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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정부가 19일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은 ‘서울로의 접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신도시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새로 깔고 지하철을 연장하며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신설해 “30분 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획은 서울의 위상을 다시금 보여 준다. 서울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서울에 가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도대체 서울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것일까.신간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변화상을 추적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도구가 문학작품인 점이 독특하다. 저자인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최일남 ‘서울의 초상’,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순 ‘정든 땅 언덕 위’,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작가 16명의 작품 110편으로 서울의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른 변화가 지금 서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1960년대 초반은 혼란을 거쳐 현대 도시 서울을 형성한 법적·행정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였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은 당시 젊은이들의 서울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여주인공이 보여 주는 서울 생활은 혼란 그 자체다.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도 없다.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에 이어 서울은 1966년 현대 도시로 나아간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1966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난 지점이기도 했다. 1965년 한·일회담 결과로 한국에 돈이 풀리며 경기가 살아났고, 같은 해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과 건설사업 참여 등으로 서울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1966년 4월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서울을 현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개발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를 가리켜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400여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봉천·신림·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를 만든다. 판자촌을 쓸어버리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인 경기도 광주로 철거민을 강제 이주한다. 결과적으로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실질적 경계는 확장됐고, 현재 서울 전체의 모습도 이때쯤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런 도시 개발은 부작용을 부른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71년 광주 대단지 소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에 관해 박태순은 ‘정든 땅 언덕 위’의 ‘외촌동’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김 시장은 물러났지만, 서울 개발은 강남으로 이어진다. 포화 상태에 이른 강북 인구를 분산시킬 신시가지인 강남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시민들이 생길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개발자금과 정치자금 등을 마련해야 했던 권력층의 탐욕이 있었다. 특히나 1972년과 1973년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다. 1972년 4월 서울시가 강남을 발전시키고자 강북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하며 강남은 뜨고 강북은 쇠락한다.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 인구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종로구와 중구 전역은 물론 용산구와 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전역 등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이듬해에는 강남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규제도 받지 않고 특별법 혜택으로 취득세, 재산세 등을 면제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와우아파트 사고 이후 침체했던 아파트 붐이 살아났고, 명문 고교들이 강남에 터를 잡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을 경계로 생겨나는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1960~70년대 서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 지금의 서울을 만든 근원적인 힘이다. 서울은 주택, 교육, 취업, 여성의 권리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자, 제대로 된 자기성찰 없이 근대화에 매진해 온 한국 현대사 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이 버리고 미국은 내쫓고… 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이 버리고 미국은 내쫓고… 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미국에 입양간 뒤 국적을 얻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불안하게 사는 입양아가 1만 8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다 커서 자발적으로 밀입국 등을 통해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아니 다른 나라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한 뒤 국적을 주지 않고 불법 체류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혹시나 교통법규 위반이나 다른 범법 행위로 경찰이나 이민당국에 체포될까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아들은 이태원 등지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도 하고, 홈리스가 되기도 한다. 적응을 못하고 자살한 사람도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고아 등을 다른 나라에 보내기 급급했지 그들의 지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모국 한국과 아이를 데려다 놓고 국적 취득에는 나 몰라라 했던 미국 양부모들의 무성의 탓이었다. 단편적인 얘기만 전해질 뿐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얘기를 알아봤다.●누구도 원해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다 “내가 대한민국을 떠난 것도 내 뜻이 아니었고, 미국으로 보내져 미국인 부모를 만난 것도 내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의 뜻과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미국에 입양 갔다가 추방 위기에 몰린 한 입양아의 얘기다. 지난해 5월 21일 안타까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8살 때인 1983년 미국으로 입양돼 28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추방돼 피부색은 같지만, 말도 안 통하는 그의 모국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 42년의 생을 마감한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의 얘기다. 선천성 양극성장애자였던 그는 미국에서 약물 중독과 강절도 등을 저질러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런데 수용생활을 하다가 출소하면 한국으로 추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양아였지만, 미국 시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추방된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결국 찾지 못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클레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입양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그때뿐이었고 이내 잊혀졌다. 미국 입양아 출신 A(45)씨는 1970년대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의 한국 성은 김씨이다. 그를 길에서 발견한 사람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그는 행운아였다. 부잣집 외아들로 입양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0년 초 양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자살하면서 그의 삶은 꼬인다. 양부모의 재산은 많았지만,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 시민권이 없는 그는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갱단에 들어가 범법자가 되고, 3년형을 받고 출소 뒤 한국으로 추방된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중 마약 투약이 들통나 1년형을 산 뒤에는 그는 다시 은행강도가 된다. 석방된 뒤 그는 현재 경기도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다. ●경범죄 세 번이면 추방… 공포에 갇힌 일상 G씨(남·47)는 유타주에서 살다가 범죄를 저질러 형을 산 뒤 가족은 미국에 둔 뒤 홀로 추방됐다. 지금도 많은 입양아가 한국 추방을 앞두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만, 그뿐이다. 외교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이들의 정확한 통계는 밝히길 꺼린다. 교민사회와 이들을 돕는 종교단체 등을 통해 소문이 나 알려질 뿐이다. 그들은 한사코 만나기를 거부한다. 간혹 만나더라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나마 어렵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과거가 알려지는 것이 싫다는 사람도 있고, 도움도 되지 않는데 굳이 신상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의사와 달리 남의 손에 이끌려 이역만리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는 모두 11만명(교민 단체는 14만명 추산)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를 잘 만나서 훌륭하게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인 입양아 가운데 1만 8000명은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시민권 없이 추방의 공포에 떨고 있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두려움은 더 커졌다고 한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형기를 채우고 난 뒤 한국으로 추방된다. 경범죄도 세 번 누적되면 추방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근무했던 미 육군 예비역 중령인 페트릭 슈라이버는 최근 미 캔자스법원으로부터 그가 입양한 딸인 한국명 해빈(18세)의 추방명령을 받았다. 해빈은 캔자스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하면 추방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2013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면서 해빈의 입양수속을 미뤘다가 그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재판을 진행 중이지만, 법원의 결정은 단호했다. 아이 셋을 가진 G씨(여·51)는 최근 시민권을 취득을 위한 소송을 벌여 모든 절차를 마치고 조만간 시민권을 받게 된다. 그는 1992년 선거에 투표한 뒤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투표한 것으로 드러나 기소된다. “내가 시민권이 없다니….” 그는 충격을 받는다. 양부모가 그를 파양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충격에 홈리스 생활도 2년을 했다. 다행히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들을 돕는 ‘월드 허그 파운데이션’의 지원을 받아 재판할 수 있었지만, 모두 그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 수출’하기에만 급급했던 한국 그러면 왜 1만 8000명이나 되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서는 많은 어린이가 미국으로 보내진다. 홀트나 동방 등 입양기관도 그때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입양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다. 양부모가 와서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입양기관이 단체로 데려가서 입양가정에 인계했다. 문제는 미국에서는 이렇게 입양된 어린이에게는 시민권이 없는 ‘IR4’ 비자가 발급된다. 그저 입양아 신분일 뿐이다. 18세가 되면 미국 입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해야 하는 데 미국인 부모도 당연히 시민권이 있는 줄 알고 그냥 넘어갔다. 파양 등의 이유로 절차를 밟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은 2000년 ‘아동시민권법’에 따라 18세 미만의 입양아에겐 시민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1983년 2월 이전 출생한 입양아에겐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는 나이 때문에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가 3만 5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51.4%가 한국 입양아인 것이다. 아이만 송출할 줄 알았지 그 아이의 권리는 챙겨주지 못한 한국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 이후 2012년 입양 법원 허가제를 도입해 국내 가정법원에서 입양절차 완료를 확인해야 국외입양이 가능해졌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다. 복지부는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동을 16만 7244명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20만명을 넘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 교민들은 미국만 해도 14만명은 될 것으로 본다. 복지부에도 1998년 이전 상세한 국외입양자료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 요청을 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입양아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1995년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99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에 한국은 서명만 한 상태로 정식 가입국이 아니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관련단체의 지적이다. 현재 미 워싱턴DC 연방상원 의원 로이 블런트(미주리) 등 상원의원 13명과 애덤 스미스(워싱턴) 의원 등 하원의원 46명의 공동 발의로 18세 이전에 해외에서 미국으로 입양돼 적법하게 미국에 거주 중인 자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자동부여하는 ‘입양인시민권법’이 지난 3월 상·하원에서 동시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통과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어서 이들의 안타까움은 갈수록 커지는 상태다. sunggone@seoul.co.kr
  • 전쟁의 참혹함 서린 ‘참호’…긴 여정 끝엔 회의감만 남다

