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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 정전감시단에 일 자위대 9월 파병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은 오는 9월 캄보디아 정전감시단에 자위대간부 몇명을 개인자격으로 파견하고 11월에 자위대 부대를 캄보디아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도쿄신문이 23일 보도했다.
  • 6·25남침… 새 증언·새 진상

    ◎구소 국방부 군사연구소 코로트코프박사등 증언/대남 「선제타격작전」 소군고문단장이 수립/“북 「강건위」부실”… 스미르노프가 작성/북한군,49년초부터 “공격훈련 위주로”소군사 고문단,한때 직지사에 주둔/스탈린,극동군 50만 국경배치 추진… 주은래와 회담뒤 철수 김일성이 무모한 한반도공산화전략실현을 목적으로 저지른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인 6·25동란에 대한 증언과 사료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이 나라 4천만 겨레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6·25.그 6·25가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음을 밝혀주는 구소련군 고위장성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 「전쟁주체」였던 김일성의 흉계와 북한선제공격의 진상을 밝힌다. 오는 25일로 6·25동란 발발 42주년을 맞는다.「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김일성이 주도한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부동의 정설.특히 이같은 시각은 구소련 붕괴후 지금까지 극비문서로 분류되어 대외공개가 금지됐던 관련자료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분명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군사보좌관으로 구소련 국방부의 군사연구소장을 역임한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대장과 또 같은 군사연구소의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77)는 6·25가 김일성의 적극적인 남침주장과 이에 동조한 스탈린의 지원으로 일어났다면서 그 근거로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을 제시했다. 볼코고노프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 2월4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낸 암호전문에서 『남한해방을 위한 3개사단 증강용 탄약과 무기등 군수물자공급을 요청』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스탈린은 스티코프를 통해 2월9일 『아무런 위험성이 없고 성공이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조건에서 귀하의 남침제의에 동의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요청한 군수물자 공급지시가 이미 내려졌음을 통보했다는 것. ○스탈린,전쟁 승인 볼코고노프는 스탈린의 이같은 회답은 전쟁개시를 사실상 승인한 것이며 이에따라 김일성은 남침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트코프의 증언 역시 볼코고노프와맥을 같이하고 있다.『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분명하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요컨대 이같은 사실과 주장은 6·25동란이 일부의 견해처럼 남한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및 중공의 지원하에 저지른 남침전쟁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과거 소련은 얼마나 깊이 한국전에 개입했을까?이와 관련,경희대학교의 나종일교수는 지난 20일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재조명」이란 주제하에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국전에서의 소련의 역할 규명에 나서 관심을 끌었다. ○소련,광범위 개입 이 세미나에서 「소련과 한국전쟁」이란 주제논문을 발표한 나종일교수는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측에서 새롭게 공개된 자료들을 인용,한국전에서의 소련의 개입정도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했다고 주장했다. 나교수는 1950년11월부터 1953년 휴전때까지 소련은 연인원 6만∼7만명의 공군을 참전시켰으며 조종사 외에 레이다,통신,방공,방역 등의 병과에서도 파병을 했다고 밝혔다. 개전 초기 1개 항공사단으로 작전에 나섰던 소련의 항공부대는 중공군의 요구로 확충되기 시작,50년 11월부터는 3개 항공사단,1개 고사포사단,1개 독립연대로 편성된 제64독립항공군단으로 증강됐다고 한다.또한 같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러시아의 이고르 셀레바노프장군(78)은 자신이 51년 스탈린의 특명으로 북한에 급파돼 유엔군의 세균살포 여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고 밝혀 상당수의 의무관련 요원들도 한국전에 참가했었음을 분명히 했다. ○세균전 “사실무근” 그러나 지난 50년4월부터 52년말까지 소련군준장으로 북한 인민군의무감실 수석고문으로 근무했던 셀레바노프장군은 전문요원들의 조사결과 유엔군이 세균을 살포했다고 한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증언,한국전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교수(미시카고대)의 세균탄사용 주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도 같은 날 경희대 주최 세미나에참석,「한국전쟁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50년9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스탈린의 지시로 소극동군 50만명이 한국전 투입에 대비,북한­소련국경에 배치됐으나 며칠뒤 스탈린이 다시 내린 명령에 따라 철수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코로트코프박사는 『당시 국경으로부터의 소극동군 철수는 휴가중이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이 급파한 주은래의 논의결과에 따른 것』이라면서 『스타린은 당시 미국과 전쟁을 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극동군을 한국전에 투입,미국과 전쟁하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코로트코프박사는 『한국전쟁은 스탈린의 주도하에 김일성이 대리전을 치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일성이 대리전” 특히 나교수는 6·25와 관련,「선제타격작전계획」이라는 남침계획이 북한에 와있던 소련군사고문단에 의해 작성됐음이 이 계획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던 주영복씨(인민군 2군단 공병부부장)등 전인민군 간부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들에 의하면 당초「선제타격작전계획」은 김일성과 스탈린간에 남침공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총참모장 강건이 작성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를 검토한 소련군고문관들이 그 내용의 부실함을 지적,초대 군사고문단장인 스미르노프소장이 직접 작성했으며 이를 소련출신 인민군 간부들이 번역했다는 것이다. 