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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심한 책표지 예술이 꽃피다…예술가 60여명 작품 담긴 책 110여권 선봬

    무심한 책표지 예술이 꽃피다…예술가 60여명 작품 담긴 책 110여권 선봬

    1970년대 ‘북디자이너’가 없던 시절, 책 표지는 화가들이 그렸다. 그래서 표지 자체가 예술로 남은 사례도 많다. 소설가 안수길이 1952년 발표한 ‘제3인간형’(사진 위)의 표지에는 기다란 뿔이 인상적인 동물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표지 안쪽의 파란색 면지에는 흰색 선으로 그려진 쓸쓸한 풍경 그림이 있다. 이 책의 표지와 면지 작품을 완성한 주인공은 바로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다. 삼성출판박물관이 김환기를 비롯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명성을 떨친 화가, 판화가, 만화가, 문인이 제작한 책의 표지 그림과 삽화, 제자(題字·책에 쓰는 글자)를 조명하는 기획전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을 열고 있다. 작고한 서양화가인 장욱진·천경자·이응노, 단색화로 명성을 얻고 있는 박서보, 동양화가 김기창·박노수, 서예가 김응현, 작가 오세창 등 예술가 60여명의 작품이 담긴 책 110여권이 나온다. 김환기가 표지를 그린 작품으로는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1948·수선사),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1954·중앙문화사), 현대문학 창간호(1955), 이희승의 ‘심장의 파편’(1961·일조각) 등을 볼 수 있다. 또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한 화가인 장욱진이 표지를 도안한 ‘내가 본 어제와 오늘’(가운데·1966·신광문화사)도 공개된다. 이 책은 장욱진의 장인이자 역사학자인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가 집필했고 표지에는 서예가 월담 이동용의 글씨가 담겼다. 회화 ‘미인도’ 진위 논란을 겪은 천경자의 표지 작품은 여류 소설가 한무숙의 ‘역사는 흐른다’(아래·1956·정음사)와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의 수필집 ‘춘근집’(1958·청구출판사) 등이 소개된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아날로그 시대의 책은 단순히 내용에만 마음을 둘 대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만듦새가 뛰어나고 장정의 미적 특성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이라며 “이번 전시가 출판과 미술의 만남과 융합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쭉~ 늘어나는 임실치즈… 체험하는 재미도 쭉~ 늘어나요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쭉~ 늘어나는 임실치즈… 체험하는 재미도 쭉~ 늘어나요

    “치즈의 고장 전북 임실에서 ‘대한민국 원조 치즈’의 맛과 멋을 즐겨보세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치즈를 생산한 전북 임실군에서 ‘임실N치즈축제’가 개최된다. 오감만족 체험형 축제인 임실N치즈축제는 6일부터 9일까지 성수면 치즈테마파크와 치즈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임실치즈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전북 임실에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가 선교사로 부임했다. 디디에 세스테벤스(85). 한글 이름도 지었다. 지정환 신부다. 그는 가난한 산촌 주민들을 위해 낙농업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산이 많고 농경지가 적은 임실은 낙농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그는 산양 두 마리로 축산을 시작했다. 산양유를 생산했지만,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지 신부는 남은 산양유를 이용해 치즈를 만들었다. 1967년 처음 생산한 치즈는 맛과 냄새가 생소하고 제조기술도 떨어져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지 신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지 신부는 프랑스로 건너가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워왔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를 생산했다. 1970년에는 3개월 이상 보관 가능한 체다치즈를 만들어 조선호텔에 납품했다. 1976년부터 서울 명동 피자가게의 요청으로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하며 국내 치즈 시장을 개척했다. 임실 치즈가 좋은 이유는 목장형 유가공 제품이기 때문이다. 목장형 유가공 제품은 새벽에 농가들이 직접 짠 가장 신선한 원유를 가공해 유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대기업에서 원유를 수집해 대량 생산하는 공장형 제품과 차별화했다. 임실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있어 건강한 청정 원유를 생산하고, 이것이 임실 치즈 품질을 결정한다. 또한 색소, 향료,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제품이다. 치즈연구소에서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고 제조기술을 향상시켜 수입품이나 대기업 제품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임실N치즈축제는 지역의 명물인 치즈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지고, 체험, 휴식, 교육, 경관, 산업, 관광 등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6차 산업의 대표 모델을 제시해 의미가 있다. 올 치츠축제에서는 보고, 먹고, 체험할 수 있는 6개 분야 63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아름다운 임실의 자연과 함께 다채로운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치즈를 이용한 행사는 물론 흥겨운 농악공연, 다양한 공예체험, 각종 경연대회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치즈테마파크에는 형형색색의 국화 3만 그루를 전시해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최고의 힐링 공간을 제공한다. 치즈테마파크의 랜드마크인 치즈캐슬은 유럽의 성을 재현한 모습이다. 1층 250석 규모의 치즈전문식당 ‘프로마쥬 레스토랑’에서는 임실 치즈를 듬뿍 넣은 피자와 파스타 등 각종 치즈요리를 맛볼 수 있다. 2층 홍보관에서는 임실치즈의 탄생부터 대표 브랜드 성장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선 치즈모형의 전망대에서 오르면 테마파크와 치즈마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관이 발아래 펼쳐진다. 전망대 주변 포토존은 가족과 연인들의 추억 만들기 장소로 최고 인기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펼쳐지는 썰매타기도 어린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임실N치즈축제는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1967년 지정환 신부가 국내 최초로 치즈를 생산한 것을 기념해 ‘1967! 토피어리 긴 피자만들기’, ‘1967! 치즈 떡볶이 나눔행사’가 열린다. 치즈고추장으로 만든 주먹밥으로 한우 모형을 완성하는 ‘임실N치즈&한우 모자이크’, 치즈를 쭉쭉 늘려보는 놀이 ‘가족대항 쭉쭉 늘~려, 내 치즈’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관광객들이 피자 재료를 직접 토핑한 후 화덕에 굽는 ‘와일드 화덕체험’도 잊을 수 없는 맛과 추억을 안겨준다. 임실N치즈축제 홍보대사인 최현석 셰프가 참여하는 ‘스타셰프 챌린지’는 9일 치즈캐슬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다. 다양한 레시피로 푸드트럭 치즈요리를 선보인다. 축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임실군 읍·면 생활개선회원들이 발굴한 향토음식 12종과 부메뉴 39종도 향토음식관에서 맛볼 수 있다. 고품질 임실 한우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치즈축제에서는 각종 문화행사도 무대에 오른다. 지역주민 참여 공연인 뮤지컬 동자바위 전설, 필봉농악 중뱅이골 공연, 35사단 군악대 퍼레이드가 열린다. 경연 행사인 복면가왕! 전국청소년뮤직페스티벌, 임실N치즈 UCC공모전, 치즈경매 이벤트도 진행된다. 전국의 치즈 매니아와 공예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치즈조각 공연대회, 전국 어린이 창작동요제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치즈가든파티, 나만의 피자 만들기, 크림치즈체험, 벨기에 먹거리 체험, 향교문화체험, 병영문화체험, 두부 만들기, 대형 캐릭터 연날리기, 낙농체험 등 참여행사와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임실치즈테마파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치즈를 테마로 한 체험형 관광지다. 치즈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만들고 맛볼 수 있는 복합관광 명소다. 치즈테마파크는 2011년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일대에 조성됐다. 14만 8000㎡(축구장 20개)의 드넓은 부지에 스위스풍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치즈체험장, 치즈과학연구소, 유가공공장, 홍보관, 판매장 등을 집적화해 치즈 종합특구 기능을 하고 있다. 치즈 생산, 연구개발, 체험학습, 판매, 축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테마파크에서 하고 있다. 스위스 아펜젤 마을 풍경을 재현한 이곳은 전북도 1시군 1대표 관광지로 선정돼 임실군 관광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올 한 해 유료 관람객이 임실군 인구(3만명)의 5배인 1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진 마을이다.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 총회에서 치즈마을로 개칭했다. 80농가 155명의 주민들이 합심하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을 가꾸고 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뽀얀 메밀꽃, 파란 가을 하늘

