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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지역 경제 위해 카지노 규제 풀었다

    2023년부터 전국에 최소 3곳 허용 운영수익 30% 관광진흥 등 稅부과 일본에서 2023년부터 카지노를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 전반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일본 국회는 사실상의 통상국회(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20일 카지노 설치 규정을 담은 ‘통합형 리조트’(IR) 실시 법안을 가결시켰다. 일본에서 도박 게임인 ‘파친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카지노는 중독성이 높다는 이유로 금지돼 왔다. 법률은 오는 2023년부터 전국에 최소 3곳의 카지노 포함 IR 시설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박 중독 방지를 위해 내국인(만 20세 이상)의 카지노 입장 횟수는 1주일에 3회, 1개월에 10일까지만 허용하고 하루 6000엔(약 6만원)의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카지노 운영 수익의 30%는 정부·지방자치단체의 관광진흥과 복지 등 공공사업으로 돌려야 한다. 그동안 야권과 시민단체 등은 카지노 합법화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형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도박을 관광 진흥과 지역사회 활성화 등 명목으로 합법화하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일부 신문·방송은 한국 정선 카지노의 부작용 실태를 현장 르포 형식으로 전하기도 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정부가 내세우는 관광 활성화 등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잇따랐다. 하지만, 카지노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지자체들도 나타나고 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득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요코하마, 오사카, 홋카이도 등 3곳에 IR 시설이 들어섰을 경우를 전제로 건설 단계에서 약 5조엔, 운영 단계에서 연간 2조엔 등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NHK는 현재까지 홋카이도, 오사카부, 아이치·와카야마·나가사키·미야자키현 등 6개 지자체가 카지노를 포함한 IR 시설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설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는 주민 동의를 얻어 정부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오사카부의 경우 2025년 국제박람회 유치 추진에 앞서 2024년쯤 카지노 관련 시설의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됐던 도쿄도는 도박 의존증의 우려 등을 이유로 장단점을 좀 더 따져본 뒤 유치 신청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파친코1·2/이민진 지음/이미정 옮김/문학사상/각 권 368·400쪽/각 권 1만 4500원재미교포 작가 이민진(50)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한국과 일본 어느 나라로부터도 환대받지 못한 재일 조선인들의 뼈저린 애환을 담은 책이다.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약 80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일가족이 경계인으로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좇는다.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멸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면글면 애썼던 생존의 역사는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고 극적이다.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 미국 예일대의 한 강의에서 조선계 일본인과 그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의 역사와 고충을 처음 접했다.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1996년 소설의 초안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2007년 도쿄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면서 조선인을 직접 만나 취재하며 원고를 수차례 다듬어 지난해 이 책을 내놨다. 책은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에게 시집가는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던 양진은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딸 순자를 묵묵히 키운다. 엄마를 닮아 매사에 진중하고 착실하던 순자는 인생의 항로를 크게 뒤흔든 생선 중매상 한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한 순자는 절망에 빠지지만 그녀를 가엾게 여기던 목사 이삭과 결혼해 이삭의 형 요셉 가족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순자는 오사카에서 한수의 아이인 노아를 낳은 뒤, 이삭의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일본 명문대에 입학하지만 가족의 품을 떠나 파친코에서 일을 한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모자수 역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드러낸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영국계 투자은행의 일본 지사에 취업하지만 일본인 동료의 배신으로 결국에는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는다. 양질의 교육을 받은 노아와 솔로몬도 끝내 선택하는 ‘파친코’는 재일 일본인들의 굴레와 같은 삶 그 자체다. 일본인들에게는 ‘더러운 조선인’들이 일하는 ‘더러운 업계’인 파친코 사업은 ‘조국 같지 않은 조국’에서 조선인들이 돈과 권력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운명 앞에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한계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산다. 양진과 순자, 순자의 동서인 경희는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은 채 강인한 엄마, 헌신하는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가족에게 바친다. 경희의 남편이자 이삭의 형인 요셉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 순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지만 ‘자이니치’라는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 나가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에 가능했다. 순자가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 이삭의 묘석 앞에서 흐느껴 울던 끝에 아들들의 사진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건 가혹한 운명을 피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다름없기에. 이 마지막 장면을 마주한 뒤에 책의 첫 문장을 본다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터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민자 시선… 한국계 작가, 美 홀리다

    이민자 시선… 한국계 작가, 美 홀리다

    재일동포 ‘자이니치’ 가족사 다뤄재미동포 이민진(49) 작가의 소설 ‘파친코’가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의 ‘2017년 올해의 소설 5권’에 선정됐다. 뉴욕타임스는 매년 소설과 비소설 5권씩, 베스트 서적 10권을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영국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여기에 포함됐다. 이 작가는 7살이던 1970년대 부모님을 따라 뉴욕 퀸스로 이주해 맨해튼에서 성장기를 보낸 한인 1.5세다. 예일대를 거쳐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고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쓰기로 10년 전부터 복귀해 작품을 써 왔다. 파친코는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소설에서 이 작가는 같은 이민자의 시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 ‘자이니치’의 삶을 바라봤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직전부터 1980년대까지 재일동포 4대의 가족사를 다뤘다. 이 작가가 자이니치의 존재 자체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이던 1989년이었다. 상승 욕구가 강한 재미동포들과 달리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 사회경제적 사다리의 아래쪽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생겼다. 실제로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이 2007년 도쿄의 금융회사에 근무하게 돼 4년간 함께 일본에 머무르며 자이니치에 대한 호기심을 직접 탐사했다. 일본의 도박 게임장인 파친코 업자들과 술집 여종업원 등으로 일하는 자이니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소설에 녹였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오늘의 눈] 추락하는 청암대학, 다시 날개 펴려면/최종필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추락하는 청암대학, 다시 날개 펴려면/최종필 사회2부 기자

