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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도청 파문] “도청내용 수사 가능” 檢 급선회

    [불법도청 파문] “도청내용 수사 가능” 檢 급선회

    검찰이 도청테이프 내용 수사에 대한 법리 검토를 거쳐 10일 이번 사안이 ‘독수독과론(毒樹毒果論)’의 적용대상은 아니라고 결론냈다. 도청이 불법이라도 도청 내용을 수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는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 수사 착수 여부는 검찰 수뇌부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毒樹毒果에 해당 안돼 수뇌부 결단에 달렸다” 검찰은 274개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여부를 곧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간부는 “검찰의 수장인 김종빈 검찰총장이 일선 검찰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조만간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이 있는 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독이 있다는 독수독과론은 검찰이 애초 도청테이프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제시한 것이다. 법이론과 사례를 검토한 끝에 이 이론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이던 검찰이 여론에 밀려 태도를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 관계자는 “독수독과 이론은 수사과정에서 위법하게 취득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이번 수사 대상인 도청테이프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불법도청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독수독과론이 영미법계의 판례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고, 불법 단서로부터 ‘독립되고 단절된 증거’를 인정하는 여러 가지 예외조항이 있어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사생활 보호 ‘장애물´… 결론 불투명 하지만 ‘독수독과’라는 장애물을 넘었다고 당장 테이프 내용수사 착수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여전히 힘들 것으로 보인다.‘판도라의 상자’에는 독수독과론 외에도 많은 법리적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우선 통신보호비밀법 제4조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통비법 제4조는 “불법감청으로 얻은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통비법 조항에 ‘수사’를 지칭하는 구체적인 단서가 없어 수사할 수 있다는 주장과 검찰은 기소를 목적으로 수사하는 만큼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면 수사에도 마찬가지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도청테이프 내용 수사에 앞서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사생활 및 통신비밀의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가치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으로 정할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정보공개청구제 어떻게 운영되나

    정보공개청구제 어떻게 운영되나

    서울신문의 이번 조사를 통해 정보공개청구제가 원칙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같은 사안에 대해 기관 또는 담당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제도의 공신력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우선 공개 여부부터 엇갈렸다. 공개, 부분공개, 비공개로 나뉘어져 지자체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공개된 자료 역시 질적으로 천차만별이었다. 정보를 공개한 9개 지자체 가운데 대전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부실한 자료를 공개해 사실상 정보로서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대전시만 비교적 충실한 자료 공개 정보 공개를 요청한 내용은 해당공무원의 이름, 징계를 받을 당시의 직위, 현 직위, 징계사유, 징계수위, 감사종류 등이었다. 실명은 밝히지 않아도 좋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정보를 공개한 지자체 가운데 6가지 요구사항을 모두 공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5곳에서 완전공개를 통보했지만 사실상 부분공개를 한 셈이다. 부분적으로 공개를 했지만 그마저도 상당수가 부실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충북의 경우다. 정보공개청구 당시 개인별 징계상황을 상세히 공개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징계 종류별, 징계 사유별 통계자료만 제시했다. 비공개로 자료를 받아볼 기회를 박탈하지는 않았지만 청구자의 의도와 맞지 않는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그 외 대구 등은 징계사유에 대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표기했다.‘성실의무위반’ 또는 ‘업무추진소홀’ 등으로는 해당 공무원이 공직수행 중에 어떤 이유로 감사에 적발됐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나마 가장 나은 자료를 공개한 지자체는 대전이다. 대전시측은 징계자 이름을 제외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비교적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기술했다. 특히 징계사유에 대해 ‘중소기업육성기금 부당 인출사용’,‘서구 복수지구 구획정리사업 보상금 재원 불법차입’ 등으로 내용을 설명했다. 또 울산은 실명을 안 밝혔지만 징계 당사자의 성(性)은 공개하는 성의를 보였다. ●일선 공무원이 공개여부 판단 동일한 내용의 청구사항에 대해 이렇듯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 것은 법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정보공개법의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각 조문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할 수 있다.’ 또는 ‘∼하지 않을 수 있다.’ 등으로 규정, 법률해석상의 여지가 지나쳐 자의적인 판단의 남발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몫은 청구내용을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적 불명확성을 보완할 가이드라인도 없어 일선 공무원들 역시 판단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김재광 연구위원은 “같은 부서에서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도 하고 청구시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등 문제점이 큰 게 사실”이라며 “이는 행정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명확한 운영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 역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빠르면 오는 9월쯤 정보공개운영지침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에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현행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8가지 비공개 사유가 실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사례와 판례를 중심으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 일선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행자부는 또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정보공개 실태를 상시 점검해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다. ●정보공개청구제는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행정투명성 확보와 시민감시기능 활성화를 위한 기초인 셈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해당기관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우편 등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 최근엔 인터넷상에 통합사이트(info.egov.go.kr)가 개설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단, 수수료는 청구인 부담이다.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해당기관은 10일 내에 공개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비공개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공개될 줄 알고 신청하나” 고압적 태도 “공개될 줄 알고 신청했습니까?” 정보 공개를 신청한 직후 한 지자체 담당자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이같이 물었다. 고압적인 태도와 정보 접근권 자체를 묵살하는 질문. 정보공개제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도 개선에 앞서 담당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의 시급성이 드러난 대목이다. 제주도는 정보 비공개 이유에 대해 “사사로운 개인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주도의 담당자는 공무를 수행하다 잘못을 범한 공무원을 ‘사사로운 개인’이라고 정의했다. 정보공개청구 취지에 대해 “음주운전 등 공무원 신분을 떠난 개인 비위사실이 아닌, 공무수행으로 인한 감사 지적사항을 공개해 달라는 것”이라고 재차 설명했지만, 이 담당자는 “공무원도 사사로운 개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서울시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 담당자는 “실명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 담당자는 또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적발사항만 공개하기 위해서는 편집을 해서 보내야 하는데 이는 정보공개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있는 정보를 공개하게 돼 있지 정보를 생산하라고는 안 돼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에 대해 민간 전문가는 물론 주무부처인 행자부에서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정보 공개를 위해 해당자료를 담당자가 새로 생성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청구건은 생성이 아닌 검색의 재조합만으로 충분한 내용”이라면서 “생성과 검색의 의미를 정확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최소한의 합리적 노력은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정보 공개 청구 이후 각 지자체 담당자들은 청구자의 직업과 정보 사용처에 대한 질문을 공통적으로 물어왔다.“사용처를 알아야 공개를 해도 할 것 아니냐.”는 게 이들의 요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정보공개법이 개정되면서 사용목적을 기재토록하는 조항이 삭제됐다. 이와 관련, 행자부측은 “정보공개청구제는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게까지 개방된 마당에 그런 질문은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전문가들 견해는 정보공개청구제는 지난 1998년 정보공개법이 제정돼 벌써 시행 7년째를 맞고 있지만 초기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공직자들조차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서울시립대 법학과 경건 교수는 “공무원들이 정보공개청구제를 시민들의 권리가 아닌 민원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소속 정보공개위원회의 민간위원인 경 교수는 “정보는 애초에 행정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체 전체의 것이지 정부가 독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면서 “관리로 인한 마비는 막아야겠지만 정보공개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 교수는 비공개 처리행태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법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률상 비공개 대상을 명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의무는 아니고 비공개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고 있는 것일 뿐”이라면서 “설사 일정부분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하도록 부분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면 비공개란 있을 수 없으며, 부분공개가 원칙이라는 얘기다.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하승수 변호사도 “공무원에 대한 정보는 공개가 원칙일 뿐더러 특히나 공개를 요구한 내용이 개인비리나 불법행위가 아닌 공무원으로서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잘못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면 실명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부분공개를 해야 한다.”면서 “부분공개를 의무화한 정보공개법에 어긋난 조치”라고 덧붙였다. 행자부 관계자는 “비공개는 예외적인 상황이며 원칙적으로 최대한 공개하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사실 담당 공무원으로서는 정보를 공개한 후 생길 수 있는 책임문제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정찬용·정태인씨 소환 조사

