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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가락을 팝·송처럼

    판소리 가락을 팝·송처럼

    「패티」金이 판소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가을쯤「디스크」를 출반할 예정으로 한창 연습중.『전에는 꽤 잘 한다는 소릴 들었는데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돼요』-「팝·송」가수의 색다른 집착. 복고조(復古調)「붐」을 타고 가수들이 흘러간 유행가나 민요를 즐겨 불러 일종의 복고조「붐」을 이룬게 70연도의 가요계의 한 흐름이다. 이 흐름의 앞장을 선게 『창부타령』『매화타령』의 최정자(崔貞子)와 『신고산 타령』『각설이 타령』의 조영남(趙英男), 이미자(李美子)도 덩달아서『목포(木浦)의 눈물』을 불렀고 김상희(金相姬)도 흘러간 노래를 불러댔다. 「패티」金의 판소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은 언뜻 보아서 이런 흐름에 발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가수 10여년동안 주로「팝·송」을 불렀고 자신의「오리지널」만도 2백곡 가까이 된다는, 국제적인 색채로 보아서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대표급 가수인「패티」金이 뒤늦게(?) 판소리에 집착하게된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패티」金은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나이가 들수록 우리창의 매력을 깨닫는 것 같다』고. 젊은이들에겐 부담감을 주지만 참고 심취해보면 창이 지닌 독특한 멋을 저절로 터득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2때 창(唱)으로 상타 「패티」金이 판소리 공부에서부터 가수생활을 출발했다는 이력은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그녀는 여중(女中) 2학년때부터 국악예술학교에 겹치기로 다니며 창을 배웠다. 그때가 15세니까 이미 17년전. 1년 배우고 나서 당시 덕성(德成)여대 주최 중·고등학교 국악경연대회에서 창부문에 1등을 차지했다는 것. 『그 때는 꽤 불렀던 모양이에요. 지금도 어떻게 아는지 왜 창을 않느냐고 추궁하는 분이 많아요』 팬인 의사(醫師)의 권유로 창을 다시 하기로 생각한 직접적인 동기는 얼마전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S병원에서 李모 의사의 권고가 주효했다고 실토한다. 음악 애호가이자「패티」金의 열렬한「팬」이라는 그 의사는『퍽 진지한 표정으로 창을 권했다』는 것. 그러지 않아도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를 권했고 자신도 단념을 못하던 터였기에 그 날부터 연습을 시작했단다. 「패티」金이 제일 좋아하는 창은『죽장망혜』『운담풍경』같은 단가. 짧은 것이라고는 해도 모두 10분이상 짜리다. 『심청전』과 『춘향전』중의 몇 마당도 빼놓을 수 없지만 지금은 가사를 모두 잊었다면서 아쉬운 표정. 부르기 쉬운 것부터 『결국 창 전공의 명창들처럼 전통적으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아요.「팝송」을 부르는 내 창법대로 현대화해서 부를 생각인데- 이 현대화라는게 자칫 우리 창의 본령을 헐뜯을까 여간 걱정 아녜요』 이를테면 편법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취입한 곡들도 우선은『새타령』『꽃타령』등 부르기 쉬운 것부터 차차 본격적인 판소리로 올라가겠다는 것. 그녀가 제일 좋아하고 사사를 희망하는 명창이 박초월(朴初月) 씨인데 고음이 박초월씨의 그 폭포소리처럼 터져나올지 『영 자신이 없다』고 걱정. 물론「패티」金의 가수생활이 아예 창 분야로 전환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칸조네」와「포크·송」에 더 마음을 쏟고 있다. 그녀는 2년전부터「유럽」일주여행을 공언했었다. 작년에도 떠난다 했고 금년봄에도 떠난다고 했다. 『내년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녀 오겠어요-』이렇게 말하는 속셈이 바로「칸조네」의 본 고장인「이탈리아」에 가서「칸조네」를 배워 오겠다는 것.「팝·송」위주에서「포크·송」이나「칸조네」로 전향하려는 게「패티」金이 세워놓은 가수로서의 예정표임에 틀림없다. 고음(高音)에는 자신없어 판소리는 이를 테면「내것」에 대한 애착이고 가수로서의 욕심이다. 전통적인 판소리는『이제 고음이 따르지 못해 어렵다』고 미리부터 낙망의 발언. 결혼후 목소리가 변했어요. 고음이 나오지 않고 호흡도 짧아졌어요』 그러나 가정생활에 관한한「패티」金은 완전한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서울 세검(洗劍)동의 2층 양옥에서 남편 길옥윤(吉屋潤)씨와 20개월된 딸 정아(貞娥)양의 현처양모로 평화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을쯤엔 이사할 예정으로 좀 넓고 아름다운 집을 물색중. [선데이서울 70년 7월 26일호 제3권 30호 통권 제 95호]
  • 국립극장 창극전용공간 생긴다

    국립극장에 창극 전용 극장이 들어선다. 국립극장은 기존의 427석짜리 달오름극장을 650석 규모의 창극 전용 극장으로 고치기로 했다. 특히 마이크나 스피커 등 전기시설을 쓰지 않고도 목소리가 객석 끝까지 잘 들릴 수 있도록 음향을 개선키로 했다. 2008년 1∼3월에는 객석확장과 음향개선 공사,2009년 1∼3월에는 무대확장 공사를 벌여 봄·가을 공연 시즌의 무대난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립극장은 또 별관에 있는 74석짜리 별오름극장도 250석짜리 사랑방극장으로 꾸미기로 했다. 기존의 달오름극장이 갖고 있던 소극장 기능도 충족할 수 있게 된다. 사랑방극장은 별관에 들어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떠난 뒤 2008년 세울 공연예술박물관과 연계해 운영한다. 이밖에 야외극장으로 쓰고 있는 600석 규모의 하늘극장은 눈·비가 내릴 때도 공연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하고 객석도 800석으로 늘린다. 해외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음악·마임·서커스·퍼포먼스 등 21세기 예술장르로 청소년들에게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사계절극장으로 운영한다. 신선희 국립극장장은 “극장이 완공되면 한국적 총체 음악극으로서 창극의 발전이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국악 레퍼토리 개발과 판소리 및 창극의 대중화와 해외 진출 등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마당] 전통예술의 힘/한명희 예술원 회원

