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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출소서 경찰 폭행·난동한 만취 해군 중령…현행범 체포

    파출소서 경찰 폭행·난동한 만취 해군 중령…현행범 체포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폭행하고 난동을 부린 현역 해군 중령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전날 해군 A 중령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A 중령은 전날 오후 7시 50분쯤 종로구 길거리에서 사복을 입고 만취한 채 한 여성을 따라가다 파출소에 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해하며 파출소 쪽으로 온 여성을 본 경찰관이 A 중령에게 ‘왜 따라갔냐’고 묻자 그가 욕설하며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고, 경찰관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때린 것으로 파악전해졌다. 또 파출소 문을 발로 차는 등 A 중령의 난동은 10여 분간 이어졌다. 경찰은 A 중령을 해군에 인계했다.
  • 우울증에 걸린 한국 경찰

    우울증에 걸린 한국 경찰

    최근 5년간 우울증을 앓는 경찰관이 45%가량 증가하고, 경찰관 100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27일 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보건일반상담 등 특정 상병코드로 진료받은 경찰 공무원의 수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환자가 2016년 777명에서 지난해 1123명으로 4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을 앓는 경찰관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865명에서, 2018년 1004명, 2019년은 1091명을 기록했다. PTSD 증세를 호소하는 경찰관은 2016년 24명에서 2019년 46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38명이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경찰관은 2016년 163명에서 지난해 214명으로 약 31% 늘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파출소 직원의 경우 갈등을 중재해야 하고 현장에서 폭언·폭행에 항상 노출돼 있다 보니 직무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다”며 “변사 사건을 처음 접하는 경찰관들도 종종 트라우마가 남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PTSD 경찰관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경찰청이었다. 2016년(우울증 171명·PTSD 8명)부터 지난해(우울증 240명·PTSD 14명)까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찰관이 계속 늘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찰관 수도 매해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찰관 수는 2016년에 27명, 2017년 22명, 2018년 16명, 2019년 20명, 2020년 24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8월까지 16명이 세상을 떠났다.
  • 귀갓길에 끌려간 10살 소년, 구타와 성폭행에 “평생 고통”[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귀갓길에 끌려간 10살 소년, 구타와 성폭행에 “평생 고통”[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초2 소년, 친구들과 바닷가서 놀다귀갓길에 느닷없이 형제원으로 끌려가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놀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찰의 손에 형제원에 끌려갔던 정동수(46)씨는 퇴소 후 34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씨가 형제원에 끌려갔을 때의 나이는 불과 10세. 처음 끌려갔을 때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정씨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도망쳤을 거라고, 그곳에 단 한 순간도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어린 정씨는 형제원에서 시도때도 없이 구타를 당했다. 곡괭이 자루로 머리를 하도 맞아 지금도 귀에서 물이 나오고 귓가에선 환청이 들릴 정도다. 머리는 맞고 터지기를 반복한 탓에 군데군데 음푹 패여 있다. 추운 겨울에도 기합과 구타가 끊이질 않았다. 그때 걸린 동상으로 인해 지금도 발톱 몇 개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씨는 형제원 내 성폭행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나금연이라는 이름의 소대장으로부터 수 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신체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당시 형제원 내에서는 정씨 외에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도 여럿 있었다. 2년여간 끔찍한 일들을 겪은 정씨는 퇴소 후 소년의집에 입소하게 됐지만 그곳에서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소년의집을 떠난 정씨는 홀로 살아가기 위해 껌팔이와 신문배달, 중국집, 가라오케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야했다. 그러나 형제원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사라지지 않는 그곳에서의 기억은 평생 정씨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래는 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진술내용: 1985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친구 2명과 해운대 바닷가에서 물놀이하고, 친구 한 명 집이 우동(해운대 바로 옆)이라는 동네인데 거기에 (친구를) 데려다 주고 나머지 친구 한 명과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경찰이) 경찰차에 태워서 (당시 우동 파출소로) 잡아갔습니다. 당시 날씨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고 시간은 저녁 5시~7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경찰들이 강제로 데려가 철창에 넣었고, 집이 있다고 연락해달라고 사정해봐도 소용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구타였습니다. (곤봉으로 수 차례) 그리고 다음날 새벽쯤 포니(뒤에 천막으로 된) 한 대가 와서 저와 친구를 태워서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뭐하는 곳인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더 분하고 화가 많이 납니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도망을 쳤을겁니다. 일상이 된 구타에 이어 성폭행까지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곳에서의 기억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겪어야 할 고통인지를 생각조차하기 싫습니다. 다시는요. 하지만 조금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서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구타는 기본 일상이고 그 소대장(나금연)한테 성폭행은 수차례 당하였으며 저 말고도 밤마다 잘 때 옆에 와서 그 짓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후유증으로 혹 같은게 자주 밖으로 튀어나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될것 같습니다. 곡괭이 자루로 빠따를 맞다가도 머리, 귀 등을 사정없이 맞아서 귀에서는 계속 환청이 들리고 물이 나오고 머리는 하도 맞아서 머리 두피 부분이 군데군데 움푹 들어갔습니다. 겨울에는 너무 추운데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다가 발에 동상이 걸려서 일부 발톱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 정상으로 못 돌아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밥이라고 줬던 건 다 썩거나 쉬거나 한 것이었습니다.퇴소 후 옮겨 간 소년의 집에서도 폭행‘형제원 출신’ 딱지에 사회적응에도 어려움 1987년 퇴소 후 곧바로 ‘소년의집’ 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서울 소년의 집으로 입소하여 초등학교 4학년을 시작하여 졸업 후 부산 소년의집으로 이동 입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폭행 피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학년이 높다는 이유? 규율을 잡는다는 이유? 등등으로 여러 장소에서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소년의집 중학교 2학년 재학 중 끝내 그 폭행을 이기지 못하고 (사회로) 나왔습니다. 사회 적응을 못하여 껌팔이, 신문배달, 중국집, 가라오케 웨이터 등(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것뿐이었고 그런 직업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생활도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형제원 출신이라는 딱지가 항상 붙어다녔고 그곳에서의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있어서 사회 적응에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학력이 안 되고 때로는 거짓으로 졸업했다고 (했다가) 입사 후 들통나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신체적 피해 트라우마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자다가도 벌떡 깨고 악몽을 꾸고 그때 그 일들을 잊고 싶어도 절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충격과 일상들은 계속 제 뇌리에 남아 있으며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약으로 잠을 청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재는 가족들과 별거 중입니다. 어떻게 가정을 꾸려서 살아볼려고 했지만 제 생각들이 그때의 일상이 맴돌고 꾸리는 법을 몰라서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자주 자신감이 없어지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복지원 퇴소 후 남은 신체적 후유증 ●머리 두피가 부분적으로 움푹 들어감.(머리박고,맞고,터지고 등)●귀(양쪽)에서 물(습함)이 나옴●코가 삐뚤어져 있음●성폭행으로 항문에서 피가 가끔 나오고 혹이 있음(튀어나옴)●앞니가 삐뚫어져 있음.(당시 소대장 한테 곡괭이 자루로 맞으면서 생니가 빠짐)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근무 중 상간녀 집 드나든 매제 목격…현직 경찰 간부”

