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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좀먹는 ‘장롱 달러’/오승호 경제부 기자(오늘의 눈)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느라 연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외환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기업들은 부도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나라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예전같으면 축제 분위기 속에 치러져야 할 대선도 올해는 경제난에 밀려 빚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마저 남는다. 이런 와중에서도 철저히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국민의 결집력을 키우는데 옥의 티가 되고 있다.나라가 어찌되든 장롱 속에 달러화를 꼭꼭 감춰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자존심을 버려가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을 받게 된 원인은 달러화 부족이 전부로 설명된다.달러화가 없으면 경제주체를 가릴 것 없이 외채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화 부족시대에도 장롱 속에서 잠자는 달러화가 적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자신의 배만 채우고 국가적으로는 치명상을 입히는 환투기 세력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환율의 하루 변동 제한 폭을 폐지한 다음날인 지난 15일에는 1억달러 가량의 장롱속 달러화가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16일에도 비슷한 규모가 장롱 밖으로 나왔다.환율의 급등락으로 인한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차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7일에는 그 규모가 15,16일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환율이 다시 뛰면 그때가서 처분해 이익을 더 많이 챙기려는 속셈이 작용했다.확인되지는 않았지만 1백만달러 이상을 처분해 거액의 환차익을 얻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아연실색하게 한다. 물론 수출입업자 등 사업의 필요성에 의해 보관해 뒀던 달러화를 부득이하게 내다판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금융당국 관계자는 “장롱 속 달러화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감추고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달러화가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점임을 잘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지금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1달러 모으기’ 운동에 발벗고 나선 상태다.아직도국민의 애국심을 좀먹는 부류가 있다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하(세계 문화유산 순례:53)

    ◎불상·경전 가득… 세계적 ‘불교 박물관’/백궁과 홍궁엔 방 모두 1천여개/산자와 죽은자 함께 거처하는 궁전/네팔 등 라마불교 신도들 줄이어 참배 포탈라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하는 궁전이다.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죽어서도 생전에 살던 포탈라를 떠나지 않았다.이들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경배하기 위한 순례객의 발길이 늘 포탈라로 이어졌다.티벳은 물론 사천성과 네팔,스리랑카 등에서 온 라마불교 신도들로 붐비는포탈라.달라이 라마가 앉았던 의자에 입맞추는 순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살아서 쓰는 궁전은 백궁이다.백궁은 ‘최상의 행복궁’이나 ‘영원한 생명의 궁’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달라이 라마는 백궁 가장 높은 층인 ‘영원한 생명의 궁’에서만 잠을 잤다.백궁의 금정에 올라 바라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웠다.투명한 코발트 색깔과 어울린 만년설 산자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종교적 심성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포탈라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이 있다.영탑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전각안에 봉안되었다.