    전쟁의 참혹함 서린 ‘참호’…긴 여정 끝엔 회의감만 남다

    제2차 세계대전은 보통 우리에게 ‘유대인 학살’로 기억된다. 그럼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기억될까. 나는 ‘참호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참호’(塹壕/塹濠)라는 한자어보다는 ‘트렌치’(trench)라는 영단어에 익숙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참호에서 비를 피하려고 이 옷을 걸쳤던 영국군에게 그것은 패션 아이템이 아니었다. 트렌치코트는 트렌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도구였다. 그리고 트렌치코트를 입었든 안 입었든, 기관총탄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파기 시작한 흙구덩이에서 대치하던 군인들은 이 전쟁이 본인을 갉아먹고 있음을 직감했을 테다.●인물과 인물, 인물과 상황의 긴장감 극대화 여기에는 피아가 없다. 그들은 적군 외에 참호와도 싸워야 했으니까. 곳곳에 널린 시체와 오물 썩는 냄새가 진동했던 참호는 감염의 온상지이기도 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군인들이 참호에서 병들어 사망한 경우가 총에 맞아 전사한 경우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저니스 엔드’다. 원작은 R S 셰리프가 쓴 동명의 희곡(1928년 런던 초연)이다. 그런 까닭에 사울 딥 감독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정된 시공간에서 인물과 인물 혹은 인물과 상황의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역작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영국군 3인의 1인칭 시점… 관객 체감도 높여 1918년 3월 프랑스 전선에 파병된 영국군을 다룬 이 영화는 특히 세 캐릭터에 집중한다. 참호전이 놀이인 줄 알았던 소위 롤리, 참호전이라는 지옥을 버티려고 술을 마셔댔던 대위 스탠호프, 참호전이 야기하는 비참으로부터 롤리와 스탠호프 등 모두를 지켜내고 싶었던 중위 오즈번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참호전을 비롯해 전쟁 자체에 내재된 부조리에 대해 통감하게 된다. (예컨대 영국군에게는 자신들의 지휘부가 정예 독일군보다 더 치명적인 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체감하게 하는 영화 장치가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저니스 엔드’에는 인물 옆이나 뒤에 카메라가 바짝 붙어서 찍은 장면이 유독 많다. 1인칭 체험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영화 속 인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각은 제한되나 실감은 커진다. 전쟁의 참혹성을 관념적으로만 알던 사람에게, 이 작품은 전쟁이 왜 참혹할 수밖에 없는지를 심리적으로 깨닫게 한다. 제작자의 발언은 그래서 거짓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전쟁에 열광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전쟁의 혼란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고, 이는 일반적인 전쟁 영화와 완전히 다른 점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참호에서 죽은 군인들아니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을 버려야만 했는지를, 긴 ‘여정의 끝’이 어째서 이 모양이어야 하는가를. 영화가 아니라 100년 전 일어났던 전쟁에 드는 회의감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아버지 부시 타계] 냉전 종식·걸프전 승리 ‘슈퍼 미국’ 문 열다

    [아버지 부시 타계] 냉전 종식·걸프전 승리 ‘슈퍼 미국’ 문 열다

    18살에 자원 입대… 日에 격추 뒤 구사일생 고르바초프와 ‘몰타 회담’서 미소 냉전 끝 1991년 걸프전 승리했지만 재선엔 실패 2000년 아들 부시 당선으로 ‘父子 대통령’ 퇴임 후 정적 클린턴과 초당적 모금 활동 북방외교 지원·국회 연설 한국과도 인연“냉전 종식은 모든 인류의 승리다.”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냉전을 해체하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어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을 열어젖힌 ‘아버지 부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별세했다. 94세.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저녁 10시 10분 텍사스주 휴스턴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온 부시는 73년간 해로해 온 부인 바버라를 지난 4월 먼저 떠나보낸 뒤 7개월 만에 뒤따라 갔다. 역대 미 대통령으로서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24년 6월 미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난 부시는 2차대전이 터지자 예일대 입학을 앞두고 18살에 자원 입대해 최연소 해군 파일럿으로 종군했다. 일본 오가사와라 해역에서 일본군에 격추된 그는 미 잠수함에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바버라와 1945년 결혼한 부시는 1966년 텍사스주 하원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두 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뒤 유엔 주재 미대사, 미·중 수교 전 베이징 주재 미연락사무소장,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과 겨룬 당내 대선 경선에서 패한 그는 8년간 부통령으로 레이건 정부를 떠받쳤다. 198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꺾고 당선됐다.레이건의 뒤를 이어 부시가 1989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자 냉전 체제가 요동쳤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그는 취임연설에서 ’강한 미국’을 내건 레이건과 달리 “세계에 좀더 따뜻하고 배려 있는 미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해 7월 동유럽을 방문해 “자유롭고 하나가 된 유럽”을 호소했고, 비 내리는 부다페스트 광장에선 준비된 원고를 버리고 “마음으로 뜻을 전하고 싶다”고 즉흥연설을 했다. 4개월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2월에는 조건 없이 미·소 정상이 지중해 몰타섬에서 머리를 맞댔다.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1990년부터 소련 대통령 겸직)은 “평화로 가득 찬 새 시대”를 얘기했고, 부시는 “그것이 우리가 만들기로 한 미래의 모습”이라고 화답했다. 그렇게 냉전 체제는 평화롭게 무너졌다. 냉전의 공백을 틈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1991년 쿠웨이트를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걸프전’에 43만명의 대군을 파병해 승리를 거둔 것은 부시의 치적으로 평가된다.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진행된 걸프전에는 33개국 12만명의 다국적군이 참전했다. 1차 걸프전을 압도적 승리로 이끈 그의 지지도는 90% 가까이 치솟았지만, 경제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바보야 문제는 바로 경제야”라는 구호를 내건 40대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내줬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를 촉진하는 숨은 지원자 역할을 해 줬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옛 소련과 1992년 중국과 잇따라 수교했다. 1991년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졌다. 그는 대통령 재직 기간 두 차례 한국 국회 연설을 했다. 1989년 2월 첫 방한해 국회에서 북한에 평화적인 메시지를 연설했고, 1992년 국빈 방한 기간에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고 의무를 이행하면 한·미 팀스피릿 군사훈련을 중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시의 진가는 퇴임한 뒤 빛을 발했다. 그는 자신을 이기고 대통령이 된 클린턴과 당파를 떠나 친하게 지냈으며 2005년에는 클린턴과 동남아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에 함께 참여하며 초당적인 국가원로의 모범적 역할을 보여 줬다. 2000년 대선에서 맏아들 조지 W 부시가 백악관 입성에 성공하면서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에 이어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의 기록을 세웠고, 둘째아들 젭도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내는 등 케네디가(家) 못지않은 정치 명문가로 자리매김했다. 세상을 떠나던 날 오전 오랜 동료이자 냉전 해체라는 역사의 물결을 함께 헤쳐 간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부시를 찾았다. 기력이 쇠해 밥조차 거르며 잠들었던 그가 눈을 떴다. “베이크, 우린 어디로 가고 있나.” “천국으로 가죠.” “내가 가고 싶은 곳이야.”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실험…“아들에 승계는 능력 보고”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실험…“아들에 승계는 능력 보고”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하면서 후계구도를 특정하지 않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한국 재벌그룹 문화 역사상 이례적인 실험이라고 평가한다. 경영구도를 테스트 후 결정하겠다는 의도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동시에 나온다. 실제 이웅열(63) 회장은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향후 아들 이규호(34)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계획에 대한 질문에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규호 전무가 올해 만 34세로 어리기 때문에 곧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영수업을 할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복안으로 여겨지지만 지분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선친인 이동찬 전 명예회장으로부터 그룹을 넘겨받았던 1996년은 사실상 자신에 대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된 이후였다. 그러나 창업주 이원만 전 회장의 증손자로 ‘4세대’인 이 전무는 현재 주요 계열사의 지분이 사실상 전혀 없는 상태다. 근래 이 회장 일가의 지분이나 지배구조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장이 지주회사인 ㈜코오롱의 지분 49.74%를 갖고 있고, 이밖에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 계열사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어 내년 초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그룹을 계속 소유하는 셈이다. 이날 사퇴 선언을 하면서 후임 회장을 지명하지 않은 채 지주회사 중심의 그룹 경영 방침을 내놓은 것도 당분간은 지분 상속을 통한 승계 작업을 본격화하지는 않을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과거 이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책임과 부담을 토로하며 이 전무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도 내비친 바 있다. 이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까지 내려놓는다면 이 회장의 이번 ’소유와 경영의 분리‘ 실험은 그 순수성을 부인하기 힘들어진다. 이날도 이 회장은 “나는 (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서 “아들에게 하루를 1주일처럼 살라고 말했다. 자기도 무엇인가를 맡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오롱이 사장단 협의체를 통한 집단 경영체제의 과도기를 거쳐 단계적으로 이 전무에게 그룹을 물려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 전무가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기에는 나이가 적은 상황에서 막대한 증여세까지 내면서 무리하게 승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최근 다른 주요 그룹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이 전무에게 그룹 핵심사업(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을 맡겨 경영수업을 하도록 하면서 지주회사인 ㈜코오롱 등의 지분율을 점차 올려가는 방식으로 후계구도를 챙길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전무는 영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입대했으며, 레바논 평화유지군에 ’동명부대원‘으로 파병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해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 상무를 지냈으며, 공유부동산서비스업체 리베토의 지분 15%를 보유하면서 대표를 맡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요법’을 쓴 것”이라면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수없이 외쳤지만 잘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파격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文정부 개혁, 돌아올 수 없는 쪽으로 ‘7부 능선’ 넘은 듯”

