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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 합의] 南 재발방지 먼저, 北 설비점검 후… ‘준비되면 재가동’ 조항 걸림돌

    개성공단 실무회담에 임하는 남북의 셈법이 달랐는데도 7일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을 담은 합의서가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 양측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이후 한동안 “개성공단 문제 역시 남북 관계의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폈다. 그러나 기계·설비에 위협적인 장마철에 접어들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정부 내에서도 시급히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전자 업체들은 지난 3일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설비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사실상 공단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기업 가운데 37% 이상을 차지하는 기계·설비 업체가 철수하면 개성공단의 존립도 위태로워진다는 점에서 정부의 중압감도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개성공단 재가동에 앞서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실무회담에서는 적절한 절충안을 찾아 개성공단의 불씨를 살리는 데 주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이 재가동에 합의했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특히 합의문 4항의 ‘남과 북은 준비되는 데 따라 재가동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향후 걸림돌이다. 통일부 측은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는 등 조건과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이지만 북측은 ‘설비 점검을 마친 직후’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측은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어 북한의 조기 가동과는 목표가 다르다는 분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에 얼마나 성의 있게 나오느냐에 따라 (재가동)시점도 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회담 초반부터 개성공단의 조기 재가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 우리 측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먼저 꺼낸 반면, 북한은 개성공단 장마철 피해 대책과 관련 기업들의 설비 점검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협의해 나가자고 제의했다. 또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해 “가동할 수 있는 공장부터 운영하자”며 조급한 속내를 드러냈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5만여명의 실직에 따른 재정적 타격도 문제지만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 등이 요구한 대로 서둘러 남북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실무회담 초반 “완제품은 반출 가능하나 원부자재는 재가동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하게 반출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해 원부자재 반출에도 협조키로 했다. 회담 관계자는 “사실상 북측이 남측에서 요구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 합의] 12회 접촉 16시간 밀고당기다 새벽 4시 합의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 합의] 12회 접촉 16시간 밀고당기다 새벽 4시 합의

    개성공단 재가동의 ‘불씨’를 살려낸 남북 당국 간 개성공단 실무회담 합의는 6~7일 이틀에 걸친 16시간의 밤샘 마라톤협상 끝에 이뤄졌다. 남북 대표단은 지난 6일 오전 11시 50분부터 전체회의를 포함해 모두 12차례 접촉을 갖고 마침내 7일 새벽 4시 5분 합의서 채택에 성공했다. 실무회담은 시작부터 통신 설비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쳐 1시간 50분 늦게 시작되는 등 진통 속에 진행됐다. 남북 당국회담이 ‘격’ 문제로 무산되는 등 남북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열린 만큼 양측 간 긴장도 팽팽했다. 북측의 한 회담 관계자는 남측 공동취재단이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에게 회담 진행 계획 등을 묻자 “어디 감히 미리 승인도 안 받고 단장에게 말을 거느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우리 측 회담 관계자에게는 “안내를 잘하라”고 따졌다. 극도로 예민하고 긴장된 분위기는 오전 전체회의 자리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우리 측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북측 박 부총국장은 서로를 ‘회담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며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지만 막상 카메라가 철수한 뒤 본 회담에 들어가자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며 날카롭게 대립했다. 우리 측은 기조발언을 통해 “북측의 일방적 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남북 간 합의는 물론 개성공업지구법도 위반한 것으로 남북 간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의 일방적 조치로 인해 우리 기업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 표명과 재발 방지 문제와 관련해 분명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초반부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북측은 이를 묵묵히 듣고는 재발 방지 등에 대한 언급 없이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완제품 반출은 허용할 수 있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해 원·부자재 반출은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의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에 대비해 원·부자재를 ‘담보’로 잡겠다는 것으로,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북측은 이례적으로 통일각에서 우리 대표단에 점심식사를 제공했지만 남북이 한자리에서 식사하지는 않았다. 오후 8시쯤 3차 수석대표 접촉이 끝난 뒤에는 회담이 난항을 겪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부정적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어 4~6차 접촉이 모두 5~10분 만에 짧게 끝나면서 협상이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양측 수석대표 접촉은 날짜를 바꿔 가며 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리 측은 개성공단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역점을 두면서도 장마철 개성공단 시설 점검과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등 긴급하면서도 비교적 합의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가닥을 잡고 협상에 속도를 높였다. 북측도 ‘개성공단 정상화’라는 대(大)전제에 공감하며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막판 진통 끝에 남북은 4개 항의 합의서를 도출하고 오는 10일 후속 회담까지 약속하며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포토]남북,16시간 마라톤 협상끝 악수

