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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11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혼자서 마시는 낮술이 금세 취기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백의 시구처럼 조광조와 더불어 술을 마셔서 만고의 시름을 덜고 싶었다.남은 술을 종이컵에 다시 따르자 술병이 바닥났다.술잔을 들고 나는 무덤 앞에 앉아서 주위를 살펴보았다.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심곡이라 불렸던 산골은 그러나 이제는 화류항(花柳巷)으로 변해 있었다.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광조가 낳은 아들과 그 아들이 낳은 아들과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죽고 또 태어난 천년의 세월을 통해 이곳까지 파도가 밀려들어와 조광조의 무덤을 무인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인적은 끊기고 조광조는 완전히 잊혀진 인물로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제비집처럼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조광조는 없다. 노수신은 신도비에서 조광조를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망하지도 아니하고,어기지도 아니하고,뒤에도 계시옵고 앞에서도 계시도다.’라고 노래하였지만 이제 조광조는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다.찾아오는 이도 없고 가는 이도 없다.조광조는 이제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는 것이다. 한 잔의 낮술이 내 마음을 감상적으로 만들었을까.나는 거대한 아파트들과 도로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량들의 행렬을 우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문득 서원 강당 위 천장에서 보았던 이재(李縡)의 시 한 수가 떠올랐다.이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화 때 관직을 사퇴하고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던 대학자였는데,문외출송(門外黜送)할 때 심곡서원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선생의 위대한 모습을 뵙지는 못했으나 하늘과 땅 같은 천리(天理)의 마음은 알 수가 있겠도다. 가련하도다.심어 두신 수택의 나무들이 윗가지는 솟았지만 아래는 그늘이 없네.” 이재는 서원을 방문했을 때 조광조가 직접 심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노래하였던 것이다.조광조가 심은 나무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남아 무성히 자라고 있다. 그러나 조광조가 심은 손때 묻은 나무가 아직도 무성히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래는 이재의 노래처럼 그늘이 없지 아니한가. 그늘이 없는 나무,조광조야말로 그늘이 없는 나무(無影木)인 것이다.역사적으로는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조광조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역시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성영우(成永愚)도 서원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고 있지 아니한가. “찾아온 손님들은 저문 날을 근심하고 문밖의 정가(政街)에는 갈림길이 많구나(客來愁日暮門外政多岐).” 술 취한 내 가슴 속으로 성영우의 시구가 비수가 되어 내리꽂혔다. 그렇다. 날은 저물어가고 있다.계절의 여왕인 5월의 찬란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만 저물어 가는 저 문밖의 정가에는 갈림길이 많기도 하지 않은가.도대체 이렇게 많은 갈림길이 일찍이 정가에 존재하였던가. 일찍이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말하였다. “군자의 길은 예컨대 먼 데로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데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바와 같으니라.” 그러나 먼 곳을 가는 길도,가까운 곳으로 가는 길도,높은 데로 올라가는 길도,낮은 곳으로 가는 길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보이는 곳은 천 갈래로 만 갈래로 찢어진 갈림길뿐,갈림길이 많이 있다는 것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그만큼 찾기 힘들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儒林(11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혼자서 마시는 낮술이 금세 취기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백의 시구처럼 조광조와 더불어 술을 마셔서 만고의 시름을 덜고 싶었다.남은 술을 종이컵에 다시 따르자 술병이 바닥났다.술잔을 들고 나는 무덤 앞에 앉아서 주위를 살펴보았다.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심곡이라 불렸던 산골은 그러나 이제는 화류항(花柳巷)으로 변해 있었다.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광조가 낳은 아들과 그 아들이 낳은 아들과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죽고 또 태어난 천년의 세월을 통해 이곳까지 파도가 밀려들어와 조광조의 무덤을 무인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인적은 끊기고 조광조는 완전히 잊혀진 인물로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제비집처럼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조광조는 없다. 노수신은 신도비에서 조광조를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망하지도 아니하고,어기지도 아니하고,뒤에도 계시옵고 앞에서도 계시도다.’라고 노래하였지만 이제 조광조는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다.찾아오는 이도 없고 가는 이도 없다.조광조는 이제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는 것이다. 한 잔의 낮술이 내 마음을 감상적으로 만들었을까.나는 거대한 아파트들과 도로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량들의 행렬을 우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문득 서원 강당 위 천장에서 보았던 이재(李縡)의 시 한 수가 떠올랐다.이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화 때 관직을 사퇴하고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던 대학자였는데,문외출송(門外黜送)할 때 심곡서원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선생의 위대한 모습을 뵙지는 못했으나 하늘과 땅 같은 천리(天理)의 마음은 알 수가 있겠도다. 가련하도다.심어 두신 수택의 나무들이 윗가지는 솟았지만 아래는 그늘이 없네.” 이재는 서원을 방문했을 때 조광조가 직접 심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노래하였던 것이다.조광조가 심은 나무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남아 무성히 자라고 있다. 그러나 조광조가 심은 손때 묻은 나무가 아직도 무성히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래는 이재의 노래처럼 그늘이 없지 아니한가. 그늘이 없는 나무,조광조야말로 그늘이 없는 나무(無影木)인 것이다.역사적으로는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조광조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역시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성영우(成永愚)도 서원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고 있지 아니한가. “찾아온 손님들은 저문 날을 근심하고 문밖의 정가(政街)에는 갈림길이 많구나(客來愁日暮門外政多岐).” 술 취한 내 가슴 속으로 성영우의 시구가 비수가 되어 내리꽂혔다. 그렇다. 날은 저물어가고 있다.계절의 여왕인 5월의 찬란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만 저물어 가는 저 문밖의 정가에는 갈림길이 많기도 하지 않은가.도대체 이렇게 많은 갈림길이 일찍이 정가에 존재하였던가. 일찍이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말하였다. “군자의 길은 예컨대 먼 데로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데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바와 같으니라.” 그러나 먼 곳을 가는 길도,가까운 곳으로 가는 길도,높은 데로 올라가는 길도,낮은 곳으로 가는 길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보이는 곳은 천 갈래로 만 갈래로 찢어진 갈림길뿐,갈림길이 많이 있다는 것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그만큼 찾기 힘들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6일 TV 하이라이트]

