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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소설가 조르조 바사니 사망

    [로마 AP 연합] 파시즘의 발흥으로 유대인들이 처한 곤경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소설 ‘핀지콘티니 가(家)의 정원’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가 조르조 바사니가 13일 사망했다.향년 84세. 로마시내 산 카밀로 병원 대변인은 최근 심장질환으로 입원했던 바사니가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바사니는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바사니는 고향인 볼로냐를 떠나 베네치아 인근 페라라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요소를 짙게 깔고 있다. 대표작 ‘판지콘티니가의 정원’은 파시즘이 발흥하기 시작한 30년대 부유한 귀족가문의 쇠락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세계 각국서 번역 출간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바사니는 2차대전중 파시스트들에 의해 잠깐 투옥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뒤문학인생을 시작했으며,56년 ‘페라라에 관한 5가지 이야기“로 이탈리아의유명 문학상인 스트레냐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인으로도 활동해왔다.아내였던 발레리아 여사와는 오래전 헤어졌으며 유족으로는두 자녀가 있다.
  • 특파원 수첩/ 美 ‘푸틴의 러시아’ 기대반 우려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러시아를보는 미국의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반씩 섞여 있다.공식적으로 러시아정부에서 이름이 거론된지 8개월만에 대통령이란 최고 자리에 오른 푸틴에 대해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매에 무엇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띤 그의 얼굴에서 경제적 가난과 사회적 병리현상에 찌든 러시아의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엿보는듯 하다가도 동시에 옛 소련 시절 권력에 맹종하면서 잔인성을 보여준 KGB의그늘도 느끼고 있다. 러시아가 어디로 흘러가겠느냐는 이제 52%의 국민적 지지를 받은 48세의 젊은 푸틴이 휘두를 권력의 향배에 전적으로 달렸기에 미국은 그의 미세한 언행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26일 대통령직에 당선되던 날 클린턴 대통령도 일단 당선축하 인사를보낸 뒤 러시아의 민주주의 신장과 국제사회와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기를기대한다고 촉구하면서 이같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전달했다.또 당선 직후 그가 경제개혁과 법치 회복,부패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에 대해 일단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혼란스런 모습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하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합된 국가 행정권력이다.미국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것도 바로 이 점.혼란을 추스리고 국가의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구할 권력의 정비 와중에 흔히 보았던 독재와 권력전횡이 동전의 앞뒤처럼 언제든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문제,자유로운 언론의 보장 등 민주주의가 신장되지 않은 국가권력의집중현상은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하나의 나치즘,파시즘의 등장이요,옛 소련의 재등장보다 더 세계가 원치 않는 것이다.미국으로선 당장 푸틴이 제대로 권력을 정비,당장 어려운 경제를 회복시키고 협력의 파트너로 등장하도록 협조한다는 방침이나 CIA가 러시아를 알듯 KGB 출신으로 미국을 알고 있는 그가 미국을 어떻게 대할지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다. hay@
  •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

    나이 마흔을 갓넘긴 유시민에게는 ‘운동권,좌파,진보주의자,아웃사이더’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불의의 권력에 항거하다가 감옥살이까지 한 그에게의당 붙일만한 별칭이다. 그런 그가 최근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개마고원)를 펴내고 ‘자신은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책은 그가 지난 2년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약간씩 수정해 만들었다. 그는 책에서 극우 파시즘의 폭력과 억압구조가 외형적으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낡은 사상과 권위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고 주장한다.따라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인정하는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상과 문화 영역에서 극우의 헤게모니를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아울러 극우주의의 행패를 수수방관하는 지식인은 자유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편다. 그는 또 ‘개인의 이익과 배치되는 국익은 없다’ ‘주체사상의 허구성을증명하기 위해 북한방송 청취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생각도 제시한다.값 9,000원. 정기홍기자
  • [김삼웅 칼럼] 20세기 송별사

    “쓸쓸한 듯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그것은 두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주저하지 말고 현재를 개선하라.그림자 같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두려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용기를 갖고 나아가라.”(H W 롱펠로) 한민족에게 20세기는 영욕과 격변의 시대였다.‘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세기’(헤롤드 라스키)이고,‘전쟁과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극단의 시대’(에릭 홉스봄)이고,‘폭력의 세기’(한나 아렌트)였다.망국과 식민지와 해방전쟁과 분단과 동족상쟁과 군사독재와 근대화와 민주화의 영욕과 격변을 두루겪었다. 영광보다는 욕됨이 더 많은 한 세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버리고 싶은 20세기의 유산을 짊어지고 새 천년의 문턱을 넘는다.분단과 냉전,지역갈등,집단이기주의,빈부 격차,공리공담과 형식주의,저질정치와 정쟁,지도층의 도덕성 해이,성 타락,언론·지식인들의 허위의식 등‘악의 유산’을 그대로 안고 가파른 2000년대의 고개를 넘는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봉건전제국가에서 곧바로 식민체제로 전락하여 20세기 전반기를 민족 말살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자존을 지키면서 독립을 쟁취하고,미·소 양대 진영의 이념 전쟁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동북아에서는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하고,국제통화기금(IMF)의 국난을 남 먼저 극복하는 민족의 저력을 보였다. 결코‘간단한’국민이 아니다.지금 세계 도처에는 조선족,고려족,한국인,코리안 등으로 불리는 해외동포 550만명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21세기형 한국영토’를 넓히고 있다. 미·중·일·러 4강에 500만 한국인(조선족)이 뿌리박고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요 세계를향한 값진 자원이다.돌이켜보면 우리가 20세기에 겪은 민족적 시련과 고난은2000년대 웅비를 위한 단련이었는지 모른다. 신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국가)에게 시련을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한 세기 동안 식민지도 겪고,외국군정도 겪고,공산주의도 겪고,파시즘도 겪고,IMF도 겪은 그런 민족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시련과 고난과 좌절에도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불사조의 국민이다. 우리 조상들도 그토록극심한 내외 도전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독립을 지켜왔다. 우리는 부끄럽고 역겨운 유산을 짊어지고 새 천년의 고지를 넘는다.개인이나 국가나 과거와 완전히 절연하기는 쉽지 않다.문제는 악의 유산과 암적 부위를 잘라내고 건강한 부분을 지키면서 희망의 꿈을 키우는 일이다. 더 이상 냉전적 대결구도에 의한 긴장과 소모전을 지양해야 한다.교류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상처 입은 한쪽 날개의 아픔을 헤아리는 동포애와 동족의식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21세기 초에는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서 5대양 6대주를 훨훨 날아야 한다. 한쪽 날개로 날면 얼마나 날겠는가. 더 이상 지역주의 망령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지역성에 의존하여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상배들을 거부해야 한다.4월 총선을 앞두고 우려되는 지역주의 대결을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막아야 한다.20세기 후반기에 생긴 악성종양인 지역주의를 깨지 못하면 화합도,개혁도,통일도 허사가 된다.통일에앞서 지역주의를 극복하자.이를 위하여 화합과 상생의 기풍을 진작하자. ‘20세기 유산’중 여전히 우리를 옭죄는 것은 친일→분단→군사독재로 이어지는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세력의 득세이다.이들은 한세기 동안 축적된 인적·물적 힘을 바탕으로 남북화해를 가로막고,개혁의 발목을 잡고,지역화합을훼방한다. 이제 냉전에 감염되지 않고, 지역주의에 오염되지 않고, 부패권에 편입되지않는 양심세력과 젊은 세대가 힘을 모아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악의 유산’은 콘크리트철벽인데‘양심세력’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새 시대의 국운 개척이 불가능하다.무엇보다 양심세력의 결속이 시급하다.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현재는화살처럼 날아가고,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F 실러·영국 철학자)