    [포토]남북,16시간 마라톤 협상끝 악수

    남북 당국간실무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왼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7일 오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16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열린 개성공단 실무회담 종료회의에서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 北 여자축구팀 한국 방문 승인

    北 여자축구팀 한국 방문 승인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 36명이 오는 20~2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3동아시아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8일 한국을 방문한다. 통일부는 5일 동아시안컵에 참가하는 북한 여자팀의 한국 방문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대한축구협회가 북한팀 여자선수 21명과 임원 15명의 한국 방문을 승인해 달라며 통일부에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 여자팀은 18일 베이징~인천 간 항공편으로 입국해 21일 한국, 25일 일본, 27일 중국과 각각 경기를 한 뒤 28일 출국할 예정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응원단 41명도 북한 여자팀 응원을 위해 입국할 예정이다. 동아시안컵은 한국·북한·중국·일본·호주 등 11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2~3년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예선을 통과한 한국·북한·중국·일본·호주 등이 참가한다. 한편 정부는 지난 3일 오전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뒤 구조된 북한 주민 3명을 이날 오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정일이 1985년 설립…‘통일각’ 이름 직접 지어

    김정일이 1985년 설립…‘통일각’ 이름 직접 지어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통일각’은 이전에도 각종 남북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1985년 8월 당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에게 제안해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 북쪽 지역에 설립됐으며, 지하 1층·지상 1층에 전체 면적 약 1500㎡ 규모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12월 5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파주 문산~개성 봉동 구간의 화물열차 운행에 필요한 군사보장 합의서를 채택했다. 사망 전날 작성된 김일성 주석의 친필 서명을 새긴 ‘김일성 친필비’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통일각이란 이름은 김 위원장이 직접 작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각은 판문점 남측 지역의 회담용 시설인 ‘평화의 집’과 기능적, 위치적 측면에서 대칭되는 곳으로, 두 건물을 번갈아 가며 회담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지난해 3월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대응 태세 강화를 지시한 이후 북한은 통일각을 비롯해 판문점 북측 지역 부속 건물에 대한 내부 정비 공사를 진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통일각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실무회담 시작…개성공단 문제 논의

    남북 실무회담 시작…개성공단 문제 논의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이 당초 예정시간보다 늦은 6일 오전 11시45분쯤 시작됐다. 남북 실무회담 대표들은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간단한 사진촬영을 한 뒤 곧바로 전체회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수석대표 모두발언을 통해 실무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기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회담은 당초 10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통일각에서 우리 측으로 들어오는 통신선을 점검하는 문제로 1시간 45분 정도 지연됐다. 양측은 회담에서 ▲ 개성공단 시설 및 장비점검 문제 ▲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 ▲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 등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부 “개성공단 정상적 발전돼야”… 고위급 회담 대비해 완급 조절