    전남 순천시 한복판에 시민들이 즐겨찾는 ‘죽도봉’이란 명소가 있다. 이곳에는 광복 후 재일거류민단의 권익 신장에 일생을 바친 강계중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70년 일본 정부의 서슬퍼런 감시를 피해 밀감 묘목 60만 그루를 제주도에 보급, 우리나라 밀감 산업의 초석을 마련한 위인이다. 장학재단을 세워 순천에 초·중·고 11개교의 부지 대금과 교재비를 지원하는 등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기도 했다. 친동생인 고 강길태 선생도 청암고를 세우고 간호전문대(현 청암대)를 인수하는 등 두 형제가 열악한 순천의 교육 여건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런데 강길태 선생의 아들이 2011년 청암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지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아들 강명운 전 총장은 지난 9월 배임 혐의로 구속됐고, 또 같은 대학 여교수 2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광주고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일본에서 파친코 사업을 하다 갑작스레 대학의 수장으로 온 강 전 총장은 지난 4년 동안 자신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여교수 2명 등 동료 학과 교수 3명에 대해 보복성 징계를 되풀이해 왔다. 2013년부터 직위해제, 파면, 재임용 탈락, 해임 등 수차례 부당한 징계를 했다. 교육부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모두 취소 결정이 났지만 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결국 청암대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2011년 전남 최초로 받기로 돼 있었던 전문대학기관 평가인증 지원금 12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등 결국 학생들의 피해만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새로 취임한 서형원 총장은 “대학 발전을 위해 전 교직원이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최고의 명문 전문대학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옥중에 있는 전임 총장이 대학의 실질적 ‘오너’로서 모든 일을 지휘하고 새 총장은 허수아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강 전 총장이 구속됐지만 작금의 사태에 이르게 한 보직교수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지금도 버젓이 주요업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 총장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청암대의 명성을 회복하려면 4년 동안 애꿎은 고통을 겪고 있는 교수들부터 서둘러 복직시켜야 한다. 또 총장 구속 사태에 이르게 한 간부 교수들의 전면적인 교체 인사 역시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청암대의 추락이 강계중·강길태 선생의 명성까지 훼손해 버릴까 안타깝다. choijp@seoul.co.kr
  • [기고] 불법 도박,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박경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기고] 불법 도박,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박경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30대 후반의 전호진(가명)씨는 17년 전 자신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당시 호진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일본으로 첫 해외여행을 갔다.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낸 호진씨. 비행기 표를 늦게 예약해 혼자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하는 것도 행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하루가 길고도 어두운 터널의 시작일지 그땐 몰랐다.친구들을 배웅한 뒤 숙소로 돌아오던 호진씨는 특이한 소리에 이끌렸다. 파친코 게임장이었다. 언제 또 와볼까 싶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귀국하면 쓸 일이 없다는 생각에 동전을 다 쓸 때까지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 2분이 채 되기도 전에 주머니에는 동전 하나만 남았다. 마지막 동전을 기계에 넣는 순간 팡파르가 울리며 쇠구슬이 우르르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를 건넸다. 호진씨는 3만엔을 손에 쥐고 신나게 숙소로 돌아왔다. 그 짜릿한 쾌감을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모아 다시 일본에 갈 수 있을까만 궁리했다. 그러던 중 TV에서 불법 게임장 적발 뉴스를 보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파친코 게임장이 있었던 것이다. 망설이기를 몇 번, 호진씨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불법 게임장으로 향했다.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드나들다 아르바이트로 번 150만원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불법 게임장에 가기 위해 밤새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등록금도 탕진했다. 사채까지 빌리기도 했다. 어느 날 찾아온 빚쟁이들을 보고 어머니가 쓰러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혼자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가족들은 이민을 가버렸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하며 반성했지만 도박의 올가미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일용직으로 몇 푼 만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도박장을 찾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7년. 다행히 지금 호진씨는 도박 상담센터를 다니며 재활의 길에 들어섰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불법 도박 규모는 적게 잡아 83조원이고 많게는 170조원에 육박한다는 연구도 있다. 내년 국방예산이 43조원이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엄청난 규모도 문제지만 도박 중독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불법 도박은 범죄조직의 주요 자금원이다. 이를 방치하면 사회가 피폐해지는 것은 물론 남미 일부 국가들처럼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2007년 9월, 합법 사행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불법 도박 감시를 위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만들었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불법 도박 단속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검토 중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신속하게 차단하고 연계 계좌의 거래를 정지시키며 신고 포상금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하고 있다. 벌칙도 대폭 강화하고 온라인 감시시스템도 구축할 것이다. 불법 도박 예방 교육 및 홍보도 확대하고 중독자 치유에도 더욱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잃어버린 제2, 제3의 호진씨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불법 도박 근절에 모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언젠가 일본 교토에 가게 되면 반드시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은 장소가 있다. 고려미술관(高麗美術館)이다.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천년의 고도’ 교토에 우리나라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그 미술관을 세운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 우리 문화재로 미술관을 세웠는지도 궁금했다. 5월 초 교토 여행길에 시간을 내어 이 미술관을 찾았다. 교토역 앞에서 시영버스 9번을 타고 교토 시내의 북동쪽 가모가와 중학교 앞에서 내리니 바로 ‘고려미술관’ 방향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조용한 교토의 주택가,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속에 새소리가 듣기 좋았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낯익은 우리의 돌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우락부락하지만 맘결은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은 석인(石人)상이 반겨주듯 철문 양쪽에 지키고 서 있는 곳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고려미술관이다.일본 땅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이나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등에 설치된 한국유물 전시실을 찾았을 때와는 감동의 질이 완전히 달랐다. 고려미술관은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혹은 기업의 도움 없이 정조문(1918~1989)이라는 재일동포 실업가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으로 설립된 곳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유일한 한국역사유물 전문 미술관인 고려미술관은 소장품 전시뿐 아니라 연구실을 두고 소장품의 조사연구와 강좌, 일본 내 다른 미술관·박물관과 전시교류 등을 하면서 조선고고학 연구, 민속학도서 자료수집 및 연구자료 출간도 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해 나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재일동포 실업가’ 정조문의 집념과 열정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왼쪽의 정원으로 들어가자 연둣빛 이끼가 가득 덮인 오층 석탑과 다양한 석인상 등 석물들이 5월의 햇살 아래서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베 부농의 밭에 흩어져 방치되던 것을 발견한 정조문이 15년 동안 찾아다니고 설득해 2000만엔을 주고 손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품고 일본 땅 위에 서 있는 석물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리 문화재를 기반으로 하는 이 미술관이 1000여년에 걸쳐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에 자리잡았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은 경북 예천군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정건모)가 구한말 과거 급제 후 정삼품대부의 벼슬까지 한 관리여서 집안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으나 37세에 낙마 사고로 별세한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정조문이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정진국)가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가산은 거의 바닥이 났다. 6년 만인 1924년 상해에서 돌아온 정진국은 일본 경찰의 감시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내, 큰아들 귀문(당시 8세)과 둘째 조문(당시 6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에 터를 잡고 베 짜는 일을 시작했지만 경찰의 감시 속에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학교에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정조문은 소학교 4학년에 겨우 편입해 3년을 공부했다. 그가 유일하게 받은 학교교육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하며 9살부터 다녔던 학교생활 3년간이다. ‘아야어여’도 모르는 나는 갑자기 소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고 학우들을 따라가느라 고생했다. 1년이 지나 어려움은 사라졌지만 역사수업만큼 나를 괴롭힌 것은 없었다. 신라정벌, 조선정벌, 조선병합…. 역사에서 조선은 언제나 약한 입장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못된 애들이 ‘조선 정벌이야!’ 하면서 나에게 돌을 던지며 때렸다. 그 무렵부터 내 가슴에는 역사에 대한 의문의 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조선은 늘 약할까?” 1937년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후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정조문은 할머니, 동생들과 함께 오사카에 가서 부두 노동자가 됐다. 그러다 광복을 맞았다. 일본에 있던 한국인들은 귀국하거나 일본에서 다시 국적을 취득해야 했다. 그러나 몇 해 만에 조국이 분단되면서 남한의 민단과 북한의 조총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조문은 조국은 하나라며 어느 쪽도 취득하지 않고 ‘조선 국적자’로 남았다.●우연히 만난 조선백자의 매력과 상상초월 가치 오사카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그는 교토로 가서 1951년부터 파친코 사업을 시작했다. 선술집, 초밥집, 찻집을 개업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어느 날 교토 시내의 고미술상가를 지나다 ‘야나기’라는 고미술상 쇼윈도에 놓인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도자기가 지닌 고졸한 아름다움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하얀 치마저고리를 떠오르게 했다. 빨려들 듯이 가게로 들어간 그는 상상 외로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비싼지 물으니 조선 도자기의 가치에 비하면 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공사판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받고 따돌림받으면서 살아온 그에게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바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고 한다. 1년간 할부로 도자기를 구입한 뒤 다짐했다. “문화재를 수집해 보자. 일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미술관을 세우고 자신을 잃은 재일동포들에게 ‘조선의 자랑거리’를 보여 주자. ” 그는 재일동포와 자라나는 2세들이 이유 없이 멸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진품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전국의 고미술상을 찾아다니며 우리 문화재 수집에 온 힘을 다하는 한편 조선의 역사와 문화 연구 활동을 시작하며 비뚤어진 고대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형 정귀문과 도쿄에서 활동하는 재일작가 김달수와 함께 한·일 고대사에 관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 보고자 교토대에 재직하고 있던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를 찾아갔다. 우에다 교수는 저서 ‘귀화인’(歸化人·1965)을 통해 조선반도에서 고대 일본에 온 사람을 귀화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도래인(渡來人)이 맞다는 주장을 폈던 진보적인 학자였다. 우에다 교수는 비뚤어진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는다는 뜻에 흔쾌히 동참했다. 사쓰마요를 만든 도래인 심수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시바 료타로도 합류했다. 정조문은 일본인 지식인 및 학자들과 조선인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1969년부터 계간지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발간했다. 조선 고대사 연구에 일대 선풍을 일으킨 이 잡지는 1981년 50호 발간으로 휴간에 들어갈 때까지 한·일 역사학은 물론 조선 고대 불교학, 민속학, 풍속학, 고대 언어학 등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잡지는 광고가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광고를 실으면 의미는 퇴색한다. 북측 기업광고가 게재되면 북측의 읽을거리가 되고 남측 기업광고가 실리면 남측의 잡지가 된다. 일본 기업은 당치도 않았다.●통일된 조국 꿈꾸며 미술관 이름 ‘고려’로 이런 정조문의 사고방식은 고려미술관 건립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미술관 이름을 한반도 최초의 통일왕조 이름을 따와 ‘고려’로 한 것은 남도, 북도 아닌 오직 통일된 조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누구나 찾아와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공동의 광장’을 그리며 그는 미술관 건립에 온 힘을 기울였다. 교토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일본 문화의 중심지이며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그런 교토에 미술관을 지어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다 여의치 않자 교토의 자택을 헐고 지하 1층, 지상 2층의 미술관을 지었다. ●교토 자택 헐고 미술관 지어… 1988년 10월 개관 1988년 10월 25일 고려미술관이 개관했다. 학교라고는 소학교 3년이 전부인 파친코 사업자가 백자 항아리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지 40여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되찾은 우리 문화재 1700점이 관람객을 맞았다. 소장품은 고분 부장품부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도자기, 회화, 나전 바둑판과 목가구 등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관 후 1개월간 미술관 입구에서 늘 관람객을 맞았던 정조문은 개관 후 얼마 되지 않은 1988년 11월 미술관에서 쓰러져 1989년 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였다. 장례 당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2000여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국제인이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조선이나 한국의 풍토 속에서 성숙한 아름다움은 여기 일본에서도 언어, 사상, 이념을 넘어 이야기합니다. 부디 조용한 마음으로 그 흥취를 느껴 주시기 바랍니다.”(고려미술관 초대이사장 정조문, 고려미술관 리플릿 중) 운영은 어렵지만 고려미술관은 건재하다. 장남 정희두, 차남 정혜윤이 중심이 되어 공익재단법인 고려미술관을 유지관리하고 있고 장녀 정령희의 작은딸 이수혜가 미술관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외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가고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일본, 파친코 시대 저물고 카지노 산업 빗장 풀리나

