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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신상공개 vs 신상털기/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상공개 vs 신상털기/박현갑 논설위원

    “살인범 얼굴을 왜 가려 주나. 흉악범에게 인권을 앞세우는 건 사치다.” TV나 신문에 강력범죄자가 얼굴에 마스크를 쓰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나올 때면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다.수사기관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상 비밀준수 의무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사건일수록 피의자 신상공개 여론은 거셌다.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강서 PC방 살인 피의자 김성수(29)씨도 여론의 성화로 결국 공개됐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2009년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49) 사건이 계기였다. 범죄 예방과 국민의 알권리 강화를 위해 언론에 강호순의 얼굴 등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국회는 다음해에 특정강력범죄처벌 특례법을 개정해 특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한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런 공개가 유사범죄 예방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된 게 없다. 비공개의 경우 개별 언론이 일방으로 깨는 일도 없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은 논란이다. ‘키보드 워리어’에 의한 신상공개도 있다. 사회적 공분이 발생할 사건들에 나타나는 사이버상의 ‘신상털이’다. 대중의 관심을 내세워 파헤치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는 사적 보복이자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초등 6학년생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초등학교 여교사 사건이 보도되면서 인터넷에 해당 여교사 사진이라며 나돌았으나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2년 전에는 유흥업소 여성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SNS 계정 ‘강남패치’가 문제가 됐다. 유흥업에 종사하지 않는데도 얼굴이 공개된 한 여성은 파혼까지 당했다. 지난 13일에는 아동학대 의심을 받은 30대 어린이집 교사가 ‘SNS 조리돌림’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신상털기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다.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받은 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과 대중의 호기심 충족 욕구가 신상털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신상털이범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무죄 추정의 원칙 또한 누구나의 인권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 샤라포바 새 연인 누구인가 봤더니

    샤라포바 새 연인 누구인가 봤더니

    러시아 출신의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31)의 새 연인은 영국인 사업가 알렉산더 길크스(39)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은 21일 “샤라포바가 길크스와 로맨틱한 관계를 인정한 뒤 처음으로 영국 풀럼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샤라포바는 이달 중순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서 길크스와 만나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고, 이날 영국 풀럼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까지 언론 매체의 카메라에 담기면서 둘의 사이는 ‘공개 연애’로 전환됐다. 두 사람은 올해 초부터 연인 관계라는 추측이 나돌았으나 당사자들이 확인하지 않았고, 함께 있는 사진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길크스는 온라인 아트 경매사이트 ‘패들8’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으로 204년부터 3년 연속으로 미국 남성잡지 ‘디테일스’가 선정한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2008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으며 영국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자 등과도 가까운 사이로 이달 초 열린 영국 유지니 공주의 ‘로열 웨딩’에도 초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샤라포바와 길크스는 최근 영국의 같은 장소에서 서로 찍어준 사진을 나란히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샤라포바는 길크스의 사진에 ‘당신의 사진가가 내 사진가보다 실력이 좋군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서로 찍어준 사진이기 때문에 ‘내가 더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길크스는 패션 디자이너 미샤 노누와 2012년 결혼했다가 2016년 이혼했다. 샤라포바는 2010년 10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사샤 부야치치(34·슬로베니아)와 약혼했으나 2012년 초에 파혼했고, 2013년부터 테니스 선수인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7·불가리아)와 교제하다가 2015년에 헤어졌다. 길크스는 디미트로프와 결별한 이후 샤라포바의 첫 ‘공개 교제’ 대상자다. 2018시즌을 끝낸 샤라포바는 12월 말에 개막하는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선전오픈을 통해 2019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레이디 가가, 파혼 2년만에 17세 연상 새 연인과 약혼 발표

    레이디 가가, 파혼 2년만에 17세 연상 새 연인과 약혼 발표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본명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저머노타·32)가 17살 연상의 새 연인과 약혼한 사실을 공개했다고 CNN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레이디 가가는 전날 여성잡지 엘르가 주최한 제 25회 ‘위민 인 할리우드’ 행사장에서 탤런트 에이전트 크리스천 카리노(49)와 약혼한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레이디 가가는 행사 무대에 올라 신인 시절인 19세 때 성폭행을 당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 경험 등을 털어놓은 뒤 “나의 약혼자 크리스천과 매일 같이 나를 돌봐주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2월 레이디 가가의 새로운 열애설을 처음 보도한 잡지 피플은 “지금까지 양측 모두 관계를 정식으로 언급한 일은 없으나 연예계 내에서 둘은 공공연한 연인이었다”면서 “카리노가 레이디 가가의 일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고, 이에 대해 레이디 가가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레이디 가가는 2016년 7월 오랜 연인이자 약혼자인 테일러 키니(37)와 결별했다. NBC 인기 드라마 ‘시카고 파이어’ 출연 배우 겸 모델인 키니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 지 5년 만이며, 약혼한 지 1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피플은 카리노도 셀러브리티 연인이 처음은 아니라며 앞서 TV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매기 그린 역을 맡은 로렌 코핸(36), 조니 뎁의 전처 앰버 허드(32) 등과 교제했었다고 소개했다. 카리노는 CNN 앵커 브룩 볼드윈(39)과 1997년 결혼했으나 2015년 이혼했다. 카리노와 볼드윈 사이에는 두 딸이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은애 “위장전입 의혹 죄송… 사적 이익 없었다”