    정부 “개성공단 정상적 발전돼야”… 고위급 회담 대비해 완급 조절

    정부는 6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마음대로 공단 문을 닫을 수 없도록 재발방지대책을 확약받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새 정부는 상식과 기본이 통하는 새로운 남북관계, 진화된 대북정책이란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면서 “그런 틀 속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하는 방향으로 실무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개성공단은) 상식과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는 공단으로서 정상적으로 발전돼야 한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재발방지대책 수립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3통(통행·통관·통신) 문제까지 거론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회담에서) 합리적이고 원만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대북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한 것은 순리”라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인사는 “얼마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원칙·상식·국제기준’이라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론을 북측도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너무 강하게 북한을 몰아붙일 경우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장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수위 조절에 고심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정부가 회담 의제를 북측에 제시하며 ‘개성공단 재발방지대책 수립’이란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로 에둘러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문제는 ‘국장급’에 불과한 실무회담에서 최종 합의를 볼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정부 내에서도 고위급 당국자 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대비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앞으로 수차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후속 실무회담 등에 대비한 탐색전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개성공단 시설 및 장비점검 문제는 양측 간 이견이 없는 만큼 이번에 타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는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카드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양측은 이날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북측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 명단을 교환하고 의제를 조율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수시로 장·차관 주재 회의를 열고 전략 및 대책 협의에 주력했다. ‘대남 비방’에 열을 올리던 북한도 실무회담을 하루 앞두고 태도를 바꿔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가자면 외세가 아니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며 “불신과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면 민족자주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남북이 6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키로 4일 최종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위기에 처한 개성공단은 물론 교착 상태의 남북관계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예상된다. 회담에는 우리 측에서 ‘국장급’인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북측에선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나서기로 했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개성공단 시설·장비 점검 및 입주 기업인 방북 문제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실무회담은 전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북한의 제의에 우리 측이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갖자고 ‘역제의’를 하면서 성사됐다. 남북 문제는 당국 간 회담으로만 풀 수 있다는 기존 원칙을 견지하면서 개성공단 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 같은 ‘개성공단 원포인트 회담’이 한 차례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 재추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대화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협의 과정에서 북측은 실무회담이 열리는 6일에 맞춰 개성공단 우리 측 기업인들의 공단 방문 추진도 제안했다. 또 우리 측이 회담을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안하자 장소를 개성공단으로 바꾸자고 수정 제의를 해 오기도 했다. 개성공단 문제가 잘 풀리는 듯한 모양새를 대외에 보여줘 미국 등 국제사회의 환심을 산 뒤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남북은 늦게까지 추가 협의를 벌였지만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 데 무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회담장 두고 기싸움… 27시간 만에 타결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회담장 두고 기싸움… 27시간 만에 타결