    도쿄올림픽 앞두고 전역에 설치 자민당 “국내 관광산업 진흥 위해” 카지노를 불허해 온 ‘파친코의 나라’ 일본이 ‘카지노의 나라’로 변신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일본 집권 자민당 등은 중의원 본회의에서 민진당 등 야당 대부분이 퇴장한 가운데 ‘카지노 설치 허가를 포함한 통합형 리조트시설 정비추진 법안’(IR)을 통과시켰다. 자민당은 오는 14일까지 참의원에서도 강행 통과시킬 방침이다. 이에 따라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전역에서 카지노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카지노 해금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복합카지노리조트 신설을 위해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추진본부를 설치하고 법 시행 뒤 1년 이내에 카지노 입장규제 등 세부 사항을 규정한 법규 정비 등을 내용으로 담았다. 일본 정부·여당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카지노, 호텔, 대형 회의장을 갖춘 복합 리조트를 2020년 도쿄올림픽 전까지 전국 각지에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오사카시,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요코하마시,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지자체들도 적극적으로 카지노 설치를 희망하고 있다. 지자체 역시 관광객 유치 및 세수 확대, 투자 유치 등을 겨냥해 카지노 설치를 적극 희망해 왔다. 자민당 모테기 도시미쓰 정조회장은 “관광 진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른 시일 안에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정부는 도박 의존증 및 자금 세탁 등 부작용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 등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전후 70년이 넘도록 카지노를 허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도박 중독증과 돈세탁, 조직폭력배 기생 등을 이유로 카지노를 도입하지 않는 대신 엄격한 관리 아래 일본식 도박게임인 파친코를 도심 곳곳에서 운영해 국민적 놀이 문화로 정착시켰다. 그러다 자민당 지도부의 입장 변화 속에 중국 등 외국 관광객 유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지난 5년간 카지노 신설을 추진해 왔다. 정부·여당은 건설 수요와 고용 창출, 세수 확대 등 성장 동력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주요 파친코 사업을 재일 한인들이 장악하고 있어 일본 정치인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카지노 허용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 나온다. 파친코를 보호해 온 기존 정치인들의 나이가 들어 물러나면서 카지노 시대가 자연스레 도래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야당은 카지노 허가를 둘러싼 흑막이 있고 거대 자본의 로비가 자민당을 움직였다고 비난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 골프장 개별소비세 폐지 개정안 발의키로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이 골프장 입장료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를 폐지하자는 내용의 법안 개정안을 발의한다. 강 의원은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골프장 관련 개별소비세 폐지 기자회견’을 열고 “개별소비세 폐지를 통해 골프에 부당하게 덧씌워진 ‘귀족 스포츠’라는 오명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코치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와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 안대환 골프장경영협회 부회장, 김재열 SBS골프 해설위원 등이 참석했다. 강 의원은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폭염에 지쳐 있던 국민들에게 박인비 선수의 금메달은 커다란 감동과 희망을 선사했다”고 운을 뗀 뒤 “지난해 전국 회원제 골프장과 대중제 골프장을 찾은 인원은 3천300만 명을 넘어섰고, 골프산업 규모 역시 25조원으로 전체 스포츠 산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 걸음 국민들에게 다가선 골프 문화와 더욱 커진 골프산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골프장은 여전히 사치성 위락시설로 분류돼 골프장 입장에 중과세가 부과되고 있다”면서 “현행법상 입장행위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경마장, 경륜장, 카지노, 투전기(파친코)장의 경우 사행성 오락시설로서 그 이용을 억제할 필요가 있어 과세의 당위성이 인정되지만 골프장은 건전한 운동시설로 사행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 의원은 반박했다. 그는 “이는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골프 대중화 및 골프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현행법이 제정된 1967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제 규모와 생활 수준을 고려할 때 지금의 법을 유지하는 것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낡은 처사”라고 꼬집었다. 강 의원은 또 “본 개정법안을 통해 그린피가 적정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자기 돈을 내고 골프를 하는 개인 수요가 기존의 접대 골프 수요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 스포츠인 골프가 부담 없는 생활체육으로 자리를 잡아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민단 70년] “야키니쿠·파친코로 버텼지만 자식들 귀화 못 막아”

