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