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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8회)

    매카시즘적 풍조가 문학인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53년 휴전 직후였다.주인공은 나환자시인으로 명성을 올린 한하운이었고,사건 전말은 일부 언론매체가 그의 시집 ‘한하운시초(詩抄)’를 ‘적기가(赤旗歌)’같은 선동시로 몰아치면서 “민족적인 미움을 주자” 고 매도한 데서 발단됐다.‘빽’도 돈도 없었던 이 문둥이 시인은 졸지에 언론이 만든 ‘문화 빨치산’으로 취급 당해 관련 기관으로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은 뒤 자신의 시를 고쳐쓰지 않으면 안될 딱한처지임을 절감하게 되었다.그는 원작에 되도록 손이 덜 가도록 몇 행을 빼고는 마지막에 한 줄을 첨가한 뒤 시 뒤에다 주(註)를 붙여 창작 배경을 변호해야만 되었다. 그날 이후 한하운이란 이름으로 나와있는 각종 시집이나 연구논문,각종 전집이나 시선집에도 원작은 간 데 없고 빨갱이로 몰려 부득이 고쳐 쓸 수 밖에 없었던 시작품을 고스란히 얌전하게 옮겨쓰고 있다.시에 못지 않게 문둥이라는 신체적인 조건에다 애달픈 로맨스로 더유명했던 한하운은 문학사의이채로운 존재로서 삽화적으로만 다뤄지면서 정작 그의 사회인식이나 역사적 활동은 도외시 당해왔다.바로 그 단적인 예가 시 ‘데모’ 개작 한 편에 축약되어 나타난다. 우선 현존 시집에 실린 시 ‘데모’(1)와 발표 당시의 원작(2) 전문을 소개한다. (1) ‘데모-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뛰어들고 싶어라/ 뛰어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 파도 소리와 함께/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 /아우성 소리 바다 소리.//아 바다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아 문둥이는죽고 싶어라.” (2) ‘데모’ “뛰어 들고 싶어라/뛰어 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파도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 뒤에 뒤를 줄대어/ 목 쉰 조선사람들이 간다.//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아우성 소리 바다소리.//아 바다소리와함께 부서지고 싶어라/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1)은 현재 시판 중인 시집에 실린 것으로 부제는 1946년 3월 13일 함흥 학생시위 사건이다.한하운 자신도 이를 구경하다가 연행 당해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다시 반국가 사범으로 투옥,역시 병세 악화로 석방,나병 치료약을 구하러 월남했다가 귀향 중 피체 당했다. 그리고 이감 중 원산에서 탈옥하여월남한 것이 1947년 8월이었다고 자전적 시 해설서인 ‘황토길’에서 밝힌다. (2)는 해방직후 최대의 종합월간지였던 서울신문 발행 ‘신천지’ 1949년 4월호에 월북시인 이병철의 추천사와 함께 실린 등단 당시의 작품이다.이것은 정음사에서 같은 해 5월30일에 낸 시집 ‘한하운 시초’에 그대로 실렸고,이어 1953년 6월 30일 재판본에도 그대로 게재되었다. 한편 ‘서울신문’은 1953년 10월 17일 ‘하운 서울에 오다-레프라왕자 환자 수용을 지휘’란 제목의 기사를 작품 ‘보리피리’와 함께 게재했다.사회부 오소백(吳蘇白)부장과 문제안(文濟安)차장의 사임으로까지 비화되었던 이 사건이야말로 매카시즘이 문학만이 아니라 언론계에도 암적으로 작용했음을 엿보게 한다.문제의 기사는 “4만5천명의 나병환자를 지도하는 문둥이의 왕자가 서울에 나타나서 서울 거리를 방황하는 나병환자들을 시 위생과의 협조아래 수용하기 시작했다”를 서두로 시인이자 나환자로서의 그의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간략히 소개한 뒤 “더욱이 한하운 시집으로 말미암아 문단에 여러 가지 파문이 던져지고 더구나 일부 신문에서는 마치 한하운이란 사람은유령과 같은 가상인물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지금 한씨의 출현은 나병환자들에게는 물론 문단과 일반에게도 크나 큰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다.”고 그특종성을 부각시켜 사진까지 게재했다. 任軒永문학평론가
  • “”새해 새설계”” 여기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할 때가 됐다.내년은 토끼의 해인 기묘년. 지난 해가 유난히 어려웠던 한 해였기에 기묘년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정 초에 갖는 마음가짐은 1년을 좌우한다고 한다.그래서 누구나 새 해 초가 되 면 설레이기 마련이다.묵은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신정휴일.이 신 정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새해를 맞아 알차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한다. [고궁개방] 새해 원단에 고궁을 찾아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 일 것이다.문화재관리국은 1월1일 하루 서울 경기소재 5대 고궁과 14개 능· 원을 일반인들에게 평상시처럼 공개하기로 했다.이날 한복을 입은 관람객들 은 무료입장을 할 수 있어 한복차림으로 가족 나들이를 해볼만한 곳들이다. 덕수궁과 창경궁에서는 널뛰기,팽이치기,윷놀이,투호 등의 민속놀이마당도 마련된다. ?개樗隔貶? 에버랜드는 99년 토끼해를 맞아 1월1­3일 산토끼 99마리가 자유롭게 뛰노 는 토끼광장을 만든다.‘토생전’을 응용한 레크리에이션과토끼방 토끼쿠키 도 만들어 선보인다.유러피안광장에서는 대학생 동아리 ‘천기누설’이 한해 운수를 점쳐 주는 사주풀이마당을 연다.또 옛사람들이 새해 첫날 무병장수 를 빌며 드나들었다는 대형 ‘불로문 통과’행사도 열린다.제기차기,윷놀이, 투호,굴렁쇠 굴리기 등 민속놀이 광장과 어우동 방자 향단이 출연하는 고전 해학마당극에도 참여할 수 있다. 롯데월드는 오후 7시·7시30분 두차례 신년 민속 퍼레이드를 연다.60인조 마칭밴드를 따라 태평성대 어가행렬,대동놀이 ,춘향전 등 전통축제 행렬이 지나면서 신년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가든스테 이지에서는 1일과 3일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있고 매일 오후 9시30분 ‘라이 브 뮤직밴드 쇼’가 열린다.오후 11시까지 연장 개장한다. 서울랜드는 삼천 리동산에서 1일부터 3일까지 우리 전통 점치기와 컴퓨터 점을 비교하는 행사 를 가져 찾는 이들의 사주 궁합 관상을 보아준다.1일 오후 2시 통나무 무대 에서는 뽀빠이 이상용이 폭소덕담을 섞은 공연을 연다.1일부터 2일까지 흥겨 운 농악대 공연과 함께 무료가훈 써주기,윷놀이,투호,제기차기,줄넘기,고무 줄놀이 등 가족단위의 민속놀이 한마당도 계속된다. [해돋이 구경] 동해 추암은 ‘일출 1번지’로 불리는 동해시의 해돋이 명소.명물인 촛대 바위와 기암괴석 뒤로 펼쳐진 망망대해 끝에서 솟는 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을 옆 언덕배기에 들어서면 촛대바위가 나타나는데 옆쪽에 각양각색의 암 석전시장이 펼쳐져 문어 불상 해골 폭포바위 등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암 석지대 바로 옆에는 고려때 세운 해암정이 남아 있는데 정면 3칸,옆면 2칸의 해암정에 서면 파도의 숨소리가 들린다. 강릉 정동진은 한때 탄광촌이었던 곳.드라마 모래시계 방송후 더욱 인기를 더해 가고 있는 어촌이다.넓은 모래사장과 담수가 빠져 나가는 낡은 철다리 는 손을 맞잡고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밤기차를 타고 달려와 맞 는 해돋이의 멋이 더욱 정겹다.해안에 인접해 있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 다와 마주하게 되는데 맑은 물과 탁트인 시야가 사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영덕 강구항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의 어촌.MBC TV의 ‘ 그대 그리고 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해뜨는 장소가 일정치 않아 항구에 선 자칫 일출을 놓칠수도 있기 때문에 삼사 해상공원 쪽을 택하는게 일출을 보기에 안전하다. 충남 당진 왜목마을은 서해안이면서도 지형 때문에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장엄한 동해 일출에 비해 소박하지만 정겨운 분위기 가 일품이다.날씨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수 향일암은 지명 그대로 해를 향해 열려있는 암자.한려수도를 바라보고 들어 앉아 있는 대웅전과 관음전,산신각 등 모두 6동짜리 작지 않은 사찰이 다.전남 여수시 돌산대교를 건너 30분쯤 달리면 향일암으로 향하는 입구가 나타난다.돌산섬의 끝인 임포에선 10분거리다.이른 새벽 바위봉우리에 올라 서면 향일암의 본체가 드러난다.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백숲과 바위병풍이 에워싸고 있는 암자의 모습이 퍽이나 아름답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 일출은 동해의 많은 해돋이 가운데서도 가장 장관을 이룬다.일출기간은 짧지만 주변건물,풍경들과 어우러지는 색채의 조화가 볼 만하다.의상·원효대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홍련암과 보타전,낙산사 경내의 범종과 7층석탑 등 지정문화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낙산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대장관은 멋진 겨울바다 여행코스가 아닐 수 없 다. 경주 토함산과 석굴암의 일출 장면은 우리의 자랑거리다.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끼고 있는 토함산은 동해의 햇살이 가장 먼저 와 닿는 땅이다.바다 가 끓어 오르듯 붉은 구름을 피워 올리다가 순식간에 솟구치는 해돋이는 정 초에 한 번쯤 가져 볼 만한 경험일 것이다.토함산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감 포도 들러 볼 만한 곳.감포 앞바다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선 기림사와 감은사 지,이견대,대왕암은 신라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거제도 해금강과 외도해상공원도 원단 해돋이의 감상지로는 탁월한 곳.외 도는 동백숲과 선인장,용설란 등 아열대식품이 많아 이국적인 풍치를 느끼게 한다.일본의 침략을 막기위해 조선시대에 쌓았다는 5개 성과 6·25전쟁 당 시 포로가 거주했던 포로수용소 등 역사문화유적도 기다리고 있다. [볼만한 전시] 63빌딩은 1층 특별전시장에서 이집트 유적을 매일 밤 10시까지 전시한다. 관람객들이 직접 탐사대로 나서 이집트 진품유물 150점을 발굴해보는 체험의 장소다.전망대에선 운석(별똥)과 희귀광석 등 600여점을 모은 별똥·희귀광 석전이 전망대에서 열린다. 한국종합전시장(KOEX) 태평양관에서는 ‘살아있는 희귀 해양생물박람회’가 열린다.해수어,열대어,세계 희귀해양생물,한국 연안어류,희귀파충류 등 어 류 350종,파출류 70여종 등 모두 420종 3,000점이 선보인다. 또 원주 치악산드림랜드에서는 눈썰매장 개장과 함께 국내외에서 찍은 UFO( 미확인비행물체) 사진 60점이 공개되는데 연휴기간 동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조각작품 관람도 의미있는 것이다.65개국 205명의 작품 213점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확 트인 주변 환경과 함께 조형물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12점을 새로 전시했다. [기타] 한국민속촌은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장을 마련한다.기묘년맞이 운수대통 굿 판에선 입장객들에게 점을 봐 주고 재수부적을 나눠준다.중요무형문화재인 북청사자놀음,송파산대놀이,세시풍속인 풍물,줄타기,지신밟기 등을 선보인다 .디딜방아,괴나리봇짐 져보기, 지게지기 등 전통생활 체험장도 마련한다.전 통 얼음썰매와 연날리기 투호놀이 등에도 참가할 수 있다. 서울타워에서는 세모의 서울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31일밤과 1일 새벽4시 까지 전망대를 개방한다.주간에는 세계각국 유물 3,000점을 전시하는 지구촌 민속박물관,로봇 동물인형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세계뮤지컬동물랜드 등도 마련한다. 또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은 대학 수학수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들 에게 공원을 완전 무료 개방한다.학생증과 수험표를 지참하면 무료 입장할수 있다. ?겉那∩? kimus@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북한의 남해침투 반잠수정/특수도색 처리 레이더 추적 불가능

