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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Z 백신→화이자 교차 접종한 50대 경찰관, 3일 만에 사망

    AZ 백신→화이자 교차 접종한 50대 경찰관, 3일 만에 사망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뒤 화이자 백신을 교차 접종한 50대 현직 경찰 간부가 접종 사흘 만에 사망했다. 20일 경북 칠곡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새벽 2시쯤 칠곡 북삼읍의 한 아파트에서 구미경찰서 인동파출소 A경위(52)가 거실에 의식없는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새벽 3시 18분쯤 숨졌다. A경위는 지난 4월28일 AZ 백신을 1차 접종했으며 지난 17일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후 두통과 오한 등 이상반응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경위가 평소 건강했다는 동료와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사망과 화이자 백신 접종의 연관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경로 마음에 안 든다고…택시기사 욕하고 때린 50대

    경로 마음에 안 든다고…택시기사 욕하고 때린 50대

    경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택시기사를 때리고 파출소 앞에서 경찰관까지 밀친 50대 남성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5일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부장 심병직)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52)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1월3일 오후 10시23분쯤 서귀포시의 한 도로에서 택시기사 B씨의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정상적인 코스가 아니다. XXX야, 죽을래”라고 욕설하며 왼손으로 B씨의 얼굴을 한 차례 때렸다. 같은날 A씨는 서귀포경찰서 모 파출소에 가서도 소란을 피웠다. A씨는 당일 오후 10시45분쯤 서귀포시의 한 파출소 앞에서 한 경찰관으로부터 마스크를 쓰고 인적사항을 말해 달라는 요구를 받자 “XX, 마음대로 해. 아까 전부 말했잖아”라고 말하면서 두 손으로 해당 경찰관의 가슴을 밀치기도 했다. 재판부는 “운전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고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이 사건 범행의 죄질이 가볍지 않지만 피고인이 반성하는 점,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지 않은 점, 폭행의 정도가 중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 “담 넘다 붙잡힌 아이...야구방망이로 때려 사망하니 눈앞에서 질질 끌고갔어요”[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담 넘다 붙잡힌 아이...야구방망이로 때려 사망하니 눈앞에서 질질 끌고갔어요”[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할머니 집서 매맞기 싫어 엄마 찾아가다 더한 지옥 끌려간 남매 “야 얘 죽었다. 치워라.”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에서는 아이들을 상대로 견디기 힘든 구타와 학대가 자행됐다. 아이들은 자신의 키에 몇 배가 되는 형제복지원의 높은 담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야구방망이를 든 경비들에게 번번이 붙잡히기 일쑤였다. 한번은 담을 넘으려던 한 남자아이에게 덩치 큰 남자 경비 대여섯 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이를 포댓자루에 돌돌 말아서 방망이로 마구 내리쳤다. 한 명이 “잠깐만”이라고 외칠 때까지 한참 동안 폭행이 이어졌다. 그는 야구방망이로 아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이가 반응이 없자 “얘 죽었다. 치워”라고 말했고, 남자들은 그 아이를 질질 끌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승연(45·가명)씨가 7살의 어린 나이로 목격한 잔혹한 광경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1983년 그녀는 5살짜리 동생 김승준(가명)씨<3일 자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6화]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형제원행...자식 찾아 8년 헤맨 아버지는 빚더미>와 함께 엄마를 만나려 기차를 탔다가 잘못 내린 부산역에서 경찰들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4년간 폭행과 학대가 매일같이 자행됐다. 김씨 남매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어떤 날은 김씨가 있던 23소대에 연탄가스가 누출됐다. 밖에서 걸어잠근 문 때문에 제때 피신하지 못한 김씨는 의식을 잃고 끌려나갔다. 김씨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소대에 동료 몇 명이 사망했다. 또 한 번은 전염병이 돌았다. 열이 40도를 넘었고 생사를 넘나들던 김씨는 다행히 회복했지만 동료 한 명을 잃었다. 김씨 남매는 8년이 흐르고서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어린시절 겪은 죽음의 공포는 잊히지 않고, 트라우마도 여전하기만 하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우리의 억울한 일을 국가는 왜 외면하는가? 우리는 왜 여전히 고통받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김씨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주지 않는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김승연 진술내용: 전 1983년에 형제복지원에 잡혀갔습니다. 그때 제 나이 7살이었어요. 제 남동생은 5살이었고요. 저와 남동생은 서울 영등포 신길동 친할머니 집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았어요. 엄마랑 아빠는 제가 5살 때쯤 이혼하시고 저랑 남동생은 신길동 친할머니 집에 살았고, 언니는 큰고모 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때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셔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릴 키울 수 없어서 각각 친척집에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나 막내 삼촌은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매일 나랑 동생을 구박하고 때렸어요. 전 참다못해 대전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동생의 손을 잡고 영등포역으로 가서 외할머니 집에 갔다가 막내 이모가 아빠한테 연락하여 다시 친할머니 집으로 보냈어요. 영등포에 도착하니까 아빠랑 막내 삼촌이 저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아빠한테 혼났는데, 아빠가 미안하다고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 한 벌 사주시고 남동생도 옷 한 벌 사주고 언니 옷까지 사줬어요. 맛있는 것을 사서 먹으라며 그 당시 사백 원 정도의 용돈도 줬어요. 아빠는 우리한테 평소에 언니랑 나는 똑같은 옷을 입히는 것을 좋아했고 남동생도 항상 정장 옷에 모자 씌웠어요. 전 늘 공주처럼 옷을 입고 다녔고 애들한테 자랑했어요. 저희가 용돈을 받은 당일 아빠가 막내 삼촌을 혼냈더니 삼촌이 화가 많이 났어요. 아빠는 그 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셨어요. 막내 삼촌은 저희 째려보면서 “집으로 가 있어. 삼촌 친구들 만나고 갈 테니까”라고 했는데 마치 ’너흰 내가 가면 죽었어’ 하는 표정이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집에 도저히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들어가면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다시 뒤돌아서 대전 외할머니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동생의 손을 잡고 다시 영등포역으로 가서 대전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를 탔어요.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잘못 내린 부산역서 경찰들 손에 형제원행그런데 모르고 잠이 들어버려서, 그대로 부산에 도착하게 되었고 밤에 어린아이 둘이 내리니까 역무원 아저씨가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기에 대전에 내려야 하는데 잠들어서 여기 부산까지 왔다고 하니까 역무원 아저씨가 부산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 데려다 줬어요. 경찰 아저씨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서 “기차 안에서 잠이 들어 대전에 못 내리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더니 집 주소를 아느냐고 묻기에 외할머니 집 주소랑 전화번호에 약도까지 그려줬어요. 그랬더니 경찰 아저씨가 “알았다. 집에 연락해서 데려다 준다. 기다리라”고 해서 파출소에서 기다리다 잠들었어요. 깨보니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 차에 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차를 봤는데 차가 이상한 거에요. 냉동 탑차 같은 데 타라고 하기에, “집에 가는 차 맞느냐”고 물으니, “맞다. 데려다 줄게”라고 해서 차를 타려는데 어두 컴컴한 차 안에 몇 사람이 타고 있더라고요. 속으로 ‘아 저 사람들도 다 집에 데려다 주나 보다’하고 동생과 차에 탔더니 차 문을 잠그고 출발했어요. 그래서 전 ‘집에 가는구나’하고 차에서 또 잠들었어요. 갑자기 저와 동생을 깨우더니 “집에 다 왔다”면서 내리라고 했어요. 거대한 철문 앞에 차가 서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어른들이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더니 철문을 밖에서 걸어버리는 소리가 났어요. 그러더니 또 다른 누군가가 따라오라고 해서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철문을 또 열쇠로 따더라고요. 문을 3번 정도 열쇠로 따더니 (저와 동생을) 툭 집어넣으면서 “저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하고는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어요. 진짜 무서웠지만 제 나이가 그때 7살, 동생은 5살밖에 안 돼서 무슨 말도 못하고 그저 자라고 하기에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려고 갔어요. 컴컴한 데서 어렴풋이 보니 2층 침대가 쭉 일자로 있더라고요. 나와 동생은 한쪽 침대에서 잤고, 아침이 돼서 일어나라고 해서 깨어보니 어마어마하게 길게 뻗어 있는 2층 식 침대들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놀랐어요. 그러더니 누군가가 불러서 파란 운동복과 검정 고무신을 주며 갈아입으라고 해서 갈아입었어요. 제게 앉으라더니 제 긴 머리를 막 자르더라고요. 전 울면서 동생과 나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막 때렸어요. 조용히 하라고. 그때부터 저희에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어요. 