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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택민의 평양 방문(사설)

    지난해말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개혁개방의 물결에 휩쓸렸을때 세계는 그 엄청난 변혁에 놀라면서 이윽고는 그들의 이목을 대륙의 중국과 한반도의 북한에 돌린 바 있다. 그러나 6ㆍ4천안문사태의 충격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북경당국은 현재로선 수구와 강경을 견지하고 있고 북한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세기적인 「지각변동」을 짐짓 외면하며 폐쇄를 고집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중국공산당총서기 강택민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난다.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소련을 시원으로 하여 동구를 강타한 사회주의권의 탈이념,개혁의 파도는 드디어 최후의 수구적인 은자로 지목되던 알바니아마저 움직였고 드디어는 몽고를 거쳐 대양건너 쿠바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까지 강경한 자세로 공산당일당독재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회주의국가는 중국이 있고 북한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강택민과 김일성이 만나면 무엇인가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북한에 관해 안팎으로 김일성ㆍ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권력승계설,부분적인 개혁추구설 등이 나돌고 있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조만간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분석이 일반화된지도 오래이다. 중국역시 그러하다. 중국은 지금 이념과 현실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사회주의노선을 포기 않는다고 다짐하지만 서방국가들의 협조없이는 그 경제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려있다. 경제적 필요성때문에 개방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정치적 체제유지를 위해 온갖 분야에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40여년 쌓아온 일당독재와 세습체제 유지고수를 위해 주민사상강화를 더욱 다지고 그럴수록 문단속을 철저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경당국자들은 천안문사태의 재발을 막기위해 수구와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만나 협의하고 다짐할 과제는 무엇인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일성은 그가 작년 11월 북경을 방문해서 약속한대로 「천안문사태저지방식」의 등소평지지를 재확인하고 소련ㆍ동구ㆍ몽고의 개혁노선을 반대할 것이다. 그 대가로 자신의 부자권력승계체제에 대한 북경 당국의 지지를 요청할 것이다. 강은 아마도 폐쇄속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평양측을 위로 고무하고 북경당국의 일관된 정책노선인 이른바 중국의 대한 4원칙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88서울올림픽으로부터 비롯된 한국ㆍ중국간 개방과 교류 나아가서는 중국의 대한수교원칙을 설명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야말로 같이 수구적인 평양ㆍ북경당국이 공유하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한 것이다. 평양과 북경당국은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결국 그 해결점은 「변화」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변화는 빠를수록 좋다. 역사적으로 평양과 북경,평양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정형화된 것이 없다. 김일성은 그 체제유지와 대남전략의 효율성여하에 따라 평양과 북경및 모스크바와의 거리를 조절해왔다. 지금은 그가 북경과 밀착하여 페레스트로이카의 거센물결을 외면하지만 역사와 시대가 그러하듯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북한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하락 3일째… 「8백60」붕괴/기관 대량매입에도 7포인트 빠져

    ◎금융주 계속 “미끌”… 내수업종 “반짝” 주가가 3일째 하락하고 있다. 6일 주식시장은 전날에 이는 금융주의 약세를 기관개입이나 반발매수세도 어쩌지 못해 마이너스권에서 맴돌았다. 종가는 전일대비 7.64포인트 빠진 8백57.58이었다. 중간중간 변동폭이 깊어 전장에는 보합권까지 올랐었고 후장중반에는 13포인트가 하락,종합주가지수 8백50선이 위협받기도 했다. 종가가 그나마 8백50대 후반에서 마무리된 것은 투신사 1백만주등 기관들이 1백30만주 가까이 사들인 덕분이었다. 투신사는 신설법인전용 펀드의 판매자금으로 낙폭을 줄이면서 일반투자자의 반발매수를 유발했으나 워낙 막무가내로 「팔자」만 외치는 금융주의 거센 파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거래량은 1천2백88만주였으며 이중 7백64만주가 금융주였다. 5백8개 종목이 내린데 비해 오른 종목은 1백37개에 지나지 않았으며 4백30만주가 매매된 증권주는 업종지수 하락폭이 2.2%에 달했다. 상승종목은 음료ㆍ섬유 등 저가내수 종목으로 상승폭도 소폭에 그쳤다. 후장들어 낙폭이 깊어진데는증관위가 내주로 연기되었다는 소식,대용증권의 대납비율이 축소된다는 소문,통화채 차환발행 보도가 일조를 했다. 이날 하락으로 주가는 3일간 27포인트 가량이 떨어졌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침몰선박 하나호 유정충 선장의 “살신성인”