    행담도 개발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는 5일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정 전 수석을 상대로 지난 5월 김재복(40·구속) 행담도개발㈜사장과 손학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회사채 자금 사용 등으로 갈등을 빚자 중재를 하는 등 행담도개발을 측면 지원한 경위와 EKI와 도공간의 자본투자협약에 관여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3인의 형사 처벌은 사실관계 확정 후 판단할 문제”라면서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인정 범위가 좁아서 쉽진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오는 20일 이전에 이번 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안락사 논쟁

    15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영양공급 튜브에만 기대어 목숨을 이어오던 미국 여성 테리 시아보가 41세로 지난 3월 31일 세상을 떠났다.3월18일 법원의 판결로 튜브가 제거된 지 13일 만이다. 시아보가 살아 있는 동안 격렬했던 안락사 논쟁은 그가 사망하자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줄기세포 연구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존엄성이 안락사 논쟁의 초점이다. 시아보가 숨을 거두자 교황청은 “영양 튜브 제거는 생명에 대한 공격이자, 생명의 창조자인 하느님에 대한 공격”이라며 법원을 비난했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사람의 목숨만 살려두는 것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시아보는 1990년 무리한 다이어트로 심장 박동이 잠깐 멈추는 바람에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됐다. 그뒤 안락사를 요구하는 남편과 반대하는 부모들이 법정싸움을 벌였다.1998년 남편은 튜브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부모의 기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1996년 세계 최초로 호주에서 안락사법이 통과된 지 9년 만이다. ☞ 포인트 : 안락사 허용론과 불가론의 근거를 생각해 보고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각국의 입법 경향을 살펴 본다. ●안락사란 무엇인가 안락사(euthanasia)는 죽음에 임박해서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거나 경감할 목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임의적 조치다.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모르핀을 과다 투여하는 것과 같이 직접 어떤 행위로 죽도록 하는 것을 능동적(적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어떤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수동적(소극적) 안락사라 한다.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건들 시아보 사건말고도 안락사 논쟁을 부른 사건들이 있다. ▲퀸란 사건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퀸란은 당시 21세로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호흡이 정지돼 혼수상태에 빠졌다. 인공호흡기를 단 퀸란은 식물인간이 됐다. 퀸란의 아버지는 의식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거부하자 생명유지장치를 뗄 권한을 자기에게 달라는 소송을 냈다. 뉴저지 고등법원은 주치의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주 대법원은 아버지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 판결은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새로운 판결이었다. 판결에 따라 호흡기를 떼었지만 퀸란은 식물상태 환자로 9년 남짓 스스로 호흡을 하며 생존하다가 1985년 6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케보키언 사건 미국의 케보키언 박사는 1998년 9월 미시간주에서 루게릭병을 앓던 유크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 숨지게 했다. 또 이 장면을 미 CBS 방송의 ‘60분’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했다가 2급 살인죄로 최대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안락사 옹호자인 케보키언은 매년 10여명씩 불치병 환자 100여명의 자살을 도와주면서 ‘자살장치’ 를 만들어 환자 스스로가 마지막 스위치를 누르게 하기도 했다. ●각국의 입법 안락사를 인정하는 곳도 있고 완전히 금지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하는 곳도 있다. 미국은 40개주가 엄격한 요건 아래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존엄사)는 대체로 인정한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영국은 법률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는 이뤄지고 있다. 호주는 지난 96년 안락사를 법제화했다가 6개월 만에 폐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프랑스는 뇌사상태라도 심장박동이 완전히 멎지 않는 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독일도 엄하다. 고의가 인정될 경우 종신형까지 처벌받는다. 일본은 95년 요코하마 법원의 판례에 따라 환자의 참기 힘든 고통, 죽음의 임박성 등의 기준에 따라 융통성 있게 처리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0년 11월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식물상태의 인간에 대하여 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이를 처벌하는 경우도 드물다. ●안락사 허용론 엄격한 조건만 지킨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적·도덕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지만 살아 있을 동안에 인간답게 살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은 품위가 있어야 하며 살아 있어도 죽음보다 못할 경우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고통을 빨리 없애 주는 것도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은 환자 자신도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도 부담을 준다는 논리를 편다. 즉,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의식이 없는 환자는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안락사 불가론 불가론은 이렇다. 특히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감해 준다는 동기와 상관없이 명백한 살인행위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며 자살이라 할지라도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사회 전체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로 변화된다. 그렇게 되면 독일 나치가 정신병자 등을 학살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 안락사의 남용과 오류를 막을 충분한 안전 장치가 없다. ●어떻게 볼 것인가 안락사를 둘러싼 논란은 어느 나라든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암질환 등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적어도 소극적 안락사는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일반인들도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으며 판례도 그런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그 요건 자체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가령,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로 죽음이 임박한 경우로 한정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생명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서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하는 극악범이라도 생명을 살려두는 것은 그러한 뜻이다. 안락사의 허용이 사회 전반적으로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를 조성해서도 안될 것이다. 대안으로 말기 환자를 체계적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제도를 확대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방안의 하나로 마약 성분의 의약품 사용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서로의 ‘과거’ 털어놓자는 남편