  • [외언내언] 아인슈타인과 히틀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상대성 이론’을 창안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을 선정,31일자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타임지는‘상대성 이론은 이론 물리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TV와 핵무기,우주여행,반도체 등 중요한 기술 분야 발전의 토대를이뤄 금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선정 경위를 밝혔다. 수긍되는 설명이다.타임은 98년부터‘지도자 및 혁명가’를 비롯,‘예술 및연예인’, ‘건축가와 운동선수’, ‘과학자와 사상가’, ‘영웅과 아이디어맨’등 5개 분야에서 20명씩을 선정하고 최종으로 각 분야를 망라한 20세기인물로 아인슈타인을 뽑았다. 독일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로서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33년 히틀러가 민주적인 바이마르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정권을 세우자 미국으로 건너가 나치즘과 핵폭탄 반대운동에 앞장섰다.그가 금세기 인물로 꼽히게 된 것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파시즘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생애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탄인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심성과 순진함으로 친근감을 느끼게한다. 후광과도 같이 뒤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자상하면서도 순수함이 깃든몽롱한 표정 등은 사악함과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린 20세기 천재의 가능성과어린이의 순진함을 함께 담고 있어 친밀감을 더한다.어려웠던 한 세기 그는인류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갖게 한 구원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종 선정 과정에서‘지도자와 혁명가’부문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아인슈타인과 경합을 벌였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해자인 히틀러가 게르만족 지상주의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비(非)아리안민족인 유대인과 슬라브민족 600만명을 인종청소했다면 피해자인 아인슈타인은인류평화를 위해 평생 힘썼다. 이런 두 사람이 한때 경합을 벌였다는 사실이믿어지지 않는다. 타임사가 참고자료 활용을 위해 실시한 100여만 독자들의 E­메일 투표결과히틀러가 한때 1위에 오르자 일부 언론들은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단체들의 발호를 우려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타임은 20세기 인물은 사람의 됨됨이나 공헌도 또는 해악을 끼쳤는지 여부와 관계없이‘누가 큰 뉴스거리를제공했는가’가 기준이라고 설명한다.세기의 인물 후보 중 한국인이 한 사람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금세기 우리 민족은 엄청난 변화와 좌절, 도전을겪었지만 세기적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 같다.21세기 인물은‘조용한 아침의나라’에서 나오길 기원한다. [李基伯논설위원 kbl@]
  • [대한광장] 천년기 전환의 의미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연말이 되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 세밑에도 마음이 부산하긴 마찬가지지만,올해를 보내는 심정은 더욱 착잡하다.1999라는 수가 주는 묘한 긴박감과 ‘밀레니엄’의 특수를 보려는 장삿속의 들뜬 분위기를 넘어서 2000년으로의 전환이 갖는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세모를보내는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에는 십진법의 세 차원이 중첩되어 있다.그것은 1990년대 10년의 마지막 해이며,20세기의 끝이자 아울러 2천년기의 1,000년을 마감한다.바꿔 말하면,2000년은 새로운 천년기와 21세기의 시작이자 2000년대 10년의 첫 출발점이다.1,000년은 고사하고 100년이란 시간단위도 한 개인의 차원을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 시간지속은 역사에 깊숙이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규정하고 우리의 선택을 제약한다.세 시간대의 교착이 마치 구조처럼 우리를압박하는 것이다. 지난 천년 동안에 일어나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엇일까?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그 안에 들어있다.왜냐하면‘세기’나 ‘천년기’ 운운하는 것이 이미 유럽의 시간관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하며,이는 유럽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이기 때문이다.15세기 이전에만 해도 지중해 세계의 한 변방에 불과하던 유럽이 놀랍게도 3세기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여러 문명을 능가하고 끝내 19세기에 들어서는 그것들을 복속시키는,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구축한 것이야말로 최대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이 유럽의 열강에 의해 주도되었던 까닭에 19세기 후반 이후의 우리의 역사는 고난과 모색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중국과 같이 고도의 문명과엄청난 생산력을 지녔던 거대 제국도 국민국가를 기본단위로 하는 유럽적 세계질서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유럽의,그것도 ‘아류’의 손아귀에 떨어진 우리의 운명이야 오죽했으랴.분단의 현실 밑바닥에는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우리의 어두운 과거가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회복한 것이 20세기 중엽의 일이었으니,우리는 ‘세계’의 20세기를 압축적이고 훨씬 가혹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혁명,전쟁,민족해방,공산주의,냉전,파시즘,군사독재,미국의 패권,신좌파,산업화,도시화,문맹의 퇴치,농민의 소멸,계급형성,민주화,시민운동,노동운동,우주시대,대중소비사회,여성해방,정보통신혁명과 가상공간,자연파괴,유전자복제,전위예술의 소멸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의 모든 것을 두 세대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견뎌내야 했다. 전근대,근대,탈근대가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꺼번에 몸부림을 치고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아우성을 질러대는 질주의 시대였다.과거를 청산하기도 전에 미래가 현재가 되고 전통과 화해를 이룩하기도 전에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이 엄청난 역사의 중량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망각한 채 빨아들였던 우리는 분명 평범한 존재들은 아니었다.‘빨리빨리’라는‘조국건설의 국시’ 이면에는 한문과 일어와 영어에 적응하느라 간과 쓸개를 버려야 했던 무수한 ‘꺼삐딴 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지난 10년은 여러 가지 점에서 21세기의 서막을 이룬다.역사가들은 흔히 ‘동구혁명’과 소련의 해체로 ‘짧은 20세기’를 끝났다고 본다.이 10년은 ‘세기말’에 걸맞은 징후를 드러냈다.많은 이들이 ‘역사의 종말’ ‘자연의종말’ ‘과학의 종말’ ‘이데올로기의 종언’ ‘국민국가의 소멸’ ‘노동의 종말’ ‘자본의 한계’ 등을 선언했지만,누구도 다가올 시대가 무엇이될는지 선뜻 제시하지 못한다.미래가 예측 불가능하기보다는 전망이 부재한데서 빚어진 결과다. 진보의 허구,혁명의 신화,거대담론의 해체,‘제3의 길’의 부재 속에서 자본주의는 이제 최후의 승자가 된 듯하다.그것은 이제 소비에트 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민족해방운동의 견제가 사라지면서 ‘원초적 본능’을 유감없이발휘하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입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전락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외치지만 그 끝이 무엇인지 알지못한다.뜨겁게 달아오른 주식시장의 뒤에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돈 이외에는 아무런 확실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기말의 군상이 몰려있다. 이렇듯 밀레니엄이 바뀌고 21세기가 다가오건만,서양의 2천년기,미국의 20세기,방향상실의 세기말이 우리의 1999년에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 짙기만 하다.다가올 새 시대가 설마 우리의 20세기만큼이나 모질고 험악할까마는,우리는 세기의 교차로에서 기약없는 ‘새 밀레니엄’의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역사의식을 곧추세워야 할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 서양사
