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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학술추진위」 3개대생 연행/어제 임진각서

    경희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 3개대 「통일학술제추진위원회」 학생대표 4명은 24일 상오10시30분쯤 당국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 대표들과 판문점에서 1차 실무회담을 갖기 위해 경희대를 출발해 판문점으로 가다 임진각에서 경찰에 모두 연행됐다.
  • “남측서 무례한 손님 접대”/평양 중앙방송,「통일축구」 취재기

    ◎“환영나온 시민 골목으로 끌고 가고/어용언론선 평양회담 일제히 비방” 북한은 23일 제2차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해 한국측이 서울을 방문한 북측 선수단에게 무례한 손님대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용신문」을 동원해 북한을 비방ㆍ중상하는 등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저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7시 「보도」(뉴스)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할 북측 선수단 일행이 판문점에서 서울에 오는 동안 도로양편에 수많은 탱크들을 배치했으며 전민련과 전대협의 환영행사를 저지하고 북측 선수단을 환영하려는 시민들을 요원들이 골목 안으로 끌고 가는 등 무례한 손님대접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21일 저녁 김우중 한국축구협 회장이 주최한 만남에 대해서도 북측 선수들을 생소한 사람들 속에 앉힘으로써 그들에게 정신적 압박감을 주었다고 비난했다. 북한 중앙방송의 주요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우리 축구선수단과 그 일행은 첫 시작부터 불미스러운 일에 부딪쳐 불쾌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판문점에서부터 서울에 이르는 근 2백리의 구간에는 남녘 겨레의 심정을 반영한 환영구호들도 적지 않게 걸려있고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각 계층 인민들의 모습도 보였으나 이에 정반대되게 불신과 반목을 고취하는 일들도 우리 선수단의 면전에서 벌어져 그들의 가슴마다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무엇보다도 우리 선수단과 일행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임진각으로부터 문산에 이르는 구간에서 「반갑습니다. 북에서 오신 선수단 여러분 한핏줄 한겨레」라고 쓴 환영구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도로 양편에 수많은 탱크들이 포신을 쳐든 채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들이 섬뜩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우리 공화국 북반부의 근로자들과 체육인들은 지난 9일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위하여 평양을 찾은 남녘 축구선수들을 통일의 사절로 맞이하였고 혈육의 정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우리가 제1라디오의 보도를 통해 경찰이 삼송리검문소 등지에서 임진각으로 가려던 범민족대회추진본부 환영단과 학생들을 가로 막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선수단을 환영하려는 시민들을 골목 안으로 끌어가는 요원들의 모습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눈에 띄곤했는데 이런 광경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가슴들은 분노와 비감에 휩싸였다. 반목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예절없는 손님대접은 21일 저녁에 있었던 남측 축구협회 회장의 만찬석상에서도 드러났다. 이날 남측은 우리의 나어린 선수들의 좌석을 상대방의 선수들이 아닌 사람들 속에 정해 놓았다. 특히 우리를 불쾌하게 하다 못해 격분까지 자아내게 한 것은 반목을 조성하는 자들이 우리 선수단의 도착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용신문ㆍ방송들로 하여금 우리를 비방ㆍ중상하는 포문을 열게 한 것이다. 어용신문들에 평양시내 5만명 청년학생들이 출연하는 대집단체조 「일심단결」을 시비하는 글이 실렸는가 하면 어용언론인들은 학생소년궁전에 어린 소조원들이 평화를 절규하고 반핵구호를 외친 것도 시비의 대상으로 삼고 임수경 학생의 석방을 요구해 나선 것도시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 11월 중순 서울서 통일음악회 갖자/윤이상씨 제의

    【평양=공동취재단】 분단의 벽을 넘어 처음으로 남북음악인들이 자리를 같이한 범민족통일음악회가 23일 하오3시 평양 2ㆍ8문화회관에서 서울전통예술단을 비롯한 국내외 15개 단체연주단과 평양시민 6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폐막식을 가짐으로써 5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에앞서 윤이상 준비위원장은 이날하오 윤이상음악연구소에서 가진 남측기자단과의 회견에서 11월중순쯤 서울에서 남북민속음악인들이 참가하는 통일민족음악회를 갖자고 제의했다. 한편 서울전통예술단은 24일 정오쯤 판문점을 거쳐 귀환한다.
  • 남북 축구 1­0 승리/북한선수단 내일 평양 귀환

    역사적인 남북통일축구대회 2차전인 서울경기가 23일 하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막,한국이 우세를 보인 끝에 1­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이날 전반 17분 만에 얻은 프리킥을 구상범이 센터링하자 황선홍이 헤딩으로 골문을 열었다. 북한은 후반 들어 실점만회를 위해 총격전을 폈으나 득점하지 못했다. 이로써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통일축구대회 전적은 1승1패로 균형을 이루었으며 역대 대표팀간의 전적에서는 한국이 4승1무1패로 계속 우세를 지키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는 8만여 관중이 입장,통일을 향한 뜨거운 열기로 뒤덮였으며 양측 선수들은 승부를 초월해 멋진 기량으로 보답했다. 북한선수단은 방한 4일째인 24일에는 대우자동차와 용인 자연농원을 돌아보는 등 서울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보내고 25일 상오 10시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을 출발,낮 12시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간다.
  • “서울시민의 환영 적어 실망”/로동신문 리길성 기자(인터뷰)

    ◎“통일분위기 위해 체제비판 말아야” 서울체류 이틀째인 22일 밤 북측 선수단 일행은 첫날과는 달리 숙소인 워커힐호텔 1층 로비에 내려와 우리측 기자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등 다소 여유있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로동신문 리길성 기자는 직접 우리측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인터뷰에 응했다. 리길성은 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북측의 엘리트로 10여년 이상 남북대화를 취재해 우리측의 사회분위기를 잘알고 있는 인물이다. 다음은 리길성과의 일문일답. ­서울방문은 몇번째인가. ▲85년 고향방문단 교류와 지난 9월 남북총리회담을 비롯,여러 번 된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열리는 각종 회담을 취재한 적이 많아 서울사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번 방문시 특별히 느낀 소감은. ▲별다른 소감은 없다. 서울시민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적은 것 같다. ­현재 남북교류 분위기는. ▲45년 이상 쌓여온 대결의식과 적대감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수 있겠는가.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남측의언론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번 우리측의 서울방문과 때맞춰 남측의 신문 방송 등 모든 매체가 일제히 우리측을 비방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다. ▲틈만 나면 서로를 비방해 온 지금까지의 대결의식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남북통일축구가 통일에 얼마나 기여하리라고 보나. ▲체육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하나씩 결실을 맺는다면 통일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끝으로 남측에 특별히 주문할 점이 있다면. ▲우리 인민들의 유일적 체제에 대한 신념은 철석같다. 통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비판은 있어서는 안된다.
  • 「겨레의 번영」 함께 노래할 그날이/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를 보고…

