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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스타 김민교, ‘외국인으로 오해받은 사연’ 대체 어떻게 생겼나 살펴보니…

    라디오스타 김민교, ‘외국인으로 오해받은 사연’ 대체 어떻게 생겼나 살펴보니…

    라디오스타 김민교 배우 김민교의 과거 삶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3일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에는 배우 김수로, 강성진, 임형준, 김민교가 출연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날 임형준은 대학시절 김민교에 대해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떤 친구들이 학교에 올까 궁금했다. 그런데 모두 캐주얼 차림인데 정장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친구가 보였다”며 “빠른 걸음으로 가서 얼굴을 봤는데 외국인인줄 알고 놀랐다”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에 김민교는 “임형준 외모도 만만치 않았다”고 밝혀 폭소를 자아냈다. 라디오스타 김민교 외모 이야기에 네티즌들은 “라디오스타 김민교 웃기다”, “라디오스타 김민교 외국인으로 오해받다니”, “라디오스타 김민교가 부리부리하게 생기긴했지”, “라디오스타 김민교 내 눈엔 잘생김”, “라디오스타 김민교 임형준 되게 친해보인다”, “라디오스타 김민교 임형준 엄청 오래된 친구사이네”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김민교는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이면서도 판자촌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떤 사연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MBC예능프로그램’라디오스타’방송캡쳐(라디오스타 김민교) 김민지 인턴기자 seoulen@seoul.co.kr
  • 라디오스타 김민교 “아버지 종합병원 원장인데 판자촌 전전..” 이유 알고보니

    라디오스타 김민교 “아버지 종합병원 원장인데 판자촌 전전..” 이유 알고보니

    라디오스타 김민교 아버지 배우 김민교가 과거 자신의 화려한 집안이야기를 털어놨다. 13일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는 ‘단물 빠진 친구들 특집’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는 배우 김수로, 강성진, 임형준, 김민교가 출연해 입담을 과시했다. 임형준은 대학시절 김민교에 대해 “다 캐주얼 차림인데 정장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친구가 보여서 빠른 걸음으로 가서 봤는데 정말 부잣집 아들이었다. 우리랑 급이 달랐다”고 말하며 김민교의 과거를 언급했다. 김민교는 “과거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이었다”고 설명했고 김수로는 “대한민국 교통사고 나면 다 그 병원으로 갔다”며 과거 김민교 집안이 대단했음을 뒷받침했다. 이어 김민교는 “아버지가 큰 사기를 당했다. 완전히 바닥을 쳤다. 김수로도 비슷한 일로 가세가 기울면서 반지하에 살았는데 나는 판자촌에 살았다.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졌다”고 털어놓아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라디오스타 김민교의 소식에 누리꾼들은 “라디오 스타 김민교, 힘내라”, “라디오스타 김민교 언제나 응원합니다”, “라디오스타 김민교 승승장구하세요”, “라디오스타 김민교 집안 대단했구나”, “라디오스타 김민교 판자촌 전전이라니ㅠㅠ”, “라디오스타 김민교 이제는 더 잘될거다”등 김민교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남겼다. 사진=MBC예능’라디오스타’방송 캡쳐(라디오스타 김민교 아버지) 김민지 인턴기자 seoulen@seoul.co.kr
  • 김민교 라디오스타 가족사 “종합병원 원장 아버지 사기 당해 망했다” 왜?

    김민교 라디오스타 가족사 “종합병원 원장 아버지 사기 당해 망했다” 왜?

    김민교 라디오스타 가족사 “종합병원 원장 아버지 사기 당해 망했다” 왜? 김민교가 과거 부자 집안에서 자라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연을 공개해 화제다. 김민교는 13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과거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님이었다. MBC 지정 병원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형준은 “그래서 김민교 집에 가면 중견 탤런트 선배님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셨다”면서 “김민교 때문에 강남에 처음 가봤고 패스트푸드점도 처음 가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민교 집안은 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망했다. 김수로는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사기를 맞으셨다. 우리 집과 망한 시기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김민교는 “완전히 바닥을 쳤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었다”면서 “수로는 반지하에 살게 됐고 나는 판자촌에 살았다. 가족이 흩어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고충을 밝혔다. 네티즌들은 “라디오스타 김민교, 참 어려웠겠다”, “라디오스타 김민교, 어떻게 이런 일이”, “라디오스타 김민교, 롤러코스터 인생이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민교 집안 “아버지, MBC 지정 종합병원 원장…중견 탤런트 왔다갔다 하셨다”

    김민교 집안 “아버지, MBC 지정 종합병원 원장…중견 탤런트 왔다갔다 하셨다”

    김민교 집안 “아버지, MBC 지정 종합병원 원장…중견 탤런트 왔다갔다 하셨다” 김민교가 과거 부자 집안에서 자라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연을 공개해 화제다. 김민교는 13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과거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님이었다. MBC 지정 병원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형준은 “그래서 김민교 집에 가면 중견 탤런트 선배님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셨다”면서 “김민교 때문에 강남에 처음 가봤고 패스트푸드점도 처음 가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민교 집안은 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망했다. 김수로는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사기를 맞으셨다. 우리 집과 망한 시기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김민교는 “완전히 바닥을 쳤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었다”면서 “수로는 반지하에 살게 됐고 나는 판자촌에 살았다. 가족이 흩어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고충을 밝혔다. 네티즌들은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셨네요”,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 망해서 고생하다가 이렇게 성공하는구나”,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 두 사람 보기 좋아요. 화이팅”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 첫인상? 칼 들고 있었다” 공포 느껴…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 첫인상? 칼 들고 있었다” 공포 느껴…

