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구호에 실종된 객관적 사실/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법이 틀려먹었어요.” 재판에 진 사람들로부터 곧잘 듣는 말이다. 당사자 얘기만 들으면 잘못된 판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판결문을 읽어 보면 틀려먹은(?) 법 때문에 재판에 진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Fact)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오히려 당사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억지인 것이다. 이처럼 법적 판단은 사실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올바른 법적 판단도 기대할 수 없다.
객관적 사실 파악의 중요성은 재판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4대강 사업, 비정규직 법안, 미디어법 등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굵직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올바르고 현명한 해법 또한 객관적 사실의 토대 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필자는 이 사업의 마스터플랜이 지난달 8일 최종 확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어이가 없었다. 마스터플랜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그렇게 끼리끼리 편을 갈라 다투어 왔다는 사실을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제대로 된 계획조차 없이 ‘4대강 살리기’라고 홍보부터 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정부가 우선 문제지만, ‘대운하’ 혹은 ‘환경파괴’ 논리를 내세워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만 하는 쪽도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결국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쪽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쪽 모두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른 탁상공론에 기초한 신념에 따라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다른 현안들도 대동소이하다. 다양한 대중매체에 관련 정보들이 넘쳐나고 전문가들의 고견도 수없이 제시되지만,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서 올바른 판단에 도움을 주는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사여구로 장식된 홍보성 정보 혹은 정치적 구호이거나 일방적 의견(Opinion 견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사회적 공기(公器)임을 자처하는 주요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전하기보다는 그 사실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강조하려는 충동에 빠져, 객관적 사실을 가장한 의견으로 오히려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언론들도 많다.
오죽하면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 김훈씨가 “요즘 글쓰기가 어렵고 신문, 저널 읽기가 고통스럽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하지 못하는 언어가 횡행하고 있어 단절이 완성돼 가고 있다.”고 했을까.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김훈씨는 그 원인을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정치인들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시작한 편가르기가 이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고질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객관적 사실’에 터잡아 올바른 판단을 하려 하지 않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을 판단한 후 섣부른 집단 신념을 형성하고 그 신념에 좇아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들 편으로 집단을 형성해서 큰 목소리로 이 땅의 정의실현을 외친다. 그러나 정의는 사실을 토대로 실현되는 것이지 구호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섣부른 신념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어서 논리적 반박이나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 집단화되면 더욱 완고해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식의 집단적 편가르기와 섣부른 집단 신념의 과잉, 거침없는 행동은 객관적 사실과 그에 터잡은 올바른 판단이 설 곳을 앗아가 버린다. 그들이 외쳤던 정의실현도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나는 신념이 가득찬 자들보다는 의심에 가득찬 자들을 신뢰한다.”는 김훈씨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