처음에 잡혀들어가면 아무 이유없이 막 때려요. 한마디만 해도 때리고, 울어도 때리고. 그제야 눈치를 채고 여기서 나랑 동생은 평생을 살아야겠구나 하고 포기를 하다시피 하면서 생활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하기 시작했어요. 맨 처음에 시키는 게 있더라고요. 세 가지를 무조건 외워야 한대요. 국민교육헌장, 주기도문, 사도신경 이 세 가지를 1주일을 주면서 외우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맞아 죽는다고. 전 너무 무서워서 그 어린 나이에도 무조건 암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한대라도 덜 맞으려고 최대한 빨리 암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취침시간에도 잠도 못 자고 소대 안에 난로가 있어서 그 앞에서 추우니까 다들 딱 달라붙어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신입들은 그걸 외워야 한다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먼저 잡혀온 사람들은 이미 암기 다했다고 재우고···. 우린 그 어두운 데서 아주 조용하게 그 세 가지를 외워야 했어요. 눈앞에서 아이 때려 죽이고는 “치워라”...잔혹하고 무서운 공포진짜 매일 맞았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의 삶이었고 무서웠고 고통이었지만 버텨야 했어요. 저희 23소대가 여자 아동소대라서 맨 위쪽에 있어서 별걸 다 봤어요. 높은 담에 (아이들이) 도망 못 가게 경비들이 야구 방망이 같은 걸 들고 맨날 서 있어요. 근데도 사람들이나 특히 남자들이 도망을 엄청 시도했어요. 전 그걸 보면서 느낀 게 도망가다 잡히면 매를 맞아 죽는데 왜 가는지···. 그때 제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전 (도망) 시도나 생각도 안 했어요. 아니 그냥 포기하고 살았어요. 어떤 날은 어떤 남자가 도망가다가 잡혔어요. 소대 사이에서 사람들 다 보라는 듯 그 남자를 포댓자루에 돌돌 말더니 대여섯 명이 마구 때리기 시작하더니 한참을 때리다가 때리던 어떤 남자가 “잠깐만”이라고 하더니 맞고 있는 남자를 몽둥이로 툭툭 쳤어요. 그리고는 “야 애 죽었다 치워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그 죽은 사람을 교회 쪽으로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저에겐 너무나 잔혹한 장면이었고 무서웠고 공포였어요. 제가 그 뒤로 사회생활 하면서 교통사고 나서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고 심지어 밥도 잘 먹어요. 난 “내가 왜 이렇게 독하지”하며 살았고,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독하다고 할 때 그냥 제가 마냥 그런 성격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니 그 트라우마 때문에 익숙해져서 몰랐을 거라고 했어요. 그 소리를 딱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내가 어릴 때 사람 죽어나가고 그런 것들만 보고 컸으니 그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내 자신이 무서웠어요. 그렇게 거기서 매 맞아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다반사였어요. 어떤 날은 우리 23소대에서 연탄가스가 누출되어서 자다가 끌려 나온 적도 있어요. 소대는 잘 때 되면 밖에서 문을 잠그기 때문에 안에서 큰일이 발생해도 바로 피신도 못해요. 그러다 연탄가스 마셔서 쓰러지고 깨어보니 누가 저에게 김칫국물 같은 걸 먹이고 있더라고요. 전 가까스로 살아났고 그날 23소대에서 죽은 애들도 몇몇 있었어요.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끔찍해요.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아주 아팠거든요. 그때 열이 40도가 넘었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사회 병원 갔었는데,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니 그냥 데려가라고 해서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복귀했어요. 소대 안에 목욕탕이 있는데 그 탕 안에 얼음을 왕창 넣고 절 집어넣어서 열을 내린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 다음 날 저는 좀 정신을 차려서 깨어났는데 저 때문에 23소대 사람들이 다 전염이 되었더라고요. 마지막에 걸린 애가 있었는데 그 애는 결국 죽고 말았어요. 지금도 그 애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살아요. 매맞다 머리에 못박히고...함께 끌려온 동생은 매일같이 멍들어 거긴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어요.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말 안 들으면 굶기는 건 늘 있고 내 남동생은 바로 옆에 있는 24소대에 살았는데 한 번씩 얼굴 보면 맨날 멍이 들어 있고 다리도 부러지고···. 진짜 매일같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면서 살았어요. 저도 형제복지원 안에서 엄청 맞고 아직도 내 머리 뒤쪽에는 조장 언니가 때리면서 박힌 못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그때도 죽다 살아났어요. 지금 이걸 쓰면서도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형제복지원에서 지내왔던 4년 6개월을 일일이 쓴다는 자체가 저한테 다시금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런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1987년에 부산형제복지원이 폐쇄됐어요. 다들 급하게 정리한다고 옷가지 몇 개 챙겨서 빨리 봉고차에 타라고 난리였고 그렇게 줄지어 있던 봉고차들이 애들을 한 차에 수십 명씩 태워서 뿔뿔이 흩어졌고, 저와 동생은 부산남광아동복지원으로 또 가게 됐습니다.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았지만 노동일은 시키는 것은 똑같았어요. 지금도 부산에 내려가다 보면 마지막 부산 톨게이트에 다와 갈 때쯤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산 한쪽이 불이 나서 나무를 등에 메고 꼭대기까지 심으러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아직도 그 산을 보면 눈물이 나요. 저랑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매 맞는 게 싫어서 엄마를 보러 갔다가 잠들어서 형제복지원으로 잡혀갔어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런 곳에서 살게 됐어요. 제 남동생은 두 번째 고아원으로 갔을 때 형제복지원에서 갇혀 산 기억 때문에 맨날 고아원에서 도망갔다가 잡혀오고 또 도망갔다가 잡혀오고···. 저와 지도 선생님은 맨날 남동생 잡으러 다니는 일이 일과였을 정도였어요. 공주 옷만 입히던 아버지는 8년간 자식 찾아 다니다 판자촌으로 그렇게 형제복지원 4년 6개월에 두 번째 남광아동복지원 3년 4개월, 모두 8년을 살았어요. 그러다 8년간 우리를 찾아다닌 아빠를 만나서 집으로 가게 됐어요. 근데 막상 집에 와보니 놀랬던 건 우리 집이 그렇게 잘살았었는데 (아빠가) 판자촌 같은 데서 살고 있더라고요. 그때 내가 그랬죠. 우리 집 왜 이러냐고. 그땐 아빠가 말을 안 해줬어요. 차라리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나중에 커서 알게 됐는데 그때 우리 남매를 잃어버리고는 우리를 찾으러 다닌다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셔서 벌어놓은 돈을 다 썼더라고요. 8년 동안 전국 고아원이라는 데는 다 가서 찾았데요. 형제복지원도 두 번이나 갔었는데, 우리 없다고 아빠를 막 때리기도 했대요. 그래서 우리 집이 가난해진 거에요.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찢기는 마음이었고 너무 미안했어요. 남동생은 집에 와서도 매일 도망 나가고 아빠는 맨날 집을 나가는 남동생을 찾으러 다니고···. 나도 막상 집에 왔는데 적응을 못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남동생은 5살 때부터 갇혀 살아서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집에 와서도 아빠와 언니한테 정을 못 붙이고 살았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똑같고···. 어떨 땐 우리 둘이만 식구 같았어요. 전 그곳에서 하도 매질을 당하고 기합받고 해서 안 아픈 곳이 없어요. 10년째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지금껏 살고 있고요. 전 자살 시도한 적도 많아요. 2017년엔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자살한다고 난리 피다가 병원에 3일간 강제입원 당한 적도 있어요. 작년에도 죽음 문턱까지 갔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나서 지금도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어요. 형제복지원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아직도 그때의 행동이나 습관들이 자리 잡혀 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자고 하거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끼리 만나면, 형제복지원 생활 얘기를 해서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가 않아요. 이 고통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안고 살 고통...인권유린 사건 제대로 바라봐 달라근데 왜 우리의 이 억울한 일들을, 이 인권유린의 사건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겁니까? 이 고통을 배보상해주거나 트라우마 치료에 힘써주지 않고 국가는 왜 외면하는 겁니까? 우리가 왜요?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 어린 시절에 버젓이 부모님이 살아계셨는데 부모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왜 고통받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그때 물건이 아니었어요. 사람이었어요. 어떻게 사람을 공무원들이 돈 받고 사람을 팔아요? 진짜 짐슴만도 못한 짓을 사람들이 하나요? 왜 부모님들과 생이별을 시켜서 유년시절을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게 했나요? 다시 묻고 싶어요. 우리한테 왜 그랬는지. 저는 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인터뷰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경비들이 총만 안 들고 있었지 형제복지원은 우리나라에 아주 작은 북한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일들을 자신의 아들딸, 부모님, 혹은 본인들이 당했다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권력에 힘이 있었다면요? 본인들 일이라고 다 생각해보세요. 그때는 예외가 없었어요. 갓난아기부터 아주 나이 드신 분들까지 잡혀갔어요. 그때 운이 좋아서 안 잡혀갔던 거지 그 당사자가 본인들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발 우리 나머지 인생을 고통 속에서 살지 않게 해주세요. 8년간 맞은 몸 후유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제발 우리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세요!!!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경찰 92% “보디캠, 범죄입증 도움”… 법 근거 없어 시범사업만 5년째