    저는 결혼한 지 2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에게 “우리 이제는 한 몸이 되었으니, 서로 비밀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 과거 남자친구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를 털어놓고 싶지 않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만일 털어놓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이혜연(가명)-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하고, 묻더라도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신혼 초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예의상 정조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들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사라면 특히 이를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입니다. 혼인 전 제3자와의 부정행위, 게다가 약혼 중에 다른 남자와의 정교관계도 혼인 후에는 이혼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논리보다는 기분,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판례가 그렇다고 하여 마음 놓고 과거사를 털어놓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개념을 정의하면서, 과거는 역사, 미래는 신비, 그리고 현재는 선물이라고도 하고, 이를 금전과 관련지어 과거는 부도수표, 미래는 약속어음, 그리고 현재는 현금이라고도 합니다.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 자랄 때 부모에게서 편파적인 대우를 받은 것,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는 너무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지나칠 정도로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바로 잊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가 더욱 중요하므로 과거는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결혼한 남편이 어머니의 불행했던 인생살이를 한스럽게 생각하면서 신혼의 아내에게 “우리 엄마는 정말 불쌍해….”라고 혼자서 울고 넋두리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돼 이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편 과거가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했더라도 그것은 이미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에 사로잡혀서 “내가 왕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데 나를 몰라 봐.”라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제가 취급한 사례 가운데 신부는 국내의 미술대학을 나와서 체코슬로바키아에 가서 미술을 공부하는 유학생이고, 신랑은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신랑이 미국 출장 중에 서로 소개받아 전화로 연애를 하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신랑이 신부에게 “혼자서 외국유학을 하는 여자, 더구나 유럽에서 그렇게 오래 유학하는 여자가 과연 정조관념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이제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숨김없이 과거를 털어놓자. 서로 사이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 여자교제 이야기를 꺼내서 하고, 신부에게도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라고 졸랐습니다. 신부는 어쩌면 순진하게도(?) 대학에 다닐 당시 어떤 남학생과 연애를 했다고 고백하고 말았어요. 신랑은 자신이 신부에게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정작 상대방으로부터 그러한 과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스스로 무척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모에게도 전화를 걸어 따지듯 말하고 이를 문제삼았습니다. 그러자 장모는 사위에게 “자네도 대학 다니면서 연애하지 않았느냐. 뭐 그런 걸 문제삼나, 이 사람아.”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 신랑과 신부는 그 문제로 인해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되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신혼부부 사이에는 특히 정조문제가 중요하고, 정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도 약간의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다고나 할까요. 남자의 혼전 성관계는 거리낌없이 말하더라도 “여자가 어떻게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느냐.”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남녀가 일단 결혼한 이상 서로 믿고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 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어디까지나 농담일 뿐이고, 실제로는 대개의 남자들이 용서를 잘 못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박기철의 플레이볼] 프로선수, 세금 혜택 크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거액을 챙긴 선수들의 세금이 최근 화제다.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많은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도 일부 언론에서는 그간 엄청난 세금 혜택을 받아온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는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3.3%의 세금만을 내왔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여기서 3.3%는 세금 징수의 편의를 위해 국세청이 선수들의 연봉에서 미리 원천징수하는 비율이지 세율이 아니다. 프로 선수들의 세금에 대해 일반 직장인들이 갖는 위화감은 세율 자체보다는 선수들의 연봉이나 계약금이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분류돼 소득표준율이 적용되는 데서 발생한다. 소득표준율이란 자신의 소득과 비용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는 사업자들의 연간 총 수입 가운데 정해진 비율만큼만 비용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를 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하는 제도다.프로선수들은 보통 30∼40%를 소득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해 9%에서 36%까지의 세율로 세금을 낸다. 일반 직장인에 비해서는 필요경비를 높게 인정받으므로 유리하다. 하지만 세법상 비슷한 위치인 자영업자와는 달리 프로선수는 소득의 100%가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불리하다. FA 선수들의 계약금 과세 문제의 핵심은 계약금을 기타소득으로 보던 과거와는 달리 사업소득에 포함시켜 과세하겠다는 것. 필자와 같은 직장인이 칼럼을 쓰고 받는 원고료는 기타소득이고, 전업 소설가나 만화가가 받는 원고료는 사업소득이다. 기타 소득의 경우는 일률적으로 20% 정도를 세금으로 징수한다.프로 선수들이나 연예인이 받는 계약금은 평소 하던 일 때문에 받는 것이므로 사업소득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 탤런트 최진실의 세금 소송의 쟁점도 같았는데, 법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5000만원 정도의 계약금을 받은 선수나 연예인들이라면 새 기준이 유리하므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거액의 연봉이나 계약금을 은퇴 이후에 분할, 지급하는 계약이 유행하고 있다. 구단은 한꺼번에 거액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피할 수 있다. 선수들은 은퇴 이후에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이익이다. 우리 선수나 구단들도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소동은 계약금을 사업소득으로 인정받아 세금을 낸 선수도 있고,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세금을 낸 선수도 있어서 비롯됐다.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세금을 낸 선수들에 대해서는 2000년까지 소급해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까지는 법원의 판례가 있으므로 정당하다. 다만 그 원인이 세무서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지 선수들이 탈세나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최소한 국세청은 해당 선수들에게 통지를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게 옳지 않을까?‘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서울광장] X파일과 솔로몬 해법/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X파일과 솔로몬 해법/우득정 논설위원

    옛안기부 불법도청사건을 놓고 장내외 공방이 치열하다. 검찰은 도청테이프 유출 관련자를 사법처리하는 등 국가권력기관의 불법도청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장외에서는 도청내용의 수사 여부 및 공개 수위를 둘러싸고 백가쟁명식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폭로된 삼성그룹의 불법대선자금 전달 의혹과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도청내용 중 공소시효가 남은 사건은 모두 수사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는 수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론을 들어 수사불가를 주장하는 측도 있다. 공개 문제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을 의식한 탓인지 신중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제한된 범위의 공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가칭 ‘진실위원회’라는 형식의 민간기구를 구성해 도청테이프의 공개 여부와 처리방향을 정하자고 제안한 것도 불법성을 타개하려는 우회 접근법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불법도청 ‘X파일’의 안전한 뇌관 제거법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독수독과(毒樹毒果,Fruit Of Poisonous Tree)론을 근거로 도청내용에 담긴 불법성이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기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우리보다 이러한 종류의 사건에 대한 판례가 많이 축적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법 상식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불법으로 취득된 정보가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배제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인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불륜현장을 포착한 사진처럼 촬영과정에서의 불법성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 불법도청 내용이 다른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증거능력으로 배척되지 않는다는 판례도 있다. 미국의 이러한 판례를 원용할 때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의 내용은 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공개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것이 옳다.‘검찰 너만 보느냐. 나도 좀 보자.’는 식의 주장은 아무리 국민의 알권리라는 용어로 포장하더라도 명분이 약하다. 독성물질은 자격증 소지자만 다뤄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수사 계선상에 있는 검찰 관계자와 일반인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3년 말부터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선자금 수사 때에도 ‘판도라상자’ 논란과 특검론이 대두됐지만 정작 수사가 끝나자 아무런 이론도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X파일 건도 미리부터 콩이야 팥이야 하는 식으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독성물질 취급 자격증 소지자인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지켜본 뒤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추가 조치를 강구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도청내용의 수사 및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번 편법을 허용하면 또다시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번에 참지 못하면 불법도청 유혹에 또다시 빠져들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국가기관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범죄행위를 한 것인 만큼 관련자의 철저한 응징과 단죄를 통해 재발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초법적인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도청내용을 수사하고 공개하자는 주장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적법 절차의 존중이야말로 X파일의 혼란을 수습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신연숙칼럼] 權·經·言의 제자리