    ●타임머신(오후 10시35분) 1992년 10월 28일,시한부 종말론자들에 의해 주창된 휴거설로 인해 한반도가 발칵 뒤집혔던 스토리의 전모를 알아본다.6·25 전쟁 때 포로가 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43년 만인 94년 10월 23일 북한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 육군소위 조창호의 인생 역경사를 돌아본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5분) 무한 에너지를 꿈꾸며 노력하는 각국 사람들을 만나본다.영국의 ‘페라미스’라는 장치는 파도가 치면 상하좌우로 움직여 수압펌프가 작동하고 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든다.짐바브웨에서는 시냇물을 이용한 작은 댐을 만들었다.이 댐으로 전기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식수와 농수까지 얻을 수 있다. ●책,내게로 오다(오후 9시20분) 우리는 지금 ‘한국의 미(美)’에 대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그 잃어버린 기억을 감성으로 되살려와야 한다는 저자 강영희를 만나 ‘금빛 기쁨의 기억’을 전해 듣는다.‘소년에게 길을 묻다’코너에서는 현길언의 ‘전쟁놀이’를 살펴본다. ●게릴라 리포트(오후 8시20분) 각종 도시개발로 연못과 습지가 파괴되고 수질오염도 심해지면서 매화마름은 이제 서해안 일부 논이나 습지에서만 겨우 찾아 볼 수 있다.지난 98년 강화도에서 발견된 매화마름의 군락은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예쁘게 잘 관리되고 있다.시민자연유산 1호인 매화마름꽃을 만나본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오후 5시) ‘병아리 유치원’코너에 듀오 앨범을 낸 손지창과 이장우가 특별 출연한다.손지창은 장우의 아빠로,이장우는 유치원생으로 등장해 코믹한 무대를 꾸리고 미니 콘서트도 마련한다.‘비둘기 합창단’코너에서는 미나의 섹시 댄스와 강현수가 소개하는 가수들의 목 푸는 방법을 보여준다. ●알게 될 거야(오전 9시50분)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인해 나경의 가족은 제주도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마지막 희망이었던 애인마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나경은 절망하지만 혜란의 작전으로 통쾌한 복수를 하고,영미와 혜란의 제안으로 셋은 함께 살기로 한다.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황도군은 노비들의 산중 은신처를 공격하고,노비 군대의 수장 미조이는 이에 대항하나,황도군의 화살을 맞고 위기에 처한다.만적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미조이는 홍련화가 머물고 있는 암자에서 치료를 받는다.한편 최충헌은 노비들을 문초하여 그들의 우두머리가 미조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
  • [재래시장]동대문 종합시장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종로 6가에 있는 동대문종합시장 C동 2층.20대 여성 두 명이 신체 사이즈를 재고 있었다.이들은 잡지에서 오려온 사진을 보여주고 “이렇게 만들어 달라.”며 자신이 골라온 원단과 단추 등을 재단사에게 내밀었다.이곳에서 20년동안 맞춤가게를 운영해온 신상운(51)씨는 “예전에는 옷을 맞추러 오는 소비자들이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는데,요즘에는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더 많다.”면서 “젊은이들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면 휴대폰 카메라 등으로 찍어와 옷을 주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30대 발걸음 잦아 동대문시장에 ‘맞춤 옷’ 바람이 불고 있다.원단에서부터 단추에 이르기까지 직접 골라서 맞춰 입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가격이 저렴한 데다 자기만의 개성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예컨대 국내산 고급 원단을 사용한 신사복은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40만원 이상이다.하지만 이곳에서 맞춰 입으면 국내산 고급 원단 8만원과 재단사의 공임 12만원 등 모두 20만원이면 된다.여성 투피스 정장도 백화점에서 50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고급 순모 원단으로 맞추면 20만원(원단 8만원+공임 12만원)이면 충분하다.맞추는 데 걸리는 기간은 보통 5~6일, 빠르면 2~3일이면 된다. 이운석(36) 동대문종합시장 영업부 주임은 “여성과 남성 정장을 맞추면 같은 품질의 백화점 중상위권 브랜드 상품보다 50% 가까이 싸다.”면서 “원단값도 가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발품을 팔기에 따라 더 절약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김지훈(26)씨는 동대문시장에서 신사복 한 벌을 맞췄다.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은 그는 지난달 초 백화점에서 45만원에 구입한 것과 같은 종류의 원단으로 만들어진 신사복 한 벌을 20만원에 샀다며 즐거워했다.백화점 등에서 5만원에 팔리는 ‘이서진 와이셔츠’도 2만 7800원을 주고 맞춰 입었다.김씨는 “지난번에는 취업에 성공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백화점에서 옷을 샀지만 앞으로는 이곳에서 옷을 맞춰 입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음에 맞는 옷 싸게 장만 실속파들은 물론 개성 연출파도 이곳을 찾고 있다.대학 1학년인 이연아(20·여)씨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을 갖고 싶어 자주 찾는다.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2만 6000원(원단값 6000원+단추 등 의류부자재 5000원+공임 1만 5000원)을 들여 마련했다.이씨는 “싼 가격보다는 내가 직접 고른 천과 장신구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보람에 이곳을 찾는다.”고 밝혔다. ‘개성파’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동대문시장은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20여년 동안 도매용 원단판매 위주로 구성됐던 동대문 종합시장은 최근 과감하게 리모델링했다.3개동 가운데 2개동 5층에 각종 장신구,의류부자재 코너를 마련했다.특히 올 8월부터 지하1층에 중저가용 의류부자재 코너를 만들어 5층은 아예 일반인들만을 위한 시장으로 차별화할 방침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핸드메이드 장신구-그림 새겨넣고 구슬도 붙이고 옷·모자 등을 자신이 직접 꾸미는 ‘핸드메이드’는 더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동대문종합시장 5층에 장신구 전문 코너가 마련되면서 옷에 그림을 넣는 ‘직물 페인팅’이나 구슬을 붙이는 ‘핫픽스’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대문시장 5층에서 ‘직물페인팅’가게를 하고 있는 이민관(34)씨는 “애인과 함께 찍은 ‘뽀샤시’한 사진을 커플티에 새겨넣는 대학생부터 화려한 캐릭터를 청바지에 그려넣는 30대 아줌마까지 다양한 소비자들이 가게를 찾는다.”고 설명했다.그는 “요즘엔 디카나 폰카로 찍어온 사진을 옷에 그려넣는 ‘디지털 핸드 페인팅’이 인기”라고 말했다.우연히 들렀다가 단골이 되어버렸다는 대학생 김미경(23·여)씨는 “컴퓨터로 인쇄한 종이를 다리미로 다려 윤곽을 새긴 후,물감으로 직접 덧칠하면 재미도 있고 보기에도 예쁘다.”고 말했다.A4용지 만한 크기에 새겨넣는데 드는 비용은 5000원,직물용 물감으로 직접 그려넣는 것은 2만원. 같은 층에서 ‘핫픽스’가게를 하는 홍정순(36·여)씨도 “운동회 단체티에 학교이름을 구슬로 새겨넣으러 오는 중학생이나 카디건에 반짝이는 꽃무늬를 넣으려는 할머니 모두 쉽게 만들수 있다.”고 말했다.특수필름에 원하는 모양으로 구슬을 붙이고 다리미로 다리면 완성된다는 것.A4크기 필름은 한 장에 500원,반짝이는 구슬은 100개들이가 2500∼4000원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서울 탱고] 최백호의 영일만친구