    남북은 4일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된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위한 협의를 하면서 장소 문제를 놓고 막판 이견을 보였으나 이 외에 다른 사안은 비교적 순조롭게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는 한편 북한의 대남 전략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남북 관계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남북 당국회담 개최 결렬의 원인이었던 양쪽 대표단의 ‘급’도 이번에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에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개성공단 실무회담 협상에서 양쪽 대표로 마주 앉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급’을 놓고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실무회담 합의는 북한이 전날 오후 5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방북을 우리 측에 제안한 이후 상호 역제의와 수정 제의를 거쳐 27시간여 만에 이뤄졌다. 우리 측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판문점 남북 측 지역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을 열자고 역제의하자 북한은 오후 5시 회담 장소만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로 바꾸자고 수정 제의를 해 왔다. 그러면서 남측 시설 점검 인원이 5일 방북해 필요한 준비를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판문점이 싫다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하자고 다시 제의했고, 결국 북한은 장소 변경 요구를 접으며 8시 25분쯤 최종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 수석대표인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2011년부터 개성공단 업무를 맡았고 앞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등을 역임했다. 친화력이 뛰어난 서 단장은 과거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의 남북 행사에 실무 인력으로 참가한 경험이 많다.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2005년 8월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8년째 개성공단 업무를 맡아 온 베테랑이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리금철 총국장이 대남사업을 오래해 온 인물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박 부총국장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논의하기에 적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회담 합의 환영… 9일 20~30명 방북 희망”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 남북이 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입주기업 대표들은 환호했다.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는 4일 “북측의 제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만에 하나 거부 의사를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결과가 좋아 너무 반갑다”면서 “오는 9일 방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려해 주면 금상첨화”라고 밝혔다. 전날 기업들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더 미루면 설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다른 분위기다. 전날 밤 북측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한다는 전화통지문을 보내고 우리 정부가 남북 당국 실무회담을 제의함으로써 해빙 무드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방북할 수 있도록 남북 당국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북한에 가서 공단 조업이 중단된 석달 동안 녹슬거나 망가진 공장 설비와 원·부자재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김학권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구체적인 방북 기업 수와 인원 등은 통일부와 조율해야겠지만 우선 20~30여명을 보내 기계 설비 등을 점검하려고 한다”면서 “하루빨리 공단의 설비 상태를 확인해야 추가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각 사의 필요에 따라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간 체류하며 설비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계·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고가의 설비들은 습도에 민감해 장마철에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피해가 크다는 게 관련 기업들의 설명이다. 한 입주기업의 대표는 “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부에서 기업인의 방북을 허가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北 개성공단 실무회담으로 신뢰 기반 쌓아야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내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갖기로 합의했다. 지난 4월 3일 북한 당국이 남측 인력의 진입을 불허하면서 석달 넘게 이어 온 개성공단 파행이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도 개성공단의 파국만큼은 원치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점, 나아가 이번과 같은 파행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당국 간 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를 북이 호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개성공단은 지금 한계상황에 다다른 상태다. 가동을 멈춘 공장 설비는 장마철을 맞아 고철이 돼 가고 있다. 그제 46개 업체 대표들이 공단 설비를 반출해 국내외 제3의 시설로 이전하겠다며 사실상 철수 방침을 내놓은 것이 개성공단의 절박한 상황을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남북이 입은 피해 또한 실로 막대하다. 전체 123개 입주업체 가운데 남북경협보험금 지급을 신청한 기업만 86개에 이른다. 보험 가입 업체가 96개인 만큼 90%의 업체가 보험금을 받고 개성공단의 자산을 정부에 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얘기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여차하면 이대로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겠다는 생각들인 것이다. 북한 또한 5만여명의 공단 근로자와 이들의 가족 등 20만명의 생계 부담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그만큼 개성공단 정상화는 남북 모두에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다. 남북 모두 성의 있는 자세로 회담에 임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공단 가동을 정상화하는 일이 시급함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강조해 온 바대로 개성공단이 북의 대남 전략 수단으로 전락해 이번처럼 부지불식간에 출입이 통제되고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출입 통제나 가동 중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합의서가 있으나 북의 생떼 쓰기로 인해 휴지조각이 된 상태다. 따라서 다시는 북이 제멋대로 공단을 폐쇄하는 일이 없도록 할 제도적 보완 장치가 강구돼야 하며, 이 점에 있어서 북은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한국과 미국, 중국의 연쇄 정상회담과 엊그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은 북한이 지금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확인해 줬다. 핵을 움켜쥐고 있는 한 그 어느 나라도 북한과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다. 북이 이 난국을 벗어날 출구는 결국 남한이다. 이번 회담에 얼마나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하느냐에 향후 남북 관계와 북의 활로가 걸린 것이다. 모쪼록 북은 전향적인 자세로 회담에 임해 남북 간 신뢰 회복의 첫발을 떼기 바란다.
  •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남북, 개성공단 지렛대로 전면 대화 모색

    남북이 4일 전격 합의한 개성공단 ‘원포인트’ 당국 간 실무회담이 남북 관계 개선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록 개성공단 문제 해결에 국한된 실무회담이지만 일단 회담이 열리면 남북 당국의 태도에 따라 전면적인 대화 재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대 섞인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이후 “남측과 상종 않겠다”던 북한이 먼저 개성공단 우리 측 인원의 방북을 제의하고 뒤이은 남측의 실무회담 개최 ‘역제의’까지 받아들인 것은 일단 남북 대화의 물꼬부터 트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남북 당국 간 대화 우선’ 원칙을 견지해 온 우리 정부가 민간인 방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의 제의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북한도 예상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 측이 당국 간 실무회담을 ‘역제의’해 오거나 반대로 기업들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들의 제의를 거부할 것이란 계산을 하고 북한이 움직였을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중국, 특히 미국이 고위급 대화에 앞서 남북 관계 개선을 먼저 요구하고 있어 북한도 이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매개로 남북 대화를 하고,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지금의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실무회담을 계기로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이 추진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실무회담이 열리고 개성공단 사태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남북이 서로 상대 측에 책임을 넘기며 공방을 벌이게 된다면 어렵게 조성된 대화의 장이 닫혀 버릴 공산이 크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南 ‘재발방지 먼저’ 北 ‘재가동이 먼저’… 갈 길 먼 공단 정상화