  • [인터뷰]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진중권씨

    “우리 사회의 비평문화는 너무 ‘인격론’에 치우쳐 있습니다.논리적 비판을 인신공격으로 치부한 나머지 의견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등의 저서에서 특유의 풍자적인 필치로 세간의화제를 모은 자유기고가 진중권(陳重權·36)씨가 최근 독일서 귀국,새 비평지 ‘아웃사이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아웃사이더’는 제호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기성과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 으뜸가는 기조라고 할 수 있다.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에 쌍벽할 비평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격월간으로 11월말경에 창간될 이 비평지는 진씨를 비롯해 시인 김정란씨,재불평론가 홍세화씨,그리고 자유기고가 김규항씨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진씨는 “각자 성향이 조금씩 다른 점이큰 매력일 수 있다”며 초창기에는 4인체제로 꾸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일단 현실정치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사회의 일상적 문제,즉 권위주의,비합리주의,파시즘 등에 대해서도시선을 놓치지 않을 방침이다.“비판은 하되 공격 일변도보다는 생산적 대안모색도 병행하겠다”는 것이 진씨의 설명이다.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진씨가 사회·예술비평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외국생활이 한 동기가 된듯하다.“‘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독일에서는 당시 집권자인 아데나워 수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경제건설을 마치 박정희 개인의 업적인양 미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밖에서 보니 ‘문제’라고 느껴집디다” 진씨는 당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비평은 그의 영원한 ‘화두’인듯 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본 공화국과 베를린 공화국

    3일은 통독 9주년 기념일이었다.이제 독일통일은 독일인과 주변국에 있어서일상적인 생활속에 자리를 잡아 통일의 감격은 과거사가 되었다. 그 가운데9월6일 베를린 연방의회의 이전을 계기로 현재 독일 국가의 정체성의 담론속에는 ‘본공화국’과 ‘베를린공화국’의 자리매김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1일 라인강의 작은 도시 본에서는 ‘50년 동안의 본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라는 모토 아래 본에서 마지막 연방의회가 열렸다.두 공화국 논쟁과 관련,자유와 평화속에서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베를린이 지배하던 독일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독일의 젊은 세대들에게 의미있는,역사적인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 그 메시지에 의하면 70여년 동안 베를린이 지배한 독일은 민주주의의 부재로 비극적 경험을 하였다.그러므로 도덕과 정치를 파멸시킨 나치스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고향과 재산을 빼앗긴 역사로부터 유럽과 독일은 19세기와 20세기의 민족주의적 권력정치의 그늘에서 탈피,‘유럽의 집’을 건설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통일과 독일통일을 하나의 고리에 연결한 그는 ‘본공화국’과 ‘베를린공화국’의 구분을 거부했다.“독일은 베를린으로 가지만새로운 공화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어쩌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본공화국은 그에 있어서 감사와 행복의 상징일 것이다. 50여분 동안의 연설에서 그는 독일인들에게 겸허,협력 정신,그리고 자기도취의 유혹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콜의 세대들은 독일 땅에서 평화와 자유의 세기를 위해 노력했으므로 이제 다음 세기를 주도할 젊은 세대들은 그 평화와 자유를 지켜달라는 주문이었다. 지난 9월6일 연방의회의 베를린에서의 업무 시작으로 독일은 베를린공화국시대를 맞이하여 베를린은 독일 정치와 유럽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누가뭐래도 본정치는 베를린정치 시대를 여는 초석이었다.본이 이룩한 민주주의와 평화와 자유 없이 오늘의 베를린 시대는 상상할 수 없다. 본공화국에는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폭력적인 나치스의 반민주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좌절에 대한 독일국민의 책무와 종족 이데올로기 아래 거대한 참화를 유럽에 입혀,역사발전에 진보의 신앙을 망가뜨린 독일인의 역사에 대한성찰이 배어있다. 독일인은 지난 45년 동안 모순과 고통에 찬 역사를 지난 시기 과오의 대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눈물과 고된 시련으로 파시즘을 청산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평화와 번영을 건설해 주변 강대국의 방해 없이 국제사회로부터면죄부를 당당하게 부여받은 베를린공화국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다시 태어나려는 노력으로 점철된 본공화국은 겸허하게,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로 꽉 차 있는가하면,괄목할 만한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책임과 정치적인 역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대신 베를린공화국은본공화국이 힘겹게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서 과거의 업보로부터 자유로운 유럽화된 독일의 맥락에서 대국의 조건이 갖추어진 공화국에로의 이행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의 새로운 세대는 분단된 독일을 상징하는 본공화국이 아니라 통일되고 유럽화된 베를린공화국을 만들어가고 있다.그래서 냉전과 분단시대의자유와 평화와 번영과 민주주의를 힘겹게 일구어온 본공화국시대 세대들이바라본 베를린은 낯설게 변해가고 있다.새로운 변화는 1991년 이후 베를린중심가에서 매년 열리는 7월 한여름의 ‘사랑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1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정신이 주도해간다.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로부터자유로운 그들은 첨단 테크노 뮤직으로 평화와 자유에 대한 정열을 베를린을만들어가는 데 쏟아, 시와 조형미술,음악에서 젊은이들이 숨을 쉴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히틀러의 폭압적 정치를 상징하는 건축,자유를 위해 투쟁한 영웅들의 기념비,동서이데올로기의 분열과 갈등,호수와 숲과 평야와 강물이 있는 베를린에는 사회적,경제적,정신적 변화에 새로운 삶의 양식이 펼쳐지고 있다.20세기의 이념을 극복하고 태어난 베를린공화국에는 본공화국을 건설한 세대와 다른 세대에 의해 빨라진 맥박속에서 본공화국의 소망이 조각돼가고 있다. [白 京 男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장]
  • 소설가 고종석씨 산문집 ‘언문세설’ 펴내