    ◎잠수 최대속력 6노트… 5∼6명 승선 18일 전남 여수 앞바다로 침투했다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은 대간첩 침투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공작모선에 실려 이동한 뒤 모선에서 이탈,공작원 등을 태우고 해안선으로 접근한다. 선체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특수도색 처리가 돼 있어 레이더 탐지 및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반잠수 상태로 항해할 경우 물위로 20∼50㎝만 노출돼 1m가량의 파도만 쳐도 육안 식별이 어렵다. 공해상에 떠있는 모선에서 분리돼 해안선 인근에 간첩을 내려놓고 다시 모선으로 복귀하는데 대략 6∼8시간이 걸린다. 이번에 격침된 반잠수정은 10t규모로 알려짐에 따라 승선인원과 최대속도도 이 반잠수정보다 큰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속초 앞바다로 침투하다 어망에 걸려 우리 해군에 예인된 북한 함정은 70t급 유고급 잠수정이었고 지난 96년 9월 강릉 앞바다로 침투한 선박은 350t급 상어급 잠수함이었다.
  • 北 반잠수정 南海 침투­발견에서 격침까지

    ◎육·해·공 입체작전 7시간35분/18일 새벽 함포3발에 “상황 끝”/17일밤 해안초병 여수앞바다서 괴선박 첫 포착/경비정·초계함·조명기 총출도에 2차례 교전끝 격침 긴박했던 7시간35분동안의 추격전.육·해·공군은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공동 입체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 ▷발견◁ 17일 밤(음력 10월 29일) 11시15분쯤. 육군 31사단 95연대 1대대 여수 임포소초 초병 金泰完 이병(21)은 그믐밤의 칠흙같은 어둠을 실감했다. 해안경계 강화태세가 내려진지 7일째. 야간감시장비(TOD)를 확인하는 순간 두눈이 번쩍 떠졌다. 전방 2㎞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이 1.5m의 파도를 넘나들며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선박에 안테나와 해치 2개가 설치돼 있고 4∼5명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확인했다. ‘간첩선’임을 직감한 金이병은 인터콤을 통해 소초 상황실 林承煥 병장(22)에게 괴선박의 출현을 보고했다. 15분후 경비정 2척이 출동했으나 반잠수정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반잠수정이 다시 임포소초 TOD에 포착된 것은 18일 오전 1시40분쯤. 반잠수정은 발각됐다는 낌새를 채고 임포소초 전방 8㎞ 해상에서 공해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추적◁ 군은 레이더 추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전 2시10분쯤 조업중인 어선이 정지토록 하는 선박경보를 발령했고 경비정 2척이 시속 40∼50노트(70∼80㎞/h)의 고속으로 반잠수정을 뒤쫓았다. 오전 3시7분,합참본부는 위기조치반을 소집했다. 3시18분 해군은 진해기지에 정박중이던 800t급 초계함 광명함(함장 孫민 중령)을 현장으로 출동시켰고 공군도 김해비행장에 있던 CN­235 조명기 3대를 급파했다. 함정 8대로 도주로도 차단했다. 오전 4시38분쯤 반잠수정과 첫 조우한 광명함은 경고 사격을 하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다. 반잠수정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공해쪽으로 달아났다. 우리 해상을 침투한 괴선박을 좆던‘날치’작전이 괴선박으로부터 응사가 있은 이때부터 ‘망둥이’작전으로 격상됐다. 새벽 4시45분쯤 CN­235 조명기 3대가 도주하던 반잠수정을 발견,조명탄 175발을 투하,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또 기총과 2.7인치 로켓으로 무장한 F­5전투기 1대와 S­2E 초계기가 상공을 맴돌았다. 오전 5시35분쯤 거제도 남방 100㎞ 해상에 도달한 반잠수정은 35노트에서 8노트로 속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격침◁ 5시48분쯤 반잠수정에서 갑자기 기관총이 발사됐고 나포하려고 접근하던 고속정 좌현에 ‘퍽’하는 파열음과 함께 7.62㎜ 총탄이 박혔다. 투항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남원함(함장 李순항 중령)은 오전 5시48분 76㎜,40㎜,20㎜ 함포로 집중사격을 가했고 10분 뒤인 5시58분 함포 3발이 반잠수정에 명중했다. 반잠수정이 가라앉으면서도 5노트(8㎞)의 속도로 움직이자 수중 도주에 대비,폭뢰 5발을 투하했다. 오전 6시50분쯤 반잠수정은 마침내 수면 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격침 시간대별 조치 ●17일 오후 11시15분=육군 00사단 여수 임포소초 초병,미상선박 접근 탐지 ●〃 〃 11시30분=해경정 육경정 1척씩 출동 수색 ●18일 오전 1시40분=임포소초 초병,도주중인 미상선박 2차 포착 ●〃 〃 2시10분=선박경보 발령,해경정 육경정 추적 ●〃 〃 2시46분=육군 레이더 미상선박 3차 포착 ●〃 〃 3시7분=합참 상황접수 ●〃 〃 3시20분=해군 광명함 출동 ●〃 〃 3시35분=공군 CN­235 조명기 출동 ●〃 〃 4시38분=해군 광명함 미상선박에 경고사격 및 응사 ●〃 〃 4시39분=북한 반잠수정 확인,F­5F 전폭기 출동 ●〃 〃 5시1분=P­3C 대잠 초계기 출동 ●〃 〃 5시10분=해군함정 8척 외해 차단 ●〃 〃 5시48분=북한 반잠수정 아군 고속정에 응사,도주 ●〃 〃 5시58분=해군 남원함 함포 사격,3발 명중 ●〃 〃 6시20분=추가사격 및 폭뢰 투하 ●〃 〃 6시25분=반잠수정 침몰 시작 ●〃 〃 6시50분=반잠수정 완전 침몰 ●〃 〃 8시7분=잠수복 차림의 북한군 시신 1구 인양
  • 서양화가 金章喜(이세기의 인물탐구:185)