    ◎21명 구하고 배와 함께 “침몰”/선원 「안전탈출」 시킨후/“SOS”치다 파도속에 침몰하는 어선에서 선원들을 먼저 대피시킨 뒤 긴급 구조신호를 보내던 선장이 선체와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지난 1일 하오1시51분쯤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 남서쪽 3백70마일 해상에서 조업중 파도에 휩쓸려 침몰한 속초선적 오징어 채낚기어선 제602하나호(1백t) 선원 21명은 2일 상오2시50분쯤 인근 해역에서 조업중이던 구룡포선적호 유창호(1백5t)에 의해 모두 구조됐으나 이들을 구명대에 태워 먼저 내보내고 구조타전을 계속했던 선장 유정충씨(45ㆍ속초시 청호동 423의1)만은 끝내 배와함께 최후를 마쳐 선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속초에서 선단을 이뤄 함께 내려온 제806 만성호(1백33t)에 인계돼 보호받고 있는 하나호 기관장 정철균씨(53ㆍ속초시 영광동 183)가 모슬포무선국에 알려온 바에 따르면 점심을 끝내고 얼마되지 않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집채만한 파도가 선실을 덮쳤고 배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우뚱거리면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유선장은 선원들에게 동요하지말도록 차례대로 당부한후 구명의를 씌워 퇴선을 명하고 자신은 조타실로 들어갔다. 정씨는 『당시만해도 유선장은 충분히 뛰쳐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동료들을 위한 구조타전을 계속하기 위해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면서 『입버릇처럼 배와 함께 살고 배와 함께 죽겠다던 유선장이기에 동료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사고당시 하나호주변에는 30마일정도의 간격을 두고 속초선단인 만성호와 제501대동호(1백2t),그리고 구룡포에서 내려온 유창호 등 4∼5척의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었으나 3∼4m의 파고와 초속20m의 강풍 등 악천후로 유선장의 구조타전이 계속되지 않았다면 나머지 선원들도 구조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정씨는 말하고 있다.
  • 소 일부시 시위 취소/보수파도 대항집회 철회/쌍방 폭력사태 우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당국이 25일로 임박한 대규모 민주시위에 대해 강경대처할 것임을 거듭 경고한 가운데 24일 일부 극단주의 보수파 세력들은 당초 계획했던 대항시위를 취소한다고 발표했으며 일부 도시의 시위 주도세력들도 폭력사태를 우려,시위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기관지 크라스나야즈베즈다(적성)는 군 및 내무부의 병력들이 모스크바 거리를 순찰하고 있으며 긴급사태에 투입되기 위해 대기중에 있다고 밝혔다. 앞서 레닌그라드 인민전선이 시위계획 취소를 발표한데 이어 시베리아지방의 치타시와 남부의 로스토프나도누시의 개혁운동가들도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시위계획을 철회했다고 공산청년동맹 기관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보도했다. 한편 이번 민주시위에 대한 대항시위를 계획하고 있던 초강경 민족주의 단체인 러시아 인민전선과 팜야트의 지도자들은 당초 모스크바에서 벌일것으로 계획한 대항시위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 피켓도 함성도 없이 그러나 희망을 안고/민주자유당 창당대회를 보고

    나는 여의도를 「정치도」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안개도」「연기도」라고 꼬집어 온 사람이다. 그곳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로서는 툭하면 자욱한 안개가 끼는 그곳의 풍경처럼 잘 헤아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감각이 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사당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의도라는 곳이 자꾸만 정이 떨어지고 따라서 그곳을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약속장소가 그곳이 되면 으레 비틀어 버린다. 병이라면 그것도 큰 병이다. 그러한 내가 2월9일 아침 그 안개지대엘 갔다. 그날 아침도 여의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그 내키지않는 곳엘 간 것은 그날 10시부터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리는 민주자유당 「합당수임기구 합동의회」라는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서울신문에서 내게 이 일을 맡기려할 때 나는 참으로 당황했었다. 정치감각이 둔한,아니 아예 그쪽을 감지할 수 있는 더듬이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일을 떠맡게 되었다. 정치에 무식한 사람의눈으로 본 역사현장의 스케치도 어떤 면에서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줄지도 모른다는 좀 뻔뻔스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현장을 찾게 되었다. 개회 20분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과 귀를 「행사」쪽에 모았다. 과연 이곳에서 정치폭탄이 터질 것인가 싶도록 덤덤한 분위기였다.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의원들도 서로 수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보도진들도 덤덤한 표정들이었다. 