    받아 놓은 날이 쾌청할 때 우리는 그것을 길조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를 하기 위해 받아 놓은 날이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는 것은 통일과 연관되어 어떠 상서로움이 뻗칠 징조인 것만 같다.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경기장에 갔다. 그런데 그때,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 떠올랐다. 한국전쟁으로 더없이 불안해 있던 집안 어른들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설마 저 애들이 클 때까진 화평한 시대가 오겠지』 그때 어른들은 한숨과 함께 곧잘 이런 말씀들을 내뱉곤 하셨다. 그러나 그 「설마」는 이루어지지 않고 40년이 흘렀다. 나는 그때 그 어른들을 흉내 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우리 애들이 장성하게 되면 판문점으로 해서 금강산도 구경하고 백두산도 오르겠지』 어찌 이러한 바람이 나뿐이겠는가. 그것은 잠실경기장을 메운 모두의 마음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기장에 이렇듯 많은 인파가 몰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3시 정각. 스피커에서 선수입장을 알리자 요란한 박수소리가 경기장을 뒤흔들어 댔다. 고적대를 앞세우고남북의 선수단이 똑같이 입장했다. 양쪽의 선수들이 두 줄로 서서 어깨를 붙이고 입장한 것이다.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가 아니었다. 남쪽 선수는 빨간 유니폼,북쪽 선수는 하얀 유니폼으로 나란히 입장한 것이다. 그것은 예기치 못했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그 예기치 못한 선수입장 장면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손뼉을 쳤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힘껏 손뼉을 쳤다. 이윽고 경기가 진행됐고 경기 초반에 북쪽의 오영남 선수에게 길기철 주심이 황색 카드를 내보이는 일이 벌어졌다. 룰에 어긋난 태클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정한 판정임을 모를 리 없는 많은 관중들이 「우우」하고 야유를 보냈다. 카드까지 꺼낼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본다면 그것은 야유가 아니라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었다. 아마 길기철 주심도 그렇게 들었으리라. 잠깐잠깐 경기가 중단될 때마다 남북의 선수들이 사이좋게 물을 나눠 마시는 장면도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북쪽의 슛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의모습 또한 아름다운 것이었다. 전ㆍ후반의 경기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결국은 전반전 17분 만에 남쪽의 황선홍 선수가 터뜨린 한골로 승부가 가려졌다. 그러나 1 대 0의 스코어 그 자체로 기뻐하는 관중들은 없는 듯했다. 이기면 뭣하고 지면 또 어떠냐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종목의 경기들도 남과 북을 오가며 벌일 일이요 또 운동경기 말고도 무슨 명목이든 내세워 그렇게 남쪽사람과 북쪽사람들이 오고 가는 일이 잦아지게 됐으면 하는 마음들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의 축구경기는 관중들을 열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관중들의 마음 탓이겠는가. 양쪽의 선수들,양쪽의 임원들,양쪽의 취재진 그 모두의 가슴 깊게 새겨진 통일의 염원 탓이 아니겠는가. 주심의 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를 마친 양쪽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섰다. 그리고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빨간 유니폼과 하얀 유니폼으로 나뉘어졌던 두 팀이 한 팀이 되고 말았다. 적백색 유니폼을 입은 한 팀이 된것이었다. 각 선수가 한 몸에 빨간 유니폼과 흰 유니폼을 입은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흰 아랫도리에 빨간 윗도리를 입은 선수가 북쪽에서 온 선수이고 빨간 팬티에 흰 웃도리를 입은 선수가 남쪽의 선수였지만 서로 옷을 바꿔 입은 선수들은 그렇게 나눌 필요야 없지 않느냐며 나는 나를 나무랐다. 나도 모르게 내 눈이 빨간 팬티와 흰 팬티를 가리어 보려했기 때문이다. 누가 남쪽이든 또 누가 북쪽이든 우리는 원래 단군의 한 자손으로 동포가 아닌가. 그 동포가 서로 옷을 바꾸어 입은 동포요 또 서로 힘찬 포옹을 나눈 동포가 아닌가. 그 동포들은 한 무리를 지어 경기장을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동포인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이러한 선수들과 관중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는 노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 노래의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독립을 염원하던 어두웠던 때 지어진 노랫말인 것이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분단의 뼈아픔을 겪으며 45년의 세월을 허송세월 해 와야만 했던 우리는 그 노랫말의 「독립」을 「통일」로 바꿔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소원 「통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그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번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북남통일축구 평양경기」가 열렸던 모란봉 5ㆍ1경기장을 끼고 흐르는 대동강과 「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두 강물이 서해에서 서로 만나 한 바닷물이 되듯 우리도 그렇게 만나 바닷물처럼 큰 힘을 지닌 겨레여야만 된다. 경기장을 나와 걷다가 나는 잠실고수부지가 보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의 축구경기가 계획되기 이전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그곳을 통일기원 유등제의 장소로 정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등제를 올리려고 받아 놓은 날이 공교롭게도 바로 오늘,남북축구경기가 벌어진 그날이요 또 장소가 바로 그곳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실고수부지를 내려다 보며 합장을 했다. 『우리의 소원은 번영이라고 노랫말이 바뀌어져 불리는 날이 어서 오게 해 주십사』고.
  • 강총리,평양서 누이동생 만났다/총리회담때

    ◎홍통일원 누나ㆍ임대변인은 두 동생 상봉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 3명이 2차 평양회담을 끝내고 떠나던 날인 지난19일 새벽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난것으로 밝혀졌다. 이진 총리비서실장은 22일상오 『강총리는 지난19일 상오1시 백화원초대소에서 평양에 살고 있는 누이동생 강영순씨(64)와 그의 아들(30대)을 50여분동안 만났다』고 발표했다. 이실장은 『지난8일과 12일 등 두차례에 걸친 양측 연락관 접촉에서 우리측은 대표단이든 수행원이든간에 이번 2차회담 기간중에는 아무도 이산가족을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회담기간 중에도 북한측이 강총리의 가족상봉을 적극 알선했으나 사양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북한측은 강총리의 북에 있는 가족들이 인도적인 견지에서 만나고 싶어한다는 최종적인 연락을 해왔고 자칫 안만났을 경우 역선전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어 만났다』고 말했다. 홍성철 통일원장관과 임동원 외무부외교안보연구원장도 강총리와 거의 같은 시간에 각각 숙소에서 1시간정도 북한의가족들을 상봉했는데 홍장관은 누나 경애씨(72)와 누나의 아들 김광섭씨(50)를,임원장은 누이동생 동연씨(54ㆍ원산거주)와 남동생 동진씨(41ㆍ트럭운전사)를 만났다. 정부가 강총리 등 우리 대표단의 북한가족 상봉사실을 이날 뒤늦게 공개한 것은 당시 북한측이 보안유지를 약속했으나 남북통일축구대회 참석차 21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온 북한선수단을 수행한 기자들이 이 사실을 은밀히 언론에 유표했기 때문이라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밝혔다.
  • 외언내언