    “근무 중 상간녀 집 드나든 매제 목격…현직 경찰 간부”

    대구의 한 현직 경찰이 근무 도중 불륜 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야간 근무 중 근무지를 이탈해 상간녀의 집에 간 경찰관을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경찰관인 매제의 불륜 행위를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 글쓴이 A씨는 “2020년 7월 매제가 외도하고 있음을 가족들이 알게 돼서 한 차례 용서했지만, 12월에도 같은 사람과 외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A씨는 “현재 매제는 상간녀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전입 신고하고 살고 있다”면서 “야간 근무 중인 매제가 지난 13일 오후 11시에서 13일 오전 1시 사이에 상간녀의 집에서 불륜 저지르는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한 저는 매제의 상간녀 집 앞 엘리베이터 통로 복도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유로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한 상태”라면서 “대구 모 경찰서에서 자체적인 청문 감찰 중인데 여동생과 저는 매제의 비위 행위 전체에 대한 감찰 내용을 알 수 없어서 마음이 어둡다”고 토로했다. 그는 “야간 근무 중 경찰들의 휴게시간이 3시간가량 순차적으로 주어지는 데 그 시간을 이용해 매제는 근무지를 이탈하여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조사해서 위법한 행위가 있다면 엄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대구 달성경찰서에 따르면 모 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지난 14일 오전 시간대에 근무 중 휴게시간을 이용해 상간녀의 집에 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내와 이혼 소송 중인 이 경찰관이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야간 근무 휴게시간에 상간녀 집에 들락거렸다”면서 “통상 휴게시간은 근무지에서 장비를 풀고 잠시 쉬는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달성경찰서 청문감사실은 신고 내용을 기반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며, 해당 경찰관에 대한 감찰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경찰관이 갔던 곳이 행정 구역상 관내로 단순히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상대방 이야기도 들어본 뒤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사전동의 100명 이상이 돼 관리자가 검토 중이다.
  • [여기는 중국] ‘동물 랜덤뽑기’가 뭐길래…택배상자서 개·고양이 100마리 발견

    [여기는 중국] ‘동물 랜덤뽑기’가 뭐길래…택배상자서 개·고양이 100마리 발견

    중국에서 택배 상자 속에 든 반려동물 무리가 아파트 입구에 버려진 채 발견돼 논란이다. 중국 명절 중추절 연휴가 한창이었던 지난 21일, 상하이 시 자딩구에 소재한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반려동물 100여 마리가 든 상자들이 무더기 발견됐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박스 속에서 어린 고양이와 강아지 비명 소리가 난다”고 관할 파출소에 신고하면서 구조가 시작된 상자 속에는 무려 100마리 이상의 개와 고양이 등이 발견됐다. 이 중에는 이미 부패한 동물의 사체와 병을 앓고 있는 동물 등이 섞여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출동한 관할 파출소 수사 결과, 이날 발견된 택배 상자 속 동물은 일명 ‘랜덤뽑기’로 불리는 반려동물 택배 상자로 확인됐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랜덤 뽑기 반려동물 상자에는 구매자가 주문 당시 어떤 동물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상자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중국에서는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을 입양할 시 직접 가서 데려오는 대신 온라인 주문 방식이 선호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를 높이기 위해 반려동물 뽑기를 해오고 있는 것.이날 아파트 입구에서 발견된 상자 속 반려동물은 모두 1개월 미만의 새끼들이었다. 그 중 많은 개체가 배송 중 비에 젖거나 탈수, 굶주림, 질식 등으로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파출소 관계자는 출동 직후 이 지역 관할 택배 기사를 연행, 택배 상자 속 반려동물을 방치한 혐의로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이 지역 자원봉사단체와 공동으로 택배 상자 속 동물을 구조, 총 70마리의 반려동물을 구조했다. 발견된 반려동물들은 생후 1개월 미만으로, 평균 20~30위안(약 3400~5400원) 상당의 금액으로 온라인 유통 업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판매됐다. 구조 직전 파출소 측은 반려동물 랜덤 박스를 주문한 주인을 수소문, 동물들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를 확보한 뒤 합법적인 방법으로 구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날 버려졌던 박스 속 반려 동물 중에는 반려묘 71마리, 반려견 36마리 등이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 상당수는 이미 죽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으며 생명이 위중한 상태의 반려 동물은 인근 동물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건 이튿날, 관할 파출소 측은 당시 구조된 반려동물 모두 해당 아파트 주민들에게 입양 절차가 완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반려동물 랜덤박스 주문 사건이 중국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허난성의 한 물류 창고에서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 토끼 등이 들어있는 택배 상자가 무더기로 발견된 바 있다. 당시 발견된 상자 속 반려동물의 수는 무려 5000여 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발견 당시 이미 4000여 마리는 죽은 상태였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중국 당국은 지난 5월, 중국 유통법상 살아있는 동물을 수하물에 담는 것을 금지하는 항목을 법조항에 포함시켰다. 일명 ‘중화인민공화국 우정법’ 제33조에 따라 지난 5월 1일부터 택배로 살아있는 동물을 배송하는 행위 일체가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 업체와 소비자들 사이에서 흥미를 높이는 일명 ‘랜덤뽑기’ 행위는 그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구조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 원 모 씨는 “반려동물 랜덤뽑기는 그 판매와 구매 행위 모두 생명을 경시하는 잔인성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서 “다시는 이런 랜덤박스가 무더기로 발견되는 일이 없도록 판매자와 소비자, 택배회사 모두 법을 준수해달라. 장사꾼과 구매자, 택배 운송자가 사라지면 생명경시 풍조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정거장 지붕에 착륙?…미스터리 교통사고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정거장 지붕에 착륙?…미스터리 교통사고