「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38선 전 전선을 따라 탱크를 배치,일거에 집중화력을 퍼붓는다는데서 붙은 이름. 소련군사고문들이 「선제타격작전계획」을 언제 작성했는가 하는 시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으나 소련공식문서에 따를 경우 대략 1950년 2∼3월초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50년5월5일 북한주재 최고군사고문 바실리예프 중장은 그해 6월∼7월 사이에 고문관들이 수행할 세부활동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돼있다.이 계획에는 ▲38선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실시할 군사훈련에 관해 인민군총참모장에게 내릴 훈련지침과 ▲적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준비계획과 적해안 점령계획 등이 들어 있는데 이는 근대적 군부대가 대규모의침략공격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활동지침을 총망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리 키르신도 소련과 북한이 남침계획을 수립한 시점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1950년6월초보다 조금 앞선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호구축에 주력 그는 그 근거로 다음 몇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북한군이 1949년초부터 공격위주의 훈련을 한 점이다.키르신은 1949년1월2일∼16일 사이에 있었던 총참모부 훈련은 주로 참호구축에 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둘째는 소련군의 대북한 무기원조가 1949년 들어 크게 증가한 것이며 셋째는 공병들의 훈련이 공격 위주로 실시된 사실이다. 소련 국방성 중앙문서부의 자료에 따르면 1948년 인민군 창설 당시 북한에 파견된 소련군사고문은 모두 4백70명이었다고 한다.이 숫자는 1948년 2백17명,1949년에는 1백88명,1950년엔 1백48명으로 다시 축소됐다. ○“남 전쟁능력 미흡” 그러나 나교수는 1950년4월 이후에도 소련군사고문들이 계속 북한으로 파견됐다고 주장했다. 증언들에 따르면 소련군사고문들은 전선에서 전황을보고받았을 뿐 아니라 전선 사령부를 쫓아서 남하,경북 김천소재 직지사에 일시 주둔하기도 했으며 전쟁확대에 따라 후방의 고위사령부로 집결하는 식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들 소련군사고문들은 50년9월28일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자 일절 예하 전선에 출동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이같은 조치는 소련군이 포로가 될 경우 야기될 미·소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의 키르신이 찾아낸 문서들 가운데는 국군과 미군고문관에 대한 소련정보기관의 평가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스탈린이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의 하나가 남한의 전쟁수행능력이 매우 미약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1948년 소련정보에 의하면 국군은 훈련부족과 탱크·포병·조종사 등 전문 요원의 부족,전투경험의 부재,저하된 사기로 근대 군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교수는 현직 소련외무성 관리 아닌(혹은 발레노프·둘다 가명)의 말을 인용,스탈린이 오히려 한국전에 더 열광적이었다고 주장했다.아닌에 의하면 스탈린은 중국에서의 내란의 진전과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국가군 건설, 소련경제의 호전에 따라 한반도로 관심을 돌렸다는 것. ○“스탈린이 더 열성” 이같은 아닌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일반론, 즉 한국전을 시작하는데 있어 김일성이 열성적이었으며 스탈린은 마지못해 미군개입이나 빠른 성공여부에 관헤 여러차례 다짐을 받고 승인했다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1950년초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나고 귀국한 직후 보병 3개사단,1개 항공사단,1개 탱크여단이 즉각 증강될 수 있었던 것은 스탈린이 그 이전에 한반도를 적화통일시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후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6·25와 관련한 소련정부의 공식문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동시에 1백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직·간접으로 한국전과 관련을 맺었음에도 불구,소련정부는 지금까지 참전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다만 소련군 기관지 「적성」이 지난 89년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사실을 보도한 바 있지만 공식발표는 아니었다.따라서 김일성의 전쟁계획 승인이유와 한국전 참전동기 역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의의 전쟁」 강변 북한은 아직도 6·25를 「정의의 전쟁」,「민족해방전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남침전쟁 도발 42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한은 6·25를 대미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호도,이를 통해 김일성독재정권의 영구유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6·25동란을 일으켰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력에 의한 혁명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그 북한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 강토를 핵공포로 몰아넣고 있음을 볼 때 「남북합의서」의 발효에도 불구,우리의 대북 경계심을 풀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 「탈미국」 유럽 독자방위선언/서구동맹 군사영역 확대 의미