    뽀얀 메밀꽃, 파란 가을 하늘

    개천절인 3일 ‘2016 한강 서래섬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반포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메밀꽃이 만발한 가을 풍경을 눈에 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한해 40억개 우편물 배달하고 ‘포스트 페이’로 경조금 보내고

    한해 40억개 우편물 배달하고 ‘포스트 페이’로 경조금 보내고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인터넷 메신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인 시대다. 상대방에게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관계가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어디든지 최소 하루 이상 걸리는 편지가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푯값이 얼마인지, 동네 우체통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체국은 곧 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정사업본부는 연간 40억개의 우편물을 도서 지역까지 배달하는 보편적 서비스부터 알뜰폰 사업, 핀테크 서비스인 ‘포스트 페이’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금과 보험 등 금융사업에 힘입어 매년 3000억~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보편과 변화가 공존하는 우체국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우표는 크게 보통우표와 기념우표로 나뉜다. 보통우표는 우편요금의 납부를 주목적으로 하는 우표로 우체국에서 상시적으로 판매하는 우표를 뜻한다. 기념우표는 국내 중요 행사나 사건, 인물 등이 들어가며 발매 기간이 정해져 있다. 현재 보통우표의 가격은 25g짜리 통상우편 기준으로 300원이다. 보통우표의 발행량은 2006년 2억 500만여장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6000만여장으로 뚝 떨어졌다. 약 10년 만에 4분의1이 된 셈이다. 이렇게 수치로만 보면 우표 발행량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지만, 일종의 ‘문화’로서 기능은 여전하다. ‘우취’, ‘까세’ 등 우표 수집 용어들은 아직 건재하다. ‘우취’란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를 줄인 말로 우표 수집가는 우취인이라고 부른다. ‘까세’란 우편봉투에 그려진 도안을 의미한다. 보통 기념우표 발행에 맞춰 해당 우표와 디자인을 맞춘 그림이 들어가 있는 봉투가 만들어진다. ●우표 속 정치·경제·문화·역사 등 담겨 우표 속에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이 담겨 있다 보니 우표는 시대의 기록을 담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표의 크기는 통상 가로, 세로 2~4㎝이지만 담을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우표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인쇄상 오류로 탄생한 우표가 희귀 우표가 되기도 한다. 세계 최초의 우표는 1840년 5월 6일 영국 여왕 즉위식 때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을 넣어 발행한 흑색의 1페니 우표(페니 블랙)다. 그로부터 이틀 후 청색의 2펜스 우표가 발행됐다. 우리나라 최초 우표는 ‘페니 블랙’보다 44년 늦은 1884년 11월 첫선을 보였다. 신진 개혁파 정치인이던 홍영식이 중심이 돼 우정총국을 설치하고 업무를 시작하면서 ‘문위우표’를 발행했다. 문위란 이름은 당시 화폐 단위가 ‘문’(文)이어서 나중에 붙여졌다. 원래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짜리 등 모두 다섯 종을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의뢰해 인쇄했지만 우정총국 업무 개시일까지 5문 우표와 10문 우표 두 종만 도착했다. 결국 나머지는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쇄된 후에 도착되는 바람에 사용되지 못했다. 우표에 얽힌 사연들도 다양하다. 세계 희귀 우표로 꼽히는 ‘뒤집힌 제니’ 우표도 그중 하나다. 1918년 미국 최초로 발행된 항공우표로 원래 우편용 비행기인 ‘커티스 제니’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는데 제작 과정의 실수로 파란색 부분이 뒤집힌 채 인쇄됐다. 당시 이 우푯값은 24센트였지만 현재 100만 달러(약 11억 450만원)를 호가하고 있다. 우표는 정치적 공방을 넘어서 국가 간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1933년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그란 차코 전쟁’은 ‘우표전쟁’이라고 불린다. 당시 두 나라는 서로 차코 지방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라과이가 차코 지방을 그린 우표를 내자 볼리비아도 뒤질세라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에서 유발된 양국의 싸움은 전쟁으로까지 번졌다. 우표 디자인은 시대를 따라 큰 변화를 겪었다. 정부 수립 때부터 1960년대까지는 인쇄 기술이 떨어져 단색 분판을 통해 도안이 됐다. 1970~1994년에는 60년대 후반 도입된 컬러 인쇄기계의 힘으로 다양한 색상이 재현됐다. 당시 우표는 핸드 드로잉에 의존해 아날로그적인 멋을 가지고 있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컴퓨터그래픽의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면서 이미지를 합성·변형하거나 특수 시각효과를 넣은 디자인이 대다수였다. 2000년 이후의 우표는 핸드 드로잉이 주는 감성적 장점과 다양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의 장점을 합친 ‘디지로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시변각 우표, 향기우표, 야광 우표, 스티커 우표 등 이목을 끄는 우표들도 나온다. ●우체국 예금 1905년·보험 1929년부터 시작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꽤 오래전부터 우체국은 예금과 보험 업무를 해 왔다. 우편 업무의 시초가 1884년이었다면 예금과 보험 업무는 각각 1905년과 1929년에 시작됐다. 1977년 농협에 예금·보험 업무를 넘겼다가 경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1983년 다시 가져왔다. 전국 3500여개 우체국의 절반이 넘는 약 55%가 도시가 아닌 시골에 위치해 우체국예금과 보험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 금융기관에서 서비스 제공을 기피하는 농어촌이나 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현금 입출금, 생명보험, 공과금 수납, 해외송금 등 보편적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가장 큰 업무는 여전히 우편 서비스지만, 일감이 되는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정사업본부의 물동량은 일반우편물, 등기, 소포·택배, 국제우편 등을 합쳐 2002년 55억 3677만개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 2006년 48억 4185만개, 2014년 42억 8434만개, 지난해 40억 2051만개으로 가파른 감소세를 타고 있다. 2011년부터는 예금·보험을 제외한 우편사업은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우체국의 물류망, 금융망, 전산망 등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3년에 시작한 알뜰폰 수탁 판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농어촌 지역 특산물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우체국 쇼핑 사업도 활발하다. 우체국망과 온라인 쇼핑을 통해 김, 멸치, 과일, 한과 등 479개 품목 9200여종의 농수산물을 판매해 지난해 193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우체국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올 3월부터 핀테크 서비스인 ‘포스트 페이’를 출범시켰다. 포스트 페이는 우체국의 특화 서비스인 경조금 배달 서비스를 핀테크와 접목한 간편송금·간편결제 서비스로 휴대전화 번호만으로도 경조사비를 보낼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에 소속된 정부 기관으로 고위공무원 가급(1급 상당)이 본부장을 맡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이나 포스트 페이처럼 국가 시책에 부합하면서 우수한 중소기업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드론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北, 새 외화벌이 대동강 맥주파티…‘자본주의 상징’ 상업광고도 인기