    이은애 “위장전입 의혹 죄송… 사적 이익 없었다”

    한국당 “8차례 위장전입… 지명 철회” 다운계약서 지적엔 “세금 납부할 것” 이영진 후보자 “흉악범엔 사형선고”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사적 이익을 얻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렇다 할 도덕적 의혹이 제기되지 않은 이영진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헌법적 가치에 대한 질의가 주를 이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은애 후보자가 1991년 이후 8차례 위장전입한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 서초구 주변에서 살면서 친정집이 있는 마포구 주변으로 수차례 주소를 이전했다. 특히 결혼한 이후인 1993년엔 마포구에 있는 부모님 지인의 집으로 전입했다.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청와대 인사 검증 기준에도 2005년 7월 이후 2회 이상 위장전입을 한 사람은 추천을 못 하게 돼 있다”며 “이 후보자의 주민등록이 어머니의 (부동산 관련) 딱지장사에 이용됐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어머니가 주민등록을 관리했다, 사적 이익을 얻은 바는 없다”면서도 주소지를 옮긴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추궁에 그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다 파혼 위기까지 간 상황에서 주소지 이전에 대해 친정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가정사를 털어놨다. 이 후보자는 “여하를 막론하고 주민등록 관리를 못한 건 제 잘못이다, 송구스럽다”고 했다. 2001년 서울 강남구 아파트를 매입하며 실거래가액보다 2억여원 낮은 가격에 신고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 후보자는 “(내지 않은 세금을) 납부할 방법이 있다면 납부하겠다”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낙태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현행법의 낙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형제에 대해선 “폐지 쪽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이 추천한 이영진 재판관 후보자는 사형제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고 극악무도한 흉악범이 있을 수 있으니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성애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사와 공무원이 징계를 받은 사안에 대해 그는 “동성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 동성애를 비판할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옳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2009년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임명된 뒤 2011년 법관으로 재임용된 것도 도마에 올랐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 중립성에 충분히 의심할 만한 지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판빙빙 어디에? 장웨이제 실종 사건 수면 위로..“20년째 증발 상태”

    판빙빙 어디에? 장웨이제 실종 사건 수면 위로..“20년째 증발 상태”

    중국 배우 판빙빙의 행방이 3개월째 묘연한 가운데 장웨이제 실종 사건이 재조명 되고 있다. 판빙빙의 탈세 의혹은 중국 공영 방송의 토크쇼 진행자였던 추이융위안(崔永元)의 인터넷 폭로로 불거졌다. 지난 6월 당시 추이융위안은 “판빙빙이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영화 촬영 4일 만에 6000위안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중국 당국은 판빙빙을 가택연금 한 상태로 탈세 혐의를 조사했다. 이후 판빙빙은 3개월 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SNS 활동까지 중단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촬영을 마친 드라마와 영화의 개봉은 모두 미뤄졌다. 이어 지난 7일 대만 ET투데이는 베이징의 고위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판빙빙이 현재 감금된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상태가 참혹하다”고 보도했다. 또 중화 매체 봉황망은 판빙빙의 사무실을 방문한 결과 사무실은 비어 있었고, 사무실 안에 모든 서류들 역시 치워진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판빙빙의 사무실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국가디지털영화산업단지’ 2층에는 수십 개의 영화사가 들어서 있으며, 판빙빙은 3개 사무실을 공유해 다른 영화사들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여러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망명설부터 파혼, 감금, 사망, 성노예설까지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 다롄TV 유명 여성앵커 장웨이제 실종 사건을 언급하며 판빙빙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장웨이제는 당시 정치인과 내연관계였으며 임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8년 실종된 후 현재까지 행적이 불분명하다. 이후 인체의 신비 전에 전시된 임산부 시신이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발달장애 아들 둔 허강원씨의 삶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발달장애 자식에게 둔기 든 애끊는 父情 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야동 때문에’…결혼식 일주일 앞두고 파혼 선언한 여성