    라디오스타 김민교 라디오스타 김민교가 김수로의 첫인상에 대해 털어놨다. 13일 MBC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는 배우 김수로, 강성진, 김민교, 임형준 등이 출연, ‘식상한 김수로와 단물 빠진 친구들’ 특집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서 김민교는 대학 입학 시험에서 김수로와 처음 마주친 사연을 공개했다. 김민교는 “난 그때 쌍절곤과 봉을 들고 갔는데, 김수로는 산만한 덩치에 칼을 들고 서있더라”고 밝혔다. 이어 김민교는 “김수로가 ‘운동 좀 하셨나 봐요’라며 다가왔는데, 너무 무서워서 대답을 피했다”고 덧붙여 주위에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라디오스타 김민교, 김수로와 인연 신기해”, “라디오스타 김민교, 나라도 김수로 무서웠을 듯”, “라디오스타 김민교 귀여워”, “라디오스타 김민교 흥해라”, “라디오스타 김민교 나와서 너무 재밌었어요”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김민교는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이면서도 판자촌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김민지 인턴기자 seoulen@seoul.co.kr
  • 김민교, 반전 집안 화제 ‘어릴적 사진 보니’

    김민교, 반전 집안 화제 ‘어릴적 사진 보니’

    배우 김민교는 13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아버지가 종합병원 원장이었으나 사기를 당해 판자촌 생활을 했다고 털어놨다. 함께 출연한 배우 임형준은 “대학시절 정장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친구가 보여서 빠른 걸음으로 가서 봤는데 정말 부잣집 아들이었다. 우리랑 급이 달랐다”고 밝혀 김민교의 집안에 관심이 모였다. 앞서 김민교는 지난해 11월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현장 토크쇼 택시’에서 “아버지가 병원장이었다. 그곳이 MBC 지정 병원이라 드라마 촬영도 다 거기서 했다”며 “집에 수영장도 있고 개도 30여 마리 있었다. 개 키우는 분도 따로 있었다. 정원사, 집사도 따로 있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낸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강남 구룡마을 개발 사업 백지화되나

    강남 구룡마을 개발 사업 백지화되나

    서울시가 끝내 구룡마을의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고시하기로 해 개발사업에 대한 장기 표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와 강남구가 최근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 공문만 주고받았을 뿐 어떤 실무진 대화도 없기 때문이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4일 강남구 개포동 567-1 구룡마을(28만 6929㎡)의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고시하는 내용의 시보를 발행한다. 도시개발법엔 도시개발구역 지정 후 2년이 지나면 다음날 구역을 해제하도록 돼 있다. 구룡마을 지정일은 2012년 8월 2일이다. 만일 불행 중 다행으로 두 쪽이 합의를 한다면 3개월 안에 새로운 개발계획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임명된 시 행정부시장들이 강남구청장과 면담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시는 환지보상 비율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밝힌 적도 있다. 하지만 환지방식을 아예 제외하지 않는 한 개발은 어려워 보인다. 구 관계자는 “구룡마을 토지주로부터 금전적인 로비를 받았고 구청장이 이를 검찰에 고발해 법원이 처벌한 바 있다”면서 “토지주에게 특혜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두 쪽의 갈등으로 판자촌 주민들의 피해는 늘고 있다. 지난달 카센터 화재로 6가구가 집을 잃기도 했다. 판자촌인 것을 감안하면 비가 온 뒤 화재가 일어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재 구룡마을에는 1242가구가 살고 있다. 지난 6월 말 감사원의 애매한 감사결과 발표를 두고 두 쪽이 더 첨예하게 다투더니 지난달 15일 시는 접촉도 없이 주민협의체 복귀를 촉구하는 공문만 강남구에 보냈다. 구는 이를 거절한 데 이어 시 공무원 3명을 공무집행 방해 및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시는 막바지 대화 노력 대신 지난달 29일 시보를 발행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밝혔다. 본래 시는 구룡마을 토지를 모두 수용·사용방식(현금보상)으로 개발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2012년 사업비 부담을 이유로 환지방식(토지보상)을 일부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구는 토지주에게만 특혜를 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토지주는 보상받은 토지에 상가 등을 지어 영구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소득 불평등·계급 격차… 우리 시대 ‘잔혹한 민낯’

    소득 불평등·계급 격차… 우리 시대 ‘잔혹한 민낯’

    재미 작가 이창래(49)는 새 장편 ‘만조의 바다 위에서’(On such a full sea)에서 미래의 미국 사회를 재건축했다. 숨 쉴 수 없는 공기와 마실 수 없는 물, 황무지로 시작하는 소설 속 미국은 상중하 계층으로 분리돼 살아가는 계급사회다. 하지만 이야기로 걸어 들어갈수록 소설은 소득 불평등과 계급 격차 등 결국 우리 시대의 잔혹한 민낯을 벗겨낸 신비로운 우화임이 드러난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며 발표한 다섯 편의 장편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미국 작가다. 특히 지난 1월 이번 소설이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영미권 언론들은 코맥 매카시,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등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이름난 작가 군단에 그의 이름을 추가했다. 소설 속 미래 사회는 엘리트층이 사는 차터, 차터 지역에 댈 먹을거리를 키우고 생산하는 B-모어, 버려진 하층민이 살아가는 ‘자치주’, 이렇게 세 곳으로 나뉜다. 상류층 생활의 집약판을 보여주는 차터에선 전염병으로 사육이 금지된 애완동물 대신 애완인간들을 취미로 키운다. B-모어에선 차터 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하며 먹고사는 것에 자위한다. 전기에 하수도 시설마저 열악한 무정부 상태의 판자촌, 자치주는 영화 ‘설국열차’ 속 ‘꼬리칸’을 연상케 하는 비참한 삶이 이어진다. 삶의 질은 극과 극이지만 세 지역 모두 ‘C-질환’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다는 점은 같다. 다만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다는 것뿐이다. 소설은 차터 사람들이 먹을 물고기를 키우는 중국계 잠수부 소녀 판으로부터 출발한다. 헌신적이고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일인칭 복수 시점인 ‘우리’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판은 담으로 둘러쳐진 계급사회를 박차고 상하를 모두 오가는 모험에 나선다. 계기는 C-질환에 면역성을 가진 것으로 판명 난 남자 친구 레그의 행방불명. 차터의 제약회사에서 연구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큰 레그를 찾아 자치주와 차터를 오가는 소녀의 대담하고 기묘한 모험이 소설의 골격을 이룬다. 각 사회에서 직면하는 죽음의 위기와 배신,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 등으로 짜인 서사는 치밀한 조직감과 사회에 대한 날 선 시선으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가상의 미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한쪽에선 무감각해질 정도로 넘치고 한쪽에선 턱없이 부족한 음식, 교육, 의료, 고용 등의 문제는 우리 현실과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았다. ‘미래의 우화’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체는 추레하고 잔혹한 풍경마저 서정적이라는 착각을 일게 할 정도로 표현이 아름답고 묘사가 생생하다. B-모어 사람들을 총칭하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특징이다.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설화처럼 쓰려 했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최고급 제품과 음식, 서비스가 차고 넘쳐도 무료하고 불행한 차터, 차터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B-모어, 죽음이 일상이 된 자치주. 미래의 공동체는 어느 곳 하나 기댈 곳도 희망을 품을 곳도 없다. 하지만 작가는 오직 ‘사랑’을 찾아 위험의 행로를 감행하는 주인공을 통해,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쓴 ‘줄리어스 시저’의 한 대목으로 우리를 응원한다. ‘인간사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법/밀물을 타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겠지/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지금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우리의 시도는 분명 실패하고 말 거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기초단체장에게 듣는다]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