    포항 ‘영일만(迎日彎)’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네 단어가 떠오른다.해맞이,철강산업,해병대,그리고 ‘영일만 친구’라는 노래이다.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사는 어릴적 내 친구/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돛을 높이 올리자/거친 바다를 달려라/영∼일만 친구야. 대한민국 남자치고 사나이의 거침없는 기상과 진취성을 넓은 영일만 바다에 펼쳐보이는 노랫말로 만든 ‘영일만 친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신치하 젊은이들의 희망메시지 노래가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전국 어디서나 비릿한 바다 냄새가 묻어 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고향이 ‘팡(포항의 발음이 워낙 짧아 ‘팡’으로 들린다.)’이라면 ‘영일만 친구’로 다 불릴 정도다. 그만큼 ‘포항=영일만 친구’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노래는 유신정권 말기인 1978년 최백호씨가 곡과 노랫말을 쓰고 직접 통기타를 치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으나 당시엔 별 반응이 없었다. 최씨는 “영일만 친구는 혹독한 유신정권 하에서 패배주의와 무력감,비애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메시지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부터 대학가에서 불려지기 시작하며 뒤늦게 뜨기 시작해 지금껏 애창되고 있다. 이 노래는 암울하고 살벌했던 유신독재가 붕괴된 뒤 민주화를 갈망하는 피끓는 젊은이들 사이에 ‘자유의 외침’쯤으로 여겨졌으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하지만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 대목인 ‘영∼일만 친구야’를 눈을 질끈 감고 목청 높여 불러보지만,정작 그 주인공(친구)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씨의 절친했던 부산 고향친구로 울산문화방송 음악담당 프로듀서를 지낸 홍수진(97년 위암으로 작고)씨가 바로 그다. 홍씨는 ‘영일만 친구’가 만들어질 당시 영일만의 오두막 집에서 살면서 음악다방 DJ로 이름을 날렸다. 부산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는 미술을 전공했고 자칭 개똥철학을 가진 괴짜 시인이었다. 하루는 이들이 영일만의 술집에서 만나 유신독재의 시대상에 울분을 토해내다 누군가 청년들을 암울한 시대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는 노래를 만들자고 해 즉석에서 만든 게 ‘영일만 친구’다.최씨는 “활기찬 ‘영일만’이 배경이 되고,자유분방한 ‘홍수진’이 주인공이 됐다.”고 했다. 이런 ‘영일만 친구’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1995년 영일만 들머리에 있는 등대박물관 앞에 ‘영일만 친구’ 노래비가 세워졌다. 포항시문화원 백낙구(64) 사무국장은 “이 노래는 포항인들의 화합과 지역 홍보에 엄청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며 “포항의 역사와 함께 영원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등대박물관등 관광지로 각광 영일만은 민선 이후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갯가의 호젓한 풍정을 더하던 오두막집과 돛단배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인 영일만 호미곶에 해맞이광장이 조성됐고,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도 자리잡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봄이면 해안도로는 병아리꽃나무 군락이 피워내는 꽃으로 온통 하얗게 변하고,6월이면 세계적인 희귀종인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이 비처럼 어져 내려 ‘사랑을 꽃피우는 명소’로 유명하다. 대형 횟집과 러브호텔이 이미 즐비하게 들어섰고, 신항만 건설과 포철공단 물류기지 공사가 한창인 영일만은 전형적인 항구의 풍경을 다소 잃기는 했지만 아직도 ‘영일만 친구’의 고향인 바다는 그대로다.갯바위를 부딪치는 파도소리와 파도 위를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 ‘영일만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들리는 영일만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물장난 친구 5개월뒤 사망 대학생에 1억대 배상판결

    바닷가에서 장난삼아 친구를 물에 던진 대학생이 1억 1400만원을 배상하게 됐다.물에 빠진 친구는 뇌손상으로 5개월 만에 숨졌다. 지난해 6월 S대에 다니던 이모(20)씨와 성모(20·여)씨는 동아리 친구들과 속초 해수욕장을 찾았다.이씨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백사장에 누워 있던 성씨에게 다가갔다.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차례로 바닷물에 집어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씨는 성씨를 껴안고 바닷물 속으로 2∼3m쯤 걸어갔다.성씨를 바닷물에 던지자 때마침 매우 높은 파도가 밀려왔다.성씨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던 탓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10분 만에 성씨는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손상을 입어 5개월 뒤 숨졌다.이씨는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유족들은 치료비·장례비 등 “1억 1500만원을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박동영)는 1일 “파도가 높고,성씨가 수영을 못하는데도 이씨는 이를 살피지 않고 성씨를 바다에 던져 숨지게 한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그러나 “남학생들이 다른 여학생들을 물에 던지는 상황에서 성씨도 스스로 수영을 못한다며 거부하지 않았던 점을 인정,이씨 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세계사 편력1,2,3/곽복희·남궁원 옮김

    “보통 사람들이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그들은 날마다 빵과 버터,자식 뒷바라지,또 먹고 살아갈 걱정 등 여러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단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확신을 갖게 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커다란 전환기가 찾아온다.그리고 그들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큰 일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다.” ●印영웅 네루가 딸 간디에 보낸 편지 196편 인도의 독립영웅 자와할랄 네루가 1930년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13번째 생일을 축하해 보낸 옥중편지의 한 대목이다.네루가 나이니 형무소에서 쓴 이 편지는 거창한 도덕적 설교나 엄숙한 얼굴의 훈계가 아니다.네루 자신의 표현대로 “착한 요정이 줄 수 있는 공기나 정신,영혼으로 된 어떤 것”,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선물이다.