    ‘야동 때문에’…결혼식 일주일 앞두고 파혼 선언한 여성

    깊은 신앙심을 가진 한 여성이 결혼식 날을 일주일 앞두고 모든 예식을 취소하게 된 사연을 공개해 화제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온라인 미디어 ‘러브왓매터스’ 페이지북 페이지에 올라온 클레어 돌턴(21)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미국 유타주 출신의 클레어는 4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남자친구가 포르노를 시청한 것을 알게 됐고, 그의 휴대전화에서 선정적인 사진들을 발견한 후 파혼을 선언했다. 클레어는 “결혼 일주일 전 남자친구와 혼수를 준비하러 다니는 중이었다. 현지 가게가 문을 닫아 운영시간 확인 차 무의식적으로 그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는데 인터넷 검색창에서 예상지 못한 세 단어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둘러 휴대전화에 띄어져있는 여러 개의 창을 빠져나왔지만 속이 메슥거렸고, 특히 그 세 단어가 나의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덧붙였다. 신실한 연인 관계를 원했던 클레어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남자친구는 “친 형에게 문제가 생겨서 자신의 전화기를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고 해명하려했다. 몇 시간의 긴 대화 끝에 그는 결국 포르노를 보았으며, 중독되었음을 인정했다. 클레어는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단호하게 결혼식을 취소했다. 한편 그녀의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해당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그녀가 과잉 반응을 했다. 그는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았다”면서 “그가 ‘항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중독된 것처럼 만드냐”며 반박했다. 또한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거론해 전 남자친구의 사생활을 그대로 공개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가 깨졌다면 그녀는 옳은 결정을 한 것이다. 제3자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라도 클레어에게는 중대한 사안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한데 동의했다. 사진=페이스북(클레어 돌턴)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개그우먼 심진화, 김원효와 파혼 위기 고백 “‘1억 있다’고 청혼했는데...”

    개그우먼 심진화, 김원효와 파혼 위기 고백 “‘1억 있다’고 청혼했는데...”

    ‘해피투게더3’ 개그우먼 심진화가 남편 김원효 거짓말 때문에 파혼할 뻔했던 사연을 공개한다. 26일 방송되는 KBS2 예능 ‘해피투게더3’는 ‘해투동: 결혼은 잘한 짓이다’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는 김진수, 박준형, 함소원, 심진화 등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개그우먼 심진화는 남편 김원효 거짓말에 속아 결혼을 했다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심진화는 이날 “김원효가 ‘1억이 있다’며 청혼을 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결혼 전 일이 잘 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웠다. 사랑하는 남자가 태산처럼 큰돈인 1억까지 있다고 하니 결혼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1억 청혼’은 금세 거짓말로 탄로 났다. 심진화는 “집을 구하러 다니다 김원효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난 1200만 원이 있었는데 김원효는 1000만 원이 전부였다. 1억은커녕 나보다 돈이 더 없었다”고 말했다. 김원효의 거짓말에 화가 난 심진화는 당시 하늘에 대고 욕까지 했다면서 당시에 쏟아낸 ‘거친 욕’을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심진화는 “거짓말에 화는 났지만, 내가 김원효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맨땅에 헤딩’이라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냥 결혼했다”고 밝히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한편 심진화가 밝힌 김원효와의 결혼 스토리는 이날(26일) 오후 11시 10분 ‘해피투게더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악랄해진 ‘가짜 글’ 철창행 늘었다

    ‘나체 합성 사진’ 20대 항소심 등 벌금형 넘어 이례적 실형 선고 대법 “명예훼손 양형기준 마련” 최근 사이버 공간에 허위사실을 퍼뜨려 타인을 비방하는 행위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간 주로 벌금형이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인터넷상 허위 비방으로 인한 피해와 사회적인 파장이 무겁게 판단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엄기표 판사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가 박모(39·여)씨에게 지난달 말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박씨를 법정 구속했다. 박씨는 2013년 1월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 자신과 파혼한 이모씨를 겨냥해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이OO란 또라이가 박씨에게 빚을 져서…”라는 등의 허위 글을 올려 비방한 혐의를 받았다. 박씨는 2000년대 후반부터 30대 젊은 CEO로 각종 방송이나 강연 등에 나서 이름을 알렸고, 선고 직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 5월에는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류승우 판사가 정보통신망 이용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개그맨 겸 배우 출신 기자 이재포(58)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배우 백모씨를 이른바 ‘갑질 여배우’로 비방하는 기사를 작성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선 매우 엄한 처벌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이버 공간 명예훼손은 항소심에서도 감형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 형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인터넷 블로그에 한 여성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나체사진을 합성해 성적인 표현의 글을 올린 이모(26)씨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임성철)가 벌금 1000만원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징역 8개월을 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인터넷 게시 자료는 무한정한 복제 가능성이 있고, 한 번 유포된 자료는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이런 종류의 범죄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인격적 살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1심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판단했다. 정보통신망이용법 제70조의 2는 타인을 비방하기 위해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면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양형기준은 아직 없다.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됐기 때문에 양형기준의 필요성이 적었다”는 게 법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적용을 목표로 명예훼손 전반의 양형기준 마련을 논의 중이다. 양형위 자문위원인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적인 파급력이 커 정책적 관점에서 예방 효과를 크게 하자는 취지”라면서 “명예훼손은 사건별로 양상이 워낙 다양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조계에선 범행 방식에 비해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사이버상에서의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의 경우 형을 가중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좋은 아침’ 김청 집공개, 넓은 정원+통유리+대리석 인테리어