    ◎유럽통합등 신질서 구축의 정지 작업/분쟁지역 파병 천명… 활동범위 넓혀 서유럽방위동맹체인 서구연합(WEU)이 창설된지 44년만에 유럽신질서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19일 열린 9개회원국 국방·외무장관회담에서 역외분쟁지역에 대한 병력파견등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는 일명 「페테르스베르크」선언에 서명함으로써 서구연합은 이제 그동안의 유명무실한 방위기구에서 탈피,새로운 군사적역할을 자임할것을 선언했다. 서구연합의 이번 합의는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서구연합을 유럽동맹의 방위기구로 규정한데 따른 구체적인 행동선언이며 그동안 유럽독자안보체제의 구축을 추구해온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합동군창설작업이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공동체(EC)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원국들로 구성된 서구연합이 이처럼 실천적 군사활동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는 배경은 1차적으로 냉전체제종식이후 유고내전,나고르노­카르바흐사태등 유럽지역분쟁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비화돼 가고 있는상황에서 이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동기는 유럽의 오랜 꿈인 군사적 홀로서기구도를 성취시켜 보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통합유럽의 탄생을 앞두고 EC의 정치·경제통합작업과 아울러 군사통합작업의 원할한 수행을 위해 우선 WEU의 군사활동을 가시화,현실화 시킴으로써 사전정지작업을 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아울러 구소련의 붕괴로 인해 군사적으로 진공상태가 된 유럽지역의 안보를 더이상 미국주도하의 NATO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다목적용 포석이라고 풀이된다. 유럽의 안보체제는 냉전종식이후 지난 2년동안 북대서양협력기구의 창설,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NATO위상재정립등 숱한 곡절을 겪으며 재편되는 과도기에 놓여있다. 이같은 변화가운데 나온 「페테르스베르크」선언은 우선 지난 4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오슬로회담에서 NATO의 역외파병이 결정된데 이어 나왔고 또한 합의한 내용중 NATO가 역외파병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요청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는점에 비추어 서구연합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구연합은 이선언에서 유사시 작전에 참여하는 군부대는 NATO동맹군과 합동참여가 가능하며 역외파병시 CSCE에 사전요청을 하겠다고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NATO,CSCE와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공조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연합은 군사작전을 위해 각국이 보유한 재래식무기를 투입할 것을 시사하면서 평화유지활동을 포함해 분쟁방지및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유엔헌장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임으로써 미국의 간섭을 미리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결국 이번 페테르스베르크선언은 구소련이 빠진 유럽내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안보적 자주선언의 의미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유럽의 「대형」으로 군림해온 미국세의 퇴조가 시작됐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 독,내년 해외파병 추진/“PKO대비,2천명 훈련중”

    ◎공격적 군사활동 배제안해/뤼에국방/야권과 곧 본격 개헌협상 【본 로이터 연합】 독일은 내년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최고 2천명의 병력을 훈련중이며 가까운 장래에 유엔의 「공격적」해외 군사활동에 병력을 파견할 수도 있다고 폴커 뤼에 국방장관이 20일 밝혔다. 뤼에 장관의 발언은 19일 독일 등 9개국으로 구성된 서구동맹(WEU)이 역외 분쟁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는 합의에 도달한지 하룻만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뤼에 장관은 이어 PKO에 파병할 경우 『의료진은 물론 경보병·공병및 낙하산병등이 우선 포함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유엔의 「공격적」군사활동에 독일이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2차대전 전승국들이 기초한 연방헌법에 의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역외권에 파병할 수 없도록 금지돼왔다.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를 개정,유엔의 정전감시 활동에 동참할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뤼에 장관은 특히 헌법 개정을 위해 『앞으로 몇개월안에 정치적 기초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사회민주당(SPD)등야권과 개헌 협상을 벌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유엔 「중무장신속배치군」 창설 검토/“국제안보 제고위해 필요”

    ◎갈리 총장/회원국 지원군으로 충원 【유엔본부 AP 연합】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18일 유엔이 현평화유지군(PKF)보다 중무장되고 특수훈련을 받은 강력한 신속배치군(RDF)을 확보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했다. 부트로스 갈리총장은 안보이에 제출한 52쪽의 비공개 보고서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RDF가 유엔의 『국제안보 보장에 대한 신뢰제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RDF창설은 지난 1월31일 처음으로 개최된 유엔정상회담에 참석한 지도자들에 의해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RDF가 창설되더라도 상설이 아닌 그때 그때 즉각 조직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면서 회원국 파병및 「지원군」으로 충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은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선 평화중재노력에 최선을 다하나 성과가 없을경우 가능한한 당사국의 의사를 참작해 RDF를 투입하게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유엔 RDF창설을 위해 특별협정들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회원국들로부터 인적·물적 지원을 받기 위한 「특별 차원은 물론 상설 성격」을 띠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유엔 RDF가 기존 PKF에 비해 보다 중무장되고 특수훈련을 받은 인력으로 구성될 것이라면서 평상시는 병력을 차출하는 회원국들이 관리하나 일단 소집되면 사무총장 지휘를 받게된다고 덧붙였다.
  • 일 PKO법 발효/“파병태세 정비” 지시/방위청장관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자위대의 해외파견을 합법화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과 국제긴급원조대 파견법이 19일 공포되었다. PKO법은 빠르면 다음달 시행에 들어가며 국제긴급원조대 파견법은 이날부터 시행된다. 【도쿄=이창순특파원】 미야시타 일본방위청 장관은 19일 해외에서 발생한 재해에 자위대 파견을 가능케하는 국제긴급원조대파견법이 이날 공포·시행됨에 따라 육·해·공자위대에 대해 조급히 해외파견 태세를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미야시타 장관은 『파견지역은 지금까지 긴급원조대의 실적과 자위대의 수송능력을 감안,우선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개발도상국을 상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서구연합도 분쟁지역에 파병”/독·불 등서 5만명 군창설

