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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독재2/임지현·김용우 엮음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지난해 1권에 이어 ‘대중독재’ 2권을 도서출판 책세상에서 냈다. 알려졌다시피 임지현 교수가 주도하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포인트는 ‘억압적인 전체주의 권력vs이에 저항하는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도식화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신 ‘매혹적인 권력’과 이에 ‘유혹당하는 민중’이라는 그림을 그려낸다. 파시즘은 홀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 위에 서있었다는 것. 이를테면 박정희는 마구잡이식 깡패가 아니라 일정 정도 지지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틀에서 1권은 대중독재의 개념화 그 자체에 주력했다면 2권은 구체적으로 대중독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풀어서 설명한다. 대중독재의 작동방식은 ‘정치의 신성화’다. 신성화는 종교화·신비화·시각화의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런 방식은 사실 발터 벤야민 같은 이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벤야민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는 예술의 정치화가 문제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정치의 심미화가 문제라 했다. 사회주의는 이념과잉으로 예술을 망치는 데 반해, 자본주의는 정치에서 합리적인 그 무엇을 제거해 버린 채 상징조작으로 치달아 버린다고 비판한 것이다. ‘대중독재’2권은 바로 이 상징조작을 들춘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미 컬럼비아대 사학과 찰스 암스트롱 교수의 북한 분석. 암스트롱 교수는 가족주의 정권 북한이 최근 선군정치와 경제개혁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1930년대 일제,1970년대 박정희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북한이 어쩌면 좀 더 일반적인 종류의 군사독재로 향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이것이 북한인민에게 이로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1·2권이 나왔음에도 대중독재론이 한국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하다. 단적으로 대중독재 2권에 참가한 서양학자들은 모두 파시즘·나치즘·공산주의 등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이를테면 과거를 청산하고 정리하는 데 있어서 가해자의 입장에서 더 깊은 반성을 한다는 차원에서 연구가 이뤄진다는, 연구의 ‘방향성’과 ‘목표의식’이 돋보인다. 그런데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정작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우리가 외려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파시즘을 역사적 개념, 즉 ‘역사적 파시즘’으로 보지 않고 일반화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냐는 반론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참고로 대중독재2권에서 200여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3장 ‘한국의 대중독재 논쟁’은 그간 계간지나 전문지에 소개됐던 대중독재론을 둘러싼 반론과 재반론을 싣고 있다. 대중독재론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지는 이 논쟁을 지켜본 뒤 판단해도 될 듯하다.2만 7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도덕교과서 없는게 더 도덕적이다

    겉으로 내세운 구호·명분과 그 속사정이 달라 야유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교육이야말로 가장 비(非)도덕적이고 반(反)도덕적”이라는 비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과학적이고 법칙적인 수학과목에서도 정답보다 풀이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인데, 복잡한 인간세상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도덕과목에서만은 희한하게 오직 메말라 비틀어질 것만 같은 답안만 내놨다는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런 주장을 담은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도서출판 길 펴냄)이 눈길을 끄는 것도 ‘관점의 참신함’보다 ‘서술의 적나라함’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를 콕 찍어서 “민방위훈련장에서 가소로운 정신훈화를 늘어놓는 것”에 비유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국민들의 정훈장교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먼저 국민윤리교육과의 탄생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전두환 정권이 1981년 서울대에 설치한 뒤 여기에 도덕 교육에 대한 전권을 줬다. 왜 그랬을까. 답은 ‘도덕’에서 ‘국민윤리’로 과목이름이 바뀐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라는 뜻이나 국민윤리 교과서는 ‘이래야만 한다.’는 잔소리로만 채워져 있다. 그 때야 시절이 그랬다손 치더라도 20년이 더 지난 지금 상황이 바뀌었을까. 물론 바뀐 측면도 있다. 각 대학에 있던 국민윤리교육과의 간판은 ‘국민’을 슬쩍 떼내고 윤리교육과가 됐고, 국민윤리 과목은 도덕과목이 됐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변한 것은 없다. 중학교 도덕교과서의 절반은 예절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 예절은 오직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르라.’는 식으로 채워져 있다. 부당한 요구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거나, 여러 개의 정당한 요구나 지시 사이에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도덕이 보기에는 쉬워도 실천이 어려운 것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등학교 도덕교과서는 한 술 더 떠서 정권에 의해 위로부터 부여된 과제, 즉 새마을운동·정의사회 구현·신한국 건설·제2건국운동을 찬양한다. 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한, 좋은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솟아나는, 국가의 의무에 대한 요구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도덕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한 노예도덕과 파시즘에서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결론은 당연해보인다. 이러니 도덕이 시험 때 답만 맞히면 그뿐인, 실생활에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과목이 됐다.저자는 학생 스스로 도덕적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성찰적 교육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게 어렵다면? 도덕교과서를 없애버리는게 더 도덕적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8000원.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장하늘 지음, 다산초당 펴냄)‘문장표현사전’‘한글바로잡기’ 등 아름다운 우리말글 가꾸기에 앞장서온 저자가 간암수술의 후유증을 이겨내며 집필한 문장교본.1920년대 이후 400여편의 산문 가운데 43편의 명문을 골라 저자의 감상과 해설을 달았다.1만 2000원.●날개 달린 물고기(이인휘 지음, 삶이 보이는 창 펴냄)2년 전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는 노동자대회에서 분신자살했던 이용석씨의 삶과 죽음을 다룬 실명소설. 노동운동가 출신의 저자는 외딴 섬에서 태어나 육지의 하늘을 날아오르길 꿈꾸었던 한 소년의 희망과 좌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 상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1만원.●벽(장 폴 사르트르 지음, 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실존주의 철학가이자 작가인 사르트르가 1939년 발표한 소설집.‘구토’라는 제목으로 1983년 국내 출간됐던 것을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번역했다. 프랑코의 파시즘에 대항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고뇌를 다룬 표제작을 비롯해 중단편 5편을 실었다.1만원.●칼 같은 글쓰기(아니 에르노 지음, 최애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소설가 겸 평론가인 프레데르크 이브 자네의 대담집.‘단순한 열정’‘탐닉’‘집착’ 등으로 늘 논쟁의 중심에 서온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토대와 행보를 엿볼 수 있다.9800원.●사랑하거나 미치거나(권지예 지음, 시공사 펴냄)고흐, 로트렉, 피카소, 쉴레 등 누구보다 열정적인 생을 산 유명 화가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혹은 가장 비극적이었던 순간을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인 감성으로 빚어낸 그림소설집.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에 빛나는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가 독자들을 매혹시킨다.1만원.●흙의 살들(김규태 지음, 아침나라 펴냄)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이후 ‘현대시’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철제 장난감’‘졸고 있는 신’ 등의 시집을 발표해온 저자의 네번째 시집.‘원형에 이르는 꿈’으로 요약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7500원.
  • “식민·개발독재시대 발전이 진정한 발전인가”