    경찰 92% “보디캠, 범죄입증 도움”… 법 근거 없어 시범사업만 5년째

    국회서 논의 미뤄 ‘행정규칙’에 머물러서울 마포·영등포·강남 100대 운용 중정식 보급 안 돼 경찰관들 자비로 구입 ‘현장 감시 악용’ 우려 도입 반대 여론도업무 도중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잦은 경찰관 10명 중 7명 이상은 증거 확보와 안전 보장을 이유로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인 보디캠이 공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디캠을 사용할 법적 근거가 없어 정식 도입은 5년 넘게 미뤄지고 있다. 15일 한국경찰연구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한국경찰연구’에 실린 논문 ‘지역경찰관의 보디캠에 대한 인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서울·경기지역 지구대·파출소·치안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151명 중 76.8%가 보디캠 사용이 업무 수행이나 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4월 20일부터 5월 11일까지 진행됐다. 보디캠의 영상증거가 범죄혐의 입증에 도움이 된다는 물음에 경찰관의 92.1%가 동의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 동안 해마다 약 1만 2800건의 공무집행방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은 2015년 11월 보디캠 장비 100대를 도입해 ‘웨어러블 폴리스캠’이라는 이름을 붙여 시범 운용 중이다. 현재 서울 마포·영등포·강남경찰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보디캠 정식 도입은 5년 넘게 미뤄지고 있다. 장비 사용방법과 절차, 영상기록물 처리 및 보호 방법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논의를 5년째 미루는 바람에 행정규칙에 근거한 시범 사업에 머물러 있다. 보디캠을 4만~5만대까지 확대 운용할 생각으로 구축한 영상물 저장·관리 서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버 사용 연한이 다음달로 만료돼 보디캠 사업을 유지하려면 수억원을 들여 서버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찰관들의 53.0%는 보디캠을 정식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이 운용 중인 보디캠이 100대에 불과해 다른 경찰관들은 자비로 보디캠을 사서 쓰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보디캠의 정식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설문에 참여한 경찰관의 20.8%는 보디캠이 현장 경찰관의 업무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고 장비 관리의 책임이 증가한다는 등의 이유로 보디캠의 정식 도입에 반대했다. 논문을 쓴 표선영 가톨릭대 행정학과 조교수는 “보디캠으로 찍은 영상기록물에서 확인된 경찰관의 특정 행위가 불공정한 처분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면서 “보디캠은 시민 인권과 사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공청회를 통해 시민 의견을 수렴해 정식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들 찾으려다 함께 ‘지옥’에 갇힌 아버지의 붉은 눈시울[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아들 찾으려다 함께 ‘지옥’에 갇힌 아버지의 붉은 눈시울[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7>1982~1987년, 형제원 강제수용된 정용태씨 진술서동네 형과 영문도 모른채 순경한테 끌려가곡괭이 자루·연탄 집게 빳다에 성폭행까지아들 찾아 나선 아버지까지 형제원에 감금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동네 형과 부산역 앞에 갔다 붙들려…순경이 태운 탑차에 갇힌채 형제원으로 39년 전 어느 날, 친구를 마중하러 간다던 동네 형을 따라 집을 나섰던 정용태(49·가명)씨는 그날의 가벼운 발걸음이 자신을 지옥으로 향하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집으로 다시 보내 준다던 파출소 순경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탑차를 타고 형제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작된 구타와 학대는 10살짜리 어린 아이였던 정씨에게 맞설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도대체 왜, 누가 자신을 형제원으로 보냈는지 모른채 시작된 형제원 생활은 고문에 가까웠다고 정씨는 말한다. 강제 노역은 일상이었다. 각종 작업에 동원돼 시간 안에 작업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매질을 당해야 했다. 작은 체구로 몸집만한 돌덩이를 등에 지고 옮겨 나르는 일은 예사였다. 매일 밤 음악 선생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불러낸 30대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기절할 정도로 맞았다.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다. 정씨가 형제원을 나온 뒤에도 평범한 인생을 되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정씨에게 더 큰 충격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파출소에 항의한 아버지까지 형제원에 끌려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87년 형제원 생활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형제원을 나왔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형제원에 갇혀 있다. 피해자들은 국가를 향해 이제 그만 자신의 삶이 형제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힘겨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정용태 진술내용: 1982년 9월23일 목요일 저녁 9시쯤 부산 초량동 부산역 앞 화단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옆집에 사는 형과 함께 광주에서 오는 형의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파출소 순경 두명이 우리를 보고 다짜고짜 파출소로 끌고갔습니다. 파출소에서 ‘우리는 지금 누굴 마중 나왔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니 순경 한사람이 ‘곧 보내 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탑차 한 대가 파출소 앞으로 왔습니다. 알고보니 형제복지원 차였습니다.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우리를 인계받아 강제로 탑차 뒤 칸에 실고 밖에서 문을 잠궜습니다. 얼마후 철문을 여는 큰 소리가 났고, 우리는 형제원 안으로 잡혀 왔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와 누나가 너무나 보고 싶었고 창고같은 건물안에서 옷도 입지 않은채 얼차려를 받고 있으니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났습니다. 같이 잡혀온 일행이 집에 연락해달라고 항의하자, 형제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몽둥이와 발길질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서 시키는대로 고무신과 형제원 마크가 박힌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그때부터 수형번호 82-2167 번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작업속도 쫓겨 피 흘려도 방치···밤마다 불러내 성폭행 한 음악선생, 소리 지르면 샌드백 치듯 때려 형제원에서는 인권이라는 것은 없이 짐승같은 대우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눈뜨면 낚시 공장에서 낚시바늘 포장작업을 했습니다. 