며,4시간 동안 전시도 감상하고 교육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티켓링크에서 12월중 선착순 접수. 전시는 내년 3월2일까지.(02)580-1489.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막내리는 ‘태왕사신기’ 성과와 전망은?

    막내리는 ‘태왕사신기’ 성과와 전망은?

    하반기 방송가 ‘태풍의 눈’이었던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5일 24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43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한류스타 배용준의 출연 등으로 제작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드라마는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며 높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판타지 사극의 새 장을 열었지만, 미니시리즈로서 한계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따른다. ●CG 돋보인 사극의 영화화… 배용준 효과 여전 지난 9월 첫방송을 내보낸 ‘태왕사신기’가 4회만에 시청률 30%를 넘기며 기세를 잡은 것은 무엇보다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효과가 한몫 했다. 단군신화는 물론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사신들의 이야기를 판타지 사극의 형식으로 풀어낸 만큼 영화를 방불케 하는 CG와 스케일은 기존의 한국 드라마에서 접할 수 없었던 것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담덕과 수지니 호개, 기하, 대장로 등 인물들의 복잡한 갈등 구조와 이를 풀어낸 아역과 주·조연들의 호연은 시각적 효과에서 시작된 관심을 극으로 끌어 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겨울연가’ 이후 5년만에 안방극장을 찾은 배용준은 그동안 소원했던 한국팬들과의 간극을 좁히며, 연말의 유력한 연기대상 후보로 떠올랐다. 또한 일본 NHK 등 방송과 극장 상영, 타이완 수입드라마 사상 최고가로 계약을 맺는 등 꺼져가는 한류드라마의 불씨를 살릴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정운현 MBC 드라마국장은 “아직까지는 주연배우 배용준의 지명도에 힘입은 아시아권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며 “한국 드라마사상 새로운 시도로 내수에서도 인정을 받은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니시리즈 한계…외주제작사 자생력 시험대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 광개토대왕의 정복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이 작품이 24부작이라는 미니시리즈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초반에 담덕이 ‘쥬신의 왕’이 되는 과정에 치중하다보니 후반부에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중현 MBC 드라마국 부장은 “사전제작으로 시작은 했지만, 일주일에 두 편씩 제작해야 하는 현실상 시간적 제약이 따랐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태왕사신기’가 참신한 면도 있었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가 아니다보니 초반에 많은 승부수를 띄워 작품 외적인 면에 압도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시청자들은 TV사극에서 볼거리도 원하지만, 여전히 내적 재미와 어떤 이야깃 거리를 원하는 만큼 이번 작품이 그 편차를 조절해나가고 대작사극의 성공공식에 대해 재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태왕사신기’를 계기로 앞으로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제작과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외주제작사들은 ‘태왕사신기’의 성공에 고무된 분위기다. 김승수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태왕사신기’의 경우는 외주제작사가 드라마 저작권과 판매권을 갖고 있어 콘텐츠 판매나 영업능력 여부에 따라 향후 외주사들의 자생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화제성과 대규모 제작 시스템을 내세운 대작드라마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황금나침반/필립 풀먼

    톨킨의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영국 작가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전3권, 이창식 옮김, 김영사 펴냄)이 나왔다. 기상천외한 내용과 생태계의 파괴, 유일신에 대한 회의 등 종교·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이 소설은 주인공 리라와 윌이 진실만을 말하는 황금나침반을 들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원한다는 게 기둥 줄거리. 마녀와 신을 반역한 천사들,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만단검(萬斷劍) 등 환상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어린 주인공들이 갖가지 시련을 통해 성장해 가는 모험이 펼쳐진다. 문학평론가 김성곤 서울대 교수(영문학)는 “작가는 주인공들의 모험을 통해 폭력이 아닌 타자에 대한 신뢰, 사랑, 희생 그리고 책임감이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며 “재미와 깊이로 판타지 문학의 정상에 우뚝 선 고전명작”고 평가한다. 필립 풀먼은 이 작품으로 영국 최고의 청소년 문학상인 ‘카네기메달’과 가디언상, 휘트브래드상을 받았다. 각권 1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토요영화] 캣우먼