    ◎EC,첫 역외 군사역할 수행 가능/오늘 9개국 외무·국방회의서 합의예정 【브뤼셀 로이터 연합 특약】 서구연합(WEU)은 19일 유고슬라비아나 걸프지역과 같은 세계의 분쟁지역에의 개입을 위해 병력을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는 새로운 군사적 역할에 합의할 예정이다. 19일 본에서 열리는 WEU 9개국 외무·국방장관 합동회의에서 이뤄질 이같은 합의는 EC가 WEU를 통해 사상최초로 군사적 역할을 행할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의미를 갖는다. 빌렘 반 에켈렌 WEU사무총장은 이날 브뤼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9개국 외무·국방장관들이 평화유지활동과 인도적 임무수행,걸프전쟁과 같은 나토역외에서의 분쟁개입을 위해 각국의 육해공군 차출에 합의할 것이며 현재 창설중인 독불연합군을 포함해 5만명의 군창설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유럽동맹/“나토역외파병 동의”

    【브뤼셀 연합】 서유럽동맹(WEU)은 필요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역외에 대한 파병에 곧 합의할 것이라고 브뤼셀의 외교소식통들이 16일 말했다. WEU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나토 이외 위기지역의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병력을 파견할 수 있도록 오는 19일 본에서 열리는 외무·국방장관합동회의에서 9개 회원국 전원이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한 소식통은 『WEU는 지난해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에서 장래 유럽안보의 실질적기구로 격상된 이래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꾸준히 검토해 왔다』고 말하고 『위기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평화유지군 파견은 물론 걸프전과 유사한 성격의 전쟁에도 참여하는등 어떤 종류의 군사적 개입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유엔,“일에 「캄」파병 요청”/UNTAC 아카시대표 밝혀

    ◎“공병대·경찰등 최고 700명 수준”/“자위대,다국적군 참여 불허”/미야자와 총리 【도쿄 연합】 유엔측은 캄보디아 복구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자위대원을 포함,4백∼7백명가량의 파견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일시 귀국중인 아카시 야스시(명석 강)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대표는 16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과의 회견에서 일본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참가문제에대해 『오는 10월1일부터 건설부문등 공병부대 4백∼7백명,문민경찰 75명,정전감시단 수명이 필요하다』고 언급,4백80명 정도의 파견을 요청할 생각임을 밝혔다. 그는 또 공병부대·문민경찰·정전감시단외에도 의료부대와 수송부대의 파견 요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수송부대에대해 『정글 오지에 있는 감시소에 헬기로 주 1∼2회정도 식료품과 물을 운반하는등 주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로이터 연합 특약】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17일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통과됐음에도 불구,자위대는 걸프전과 같은다국적군에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 고삐풀린 일본을 직시하자(사설)