어떻게 지도자가 탄생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가를 소상하게 일러준 네루의 글은 훗날 인도의 초대 여성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의 신념과 용기의 원천이 됐다. ●이야기체 편지글… 부담없이 읽혀 네루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3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면서 딸에게 쓴 196편의 편지글들을 모은 ‘세계사 편력1,2,3’(원제 Glimpses of World History,곽복희·남궁원 옮김,일빛 펴냄)이 ‘결정판’의 형태로 완역돼 나왔다.이야기체의 편지글 형식인 만큼 부담없이 읽힌다는 게 장점이다.이 글들이 씌어진 시기는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때.우리 역시 그 당시 일제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는 세계사’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딸의 역사적 안목 키워주려 노력 1919년부터 간디 밑에서 인도 독립을 위한 반영투쟁에 나선 네루는 1921년 이래 1945년까지 여덟 차례 체포되면서 9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네루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마저 투옥돼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게 편지를 통해 역사와 인생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려 했다.조국애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았다.“가장 오래된 도시인 베나레스,즉 옛날의 카시를 찾아가 그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렴.아득한 옛날-숱한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복음을 가져온 불타,오랜 세월 평화와 위안을 찾아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니? 늙고 쇠퇴하고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지만 활기차고 연륜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 바로 베나레스다.그 얼굴에서 인도의 과거를 볼 수 있고,강물의 속삭임 속에서 사라진 세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민족우월·제국주의 반대… 민주적 평등 강조 세계 역사는 바야흐로 중심이동이 이뤄지고 있다.이제 더이상 서구와 미국중심의 편협한 역사관으론 다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중국·인도 등 동양의 새로운 강자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네루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누구보다 앞서 읽었다.그는 모든 민족의 자주성과 평등을 강조하며 민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나아가 동양이 과거엔 오히려 서양을 능가하거나 동등했음을 편지 곳곳에서 강조한다.“세계 여러 민족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르지 않다.지도는 여러 나라들을 울긋불긋하게 구분해 놓고 있지만 그 색깔 구분이나 국경에 연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커다란 파도가 밀어닥치듯 몇번이나 유럽을 정복했다.그들은 유럽에 문화의 빛을 전해줬다.아리아인,스키타이인,훈족,아랍인,몽골인,투르크인….아시아는 이 민족들을 마치 메뚜기떼를 낳듯이 잇따라 키워냈다.사실 유럽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식민지와 같은 존재였다.”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 네루가 국민회의파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16년 간디를 만나 그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받아서였다.네루는 자신의 196회분 마지막 편지에서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라는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한번 ‘행동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미숙아이며 변절이다.만약 우리가 사상의 주인이 되려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롤랑의 말은 곧 네루의 말이기도 하다.각권 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레저+α]

    ●백두산 야생화 트레킹 상품 판매 세일여행사는 한국의 최고봉인 백두산 야생화 트레킹 상품(4박5일)을 판매한다.중국 연길을 거쳐 서백두 야생화 군락지를 돌아본후 청석봉,백운봉,소천지,북백두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다.백두산 자연사박물관,두만강 발원지,용정,양강도도 돌아본다. 조선족인 유연산 작가와 장백산보호국 생태팀의 야생화전문가가 가이드로 나선다.백두산에는 6월 중순부터 3개월간 노란만병초,백두산 철쭉,금매화,큰원추리 등 야생화들이 꽃밭을 이룬다.23,30일,7월7일,14일 4차례 출발하며,차수당 인원은 30명.선착순 마감한다.참가비는 89만원.(02)737-3031. ●630여개 초·중고 동아리 한마당 과천 서울랜드는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27일부터 5일동안 ‘2004 봄 서울학생 동아리 한마당 축제’를 연다.서울시내 630여개 초·중·고 동아리가 서울랜드내 6개 공연무대와 전시관에서 공연 및 놀이마당,연극마당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관람객들을 위해 풍물놀이 및 민속놀이,은점토공예,천연염색 등 15가지 체험마당도 마련했다.(02)504-0011. ●아인스 월드 새달부터 요금할인 세계 유명 건축물 테마파크인 부천 아인스월드는 6월부터 야간 및 주중 요금을 대폭 할인한다.6시 이후 입장자는 기존의 1만 4500원에서 8500원으로,주중요금은 1만 2500원으로 각각 요금을 내린다.6월 한 달간 매주 일요일엔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한 악기로 연주하는 동요 합주 및 율동을,인천 YWCA 어린이 요들단이 감미로운 요들송을 들려준다. ●홋카이도 골프 패키지 운영 ㈜다락레져센타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남서쪽에 위치한 루스츠리조트에서 골프를 즐기는 3박4일 패키지를 운영한다.루스츠리조트엔 72홀 규모의 골프장과 호텔,온천대욕탕,실내외 파도풀장 등이 갖춰져 있다.삼복더위에도 섭씨 20도 정도로 날씨가 서늘하고 장마와 태풍도 거의 없어 골프를 즐기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항공료와 호텔 숙박,54홀 라운딩,식사,전동카트비를 포함해 109만원.7월 이후 성수기엔 30% 요금이 오른다.(02)7575-075.˝
  • 서천 금강하구 카페촌

    금강하구는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해맑은 아이처럼 미소를 짓다가도 비가 내리면 슬픈 여인처럼 변신한다.이같은 풍경을 네모난 액자에 담아보듯이 창을 통해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충남 서천에 있는 금강카페촌이 이런 그림같은 풍경을 제공한다. ●차와 음악이 어우러진 카페 ‘푸른하늘 흰구름’에서 만난 한지원(29·여)씨는 “군산에서 친구와 함께 장항에 놀러왔다가 건물이 예뻐 들어왔다.”면서 “음악과 분위기가 괜찮고 금강 풍경도 그만”이라고 말했다. 금강카페촌은 카페 10여개가 하구둑과 서해경계선 사이 서천군 장항읍 원수리와 마서면 당선리 금강변 1㎞를 따라 들어서 있다.7㎞는 족히 넘을듯한 하구둑∼서해경계선 사이 포구를 서천 사람들은 ‘기벌포’라고 부른다.강을 끼고 있는 카페촌은 충남에서 이곳이 유일하다.맞은편 군산에도 카페촌이 없어 그쪽에서도 자주 찾는 명소다. ‘보스포러스’ 주인 최영석(50)씨는 “서천보다 군산 손님이 더 많다.”면서 “밀물 때 강물이 카페 밑에까지 올라오고 바람이 불면서 파도가 높게 일면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라고 풍치를 자랑했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뒷산 ‘뜸봉샘’에서 발원,대청호와 충남 공주·부여 등을 거쳐 흘러온 금강의 종착지 금강하구.390여㎞를 내달려온 금강 물은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하구둑을 넘어 서해의 바닷물과 뒤섞인다.서해는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며 금강 물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벨리하우스’ 주인 서미라(28)씨는 “서울 부근에 있는 카페촌보다 여유있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장점”이라면서 “아침 햇살에 빛나는 물빛이 무척 아름답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야경이 더 멋지다 밤이 되면 ‘보스포러스’와 ‘화이트뮤즈’는 라이브 공연을 한다.