몇몇 기자들이 「내일부터 출입처가 어디냐?」는 농담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10시 정각,대회장에 들어서니 사진기자들이 단상앞에 사다리를 늘어놓고 올라서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룬 높은 벽 때문에 단상은 차단되었고 모습을 볼 수 없는 사회자가 성원보고를 했다. 1백11명중 1백6명이 참석했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이어 의장단이 선출되고 경과보고,합당결의,강령 및 기본정책의 채택,대국민 메시지 채택 등의 순으로 회의는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최고위원들의 인사가 있은 뒤 만세 3창으로 회의는 끝났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회의가 끝났다기보다 「국민의 여망,시대의 요청에 의한 새로운 정당,민주자유당」이 출범한 것이다. 그제서야 사진기자들이 이루었던 담이 무너졌다. 회의는 그렇게 물흘러가듯 했으며 다른 정치집회에서처럼 그 흔한 피켓도 볼 수가 없었다. 야단스럽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엄숙하기는 했다. 그 80여분 남짓한 동안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무수한 말들이 내게 묵자의 겸애편을 떠올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내일로 이끈다」든지 「분열과 정치대결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합당한 거대여당을 발족하게 됐다」는 등의 창당선언이나 경과보고때 나온 말들이 그것을 생각케 했다. 묵자는 일찍이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는 것이 인인의 임무」라고 말했다. 대국이 소국을 침공하고 큰 집이 작은 집을 어지럽히며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고 다수가 소수에게 횡포하며 간사한 자가 어리석을 자를 속이고 귀한 자가 천민에게 오만한 것 따위가 천하의 해독인데 그런 여러가지 해독이 생기는 원인은남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회장의 마이크를 통해 내게 전달된 무수한 말들은 결국 그 밑 바탕에 이러한 묵자의 말들이 깔려 있었다고 느껴진 것이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총재가 구상한 4당 구조의 과감한 타파도 결국은 『남을 그르다 하면서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불을 가지고 불을 끄자고 덤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묵자의 얘기와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대회가 끝났을 때의 여의도는 안개가 걷힌 상태였다. 마치 불투명한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합당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그 합당대회를 장식한 말들만으로는 내 머리속에 낀 「안개는 아직도」 였다. 그것은 여태까지 많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숱한 「좋은 말」들이 말의 성찬이었을 뿐 실행되어 온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한 불신의 안개는 내게서만 걷히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안개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을 것으로 믿어졌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안개는 정치인들의 언행일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창당대회가 끝난 뒤 나는 여러사람들과 「합당」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 역시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6시,나는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전시관 올림피아홀에서 열린 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축하연에 초청받은 형식이었지만 실은 순전한 구경꾼이었다. 2천5백여명이 초청되었다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또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창당대회장에서 들은 얘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그 말들은 훨씬 부드럽고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김지애 유열 최진희 등의 가수들이 들려준 감미로운 노래나 텔레비전 화면 혹은 신문ㆍ잡지 등으로 눈에 익은 얼굴들,군데군데서 만나게된 지기들 때문에 풀어진 마음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탤런트 이순재,성악가 박인수씨 등의 축시 「목련꽃」 낭독과 축가 「뱃노래」를 들은 뒤에 행해진 연설에서 거대여당 지도자들은 「10∼20년 뒤에 나라와 겨레를 살린 위대한 정치혁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굳게 단결하겠다」(김영삼)든지 「우리 당이 너무 커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결코 교만하지 않을 것」(김종필)이라든지,「흑백논리가 통하던 시대가 끝났으므로 이제 불안은 떨쳐버리자」(노태우)는 등의 얘기를 설득력있게 강조했다. 또 그것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기 위한 대연합의 주역다운 얘기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머리속의 안개는 아직도 말끔히 가셔지지 않았다. 