    ◎기하학적 선에 엮어낸 ‘고요한 공허’/끝없는 그림에의 열정… 40나이에 미 유학/뉴욕 한복판서 처절하고 외로운 창조작업/그의 격자무늬속엔 ‘우주’가 들어있다. 金章喜의 화면은 ‘기하학적인 선(線)추구’로 표현된다. 100호 이상의 대형화면에 비단실을 드리운 듯한 섬세한 직선의 집합은 어느 때는 악보와도 같고 어느 때는 질서정연하게 창공을 가르는 새들의 편대와도 같다.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 역정에서 파란과 곡절,희비가 파닥이다가 태양이 빛을 바래게 하듯이 정적(靜寂)으로 가라앉는 침묵의 뉘앙스다.도저하게 펼쳐진 구도 속에서 처음에는 질서파괴와 자유분방이 교차되지만 마침내 모든 번뇌를 씻은 무상무념의 이미지가 그것이다.미술평론가 김홍희는 이를 가리켜 ‘김장희 기하추상의 미학적인 절대성은 인간적 정취와 섬뜩한 창조적 전율’이라고 평한 바 있다.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선의 모습은 ‘무엇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푸른 영혼의 안식처’라고 했다.또 그가 긋는 선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위적인 선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긋는 드로잉적인 선이 특징이다.물론 그것은 자를 대고 그었을 때보다 더 치밀하고 날카롭다.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가운데 손에서의 힘의 강약이나 리듬이 되살아나는 것은 내면에 뿌리박혀 있는 강인한 작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이른바 김장희의 격자무늬는 기하학적 수직과 수평을 짜면서 속세적인 잡다한 상념을 제거하고 있다는 의미다.이와 같은 은밀한 반란은 미술사에서 이미 수립된 기존 양식에 대한 안티테제의 선언일 수도 있다.또는 캐나디안­아메리칸 여성화가 아그네스 마틴이 그런 것처럼 미니멀 추상 속에 그물망같은 선묘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고도 할 수 있다.화면의 가장자리까지도 그림의 일부이며 사방의 여백을 넉넉한 여유로움으로 남기는 것 등이 그렇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홍가이는 ‘그의 캔버스의 창은 사각의 틀로 짜여진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묘사하거나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공간의 영역을 깊이 바라볼수록 ‘공허와 무의미’만이 남듯이 그의 그림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새 ‘고요한 공허’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김장희는 지금 뉴욕 소호 한복판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혼자 살고 있다.두꺼운 시멘트 벽과 높은 천장,오래 된 건물의 2층 화실은 300호에서 1,000호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세워져 있다.그는 아침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 캔버스들이 도열된 사이를 한동안 서성거린다.어제 한 일을 돌아보고 오늘의 작업에 연결시키려는 의도다.그리고 연필과 색연필·유화물감으로 극치의 극치로 치닫는 고달픈 작업에 매달린다.그러다가 며칠 만에 거리로 나와 화랑들을 순례하고 연극 영화 무용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예술을 토론한다.그의 예술론은 때묻지 않은 눈부신 투명성을 지녔고 그의 명상이 심오하다는 것은 그의 주변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실제로 그는 하르트만에서 비트겐슈타인·푸코와 에코에 심취하고 수많은 예술서적을 탐독한다.그리고 내부에 축적된 다양한 감동을 가늘고 굵고 여리고 짙은 선으로 끝없이 풀어낸다. 김장희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다. 화장기 없는 신선한 얼굴에페이더너웨이를 풍기는 세련된 차림,깡마른 체격이 신경질적으로 보이기 쉽지만 남을 포용하고 스케일이 크고 대범한 일면이 그의 성격이다.원로 서예가로서 플루트를 연주하던 心堂 金濟仁씨와 李再淳씨 사이의 2남1녀중 가운데.바이올리니스트 金旻이 그의 오빠이고 그래픽 디자이너인 金椿이 남동생.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이재현씨에게 바이올린을 사사했으나 손가락이 짧다는 스승의 충고에 따라 이대미대 동양학과에 진학했고 결혼과 함께 68년에 도일, 교토에 머무는 동안 교토대와 도지샤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일본에서는 주로 모더니즘 판화그룹에 속해 있었다. 8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 한때 슬럼프를 겪다가 그림을 위해 결혼을 정리하고 40이 넘은 나이인 지난 86년 뉴욕행을 감행했다.아들 경준(도쿄대 재학중)이 있다. 그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컨템포러리 웨스턴아트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보았고 웨스턴아트의 뿌리를 찾아 최근에는 1년의 한 계절을 유럽에서 보내고 있다.그곳에서 유럽의 아이디얼리즘(觀念)과 동양의 선적(禪的)인 것,메타피지컬이 아닌,피지컬을 수용하고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하나의 ‘빛’인 ‘선(線)’을 찾아내자 화가로서의 길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그리고 그가 찾아낸 ‘선’위에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압축하고 정예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그의 미니멀리즘은 언제부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까지 도전하여 이제는 마음속으로 ‘심상(心狀)’을 그려내게 된 경지다.그러나 그의 작업은 하나의 극단에 다다를 수 없고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무한대의 우주공간임을 그는 알고 있다.그래서인지 그가 태어난 환경과 서양의 문화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만나고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겠다는 집념에 차있다. 해마다 서울과 유럽,일본의 초청전시에 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기회도 남용하지 않는다.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에 도취하고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교교히 배어나온다.그런 김장희와 그의 그림을 보고 시인 김화영은 ‘향기가 우러나오는 시정’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그는 스스로 천재임을 결단코 부인하지만 그의 노력과 절제와 단호한 결단은 눈부신 미래를 예고하는 ‘범상치 않은 예술가의 한 사람’임을 그의 주변과 유럽의 화단은 일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 출생 1966년 이화여대 미대 졸업 1968­74년 일본 교토대 졸업 1974년 일본 젊은 아티스트 10인전 1974­76년 일본 도시샤대 대학원 미학과 졸업 1975년 교토 아메리칸센터그룹전 1988년 도미, 뉴욕체류 1994년 서울개인전(인공갤러리) 1995년 이탈리아 파도바 ‘25X25’전,베네치아 개인전 및 트라게토 ‘30X30’전 출품 1996년 서울개인전(갤러리서미) 1999년 3월 일본개인전(도쿄 쇼게츠갤러리)서울개인전예정(인갤러리) 현재 뉴욕거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활동
  • 日 자민당 대대적 세대교체 예고