    “ㄹ은 액체성의 자음이다.‘흐르다’와 ‘따르다’에도 이미 이 ㄹ이 있다.…고려속요 ‘청산별곡’은 ㄹ을 타고 흐른다: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에 살어리랏다/멀위랑 다래랑 먹고/청산에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그야말로 ㄹ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유랑민의 이 서글픈 노래는 ㄹ소리로 가멸차다.소리가 의미를 압도한다.‘청산별곡’은 흐르고 흐른다”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고종석씨(41)가 ‘언문세설(諺文細說)’이란 산문집을펴냈다.도서출판 열림원. 그는 한때 국어사전 편찬자가 되기를 꿈꿨다.한국의 웹스터나 라루스가 되겠다는 퍽 야무진 것이었다.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몸을 얻지 못했다.이 책은 저자의 좌절된 꿈에 대한 일종의 ‘자위’로 씌어진 한글자모(字母) ‘사전’이다.한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그의 언어관 혹은 한국어관은 어떤 것일까.“모든 순결주의가 그렇듯 언어순결주의도 파시즘에 정서의 탯줄을 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모든 언어는 혼혈이며,순수한 언어는없다는 것이다.그에 논법에 따르면 외래어나 일본제 한자어,북한의 이질적인 언어 등이 뒤섞여 한국어는 더욱 풍부해진다. 한편 고종석은 소설가 복거일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민족어가 가까운 장래에 ‘박물관 언어’화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회는 서구의 라틴어와 동아시아의 한문이 그랬듯이 민족어와 영어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이중언어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글 자모라는 한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언문세설’은 민족어로서의 한국어를 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ㄱ’에서 ‘ㅎ’,‘ㅏ’에서 ‘ㅣ’에 이르는 한글 자모 스물네 자는 그의 붓끝을 따라 새 이미지와 생명을 얻어 파닥거린다.이 책은 한글 자모가 생겨나 변해온 과정,각각의 모양과 소리,고유한 법칙들을 꼼꼼히 살핀다.하지만 국문법 책처럼 딱딱하지는 않다.하나의 글자가 주는 어감을 풍부한 어휘와 시구를 통해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그 한 예로 그는 ㄴ이라는 자음이 얼마나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가를 김수영과 레미 드 구르몽,황인숙의 시 ‘진눈깨비’를 통해 보여준다. 고종석은 이미 ‘사랑의 말,말들의 사랑’‘감염된 언어’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국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사랑을 보여줬다.그는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민족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그러나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이 민족주의자의 한 징표라면,나는 민족주의자의 인력권 바깥에 있지도 못하다”고 고백한다.그러나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한국어는 그에게 또 다른 감옥으로 다가온다.“모국어는 내 감옥이다.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언문세설’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김종면기자 jmkim@
  • “순수한 티베트정신 현대문명의 돌파구”

    ‘티베트의 수도 라싸가 마음이 가난한 한 이방인에게 티베트 문명의 뿌리라며 준 선물은 근대 이성을 버리고 고대의 지혜로 돌아오라는 가르침이었다.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21세기 지구 가족이 공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였다.’ 작가 김영종은 그의 저서 ‘티벳에서 온 편지’에서 ‘악마적’ 현대 문명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가장 원초적 세계인 티베트에서 찾고 있다.다년간 아시아 내륙을 답사하며 우리나라 정신문화유산의 뿌리와 문명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지은이는 그동안의 탐구와 지난해 황하를 따라 중국에서 티베트까지답사한 역사기행을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기행이 아니라 문명비평서라 할 수 있다. 티베트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는 참배객에서 느끼는 영혼의 고귀함과 물건을 사라고 쫓아다니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이보여주는 식민지의 비참함이 고통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박완서는 티베트의 고통을 이렇게 적고 있다.‘이 거친 산야를 바람처럼 스쳐가는 이방인이 티베트에서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일은 눈에는최고의 사치요 충격이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마음의 평화나 기쁨은못느꼈다.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하고 저절로 대조가 되니까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티베트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티베트에는 서구의 근대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신비와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하는 티베트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느꼈다면,그것은 신비도 수수께끼도 아닌 순수와 자비의 정신이었다.’ 이 책은 티베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티베트 이야기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쌀의 전파 경로,고구려 벽화,황하와 중국의 정신,중화주의,자연,성,문명 등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러면서도 티베트를 키워드로 삼은 것은 현대문명의 돌파구를 그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서구 중심의 현대문명을 자연과 지구 생명을 살육하는 ‘악마’라고 비판한다.‘환경파괴,핵무기 경쟁,대량학살,대규모 실업따위는 현대문명의 거대한 그늘이다.클린턴이 이라크나 유고에 평화의 이름으로 감행한 공습의 그늘에 패권주의라는 미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듯이 현대 문명은 파시즘만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야만을 자체내에 배양하고있다.현대의 서구 문명은 야만이란 거대한 빙산이 해수면 위로 떠오른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서구의 현대 문명을 야만이라고 보는 관점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융화하는 동양문명이 대안일지 모른다.그는 자연을잃으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하며 원초적 세계인 티베트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찾는다.‘이 불임의 시대에 유일한 생명을 잉태시키는티베트의 정신은 현대문명의 돌파구일 수 있었다.’그러나 그의 생각은 너무편협하고 스스로 고백했듯이 지나치게 감상적일지 모른다.(사계절 9,000원)이창순기자 cslee@
  • 미 레스터 서로교수의‘경제탐험’

    인류 역사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가장 위대한 제국도 그 절정을 이루었을때 붕괴의 내리막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자본주의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자본주의 다음에는 어떤 경제시스템이 나타날까.세계적인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교수는 그의 저서 ‘경제 탐험’에서 자본주의 너머의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나 파시즘과의 경쟁에서 모두 승리했다.20세기에 시도했던 많은 경제시스템들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 시스템만 남아 있다.그러나 19세기에 만들어진 자본주의가 21세기에도 적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제로섬 사회’ ‘자본주의의 미래’ 등의 저서로 유명한 서로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정치·기술시스템 사이에는 어색한 관계가 많이 존재한다.불평등의 확대 등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마찰을 심화시키고 있다.이들 모순이 자본주의 소멸과 연관된 것일까.오늘의 의문은 우리가 자본주의종언에 가까이 왔는가 하는 것이다.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를 대체할 만한경제시스템이 아직 없기 때문에 갑자기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 너머의 경제시스템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그러나 자본주의의 기초가 흔들리고 경제환경은 크게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그 변화의 원동력을 지질학 용어를 빌려 ‘지판(plate)’이라고 부른다.지구의 경제적 지표를 변형시키는 다섯 가지의 경제지판은 ▲공산주의의 소멸 ▲천연자원에 기초한 산업으로부터 지식기반산업으로의 이동 ▲거대한 인구 변동과 노령화 ▲글로벌 경제화 ▲다극화된 세계로의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서로 교수는 인류의 미래를 세 가지의 시나리오로 예측한다.첫번째 시나리오는 불공평한 세계다.국가와 개인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사회 시스템에심각한 균열이 나타나고 대규모 이주 등으로 지구 규모의 마찰이 일어날 수있다.두번째 시나리오는 에고토피아(egotopia)다.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사회·국가의 분열현상이 나타난다.유고분쟁은 미래세계의 전조라 할 수 있다.싱가포르나 홍콩 등은 큰 나라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 구조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에코토피아(ecotopia)다.세계의 환경보호를 위해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세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지만 현실성은 가장 낮다.서로 교수는 3가지 시나리오가 복합적으로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경제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한국형 경제모델은 생산자 경제라는 일본 모델의 또 다른 변형으로 40여년간 훌륭하게 작동해 왔다.그러나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원동력이 필요하며 그 원동력은 통일이다.북한의 낮은 임금은 한국이 앞으로 20∼30년간 효율적으로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환경을 창출할 경제적 여유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은 두뇌산업의 새로운 리더를 적극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거대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세계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다음 세대 혁신기술의 리더 자리를 잃어 왔다”고그는 지적한다.(강승호 옮김,이진출판사 6,000원)이창순기자 cslee@