    ‘좋은 아침’ 김청 집공개, 넓은 정원+통유리+대리석 인테리어

    ‘좋은 아침’ 배우 김청이 싱글라이프를 공개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14일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는 배우 김청(57·김청희)이 출연했다. 이날 김청은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자신의 집을 공개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넓은 정원을 가진 단독 주택에 시청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날 공개된 김청 집은 넓은 정원을 자랑했다. 김청은 “우리 집 콘셉트가 파티”라며 “손님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혼자 있는 걸 알고 많이들 놀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통유리로 된 거실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집에 “제가 답답한 걸 싫어한다. 그래서 유리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대리석 등으로 장식된 욕조 등이 있는 욕실은 영화 속에 나오는 모습이었다. 김청은 “처음에 꿈에 부풀었다. 여기서 남자친구랑 거품 목욕하면서 와인도 한잔하는, 그런 모습을 꿈꿨다.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두 번 쓸까 말까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 2위 출신인 김청은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얼굴을 알렸다. 김청은 과거 신혼여행을 떠난 지 3일 만에 파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미혼으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패키지’라는 강매…내 맘대로 못 하는 내 결혼식 어떡하죠?

    ‘패키지’라는 강매…내 맘대로 못 하는 내 결혼식 어떡하죠?

    “제 결혼사진 찍으러 누가 오는지 어느 업체인지도 몰랐어요. 아예 예식장 패키지로 묶여 있어 뺄 수도 없더라고요.” 지난 4월 부산에서 결혼한 윤모(32)씨는 결혼 준비하던 생각만 하면 아직도 화가 치민다.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괜찮은 예식장을 고르자니 필수 패키지로 묶여있는 게 많았고, 패키지가 없는 곳을 고르려니 위치가 좋지 않거나 비싼 호텔밖에 없었다”면서 “특정 업체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다른 곳도 대부분 패키지를 강제하고 있어서 원치 않는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윤씨는 결국 패키지가 포함된 예식장으로 정했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배려해 교통이 좋은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DVD, 식전영상, 스냅, 메이크업, 드레스 등 모든 게 다 계약에 강제로 포함돼 있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어떤 건 안 하겠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금액을 빼주는 게 아니라 돈을 내고 안 하는 수밖에 없더라. 결국 예식장에서 계약한 그대로 다했다”고 말했다. 예식장의 ‘패키지 강매’에 대한 불만은 윤씨만의 일이 아니다. 업체가 횡포를 부려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부당해도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 가격 맞아?… 불안한 예비부부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웨딩홀에서 정해주는 대로 하다 보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하다. 비용이 정확한 건지, 어디에 얼마가 쓰이는지 제대로 확인할 길도 없다. 내역을 공개한다고 해도 웨딩홀 측에서 ‘가격이 원래 이렇다’고 설명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당사자로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윤씨는 “사진 같은 것도 누가 찍으러 오는지, 어떻게 찍는 사람인지도 모르니까 불안했다”고 말했다. 원치 않게 비용을 낸 것도 모자라 어떤 수준의 서비스를 받게 되는지도 몰랐다. 예식장이 책정한 가격과 당사자가 느끼는 가격의 괴리가 커질수록 당사자는 억울하다. 실제로 결혼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예식장에서 찍어준 사진이 엉망이어서 속상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웨딩홀에서 촬영일을 했던 이모(28)씨는 “내가 있던 곳은 들어온 순서대로 자리가 나면 메인작가에 올리는 시스템이었다”면서 “경력이 짧은 어린 친구였는데도 자리가 나니까 바로 본식 실장으로 올리더라”고 말했다. 비용을 내는 만큼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쓴다면 다행이지만 예식장에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쓰는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결혼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사진뿐 아니라 꽃 장식, 드레스, 메이크업 등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지불한 가격이 맞는 가격인지, 가격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내심 찜찜할 수밖에 없다. 결혼식 당일에야 확인 가능한 까닭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구를 위한 웨딩플래너인가요? 결혼시장 전반적으로 불투명한 게 많다 보니 웨딩플래너를 알아보는 커플도 많다. 전문가로서 알고 있는 정보도 많고 당사자들이 원하는 결혼식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웨딩플래너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결혼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지난 4월 결혼한 이모(32)씨 역시 웨딩플래너 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큰돈을 주고 계약해 결혼식 준비 전반을 맡겼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결혼식장까지 운행해주기로 한 셔틀버스는 오지 않았고 보내주기로 한 직원마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씨는 하객들에게 인사도 못한 채 결혼식 시작 전까지 직접 식장을 세팅하러 분주히 뛰어다녀야만 했다. 이씨는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인데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직접 오지도 않고 교육도 안 된 사람을 보내면서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결혼 관련 커뮤니티에는 ‘플래너한테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상담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비부부 입장에서는 결혼을 준비하는 부담이 더 커지기도 한다. ●스몰웨딩? 하고 싶어도 쉽지 않아요… 한국의 결혼식 문화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에서는 이른바 스몰웨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결혼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비용도 아끼고 의미도 살리기 위함이다.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스몰웨딩을 올린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스몰웨딩은 쉽지 않다. 예식장 하나를 잡으면 수백 명의 보증인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식장은 식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정도 이상의 보증된 손님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결혼 당사자들로서는 보증인원을 맞추다 보면 결국 스몰웨딩은 포기해야 한다. 최소한의 하객만 초대해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다.또한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가 어렵고 어느 정도까지 초대해야 하는지도 애매하다. 축의금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낸 축의금이 있으니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결혼한 A씨 역시 스몰웨딩을 꿈꿨으나 현실이 녹록지 않아 접었다. A씨는 “의미 있고 예쁘게 진짜 스몰웨딩을 할까 싶었지만 양가 친척들과 부모님이 꼭 불러야 되는 손님만 해도 150명이 넘어서 결국 포기했다”면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지만 초대 못 받은 친지들, 지인들이 마음 상해하는 걸 뒷감당할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 뜻대로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은 과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혼인건수는 2011년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 2016년부터는 30만 건 밑으로 떨어졌다. 결혼과 출산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된 시대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에서는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험난하다. 때로는 결혼을 준비하다 파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부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조치를 하는 등 결혼산업의 불공정관행을 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는 여전히 당사자들이 스스로 감내하고 극복해야 한다. 남의 잔치가 아니라 당사자가 행복한 결혼식을 만들기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쌓여있다. 결혼 준비과정을 거쳤던 많은 커플들은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고생했던 기억이 더 크다고 말한다. 이들은 “업계 전체가 너무 불투명하고 불친절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어렵고 가격도 제각각이어서 뭐가 맞는지 좋은지 잘 모르겠다”, “업계 관행도 너무 많고 사실상 독점구조여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내 결혼식이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는 말로 씁쓸한 소감을 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국가가 대를 끊었다”… 日 강제불임수술 피해자들의 절규