    지난 1990년대 말의 일이었다. 프랑스 아비뇽축제의 총감독 다르시에가 당시 필자가 책임자로 있던 국립국악원장 방을 찾아왔다. 아비뇽축제기간에 한국의 전통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그 대상을 물색하러 온 것이다. 접견실에서 전통음악과 춤에 대한 몇몇 비디오테이프를 보여 줬다. 고백하건대 비디오를 보여 주는 당시 필자의 심중은 겸연쩍은 듯 당당하지가 못했었다. 현대문명의 주류이자 첨병임을 자처하는 저들의 눈에 한국의 전통예술은 역시 한참 후진 변방의 예술로 비쳐질 게 뻔하다는 통상적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그때 필자가 느낀 충격은 그랬다. 전통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전통예술의 진가를 저들의 시각처럼 바라보는 심미안이나 가치의 준거를 갖추지 못한 외눈박이 세상보기가 우선 부끄러워 충격이었다. 저들의 시각을 통해서나마 그 동안 일상성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전통예술의 진수를 전광석화처럼 ‘돈오(頓悟)’할 수 있었던 게 더 큰 놀라움이었다. 당시 다르시에는 이매방의 승무를 보며, 이것이 어떻게 ‘전통’이냐고 놀라워하며, 머스 커닝엄(미국의 전위무용가로 백남준과도 활동)의 춤을 능가하는 현대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식상하리만큼 천편일률로 접해 그 진가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승무를 두고, 저들은 첨단적 전위무용을 능가하는 현대성을 느끼다니! 지난해 연말이었다. 나는 짐짓 판소리와 전통가곡만을 들고 파리공연을 추진했다. 시조시 한 수 부르는데 10분이 소요될 정도로 느리기 짝이 없는 음악, 그래서 정상적(?)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외면하는 전통가곡을 가지고 파리공연을 기획하다니. 그것도 전광판의 자막 해설은 물론 무대에서 흔히 쓰는 마이크도 일절 배제한 채. 그때 관계자 대부분이 우려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시에와 같은 예를 수시로 겪으면서 내심 확신하는 게 있었다. 우리가 우리 것을 보는 감각과 남이 우리 것을 보는 감각은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는 평범한 믿음이 곧 그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통가곡과 판소리, 두 가지 레퍼토리만으로 단순하게 꾸민 음악회는 기메박물관 400석을 이틀 모두 만석으로 매진시켰으며, 르몽드 문화면은 이 공연을 중심으로 한국예술 전반을 전면으로 다뤘다.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인 전통문화의 육성에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정책을 결집시켜야 마땅하다. 분석적 서구문화의 여파로 종합예술적 성격이 짙은 우리의 전통은 갈기갈기 분화되어 각자의 장르 속에 편입되어 왜소해졌다. 전통음악만 해도 서양 음악과 함께 음악이라는 장르로 간주되며, 그 입지가 좁아졌다.‘전통’의 넓이와 무게보다도 장르개념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실효성 있는 문화 계발정책을 위해서는 장르개념에 앞서 전통예술 대 현대예술이라는 이분법적 발상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전통의 범주 속에도 음악, 미술, 무용 등이 있고, 서구문화와 혼재된 현대 속에도 각종 예술이 있다는 대칭적 경계선을 분명히 인지하는 일이 곧 그것이다. 문화발전의 대원칙은 온고(溫故)하고 법고(法古)해서 창신(創新)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애정어린 온고는 하지 않은 채 지신(知新)만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거목으로 자랄 문화나무의 실뿌리가 내리지 못했다. 때마침 문화지형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전통문화를 비중 있게 키우려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의 문화정책이 그러하고, 국회 강혜숙 의원이 앞장선 전통문화진흥법의 발의가 곧 그것이다. 역시 문화현장에 밝은 현역들이기에 문화발전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문화중흥을 고대하는 국민의 염원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한명희 예술원 회원
  • 완창 판소리 9차례 공연

    완창 판소리 9차례 공연

    판소리 완창이 공연 형식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1968년 박동진 명창의 ‘흥보가’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판소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옛 명창들도 짧으면 3∼4시간, 길면 7∼8시간에 이르는 완창판소리에 도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완창판소리는 옛 공연문화의 재현이라기보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장은 1985년부터 190차례에 걸쳐 완창판소리 공연을 이어왔다. 그동안 웬만한 공력으로는 불가능한 완창이 소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당연히 도전해야 할 과제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22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가 올해는 3월18일 조통달의 ‘수궁가’로 막을 올린다.12월31일 안숙선의 심야 완창판소리 ‘흥보가’까지 모두 9차례 펼쳐진다. 올해 완창 무대에서는 다양한 소릿제(制)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3월엔 임방울에서 시작된 조통달의 ‘박초월제 수궁가’,4월엔 김여란에게 물려받은 최정희의 ‘정정렬제 춘향가’,5월엔 김일구의 ‘박봉술제 적벽가’가 올려진다.8월엔 성창순의 ‘보성소리 춘향가’,11월엔 염경애의 ‘유성준제 수궁가’,12월엔 안숙선의 ‘강도근제 흥보가’를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특히 국립창극단의 초대 단장이었던 동초 김연수의 탄신 100주년이다. 동초의 애제자인 오정숙이 6월 ‘동초제 춘향가’, 오정숙의 애제자인 김성예가 11월 ‘동초제 심청가’로 동초소리의 진수를 펼치는 것은 어떤 기념행사보다 의미있는 일이다. 올해는 또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안숙선의 판소리 입문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야완창으로 소리인생 50주년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게 됐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전주시, 판소리 보급 박차