    “독일에서 파시즘 찬양은 처벌받는데, 한국에서 박정희 찬양은 활개친다.” ‘청와대’ 꼬리표를 떼서일까.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박정희 향수’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26일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위한 3대 논쟁’ 토론회에서였다. 이 교수는 미국의 경제사학자 윌리엄 포겔과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을 소개하는 것으로 ‘박정희’ 평가에 대해 운을 뗐다. 포겔은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 남북전쟁 이전 남부 흑인노예들이 북부 노동자 못지않게 잘 살았다는 식의 연구결과를 내놔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학자.‘식민지시대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주장하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금기에 도전한 과학적 실증주의자의 표본으로 자주 언급하는 학자다. 그러나 이정우 교수는 아마르티아 센의 반박을 제시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통해 자유의 신장에 기여하는 발전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주장했다.이 교수는 “센이 제시한 5가지 자유 가운데 첫번째가 바로 정치적 자유”라면서 “노예가 제아무리 밥 잘 먹고 오래 살았다고 해도 노예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교수는 “30년대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박정희를 긍정한다.”면서 “그러나 식민시기·개발독재시기의 발전이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이 교수는 74년 2차 인혁당 사건 당시 반대운동을 펼치다 강제출국당한 조지 오글 목사의 증언과 노벨평화상 수상단체 아메리카프렌즈봉사단(AFSC)이 실시한 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비참한 생활을 언급했다. 동시에 독재와 성장 사이에는 선택적 친화성이 있다는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과 같은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뉴욕대 애덤 쉐보르스키 교수, 하버드대 데니 로드릭 교수 등이 경제와 민주주의간의 관계에 대해 최근 내놓은 국제비교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런 논의 끝에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정희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놓고 “도대체 다른 나라에서도 민족반역, 동지 배신, 독재, 부도덕으로 점철된 인생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버나드 쇼 이래 英최고 극작가”…전문가가 본 핀터

    해럴드 핀터는 톰 스토파드, 앨런 액본과 함께 영국의 가장 뛰어난 현존 극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세계 극문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사실주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핀터의 작품은 부조리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는 핀터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부터 파시즘의 위협을 피해 늘 도피해야 하는 불안한 생활을 했고, 눈앞에서 자행되는 살상과 폭행의 상황에 직접 노출되면서 인간 실존의 위기와 부조리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버나드 쇼 이래 영국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핀터의 극 작품은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감과 소외된 삶을 다루는 부조리극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지만 부조리극의 수법을 사용하여 관객들을 당황하고 난해하게 한다. 이러한 난해성은 극중 인물들의 언어와 모호한 행동으로 구체화되는데 그들은 성격이 명확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쉽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뿐 아니라 일관성이 결여되고 진실을 떠난 언어로 극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와 행동으로 그들 사이에 진정한 의사소통은 항상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된다. 이러한 부조리성에 핀터는 하나의 장치를 덧붙이고 있다. 바로 권력의 문제이다. 앞서 핀터의 극에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은 불확실한 대화와 행동과 성격으로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은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는 이유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갈등은 권력다툼에서부터 성의 우위를 점하려는 남녀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김선욱(연극평론가)
  •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나치즘 운동에 목숨을 바친 호르스트 베셀. 마오쩌둥 시대의 ‘붉은 전사’ 레이펑. 스탈린 시대의 스타하노프.‘영원한 천리마’ 길확실.‘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눈밝은 이들은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파시즘 체제에 각광받은 ‘영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처럼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영웅’이 아니라, 대중적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영웅, 즉 ‘대중영웅’이었다. 노동영웅, 천리마영웅, 소년영웅, 반공영웅 등등. 이들 다양한 대중영웅들은 언제 왜 등장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파시즘 체제에서 ‘영웅’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꼼꼼히 파헤친 책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가 기획했다. 책에 따르면 대중이 본격적으로 영웅숭배의 대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가족을 떠나 참호에서 몇 년 동안 최악의 순간들을 경험해야 하는 병사들을 묶어두고, 남자없는 후방에서 여성들이 무기공장에서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민족심과 애국심이 무한대로 강조되었고, 권력은 이들의 희생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했다. 저자는 대중영웅에서 권력의 필요 못지않게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대중의 욕망을 읽어낸다. 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이념의 순교자로 만들어진 소년영웅 파블릭 모로조프 기념관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서방 언론 취재에 응하면서 한 발언이 시사적이다. ‘그는 영웅이 아닌 단지 자그마한 어린애였을지 모르죠. 그러나 그 시대 우리는 영웅이 필요했어요.’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벤야민의 ‘미완성 프로젝트’ 마무리

    벤야민의 ‘미완성 프로젝트’ 마무리

    발터 벤야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하는 ‘아우라’ 예술이론을 만들어낸 문예비평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벤야민을 비평가보다 일급 문화사학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벤야민이 생전에 제대로 된 저작물은 남기지 못한 데서 온다. 문화작품 등에 대한 단편적인 글만 남아 있다 보니 ‘비평가’로서만 비춰졌던 것. 그러나 벤야민의 진면목은 문화를 보는 시선을 넘어, 그 시선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역사에 대한 통찰을 남겼다는 데 있다. 그 기획이 바로 ‘파사젠 베르크(Passagen Werk)’. 파사젠은 회랑을 뜻하는 불어 파사주에서 온 단어다. 영어로는 ‘아케이드’다. 그러나 벤야민은 끝내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유태계 독일인에게 2차대전은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고 그는 독일을 탈출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남긴 것은 프로젝트의 완성을 꿈꾸며 남긴 메모 뭉치들뿐이었다. ●아케이드와 쇼윈도-‘몽타주’로써의 역사 1층에는 화장실이 없다, 창문이나 시계를 달아놓지 않는다, 카트 바퀴가 너무 잘 굴러가서는 안 된다 등등.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들이 매상을 올리기 위해 짜낸 갖가지 묘안들에 대해 듣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자본주의는 저 산 너머 대형공장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발밑에 깔려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벤야민은 자본주의의 원형을 19세기 중엽 프랑스 파리의 파사주에서 찾았다. 벤야민이 살던 20세기 초만 해도 이미 파사주는 백화점에 밀려 한 물 간 곳. 그럼에도 둥근 유리천장 아래 복도를 거닐며 양 옆에 늘어선 가게들에 진열된 상품을 쇼윈도를 통해 두루두루 둘러볼 수 있었던 파사주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원체험, 그 자체였다고 봤다. 그래서 상품과 유흥과 요리와 매춘부 등이 넘쳐나는 파사주의 전성기,19세기 중엽의 파사주가 남긴 기억의 편린들을 집요하게 모은다. 그런데 완성된 원고가 아니라 메모의 모음이다보니 내용이 굉장히 파편적이다. 이런 저런 얘기가 단락별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얘기들과 인용문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영화에서 말하는 일종의 ‘몽타주 기법’이다. 내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서 말하게 한다. ●과거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역사 몽타주 기법은 벤야민을 문화사가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자본주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쇼 윈도에 전시된 제각각의 상품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미지 그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라는 것. 어떤 목적이나 계획으로 역사를 설정하고 설명하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늘어놓고, 있는 그대로를 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역사를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구분했기에 이런 접근을 했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와 받아들여지고 이해하는 역사. 벤야민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받아들여지고 이해하는 역사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그것은 인과관계로 묶은 사건의 나열이나 흐름을 풀어헤친 뒤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수법이었다. 어찌보면 ‘진보’의 역사관으로 너무나도 충실했던 파시즘 시대에, 벤야민 같은 이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저항방법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부활하는 벤야민 벤야민은 그동안 다른 학자들에 비해 가려져 있었다. 파사젠 베르크는 1980년대 들어서야 출간됐다. 그러나 이런 파편적이되 정밀한 서술 때문에 외려 문화사의 한 표준으로 올라설 수 있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문학동네에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선보였다.‘파사젠 베르크’를 프랑크푸르트학파 연구자인 미 코넬대 수전 모스 교수가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해서 풀어냈다. 이로서 벤야민에 다가갈 수 있는 한 다리가 놓여진 것이다. 원본 그대로를 번역해 놓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벤야민’(새물결 펴냄)의 출간은 이런 디딤돌 덕분이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소설 ‘반도에서 나가라’ 저자 무라카미 류 이메일 인터뷰