    [토요영화] 캣우먼

    ●캣우먼(SBS 영화특급 밤 1시)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어느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다. 이 같은 구호가 선거유세에 버젓이 등장할 만큼 ‘성공’을 지향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속물스럽거나 몰염치한 행위가 아니다. “여성 여러분 성공하세요” 이런 슬로건을 따로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회의 암묵적 동의를 얻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여성이여, 뻔뻔해져라.”라고 주장하는 처세서나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캣 우먼’(Catwoman)의 여주인공 페이션스 필립스(할리 베리)가 진작에 이런 권유들을 접했더라면…. 영화의 초반을 장식하는 페이션스의 행동들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탄식이 절로 나온다. 매사에 소심하고 착한 여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화장품 회사에서도 이런 성격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무시만 당한다. 그런 자신이 못마땅하지만 그녀는 ‘참을 인(忍)’자만 가슴에 새기며 숨죽이고 살아갈 뿐이다. 반전의 급물살은 예상치 못한 데서 시작해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 페이션스는 우연히 회사의 노화방지 화장품에 감춰진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된다. 하지만 비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한 사주(램버트 윌슨)는 페이션스를 감쪽같이 살해한다. 그러나 죽은 페이션스는 생전의 페이션스와는 딴판이다. 고양이의 신통력을 빌려 ‘캣우먼’으로 부활해 복수를 노린다. 부활한 여주인공은 강인하고 적극적인 매력을 동시에 내뿜는, 이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여성상´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피토프 감독의 ‘캣우먼’에서 극과 극의 캐릭터가 공존하는 세상에는 무려 600여개의 시각효과가 동원됐다. 덕분에 초현실적 판타지와 지극히 현실적 공간이 어우러진 화면이 연출됐다. 할리 베리는 캣우먼으로 변신하기 위해 고양이의 스타일, 습성까지 연구하고 몇개월 동안 채찍 다루기와 격투를 익혔다. 이같은 노력은 고스란히 고혹적인 매력을 겸비한 카리스마로 살아나 그녀를 새삼 주목하게 한다. 사주의 아내 역을 맡은 샤론 스톤이 긴장할 정도였다고 하니, 두 여자의 연기대결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2004년 개봉작.12세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흥돋우는 리듬·속도 ‘매력만점’…영화 ‘헤어스프레이’

    흥돋우는 리듬·속도 ‘매력만점’…영화 ‘헤어스프레이’