    [기초단체장에게 듣는다]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

    “지난 6·4 지방선거 결과는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합니다. 교만하지 말고 구민들을 잘 섬기라는 메시지로 생각합니다.” 박삼석(64) 부산 동구청장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수’ 끝에 당선된 지난 선거를 회상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각종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면서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뒤 충격이 컸지만 운명으로 생각하고 4년간 지역구에 온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뽑아준 구민들을 위해 선거 당시 발표한 대표공약인 구민운동장과 문화회관 건립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국민체육기금과 시비 등을 확보하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뒤엔 산이, 앞엔 바다가 있는 배산임해 지역인 동구는 6·25 때 피란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형성했던 주거환경이 거의 그대로 남은 낙후된 곳이다. 특히 1970~80년대 부산경제를 이끌었던 신발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인구도 줄고 있다. 주거환경은 열악하고 주민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구청장은 이런 구조를 깨트리기로 작정했다. 세심하고 신중하게 접근,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그는 “인구를 무조건 늘리기보다 동구 발전에 적정한 인구를 알아보는 게 순서라고 판단돼 민간업체에 용역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구의 활로는 관광산업에서 찾을 계획이다. 북항 재개발사업이 완료되면 여객터미널과 크루즈선을 연계해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민자를 유치해 북항과 구봉산을 잇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광복동과 서면이 관광벨트로 연결돼 부산 원도심의 중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복안이다. 피란민들 판자촌과 임시수도 등 시대상을 담은 역사문화관과 북항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만들 계획이다. 부산역권 개발사업이 마무리되면 상업지역과 공공지역, 문화지역 등을 두루 갖춘 북항이 부산의 중심으로 급부상할 것이란 판단에 따랐다. 초량천은 서울의 청계천처럼 개발, 산복도로 이바구길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로 했다. 박 구청장은 “이 모든 계획은 구청장 혼자 할 수 없으며 구민이 참여하고 구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강남 구룡마을 개발 백지화 위기

    강남 구룡마을 개발 백지화 위기

    “서울시가 일부 환지방식을 포함한 기존 안을 철회하지 않는 한 구룡마을 재개발 협의는 없습니다.”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은 2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가 일부 환지방식이 대토지 소유자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권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2년간 이어진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치가 구룡마을 개발계획 수립 시한을 한 달 남기고도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구룡마을 개발이 사실상 백지화 위기에 놓였다. 통상 개발계획 수립에 한 달쯤 걸리기 때문이다. 2012년 서울시는 SH공사의 재정상황 등을 감안해 토지주에게 일부를 땅으로 보상하는 환지방식을 도입했다. 현재 농지인 땅을 주택지로 전용한 뒤 일정 비율의 땅을 토지주에게 토지보상금 대신 지급하는 것이다. 토지주는 이 땅을 스스로 개발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강남구는 이를 특정인에 대한 특혜로 봤다. 구룡마을 부지 49%를 한 사람이 소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SH공사가 전체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감사원은 구룡마을 개발사업 관리실태 감사에 착수해 지난달 27일 결과를 발표했다. 분쟁은 일단락날 것 같았지만 대립은 심해졌다. 감사원에서 개발사업이 구역 지정과 고시까지만 진행돼 특혜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애매한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시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일부 환지방식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반면 구는 허위사실 유포라면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맞섰다. 지난달 20일 시는 환지 규모를 2~5%로 줄이고 환지 상한선을 660㎡로 제한해 특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신 구청장은 “감사 결과 시는 대토지주에게 특혜를 주는 환지 비율을 2012년 18%로 정했다가 2013년 10월 9%로 줄였고 이제 2~5%로 축소했는데, 이는 특혜 사실이 드러나자 조정한 것”이라면서 “또 감사원은 시가 일부 환지방식으로 바꾸면서 강남구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판자촌에 사는 저소득층이다. 구룡마을 개발은 이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해 나은 환경에서 살도록 한다는 취지이지만 토지주 특혜와 개발 이익에 논의가 집중돼 있다. 20여년간 구룡마을에서 산 세입자 김모(52)씨는 “양쪽에서 각자 주장만 내세우니까 주민들은 판자촌 거주 기간만 늘어나는 셈이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빈민 위해 한평생… ‘철거민 곁의 예수’ 하늘로