낚시 바늘을 낚시줄에 감아서 네모난 종이에 곱게 감는 작업인데, 10분 안에 10개 이상을 포장하지 못하면 곡괭이 자루와 연탄 집게로 못채운 갯수만큼 빳다(몽둥이)를 맞았다. 어느 날은 낚시 바늘이 손톱 뒤쪽에 박혀 뺄수가 없는데 그 바늘을 생으로 뽑아서 손톱이 반쯤 빠지고 또 낚시 바늘이 볼 뒤쪽 귀밑에 박혔는데 그것도 그냥 뽑아서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치료 해주지 않았습니다. 장난감 공장에서는 장난감 권총을 포장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포장 도구인 아크릴에 호치케스를 찍는 일이었는데, 이 작업도 시간 안에 못하면 맞으니까 빨리 하려고 하다보니 손등과 손가락에 호치케스를 박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또 형제원 안에 있는 교회 확장 작업을 한다고 열두살 어린애가 등에 20㎏이 넘는 돌을 지고 형제원에서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교회까지 200미터 남짓한 거리를 매일 몇 개월 동안 날랐습니다. 이모든 일들이 지금은 글로 표현하려니 한계가 있지만 격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고통이었습니다. 13소대. 13소대는 음악소대였습니다. 70명이 한방에서 생활하는데 음악 선생은 밤만 되면 나를 자기 침대로 불러서 성폭행을 했습니다. 자기 성기를 내 항문에 찌르고 아파서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르면 거의 기절할 만큼 폭력을 가했습니다. 아직도 치가 떨리고 그때가 생생합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입에 담기도 그렇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당했습니다. 30대의 건장한 남성의 힘으로 그 어린 나를 샌드백 치듯 때렸으니 죽고 싶었습니다. ‘아들 찾아달라’고 항의하다 끌려온 아버지…형제원 생활 후유증으로 3년 만에 세상 떠나 1984년 10월 정확히는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밥을 먹으려고 줄을 맞춰 식당으로 이동 중 이었다. 저쪽에서 14소대 소대원들도 식당으로 이동중 이었습니다. 그런데 14소대 소대원중에 저의 아버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부친께서는 저를 찾아 달라고 파출소에 항의하다 저처럼 형제원에 끌려와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부친께서는 저를 보고 당신이 무능해 부자가 함께 갇혀있는 게 속상하신지 가끔 스쳐 지나치실 때 마다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힘드셨을지. 제 아버지는 1년에 한번 명절 날이면 1인당 하나씩 나눠주는 노란 시루떡을 당신은 드시지 않고 가슴 안쪽에 감추고 계시다가 식당 앞쪽에서 마주칠 때면 몰래 손에 쥐어주고 가시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시루떡만 보면 화가 치밀고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는 1987년 4월 사건이 터지고 사회로 나와서 형제원의 폭력과 작업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그해 1987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982년 9월 형제복지원이 국가의 ‘내무부훈령410호’로 강제노동·강금·폭행 등 인권유린을 당하고, 가족도 잃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설곳이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한 곳에 가둬두는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습니까. 형제복지원을 나와 혼자서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신문팔이, 중국집 배달원, 김 양식, 구두닦이 등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 때의 고문같은 생활로 인해 올바른 직업 한 번 갖지 못하고 악몽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30년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있어야 할 이 나라, 이 국가가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이 억울함과 분노·고통을 국가가 보상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형제복지원 피해자 정용태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환경미화원과 몸싸움”…벨기에, 주한 대사 즉시 소환한다

    “환경미화원과 몸싸움”…벨기에, 주한 대사 즉시 소환한다

    대사 부인의 두번째 싸움벨기에 “지체없이” 긴급소환 피터 레스코이에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 쑤에치우 시앙씨가 최근 몇달새 잇따라 폭행 논란에 휘말린 가운데 벨기에 외교당국이 주한 대사를 즉시 귀국시키겠다고 밝혔다. 8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소피 윌메스 벨기에 외교장관은 최근 4개월 동안 두 차례나 폭행 사건이 일으킨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 문제와 관련해 주한 벨기에 대사를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소환하겠다”고 말했다. 윌메스 장관은 “주재국에 대한 대사의 책임과 한국과의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벨기에는 시앙씨가 옷가게 점원의 폭행에 문제가 된 지난 5월 피터 레스코이에 대사를 공식 소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레스코이에 대사는 올 여름 중에 이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앙 씨가 환경미화원을 폭행한 사건이 터지자 이임 시기가 앞당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전날 한 언론은 레스쿠이에 대사가 이번 달 내 귀임할 예정으로, 시점은 이르면 다음 주 주말쯤이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매체는 “벨기에와 한국은 올해 수교 120주년을 맞으며, 벨기에는 한국전쟁 때 군대를 파병한 나라 중 하나일 정도로 외교 관계가 대체로 우호적이었다”라면서 “벨기에 국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페이스북 게시물이 특이하게 많은 수의 분노한 이모티콘을 끌어모았고 대사관에서 댓글을 차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벨기에 다른 매체들도 첫 번째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사건을 잇따라 보도했다.한편 시앙씨는 지난 4월 옷가게 점원 폭행에 이어 최근 환경미화원과도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등에 따르면 시앙씨는 지난 5일 오전 9시 2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A(65)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서로 몸싸움을 했다. A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A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이 처음엔 형사 입건되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당일 오후 한남파출소를 찾아 “벨기에 대사 부인이 뺨을 두 차례 때렸다”고 진술했고, 고소 관련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는 뺨을 맞는 과정에서 대사 부인을 밀친 점은 인정했지만 대사 부인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 줄리안 “벨기에 대사 부인 수치스럽다…모국 언론에 직접 제보”