    한껏 흐드러지게 놀면서도 “침묵과 방관은 큰 죄악”이라고 정색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헤어스프레이’(Hairspray)는 아무리 밟고 짓눌러도 터지지 않는 주인공 트레이시를 내세운다.‘뚱녀’에 ‘숏다리’기까지 한 소녀는 방과 후 매일 남는 학생. 그가 유일하게 열광하는 건 춤과 코니 콜린스 쇼. 이 TV댄스쇼에서 댄싱퀸인 ‘미스 헤어스프레이’가 되려는 소녀는 이를 막는 방해세력에 인종차별까지 밀어내고 완소남까지 제것으로 만든다. ‘헤어스프레이’의 8할은 재고 따질 것 없는 리듬과 속도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돌리고 싶은 음악과 춤은 여타 뮤지컬 영화 중에서도 도드라지는 매력. 따라하기 쉽고 친근한 몸짓의 복고 댄스와 19곡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 라인들이 이야기를 재촉한다.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의 흥성거림은 헤어스프레이로 잔뜩 부풀린 머리와 알록달록한 의상이 대변한다. 소녀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는 것도 ‘헤어스프레이’가 영화-뮤지컬-영화로 계속 돌고도는 이유다. 멋지고 잘생긴 남자 링크가 많이 모자란 여주인공 트레이시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해묵지만 오래도록 지지 않는 플롯. 스타의 후광도 여전하다. 여장남자 존 트라볼타는 스크린에 한번 나타나주는 것만으로도 큭큭 웃게 한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은 전작부터 여장남자여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 여기에 미셸 파이퍼의 불로장생(?)까지 더해졌다. 트레이시를 집요하게, 유치하게 괴롭히는 벨마 역의 그는 잠자리로 성공을 쟁취하던 20대 시절의 미스 볼티모어를 무리없이 보여주며 미끈함을 과시한다. 춤과 노래만으로 후딱 지나간 듯한 영화가 인종차별 해소라는 안전핀을 마련해둔 영리함이 밉지만은 않다. 무거운 메시지를 별 고민 없이 설겁게 버무렸지만 영화의 방점은 정치·사회적 메시지에 찍혀 있지 않다. ‘헤어스프레이’는 2002년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매년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상위권에 드는 작품이다. 영화와 뮤지컬 사이의 다른 화법과 설정을 참고하려면 현재 국내에서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와 비교해봐도 좋다.6일 개봉.12세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최재천 인간견문록] 불확실성의 시대/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인간견문록] 불확실성의 시대/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대통령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지도자가 과연 누구일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오랫동안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후보는 걱정했던 대로 온갖 석연치 않은 구설에 휘말려 흔들거리고 있다. 만일 이 시점에서 그마저 하차한다면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될 판이다. 분명히 선진국 수준의 정상적인 선거는 아닌 듯싶다. 점집을 드나드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대선 삼수에 도전한 한 후보는 조상의 묘까지 옮겼다 한다.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부적을 몸에 차고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시험을 치르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성적이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오르는 것일진대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부적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처럼 들린다. 한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끝내 물러나고 만 잘 알려진 풍수지리 전문가가 들려준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풍수지리가 과연 학문이냐며 신랄하게 비판하던 교수들이 교수회의가 끝나자마자 조용히 연구실로 찾아와 부모님의 묘를 모실 명당자리를 골라달라는 청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인 교수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논리와 비논리의 양면성을 지니고 산다. 아마 그런 게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던 참에 그나마 좀 읽는다 싶은 아이들도 기껏 펼쳐 드는 책들이 그저 ‘해리 포터’ 아니면 ‘반지의 제왕’이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에 특별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지나친 듯싶어 하는 얘기다. 갑자기 신화에 열광하는 분위기 역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신화가 창의성의 보고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명색이 과학기술의 시대라면서 논리보다는 점점 더 비논리로 기우는 경향이 뚜렷해 보인다. 도대체 왜 요즘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을 우리 사회의 원칙 부재에서 찾고 싶다.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공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원칙보다는 변칙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을 제외하곤 원칙이 지켜지는 집단을 찾기 어렵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문화예술계와 정계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계도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 제도와 규범에 일관성이 없어진 탓도 크다고 본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저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그 결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입시정책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 좌절하고 있다. 자연현상은 물론이고 세상사에도 변이란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인과관계에 대한 확신이 깨지면 변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또한 사라지게 마련이다. 물리학에서 얘기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도 세상 모든 일의 인과관계가 다 불확실하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철이지만 각자 나름대로 원칙을 정하고 그에 합당한 논리적인 판단을 내렸으면 한다. 우리 민주주의도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이제는 진정 우리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점잖은 대통령을 모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신, 환상, 신화, 비논리의 안개를 걷어내고 누가 가장 원칙에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자. 그냥 덜렁덜렁 투표장으로 들어서는 것은 민주시민의 행위가 아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최근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현상은 세계문화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며, 한국적 상황에서도 충분한 문화적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고대사가 돌아오고 있는 현상은 한국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부심의 바탕 위에서 다시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붉은악마 현상’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한국인을 주눅들게 했던 열등감을 벗어내기 시작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이런 현상들을 두고 ‘민족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논자들도 있다. 우리 문화 안에 버려야 할 닫힌 민족주의적 성향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혼혈아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시각 등 닫힌 민족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대사의 귀환이나, 붉은악마 현상 등은 이러한 닫힌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이 문화적 열등감을 벗어내고, 당당한 세계 주민으로서 자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해 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드라마가 고대사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고대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백억원씩 돈을 퍼부어 만든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라면, 그 문화적 대차대조표를 뽑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선 ‘태왕사신기’가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무리한 신화 해석을 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회에서 주신제국의 기원은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통해 설명된다. 홍익인간의 메시지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신단수, 곰, 호랑이, 단군, 풍백, 우사, 운사 등 단군신화의 신화소(神話素)가 그대로 사용된다. 웅족과 호족의 대결에서 웅족 부족장 새오가 환웅의 사랑을 얻어 환웅의 아기를 잉태한다는 해석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단군신화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웅녀의 유래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 대결에서 곰 토템 부족이 승리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문제투성이이다. 가장 큰 문제는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단군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이다. 단군신화는 분명히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제시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이 환웅의 환생이라면, 단군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또한 4신의 무리한 해석도 문제가 된다.4신은 음양오행 철학에서 유래한 방위 신으로 동서남북을 관장하며, 그 방위는 각기 목금화수(木金火水)의 원소에 대응한다.‘태왕사신기’는 환웅이 하늘에서 데리고 내려왔다는 우사, 운사, 풍백을 현무, 청룡, 백호에 연결시키는데, 이는 매우 무리한 해석이다. 운사, 풍백은 모두 농경신이다.4신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차라리 순수 판타지를 지향했더라면, 이런 모든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인문학을 경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신화’를 황당무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신화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겉보기의 황당무계함 아래에는 인류의 수천년에 걸친 문화 경험이 녹아 있다. 그것의 재해석은 얼마든지 용인되는 것이며, 신화는 재해석에 의해 생명력을 이어 간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석이 철학 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질 때, 신화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만이 좋은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공한 판타지는 탄탄한 인문학적 해석에 바탕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판타지라면, 더욱더 치밀한 인문학적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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