    北, 새 외화벌이 대동강 맥주파티…‘자본주의 상징’ 상업광고도 인기

    지난 8월 북한 평양에서 맥주 축제가 열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의 첫 맥주 축제인 ‘평양대동강맥주축전’은 대동강변에 떠 있는 유람선 ‘대동강호’에서 화려한 개막식을 열었다. 축전이 열리고 있는 대동강호와 대동강변 부두는 특색 있는 불 장식과 대형 전광판으로 화려하게 단장했다. ●한국 맥주보다 맛 좋다는 ‘대동강 맥주’ 개막식은 평양 주민들과 맥주 애호가,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 손님들, 해외 동포들이 참석해 북적였다. 이 축제에는 대동강맥주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최고품질의 일반 맥주들과 흑맥주 등 여러 가지 맥주들이 출품됐으며 축제가 시작되고 2시간 동안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됐다. 최영남 인민봉사총국장은 “조선(북한)에서의 맥주 생산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여러 맥주 공장에서 출품하는 국내산 맥주들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해군 복장과 비슷한 흰 상의와 파란 하의, 파란 모자를 착용한 봉사원들이 대동강 맥주를 나르고 탁자에는 프레첼 과자, 완두콩 등 간단한 안주와 양꼬치 구이, 매운맛 닭고기 튀김이 제공됐다. 남한에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맥’(치킨과 맥주)이 평양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이번 축제는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인 9월 9일까지 계속됐다. 모두의 축제가 아닌 일부를 위한 평양대동강맥주축전,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내 최고위층 탈북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해외에 북한 정권의 건재함을 알리는 ‘쇼’로 이 맥주축제를 활용했다. 대동강 맥주는 봉학 맥주, 룡성 맥주, 금강 맥주, 평양 맥주 등과 함께 북한의 대표 맥주로 꼽힌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북한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맛이 좋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정일 지시로 2001년 맥주 공장 건설 그렇다면 북한의 대표 맥주 중 하나인 대동강 맥주는 어떤 맥주일까. 북한은 대동강 맥주를 ‘동방 제일의 맥주’라고 자부한다. 2001년 1월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동에 공장이 건설됐고, 2002년 6월 완공했다. ‘대동강맥주공장’이라는 이름도 김정일이 명명했으며 2008년 4월 ‘대동강 맥주’ 상표 도안도 결정했다. 북한의 축제 소식은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으며 북한의 축제는 중국,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도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북한의 맥주축제 개최는 대동강맥주의 인지도를 높여 새로운 외화벌이 상품으로 띄우려는 것과 동시에 대형 유람선과 평양 풍경을 외부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조선중앙TV는 “대동강 맥주 축전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을 짓부시며(짓부수며)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문명 강국을 보란 듯이 건설해 나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하고 낙관에 넘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2013년 인터넷서 홍보영상 내보내 이 가운데 북한은 그동안 금기시했던 상업광고를 통해 대동강 맥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 “연하고 부드럽고 향긋한 맛! 무더운 여름철은 물론 사계절 누구나 즐겨 찾는 대중음료 대동강 맥주!” 북한의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TV’는 2013년 ‘소문난 청량음료 대동강 맥주’라는 제목의 2분 47초짜리 홍보영상에서 대동강 맥주가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대동강 지구의 무공해 지하수와 백과를 무르익히는 곡창지대 재령옥토에 뿌리박고 자란 기름진 보리와 흰쌀, 천혜산지 양강 땅의 호프를 주원료로 하고 있어 그 맛이 별미”라고 소개했다. 영상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유롭게 생맥주를 즐기는 장면을 배경으로 “인민 생활향상을 제일가는 목표로 내세우는 당의 온정 속에 인민들과 친숙해진 대동강 맥주의 독특한 맛은 끊임없이 개선될 것이며 우리 인민들의 생활은 날로 더욱 윤택해질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마무리됐다. 북한이 대동강 맥주 홍보영상을 처음으로 띄운 것은 2009년 7월 2일 조선중앙TV에서 대동강 맥주 광고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상업광고’를 자본주의에 가장 부조리한 부분이라고 꼬집던 북한이 ‘자본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상업광고를 장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변화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北 학원·백화점·IT업체 광고도 내보내 광고들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키 크는 약’ 광고에는 약병 옆에 만화로 목이 긴 기린 그림이 그려 넣어져 있었고, 피를 맑게 해준다는 약 광고에서는 금속제 반지 속에 보라색 보석이 들어 있다고 소개한다. 자동차 수리, 안드로이드 게임, 북한제 휴대전화에 프로그램 탑재와 같은 다른 광고도 등장했다. 특히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학원 광고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월 평양신문은 태권도 교육기관인 ‘태권도 전당’이 낸 것으로 보이는 ‘2016년도 태권도 학원 학생 모집’ 광고를 실었다. 우리 고등학교 격인 고급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광고는 다른 기사와 다른 서체를 쓰는 등 광고효과를 내기 위해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평양신문은 노동당 관영 매체인 노동신문 등과 달리 평양시 주민들을 위한 생활 밀착형 정보를 전달한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지난 수년 동안 북한에서 볼 수 있었던 광고는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과 관계된 것들이었지만 최근 광고는 북한인들만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과거에는 한국의 통일교와 북한 정부 사이에 공동으로 설립한 평화자동차의 대형 광고판이 있었고, 남북한 관계가 원만했을 때 한국으로 수입이 허용됐을 당시 북한 TV에 방영됐던 대동강 맥주 광고와 같이 한국과 연결 고리가 있는 상황에서만 등장했었다고 분석했다. ●경기장 광고판 광고비 4만 달러로 올라 이 밖에도 북한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축구 경기장 안에 북한 기업의 광고가 허용됐으며, 아시안컵 축구대회 때에는 광고판 광고비가 4만 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경기장 안의 광고는 주로 중국과 합작을 한 기업들이 차지했다. 예를 들어 보통강 백화점이나 천리마와 같은 광고판이 경기장 안에 등장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우즈베키스탄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경기를 중계하면서 개성 고려인삼, 평양 건재공장, 조선금강그룹 등 북한기업 광고판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광고판 중에는 ‘맑은 아침’처럼 그동안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정보기술(IT) 업체도 소개했다. 올 들어서 평양 마라톤 대회를 할 때 고려인삼무역회사의 스폰서로 광고가 나가기도 했으며, 당시 광고판 하나에 1000유로를 받기도 했다. ●광고 수요 늘면서 전담 회사도 생겨 이보다 먼저 2009년 8월에는 평양을 방문하는 남한 사람들의 필수 답사코스로 여겨졌던 ‘평양냉면의 대명사’ 옥류관이 광고 대열에 들어섰다. 메추리구이와 메추리고기 완자탕 등 메추리 요리 출시를 앞두고 선보인 사전광고였다. 북한에서 광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각종 상품과 회사 광고를 전담하는 회사도 생겼다. ‘조선광고회사’가 주인공이다. 2006년 2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기관·기업소·회사들과 경쟁력 있는 상품들에 대해 광고영업을 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의 시장화 추세에 따라 기업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케팅의 핵심인 광고는 피할 수 없는 경영의 도구”라면서 “현재는 일부 경제특구법에만 허용된 광고가 앞으로 전면 자유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기동 원장, 국회의원들에 “새파랗게 젊은애들” 발언 논란(종합)