    91년에 IPU가 평양에서 열리면 그 때에는 『서울에서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자』는 결의를 한 그룹이 생겼다. 북한이 91년 IPU총회를 평양에서 열겠다고 신청한 것에 대해 IPU의 서유럽국가 그룹인 「12플러스」 소속의원들이 그런 의결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더 늦기 전에 역사적 현장을 통과해 보자』는 관광 호기심의 발동처럼도 보인다. ◆아마 그들에게는 판문점이 「체크포인트 찰리」쯤에 견주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의 심각한 비극의 현장을 호기심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일 만한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12플러스」 그룹이 한 것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좀더 생겨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순발력 있게 판문점을 「선전」해 온 솜씨는 북한측이 한걸음 앞섰었다. 최근만 해도 북한에서는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장벽을 제거하자』는 엉뚱한 소리를 내밀어 남쪽의 뒤통수를 쳤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막힌 선전술이었다. 다음으로 지난 7월에는 『남북한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기 위해 판문점의 북측지역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판문점을 잘 모르는 밖의 시각으로 보면 이 역시 그럴 듯해 보이는 「안타」다. ◆그러나 일부 IPU 소속의 그룹이 한 것처럼 국제사회인들이 그들 수준의 호기심으로 판문점통과에 흥미를 보이는 일이 늘어나면 낭패스런 일이 북측에 생길 것이다. 있지도 않은 콘크리트장벽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고,북측 판문점의 개방이라는 것이 북한 국토의 자유왕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허구라는 것도 드러날 것이다. ◆선전하기에 재미를 들였다가 감당하기 난처한 사태가 생기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똑같이 진달래꽃 조화가지를 들고 통일을 외치게 하는 「동원된 군중」이 판문점에서 축구팀을 환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글프고 안쓰런 생각이 북받쳐 올랐다. 이런 모양을 보면서 공허한 수사를 나열하는 일도 이제는 차츰 쑥스런 느낌이 든다.
  • 권기진특파원 총리회담 취재기(90년 가을의 평양:하)

    ◎“우리식대로”… 개방물결 막기 안간힘/말마다 “위대한 수령”… 「주체교」에 도취/곳곳 거대한 건물… 시민도 「전시용」 역할 평양은 북한이 작심하고 건설한 거대한 전시장이었다. 고층의 빌딩과 살림집(아파트)ㆍ인문문화궁전ㆍ천리마동상ㆍ개선문 등 각종 규모있는 시설들은 하나같이 「위대한 수령」 교시에 따라 조립됐다는 것이다. 특히 높이 1백70m의 주체사상탑,1백5층의 유경호텔(현재 골조만 완공된 채 공사가 중단),15만명 수용의 5ㆍ1경기장 등은 세계 최고ㆍ최대 규모라는 안내원들의 자랑이다. 이러한 시설들과 널직한 도로가 조화를 이뤄 평양은 겉보기가 잘 정돈돼 있었다. 그러나 고층살림집의 외장이 매끄럽지 못하는 등 전체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졌다. 밤에는 중심가에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켜져 있었으나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전시장에서 김일성 주석의 연출에 따라 행동하는 충직한 「인민배우」 같았다. 도시전체 분위기는 이 때문에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개성에서 평양사이의 농촌모습과 평양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집들은 대부분 단층 기와집이었고 일부 살림집(아파트)은 3∼5층 규모로 내외장 처리가 잘돼 있지 않았다.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는데 안내원들은 전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나무를 심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자 『혁명과업 수행에 몰두하다 보니 나무를 심을 수가 없었다』고 답한다. 추수가 끝난 논들은 대부분 방치돼 있었는데 땅힘을 돋우기 위해 휴작한다는 얘기였다. 경지나 농수로 정리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것 같았다. 시골길에는 인적이 뜸했고 통행차량도 별로 없었다. 판문점에서 개성까지는 2차선 고속도로가 훤히 뚫려 있었다. 안내원은 현재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는 노면공사가 끝났으며 마무리작업 중이라고 알려준다. 평양의 대규모 시설들을 보면서 기자는 다른 산업수준들은 어떨까고 생각해봤다. 그러나 거리의 낡은 트럭이나 숙소의 가전제품들을 보고 자동차ㆍ철강ㆍ전자산업 등은 낙후됐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숙소에 비치된 TV와 냉장고ㆍ1회용 면도칼 등도 모두 일제였다. 지금 평양전시장은 온통 김일성숭배와 혁명구호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주민들은 동구권의 개방물결에 주체사상으로 대응,「우리 식대로 산다」고 외치고 있다. 동구권 변혁은 지도자들이 부패해 인민의 배반을 당했기 때문에 일어났지만 북조선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이 혁명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지상낙원」을 이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가 계승,혁명과업의 완수를 지향하고 있다며 김일성 부자의 세습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한국과 수교한 소련에 대해서는 심한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그들이 없어도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다. 백화원 초대소 접대원은 『소련은 미제가 제공한 달러를 남조선을 통해 받고 동맹국을 배반한 나라』라고 매섭게 성토했다. 어떤 행인은 소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통일과업을 위해 와서 왜 그런 얘기만 하느냐. 우리는 의리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소련의 배신에 눈하나 깜짝 않습네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아갑네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본과의 수교움직임에 대해선 『일본이 과거잘못을 사과했기 때문에 용서한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있었다. 『과거 잘못했더라도 진실로 사과하면 받아줄 수 있다. 흰 기를 들고 왔는 데 박대할 수 있느냐』는 외교부의 한 부국장의 얘기였다. 평양주민들은 세상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최근의 북경아시안게임이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최후 등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당고위간부 등 극히 일부는 그런대로 바깥소식을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일반 주민들은 너무나 깜깜했다. 노동신문ㆍ민주조선ㆍ통일신보 같은 신문과 중앙 TV가 있으나 바깥소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는 실정. 라디오와 TV는 사이클과 채널이 고정돼 그들 방송만 듣도록 돼 있었다. 지난 18일 아침 기자는 백화원초대소 정원에서 혼자 서울서 갖고 갔던 라디오로 그쪽 방송을 듣고 있었다. 어느 틈에 한 안내원이 달려와 『뭘 듣고 있지요』라며 라디오를 쳐다보다가 평양방송임을 알고 멋적게 웃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평양주재 외신기자는 『그들은 문을 열면 체제가 붕괴된다는 위기의식에서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외부차단으로 가능한 것 같습니다』고 전해준다. 해외방송은 청취가 불가능해 혹 접시 안테나라도 설치하면 웬일인지 그날로 고장이 난다는 얘기였까. 그는 이곳에서 외국방송을 청취하다 발각되면 8∼12년 징역을 살 정도로 중형에 처해진다고 알려줬다. 이같이 외부세계와 철저히 벽을 쌓는 반면 내부적으론 통일을 체제결속 이념으로 활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았다. 「통일원무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는 한겨레」 「이제 더 못참아」 「조선은 하나다」는 등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책자를 발간하고 각종 공연 때 이들 노래를 제창토록 하고 있다. 「해방의 감격에 춤추던 강산이/외세에 분렬된 기나긴 반세기/아 이젠 더 못참아/외세를 내몰고 통일을 이루자」 「반만년의 피줄을 이어온 우리는 하나의 민족/백두산의 줄기가 내리여 이땅은 하나의 강토/갈라져 몇해더냐 헤어져 몇해더냐/겨레여 나서라 통일의 한 길로 조선은 하나다」­통일가요인 「이젠 더 못참아」와 「조선은 하나다」의 1절 가사다. 이같은 노래들은 『90년대를 통일의 연대로 빛내이자』는 각종 통일구호와 함께 북쪽을 「통일열병」에 들뜨도록 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적 속셈을 읽고 우리의 순수한 통일염원을 생각할 때 가슴만 답답했다. 그렇더라도 계속 두드려야 할 통일의 문이지 않는가. 그 언젠가는 폐쇄의 벽에 틈새가 생겨 민주화와 자유화바람이 솔솔 스며들 날이 오겠지 기대해 본다.
  • 북한축구단 서울서 첫밤/어제 판문점 경유 도착