나는 그 원인을 일단 내 협소한 시각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편협한 시각,편협한 사고를 스스로 꾸짖으며 오래전 중공 당총서기 호요방이 일본의 야마자키 도요코와의 간담회에서 했다는 말을 생각했다. 『나라를 생각한다고 해도 그중에는 애국주의도 있으며 그 반대로 매국주의도 있고 또 오국주의도 있다. 40여년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은 비록 그것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일지라도 그들을 애국자라고 할 수는없다. 그렇다고 매국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오국주의자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물을 협소하게 본 결과 저지를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애국 아니면 매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국도 있으며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소야대의 4당 체제로는 더 이상 과감한 개혁조치와 국운을 상승시켜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킬 수 없어 정치적 안정을 도모키 위해 3당 통합으로 중심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 합당의 명분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그 말을 믿고 싶어 한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이 삼발이와 같은 안정감을 우리들에게 안겨줄 것을 많은 국민들이 일단은 믿기로 할 것이다. 또 그 삼발이의 세 다리가 길고 짧음이 없이 튼튼하게 버텨 그 위에 얹은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말대로만 된다면 3당의 합당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참으로 합당한 「정치혁명」이 아닐 수 없다. 두시간 남짓한 합당축하연이 끝나 귀가길에 오르며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그리고 우리 겨레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자! 하늘이시여,여당ㆍ야당 그리고 우리 한 겨레가 튼튼한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삼발이를 만들게 하소서!』
  • “새 강령 미흡”…옐친 외로운 반대/당중앙위 총회 이모저모

    ◎보수파도 대통령제 도입 촉구 연설/리투아니아공 독립싸고 열띤공방 ○정치책략 대가 입증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7일 폐막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에서 러시아혁명 이후 최대의 권력구조 개편을 관철시켜 정치책략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 그는 공산당의 권력독점 포기를 설득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작업도 성공리에 마무리. ○폐막 늦추며 설전 ○…이날 회의는 하오로 예정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방소에 대비,하오 2시(한국시간 하오 8시)까지 끝내주도록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요청했음에도 불구,격렬한 토론을 벌이느라 하오 늦게까지 게속했다. 하오 2시 정회를 거쳐 하오 4시쯤에야 공산당 권력독점 포기 내용을 담은 당강령이 채택됐고 그후에도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분리독립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당강령에 대한 공개거수표결에서 2백49명의 참석중앙위원 가운데 2백47명이 찬성했고 1명이 기권했으며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만이 외롭게 반대해 눈길. 옐친은 새강령에 개혁적인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그정도로는 미흡하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공산당 자생력 갖춰” ○…7일 속개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 회의에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바딤 메드베데프 이념담당 정치국원,보수파 정치국원인 비탈리 보르트니코프 러시아 공화국 의장 등이 대통령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이날 연설에서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소련 공산당이 자생력을 갖췄으므로 이제 더이상 권력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으며 메드베데프는 헌법 제6조의 개정과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통한 국가권력의 확대를 요구했다. 또 리즈코프 총리는 『우리는 반드시 우리앞에 주어진 요구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찾아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고 『만일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권력지배 정당이나 인민의 정치적 전위로서 더이상 남아있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 ○강령 수정없이 통과 ○…이날 투표결과를 『팬태스틱(굉장했다)』이라고 표현한 안과의사 피요도로프 박사는 공산당 중앙위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제출한 당강령안을 「수정없이」 채택했다고 전언.