    전북 전주시가 판소리 보급에 발 벗고 나섰다. 전주시는 2일 시민과 학생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고 국악 순회공연을 하는 등 판소리 보급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판소리의 이해와 단가 배우기, 지역 소리꾼의 영상자료, 세계문화유산 판소리 해설 등을 담은 판소리 교육용 DVD를 제작, 관내 초·중학교와 청소년문화의 집, 노인복지회관 등에 보급했다. 시는 현재 금암노인복지회관과 완산청소년문화의 집, 인후문화의 집, 전주청소년문화의 집, 효자문화의 집, 인후동 인봉초등학교, 중화산동 화산초등학교, 삼천동 효문여중에서 판소리를 배울 시민과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또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관내 중학교와 고등학교, 특수학교, 소년원 및 교도소, 경찰서, 소방서, 기업체 등을 찾아가 판소리를 공연하는 ‘2007년도 국악 순회공연’을 갖는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Local] 전북도 무형문화재 동영상 제작

    전북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동영상으로 제작·보존된다. 전북도는 28일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보존하고 이를 후손들의 전수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무형문화재 6명의 기능과 예능을 동영상으로 제작키로 했다. 대상은 침선장 기능보유자 최온순, 목기장 김광열, 전통술 김복순, 판소리 최채선, 가사 김봉기 등이다. 동영상은 이들 무형문화재의 수행 장면을 이력, 계보, 특징과 함께 60분 분량으로 제작한다.
  • 세상으로 唱을 열다

    민주화운동 시대에만 재야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21세기 국악계에도 재야인사들이 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흐름을 타기보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법통을 올곧게 지켜가면서 제 갈길을 가는 명인·명창들이다.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일컬어지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제도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음악사를 쓰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이런 ‘거물급 재야명창’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주인공은 바로 판소리의 박초선과 시조의 서현숙, 경서도소리의 남혜숙. 이들은 3월15∼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3인의 가인(歌人)’에서 만날 수 있다. 재능을 묻고 살아온 명창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여 우리 소리의 다양성을 보여주자는 것이 국립국악원의 기획 취지이다. 이른바 주류 소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같고도 다른 멋과 깊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세 사람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질 두 차례 공연에서 각자의 장기를 펼쳐놓게 된다. 특히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정선아리랑을 판소리, 경서도소리, 시조의 세 명인이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박초선(76)을 재야인사로 분류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애기명창’으로 자라 김소희, 박록주, 김여란 등 당대 명창에게 두루 배운 뒤 탁월한 기량으로 소리판을 주름잡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기 때문. 그는 1960년대 완창 판소리를 음반으로 내자는 제의에 “전통예술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며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국극이 관객을 불러모을 때도 “판소리 대중화에는 기여할 수 있겠지만, 쉽게 소리를 하는 탓에 목 쓰임새와 타는 길이 변질된다.”고 주장해 논쟁을 불렀다. “소리꾼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면서 “권력주변을 기웃거리며 아부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후배들을 다그친다. 그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아닌 보유자 후보로 22년을 보내고 있다. 남혜숙(65)은 경기민요의 전설적인 명창 김옥심의 제자이다. 김옥심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에서 탈락한 뒤 제자들의 ‘줄서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다른 욕심 없이 그저 선생님의 소리가 좋아 배웠을 뿐인데 왜 떠나겠느냐.”며 곁을 지켰다. 남혜숙은 크고 높은 소리를 배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덜미청과 비단실을 뽑아내듯 가느다란 속청이 뛰어나고 방울목으로 소리를 굴려서 내는 김옥심의 기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남혜숙의 경서도잡가와 민요가 중요성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현숙(67)은 임춘앵 일행의 여성국극 ‘열녀화’를 보고 국악에 입문한 뒤 23세에 마산 전국시조경창대회 명인부에서 1등을 차지했다. 같은 해 전국의 시조경창대회를 모조리 휩쓸다시피 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인 유종구와 가곡·시조를 담은 음반을 펴냈다. 하지만 단시간에 명창의 반열에 오른 것이 부담이었는지, 한동안 경남 남해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1985년에는 부여백제문화제 시조가곡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정경태와 유종구를 거쳐 서현숙에게 이어진 향제 시조는 아기자기한 맛이 매력이다. 서현숙의 타고난 성음은 편안하고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공연시작은 오후 7시30분.1만∼2만원.(02)580-3333.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새 사옥 입주 기념 국악 한마당

    전통음악 라디오 채널인 국악방송이 3월2일 새로운 사옥(마포구 상암동 DMS빌딩)으로 이전한다. 개국 6주년과 사옥이전 기념 프로그램인 ‘2007 국악방송 새집들이, 새봄들이’에는 안숙선(판소리·국창), 이슬기(가야금·퓨전음악) 등이 출연해 흥겨운 한마당을 펼친다.2001년 전통문화예술 콘텐츠의 개발로 21세기 문화경쟁 시대를 선도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개국한 국악방송은 지난 2006년 7월에는 남도중계소를 통해 전남 서남부 일원도 가청권에 포함, 전국 방송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 [씨줄날줄] 몸으로 때우기/이용원 수석논설위원