    [색다른 인터뷰] “文정부 개혁, 돌아올 수 없는 쪽으로 ‘7부 능선’ 넘은 듯”

    지난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 의혹을 ‘고의적 분식회계’로 결론 내리자 일각에서는 “역시 참여연대 정권”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참여연대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삼성의 손을 들어줬던 금융당국이 정권이 바뀌자 결정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의혹을 부실하게 심사했던 2년 전 금융당국 관료들을 비판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데도, 끈질기게 의혹을 파헤친 참여연대와 현 정부의 커넥션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참여연대를 곱게 보는 것도 아니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 개혁과 관련해) 진보진영의 조급증과 경직성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참여연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은 사무처장은 이런 ‘낀’ 상황에 대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에겐 정치적 오해보다 지체되고 있는 개혁과 약화하는 시민운동의 동력이 더 큰 걱정이었다.→‘참여연대 정권’이란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수세력이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참여연대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모르는 분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참여연대가 정부 보조금을 많이 받는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100m 앞에서 맨 처음 집회를 한 단체가 우리다. 참여연대가 박근혜 정부 때 앞장서서 청와대 앞 100m 집회를 가능하게 했고 서울광장 집회 허가제를 폐지시켰는데, 지금 그 과실을 보수단체가 가장 많이 누리는 것 아닌가. →참여연대 출신들이 현 정부에 많이 들어간 것은 사실 아닌가. -참여연대가 설립된 1990년대 초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분화하던 시기였다. 시민단체들이 더 많은 전문가들을 각종 내부 위원회 명단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참여연대에 이름을 올렸던 수많은 전문가들 중 일부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갔다고 ‘청와대 위에 참여연대가 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상조 위원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 참여연대 안에서 그분들과 함께 활동한 간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분들은 참여연대 경험이 없었더라도 현 정부에 참여했을 것이다. 기득권을 누리던 많은 검사와 판사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는데 시민단체 출신은 정치를 하면 안 되는가. 어떤 정치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김상조 위원장의 진보진영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와 정부 부처 책임자로서 활동할 때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이 바뀐 이유까지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다만 김 위원장은 공정위가 지금까지 재벌개혁에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공정위 간부들의 사기업 재취업 등 내부 비리에 얼마나 단호했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조급증과 경직성을 말할 때가 아니다. →참여연대 산파역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어 든든하지 않나. -박 시장이 사무처장일 때와 똑같이 참여연대는 회비만으로 운영된다. 기업 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고, 후원금을 무작위로 모금하지도 않는다. 정부 및 국회와 토론회를 해도 비용은 반드시 절반씩 부담한다. 오해를 살까 봐 서울시와는 토론회도 하지 않는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 스스로 엄격하게 검열하고 경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지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많은 적폐청산이 얘기됐지만, 얼마만큼 이뤄졌는지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이다. 사법체계를 농단한 판사들, 국정을 농단한 관료들은 그대로다. 개혁의 대상이었던 검찰은 어느새 개혁의 주체가 됐다. 국정원과 기무사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부는 삼성에 기대려 하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쪽으로 ‘7부 능선’쯤 넘어간 것 같아 안타깝다. →어떤 이슈에 집중할 계획인가. -선거법 개정을 통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특별재판부 도입을 통한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등 사법개혁, 보유세 강화 등이 당면 과제다. 많은 개혁 의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병목’이 된 국회가 가장 큰 문제다. →여전히 거대 담론에만 매달리는 것 아닌가.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성평등, 이주민, 환경, 청년, 안전, 주거 등 다양한 이슈가 시시각각 분출하고 있지만 기존 시민운동은 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참여연대 역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개혁이 뒷걸음질치는 걸 저지하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민을 조직해 저항하는 방식의 시민운동이 계속될 수 있을까. -나 역시 ‘기승전-집회’ 방식의 운동에 회의적이다. 요즘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은 과거의 ‘권’(운동권)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단체에 소속되기도 꺼린다. 구호와 투쟁가도 거부한다. 청년유니온처럼 새로운 단체가 떠오르는 듯했으나 지금은 시들해졌다. 기존 운동이 시민들의 새로운 요구와 특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시민들은 개인화하고 흩어졌다. 시민운동의 역할이 좁아지니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 어젠다를 주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존 운동의 한계는 명확해졌는데 새로운 운동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가 생긴 지 벌써 24년이 됐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나. -참여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회원은 크게 늘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그나마 살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인식 때문에 회비 내는 회원을 늘리기도 어렵다. 지금 상근자가 57명이고, 회계사 변호사 등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 실행위원들이 200명이 넘는다. 한 달 살림에 1억 70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적자다. 퇴직금 지급용으로 쌓아뒀던 잉여금을 조금씩 헐어 버티고 있다. 몇 년 뒤면 정년퇴직하는 상근자도 나온다. 창립할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조직 운영의 난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창구 사회부장 window2@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박정은 사무처장은 누구 지난 2월 제7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선출된 박정은씨는 참여연대 역사상 첫 여성 단독 사무처장이다. 대학원에서 노동정치를 전공한 그는 참여연대에 재직하던 선배의 권유로 2000년 처음 참여연대에 몸담았다. 참여연대 부설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 활동을 시작으로 정책실을 거쳐 평화군축센터 팀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는 안진걸 박근용씨와 함께 협동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평화군축센터에서 오래 활동하며 이라크 파병,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의 문제를 두고 정부와 싸웠고 북핵 문제, 방위비 분담금, 북한 인권 등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 미국 LA 인근 술집 총격범은 아프간 참전병…PTSD 겪었나

    미국 LA 인근 술집 총격범은 아프간 참전병…PTSD 겪었나

    7일 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술집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이언 데이비드 롱(28)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약 5년간 해병대에 복무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전투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8일 롱은 사우전드 오크스에 위치한 보더라인 그릴 & 바에서 권총을 난사했다. 이로 인해 12명이 사망했으며 사망자 중에는 경찰관도 있었다. 롱 역시 술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술집에 들어온 지 불과 몇 초 안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롱은 총기를 사건 현장에서 약 8㎞ 떨어진 주택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고 그를 아는 이웃이 전했다. 롱의 어머니는 12~15년 전부터 그곳에서 거주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개월 전쯤 그의 집안에서 물건을 부수는 소리와 고성이 들려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경찰은 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롱에게 실제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그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은 없으며 교통사고 등으로 몇 차례 입건된 기록만 남아있다. 롱이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합법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탄환을 더 많이 발사할 수 있는 ‘확장 탄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캘리포니아에서 불법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터넷 좀비? 정치 팬덤? ‘문빠’는 누구인가