    ◎내일 통일축구 2차 경기 【판문점=정태화 기자】 오는 23일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릴 남북통일축구 서울대회에 참가할 북한선수단 78명이 21일 상오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도착했다. 김유순 북한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남녀축구선수단과 임원,그리고 취재단 22명은 이날 상오 9시55분 판문점 남북 분계선을 도보로 통과,우리측에서 마중나온 김용균 체육부 차관,장충식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오완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체육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았다. 북한선수단은 이어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30여분간 우리측 임원들과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한 뒤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로 출발했다. 이날 북한선수들은 남녀 모두 정장차림의 말쑥한 모습이었으나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김유순 위원장은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발표한 도착성명을 통해 『조국통일에 대한 북남 체육인들과 온겨레의 숙원을 안고 서울에 도착했다』고 전제,『유일팀을 위한 북남체육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통일축구경기가 성사돼 북과 남의 체육인들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게 된 것은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라』며서 『이번 통일축구경기가 민족적 화해와 조국통일에 기여하도록 성의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선수단은 하오 4시 숙소를 출발,잠실주경기장을 2시간 동안 답사하고 하오 7시에는 힐튼호텔에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서울의 첫밤을 보냈다.
  • “통일축구가 통일축제 되길 바란다”/북한 축구팀 서울 오던 날