    교통사고전문가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통사고가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조사를 계속하겠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가 드러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스터리 같은 사고는 아르헨티나 엔트레리오스주(州)의 14번 도로에서 20일(현지시간) 발생했다.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비행하듯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버스정거장 지붕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엔트레리오스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빗줄기를 맞고 달리던 자동차는 14번 도로 148km 지점에서 차로를 이탈, 튕겨나갔다. 소방대가 출동해 구조한 운전자는 곳곳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다행히 의식은 또렷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자동차가 버스정거장 지붕까지 올라간 경위다. 자동차가 올라 탄 버스정거장은 벽돌을 쌓고 시멘트로 마무리한 튼튼한 건축물이다. 높이는 2m가 넘는다. 사고차량은 높이뛰기를 한 것처럼 높은 버스정거장 지붕 위로 올라갔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집어 정교하게 지붕에 올려놓은 것처럼 추락하지 않고 지붕 위에 딱 멈춰 섰다. 운전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면서 "무언가와 충돌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쿵하는 충격과 함께 자동차가 붕 떠올랐고, 멈춘 뒤 보니 지상에서 높은 곳에 걸쳐 있었다는 게 운전자의 증언이다. 운전자는 사고가 난 콜론지역의 인근에서 파출소장으로 재임 중인 현직 경찰이었다. 사고 현장을 조사한 한 경찰은 "친분이 있는 경찰로 평소 인격이 매우 훌륭한 분"이라면서 "피해자도 없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만 그의 말만 듣고 보면 도무지 사고 경위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교통사고 전문가들도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가 악셀 오라시오는 "커브가 시작되는 곳이라 아마도 빗길에 미끄러진 게 아닌가 싶지만 자동차가 공중으로 떠오른 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20년 넘게 교통사고를 전문적으로 조사했지만 이런 사고는 처음"이라면서 "어쩌면 사고경위를 풀지 못하는 내 첫 사고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기대할 수 있는 건 운전자의 기억뿐"이라면서 "혹시 깜빡한 디테일이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확인을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 “저항 한 번 못했다” 대형견에 물려 2분간 끌려다니다 숨진 中 70대

    “저항 한 번 못했다” 대형견에 물려 2분간 끌려다니다 숨진 中 70대

    중국 푸젠성 장저우에서 산책 중이던 70대 여성이 대형 유기견에게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장저우 외곽의 주택가에서 산책 중이던 71세 난 모 씨가 거리를 떠돌던 대형견에게 물려 사망했다. 사건 당시 인근 도로에 설치돼 있었던 CCTV에서는 피해자가 거리를 떠돌던 대형견에 물려 약 2분간 실랑이를 벌인 것이 확인됐다. 흥분한 맹견은 피해자의 머리를 문 채 인근 골목을 끌고 다녔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건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피해자의 여동생이 개를 떼어내려고 사투를 벌였으나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습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가슴과 엉덩이 등을 여러 번 물린 피해자는 치명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문제의 대형견이 피해자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 관할 파출소 측은 수사 중이라는 입장만 밝힌 상태다. 현지 언론은 해당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 유기견 포획 및 대형견 입마개 착용 의무화에 대한 공감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2021년 현재 중국에는 약 6400만 마리의 반려견이 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대형 반려견과 유기견에 물려 피해를 보는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같은 해 저장성 후저우에서는 7세 아동이 지나가던 대형개에게 물려 오른쪽 눈과 얼굴 등이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피해 아동은 사고 직후 2주 만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닝보시에 거주하는 47세 남성은 이웃집 반려견의 짖는 소리 탓에 이웃 주민들과 갈등을 빚던 중 총 3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공안에 붙잡힌 사건도 벌어진 바 있다.특히 지난 2018년 기준 중국 내에서 발생한 목줄 미착용 상해, 사망 사고는 무려 7700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반려견 공포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에 중국 정부는 최근 반려견과의 외출 시 목줄 착용, 등록증 휴대, 성인 견주의 동행 등의 법규를 제정했다. 이를 어길 시 적발된 자는 최대 2000위안(약 34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편, 대형견 공격으로 모친을 잃은 피해자의 아들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평소 식당을 운영하면서 남은 음식을 유기견들을 위해 가게 인근에 내놓았을 정도로 정이 많은 분이었다”면서 “어머니를 공격한 개가 평소 이 일대를 떠돌았던 유기견인지 아니면 인근 주민 중 누군가 키우는 개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70대 어머니가 대형견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것이 몹시 황망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 [여기는 중국] 파렴치한 아동성폭행범 1년 만에 사형…속전속결 형 집행

    [여기는 중국] 파렴치한 아동성폭행범 1년 만에 사형…속전속결 형 집행

    4세 여아를 성폭행한 중국 남성의 사형이 집행됐다. 19일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18일 오전 압송된 피의자 유 모 씨(54세)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해 8월 29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거주하는 유 씨가 같은 주택가에 거주하는 이웃 연 모 양(가명)을 유인, 거주지 인근의 하수구 입구에서 성폭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 씨는 피해 아동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웃 주민으로 평소 일면식 있는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피해 아동의 가족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지냈던 유 씨가 유인하자, 피해자 연 양은 큰 경계심 없이 그를 따랐던 셈이다. 유 씨는 연 양을 인근 공터 외곽의 하수구 처리장 입구로 유인, 두 차례 성폭행한 뒤 이튿날이었던 8월 30일 집으로 돌려보낸 혐의가 인정됐다. 사건 당시 연 양의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연 양을 관할 파출소에 실종 신고했고, 가족들과 파출소 직원들은 이튿날 오전까지 연 양을 찾았지만 가해자의 주택에 감금됐던 연 양을 찾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연 양 실종 수색이 본격화되자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웠던 유 씨는 사건 이튿날이었던 30일 연 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피해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가족들은 곧장 인근 병원으로 이송, 응급 치료를 진행했다. 당시 집 안으로 걸어들어왔던 연 양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으며, 하혈로 바지는 핏자국이 낭자한 상태였다. 연 양의 진료를 담당했던 의료진들은 피해 아동의 하반신이 심하게 훼손, 얼굴과 등을 압박한 자국이 심각했었다고 당시 연 양의 진료 기록을 공개했다. 또, 유 씨는 연 양의 얼굴 전면을 폭행, 병원을 찾았을 당시 피해자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건 직후였던 지난해 9월 1일, 하얼빈시 공안국은 인근에 거주 중인 피의자 유 씨는 아동 성폭행 혐의로 적발, 형사 구류했다고 밝혔다. 이후 유 씨에 대한 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공안에 붙잡혀 혐의 일체를 인정한 유 씨에 대해 하얼빈시 인민법원은 사형을 선고, 2심을 담당했던 중급인민법원은 지난해 12월쯤 1심을 확정판결했다. 법원 측은 유 씨의 행위에 대해 “공사장 서쪽 하수구 배수구 안에서 4세 여아를 간음한 행위는 그 범죄 행위가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할 수준이다”면서 “특히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상해 정도가 중증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유 씨는 앞서 두 차례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성폭행 전과자라는 점에서 향후 추가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면서 사형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이후 유 씨는 공안에 붙잡힌 지 약 1년 무렵이었던 지난 18일, 최고인민법원으로 이송돼 사형 집행을 받았다. 그는 이날 오전 9시 무렵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소원을 묻는 법원의 질문에 대해 “가까운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사형 집행을 담당했던 법원 측은 “범죄자 유 씨는 죽기 직전 가까운 친척들을 만나서 잠깐의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면서 “사법 당국은 범죄자에 대한 사형 집행 전 그가 가진 법적 지위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 “T팬티 입으란 지시 받았다”…속옷만 입고 건물 돌아다닌 20대男