    인터넷 좀비? 정치 팬덤? ‘문빠’는 누구인가

    文대통령 지지자들 정치·철학적 접근 촛불혁명 ‘과정’에서 생성 규정 부작용 등 분석 없어 아쉬워문베충, 문각기동대, 문위병, 문슬림…. 문재인 대통령을 막무가내로 추종하는 집단을 낮춰 부르는 명칭이다. 이를 대표하는 말로 ‘문빠’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빠’가 주는 어감이 그리 좋지는 않다. 그러나 ‘이니(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마음대로 해’ 하는 식의 행태를 꼬집는 단어로 이 말만큼 어울리는 말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이런 ‘문빠’를 ‘인터넷 좀비’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에 관한 일시적인 정치 팬덤 정도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다. ‘전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뒤따랐던 이들과 문빠가 뭐가 다르냐?’고 비판하거나, 특정 정치인의 카리스마에 도취해 떼로 몰려다니면서 정치 지형을 파괴하는 괴물, 심지어 애써 찾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간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은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문빠’를 정치 철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저자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에 관한 정치 팬덤만을 ‘문빠’로 규정한다. 문 대통령의 정치를 지지·지원하면서 시민 주권과 민주주의의 복원을 지향하는 공론과 공감의 상호 주체, 그리고 이들의 활동 및 효과를 총괄하는 개념으로 ‘문파’를 따로 떼어낸다. 쉽게 말해 ‘문빠’는 그저 단순한 정치 팬덤이지만, 이 가운데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정치 현상으로서 ‘문파’를 보자는 이야기다. 저자는 우선 문파를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규정한다. 문파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촛불혁명 과정에서 생성된 이들이다. 의회, 광장에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선 이들은 한국 정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정당이 권력을 나눠 먹는 지금까지의 정치 지형을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던 미디어 권력 역시 인터넷, 팟캐스트 등을 기반으로 나서는 문파의 위협을 받고 있다. 권력은 추종을 부르고, 포퓰리즘을 수반한다. 과거에도 그랬다. 그러나 저자는 문파가 이른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뿐 아니라, ‘안철수 현상’과도 다르다고 강조한다. 박사모나 안철수 현상은 포퓰리즘으로 생겨난 권력을 박근혜, 안철수 개인이 소유하려 들자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문파와 가장 유사한 이들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 할 수 있다.한데 생성 과정은 비슷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노사모는 권력을 추동했던 386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소멸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수용, 대연정 제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영남패권주의가 끼어들면서 많이 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문파는 아직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의견과 의지를 스스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한다. 386을 위주로 한, 이른바 ‘입진보’(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진보)가 했던 비판적 지지에서 벗어나 당파적 지지로 해석할 것을 주문하는 점, 정치적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영남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문파를 분석하고자 9개월 동안 문파, 혹은 문빠와 만나 ‘당신은 문빠인가’, ‘조직이 있고 소통 하나’, ‘문재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지지할 것인가’ 등 모두 28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난 문파들은 괴물도, 요물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려는 시민 주권자들일 뿐이었다. 내가 만난 문파는 각자 자기 생각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민들이었다”고. 자신을 ‘입진보’라고 고백하면서까지 문파를 추적한 저자는 그러나 문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지는 못했다. 전반적으로 문파를 우호적으로 보는 점, 특히 문파의 부작용에 관해 크게 다루지 않고 ‘문빠의 탓’으로만 치부한 점도 이 책의 큰 단점이다. 그러나 문파를 단순한 팬덤 집단인 문빠에서 떼내어 하나의 정치 현상으로 파악한 시도는 높게 살 만하다. 지금의 정당과 의회가 시민 주권자들의 의견과 의지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당과 의회의 출현이 지체될 것이라는 경고 역시 귀 기울일 만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윤필용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전역”…박정기 전 한전 사장 승소

    “윤필용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전역”…박정기 전 한전 사장 승소

    법원 “전역 무효”…보안사 조사관 협박으로 전역지원서 작성한 사실 인정박정희 정부 시절 발생한 ‘윤필용 사건’에 휘말려 고문을 당한 끝에 전역한 박정기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45년 만에 억울함을 벗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조미연)는 박정기 전 한전 사장(당시 육군 중령)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보안사 소속 조사관들의 강요, 폭행, 협박으로 전역지원서를 작성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승소한 박 전 사장이 연루된 됐다는 의혹을 받은 ‘윤필용 사건’은 1973년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쿠데타 모의 의혹을 받은 것을 말한다. 이 일로 윤필용 전 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옥살이를 하다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그와 가까운 장교들도 대거 군복을 벗고 쫓겨났다. 이들 중 일부는 2000년대 이후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사장에 따르면 1958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월남전 파병 기간 중이던 1968∼1970년 윤 전 소장과 인연을 맺었고, 귀국 후 수도경비사령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그는 제722 포병대대장으로 근무하던 1973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압송됐다고 한다. 그는 보안사 조사관들로부터 윤필용 전 소장과의 관계, 하나회 명단 등에 관해 조사를 받은 후 전역지원서를 쓸 것을 요구받았지만 거부했다. 이에 박 전 중령을 ‘특실’로 데려가 옆방에서 나는 비명 소리와 숨넘어가는 소리 등을 듣게 만들어 압박 강도를 높였다. 계속된 구타와 협박을 당한 후 공포감에 전역지원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만22세의 나이에 소위로 임관해 전역 당시 만37세로 계급은 중령이었다”며 “원고가 자진해 전역을 지원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박 전 중령과 같은 조사를 받은 증인이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으로부터 “박 전 중령도 잡혀 왔다. 견디기 힘들 것이다. 군생활 여기서 끝나지 않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또 “윤필용 사건으로 전역 처분을 받은 장교들이 가혹 행위로 전역지원서를 작성했고, 그에 기초한 처분은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이 보안사 조사관들로부터 고문 등의 가혹 행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사장은 전역 후 전두환 정부 시절 한국중공업과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뉴시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트럼프 겁박에도 멈추지 않는 캐러밴

    트럼프 겁박에도 멈추지 않는 캐러밴

    WP “아프간 주둔 미군 규모와 맞먹어” AP “병력수 불가능… 反이민 표심 자극” 엘살바도르서 4차 캐러밴 2000명 출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경은 신성한 것”이라며 최대 1만 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미국으로 오고 있는 중미 이민자 행렬(캐러밴)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애초 1000명 수준으로 계획됐던 파병 규모가 5200명으로, 다시 1만 5000명으로 널뛰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이슈를 정치 쟁점화해 중간선거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구심 어린 시선이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이날 엘살바도르에서는 2000명 규모의 제4차 캐러밴이 출발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 군을 남부 국경에 동원하고 있다. 더 많은 병력이 가는 중이다. 싸움꾼, 조직폭력배가 끼어 있는 캐러밴을 미국에 들이지 않겠다”면서 “우리의 국경은 신성하다. 돌아가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워싱턴DC에서 기자들을 만나 “캐러밴을 막으려고 최대 1만 5000명에 이르는 군 병력을 미국과 멕시코 접경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미 정부 관계자는 남부 국경에 800~1000명 규모의 병력 파견을 언급했지만 지난달 29일 여단급 규모인 5200명으로 증파됐고, 이날 사단급인 1만 500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워싱턴포스트(WP)는 “병력 1만 5000명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규모와 맞먹고 이라크 주둔 미군의 3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AP는 “병력 수가 매일 바뀌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라고 꼬집으면서 “1만 5000명은 불가능한 수치”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AP에 따르면 미국 내 병력 운용 상황을 감안할 때 파견 가능한 최대 규모는 1만명이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이민 이슈를 중간선거에서 지지 세력 결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법 강화와 멕시코 국경지대의 장벽 건설 공약으로 보수 표심을 자극했었다.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정치적 목적에 군을 이용한다”고 비판했고, 켈리 매그서먼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도 “나쁜 선례를 세우는 정치적 쇼이자 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국경 경찰관 등의 요청에 따른 실질적 지원으로 우리는 쇼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병력 증파 위협에도 이날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는 약 2000명 규모의 4차 캐러밴이 출발했다. 캐러밴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면서 평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들이 용기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시민들은 캐러밴 대열을 향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신의 은총이 있기를 바란다”고 외치며 응원했다. 지난달 12일 온두라스에서 출발해 멕시코에 진입한 1차 캐러밴 4000여명은 미 국경에서 1450㎞ 떨어진 남부 주후치탄에 도달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한뼘 한국사/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지음/푸른역사/296쪽/1만 5000원우리의 역사 교육은 국가와 민족 우선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경향을 갖는다. 그 범주 밖의 사람과 행동은 배제되거나 홀대받기 일쑤다. 책은 그 흐름과 달리 새로운 역사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발한 신진연구자들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의 첫 결실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박사과정·수료생 열세 명이 역사학 대중화 차원에서 기획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놨다. ‘한국사 밖의 한국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글들은 모두 배제·홀대의 대상이었던 인물과 사건을 재평가한다. 낮은 곳에 위치했던 평범한 사람들, 주류 역사 서술에서 금기시됐던 이들, 같은 국민이었지만 잊혀져간 존재들이 역사의 정면에 새로운 얼굴로 부상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사 주인공’의 재배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감내했던 불합리한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 냈던 삶의 방식들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의 계급별 경험 차이도 신선하다. 그동안 똑같이 여겨졌던 파병 군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는다. 1925년 발생한 예천 형평사 공격사건에선 사회적 약자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 안보를 강조했던 공장새마을운동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간 유신시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역사의 경계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민족사에서 사라졌던 조선족의 조국관 형성 과정, 조선시대 세종의 4군6진 개척 과정에서 북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에 대한 인상이 새롭게 각인된다. 글들은 결국 한쪽을 향해 모아진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 역사 교육,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모두 반영하는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테러 프리존’ 롯데월드타워, 360도 카메라로 보안 강화