    [남북 6일 국장급 판문점회담 합의] 南 ‘재발방지 먼저’ 北 ‘재가동이 먼저’… 갈 길 먼 공단 정상화

    남북이 4일 개성공단 관련 당국 간 실무회담에 합의하면서 어렵게 대화의 장이 마련됐지만 개성공단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양측이 각각 다른 목적과 셈법으로 마주 앉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개성공단 해법을 도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관건은 개성공단 사태 재발 방지책 수립을 통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합의다. 정부는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강조하며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개성공단 사태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 없이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을 빨리 정상화시키자는 조급한 대응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의 투자 자산 보장, 통행·통신·통관 등의 ‘3통(通)’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설 공산도 크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것은 신뢰”라면서 “신뢰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어떤 시도도, 조치도 기대하기 어렵고 성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이 재발 방지책을 내놓으려면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남측에 책임을 떠넘기며 대결적인 자세를 취할 공산이 크다. ‘3통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하다. 신변 안전과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3통의 해결은 정부의 목표인 개성공단 국제화와도 직결되는 문제지만 지난 10년간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보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정부도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자칫 회담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런 맥락에서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최종 합의까지 상당한 진통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성공단 시설·장비 점검 및 입주기업인 방북 문제’와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는 이보다는 쉽게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제품 반출 문제를, ‘선(先)재가동’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협상 카드로 사용할 개연성도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전자부품 업체들이 공단에 남아 있는 설비·장비를 국내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전격 밝히자 북한이 그날 오후 곧바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허용 입장을 남측에 전달한 것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남북관계 개선 우회로 모색… 일각 “명분 위한 면피성 조치”

    北, 남북관계 개선 우회로 모색… 일각 “명분 위한 면피성 조치”

    ‘대화신호인가, 책임회피용 면피성 조치인가.’ 북한이 3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과 개성공단관리위 관계자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한 배경을 놓고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은 이날 우리 측에 전통문을 보내 “장마철 공단 설비·자재 피해와 관련, 기업 관계자들의 긴급 대책 수립을 위한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며 “방문 날짜를 알려주면 통행·통신 등 필요한 보장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또 개성공단관리위 관계자들이 함께 방문해도 좋다며 방문기간 중 필요한 협의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전달했다. 우리 정부는 즉각적인 답변을 유보한 채 북한의 의도 분석에 들어갔다. 장마철 개성공단 대책도 시급하지만 일단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고위급 대화 등을 원하는 북한이 남북관계 관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봤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선 먼저 미국 측의 요구대로 남북관계부터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적당히 관리하면서 북·미 고위급 대화나 6자회담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주기업인들의 방북 협의를 위한 남북 간 접촉이 실질적 대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개성공단과 관련해 자신들은 필요한 조치를 다 취했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게 우선적인 목적인 것 같다”면서 “북한의 제안을 매개로 남북 당국이 대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전통문에서 기업인들의 방북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개성공단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 등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전통문을 보낼 때도 수신인을 우리 정부 당국이 아닌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와 개성공단관리위로 특정했다. 진정 당국 간 대화 의지가 있었다면 실무회담을 제안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만 판문점 연락채널이 지난달 12일 불통된 이후 22일 만에 재가동된 만큼 일단 남북 대화의 창구는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판문점 채널을 통해 북한에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를 거절하던 북한이 이날 오후 갑자기 전화를 받고 전통문을 보낼 게 있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입장을 정리해 4일쯤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입주기업들이 남북 당국에 ‘최후통첩’을 하면서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데 대해 통일부는 “아직까지 북한이 남북 당국 간 대화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기업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판문점 실무회담’ 역제의 배경은?…北, 어떻게 나올까