    줄리안 “벨기에 대사 부인 수치스럽다…모국 언론에 직접 제보”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연이어 폭행 사건을 일으킨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에 대해 수치스럽다며 모국 언론에 직접 제보했다고 밝혔다. 줄리안은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저번 일(옷가게 직원 폭행 사건)이 있었을 때는 사람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환경미화원 쌍방 폭행) 같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벨기에 대사 부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게 화나고 안타깝고 국민으로서 수치스럽다”고 했다.줄리안은 외교관 면책 특권에 대해 “첫 번째 사건에서는 면책 특권을 일부 포기해 조사만 받았다고 들었다. 이번에 또 같은 일을 저지른 건 면책 특권을 인지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외교부의 움직임이 더 화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줄리안은 또 “7월까지 대사가 임기를 지키기로 한 만큼 부인이 조금이라도 벨기에 생각을 했고 남편 생각을 했고 반성했다면 이런 사건은 안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며 “핑계가 없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직접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아무래도 벨기에 대사와 여러 번 뵀기 때문에 부인도 여러 번 봤다”며 “사람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긴 힘든 짧은 시간이지만 남다른 포스를 받긴 했다. 제게 무례한 건 아니었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줄리안은 대사 부인의 두 번째 폭행 사건 이후 직접 벨기에 언론에 제보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어제도 뉴스를 보자마자 벨기에 언론에 연락했고 어제 바로 보도가 됐더라”고 했다.그는 “어떤 나라든 간에 이상한 사람은 있는 거고 벨기에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이번 사건이 잘 조사돼서 외교 면책도 내려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피터 레스쿠이에 대사 부인 쑤에치우 시앙씨는 지난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A(65)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실랑이를 주고받았다. 이어 두 사람 간 몸싸움으로 번졌고 A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두 사람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은 형사입건 되지 않고 종결됐지만 당일 오후 A씨가 파출소를 찾아 “대사 부인이 뺨을 두 차례 때렸다”며 고소 관련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날 대사 부인이 공원 한쪽에 놓아둔 A씨의 도시락을 발로 차면서 시비가 시작됐고, 2주 전에도 대사 부인으로부터 모욕적인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공원 의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발견해 주인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대사 부인이 A씨 얼굴에 휴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대사 부인은 지난 4월 서울 용산구의 옷가게에서도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 임기를 올해 7월로 종료하고 부인과 함께 귀국 조치하기로 했다.
  • ‘중국계’ 벨기에 대사 부인 잇따른 기행에 中 “한국인” 주장

    ‘중국계’ 벨기에 대사 부인 잇따른 기행에 中 “한국인” 주장

    피터 레스쿠이에 주한 벨기에 대사의 중국계 부인 쑤에치우 시앙이 여러 사건사고로 잇따라 물의를 일으키자 일부 중국 네티즌이 “A씨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7일 중국 소셜미디어 등에는 시앙의 기행 소식을 전하는 소식마다 그가 ‘한국계’라고 주장하는 댓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때린 것이다”, “저 부인은 분명 한국 사람이겠지”, “대사 부인은 분명 한국계” 등 글들이 달리고 있다. 그가 중국계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손절’하려는 분위기다. 시앙은 지난 5일 서울 한남동에서 환경미화원 A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승강이를 벌이다가 몸싸움을 벌였다. A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양측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형사 입건되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당일 오후 파출소를 찾아 “벨기에 대사 부인이 뺨을 두 차례 때렸다”며 고소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주 전에도 대사 부인에게서 모욕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앙이 A씨의 도시락을 발로 차 시비가 시작됐다. 앞서 시앙은 올해 4월 서울 용산의 한 옷가게에서도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외국 대사의 가족은 면책특권 대상이다.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는 벨기에 대사 부인이 두 번이나 폭행사건에 연루된 것을 두고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줄리안은 전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벨기에 대사 부인 관련 글을 또 올리게 될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어제 뉴스 뜨는 거 보고 믿기지 않았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벨기에 대사 부인으로서 벨기에와 남편 생각을 했다면, (지난 사건에 대한) 반성을 했다면, 설사 누군가 본인한테 먼저 실수를 했더라도 사건이 커지지 않게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버티다가 조용히 (벨기에로) 가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가 업무를 원만히 수행하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이달 중 귀국 조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경찰조사 받았는데 아직도 수배 중?”

    지명수배자가 경찰 조사를 받은 후 풀려났는데도 18일 간 수배를 해제하지 않아 다른 경찰관으로 하여금 또 다시 지명수배자로 오인 받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는 정부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옴부즈만은 ‘조사를 받은 후 지명수배가 경찰전산시스템에서 해제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는 고충민원에 대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지명수배자 A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나서 이후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관에게 단속됐다. A씨는 단속한 경찰관의 휴대용 단말기에 ‘수배통보대상자’로 나타나자 “이미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항변했으나 경찰관은 후속조치를 다시 진행했다. 이후 경찰관은 파출소에 복귀해 A씨에 대한 경찰조사가 이미 끝나 지명수배 대상자가 아닌 것을 확인했다. 권익위 경찰옴부즈만은 “명수배자를 검거하거나 조사가 끝났다면 경찰수사규칙49조에 따라 즉시 수배 해제를 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지명수배자로 다시 검거될 수 있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씨도 지명수배 됐다가 검거돼 조사를 받은 후 풀려났는데 담당 경찰관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지명수배를 해제했다. 이를 모르고 있던 다른 경찰관이 B씨를 검거하기 위해 B씨가 다니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근무 여부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 “한국인이 한국인 때린 것”…벨기에 대사 부인 ‘부정’하는 中네티즌

    “한국인이 한국인 때린 것”…벨기에 대사 부인 ‘부정’하는 中네티즌

    중국계 벨기에 대사 부인, 잇따른 논란출신지 조작 나선 中 네티즌들 ‘포착’ 중국 태생인 주한 벨기에 대사의 아내 A씨가 잇달아 물의를 일으키자 일부 중국 네티즌이 A씨의 출신지를 조작, 부정하는 정황이 7일 포착됐다. A씨는 지난 4월 옷가게 점원 폭행에 이어 최근 환경미화원과도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오전 9시 2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B(65)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서로 몸싸움을 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중국 SNS 상황이라며 일부 중국인들이 A씨를 ‘한국계’라고 주장하는 댓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고 알렸다. 네티즌이 공개한 댓글에는 “한국인이 한국 사람 때린 것”, “저 부인 분명 한국 사람이겠지”, “대사 부인 분명 한국계”등 댓글을 달며 A씨가 중국 태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A씨는 중국 태생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빗자루 닿았잖아”…벨기에 대사부인, 환경미화원과 몸싸움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 A씨와 쌍방폭행 사건에 휘말린 환경미화원이 2주 전에도 대사 부인으로부터 모욕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5일 오전 9시 2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B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서로 몸싸움을 했다. B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B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이 처음엔 형사 입건되지 않았다. 그러나 B씨는 당일 오후 한남파출소를 찾아 “벨기에 대사 부인이 뺨을 두 차례 때렸다”고 진술했고, 고소 관련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B씨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뺨을 맞는 과정에서 대사 부인을 밀친 점은 인정했지만 대사 부인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저도 사람인데 (뺨을 맞으니) 감정이 생겼다”며 대사 부인을 밀친 경위를 설명했다. 심지어 B씨가 공원 한구석에 놓아둔 자신의 도시락을 대사 부인이 발로 차면서 시비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B씨는 “대사 부인이 발로 차면서 도시락이 한 1m 정도 날아갔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사 부인은 지난 4월 서울 용산구의 한 옷가게에서도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 임기를 올해 여름 종료하고 시앙씨와 함께 귀국 조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여기는 중국] 이름 뜻이 ‘무능한 사람’?…개명 신청한 남자의 사연