    ‘테러 프리존’ 롯데월드타워, 360도 카메라로 보안 강화

    지난해 민간기업 최초로 대테러팀을 신설해 눈길을 끌었던 롯데월드타워가 이번에는 360도 카메라를 도입해 보안 강화에 나섰다.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대테러팀이 스타트업 기업인 ‘링크플로우’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60도 카메라(FITT360 Security)를 장착하고 근무한다고 19일 밝혔다. 롯데에 따르면 이 카메라는 목에 거는 넥밴드 형태에 미니카메라가 4개 장착돼 촬영자가 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전면뿐 아니라 측면, 뒷면까지 모두 담을 수 있다. 기존의 경찰이나 보안업체가 사용하는 바디캠이 전방만 찍을 수 있고, 건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반면 360도 카메라를 활용하면 사각지대 없이 직접 이동하며 전 방향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8시간 연속 촬영 및 실시간 전송도 가능하다. 앞서 롯데월드타워는 초고층 건물의 구조상 테러에 노출될 위험에 대비해 지난해 1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테러팀을 신설했다. 팀원 모두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파병을 다녀온 경력이 있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대테러특임대 중사 이상 간부 출신으로 구성됐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360도 카메라 도입으로 타워 내 화재, 테러 등의 긴급상황 발생 시 실시간 녹화를 통해 신속하고 안전한 초기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링크플로우는 롯데그룹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VC) 엑셀러레이터에서 선발된 기업이다. 롯데는 신동빈 그룹 회장의 주도로 스타트업 육성 차원에서 2016년 2월부터 엑셀러레이터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엘캠프’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모두 42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日자위대 기밀문서, 인공지능(AI)이 관리한다…日방위성, 2021년부터

    日자위대 기밀문서, 인공지능(AI)이 관리한다…日방위성, 2021년부터

    일본 방위성이 2021년부터 인공지능(AI)을 통해 행정문서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일지 은폐 파문 등으로 드러난 허술한 공문서 관리 문제를 AI를 통해 해소한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17일 “방위성이 AI 기술을 활용한 행정문서 관리 시스템을 2021년부터 도입하기로 하고 내년 예산부터 558억엔(약 5500억원)을 편성했으며, 정보통신과에 ‘AI 기획팀’(가칭)도 신설한다”고 보도했다. 일본 중앙부처 중 AI 문서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방위성이 처음이라고 마이니치는 설명했다.그동안 방위성은 국회 질의답변 과정 등에서 문서 은폐 및 관리 허술 등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지난 4월 이라크에 파병돼 활동했던 육상자위대의 활동일지를 지난해 3월 파악하고도 1년여 동안 숨겼던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방위성 조사 결과, 이 내용은 이라크 파병과 직접 관련이 없는 ‘교훈업무 각종자료’로 분류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성은 종이문서의 전자화를 추진하고 서버들을 통합해 파일명이나 내용에 따라 바로 검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특히 과거의 문서 공개·비공개 사례를 AI에 학습시킴으로써 기밀자료나 개인정보 등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마이니치는 “현재 방위성 안에는 행정문서를 다루는 시스템이 조직이나 용도별로 60~70개에 이르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도 별도로 구축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해 왔다”고 설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항모기동부대, 봉인깨고 나오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항모기동부대, 봉인깨고 나오다

    지난달 26일, 일본 사세보(佐世保)와 구레(吳) 해군기지에서 3척의 대형 전투함이 출항했다. 일본 서부 해역을 담당하는 제4호위대군 소속 전투함들로 구성된 이 함대는 제4호위대군 사령관 후쿠다 타츠야(福田達也) 해장보(海将補·해군소장)의 지휘 하에 편성된 일명 『ISEAD18』, 즉 인도-남중국해 임무부대(Indo Southeast Asia Deployment)-2018였다. 태평양에 모습을 드러낸 이 함대의 위용은 마치 미니 항모전단을 방불케한다. 공식 발표된 배수량은 2만 7000톤이지만 실제 크기는 미 해군 4만톤 급 강습상륙함 수준인 최신형 헬기항모 카가(かが)를 기함으로 일본 자체 기술로 개발한 미니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7,000톤급 최신형 방공구축함 스즈스키(すずつき), 6,000톤급 다목적 구축함 이나즈마(いなづま) 등 3척의 대형함정과 800여 명의 병력이 ISEAD18의 전력이다. ISEAD18이 미니 항모전단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 전력 때문이다. 기함인 카가는 일본이 굳이 호위함(護衛艦)이라는 분류명을 붙이고 있지만, 크기나 형상, 설계 등 모든 면에서 사실상 항공모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군함이다. 길이 248m, 폭 38m가 넘는 비행갑판과 넓은 격납고를 이용해 최대 28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으며, F-35B 전투기의 경우 별다른 개조 없이도 14대까지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 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체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갑판에 내열 처리만 한다면 미 해군의 와스프(Wasp)급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스키점프대 설치 없이도 당장 F-35B 운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일본 방위성은 이 군함을 항공모함으로 전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항모 임무 부여를 위해 여유 출력도 매우 넉넉하게 잡았고, 항공기용 유류고와 탄약고로 사용될 공간도 마련했을뿐만 아니라, 차후 미국 정규 항공모함처럼 사출식 함재기 운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전자기사출기(EMALS) 설치를 위한 예비 공간도 마련해 두었다. 방위성은 초기에는 이 군함의 항모 개조설을 부인했지만, 현재는 집권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방어형 항공모함’이라는 이름으로 항모 개조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카가를 호위하는 호위전력도 막강하다. 방공구축함으로 ISEAD18에 합류한 아키즈키급 구축함 스즈스키는 일본이 자체 개발한 위상배열레이더 FCS-3A를 탑재한 고성능 방공구축함이다. 미국 이지스함의 SPY-1 계열 레이더보다 더 진보한 질화갈륨(GaN) 소재 송수신모듈을 적용, 강력한 탐지 능력을 자랑하며 ESSM 함대공 미사일을 이용해 50km 거리에서부터 10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이 군함에 최대사거리 460km인 미국제 SM-6 함대공 미사일과 최대 100km 이상 사거리를 갖는 자국산 03식 개량형 함대공 미사일 탑재 개량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렇게되면 사실상 미국의 정규 이지스함에 필적하는 방공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 척의 호위함인 이나즈마 역시 동급 범용 전투함 중에는 탑클래스 수준에 들어가는 전투함이다. 비록 회전식이지만 능동위상배열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으며, 32기의 수직발사관에 쿼드팩 방식의 ESSM 함대공 미사일 최대 128발을 탑재하고 동시에 최대 8개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함수소나와 예인소나, SH-60K 해상작전헬기까지 탑재해 대잠 작전 능력도 우수하다. 일본이 군사작전을 목적으로 전투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공해상으로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척의 군함을 묶어 군사외교 차원에서 해외 순방을 하거나, 소말리아 일대에서 해적 퇴치 활동을 했던 사례는 있었지만 부대 이름에 해외 전개(Deployment)라는 용어, 즉 특정 지역에 일정 기간 군함을 파견해 군사작전을 펼치는 개념의 파병은 해상자위대 창설 이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전개 개념의 해외 파병은 군사력의 해외 투사를 금지해온 평화헌법과 전수방위(専守防衛)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해외 군사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해외에서도 자위대의 군사작전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11개 관계법령의 제·개정을 강행 처리한 뒤 자위대의 군사력과 해외 작전 능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출항한 ISEAD18 함대의 기함인 카가는 구일본제국 해군 항공모함 이름에서 함명을 따왔다. 카가는 1932년 상하이 사변 당시 중국 상하이 일대에 군 기지·민간 시설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일삼았던 악명 높은 군함이었으며, 태평양전쟁 시발점이었던 진주만 공습작전의 선봉에 섰던 배이기도 하다. 동행한 스즈즈키 역시 태평양 침략전쟁에서 동남아시아 일대로 침략군을 실어나르던 수송함대를 호위하는 제61구축함전대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구일본제국해군 스즈즈키(すずつき)에서 함명을 따 왔으며, 이나즈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와 중국대륙 침략의 선봉에 섰던 이카즈치(いかずち)급 구축함 이나즈마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후 해상자위대 최초의 해외 임무 전담 함대의 구성 전투함들 모두가 공교롭게도 과거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던 군함들의 이름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이다. 이들 함대는 사세보와 구레를 출항한지 4일만에 필리핀 서북 해상에서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타격전단(Ronald Reagan Carrier Strike Group)과 합류했다. 이들은 남중국해에서 연합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에 나섰는데, 이는 앞으로의 서태평양 세력구도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신호탄과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평화헌법이라는 봉인에 묶여있던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하에 미군과 인도-태평양 전역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이미 해외 전개용 함대를 만들어 각지의 바다를 누비고 있으며, 멀리 중동에는 전후 최초의 해외 전진기지까지 건설해 군사력을 파견해 놓고 있는 상태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위협이 커질수록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더욱 노골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이러한 구도 속에서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지역 패권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115년전, 세계 최강 패권국이었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영국의 지원 하에 군사력을 키워 러시아를 격파한 뒤 아시아 패권을 장악했던 전례가 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의 태평양 진출 저지라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얻어 눈부신 경제발전과 세계 2위의 해군력을 건설한 바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일본은 초강대국을 등에업고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했던 과거 사례처럼 이제는 미·중 패권경쟁 구도를 이용해 또 한번의 비상(飛上)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역사의 반복이 일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러시아를 겨냥해 연마됐던 일본의 칼끝이 러시아를 쓰러뜨린 뒤 한반도와 중국, 아시아 전역으로 향했던 것처럼 지금 중국을 겨냥해 커지고 있는 일본의 군사력이 미래 국제 정세 구도 변화에 따라 또다시 한반도로 향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키우는 한편, 일본을 제어할 수 있는 초강대국을 우리 편으로 붙잡아두기 위한 지혜로운 외교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군인 부부의 웃음… “생각지 못한 신혼여행”