    흔히 쓰는 말로 몸으로 때운다는 표현이 있다.‘때우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다른 수단을 써서 어떤 일을 보충하거나 대충 해결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몸으로 때운다는 말은, 돈이 없거나 배운 게 적은 탓에 결국 몸뚱어리를 굴려 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흥부 이야기에는, 흥부가 굶는 처자식을 보다 못해 몸으로 때워 돈벌이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죄 지은 동네 좌수를 대신해 곤장 열대를 맞고 서른닷냥을 받기로 한 것이다. 판소리 ‘흥보가’에서 이 대목은 참으로 애절하다. 흥부가 나라빚이라도 얻으려고 호방(戶房)을 찾아가니 호방은 오히려 매품을 권한다. 착수금 닷냥을 받은 흥부는 신이 나서 떡국에 막걸리, 비지를 사먹고 호기롭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부인에게 큰 소리를 친다, 대장부 한걸음에 서른닷냥이 생겼다고. 흥부 마누라 기가 막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굼기(구멍이) 있는 법이니 제발 매 맞으러 가지 말라.”고 매달린다. 그러나 흥부는 대장부 사내가 큰 길을 떠나는데 울긴 왜 우느냐라며 뿌리치지만, 막상 매 맞으러 병영 입구에 도착해서는 ‘벌벌벌 떨면서’ 들어가는 것이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속전(贖錢)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나라에 지은 죄를 돈을 내고 용서받는 일이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볼기 10대를 맞을 죄에 베 5필을 내는 것부터 사형은 베 200필로 대신한다는 것까지 속전의 세목(細目)이 적혀 있다. 훗날 이러한 규범이 흐트러지면서 흥부처럼 돈 많은 죄인의 매를 대신 맞는 매품이 생겨났다. 지난해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서 노역으로 때운 사람이 3만 4019명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93명 꼴이다. 이는 IMF 사태(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의 1만 5139명에 견줘 2.2배 수준이다.10년전 발생한 IMF 사태를 무사히 넘겼다는 핑계로 기업인들을 특별사면한 날짜가 지난 12일이다. 그런데도 돈 없고 힘 없는 백성은 벌금을 낼 도리가 없어 노역형으로 죗값을 치르는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 흥부가 매품을 팔아 겨우 살아가던 시대보다 나아진 게 없는 이 현실을, 정치인들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민속악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어야 잘 할 수 있다. 세습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야 피에 음악이 흐르고 몸에 음악이 녹아 있어 조금만 배우면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전설적인 명인 명창들 대부분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다. 송흥록 명창이나 박종기 명인이 모두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간혹 음악가 집안 출신 아닌 사람이 음악가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가비’ 또는 ‘비개비’라 하여 좀 낮추어 보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비가비’란 비갑(非甲)에서 온 말인데 ‘갑이 아니다’ 즉 ‘동류가 아니다’는 뜻이고 그 반대말인 동류를 가리킬 때에는 ‘관동’이라 한다. ‘관동’이란 양반들이 쓰는 ‘동관(同官)’이란 말을 뒤집어 그렇게 쓰는 것이다. 김무길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고 부인인 박양덕 역시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부부가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남편은 거문고의 명인이고 부인은 판소리 명창인데 자녀들도 모두 국악을 전공하여 식구가 모두 음악을 하며 살고 있다. 김무길은 지금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고 박양덕은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로 남원시립국악단 지도위원을 하고 있다. 부부가 지리산 자락의 폐교를 인수하여 ‘운상원 소리터’를 만들었는데 ‘운상원(雲上院)’은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했다는 그 운상원이다. 우리네 공부하는 방법이 산에 들어가 혼자 연습하며 공력을 쌓는 것인데 그런 독공(獨工)을 통해 깨닫고 또 깨닫고 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에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공부했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있는 옥보고의 기록을 보면 남원은 거문고의 성지(聖地)이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한 지 50년에 새로 30곡을 지었고 그것을 속명득(續命得)에 전했는데 속명득은 그것을 귀금(貴金) 선생에게 전했다. 귀금 선생은 다시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에게 전했는데 이때 신라왕은 혹시 금도(琴道)가 끊어질까봐 그 음악을 잘 전승하도록 하라고 남원공사에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극장(克上)과 극종(克宗) 이후에 신라에서는 거문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니까 고구려에서 발달한 거문고 음악이 남원 땅인 지리산 운상원에서 재창조되어 신라의 음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김무길과 박양덕이 가꾸고 있는 ‘운상원 소리터’는 역사적 사건과 맥이 닿는 대단한 곳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 한국 최고의 거문고 명인이 서울을 마다하고 이곳을 택하여 소리 터로 가꾸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옛날 옥보고가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김무길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길은 1962년 서울국악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의 국악예술학교는 고등학생 또래가 다니는 학교이긴 했지만 그야말로 국악을 모두 배우는 예술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배운 국악 실력으로 국악단체나 연주자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었다. 김무길도 국악예술학교를 졸업한 다음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거문고 산조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한갑득 명인에게 배웠다. 당시의 수업방식은 완전히 옛날식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법이어서 악보도 없이 매일매일 배운 것을 구음으로 외우고 충분히 익힌 다음 그 다음을 배우는 식으로 배웠다. 김무길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매일 구음을 외웠다. 지금도 학생들을 지도할 때 구음을 척척 해가면서 지도하는 것은 다 그때 그렇게 무한히 외고 열심히 거문고로 탔기 때문이다. 한창 열심히 배우던 시절 한갑득 선생에게 “저는 선생님과 똑같이 탄다고 타는데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같이 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선생께서는 “이 놈아 수만 독(數 萬讀; 수만 번) 하면 돼”라고 했다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한다. 김무길은 한갑득을 철저히 사사했다. 거문고도 배우고 음악에 대한 태도나 생각도 배우고 술도 배웠다. 특히 거문고산조를 타면서 그 음악이 그려내고 있는 자연의 경치나 타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서 음악이 변하는 것에 대한 한갑득의 설명은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거문고 소리가 온 우주의 것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한갑득과 쌍벽을 이루던 신쾌동 선생까지 사사했다. 최고의 거문고 명인 두 분 밑에서 철저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김무길은 한국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이자 최고의 사범이 될 수 있었다. 김무길은 지리산 운상원 소리 터에 있지만 전국에서 많은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배운다. 국공립단체에서 활동하는 전문 연주가들 다수가 그의 문하에서 거문고 산조를 배우고 있다. 한갑득류나 신쾌동류의 긴 산조는 김무길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어 그런 큰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김무길과 박양덕이 서울에 있으면 훨씬 많이 활동하고 돈도 잘 벌 텐데… 왜 그런 산골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 내외의 생각은 다르다. 꿈이 있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좇는 꿈이 아니다. 정말 순수한 인간 순수한 음악가로서의 꿈이다. 무엇보다 어려서 가졌던 꿈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건물과 시설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몰려오는 제자들과 두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클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시설에 공연장 하나를 더 지어 정말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본인들의 음악도 더욱 공력을 쌓고 싶고 다음 세대를 위한 더 좋은 작품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옥보고가 운상원에서 득음하고 새 음악을 많이 만들었던 것처럼 김무길도 운상원 소리 터에서 거문고 음악의 새 장을 열고 싶은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서른 즈음 나는 흔들리던 청춘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5빼기 3은 2’이고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을 이렇게 가르쳐주었다.‘오해는 세 번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내가 선거를 치르면서 배운 교훈은 모름지기 사람이 신중하고 과묵하여야 하겠다는 것인데, 몇달 지나다 보니 이 신중과 과묵의 교훈을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첫 여성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50·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 고문변호사)씨가 9일 산문집 ‘서른의 당신에게’(웅진지식하우스)를 출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책은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도 나선 ‘정치인’ 강금실보다는 문학과 영화, 음악, 무용 등 문화 전반에 만만찮은 소양을 지닌 ‘문화예술인’ 강금실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때는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무척이나 좋아해 외우곤 하였는데, 이렇게 처연한 구절은 외울 것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자꾸 마음만 슬퍼지고, 사랑이 오기 전에 상처를 받아들이는 체념의 힘만 키워주는 듯해서이다.” 강씨는 이처럼 여린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김수영의 시구처럼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은 강인함을 보인다.그의 삶에는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이고 차가우면서 뜨거운, 그런 대립항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 강씨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살풀이를 취미로 한다고 해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그는 전통춤을 비롯해 판화, 클래식 기타, 피리, 장구, 북, 요가, 단학, 재즈댄스, 판소리, 민요, 성악까지 배웠다. 그는 전통춤을 배운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흔한 운전면허는 아직도 따지 못했다. “착지할 자리를 찾아 불안하게 흔들리던 청춘. 거기 삶이 시작되었던 나이는 돌이켜보니 ‘서른 즈음’이었다.” 이 책에는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대로 여느 젊음처럼 방황과 갈등의 시기를 보낸 저자가 이를 극복하고 세상에 우뚝 설 수 있게 한 희망의 철학이 담겼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네모의 이집트 여행(니콜 바샤랑 등 지음, 이수련 옮김, 사계절 펴냄) 이집트는 그리스, 베트남, 중국, 한국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가 많은 국가군에 속한다. 세계 20여개 나라에 10만여점 이상의 국보급 문화재가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서구 열강에 약탈당하고 파괴된 역사를 이야기하며 약탈의 상징인 ‘박물관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여행을 통한 자아 정체성 찾기와 성장’이라는 컨셉트의 청소년 교양소설.1만 2000원. ●위대한 사람들73(페데리카 마그린 지음, 음경훈 옮김, 을파소 펴냄) 아프리카에 있는 세나라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사이에는 빅토리아 호수라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고, 잠베지 강에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이 이름은 불가사의한 인물인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를 항해하면서 붙인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1876년에는 ‘인도의 황제’라는 칭호도 얻었다. 이 책에는 최초의 여성 파라오는 누구일까,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작품 ‘피에타’는 몇개가 있을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렸다.2만 2000원. ●박물관에서 놀자(윤소영 지음, 거인 펴냄) 지옥에 떨어져 아귀가 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제사상을 차린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담긴 ‘보석사 감로탱화’, 화성릉 행차길에 어머니에게 직접 음식을 갖다 드리는 정조대왕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시흥환어행렬도’등 그림을 통해 생생한 지식을 전해준다. 옛 유물들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원본 도판 안에 여러가지 숨은 그림을 배치해 눈길을 끈다.1만 1000원.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문학(김문태 지음, 산하 펴냄) 일반적으로 구비문학은 설화, 민요, 판소리, 무가, 가면극 등으로 구분된다. 확인될 수 없는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해주는 설화는 신화·전설·민담으로 나뉘는 옛날이야기이고, 민요는 노동요·의식요·유희요로 나뉘는 옛노래다. 판소리는 광대가 고수의 북장단 소리에 맞춰 이야기를 소리와 아나리로 엮고 발림을 곁들여 전하는 민속악. 저자(상명대 연구교수)가 직접 채록했거나 구수한 입말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통해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다.1만 2000원. ●아멜리아에서 조라까지(신시아 친 리 지음, 안기순 옮김, 소담주니어 펴냄) 비행사 아멜리아 이어하트, 컴퓨터 분야의 개척자 그레이스 호퍼, 천문학자 시실리아 페이네가 포슈킨, 전미 농업노동조합을 설립한 돌로레스 후에타, 체로키 국가의 추장 윌마 펄 맨킬러, 소설가 조라 닐 허스튼 등 26명의 여성 위인들의 삶을 소개.9800원.
  • [특별하區 ★나區] 캠퍼스 분위기 물씬 ‘실버들의 아지트’