    [여기는 중국] 이름 뜻이 ‘무능한 사람’?…개명 신청한 남자의 사연

    무능하고 유약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이 참다 못해 개명 신청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중국 허난성 치현(淇县)에 거주 중인 올해 32세의 청 씨가 그 주인공이다. 청 씨의 부모님이 작명한 그의 본명은 ‘나오하이’(孬孩)로 중국어로 ‘나쁜 일’, ‘좋지 않은 증상’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특히 그가 사는 허난성 방언으로 풀면 그의 이름은 곧 ‘무능하고 유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청 씨는 설명했다. 그의 이름을 작명한 사람은 청 씨의 친부모였다. 청 씨는 개명 신청에 앞서 “내 이름은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하고 놀기 좋아했던 내게 부모님이 지어 불렀던 별칭이었다”면서 “평소 많이 배우지 못했던 부모님이 내 어린 시절 별명을 그대로 호적이 등록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청 씨는 자신의 본명 탓에 사는 동안 수 없이 많은 불편을 감수했다고 호소했다. 특히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제출할 때마다 번번히 서류 전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 두 번 서류 통과 후 면접에 참여할 때는 면접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 대신 본명을 작명한 부모님과 이름과 달리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변명하기 바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단순히 이름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그 외에도 학기 초마다 선생님들에게 부정한 이름 탓에 자주 불려 나가서 궂은 일을 감당해야 했고, 급기야 관할 공안국에서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 혐의자로 불려가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관할 공안국 관계자들은 단순히 그의 이름이 가진 뜻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그를 불러 전과 여부 등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취업을 위해 자동차 면허 취득 시험장을 찾았을 당시에는 그의 이름이 전광판에 게재되자 현장에 있었던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것을 참아야 했다. 가장 최근에 당한 이 일에 대해 청 씨는 “얼굴이 빨게 지도록 창피한 순간이었다”면서 “이날을 계기로 무엇을 하든 내 본명 탓에 시도하는 것이 남들보다 2~3배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갖은 고초와 역경의 순간에 대해 어릴 때는 사람들의 편견을 뒤집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면서도 “이제는 개명을 통해 이름으로 인해 빚어지는 편견을 극복하고자 한다”고 개명 신청 이유를 들었다. 한편, 관할 파출소 측은 청 씨의 개명 신청서를 정상적으로 접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특히 청 씨가 개명 신청 전 신용 불량자 등의 전력이 없고, 민형사 사건 등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그의 개명 신청은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 ‘벨기에 대사부인과 몸싸움’ 미화원 “먼저 내 도시락 발로 찼다”(종합)

    ‘벨기에 대사부인과 몸싸움’ 미화원 “먼저 내 도시락 발로 찼다”(종합)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과 쌍방폭행 사건에 휘말린 환경미화원이 2주 전에도 대사 부인으로부터 모욕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터 레스쿠이에 벨기에 대사 부인 쑤에치우 시앙씨는 5일 오전 9시 2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A(65)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서로 몸싸움을 했다. A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시앙씨와 A씨가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이 처음엔 형사 입건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화원 A씨는 당일 오후 한남파출소를 찾아 “벨기에 대사 부인이 뺨을 두 차례 때렸다”고 진술했고, 고소 관련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앙씨는 A씨와 서로 언성을 높이고 밀치는 과정에서 넘어져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다.미화원 A씨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뺨을 맞는 과정에서 대사 부인을 밀친 점은 인정했지만 대사 부인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저도 사람인데 (뺨을 맞으니) 감정이 생겼다”며 대사 부인을 밀친 경위를 설명했다. 심지어 미화원 A씨가 공원 한구석에 놓아둔 자신의 도시락을 대사 부인이 발로 차면서 시비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A씨는 “대사 부인이 발로 차면서 도시락이 한 1m 정도 날아갔다”고 주장했다. A씨는 2주 전에도 대사 부인으로부터 모욕적인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공원 의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발견해 소유주를 찾아보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대사 부인이 A씨 얼굴에 휴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대사 부인은 지난 4월 서울 용산구의 한 옷가게에서도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 임기를 올해 여름 종료하고 시앙씨와 함께 귀국 조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벨기에 대사 부인, 이번엔 미화원과 쌍방 폭행

    벨기에 대사 부인, 이번엔 미화원과 쌍방 폭행

    옷가게 직원을 폭행하고도 면책특권을 내세워 처벌을 피한 주한 벨기에대사 부인이 또다시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피터 레스쿠이에 대사 부인 수에치우 시앙은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A(65)씨와 언성을 높이며 다툼을 벌였다. 청소 중인 A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자 시앙이 화를 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양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은 형사 입건되지 않고 종결됐다. 넘어지면서 허리 통증을 호소한 시앙은 인근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는 이후 한남파출소를 찾아 ‘시앙으로부터 뺨을 맞았다’고 진술하며 고소 절차에 대한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시앙은 지난 4월 서울 용산구의 한 옷가게에서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입건됐다. 시앙이 외교관과 가족에게 적용되는 면책특권을 주장했고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논란이 커지자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 임기를 올여름 종료하고 귀국시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빗자루 닿았잖아”…벨기에 대사부인, 이번엔 환경미화원과 몸싸움

    “빗자루 닿았잖아”…벨기에 대사부인, 이번엔 환경미화원과 몸싸움

    옷가게 점원 때렸던 벨기에 대사 부인이번엔 환경미화원과 몸싸움 옷가게 직원 폭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주한벨기에대사의 부인이 이번엔 환경미화원과 쌍방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피터 레스쿠이에 대사 부인 쑤에치우 시앙씨는 이날 오전 9시 2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환경미화원 A(65)씨의 빗자루가 몸에 닿은 것을 발단으로 시비가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청소를 하던 중 빗자루가 시앙씨의 몸에 닿았고, 이에 시앙씨가 화를 내며 A씨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 서로 몸을 밀치기까지 했다. A씨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은 형사 입건되지 않고 종결됐다. 다만 시앙씨가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넘어져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A씨는 이날 오후 한남파출소를 찾아 ‘시앙씨로부터 뺨을 맞았다’고 진술하며 고소장 제출과 관련한 문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환경미화원분이 파출소에 와서 고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을 받았다. 아직 고소장을 제출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앞서 시앙씨는 지난 4월, 서울 용산구의 한 옷가게에서 점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시앙씨는 당시 옷가게 점원이 가게를 떠나는 그에게 계산 여부를 물었다는 이유로 몸싸움을 벌이며 직원의 뒤통수와 뺨을 때렸다. 해당 사건은 벨기에 대사 측의 면책특권 행사와 피해자들의 처벌불원서 제출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으로 벨기에 외무부는 레스쿠이에 대사 임기를 올해 여름 종료하고 시앙씨와 함께 귀국 조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역 맞춤형’ 치안서비스 제공… ‘지역 유착’ 막을 감시장치 필요