    “T팬티 입으란 지시 받았다”…속옷만 입고 건물 돌아다닌 20대男

    간이 시약 검사, 마약 양성 속옷 차림으로 다세대주택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20대 남성이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경찰에 붙잡혔다. 17일 인천 부평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A씨를 파출소로 임의동행했다. 그는 지난 15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시 부평구 한 다세대주택 건물 안을 속옷만 입은 채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T’자 형태의 팬티를 입고 있던 A씨는 “티 팬티를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횡설수설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마약 투약을 의심한 경찰은 A씨의 소변을 채취해 간이 시약 검사를 했고,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인 투약 시점과 입수 경로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의 소변과 머리카락을 보내 마약 투약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예정이다.
  • [여기는 중국] 29층 아파트서 동거녀 아이 던져 살해한 20대 남성 체포

    [여기는 중국] 29층 아파트서 동거녀 아이 던져 살해한 20대 남성 체포

    동거녀의 아이를 29층 아파트 밖 화단으로 던져 무참히 살해한 남성이 공안에 붙잡혔다. 중국 매체 시나닷컴은 지난 15일 허베이성 바오딩시 중심가의 고층 아파트 밖으로 4세 아동을 던져 살해한 남성이 출동한 공안과의 대치 끝에 현장에서 체포됐다고 1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5일 오전 7시경 인근 화단 밖으로 떨어진 정체 불명의 물체를 발견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외부에 알려졌다. 이웃 주민 하 모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에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이 아이의 사체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가슴 부분에 출혈이 있는 체구가 작은 아이였다. 살아 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아이는 이 아파트 29층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A씨의 자녀로 확인됐다. 사건을 접수한 관할 파출소 직원들은 사건이 발생한 29층 아파트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던 중 출혈이 심각한 여성 A씨도 발견했다. 이 여성은 29층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량의 출혈과 자상을 입고 쓰러진 채 출동한 파출소 직원들에게 구조됐다. 과도한 출혈로 발견 당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던 이 여성은 29층 아파트 밖으로 화단에서 발견된 아이의 친모로 확인됐다. 출동한 파출소 직원들은 곧장 이 여성을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 응급 치료를 진행했으나 여성은 사건 당일 오후 6시 사망했다. 같은 병원에게 치료를 받았던 아이 역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 공안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사망한 A씨의 동거남을 지목했다. 20대 남성 용의자는 동거녀의 아이를 아파트 밖으로 무참히 던져 살해한 뒤 여성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던 A씨가 구조를 받는 동안 용의자는 베란다 밖으로 몸을 내민 채 투신 자살을 시도 중이었다. 현지 공안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9층 아파트 화단 인근에 안전망을 설치, 용의자 구조를 시도했다. 용의자는 이후에도 무려 10시간 동안 출동한 공안들과 대치, 투신 자살 협박을 지속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공안국은 문제의 용의자를 사건 당일 오후 6시 경 붙잡아 구금, 추가 여죄 여부 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 “짜장면 시키신 분? 잡았다 요놈!”… 배달원인 척 납치범 잡은 경찰

    “짜장면 시키신 분? 잡았다 요놈!”… 배달원인 척 납치범 잡은 경찰

    지난 7월 29일 오전 6시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한 다세대주택. 서울 동대문경찰서 회기파출소 황의호(24) 순경은 다세대주택 내 한 집 앞 현관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중국 음식점 배달원인 척 “그릇 가지러 왔다”며 노크를 하자 문이 열렸고, 황 순경과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은 곧바로 납치범을 체포했다. 반나절 동안 납치돼 있던 피해자도 그제야 풀려날 수 있었다. 112 신고가 접수된 건 7월 28일 오후 10시쯤이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해자가 귀가하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당시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어 위치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5시쯤 납치범이 한눈을 파는 사이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몰래 켜 어머니에게 대략적인 위치와 빌라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보냈다. 납치범과 피해자는 모르는 사이로,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켜 주겠다는 꾐에 넘어가 납치된 상황이었다. 황 순경과 그의 사수는 즉시 피해자가 알려준 대략적인 위치로 이동해 납치 장소인 빌라를 찾아 나섰다. 인근 빌라의 공동 현관문에 비밀번호를 넣어 일일이 확인한 뒤 결국 해당 빌라를 찾아냈다. 회기파출소를 비롯해 인근 파출소, 관서 내 형사까지 지원 나와 범인을 잡는 데 힘을 모았다. 빌라 내 호수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황 순경이 중국집 배달원을 가장해 노크했던 집에서 납치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지난달 칭찬 플랫폼에 등재된 사례 4408건 중 우수 사례에 선정된 195건에 대해 경찰청장 표창을 수여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날 경찰청장 표창을 받은 황 순경은 “사건 현장에서 같이 고생해 주신 팀원들 덕에 제가 표창까지 받았다. 현장에 함께 출동한 팀장의 지휘대로 움직였고, 결국 납치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며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것 외에도 피해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따뜻한 세상] 비 오는 날 길 잃고 헤매던 할머니 귀가 도운 시민과 경찰

    [따뜻한 세상] 비 오는 날 길 잃고 헤매던 할머니 귀가 도운 시민과 경찰

    광주에서 한 시민과 경찰관이 비를 맞으며 길을 잃고 헤매던 80대 노인을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습니다.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오후 8시 30분쯤 광주 동부경찰서 지원파출소에 남성 A씨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계신 것 같은데,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날 A씨는 파출소 인근 카페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비에 흠뻑 젖은 할머니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A씨는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할머니를 이상하게 여긴 A씨는 할머니를 파출소로 모시고 오게 된 것입니다. A씨에게 할머니를 인계받은 지성학(55) 경위와 이유진(27) 순경은 먼저 할머니의 신원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미귀가자 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고, 곧장 가족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후 지 경위와 이 순경은 파출소에 도착한 아들에게 할머니를 인계했습니다. 또 늦은 밤 지친 모자를 위해 순찰차로 안전하게 귀가를 도왔습니다. 안정을 되찾은 할머니는 이 순경 볼에 입을 맞추며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이유진 순경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할머니께서 아들이 있어서 그런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좋아졌다”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으로 고마움을 표현해 주셔서 감동 받았다. 할머니께서 무사히 귀가하셔서 저 역시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지성학 경위는 “보호자에 따르면, 할머니는 집을 나간 지 이틀 지난 것으로 파악됐다”며 “당시 할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건 가지나 오이 같은 채소들이었다. 이틀 동안 비를 맞으며 광주 시내를 돌아다닌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지 경위는 “할머니를 보호해준 시민에게 감사하다”며 “치매를 앓는 분을 발견하면 112나 119로 신고해주실 부탁한다”고 당부했습니다.
  • 지인 3세 아들 살해 필리핀 여성 체포…범행 후 나체로 도심 활보