    요즘 들어 자꾸만 노년이 기다려진다. 어이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정말 그렇다.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그리워하는 대신 앞으로 다가올 제2의 황금기를 멋지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송파구 삼전동의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난 은발의 멋진 신사를 동경하게 됐다. 노인들의 사랑방을 예상했던 내게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복지관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깔끔한 강의실에서는 다양한 강좌가 진행되고, 각종 스터디 그룹과 동아리 회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유창한 회화실력을 뽐내는 외국어교실 수강생들, 춤 삼매경에 푹 빠진 춤사랑동아리 회원들, 어르신 컴퓨터 경진대회를 대비해 막바지 연습에 들어간 컴퓨터교실 멤버들…. 대학 캠퍼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모습이었다. 특히 3층 홀에 놓인 당구대를 사이에 두고 큐를 잡고 빙 둘러선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포켓볼을 가르치는 강사 역시 75세의 할아버지였으니…. 젊은 시절 미8군에서 군복무를 하며 배운 포켓볼로 지금은 멋진 노년을 보낸다는 할아버지 강사님의 시원스러운 샷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게 패인 주름살만 아니라면 누가 그들을 노인이라 부를까. 현재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스포츠댄스·차밍디스코 등 건강프로그램과 컴퓨터·외국어·문학 등 교양프로그램, 판소리·클래식기타 등 총 82개다. 여기에 영화상영·문화공연·동아리축제 등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문화 행사는 복지관 어르신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큰 인기다. 5000∼1만원의 재료비가 드는 심화학습반을 제외하고는 전 강좌가 무료이다.65세 이상이라는 연령 조건과 점심값, 차비만 있으면 이곳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은퇴 후 자원봉사로 참여한 강사들도 많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 모두가 친구다. 그야말로 이곳은 ‘실버들의 아지트’다. 늙으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그리워진다는데, 대문만 열면 수많은 친구와 신나는 하루가 기다리는 이곳이 있으니 나는 이미 즐거운 노후를 보낼 최고의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내가 꿈꾸는 실버 라이프(silver life). 그 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노년을 기다린다.
  • 향교에서 사물놀이를…