    일본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마침내 확정되었다.일본내외의 그 많은 반대와 우려는 간단히 그리고 완전히 무시되고 외면당했다.PKO법을 원하는 일본정부·여당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그만큼 더 일본의 의도를 의심하고 경계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일본은 PKO참여가 어디까지나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을 돕기 위한 선의의 것임을 강조한다.세계평화에 기여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것이라며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사대국화 우려는 기우라고 강변하고 있다.정말인가.일본인 자신들도 솔직히 말한다면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일본은 탈냉전의 변화분위기에 편승,제국주의와 패권주의의 포석을 하고있는 것이다. 일본이 설마 또 군국주의나 제국주의를 추구하려 하겠는가.오늘의 민주일본만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제국주의나 군국주의가 별것인가.정치·군사·경제적 패권주의와 이웃은 생각지않는 자국리익지상주의를 추구한다면 그것이 곧 제국주의요 군국주의인것이다.명분이나 모양은 의미가 없다.내용과숨겨진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구일제도 「대동아공영」의 이상을 내세우며 한반도를 침탈하고 중국과 동남아를 침공하지 않았는가. 공교롭게도 이번 PKO법에 의한 일본군의 첫 출동지는 인도차이나의 캄보디아다.인도차이나는 전전 일제황군의 활동무대였던 곳이다.패전 47년만에 유엔군으로 모자를 바꿔쓴 일제황군의 인도차이나 재상육인 것이다.이미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동남아의 중심지대다.그곳의 경제적이익을 지키고 키우겠다는 의사표시이며 출병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번 PKO법안이 파병을 위해선 의회의 사전동의를 얻도록하고 군사활동 직접 참여는 금지하고 있으며 3년후엔 전면 수정하도록하고 있는 점등을 들어 크게 후퇴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없다.파병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3년후엔 오히려 강화되고 본격화될 것이 틀림없다.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 근성의 고삐가 풀린 것이다. 때문에 이제부터가 더 큰문제다.정치·군사·경제대국 일본의 제국주의야심은 가속될 것이 틀림없다.미국의 방위분담압력을 군비증강의 구실로 삼고 걸프전을 PKO법성립의 명분으로 이용한 일본이다.전쟁을 부정하는 평화헌법은 언제 무엇을 계기로 개정하려 할지 궁금해진다.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비를 지출하며 해군력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이다.북한의 핵소동에 가려있지만 이미 히로시마형 원폭 3천개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북한의 핵무장이나 한반도통일은 일본평화헌법개정내지는 핵무장의 좋은 명분과 구실이 될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고삐풀린 일본」이란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과거의 역사에 대한 원한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국민감정이나 정서보다 국민 이성과 지성의 냉철한 대응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우리는 일본 PKO법성립을 지일과 극일의 새로운 계기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모양만 바꾼채 다시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
  • 정부,신중 촉구

    외무부는 16일 일본의 PKO법안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당국자 논평을 통해 『법안 논의과정에서 한국은 자위대의 해외파견에 우려를 표명해왔으며 일본이 주변국의 우려를 감안해 신중히 대처해주기를 촉구해왔다』고 전제하고 『시행령제정과 유엔평화유지군(PKF)의 파병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일,함정 4척 해외출동 대기명령/자위대 「캄」파병 준비 박차

    ◎PKO법 확정따라/파병총괄 「국제본부」 개설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개정 국제긴급원조파견법이 지난 15일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함정 4척에 대해 유사시 언제라도 신속한 출동이 가능하도록 특별대기 명령을 내려 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방위청의 오카베(강부) 해상막료장은 16일 하오 기자 회견을 통해 『방위청은 이번 주중 효력을 발휘하게 될 국제긴급원조파견법에 따른 수송업무에 대비,해상 자위대의 호휘함을 포함한 4척에 대해 특별대기 태세에 들어가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밝히고 『이들 함정들은 출동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작전지역으로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카베 막료장은 『비상대기에 들어간 함정들은 해외의 재해 파견지역에서 사용하게 될 헬리콥터를 비롯,대형 차량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고 밝히고 『내역은 수송함 2척,보급함·호위함 각 1척등 4척으로 돼있다』고 말했다. 오카베 막료장은 『이들 함정중 호위함은 기관포,미사일 등의 중무장을 하고 있으나 긴급 원조대로 파견될 때는 수송 지원·연락 임무만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회당등 불참속 일사천리 가결/PKO법 중원통과 하던날