미사리처럼 유명 가수들이 나오지 않지만 보스포러스에선 무명 가수들이 통기타를 치며 70∼80년대에서 최근까지 가요를 들려주고 무명 연주인이 피아노를 친다.화이트뮤즈에서는 국내 무명 가수와 필리핀 가수들이 가요와 팝송을 불러 손님을 추억속으로 데려간다.화이프뮤즈 주인 김신영(34)씨는 “40∼50대가 주 고객”이라며 “한가하게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지친 일상사를 잊고 싶어하는 것같다.”고 귀띔했다. 밤 10시나 12시에 라이브가 끝나지만 손님들은 새벽 2∼3시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야경에 취하곤 한다.1㎞는 됨직한 강 건너 군산의 공장과 주택 등에서 불빛을 뿜어내는 밤 정취를 마음껏 즐기다 새벽에 돌아간다. 이곳 카페에서는 4000원 남짓하는 커피와 녹차,1만원짜리 돈가스와 스파게티 등을 즐길 수 있다. 서씨는 “예전에는 라이브 색소폰 공연을 했었는데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싫어해 그만뒀다.”며 “요즘은 중년 부부나 친구 단위로 찾아와 양주를 마시면서 조용한 밤 분위기를 즐기다 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수기는 여름 이곳이라고 불경기를 피할 수는 없는 듯했다.보스포러스 종업원 최인철(20)씨는 “예전엔 손님이 꽉꽉 찼는데 요즘에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이곳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헤밍웨이’는 이미 문을 닫은 채 임대를 내놓은 상태다. 1990년 하구둑이 생기고 서천∼군산간 왕래가 쉬워지자 97년부터 하나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2∼3년 전에는 호황을 누렸다. 보스포러스 주인 최씨는 “여름이 오면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나 연인들이 많이 온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서천군 문화관광과 직원 오천환(44)씨는 “지금은 운행중단 위기에 있지만 하구둑이 생기기 전까지 장항∼군산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도선(渡船)을 타고 유람하는 것과 함께 금강카페촌은 서천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추천했다. 서천 이천열기자 sky@˝
  • 국내진출 다국적 기업들 ‘로컬광고’ 늘려

    코카콜라 라이트 레몬맛 광고는 모델 한은정의 섹시미와 도나 서머의 팝송 ‘핫 스터프’가 딱 맞아 떨어졌다.일본의 코카콜라 라이트 레몬맛 광고 역시 모델은 일본인이지만 섹시한 분위기에 배경음악이 같다. 코카콜라와 같은 다국적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광고를 선보인다.그러나 전략에 따라 토착화한 광고도 만든다.우리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점차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국내제작 광고를 늘리는 추세다.국내 다국적 기업들은 대부분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업체나 독점기업이어서 광고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전략이다. ●코카콜라 순수 국내제작물 방영 전통적으로 코카콜라 광고는 미국 본사에서 만들어진 슬로건에 따라 제작됐다.우리 귀에도 익숙한 ‘언제나 코카콜라’‘코카콜라 즐겨요’‘생각을 멈추고 느껴라’ 등이 그 슬로건이다. 지난달부터 방영되고 있는 코크 플레이 광고는 한 청년이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리니지 게임과 음악,춤을 즐긴다는 내용이다.지난해 1000만원을 받은 무명 일본모델이 10억원짜리 파도 속에서 뛰어다녀 화제가 된 블록버스터 코카콜라 광고 ‘파도’편에 이은 순수 국내제작물이다. 통일된 슬로건에 따라 광고가 제작되다 보니 외국 코카콜라에서 만든 광고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해 극장용으로 만들어진 북극곰 ‘달’편은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것이었다.북극곰 가족이 초승달로 코카콜라 병뚜껑을 딴다는 가족간의 사랑을 담은 광고 내용이 한국인의 정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당신의 가능성이 당신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합니다.’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광고는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MS는 대부분의 광고를 글로벌하게 진행하며 일부 제품 광고는 한국에서 만든 경우도 있었다.아이,꿈,희망을 강조한 광고가 ‘독점기업’ MS에 대한 전세계인의 악감정을 얼마나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펩시콜라는 국내에서 만든 광고와 미국 본사에서 전세계를 겨냥하고 제작한 광고를 동시에 내보내고 있다.펩시콜라의 게토레이 아이스는 윤소이를 모델로 기용하여 최근 유행하는 요가를 주제로 광고를 만들었다.펩시콜라는 베컴,카를로스,라울,호나우딩요,토티 등 세계적 축구 스타들을 총출동시켜 ‘풋 배틀’ 광고를 제작했다.펩시콜라를 두고 중세부족들끼리 축구로 대결한다는 내용이다. ●한국맥도날드 사장 CF출연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각종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맥도날드는 ‘아임 러빙 잇’이라는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하며 젊은이들의 패스트푸드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일깨우려는 시도를했다.한국에서는 신입사원과 감자튀김,축구심판과 치즈버거,수위아저씨와 불고기 버거 등 한국적 상황에 맞는 광고를 계속 내보냈다.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이란 상식을 깨뜨리고자 햄버거 열량 공개에 이어 다음달 고객들에게 주방과 조리과정도 공개한다. 이를 위해 한국맥도날드 지사인 신맥의 신언식 사장과 맥킴의 김형수 사장이 광고에 직접 출연한다.GM대우 닉 라일리 사장에 이어 외국회사 사장의 광고 모델 데뷔란 흔치 않은 사례가 될 전망이다.한국인 맥도날드 사장들이 어눌한 한국말로 대우자동차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 영국인 닉 사장만큼의 흡인력을 발휘할지 궁금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위성채널서 지상파도 볼수있다

    지상파 방송 채널을 위성방송 채널에서 찾아 편리하게 시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스카이라이프는 최근 무궁화3호 위성을 통한 위성방송과 지상파안테나를 통한 지상파방송을 동시에 수신할 수 있는 ‘통합수신 셋톱박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는 위성방송을 시청하다 KBS MBC SBS등의 지상파방송으로 전환하려면 외부입력 버튼을 누른 뒤 지상파 채널대에서 다시 채널을 찾는 불편을 겪어왔다.하지만 이 셋톱박스를 설치하면 지상파방송도 다른 위성방송 채널처럼 시청이 가능하고,EPG(전자프로그램 가이드)화면 상에도 지상파방송의 채널을 올릴 수 있다. 지난 9월 서비스를 시작한 HD채널에서는 이미 이같은 동시시청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이번에 기존 셋톱박스에도 이 기능을 추가한 것.하지만 위성을 통한 지상파 재전송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지상파 난시청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신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통합수신 셋톱박스는 올 9월쯤 신규 가입자에 한해 기존 셋톱박스와 같은 가격으로 보급할 예정이다.기존 가입자는 셋톱박스를 교환하지 않고 내부에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준비중이다. 이와함께 ‘오픈 케이블(Open Cable)셋톱박스’와 ‘백업 통합 수신 셋톱박스’도 선보였다.오픈 케이블 셋톱박스는 위성과 케이블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셋톱박스로,케이블지역방송국(SO)과 협의를 거쳐 올해안에 상용화할 계획이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이라크 혼란 심화