  • [굄돌] 과거를 사랑하는 학교

    사람들은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지 않고 시계에 맞춰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시계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과거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변화한 19세기부터였다.그 즈음 널리 퍼진 것이 오늘날의 학교였고,사람들은여기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 학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교육입국조서’가 반포되던 1895년이었다.그후 1945년 해방까지 학교는 전반기 50년간 일제의 영향권에서 ‘황민화교육’의 현장이었으며,후반기 50여년간은 이른바 냉전 이데올로기의생산 체제가 되어야 했다.이와같이 지난 100여년간 학교의 발자취는 굴절된한국현대사처럼 신성한 교육공간을 져버리는 길을 걸어왔던게 사실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학교 교육은 인류가 치른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정치적이념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다소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학교교육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교과서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등장한 선전 영화나 대중강연과 함께 집단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의 하나였다.당시 선을보였던기관총처럼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겨냥한 심리적 무기였던 것이다.게다가 최근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시절의 관행들,예컨대 잘 알려진 주번제도를 비롯하여 애국조회,관외출타 허가제,연수제도,폐품수집이나 새마을청소의 날,1교시 40분 수업 등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일본 군부의 파시즘 교육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쓰레기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거의 제대로 검토조차 된 적이 없었다.오히려 이제는 학교 문화를 지배하는 보수적 풍토의 한 요소로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까닭은 대부분 그 과거를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만큼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학교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따라서 학교의 과거를 모르는 한,그 과거의 학교 성격은 지속될 것이다.그런데도 근본적인 개혁에는 눈을 감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나 밖에선 툭하면 학교는 변해야 한다는 공허한 소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같다.마치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시계소리처럼. [이치석 서울용두초등교 교사]
  • 우리 20세기 기회주의자 유달리 많았다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금년봄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20세기를 ‘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한 바 있다.전반기 일제의 식민지통치기와 해방후의 분단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비극’ 밖에 없다는 것이 강교수의 ‘20세기관’이다. 역사종합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는 20세기에 등장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되짚어 ‘자아확인’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20세기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란 기획특집물이 그것으로 복고주의·사대주의·반공주의·한국적 민주주의·가부장제·가족이기주의·물신숭배·기회주의·기복주의·지역 연고 정실주의 등을 소항목으로 잡고 있다.물론 이 모두가 20세기에 등장한 ‘부정적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부장제·기복주의 등은 지난 역사 곳곳에 기록돼 있다.차이점이라면 이번 기획에서는 이들을 근대적 개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는 첫머리에서 93년 북한의 단군릉 발굴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복고주의’에 대한 경계론을 펴고 있다.특히 ‘새로운’ 광개토대왕,장보고,대륙백제를 표방한 ‘웅비사관’이 사실은 일본인들의 단골메뉴라고 일깨우고 있다. ‘사대주의’와 관련,임대식 서울대 강사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사대는 존립과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다고 보고 그 배경을 물적 기반과 계급성에서 찾고 있다.결국 친일이나 친미는 동일한 것으로하나의 선택이자 노선이었다는 것. 강경성(서울대 외교학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주장의 과잉’과 ‘연구의결핍’이라는 현상은 ‘반공주의’의 상징적 실상이라고 말한다.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유신시절에 등장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한국적 파시즘체제의 완성된 형태’라고 규정하며 집권세력과 유신 옹호 이론가들이 한국적 민주주의로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새 천년을 앞두고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면‘가부장제’는 사라질 것인가?답은 부정적이다.이승희 성공회대 강사는 가부장제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남성이 씌워주는 우산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비바람 부는 광야에서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내 자식 제일주의’ 등 ‘가족이기주의’는 전쟁과 산업화가 낳은 가족주의의 산물로 근본적으로는 시민의식·공공의식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의 지적은 한걸음 더 나아가면 ‘패거리주의’와 동일선상에서 만난다. 김상태 항공대 강사는 오늘날의 ‘지역·연고·정실주의’는 금세기 전반부기호세력과 서북세력간의 갈등이 후반부 들어 영·호남의 지역갈등으로 증폭돼 왔다며 해결책으로 지역간 균형발전을 우선과제로 들었다. 안동대 임재해 교수가 20세기의 ‘굴절’ 가운데 하나를 ‘기회주의’로 본 것은 탁견이다.변절자·기회주의자가 유달리 20세기에 많은 것은 치열하지못한 역사의식과 이들을 배태시킨 사회적 토양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 [대한광장] 정체성 상실과 집단적 광기