    빈민 위해 한평생… ‘철거민 곁의 예수’ 하늘로

    평생 이 땅에서 빈민 사목을 하며 ‘철거민들의 대부’란 이름을 얻었던 천주교 예수회 정일우(미국이름 존 데일리) 신부가 지난 2일 오후 7시 50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했다. 79세.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8세 때 예수회에 입회, 1960년 예수회 신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963년 실습을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사제서품을 받았고 고교 은사인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1966년 다시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신부는 서강대 설립 주역인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중 유신반대 운동을 벌였고, 그로 인해 여러 차례 강제 추방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 지도신부이기도 했던 정 신부는 예수회 수련장으로 영성신학을 지도하던 중 개발논리에 희생된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철거민들은 청계천과 양평동, 상계동 등에서 늘 자신들과 함께 가식 없이 지내는 정 신부를 ‘우리 곁에 온 예수’라며 반겼다. 양평동 판자촌에서 철거당한 빈민 170가구와 함께 경기 시흥시 소래면 신천리로 옮겨간 그는 빈민운동가 고 제정구씨와 함께 복음자리 공동체를 꾸며 20여명과 함께 먹고 자며 살았다. 정 신부와 제정구씨는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다. 정 신부는 1998년 귀화한 뒤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운동에 힘을 쏟았다.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63일간 지속했던 단식 탓에 죽음 직전까지 갈 만큼 몸이 상해 그동안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 왔다. 고인의 빈소는 여의도성모병원, 장례는 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신촌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예수회장으로 거행된다. (02) 3779-1526.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산 피란민 판자촌 ‘이바구길’ 브랜드 됐다

    부산항 개항과 광복, 6·25전쟁 등 부산 동구 곳곳에 쌓인 서민의 삶과 이야기가 ‘브랜드’화됐다. 부산 동구는 이바구 길 상표가 지난 15일 특허청에 등록됨에 따라 명칭과 상표, 표장에 대한 독점 권리를 갖게 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바구 길은 6·25 당시 피란민의 판자촌이 몰려 있던 곳으로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 고단한 서민의 달동네로 기억되던 산복도로다. 이곳에는 부산항 개항과 근대 역사문화,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과 관련한 스토리는 물론 다양한 인물과 6·25전쟁 당시 피란민의 아픔, 생활문화, 고도성장의 근현대를 지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구는 지난해 부산역과 산복도로를 잇는 도로와 골목에 있는 후미지고 못 쓰는 폐·공가와 공터를 활용해 아무도 생각조차 못했던 이바구공작소와 김민부전망대, 유치환우체통, 장기려박사 기념 ‘더 나눔 센터’, 까꼬막 등을 세우고 이바구 길을 만들었다. 길을 만든 뒤 1년간 관람객은 10만 2181명으로 이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4209만원에 달한다. 기간제, 공공근로 인력 등 198명이 일하는 등 일자리 창출로 1억 8400여만원의 파급효과도 발생했다. 동구는 그동안 이바구 길 방문객을 중심으로 성과를 분석, 이를 통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초량 이바구 길 외에 범일 호랭이 이바구 길, 좌천 부산의 부산 이바구 길, 수정 이바구 길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와 한국지역진흥재단은 초량 이바구 길을 ‘전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우리마을 향토자원 30선’에 선정했으며 한국관광공사 초청으로 수도권 지역 여행사와 언론사 대표들에게 초량 이바구 길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이바구 길이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북항 재개발시대에 대비해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동구를 만들기 위한 기반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영석 동구청장은 “향후 이바구 길을 기반으로 연간 30만명의 외국관광객이 동구 전역을 누비면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경험하는 문화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요즘 드라마, 이 직업 꼭 있네

    요즘 드라마, 이 직업 꼭 있네

    “계속 절 괴롭히면 오빠한테 말할 거예요. 우리 오빠 조금 있으면 검사 돼요.” “어제 그 사람이 누군지 아니? 네 오빠, 아무것도 못하게 할 수 있어. 순식간에 범법자로 만들 수도 있어.”(KBS ‘골든크로스’) “일탄은 제게 이혼한 전처와 같습니다. 17년 전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갑동이’ 사건을 제 경찰 인생을 마감하는 숙제로 여기고 있습니다.”(tvN ‘갑동이’) ‘외계인’과 ‘한류 여신’(별에서 온 그대)이 떠난 자리를 열혈 검사와 거대 재벌, 경찰이 메우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만들거나 그 권력에 도전하기도 하며, 사회의 밑바닥에서 정의를 구하려 분투한다. 요사이 안방극장에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법조인, 경찰, 재벌이 3대 감초 캐릭터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갓 선을 보였거나 방영을 앞둔 드라마들을 일별해도 이런 현상은 뚜렷이 감지된다. 열혈 검사(‘골든크로스’)와 로펌 변호사(MBC ‘개과천선’)가 극을 끌어가거나 경제관료, 펀드매니저, 은행장(‘골든크로스’)과 재벌 후계자(KBS ‘빅맨’) 등 경제계 거물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갑동이’)와 신입 경찰(SBS ‘너희들은 포위됐다’) 등 경찰 세계도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드라마가 이 같은 인물들을 동원해 초점을 맞춘 지점은 사회 부조리와 모순, 사라져 가는 정의다. ‘개과천선’의 김상호 CP는 “로펌 변호사였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되찾음과 동시에 법과 정의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골든크로스’는 끈끈하게 결탁한 경제관료와 자본의 힘에 가족을 잃은 검사의 이야기이며, ‘갑동이’는 살인과 강간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주제로 내세운다. 방송가에서는 영화 시장에 이어 최근엔 드라마에서도 ‘사회극’이 주요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인적인 고통과 원한보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리는 드라마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은 시청자들의 소구점과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갑을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구조에 반감을 갖고 개인적 어려움을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려는 대중에게 드라마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빅맨’의 정해룡 CP는 “기득권과 서민의 괴리감이 커져 가는 사회에서 드라마도 좀 더 진지하고 무겁게 사회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 드라마가 모두 사회의 모순을 정조준하는 것만은 아니다. ‘빅맨’은 고아 출신으로 재벌 후계자가 된 주인공이 존경받는 경제 리더로 변모하는 과정에,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신입 경찰들의 성장과 로맨스에 각각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기존의 거대 재벌과는 다른 리더십을 모색하거나(‘빅맨’), 타워팰리스와 판자촌이 공존하는 강남을 누비는(‘너희들은 포위됐다’) 설정 등에서는 사회 비판적 시선이 묻어나기도 한다. 여기에 젊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드라마의 재미도 시도한다. 수사극(‘너희들은 포위됐다’), 범죄 추리극(‘갑동이’), 복수극(‘골든크로스’), 법정극(‘개과천선’) 등으로 갖은 양념이 보태져 다양한 감상 포인트를 던진다. 그러나 특정 직업군이 사회성 짙은 드라마에 고정으로 등장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얼마 못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덕현 평론가는 “다양한 직업을 소재로 하는 로맨틱코미디나 멜로드라마와 달리 사회극은 대중이 판타지를 갖는 소수의 직업군만 부각시키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어질 장르드라마들은 더욱 적극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부자동네 ‘그늘’에도 봄볕 들이기 결실