  • 「자연의 소리」전화 큰 인기/서울서만 5일새 28만건

    ◎새ㆍ파도소리 많이 찾아/도시민의 향수 반영/통신공사,분석 결과 서울과 부산에서 지난 1일부터 제공되고 있는 오디오텍스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생활정보보다 파도소리ㆍ천둥소리ㆍ새소리ㆍ짐승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훨씬 더 듣기 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6일 전화를 통해 각종 생활정보와 자연의 소리 등을 들려주는 오디오 정보서비스의 이용실태를 분석한 결과,1일부터 5일까지 5일동안 서울의 경우 모두 43만5천93명이 이용했으며 이 가운데 폭포소리ㆍ시냇물소리ㆍ다듬이소리ㆍ새소리ㆍ짐승소리ㆍ곤충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찾은 시민이 28만8천2백77명으로 연극ㆍ영화ㆍ음악회 등 문화행사와 육상ㆍ구기ㆍ등산ㆍ낚시 등 스포츠 레저분야를 문의한 7만5천4백73명과 농ㆍ수ㆍ축산물 및 꽃종류 도산매 가격을 알아본 7만5백9명을 더한것 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도 5일동안 매일 이용자가 가장 많았던 하오2시부터 3시까지 1시간동안의 이용자를 집계한 결과,자연의 소리를 찾은 시민이 6천86명으로 농ㆍ수ㆍ축산물 가격을 알아본 1천3백10명보다 4배가량 더 많았다. 자연의 소리 가운데는 시냇물소리ㆍ빗소리ㆍ천둥소리ㆍ기적소리 등 순수 자연의 소리를 들은 서울시민이 8만1천9백22명으로 딱딱한 도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대도시 시민들의 자연에 대한 갈증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새소리 가운데는 관상조(1만8천3백69명)보다 야생조(5만4천3백17명)를,짐승소리 가운데는 가축류(3만5백7명)와 양서류(9천2백7명)보다 표범ㆍ노루ㆍ호랑이ㆍ곰ㆍ사자 등 야생류(4만2천2백62명)의 소리를 훨씬 많이 들었다.
  • 해안 초병 피습 방위병 절명/통영/흉기든 괴한 2명에

    ◎현역병 중상… M16 2정 뺏겨/군ㆍ경,경남도내 검문검색 강화 【충무=이정규기자】 20일 하오7시20분쯤 경남 통영군 산양면 풍화리 육군○○부대 해안 2대대 명지초소에서 1백m쯤 떨어진 매복호에서 근무중이던 신일호일병(21)과 탁봉주방위병이 흉기를 든 괴한 2명에게 피습,탁이병은 그자리에서 숨지고 신일병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괴한들은 신일병 등이 휴대하고 있던 M­16소총 2정을 빼앗아 달아났다. ○실탄은 장전안돼 이 총에는 실탄은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에 옮겨진 실일병에 따르면 『초소에서 나와 매복호에 이르자 갑자기 괴한 2명이 뛰어나와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고 말했다. 신일병은 흉기에 찔린뒤 이들을 피해 초소로 되돌아 오던중 신호탄을 터뜨러 사고를 알렸다. 군경은 사고직후 범인들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도내전역에 20여개의 임시검문소를 증설,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합동수사반을 편성,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군경은 현장부근에서 길이 30㎝되는 식칼 1개를 발견했다. 군경은 일단 이날해안의 일기가 파도가 세고 바람이 센 점으로 미루어 해안으로부터 범인들이 침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따라 군경은 이 일대 지리에 밝은 불량배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대공용의점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중이다.