    ◎소장파의원 목청 커져 파벌들 후계구도 서둘러/미야자와파­가토 前 관방 새달 회장직 인수/와타나베파­야마사키 등 32명 모레 분가/미쓰즈카파­모리간사장이 총수승계 넘봐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집권 자민당내 제 2파벌인 미야자와파 회장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이 물러난다. 그는 26일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중의원·9선) 전 관방장관에게 연말쯤 회장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달 14일 이후 대장상직에서도 사퇴할 뜻을 비췄다. 미야자와 대장상이 후계구도를 서둘러 밝힌 것은 가토 의원을 따르는 젊은 의원들의 성화 때문. 당내 젊은 층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겨냥한 ‘새 깃발 꽂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내 파벌 간의 지각 변동도 예상된다. 의석 86석인 미야자와파를 인수받는 가토 의원은 ‘가토파’로 깃발을 바꿔달고 내년 총재선거에 출마할 예정. 파벌내 최대 정적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가 가토 후계구도에 반발하고 있다. 그도 20명 안팎의 의원을 끌고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근대미래연구회’의 수장인 와타나베(渡邊)파의 야마사키 타쿠(山崎拓·중의원·9선)의원도 30일 야마사키파를 발족한다. 6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와타나베파에서 야마사키파로 분가할 의원은 4∼5선 안팎의 소장파 32명가량. 야마사키 의원은 젊은 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의 반발로 회장진출이 번번히 무산되자 당권 도전을 위해 분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와타나베파는 명예회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파와 야마사키파로 분리된다. 의석 62석의 미쓰츠카(三塚)파도 모리 요시로(森喜郞·중의원·10선) 간사장이 회장 승계를 넘보고 뛰고 있다. 그러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92년 다케시타(竹下)파를 물려받았다. 의석 91석으로 자민당내 최대인 오부치파 회장이 된 뒤 비교적 안정적으로 파벌을 이끌고 있다.
  • 만물상(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1)

    ◎병풍 같은 금강 연봉에 ‘전율’/온정리 호텔·공연장 신축공사 한창/실향민은 비경보다 고향땅에 더 설레 ●꿈같은 동해 뱃길,밤새 뜬 눈으로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내 나라의 산과 물이 두 동강으로 허리 끊긴 지 53년,5백년보다 더 멀고 아득한 저 너머의 세월,거기 통곡의 날들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을. 1998년 11월18일 새벽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듯이 하늘에서는 듣도 보도 못하던 유성우(流星雨)라는 불비가 폭죽인 듯 터지며 쏟아져 내렸고,금강산의 선경이 아니라 거기 감추고 겨레의 숨결을 보고 싶어서 첫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아니 그보다는 북녘 땅에 고향을 두고 반세기 동안 발을 구르며 살아온 그 북녘의 산천을 밟아 보는 일이 눈감기 전에 이뤄질 날이 있을지 마음조이던 사람들이 동해항으로 몰려들고 있다. 처음이라 혼잡스러우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미 형성된 각 조의 명단에 의해 패찰용 임시여권인 ‘금강산 관광증명서’를 목에 걸고 오후 1시부터 통관 및 승선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후 5시30분,실로 역사적인출항식을 보기위해 갑판에 나와 폭죽이 터지고 수천개의 풍선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환송에 손을 흔들었다. 멀리 강릉·속초 등 동해연안의 불빛들을 뒤로하고 파도를 가르는 뱃길에서 고향을 찾는 이들은 밤잠을 못이루었고 이문구 이문열 박범신을 비롯한 문인들과 언론인들은 감회를 삭이는 술잔에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윽고 19일 새벽,뜬 눈으로 밤을 새운 이들은 창가에서,갑판 위에서 장전항의 불빛들에 눈을 부볐고 가까이 병풍처럼 둘러선 금강연봉을 보면서 꿈이 아닌 현실에 몸을 떨었다. ●선경(仙景)에 첫발을 내딛고 내 나라를 오가면서 밟아야 하는 입국절차를 마치고 문을 나서니 새로 단장한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내가 들어 있는 ‘나’조의 첫 코스인 만물상을 향해 버스는 떠난다.온정리(溫井里)는 이름 그대로 온천이 솟아나는 곳,그러나 일제하에서도 국내외 관광객들이 붐볐다는 그 영화의 자취는 없고,현대가 벌이고 있는 호텔·공연장 등의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일행은 버스가 한하계(寒霞溪)를 끼고 오르는 동안 좌우로 펼쳐지는 관음연봉(觀音連峰)·수정봉(水晶峰)·곰바위 등 그 신의 작품들의 연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저것 봐! 저것 봐!”라고 연신 탄성을 지른다. 풍악(楓岳)의 계절은 지나서 황홀의 단풍은 모두 옷을 벗고 산은 개골(皆骨)의 알몸이 되어 오히려 나무들의,돌의 한 무늬로 남아 있고 청옥의 물빛이 초겨울의 투명한 기운을 뽐내며 흐른다. 금강산 절경을 마디마디 시조로 노래한 이은상 선생이 ‘금강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라고 읊었는데 그 돌이요,물인 까닭을 만나보니 알 것 같다. 바로 장전이 고향인,1·4후퇴 때 옷이 없어 어머니의 저고리를 입고 맨발로 남녘 땅에 왔다는 한일환씨(63세)는 어려서 본 산세며 계곡의 모습을 더듬으며 비경의 아름다움보다는 고향땅을 밟는 감회에 창 밖을 향해 눈을 적신다. 100구비가 넘는 가파른 갈지(之)자 길을 버스로 40여분 오른 다음에야 삼선암·귀면암에 오르는 비탈길을 등반한다.제법 차가운 바람에 볼이 시렸지만 일행은 산을 오른다기보다는 언제 또 볼까 싶은 비경들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면서 한편으로 그림으로,사진으로 보던 명소들을 가슴에 새기느라 서로 말을 잊는다. 바위마다 갖가지 동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고,이름에 담겨 있는 전설들은 만물상(萬物相)이 곧 삼라만상의 축소판임을 실감케 했다.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여기가 어딘가 싶게 금강산은 숨겼던 얼굴을 내밀고 돌 넘어서 돌,골짜기 넘어서 골짜기,봉우리 넘어서 봉우리….나는 신선이 된 듯 둥실 떠오른다.
  • 스핑크스의 코/리영희 지음(화제의 책)

    ◎문민정부시대 절망 신문·잡지 기고 모음 책 제목은 이집트 여행에서 비롯된다. 이집트 기자는 스핑크스의 코는 강자가 자기의 것을 약자에 강요하는 반지성,반문화,몽매,독단 그리고 폭력숭배와 잔인성에서 뭉개져 버렸다고 설명한다. 20세기 한국 국민의 코를 뭉개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전환시대의 논리’로 암울한 시기 우리들에게 한줄기 빛을 전해준 저자의 수필집으로 지난 95년부터 최근까지 신문과 잡지 등에 썼던 기고문을 한데 모아 묶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치사회적 광풍과 파도에 시달려 곤죽이 된 정신과 몸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던 것이 언론과 대학생활 40년째를 맞은 5년전의 솔직한 심정이었으나 문민정부 5년은 새로운 배신과 절망의 시대였다”고 회고한다.종교,언론,문화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글들이 실려 있다. 까치 8,000원
  • 올해도 입시 추위/내주초 비온뒤 17일 기온 뚝

    99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오는 18일에도 어김없이 ‘입시추위’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3일 “휴일인 15일까지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16일에는 전국적으로 흐리고 비가 온 뒤 기온이 뚝 떨어져 예비소집일인 17일부터는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겠다”고 예보했다. 16일까지는 예년 기온과 비슷하지만 17일에는 서울 아침기온 0도,낮기온 6도 등으로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도 세게 불겠다. 18일에는 기온이 더 떨어져 서울 아침기온이 영하 4도 등 전국이 영하권에 들고 낮기온도 4∼5도 안팎으로 낮겠다. 기상청은 또 “16∼19일에는 전 해상에서 강한 바람과 함께 3∼4m의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면서 도서·해안지방에 사는 수험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 인천국제공항(21세기 여는 한국의 대역사:Ⅰ)