    서울에서 유일한 향교인 강서구 가양동 235의2 양천향교 앞마당에 판소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전통 문화마당’이 들어섰다. 강서구는 15일 “지난해 10월 착공한 양천향교 전통 문화마당을 오는 19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문화마당의 조성비 9억원은 전액 시에서 지원했다. 전통 문화마당은 전통 양식의 정자와 대나무,2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 속에서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각종 전통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구는 정기적으로 사물놀이, 마당극, 민속놀이 등 소규모 공연을 개최해 문화마당을 조상의 얼과 멋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전통 예절교실과 한문교실 등도 상시 운영한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서울~수도권 ‘공연시차’ 보름?

    서울~수도권 ‘공연시차’ 보름?

    2007년 벽두에 각 공연장과 연주단체들이 다투어 신년음악회를 연다.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밝고 따뜻하고 힘찬 음악을 즐기며 새로운 한 해를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서울지역의 주요 공연장과 연주단체의 신년음악회는 1월 첫째주에 몰려 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 가면 1월 중순 이후에야 신년음악회가 본격화된다. 아예 정기점검이라는 명목으로 문을 닫아놓는 공연장도 있다. 과거에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도 연초가 직원들의 휴가철이었던 때도 있었지만,‘황금시즌’으로 탈바꿈한 지 벌써 오래다. 정해년은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 사이에도 적지 않은 문화적 격차가 좁혀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여건이 어렵지만, 지역 공연장 관계자들도 주민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좀더 가다듬는 한 해가 돼야 할 것이다.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02-3700-6300)은 3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신년음악회를 갖는다.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려준다.14일에는 군포시문예회관(031-390-3500)에서 ‘정명훈 초청 특별신년연주회’를 갖는다. 이날은 ‘신세계’ 대신 역시 희망을 노래하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1544-5955)은 3일 오후 8시. 김덕기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과 소프라노 김향란, 메조소프라노 김현주, 테너 강무림, 바리톤 우주호, 이 솔리스티 서울이 출연한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 충무아트홀(02-2230-6624)에선 김민이 이끄는 서울바로크합주단과 소프라노 오은경이 나선다. 예술의전당(02-580-1300)은 4일 오후 8시 콘서트홀이다. 정치용 지휘 코리안 심포니와 판소리 인간문화재 안숙선, 피아니스트 이용규가 출연한다.5일 오후 7시30분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KBS 교향악단(02-781-2241) 신년음악회에는 지휘자 장윤성, 피아니스트 박종훈,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베이스 손혜수가 나선다. 같은 날 오후 8시 금호아트홀(02-6303-1919)에선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드뷔시의 전주곡집과 쇼팽의 왈츠 전곡에 도전한다. 수도권의 중대형 문화공간 가운데는 성남아트센터(031-783-8000)가 4일 오후 8시 오페라하우스에서 비교적 일찍 신년음악회를 갖는다. 하지만 소프라노 신영옥의 듀오 콘서트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국 순회연주회 일정의 하나라는 점에서 극장측이 부지런을 떤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수원의 경기도문화의전당(031-230-3200)은 19일 오후 7시30분 대공연장이다.‘경기필하모닉과 금난새’라는 타이틀이다. 소프라노 오은경과 테너 이현이 출연한다.27일 오후 5시에 열리는 의정부예술의전당(031-828-5841)의 신년음악회에는 테너 김동규와 소프라노 이태원, 그리고 박상현이 지휘하는 모스틀리 필하모닉이 나선다. 고양 덕양어울림누리(031-969-4141)에선 30일 오후 7시30분 파페라 테너 임형주와 독일의 바이에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신년음악회를 꾸민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영화제야 콘서트야” 톡톡 튀는 종·시무식