    [신연숙칼럼] 權·經·言의 제자리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은 권력, 재계, 언론 유착의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내 보였다. 불법도청과 검은 돈거래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허탈감마저 느껴야 했다. 경제계는 협박을 하며 손을 벌리니 마지못해 정치자금을 줘왔다는 핑계를 더이상 댈 수 없게 됐다. 정치인들도 대가성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의 존재를 주장할 염치가 없을 것이다. 재벌 총수가 검사의 떡값까지 챙기고 있는 모습은 쓴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이번 파문을 보면서 권력, 경제, 언론의 ‘제자리’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영역이동의 자유야 제한될 수 없겠다. 그러나 각 영역의 핵심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때라야만 사회의 조화롭고 건강한 발전이 보장된다. 이번 사건은 ‘제자리’를 못 지켰거나, 옳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강화나 영역이동을 기도한 데서 발생한 대표적 불상사로 회자될 것이다. 홍석현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른바 X파일이 공개되자 기자회견에서 “왜 이런 테이프가 공개됐는지 나름대로 짐작하는 데가 있지만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음모론의 제기다. 그의 말대로 언론이 어떤 정치적 의도와 결탁해 도청 테이프를 공개했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녹음된 대화의 주인공 홍씨가 ‘현직 주미대사’가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토록 커졌을까. 물론 그가 아니라도 폭발력 있는 ‘내용’은 수두룩했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 야심을 불쑥불쑥 내비치고, 차기 대권후보, 국무총리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언론사주 출신 ‘주미대사’가 검은 거래의 중심에 없었어도 이번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낳을 수 있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홍씨는 재벌가 출신으로 언론사주 역할에 충실했어야 했다. 언론을 발판삼아 대사직에 진출하고, 대사직을 발판삼아 유엔사무총장과 그 이상을 꿈꾸었을 때 그를 찾아온 것은 재앙뿐이었다. 무리한 영역이동의 종말은 이미 현대그룹 정주영씨의 1992년 대통령선거 출마에서 목격했다. 엄청난 선거자금 동원과 낙선, 그 이후 현대가 겪은 간난은 다 알려진 바다. 보다 유사하게 제3공화국 시절 사주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에 입각한 한 언론사의 쇠퇴도 언론계에서는 자주 회자된다. 경제, 언론이라는 제자리를 못지킨 대가는 그렇게 컸다. 이번 파문에서 MBC의 태도 또한 언론의 ‘제자리’에 충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엄청난 내용의 X파일을 일찌감치 입수하고도 공개에 주저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자 몸을 사렸다가 경쟁사의 선공에 반격하는 양상이 되면서 보도경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버렸다. 언론들은 이제 와서야 국민의 ‘알권리’를 외친다. 삼성은 언론들을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걸어 고발할 것이라 한다.MBC는 과연 법의 제재를 걱정했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언론관련 사건에서 판례가 빈약하다. 여러부담을 이유로 소송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 언론의 ‘제자리’는 법정 투쟁의 결과에 힘입은 바 크다. 불법도청 사건만 해도 미국은“취재원이 불법으로 정보를 얻었더라도 언론사가 이를 합법적으로 입수했다면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을 받아놓고 있다. 우리 언론도 보다 적극적인 보도와 법적 대응을 통해 ‘제자리’를 확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언론도 선정적, 추측성 보도는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언론자유의 영역을 확대하는 몸싸움에는 당당히 나서기를 소망해 본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안기부 도청 X파일 파문] MBC ‘X파일 추가보도’ 안팎

    MBC가 마침내 2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X파일’과 관련, 취재한 나름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후폭풍’이 모두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도할 바에야 왜 이제껏 실정법 위반이니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든지 하는 말을 해왔는지 모르는 수준으로까지 보도 내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이날 보도 내용처럼 충실히 취재해 놓고도 보도 못한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뒤늦은 용기’라 해도 경쟁사인 KBS가 녹음테이프 다음 단계인 녹취록을 근거로 했음에도 최대한 보도를 했다는 점은 녹취록의 원본인 녹음테이프까지 확보하고도 보도를 망설인 MBC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기 시청률의 고전에 대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다.TNS코리아에 따르면 21일 첫 보도가 나간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8∼9%대로 같은 시간 KBS의 20%대에 비해 한참 처졌다. 이는 MBC 뉴스데스크의 최근 10일간 시청률 가운데서도 꼴찌에서 두 번째다. 꼴찌가 토요일(7월16일)이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21일 뉴스는 꼴찌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정론도 못 내세우고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또 22일자 주요 일간지들이 ‘삼성의 법적 대응’을 의식해서인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추가보도보다 KBS와 MBC를 인용, 보도한 점도 뼈아프다. 일단 ‘질러놓은 뒤’ 편안하게 방송보도만 받아 쓴 격이기 때문이다. 온갖 쟁점은 MBC가 뒤집어쓰고, 제대로 보도한 것은 다른 신문·방송인 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22일 MBC의 보도 수위가 높아진 것은 이런 상황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MBC의 한 기자는 “보도국 전체 분위기는 ‘완전히 당했다.’는 것”이라고 내부사정을 전했다. 일부에서는 개혁적이라고 여겨지던 ‘최문순 사장-신용진 보도국장’ 라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MBC 정도의 언론사라면 이번 사안 같은 경우 얼마간의 손해배상금을 물더라도 판례를 남기겠다는 각오로 처음부터 맞붙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MBC노조 역시 22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이라는 기자적 양심이 아닌 법 위반에 따른 불이익이 두려웠다는 자기고백”이라고 규정한 뒤 “보도국장이 어떻게 책임질지 답변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MBC는 첫 보도의 경우 가처분에 대한 법원 결정이 21일 밤 8시에 나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밝혔다.22일 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관련 사항에 대해 충분히 보도한 것이 그 증거라는 것. 결국 관건은 기존 취재 이상의 보도를 어느 수준까지 내놓느냐가 됐다.22일 보도까지는 어쨌든 용감하다고 평할 수 있지만 앞으로 그 이상의 보도는 결국 기자들의 역량과 회사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언론만 알고 국민만 모른다.”는 참여연대 식의 주장에 대해 MBC는 어느 정도 책임질 의무까지 지게 된 셈이다. 한편,X파일과 관련해 보도 태도를 주목받았던 중앙일보도 22일자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1면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1∼2개면 분량의 기사를 게재한 다른 신문과 달리 2면 왼쪽에 두개의 기사만 냈다. 박스 기사 제목은 ‘불법도청 내용 방송 말라’였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여성 종중회원 인정’ 판결 환영한다