    지인 3세 아들 살해 필리핀 여성 체포…범행 후 나체로 도심 활보

    주한미군인 지인의 3살 아들을 살해한 뒤 나체 상태로 도심을 활보한 필리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평택경찰서는 5일 폭행치사 등 혐의로 필리핀인 A(30) 씨를 긴급체포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7시 30분쯤 자신이 일하던 평택시 한 주점의 숙소에서 미국 국적의 B(3) 군의 얼굴 등을 주먹 등으로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군은 A씨와 알고 지내던 주한미군의 아들로, 지인의 부탁으로 A씨가 일시적으로 맡아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시 B군의 7살 형도 함께 맡겨져 있었으나 형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날 오전 8시쯤 주점 소유주가 쓰러진 B군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밤사이 B군 형제와 셋이 있던 A씨를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추적했다. 그런데 A씨는 범행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체 상태로 안정리 일대 도심을 활보했고, 주민들의 112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인근 파출소에 보호조치 중이었다. 동선 파악 후 보호조치 중인 A씨가 용의자임을 확인한 경찰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A씨를 파출소에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B군 폭행 사실을 자백했고, 하느님을 찾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반복하며 횡설수설하고 있어 범행 동기에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B군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할 예정이다. 또 1차 조사를 마치는 대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경찰이 데려간 두 번의 지옥···그곳에서 남매는 ‘개돼지’였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경찰이 데려간 두 번의 지옥···그곳에서 남매는 ‘개돼지’였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도망쳐도 제자리로...7년 동안 계속된 지옥 생활 김현식(가명·52)씨는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에 두번 던져졌다. 끔찍했던 그곳에서 탈출을 시도해 성공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경찰에 다시 붙잡혀 형제원으로 보내졌다. 형제복지원에는 김씨처럼 2번 이상 재수용된 이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때리면 맞고 시키면 일하고 주면 먹었던 형제복지원 생활을 ‘개, 돼지와 같은 삶’으로 기억한다. 1981년 13살이던 김씨는 고모집으로 향하던 중 길을 잃어 근처 파출소에 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보내졌다. ‘돈을 벌고 싶냐, 공부를 하고 싶냐’는 경찰의 질문에 ‘돈이 벌고 싶다’고 답해서였다. 그렇게 김씨는 아동소대에서 3년 동안 흙자루와 흙벽돌을 지고 나르는 노역을 했다.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도 일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랬다간 소대원 전체가 기합을 받았다. 새로 온 신입이 소대장, 서무, 조장에게 당하는 성폭력을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김씨와 한 살 터울인 누나도 형제원에 수용됐다. 남매는 형제원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마음이 무너졌다. 김씨는 “어린 마음에 누나도 여기 있다는 게 창피해 모른 척 했다”고 했다. 소대장이 잠든 고요한 새벽, 김씨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담을 넘었다. 중학교 소대에서 철공소 반장이 휘두르는 ‘빠따’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형제원을 등지자마자 산비탈을 내달렸다. 갈 곳은 없어도 ‘그곳’이 아니었기에 안도했다. 정처없이 떠돌던 중 이유없이 해운대로 향했다. 그러나 실수였다. 해운대에 텐트를 치고 모르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낸 지 한달쯤 되던 날, 경찰은 무리를 도둑으로 의심해 형제복지원으로 보냈다. 꿈 같던 자유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악몽 같은 삶은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1987년 4월, 김씨는 7년에 가까운 노예 생활을 마치고 귀가했다. 가능한 형제원에서 먼 곳으로 가고 싶어 서울로 이사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어 자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 무기력한 삶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도 했다. 그간 묵은 응어리들을 종종 거칠게 내뱉은 까닭에 대인 관계도 서툴렀다. 배우자를 만나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다. 자신의 과거 흔적으로 인한 부족함 때문에 자녀들의 삶에도 지장이 생길까 걱정이 크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김현식 진술 내용: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들어가게 된 상황부터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제가 13살이던 1981년 11월쯤 고모집에 가다가 길을 잃어 파출소에 갔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하니 경찰이 어디론가 데려가서 여자 공무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돈을 벌고 싶냐, 공부가 하고 싶냐’고 물었고, 저는 ‘돈이 벌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형제복지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신입소대에 있다가 이후 아동소대로 이동했습니다. 아동소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나 친척이 찾아오지 않으면 형제복지원에서 나갈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 같이 높은 형제원 담벼락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말도 안되는 이유로 단체 기합과 매질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아동이라고 해서 일하는 것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마대 자루에 흙을 담아서 목에 지고 수백 미터씩 날라야 했습니다. 목이 너무 아파 부러질 것 같은데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멈췄다가는 저는 물론이고 같은 소대원 전체가 구타를 당하고 기합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폭행과 기합은 언제나 너무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흙벽돌을 지게에 지고 셀 수 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 산을 깎아서 세워진 산꼭대기 교회에 옮기는 일은 13살 어린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동성 간 성폭행도 매일 일어나는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복지원에서 오랫동안 지낸 사람은 나중에 소대장이나 조장, 서무로 뽑혀 임명됐습니다. 지옥에서 성장한 그 사람들은 간부급 원생이 되면 똑같은 성폭행을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주로 새로 들어오는 애들이 타깃이었습니다. 소대장이 먼저 하다가 조장이나 서무도 하는 순서로 성폭행이 가해졌습니다. 새로운 신입이 들어올 때까지 그 행위가 반복해서 이뤄지는 걸 봤습니다. 절망만이 가득한 삶...탈출 한 달 만에 다시 제자리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생활이 반복되는, 오로지 맞지 않으려고 사는 삶이 무슨 삶이었을까요. 가끔 그 지옥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언젠가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형제원에서 3년 정도 지냈을 무렵, 개금분교가 생겨 그곳에서 6학년을 다녔고 졸업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야간중학교 소대로 이동했습니다. 야간중학교를 다니던 중 낮에는 철공소에서 일을 했는데 철공소 반장은 화가 나면 쇠파이프로 ‘빠따’를 때렸습니다. 맞던 중 저도 모르게 손으로 막아서 팔이 퉁퉁 부어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손이 나은 후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데 한 사람이 제게 와 소대의 열쇠를 복사했다고 해서 몇 명 더 같이 해서 탈출하기로 계획을 짰습니다. 소대장이 잠든 시간 우리는 자물쇠를 열고 소대 뒤로 돌아가 낮은 담을 타고 넘었습니다. 밤새 산을 달려 결국 도망치는데 성공했습니다.다 같이 며칠을 지내다 서로 헤어지게 됐습니다. 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해운대에 가고 싶어져서 물어 물어 해운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모르는 아이들과 지내면서 친구가 됐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길들여져 시키는 일만 하고 살아와서, 스스로 무엇인가 하겠다고 꿈꿀 수 없는 사람이 돼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지내던 중에 친구랑 둘이 있을 때 금정경찰서 형사가 와서 “너희들 도둑질 했지”라고 물었습니다. “안 했다”고 했더니 “그럼 이 텐트는 뭐냐”고 하기에, “이건 우리 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에 있어서 그냥 있는 것”이라고 하니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경찰서로 간 후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약 한 달간의 꿈 같던 생활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때가 1985년 9월쯤이었습니다. 그렇게 형제복지원에 두 번째로 입소하게 됐습니다. ‘개·돼지 삶’ 끝났지만...생 놓으려 한 적도 무기한의 강제수용소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주면 먹는, 꿈이 없는 생활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런 개돼지 같은 생활이 무한 반복돼 저의 영혼을 갉아 먹었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다시 나올 수 있게 된 건 울주군에서 사건이 생기면서였습니다. 울주군에 제2의 형제복지원을 만들겠다며 형제복지원에서 사람을 차출해 강제 노역을 시키던 중 ‘집단 탈출 사건’과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수사가 진행되던 중에 비리와 폭행, 살인 사건 등 셀 수 없이 많은 형제원의 범죄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상담을 통해 성인은 귀가조치 됐고, 아동은 고아원이나 유사 시설로 보내졌습니다. 저도 상담을 하고 대기하다가, 먼저 형제복지원에서 나왔던 누나가 저를 찾아와 바로 귀가조치 됐습니다. 그때가 1987년 4월쯤입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형제복지원이 복지가 잘 돼있어 부랑인들을 잘먹이며 기술을 가르쳐 귀가조치 하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더더욱 화가 납니다. 경찰과 시청, 구청, 공무원들도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형제복지원에 조력했습니다. 박인근 원장은 정말이지 철두철미한 악마였습니다. 그렇게 형제복지원에서 나와 부산에서 조금 지내다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가능한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에 제대로 배운 것 없이 강제 노동과 억압 속에 살다가 사회에 홀로 서다보니, 수많은 부딪힘과 깨짐, 쓰러짐 등 힘든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는 것에 회의를 느껴 22살에 약물로 자살을 하려다 다시 깨어난 적도 있었습니다.형제복지원에서 있었던 일들로 인한 억울함은 풀 길이 없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올라 성격 형성에도 나쁜 영향이 엄청나게 미쳤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러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잘 할 수 없어 늘 외롭게 지내다가,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 초등학생 자녀를 두 명 두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못 배운 것이 많아도 지나간 세월이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냅니다. 그러나 저의 무능과 가난으로 인한 영향이 제 자녀들에게도 미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제 자식들은 많이 배워 아빠보다는 훨씬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책임을 다하길 바랍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국가배상 청구소송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은 제 인생을 배상해 주세요.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어머머, 강아지 아냐?”…트럭에 매달린 개, 운전사는 알면서도 달렸다