    [글로벌 인사이트] “국가가 대를 끊었다”… 日 강제불임수술 피해자들의 절규

    2만 5000명의 남녀가 평생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국가로부터 불임수술을 받았다. 그중엔 9살짜리 여자아이도, 10살 된 남자아이도 있었다. 10명 중 7명은 여자였다. 상당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의사의 손에 이끌려 몸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메스를 받았다. 싫다고 발버둥치다가 마취제를 맞고 수술대에 쓰러진 이도 있었다. “대(代)를 이었다가는 사회에 짐이 될 불량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에서 1996년까지 존속됐던 ‘우생(優生)보호법’ 아래에서 ‘합법’을 가장해 이뤄진 국가 주도의 인권 유린이었다. 일본 사회는 반성하고 있다. 그런 악법을 어떻게 70년이나 유지해 왔는지, 또 그 법이 사라지고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어떻게 피해자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강제 불임수술의 실태와 피해자의 고통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 1월 미야기현에 사는 61세 여성 A씨가 국가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 1000만원)의 피해보상 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A씨는 열다섯 살이던 1972년 12월 ‘유전성 정신박약’을 이유로 난관을 묶는 수술을 강제로 받았다. 잦은 복통 등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서른 살 즈음 ‘난소낭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난소를 절제했다. 이 때문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로부터 파혼을 당했다. 지난 3월 28일 센다이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A씨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는 어릴 적 마취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였는데, 이를 파악하지 않은 우생보호심사위원회의 잘못으로 강제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가능하게 한 우생보호법은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및 개인 존엄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14세 때 설명 못듣고 수술대 오른 70대男도 소송 A씨에 이어 70대 남녀 4명이 오는 17일 도쿄, 센다이, 삿포로 등 3개 도시 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낸다. 도쿄 지방법원에 소장을 내기로 한 미야기현 출신 남성은 아동 보호시설에 있던 14세 때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수술을 받았다. 그는 “내 인생을 돌려받고 싶다”고 했다. 우생보호법이 일본 국회를 통과한 것은 1948년이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인 1940년 나치 독일의 ‘단종법’(斷種法)을 참고해 만들었던 ‘국민우생법’을 이어받아 다니구치 야사부로라는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참의원이 입법을 주도했다. 다니구치는 “패전으로 영토가 협소해진 가운데 인구는 많고 식량은 부족하다. 급속한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선천성 유전병자의 출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전후 식민지에서 귀환한 사람들과 ‘베이비붐’에 따른 출생아 급증 등으로 인구 과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극심한 식량난과 주택난 속에 국민들의 큰 저항 없이 탄생한 우생보호법은 기존의 국민우생법보다 더한 독소조항을 갖고 있었다. 바로 ‘강제 불임수술 허용’이었다. 국민우생법하에서도 ‘다산(多産) 장려에 반한다’는 이유로 강제 수술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1949년 전국 시행… 후생성 ‘강제수술 가능’ 공문 1949년부터 유전성 질환 등을 이유로 한 국가 주도의 정관 수술과 난관 수술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당시 후생성은 강제 수술 여부에 대한 지방 행정기관들의 문의에 대해 “본인의 동의에 반해 수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신체구속이나 마취약의 사용도 인정된다”고 답했다. 1952년에는 유전병이 아닌 일반 정신질환이나 지적장애를 앓는 사람들도 강제 수술 대상에 새롭게 편입됐다. 수술 대상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정부 공식통계에 따른 우생보호법 불임수술은 총 2만 4991건. 이 중 3분의2(66%)에 해당하는 1만 6475건이 본인 동의 없는 강제 수술이었다. 미성년자도 2337명이나 됐다. 미야기현에서는 9세 여아와 10세 남아에게 수술이 이뤄졌다. 수술은 1955년(1362건)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연간 100건 이상 규모로 실시됐다. 마지막 수술은 1992년에 이뤄진 1건이었다. ●일부 의사·공무원 ‘실적 채우기용’ 집행 법을 집행하면서 일부 의사들은 범죄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홋카이도는 1965년 8~11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우생보호심사위원회 없이 서류 심사만으로 3명에 대한 강제 수술을 결정했다. 