    ◎연도 시민 열렬한 환영에 손들어 답례/만찬장서 「고향이 봄」ㆍ「우리의 소원」 합창/“평양냉면 맛있었다” “남쪽은 양 적지 않나” ▷판문점 도착◁ ○…김유순 위원장은 평화의 집에 도착한 뒤 별도의 도착성명은 발표하지 않고 우리측 김용균 체육부 차관과 장충식 KOC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곧바로 휴식처인 평화의 집으로 직행. 김 위원장은 『남측 땅을 밟고 보니 한 핏줄 한 조선땅임을 실감했다』고 말문을 연 뒤 『어떻게 갈라져 살겠느냐,빨리 같이 살아야겠다』면서 『통일축구가 통일축제로 되기를 바란다』고 방한 소감을 피력. ○…장충식 KOC 부위원장은 『남북축구경기 동안 북측 국민들이 보여준 열렬한 성원에 감사한다』면서 인사말을 꺼내자 김유순 북측 위원장은 『같은 식구들인데 응당 그렇게 해야죠』라며 화답. 또 김형진 부위원장은 『환영인파를 조직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며 『통일축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 확신해 통일될 날이 당겨진 것 같다』며 응수. ○“축구표 파느냐” 질문 ○…김형진 부위원장은 『북남 축구 서울경기의 축구표를 파느냐』고 질문. 이에 대해 우리측 체육회담 대표인 이학래 한양대 교수가 『3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말하자 김형진 씨는 『표가 매진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장에 온 관중들의 열기가 문제 아니냐』며 되받기도. 이어 평양경기에 참가했던 이학래 대표는 『평양에서 먹은 옥류관 냉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김유순 위원장과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남측 냉면맛을 한번 보라』고 권유. 이에 대해 김형진 부위원장은 『우리측은 대접용이니까 양이 많겠지만 남쪽은 장사를 하다보니 양이 적지 않겠느냐』고 농담. 이를 지켜보던 오완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두 분 위원장이 맛 보시겠다면 평양 때와 마찬가지로 큰 그릇에 양을 듬뿍 넣어 주도록 하겠다』며 맞받아치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이날 북한측 기자단은 김용균 체육부 차관에게 『평양축구를 마치고 돌아간 남측 선수들을 남측 국민들이 환영해주지 않아 섭섭했다는데 왜 환영을 해주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평양경기를 TV로생중계했고 남측도 생중계할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며 질문공세를 펴기도. 김 차관은 이에 대해 『TV중계는 북측과 남측의 중계방송 방식이 달라 못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축구단은 평양에서 돌아온 즉시 유스호스텔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했다』며 어리둥절한 표정. ○“최순호 선수 최우수” ○…20명으로 구성된 북한 남자 축구팀은 회색 싱글차림으로 비교적 단정한 모습. 지난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던 탁영빈 선수는 2차전에 임하는 소감에 대해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남북 축구대결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려는 것이다』라고 피력. 탁 선수는 또 『한국 선수중 누가 제일 실력이 낫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순호 선수의 활약이 가장 좋다』고 대답. 김광민 선수는 『2차전에 대비한 특별한 훈련은 안했다』고 밝히고 『우리는 승부에 관계없이 통일을 위해 싸우겠다』고 통일을 거듭 강조. 북한 선수중 유일한 조총련계 동포로 부모가 일본에 살고 있다고 밝힌 김종성 선수는 『부모 고향은 충남 부여이고고모가 서울에 살고 있다』고 말했으나 고모이름은 모른다고 언급. 한 선수는 또 평양에서 페널티킥이 나온 데 대해 『텃세였다.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볼을 바깥으로 차버린 남조선 골키퍼의 행동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연도◁ ○…북측 대표단 78명은 승용차 18대와 버스 7대 등에 나누어 타고 판문점을 거쳐 상오 10시55분쯤 자유의 다리를 지니 임진각으로 넘어왔다. 이날 임진각에는 경찰이 일반차량 출입을 통제한 탓에 환영객은 많지 않았으며 관광객과 구경나온 이웃 주민 등 1백50여명 만이 망배단 등에서 북측 대표단을 맞았다. 이들은 북측 임원과 남녀 선수들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환영했으며 북측 대표들도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북측 대표단은 통일로∼독립문∼여의도∼올림픽대로 등을 거쳐 임진각을 통과한지 1시간20분 만인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도착,여장을 풀었다. 북측 대표단 차량행렬이 통일로를 지나 서울시내로 접어들면서부터 환영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불광동을 지나자 거리에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찰은 이날 학생시위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통일로 곳곳에 경찰 4백여명을 배치하는 한편 경기도 고양군 삼송리 검문소 등에서 검문ㆍ검색을 했다. ○꽃다발 세례에 “상기” ▷숙소◁ ○…북한 선수단은 예정보다 20여분 늦은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도착했다. 45명의 대원여고 고적대의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을 선두로 대형 버스에서 내린 북한 선수단 일행은 미녀모델과 연예인들의 꽃다발 세례를 받고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날 호텔에는 코미디언 이주일 씨를 비롯한 가수 탤런트 모델 등 연예인 80여명이 상오 11시부터 꽃다발을 들고 북한 선수들을 기다렸다. 가수 김태화 정훈희 부부와 진미령,국악인 이호연 씨 등은 『북한 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에 잠까지 설치고 나왔다. 웬지 가슴이 설렌다』고 소감을 피력. ○공정경기 특별주문 ○…박종환 한국 남자팀 감독은 『안방에서 손님을 맞는 주인 입장에서 모든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말하면서 『지난 11일 평양 5ㆍ1경기장에서 열렸던 1차대회와 같은 어이없는 판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 박 감독은 이번 서울대회 주심을 맡은 길기철 씨와 미리 만나 승부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고. 박 감독은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팀이 실력이나 매너에서 모두 우위에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겠다고 2차대회에 임하는 소감을 피력. ○…북한 선수단은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전체 6백37개의 객실중 64개를 사용. 김유순 단장은 17층 1백20평짜리 다이아몬드 룸에 묵는데 하루 숙박료가 85만원에 이르는 초호화 룸. 임원들은 16층 17개 객실에 나뉘어 묵게 되며 선수들은 15층 40개 객실에 분산투숙했다. ○“잠실 스타디움 훌륭” ▷경기장 답사◁ ○…북한 남녀 선수단 54명은 이날 하오 4시13분에 23일 경기가 펼쳐질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 남자는 메인스타디움에서,여자는 보조구장에서 각각 40여분 동안 몸을 풀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장내에는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의 음악이 울려 퍼졌으며 동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서울올림픽 개ㆍ폐회식과 각종 경기 장면 등으로 편집된 「서울올림픽 하이라이트」가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명동찬 남자팀 감독은 『잠실올림픽경기장이 북한의 5ㆍ1경기장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잔디상태가 아주 좋고 경기장이 아담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마중나와 주경기장 2층에서부터 그라운드를 밟을 때까지 북측 선수들과 한 사람씩 짝을 지어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앞서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 등 임원 일행은 선수단 도착에 앞서 3시25분쯤 경기장에 도착해 이병규 관리소장의 안내로 경기장ㆍ선수실 등을 둘러본 뒤 외빈실에서 30여분 동안 휴식하며 환담. 김유순 위원장은 색깔로 구분한 잠실경기장이 대단히 아름답다며 『남북이 하루빨리 통일이 돼 평양의 5ㆍ1경기장과 서울의 잠실 주경기장보다 더 큰 50만 수용의 경기장을 지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날 경기장에는 지난 평양경기 때 부친을 상봉한 이회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나와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을 반겼다. ▷만찬◁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 주최로 이날 밤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환영만찬회에는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등 남북 고위인사와 남북 남녀선수,그리고 초청인사 등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김우중 회장은 이날 『이번 통일축구 서울경기로 민족통일의 기반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하는 것으로 환영 인사말을 대신했고 김유순 위원장은 『남북통일축구경기가 통일운동사에 아로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역시 건배를 유도. 주빈석에는 정동성 장관ㆍ김유순 위원장ㆍ김우중 회장ㆍ김형진 북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축구원로 김화집옹 등 10명이 앉았으며 나머지 27개 테이블에도 남북 선수ㆍ초청인사들이 8∼10명씩 섞여 앉아 평양경기와 서울의 첫인상 등을 화제로 삼아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저녁식사 메뉴로는 거위간ㆍ모듬생선회와 안심스테이크 등 8가지 코스인 양식으로 준비됐는데 북측 참석자들 대부분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호텔측은 지난번 총리회담 때 북측 인사들이 즐기던 곡주인 「문배주」를 포도주와 함께 내놓았다. 식사를 마친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은 만찬장 출입구 맞은편 무대에서 펼쳐진 테너 엄정행ㆍ소프라노 백남옥 씨의 가곡공연을 관람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남북 선수 섞여 앉아 공연 마지막에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합창되자 참석자 모두가 일어서 따라 부르기도. 김우중 회장은 북한 김유순 위원장에게 TV와 비디오 세트를 선물했으며 김 위원장은 미리 준비해온 인삼불로주와 대평곡주를 김 회장에게 전달했다. ○…북한 기자들중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인 리충국 중앙통신논설위원은 만찬이 끝난 뒤 『양식으로 차린 음식이 별로 입에 맞지 않았다』고 말하고 『호텔측에서는 정성을 다한 것 같으나 한식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오 9시30분쯤 만찬장인 힐튼호텔을 출발한 북한 선수단은 10시10분 숙소인 워키힐호텔에 도착,때마침 본관 지하1층 가야금홀에서 쇼를 관람하고 나오던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북한 선수들은 시민들이 『반갑습니다』라며 박수로 맞이하자 여유있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라고 답례. 북한 선수들은 이어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 서울에서의 첫 잠자리에 들었다.
  • 내년 IPU총회 평양 개최땐 판문점통해 입북 추진

    ◎서유럽 12개국 대표 결의 【푼타 델 에스테(우루과이) 연합】 북한이 91년 제85차 IPU(국제의회연맹)총회(3,4월쯤 개최전망)의 평양 개최를 신청한 것과 관련,12개 서유럽국가그룹인 「12플러스」 소속국들은 18일 하오(현지시간) 평양총회가 열리면 서울에서 판문점을 거쳐 입북토록 하자고 결의했다.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12플러스」 소속국 IPU대표단들은 이날 별도회의를 갖고 내년 봄 평양총회가 열리기 사흘 전에 서울에서 「12플러스」회의를 가진 후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가도록 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들 대표단은 북한측이 평양총회 개최와 관련,아무런 전제조건도 제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만큼 북한측에 대해 서울∼판문점∼평양행이 가능토록 해줄 것을 요구키로 결정했다.
  • 「남북 통일학술제」 제의/경희대등 3개대생