    ‘판문점 실무회담’ 역제의 배경은?…北, 어떻게 나올까

    북한의 개성공단 방문 허용 입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을 역제안한 가운데 그 배경과 북측의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4일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을 오는 6일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공식 제의했다. 앞서 3일 오후 북한은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개성공단 기업인과 관리위원회 관계자의 방북 허용 입장을 남측에 전달했다. 같은 날 오전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전자부품 업체들이 공단에 남아 있는 설비 장비를 국내·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전격 밝힌 데 대한 조치였다. 정부가 북측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역제안한 것은 당국 간 회담으로만 개성공단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정부의 기존 원칙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이 진정으로 개성공단 문제를 풀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포석도 함께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제안대로 기업인과 관리위 관계자들의 방북을 허용할 경우 개성공단이 4월 파행 상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식의 정상화를 이룰 수는 있지만 이런 해결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가운데 개성공단 문제를 정상화할 경우 앞으로 언제든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정부가 이날 판문점 실무회담을 제의하면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의제로 예시한 데에는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개성공단 문제 논의를 위한 회담 제의를 북한이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이 다시 역제안을 해올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 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남북 당국이 실무적으로 풀어야 할 상황이어서 북한도 실무회담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경협의 마지막 끈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해 북한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지난달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특별담화문을 통해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하고 이를 통해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5·24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려 한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경제난 해소와 각지에 외자 유치를 통해 조성하려는 경제개발구의 성공을 위해 남북 문제를 풀어갈 필요성이 북측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 유관국과 관계 개선 및 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국가의 남북대화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다. 또 이번 제의를 거부하면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다시 잡기 요원하고 실무회담은 수석대표의 격 문제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실무회담에 북한이 응한다고 해도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이나 추후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일종의 ‘북한 길들이기’와 북한의 변화를 위한 장으로 활용하면서 북한에 대한 요구 수위를 높여가면 남북 간 실무회담은 한두 차례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달 남북 당국회담이 불발된 이후 조평통 등을 통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행보를 ‘북한에 대한 무장해제와 체제 변화’를 노린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이 무력 도발을 시도했다. 정전협정이 무색할 정도다. 특히 무력 도발 빈도는 줄어든 반면 수위는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력 도발 방식 역시 다양화, 노골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부터 1994년 4월 말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는 무려 42만 5271건에 이른다. 특히 지금까지 무력을 동원해 우리 영토와 국민들을 직접 위협한 행위는 간첩 남파 등의 침투 도발이 1959건,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 도발이 994건이다. 60년 동안 해마다 평균 49건, 일주일에 1건씩 발생했다는 얘기다. 유엔군사령부가 1994년 5월부터 위반 사례를 집계하지 않아 더 이상의 자료는 없지만 북한의 도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1968년 ‘1·21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이다. 북한 무장 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다가 발각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렇듯 무장간첩 등의 테러 도발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974년 8월 1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격 기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 테러, 1987년 11월 28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 1975년, 1978년, 1989년에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도 발견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가 두드러졌다. 북한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수석대표에 우리 군 장성이 임명되자 불참을 선언했으며 1994년 4월에는 아예 군정위에서 철수했다. 이듬해인 1995년 9월에는 북한이 중립국감독위원회마저 봉쇄했다. 군정위와 중감위의 설치 근거인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이어 1996년 4월 정전협정 의무 이행 포기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도 한·미 군사훈련 등을 구실 삼아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또 북한의 해상 침투가 두드러졌다.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사건’이 발생해 무장 공비 13명이 사살되고 11명은 자폭했다. 1998년 6월과 12월에도 각각 강원 속초와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각됐다. 2000년대부터는 남북 간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등 도발 수위가 이전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북방한계선(NLL) 무단 침입을 계기로 제1,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이 중 2차 연평해전 때는 우리 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2009년 11월에는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우리 해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대청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2010년 3월 26일에는 북한 잠수정 어뢰에 의해 우리 초계함이 격침당해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는 ‘천안함 폭침 사건’까지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100여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며, 이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공격으로 기록됐다. 북한은 또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워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공세도 펴고 있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지난 2월 등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했다. 아울러 북한은 1998년 8월 사정거리 2000㎞급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시험 발사한 이후 지속적으로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화됐기 때문에 북한이 레토릭(정치적 수사) 차원의 비난 수위를 높일지는 몰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우리가 방심할 경우 이를 명분 삼아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있고, 그 위험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경우 NLL을 중심으로 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서 “북·미 관계가 나빠진다면 핵실험 등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한 위협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개성공단 입주기업 “설비 국내외로 이전”