    북한의 특수부대가 일본에 침투, 인구 100만의 도시를 전격 점령한다. 그러나 점령은 잠시, 일본의 부랑 청년들이 이들을 격퇴한다. 언뜻 황당무계해 보이는 가상소설 ‘반도에서 나가라’가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독자층이 넓고 최근 두차례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 ‘도쿄 데카당스’를 연출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최신작이다. 일본 출장 중이던 기자는 그를 만나보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그는 콘서트의 연출을 위해 쿠바에 가 있었다.“이메일 인터뷰는 어떻겠느냐.”는 출판사 제안에 아쉽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더니 며칠전 그로부터 회답이 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북핵문제, 냉각된 한·일관계 속에서 그가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 그 궁금증에서 이 인터뷰는 마련됐다. 이 소설을 쓴 계기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으나, 어쨌건 여러 의미에서 필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구상했나. -90년대 중반부터다. 지금 북한 핵이 동북아시아에서 큰 문제가 돼있지만, 소설을 쓸 때부터 그런 예감은 있었나.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는 소설 구상 때부터 예감이라기보다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었다. 소설은 일본 경제가 파탄나고,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 일본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는가. -일본 경제는 반석 위에 있지 않다. 국가재정은 더욱 취약하고 위기적인 상황이다. 북한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의 반란군을 소재로 한 이유라면. -반(反)김정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 단 그것은 아마도 강경파 장군에 의한 것이지 민주적인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반란군을 소재로 삼은 것은 정규군이라고 하면 단순한 국가간의 전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반란군이 일본에 침입한다면 일본, 나아가서 미국이 반드시 대응을 하겠지만, 이런 과격한 소설을 구상한 것은 왜인가.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때 그때 미·일 관계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난 지금 미·일 관계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존경심이 없다. 한국에서 이 소설이 번역 출판된다면 한국 독자로부터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반발은 일본에서도 있었다. 어떤 소설이라도 반발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반발의 내용에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반란군으로 나오는 인물이나 북한의 습관 등을 읽으면 상당히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어느 정도 준비를 했는가. -기간으로 치면 2년이다. ▶서울에서 탈북자를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어떤 탈북자에게서 들었는가. -그분들과의 약속 때문에 그것은 비밀이다. 반란군(고려군)을 물리치는 것이 일본 정부도, 영웅적인 인물도 아닌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젊은이들이다. 그들을 고려군에게 대항시킨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소설의)테마 그 자체와 비슷한 것이라 한마디로 얘기할 수 없다. 그런 뜻은 모두 소설에 담겨져 있으므로 독자들이 각자 느끼면 될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놓여있는 상황은. -한마디로 얘기할 순 없지만, 한가지를 들자면,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경제력이라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일본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것으로 묘사돼 있는데, 지금의 미·일 관계를 보면 일본은 완전히 미국 추종형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지금의 미·일은 진정한 신뢰가 아니라 ‘추종하는 것’으로 묶여져 있어서 그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간단하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핵·납치문제 등으로 암초에 부딪쳐 있는 상황이다. 양국이 수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국교정상화 보다 납치문제의 해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이 ‘미적지근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미적지근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고도성장을 달성한 뒤부터다. 정치인, 그리고 일부 매스미디어를 한심한 모습으로 등장시키고 있지만 현실도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대북 문제에 관한 일본 언론의 보도자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심한 게 아니라 국제적 위기에 익숙해 있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언론은 ‘현재(現在)’를 정확히 전달할 패러다임을 갖고 있지 않다. 소설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불과 6년 뒤의 일이다. 굳이 북한 반란군의 일본 점거라는 설정이 아니더라도 그런 위기가 가까운 미래 일본에 찾아 올 것으로 보는가. -신(神)이 아니고서는 그건 누구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10년 후의 일본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가. 또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년 후의 일본은 일본인의 행동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일본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외국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는 것 이외에는 달리 없다고 본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반도에서 나가라’ 무슨 내용 때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6년 뒤의 2011년. 달러의 폭락, 패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團塊·단카이 세대)에 줘야 할 퇴직금의 지급 불능 사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일본의 지방채·국채가 대폭락하게 된다. 일본 국민의 예금이 동결되고, 소비세는 17.5%로 껑충 뛰어오른다. 재정은 파탄에 빠져들어가고, 일본의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해 가는 정세 속에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작전명 ‘반도에서 나가라’이다. 그해 4월, 반란군을 가장한 북한 특수부대가 일본에 침투한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 9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는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규슈 후쿠오카 돔을 무력점거하고 3만명의 관중을 인질로 삼는다.484명의 후속부대가 특별수송기에 실려 들어오고, 후쿠오카시는 이들에게 접수된다. 점령군으로서 이들은 시의 정치·경제·사회를 장악하고 통치를 시작한다. 북한이 이들을 정규군이 아닌 반란군으로 가장시킨 것은 작전의 성패에 관계없이 국제사회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이었다. 작전의 목적은 초강대국 중국과 미국 사이의 동북아 완충지대를 한반도에서 일본의 규슈로 옮기겠다는 데 있었다. 고려군(高麗軍)으로 자칭하는 이들은 후쿠오카시에서 가혹한 통치를 펼친다. 미국조차 등을 돌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본 정부는 인명을 중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후쿠오카를 봉쇄한다. 사실상 후쿠오카를 버린 셈이다. 그렇지만 고려군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친다. 이른바 사회의 틀에서 튕겨져 나간, 사회 부적응 청년들이 항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독충사육·사제폭탄·군사 마니아와 같은 상식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대항 테러를 개시하고, 고려군을 열도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저자의 의도는 이 소설은 나종일 주일대사가 “대사관 직원들에게 일독을 권했다.”고 할 만큼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라는 설정을 통해 일본 사회를 다중적인 시각에서 진단한 일종의 정치소설이기도 하다.29년에 걸친 작품생활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상·설정이 대담하고, 작년 서울에서 탈북자 10여명을 만나 취재하는 등 치밀한 조사에 바탕을 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이다. 그러나 북한 특수부대의 일본 침투→가혹한 점령통치→궤멸이라는 상황설정 때문에 우리에게는 께름칙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읽기에 따라서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 속에서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는 일본이 가까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를 인식하고 대오각성, 대단결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적 메시지가 소설의 이면에 숨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두꺼운 독자층을 자랑하는 무라카미 류이지만 주변국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점, 악화된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이 소설의 번역본을 곧 우리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책을 펴낸 일본의 겐토샤(幻冬舍)측은 “현재 몇몇 한국 출판사가 교섭을 하고 있으나 아직 출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출간된 이 소설은 원고지 1650장 분량. 핵위협, 일본인 납치문제로 ‘최대의 적’이 돼버린 북한을 소재로 한 점,“무라카미가 썼다.”는 입소문에 힘입어 상권 29만부, 하권 21만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어있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무라카미 류는 누구 ▲1952년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 출생, 본명 무라카미 류노스케 ▲무사시노 미술대학 중퇴 ▲대학 재학중인 76년 첫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군조(群像)문학상,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 ▲저서로는 ‘코인로커 베이비즈’‘사랑과 환상의 파시즘’,‘토파즈’,‘5분후의 세계’ 등이 있다.