    군인 부부의 웃음… “생각지 못한 신혼여행”

    청와대 영빈관서 배우자와 함께 오찬 ‘문재인 시계’ 선물… 국회·청남대 방문 “군인 부부를 ‘중소기업’ 아니냐고들 하시는데(웃음) 국가에 헌신한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다. 우리 부부가 11차례 부대를 옮겼고 6학년인 딸은 이미 7번이나 이사를 했다. 모두 공감하실 텐데 (이번 국군모범용사 선발을) 생각지 못한 신혼여행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여군대표 박선미 육군 상사의 배우자인 박병욱 육군본부 원사) “1998년 남편을 만나 ‘아직까지’ 큰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았다.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군과 가족에게만 헌신하는 남편은…(눈물). 평생 오기 어려운 곳에 와서 보내는 오늘이 평생 기억으로 남고 행복하다.”(강성만 공군 상사의 배우자 원현자씨) 청와대에서 4일 열린 제55회 국군모범용사 초청 행사에 동반 참석한 배우자들은 평생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한 남편과 아내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서울신문사와 국방부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부사관 9만여명 중 선발된 모범용사 60명과 배우자 등 120명이 참석해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오찬을 함께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5일 대북 특사로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는 정 실장의 급박한 일정으로 이 차장이 대신했다. 해병대 1사단 양병장 원사는 “정 실장님을 위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이 기운을 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범용사 초청 행사는 1964년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군의 사기 진작과 민·관·군의 유대 강화를 위해 모범용사 50명을 선발한 데서 비롯됐다. 현재까지 3000여명이 거쳐 갔다. 이 차장은 “짧게는 9년, 길게는 35년간 애쓰신 노고를 치하드리며 대통령을 대신해 환영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 추진방향을 7월에 확정해 모든 분야에서 국방개혁을 착실하게 수행 중이며 내년도 국방비를 8.2%로 획기적으로 증액하는 안을 만들었다. 국방개혁을 통해 더 강해질 군에서 허리 역할을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신문 고광헌 사장은 “1977~79년 육군 병장 고광헌을 알뜰히 보살펴 준 손주병 상사님이 생각난다”며 “여러분 같은 동료·선배가 있다는 게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모범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도 “마음껏 힐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범용사와 배우자들은 오찬 후 ‘이니템’(문재인+아이템)으로 인기가 높은 ‘문재인 시계’를 선물 받았다. 이들은 7일까지 국회와 국가정보원, 미 8군 캠프 험프리스, 삼성전자(기흥), 청남대 등을 방문해 재충전 시간을 갖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최태원 SK회장 차녀 최민정, 해군 전역 뒤 중국 투자회사 입사

    최태원 SK회장 차녀 최민정, 해군 전역 뒤 중국 투자회사 입사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인 최민정(28)씨가 지난해 해군 중위로 전역한 뒤 중국 투자회사에 입사했다. 최씨는 지난 7월 중국 상위 10위권 투자회사인 ‘홍이투자’(Hony Capital)에 입사해 현재 글로벌 인수합병(M&A) 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홍이투자는 중국 1위 컴퓨터 제조사인 레노버를 소유한 레전드홀딩스의 투자전문 자회사로 에너지, 정보기술(IT),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2014년 재벌가 딸로는 이례적으로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한 최씨는 2015년 청해부대 19진에 속해 아덴만에 파병됐다. 2016년에는 서해 최전방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해군 중위로 전역 후 중국에 머물며 진로를 고민하다 전공을 살려 홍이투자 입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중국 인민대 부속 중·고등학교와 베이징대 경영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에서 중국 자본시장과 M&A, 투자분석 등을 전공했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글로벌 투자은행과 벤처캐피털에서 근무했고, 2014년 한류 제품을 중국에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판다코리아닷컴을 공동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베트남 전장에서 날 미치지 않게 만든 QPR 매치 프로그램”

    “베트남 전장에서 날 미치지 않게 만든 QPR 매치 프로그램”

    “베트남 전장에서 날 미치지 않게 한 것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의 매치 프로그램이었다.” 영국 서리주 출신인 닐스 가이는 미국으로 이민 간 1968년 2월 군에 자원 입대했다. 입대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빨리 파병될 줄 몰랐는데 22세이던 1969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은 참혹하기만 했다. 포탄이 비오듯 떨어지고 사방에서 총성이 들리고 총알이 핑핑 날아다니는 곳에서 지내는 일은 끔찍하기만 했다. 외롭고 고단했다. 스무살까지 영국에서 보낸 그는 우연히 QPR의 매치 프로그램을 뒤적이다 마음의 위안이 된다고 느꼈다. 부모들은 자주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이 QPR의 매치 프로그램을 얻으러 가려면 너무 멀기도 했다. 가이는 프로그램에 인쇄된 주소로 편지를 보내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매치 프로그램을 보내줄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버크셔주 슬라우에 사는 11세 소년 존 와일드와 펜팔을 하며 프로그램을 받아보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받아 보는 QPR의 매치 프로그램은 특별한 힘이 됐다. 그걸 받아 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단한 은총을 받았다고 느껴졌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지금 60대가 된 와일드 역시 그 당시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집을 이사해 많은 친구들과 헤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 런던에 살고 있어서 아빠나 새 친구들이랑 QPR 경기를 보러 다녔다. 그래서 닐스의 편지를 읽은 순간, 프로그램과 QPR 소식을 오려둔 것들을 보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떤 때는 여러 배지들과 물품들도 보내줬다. TV로 베트남 전쟁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닐스가 떠올라 관심있게 지켜봤다. 종전 뒤 둘의 연락이 끊겼고, 와일드는 닐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참전용사 명단을 뒤적였지만 나오지 않았다. 어느날 페이스북을 생각해내 그의 이름을 입력했더니 곧바로 나왔다. 그가 엄청난 눈물을 쏟아내자 아내는 뭐가 잘못됐느냐고 물었고 그는 “평생 이 남자를 찾고 있었다”고 답했다. 와일드는 닐스에게 1969년 QPR에 편지를 보낸 남성이 맞는지 물어보면서 자신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던 11세 소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맞다고 답한 것은 물론이었고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 해도 큰 기쁨이었다. 둘은 계속해 온라인으로만 대화했고 아직 직접 만나지는 않았는데 지난 24일 BBC 5채널 라이브쇼를 통해 처음 목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닐스는 현재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있고 와일드는 브랙넬에 살고 있어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와일드는 “언젠가 제가 맥주 한잔 사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막강 파벌·경제 호황 올라탄 아베…3연임 카운트다운