    미·영군의 포로학대 파문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군과 시아파 민병대 사이의 교전이 격화되고 있다.특히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고위 간부에 대한 폭탄테러가 잇따라 발생,주권이양을 한달 남짓 앞둔 이라크에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4일 미 군사대학 연설에서 이라크 사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예정이다. ●미군·민병대 교전 격화 23일 새벽(현지시간) 20여대의 탱크와 미군 600여명이 이라크 중남부 도시 쿠파의 한 이슬람 사원을 공격,32명이 숨지고 54명이 다쳤다.쿠파는 시아파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메흐디 민병대’의 본거지 역할을 해 왔으며,미군이 쿠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군은 이 사원의 무기저장소에서 다량의 AK47 소총과 로켓탄·로켓포,2000개 이상의 탄약 뭉치를 찾아냈다고 밝혔다.미군측은 이번 작전의 목표가 알 사드르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메흐디 민병대에 쿠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23일 이라크 중동부 도시 바쿠바에서 바그다드로 향하던 차량에 총격이 가해져 바그다드의 경찰서장인 하이다르 하디와 대학생 1명이 숨졌다.이라크 남동부 바스라에서는 주택가에 박격포탄이 날아와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잇따른 자살 폭탄테러 에제딘 살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장이 피살된 지 닷새 만인 22일 알 셰이흘리 이라크 과도통치위 내무차관 집 앞에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6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알 셰이흘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두 사람은 모두 이슬람 시아파 정당인 다와당 소속이다.살림 위원장 피살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했던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단체는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우리가 한 일”이라고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다.이 단체는 알카에다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식 공습’ 논란 확산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마크 키미트 준장은 22일 현장에서 찍은 군사장비와 의료물품,기숙사 형태의 숙박시설 등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결혼식이 열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AP 텔레비전 뉴스는 어린이의 시체와 결혼식 피로연에 사용된 악기들이 부서져 있는 현장 장면을 공개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도널드 리스 372헌병대장이 법정에서 이라크 미 지상군 사령관 리카르도 산체스 중장이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포로학대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장택동기자 외신 taecks@˝
  • 이런 책 어때요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한갑진 지음 경전에 의하면 시방세계(十方世界)엔 무수한 부처님이 존재한다.그중에서 우리와 특히 연이 깊은 부처님은 석가모니 곧 석존이다.극영화 ‘팔만대장경’ 등 180여편의 작품을 만든 영화제작자이자 불교연구가로 잘 알려진 저자는 ‘신화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존의 생애를 다룬다.책은 아함경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참모습을 밝힌다.아함경이야말로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석존의 사상과 언행을 가장 그 진상에 가깝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불교서적은 ‘부처의 길로 실어다 주는 뗏목’임을 실감케 한다.1만원. ●미국 패권의 몰락/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20세기 세계체제의 맥락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부상과 소멸과정을 살폈다.‘세계체제론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사회학자인 저자는 9·11테러 이후 미국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전지구적 혼돈의 와중에서 위험스럽게 표류하고 있는 나라”로 규정한다.내려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추락한 ‘불시착한 독수리’라는 것이다.이슬람운동에 대한 성찰도 눈여겨볼 만하다.새뮤얼 헌팅턴식의 ‘문명의 충돌’ 같은 서구중심적 발상으로 이슬람운동을 파악하는 것은 아랍세계의 대중적 저항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5000원. ●옛 다리, 내 마음속의 풍경/최진연 지음 현존하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다.이 다리들엔 불국에 이르는 통로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모든 다리엔 나름의 의미와 사연이 있다.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능파교는 고해의 파도를 헤치고 해탈로 나아가는 다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성종 14년에 완성된 전곶교(箭串橋)는 중랑천 하류 한양대학교 옆에 있는 돌다리로 살곶이 앞에 있다 해서 살곶이다리로 불린다.이 다리는 조선시대 다리로는 가장 긴 다리로 당시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사진작가인 저자는 40여곳의 우리 옛다리를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글을 덧붙였다.1만 8000원. ●대중독재/임지현 등 엮음 새로운 독재론으로서의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의 개념을 설명.대중독재론자들은 ‘강제와 동의’에 주목한다.즉 대중은 권력을 독점한 소수에게 강제되거나 또는 독재에 암묵적 혹은 적극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것이다.이를 입증하는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나치즘 체제에서의 독일 대중과 박정희 체제에 대한 한국 민중의 태도.그러나 ‘내면화된 강제’ 또는 ‘비가시적 폭력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현상을 독재에 대한 자발적 지지 혹은 동의라고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2만 5000원. ●키스의 재발견/애드리언 블루 지음 그리스신화를 토대로 한 제프리 초서의 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를 보면 크레시다는 이렇게 묻는다.“키스할 때 당신은 주는 쪽인가요,받는 쪽인가요.” 대답은 둘 모두다.키스는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키스는 둘이 나눠 가져야만 가치 있다.”는 집시 속담도 있다.키스의 정체는 무엇인가.이 책에선 키스에 담겨 있는 상징과 의미를 밝힌다.서구 문명사상 가장 유명한 키스인 유다의 ‘배신의 키스’,파올로와 프란체스카 같은 불행한 연인들의 전설적인 키스,흡혈귀의 치명적인 키스 등 흥미로운 사례들이 등장한다.1만 2000원.˝
  • 고유가 파도 넘기