    부자동네 ‘그늘’에도 봄볕 들이기 결실

    화려한 네온사인에 뒤덮인 도심에는 늘 그늘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최고 도시라는 강남구도 마찬가지다.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아파트촌 뒤에 판자촌 5곳이 자리해 있다. 안전사고에 취약할뿐더러 관광 1번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잇따라 받는다. 강남구는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무허가 판잣집 184가구를 정비했다고 17일 밝혔다. 2010년 강남구 전체 무허가 판잣집 1678가구의 10.9%다. 신연희 구청장은 “사실 30년간 각종 기득권을 주장하던 판자촌을 대화와 타협으로 없앤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며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주민 안전과 도시 미관 등 각종 문제를 안은 불법 건물 정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0년 7월 취임 일성으로 대한민국 대표도시 운운하는 강남에 집단 무허가 판자촌이 있다는 게 부끄럽다며 정비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후 구룡마을과 재건마을, 수정마을, 달터마을 판자촌은 물론 넝마공동체가 자리한 영동5교와 달터공원, 대모산 등의 몇몇 비닐하우스까지 샅샅이 찾아내 정비하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판자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고 사업을 구체화하는 한편 주민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이해를 구했다. 또 수많은 민원인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법 시위에 대해서는 고발조치를 취하는 원칙을 강조했다. 결과는 하나둘씩 나타났다. 1980년대 재건대(일명 넝마)가 모여 살았던 포이동 재건마을은 15가구를 이전시키고 13개 불법사업장을 정비했다. 이 자리에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2016년 12월 공공도서관을 지을 예정이다. 또 개포동 수정마을은 전체 68가구 중 13가구를 설득해 정비를 마쳤다. 무허가 건물 256가구가 사는 개포동 달터마을 2가구도 끈질긴 설득으로 정비를 마치고 녹색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6가구가 사는 대치동 영동5교 밑 불법 건축물은 3년에 걸친 대화와 토론 끝에 모두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또 서울시와 구가 보상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개포동 구룡마을 134가구도 정비됐다. 오는 8월 1일까지 개발계획수립 고시가 완료되면 2017년 비닐하우스와 판자촌 등이 사라지고 아파트 2750가구와 공원 등이 들어선다. 신 구청장은 “이제 노력의 결과가 하나둘씩 결실을 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판자촌 주민들과 대화로 숙원 사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서울은 넓고 그리고 깊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장기연재한 ‘서울택리지’가 서울의 윤곽을 더듬는 도시학적 탐사였다면 이번에 후속으로 선보이는 ‘서울택리지-테마기행’은 서울의 속살을 찬찬히 살펴보는 풍물적 탐사의 성격을 띨 것입니다. 먼저 세계 최고,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의 아파트와 아파트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서울의 극장, 백화점, 호텔, 공원, 시장의 명멸사(明滅史)를 추적할 작정입니다.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상가와 지하도, 고가도로와 육교의 부침이나 한강 다리와 나루의 변천도 들여다보기의 대상입니다. 물난리와 하천복개, 전차, 판자촌과 달동네, 다방·댄스홀 같은 유흥업소에 얽힌 흘러간 추억도 되새김해 볼만할 겁니다.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이내믹이 지배하고 있는 서울의 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어쩌다 아파트가 서울의 압도적 주거문화가 됐을까 아파트는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서울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서울 도시경관을 아파트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교수가 2007년에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은 파리의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의 아파트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줄레조는 1990년 서울 방문길에서 공룡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서울의 아파트’를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주제로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서울의 아파트 건설 이유와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분석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0년 넘게 걸린 긴 조사과정을 통해 그녀는 왜 아파트가 서울의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됐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이방인의 눈에는 희귀한 이상현상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은 덤덤했다. “그런 것도 연구대상인가”라는 조롱 섞인 핀잔을 극복하고 줄레조는 200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아파트문화 분야연구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받는다. 유수 기관들이 그녀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줄레조의 의문에 한국사람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서울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대로다. 그러나 줄레조의 연구결과는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압축된 현대성’(compressed modernity)의 반영이었다. 아파트는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산업화를 담당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서울사람, 나아가 한국인 욕망의 상징이며 3각 동맹이 건재하는 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아파트와 아파트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한다. 영화평론가 이형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집의 역사’와 다름없다”라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을 중산층 평균적 삶의 실현으로 봤다. 주거지역과 평형, 아파트 건설회사의 브랜드가 신분을 드러내고, 재개발이나 뉴타운 공약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하고, 아파트 정책이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출현한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또 다른 성공과 신분을 상징하는 ‘욕망의 바벨탑’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칼럼리스트 우석훈도 줄레조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중산층의 욕망과 개발독재의 획일성이 결합된 부동산정책과 아파트공화국의 파국을 예고했다. ‘아파트 한국사회’를 펴낸 건축가 박인석(명지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비판의 대상을 좁혔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담장을 둘러친 ‘단지’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는 아파트를 열악한 도시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私設) 오아시스’라고 명명하면서 오아시스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임대아파트 단지, 분양아파트 단지,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처럼 아파트 단지가 재산가치에 따라 계급화하면서 계층적으로 폐쇄성을 띤다고 보았다. ‘단지 해체’가 왜곡된 아파트문화를 바로잡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정아파트부터 와우아파트까지… 아파트의 부침 아파트가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다. 일제는 회현동에 3층짜리 공동주택(미쿠니아파트)을 지은 데 이어 1932년 충정로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충정아파트(도요타아파트)를 지었다. 혜화동과 적선동 등에도 아파트가 선보였다. 주로 일본인 임대·거주용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8층짜리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이었으니 충정아파트는 당장 도시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아파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미래주택 개념에 따른 획기적 건축물이었다. 이 아파트는 한때 호텔(트레머호텔, 코리아관광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되돌아갔다.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으로 건물 절반이 뜯겨나가는 곡절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어진 최초의 민간아파트는 1958년 중앙산업이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였다. 17평짜리 4층 건물에 152가구가 살았다. 정식명칭은 ‘종암 아파트먼트 하우스’였지만 ‘종암아파트’로 줄여 부르면서 ‘아파트’라는 용어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잘나가는 기업인, 정치인, 예술가들이 입주했으며 최초의 옥내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이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양변기로 대변되는 화장실 문화의 대혁명을 알린 옥내 좌식화장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해괴망측한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돌이 깔린 침실이 현관이나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은 특이한 구조였다. 1995년 종암선경아파트로 재건축됐다. 1962년 안양으로 이전한 마포형무소 자리에 대한주택공사가 최고급 마포아파트(도화동 삼성아파트)를 건립하자 서울의 모던보이와 모던걸 사이에 아파트는 일약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입주 초기 연탄보일러 중독사고가 연발하고 부유층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아파트주변에 담장을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는 ‘자폐적 공간’을 조성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세계 유일의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모델등장이었다.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유입은 주택난을 부채질했다. 도심과 가까운 지역의 산비탈과 국공유지변 하천부지를 꽉 메운 토막집과 판잣집을 밀어내고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지은 낙산 시민아파트 등 대부분 시민아파트는 경관훼손 사례로 낙인 찍혀 1990년대 철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현옥 시장(1966~70년 재임)이 주도한 시민아파트는 본래 철거민 수용용이었다. 시민아파트 1호는 천연동 금화아파트였다. 한 서울시 공무원이 해발 203m의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짓는 이유를 묻자 김 시장은 “이 바보야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볼 것 아니냐”라고 답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전해진다. 1968~69년에 지은 시민아파트는 어김없이 산허리 또는 산등성이에 지어졌다.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관 하나는 끝내주는 금화아파트는 아직도 살아남아 개발연대기의 암담함을 나타내는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 뚫린 물길은 막을 수 없었다 도심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롯데백화점 청량리점)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원조격이다. 특히 세운상가 아파트는 1960년 후반부터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1970년대 초까지 상한가를 쳤다. 18~25평의 작은 평수였지만 대규모 상가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이 아파트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했다. 사대문 안에 밀집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류층 집결지였다. 세운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던 ‘종삼’과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얻어진 1만 3000평의 공지 위에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까지 무려 1km를 8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괴물이었다. 아파트의 고급화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처음 시도됐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에 지은 한강맨션은 중앙집중식 난방을 채택한 첫 호화 아파트였다.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분양이 대박 나자 당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주공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비롯한 대형 건설업체들이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1970년 4월8일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지만 뚫린 물길을 막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의 문턱을 막 넘어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친자식같이 줄곧 돌봐주니 살맛 나”