    만민중앙교회 MBC난입 사건은 우리사회 안에 얼마나 위험한 전근대적 요소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발생상황은 다를지 모르지만,이 사건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서울대생 익사사건과 같은 맥락위에 놓여 있다.두 사건은 모두 우리사회가 언제라도 집단적인 광기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탈근대 사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세계와 존재를 설명하는 준거틀의 상실,공동체 의식의 퇴조,무한히 열려서 터져 버린 주체의 해체,게다가 손만 뻗으면 이루어질 것처럼 선전되는 욕망의 폭발 등 현대인들의 상황은두려울 정도로 허공에 내던져져 있다. 이 허공 안에서 근대를 충분히 통과하지 못한 유약한 영혼들은 ‘내가 누군지 알게 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탈근대 사회에서 종교와 전통을 빙자한 ‘집단적 정체성’의 이데올로기가 슬금슬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사교라든지 집단적 입사의식의 광기 뒤에는 이처럼 ‘자아’를 확보하지 못하고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는 대중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 네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여기에 네가 들어와 편히 쉴 수 있는 존재의 큰집이 있느니라.여기에 들어오려거든 돈을 내든지,네 존재를 집단에 복속시켜야 하느니라.네오 파시즘이나 근본주의가 싹을 틔울 수 있는 바탕은 이처럼현대인의 정신적·영적 공황상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그러나 한꺼풀들어내고 보면,이 집단이데올로기 뒤에는 이를 조작하는 자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는 우리 사회 특유의 맥락을 타고 다른 사회어디에서보다 더욱 더 자주,그리고 대규모의 정신적·물질적 낭비를 동반하며 터져나오고 있다.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미성숙한 전근대적 개인들을 유사 탈근대 상황안에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세기말 분위기에 실려 근대성을 심화시키지 못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 몰각상태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언제 어디서 또‘집단적 정체성’이라는 마약주사를 맞은 유약한 개인들이 집단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려 들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성숙한 자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거국적 교육플랜이 필요하다.그러나 그렇게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자아’의 문제에 관한 한,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조차 명확한자아의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그들조차 혼자서 우주와 마주서지 못하고,일종의 ‘가족집단’처럼 함께 모여 있다.그리고는 그 집단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이의제기를 하면,합리적 이성의 수준이 아니라,정서적 수준에서 집단적으로 반응한다. 이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정도 이상으로 불거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그것은 언론과 정치권력이 ‘돈’과 ‘표’만 보면 그것이 약인지 독인지 가리지도 않고 무턱대고 ‘꿀꺽’ 하고 본다는 사실이다.월간 ‘말’지가 꼼꼼하게 보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이재록 목사의 ‘돈’과 ‘표’의 유혹에 언론과 정치인들이 무방비로 투항,그 바람에 종교의 이름을 빙자한 사건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던 것처럼 보인다.희생자들이 진상을 알리기 위해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지만,신자들의 집단행동이 두려워 어느 언론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공영방송인 KBS가 아니라 민영방송인 MBC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는 것이 씁쓸하고 쓸쓸하다.근래에 발생했던 여러 상황을 지켜보면,상업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민영방송이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보다 더 언론개혁과 공영성 제고에 적극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대한광장] 밀레니엄 유감

    요사이 시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밀레니엄(millenium)’이다.정부는 ‘새천년준비위원회’를 만들어 국가 천년대계의 비전을 설계하고,각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은 예산으로 다채로운 행사와 사업을 준비하고있다. 그런데 최근 밀레니엄이 상업성과 결합해 이벤트 중심으로 흐르는 조짐이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관(官)은 비슷비슷한 일회성 행사에 귀한 예산을 중복투자하고,민간에는 ‘밀레니엄 베이비’라는 웃지 못할 기념아(記念兒) 경쟁까지 일어나고 있다.그야말로 1000년이란 문명적 엄숙함은 역설적이게도 1년,아니 순간을 위한 상업성 이벤트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성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새천년을 맞이하는 철학의 문제이다.1세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1900년 1월1일자 세계 주요신문에는 과학과 문명을 근거로 20세기에 대한 찬미와 낙관적 전망이 줄을 이었다.그리하여 스탠퍼드대학의 조단 총장은 ‘20세기에의 초대’에서 “20세기인(人)은 희망인”이라규정하고 “그는 세계를,세계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세계대전이 일어났고,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일본의 군국주의와 2차세계대전,그리고 긴 냉전이 뒤따랐다.즉 20세기 서양의 현실은 ‘끔찍한 세기’ 또는 ‘극단의 시기’였다. 동양과 아시아의 20세기는 더욱 처참했다.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미국과 베트남 전쟁,중국과 베트남 전쟁,캄푸치아와 베트남 전쟁,이란과 이라크 전쟁,쿠웨이트·미국과 이라크 전쟁,구 소련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의 민족분규,최근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 등 많은 전쟁과 수난이줄을 이었다.특히 한반도에는 일본의 한국 병탄과 잔악한 식민통치,미·소에 의한 분단과 한국전쟁,남북의 냉전 등,다른 어떤 곳보다 잔인하였다. IMF사태 전까지만 해도 21세기에 대한 전망은 20세기보다 더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러한 진단은 한편으로는 정보통신혁명 등 생산력의 확장,냉전체제의 해소와 자유주의의 승리에 따른 정치경제적 변화 등에 기인한 것이지만,다른 한편으로는 현재가 단지 세기적인 전환이 아니라 그 10배인 밀레니엄이라는 마술 때문이기도 하다. 밀레니엄은 흔히 새 것에 대한 찬미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거느리고 다닌다.그러나 묵은 현실을 갈아 엎지 않는 한 미래는 새 것이 되지 않는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바로 묵은 현실의 과제,즉 1~2년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세기를 넘기면서까지 여전한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새 것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 모태인 현실의 역사적 과제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면,그것은 범죄행위요 사기행각이다. 아마도 21세기 한반도에선 20세기에 당면한 과제들이 여전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분단과 통일,민주주의의 확대,주변 4강과 한반도 문제 등이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아니 새천년을 여는 21세기 처음10년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역동적으로 표면화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19세기말,그리고 불과 몇년 전,미래에 대한 부박(浮薄)한 기대가 바로 미래에의 몽매를 불러일으켰음을 직시하자. 2세기 전에 태어난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노여워하지 말라’고 노래했다.‘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이기에.그가 노래하고자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부박한 기대가 아니다.아마도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중력(重力)은 없다는 것,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낙관의 신념으로 현실을 개조하자는 것이다.그가 차르(Tsar)를 타도하려는 혁명가 데카브리스트(Dekabrist)였듯이. [都珍淳 창원대 교수·한국사]
  • 미셸 푸코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출간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1926∼1984)는 20세기 대표적 지성인중의 한 사람 이다.그는 90년대 한국 지식인사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철학자이며 역사가라 할 수 있다. 그가 70년대 ‘사유체계의 역사’라는 강좌 이름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고등 교육기관)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박 정자 옮김으로 동문선에서 나왔다. 그는 생물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종주의를 비판한다.그는 파시즘·나치 즘·스탈린주의는 정치적으로 위험하고 인종적으로 불순한 사람들을 배제하 고 말살하는 ‘생물정치’라고 말한다. 책 제목으로 사용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말은 인종차별을 합리화 하는 인종주의자들의 말을 푸코가 비꼬는 어조로 인용한 것이다. 푸코는 71년부터 84년 죽을 때까지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다.이번에 나온 첫번째 강의록은 97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발간한 것이다.두번째 강의 록은 ‘비정상인들’이란 제목으로 2월에 프랑스에서 출간된다.우리나라에는 10월 쯤 소개될 예정이다.