  • [클릭이슈] 대학가 日극우단체 자금 유입 공방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년 오사카생.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2살 때 물려받은 유산으로 우익단체 ‘국방사’ 결성.1931년 국수대중당 총재에 선출된 뒤에는 당원들에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제복을 입혔을 정도로 파시즘을 추종. 만주 항일유격대 소탕과 가미카제 특공대 창설에 깊숙이 관여. 패전 뒤에는 도쿄재판에 회부돼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지만 투옥 3년 만인 1948년, 감옥에서 나와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 1951년부터 경정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사카와는 ‘도박재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선사업과 함께 사사카와 재단(95년 사망후 일본재단으로 개명)을 설립한다. 그는 1970년 150t짜리 병원선 1척을 한국에 기증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한국나병연구원 건립자금으로 1억 2000만엔(당시 2억원)을 전달한다. ●일본재단의 돈을 둘러싼 해석 두고 치열한 공방 이런 사연을 갖고 있는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흘러들었다는 사실이 최근 부각되면서 해당 대학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공익법인이긴 해도 전범과 관련된 재단의 돈을 학문 연구에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과 사사카와 개인이 아닌 공익법인으로부터 받은 돈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쓴다면 문제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5년. 연세대는 당시 재단의 기금을 출연받아 학교법인 아래에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뒀다. 같은해 12월4일 알렌관에서는 ‘한·일협력 연구기금 전달 조인식’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었다. 당시 일본재단의 기금을 끌어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송자 연세대 전 총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사카와의 셋째아들로 일본재단의 이사장인 사사카와 요오헤이는 이날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며 “일제의 박해에 쓰러진 그의 학문과 정신을 이 기금을 통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한·일협력 연구기금’ 10억엔(당시 환율기준 75억원)이 일본재단의 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연세대는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는다.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는 전범의 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연세대는 결국 1996년 6월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독립적인 재단법인 ‘아시아 연구기금’으로 탈바꿈시킨다. 일본재단의 돈과 외부 지원을 합해 총 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아시아 연구기금은 여기서 나오는 이자 수입 등으로 해마다 3억∼8억원 정도를 교수들에게 연구비로 지급해 왔다. ●일본재단, 연구비 지원 제안 잇따라 연세대에 일본재단의 자금이 유입되기 훨씬 전인 1988년 고려대에도 이 재단의 자금으로 장학금이 조성됐다. 사사카와 생전에 장학금을 유치한 고려대는 그의 이름을 따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라는 장학금을 설치하고 1억 2950만엔을 받았다. 이 기금의 이자는 2003년까지도 고려대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됐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 일본재단이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에게 전화를 일일이 걸어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실제 일부 교수가 그 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재단의 기금은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 한 사람의 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 교수는 “일본재단은 경정사업을 하는 하나의 공익법인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로또나 마사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아시아연구기금은 동아시아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연구를 하는 데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교수협의회 대표 최종철 교수(영문과)는 모든 기금에는 돈을 주는 단체의 의도가 있다고 반박한다. 일본재단의 핵심 운영진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구성원들로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재단의 자금을 받은 단체와 대학들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기금을 모두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효연 김준석기자 belle@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여러분이 가는 길은 매우 힘들고 불편하고 비싼 길이 될 것이며, 여러분의 다리는 매우 아플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삶 자체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 통일의 과정을 축약한 대표적인 독일의 저항 시인 볼프 비어만(69). 그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사흘째인 25일 기자회견에 앞서, 기타를 치며 한국의 저항 시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불러 보였다. 그리고는 특유의 신랄한 어투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동·서독의 경우 보다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처럼 모두 손 잡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단된 옛 독일에서 험난한 인생역정을 경험했는데, 어떤 이유로 서독을 등지고 동독으로 가게 됐는가. -아버지는 파시즘에 대항해 지하운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만 남기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나를 ‘작은 공산당원’으로 키웠고,16살때 동독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국경에서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들어오고 있어 상당히 놀랐다. 동독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이유로 서독으로 추방당했나. -훔볼트 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수학을 공부했다. 베를린 앙상블이라는 악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비판적인 내용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극단은 폐쇄됐고, 대신 체제에 대항하는 시와 노래를 쓰게 됐다. 그 시와 노래들이 수기와 녹음기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결국 서독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동독에서의 대표적인 저항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아침 이슬’에 비견되는 노래로 제목은 ‘격려’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첫번째 두 소절인 ‘이 모진 시대에 그대, 굳어지지 말라’라는 ‘언어유희’에 공감을 느꼈다. 시대적인 ‘경직성’을 언급하기 위한 노래였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많은 양심수의 영혼을 채워주는 ‘빵’같은 역할을 했다. 통일을 열망하는 한국의 국민들과 작가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면. -충고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다른 민족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은 전혀 없다. 한국은 한국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서로 싸우고, 통일을 외치던 사람을 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경고 받은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진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내 경고를 듣고 한국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지기를 바란다. 1935년 옛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첫 시집 ‘철사줄 하프’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내면서 동독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고,1976년 서독으로 추방당하면서 반체제 작가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2년 전부터 김민기와 인연을 맺어 왔으며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시·노래 콘서트 무대를 마련한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신부와 편견(KBS2 오후 10시5분) 제인 오스틴 원작 ‘오만과 편견’을 인도의 발리우드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편견을 뚫고 축구를 배우는 인도계 소녀의 성장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국의 거린더 차다 감독이 고전적인 로맨스로 돌아왔다.2004년작. 인도 암릿차르의 박시가에는 아름답고 총명하기로 소문난 네 딸이 있다. 박시가의 어머니에게는 결혼 적령기를 맞은 두 딸 찬드라와 라리타(아이슈와리아 라이)를 결혼시키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 마침 부유한 독신남 발라지와 달시(마틴 핸더슨)가 나타나면서 이들을 사위로 맞이할 궁리를 한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 발라지와 찬드라와는 달리, 조건이 아닌 오직 사랑으로만 결혼하겠다는 라리타는 부유하지만 오만한 미국인 달시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영화가 원작과 달라진 것은 공간 배경이 영국에서 인도로 옮겨졌으며, 남자주인공이 영국인 사업가가 아니라 호텔 재벌인 미국인이라는 점 정도. 줄거리가 200여년 전 소설인 원작과 유사한 까닭에 새로울 건 없지만, 발리우드 특유의 역동성은 잘 살려냈다. 영국 개봉 당시 8주간 10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린 바 있다. 극장 개봉과 TV 상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KBS 프리미어’의 첫 작품으로, 이 작품의 극장 상영은 단성사에서 8일까지 진행된다.110분. ●의식(EBS 오후 11시45분) 내성적인 성격의 소피(상드린 보네르)는 상류층인 릴리브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가정부다. 무능력한 부부와 버릇없는 두 아이를 위해 매일 ‘의식’을 치르듯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소피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소피는 세상 물정에 밝은 우체국 직원 잔(이자벨 위페르)과 친구가 된다. 잔이 자신의 우편물을 훔쳐 본다고 의심해 오던 릴리브르는, 소피에게 잔이 살인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서로의 불신이 쌓여갈 무렵 소피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이 부르주아 가족으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아온 소피와 잔의 분노가 폭발한다. 부르주아의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결국은 계급체계를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파시즘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프랑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1995년 작품. 영국 작가 루스 렌델의 원작 소설 ‘스톤가의 심판’을 각색했다. 두 여주인공은 이례적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11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이승만의 이상한 ‘반공과 반일’