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두거나 약품처리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홍궁맨 뒤쪽 아래층의 영탑전에는 5세와 7∼9세,13세 등 다섯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자리했다.그중에 5세와 13세의 영탑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달라이 라마 시신 모여 그 화려한 5세 달라이 라마의 영탑은 죽은지 5년뒤인 1690년에 조성되었다. 영탑은 기단에 호리병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14.85m에 이르는 탑신은 동과 은으로 만들고 황금칠을 올렸다.주옥과 산호 따위의 보석을 군데군데 박아놓아 야크기름이 타는 불빛을 찬란하게 반사했다.은이 1만량,황금이11만9천량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13세의 영탑은 1934년에 완성되었으나 역시 찬란했다. 영탑전은 홍궁 다른 공간에도 하나가 더 있다.그 자라는 홍궁 후문께 서편강당 뒤쪽이다.달라이 라마 5세와 10세,11세와 12세의 영탑이 두 방에 봉안되었다.그런데 영탑전과 이웃한 서편강당에서는 1959년까지만해도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렸다.그 음성은 바로 포탈라에 사는 수백명 승려들에게 들려준 달라이 라마 14세의 설법이었던 것이다. ○황금 11만9천량 사용 포탈라에서 만난 젊은 라마승은 영어로 이런 말을 했다.“이 강당에서는 59년 이후 어떤 행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정지돼 있는 장소다”라고….그래도 포탈라에는 방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달라이 라마는 없지만 라마승과 순례자들이 켜놓은 촛불은 그냥 타고 있었다.그렇듯 몸을 불 사르는 촛불에서 오늘의 라마불교를 다시 보았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망명한 1959년 이후 변화한 공간은 또 있다.백궁의 동쪽 정원이다.운동장처럼 넓은 이 정원에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승려와 티벳사람들이 천여명씩이나 몰려들었다.그러면 달라이 라마가 의례히 백궁 발코니로 모습을 드러냈다.종교의식을 베풀고나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군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그 정원이 지금은 빈뜰로 남아있다. 백궁과 홍궁을 합뜨려 포탈라는 1천개가 넘는 방을 갖추었다.이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은 30여개 뿐이었다.동쪽 정원에서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서 만난 달라이 라마 집무실도 그런 비공개 공간의 하나다.달라이 라마가 정무와 종무를 본 집무실은 명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백궁의 여러방은 ‘영원한 덕의 장소’니 하는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여러방을 잇는 복도와 회랑에는 티벳사와 티벳불교사,역대 달라이 라마의 일생을 담은 벽화들이 가득했다.그리고 방마다에는 달라이 라마들이 앉았던 자리를 보존한 가운데 달라이 라마들의 소상을 세워두었다.한쪽 벽에는 닫집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다.또 다른 벽에는 경전함을 덧대어 천정 꼭대기 까지를 불경으로 채웠다.이들 경전은 티벳어,몽골어,만주어 등 소수민족 언어로 되어있다. ○30여개 방만 일반 공개 그 어마어마한 장서들은 라마불교권 학승들을 포탈라로 불러들였다.포탈라로 와서 먼지를 털어가며 경전을 넘기는 학승 모두가 불심에 흠뻑 젖은채 삼매경에 빠져있다.포탈라를 가리켜 흔히 세계적 불상박물관,또는 세계적 불교박물관이라 하는 까닭을 알만 했다.그것은 티벳불교가 정치를 손에쥔 종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떻든 포탈라 홍궁에는여러 부처 이름을 딴 방도 곳곳에 널려있다.미륵보살전이나 천수관음보살전,관음보살전과 만다라전이 그것이다.이들 불전에서는 야크기름을 태우는 불빛속에 순례자들의 참배가 계속되었다.그 많은 부처의 상중에서도 티벳불교의 핵심은 관세음보살상이다. 그러나 관음보살전 규모는 의외로 적었다.3구의 관음보살상 가운데 한구는 키가 1m 남짓했는데 7세기쯤에 만들었다고 한다.금물을 입힌 단향목불상이다.티벳인들은 이 보살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관세음보살 모양을 하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여행가이드/해발 3,700m… 두터운 옷 준비를 티벳은 3천∼7천m에 이르는 고산지대다.포탈라궁이 있는 라싸도 해발 3천700m나 된다.건강한 사람도 도착 첫날은 아무일도 하지 말고 호텔방에서 누워쉬어야 할 정도다. 티벳 여행의 적기는 7·8월 두 달이다.9월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10%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여행길이 더욱 고통스럽다.