    [글로벌 인사이트] 막강 파벌·경제 호황 올라탄 아베…3연임 카운트다운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다음달 20일 치러진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국회 다수 의석 정당의 총재가 ‘내각총리대신’, 즉 총리가 된다. 자민당은 전체 국회 의석 707석(중의원 465석, 참의원 242석) 중 57%인 405석(중의원 283석, 참의원 122석)을 차지하고 있다. 집권당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국가 지도자의 선출인 만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와 같은 느낌은 없지만, 3년간 나라를 이끌 총리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안팎의 관심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1개월 앞둔 현재 출마 확정은 2명. 아베 신조(63) 현 총리가 ‘3연임’에 출사표를 던졌고, 이에 맞서 이시바 시게루(61) 전 간사장(한국의 사무총장과 비슷)이 ‘권토중래’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직접적인 맞대결은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현재로서는 아베 총리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문답으로 풀어 봤다.1.이번 총재 선거가 당초 예상과 달리 ‘양자 대결’ 구도로 갈 공산이 크다는데. -그동안 아베 총리와 이시바 전 간사장 외에 기시다 후미오(61) 정무조정회장(한국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비슷), 노다 세이코(58) 총무상 등이 후보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기시다 정조회장이 차차기를 겨냥, “아베 총리 지지”를 호소하며 불출마를 선언했고, 노다 총무상은 입후보를 위해 필요한 ‘추천인(의원) 20명’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와 이시바 전 간사장의 양자 대결이 확정적이다. 두 사람은 아베 총리가 1차 집권(2006~2007년) 이후 몰락했다가 정치적으로 부활해 다시 총재가 될 때인 2012년 9월 겨룬 적이 있다. 당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지역당원 표를 바탕으로 1차 투표에서 아베 총리를 앞섰지만, 국회의원만으로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패했다. 2.자민당 총재 선거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나. -405명의 소속 의원들이 한 표씩 행사하는 ‘국회의원표’와 전국 100만 당원들이 지역별로 투표하는 ‘당원표’의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당원표도 의원표와 같은 405표가 배정돼 합계 810표로 차기 총재가 결정된다. 당원표는 당원들의 표를 집계한 뒤 후보자의 득표율을 바탕으로 405표를 비례해 배분하는 식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면 바로 당선이 선언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위 2명만 추려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3.현재 판세는 아베 총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던데. -대신(장관) 임명권을 비롯해 현직 총재 겸 총리가 가진 막강한 기득권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1955년 자민당 출범 이후 현직 총재가 패배한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당 내부에서 치르는 선거이기 때문에 현직 총재의 영향력은 특히 절대적이다. 특히 자민당 총재 선거는 각 파벌들의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아베 총리는 전체 7개 파벌 중 5개 파벌로부터 100%의 지지를 받고 있다. 창당 이래 지속돼 온 당내 파벌들의 위상과 영향력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다. ‘보수’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지만 세부적인 이념과 정책 방향이 다르고 다양한 이해관계의 상충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당 내의 정당’으로서 성격을 띤다. 자민당 내 의원 405명의 82%인 332명이 7개 파벌 중 어느 한 곳에 속해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파벌은 73명뿐이다. 4.현재 자민당 내 파벌들의 세력 구도는 어떻게 돼 있나. -현재 가장 큰 파벌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회장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로 중의원 58명, 참의원 36명 등 94명을 거느리고 있다. 이어 ‘아소파’(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59명, ‘다케시타파’(다케시타 와타루 총무회장) 55명, ‘기시다파’(기시다 정조회장) 48명, ‘니카이파’(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44명, ‘이시바파’(이시바 전 간사장) 20명, ‘이시하라파’(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경제재생상) 12명 순이다.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신은 총리와의 친밀도나 정권 창출 기여도 등에 따라 계파별로 분배돼 있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 가장 많은 각료나 당 간부 자리가 배정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탄생을 도와준 아소파의 수장이 부총리를 맡고 있는 것 역시 권력 배분의 결과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출마를 포기한 것도 마찬가지. 어차피 승산이 없는 상태에서 아베 총리와 척졌다가는 앞으로 3년간 대신이나 당 간부 등 요직에서 밀려나 찬밥 신세가 될 것을 우려한 이유가 가장 크다. 5.그런데 아베 총리는 올 초만 해도 얼마 못 갈 것처럼 얘기되지 않았나. -올 2월 이후 잇따른 의혹과 잘못으로 만신창이 수준까지 갔지만, 지금은 적어도 당내에서 만큼은 ‘완벽 부활’에 성공한 상태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활동 일지 은폐, 재무성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등 그를 어렵게 했던 여러 사건들 중에서 중심이 되는 두 개의 기둥은 역시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극우성향 사학재단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특혜 의혹)과 ‘가케학원 스캔들’(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에 대한 수의대 신설 허가 특혜 의혹)이다. 그러나 꾸준히 추락하던 정권 지지율은 30%선까지 하락한 뒤 더이상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다 6월을 지나며 반등세로 전환됐다. 6.우리나라로 치면 ‘국정농단’급 의혹인데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본의 정치 전문가들 중에서도 현재와 같은 국면 전환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매우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우선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를 이끌어 갈 집권당으로 자민당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자민당 내에서는 차기 총재로 아베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들 많이 생각한다. 이는 아베 총리가 당의 중심에 존재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여기는 파벌이나 집단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내 선거가 아니라 전 국민이 한 표씩 행사하는 대통령 투표였다면 아베 총리가 어떻게 됐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7.일본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본다. 우선 신문기자 A씨의 말. “아마 한국에서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같은 것이 생겼다면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같이 정권의 잘못에 항거하는 힘이 약하고 이를 이끌어 낼 조직력도 없다. 또한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난 것 등에 대해 아베 정권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모리토모·가케 학원 부당 지원이 상당 부분 진짜라고 믿으면서도 의혹을 파헤치기보다는 그냥 덮어 두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학교수 B씨는 “동아시아의 1당 독재국가 3곳이 있는데,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 그리고 일본(자민당)이라는 말이 농반진반으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의 전체 사회 시스템이 자민당 중심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민당이 정권을 잡아야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강하다. 그런 자민당 안에서 결국 아베 총리가 제일 낫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기자 C씨는 “아베 총리를 극우 인사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정치에서는 반대쪽과도 적당히 타협을 해 온 게 아베 총리다. 현재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아베 정부는 좌회전까지는 몰라도 마냥 우회전만을 하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파병 떠난 아빠와 똑 닮은 인형 본 아들의 반응 (영상)

    파병 떠난 아빠와 똑 닮은 인형 본 아들의 반응 (영상)