    ‘지역 맞춤형’ 치안서비스 제공… ‘지역 유착’ 막을 감시장치 필요

    자치경찰제가 다음달 1일부터 전국에서 시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해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책임을 담당하도록 한 제도다. 1945년 경찰 창설 이후 76년 만에 가장 큰 변화다. 정부의 계획대로 자치경찰제가 안착하면 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준비 부족에 따른 혼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업무영역, 지역 유착 우려, 편중된 자치경찰위원회 구성 등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자치경찰제는 지난 1월 1일 시행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입됐다. 이 법에 따라 국가경찰·자치경찰·수사경찰로 사무가 나누어졌다. 각 시도 자치경찰은 다음달인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자치경찰은 생활안전과 교통법규위반 지도·단속, 실종·가출·학교폭력·가정폭력 등 지역 주민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한다. 국가경찰과 달리 지자체별로 따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일반 국민은 기존과 같이 치안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국가·자치·수사 경찰의 업무를 따질 것 없이 112에 범죄 등을 신고하면, 경찰이 신고 내용에 따라 해당 부서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치안 예산 심사단계가 대폭 줄어든다. 예를 들면 ‘안전속도 5030’ 정책에 필요한 예산 5000여억원은 지난해까지 지방자치단체·국토교통부·경찰청 등에서 나눠 부담했다. 하지만 7월부터는 지자체가 이 예산을 통합 편성·집행해 주민 요구를 신속히 반영할 수 있다. 특히 각 지역 자치경찰위원회별로 지역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치안 대책이 나올 예정이다. 광주 자치경찰위는 ‘어린이 교통안전’, 부산은 ‘해수욕장 종합 치안대책’, 충남은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개설’, 대전은 ‘고위험 정신질환자 응급체계 고도화’ 등을 1호 시책으로 내놓았다. 한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1호 시책 등 지역별 맞춤형 치안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나오는 것은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자치경찰제가 성급하게 추진되면서 국가경찰과 업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책임을 둘러싼 갈등과 지역 유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장욱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치경찰제가 국민적 공감대와 공론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급히 추진되면서 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면서 “무엇보다 조직을 그대로 둔 채 일만 나눠 자치경찰위원회와 경찰청장 등 감독기관이 많아지면서 일관된 업무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민 밀착형 치안 서비스가 이뤄지려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사무가 더 세밀하게 나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주민 밀착을 넘어 ‘지역 유착’으로 변질할 우려도 있다”면서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지금보다 지역 유착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감시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치경찰에 대한 인사와 평가권한이 자치경찰위에 있지만, 경찰관의 소속이 국가경찰인 데다가 자치경찰 사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며 “결국 자치경찰위는 인사 및 평가권한을 경찰청장에게 위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 시도별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위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경찰업무를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원들의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다 교수나 경찰 등 특정계층의 위원회 독식, 20%가 안 되는 자치경찰위원회의 여성 비중도 논란의 대상이다. 또 자치경찰제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 부족도 문제다. 이두영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 공동대표는 “서비스 대상인 주민들이 자치경찰제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게 없다”면서 “자치경찰제가 성공하려면 주민참여와 협조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이에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제의 제도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종교계나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이 위원회에 참여해야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발굴을 위해 온라인플랫폼을 만들거나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별도기구 마련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또 자치 치안학교, 안전마을 만들기 등에 기반을 둔 치안공동체 조성, 통·반 단위 순찰 자치 활동 등 치안자치 활성화, 자치경찰 주민옴부즈맨 운영, 주민참여형 자치경찰예산제 도입 등도 거론된다. 이 밖에 자치경찰관의 지방자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 치안정책 개발을 위한 자치경찰정책연구센터 설치, 초광역 단위 자치경찰 협력체계 구축 등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자치경찰 사무 가운데 아동학대 등 상당수가 주민복지와 연결되는 만큼 행정복지센터와 파출소 간의 업무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자는 주장도 있다. 지구대·파출소와 행정복지센터의 물리적·화학적 결합으로 비용 절감과 질 높은 행정·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동주민센터와 파출소 등의 물리적 결합으로 남는 공간을 주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 또 화학적 결합을 통해 주민들에게 행정과 치안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여기는 중국] “아내 좋아하는 만두 사려다가…” 치매 노인의 외출 감동

    [여기는 중국] “아내 좋아하는 만두 사려다가…” 치매 노인의 외출 감동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가 아내를 위한 외출을 했다가 길을 잃고 공안에 발견됐다. 중국 후난성 주저우시 출신의 한 모 노인이 아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사기 위해 고속버스에 탑승했다가 버스 운전사에 의해 신고됐다고 환구망(环球网)이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86세의 할아버지는 지난 21일 오후 12시 경 거주지인 주저우 시로부터 무려 20㎞ 떨어진 창사시 소재의 유명 만두집을 찾아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평소 아내가 좋아했던 만두와 찐빵을 사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무사히 만두집에 도착해 아내가 즐겨먹었던 고기만두와 팥소가 듬뿍 든 찐빵 두 봉지를 양손에 가득 든 채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으나 그만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렸다. 치매 환자였던 할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번호를 잊은 채,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다른 버스에 몸을 실은 것. 이로부터 약 1시간 뒤 할아버지가 탑승했던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면서 버스 운전사에 의해 파출소에 신고됐다. 할아버지는 이 과정에서도 줄곧 “아내가 만두를 좋아해서 빨리 사다가 줘야해”라는 말을 입밖으로 읊조렸다고 관할 파출소 측은 전했다. 할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2017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완전한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단어를 자주 잊어버리는 등이 증세를 보였다. 특히 외출 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린 채 인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귀가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아내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이 없었다. 파출소 관계자에 따르면 버스 종점에서 발견된 할아버지는 “아내가 입맛이 없어서 걱정”이라면서 “(아내는) 다른 것들은 잘 먹지 않고, 만두와 찐빵을 좋아하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만두집에 가서 평소 좋아했던 메뉴를 사야 한다”고 거듭 설명했다. 또 할아버지는 파출소 직원에 인도된 이후에도 “한 시가 급하다”면서 “아내가 아무래도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 같으니 집에 일찍 돌려보내 줘야 한다. 아내가 내가 늦으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고 부탁했다. 파출소 측은 할아버지가 소지하고 있었던 신분증에 적힌 주소를 통해 이날 오후 3시 30분경 안전하게 귀가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환구망 등 중국 유력언론들은 할아버지의 로맨틱한 외출에 대해 ‘노부인을 향한 한 씨의 마음이 감동적이다’, ‘할아버지가 또 다시 만두집을 찾아서 집을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 가급적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혼자 외출하지 않도록 하고, 평소 연락처를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는 등의 주의를 요구했다.
  • [여기는 중국] 손자 자수하러 가는 길 동행한 70대 할아버지의 사연