    “친자식같이 줄곧 돌봐주니 살맛 나”

    김래국(84·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할아버지는 구청 김태훈 홍보전산과 주무관과 매주 30분 이상 전화 통화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도 한다. 할아버지는 “자식도 없는데 이렇게 줄곧 만나니 친자식 같다”면서 “사는 낙이 우리 태훈이랑 만나는 거야”라며 웃었다. 설을 앞둔 지난달 24일 귤 한 상자를 들고 할아버지 집을 찾은 김 주무관은 “할아버지, 허리가 아프시다면서요. 이리 누우세요”라며 한참 동안 허리를 주물러 드렸다. 그러자 말벗도 없던 할아버지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어, 시원하다. 태훈이 손이 약손이야”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동작구가 2010년 11월부터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직원 1대1 자매결연 사업이 5년째를 맞으면서 지역사회를 보듬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직원 1200여명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홀몸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꾸준히 희망과 사랑을 전하면서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 자매결연은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첫해 고교 2학년이던 소녀 가장 이은실양은 어엿한 직장을 잡았고 판자촌에 살던 신숙자 할머니는 조그만 임대주택을 얻었다. 안타까운 사연도 줄을 이었다. 전은이 주무관은 “자매결연을 한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며칠 전만 해도 손을 꼭 잡고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인사도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렇게 동작구 직원들은 어려운 이웃과 일회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원하고 소통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던 이웃들이 이제 친형제, 친부모처럼 친해졌단다. 말벗뿐 아니라 집 도배와 공연 관람, 내복 전달 등 다양한 지원도 곁들인다. 각 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직능단체 회원 334명도 1대1 결연사업에 기꺼이 동참했다. 구 도시시설관리공단 직원들도 후원 가구를 12가구에서 55가구로 늘리고 지역사회에 나눔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문충실 구청장은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면서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들이 있어 더욱 따뜻한 복지 동작을 일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열린세상] 청마는 달리고 싶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청마는 달리고 싶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청마가 달리는 새해이다. 달리는 말은 그 기상이 드높다. 그런데 말을 달리게 하려면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 채찍을 맞고 달리는 말은 쉬 지친다. 하물며 사람은 말이 아니다. 사람을 채찍을 휘둘러 달리게 할 수는 없다. 청마의 해에 사람들이 말처럼 달리게 하려면 희망이 필요하다. 사람은 희망을 품어야만 달릴 수 있다. 1980년대에 판자촌 지역에 사회조사를 간 적이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올망졸망 단칸 방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외부로 난 길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을 통과하면 그야말로 단칸방이 있었다. 부엌에는 작은 가마솥이 윤기가 자르르하게 놓여 있었고 방안은 정갈하게 정돈돼 있었다. 빈민촌의 흔적은 언덕 길가에서 본 부화하다만 계란을 파는 풍경, 그리고 구슬을 꿴다든가 하면서 그 좁은 방안이 또 다른 일터가 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때 본 판자촌의 모습은 사회학에서 배우는 ‘빈민문화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빈민 문화론은 빈민층 특유의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그곳에서는 폭력과 범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별도의 ‘하위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 내로라하는 대도시에 일반인이 갈 수 없는 으스스한 빈민촌의 현실을 기초로 삼아 나온 것이 ‘빈민 문화론’이었다. 1980년대 사회조사 현장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빈민 문화론이 맞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 빈민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땀 냄새와 희망의 냄새를 맡은 것을 기억한다. 희망을 품고 달리면 기적이 만들어진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고 게토화된 빈민가도 없고 공공 서비스도 무척 효율적이면서 외국인들이 관광 오고 유학 오고 이민도 오는 그런 나라로 한 세대만에 변신한 것이다. 가문의 후광과 배경이 없이도 뛰어 보면 ‘유리천장’ 없이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인도의 힌두교 성자인 오르반도 고슈는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자포자기와 게으름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욕심과 욕망이라도 품고 깨어나 달리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욕심, 자식을 더 공부시키려는 욕심, 남보다 더 으리으리하게 살고 싶은 욕심을 품고 앞도 안 보고 달려온 30년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러기 가족도 만들었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부모들은 일상생활의 작은 행복도 반납했다. 희생의 결과물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하다고들 한다. 워킹 푸어라는 말도 나온다. 빈곤의 재생산이라는 말도 들린다.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남을 끌어내리려는 풍조도 보이고 있다. 소비상의 차이로 차별을 만들어 내는 심리도 보인다. 자영업 도산율은 높고 미래 세대들에게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고학력을 탓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고 한다. 독일과 같은 나라는 대학 진학률 높이는 것을 국정의 목표로 삼고 있다. 원조 단체에서 일하는 한 분이 가난한 농부에게 닭을 키워 돈을 모아 자녀를 학교에 보내라고 했더니 왜 굳이 학교에 보내야 하나라고 반문해서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교육열을 만들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문화적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 정치를 해보지 않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비옥한 토양의 고마움을 모른다. 스스로 열을 내서 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참는 문화적 인프라가 다 만들어진 상태라는 것은 정치권이 할 일을 국민이 스스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는 통합이라는 역할을 담당하는 제도적 영역이다. 통합은 희망이라는 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희망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전투구의 정쟁에 빠진다. 희망은 우선 약속을 지키고 미래가 예측 가능해야 하고 경기의 규칙이 공정할 때 생기는 것이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 달릴 준비가 된 국민들에게 정치권이 할 일은 신뢰를 기초로 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청마는 갑오년에 희망을 품고 달리고 싶다.
  • 그리운 임이여 다시 만나자 영도다리서