    [민단 70년] “야키니쿠·파친코로 버텼지만 자식들 귀화 못 막아”

    “야키니쿠와 파친코.”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버텨 온 재일교포들이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던 상징적이며 대표적인 두 업종이다. 야키니쿠, 구운 고기 음식점으로 호구를 챙겼고 파친코로 교포 재정의 근간을 마련했다. 재일교포를 받아 주는 일본 회사가 없었던 1980년대까지 재일교포들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교토 지역 민단 활동과 한·일 문화교류 활동을 떠받쳐 온 왕청일(75) 민단 고문도 대학 졸업 후 부동산업으로 자산을 일궜다. 명문 리즈메이칸대를 나온 김준득(63) 민단 교토지방본부 사무국장은 “1970년대 초 대학을 졸업했을 때 입사를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도쿄대, 교토대를 졸업한 재일동포 친구들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사법시험에 붙고도 연수를 거절당해 변호사가 되는 길조차 막혔던 재일 한국인 2세 김경득씨가 천신만고의 투쟁 끝에 일본 대법원의 연수생 허가 판결을 받은 것이 1977년이었다. “귀화하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귀화 생각은 안 해 봤냐”는 질문에 왕 고문과 김 국장은 “그런 생각은 떠올릴 수도 없었다”고 펄쩍 뛰었다. 귀화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민족 정체성이 강렬했던 때였다. 도쿄의 한 금융인은 “1990년대 말까지는 담보가 있어도 일본 은행은 재일교포에게는 대출을 해 주지 않았다”면서 “차별과 제약 속에서 신용조합 등 재일 한인 금융기관들이 생겨나 은행 거래가 어려웠던 교포들의 젖줄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 지역 민단 간부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 하면서도 차별 속에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참 특이한 민족주의가 우리 재일교포들에게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지금은 “자식들이 귀화하려 한다면 원하지는 않지만 ‘막는 것도 무리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역사적 특수성이 인정된 ‘특별영주권자’지만 재일교포는 선거권도, 지방참정권도 없고 공립학교 교사도 될 수 없다. 행정 차별은 줄었지만 무언의 압력과 압박은 남아 있다. 한 지역 민단 관계자는 “한국 이름으로 단원들에게 우편물을 보냈더니 몇몇이 ‘다음부터는 일본 이름으로 바꿔 써 달라. 이웃 사람이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까 무섭고 싫다’는 요구가 돌아왔다”고 전했다. 교포들이 일본 이름을 대개 갖고 있는 것도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교토·오사카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목숨 걸고 찍은 ‘유령도시’ 후쿠시마 통제지역 사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11일. 진도9의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동북) 지방을 강타해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앗아갔다. 지난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이어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된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최근 말레이시아 출신의 사진작가 키워 위 룽(27)이 죽음의 도시가 되버린 후쿠시마 지역의 사진을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사진들은 놀랍게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 차단된 반경 20km 내 소위 '레드존'에서 촬영된 것이다. 룽과 그의 친구들이 새벽 1시 경 경찰의 눈을 피해 방독면만 쓴 채 레드존에 몰래 들어가는 황당한 짓을 벌인 것. 목숨을 건 사진에 담긴 사고 지역의 모습은 이들의 행동만큼이나 기괴하다. 쇼핑을 하고, 책을 보고, 밥을 먹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인 공간들이 사람 한 명 없는 유령도시로 변했기 때문이다. 룽은 "도시 내 상점들의 모든 상품들이 5년 전 그대로 놓여있었다"면서 "심지어 파친코 기계 주위에는 돈도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곳보다 후쿠시마는 가장 기괴한 장소였다"면서 "신호등까지 작동했지만 다니는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룽의 언급처럼 원전사고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후쿠시마는 죽음의 도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 수가 17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방사성 수치가 높고 이에대한 불안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설은 복구되고 있으나 아직 삶은 복구되지 못한 형편인 셈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도 커졌다. 이들 일행이 위험한 장소에 무단으로 들어갔다는 것 때문으로 특히나 룽은 과거에도 고층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위험천만한 사진들을 남겨 악명을 얻었다.   룽은 "방독면과 GPS, 구글맵만 들고 레드존으로 들어갔다"면서 "현장에서는 화학약품 냄새가 풍겼으며 눈도 따가웠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텅빈 도시에 홀로 있는 것을 꿈꿨는데 이제 현실이 됐다"면서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씨줄날줄] ‘불사조’ 법조 브로커/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불사조’ 법조 브로커/박홍환 논설위원