    남북관계 경색으로 잠정 폐쇄된 개성공단의 입주기업들이 남북 당국에 설비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측은 3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우리 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관련 문제 협의를 위한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당국 간 연락채널 복원은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따라 지난달 12일 단절된 후 22일 만이다. 앞서 개성공단 기계·전자부품소재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공단에 남아 있는 설비를 국내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우리 기업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면서 “빈사 상태에 빠진 기업을 살리고 고객(바이어) 이탈을 방지할 수 있도록 남북 당국이 이른 시일 안에 공단의 폐쇄 또는 가동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전자부품 기업은 46곳에 이른다. 북한은 이날 오후 5시 30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한 우리 측의 접촉 시도에 응답했으며 곧바로 우리 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최후통첩’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관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책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지척의 北기정동에 형님 두고도 60년간 못 만나”

    [정전협정 60년] “지척의 北기정동에 형님 두고도 60년간 못 만나”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지만 평생 농사지은 경작지의 땅 한평조차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는 곳. 시집온 며느리는 주민이 될 수 있지만 시집간 딸은 주민이 아니어서 친정 왕래조차 쉽지 않았던 곳. 최북단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DMZ) 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민간인 거주지 대성동 마을의 얘기다. 대성동 마을은 ‘남북 비무장지대에 1곳씩 마을을 둔다’는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북측의 기정동 마을과 함께 1953년 8월 조성됐다. 행정구역상 경기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이며 현재 50여 가구 2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생계를 일궈 온 주민들은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영문도 모른 채 ‘특별구역’ 주민으로 60년을 살아왔다. 대성동 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60년 분단의 ‘나이테’를 몸에 새긴 마을 주민 박필선(80), 김경래(77)씨를 3일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났다. 대성동 마을은 최근 남북 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출입이 더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전쟁이 난 건 그날 아침에 알았어요. 그 전에도 포 쏘는 소리는 종종 들어서 양측이 또 교전을 하나 보다 했는데 웬걸, 전쟁이 터졌다는 거예요. 임진강을 건널 배도 없고 해서 그냥 살았죠.” 김씨는 14살이 되던 해 이 마을에서 전쟁을 맞았다. 밤에는 한국군이, 낮에는 인민군이 마을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마을 청년들은 숨을 죽인 채 3년을 살아야 했다. 인민군이 국군으로 위장하고 마을로 들어오는 바람에 환영을 나갔다가 붙잡혀 간 마을 주민도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잡혀간 주민 중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옆 마을 기정동에 친형님을 두고도 60년간 만나지 못했다. 박씨는 “왕래를 못 하니 아직도 큰형님이 기정동에 사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아직도 지척인 옆 마을에 사신다고 생각하고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상이 한창일 때도 마을 청년들은 총을 들고 마을을 지켜야 했다.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판문점 반경 2㎞ 내에서는 교전이 금지됐지만 양측 군대가 조금씩 밀고 들어오면서 판문점과 1.5㎞ 떨어진 이 마을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마을 청년 13명이 소총을 들고 지켰다”며 “마을 산기슭에까지 포탄이 날아들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마을을 지켜냈지만 휴전 이후에도 대성동의 수난은 계속됐다. 1997년 도토리를 줍던 마을 주민 홍승순씨 모자가 북한군에게 끌려갔다가 5일 만에 풀려났고, 이보다 앞선 1975년에는 마을 부근에서 북한군 2명이 농부를 강제로 납치하기도 했다. 김씨는 “1960년대에 마을 주민 한 명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는데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때는 정말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북한의 ‘임진각 군사적 타격’ 위협에 마을의 모든 주민이 잠시 벙커 신세를 지기도 했다. 박씨와 김씨는 “남들은 우리 마을이 병역도, 납세 의무도 없다며 부러워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박씨는 “통일이 돼 집도 논도 없이 설령 빈손으로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가장 큰 희망은 통일”이라고 말했다. 문산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한반도 지형변화(하)