    ◎“24일 판문점서 실무회담 갖자”/통일원서도 북한학생 초청 긍정검토 경희대ㆍ한국외국어대ㆍ한양대 등 3개대학 학생대표들은 20일 『오는 30일부터 3일동안 경희대 등에서 열 예정인 「통일학술제」에 북한대학생들을 초청하기 위해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측에 24일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갖자고 제의한다』고 밝혔다. 학생대표들은 이를 위해 오는22일 국토통일원에 북한주민 접촉신청서를 제출키로 했다. 한양대 학생들은 오는30일 북한의 김책공과대학이나 김형직사범대학 학생들을 초청해 「통일학술제」를,한국외국어대는 31일 평양외국어대 학생들과 「모의유엔총회」를,경희대는 11월1일 남북한의 모든 학생대표들이 참가하는 「통일 대토론회」를 각각 가질 예정이다. 이에대해 통일원측은 『학생들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할 경우 내용을 검토한 뒤 순수하다고 판단될 경우 지난 8월1일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 총리회담 대표단 귀환 스케치

    ◎“3차회담 다리 놓은 셈”… 아쉬운 작별/“주석님” 호칭에 “총리각하”로 응답 강 총리/김일성,노 대통령에 액자등 3가지 선물 보내와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은 19일 하오 3박4일 일정의 평양고위급회담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판문점 도착◁ ○…강영훈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하오 1시28분 북측의 벤츠승용차 8대에 분승해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 앞에 도착. 차에서 내린 대표단은 맨 앞차로 타고왔던 북측의 최봉춘 책임연락관,두번째 차로 강 총리와 같이 온 최우진 북측 대표 등 2명과 2차 고위급회담을 끝내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강 총리는 최 대표 등에게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고 말했고 최 대표 등은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고 정중히 인사. 대표단이 도착한 평화의 집에는 이연택 총무처 장관,김동영 정무장관,송한호 통일원 차관,안치순 총리실 행조실장,이진 총리비서실장 등 우리측 인사들이 일찍부터 나와 영접. 강 총리와 김 장관 등 일행은 평화의 집 1층 응접실에서 15분간김 주석 면담,평양방문 소감 등을 화제로 환담. 김 장관은 『어젯밤 TV에 김 주석과 강 총리께서 만난 장면이 아주 잘 보였다』며 『총리께서 아주 의젓한 모습이었다』며 강 총리를 추켜세우자 강 총리는 자신이 느꼈던 인상을 소개. 강 총리는 『나는 「주석님」이라고 불렀는데 김 주석이 나를 「총리각하」라고 해서 깜짝 놀라 나도 「주석각하」라고 불렀다』며 『김 주석은 매우 건강해 보였고 건강비결을 묻자 「낙천주의」라고 대답하더라』고 소개. 강 총리는 『신문을 보니까 우리 기자가 보낸 방송테이프가 지워졌다는데 어떻게 된거냐』며 관심을 표명. 우리측 대표단의 일원인 김종휘 청와대외교안보보좌관은 『개성서 평양까지가 1백60㎞인데 기차로 3시간50분이나 걸릴 정도여서 북한의 수송능력 상태를 간단히 알 수 있었다』며 나름대로 본 북한사정을 평가. ○…식사를 끝낸 뒤 차석대표인 홍성철 통일원 장관은 『무사히 잘 다녀온 것과 특히 이번에 많은 역할을 해준 중견언론인 여러분들을 위해 술은 없지만 차를 한잔씩 들자』며 건배를 제의. 이에 앞서 하오 2시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위원회 회의실 우리측 지역에서 북측은 무개차(식료품차) 5대를 동원,우리 대표단 일행의 짐과 북한당국의 선물을 우리쪽에 전달. 북측의 선물중에는 김일성 주석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액자 1점과 녹색 포장지로 싼 1m크기와 50㎝크기의 박스 각 1개씩 모두 3가지의 선물이 포함돼 있어 눈길. 북측은 이밖에 우리측 대표단,수행원,기자들을 위해서는 약 1m 크기의 박스 70여개를 준비. ○…이에 앞서 강 총리 등 남측 대표단은 이날 하오 1시10분쯤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 도착,이곳까지 따라온 김광진 북측 대표단 차석대표 등 북측 대표 6명과 작별. 강 총리는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이 바쁜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면서 『2차회담이 3차회담을 위한 교량역할을 한 것으로 믿는다』고 북측 환송단에게 작별인사. 이에 대해 안병수 북측 대변인은 『일을 성사시키려면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말하고 『이런 진통들을 빨리 겪고 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 대표단은 통일각내 응접실에서 북측 대표단과 3박4일간의 평양체류일정을 화제로 10여분간 마지막 환담을 나눈 뒤 통일각을 나와 북측이 마련한 벤츠승용차 8대에 분승해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귀환. 이어 수행원 및 기자단들은 판문각에서 도보로 1백여m 떨어진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을 거쳐 남쪽 지역으로 돌아왔다. ○…수행원중 대표단 전략팀의 일원인 한 당국자는 남측의 공동선언안과 북측의 불가침선언안이 절충되지 못한 데 대해 『불가침선언안은 군사 정치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 우리측의 그것은 교류 협력문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다음 회담에서는 이에 대한 조정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 또다른 고위수행원은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와 관련,『북측이 아직은 기본자세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개별접촉 등을 해본 결과 북한당국은 유엔정책 전환을 위해 북한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북측의 정책수정 가능성을 시사. ▷평양 출발◁ ○…강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상오 8시40분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연형묵 북한 총리로부터 김일성 주석이 노태우 대통령 내외에게 보내는 선물목록을 전달받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3박4일간의 평양체류일정을 마무리. 두 총리는 『오는 12월11일 서울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석별의 악수를 교환. ○…강 총리 등 대표단 7명은 이날 하오 3시50분쯤 정부종합청사에 도착,잠시 휴식을 취한 뒤 4시30분 청와대로 출발. 강 총리는 휴식하는 동안 구내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손질하며 청와대 보고내용을 전달. 강 총리는 이에 앞서 판문점에서 청사로 오는 차중에서 이진 비서실장으로부터 회담기간중 있었던 국내문제에 관한 개략적인 보고를 청취.
  • 대표단 어제 귀환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과 기자 90명이 19일 하오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모두 마치고 판문점을 경유,서울에 돌아왔다. 임동원 우리측 대변인은 판문점 도착성명을 통해 『이번 회담을 통해서 남북간의 상호 이해를 깊이하고 화합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여러 부문에서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새로운 진전』이라고 말하고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이 상호 실체의 인정과 존중 등 남북 관계개선에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상오 9시 기차편으로 평양을 출발,개성과 판문점을 거쳐 이날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 북한의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이날 상오 8시40분 우리측 대표단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강 총리 등 대표단 일행을 환송하며 12월11일 서울 3차회담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
  • 유해판정 중국한약 반입금지/「남보」등 정력ㆍ최음제도