    이승만의 이상한 ‘반공과 반일’

    반공과 반일의 이상하게 얽힌 관계를 드러내는 두가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이 문제되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찢고 불태우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묘한 것은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해 인공기를 불태우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역사교과서 왜곡을 분석한 시민단체는 ‘일본 우익이 반공을 강조해서 한국 우익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어찌보면 앞뒤가 잘 안 맞는 반공과 반일의 희한한 동거의 원형은 이승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때에 한국 현대사 연구에 천착해온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가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를 통해 이승만의 머리 속을 낱낱이 해부했다. 서 교수는 이승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 자체가 빈약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정통성과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편싸움의 소재로만 이용됐기 때문이다. 물론 해방 이후 50년대까지의 정국이 워낙 역동적이어서 이승만을 ‘주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 때문에 서 교수는 이승만의 ‘일민(一民)주의’ 사상을 집중 분석했다. 일민주의를 통해 반공주의와 반일운동을 어떻게 결합했는지 추적했다.‘하나의 백성’이라는 일민주의와 파시즘의 유사성문제, 반공주의를 내걸면서 자유당 내에 우익 민족주의자들을 청산한 뒤 다시 반일운동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 교수는 ‘반공·반일’ 외에 ‘유교적 심성’ 문제까지 거론해 이승만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시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식민지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 우익성향의 잡지에 “일제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논지의 글을 기고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 언론, 시민단체가 그의 주장을 맹공하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그의 ‘식민지 미화론’은 소위 일본발 ‘망언’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표현과 논리도 거칠다. 각계의 대응도 거칠고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논란에 끼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파문이 일어난 뒤 오히려 “공론화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반응에서 보아 사회와 학계에 끼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 한마디 거들기로 한다. 식민지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여론의 질타와는 달리 한 교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의 의미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발판을 붕괴시키고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을 무력화해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학자다운 판단이지만 동시에 그가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서 있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구집권을 꾀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론’으로 분식(粉飾)한 그에게, 노무현 정권의 탄생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극단적 수구냉전 사상에 젖어 있는 그는 노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좌파적·친북적인 것으로 보고, 일련의 민주개혁 입법을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처럼 그의 주장은 노무현 정권과 정책에 대한 증오감에서 기인한다. 노정권을 공격하고 박정희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연장선상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의한 근대화 찬양, 러시아가 아닌 일본에 의한 병합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된 역사의식은 일본 극우 인사들에게서 자주 나오고,‘수탈을 위한 개발론’이라는 학술적 주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국사회의 이른바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이 일제치하에서 항일 독립운동보다도 크거나 작게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친일행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옹호, 자랑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그의 경험적 인식은 아니겠지만 그가 옹호하는 집단을 대변한 효과는 충분하다. 민족을 억압하고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기득권층으로서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기득권층의 경제력 독점에 의해 심각해진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독점했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야 최소한 박정희 개발독재의 경제적 효과만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와 사회를 보는 관점이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관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옳은지 그른지는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교수의 역사관과 세계관은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관점은 분명 아니다. 반공과 반북만이 모든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오늘의 상황을 자신이 자주 언급하는 국제정세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오직 냉전시대의 맹목적 반공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반공을 위해서는 민족의 희생도 감수한다. 나는 이번 파문을 보면서 그가 객관성·학문성을 들먹이면서도 주장 전체가 들뜬 적대적 감정에 충만해 있는 점이나, 그의 주장이 소위 망언의 종합판 같은 성격을 지닌 점보다도, 한국의 명망 있는 전문지식인이 친일행위 옹호의 금기를 과감하게 깼다는 점에 걱정이 앞선다. 사실 최근 학계에서는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신학설인 양 주목받아 왔다. 식민지 경험 내지 파시즘을 근대화의 길로 인정하는 근대화론의 해묵은 이론을 가지고 일제 식민지의 경제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발뺌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한 교수의 식민지 미화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 어떠한 모습일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술적 형식을 띤 보다 충격적인 식민지 미화론의 출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학계 일부 ‘脫 민족주의 수용론’ 눈길