    지난 60년간 전쟁 억제 역할을 해온 정전협정은 북한의 무효화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적대 행위의 사실상 정지’라는 본래 의미를 잃고 사문화된 지 오래됐다. 정전협정이라는 안전장치가 전면전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달라진 국제 역학관계 등 외교 환경과 ‘최악의 무장 충돌만은 피하자’는 남북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안전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정전은 휴전보다 좁은 의미로 ‘서로의 합의에 의해 전쟁 당사국들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다’는 뜻이다. 휴전은 전쟁 중 얼마 동안 전투를 멈춘다는 의미로 정전보다는 더 나아간 준 평화상태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 한글판에는 ‘한반도 정전협정’으로, 영문판에는 ‘휴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란 표현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전투를 일시 중단할 뿐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는 1000명 이내의 비무장 인원이 들어가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한반도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제로는 양측의 무장병력과 지뢰, 방벽 등 군사 시설물로 중무장됐다. 군사 인원 및 장비의 반입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 산하 중립국 시찰 소조의 활동은 북한의 소련 무기 반입 논란 끝에 1956년 5월 활동이 중지됐고, 시찰 소조의 활동을 규정한 정전협정 조항도 폐기됐다. 정전 감시의무를 수행하는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의 기능도 1990년대 들어 공산 측 대표단이 철수하면서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북한은 1993년 체코,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 철수시켰는데, 폴란드의 경우 철수를 거부하자 겨울철 막사의 전기와 수도까지 단절했다. 1994년 12월에는 군사정전위 중국 대표단을 철수시켰고, 1996년에는 군사정전위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거부한 표면상의 이유는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군은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석대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서명 당사자에 한국대표가 빠진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가 결국 협정문을 형식상의 문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정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 등 3명만이 서명했다. 중국군만 제어할 수 있다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정전협상에 반대하며 한국군 대표를 휴전회담에서 철수시켰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은 6·25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는 집행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협상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정치·외교적 공세를 펴왔다. 정전협정을 적용하면 한국은 북한이 도발을 해 와도 직접 책임을 따지지 못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책임 추궁을 의뢰해야 한다. 군사정전위가 나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전위가 조사 활동을 마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유엔군 사령관은 이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데, 이후의 대응 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북측의 책임을 추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에도 유엔사 특별조사팀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꼭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더라도 정전협정은 60년간 달라진 남북 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도 1996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잠정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정전 상태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잠정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었지만, 주체를 북·미로 한정한 게 문제다. 정전협정이 그렇듯, 한국이 배제된 협정은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정에 제도상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기고] 정전과 한·미동맹 60주년의 의미/길병옥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기고] 정전과 한·미동맹 60주년의 의미/길병옥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올해는 6·25전쟁 정전 및 한·미동맹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3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미국 등 16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전 세계 93개의 독립국가 중 63개국이 대한민국을 도왔다. 3년 1개월이 넘는 1129일 동안의 전쟁으로 13만여명의 국군 전사자, 4만여명의 유엔군 전사자, 국군과 유엔군을 포함하여 60만여명의 부상자와 포로·실종자 등이 발생했다. 게다가 300만여명의 인명 피해와 1000만여명의 이산가족, 수많은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발생 등의 피해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군이 제외된 유엔 측과 북한 측 대표가 정전협정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은 일단락됐고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을 경계로 분단의 상태를 오늘날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한국은 1953년 10월 1일 휴전 성립에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경제 원조를 약속받고 미국과 한·미군사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전후 60년이 지났지만 남북 분단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전 이후에도 북한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해 오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자행한 정전협정 위반사례는 43만건 이상이다. 직접적인 침투 및 국지도발만 약 3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6·25전쟁의 상처와 참혹상들이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 가고 있고 우리의 대북 안보의식이 불감증에까지 이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을 때만 지켜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한·미동맹 6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지대하다. 그동안 한·미동맹은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유지에 핵심 축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지난 60년간 한·미동맹의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가능했다. 한반도 평화유지, 경제적 번영, 민주주의의 성숙에는 6·25전쟁 이후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과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 지켜낸 호국영웅들을 잊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그런 국민이 1등 국민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6·25전쟁에서 목숨 바쳐 공산화를 막아낸 호국영웅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호국 의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타국민들을 구해낸 유엔 참전용사, 언어는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이 땅에서 목숨을 바쳤던 젊은 병사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때마침 육군이 6·25전쟁의 위기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참전용사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국군 전쟁영웅뿐 아니라 미군 참전영웅에 대한 표창까지 추가 제정하여 전승기념행사 식장에서 수여키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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