고산지대임을 고려,두터운 옷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의 티벳행은 현지 정부의 허가증이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다.사천성의 성도에서만 라싸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반면 일주일에 하루(보통 일요일) 2∼3편씩 라싸에서 북경을 가는 비행기가 운행되지만 북경에서 라싸행은 없다.북경-성도 비행기는 왕복기준 2천3백위안이고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2천4백위안이다.북경서 라싸가는 비행기만도 4천7백위안(49만원상당)이 든다. 공까공항에서 라싸와 제2도시인 르카차 등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다.포탈라궁은 티벳의 주요 여행코스다.매일 오전만 개방한다는 사실에 맞추어 여행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세계 문화유산 순례:52)

    ◎히말라야운산의 웅대한 ‘티벳성전’/7세기 통일티벳왕,아내 당 공주 맞아 대역사/높이 117m 폭 110m 길이 360m 13층 왕궁 중국 서장 자치구 티벳의 첫도시 랏사를 ‘태양의 도시’라 했다.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산맥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해발 3천700m의 고지라 태양이 가가워서 그랬을까.사천분지와 티벳고원을 지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산맥과 히말라야의 설산이 펼쳐졌다.랏사는 그런 산자락에 둘러싸인 작은 평지위에 있다.평지 가운데 작은 산 위에서는 포탈라의 황금빛 지붕이 번쩍였다. 티벳 공까공항서 랏사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40여분이 걸렸다.산 허리를 깍아 어렵게 닦아놓은 구절양장(구절양장)의 길가 바위에는 불상들을 새겼다.그리고 5색의 타르초 깃발 너머로 티벳불교의 상징물인 코르텐(종탑)들이 시야로 들어왔다.포탈라는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설산에 안겨 있다.그러나 랏사로 들어오면 포탈라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과연 세계 10대 건축물다운 포탈라는 마포르산(홍산)언덕 위에 솟아 있다.13층에 높이 117m,폭은 110m,동·서의 길이가 360m나 된다. ○해발 3,700m 고지 위치 포탈라궁 건물 정상은 황금을 입힌 전통양식의 구리기와 지붕 5개로 이루어졌다.그리고 건물 앞에 평평한 공간을 배치했다.순금으로 도금한 번쩍이는 지붕 금정을 늘상 이고 있는 포탈리궁에서는 랏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지난 1천여년동안 티벳인들의 정신과 육체,삶과 영혼을 지배하던 권위와 신비가 담긴 영력의 장소이기도 했다.전체 넓이가 36만㎡에 이르는 궁은 남쪽 출입구를 제외하고 성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바깥세상과 차단됐다.남쪽문을 나서면 곧바로 연결되는 계단이나 서쪽의 가파른 비탈길로 오를수 있다. 궁궐이 있는 마포르산 밑으로는 티벳군 총사령부의 벙커다.그리고 한변이 10여m를 넘는 대형 걸개그림 탱화를 보관해두는 거대한 창고도 마포르산 밑에 마련했다.뒷 정원격인 용왕담에는 물결이 잔잔하다. 포탈라궁은 우리 신라시대인 7세기에 건설됐다.티벳의 역사와 티벳인들의 기원을 담은 성전이자 궁궐이다.인도불교가 티벳에 들어온 것은 5세기 무렵이다.그 인도불교는 티벳 토속의 원시무속 종교인 본교와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그리고 나서 티벳 특유의 종교로 자리매김한 라마불교의 역사도 이 궁에 서려 있다.그런 곡절속에 포탈라의 주인은 세속 권력의 챔피언인 황제에서 라마불교의 일인자인 달라이 라마로 바뀌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자 라마불교의 사원이 됐다.포탈라란 이름은 본래 ‘관음의 성지’란 뜻이다.이 궁은 티벳 각 부족과 지역을 통일,강력한 티벳왕국(토번)을 세운 송첸캄보가 631년에 지었다.처음 1천간 규모로 지었는데,당시 당나라 황실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해 이 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그러니까 포탈라궁은 세속의 티벳왕궁이었던 것이다. ○세계 10대건축물 명성 그러나 각 부족과 지방 분열로 왕권의 공백이 생기면서 세속권력까지 장악한 라마불교의 지도자가 궁을 접수했다.그뒤 왕궁이란 기능말고도 사원 기능을 추가하고 랏사 중심지에서 떨어진 산속 드레풍사원(철봉사)에 살던 달라이 라마가 들어왔다.달라이라마 5세때인 1645년 일이다.오랜 분열과 내전,벼락등으로 폐허화한 포탈라를 접수한 달라이 라마 5세는 궁의 성벽과 성루등을 재건했다. 달라이 라마 5세가 궁을 재개한 것은 정교합일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신권뿐 아니라 세속권력마저도 장악한 달라이 라마는 1690년 오늘날 사원으로 쓰는 홍궁을 따로 착공,1693년 완성했다.그리고 오늘날 라마교의 상징인 5개의 금정을 추가로 세웠다.궁의 외벽은 흰색과 붉은색을 칠해 백궁과홍궁을 구분했다.