    1980년대 초부터 10년간은 이른바 ‘조직폭력(조폭) 전성시대’라고 부를 만했다. 양은이파, 서방파, OB파 등 범호남 계열 3대 패밀리가 치열한 세력 싸움을 벌였고, 칠성파는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고 부산을 평정했다. 대낮에 조폭 수십 명이 회칼과 야구배트를 들고 유혈 낭자한 패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조폭들 간의 대표적인 보복 범죄인 ‘서진룸살롱 사건’ 등으로 온 사회가 조폭 공포에 휩싸였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조폭 소탕령을 내렸고, 그 내용을 다룬 영화가 2011년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다. 부패한 세관 공무원에서 폭력조직에 합류한 최익현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의 연기가 돋보인 영화다.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는 너덜너덜한 수첩을 그는 “10억원짜리”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거기서 파친코 이권을 얻고, 구속 위기도 넘긴다. 수갑을 찬 채로 경찰관의 뺨을 날릴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 거액의 인맥 수첩을 만들기 위해 권력자의 가족들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 낯익은 장면이다. 2000년대 중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명의 법조 브로커도 그랬다.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는 중견 건설업체 회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다짜고짜 “동생” 하며 살갑게 맞은 그가 내민 명함에는 고문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는 법원장, 검사장을 비롯해 판검사 이름을 줄줄 꾀면서 “모두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살짝 보여 준 수첩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했다. 주변 인사는 그가 형제 사이에 재산분쟁 중인 경기도의 한 골프장으로부터 20여건의 주말 부킹권을 넘겨받아 법조계 인사들에게 제공해 왔다고 귀띔했다. 하늘의 별 따기인 부킹권으로 판검사들을 관리해 왔다는 얘기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에게서 직접 “판검사 60~70명에게 돈을 건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전화번호와 전달액 등을 적은 수첩이 있고,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도 있다고 했다. 수사 결과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고위 법관은 냄새 나는 법조 브로커인 줄 알면서도 김씨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김현웅 법무장관이 당시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부장검사였다. 이번엔 원정도박 혐의로 처벌받은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사건이 브로커에 의한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건설업자 이모씨가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 간부 출신 유명 변호사와 동창이라는 이씨는 정 대표의 항소심을 맡았던 부장판사와 술자리도 갖고, 그 자리에서 사건 관련 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사건 알선 혐의도 받고 있다니 그의 ‘수첩’ 또한 초미의 관심사가 될 듯하다. 그동안 다양한 법조 브로커 근절 방안이 발표됐지만 법조 브로커들은 ‘불사조’처럼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관리’에 농락당하는 판검사들이 있는 한 법조 브로커는 사라지지 않는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오늘의 눈] 데자뷔, 롯데 형제의 난과 신한사태/오달란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데자뷔, 롯데 형제의 난과 신한사태/오달란 산업부 기자

    데자뷔.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이다. 경영권을 두고 형제와 아버지가 아귀다툼을 벌이는 롯데그룹 말이다. 머릿속 시계를 5년 전으로 되돌려 본다. 2010년 9월이었다. 국내 1등 금융회사인 신한금융지주에서 비슷한 일이 터졌다. 후계를 둘러싼 최고경영자(CEO) 3인방의 갈등으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1인자와 3인자가 한편에 서서 2인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구도마저 롯데와 같다. 이른바 ‘신한사태’는 1주일 넘게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진흙탕 싸움, 측근들의 비방전. 기사 제목이 최근 일주일과 다를 바 없다.  신한 사태는 이백순 전 행장이 이끌던 신한은행이 전임 행장 출신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1991년부터 20년 가까이 집권한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이 관여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3인방의 갈등은 깊어졌다. 표면상으로는 비자금 조성과 불법대출 등을 두고 벌인 공방전이었으나 ‘포스트 라응찬’ 자리를 두고 신상훈과 이백순 세력이 맞붙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롯데와 신한은 뿌리가 재일동포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한은행은 1982년 7월 7일 재일동포 소액 주주 341명이 출자한 은행이다. 고 이희건 명예회장이 창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 소유의 파친코를 팔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지금도 재일교포 지분이 20% 안팎이다.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이 재일동포다. 롯데는 1948년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출발했다. 현해탄을 건넌 신격호 총괄회장은 10명의 직원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껌과 과자로 돈을 모은 신 총괄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를 세워 국내에 진출했다.  일본은 두 기업의 내분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신한금융 3인방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지를 얻고자 일본으로 날아갔다. 공항부터 일본 현지까지, 그들이 움직이는 곳마다 언론의 시선이 쏠렸다. 롯데는 어떤가. 신동주·동빈 형제는 한·일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롯데홀딩스의 주주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사활을 걸었다. 일본인 주주 마음을 얻는 자가 곧 그룹 경영권을 쥘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 마무리다. 신한금융 CEO 3인방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란히 퇴진했다. 관련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고 인사철이 될 때마다 누구 라인이라느니 잡음이 나온다지만 비교적 매듭이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1년 뒤 신한금융은 후계 갈등이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CEO 승계 절차를 다듬어 공개했다. 대표이사 회장의 연령을 만 67세 미만으로 한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황제경영이나 장기 집권을 스스로 막아 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롯데가 신한으로부터 배울 점이다. 경영 분쟁이 예고된 다른 재벌기업도 참고할 만하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압축성장을 하느라 1인 오너십에 익숙했던 우리 기업들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번 롯데 사태가 오너와 기업 스스로 투명한 승계 절차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dallan@seoul.co.kr
  • [단독]日 최대 한류쇼핑몰 ‘한류백화점’ 사실상 파산