    이기동 원장, 국회의원들에 “새파랗게 젊은애들” 발언 논란(종합)

    이기동 신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30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남로당 몇몇 사람들 때문에 휩쓸린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이 원장은 화장실에서 의원들을 향해 “새파랗게 젊은애들”이라고 표현했다는 증언이 나와 태도 논란까지 겹쳤다. 의원들의 거센 비난이 일자 교육부 이영 차관은 해임을 포함한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 원장의 견해를 물었고, 이 원장은 이에 “사건의 발단은 남로당 제주지부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이분들(주민들)이 휩쓸려 들어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오 의원은 “어떻게 무참하게 희생된 양민들이 공산당 폭도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며 사과를 요구하자 “제 발언으로 제주도민들의 상처를 건드린 것에 대해 깊이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안민석 더민주 의원이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는 질문을 하자 “복수의 답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같은당 박경미 의원은 이 원장의 1982년 저서 ‘비극의 군인들 - 일본 육사출신의 역사’에 나온 표현을 문제로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 원장이 일본 태평양전쟁에 참여한 최정근에 대해 묘사하며 카미카제 특공대가 ‘산화’했다고 썼다. 이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나 쓰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에 “(산화는) 문학적 표현”이라며 “6·25 참전용사들도 산화라고 하지 않냐”라고 답했다. 손혜원 더민주 의원은 이 원장이 국정교과서를 총괄하고 있다는 일각의 얘기를 언급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이 원장은 “중고등학교 단계는 다양성에 근거해 가르치면 혼란이 오고,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것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도 논란도 겹쳤다. 유은혜 더민주 의원의 질의 도중 이 원장은 “화장실이 급하다”며 갑작스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신동근 더민주 의원은 이 원장이 화장실에 가서 “새파랗게 젊은 애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 원장은 이에 대해 “그런 말은 안했다”고 답했다. 나아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이 원장에게 “의원들이 아닌 기자들에게 (‘새파란 젊은애들’ 발언을) 했다고 하세요”라고 속삭였다가 의원들이 이를 듣고 문제삼자 사과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 원장을 향해 “치매에 걸렸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위험한 상태다. 병원을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다” 등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또 여성인 유 의원의 발언 도중 고함을 쳤다는 점에서 더민주 여성의원들도 반발했다. 더민주 여성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여성의원의 질의에 고압적 발언을 하면서 무단 이석하고, ‘새파랗게 젊은’이라는 망언으로 비하했다”며 “저급한 사고로 일관하는 자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수장으로 용인할 수 없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영 교육부 차관은 “해임 부분까지 포함해 논의하겠다. 장관께서도 그정도는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하는 ‘파란 개’

    런웨이하는 ‘파란 개’