    연일 계속되는 고유가 행진으로 항공·화섬·자동차업계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가격이 배럴당 41.38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우리나라가 주로 도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14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35.83달러까지 치솟았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국내선 운항고도 조정과 항공기 무게 경감,경제항로 선정 등을 통해 유류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부터 기존 중국지역 항로 대신 타이완항로 통과로 연간 60만달러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운항·정비·자재·기획·여객 등 관련부서 핵심인력 20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조직,항구적인 연료절감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또 출발지와 도착지 유가를 파악해 저렴한 지역에서 추가 급유를 하는 ‘연료 탱커링’도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도 경제고도 조정 등을 통한 유류 절감에 이어 점심시간 사무실 일괄 소등,복도·화장실 격등제 실시,사무실온도 18∼20도 유지 등 사내 에너지 절감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1달러 오를 때 300억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섬업계도 고유가의 직격탄으로 고심하고 있다. ㈜코오롱에 따르면 나일론의 원료인 카프로락탐 가격이 지난해 초 대비 55%나 올랐지만 나일론 원사 가격은 올들어서야 겨우 15% 오르는데 그쳤다.폴리에스테르 원료인 TPA 역시 지난해 초 대비 75% 가까이 올랐지만 제품가는 25% 인상에 불과했다. 국내는 이미 공급과잉인데다 중국 수출마저 부진한 상황에서 원가가 올랐다고 제품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고유가로 고객들의 신차구입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ℓ당 559원인 휘발유 교통세를 409원으로 내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원유가 상승을 석유제품 가격 인상으로 전가해 1·4분기에 좋은 실적을 냈던 정유업계도 더 이상 가격 인상은 무리라고 보고 국제 현물시장에서 저렴한 현물 구매를 적극 검토 중이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ukelvin@˝
  • [서울광장] ‘한국경제號’ 시동 걸자/오승호 논설위원

    ‘한국 경제호’가 중국 쇼크와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설,오일쇼크 등으로 경기회복을 향해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우리의 최대 수출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경제성장의 급격한 하락,이른바 ‘경착륙’을 막기 위해 대출 중지,금리인상 준비 등의 정책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우리는 어떤가.4·15 총선 이후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 등을 따지는 데 집착,노선 갈등만 키우고 있다.성장이 먼저냐,분배가 우선이냐를 따지는 논쟁 따위에나 몰입해 중국과는 딴판이다.국민들은 정말 진절머리난다고 한다.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2001년 1월 신년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1세기는 더 이상 성장·분배 논쟁은 의미가 없으며,21세기의 화두는 ‘젊음과 늙음’”이라고 했다.그러면서 2030년이나 2040년쯤이면 중국이 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은 경제 활력이 떨어져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이 일을 해야 하는데,젊은이들은 “왜 우리가 하느냐.”고 되묻는 시대가 오는 것이 우려된다는 내용이다.먹고 사는 문제의 접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의 개혁 논쟁은 접어두더라도 중요한 경제정책과 관련해 정부 부처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영 보기가 좋지 않다.부처간 혼선은 재벌정책의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불을 지피면서 시작됐다.재정경제부 등 관계 부처간 사전 조율 없이 재벌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30%에서 15%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임원 해임이나 정관 개정,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 방지 등을 위해 현행대로 30%를 유지해야 한다는 재경부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정위 방침 역시 재경부는 난색을 표한다.기업투자에 방해가 된다면 예외 규정을 두는 등 신축적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시각이다.“우선 투자가 일어나고 성장이 돼야 한다.”는 이헌재 부총리의 경제관이 반영된 것일 게다. 갈길은 바쁜데 메아리 없는 ‘구호’ 논쟁과 정부 내의 불협화음이 잦다 보니 정부의 상황 판단 능력도 예전같지 않은 것 같다.긴박감도 덜해 보인다.국제 유가가 40달러를 돌파해 비상이 걸렸다.이럴 때 세수 감소도 없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라도 벌일 법한데 조용하다.올 초 중동 정세 불안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 영향으로 유가가 치솟았을 때,정부는 어땠나.“세계적으로 석유 비수기인 2·4분기부터는 유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급기야 지난 3월31일에는 고유가 대책의 1단계 조치 시행 기준인 두바이유의 10일 평균 가격을 26∼28달러에서 32달러로 높이는 등 허둥댔다.우리나라는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일본과는 다르다.유가나 주식시장,금리 수준 등이 외생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다.이런 사실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개혁 논쟁과 경제정책의 방향 부재,당·정·청간의 경제정책 주도권 다툼 등은 대통령의 업무 집행 정지 여파도 컸을 것이다.경제부총리가 오죽했으면 지난 13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현재 경제상황을 “망망대해에서 떠 있는 배가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을까.사공이 많아 말은 많지만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는 형국을 빗대어 한 말이다.노무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했다.“대통령이 경제정책의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 줘야 한다.”는 게 기업은 물론 정부 관료들의 주문이다.정책 혼선이 재연되지 않도록 경제정책만은 부총리가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고 밝히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재계가 먼저 조건없이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반길 일이다.이제 한국경제호의 시동을 걸어 순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
  • ‘무간도’ 시리즈 완결편

    지난해 1,2편이 잇따라 개봉해 홍콩누아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무간도’시리즈가 14일 종결편을 선보인다.초호화 캐스팅,이야기 시점을 뒤집는 등의 색다른 드라마는 홍콩누아르에 시들해진 관객들을 새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지막편 ‘무간도3:종극무간(終極無間)’도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맞춰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시리즈의 고정관념을 깨기는 마찬가지다.2편이 1편 이전의 프롤로그를 그렸다면,이번에는 다시 1편으로 돌아가 그 마지막 대목에서 시작한다.3편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1편의 줄거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얘기다. 폭력조직 삼합회에 신분을 숨기고 잠입한 경찰 진영인(양조위)이 정체가 탄로나 살해되는 것으로 1편은 끝을 맺었었다.양조위와 투톱을 이룬 유덕화의 극중 역할은 폭력조직 보스의 명령에 따라 경찰에 숨어들어가 스파이가 된 유건명.영인이 죽기 6개월 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3편은 영인이 죽은 뒤 어두운 과거를 털어내려 갈등하는 건명,미묘한 시간차이로 복잡하게 얽히는 건명과 영인의 관계를 거꾸로 되짚는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드라마를 내켜하지 않는 관객에겐 매력이 덜할 것 같다.유덕화가 정신분열증을 앓는 설정도 다소 황당하다.그러나 한시도 화면을 놓치지 않고 스크린과 지능게임을 벌이고 싶다면 챙겨볼 작품임에 틀림없다.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3편에서 눈여겨볼 새 캐릭터는 보안반장 금영(여명).그가 삼합회 조직원인지 경찰신분인지 밝혀지기까지 반전의 파도타기를 몇번은 해야 한다.‘오버’하지 않는 사실액션이 드라마의 진지함을 더해준다.유위강·맥조휘 감독. 황수정기자 sjh@˝