    ◎‘동아시아 제1관문’ 힘찬 비상 준비/공정률 52%… 2000년 6월 완공/여객터미널 63빌딩 5배 규모… 강판만 562㎞ 소요/2단계 건설 끝나면 연간 여객처리능력 1억명으로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새로운 천년의 싹이 움트고 있는 비전의 땅 영종도.인천항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이 곳에서는 21세기 새로운 하늘을 열차세대 국제공항이 힘찬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쾌적한 공항을 지향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친 파도를 잠재우는 40리길의 방조제와 곧게 뻗은 활주로,독수리의 날개같은 여객터미널,하늘 끝을 찌를 듯한 관제탑….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경제시대를 향한 날개짓이 무척 활발하다. 2001년 1월1일.앞으로 2년 1개월 뒤면 세계는 인천국제공항의 지붕아래 모여들고 우리는 벅찬 가슴으로 현대사의 한쪽을 쓰게 될 것이다. 92년 11월 삽질을 시작해 바다를 막고 터를 다듬은 지 6년.지난 10월 말 현재 총 공정률은 52%.계획대비 99%의 달성률이다.보상·설계·기술 용역의 공정은 90%대를 넘어섰다.올 연말까지 목표 공정률은 62%.내년 말까지 89.8%를 달성해 2000년 6월 완공한다. 완공 후 6개월간의 시운전기간을 거쳐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1년 1월1일 세계인에게 문을 활짝 열 예정이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이 후반기에 접어든 사실을 한눈에 알려주고 있는 것은 공항시설의 핵심인 여객터미널 공사현장. 서울 63빌딩의 5배 규모(연건평 26만4,000평)인 여객터미널은 1,2터미널 및 4개 동의 독립 탑승동 공사가 한창이다.이 가운데 1단계 공사기간인 2000년 6월까지 11만2,000평을 완성하고 나머지 부분은 골조와 외관공사만 끝내게 된다. 지난해 이미 4만5,000평의 부지에서 15t트럭으로 15만대분(지하 10m 깊이)의 흙을 파내는 굴토공사와 직경 40.6∼60.9㎝,길이 36m의 강판파일 3만1,000여개를 지하 암반층까지 박는 작업을 마무리했다.공사에 들어간 강판의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다시 대구까지 이을 수 있는 562㎞.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여객터미널은 길이가 1,064m,폭 149m,높이 33m,지상 4층,지하 1층의 구조물.지난 10월 말 현재 공정률은 27%로 목표치의 98%를 달성했다.하루 평균 1,500여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여객터미널의 공사진척에 맞춰 활주로와 급유장 열병합발전소 등 나머지 비행장 시설도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인천 공업정수장부터 신공항배수지까지 바다밑 23.3㎞ 구간에 송수관 설치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냈다.수송선으로 운반하던 하루 18만t의 용수를 해저 송수관로를 통해 공급받게 됐다. 인천국제공항은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면 30초당 1대씩의 비행기가 이륙하고 날개가 84m인 초대형기가 취항하며 연간 2,700만명의 여객을 처리하게 된다.연간 화물처리능력은 170만t.이어 2단계건설이 모두 끝나는 오는 2020년이면 활주로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나고 연간 여객처리 능력은 1억명으로 늘어난다. 인천국제공항건설공단 姜東錫 이사장은 “인천국제공항은 입지,경관,규모면에서 일본의 간사이공항이나 홍콩의 첵랍콕공항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다”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 GNP의 5%이상을 벌어 들이는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義死보상금 전액 장학금 기탁/崔在桓 육군 대령 아들 모교에 전달

    ◎“외아들 의로운 희생 헛되지 않게…” “하늘나라에 있는 진희도 아버지 뜻을 이해하고 기뻐할 겁니다” 지난 8월4일 동해안 오산해수욕장에서 파도에 휩쓸린 남녀 중학생 2명과 초등학생 1명 등 3명을 구한 뒤 탈진해 숨진 강원대 임업과 1년생 崔眞熙군(20)의 아버지 崔在桓 대령(49·육사 29기·육군 특수전학교장)이 의사자(義死者)보상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崔대령은 2일 서울 송파구청에서 열린 의사자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뒤 곧바로 아들의 모교인 휘문고로 가 보상금증서를 전달했다.崔대령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학생들을 잘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崔대령은 오는 12월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상금 8,054만6,000원을 받는 즉시 이를 학교에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해 崔군의 담임을 맡았던 교사 林承奎씨(46)는 “진희는 당번이 아니더라도 쉬는 시간에 조용히 나와 칠판을 지우곤 했다”면서 “다른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씀씀이에 대해서는 선생님들은 물론 수위아저씨들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崔대령은 “기독교인답게 순교자의 길을 택한 진희의 참사랑,진정한 뜻을 살리고 싶었다”면서 “진희가 원했던 일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日·유럽 주가 폭락/日 경기전망 우울… 美 금리 인하폭에 실망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주가가 연사흘째 폭락세를 연출하고 있다.좀처럼 폭락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본 주식시장의 혼미마저 우려된다. 1일 도쿄(東京) 주식시장에서 닛케이 평균 주가는 전날보다 209.27엔이 내리며 1만3,197.12엔으로 장을 마감했다.86년 2월 이후 최저다. 주가는 지난 9월27일 87.94엔이 떨어져 1만3,821.43엔을 기록한 데 이어 30일 또 415.04엔이 내려 1만3,406.39엔을 기록했었다. 일본의 경기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일본은행의 발표가 있자 거의 전 종목에서 팔자주문이 쇄도했고 미국의 금리 인하폭에 실망한 매물이 쏟아지며 뉴욕 증시가 폭락한 여파도 이날의 내림세를 부추겼다. 한편 미국 금리인하폭에 대한 실망은 유럽으로 번져 독이로가 스페인의 주가는 5% 이상,스위스와 이탈리아,네덜란드 및 프랑스는 각각 4%정도 하락하는 등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나타냈다.
  • ‘예니’ 북상 제주 400㎜ 폭우/30일 밤 제주 상륙

    ◎남부 호우경보·전해상 폭풍주의보 제9호 태풍 예니의 영향으로 29일 한라산 성판악에 400㎜의 많은 비가 내리는 등 제주도에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 선박 수백 척이 긴급 대피하고 테니스 골프 등 옥외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의 일부 종목이 취소됐다. 배가 침몰하고 곳곳에서 비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피해는 예니가 제주도 앞 해상까지 진출하는 30일 밤부터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9일 하오 9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서쪽 약 310㎞ 해상에서 북상 중인 예니가 이동속도가 시속 33㎞로 빨라져 30일 하오 9시쯤 제주도 서남서쪽 60㎞ 해상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예보했다. 기상청은 이에 따라 29일 오후 제주도 및 제주도 남쪽 해상에 태풍주의보를 발령했으며 제주도와 전남·북과 경남·북에 호우경보를,충남·북과 강원도 중·남부 및 울릉도에 호우주의보를 각각 발령했다. 서해와 남해,동해남부 전 해상에는 폭풍주의보를 내렸다. 강한 열대폭풍에서 태풍으로 발달한 예니는 반경이 390㎞로 중심 부근에서 초속 15m의 강풍이 불어 5∼9m의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 기상청은 30일 중부지방 20∼100㎜ 이상,남부지방 60∼150㎜ 이상,제주 80∼200㎜ 이상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 재일교포 연출가 김봉웅씨 작품/‘뜨거운 파도‘ 한·일 연속공연

    ◎내년 4·5월 서울선 일본어로 일선 한국어로 추진 일본 오이타시의 극단 쯔카 코우헤이가 내년 4월 연극 ‘뜨거운 파도­여형사 이야기’를 일본어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다.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중인 김봉웅씨(50)가 지난 95년 자신의 일본이름을 따 창단한 이 극단은 99년 4월과 5월 서울과 오이타시에서 이 작품의 연속 공연을 시도하면서 해방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일본어공연을 시도한다.반대로 오이타시에서 열릴 5월 공연은 한국어로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 한국인 출연배우를 모집중이다. 한일 연속공연으로 추진되는 이 작품은 김씨의 자작 연출극 ‘매춘 수사관’으로 이 극단의 창단작품으로 소개된뒤 도쿄에서 호카이도,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호평을 받은 화제작. 게이오대학 문학부를 중퇴한후 희곡을 쓰기 시작한 김씨는 73년 ‘아타미살인사건’이란 작품으로 키시다 쿠니오상을 최연소로 수상했고 82년 ‘카마다 행진곡’으로 나오키상을 받는 등 일본 연극계에서 입지를 굳혀왔으며 특히 오이타시에서는 ‘지방으로부터의 문화발신’이란 새로운 문화경향을 주도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김씨는 재인한국인으로서 이같은 한일 연극 페스티벌을 통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두나라간에 작은 가교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밝혔다.일본 공연에 참가할 배우에 대한 원서접수는 2일까지 극단 쯔카 코우헤이 서울사무소.1차 오디션은 10월26∼30일.(02)826­6126
  • ‘철의 노동자’ 꽃다지(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8)