    모델이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Manish Arora의 봄-여름 2017 기성복 콜렉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나가 서울신문이랑 인연이 아주 깊지라.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를 들어갔는데 서울신문에서 파란 눈 외국인 학생이 입소했다고 나를 대문짝만 허게 써줘붑디다. 그래서 나가 지금도 서울신문을 상당히 좋아허요.” 190㎝ 장신에 정말로 솥뚜껑만 한 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지난 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인요한(57)은 대뜸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地不如順天’(지불여순천). “기름지고 풍성한 땅은 순천만 한 곳이 없다”며 흥선대원군이 썼던 표현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높여 말하기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을 성싶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첫마디를 예의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로 시작했다. -“거짓으로 신고한 게 탄로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냥 추방당하는 걸로 끝날까, 혹시 남조선 첩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1997년 1월 21일 중국 선양을 떠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차가운 풍경처럼 내 마음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남한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못 들어오게 할까 봐 선양 주재 북한대표부에 ‘미국 거주자’라고 허위 신고를 해 겨우 방북 허가를 받은 터였다. 한참을 달려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르자 강둑에서 북한 아이들 네댓 명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놓고 앉아 까르륵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시커먼 검댕도 지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한에도 남한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서 솟구친 가슴 벅찬 느꺼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순천으로 터를 옮겼다. 내 이름이 한국어로 인요한, 영어로 존 린턴인데 사람들은 내 영어 이름 ‘존’을 따서 ‘짠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매곡동 일대를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는데, ‘매곡동 짠이’라고 하면 모르는 동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아이여서도 그랬지만, 워낙 동네 구석구석을 망아지처럼 훑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더욱 분명한 내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천 촌놈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을 웃겨 보려고 일종의 개그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탓이다. -둘째 형 스티븐 린턴(인세반)은 진외조부의 이름에서 딴 북한지원단체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나 만났으며 대북 의료 지원에 앞장서 왔다. 셋째 형 제임스 린턴(인야곱)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북한 지원 활동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이 땅에서 했던 활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일을 우리의 숙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동학농민혁명 이듬해인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됐는데, 이분이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선교에 뛰어들었다. 벨 할아버지는 광주와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은 선교와 의료를 넘어 항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기도 했다. 그분의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인 휴 린턴도 부친의 뜻을 좇아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심각했던 결핵 퇴치 운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들의 교육 문제였다. 형들은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아버지가 장로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 형들이 잠시 미국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형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불러 “이 댁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유치원생만도 못하다”고 한 데 충격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와 막내인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동료 선교사의 부인에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통신학교 교재를 이용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배웠다. -열세 살 때인 1972년 9월 나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뜨거운 늦여름 햇빛을 받으며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대전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전외국인학교는 당시 대전대(지금의 한남대) 뒤편에 있었다. 학교생활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대전외국인학교는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였다.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보다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곡동 짠이’ 시절만 해도 ‘크면 엿장수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맛있는 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위질로 박자를 맞추는 저 직업은 얼마나 멋진가.’ 염소를 매어 두려고 박아 놓은 꼬챙이들을 뽑아서 엿장수에게 몽땅 가져다주고 엄청난 양의 엿을 얻었다가 혼찌검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염소가 개에게 물려서 치료하는 과정을 고개를 받치고 지켜보는데, 당시 아버지 친구이자 내가 존경하던 장로 선생님께서 “불쌍하지? 염소도 이런데 돈도 없고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좀 더 나이를 먹고는 어머니 로이스 린턴(인애자)의 결핵 퇴치 사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내 목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국인 미국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국 대학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영 편치 않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지내 보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이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7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는데, 6개 레벨의 수업 중 나에게 맞는 단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는 형편없는데 말은 너무도 유창하게 하니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다. 나의 대학 입학은 한국의 신군부 독재와 함께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새로운 독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10·26이 터졌을 때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5월 친구와 함께 남해에 놀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광주 근처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차에 올라탔다. 청년은 “여러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 계엄군에게 죽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간절했다. 정든 고향 순천의 거리 역시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조선대와 전남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끔찍한 얘기를 들려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광주에 갔다. 만약 검문에 걸리면 나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고, 한국인 친구는 나의 통역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파괴된 도시, 분노로 일그러진 시민들의 얼굴. ‘왜?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는 60구 정도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고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확성기를 들고 “왜 내 아들이 국군의 총에 죽어야 했나요”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나를 보고는 통역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를 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각국 기자들이 줄줄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시민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으로 향해야 할 총부리가 남으로 향해 우리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또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한국어로 전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신군부로부터 ‘권고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문무대 입소를 자원하면서 간신히 추방을 면했다. -“요한아…빨리 순천으로 내려와야겠다…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 1984년 4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도 아니고 돌아가셨다니.’ 아버지는 당시 짓고 있던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싣고 차를 몰고 오시는 길에 관광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음주운전 상태였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버지는 계속 물을 찾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순천은 물론이고 서울의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이렇게 엉성하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년이 흐른 1992년 나와 가족은 3200여만원을 밑천 삼아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에 착수했다. 15인승 승합차를 광주에서 주문해 순천으로 옮겼다.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에 들어갔다. 환자를 눕힐 공간과 환자 머리맡에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침대 밑과 천장에 응급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이 착착 진행돼 1주일 만에 개조된 앰뷸런스를 완성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소방서가 인명을 구조하는 데 우선이라는 판단에 소방서에 줬다.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도 미국 텍사스에서 응급구조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가르쳤다. 순천소방서의 앰뷸런스는 활동 첫해 1000회의 출동 건수를 기록했고, 이 중 62건은 앰뷸런스가 없었더라면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출동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97년 1월의 첫 방북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96년 어머니는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상금 5000만원의 용도를 ‘북한에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로 했고, 그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얼마 후 유진벨재단에 북한 보건성의 통지문이 날아들었다.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1970년대 결핵 환자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95~1996년 잇따른 홍수 피해와 1997년 가뭄으로 다시 결핵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핵환자요양소를 방문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약품을 분배하고, 검진차 사용 방법을 일일이 알려 주고 다녔다. -나는 4년 전 한국인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어머니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해서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2012년 정부에서 다른 나라 국적에 더해 ‘한국인’ 국적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특별귀화제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돌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돌방에서 어른들께 지식을 배웠고, 도덕을 배웠고, 소통을 배웠다.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지금 한국은 너무 찢어져 있다. 어린 시절 순천에서 가족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온돌방 아랫목이 너무도 그립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의 후손으로,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9차례에 걸쳐 방북,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을 돌봤으며 1980년대 ‘한국형 응급차’를 개발하고 보급시켜 당시 낙후된 국내 응급구조 시스템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의술의 국제화를 통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에 임명됐다. 1895년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목포 정명학교·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설립한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그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다. 스물두 살 나이에 한국에 와 48년 동안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벌인 윌리엄 린턴(인돈) 선교사가 할아버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휴 린턴(인휴) 선교사가 아버지다.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대전외국인학교, 연세대 의학과, 고려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이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전문위원,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
  • 억센 마음이 네게 흔들릴 줄이야