    학계 일부 ‘脫 민족주의 수용론’ 눈길

    최근 학계 논란의 중심에는 탈민족주의가 있다. 이 논란은 단지 학문적 논쟁에만 그치지 않는다. 논리의 순수성과는 별도로 ‘현재 정치’에 접속되면 보수주의와 뚜렷한 친화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핵심은 DJ정부 이래 집권한 ‘민족주의 좌파’에 대한 위기감과 반감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크게 다루는 자칭 ‘민족지’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논의 역시 비중있게 다루는 어색한 풍경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에서 다시 한양대 임지현 교수를 비판했다. 지난해 여름호부터 이어지고 있는 논쟁의 연장선상이다. 조 교수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임 교수가 박정희체제의 특수성을 외면한다는 데 있다. 서구의 몇몇 파시즘을 일반화한 뒤 박정희체제를 끼워맞추는 것은 ‘지적 종속’의 한 형태다. 이는 임 교수가 좁은 맥락의 비슷한 점에 집착,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부시-빈라덴’은 적대적 공범관계다. 하지만 ‘제국적 질서와 권력구조’를 놓치면 일면적인 해석에 그친다. 임 교수의 논지라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와 일본제국주의는 똑같다.‘반근대적 성격’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과거청산문제도 비슷하다. 나치재판을 마무리한 뒤 ‘몇몇 전범만 처벌해 독일 국민은 면죄부를 얻은 게 아니냐.’는 독일의 경험에서 뒤의 것만 임 교수가 따오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 제도적 과거청산마저 안 된 우리 상황은 지워져 있다. 조 교수가 “현재의 과거청산이 실패한다면 (임 교수 주장은)학문적 연구로 끝나버린다.”고 비판하는 까닭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각주를 통해 박정희체제의 헤게모니를 과도하게 강조했다고 시인하는 등 임 교수의 논의가 지나친 좌파적 해석에 대한 ‘해독제’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한·중·일 3국의 근대사인식비교’ 학술대회에서도 최근 다시 일기 시작한 식민지근대화론 주장 가운데 일부분이 수용될 조짐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신주백 책임연구원은 한국 역사교과서의 일제시대 서술이 지나치게 ‘한국수탈론’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지주제 발달 등 한국의 대응이 빠진 데다 한국의 수탈만 있을 뿐 타이완과 만주의 사례는 없다. 도쿄대 마쓰모토 다케노리 교수 역시 식민시대 서술에서 수탈론 외의 서술은 찾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근대성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기존 역사연구에 대해 실증적 연구없이 ‘일제=악’이라는 도덕론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비춰볼 때 일제시대 중국의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중국 사회과학원 롱웨이무 부주간의 발표도 눈길을 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모던타임스

    [영화속 수능잡기] 모던타임스

    이것저것 시키고 간섭하니 아이는 울화가 치민다. 아이는 엄마에게 대든다. 나 간섭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도 이에 질세라 대꾸한다. 그래, 어디 네가 알아서 혼자 잘 해봐. 아이는 무엇을 할지 막연하다. 시간은 남아 돌아가는데 무엇을 해야 하나. 남들은 학원도 다니고 태권도 도장에도 다니는데 나는 이렇게 놀아도 되나. 자꾸 불안해진다. 자유가 없었을 때는 불안하지 않았는데 자유가 생기니 불안한 것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다시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다시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말 잘 들을 게요.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물론 구속이 나쁘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자유는 엄청난 불안을 야기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자,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자에게 자유는 곧 불안이다.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스스로의 현명한 판단력이다. 아무리 몸집이 크고 힘과 담력이 세더라도 판단의 힘이 없으면 누구나 불안한 것이다. 영화 ‘모던타임스’, 컨베이어 벨트에서 단순 작업을 하던 찰리는 신경쇠약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을 빠져나와 얼떨결에 시위 주동자로 몰린 찰리는 감옥에 가지만, 탈옥수를 막는 공로로 부족할 것 없는 감옥 생활을 보낸다. 모범수로 석방된 찰리는 각박한 현실보다 감옥소 생활이 더 낫다고 생각해 일부러 사과를 훔치려 한다. 감옥은 자유가 없는 구속의 공간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동물처럼 생활하겠다고 생각하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감옥만큼 편한 공간도 없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겠다, 내 스스로 먹이를 구하겠다, 내 스스로 나의 앞날을 결정하고 판단하겠다고 결의하는 순간 우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자유가 불안이라면 인간은 자유를 반납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자 이 자유를 누구에게 반납할까. 많은 사람들은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에 자신의 자유를 반납한다. 무한한 권능을 소유한 신의 말씀에 따름으로써 신의 보호를 받고, 사후의 세계에도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은 그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어떤 이는 권력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기도 한다. 히틀러와 같은 권력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그는 마음의 평온을 누리기도 한다.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스스로 자유를 행사할 수 없는 자들 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자유(自由)는 말 그대로 ‘스스로(自)’에게서 ‘말미암음(由)’이다. 나의 판단과 행동이 내 스스로에게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어떤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력에 의존함이다. 우리가 사색하고 반성하고 부단히 공부하는 것은 바로 자율적인 판단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나의 자유를 어떤 권력자에게도 양보하지 않기 위함이다.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 폴레트 고다르, 헨리 버그만 출연.1936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 지음