    대법원이 그동안의 판례를 깨고 출가한 여성에게도 종중회원 자격을 인정토록 한 것은 양성평등의 헌법정신과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판결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종전 대법원 판례는 종중법이 관습법이라는 이유로 종중의 개념을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만으로 규정하여 미성년자와 성년 여성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 판례는 초기부터 성차별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여성과 아이는 봉제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낳았다. 이번 판결은 양성평등사회 구현과 더불어 새로운 종중 문화 형성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성평등의 헌법정신과 함께 ‘관습법’의 변화 수용이다. 재판부는 “종중법의 종래 관습은 우리 사회의 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다.”고 함으로써 국민사이 양성평등의식의 확산을 판례변경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비슷한 사건에서도 전향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대법원의 적확한 인식에 박수를 보낸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효력범위를 이번 사건과 향후 새롭게 성립될 사건으로 제한해 혼란을 차단했다. 향후 종중운영, 족보체계 등의 혼란과 유림 등의 반발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미 저출산 추세, 호주제 폐지, 다양한 가족관계 출현 등으로 분묘문화나 제사문화, 족보기록 등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판결문이 제시한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의 원칙 위에서 다소의 혼란을 해결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면 문제는 풀어갈 수 있다고 본다. 이번 판결이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딸들의 반란 ‘性역’ 허물다

    딸들의 반란 ‘性역’ 허물다

    ‘딸들의 반란’이 47년 만에 종중(宗中)의 ‘성(性)역’을 허물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용인 이씨 사맹공파,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출가여성 등 8명이 종친회를 상대로 각각 낸 종회 회원 확인 청구소송에서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한다.”며 판례를 변경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성인 남성만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는 종래의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와 국민 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으며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 자연발생적인 종중의 본질에 비춰 공동선조의 성과 본이 같으면 성별과 무관하게 종원이 돼야 한다.”며 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최종영 대법원장과 유지담, 배기원, 이규홍, 박재윤, 김용담 대법관 등 6명은 판례 변경에 동의하면서도 “판례는 가입 의사를 밝힌 성년 여성도 종원으로 인정하는 수준으로만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별개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은 1958년 이후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된다.”는 판례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 이전의 종친회 운영이나 재산처분 등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출가여성 5명은 종중이 1999년 3월 종중 소유 임야를 350억원에 아파트 건설업체에 판 뒤 성년 남자에게는 1억 5000만원씩을 나눠준 반면 미성년자와 출가녀 등에게는 증여 형태로 1650만∼5500만원씩 차등 지급하자 종중회원 확인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송 심씨 혜령 종중의 여성 3명도 공동 선조의 후손 중 성년 여성을 종원에서 배제하는 관습이 현행 법질서에 어긋난다며 종친회를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각각 1심,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6년여 재판 끌고온 원고측 반응

    “딸이 셋이라고 육촌 오빠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재산이 모두 그 오빠에게 상속이 되더군요. 핏줄은 저였는데도 말입니다.” 6년이 넘게 마음고생을 겪은 뒤 종중 회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 이원재(57)씨는 법정을 나서며 만세를 불렀다. 세월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를 투사로 단련시켰다. 법정을 나서자마자 그는 “이번 판결은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집단에서조차 구성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던 모든 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종회회원 확인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한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심정숙(69)씨는 “이번 판결은 무너진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눈물을 비쳤다. 그는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셔 4남3녀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도 오빠들은 소송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냉담했다.”면서 “모든 여성들의 숙원을 풀었으니 이제 오빠들과도 화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씨 자매는 “대법원의 판례가 확고해 변호사들조차 사건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 소송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번 판결로 과거 분배된 재산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종중 재산에 대해 분배를 받을 수 있으며 종중원으로 인정받은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법정에서는 같은 소송을 하고 있거나 소송을 낼지 고민중인 다른 종중의 여성 10여명이 재판을 지켜봤다. 소송 당사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종중에 요구할 것이며, 종중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원재씨 등의 소송대리인인 황덕남 변호사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달리 혈연집단에서 유독 폐쇄적인 여성의 지위는 문화와 관습이 변해야 개선될 수 있다.”면서 “대법원이 이에 대한 판결을 내려 문화적으로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출가외인 옛말…기혼여성 지위 인정

    여성도 종중회원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은 전통적인 종중과 가족의 관념을 바꾼 획기적인 판례다. 종중에 관한 첫 판례가 형성된 지 47년 만에 판례가 변경된 것은 호주제 폐지와 마찬가지로 가족·친족 관계에서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대등하게 인정한다는 뜻이다. 특히 출가외인으로 불리던 기혼 여성들의 지위를 확립해 주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앞서 2년간에 걸쳐 학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으고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공개변론을 실시하기도 했다. 유림과 여성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법원은 의식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결과는 종중회원을 성년 남성으로 한정하는 데 일반인의 69.7%, 대한변협과 법대 교수의 64%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대법원은 남성만을 종중 구성원으로 하는 종래의 관행은 가부장적, 대가족 중심의 가족제도와 농경중심 사회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근대 이후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가 증대된 사회환경과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남아선호 사상과 가계계승 관념이 쇠퇴하면서 딸만을 자녀로 둔 가족의 비율이 증가하고, 딸을 아들과 함께 족보에 올리는 것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종원인 여성이 종중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종중도 출현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또 1980년 개정된 헌법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는 등 일련의 민법과 가족법 개정안에 맞추기 위해서는 여성의 종중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종중을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종원간의 친목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종족단체로 본 대법원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관습은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 특징을 이유로 여성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시했다. 별개의견을 제시한 대법관 6명은 종중이 우리 전통의 산물이라는 점을 들며 전통문화와 현대 법질서의 조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종래 관습법에 따라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한 것은 잘못이지만, 종중재산 분배에 관한 분쟁이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재판일지 ●1958년:대법원 “종중 구성원은 성인남자” 판례 성립 ●2000년 4월:용인이씨 사맹공파 후손 여성, 종중회원 확인소송 제기 ●2001년 3월:수원지법 1심, 원고패소 판결 ●2001년 12월:서울고법 2심 항소기각 ●2003년 12월:대법원 사상 첫 공개변론 ●2005년 7월21일:대법원 “여성도 종중 구성원” 판례 변경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소급적용 안해 재산 분배 못받아

    대법원이 21일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앞으로 종중재산 분배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게 된다. 또 종중의 운영 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예상되는 유사 소송을 차단하기 위해 대법원은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앞으로 새롭게 성립된 관계에만 적용된다.”고 제한했다. 재판부는 “변경된 판례를 예전의 판례에 따라 형성된 법률관계까지 소급 적용한다면 법적 안정성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판결 이전 남성들만으로 운영된 종중의 결정사항도 인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꾀한 것이다. 다만 원고들은 종중원의 지위에 관해서는 소급효를 인정받았지만, 그래도 종중재산 분배는 1999년에 있었기 때문에 소급효의 시점인 2001년 고법 판결 이전의 일이라 재산을 분배받지는 못한다. 또 이날 이전에 종중에서 내린 재산분배 결정은 모두 유효하고 여성들이 소송을 내도 승소하지 못한다.이날부터 여성들은 자신이 속한 종중의 회원자격을 얻게 됨으로써 앞으로 종중의 총회나 대표자 선임, 재산처분 등 법률행위에 남성과 똑같이 종중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는 3000개의 크고 작은 종중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일부 종중이 이번 판례를 부인하면서 여성을 배제한 채 총회를 개최하거나 대표자 선임 및 재산처분 등에 대한 결의를 했을 경우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사위도 처가에 재산 요구할것” “일부 종중 이미 여성 받아들여”