    ◎노동가요­대중 묶어준 ‘노래패’/노동자들의 애환 서정적 선율에 담아 합법성 인정받으려 공륜과 힘겨운 싸움/첫 앨범 ‘가사변경’ 장벽 뚫고 원안수록 감격/‘희망의 노래’ 보안법위반 시비는 시대착오 노동자 집회나 대학가 시위에선 반드시 노동가요와 민중가요가 불려지게 마련이다.이 노동가요와 민중가요만을 보급해오고 있는 전문 노래패 ‘꽃다지’는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하지만 웬만한 노동가요와 민중가요치고 이들의 작품이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꽃다지’는 확고하게 자리잡았다.이처럼 큰 성과 뒤에는 눈물겨운 투쟁이 숨어 있다. 이 단체가 정식 출범한 것은 지난 92년 3월.하지만 그 뿌리는 전국에서 민주노조 결성을 위한 총파업이 거행되던 87년 7월부터 9월까지 현장 문예운동의 첨단에 섰던 두 노래패로 거슬러 올라간다.노동자노래단(노노단)과 대학 노래패 출신들의 모임인 예울림이 그것. 당시만 해도 노동가요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주로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그러나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입에 올려지던 관념적인 이 노래들은 구사대가 몽둥이를 휘두르던 급박한 상황엔 맞지 않았다.노동가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노노단에서 노래운동을 벌이던 金호철씨와 현재 아라리요민요연구회 대표인 金애영씨가 ‘파업가’‘노동조합가’‘민주노조사수가’ 등을 만든 게 이때다. 88년 가을 ‘총파업가’를 실은 비합법 테이프는 만든지 3∼4개월만에 20만개가 팔려나갔다.방송을 타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주문이 쇄도해 매일 밤을 새면서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다.이때부터 ‘운동권 노래’는 학생운동,지식인 위주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이후 만들어진 89년의 ‘단결투쟁가’와 91년의 ‘철의 노동자’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는 레퍼터리다. 그러나 90년 전노협이 결성되고 민자당이 출범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고 노동자집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이전의 투쟁가와는 달리 생활공간에서 불려질 수 있는 서정적인 노동가요의 필요성이 부각됐다.그래서 노동자노래단과 예울림이 합쳐진 게 바로 ‘꽃다지’다.노노단과 예울림에서 모두 33명이 활동을 시작한다.그러나 이들의 노래가 합법적으로 불려지기에는 상황이 너무 험했다.92년과 93년 사이에 각각 15곡씩이 실린 테이프 1·2집을 내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이나 노동집회현장에 내다 팔았다.이렇게 구전되던 이들의 노래는 마침내 94년 첫 공식음반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꽃다지’는 이 첫 음반으로 뼈아픈 사연을 겪게 된다.공윤 심의에 15곡을 올렸는데 4곡을 빼곤 모두 반려됐다.가사를 바꿔 내라는 것이었다.15곡은 6개월전부터 2,000여명의 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선곡한 것들.공륜을 찾아가 항의했다.“풀뿌리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문민정부의 모순이 불거진 것이지요.수십만명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바꾸라는 것은 대중정서를 훼손하는 우스운 짓입니다.심의 싸움은 사실상 음반회사의 몫이지만 그때 분위기상 음반사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지지 않으려 했고 어쩔수 없이 우리가 투쟁에 나섰습니다”(꽃다지 대표 李銀珍·33). 재심의가 열렸다.이번엔 ‘단결투쟁가’ 한곡만 빼면 통과시키겠다는 양보를 얻어냈다.‘단결투쟁가’는 그 당시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노래.문화평론가들의 자문을 구해 소견서를 첨부해 제출하며 ‘단결투쟁가’를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마침내 승리를 이끌어 냈다.모든 노래가 실릴 수 있게 됐다.그래서 나온게 94년 5월 노동절에 맞춰 선을 보인 첫 음반이다.‘꽃다지’ 창립 1년만의 일이다. 노래는 흔히 불려졌지만 이들의 무대는 좁았다.첫 음반이 나오기 한 달 전에야 처음 공식적인 무대에 설 수 있었다.민노총이 주최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이 그것이다.여러 노래패의 연합공연이긴 하지만 꽃다지로선 의미있는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이후 전국의 대학 강당과 소극장,운동장,공원등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그러던중 96년 대표가 구속되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 대표 李銀珍씨는 연세대 재학시절부터 노래운동에 뛰어든 전문가.90년 전노협 노래책 ‘진짜 노동자’와 92년부터 민맥출판사에 펴낸 노래책 ‘희망의 노래’ 4집의 선곡·감수를 맡았다.그런데 이 ‘희망의 노래’가 국가보안법에 걸려들었다.노래 가사가 북한의 노선과 맞물린다는 이유였다. 96년 2월 장안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갇혔다.이기간 내내 꽃다지 회원들은 매일 낮 12시 탑골공원에서 시위를 벌였고 李씨는 결국 50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80년대부터 대학가에서 흔히 불려져 음반으로 발표됐던 노래들을 문제삼은 것은 시대착오적인 조치였다고 봅니다.6월 민주화항쟁을 담은 노래마저도 문제시됐는데 그렇다면 6월항쟁도 불법이란 말인가요.합법적으로 나와 유통되던 노래책을 뒤늦게 묶는 조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李銀珍 대표) 지난해 낸 2집 음반과 싱글음반은 모두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했다.지금까지 3집에 걸쳐 음반을 내면서 전국에서 가진 크고 작은 공연만도 1,800여회.방송에서도 이들의 노래는 드문드문 들려진다.전국의 노래패중 가장 많은 가수와 연주자,기획자를 확보한채 활발하게 움직이는 전문 노래패이기도 하다.“이젠 집회나 대학축제때 분위기를 돋우는 도구적인 노래를 벗어나 안방과 일반 모임에서도 불려지는 레퍼터리로 정착해야 합니다.노동가요와 민중가요가 거부감없이 입에 올려질 정도로 노래와 일반인들의 인식이 모두 성숙했습니다.시민들이 스스로 문화의 장르를 찾는 능력이 쌓일때 문화는 성숙해가는 게 아닐까요”(李銀珍 대표) ◎금지된 사연들/대중화된 노래 가사 바꾸라니…/1집 대부분 방송금지 ‘족쇄’/‘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서정성 극치 ‘꽃다지’의 레퍼터리는 급박한 시위현장의 합창이 전부인가.87년 노동자 총파업 속에서 선동적으로 진행되던 노래운동은 90년 노동자 탄압에 밀려 서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다.물론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숱한 노동·민중가요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분위기와 통일에의 꿈을 분명히 담고 있다.지난 94년 공윤심의에서 모두 통과한 1집음반의 일부가 방송에서 철퇴를 맞았던 사연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KBS의 경우 1집음반중 ‘단결투쟁가’를 탈락시켰고 MBC는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거부했다.“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우리는 가리라 기필코 가리라 승리의 한길로”(단결투쟁가),“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서울에서 평양까지).대중들의 민감한 반응을 의식해야만 하는 방송의 입장에선 당시 분위기상 선뜻 전파에 실을 수 없는 노래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부른 노래중 적지않은 것들이 방송을 탄다.‘바위처럼’‘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전화카드 한장’‘통일이 그리워’가 그것들이다.“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바위처럼),“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전화를 하라고 내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전화카드 한장). 작가와 단체만으로도 탈락했던 과거 심의 잣대라면 ‘꽃다지’의 노래는 무조건 거세돼야만 한다.그러나 서정적인 양식을 갖추고 파급됐던 이들의 노래들은 여과없이 안방에도 들어가고 있다.사람들을 위해 꽃과 잎,씨앗을 모두 바치며 사는 한해살이 풀 꽃다지.결국 한해살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노래패 ‘꽃다지’에게도 얼마든지 있다고 볼 수 있다. ◎꽃다지의 길 ▲92년 꽃다지 창립.연세대 대강당서 제1회 콘서트. ▲93년 세종대 대양홀,예술극장 한마당서 제2·3회 콘서트. 효창운동장서 전노협주최 전국노동자대회 초청공연. ▲94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서 민예총 주최 ‘다시 서는 봄’ 공연 출연.합법음반 제1집 발매.세종문화회관 대강당서 ‘노래판굿 꽃다지’ 공연 출연.마당세실극장서 제4회 콘서트. ▲95년 소극장 오늘서 제5회 콘서트.창무포스크극장서 제6회 콘서트.연세대 대강당서 민노총 출범 축하공연.마당 세실극장서 제7회 콘서트. ▲96년 두레극장,마당 세실극장서 제8,9회 콘서트. ▲97년 제2집 앨범 발매.마당 세실극장,대학로 라이브1관에서 제10,11회 콘서트.싱글음반 ‘세상을 바꾸자’ 발매.북한어린이돕기 거리공연. ▲98년 동숭아트센터서 콘서트
  • 87년과 98년 DJ의 光州 방문(청와대 취재수첩)