    2005년 을유년은 한민족에게 오욕과 환희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해다. 정확히 1세기 전인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본격화됐고,60년 전, 바로 전 을유년이었던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참혹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십년 만에 거대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경제강국이란 지위에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역사적 죄악을 희석하는 망언을 툭툭 던지며 주변국들에 파시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듯한 일본 파시즘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본 군부의 광기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졌을까.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 군국주의 태동 3·1절을 앞두고 일제 침탈과 파시즘, 을사조약, 친일문제 등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중 침략전쟁의 뿌리인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과 파시즘의 형성과정, 일본군 특유의 정신문화와 병리적 군사문화 등을 분석한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흥망사’(이창위 지음, 궁리 펴냄)를 중심으로 신구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1974년 일본 국민과 언론은 오노다 희로라는 육군 소위의 귀환에 열광했다. 그는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4년부터 30년간 필리핀 루손섬 정글에서 일본의 패망을 부인하며 유격전을 계속해온 인물이었다. 죽지 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 하나만을 믿고 산속에서 30년을 버틴 그의 눈동자는 광채가 번득였고, 총검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를 찾으려는 일본인들, 심지어는 가족의 모습까지 먼 발치에서 보았던 그는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았고, 결국 30년 전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직접 투항명령서를 전달받고서야 1974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무 완수를 위한 30년 전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뿐,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도리어 일본전쟁이 모두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듬해 브라질로 이주했다. ●진주만기습·가미카제등 상세히 소개 오노다 소위는 극단으로 치달았던 일본 군국주의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은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을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찾는다. 그 이전에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고는 있었지만, 러일전쟁 승리 후 지나친 자신감과 착각에 빠졌으며, 그후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조선병합,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통하여 군부 파쇼체제를 확립하고 대미 개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는 광신적 군부가 이끌고 우중이 지지한 일본을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주요 국면인 진주만 기습,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가미카제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자결을 앞둔 일본군 장교들은 일왕에 대한 충성과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비장함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국력의 확연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무모한 항전 뒤엔 군인의 정신자세와 행동규범을 규정한 ‘군인칙유’‘전진훈’이 있었다. 특히 일왕이 발한 군인칙유(軍人勅諭)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명분 하에, 태평양 전쟁 도발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가 공포한 전진훈(戰陳訓)은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아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전진훈은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 최고의 명예라고 강조함으로써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시켰고, 특히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제2장 제8조)는 조항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헛되이 죽어갔다. 생명을 경시하는 무모한 전술과 자결 각오 뒤엔 전진훈에서 강조한 도착적 군사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전진훈’ 통해 전체주의 사고 주입시켜 지은이는 책 말미에서 패전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치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현재의 일본은 패망한 일본의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이라고 본다. 그 밑그림이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다시 복원돼 서글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지은이는 소망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작년 한해 일본에서는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덕택에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한·일 관계의 오래된 비유는 이제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이며 ‘한·일 우정의 해’다. 문화·예술·관광·스포츠 등 다채로운 분야의 한·일교류 행사가 1년 내내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경제·외교 면에서의 협력 또한 순조롭다. 이미 김포와 하네다 간의 도심 직항편도 생겼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 중이며 입국비자 문제도 순탄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국교수립 40년 만에 한·일 관계는 신기원(新紀元)을 맞고 있는가? 그러나 2005년은 한·일관계를 축제와 친선의 무드로만 보내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해다. 이상하게도 한·일국교수립 40주년만 강조되고 있지만, 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시해서 기념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우선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며,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사적으로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포츠머스조약 100주년이며, 청·일전쟁의 승전을 마무리한 시모노세키조약 110주년이면서, 동시에 국제연합 창설 60주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세기에 있었던 전쟁의 상처를 되새기고 평화의 가치를 음미하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줄을 이을 전망이다. 우선 유엔총회는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올해 5월8일과 9일을 ‘기억과 화해의 시간’으로 지정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러시아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행사는 같은 5월 러시아 국내에서 열리는 ‘반 나치스독일 승리 60주년 기념식’과 함께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러시아의 역할이 강조될 전망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蘆溝橋)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리모델링하고 국제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1월21일자 북경일보에 따르면 “항일전쟁의 위대한 과정을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일본군국주의에 의한 인민학살, 식민통치 등의 범죄를 뿌리째 폭로함으로써 지난 전쟁에서 행한 중국의 중요한 역할과 큰 희생을 충분히 알리기”위해서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과시하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광복 60주년, 국권찬탈 100주년이라는 귀중한 역사자원을 ‘한·일 우정의 해’로 소비하고 국내용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낭비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선조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잔악한 식민 지배 하에서 가혹한 억압을 감내하면서 반인류적 침략세력에 끝까지 저항했다. 이는 민족의 긍지라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정신적 자산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올해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반파시즘을 대표하는 진영의 핵심적인 일원임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우정’에 잠시 취해있는 동안에도 일본은 할 일 다 하고 할 말도 다 하고 있다.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는 소위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위한 조례안이 제출되었다. 또 23일에는 주한일본대사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든 독도문제를 쟁점화하여 외교현안으로 끄집어내려는 의도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외교적으로는 정답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우정’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허튼 수작을 거는 그 씀씀이가 고약하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허튼 장난을 길게 끌면 ‘한·일 우정의 해’도 재고해볼 일이다. 올해는 2005년. 명성황후가 시해 된 지 1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신문방송학
  • [길섶에서] 정신질환 척도/심재억 문화부 차장

    정신과적 문제가 많은 사회일수록 풍족하고 안정된 사회라고 전제하고, 정신질환의 유형과 발병도로 한 사회의 완성도를 재는 방식을 ‘정신질환 척도’라고 한다. 실제로 빈곤이나 재난, 전쟁을 겪는 나라에서는 정신질환의 요인이 훨씬 많지만 정신질환을 쉽사리 문제시하지 않는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라고 다를까. 먹고 살기 어려웠던 지난날, 요새 말하는 ‘스트레스’나 ‘히스테리’는 문제도 아니었다. 이와 관련,“한 나라 국민 전체의 신경을 안정시키고, 유지하려면 본질적인 불행이나 불안, 실제적 공포가 필요하다.”고 한 프랑스 작가 에밀 시오랑의 성찰은 시사적이다. 다소 파시즘적 해석이지만 ‘정신질환 척도’의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의사들은 “많이 나아졌지만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신경·정신과를 찾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 말에서 보듯 지금 우리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요족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절대 평화’,‘절대 풍요’를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계층의 씀씀이는 정신질환이 많은 나라를 앞선다. 너무 요족하면 병들기 쉽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까.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적대적 공범자들’ 펴낸 임지현 교수