    억센 마음이 네게 흔들릴 줄이야

    억새와 갈대의 계절이다. 단풍이 현란한 빛깔로 보는 이들을 달뜨게 만든다면, 억새와 갈대는 은은한 빛깔로 잔잔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10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전국의 억새, 갈대 명소를 선정했다. 하나같이 제철 먹거리가 풍성한 지역들이다. ①정선 민둥산 강원권에서는 정선의 민둥산(1119m)이 첫손 꼽힌다. 60만㎡에 이르는 산자락이 죄다 억새밭이다. 정상 언저리엔 나무 한 그루 없다. 예전 화전민이 일구던 밭이 고스란히 억새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등산로 초입에서 정상까지 2시간 거리다. 하이라이트는 7부 능선부터 시작된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억새의 바다가 펼쳐진다. 10월 중순이 절정이다. 24일~11월 13일 민둥산억새꽃축제도 열린다. 끝자리 2·7일에 서는 정선오일장이나 매주 토요일 열리는 주말장에 맞춰 여행을 계획하면 좋다. 장터에서 메밀부침개, 수수부꾸미, 감자옹심이 같은 산촌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033)560-2369. ②충주 비내섬 충주는 가을에 더욱 빛난다. 비내섬, 목계나루 등에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억새 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남한강을 찾아 가을 철새도 날아든다. 파란 하늘과 은빛 억새, 고즈넉한 남한강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비내섬 앞에 남한강 변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비내길이 조성돼 있다. 소박한 시골마을과 그림 같은 강변길을 따라 걸은 뒤엔 앙성온천에서 피로를 푼다. 충주 특산물 사과도 잊지 말자. 충주역 부근에 가면 도로 옆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로수가 늘어섰다. 사과 한 입 베어 물고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온몸이 가을빛으로 물드는 느낌이다.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23. ③충남 오서산 오서산(791m)은 홍성과 보령에 걸친 산이다. 근동에서 가장 높아 ‘서해의 등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억새밭은 정상에서 북쪽의 740m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곳곳에 산재한다. 규모는 작아도 서해와 어우러진 풍광만큼은 어느 억새 명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억새밭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 낙조가 빼어나다. 이 풍경과 마주하기 위해 오후 3∼4시에 오르는 등산객들도 많다. 인근 청라 은행마을도 가을 여행지로 제격이다. 가을 미각의 주인공은 대하와 전어, 꽃게 등이다. 무창포에서 10월 9일까지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대하·전어축제’가 열린다. 오천항에선 키조개가 한창이다. 보령시청 산림공원과 (041)930-3824. ④광주 무등산 무등산은 광주를 품은 ‘어머니의 산’이다. 가을이면 어머니의 가슴 닮은 능선마다 억새가 핀다. 장불재 일대는 억새 향연의 주무대다. 중머리재와 중봉, 백마능선, 꼬막재 등에서도 억새의 군무가 펼쳐진다. 정상부에 오르면 하얗게 핀 억새 너머로 입석대, 서석대 등 주상절리대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증심사 지구, 원효사 지구에서 오를 수 있다. 가을 미각을 자극하는 별미는 보리밥정식이다. 10여 가지 산나물 외에 돼지머리 고기, 도토리묵 등이 푸짐하게 오른다. 영산강 억새 군무도 빼어나다. 10월 내내 매주 토요일 극락교 일원에서 억새생태문화제가 열린다.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062)227-1187. ⑤해남 고천암호 해남 고천암호는 광활한 갈대밭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차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갈대밭 규모는 국내 최대다. 호수와 간척지 등을 합친 둘레가 14㎞에 달한다. 철새 도래지로도 이름났다. 탐조에 좋은 시기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다. 해남 하면 떠오르는 땅끝마을, ‘서예 박물관’으로 불리는 천년 고찰 대흥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이 무렵이면 고소한 삼치회가 미식가들ㅇ의 젓가락을 분주하게 만든다. 햇김에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가락 얹고, 삼치회와 묵은 김치를 올려 먹는 삼치삼합은 가을 해남 여행을 완성하는 별미다. 해남군 관광안내소 (061)532-1330. ⑥창원 주남저수지 주남저수지는 동판, 산남, 주남 등 세 저수지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람사르문화관 앞 제방을 따라 탐방로가 이어진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를 잇는 산책로, 동판저수지 둘레길 등에도 코스모스와 억새가 향연을 벌인다. 10월 말쯤이면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온 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재두루미, 큰고니 등의 철새들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가창오리 군무가 아름답다. 주홍빛으로 곱게 갈아입은 단감이 제철이다. 빗돌배기마을과 올해 새로 조성된 창원단감테마공원 등에서 단감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부림시장 ‘청춘바보몰’도 인기다. 창원시청 관광과 (055)225-3707.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대구 실종 초등생 끝내 숨진 채 발견

    대구 모녀 변사와 10대 아들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낙동강에서 류정민(11·초등학교 4학년)군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지난 23일 류군을 찾는 실종 아동 전단을 제작해 배포하고 공개수사를 했으나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소방 당국과 28일 오전 11시 10분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낙동강 사문진교 하류 2㎞ 지점에서 류군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류군은 검은색 긴 바지에 누런색 상의, 파란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경찰은 검시 결과 실종된 류군임을 확인했지만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기로 했다. 류군은 지난 15일 오후 5시쯤 어머니 조모(52)씨와 수성구 집을 나선 뒤 행방이 묘연했다. 어머니와 택시를 타고 대구 북부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팔달교 주변에 내린 뒤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집에서는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라며 ‘유서’라고 적은 어린이 글씨체의 메모가 나왔다. 류군의 어머니 조씨는 지난 20일 낙동강 고령대교 변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이튿날 류군의 누나(26)는 범물동 자택 아파트 베란다 붙박이장에서 이불과 비닐로 싸인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대구 실종 초등생 낙동강서 숨진 채 발견돼, 집에는 손글씨 ‘유서’가

    대구 모녀 변사와 10대 아들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낙동강에서 류정민(11·초등학교 4학년)군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지난 23일 류군을 찾는 수배 전단을 제작해 배포하고 공개수사를 했으나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소방당국과 28일 오전 11시 10분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낙동강 사문진교 하류 2㎞ 지점에서 류군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류군은 검은색 긴 바지에 누런색 상의, 파란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다리를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얼굴을 하늘을 향한 채 수초 사이에 떠 있었다. 경찰은 검시 결과 실종된 류군 임을 확인했지만, 정확한 사인을 밝히려고 부검한다. 류군은 지난 15일 오후 5시쯤 어머니 조모(52)씨와 함께 수성구 범물동 집을 나선 뒤 행방이 묘연했다. 어머니와 택시를 타고 대구 북부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팔달교 주변에 내린 뒤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집에서는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라며 ‘유서’라고 적은 어린이 글씨체 메모가 나왔다. 류군의 어머니 조씨는 지난 20일 낙동강 고령대교 변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이튿날 류군의 누나(26)는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자택 아파트 베란다 붙박이장에서 이불과 비닐로 싸인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한편 류 군 시신이 나온 지점은 어머니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상류로 10㎞, 금호강 팔달교에서는 하류로 11㎞ 가량 떨어져 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클린턴 건강 강조한 ‘빨간 정장’… 트럼프는 차분한 ‘파란 넥타이’

    클린턴 건강 강조한 ‘빨간 정장’… 트럼프는 차분한 ‘파란 넥타이’