    [단독]日 최대 한류쇼핑몰 ‘한류백화점’ 사실상 파산

    일본 내 한류 열풍을 주도하던 ‘한류백화점’이 사실상 파산했다. 한일관계 악화로 한류의 인기가 점차 식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9일 일본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테이코쿠데이터뱅크(TDB)에 따르면 일본에서 한류 상품과 식료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한류백화점의 운영주체 (주)한류백화점은 지난달 21일 도쿄지방법원에 민사재생법의 적용을 신청했다. 일본 민사재생법은 한국의 법정관리(워크아웃)와 유사한 제도다. 초과 채무로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법원의 감독을 통한 회사 재건이나 채무 변제를 위해 신청한다. 한류백화점은 일본 내 한류 산업의 발신지로 여겨지는 명소였다. 2005년 4월 ‘KIM’S CLUB(킴스클럽)’이라는 상호명으로 설립됐다. 초기에는 한국 식료품 판매가 주축이었지만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연예인 관련 상품과 한국산 화장품 등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2008년 11월에는 한류의 중심지인 도쿄도 신주쿠구 신오오쿠보역 지역에 당시 일본 최대 규모(496㎡)의 한류 쇼핑몰인 ‘한류백화점’ 운영을 시작했다. 2010년에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점, 2011년에 후쿠오카점을 열었다. 사업은 번창 일로에 들어섰다. 2012년 들어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1만 명, 연간 매출액은 16억엔(약 160억 원)을 넘어섰다. 이 회사 김덕홍 대표(43)는 일본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상(韓商)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관계 악화와 신오오쿠보 일대 한류 상점의 범람으로 점차 사업 부진을 겪었고 지난해 연간 매출 추정액은 전년대비 30% 이상 급감한 11억엔 대에 그쳤다. 채무액은 3억4218만엔(약 34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TDB 측은 “한류 열풍이 사그러드는 가운데 한류백화점 측이 자주 재건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 오사카에서 추진되던 한류 테마파크 건설사업도 좌초 위기에 몰렸다. 재일동포 기업인 한창우(82) 회장이 이끄는 파친코 기업 마루한이 매입한 1만4000㎡(약 4300평) 부지에 4층 규모의 한류 테마파크을 만들 예정이었지만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우익 성향인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교통당국과의 계약 내용을 문제로 삼으면서다. 사진=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신오오쿠보역 인근 한류백화점의 외관. 이진석 도쿄 통신원 genejslee@gmail.com
  • LOCZ, 사전심사제 수혜… 투기자본 무차별 유입 ‘먹튀’ 우려

    LOCZ, 사전심사제 수혜… 투기자본 무차별 유입 ‘먹튀’ 우려

    정부가 당초 입장을 바꿔 순수 외국계 자본에 처음으로 카지노업 진출을 허용한 데는 외국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기 활성화, 신규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 악화와 대규모 투자가 지연된 데 따른 인천 지역의 비판적인 여론도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취임 첫 간담회에서 “(현행) 민원 신청 방식의 카지노 사전심사제가 외자 유치에 꼭 필요한 방법인지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명백히 했다. 3개월 뒤 문체부는 사전심사제 도입 이후 첫 심사를 청구했던 리포·시저스 컨소시엄(LOCZ)과 일본 파친코 재벌인 오카다홀딩스 계열의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 등 외국계 업체 2곳에 국내 카지노업 진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현행 사전심사제를 정부의 공모 방식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대통령 보고를 거쳐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사전심사제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공모 방식의 경우 업체가 수시로 심사를 요청하는 현행 사전심사제와 달리 정부가 경쟁 방식과 질을 관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LOCZ는 정부의 개정안 제출 불과 10여일 전 일몰을 앞둔 기존 사전심사제를 적용한 재심을 단독으로 청구했고, 18일 발표된 심사 결과 적합 기준인 800점을 가까스로 넘긴 822.9점을 획득해 국내 카지노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논란을 부른 현행 사전심사제는 이명박 정부(2012년 9월) 때 도입됐다.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허가하기에 앞서 사전 서류 심사로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로, 이전에는 3억 달러를 선투자해야 허가 신청이 가능했으나 5000만 달러만 투자한 뒤 적격 여부를 먼저 통보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이에 옛 문화부(문체부)는 사전심사의 법적 근거, 심사 요건 등을 명확히 따져야 한다며 옛 지식경제부와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7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광식 당시 문화부 장관을 강하게 질책하면서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도입 형태로 두 달 만에 제도가 도입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카지노 정책에 대한 변화 기류가 감지됐으나 연간 9000억원에 가까운 관광 수입 창출이란 경제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LOCZ는 영종도 입성에 성공했다. 외국 기업에 카지노 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업계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카지노 시장 진출 목표가 내국인 입장 허가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논란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지적들이다. 전국 17곳 카지노에선 대부분 외국계 자본의 지분 참여가 허용되고 있으나 카지노 전체 운영권을 넘겨준 것은 처음이다. 한 관계자는 “국내 카지노는 이미 포화 상태로 투기성 자본 유입에 따른 시장 교란 가능성이 높다”며 “적격 판정 이후 투자 계획 미이행 등으로 허가를 취소할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빌미로 제소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 허가권만 받고 빠지는 ‘먹튀’에 대한 우려도 높다. 문체부가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체부는 카지노 허가 유효 기간을 3~5년으로 하고 사업권 양수·양도에 대해 문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마련했다. 국내 업체의 참여 제약에 대해선 “앞으로 공모제가 시행되면 외국 자본이 국내 업체와 컨소시엄을 이룰 경우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국내 업체가) 영종도 카지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영종도 인근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파라다이스그룹도 영종도로 카지노를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홍 문체부 관광국장은 “LOCZ에 대한 이번 적합 통보는 예비 허가의 성격이어서 향후 정해진 기간 내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경우에만 최종 허가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영종도에 관광허브 ‘드림아일랜드’ 조성