후쿠오카현에서도 1981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같은 과정으로 수술대에 오른 20~39세 남녀가 최소 6명이다. 1960년 오이타현은 한 정신과 의사가 제출한 여성 5명 강제 불임수술 신청서에 대해 “실제로 진찰한 결과인지 의문”이라며 보류 결정을 내렸다. 5명에 대한 건강진단서 기재 내용이 하나같이 ‘병명: 정신박약’, ‘현재상황: 정신 발육이 지체돼 있어 유전병이 인정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군마현에서는 1955년 우생보호법 대상 환자가 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오자 의사가 산부인과 전문이 아닌데도 맹장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불임수술을 진행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자기 잇속에 눈이 멀기는 일부 공무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강제 수술 건수가 195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자 실적에 부담을 느낀 후생성 공무원들은 1957년 수술 실적 증대를 독려하는 공문을 지방행정기관에 내려보냈다. 당초 예상했던 수술 실적 목표치를 밑도는 기관에는 주민 계몽활동 등 노력을 더 열심히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자기 실적을 위해 무리한 집행에 나선 현장 공무원들도 적지 않았다. 전체 수술건수 2593건으로 전국 최다인 홋카이도의 경우 1950년대에 ‘우생수술 1000건 돌파’, ‘전국 1위 실적’ 등의 홍보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 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오랜 기간 일본 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정치권의 폐지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늘 국회에 가면 후순위로 밀렸다. 그러던 중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인구개발회의,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여성회의 등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여당인 자민당은 국내 의견 등을 수렴해 1996년 우생보호에 관한 조항 등을 삭제하고 ‘모체보호법’으로 바꿨다. 이후에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구제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2016년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피해 실태 조사와 피해자 법적 구제를 권고했다. 이때마다 일본 정부는 “합법적인 조치였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강제성 입증·소멸시효 해석이 쟁점으로 앞으로 진행될 피해 보상 소송에서는 자신이 강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피해자들이 어떻게 입증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강제 수술 1만 6475명 가운데 누구인지 자료가 분명한 경우는 26%인 4347명에 불과하다. 피해 보상 등 권리 청구가 가능한 민법상 제척기간(일종의 소멸시효)을 어떻게 볼지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불임수술을 받은 지 모두 20년이 넘어 ‘불법행위로부터 20년이 지나면 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는 일본 민법상 제척기간은 일단 완성됐기 때문이다. 불임수술에 동의한 사람 중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경우가 많아 향후 정부의 피해자 지원이 이뤄졌을 때 상당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를테면 한센병 회복자가 요양원에서 결혼하려면 불임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사실상 강제 수술이나 다름없다. ●스웨덴, 재판 없이 곧바로 피해보상 법률 제정 피해 소송이 본격화할 조짐을 나타내자 정치권도 뒤늦게 따라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야는 지난 3월 6일 오쓰지 히데히사 전 후생노동상을 대표로 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 ‘옛 우생보호법하에서의 강제 불임수술에 대해 생각하는 의원연맹’을 발족시켰다. 자민당은 강제 불임 문제를 다루는 실무팀을 구성했다. 일본과 비슷한 우생학적 수술이 행해졌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미국의 일부 주와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1976년까지 강제 수술이 이뤄졌던 스웨덴의 경우 재판 없이 곧바로 피해 보상을 해 주는 법률이 제정됐다. 마쓰바라 요코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고령자가 된 피해자들을 위해 당장 있는 자료만으로 빠르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해 주어야 한다”며 “이와 별개로 앞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국가의 강제 불임수술의 실체를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결혼식 당일 ‘신랑 탈모’ 사실 알고 파혼한 신부