    그리운 임이여 다시 만나자 영도다리서

    그래 봐야 다리의 상판 한쪽을 들어 올리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 장면 본다 한들 새삼 무슨 추억이 돋아날까도 싶었다. 한데 실제 보니 달랐다. 한국인 유전자 속에 그려진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1·4후퇴’에 이은 ‘피란살이’의 신산한 경험은 없었어도, 어르신들의 먹먹한 표정에서 애수의 기억 한 자락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산 ‘영도다리’ 얘기다. 지난해 47년 만에 도개(다리를 들어올리는 것) 기능을 복원해 화제가 됐던 다리다. 다리 너머는 천리마가 뛰놀았다는 섬, 영도다. 개항(1876) 이전엔 섬 안에 말 목장도 있었다니, 말의 해에 가볼 여행지로 꼽을 만하다. 오전 11시.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위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 공식 명칭은 ‘영도대교’지만 부산 사람들은 대부분 영도다리라고 부른다. 다리 아래 점집 거리는 100여명의 구경꾼들로 빼곡하다.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영도다리 상판에 쏠렸다. 낮 12시. 도개를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이어 옛 노랫가락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현인(1919~2002)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 연인 ‘금순이’를 애타게 찾는 ‘국제시장 장사치’의 절절한 심정을 그린 노래다. 때맞춰 중구 쪽 영도다리 상판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영도 쪽에서 오던 시내버스와 승용차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운전자와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도개 장면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현재와 다른 시간대 같았던 15분이 흘렀다. 영도다리를 세운 건 일제다. 영도에 조선소를 지으려던 일제는 물류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교량이 필요했다. 한데 해운업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다리가 서면 큰 배가 부산항에 들어갈 수 없어 우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절충안으로 나온 게 도개교(跳開橋)였다. 한국 최초의 도개교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영도다리는 1934년 11월 23일 개통됐다. 당시 부산 인구의 3분의1에 달하는 6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다리 상판이 올라가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한다. 공식 명칭은 ‘부산대교’. 1980년 바로 옆에 새 부산대교가 생기면서 ‘영도대교’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줄곧 ‘영도다리’라고 불렀다. 6·25전쟁 중엔 한 맺힌 공간이었다. 1951년 1·4후퇴 때 이북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남으로 향했다. 부산까지 쫓겨온 이들이 알 만한 ‘랜드마크’라야 영도다리밖에 없었을 터. 피란길에 오르며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기약은 했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 그리 되기가 어디 쉬운가. 가족과의 재회에 실패하고 팍팍한 피란살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종종 영도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피란민의 애절한 사연들은 그렇게 다리 난간에 맺혔다. 다리 밑 판자촌엔 가족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피란민들을 상대로 점집도 생겨났다. 한창때는 점집이 무려 8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도개는 1966년 멈췄다. 교량 노후화, 교통량 증가 등이 이유였다. 영도로 들어가는 상수도관이 부착되면서 다리는 도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동시에 철거 계획도 추진됐다. 그러다 예전과 같은 모양의 도개교를 새로 짓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지난해 11월 27일 새 다리가 개통됐다. 왕복 4차선이던 폭이 6차선으로 넓어졌고, 도개 각도가 최대 80도에서 75도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전과 거의 똑같다. 철거된 옛 다리의 부속시설들은 기념관이 세워지면 전시될 예정이다. 도개는 하루 한 차례 낮 12시부터 약 15분간 진행된다. 영도와 자갈치시장을 오갔던 도선도 올해 부활될 예정이다. 다리를 건너면 영도다. 섬의 옛 이름은 절영도였다고 한다. 끊어질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썼는데, 나중에 ‘절’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 진선혜 문화관광해설사가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 나라에서 직접 관장하는 말 방목장이 있었다. 방목되던 말 가운데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도 있었다. 말이 어찌나 빨랐던지 그림자가 따르지 못하고 곧잘 끊어졌단다. 그래서 절영도다. 영도 안에 절영해안산책로가 조성됐다. 영도의 해안 절경을 꿰고 가는 길로 남항대교 인근에서 중리해변까지 3㎞쯤 된다. 해안절벽 위는 흰여울문화마을이다. 6·25전쟁 중에 피란민들이 주로 살던 동네다. 마을 전체를 재개발하려다 계획을 바꿔 일부만 개발하고 옛 정취를 그대로 살리기로 최근 결정됐다.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진 집들이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중리마을에는 해녀들이 많다. 영도의 진산은 봉래산(395m)이다. 세 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 봉래산이 뭔가. 선인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다. 영주산, 방장산과 더불어 삼신산이라 불린다. 봉래산 자락에 깃든 마을 이름도 범상치 않다. 봉래동, 영선동, 신선동, 청학동이 등을 맞대고 섰다. 이름만으로 선계에 든 듯하다. 정상에 서면 부산 서쪽 송도해변부터 동쪽 해운대 일대까지 죄다 눈에 들어온다. “봉래산 올라야 부산 제대로 본다”던 진선혜 해설사의 설명 그대로다. 봉래산 아래, 그러니까 영도 남쪽은 태종대다. 촌스러운 표현으로 여기 안 보면 ‘앙꼬 빠진 찐빵’ 먹은 것과 다를 게 없다. 기암들이 모여 이룬 풍경이 빼어난 곳. 그러니 영도의 랜드마크다. 1억년을 넘나드는 동안 형성된 호수 퇴적층 위로 장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이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지난해 11월엔 내륙형(도시형) 국가지질공원 인증도 받았다. 부산 지역의 지질학적인 변화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란 뜻에서다. 이미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됐으니 2관왕을 거머쥔 셈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태종대란 이름도 그가 과녁 세워 활 쐈다던 고사에서 비롯됐다. 영도등대 일대가 백미다. 과장 좀 보태 기암절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가늠조차 어려운 시간과 파도가 조탁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여인의 전설이 담긴 망부석, ‘좀 놀아본’ 신선과 선녀가 질펀하게 어울렸다던 신선바위 등이 볼 만하다. 태종대 절벽을 딛고 선 등대는 1906년 세워졌다. 100년 넘게 부산 앞바다의 밤길을 밝혔다. 예서 맞는 해돋이가 멋들어지다. 등대가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초저녁 풍경도 고즈넉하다. 글 사진 부산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1) →가는 길 영도다리 건너 영도경찰서 뒤쪽 항만으로 빠지면 남항동 일대다. 남항방파제를 따라가면 절영해안산책로 시작점이다. 종착지인 중리해변까지는 3㎞.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 안쪽에 돌아볼 수 있다. 산책로 들머리 위쪽이 흰여울문화마을이다. 태종대는 영도의 가장 남쪽에 있다. 차로 봉래산 정상 아래까지 가려면, 청학동 해련사를 찾아간다. →맛집 남항동 일대에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탐라자리물회(413-7900)는 제주산 자리돔 물회로 이름난 집. 8000원. 봉래동 부산삼진어묵(416-5466)은 이른바 ‘부산오뎅’의 시초라 전한다. 태종대 짬뽕(405-2992)은 시원한 국물의 짬뽕으로 입소문 났다. 태종대 초입에 있다.
  • 감사원, 강남 구룡마을 개발방식 변경 서울시 본감사 진행