    영종도에 관광허브 ‘드림아일랜드’ 조성

    인천 영종도 매립 부지에 여의도 크기의 종합 관광 및 레저 허브 ‘드림아일랜드’가 2020년까지 조성된다. 워터파크와 아쿠아리움뿐만 아니라 마리나 리조트, 골프장도 들어선다. 해양수산부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드림아일랜드 개발계획을 보고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개발 사업이 진행되며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배인 316만㎡에 2020년까지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특급 호텔, 복합 쇼핑몰, 메디컬 스파, 헬스케어센터, 마리나 리조트 등이 들어서게 된다. 또 테마공원, 오토캠핑장 등 시민 휴식 공간과 축구장, 야구장, 골프장 등 체육시설도 만들 예정이다. 드림아일랜드 진입도로는 2017년 6월 개통되고, 공항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공항철도역사 신설도 검토된다. 정부는 부지 조성 공사에 3700억원, 건축 및 상부시설에 1조 6700억원 등 총 2조 4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일자리 1만 8000개와 27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드림아일랜드 개발 사업은 지난해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가 맡는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일본 최대 파친코 회사인 마루한이다. 마루한은 재일동포 한창우(83) 회장이 창립했으며 최근 볼링, 골프, 영화 등 관광·레저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드림아일랜드는 인천국제공항에 인접해 있고 수도권 지역이어서 세계적인 관광허브가 될 여건을 갖추었다”면서 “단, 드림아일랜드에 사행산업은 들어오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영종도에 관광허브 ‘드림아일랜드’ 조성

    영종도에 관광허브 ‘드림아일랜드’ 조성

    인천 영종도 매립 부지에 여의도 크기의 종합 관광 및 레저 허브 ‘드림아일랜드’가 2020년까지 조성된다. 워터파크와 아쿠아리움뿐만 아니라 마리나 리조트, 골프장도 들어선다. 해양수산부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드림아일랜드 개발계획을 보고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개발 사업이 진행되며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배인 316만㎡에 2020년까지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특급 호텔, 복합 쇼핑몰, 메디컬 스파, 헬스케어센터, 마리나 리조트 등이 들어서게 된다. 또 테마공원, 오토캠핑장 등 시민 휴식 공간과 축구장, 야구장, 골프장 등 체육시설도 만들 예정이다. 드림아일랜드 진입도로는 2017년 6월 개통되고, 공항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공항철도역사 신설도 검토된다. 정부는 부지 조성 공사에 3700억원, 건축 및 상부시설에 1조 6700억원 등 총 2조 4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일자리 1만 8000개와 27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드림아일랜드 개발 사업은 지난해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가 맡는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일본 최대 파친코 회사인 마루한이다. 마루한은 재일동포 한창우(83) 회장이 창립했으며 최근 볼링, 골프, 영화 등 관광·레저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민단 상공인들, 한인사회 주도권 다툼… 한인회는 신·구 집행부 알력

    [주말 인사이드] 민단 상공인들, 한인사회 주도권 다툼… 한인회는 신·구 집행부 알력

    일본 내 60만 한국인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인 단체 내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등 내홍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두 개의 거대 한국인 단체가 있다. 1946년에 결성된 재일동포의 대표 조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단장 오공태)과 2001년 5월 만들어진 ‘재일본 한국인연합회(한인회)’다. 민단은 1945년 해방 직후 좌우익의 대립이 본격화 된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맞서며 일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 단체로 자리매김해왔다. 민단은 도쿄의 중앙본부 산하에 48개의 지방본부와 300여개의 지부를 두고 재일교포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매진했다. 재일동포 32만명이 소속돼 있다. 여기에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에 건너간 ‘뉴 커머’(New Comer)들도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며 재일동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본 유학파와 한국기업의 일본주재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다. 새 터전을 찾아온 만큼 무역·정보통신·경영투자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16만명 정도를 뉴커머로 분류한다. 이들 중 한인회 소속 회원은 8000명 정도 인것으로 알려졌다. 민단내 분열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단내 재일한국상공회의소(이하 한상련) 선거에서 레저업 등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 최종태 후보와 파친코 회사인 ‘마루한’ 회장 한창우 고문계의 후보가 대립했다. 최 회장이 가까스로 당선된 뒤 한 고문을 해임했으며 한창우계가 장악했던 3개 지방한상(후쿠우카, 지바, 도치기현)을 한상련에서 축출했다. 그러자 한 고문계는 세계한국인상공인총연합회(세총)를 결성, 최 회장과 맞섰다. 민단 지도부엔 한 고문측인 세총계 인사들이 포진, 최 회장과 반목을 거듭했다. 급기야 최 회장은 한상련을 민단에서 따로 떼낼 수 있는 사단법인화를 주장하고 2011년 5월 총회에서 사단법인화 추진을 결의했다. 결국 최 회장은 같은 해 11월 경제산업성으로부터 일반사단법인 허가를 받고, 12월 한상련이 민단 중앙본부의 산하단체에서 이탈하는 독립을 선언했다. 최 회장측은 “한상련이 민단 산하단체로 남는 것은 일본 상공회의소법에 저촉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민단과 한상련 측은 주일 한국대사관의 중재로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그러자 신각수 당시 대사 등이 나서 한상련을 민단의 직할단체라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민단은 한상련 사무실을 접수하는 한편 문서를 압수하고 신임 회장에 홍채식 전 회장을 선출했다. 민단 측은 또 최 회장을 비롯해 박충홍 회장 등 측근 4명을 제명조치했다. 그러자 최 회장 측은 민단을 상대로 한상련 명칭사용 중지, 건물명도 청구, 제명무효 청구, 손해배상 등 7개 본안소송을 일본 법원에 제기하고, 일본 경시청에 형사고소하는 등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결국 한상련은 최 회장 측의 ‘구 한상련’과 민단 산하단체인 ‘신 한상련’으로 갈려 도저히 접점이 없을 듯한 대립을 지속 중이다. 조직이 양분된 상태여서 서로 한상련 명칭을 쓰고 있어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한상련 지방조직도 분열됐다. 22개 지방 조직 중 17개는 민단과 함께하기로 결의했고, 효고 상공회는 최 회장을 지지했다. 교토 상공회는 해산을 결정했고, 기후, 와카야마, 군마현 상공회등은 휴회 중이다. 오공태 민단 중앙단장은 한상련 문제와 관련해 “재일 한국인 사회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일본 사법부와 경찰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선배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최 회장 측을 비난하면서 “재판이 아닌 대화로써 서로 상의하며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민단 측에 의해 새로 선임된 홍채식 신 한상련 회장도 “구 한상련의 결정과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차원에서 이뤄지는 결정과 행위”라며 “구 한상련은 재일한상의 50년 역사를 계승하는 단체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반면 최종태씨 측은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안정된 사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법과 도리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최근 도쿄고등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한상련의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뉴 커머들이 조직한 한인회도 최근 분규에 휩싸여 있다. 한인회는 2001년 창립한 뒤 10년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원활하게 운영됐다. 하지만 2010년쯤부터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가 민단에 지급하는 지원금 중 일부인 400만엔을 매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장을 차지하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해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3월 신주쿠 발전위원회 독립을 놓고 신구 집행부가 대립했다.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신주쿠구 신오쿠보에는 한국인이 많이 살아 2008년 신주쿠 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가 한인회 소속이다 보니 음식업협회, 농식품유통연합회, 신주쿠 민단, 한인무역협회 등이 모여 독립 방안을 논의했다. 5대 박재세 회장이 중심이 돼 신주쿠 발전위원회를 한인회에서 독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3~4대 한인회 회장을 지낸 조옥제 고문이 반대하고 나서 백지화되자 회원들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6대 백영선 회장이 이끄는 집행부는 구 집행부와의 다툼 끝에 회장직을 그만둬 조 고문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인회 한 관계자는 “한인회에 비대위가 구성돼 있다고 하지만 누가 비대위원인지도 모를 정도로 외면을 받고 있다.”며 대표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비대위원장은 “백 전임회장이 사임한 것은 건강상의 이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백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해 할 수 없이 맡았지만 후임 지도부를 선출한 뒤 바로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오는 8일과 9일 차기 회장 선거 공고를 내는 등 새 집행부 구성을 서둘러 마친다는 입장이다. 한인단체의 잇따른 내분으로 주일본 한국대사관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이병기 신임대사가 지난달 부임한 상황이라 한인 사회의 내분을 봉합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5일 신오쿠보에서 한인 간담회를 연 데 이어 오는 18일에는 주일 지역 공관장 회의를 열어 재일 한인사회 통합을 위한 해법을 찾는 의견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한인 단체 회원들 간 내부갈등이 워낙 뿌리가 깊어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에서 사업체를 운영중인 김모(38)씨는 “민단이 우리에게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고 한인회 역시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기는 아직 한참 멀었다.”며 재일 한인 단체의 현주소를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신세대 뉴커머들은 일본에서 정착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어 한인 단체 내분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면서도 “한인 사회 분규가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함바 브로커’ 유상봉 구속집행 정지