    지난 87년 가을쯤이다. 당시 야당 지도자로서 ‘김대중 선생’으로 더 가깝게 다가왔던 金大中 대통령이 사면·복권돼 광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기자는 당시 사회부 ‘햇병아리 기자’로 金대통령을 수행 취재했다. 金대통령이 광주역에 내리자 역광장은 인파의 바다를 이루었다. 주변 건물 옥상과 창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다. “김대중” “김대중”을 외치는 연호소리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고,역광장 한쪽 귀퉁이에 준비된 조그마한 단상은 군중들의 ‘파도’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떼밀리듯이 金대통령은 가까스로 단상에 올랐다. 그가 마이크 앞에 서는 순간,사위는 갑자기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여러분,여러분의 김대중이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인사를 드립니다” 광장 안은 일순 울먹이는 소리로 뒤덮였고,모르는 옆사람을 무작정 껴안고서 환호했다. ‘5·18 내란음모 배후조종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들의 ‘김대중 선생’은 한(恨)의 동일체였고,희망의 상징이었다. 어쩌면 그의 사면·복권을 우리 현대사의 아픔인 ‘5·18’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의 시작으로 읽고서 토해낸 기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자는 그때 金대통령으로부터 ‘지역갈등 해소와 사회통합의 의지’를 봤고,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읽었다. 그의 지론인 ‘춘향이의 한은 이도령을 만나는 것으로 풀어지고,심청의 한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으로 풀리고…’처럼. 金대통령 내외는 엊그제 고향인 목포와 광주를 다녀왔다. 金대통령 내외의 행보를 보면 ‘통합’이 화두(話頭)였던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지역갈등 해소를 호소하면서 그것의 청산을 약속했다. ‘역대 독재정권의 악마의 주술과도 같은 국민분열과 지역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李姬鎬 여사도 광주 여성계 인사와의 오찬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청와대 앞뜰에 전국 시·도의 상징꽃을 심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받고 “좋은 아이디어네요. 당장 그렇게 하죠”라고 대답했다. 광주도 달라지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열기와 환호가 줄어서만이 아니다. 택시기사나 시민들은 꼭 짚어 이유를 밝히진 못했으나 정치인과 이 지역 의원들,그리고 경제개혁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치적 꿈’은 실현됐으나,국민들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IMF의 먹구름이 너무나도 깊은 때문인지 모르겠다.
  • 詩­음악­영상이 만나면…/22일 속초서 시 낭송회

    ◎최동호·김정란씨 등 참석 우리의 시낭송 문화는 불모에 가깝다.우리 언어가 원래 낭송에 적합하지 않아서 일까.그렇지는 않다.우리의 향가와 고려가요,시조,가사는 모두 넓은 의미에서 ‘낭송’을 전제로 씌어진 것이며 입으로 전해 불려진 ‘노래’였다.22일 강원도 속초한화리조트에서 열리는 시낭송회 ‘파도에 젖은 햇살’은 이러한 우리 시낭송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의 시낭송사랑회와 속초의 물소리시낭송회가 함께 마련한 이 행사는 다소곳이 서서 시구만을 읊조리는 기존의 건조한 시낭송행사와는 다르다.연출개념을 도입,다양한 현장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진 복합문화행사로 치뤄진다.최동호 정호승 김정란 김명인 이문재 박주택 이희중 나희덕 이성선 최명길 이홍섭씨 등 10여명의 시인이 참석한다.
  • 金大煥 타악기 연주자(이세기의 인물탐구:180)

    ◎드럼연주·미각 일가이룬 ‘자유인’/자신의 북 여섯개 북채로 풀어낸 천상의 리듬/한해 절반 연주여행중에도 하루 8시간 연습/쌀 한톨에 새긴 반야심경 283자 기네스북 올라/주문제작 오토바이를 악기 사용 퍼포먼스도 인사동에 가면 金大煥이 있다.검은 모자에 검은 옷차림,그는 언제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깡마른 체구에 안광이 빛나고 두눈에는 이상을 추구하는 열정이 담겨 있다. 그의 집이 있는 압구정동에서 새벽 4시면 일어나 세서(細書)·미각(微刻)에 골몰하고 하오에는 인사동 연습실에 나와 북연습에 파묻힌다.일년의 절반이상을 뉴욕과 도쿄,유럽무대를 누비는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에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세서의 달인이다. ○이슬·번개를 닮은 음악 먼저 그의 음악은 ‘이슬과도 같고 번개와도 같다’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의 세계다.가장 빨리 사라지는 이슬에서 가장 크게 번뜩이는 천둥번개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섭리를 쳐내기 위해 그의 손가락은 마디마다 부르트고 피멍이 맺혀 있다.그러나 그의 북연주는 물이 흐르듯이 흐르는 유장한 여운이 일품이다.처음에는 징과 챔벌,로토톰과 대고를 한꺼번에 쳤으나 지금은 그가 만든 북하나에 여섯개의 북채로 다양하고 현란한 리듬을 형성한다. 인간의 귀로 잡아낼 수 없는 침묵의 소리,마음의 눈으로나 들을수 있는 천상의 멜로디는 두번다시 재현되지 않는 즉흥연주로서 ‘가슴속의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민속학자 심우성은 ‘그것은 전율과 경이로움의 연속이며 그 속에는 거문고 소리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일본의 권위있는 음악전문지 ‘무신조’도 ‘약속된 악보없이 형식과 틀을 파괴한 그의 연주는 연주자의 마음가는대로 연주되는 프리 뮤직’이 강점이라고 평한다. 어떤 음악과 도 어울리고 어떤 장단도 구사하는 그의 테크닉은 ‘소리는 사라져버린다는 원리를 실천하는 행위’로서 공연기획자 강준일에 의하면 ‘그것은 눈부신섬광’일 수 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그가 쌀 한톨속에 써넣은 ‘반야심경(般若心經)’ 283자는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그의 붓글씨는 책상이나 바닥에서 쓰는 것과는 달리 선 채로 왼쪽에서부터 거꾸로 쓰는 좌서(左書)가 특징이다.현미경으로 봐야만 알아볼 수 있는,먼지보다 작은 세서도 글자마다 반듯하게 균형이 잡혀있고 획이 살아 있다.이 글씨를 쓰기 위해 바늘보다 더 가늘고 첨예한 세각도(細刻刀)를 직접 갈고 닦는 등 그의 손은 찔리고 베이고 성할 날이 없다. 바람에 흩날리듯,한바탕 춤추듯이 극(克)과 극(劇)이 극치에 다다른 그의 글씨를 보고 동양철학의 김용옥은 ‘왕휘지의 서법보다 더 분방하다’고 감탄했고‘그의 작품앞에선 타이베이 고궁 속의 세각도 빛을 잃는다’고 쓴 적이 있다.그가 미각에 빠지게 된 것은 지난 68년 중국에 가서 세서 전시를 보고 나서다.과연 ‘인간의 한계’란 어디까지인가.나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한국에 돌아오자 쌀알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수백 수천개의 쌀알을 깨트린후 5년만에야 반야심경을 완성했다. 그에게는 두가지 호가 있다.음악을 할 때는 흑우(黑雨)이고 글씨를 쓸 때는 여수(如水)다.우(雨)와 수(水)는 두드린다,때린다(beat)는 뜻이다.노자에 의하면 ‘여수’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의미이고 ‘흑우’ 역시 감추어진 소리를 찾아내는 소리의 탐구자로서 북을 치지 않아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극소·극대의 경지를 터득하려는 극기 훈련이랄 수가 있다.그러나 그가 글씨를 쓰던 북을 치던 그것은 그의 음악을 위한 한 도정에 불과하다. ○“왕휘지 서법보다 분방” 20세기를 살아온 모든 예인들의 역정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비천과 허영이 엇갈린 역사의 뒤안길’에서 외롭게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인천 동산중학교에 다닐때 그림과 조각,악기연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북소리가 좋아서 밴드부에 들어가 북을 치기 시작했다.졸업후 공군군악대를 거쳐 제대하자 이번엔 미8군 무대에서 이봉조 길옥윤 등과 연주,신중현과 재즈클럽을 만들기도 했으나 70년대에 들어서자 트럼펫의 강태환트리오와 공간사랑 무대에서 재즈 활동을 펼쳤다. 10년 이상 신나게 북을 두드리다가 어느날 ‘모든 박자는 일박(一拍)에 통섭(通涉)된다’는 것과‘한번의 때림으로 음악의 완성’을 깨닫자 지금까지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연주를 위해 도쿄로 진출했다. 그 곳에서 아프로­아프리칸음악의 선구자격인 미국의 세계적인 트럼펫주자 레오 스미스,일본의 정상급 프리재즈 피아니스트 야마시타 요스케 등과 유럽 각지의 축제와 미국 인디언페스티발에 참가하면서 세계가 알아주는 대스타가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별주문 제작된 오토바이 하레이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 동서횡단,남북종단의 연주에 나서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악기로 사용하는 퍼포먼스는 세계 음악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올해도 일본 시코쿠에서 출발하는 2,000㎞의 대장정과 이탈리아 아비뇽 예술제에 다녀왔고 중국과 미국연주를 남기고 있다.이른바 섬세의 극치인 미각에 신기원을 세우면서 역동적 드럼연주로 정상에 오른 상반된 두 분야의 거목인 셈이다. 절대로 매스컴을 타지 않고 포스터에도 자신의 사진을 싣지 않으며 낯가림이 심해서 남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는 지식층 사이에는 그의 추상회화적 음악,첨단음악은 오래전부터 ‘신화적 존재’로 회자되어 왔다.연주여행을 하면서도 반드시 8시간의 연습을 감행한다. 가족은 내조에 극진한 부인 權明姬씨와 딸하나. ○‘一拍에 通涉’ 섭리 깨쳐 재능있는 사람을 찬양하기를 꺼리지 않는 김용옥은 ‘이 땅에서 나와 같이 숨쉬고 있는 이만한 예술가’가 있음을 경탄하면서 ‘그의 기(氣)의 아름다움은 공부의 완성이며 완성으로 발출하는 심미적 세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고 경의를 표한다.보이지 않은 ‘흑우’와 들리지 않는 ‘묵우(默雨)’를 음악으로 성취한 그의 득도(得道)는 북이나 글씨가 아니더라도 그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우리의 가슴속에 이슬같고 파도같은 긴 여운을 언제까지나 울려주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33년 인천 출생 ▲1946년부터 인천 동상중 브라스밴드 ▲1952년부터 북 연주활동 ▲1953­57년 공군군악대 ▲1961년부터 미8군 무대활동 ▲1968년 세서각(細書刻) 시작 ▲1968∼72년 월남전 참가 ▲1975년 한국그룹사운드협회 회장 ▲1978부터 강태환트리오멤버 활동 ▲1985년부터 일본무대 진출 ▲1985년 ‘반야심경(般若心逕) 전문 백미실물(白米實物) 세서 완성 ▲1988년 북 개인발표회(동숭아트센터), LA에서 산타페까지 2천㎞ 대장정 연주,인디언 페스티벌 참가 ▲1990년 세각 세계 기네스북 인정 ▲1991년 ‘흑우(黑雨)’ 1집(일본출반) 기념콘서트(학전소극장) ▲1992년 김대환 미각반야심경전 ▲1993년 김대환북잔치(신라호텔),회갑기념 ‘울타리굿’(예술의전당),‘프리재즈페스티벌­블랙비트’(서울 연강홀 및 도쿄 산토리홀)연주 ▲1994년 흑우 김대환박물관 개관 ▲1995년 CD ‘흑우’ 2집,‘묵우(默雨)’1,2집 출반,하레이데이비슨 파이프사운드 연주(문화일보홀) ▲1997년 아시아 라이더스 발족,일본 시코쿠 페스티발및 오사카 서예라이브전 ▲1998년 그로벌 라이더스와 인디언 페스티벌 연주,이탈리아 아비뇽예술제, 오사카 간사이 페스티벌,일본 시코쿠 오토바이 연주 등 해마다 200여회 이상 일본·미국·유럽 연주
  • 엔화 8년만에 최저치/1弗 147.41엔