    [여기는 중국] 손자 자수하러 가는 길 동행한 70대 할아버지의 사연

    인터넷 사기 사건의 용의자인 손자의 자수길에 동행한 70대 노인의 사연에 관심이 집중됐다.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 린하이(临海) 파출소는 지난 8일 파출소 입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루 모 씨에게 생수 한 병을 전달한 사연을 26일 공개했다. 당시 파출소 앞을 지나던 여경 A씨가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 몸을 떨고 있는 루 씨를 발견, 사유를 묻자 루 씨는 “지금 (손자)샤오루가 파출소에 자수해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좋은 손자는 아니지만, 자수한 손자에게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금방이라고 울 것 같은 표정의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사유를 물었다”면서 “루 씨는 산둥성 지방의 방언으로 뙤약볕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온 몸에 경련이 있는 등 크게 긴장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A씨에 따르면, 산둥성 지난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인 루 씨는 이날 파출소 입구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루 씨는 “평생 정직하게 살면서 40년을 일하고 최근에 퇴직을 했다”면서 “퇴직할 때까지 사회에 큰 해를 끼친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 손자 샤오루가 인터넷에서 남의 돈을 가로챈 것을 알게 됐다. 남에게 해를 끼쳤으니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루 씨의 진술에 따르면, 올해 19세의 샤오루 군은 올 초 인터넷에서 만난 피해자에게 총 4738위안(약 83만 원)을 불법 횡령한 혐의다. 사건 발생 전, 샤오루 군은 평소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에게 속아 넘어가 총 1400위안을 잃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자신도 가해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사건 내역을 자백한 샤오루 군은 “미용실에서 청소와 설거지, 고객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모은 돈 1400위안이었다”면서 “누군가에게는 적은 액수일 수 있지만, 모두 힘들여 번 돈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활비에 보태려고 했었는데 정작 돈을 잃고 나니 상심이 컸다”고 했다. 그는 이 때부터 자신도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사기 횡령할 마음을 품었다고 덧붙였다. 샤오루 군은 이 무렵 온라인 게임 계정을 판매한다는 허위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 피해자를 물색한 뒤 총 4738위안을 송금 받고 잠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 피해자들이 피해 사건을 관할 파출소에 신고, 지난 4월 경 파출소 측은 용의자 샤오루 군에 대한 집중 수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위기 의식을 느낀 샤오루 군은 자신이 벌인 사건 내역을 조부모 루 씨에게 우선 자백했다. 그 후 루 씨는 손자 샤오루 군의 자수를 줄곧 설득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수 동행길에 나선 루 씨는 가해자로 전락한 손자 사건을 자신이 부족한 탓으로 여겼다. 루 씨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조부모인 내가 줄곧 손자의 양육을 맡았다”면서 “아내는 몸이 아파서 일년 내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도 심근경색 수술 후 다리가 불편해져서 걷는 것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몸이 불편한 탓에 샤오루는 전문대를 졸업뒤 곧장미용실에 취업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면서 “틈만 나면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착한 손자였다. 사기 사건의 가해자가 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인은 지난 4월, 인터넷 사기 횡령 사건 발생 후 관할 공안국에서 샤오루 군을 용의자로 지목한 사실을 전해들었다. 당시 루 씨는 샤오루 군의 가해 사실이 자신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여기면서 그에게 줄곧 자수를 권유했다. 그 후, 사건을 관할하는 공안국이 샤오루 군의 거주지인 산둥성 지난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손자의 자수 길을 동행하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루 씨는 “사는 지역은 산둥성인데, 관할 파출소는 저장성으로 확인했다”면서 “손자를 혼자 보내는것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함께 왔다. 자수길을 동행하는 동안 손자에게 이렇게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것이 백 번 천 번 옳은 선택이고, 잘못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루 씨와 샤오루 군의 사연이 전해지는 동안 파출소 취조실에서는 샤오루 군이 저지른 사건의 자백 과정이 한창이었다. 한편, 손자의 자수 길을 동행한 루 씨에 대해 파출소 직원들은 루 씨가 산둥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고속버스 이용편을 안내하고 직접 버스 정류장까지 동행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한 노인은 현장에 있었던 파출소 직원들을 손을 잡고 “자수한 손자가 성실히 자백하게 도와달라”면서 “부디 선처를 부탁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현재 관할 공안국은 현행법에 따라 샤오루 군을 형사 구류, 추가 피해 사례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 연남동서 폭발물 신고로 경찰 출동 소동…알고보니 모조품

    연남동서 폭발물 신고로 경찰 출동 소동…알고보니 모조품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가 신고돼 경찰특공대와 군이 출동했으나 모조품으로 밝혀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연남파출소는 이날 오후 2시 20분쯤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자는 주택가에서 폐지를 줍다가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반경 50m 일대의 주민들에 대한 통행을 통제한 뒤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과 군 병력 등 20여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해 폭발물을 확인했다. 사각형 철제 가방 안에는 폭약을 뜻하는 ‘TNT’라는 글자와 함께 갈색 액체가 담긴 시험관 등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확인 결과 해당 물체는 뇌관이 없는 모조품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오후 4시쯤 상황을 해제했다. 경찰 관계자는 “뇌관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안에 담긴 액체의 성분을 조사하고 있다”며 “현재 신고자를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 ‘층간소음에 앙심 인분 테러’…윗집 현관문에 인분 칠한 50대 검거

    ‘층간소음에 앙심 인분 테러’…윗집 현관문에 인분 칠한 50대 검거

    층간소음을 이유로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바르는 엽기적인 범행을 한 50대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안양시 동안구 소재 아파트에서 위층에 사는 B씨의 집 현관문에 10여 일 간격으로 3차례에 걸쳐 인분을 바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층간소음으로 B씨와 갈등을 겪다가 자신의 인분을 이용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B씨로부터 첫 신고를 받은 지난달 중순 폐쇄회로(CC)TV 설치를 권고했고, 이달 초 똑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자 경찰이 직접 CCTV를 달아 범인을 잡기로 했다. CCTV 설치가 추진되는 사이 A씨는 이달 중순 3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은 순찰 활동을 하던 지역 경찰관에 의해 실마리가 풀렸다. 해당 경찰관은 순찰 중 앞서 층간소음 문제로 파출소를 찾아 피해 호소를 한 적이 있던 A씨를 우연히 만나 대화하다가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초기부터 A씨의 범행을 의심했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CCTV를 설치키로 했는데, CCTV를 설치한 당일 우연히 A씨로부터 자백을 받았다”며 “향후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회복적 경찰 활동’을 통해 양측을 중재하고,재발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층간소음에 화나서...” 윗집 현관문에 인분 바른 50대 검거

    “층간소음에 화나서...” 윗집 현관문에 인분 바른 50대 검거

    층간소음을 이유로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바른 5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24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경기 안양시 동안구 소재 아파트에서 위층에 사는 B씨의 집 현관문에 10여 일 간격으로 3차례에 걸쳐 인분을 바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층간소음으로 B씨와 갈등을 겪던 중 자신의 인분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B씨로부터 첫 신고를 받은 지난달 중순 CCTV 설치를 권고했지만, B씨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거절했다. 그러나 이달초 똑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경찰은 직접 CCTV를 달아 범인을 잡기로 했다. CCTV가 설치되는 동안 A씨는 이달 중순 세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이는 순찰 활동을 하던 지역 경찰관에 의해 실마리가 풀렸다. 경찰관이 순찰 중 앞서 층간소음 문제로 파출소를 찾아 피해 호소를 한 적이 있던 A씨를 우연히 만나 대화하다가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초기부터 A씨의 범행을 의심했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CCTV를 설치키로 했는데, CCTV를 설치한 당일 우연히 A씨로부터 자백을 받았다”며 “향후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회복적 경찰 활동’을 통해 양측을 중재하고, 재발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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