    건설현장 식당인 ‘함바’의 운영권을 얻기 위해 고위급 경찰과 관계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하며 돈을 뿌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브로커 유상봉(65)씨가 건강 악화로 24일 풀려났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유씨가 갑상선암과 당뇨, 고혈압 등으로 건강 상태가 매우 악화돼 구속집행이 정지됐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유씨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이날 밤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지난해 가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유씨는 완쾌되기도 전인 11월에 붙잡혀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수사를 받으며 당뇨와 고혈압 증세까지 겹치면서 유씨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검찰은 유씨가 건강 문제로 조사를 받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 기한은 다음 달 16일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유씨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임한 것에 대한 배려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유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5명의 고위급 관계자를 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편 검찰은 이날 최영(59) 강원랜드 사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최 사장은 유씨로부터 공사현장 식당 운영권을 얻게 해 달라는 청탁과 파친코 기계 납품 등의 명목으로 총 7000만원의 금품을 받고, 5000만원 상당의 명품시계를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최영·이동선씨 영장 청구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최영(59) 강원랜드 사장과 이동선(58) 전 경찰청 경무국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SH공사 사장을 지낸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함바브로커’ 유상봉(65·구속기소)씨에게 SH공사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주는 대가로 그로부터 12회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강원랜드 사장 재직 동안 유씨로부터 파친코 기계 납품, 새시공사 수주, 지인의 강원랜드 입사 청탁 등의 대가로 3차례에 걸쳐 현금 2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최 사장은 유씨에게 5000만원 상당의 스위스제 명품시계를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국장도 2008년 8월부터 2010년 5월 사이 유씨의 건설현장 민원을 해결해주고, 유씨 관련 고소사건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그로부터 18회에 걸쳐 1억 1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유씨를 몇 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받은 사실은 전혀 없다.”며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둘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11일쯤 서울동부지법에서 있을 예정이다. 이로써 “검찰의 함바 비리 수사가 출구에 거의 도착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수사의 꼭짓점이었던 강희락(58) 전 경찰청장을 구속 수감한 것이 나머지 실타래를 푸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다음 영장청구 대상으로 이길범(57) 전 해양경찰청장과 배건기(53) 전 청와대 감찰팀장이 검토되고 있다. 이 전 청장과 배 전 팀장도 이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 사장과 이 전 국장처럼 재소환 과정을 거쳐 조만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파친코걸’ 이자민, 이번엔 ‘월드콘걸’에 발탁

    ‘파친코걸’ 이자민, 이번엔 ‘월드콘걸’에 발탁

    ’파친코걸’ 이자민이 롯데제과 월드콘 광고모델로 발탁됐다. 이자민은 2008년부터 일본 파랏쪼(PALAZZO)그룹의 전속모델로 활약하며 떠오르는 한류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파랏쪼그룹은 일본의 유명 파친코 그룹으로 이자민은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속모델로 발탁됐었다. 이번에 출연하게 된 월드콘 광고는 배용준, 채시라, 차태현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낸 적 있어 더 주목된다. 이번 광고는 추운날씨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보조출연자 400여 명과 함께 촬영됐다. 이자민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맞춰 관객 속에서 열띤 응원을 하는 모습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역할을 시원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이자민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즐겨먹었던 아이스크림 월드콘CF에 출연하게 돼 너무 영광스럽고 기쁘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사진=제이스타스 제공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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