    ◎中 위안화 절하 위기감 고조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엔화가치가 폭락했다. 엔화 환율은 1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147.40엔까지 폭등했다. 엔화 가치는 이로써 지난 90년 9월 이후 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이는 지난 6월17일 미·일 통화 당국의 전격적인 협조개입 직전에 기록한 최저치인 146.75엔보다도 0.65엔이나 떨어진 것이다. 엔화가치 하락은 이날 시장에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와 아시아 경제위기 재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상오에는 반발 매수세에 힘입어 보합세를 보였으나 하오 들어 크게 떨어졌다. 도쿄의 시장 관계자들은 “현재의 추세가 이어질 경우 150엔대는 물론 160엔대 돌파도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날 일본 주가는 물론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주가가 하나같이 폭락해 아시아 금융위기 재연 우려를 고조시켰다.
  • 중부 물난리­수해현장·복구 이모저모

    ◎겹치기 폭우·피해지역 넓어 ‘발동동’/민관군 총동원에도 일손·장비 크게 부족/말리던 가구 다시 진흙 뒤엉켜 쓰레기로/묘지 4,000여기 유실… 추석전 복구 힘들듯 9일 서울과 경기지역에 호우주의보가 해제되자 수재지역의 주민들과 공무원·군인 등은 일제히 복구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세차례 계속된 폭우로 피해지역이 워낙 광범위한 데다,장비마저 부족해 복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랑천 범람 위기로 대피했던 노원구 상계·공릉동과 도봉구 창동 등의 주민들은 이날 침수된 집을 찾았으나 이틀 전 복구작업을 하면서 길거리에 내놓았던 가재도구 등이 모두 진흙탕과 뒤엉겨 쓰레기로 변한 것을 보고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대피령도 해제되지 않아 본격적인 복구작업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피해상황만 확인한 뒤 다시 대피장소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주민 金吉錫씨(44)는 “모든 것이 엉망이다. 아직 물이 안빠진 집도 많지만 하루빨리 복구작업을 끝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노원·중랑구 등 중랑천 인근구청들은 이날 상오 물에 잠겼던 동부간선도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소방서 등의 지원을 받아 도로에 쌓인 진흙과 쓰레기를 치우는 등 복구작업을 재개했다. ○…서울시는 재해를 신속하게 복구하기 위해 모든 직원의 휴가를 중지토록 지시했다. ○…경기지역의 집중호우로 공원묘지의 분묘 4,000여기가 유실된것으로 알려지자 묘지관리사무소에는 유족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공원묘지관리소 직원들은 유실된 시신을 임시관에 수습하는 등 복구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나 주변도로의 침수 등으로 인력과 장비 동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훼손된 분묘가 워낙 많고 식별이 불가능해 추석(10월 5일) 전까지 정상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폭우로 유실된 경기도내 분묘는 용미리와 벽제의 서울시립묘지 1,800여기,양주군 장흥면 운경공원묘지 600여기,신세계공원묘지 1,000여기,파주시 교하면 일산공원 700여기 등이다. ○…폭우피해를 입은 의정부와 양주지역에서는 9일 민·관·군이 복구작업에 땀을 흘리는 가운데 인근 골프장에서 골퍼들이 한가롭게 골프를 즐겨 빈축을 샀다. 사망 25명,실종 24명등 많은 인명피해를 낸 양주군에서는 주내면 R골프장에 100여명이 몰려 골프를 즐겼고 포천군 일동면 I골프장에 36팀이,같은 면의 N골프장에도 많은 내장객들이 몰렸다. ○…4일째 시신 발굴작업을 펼치고 있는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원도봉산 유원지에서는 이날 낮 12시10분쯤 옥루산장에 살던 李정민씨(33·여)의 시신이 발굴됐다. 지난 84년 이후 10여년만에 침수피해를 입은 원유원지에는 군인 50여명과 소방대원 8명이 동원돼 발굴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나 도로와 제방 곳곳이 무너져 현장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 양주군은 나흘째 고립생활된 장흥면 석현리 돌고개마을 주민들을 위해 쌀과 음료수·부탄가스 등 생필품들을 소방헬기로 공수했다. ○…수해로 채소값이 1주일 전에 비해 크게 뛰었다.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의 경락가는 배추 5t트럭 1대 분량이 250만∼370만원으로 지난 5일의 130만∼180만원에 비해 2배 가량 올랐고,무와 대파도 2∼3배 이상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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