    대법원이 성인 여성을 중중(宗中)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내놓자 유림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반면 여성 단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유림들은 여성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면 더 이상 종친회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친회의 재산은 조상을 섬기는 데 쓰여져야 하지만 ‘출가외인’인 여성에게 재산을 분배하면 결국 종친회가 와해된다는 주장이다.이승관 성균관 전례위원장(전주 이씨 양녕대군 후손)은 “딸이 친정 재산에 권리를 갖게 되면 반대로 사위도 처가에 재산 분배를 주장하게 되는 것 아니냐.”면서 “전주 이씨의 경우 성년 남자가 1만명이고 여자도 비슷한 숫자인데 각기 다른 성씨를 가진 사위들이 종중에 관여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분쟁을 몰고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 이후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국내에 최소 2000∼3000개의 종중이 있다. 이 가운데 재산이 많은 대종중만 해도 350∼500개. 각 종중마다 한건씩의 소송을 내더라도 얼마나 많은 재산 분쟁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일부 종중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딸도 재산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최상구 한국씨족연합회 사무총장(경주 최씨 화숙공파)은 “종중 회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족보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인데 이미 여러 종중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성년 여성의 이름을 족보에 올린다고 해서 종친회 와해를 운운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단체들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며 이번 판결을 매우 반겼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국장은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가 유교 영향권에 들기 전 여성의 지위를 제대로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나길회기자kkirina@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어머니 홀로 키워낸 혼인외 출생자

    어머니는 처녀 몸으로 유부남인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저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서 본처와 함께 살았고, 제 등록금과 양육비는 어머니 혼자서 도맡았습니다. 이제 결혼하려고 하는데 혼례식 비용을 아버지에게 달라고 했더니 연락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상대로 혼례 비용과 과거의 교육비나 양육비 등을 청구할 수 없나요. -이금희(가명) 혼례 비용은 자녀양육비에 해당하며 부모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요. 또 과거의 양육비를 부모 중 한쪽이 부담했다고 다른 한 편에 대해 청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문제가 쟁점입니다. 옛날처럼 16∼18세의 자녀를 혼인시키던 시절이라면 마땅히 부모가 혼인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혼인 당사자들이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자들은 돈이 없을 뿐 아니라 미성년자의 양육과 교육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혼인비용은 자녀양육비의 일부로 보아 부모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년자가 혼인하는 경우에는 부모에게 혼례비를 청구할 법적인 권리가 없습니다. 대법원은 부모가 자녀의 혼인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인륜에 의한 것일 뿐 자녀가 부모에게 이를 양육비로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1979.6.12. 선고79다249). 결국 자녀의 혼례비를 대주는 것은 부모의 윤리적·도덕적 의무일 뿐이지 법률적 의무는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 없이 외롭게 자란 금희씨는 성년을 넘겨 결혼을 앞두고 여전히 억울하게 대우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 중 자녀이든 혼인 외의 자녀이든 성년자의 혼례식 비용을 비롯한 혼인비용은 혼인 당사자가 부담할 문제입니다. 부모에게 재산이 많더라도 자녀는 그 부모의 처분만 기다리라는 것이 법의 취지이므로 금희씨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과거 양육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혼인외 출생자를 양육한 어머니가 양육비를 상환하라며 생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생모도 아이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면서 “양육비는 생모가 자신의 고유의무를 이행한 데 불과하므로 남에게 전가시킬 수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근 이 판례는 변경되었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부모 중 어느 한쪽만이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우 아이를 양육하는 일방은 상대방에 대해 현재 및 장래의 양육비 분담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자녀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아이의 출생 이후 소요된 과거 양육비 역시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양육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에서 비롯됐거나 자녀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는 청구권이 없어집니다. 과거 양육비는 금희씨의 어머니가 생부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지만, 금희씨는 직접 청구할 수 없습니다. 성년에 이를 때까지 금희씨를 양육하느라고 비용을 들인 사람은 금희씨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양육비 상환 청구소송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금희씨가 생부의 딸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법률적으로는 ‘인지’라고 하는데, 생부 스스로 자신의 호적부에 자녀로 인지신고나 출생신고를 하는 것을 임의인지라고 부릅니다. 임의인지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는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 소송을 내 승소판결을 받아 강제인지의 방법으로 생부의 호적에 금희씨의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임의인지이든 강제인지이든 인지가 되면 금희씨는 태어날 때부터 생부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됩니다. 생부는 원칙적으로 자녀의 출생시점부터 바로 양육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다만 인지신고나 인지 판결 확정일로부터 계산해 10년 이전의 양육비 부분은 시효가 소멸되므로 청구할 수 없습니다.
  • 대법관출신 변호사 수임사건 해부

    사법개혁을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대법원의 개혁이다. 최근 들어 헌법재판소가 떴다지만 그건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크나큰 이슈에 한정된다. 실제 국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판결은 여전히 대법원이 내린다. 권위있는 최종심인데다 하급심 판례에 대해 지배적인 구속력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이 그동안 인권에 충실했던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19일 오후 11시5분 방영되는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은 바로 이 문제를 건드린다. 제목도 ‘대법원, 인권의 보루인가?’다. 우선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대법원 사건을 주로 맡는다는 것이다.‘급’이 급이다 보니 변호사도 급이 맞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관예우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이미 몇 차례나 문제제기가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2003년 8월 그런 취지의 기사를 냈다. 의뢰인이 꼭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면 반드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넣는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대법원 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는 반론까지 실려 있다. 그러나 PD수첩에 따르면 얘기는 다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 13명이 수임한 3741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퇴임 직후 2년 동안 1821건을 수임했고 그 가운데 1256건(69%)이 대법원 사건이었다. 어떤 변호사는 그 수치가 93%까지 올라갔다. 요즘은 그 기간이 많이 줄었다지만 법조계에서 전관예우는 보통 2년을 기준으로 잡는다. 내용을 따지고 들면 의문부호가 하나 더 늘어난다. 이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맡은 형사사건 가운데 특가법과 특경법, 선거법에 대한 변호 비율이 46.5%에 이른다. 또 노동 관련 사건을 분석해 보면 해고무효 소송 20건 가운데 해고자측 편을 든 것은 단 1건, 임금 소송 53건 가운데서는 6건, 퇴직금 소송 18건 가운데서는 3건에 불과했다. 노동 관련 사건의 90%를 사측을 위해 변호한 것이다. 물론 대법관 출신답게 뛰어난 법률적 지식으로 승소 여부를 미리 판단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PD수첩은 여기서 재력과 권력을 갖춘, 거물급 반사회적 범죄자만 변호한 게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앞으로 바람직한 대법원의 모습까지 다룬다.PD수첩은 법률포털 로마켓을 통해 3741건의 수임건수를 입수했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실과 공동으로 자료를 분석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20) 부산대학교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20) 부산대학교

