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피랍서 피살까지
‘두가지 우려가 모두 최악의 상황으로.’
김선일씨 피랍은 그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지난 21일 이른 아침 김씨는 TV를 통해 “죽기 싫다.살고 싶다.”고 국내의 온 국민을 향해 절규했다.실종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채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피랍소식이어서 ‘설마 한국인까지‘하는 방심에 경종을 울렸다.
●혼돈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당일 오전 8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긴급 소집되고,외교부에 긴급대책본부가 구성되는 등 회의에 회의가 꼬리를 물었다.9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11시 최영진 외교부차관과 아랍 12개국 주한대사 긴급 면담,오후 1시30분에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오후 3시30분 NSC와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이 잇따라 개최됐다.이어 정부합동대책반이 현지에 파견됐고,저녁 6시에는 카타르 주재 정문수 대사가 알자지라에 출연,김씨의 석방을 호소했다.그러나 한나절에 이뤄진 이 모든 일 가운데 테러단체가 주목했던 것은 오전 10시에 발표된 ‘파병원칙 재천명’이었을 수도 있다.
테러단체가 제시한 협상시한이 다가온 22일 자정무렵,온 국민은 초조감에 휩싸였다.가정마다 ‘어찌 될까.’ 하는 걱정에 TV곁을 떠나지 못했다.
●희망 22일 이른 새벽,정부는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여긴 듯했다.‘24시간 최후통첩’은 “물리적 시간이 아닌 협상 촉구용일 여지가 많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조심스러운 가운데서도 “우려할 만한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멘트도 나왔다.
이날 정부는 한층 힘을 얻는다.마침 오전에는 현지 경호업체로부터 ‘김씨의 생존을 확인했다.무장단체와 협상중이다.’라는 소식이 전해졌다.요르단 암만에 도착한 정부대책반도 활동을 개시했다.결정적으로 오후 6시 현지의 알아라비야TV가 ‘협상시한이 연장됐다.’는 보도를 한다.7시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아시아협력대화(ACD) 외교장관회의를 서둘러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 장관이 알자지라의 일본 특파원을 불러 인터뷰를 갖고 김씨의 무사 귀환을 아랍세계에 촉구했다.
이날 불길한 징후들은 점점 가리워진다.NSC는 국회에서 여당과 가진 당정협의에서 김씨에 대한 참수 이후의 대책을 보고했다가 의원들로부터 면박을 당한다.오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오늘 밤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고 한 최영진 외교부차관의 말은 낙관적으로만 해석됐다.“상황을 어렵게 또는 쉽게 보는 많은 정보가 입수되고 있어 규정하기 힘들다.”는 말은 희미해져 갔다.밤 10시,노무현 대통령이 외교부 상황실을 방문한다.최 차관은 여기서 “희망이 보이고 있다.”고 보고했다.노 대통령은 “좋은 소식이 있나 싶어서”,“답답해서” 느닷없이 들른 길이었지만,대통령의 방문 자체가 상황의 급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여겨졌다.
●절망 이같은 희망은 그러나 채 1시간도 가지 못했다.대통령이 상황실을 떠난 지 30분여,주 이라크 대사관으로부터 충격적인 보고가 도착한다.“10시20분쯤 미군이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현지 한국군에 연락해 왔다.”는 것이다.이어 23일 0시45분에는 시신이 김씨의 것으로 확인됐다는 추가 보고가 접수되고,1시40분에는 알자지라가 김씨 사망관련 비디오를 방영한다.밝은 오렌지색 옷의 김씨는 복면을 한 무장세력 앞에서 눈이 가리워진 채 무릎을 꿇고 울먹이고 있었다.그는 마지막 길을 예감한 듯 영어로 ‘Please(제발)’를 외쳤다.뒤에는 기진한 듯,간간이 “I really don’t want to die(정말 죽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되뇌이기도 했다.
1시 55분쯤,정부는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돼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김씨의 피살 소식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그의 사체는 동강났으며 부비트랩이 설치된 채 도로변에 버려졌다.만 이틀도 못되는 동안,극도의 우려와 걱정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뽑아내는가 싶더니,이내 닥친 최악의 상황으로 온 국민이 참담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