그래서 백궁은 달라이 라마가 사람을 만나고 정무를 돌보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쓰게 됐다.또 홍궁은 지금까지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궁에는 대불만도 1천구가 봉안됐다.작은 불상까지 합하면 수만점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여느 부처상과 달리 포탈라궁의 부처상은 화려했다.흥미로운 현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이 더 눈에 띄거니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을 모신 각이 불상을 모신 불전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이다.이는 라마 불교의 특색이기도 하다.부처가 달라이 라마로 환생한 것이라고 믿는 환생설을 바탕으로 달라이라마를 생불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거처·사원 홍궁사원의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한결같이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다.중카바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뿌리로 달라이 라마 2세가 그의 직계 제자다.지금 미국에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롯한 모든 달라이 라마들이 그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인것이다.중카바는 14세기에 라마교를 개혁하고 이른바 격로파를 창시한 인물이다.그러니까 아마교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한 이가 그다. 중카바가 이끈 격로파의 승려들은 노란색 고깔모자를 썼다고 한다.그래서 황모파 또는 황교파라고 하는 이들은 라마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들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지위가 부처에 버금갈정도로 신격화한 것도 결로파 세력이다.포탈라 홍궁에서 만난 중카바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라마교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가를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 티파니(패션가 산책)

    티파니사(Tiffany&co)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왕위 계승식이 있던 1837년,당시 25세이던 찰스 루이스 티파니에 의해 설립됐다.티파니사가 자체 디자인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867년 파리박람회.티파니는 미국 디자인회사로는 처음으로 은공예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이로써 티파니는 미국 정상의 은세공업체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17명의 유럽 왕족들을 위한 금은 세공업체가 됐다.티파니는 은 순도 0.925 규격을 채택한 최초의 미국 회사이며 이 규격은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노력으로 미 의회에서 스털링 실버 법정 기준으로 채택됐다. 티파니사의 은 세공작업실은 미국 최초의 디자인학교로 이 작업실내에는 견습생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며 진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학습분위기가 형성되었다.자연은 티파니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은 식기류 제품에서부터 시작돼 보석류까지 이어졌다. 1877년 티파니는 남아프리카의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채굴한 최상급의 황색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티파니의 우월성을 입증하게 됐다.이 원석은 무게 287.42캐럿으로 아직까지도 동종 다이아몬드 가운데 가장 크고 최상급의 표본으로 남아 있다.티파니사의 보석학자인 조지 프레덱릭 쿤츠 박사가 128.54캐럿으로 연마한 이 다이아몬드는 지금도 티파니의 5번가 본점 1층 매장에 영구 전시돼 있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아들인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티파니사의 초대 디자인 실장으로 당시 자연에서 파상의 선과 곡선,그리고 형상을 도용하고자 했던 디자인계의 움직임인 아르누보 운동의 미국인 선구자로 명성이 높다.티파니의 창업이래 미국과 기타 외국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특별 제작 주문을 해왔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885년에 디자인한 미국의 인장.티파니에서 새로 디자인한 이 인장은 현재까지도 미국 달러 지폐의 뒷면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식 서류에 사용되고 있다.