    서울시가 구룡마을 개발 방식 변경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받는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감사원은 오는 13일부터 열흘 동안 시 도시계획국·주택정책실 국장급 2명과 구룡마을 개발방식 변경 당시 해당 업무를 맡았던 직원 6명에게 강남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변경한 과정에 대해 본감사를 한다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앞서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 등이 구룡마을의 개발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청구한 데 대해 예비조사를 벌여 왔다. 시는 2011년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을 공영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12년 8월 기존 수용·사용 방식에서 환지방식을 추가한 혼용방식으로 개발 계획을 수정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서울 최대 판자촌’ 구룡마을 3개월만에 정책협의체회의 19일 재개

    서울 최대 판자촌인 구룡마을 개발 사업 정책협의체가 오는 19일 3개월여 만에 재개된다. 이 자리에서 일부 환지 개발 방식을 개선한 이익공유형 방식이 제안될 예정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던 사업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13일 시와 SH공사 등에 따르면 정책협의체에서는 개발 이익을 임대주택 건축비로 돌리는 방식이 논의될 예정이다. 돈 대신 땅으로 보상하는 일부 환지 방식에 특혜 시비가 붙자 시와 SH공사가 고심 끝에 내놓은 방식이다. 임대주택 1250가구의 건축비 1352억원을 토지주와 SH공사가 개발로 얻게 되는 이익으로 충당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SH공사와 토지주가 7대3 비율로 부담한다. 토지주는 땅을 돌려받더라도 개발 뒤 예상 땅값의 49.3%를 내놔야 한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임대료를 40%가량 낮춰 거주민들을 재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시는 보고 있다. 전용면적 49㎡인 임대아파트를 강남 세곡·송파 장지지구보다 낮은 보증금 2400만∼2600만원, 월세 19만원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환지 기준을 가구당 1필지에서 가구당 1필지 또는 1주택으로 줄이고 주거용으로 한정해 특혜 소지를 없앴다. 시, SH공사, 구, 거주민, 토지주,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는 올해 1월 구성됐다. 구는 같은 달 29일 실무회의 이후 참석하지 않다가 3월 불참을 선언했다. 구룡마을이 일부 환지 방식이 아닌 100% 수용·사용 방식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구 없이 열리던 회의는 9월 말 국회 국정감사에서 개발 특혜 시비가 일자 시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며 중단됐다. 시는 재개되는 협의체 회의에 구의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공문도 보냈다. 하지만 불참하더라도 회의를 열기로 했다. 시가 예비 감사 종료를 앞두고 잰걸음인 것은 내년 8월 2일까지 개발 계획이 정해지지 않으면 사업이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도시개발법 제10조에 따르면 개발구역이 지정·고시된 날부터 2년이 되는 날까지 계획이 수립·고시되지 않으면 구역 지정이 해제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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