    ◎“지연책 달리없다” 사회당등 사퇴 결행/「발원거부」 계속땐 중원해산 논란일듯 ○…15일 밤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이 PKO법안의 통과를 공표하자 본회의에 참석한 집권 자민당과 야당인 공명·민사당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영. 의장석 옆에 앉아있던 미야자와총리도 일어나 중의원 의원들에게 인사한후 곧 퇴장했으며 다른 중의원의원들도 PKO법안이 통과된 직후 모두 퇴장했다. ○「소걸음 전술」 또 구사 ○…PKO법안의 처리를 위한 중의원 본회의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속개되었다.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사회당과 사민연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시작된 투표에서 자민·공명·민사등 3당 중의원의원들은 빠른 속도로 투표를 진행했으나 공산당소속 17명의 중의원들은 참의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연전술로 천천히 투표. PKO법안에 대한 투표는 공산당 당수가 하오8시25분쯤 마지막으로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종료. ○…사회당과 사민련소속 중의원들은 자신들이 제출한 의원직사퇴서가 우선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의원 본회의참석을 거부. ○사퇴서 수리 않겠다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이 PKO법안의 통과를 선포하자 방청석에 있던 시민들이 일어나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국회 경위들이 급히 달려가 이들을 제지. ○…PKO법안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앞에서 밤늦게까지 PKO법안의 중의원 통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 노조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PKO법은 침략법이다』,『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반대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PKO법안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날 PKO협력법안이 통과하기 12시간전 사회당과 사민련소속 중의원 1백41명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여야간 갈등의 골이 한층 깊게 패였다. 사직서 제출에도 불구,PKO법안은 중의원을 통과,성립됐지만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일본정계는 중의원해산,중·참의원 동시선거의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사쿠라우치의장은 15일밤 PKO법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후 사회당과 사민련이 제출한 의원직사퇴서 처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국회운영이 정상화 될 때까지이를 보관토록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사퇴서를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야자와(궁택)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수뇌진들은 『사회당이 주장하고 있는 중의원 해산및 총선거 실시 주장은 현 시점에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한편 사회당이 계속 의원직 사퇴를 고집할 경우 적절한 제재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 관계자들은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그 지위를 얻은 것으로 의원 개인의 의사로 의원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 ○긴급중집회서 결정 ○…사회당이 의원직사퇴서 제출방침을 결정한 것은 14일 하오 자민당이 제출한 내각신임안이 가결된 직후. 사회당은 당시 PKO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킬 수단이 「완전 동났다」고 결론짓고 당3역회의와 긴급중집회의를 열어 이를 결정. 이어 15일 상오 다나베 사회당 위원장·고에다 사민련대표는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을 방문,소속의원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사쿠라우치의장은 『사퇴서는 내가 갖고있을 것이며 중의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하겠다』고 응수. □PKO법안 처리 일지 [91년] ▲9·19=일본 각의,PKO협력법안 의결후 국회 제출 ▲10·4=국회회기 만료로 PKO법안 계속 심의 결정 ▲11·5=제1백22회 임시국회 소집,미야자와(궁택)내각 발족 ▲11·27=자민·공명 양당,중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서 PKO법안 내용 일부 수정후 통과 강행 ▲11·29=여야,PKO법안 중의원특별위 반려 합의 ▲12·2=중의원 특별위서 자민·공명 양당 찬성으로 PKO법안 가결을 확인 ▲12·3=중의원 본회의,PKO법안을 가결 ▲12·4=참의원,PKO법안 심의 시작 ▲12·20=국회회기 만료로 참의원 계속 심의 결정 [92년] ▲3·15=유엔캄보디아잠정통치기구(UNTAC)본격 시동 ▲4·27=참의원 본회의서 사회당 대안 제출,제안 설명 ▲4·28=참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서 PKO법안 심의 재개 ▲5·29=자민·공명·민사 3당,유엔평화유지군(PKF)에의 자위대참가 동결과 국회 사전승인 등을 포함시킨 재수정안 마련 합의 ▲6·5=참의원 특별위서 자민·공명·민사 3당 찬성으로 PKO법 재수정안 가결 ▲6·11=중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PKO법안 가결 ▲6·15=중의원 본회의,사회당의원 불참속 PKO 법안 통과,최종 확정
  • 일 PKO법안 확정/47년만에 해외파병 길열어/중원통과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자위대의 해외파견을 합법화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참의원에 이어 15일 하오8시29분 중의원 본회의에서 찬성 3백29표,반대 17표로 통과,PKO법이 제정됨으로써 전후 47년만에 일본군이 다시 해외에 파병되는 길이 열렸다. 이에 따라 일본은 곧 캄보디아에 자위대조사단을 파견할 방침이며 빠르면 9월 자위대 제1진이 캄보디아에 상륙,PKO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PKO법안은 이날 하오5시30분쯤 속개된 중의원 본회의에 상정돼 집권 자민당과 야당인 공명,민사당등 3당의 다수 찬성으로 통과됐다.PKO법안에 강력히 반대해온 사회당은 표결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공산당은 지연전술을 계속했다. 중의원 본회의는 당초 이날 상오 속개될 예정이었으나 사회당과 사민연소속 1백41명의 중의원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지연되었다.사회당등의 집단적인 의원직 사퇴서 제출은 일본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 일 사회·사민연 의원사퇴서 제출키로/PKO법 반대

    ◎자민등 3당선 내각신임안 가결/정부,빠르면 9월에 자위대 「캄」 파견 【도쿄=이창순특파원】 일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골자로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을 처리하기위해 개회중인 중의원 본회의는 14일 이례적으로 일요일 심의를 속행,미야자와(궁택)내각 신임 결의안을 자민·공명·민사 3당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한편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사회당과 사민연은 이날 하오 당수회담등을 열고 양당 중의원 전원의 의원직 사퇴서를 PKO법안의 심의에 들어가기 직전에 제출하기로 결정,일정국은 단숨에 긴박화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자민·공명·민사 3당은 사회당측의 집단 의원직 사퇴서 제출이나 심의 거부에 상관하지 않고 예정대로 15일 상오 10시 중의원 본회의를 열어 PKO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어서 일정이 약간 늦어질 경우라도 16일에는 성립될 공산이 크다. 이날 상오 10시 개회한 중의원 본회의는 자민당이 제출한 미야자와내각 신임 결의안을 심의,기명 투표에 들어가 사회당과 공산당이 오보전술(필리버스터)로 맞섰으나 하오 7시쯤 투표가 끝나 결의안은 가결됐다. 한편 일본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성립되면 공포후 3개월 이내에 법률이 시행되기 때문에 빠르면 9월에 자위대를 캄보디아에 파견하고 PKO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하면 즉시 자위대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도쿄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일본은 8백명 정도의 후방지원부대의 파견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비는 캄보디아 현지에 진흙탕이 많기때문에 수송과 이동을 위해 대형헬기와 장갑차가 필요하며 캄보디아까지 운송은 해상·항공자위대가 담당한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 외언내언