    “납세 공개하라” “이메일부터” 서로 받아치자 관중들 박수 터져 美언론들 대체로 “클린턴이 승리” … 토론 후 여론조사 결과는 엇갈려 미국 대선 1차 TV 토론이 실시된 26일 밤(현지시간), 전체적으로 파란색으로 통일된 무대에 사회자인 NBC 방송 앵커 레스터 홀트의 소개로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등장했다. 건강 이상 논란에 시달렸던 클린턴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빨간색 바지 정장 차림을, 막말을 퍼붓던 트럼프는 차분한 인상을 연출하려 파란색 넥타이 차림을 했다. 모두 상대 당을 상징하는 색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클린턴은 자신감을 보여 주듯 천천히 큰 보폭으로 무대 왼쪽에서 중앙으로 나가 트럼프와 악수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인사는 얼마 못 가 90분간의 가시 돋친 설전으로 바뀌었다. 토론회에는 관중 1000여명이 참석했다. 클린턴이 트럼프의 납세 내역 공개 거부를 비판하고 트럼프가 “클린턴이 이메일을 공개한다면 납세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말하자 금지돼 있던 환성과 박수가 청중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트럼프는 평소처럼 고성, 말 자르기, 끼어들기로 공격하려 했지만 클린턴이 평소와 달리 비꼬기로 응수하며 맞불을 놨다. 미국 언론들은 대체로 1차 토론의 승자로 클린턴을 꼽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기존의 망가진 정치 시스템의 책임자로서 클린턴을 지목하며 몰아세웠지만, 자신이 기존 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유권자에게 확신시키진 못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클린턴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그의 자수성가 스토리에 구멍을 내는 등 부지런히 잽을 날렸다”고 평했다. CNN은 여론조사기관인 ORC와 함께 유권자 52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잘했다는 응답이 62%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잘했다는 답변은 27%에 그쳤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주요 현안 이해도에서 클린턴은 68%를 받았지만 트럼프는 27%를 얻는 데 그쳤다.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누가 더 적합하냐는 질문에도 클린턴이 67%, 트럼프는 32%를 얻었다. 반면 시사주간지 타임이 사이트 방문자 41만 3000여명을 상대로 TV 토론 승자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트럼프가 58%로 클린턴(42%)을 앞섰다. 경제지 포천이 웹사이트 방문자 55만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에서도 트럼프(52%)가 클린턴(48%)을 앞섰다. 특히 누가 더 국가 안보를 강력히 지킬 것 같냐는 질문에는 트럼프가 55%, 클린턴 45%를 얻었다. 의회 전문지 더힐이 웹사이트 방문자 10만 9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역시 트럼프(58%)가 클린턴(36%)을 눌렀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는 클린턴이 TV 토론에서 이겼다고 보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27일 오전 8시 현재 달러 대비 멕시코 페소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1.69% 떨어진 19.5419페소에 거래됐다. 페소화 환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페소화 가치가 올랐다는 뜻이다. 하루 사이에 페소화 가치가 이처럼 뛴 것 역시 지난 2월 17일 이후 처음이다. 그간 페소화 가치는 멕시코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의 지지율이 오르면 떨어지고,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지면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CNBC 방송은 “시장이 클린턴을 첫 TV 토론의 승자로 선언했다”고 표현했으며, 마켓워치는 “금융시장은 클린턴이 트럼프를 이겼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박물관 고을’ 영월에서 김삿갓을... 30일부터 제19회 김삿갓 문화제

    ‘박물관 고을’ 영월에서 김삿갓을... 30일부터 제19회 김삿갓 문화제

    제19회 김삿갓 문화제가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3일간 영월 박물관 고을에서 개최된다.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 유적지 일원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영월군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이다. 행사 첫째날인 9월 30일에는 전국 일반 및 학생백일장, 김삿갓 사생·만화그리기 대회와 전통적인 지방과거제를 현대에 재현하는 행사인 조선시대 영월과거대전 및 유가행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 행사 둘째날인 10월 1일에는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영월전통주 명인선발대회, 김삿갓문학관에서 김삿갓 주거지까지 이동하는 김삿갓 해학의 길 걷기 등 다채로운 행사와 개막식, 그리고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행사 마지막날인 10월 2일에는 김삿갓학술 심포지엄, 전국휘호대회, 강원도 등반대회와 폐막식이 진행된다. 또 행사기간 중 인절미 떡메치기, 향토음식 먹거리촌, 전통짚공예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 선생은 1807년부터 1863년까지 방랑시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집안 내력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 정진하다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답을 적어 낸 것이 조부인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후일 모친으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김병언은 이후 죄인으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면서 김삿갓으로 불리게 됐다. 김삿갓 시의 특징은 잘난 척하는 촌부나 훈장에게 특유의 야유와 곡설로 풍자하고 힘없는 노인과 부녀자에 대해서는 동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또 해학성과 풍자성이 뛰어났는데, 악덕하고 부조리한 인간과 사회에 대해 풍자하고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인간과 인정이 넘치는 사회에 대해 해학성을 드러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토요일은 빨간 날”... 달력에 토요일 붉은색으로 표기 추진

    “토요일은 빨간 날”... 달력에 토요일 붉은색으로 표기 추진

    달력에 일요일·공휴일 뿐 아니라 토요일까지 붉은색으로 표기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지 12년이 지났지만 토요일이 달력에 붉게 표시되지 않아 토요일을 휴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인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은 공휴일과 토요일을 빨간 날로 표기한 달력제작의 표준인 ‘월력요항’을 정부가 고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천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25일 밝혔다. 월력요항은 한국천문연구원이 매년 초 그 다음 해 공휴일·일요일·토요일과 음력양력대조표, 24절기 등을 작성해 발표하는 것으로 달력제작업체는 이를 참고해 달력을 제작한다. 하지만 이 월력요항은 법적인 근거 없이 행정 실무적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다. 관공서가 오전에만 근무한 이른바 ‘반공휴일’로, 파란색으로 표시돼 온 토요일도 달력 업체가 임의로 파란색 표시한 것을 수십년동안 관행적으로 써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발의한 법안은 월력요항에 관한 정의를 새로 만들고,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이 월력요항을 작성해 관보에 고시하도록 했다. 또 법정공휴일인 공직선거일도 빨간색으로 표시하도록 해 투표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했다. 신 의원은 “소규모 사업장은 달력에 검정색으로 돼 있는 공직선거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토요일에도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OECD 국가 중 근로시간 ‘1위’라는 불명예를 벗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가 일주일에 40시간, 즉 5일을 넘게 근무할 수 없도록 한 ‘주 5일제’는 2004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타 여왕 불꽃 대결…박성현이 먼저 웃었다

    장타 여왕 불꽃 대결…박성현이 먼저 웃었다

    ‘디펜딩 챔프’ 박성현 4언더파 공동 9위 “타이틀 방어 위한 대회라 더 우승 욕심” 1년 만에 국내대회 출전 김세영 중위권 홀인원·버디 5개 보탠 양수진 선두 나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와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장타자 대결은 박성현(22·넵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박성현은 23일 강원 춘천 엘리시안강촌 골프장(파72·6527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미래에셋대우 클래식 1라운드에서 버디 5개를 골라내며 4언더파 68타를 쳐 공동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무려 7타나 줄여 공동 선두에 나선 양수진(25·파리게이츠), 김지영(20·올포유)에게 3타 뒤졌지만 생애 첫 타이틀 방어에 파란불을 켰다. 박성현은 “에비앙 원정에서 돌아온 지 사흘 만이라 걱정도 됐지만 생각보다 샷이 좋았고 퍼팅도 점점 살아났다”면서 “타이틀 방어를 위한 대회라 더욱 뜻깊고 우승 욕심이 강하다. 퍼팅만 조금 더 살아나면 더 좋은 라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파5홀에서만 3타를 줄인 박성현은 “이 코스는 파5홀이 5개라 마음이 든다. 내일은 꼭 이글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1년 만에 국내 대회에 출전한 김세영은 버디 5개를 뽑고도 보기를 4개나 쏟아내는 바람에 박성현에게 3타 뒤져 중위권에 머물렀다. 후반 들어 샷이 난조에 빠지면서 1오버파까지 스코어가 나빠졌지만 노련한 경기 운영과 날카로운 퍼팅으로 마지막 3개홀에서 2타를 줄이는 저력을 보였다. 김세영은 “일요일에 우승 경쟁에 합류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2009년 데뷔해 통산 5승을 올린 뒤 2013년 이후 우승과 인연이 없던 양수진은 18번홀(파3·142야드) 홀인원에다 버디 5개를 보태며 7언더파 65타를 쳐 모처럼 선두에 나섰다. 통산 5번째 홀인원을 작성한 양수진은 “굳이 핀을 노리지 않는데도 볼이 홀 방향으로 가더라”며 활짝 웃었다. 올해 두 차례 연장전에서 눈물을 삼켰던 신인 김지영은 보기 없이 7언더파를 적어낸 뒤 “이번에는 연장 없는 우승을 목표로 달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초청 선수로 참가한 전 세계랭킹 1위 쩡야니(대만)는 2언더파 70타로 무난한 1라운드를 치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모녀 변사’ 대구 실종 초등생 수배 전단 배포·주변 수색나서