    부산대 법대가 한국형 로스쿨 모델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만큼 로스쿨 유치를 앞둔 학교측의 고민도 깊다. 문제는 ‘내실화’다. 로스쿨의 성패가 형식이 아닌 내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300여명의 법조인을 배출한 학교로서 규모면에서나 교육수준에서 최고를 자신하지만, 이쯤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학교측의 판단이다. 또 로스쿨 도입을 계기로 서울행을 고집하는 지역 인재들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아두겠다는 복안이다. 때문에 부산대 법대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성화 전략에서도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방대로서 최고가 아닌 국내 명문 법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자산관리公 등 이전 앞둬 특화 유리 부산대 법대의 전략은 전문화와 특성화의 분리에 있다. 각 법 영역을 고루 전문화시키면서 그 중 한 가지 영역을 집중 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학교측은 로스쿨을 유치하게 되면, 우선 법 영역을 세무·지적재산·금융증권·보험·국제통상·의료·환경·IT 등 8개 분야로 세분화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이들 영역별로 전문법연구센터를 활성화해 전문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영역별 전문화를 통해 학생들이 최소 한 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도록 커리큘럼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법대측은 “영역을 세분화해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부산대 로스쿨 학생이라면 졸업하기 전에 한 개 부분에서 심화된 법률지식을 갖도록 학점이수제 등을 활용해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성화는 8개 전문영역 중 택일해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증권 분야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다. 부산에 한국자산관리공사,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주택금융공사, 대한주택보증㈜ 등 금융기관이 대거 이전될 계획이어서 금융증권 분야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증권 분야만큼은 전문화와 더불어 부산대 법대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같이 교육프로그램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부산대 법대는 교수충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형사법, 지적법, 행정법, 국제법 전공의 경력교수 4명을 충원한 데 이어 최근 6명의 실무교수진을 추가로 영입했다. 실무경력도 경력이지만,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박사학위가 있는 법조인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앞으로도 전문화를 위해 최소한 40명의 교수진을 확보한다는 것이 학교측의 계획이다. 교수진이 부족하면 영역별 전문화가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원어 강의도 크게 늘릴 계획이다. 법대측은 영미법, 중국법, 일본법만큼은 원어로 강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원어로 강의가 가능한 교수진 확보에도 발벗고 나섰다. ●금융증권분야 전공 학생 특별선발 계획 부산대 법대는 교수진뿐만 아니라 학생선발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특성화를 꾀하는 만큼 학생들도 준비된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법대측은 금융증권분야를 특화하게 되면, 학생도 일정 부분 금융증권분야의 전공생을 특별선발할 계획이다. 학부에서 관련 분야를 전공한 학생을 뽑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육성하겠다는 얘기다. ●시설은 해외로스쿨 벤치마킹 물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도 국립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산대 법대는 이미 전용 법학관을 확보하고 있지만,1500평 규모의 제2법학관 추가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새 법학관에는 로스쿨을 위해 필요한 법학도서관, 모의법정, 판례정보검색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법대측은 “해외 로스쿨을 참관하면서 로스쿨에 적합한 교육시설을 많이 참고했다.”면서 “인적·물적 인프라 모두 맞춤형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법조계의 부산법대인 부산대 법대 출신 법조인은 320여명에 이른다. 지방대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며, 전국적으로 따져 봐도 6∼7위권의 성적이다.1948년 신설된 법대의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매년 30명 안팎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51년 첫 사시합격자… 총 320여명 배출 첫 테이프는 허형구 전 법무부 장관이 끊었다.48학번인 허 전 장관은 1951년 고등고시 사법과 2회에 합격해 서울지검부장, 서울지검차장검사, 청주지검장 등을 지냈다. 이후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낸 정상천변호사도 부산대 출신이다.50학번으로 고시 사법과 6회와 행정과 양과에 합격했다. 내무부 차관,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난 1999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영모 전 헌법재판관은 56학번이다. 고시 사법과 13회에 합격해 평생을 판사로 지냈다. 마산지법원장, 서울형사지법원장, 서울고법원장을 거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헌법재판관 등을 지냈다. 안석태(59학번) 전 부산고법원장은 고시 사법과 16회다. 청주지법원장, 인천지법원장, 부산지법원장 등을 지내고 부산고법원장을 끝으로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밖에 재야법조인으로는 김석주(51학번) 전 대구고법원장, 윤영오(53학번) 전 대구고법원장 등이 있다. 현직 법조인으로는 박흥대(73학번)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맏형뻘이다. 사시 21회로 울산지원 부장판사, 부산지법 부장판사, 창원지법 진주지원장 등을 거쳤다. 그 뒤를 이어 최인석(71학번) 창원지법 부장판사, 최형천(77학번) 부산지법 부장판사, 조한욱(76학번) 서울지검 부장검사, 김종로 (80학번) 부산지검 부장검사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혁규 의원 등 각계 고위직에도 포진 배금자(78학번) 변호사도 이 대학 출신이다. 사시 27회에 합격했으며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주한미군 범죄사건, 정신대 문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을 전담했으며 국내 첫 담배소송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정·관계 인사의 면면도 화려하다. 강덕기 전 서울시장(직대), 김영환 전 부산시장, 조병규 전 경남도지사,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등이 부산대 법대 출신이다. 또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 안영수 전 노동부차관, 권욱 소방방재처장 등 고위급 인사가 각계에 포진돼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임재호학장 인터뷰부산대 법대는 특히 로스쿨 유치를 앞두고 특성화와 실무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임재호 법대학장은 “정부에서 로스쿨별 특성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특성화 개념을 어떻게 잡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학장은 “특성화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특성화에만 매몰돼 기초 법률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기본적인 법학교육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전문화와 특성화의 분리다. 법영역을 골고루 전문화하되 그 중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때문에 전문법연구센터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실무교육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특히 실무교수진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임 학장은 “해외 로스쿨을 참관하면서 실무교수와 학생간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실무경험은 많지만 교육 노하우가 없는 교수진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실무교수진을 보강하면서 실무경험과 함께 학교에 대한 관심도를 중요시해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면서 “평소 연구와 교육활동에 관심을 가져온 실무가들이 학교에도 빨리 적응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임 학장은 또 “법조인들에게 당장 일반교수 수준의 강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시스템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부산대 법대에서는 실무과목 하나에 이론담당교수와 실무담당교수를 동시에 배치해 돌아가면서 강의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론적 배경을 기초해 실무로 정리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임 학장은 “로스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특성화와 실무교육의 특성을 잘 살려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교육프로그램의 질이 로스쿨 성공정착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클릭 이슈] 검찰 영상녹화물 증거제출 ‘딜레마’

    [클릭 이슈] 검찰 영상녹화물 증거제출 ‘딜레마’