    ◎관세청/청심환등 70종 성분분석 의뢰 앞으로 인체에 해롭거나 성분이 확인되지 않는 중국산 한약재의 국내반입이 전면 금지된다. 이수휴 관세청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국산 우황청심환과 편자환 등의 중금속 검출설에 언급,최근 보사부에 중국산 한약재 70여종의 성분분석을 의뢰했다고 밝히고 분석 결과 중금속이나 마약 등 유해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 한약재에 대해서는 통관을 전면 불허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청장은 또 유해 한약재와 함께 해구견 활약환 남보 등 중국산 정력ㆍ최음제의 국내 반입도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 관세청은 이와관련,최근 중국교포의 모국방문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내한목적이 친지방문 등의 순수목적에서 투기수단으로 변질돼 엄청난 물량의 한약재를 들여오는 사례가 빈발함에 따라 앞으로 중국교포에 대한 휴대품 통관관리를 엄격히 실시하기로 했다. 모국방문 중국교포수는 87년 3백53명에서 88년 2천77명,89년 8천9백7명으로 각각 늘어났고 올들어 9월말까지는 1만4천5백65명을 기록하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입국한 중국교포의 39%가 한약재 등을 세관에서 유치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관세청은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선수단과 관광객으로부터 모두 9백45건,1억7천여만원어치의 한약재 등을 압류했으며 남북통일축구대회를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국하던 서모선수가 휴대한 우황청심환 3백20알(시가 48만원 상당)을 통관검사에서 적발해 이 가운데 2백70알을 압류한 것으로 밝혀졌다.
  • 판문점 도착성명

    비록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염원과는 달리 뚜렷한 합의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서 남북간의 상호 이해를 깊이하고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여러 부문에서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새로운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 쌍방이 풀어야 할 많은 문제가 쌓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상호 실체의 인정과 존중 등 남북 관계개선에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남북간의 관계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평화와 민족통합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은 상호 불신입니다. 남과 북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며 적대시하는 대결의 상황에서 벗어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밝은 시대를 함께 열어나가야만 합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위하여 남북당국간에 합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공통인식을 넓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북의 총리와 고위당국자들이 만남을 거듭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의정신으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회담의 진전과 함께 남북 관계진전에도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평양총리회담을 보고/정용석 단국대교수ㆍ국제정치

    ◎“남북 한 발짝 물러서야 실마리 풀린다”/북은 구속자 석방 등 내정간섭 중지/남은 「실체인정」에 매달리지 말아야/평양 변화의 징후 없어 지나치게 낙관해선 안돼 평양에서 10월16∼19일 사이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은 냉랭한 분위기와 억지 웃음 속에 열렸다. 초가을 드높은 북녘하늘 아래 3박4일간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특성은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는 남북한 양측이 각기 자기측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되풀이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서울측은 지난 9월의 1차회담에 이어 이번 2차회담에서도 상대방 실체인정을 되풀이 강조하였으며 선교류ㆍ협력­후군사ㆍ정치 조정의 공식을 역설하였다. 이에 반해 평양측은 선군사ㆍ정치해결­후교류ㆍ협력 순서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평양측은 2차회담에서도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처리 원칙을 고수함은 물론이려니와 계속해서 내정간섭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구속자 석방,팀스피리트 중지,유엔가입 반대 등이 그것이다. 저와 같은 남북한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을 지켜보면서 양측의 통일접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통감했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북한의 통일노선은 명백하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폐쇄시킨 채 남한사회만을 개방시켜 「온사회의 주체사상화」 기반을 조성하자는 데 있다. 그같은 북한의 책략은 남북대화에 임하면서 남한의 보안법 철폐,팀스피리트 중지,미군철수,구속자 석방 등을 의제의 우선순위로 올려 놓자고 우기는 데서 알 수 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는 폐쇄시킨 채 남한만을 혁명전략전술에 따라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한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안전을 불안케 하는 요구에 남한쪽은 응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남한은 북한의 사회적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1차에 이어 2차회담에서도 서울측은 통신 통상 통행의 3통 협정체결을 비롯,물자 및 인적 교류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남북한 사회를 동시에 개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요구대로 그들의 사회를 개방할 수 없다. 북한은 보통인간처럼 걸어다니는 김일성을 신으로 받들 정도로 우상화시켜 놓고 있다. 북한은 북경아시안게임에서도 남한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주민들을 왜곡시킬 정도로 폐쇄시켜 놓고 있다. 서울측이 저같은 북한체제를 개방하라는 것은 김일성 권력구조의 붕괴를 간접으로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펄쩍 뛸 것은 그쪽 논리로 보아 당연하다. 여기에 남북한고위급회담은 합리적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 내정에 간섭하는 요구를 중단해야 하고 남한은 북한체제 개방을 촉구하는 것을 유보하며 상호 쉬운 데서부터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60세 이상 이산가족의 고향방문 우선실시,남북정상회담,남북 총리 및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가설,상호비방 중지,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단계적 군비감축 등을 차분하게 실현시켜 가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측으로서는 북한체제의 개방과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의 경제지원 방법도 모색해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북한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만이 통일의 기본요체라는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동서독의 통일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공산체제의 민주화와 개방화 없이 평화통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체제의 개방화와 민주화도 북한동포들의 자유로운 삶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선결요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에 의한 북한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요구는 동족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요 의무이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인도적인 조치다. 또 북한도 언젠가는 대부분의 공산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화되고 개방화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한국은 남북고위급회담의 최종목표는 북한사회의 개방과 민주화에 두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측이 교류ㆍ협력을 계속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형편이 당장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로 체제적 안정을 건드리지 않는 부분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로 2차회담에서 드러난 특색은 서로 상대편 주장을 정면으로공격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1차회담의 경우만 해도 강영훈 총리는 처음 남북 총리간의 회동인만큼 되도록 상대편을 불편하게 몰아붙이는 언행을 삼갔었다. 그러나 연형묵 북한 총리를 비롯한 북한측 대표단은 처음부터 보안법 철폐니 구속자 석방이니 하는 따위의 내정간섭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나섰다. 그런데 이번 2차회담에 임하는 강 총리의 자세는 달랐다. 그는 북한이 『남조선 혁명』 노선을 포기치 않는다면 남북고위급회담의 『원만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고 『화해협력도 결코 이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밖에도 강 총리는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범법자 석방 운운하는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한다면 우리측도 귀측의 내부문제에 대해서 할말이 많다』고 맞섰다. 한편 북한의 연 총리도 남측 제안의 모순성을 장황하게 열거하고 나섰다. 특히 그는 『체육선수들과 음악가들이 판문점을 넘나들게 된 오늘날에 와서까지 방북인사들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2차회담에서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편 제안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양측의 기본입장을 명백하게 노출시켰다. 서울측은 평양측의 「남조선 혁명」노선 포기를 직선적으로 요구하면서 상호 「실체인정」을 촉구하였다. 여기에 반해 연 총리는 『서구라파식의 통일과정이나 동서독식의 통일과정을 모방하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이어 그는 서울측의 실체인정 요구는 『분열을 지속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세번째로 평양회담에 관해 특기할 사항은 북한의 국가주석 겸 노동당 총비서인 김일성과의 만남이다. 강 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단과 김이 10월18일 대좌,악수를 교환한 것이다. 강 총리는 김 주석에게 정상회담을 조속히 실현하자고 제안하였고 김 주석은 총리회담 진전의 성과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답변하는 데 그쳤다. 18일 저녁 TV를 통해 김일성과 강 총리 일행과의 대화장면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김일성 그 사람이 6ㆍ25를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데서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총리와 북한의 국가주석이 만나 통일문제를 얘기했다는 것은 진일보의 새로운 국면으로 보아 무방하다. 네번째로 빼놓을 수 없는 2차회담의 특성으로서는 남한쪽의 「현실인정」 「실체인정」 「체제인정」 등의 되풀이 요구이다. 남북고위급회담에서의 문제점은 북한이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고위급회담에 임하고 있으며 북한 총리가 남한 대통령과 면담했고 남한 총리 또한 북한 국가주석과 회담하였다. 이같은 공식회담 진행과 상대편에 대한 공식 명칭ㆍ호칭은 국제법상 「사실상의 인정」 행위이다. 그런데도 한국측은 회담도중 연거푸 「실체인정」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북한의 재가를 받아내려 애쓰는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사실 실체인정을 받아야 할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은 6ㆍ25 남침을 자행한 침략자요,남한은 국력에 있어서나 수교국수에 있어서나 북한에 훨씬 앞서 있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북한측에 실체를 인정하라고 졸라댄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남북고위급회담의 본질적 문제점은 실체 불인정이 아니라 북한의 남한 내정간섭에 있다. 보안법 철폐로부터 미군철수 등에 이르는 요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실체인정을 북한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정불간섭을 강력히 촉구했어야 옳다. 다음 3차회담에 이점 유의하기 바란다. 다섯번째로 2차 고위급회담과 관련,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항목으로서는 회담성과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해석이다. 평양에서 17일 1차회담이 끝난 뒤 한국측 대표단은 북측의 자세가 전진적 변화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그같은 변화징후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이 회담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든다는 것은 국민적 기대감에 부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결과에 대한 평가는 문자 그대로 실체평가로 그쳐야 한다. 실체 이상 장미빛으로 분석할 때 그것은 진실에 관한 왜곡이요,결과는 국민적 좌절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시라크 파리시장 특별강연