    결혼식 당일 ‘신랑 탈모’ 사실 알고 파혼한 신부

    한 인도 남성이 탈모라는 이유로 정혼자와의 혼인을 거절당했다. 예비 신부는 결혼 당일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예식장을 떠나버렸다. 28일(현지시간) 인도 일간지 다이니크 바스카에 따르면, 지난 18일 신경외과의 라비 쿠마르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신부와 결혼하기 위해 뉴델리에서 고향인 비하르주 수가올리까지 1000km를 날아왔다. 쿠마르의 부모가 신부측 아버지와 세 차례 만남을 가진 후, 1년 전 아들의 결혼식을 미리 정해뒀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예정대로 예식이 진행되며 막 예비부부가 결혼 맹세를 하려는 참에 일어났다. 그 때 쿠마르는 쓰고 있던 예식용 모자를 벗었고 신부는 그의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와 결혼할 것을 거부했고, 결혼식은 혼돈 속으로 빠졌다. 양 가족들은 신부의 마음을 바꿔보려 설득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황당한 파혼을 맞았으나 쿠마르는 멀리까지와서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그의 가족은 지방 마을 의회에 도움을 호소했고, 의회측은 마을의 가난한 채소 판매상 딸인 네하 쿠마리와의 결혼을 제의했다. 결국 쿠마르는 예정됐던 결혼식이 취소된지 이틀 후, 다시 사찰에서 다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다이니크바스카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일왕 손녀 마코 공주, 결혼 연기 후폭풍…“약혼남 모친 채무 논란 때문”

    일왕 손녀 마코 공주, 결혼 연기 후폭풍…“약혼남 모친 채무 논란 때문”

    일왕 손녀 마코 공주가 결혼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뒤 그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마코(27) 공주는 오는 11월 4일 대학 동급생인 로펌 직원 고무로 게이(27)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은 지난 6일 “결혼을 2020년까지 연기한다”면서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의사에는 변함이 없다”고 발표했다. 결혼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충분한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상 천재지변이 아니면 왕실 행사는 최소가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 현지에서는 결혼 연기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마코 공주의 결혼을 두고 지난해 말부터 현지의 타블로이드 주간지에서는 가십성 보도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가장 떠들썩했던 보도는 예비신랑 어머니의 채무 문제였다. 주간지들은 예비신랑 어머니 고무로 가요가 생활비와 아들 학비를 위해 과거 사귀던 남성에게 400만엔(약 40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해당 남성이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지만 고무로의 어머니는 “증여받은 것”이라며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 연기 발표 뒤에도 확인되지 않은 뉴스는 계속 나오고 있다. 고무로의 아버지가 자살했다거나 고무로의 외할아버지가 한국계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또 고무로의 어머니가 채무 때문에 일본 왕실에 돈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심지어 결혼 당사자인 고무로도 해당 남성이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증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일본 주류 언론들은 왕실 관련 뉴스에 보수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가십성 보도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는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다. 몇몇 주간지는 과거 있었던 일본 왕족의 파혼 사례처럼 결혼 상대인 고무로 집안에서 먼저 파혼을 요구할 것이라는 추측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장애인 강제불임 ‘우생보호법’ 피해자 국가 상대 첫 손배소

    일본의 반인권적 악법이었던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에 따라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던 60대 여성이 법원에 국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948년부터 1996년 사이 이 법으로 인해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은 전국에 걸쳐 1만 6475명에 이르지만, 국가 대상 손배소는 처음이다. 3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미야기현에 사는 한 여성(61)은 이날 “강제 불임수술이 개인의 존엄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국가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 1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 여성은 15세 때인 1972년 12월 ‘유전성 정신박약’을 이유로 난관을 묶는 불임수술을 강제로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이 여성은 1987년쯤 난소 조직이 유착하는 난소낭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난소를 제거해야 했고, 이를 이유로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로부터 파혼까지 당했다. 여성 측 변호인단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헌법 13조에 보장된 자기 결정권과 행복 추구권 등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우생보호법은 독일 나치정권 때 실시됐던 ‘단종법’을 본뜬 ‘국민우생법’이 모태로, 국가가 ‘불량한 후손의 출생 방지’를 내걸고 지적·정신 장애인들에 대해 강제 불임수술을 인정한 악법이었다. 특히 수술을 강제할 때 신체의 구속이나 마취, 기망까지 인정했다.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미야기현의 경우 1963~1981년 수술 기록이 남아 있는 남녀 859명 중 52%는 수술 당시 미성년자였다. 9세밖에 안 된 여아도 수술대에 올랐던 기록이 있다. 그러다 1996년 이 법이 모체보호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인 불임수술 항목이 삭제됐다.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 최악의 ‘총각파티’…신랑 친구 17명 무더기 이혼 당한 사연