    “지금부터 조사과정을 촬영하겠습니다. 영상녹화물은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2007년부터 검찰 조사에서 보게 될 광경이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지난 11일 차관급 실무회의에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오는 18일 사개추위 장관급 본회의가 남았지만 별 수정없이 통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영상녹화를 놓고 법조 3륜의 찬반논쟁이 뜨겁다. ●영상녹화물, 조서보다 더 문제 사개추위는 당초 검찰의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장주영 사무총장은 이런 점을 들어 법정에서 이뤄지는 공판을 근거로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중심주의를 확립하겠다는 사개추위의 의지가 후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 총장은 “영상물이 주는 느낌은 조서보다 강렬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인정하면 더욱 강력한 조서중심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조서를 부인할 경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영상녹화물을 제시할 수 있어 잘못된 수사결과를 뒤집을 가능성이 더욱 줄어든다는 얘기다. 아울러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재판에 참여하는 일반 국민들이 영상물에 몰입된 채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됐다. 법원 관계자는 “비전문가인 국민들이 선입견을 갖게 되면 법관이 도와주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이 그만큼 좁아지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이런 폐해를 설명하고 영상녹화를 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조사 이전에 회유와 협박을 하고 조사과정만 촬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불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권침해 방지와 투명한 수사실현, 왜 안 찍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판례변경에 따라 피의자가 부인한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을 때도 검찰은 영상녹화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사개추위가 검찰의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형소법 개정에 나서자 검찰의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는 평검사회 이후 서울남부지검에 마련된 녹음·녹화시설을 단체로 방문했다. 이어 지난 5월 공청회와 6월 세계 수사기관 관계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여는 등 영상녹화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검찰은 영상녹화제가 1980년대 이후 영국·미국·호주 등에서 도입하고 있는 보편적인 수사방식이라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행이나 인권침해를 막고 투명한 수사를 실현할 수 있다.”며 영상녹화제를 옹호했다. 검찰은 종이조서와 달리 피의자의 표정과 진술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고, 진술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착오 등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자고는 했지만…” 속앓이 사개추위가 애초의 목표와 달리, 검찰조서와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게 된 것은 검찰의 반발과 재판업무의 과도한 부담에 대한 법원, 양쪽의 불만을 절충해 수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조서의 증거능력을 완전히 없애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법원으로서는 사법개혁을 후퇴시키는 데 동의했다는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법원은 또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영상녹화물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부담도 안게 됐다. 사개추위의 개정안에 대해 검찰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영상녹화제를 통해 수사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보인다. 하지만 검찰에서도 비록 일부이지만 영상녹화물에 대한 거부감은 있다.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 담당 검사들은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다양한 설득과 협상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모두 녹화하면 법원에서 회유, 협박이란 이유로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전국 검찰청에 서울남부지검 수준의 영상녹화장비를 설치하려면 약 15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촬영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예산만 낭비한다는 것이다. 사개추위는 검찰로 하여금 수사기록제와 진술거부권 고지절차를 시행하고, 변호인 수사과정의 참여를 확대하도록 했다. 하지만 변호인이나 법원, 검찰간에 끊임없이 제기될 영상의 조작 가능성 등 영상녹화물을 둘러싼 증거능력 공방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클릭 이슈] 일조권 침해 배상 소송인ㆍ법원 갈등

    햇볕을 쬘 법적 권리인 일조권을 침해당한 개인에게 대법원이 “위자료로 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1983년이다.20여년이 지난 현재 업계는 일조권 등 환경권 관련 소송이 연간 600∼700건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지난 5년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한 해 짓는 15층 이상 건물수가 3300여동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한 수치이다. 법원은 다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일조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당사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위자료 개념으로 일조권을 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정도인 수인한도에 대해 지난 1996년 서울고등법원이 기준을 제시했다. 법원은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9시∼오후 3시까지의 6시간 중 연속 2시간 동안 해가 들지 않거나, 오전 8시∼오후 4시까지의 8시간 중 4시간 동안 해가 들지 않는다면 수인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일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심리에서 법원은 두 가지 점을 따져왔다. 하나는 원고의 피해인 수인한도 여부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 여부에 대한 것이다. 법원은 일조권 침해 원인을 일으킨 불법행위 당사자와 피해자에 대해 배상책임과 권리를 제한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근 대법원은 재건축 아파트 때문에 일조권을 침해당했을 경우 재건축조합과 함께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공사도 공동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또 집을 갖지 못한 세입자의 일조권을 인정하면서 거주하지 않는 주택 소유자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실질적인 침해가 있을 때에는 배상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 준 것이다. ●“시가 반영분만큼 보상땐 소송남발” 이같이 법원의 판례가 자리잡으며 행정청은 건축 허가 때부터 일조권 등 환경권을 고려해 인허가를 내주고 있다. 국세청도 지난 3월 기준시가에 일조권 및 조망권·소음권 등 환경권을 반영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조권 소송은 줄지 않고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법원의 판단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조권의 가치에 비해 소극적이며 배상액 산정이 엄격하다고 비판한다. 일조권 소송에서 이길 경우에도 원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배상액은 300만∼500만원 정도이다. 법원은 일조권을 환경권의 하나로 파악해 아파트 신축에 따라 일조권이 나빠졌더라도 주변 도로 등 환경 상황이 나아졌을 경우 배상액을 깎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집값 하락 등 일조권 침해에 따른 피해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일조권 이외의 환경권도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건물이 밀집한 서울 등지에서 일정한 정도의 일조 침해는 불가피한 것”이라면서 “가해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판단 없이 피해자의 모든 피해를 배상해 준다면 소송이 남발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송 급증…배려하는 마음 필요 전문가들은 일조권 소송이 이어지는 원인에 대해 법원과 당사자의 시각차 외에 ▲건물이 밀집된 대도시의 물리적 요인 ▲행정착오에 따른 피해 ▲감정 등 기술미비 ▲지역 이기주의 등을 꼽았다. 특히 수개의 전문업체와 대학연구실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업체가 없는 상황이 소송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아파트 신축에 따라 일조권 침해를 받는 집이 40가구라는 S대 연구팀의 감정을 믿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 지정 감정기관인 H대학 연구팀의 감정 결과 피해를 입은 집은 7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사례도 있다. 소송이 임박해서야 일조권 감정 등 대책을 세우는 건설업체의 안이한 자세도 소송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일조권 소송 전문 변호사인 이승태 변호사는 “건물을 지을 때 약간만 비껴서 지어도 일조권 소송을 막을 수 있다.”면서 “서로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부딪쳐 소송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일조권 관련 주요판결 및 사건 ▲1994.2 서울지법 일조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배상 첫 판결 ▲1995.3 부산지법 일조권 침해 신축 아파트에 공사중지 가처분 첫 결정 ▲1996.1 서울지법 일조권 침해에따른 집값 하락분 보상 첫 판결 ▲1996.3 서울고법 일조권 기준 첫제시-동지일 기준으로 오전 9시∼오후 3시 중 연속 2시간, 오전 8시∼오후 4시 중 4시간 ▲2001.5 서울지법 건물 2채로 인한 복합일조권 침해 첫 인정 ▲2002.1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일조권도 환경분쟁 대상에 포함 ▲2004.11 대법원 일조권 침해여부 판단 때 일조시간 외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 ▲2005.3 대법원 일조권 배상에 시공사도 책임있다고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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