    대구 모녀 변사와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사라진 초등학교 4학년 류정민(11)군 행방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류군을 찾는 수배 전단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23일 밝혔다. 류군은 키 140㎝, 보통 크기 체형으로 갸름한 얼굴에 바가지 모양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또 파란색 소매가 달린 흰색 티셔츠와 긴 바지, 모자 차림이다. 경찰은 또 교육청, 소방서 등 도움을 받아 인력 100여명을 투입해 류군이 살던 대구 범물동, 지산동 일대와 어머니 조모(52)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경북 고령군 고령대교 부근 낙동강 주변에서 수색하고 있다. 류군 누나(26)가 숨진 채 발견된 지난 2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130여명이 나서서 류군 행방을 추적했으나 이렇다 할 흔적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어머니와 누나가 각각 숨진 경북 고령 낙동강과 대구 범물동 아파트 일대에서 류군 행방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류군이 살던 아파트 주민과 류군이 다닌 초등학교 관계자들을 상대로 최근 행적을 탐문하고 있다. 류군은 지난 15일 대구 수성구 범물동 한 아파트 폐쇄회로(CC)TV에 어머니와 집을 나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찍힌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인수 후보군 50여곳 발품 팔아 접촉…이광구 우리은행장 연임가도 ‘파란불’

    인수 후보군 50여곳 발품 팔아 접촉…이광구 우리은행장 연임가도 ‘파란불’

    4전 5기 끝에 우리은행의 민영화 성공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되면서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연임 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우리은행 지분을 4% 이상 인수한 주주들에게 사외이사 추천 기회와 행장 선임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 과점주주들이 ‘조직 안정’ 전까지 이 행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적잖기 때문이다. 이 행장이 해외에서 기업설명회(IR)를 잇따라 열며 50여곳의 인수 후보군을 일일이 접촉, 해외 투자자 유치에 노력을 기울인 점도 ‘득점’ 요인이다. 이 행장 취임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른 점도 이 행장 연임설에 힘을 싣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취임 당시 이 행장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가 민영화였는데 성공 기반을 만든 만큼 연임을 안 시켜 줄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내년에 정부 지분 20%가량이 추가 매각되면 또 한 차례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한 데다 대선 등도 맞물려 있어 어차피 이번 행장의 임기는 1년짜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민영화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이 행장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한 소식통은 “벌써부터 행장 자리를 노리는 내외부 인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우리은행, 18년 만에 정부 품에서 떠난다

    우리은행, 18년 만에 정부 품에서 떠난다

    한화·한투 등 18곳 투자의향서 제출 인수 의사 지분율 합하면 최대 119% 공자위 “11월 중 본입찰… 연내 매듭” 네 번 실패하고 다섯 번째 시도하는 우리은행 민영화가 9부 능선을 넘었다. 한화생명·한국투자증권·키움 등 총 18곳이 우리은행 지분을 사겠다며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했다. 인수 의사를 밝힌 지분율은 최대 119%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3일 우리은행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마감한 결과 금융사와 사모펀드(PEF) 등 총 18곳이 LOI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예비입찰에는 한화생명, 한국투자증권, 다우키움그룹 등 국내 금융사와 보고펀드, IMM PE, 어피니티, 오릭스 등 국내외 PEF가 참여했다. 안방보험은 자회사인 동양생명을 통해 우회적으로 투자에 참여했다. 이 중 인수 가능한 최대 지분 한도인 8%까지 사겠다고 써낸 곳은 한투증권과 어피니티를 포함해 3~4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써낸 지분을 모두 합하면 최소 82%에서 최대 119%다.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30%(전체 정부 지분율 51.06%)의 3~4배나 되는 수치다. 입찰 성공을 자신하기는 했지만 기대를 훨씬 웃도는 ‘흥행 대박’에 정부는 한껏 고조된 표정이다. 6년 넘게 끌어온 우리은행 민영화가 성공을 눈앞에 둔 최대 요인은 매각 방식 변화에 있다. 정부는 이번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는 ‘통째 매각’ 대신 지분을 4~8%씩 쪼개 팔기로 했다. 윤창현 공자위원장은 “11월 중에 본입찰을 진행해 연내 우리은행 민영화를 매듭짓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우리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12조 7663억원이다. 지금까지 지분 매각과 배당금으로 8조 2869억원어치를 회수했다. 본입찰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18년 만에 정부의 품을 떠나 민간 금융회사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슈퍼스타K 2016 김연우, 파란 최성욱 노래에 독설 “독창적인 음색이 아냐”

    슈퍼스타K 2016 김연우, 파란 최성욱 노래에 독설 “독창적인 음색이 아냐”

    ‘슈퍼스타K 2016’ 김연우가 파란 최성욱의 노래에 독설 평가를 했다. 지난 22일 Mnet ‘슈퍼스타K 2016’에서는 김연우를 포함한 7인의 심사위원이 그룹 파란 멤버 최성욱의 노래를 듣고 평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최성욱은 “다른 일을 하려고 찾아봐도 할 수 있는 일이 노래 밖에 없더라. 저는 노래 할 때 제일 행복하다”며 ‘슈퍼스타K 2016’에 지원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최성욱은 김사랑의 ‘위로’를 최선을 다해 불렀지만 결국 탈락했다. 탈락 표시가 뜨고 나서도 계속된 최성욱의 무대에 심사위원들은 안타까움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범수는 “제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다 드렸는데도 역부족이다. 세련되다거나 그런 느낌이 없었다. 이미 완성형 보컬이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보컬의 톤이나 창법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길은 “아예 다른 키로 불렀던 부분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고, 김연우 또한 이에 동감하며 “전체적으로 음에 플랫이 게속 있었다”고 말했다. 김연우는 “고음으로 갈수록 점점 쪼여지면서 답답하게 들렸다. 음색에 있어 독창적인 면이 없었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며 냉정하게 평가했다. 한편, Mnet ‘슈퍼스타K 2016’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된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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