    ‘톡톡 튀는 행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가 하면 새해 각오를 다지는 시무식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8일 아쟁산조와 남도민요, 판소리 등 국악한마당이 펼쳐지는 가운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갖는다. 동원 F&B는 29일 종무식을 겸해 직원들이 참여하는 연주회를 개최한다. 샘표는 29일 열리는 종무식을 영화제 형식으로 치른다. 남녀 직원의 사회로 진행된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레드 카펫’도 깔린다. 주요그룹들은 종무식을 계열사별로 진행하지만 시무식은 그룹회장과 계열사 임원들이 한데 모여 각오를 다진다. 삼성그룹은 내년 1월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건희 회장과 재경(在京)지역 임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하례 행사를 갖는다. 이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는 영상메시지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현대차그룹도 양재동 본사에서 정몽구 회장 주관으로 시무식을 갖는다. 비자금 사건 등 다사다난했던 2006년을 정리하고 새해의 힘찬 도약을 다짐할 계획이다.LG그룹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구본무 회장, 계열사 CEO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이구택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임직원, 출자사 임원, 협력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과 광양을 영상으로 연결해 시무식을 가질 예정이다.GS칼텍스는 역삼동 GS타워에서 허동수 회장과 임직원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신입사원들이 대륙별 춤을 선보인다. 또 임직원들이 함께 사물놀이도 한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영산재 세계문화유산 감”

    “영산재 세계문화유산 감”

    불교계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靈山齋)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태고종 총무원과 영산재보존회(총재 구해 스님)를 비롯한 불교계는 최근 불교계와 관련 학자, 정관계 인사가 포함된 ‘로터스 프로젝트(LOTUS PROJECT)’를 마련, 영산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와 맞물려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역사교육학)를 중심으로 한 관련 학자들도 영산재의 학술적인 정리를 위한 학회 결성에 나서 주목된다.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당시의 법회 광경을 상징화한 불교의식. 티베트에 범패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독특한 불교의식이 행해지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도량(道場)에 영산회상도를 거는 괘불이운(掛佛移運)으로 시작해 찬불의식, 영혼을 모셔오는 시련(侍輦), 탐·진·치의 삼독을 씻어내는 관욕, 공양터를 정화하는 신중작법(神衆作法),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찬불의식, 회향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음악(범패)과 춤(작법), 기예가 어우러져 종합예술의 형식을 갖는다. 특히 한국불교의 전래기부터 행해져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으로 꼽히는 범패는 월명사의 ‘도솔가’나 일본승 자각대사(慈覺大師) 원인(圓仁·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등 숱한 기록에 등장한다.“얇은 사(絲)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도 영산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73년 무대종목인 ‘범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뒤 1987년 마당종목으로 재지정됐으며 현재 보유자 1명과 준 보유자 1명, 전수교육조교 5명외에 37명의 이수자가 활동 중이다. 사찰의식인 만큼 주로 스님들만 행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으나 3∼4년 전부터 영산재를 배우려는 대학교수와 무용인, 성악가들이 늘고 있어 대중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불교계는 영산재가 비록 불교의식이지만 한국만의 전통적인 문화양식을 담은 종합예술인 만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97년 캐나다 3개 대학 순회공연을 비롯해 20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2003년 독일 베를린 종교음악축제에서 호평받는 등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늘고 있으며 이같은 흐름 때문인지 지난 10월 인도 뉴델리 붓다자얀티파크에서 열린 제3회 세계종교축제에는 달라이 라마가 직접 우리의 영산재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의 문화예술계와 종교계는 영산재를 특정 종교의 의식으로 인식해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태고종을 주축으로 불교계가 시작한 ‘로터스 프로젝트’는 바로 이같은 편향된 인식을 바로잡아 영산재를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지난 4년간 영산재 학술대회를 열어온 일운(59) 스님(옥천범음대학장)은 “영산재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종합예술 성격을 갖는데도 기독교 등 여타 종교계의 잘못된 인식 탓에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미루어져 왔다.”며 인식전환을 당부했다. 홍윤식(71) 교수도 “한국만이 가진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영산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관련학자들로 구성된 학회를 출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6년간 한국문학 번역한 영국인 안선재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6년간 한국문학 번역한 영국인 안선재 교수