    파병 간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한 엄마는 아들에게 아빠 인형을 만들어주었고, 그 인형을 무척 좋아하게 된 아들의 사랑스러운 반응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ABC, CBS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 육군 병장인 아빠 체이스 브리스코는 아들 나단이 태어난 지 약 3달 정도 됐을 때, 폴란드로 해외 파병을 가게 됐다. 엄마 디에나는 “남편이 파병을 가기 전, 매일 밤 나단을 재웠다. 그런데 아빠가 떠나고 난 후 아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꽤 오랜 시간 아빠를 보지 못할 나단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바로 군인인 아빠를 닮은 봉제 인형을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목소리를 녹음한 장난감 ‘대디 돌’(Daddy Doll)을 만들어 나단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아빠를 복제한 인형을 본 아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남겼다. 영상에는 나단이 처음 아빠 인형을 힐끗 보고 난 뒤, 인형에게 곧바로 사로잡힌 모습이 담겨있었다. 인형이 누구인지 즉시 알아차린 듯, 나단은 놀라움과 환한 미소를 띠며 인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온몸으로 아빠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엄마 디에나는 “비록 인형이지만 나단이 잠드는 것을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단,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금방 들어갈게’라는 메시지에 나단은 아주 좋아했다”고 전했다. 이어 “나단이 심통을 부릴 때 인형을 가져다주면 영상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매일 밤 아들 침대에 아빠 인형을 둔다”면서 “덕분에 아빠와 아들은 한시도 떨어질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영상은 디에나의 페이스 북에서만 2만 건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나단의 영상을 아내에게 전달 받은 아빠 체이스는 “오, 맙소사! 나단이 나를 알아보네?”라며 감격했다. 끝으로 엄마는 “남편이 미 텍사스주 킬린에 있는 부대로 돌아올 예정이지만 군대의 사정을 잘 모르겠다”면서 “그때까지 나단은 아빠가 얼마나 멀리 있든 아빠 인형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페이스북(디에나 브리스코)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세계 골프 위협하는 ‘태국 DNA’…거센 ‘泰風’

    세계 골프 위협하는 ‘태국 DNA’…거센 ‘泰風’

    우리가 알고 있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3·미국)의 본명은 엘드릭 톤트 우즈다. 타이거는 닉네임(별명)이다. 1975년 12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몸 절반에는 태국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미국인 얼 우즈, 어머니는 태국인 쿨티다다. 그의 핏줄은 다소 복잡하다. 우즈에게는 배다른 두 형과 누나가 있다. 우즈의 이름 엘드릭(Eldrick)은 어머니가 지었다. 아버지의 이름 얼(Earl)에서 ‘E’를, 어머니 이름 쿨티다(Kultida)에서 ‘K’를 앞뒤에 따왔다. 별명 ‘타이거’는 그린베레였던 그의 아버지가 베트남전 파병 시절 만났던 베트남 중령 ‘푼 당 퐁’의 이름을 기려서 지었다. 퐁은 얼 우즈의 파트너이자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퐁은 뛰어난 군인이었고 얼은 호랑이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타이거’라 불렀다. 금세기 가장 위대한 골퍼 중 한 사람인 우즈가 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건 최근 일고 있는 태국 여자골프의 상승세와 맞물려 새삼스레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이제 태국은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대세’로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다고 태국 여자골프에 세계랭킹 1위의 에리야 쭈타누깐, 그의 언니 모리야 등 쭈타누깐 자매만 있는 게 아니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곳곳의 골프 빅리그에서 숱한 태국 골퍼들이 활약하고 쑥쑥 커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올해로 출범 14년째를 맞은 중국여자프로골프(CLPGA) 투어의 상금 순위를 보면, 얼마나 많은 태국 선수들이 리더보드를 점령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5일 현재 프로 전향 4년차인 29세의 사란포른 랑쿨가세트린이 1위에 올라 있는 가운데 수빠마스 상찬, 카냐락 프레다숫칫, 촌라다 차야눈 등이 2~4위까지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또 파린다 포칸, 완차나 포루앙롱이 7~8위에 이름을 올려 중국여자프로골프 무대의 시즌 상금 ‘톱10’ 안에 무려 6명의 태국 선수가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의 시즌 상금 순위에도 지난달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한 티다파 수완나푸라가 당당히 4위에 이름을 올렸다. LPGA 투어에서는 에리야 쭈타누깐이 시즌 상금을 비롯해 평균타수와 올해의 선수 포인트 등 각 부문에서 싹쓸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언니 모리야는 상금에서 8위, 평균타수에서 9위로 동생 에리야의 뒤를 받치고 있다. 특히 에리야·모리야 자매는 버디 부문에서 나란히 1, 2위를 달려 쇼트게임에서 발군의 기량을 증명하고 있다. 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 앞서 열린 두 차례의 투어 대회에서는 모두 태국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브리티시오픈에서는 폰아농 펫람이 준우승을 거두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LPGA 투어 홈페이지는 “펫람의 선전은 태국 골프의 상승세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했다. 태국 골프의 약진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 배경에는 잘 갖춰진 인프라와 적극적인 지원이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태국의 20대 남녀 골퍼들이 급성장하는 데는 광활한 국토 도처에 깔린 270여개의 골프장을 비롯한 탁월한 연습 환경, 늘어나는 국내 투어 규모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태국 최대의 맥주회사 싱하의 지원이다. 지금 태국 국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20대 프로골퍼들은 이 때문에 ‘싱하 제너레이션’으로 불릴 정도다. 지난 2013년과 이듬해 한국프로골프(KPGA) 윈터투어를 태국에서 진행했던 국내 골프 마케팅 회사 쿼드의 이준혁 대표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 달리 1년 내내 연습에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이 태국 골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 “이 덕에 실전 라운드 경험이 워낙 풍부하다 보니 태국 선수들은 트러블 샷과 쇼트게임에 특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에 비해 체격 조건이 좋아지면서 비거리까지 해결됐다. 자녀들의 뒤를 받쳐 주고 올인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싱하의 지원은 지금의 태국 골프를 있게 한 거대한 발판이었다. 이 대표는 “현재 싱하에서 후원하는 프로골퍼는 60~70명 선”이라면서 “이들은 국내 골프장을 어디든 무료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투어 비용까지 싱하에서 지원받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골프 선수를 지망하다가 고국의 싱하로부터 후원을 받아 투어를 다니는 선수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사자를 닮은 힌두교의 전설의 동물인 ‘싱하’를 로고로 삼고 있는 싱하맥주는 1939년부터 태국에서 제조, 판매된 자국의 대표 맥주 브랜드다. 창(코끼리), 타이거와 함께 3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싱하의 모체인 분라우드 브루어리의 회장 산티 필롬팍티(70)는 태국의 6대 갑부인 동시에 열정적인 골프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9년에 싱하마스터스 대회를 만든 뒤에 매년 규모를 조금씩 키워 왔고 대회를 꾸준히 늘렸다. 2012년부터는 아시안투어와 연계해서 투어의 규모를 넓혔다. 싱하 투어는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연중 12개가 열리며 총상금은 3000만 밧(약 10억원)에 육박해 태국을 대표하는 프로투어로 성장했다. 골프 인재가 늘자 싱하는 아예 2009년 7월 치앙라이 산티부리에 싱하파크 콘켄 골프클럽을 조성해 소속 선수들을 언제나 이 코스에서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게 했다. 싱하의 후원을 받은 선수는 태국 골프의 1세대로 여겨지는 분추 루앙킷을 시작으로 프라야드 막생, 아시안 투어에서 두 번이나 상금왕을 차지했던 타원 위라찬트, 프롬 메사왓 등이 있다. 통차이 자이디, 키라뎃 아피바른랏은 현재 유러피언프로골프에서 활동하는 선수다. ‘태국의 최경주’로 불리는 자이디는 한때 세계랭킹 톱10 안에 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좋은 스폰서가 투어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PGA 투어급의 연습 환경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한편 국가와 기업이 좋은 선수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 태국 골프가 급성장한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오는 23∼26일 자카르타의 폰독 인다 골프코스에서 72홀 스트로크로 치러지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골프에서도 태국의 약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태국은 골프 출전 사상 첫 금메달에 이어 여자 개인전 은메달과 동메달, 남자 개인전 동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당시의 돌풍이 이젠 ‘태풍(泰風)급’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15세에 불과한 아타야 티티쿨은 이 태풍의 중심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자국의 파타야에서 초청선수로 출전한 LET 타일랜드 챔피언십에서 14세 4개월 19일의 나이로 우승,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이 2012년 6월 세운 종전 최연소 우승 기록(14세 9개월 3일)을 갈아치웠다. 프로무대에 에리야·모리야 쭈타누깐 자매가 있다면 아마추어에는 이들의 ‘골프 DNA’를 이어 가는 ‘쭈타누깐 키드’ 티티쿨이 있는 셈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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