    ‘적대적 공범자들’ 펴낸 임지현 교수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논쟁적인’ 지식인이다. 그가 던진 ‘일상적 파시즘’,‘합의·대중독재’,‘닫힌/열린 민족주의’,‘포스트-민족주의’ 등의 개념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그런 임 교수가 9·11사태 이후 미국의 우익화 경향에서 얻은 성찰을 담은 새 책 ‘적대적 공범자들(소나무 펴냄,1만 5000원)’을 내놨다. 민족주의적 논리가 서로 적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똑같은 게임의 법칙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강화해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9·11이후 미국의 우경화 과정 성찰 한때 남미를 휩쓸었던 종속이론에 비슷한 모티프가 있었고 97년 대선 직전 색깔론을 노린 북한 관련 사건들이 줄잇자 김종필씨가 ‘남북관계는 적대적 의존관계’라고 비판해 ‘중앙정보부 창설자답다.’는, 칭찬인지 야유인지 모를 평을 받기도 했다. 임 교수는 ‘민족주의’를 매개로 이런 개념을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다. 기존 논의가 우파·기득권층을 과녁으로 삼는다면 그는 좌파·저항세력에게서도 혐의점을 찾는다. 이 때문에 때로는 민감한 감수성으로 상식의 허를 찌르지만 “이놈 저놈 다 똑 같다.”는 논리로 결국 보수주의에 이바지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책 출간을 즈음해 임 교수를 자택 부근 찻집에서 만났다. 우선 포스트-민족주의에 대해 물었다. 반만년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적 단일성에 근거한 우리의 닫힌 민족주의에 비해 혈통은 달라도 원하는 사람에게는 시민권을 주는 미국의 열린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다. 그런데 9·11 이후 미국의 우경화는 닫힌 민족주의와 열린 민족주의간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단적인 예로 9·11 뒤 미국인들의 인사말이 바뀌었습니다.‘하이(Hi)’에서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로. 우리 민족주의도 만만치 않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 ‘대한민국 만세’라고 인사한 적 있습니까?”부시의 재선 성공도 하나의 징후다. 억압과 강제가 아닌 선거라는 동의와 지지 절차에 따른 통치, 바로 그가 말하는 ‘대중독재’다.“안 그래도 미국 연구자들이 제게 ‘재선 성공이 바로 대중독재 아니냐.’고 합디다.”그렇다면 닫혔든 열렸든 아예 민족주의라는 틀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모색해야 한다. 그게 포스트-민족주의라는 설명이다. ●닫힌 민족주의·열린 민족주의 큰 차이 없어 “저도 민족주의의 현실적인 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인정하는 것과 그게 유일무이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문학 연구자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습니다.”그는 섣부른 ‘중도통합론’과 ‘망라주의’의 유행을 비판했다. 하나의 학문적 입장을 깊이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대충 타협 보고 좋은 말만 골라 ‘총망라’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그의 관점은 ‘적대적 공범자들’ 곳곳에 녹아 있다. ●섣부른 중도통합론·망라주의 못마땅 책에서 한 걸음 벗어나 봤다.‘파시즘’이나 ‘대중독재’라는 말의 어감에서 나오는 정치적 효과에 대해 물었다. 임 교수의 논리구조 가운데 필요에 따라 일부만 차용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마침 며칠 전 한 일간지의 임 교수 인터뷰 기사 제목은 “北인권에 입 다문 민주세력,北정권과 적대적 共犯관계”였고 부제목 가운데 하나는 “역사는 사법적 판단 대상 안돼”였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물론 내가 보기에도 그들이 약간씩 비트는 듯한 게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다 나쁜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체 게바라나 로자 룩셈부르크 등 그들 눈에 ‘빨갱이’인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썼습니다. 내 글을 줄 때는 나도 긴장하고 저 쪽도 긴장합니다. 조금이라도 고치면 꼭 내 허락을 받도록 합니다.” 이 대목에서 임 교수는 최근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변경사(Border History)’ 연구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불어닥친 고구려사 열풍이 그는 못마땅하다.2000년 전의 역사를 지금의 역사에 연결지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국경’이 아닌 ‘변경’이었다.“옛 기록을 보면 대마도 도주는 조선의 신하이자 일본 막부의 무사였습니다. 대마도는 조선 땅인가요, 일본 땅인가요. 그게 바로 변경입니다. 현대의 국경 개념을 오래전 역사에 가져다 붙이면 안 됩니다. 그런 주장은 ‘국내용’에 불과합니다. 국제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려면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2000년 전 지도를 가지고 이게 네 땅이네 내 땅이네 싸우는 것은 비웃음거리밖에 안 됩니다.” 임 교수는 여기서 속내를 털어놨다.“변경사 연구를 한다니까 ‘고구려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빼는 연구는 도와줄 수 없다.’고들 합니다. 보수진영이야 그렇다 쳐도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보진영의 이상한 보수주의지요.”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민족주의’라는 호명 앞에서는 의좋게 나란히 서 있는 우리나라 우파와 좌파의 모습, 바로 그가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다.“제 연구는 기본적으로 국민국가를 해체하는 좌파적 기획입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말 더 이상 대답할 힘도 없습니다.” 임 교수의 올해 일정도 빡빡하다. 벌여 놓은 학술대회도 많고 써야 할 책도 많다. 그래도 ‘대중독재’라는 주제의식은 놓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욕망과 환상’이 키워드다. 권력이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대중들은 권력의 효과에 어떤 환상을 품는지 분석할 계획이다. 그 환상이 깨어졌을 때 저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찬반을 떠나 그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파시즘/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효제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 산물인 ‘파시즘’(fascism)을 그저 박물관에 보관하지 않고 개명한 현대에도 경계하는 것은 파시즘 특유의 ‘문어발 특성’ 때문이다. 파시즘은 대단히 친화력이 강해 현대의 신낭만주의나 생태주의, 뉴에이지 운동 등 다양한 사조와의 결합을 통해 우리를 포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적 파시즘’이니 ‘우리안의 파시즘’이니 하며 때아닌 파시즘 논쟁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도 9·11 사태 이후 부상하고 있는 국가안보 지상주의, 종교 근본주의와 국가 근본주의의 충돌 등 파시즘화 가능성을 떨쳐버릴 수 없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현대사 연구의 대가이자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로 통하는 로버트 O 팩스턴(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이 낸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파시즘’(손명희·최희영 옮김, 교양인 펴냄)은 예사로이 읽히지 않는다. 팩스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비시 정권이 독일 나치에 광범위하게 스스로 협력했음을 입증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책은 팩스턴의 40년 파시즘 연구의 총결산이다. 파시즘의 탄생에서부터 뿌리 내리기, 성장, 권력 장악, 권력 행사와 몰락, 특성과 다양한 해석까지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즘을 중심으로 파시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서 파시즘의 실체를 파헤친다. 파시즘을 이데올로기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 틀을 거부하고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발생한 특정한 정치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파시즘의 정체를 규명한다. 책에 따르면 파시즘은 20세기의 독특한 현상으로 대중의 열광속에 탄생했다. 그때까지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을 정치에서 소외시키려고 한 반면 파시스트들은 대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파시즘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들은 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민족 갱생과 경제부활 운동으로 전환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대중을 굳건한 정치운동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파시스트들은 쿠데타를 통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열광적인 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소수의 정치 야심가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한 제3세계 군부 독재체제나 권위주의 체제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저자는 따라서 대중 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억압하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이나 박정희 군부독재는 전통적 독재나 폭정일 뿐 파시즘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1930∼1940년대 일본 정권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철저하게 분쇄한 후에 위로부터 군국주의 체제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파시즘 체제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의 자발적 ‘협력’이 없었다면 파시즘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대 변화를 두려워한 보수 엘리트들의 비겁함과 좌파를 막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 잡겠다는 전도된 사고방식이 파시즘을 초래했다는 진단이다.2만 7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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