  • 새 시대의 새 언론/李孝成 성균관대 교수·언론학(대한광장)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같은 이치로 새 시대는 새 언론을 필요로 한다. 새 언론은 굳이 새로 창간된 언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언론이라 하더라도 새 시대에 맡게 새로운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면 새 언론이 된다. 우리 언론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거의 잘못되거나 바람직하지 않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거품경제 속에서 자만하다가 경제위기에 빠져서야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속에서는 과거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조차 어렵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경제위기와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이 요구에 응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더 그래야 한다. ○낡은 사고방식 버려야 언론은 우리 국민들이 이 경제난국을 그리고 정보화와 세계화의 시대가 될 새로운 세기를 제대로 헤쳐가기 위해서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도록 촉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언론 자신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부터 먼저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거듭나야 한다. 우리 언론은 이제 무엇보다 소수의 특수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이익의 대변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복지에 투철해지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의 복지는 소홀히 하면서 독재권력에 아부하고 재벌을 비호하고 기득권을 옹호했다. 이제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커지고 사회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정권이나 재벌이나 기득권과 같은 소수의 특수이익을 옹호하는 언론은 공공의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공공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공공을 선도할 수도 없다. 공공이라는 다수의 일반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언론의 올바른 자세이고,그래야 공공의 신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언론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또한 편협하고 낡은 이념의 족쇄에서 벗어나 다원주의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론 공산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공산권이 몰락하고 북한이 쇠잔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좌우의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젖어 편협한 이념의 잣대로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모조리 좌익으로 재단하여 매도하는 파시즘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배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다양성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21세기의 정보사회를 헤쳐나가기도,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달성도 어렵다. ○공익·국민복지 추구를 언론은 남북통일을 이루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편협한 이념의 굴레를 벗고 다양성과 반대의견을 포용하는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전파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언론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이런점에서 항일구국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기도 한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꾸고 재탄생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대한매일은 과거 서울신문이 권위주의 정권을대변했던 저간의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반성하고,대한매일신보의 구국활동과 독립정신을 계승하면서 공공이익,국민복지,민족화합,21세기 선도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이제 새롭게 태어난 대한매일은 다짐으로써만이 아니라 실제 기사와 논설로써 이를 실천해야 한다. 대한매일의 출범을 축하하며 다짐의 실천을 기대한다.
  •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에 移葬이라(박갑천 칼럼)

    유명한 시나 소설 등에 나오는 고장은 사람들 기억속에 깊이 자리잡게 된다.노산 이은상의 ‘가고파’가 마산(馬山) 앞바다를 가슴마다에 한폭의 그림으로서 심어놓은 것과 같이.이름모를 경상도땅 평사리도 박경리의 로 해서 전통사회 마을의 전형으로 새겨졌다. 스페인북부 바스크지방의 도시 게르니카는 어떤가.스페인내전중인 1937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공군이 인구1만에 지나지않는 이 소도시를 폭격한다.무방비 도시를 바수지른 무차별폭격이라는 데서 세계의 비난여론이 들끓었지만 전쟁중의 비인도적 살상행위야 흔히 있어온일.한데도 이 비극의 도시가 유독 세계인의 가슴속으로 파고든건 피카소의 대작‘게르니카’의 호소력 때문이었다.이 작품이 2차대전후에는 반파시즘운동의 상징으로,동서냉전중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되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강원도 산골의 봉평이라는 곳.그 외진 고장이 오늘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것은 可山 李孝石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 때문이다.“…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묘사하면서 가슴가슴에 서정을 깔아놓는다.지금이야 어찌가산이 살던때의 메밀꽃밭을 볼수있다 하랴.하건만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80리길’은 상기도 메밀꽃 필 무렵이면 하얀 들판일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향기높은 작품의 여운이란 그런 힘을 갖는 모양이다. 이효석하면 메밀꽃,메밀꽃하면 봉평이 떠오르는건 한국인의 자연스런 감정이다.한데 요 얼마전 이효석무덤의 이장문제가 세상에 불거져 나오면서 그 감정 위에 물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실랑이끝에 뜻을 못이룬 유족측에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요량이라 하더니 8∼9일밤 사이 감쪽같이 파주의 실향민묘지로 이장해버렸다.열여드레의 이울어가는 달이 걸려있던 밤.바람결따라 밀려온 메밀꽃내음이 이 작업을 지켜봤던 것이리라.가산의 영혼은 마치 ‘도굴’이라도 해가는듯한 이장행렬을 따라갔던 것일까. 그동안 유족측 심기를 편찮게 해온것만은 사실이다.묘역을 두번이나 옮긴 것하며 기념사업 주도권다툼 등등.비록 그렇다해도 무덤을 굳이 옮겨야만 했을까 싶어지는 마음.지하의 가산이 달빛아래 하얀 봉평메밀꽃을 즐기는듯해서 더욱 그렇다.씁쓸해진다.하지만 묘가 없다하여 평창고을에서 이효석의 문학정신까지 스러지는건 아닐게다.
  • 파시즘 怪談/서해성 소설가(굄돌)

    거의 날마다이다시피 신문기사나 광고 글귀에서 제국의 나팔소리가 들려온다.그들은 제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연호한다.시황제에서 카이사르,칭기스칸,나폴레옹,저 에굽의 람세스,하물며 히틀러,박정희,영어공용화론까지,때로 터미네이터라는 괴물은 미래의 영도자 혹은 동양적인 관점에서 좀 억지를 부리자면 미륵불의 형상까지 띠고 출몰하고 있다.인터넷은 이들 사이를 매개하는 제국의 거미줄 역할을 수행해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이들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책이나 영화제목들이다. 옆 뒤 안보고 성장으로만 치닫다 닥친 좌절을 숙주로 하여 언제부터인가 이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시쳇말로 파시즘 괴담이라고 해도 좋을 퇴행적 문화 분위기가 바야흐로 마지못해 근신하던 몸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다.다만 그 방식이 시장에 맡겨진 것일 뿐,이것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종의 딴지걸기가 시작되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비록 곳간이 비었다고는 하나 민주주의 원칙을 구구하게 지켜내는 인내를 귀찮아하는 만큼 파시즘은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피어난다는 것을,사회문화적으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전제의 유혹은 결코 멀리 않다는 뜻이다.언론 등속에서 이들에 대해 여과없이 책읽기를 권하는 일은 장마진 뒤 걸러내지 않은 물을 마시게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해 보이기만 한다. 큰물이 쓸고 지나간 구제금융의 여름 끝물, 저녁상을 물리고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끝내 다 읽지는 못할지라도 서로에게 권할만한 책목록을 한번 만들어보는 일은 어떨까.우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민주화의 노정을 이야기 삼는 것 또한 그에 버금가는 일이리라.참과 정의를 구할진대,도란도란 반짝이는 게 어디 밤하늘의 별빛뿐이랴.