  • [We 동화]펭귄 가족의 스냅 사진

    얼어붙은 땅 남극에도 5월이 왔단다.기온은 여전히 무섭도록 낮고 아직도 밤은 너무 길었지.하지만 서로를 보듬어가며 따스한 체온을 나누기에는 오히려 좋았어.더구나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야.황제펭귄 부부가 기다리던 알을 낳아서 얼마 안 있으면 귀여운 식구가 또 하나 늘게 되었기 때문이지. “수고했소! 참으로 수고했어!” 아빠 펭귄의 눈가에는 얼핏 눈물마저 스쳤지.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아빠 펭귄 때문에 펭귄 가족은 이곳,남극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었거든. “미안하오.나 때문에 이렇게 험한 곳까지….” 아빠 펭귄은 정말 미안했어.하지만 엄마 펭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 “미안하긴요.당신이 이곳이 좋으면 저도 마찬가지예요.이 정도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우린 한 가족이에요.가족이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이해하는,그런 사이를 말하는 거지요.” 엄마 펭귄의 웃음은 따뜻했지. “아참! 이제 이 녀석은 내게 맡기고 어서 바다로 나가구려.충분히 먹고 푹 쉬고….그래야 이 녀석을 낳느라고 무리한 몸을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겠소? 자,어서….” 아빠 펭귄은 망설이는 엄마 펭귄의 등을 밀었지.자신에게 알을 맡기고 바다에 나가 몸을 추스르고 오라고 권하는 것이었어.그동안 아빠 펭귄이 그곳에 남아 알을 지키겠다는 거야. “혹시 당신이 병이라도 얻게 되면 큰일 아니오? 게다가 내게도 이 녀석을 위해 봉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아빠 펭귄은 웃으며 덧붙였어. “우린 한가족이잖소?” “따라 하기 없어요!” 엄마 펭귄은 가볍게 눈을 흘기며 비로소 마음을 정했지.당분간 여기 일을 아빠펭귄에게 다 맡기고 건강을 되찾는 데만 힘을 쏟기로 한 거야. “그럼 잘 부탁해요!” 넉넉한 아빠 펭귄의 사랑으로,엄마 펭귄은 가벼운 마음으로 바다를 향할 수 있었지. “충분히 기력을 회복하면,그때 돌아와요.내 걱정은 말고!” 아빠 펭귄은 주름진 아랫배로 알이 얼지 않도록 단단히 감싸 안았어.행복했지. 하루,이틀,사흘….날씨는 여전히 지독스레 추웠지.가끔은 시속 100㎞가 넘는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했어.그러나 아빠 펭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끄떡없이 자리를 지켰어. 덕분에 알 속에 든 꼬마 황제펭귄은 평온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할 수 있었지.믿음직한 아빠 펭귄의 품에는 추위마저 틈탈 수 없었으니까.이렇게 세월은 흘러 60일이 지났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빠 펭귄은 조금씩 힘이 빠졌어.떠난 지 60일이 지났는데도,엄마 펭귄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그 60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알을 싸안고 있던 아빠 펭귄은 이제 정말 쓰러질 지경이었거든. ‘하지만 반드시 돌아올 거야.늦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을 테지.’ 아빠 펭귄의 귀에는 ‘우린 한가족이잖아요.’하는 엄마 펭귄의 목소리가 쟁쟁 울렸지.며칠이 더 지났을까? 이제 아빠 펭귄은 눈앞이 가물가물했어.체중이 거의 반 가까이 줄었지.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몸이 휘청거렸어.그때였어.거짓말처럼 엄마 펭귄이 나타난 것은. “미안해요.타고 있던 유빙이 파도에 휩쓸리는 바람에 아주 멀리 떠내려갔었어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건강한 혈색의 엄마 펭귄은 아기들에게 하듯 재빨리 반쯤 소화시킨 먹이를 아빠 펭귄에게 먹여주었어. “자요,이 녀석보다 당신이 더 급하군요.” 아빠 펭귄은 그제서야 꼬마 황제펭귄이 깨어난 것을 알았지. “고마워요.당신,제가 너무 원망스러웠지요?” 엄마 펭귄은 조심스레 꼬마 황제펭귄을 받아 안았어.그러나 아빠 펭귄은 행복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 “아니야.난 당신을 알아.빨리 못 올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서로에 대해 그만한 믿음도 없다면 어디 한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소?” 여기까지 말을 마친 뒤,아빠 펭귄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어.60여 일 동안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는 것이었지. 얼마 후,아빠 펭귄은 잠결에 이런 소리를 들었어. “후후,우리집 큰 애기 너희 아빠는 언제 일어나실지 모르겠다.어서 일어나야 먹이를 먹여줄 텐데.아마 잠도 깨워줘야 일어나실 모양이야,그렇지?” 그 소리에 맞장구를 치는 귀여운 목소리가 있었지.아빠 펭귄은 잠이 달아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래! 내 새끼.우리 귀여운 꼬마!’ 아빠 펭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그머니 꼬마 황제펭귄의 허리를 잡았지.그러고는 짐짓 낯선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했어. “요 녀석! 누가 아빠를 큰 애기라고 놀리나,버릇 없이.그런 녀석은 한번 혼이 나야겠는걸!” 기온은 여전히 영하 40도였지만,펭귄 가족들은 아무도 추위 따위는 느낄 수 없었지. ●작가의 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라는 것을 이 가정의 달에 생각해봅니다. 글 이윤희 그림 길종만˝
  • 구상선생 영전에…이근배 시인

    더없고 맑고 푸른 이 나라의 산과 물을 어찌 뿌리치고 홀로 떠나시는 것입니까! “찬란한 계절이 유혹한다손 이제사 역핵의 역마(驛馬)를 삯낼 용기가 없다.”시더니 그토록 더운 사랑으로 가쁜 숨결로 노래하시던 산하며 이 겨레,기어이 뒤에 두고 가시는 것입니까? 빼앗긴 세월 ‘초토(焦土)의 시(詩)’로 달래 주시고 형제를 둘로 나누어 총부리 서로 겨눌 때 ‘수난(受難)의 장(章)’을 쓰시더니 “이제 세월처럼 흘러가는 남의 세상”이라 손놓으시고 저 먼 ‘그리스도 폴의 강’을 건너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이 시대의 참으로 큰 스승이셨습니다.아니 이 땅의 산봉우리들 위에 한 층 높이 솟은 산봉우리셨습니다.일제 강점기와 분열과 전쟁 등 끊임없는 시대의 격동 속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듯 선생님은 역경과 고난의 파도를 한 몸으로 헤쳐 나오셨습니다.역사의 고비고비 선생님이 걸어오신 발자취는 이 땅에 길이 새겨질 이정표였습니다. 선생의 부음을 듣고 깊이 간직했던 선생님의 첫 시집 ‘시집 구상’을 펴들었습니다.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선생의 제자와 설창수(薛昌洙) 선생의 발문이 있어 선생님이 병석에서도 거듭거듭 당부하시던 공초숭모회의 일이며 평소 공초선생의 문학과 사상을 남달리 흠모하시던 그 가르침을 새삼 깨닫고 울음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전화를 거셔서 “사천, 내게 두가지 소원이 있는데 하나는 ‘이중섭 미술상’을 만드는 것이고 하나는 ‘공초문학상’을 만드는 것이네.하나는 이루었는데 하나가 남았으내 공초문학상을 만드는 일에 나서 주어야겠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선생님의 뜻은 이루어져 공초문학상은 우리 시단의 가장 권위있는 시문학상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저희 후학들은 배웠습니다.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보다 근원적인 존재의식과 인간의 구원의 명제를 뜨거운 모국어로 일궈내시는 선생님의 시세계를,그리고 공초선생을 20세기의 선각자요 구도자로 받들면서 선생님 스스로가 이 시대의 사표로 구도자로 삶의 고결함과 지성적 실천을 이뤄 오신 것을. 구상 선생님! 항상 어린 저희들에게 길이 되어주시고 사랑으로 꽃피워 주시더니 이제 선생님은 “어느 이름 모를 귀향의 길”을 홀로 가십니까? 가시더라도 저희들 손 놓지 마시옵고 더 넓고 더 평화로운 시의 강을 열으소서. 이천사년 오월 열하루 문생 이근배 哭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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