    탈냉전이 시작되었을때 세계는 화해와 평화시대의 도래에 큰기대를 걸었었다.냉전시대보다는 훨씬 평화롭고 안정된 세계가 될것으로 기대했었다.그러나 그기대는 우선 걸프전으로 첫 시련을 겪었다.그리고 지난3년간의 탈냉전사는 다음의 세계가 결코 냉전시대보다 안정되고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소련붕괴와 동구민주화에 이은 독일통일·한소수교·한중자유왕래실현등 세계는 이미 큰변화를 겪었다.그러나 그변화는 끝이 아니라 아직 시작일뿐.기왕의 것이 구질서파괴와 탈피의 변화였다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새질서로 가는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모삭과 정착의 변화라 할수 있다.그리고 그변화의 방향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것.◆탈냉전이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가치는 종교와 경제 그리고 국익제일의 민족주의일 것으로 예고되어왔다.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느낌.소련과 동구다민주국가들의 내적 분열갈등과 중동회교민족주의가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세계는 경제지상의 국익제일주의로 치닫는 대립갈등의 불안정을 노출하고 있다.◆더욱 불길해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주변인 동아시아정세.구질서파괴와 탈피의 변화도 미처 달성되지않은 상태에서 새질서의 가치추구가 시작되고 있는 혼돈의 상황.북한이 구질서와 핵을 고집하고 일본이 파병법(PKO)을 성립시키는등 군사대국의 길을 서두르는 가운데 중국도 핵실험과 항모보유희망등 군사력증강에 나서고 있다.군축아닌 군확경쟁이 벌어질판.◆이러고서야 평화공존 공영의 새아시아 질서가 정립되고 정착할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북한이 한미일을 자극하고 일본이 남북한 및 중국을 불안케하며 중국이 다시 한일의 우려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상황이다.그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것이 북한의 민주화 개혁개방거부요 일본의 반성할줄 모르는 국익지상주의 아닌가.
  • 일 자위대/첨단병기 무장/세계 3위 전력

    ◎PKO법안 처리 계기로 본 실체/FSX기 미와 합작… 방공망도 우수/항공/최신예 전함 건조… 대잠공격력 최고/해상/「전수방위」탈피… 공격 전략 강화에 박차 일본열도의 「불침항모론」.지난 83년 나카소네 당시 일본총리는 워싱턴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일본열도는 소련 백파이어전투기 공격에 대항하여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전총리가 주장한 「불침 항공모함 일본호」가 「출항」을 서두르고 있다.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자위대의 해외파병은 자위대 전략이 본래의 자국방어적 개념에서 세계전략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위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수방위다.그러나 자위대는 「공격적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군사전략가들은 지적한다.해상자위대는 이지스함·잠수함등 공격형 전함의 전력증가를 서두르고 있다. 영국의 군사전문주간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미 인도양·태평양의 깊숙한 곳까지 진출할 능력이 있다』고 분석한다.자위대의 전략은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남아시아의 말라카해협까지 포함하고 있다.해상자위대는 일본의 유조선등 해양운송의 요충인 말라카해협이 불안한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것을 상정,대비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해양세력인 일본은 전통적으로 해군력이 강했다.해상자위대는 막강한 전력을 갖추어 왔다.일본의 우수한 잠수함 탐지능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해상자위대의 주요 임무중의 하나는 「가상적」 구소련의 잠수함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일본은 가장 우수한 대잠수함 초계기 P­3C를 69대 보유하고 있다.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숫자다. 해상자위대는 잠수함 16척,기뢰함 41척,토위함 61척 등을 보유하고 이다.일본은 공격형 전함도 방어적 의미가 강한 호위함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호위함 개념에는 공격형 전함도 포함된다.일본은 항공모함이나 원자력잠수함 등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해상자위대 전력은 세계3위 수준이다. 일본은 독자적으로 이지스함(7천2백t)을 생산한다.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최첨단 전함인 이지스함은 오늘날 일본 해군력의 「실체」를 말해주고 있다.「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 의하면 일본은 최첨단장비의 전시장인 이지스함을 3척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척의 가격은 1천2백억엔(약7천억원).한국의 최고 전함가격의 10배 이상이다. 이지스함은 해양전투의 핵심인 탐지능력과 공격력이 가장 우수하다.고성능 레이더에 의한 목표물 탐지와 정보처리 등이 모두 컴퓨터화 되어 있다.이지스함은 10개이상의 목표물에 대해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기통제시스템이 완전 자동화 되어 있다.자체개발한 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90식 탱크」.일본 육상자위대가 새로 실전배치하고 있는 전차다.일본은 1천2백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육상자위대의 주력전차가 「90식 탱크」로 교체되고 있다.일본이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이 탱크는 기동력이 우수하고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최첨단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다.항공자위대는 자동화,컴퓨터화된 방공망으로 일본 열도는 물론이고 시베리아까지 감시하고 있다.항공자위대는 최첨단 페트리어트미사일과 F­15,F­16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90년대 후반에는 「공상무기」에 가까운 차세대전투기가 실전배치 된다.일본은 FSX프로그램에 따라 93년부터 차세대전투기를 생산한다.자위대는 이같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자위대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는 과거 중국식 「인해전술」시대가 아니며 하이테크무기와 정보전쟁시대다.PKO법안이 참의원에서 통과되자 자위대에는 약간의 「동요」가 있었다.해외파병에 대한 일종의 불안감의 표현이었다.그러나 자위대지휘관들은 어깨를 펴고 있다.가상적 소련의 소멸로 「존재감」이 약화되었던 자위대가 해외파병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무기에 전자·컴퓨터등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첨가,더 우수한 「일본제」무기를 생산,배치하고 있다.일본에 배치된 패트리어트미사일,F­15,F­16전투기들은 미국제품보다 성능이 더 우수하다. 더욱이 일본은 우주공간의 군사적 이용을 강화하고 있다.일본 자위대는 다음달부터 민간통신위성 「슈퍼버드B」에 탑재 돼 있는 군사통신용 중계기를 가동,우주의 비군사적 이용원칙에서 완전히 이탈한다.일본은 한반도를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 일왕 한국방문/연내 실현 희박/미지 “PKO영향”