    ◎“한국은 불의 훌륭한 경협파트너”/과학ㆍ기술 등 상호교류 확대 강력히 희망/대소 관계개선은 한국의 경제력이 바탕 지난 86년 프랑스 총리에 취임,사회당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좌우동거정부」를 구성한바 있는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겸 공화국 연합당 총재가 시사저널 초청으로 내한,19일 하오 신라호텔에서 「유럽과 아시아」란 제하의 특별강연을 했다. 다음은 시라크의 강연요지다. 본인은 여러분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을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아 왔습니다. 본인은 다른 기회에 강조했던 것처럼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판문점도 역사의 운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여년동안 지극히 혐오스러운 북한의 동향에 엄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1988년 가장 세계적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러 사회주의국가가 그 후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됐으며 소련조차 얼마전에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 한국의 위치를 증명해 주는 성공사례들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가장 최근의 커먼 웰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평화적 통일안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의 총리가 지난 9월에 이곳 방문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그후 총리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프랑스 기업체들에 생산성과 상업적 박력을 강화시켜주는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균형을 찾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상업적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신의만 있다면 정치적 적대감으로 악화될 수 없습니다. 양측에서 게임의 룰은 존중돼야 하며 몇가지 오해를 없애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유럽공동체(EC)는 「요새」가 아니며 그렇게 될 의사도 없습니다. 반대로 유럽공동체의 소명은 늘 더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규모 단일시장의 논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동맹관계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를 강화시켜주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에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는데 본인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원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의 극동지역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보기에 한국은 신생산업국 가운데 맨앞에 서서 아시아의 축 속에서 균형요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3국들과의 공동행동에 의거하여 신뢰의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본인은 오늘날 프랑스 기업인들이 한국의 두가지 계획에 제출한 내용의 질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더 넓게는 유럽과 아시아는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한 오래된 문명지역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면 어떤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은 한국에서 프랑스문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우리들은 극동의 문화를,특히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김일성,“남북정상회담 기대”/강 총리와 첫 대좌

    ◎“총리회담의 가시적 성과 희망”/노대통령 구두메시지 전달 강 총리/대북 경협제의에 반응 보여 김일성 【평양=권기진 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8일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강력한 기대를 표명했다. 김 주석은 이날 하오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서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강영훈 국무총리 등 남한측 대표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총리회담에서 취급되는 문제는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문제이므로 양측 총리들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빨리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밝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를 표시했다. 김 주석의 이같은 기대 표명과 관련,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북측은 그동안 고위급회담이 잘되면 최고위급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혀왔다』면서 『강 총리의 정상회담 필요성 제기에 대한 의례적인 답변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주석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총리회담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노 대통령을 만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봉이 돼야지 아무런 결과가 없이는 인민들에게 실망을 주니,총리들이 잘 준비하여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열릴 수 있도록 많은 사업을 해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서 강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은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고 이에 대해 김 주석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가 되도록 통일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주석은 고위급회담에 대해 『우리가 제기한 지 10년 만에 개최돼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이번 평양회담에서 비록 문건의 채택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3차회담을 서울에서 열기로 했으니만큼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북의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이날 개별면담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강 총리는 노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조속한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주석은 지난번 서울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연 총리에게 전달한 경협제의 등에대해 어떤 형태의 의사표시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그 내용이 주목된다. 이날 김 주석과의 면담에는 고위급회담 대표 7명과 수행원 3명이 참석했고 면담이 끝난 뒤 대표단은 집무실앞 현관에서 김 주석과 기념촬영을 가졌다. 한편 우리측 대표단은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끝내고 19일 하오 1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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