    최악의 ‘총각파티’…신랑 친구 17명 무더기 이혼 당한 사연

    난잡한 총각파티를 벌인 예비신랑이 파혼을 당했다. 파티를 열어준 친구들도 무더기로 이혼을 당했다. 15일(현지시간)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집단 가정파탄으로 이어진 문제의 총각파티는 스페인 무르시아 지역에서 열렸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예비신랑의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은 총각파티를 준비했다. 독신파티라고도 불리는 총각파티는 예비신랑이 결혼 전 싱글로 참여하는 마지막 파티다. 싱글 인생을 마감하는 친구에게 결혼을 축하해준다는 뜻으로 여는 파티지만 친구들은 난잡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미모의 여자댄서들을 부르고 술을 잔뜩 준비했다. 결혼을 앞두고 요트에서 열린 총각파티의 분위기는 예상처럼 통제 불능으로 흘렀다. 예비신랑과 친구들은 마약까지 투약하면서 밤새 음탕한 파티를 벌였다. 예비신랑과 친구들은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증거를 공유한 게 실수였다. 남자들은 모바일메신저에 단체 채팅방을 열고 파티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했다. 꼬리를 잡은 건 예비신부였다. 총각파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예비신부는 호기심에 루이스라는 가짜 이름을 이용해 단체채팅방에 잠입(?)했다. 슬쩍 채팅방에 끼어들었지만 기적처럼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예비신부는 공유된 사진과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느낀 예비신부는 즉각 파혼을 선언했다. 그리곤 사진과 영상을 총각파티 참석자 부인들에게 뿌렸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난잡한 파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한 친구는 지금까지 모두 17명. 현지 언론은 "사상 최악의 가정파탄으로 이어진 총각파티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엘솔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개그커플 이문재 한다혜, 파혼 “지난해 결별했다”

    개그커플 이문재 한다혜, 파혼 “지난해 결별했다”

    개그맨 이문재와 개그우먼 한다혜 커플이 파혼했다는 소식이다.4일 연예 매체 TV 리포트는 두 사람이 지난해 결별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오는 13일에 결혼할 예정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충분한 대화, 고민 끝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결혼이 아닌 결별을 선택한 것. 이문재와 한다혜는 2015년 온라인 서바이벌 개그쇼 ‘개그지왕’에서 함께 활약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문재는 지난해 9월 1일 자신의 SNS에 한다혜의 사진을 게재하고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고 직접 열애 사실을 알려 화제를 모았다. 이문재는 지난 2011년 KBS 26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개그콘서트’에서 ‘두근두근’이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며 2013년 제12화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다혜는 2014년 SBS 14기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해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에서 활약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하나 박유천, 파혼설 이후 근황 보니 ‘SNS에 의문의 남성?’

    황하나 박유천, 파혼설 이후 근황 보니 ‘SNS에 의문의 남성?’

    JYJ 박유천의 피앙세 황하나가 SNS로 근황을 전해 눈길을 끈다.박유천 황하나는 지난 9월 결혼하기로 했지만 연기했다. 이후 황하나는 활발히 게재하던 SNS 활동도 중단했고 두 사람이 결별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황하나는 지난 9일부터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리며 SNS 활동을 게재했다. 이후 19일 “디즈니랜드”라는 글과 함께 미니 마우스로 변신한 모습을 공개했다. 박유천은 동방신기로 활동 당시 ‘믹키유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황하나는 그런 박유천을 ‘미키’로, 자신을 미키의 여자친구 ‘미니’로 비유해왔다. 이에 해당 사진은 황하나와 박유천의 관계가 건재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황하나는 26일에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옆자리의 남성이 팔이 등장한다. 황하나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무릎에 손을 올리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해당 남성이 박유천이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황하나는 지난 4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던 박유천과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을 전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그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로 알려지며 더욱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박유천의 제대 후인 9월 결혼을 예정했지만 돌연 결혼식을 연기한 상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보즈니아키, 매킬로이와 파혼 3년 반 만에 NBA 출신 리와 약혼

    보즈니아키, 매킬로이와 파혼 3년 반 만에 NBA 출신 리와 약혼

    테니스 스타 캐럴라인 보즈니아키(27·덴마크)가 또다시 약혼을 발표했다. 2014년 1월 골프 스타 로리 매킬로이(28·북아일랜드)와 약혼을 발표한 지 3년 10개월 만이다. 보즈니아키는 4일(한국시간)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위터에 약혼 반지를 낀 왼손 사진과 함께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어제 내 영혼의 동반자에게 ‘예스’라고 답했다”는 글을 올렸다. 둘은 남태평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보라보라섬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이었다.보즈니아키에게 청혼한 인물은 지난 시즌까지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몸 담았던 데이비드 리(34·미국)다. 12년차로 올 시즌 자유계약(FA)으로 풀린 그는 댈러스와 보스턴, 골든스테이트, 뉴욕 닉스 등에서도 뛰어 경기당 평균 13.5득점 8.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보즈니아키와 다정히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리고 “그녀가 ‘예스’라고 답했다. 영혼의 동반자와 약혼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적었다. 둘은 지난해 봄 사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보즈니아키가 리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그동안 사실상 ‘공개 데이트’를 즐겨왔다.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3위인 보즈니아키는 2011년부터 매킬로이를 만나기 시작해 2014년 새해 첫날 약혼 사실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5월 파혼했다. 결혼식 초대장까지 발송한 며칠 뒤 매킬로이가 전화로 결별을 통보했고 그 뒤로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다고 같은 해 9월 보즈니아키가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매킬로이는 지난 4월 미국프로골프협회 직원인 에리카 스톨과 화촉을 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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