    “선생님, 된장찌개를 어떻게 영역해야 하나요?” “….” “그러면, 사랑채는요?” “….”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터. 영어에 어느정도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특유의 구수하고 감칠맛나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나 민족적 한(恨)과 정서를 그때그때 똑 떨어지는 말로 찾기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같은 ‘흥’과 ‘한’이 시나 소설, 우리 문학의 행간 깊숙이에 촘촘하게 엮어져 있어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될 무렵이면 영역 문제에 대해 새삼 거론되곤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한국을 가장 잘 알고, 또 한국 문학을 충분히 이해하는 외국인 교수면 어떨까. 물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출신은 당연지사여야 하겠지. 지난 주(11월27일~12월1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도서관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회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한국 문학을 16년째 번역해온 서강대 안선재(64·영국명 브라더 안토니) 영문과 교수가 그동안 한국문학을 영역한 책 26권을 모아 선보였던 것. 특히 이 전시는 내년 2월 안 교수의 정년퇴임을 앞둔 행사여서 김광규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축하와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특유의 능숙한 표현력으로 그가 영역한 책을 얼핏 보면 이렇다. 천상병의 ‘귀천’(Back to Heaven), 고은의 ‘화엄경’(Little Pilgrim),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Faint Shadows of Love), 김영무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고은의 ‘만인보’(Ten Thousand Lives),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The Early Lyrics)…. 올해에만 마종기의 ‘이슬의 눈’(Eyes of Dew), 고은의 ‘내일의 노래’(Songs for Tomorrow) 등 4권을 펴냈다. 안 교수는 1991년 대한민국 문학상 번역상을, 그리고 1995년에는 이문열의 ‘시인’(The Poet) 영역판으로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각각 받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고은의 선시(禪詩) ‘뭐냐’를 영역한 ‘Beyond Self’를 읽은 미국 비트세대의 대표적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안 교수의 번역솜씨에 대해 “번역이 뛰어나다. 미국 시인들에 좋은 귀감이 된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쯤되면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셈이다. 그가 한국문학의 해외전도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11월28일 서강대 인문관 안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시간 동안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국적 냄새가 코끝에 물씬 풍겨온다. 가득한 책장 사이로 불교관련 그림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녹차 마시는 다기(茶器)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의아한 표정에 눈치를 챘는지 “1990년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나가 틈틈이 다기를 구입했고 1994년에는 녹차 만드는 사람들을 알게 돼 지리산을 가끔 찾기도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1980년에 한국에 처음 온 뒤 서강대에서 강의를 맡던 1994년 한국인으로 완전히 귀화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적인 것에 흠뻑 빠진 까닭이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한국문학을 번역해오면서 느낀 소감을 물었다.“프랑스에 있을 때 시를 영역한 경험이 있다.”면서 “한국문학은 전통적 재미와 여유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와 비교할 때 문법과 스타일이 다르고 특히 한국적인 ‘맛’을 번역하기가 힘들다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안성댁’‘보릿고개’‘된장찌개’‘사랑채’ 등을 번역하려면 고민이 많이 된단다.‘된장찌개’와 ‘사랑채’를 어떻게 번역하느냐고 했더니 “된장찌개는 Bean Paste Soup, 사랑채는 Men’s Court정도면 되지 않겠느냐.”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일부 인터넷 상에는 사랑채를 ‘Love House’ 개념으로 잘못 번역된 곳도 있다.) 우리나라 번역문학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많이 번역해내는 것보다는 국제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헝가리나 불가리아 등 유럽쪽에서도 1년에 외국어로 번역되는 게 고작 10여권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2005년에만 영어로 30권이 출간됐다고 했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소 또한 다량의 번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의 경우 작은 소설을 불과 2권정도 번역됐는데 그나마 팔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올해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씨에 대해서는 “다음 노벨상 수상자로 분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제한 뒤.“그의 시는 그냥 보여주기 위한 시가 아니라 압축된 인생이 꾹꾹 담겨 있으며 그동안 9개국어로 25권정도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의 작품 중 ‘만인보’는 정말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고은 시인과는 1991년 그의 시선집을 번역하면서 알게 됐다. 이어 한국문학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한다.“최근 세계문학의 흐름이 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문학은 세계의 흐름과 동떨져 있다.TV드라마같은 작품이 너무 많으며 한국문학은 이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세계 작가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요즘 전통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느날부터인가 된장보다는 스시(壽司)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옛날 왕궁음식 등을 프로모션하는 일이 여전히 부족하고,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와 집값 걱정 때문에 전통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의 전통음식은 정말이지 건강을 유지시켜줍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한국의 발효음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있지요. 다시 찾아야 합니다.” 안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자주 펼쳐 주위에서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옛날 고시나 한시는 물론 공자와 맹자 등도 자주 읽어 한자에도 어느정도 익숙하다.“한자를 모르면 한국 문학의 깊이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춘향가나 판소리는 중국과 다른 고귀함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재미없어 외면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1940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테제(Taize) 공동체 수사(修士)인 안 교수는 잉글랜드 지방 출신으로 필리핀 빈민촌에 머물던 중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26년 전 한국에 오게 됐고 1985년부터 서강대 영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영국에는 현재 사촌 등의 친척이 산다. 서울 화곡동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지내는 그는 홍어찜과 산채비빔밥을 좋아한다. 가끔 지리산으로 떠나 현지에서 나는 싱싱한 산나물을 먹고 물소리를 들으며 녹차를 마실 때가 더없는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당연히 독신이기에 눈치봐야 할 가족도 없다. 휴일 인사동에 나갈 때면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를 꼭 만나 정담을 나눈다. 목 여사의 수필집 ‘날개없는 새’(The Poet´s Wife)를 번역한 인연도 있다. 정년 퇴임 후의 계획을 묻자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의하고 책을 보고 번역을 하고, 차마시고….”라며 활짝 웃는다. km@seoul.co.kr
  • 경북도 지자체들 달빛기행 짭짤 문경·경주·영덕등 체험관광 성공

    경북도 지자체들 달빛기행 짭짤 문경·경주·영덕등 체험관광 성공

    ‘달빛기행이 돈 되네.’ 경북도내 자치단체들이 지역의 주요 관광자원과 연계, 개발한 체험관광상품인 ‘달빛기행’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관광객 유치는 물론 차별화된 지역홍보에 적잖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경시는 30일 시내 한 예식장에서 ‘문경새재 옛길과 달빛, 그리고 사랑’이란 주제로 올해 실시한 ‘문경새재 과거길 달빛사랑여행’ 종합평가 보고회를 가졌다. 보고회에서는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월 2회, 총 14회에 걸친 행사에 2913명의 관광객이 참가했으며, 이 가운데 90% 이상이 서울 등 수도권 관광객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직·간접적 수입도 새재도립공원 입장료 등 700여만원을 비롯해 농·특산품 판매 등 모두 1억 3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행사가 중앙·지방 언론 및 여행잡지 등에 30여회 보도되는 등 ‘관광문경’ 홍보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옛 과거길을 재현한 달빛사랑여행상품은 주먹밥 만들어 먹기, 짚신 신고 옛길 걷기, 음악공연, 주막 등 문화탐방 체험으로 구성됐다. 경주시도 지난 4월22일부터 10월28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총 21회에 걸쳐 ‘안압지 상설공연’을 실시했다. 신라천년 만파식적, 동편제 장월중선류, 무용, 판소리, 대중가요 등을 무료 관람할 수 있는 공연에는 모두 10만여명이 몰렸다. 또 같은 시기에 월정교·최씨고택·계림·첨성대·분황사 등 경주지역 유명 관광지를 12차례에 걸쳐 돌아본 ‘달빛 신라역사기행’에도 국내외 관광객 8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로 인한 직·간접 수입은 수십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영덕군이 올 들어 11월까지 음력 보름을 전후로 일몰시간에 맞춰 모두 9회에 걸쳐 실시한 ‘동해안 달맞이 야간산행’에도 1만 8000여명이 참가,5억원 이상의 관광수입을 올렸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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