    【워싱턴=이경형특파원】 일본자위대의 해외파병길을 열 평화유지활동(PKO)법안 파문 때문에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년내 한국방문이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 한국전 계기 창설… 현병력 24만명 규모/일본 자위대 행군과정

    일본 자위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창설됐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일본주둔 미17개사단 병력의 대부분을 긴급출동시켰다.그 치안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본 경찰예비대가 창설됐으며 경찰예비대가 오늘날 자위대로 발전했다. 맥아더 일본점령군사령관은 50년7월 요시다 당시 일본총리에게 미군이 떠난 치안공백과 안보무방비 상태를 막기 위해 경찰력과 해안경비력의 강화를 지시했다.일본은 이를 근거로 8월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다.경찰예비대는 52년 8월 보안청 산하 경비대(육군)와 보안대(해군)로 분리되면서 군대성격으로 전환되었고 2년후인 54년 7월 정식군제로 바뀌면서 항공부대가 창설돼 육·해·공군을 갖춘 자위대가 되었다. 경찰예비대 7만5천명으로 출범한 자위대는 정원이 계속 늘어나 현재 24만명 규모가 되었다.일본은 56년 7월 국방회의를 설치,방위력 증강을 시작했다.국방회의가 만든 「국방의 기본방침」에는 『국력과 국정에 상응하는 자위에 필요한 효율적인 방위력을 점진적으로 정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58년부터 3∼6년 단위의 중단기 방위력 증강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일본의 군사력은 4차방위력 정비계획이 완성된 76년에 장비나 예산면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일본은 4차 방위계획 기간동안 주력기종을 당시 최첨단 공격형 무기인 F­4팬텀전폭기를 채택했다.일본은 이때 대미외교 로비를 통해 한국의 팬텀기 추가도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일본은 77년 방위계획의 대강이라는 새로운 방위력 강화계획을 시작했다.일본의 80년대 증강사업은 거대한 규모였다.일본은 급성장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연평균 7% 가까이 방위예산을 늘려왔다.일본의 92년도 방위예산은 4조5천억엔으로 세계 3위이며 한국 전체예산규모와 비슷하다.일본은 더욱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새로운 방위력증강계획(1991∼96년)에 따라 22조7천억엔을 투자한다.일본은 이기간동안 자위대의 질적 향상을 위해 무기를 더욱 현대화할 방침이다. 일본은 이같은 막강한 전력을 배경으로 군사적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 야심은 지난 70년대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나카소네 전총리는 통산상 시절인 73년 『해상자위대의 일본상선보호 영역은 일본 영해 밖 1천㎞』라고 선언했다. 일본은 91년 4월 소해정 5척을 걸프지역에 파견,군사적 해외진출의 길을 열었다.일본은 이제 본격적인 자위대 해외파병을 위해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을 만들고 있다.일본은 과거 침략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이 「전후시대」를 마감하고 군사적 팽창주의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고 있다.
  • 미군 유고 파병/부시,난색 표명

    【워싱턴 로이터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11일 『우리(미국)는 세계경찰이 아니다』면서 자신은 유고슬라비아내의 인도적 구호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을 활용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일단의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해야할 일이면 한다.그러나 나는 미군을 활용하는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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