  • 바그너 ‘오페라 서곡들,기타’(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7)

    ◎리하르트 바그너/서쪽으로,서북쪽으로/파시즘 선구자로 숭배 유태인 몰살의 음악/서로 흐러던 문명사조 북향시키려던 노력들/베토벤 교향곡 ‘확장’ 오페라속으로 신화화/망상의 평화 꿈꿨으나 엷기만한 희망의 흔적 1.발할라,유태인을 혐오하는 천재를 환영하다… 1883년 2월13일 베니스에서 바그너가 사망하자 신문은 그런 부고를 냈다. 발할라는 그의,4일 동안 연속 공연되는 총 16시간짜리 대작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신들의 궁전. 독일신화의 주신(主神) 보탄의 딸 발퀴레들이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전사한 영웅들을 이곳으로 데려온다. 보탄은 그들에게 날마다 주연을 베풀며 마지막 ‘악과의 전쟁’에 대비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신들이 승리할 수는 없다. 신들과 악의 세력이 모두 멸망하고 새로운 인간의 세상이 열린다. 그래서 ‘반지’ 4부의 각 제목은 전야제 격인 ‘라인의 황금’(라인의 황금을 지하세력 난장이가 탈취하면서 세상의 질서가 뒤흔들리는 ‘사건 발단’),첫째날 ‘발퀴레’, 둘째날 ‘지그프리트’(미래의 주인인 지상의 ‘인간영웅’ 이야기)에 이어 마지막날이 ‘신들의 황혼’이다. 그렇게,그런채로 발할라가 천재­바그너를 환영한다.‘유태인 혐오’는,무슨 소린가? 식인종이었던 자들을 교육시켜 사회를 주무르는 장사꾼으로 키웠다… 유태인 종족에 대해 바그너는 그렇게 극언했다. 그리고 사망 40여년후 그는 악명높은 히틀러 파시즘의 선구자로 숭배되고 그의 음악속으로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몰살한다. 2.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문명은 태양의 동쪽에서 태동,서쪽으로 그 중심지를 옮겨갔다. 뒤늦은 문명이 앞선 문명을 보다 빠른 기간에 배우고 여력을 계승­발전에 투여한다. 그렇게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이 만개하고 로마에서 위대한 건축물을 이룬다. 문명의 주역은 그후 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바뀌었다. 동에서 서로… 바그너는 독일문명의 세계 주도를 위해 그 흐름을,거대하게 북향(北向)시킨다. 그의 음악은 그래서 음악사상 가장 거대한 폭으로 흐른다. 물에서 태어나 가장 강렬한 욕망의 불길을 태우다가 다시,물의 평정으로,죽음으로회귀하려는 필생의,그리고 전 생애에 걸친 음악. 그러나 당대와 후대의 바그너 예찬자들은 그의 음악에 평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그너 자신은? 그는 소망했지만,소망을 성취할 수 없었다. 각 민족에게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것들을 선진­미개의 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요는,주류 문명에 대응하는 방식. 바흐는 ‘독일속으로’ 더 흔들리면서 더 명징한 종교음악을 세웠고,독일을 종교음악의 본산지로 세웠다. 괴테는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독일문학을 이룩했고 베토벤은 자신의 불행과 독일의 열정을 음악사적인 낭만주의로 전화시켰다. 브람스 또한 북(北)독일의 우울을 음악의 보편적 심오함으로 담금질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문적 업적을 독일적으로 종합,독일의 후진성을 혁명성으로 변혁시켰다. 바그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복원을 꿈꾸면서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 형식(사랑의 금지)과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 형식(리엔치)을 기웃댔지만 처음부터 북행(北行)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서북 쪽으로. 그 결과는무엇인가? 문명의 야만을 치유하기 위한 생체실험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으나,위대한 실패로 끝난. ‘베토벤의 교향곡 세계를 오페라 세계로 심화­확대시키자’. 바그너의 음악적 꿈은 그랬다. 베토벤이 오페라를 단 한편 남겼으므로,그리고 그렇게 그의 ‘교향곡세계’가 ‘보이는 것’의 음악적 응축이었으므로,그것은 타당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북쪽의 광포하고 웅대한 신화로 꿈의 내용을 채운다. 3.웅대한 규모는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고 ‘야만의 신화’는 신화의 성스러운 야만화를,그리고 역사관의 반동화를 초래한다. 야비한 사기,불륜 행각과 과대망상의 천재 행각이 오페라 ‘속으로’ 신화화 하고 그 신화음악이 오페라 ‘밖으로’ 나와 다시 바그너의 현실세계를 미화,영웅화하는,악순환 고리가 반복 심화된다. 예찬자들은 열광하고,그러나 바그너로서는 ‘마음의 지옥’이었던 그 악순환의 고리. 그러므로,그의 음악은 그가 그 지리한,고통의 생체실험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육(肉)의 고행으로까지 밀어부치는 대목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도대체 어디까지니이까.어디까지 음악의 육욕을,탐닉해야 하니이까.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음악의 살속’을 파고 든다. ‘끝까지’가 지리하고 심오한 반복을 낳고 ‘파고 듦’이 음악을 이제껏 가장 극단적인 반음(半音)사용으로, 사랑의 환희의,몰아의 황홀경의,그렇게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의 정황으로 치닫는다. 물의 죽음에서 물의 죽음으로… 그러나 그 과정은 아름다움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극단의 불의 경지. 그것으로 물과 불의 구분 자체가 극복되는 경지이다. 4.반프리트. 망상에서 평화로운 곳. 혹은,망상으로 평화로운 곳. 바그너는 만년의 저택을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숱한 거장들이 바그너를 ‘망상으로 평화로운 곳’으로 연주한다. 그러나,예술가는 망상에서 평화롭지 않으면 망상으로 평화로울 수 없다. 흥분은 금물. 루돌프 켐페의 음반은 한마디로 바그너 ‘반지’ 작곡 생애에 바치는 진정한 반프리트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델란드인’(1841)서곡,‘탄호이저’(1845)서곡 및 1막 일부,‘뉘른베르크의 명가수’(1867) 1막,3막 서곡 및 일부,그리고 ‘신들의 황혼’(1874) 서주­‘새벽’과 ‘지그프리트의 라인여행’등 수록곡은 켐페의 ‘독일 정통’ 연주를 통해 ‘바그너 선언’,‘정체성과 전통 발견’,그리고 ‘평정의 갈구’로 재설계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바그너의 진정한 소망의 골격을 보는 것이다.가장 중요한,이 모든 것이 종합되는 ‘지그프리트 장례행진곡’은 등장하지 않고 각 곡 도처에 흔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위대한 망상의 흔적이 (아직)아니고 상상력 풍부한 희망의 흔적이다. 바그너 사망 한달 후 마르크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어느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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