  • 90년대를 연다/새희망을 가꾸는 사람들:1

    ◎“새해 복많이…” 「30년 소망」 첫 통화/안도 등대장 성보환씨의 “말띠해 만세”/전국에서 마지막으로 전화설치/“「정보화 시대」 혜택 실감 이젠 고도가 아니지요”/뱃길 3시간… 3가구 6명이 한지붕에 『지난 밤 아무 사고도 없었습니다. 바다 역시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아 잔잔했고요. 아! 그리고 서과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경오년 새아침. 서해 고도 안도에 찬란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상오7시30분 인천항만청 서승규표지과장(52)에게 지난밤 상황을 보고하는 이곳 등대장 성보환씨(59)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밝았다. 등대지기 30년만에 처음으로 찍찍거리는 무전기 소리대신 똑똑한 목소리를 주고 받으며 직속 상급부서인 인천해운항만청에 전화보고를 마친 성대장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듯 얼굴가득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70㎞,항만청 행정선으로 3시간30분이나 가야하는 서해 돌섬 안도에 경오년 1월1일 0시를 기해 꿈에 그리던 전화가 개통된 것이다. 이 섬에 가스등 무인등대가 처음으로 세워진 1911년이후 79년,성대장의 부임으로 유인등대가 된지로부터는 5년만에 이루어진 경사다. 지난87년 6월30일 우리나라 전국 전화망이 완전 자동화됐고 88년 9월에는 전화 1천만회선을 돌파했으나 전세계 1백53개국 1백80개 지역과 즉시 자동통화를 가설,이제는 전기통신부문 세계 10위,아시아 2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이지만 안도의 전화가설은 또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전화개통으로 비로소 산간벽지,절해고도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우리나라 어디든지 전화가 가설된 것이다. 꿈의 세계라 일컬어지는 2천년대 정보화 사회의 터전을 완전히 마련한 셈이다. 안도의 전화가설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벌이고 있는 농어촌 통신 현대화사업중 5백22번째 섬마을 사업으로 우리나라의 1가구라도 살고 있는 유인도중 마지막이었다. 유인도라지만 이 섬은 해발 47m 면적 6백14㎡에 불과한 2개의 바위섬으로 성대장과 부인 오세련씨(56),직원 김경철(35)ㆍ김진영씨(27) 부부와 딸 가희양(3),직원 박상철씨(29) 등 등대지기 3가구 6명이 한지붕밑에 살고 있는 것이고작인 외딴섬이다. 비록 식수조차 자체로 마련하지 못해 모든 식량과 식수ㆍ부식 등 생필품 일체를 보름에 한번씩 인천항만청에서 오는 행정선의 보급에 의존하지만 인천항의 관문을 지키는 등대로서의 중요성은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인정받아 왔다. 지난59년 소청도 등대를 시작으로 연평도ㆍ목덕도ㆍ선미도ㆍ부도 등 인천항만청 소속 등대를 두루 거친 성대장의 새로 개통된 전화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다. 전화가 없었던 안도에서의 생활은 현대속의 원시생활이나 다름없었다. 위독한 환자가 생겨도 육지와 연락할 수 없어 지난72년 아들을 잃은 것을 비롯,일반여객선이 없어 육지와 편지도 주고 받지못해 세상이 시끄러울 때면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맏아들 기수씨(29)와 맏딸 옥란(32)ㆍ둘째딸 옥빈씨(28) 등 자식들의 안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보름에 한번씩 오기로 되어있는 항만청 행정선에 모든 보급품과 육지소식을 의존하지만 사방이 뾰족한 돌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파도가 조금이라도 일면 배를 대지 못하기 일쑤다. 전화는 컴퓨터ㆍ팩시밀리(FAX)ㆍTV 등과 함께 정보화 사회의 기본적으로 필수적인 장비다. 정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안도의 전화가설로 정보화 사회를 향한 기반조성이 완료됐다고 보고 오는 2천년까지 모두 63조원을 들여 단계적으로 뉴미디어를 개발,보급하기로 했다. 우선 91년까지 화상회의와 텔레텍스ㆍ비디오텍스ㆍ유선TVㆍ고속FAXㆍ열차전화ㆍ원격감시시스템을,96년까지 컴퓨터 3백22만대 보급과 함께 화상전화와 시내외 통신망 디지틀완성을,2천년까지 컴퓨터 1천만대 보급을 마친다음 2천1년에는 전화망과 텔렉스망,데이타통신망 등 모든 통신방식이 하나로 묶여지는 종합통신망이 완성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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