    “어머머, 강아지 아냐?”…트럭에 매달린 개, 운전사는 알면서도 달렸다

    경북 포항에서 트럭 운전자가 개를 줄에 매단 채 달리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2일 포항북부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60대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7일 포항 북구 흥해읍 한 도로에서 트럭에 개를 매단 채 달린 혐의를 받는다. 이 모습을 본 시민이 항의하려고 다가가자 A씨는 개를 트럭에 태우고 가버렸다. 당시 개는 다리에 피가 나는 등 다친 상태였다. 개는 다리를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전해졌다.동물보호단체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해당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이미 담당 파출소로부터 발생 보고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개를 줄에 묶어 화물칸에 태웠는데 개가 뛰어내렸고, 이후 줄에 묶인 개를 매달고 달렸다고 인정했다”며 “A씨를 불구속 입건했고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 “차 지붕과 후드에 사람들이 묶여 있어요” 브라질 무장강도들 ‘인간방패’

    “차 지붕과 후드에 사람들이 묶여 있어요” 브라질 무장강도들 ‘인간방패’

    브라질 무장강도들이 30일 새벽 은행을 습격하는 과정에 인질들을 붙잡아 자동차 지붕과 후드 위에 묶어놓고 달아나 총격전 중 적어도 세 명이 숨졌다. 이 중에는 용의자 한 명도 포함됐다. 상파울루주 아라차투바란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치안이 엉망인 브라질에서는 은행강도가 아주 흔한데 최근에는 이렇게 은행을 턴 다음 인질을 붙잡아 자동차에 싣고, 이른바 ‘인간방패’로 삼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이번 강도 행위에 참가한 갱단원들의 숫자가 적어도 50명이라고 경찰 간부들은 전했다. 딜라도르 보르헤스 아라차투바 시장은 경찰이 개입해 용의자들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반드(Band) TV에 “경찰들은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어서 대치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도들이 인질들을 풀어줬는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보안군들이 도심을 다시 통제했다고 밝혔다. 보르헤스 시장은 강도들이 시내 곳곳에 폭발 장치를 숨겨놓았다며 집안에만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주지사에게 인력을 더 충원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했다. 중무장한 강도들은 시내 은행 세 곳을 동시에 털었다. 강도 행위를 마친 뒤 이들은 헌병 파출소를 에워싸고 위협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에 불을 붙여 주요 도로로의 진입을 막는 등 아수라장을 이뤘다. 레코드(Record) TV 기자 유리 마크리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탈주 자동차 한 대의 지붕과 후드에 인질 한 명씩이 묶여 있고, 두 번째 차량 후드 위에도 한 사람이 웅크려 있다. 트위터에 올라온 다른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다수의 차량이 시내 도로를 퍼레이드하듯 나아가는데 인질들이 후드에 묶여 있거나 손발이 묶여 있거나 밴승합차의 선루프로 머리를 내밀고 서 있기도 했다. 동영상들을 보면 총성과 폭발음이 들리는데 경찰과 총격전 때문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용의자들이 위력을 과시하고 공포감을 극대화하려고 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용의자 한 명과 다른 두 사람이 숨진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망 경위 등을 밝히지 않았다. 세 명이 더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 둘도 검거됐다. 용의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강탈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몇몇 동영상을 보면 주민 한 명이 거리에 떨어진 지폐를 모으는 모습도 눈에 띈다. G1이란 뉴스 매체는 갱단원들이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무인 드론을 띄웠다고 전했다. 이 도시가 은행강도들의 표적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에도 범죄자들이 이 도시 곳곳의 경찰서와 사설 경호업체 등을 공격하고 도로를 봉쇄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은행강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5년 무렵이었다. 기관총과 중화기를 동원하는 일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대체로 브라질 갱단은 국경을 넘는 일은 드물지만 이웃나라 파라과이의 은행을 턴 일도 있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 [여기는 중국] 말다툼 하다 ‘며느리 토막살해’ 후 유기한 시아버지

    [여기는 중국] 말다툼 하다 ‘며느리 토막살해’ 후 유기한 시아버지

    며느리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며느리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60대 시아버지가 공안에 적발됐다.  중국 푸젠성 천저우시 난안 관할 공안국은 최근 이 일대에서 발견된 토막 사체의 주인이 35세 여성 후 씨의 것이라고 28일 이 같이 밝혔다. 공안국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사망한 후 씨와 한 집에서 생활했던 시아버지 다이 씨를 지목했다.  공안국 조사에 따르면, 올해 61세의 용의자 다이 씨는 지난 19일 며느리 후 씨와 말다툼을 벌인 뒤 살해, 사체를 유기한 혐의 일체를 자백했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21일 평소 인근 의류 공장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던 피해자 후 씨의 행방이 묘연하자 그의 남편이 관할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수사를 시작한 관할 공안국은 26일 오전 인근 야산에서 후 씨의 사체 일부로 보이는 훼손된 시신을 발견했다.  사체 일부가 1차 발견된 장소는 피해자의 주택이 있었던 장소와 불과 3km 떨어진 야산이었다. 이어 같은 날 인근 쓰레기 소각장 쓰레기 봉투 속에서 후 씨의 사체 일부가 또다시 발견되면서 사건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수사를 담당한 관할 공안국은 후 씨 사망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후 씨의 남편과 시아버지 등 주변인물들을 집중 수사한 끝에 시아버지 다이 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올해 61세의 시아버지 다이 씨는 수사 중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 현재 형사 구류된 채 여죄 여부를 수사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결과, 지난 2013년 12월 결혼한 후 씨에게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초등학생 아들 1명을 두고있다.  평소 후 씨는 시부모와의 잦은 갈등으로 최근에도 수 차례 분가 계획을 남편과 상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망한 후 씨는 평소 시부모와의 갈등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게재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 씨의 직장 동료 A씨는 “후 씨가 시댁 식구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다”면서 “평소 그는 자신이 받는 가정 내에서의 스트레스와 불화를 웨이보에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8월 14일 게재된 후 씨의 SNS에는 ‘시어머니는 무슨 이유인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요하려고 말도 생떼를 쓴다’면서 ‘가족이라면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데, 시어머니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강요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직장 동료는 후 씨가 사망하기 며칠 전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을 호소했었다고 증언했다.  이 직장 동료는 “얼마 전 시부모와의 갈등을 겪는 중 남편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면서 후 씨가 괴로워했다”면서 “후 씨는 평소 그의 자녀 교육 문제 등 모든 사안에 대해 시부모의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탓에 힘들어했다. 후 씨는 분가하지 않을 경우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끝날 것 같은 상황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이 사건은 추가 수사 중으로 알려졌으며, 관할 공안국은 피해자 후 씨와 시아버지의 부정을 의심하는 등의 2차 가해가 진행되는 것과 관련해 거짓 소문이 확대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추가 입장문을 공고했다.
  • 무보험 무면허 운전, 잡고보니 마약 투약한 불법체류자들

    무보험 무면허 운전, 잡고보니 마약 투약한 불법체류자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A 씨 등 20대 남녀 태국인 2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A 씨 등은 지난 26일 오후 10시쯤 수원 팔달구 인계동 수원시청 인근 도로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로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승용차를 무면허로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수원남부경찰서 소속 파출소 경찰관들이 순찰 도중 차적조회를 통해 A 씨 등이 탄 차가 의무보험 미가입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차를 세울 것을 요구했고, A 씨 등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700m가량 달아나다가 쫓아온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A 씨가 운전한 차 안에서는 합성마약인 ‘야바’로 추정되는 알약 여러 개와 필로폰으로 추정되는 가루 4.4g이 발견됐으며 A 씨 등은 마약 간이 검사에서 모두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이들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 등 2명은 불법체류자들로 이들이 탔던 차는 대포차로 추정된다”며 “이들을 상대로 마약을 손에 넣은 경로와 투약 경위 등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수용시설 ‘뺑뺑이’ 끝엔 형제원…탈출해도 못 지운 폭행 그림자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양재영(54)씨는 지난 날을 생각하면 억울함이 사무친다. 보육시설을 전전한 7년, 형제복제원에서 지낸 5년, 교도소에 수감된 9년…. 그의 어린 시절엔 가족의 울타리도 배움의 기회도 없었다. 양씨는 6살 때 시장에서 발견됐다. 이름 석 자도 누가 지어줬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그를 곧장 대구 희망원으로 보냈다. 이후 시설을 돌고 돈 끝에 그가 닿은 곳은 형제원이었다. 형제원에선 매일 맞았지만, ‘까바리 광대’ 기합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기합을 받다 다쳐서 의무실에 가면 상처에 소독약을 적신 신문지를 박아넣는 ‘심 박기’ 처치를 했다. 더럽다고 때리면서도 씻을 물을 주지 않아,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 손발을 씻어야 했다. 탈출 계획을 짠 적도 있지만 시도조차 못 했다. 굶주린 친구가 빵 한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획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 “대운동장 끝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 13살에 입소한 소년은 18살이 돼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공장으로 팔아넘겨진 뒤 가까스로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오랜 형제원 생활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양씨의 방황은 계속됐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다 교도소에서 20대를 보냈다. 신체적 후유증도 짙게 남았다. 폭행에 고름을 달고 살았던 귀는 지금도 잘 들리지 않는다. 쇠 파이프로 맞아 함몰된 두개골 탓인지 때때로 길을 걷다가도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기억상실 증상을 겪는다. 양씨는 법원의 판결로 고통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린다. 아래는 양씨의 진술서 전문. 진술서는 양씨가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다.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양재영 진술내용: 저는 1973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미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5~6살로 추정하는데 제 이름 양재영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장통에서 울고 있던 저는 근처 비산 파출소로 보내졌고 경찰은 저의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곧바로 대구 화원에 있는 희망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희망원에는 유아 시설이 없어 부산 마리아 수녀원으로 보내졌고 여덟 살쯤 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후 부산 소년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열 살쯤 되어서는 서울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79년에 다시 대구 희망원으로 보내졌다가 80년에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85년 4월경, 서울 고척동 라이터 제조공장인 S물산으로 보내지기 전까지 5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제복지원은 돈을 받고 사람을 공장에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곪은 상처엔 ‘심 박기’…오줌 받아 손발 씻어 형제복지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먹는 것도 부실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다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운동장에서 원상폭격(머리박기)은 너무 흔한 일상이어서 머리를 박은 채 졸기도 했습니다. 원상폭격을 심하게 시킬 때는 얼굴을 땅바닥에 박게 했습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발로 차여서 얼굴이 다 긁히기도 했습니다. ‘까바리 광대’라는 기합은 케첩 깡통을 땅에 세워두고 다리를 잡아 머리를 아래로 가게 해서 손을 놓아버립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히로시마’는 2층 침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받는 벌인데, 히로시마를 타다가 발등에 심한 상처가 났고 바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서 덧났습니다. 상처가 곪아서 발이 열 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형제원에서는 죽을 만큼 맞아야 외부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곪은 상처로 병원은 꿈도 못 꾸지요. 신문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소독약을 묻힌 뒤 퉁퉁 곪은 상처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심 박는다’고 합니다. 의무실이란 곳에서 그런 처치를 해줍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내무사열을 하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거나 손톱, 발톱에 때가 있으면 기합을 받습니다. 씻어야 하는데 물을 언제나 쓸 수는 없었고 따뜻한 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저는 발보다 작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는데 고무신에 덮이지 못하는 발등은 늘 봉긋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고무신 때문에 발이 자라지 못한 것인지 지금 제 발은 몸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탈출 계획은 ‘빵 하나’에 수포로…죽어나간 사람도 여럿 같은 방에 있던 친구 열 명과 함께 탈출을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빵 하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를 고발해 버려서 중대장실과 원장실에 끌려가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고자질하면 같은 방에서 지내던 친구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줄 알면서도 빵 하나에 친구를 넘길 만큼 우리는 굶주려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해보지도 못했지만 도모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실에 끌려갔을 때 정신봉이라고 하는 빨갛게 칠해진 나무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그러다 정신봉이 부러지자 쇠 파이프로 맞았는데 그때 머리를 맞는 바람에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입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귀도 너무 많이 맞아서 피가 엄청 났고 형제원에 있는 내내 고름으로 고생했고 지금도 한쪽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늘 귀에 고름을 달고 살아서 ‘귀꼴레’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중대장실에서 맞고 다음은 원장실에 끌려가 목검으로 맞았습니다.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 목검에 맞으면 기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원장실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탈출을 도모했던 우리 열 명은 그 뒤 몇 달간 밧줄에 엮어서 화장실 갈 때도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제식훈련을 받을 때도 기합을 받을 때도 다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대운동장 끝은 낭떠러지였는데 그리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형제원은 찬송가 교육, 군가교육을 심하게 시켰는데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육헌장 등을 외우는 일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만약 외우지 못하면 기합 받고 무지하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졸다가 맞은 적도 많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 맞은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실수하면 120명이 전부 빠따를 맞습니다. 크리스마스 특사 때 원장이 줄 서 있는 원생들을 숫자로 끊어서 다른 수용시설로 보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형제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 줄 알았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뛰어내린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혀 두개골이 깨어지는 소리는 끔찍할 만큼 컸습니다. 죽는 사람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악대 선생한테 맞아 의무과로 갔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장 팔려갔다 ‘탈출’했지만…한 때 조폭 생활로 교도소 수감 85년 공장으로 팔려 갔을 때 저는 더 갇혀 있고 싶지 않아 공장을 뛰쳐나왔습니다. 공장 탈의실에 걸려 있던 작업복 주머니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훔쳐 나와 무조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으니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거라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면회를 왔었습니다. 다른 말은 없고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꿈결에 어찌나 울었는지 같은 방 사람들이 자고있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등 텔레비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힘든 시절을 보내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1살에서 30살, 참 아까운 시절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수용시설을 전전하며 크는 동안 윤리, 도덕, 올바른 가치관, 이런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랑보다는 폭력을 늘 당하며 살다 보니 사람들과 갈등을 대화로 푸는 것도 어렵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뒤 갈 데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병든 몸…“합리적 판결로 보상받길” 그렇게 저는 반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무속인이 저에게 엉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맙게도 2010년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더 이상 교도소에 가지 않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지금은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고있는 집이 잘못되어 몇 개월 뒤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써주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물류센터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기초수급자였는데 체격이 건장하다며 기초수급자에서도 잘렸습니다. 형제원에서 맞아 고름으로 고생한 귀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어 기압이 낮아지는 높은 작업 현장에서 일하기는 힘듭니다. 두개골 함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어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이 끊어집니다.순간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오면 저는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물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제원에서 기합 받을 때 허리뼈를 맞아서 다친 뒤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 수가 없으니 몸을 쓰는 거친 일은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면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부디 합리적인 판결로 저의 아픈 기억, 배우지 못한 시간을 만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여기는 중국] 잡지도 못하고…원숭이, 2달 째 아파트·사무실 돌며 난동

    [여기는 중국] 잡지도 못하고…원숭이, 2달 째 아파트·사무실 돌며 난동

    도심 주택가에 출몰한 원숭이 한 마리가 60일째 주택가에 난입해 횡포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호동물인 원숭이라는 점에서 무단 포획이 어려워 주민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중국 유력언론 중국청년보는 상하이시 진산구 일대 저층 아파트 밀집 단지 일대에 원숭이 한 마리가 출몰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지난 6월 처음 주택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 원숭이는 진산구 소재의 팅린, 뤼상, 주징 등 다수의 주택 밀집지역을 돌며 창문과 베란다 등을 통해 주택 내부에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문제가 된 원숭이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주택가에 출몰해 주민들을 공격하는 등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중국 현행법 상 원숭이가 보호동물로 지정돼 있다는 점에서 주민들 자체적인 포획은 법 위반 사항이다. 더욱이 지난 60일 동안 주택가를 떠돌았던 문제의 원숭이는 닫힌 문을 직접 열고 가정집에 침입하기도 했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증언이다.실제로 해당 언론은 지난 18일 오후 3시 경 문제의 원숭이가 량시아전 도시환경사무소에 출몰, 직원들이 창문을 일제히 닫자 스스로 창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A씨는 “원숭이가 스스로 베란다 문과 창문을 쉽게 열고 가정집은 물론이고 사무실도 진입하는 상황”이라면서 “집 안에 들어온 원숭이는 먹이를 찾기 위해 가구들을 모두 훼손하고 사무실 집기를 어질러 놓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 주민들이 직접 포획하는 것이 금지된 탓에 원숭이를 발견한 즉시 관할 파출소와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신고를 하지만 파출소 직원이 출동할 때면 이미 도주한 후”라고 피해를 호소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경 또 다시 주택가에 출몰한 원숭이는 아파트 지붕 위를 서성이면서 아파트 공터에 모여 있는 주민들을 내려다보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 처음 주택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 원숭이는 먹을 것을 던져주던 관광객이 코로나19로 줄어들자 주택가에 침입해 음식을 훔치고 농작물과 나무를 훼손해오고 있다. 이 원숭이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또 다른 주민 손 모 씨는 “여름 날씨가 무더워서 창문을 열어 둔 채로 퇴근했더니 다음 날 아침 사무실 집기들이 모두 훼손되고 부서진 상태로 발견됐다”면서 “먹이를 찾기 위해 2층 사무실 창문을 열고 들어온 원숭이가 책상 위에 있었던 빵 조각을 먹기 위해 침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이달 초 관할 파출소와 공안국에 피해를 의뢰, 정식 포획을 요청했지만 보호동물로 지정된 원숭이를 포획할 수 없다는 현행법상 난항을 겪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원숭이가 국가가 지정한 2급 보호동물이라는 점에서 무리한 포획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할 공안국은 주민들에게 원숭이를 마주쳤을 시 난폭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접근하거나 음식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하지 말고 관할 파출소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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