  • ‘네이팜탄 소녀’ 유네스코 평화대사 됐다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충격적으로 전세계에 고발했던 사진속의 주인공 판 티 킴 푹(34) 여사가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평화대사에 임명됐다. 킴 푹 여사는 베트남 전쟁중이던 지난 72년6월 네이팜탄의 화상을 입고 벌거벗은채 울부짖으며 달아나던 AP통신 사진속의 주인공으로 당시 9세의 소녀였다.AP통신의 닉 우트 기자의 이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페데리코 마요르 유네스코사무총장은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킴 푹의 사진은 세계적인 화해와 상호 이해및 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며 그녀의 평화대사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대사 임명식은 10일(현지시간)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녀는 지난 84년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의해 소재가 알려지며 다시 뉴스의 인물이 됐다.86년 쿠바로 유학한 그녀는 의학을 공부하던중 베트남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다.지금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남편과 2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전쟁의 참혹한 피해자인 그녀는 평화의 사도로 새로운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 강택민,천안문사태 과오 시인/하버드대 강연서

    ◎“실수할 수도 있다” 오류 간접 인정 【케임브리지 AP AFP 연합】 미국을 방문중인 강택민 중국 국가 주석은 1일 하바드대 강연에서 지난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자국 정부의 잘못이 있었음을 간접 시인했다. 강주석은 이날 연설이 끝난뒤 중국 정부는 왜 민주화 세력과 대화하려 않고 89년 6월 천안문 사태때 탱크를 투입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에게 결점이 있을수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해 오류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강주석은 “우리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분리주의 운동을 중단한다면 그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고비용 정치 타파…선거전 “새 장”/여야 정치개혁협상 타결 의미

    ◎천문학적 자금 투입 세몰이 유세 퇴조/대선부터 ‘미디어 선거전’으로 탈바꿈 31일 국회 정치개혁협상 타결은 일단 우리의 정치 풍토와 문화를 개선할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즉 고비용 정치구조 타파에 대한 기대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두고 선거전 양상에서 신기원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여야가 옥외집회와 사조직 가동금지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여의도광장 등에서의 대규모 군중집회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수십만,수백만명의 청중동원과 사조직 가동에 쏟아부었던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도 옛 이야기가 된 것이다. ○TV토론회 의무화 대신 유권자들은 브라운관이나 라디오,컴퓨터통신망 등을 통해 후보자들을 종전보다 더 자주 접하게 된다.예컨대 선거기간중 공영방송사가 주관하는 TV토론회를 3회 이상 갖도록 의무화했고,선거기간전에도 TV토론이 실시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조직과 돈 및 선동적인 ‘바람’을 이용한 세몰이식 유세의 퇴조를 뜻한다.‘미디어 선거전’으로의 탈바꿈은 여론조사의 활용의 일반화와 함께당장 이번 대선의 선거전 양상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통합선거법상에서 ‘돈 덜쓰는’ 조항이 대거 삽입되면서 정치자금법도 크게 달라졌다.최대 쟁점이었던 지정기탁금 폐지는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났다.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측이 이른바 새정치 구현을 실천하는 카드로 ‘여당프리미엄’을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관행처럼 눈감아 왔던 정치인의 떡값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포함됐다.정치자금의 수요가 줄어든 만큼 공급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협상 결과는 국민적 기대수준에는 크게 밑돈다.정치권의 주고받기식 담합이 고비용 정치구조 청산이라는 당초 협상취지를 퇴색시켰다. ○흥정식 타결 옥의 티 이를테면 여당측의 떡값 처벌조항 신설요구에 야당측이 3급보좌관제 도입등을 들고나와 흥정을 벌였다.물론 정책개발 용역비 절감이라는 명분을 걸고 있긴 하다.하지만 그 명분은 일부의원들이 기존의 보좌관·비서관도 자신의 직계가족 이름으로 걸어놓고 있어 빛이 바랜지 오래다.
  • 김홍도의 ‘선동취적도’(한국인의 얼굴:118)

    ◎티없이 해맑은 소년신선 피리부는 모습 화폭 담아 단원 김홍도는 여러 신선을 그리면서 나이 어린 신선도 화폭에 담아냈다.소년 신선이 피리를 부는 ‘선동취적도’가 그것이다.어떤 신선인지는 불분명하나 소년티가 역력한 신선은 혼자서 피리를 분다.그 유명한 서양화가 E 마네의 1866년 작품 ‘피리부는 소년’보다 한 세기 가까이 앞선 그림이다.그럼에도 ‘선동취적도’는 마네의 작품처럼 예사롭지도 않을 뿐더러 심오한 모티브를 함축하고 있다. 소년신선의 얼굴은 달덩이 만큼 둥글다.하관이 부풀어 더욱 둥근얼굴이다.피리를 부느라 붉은 입술을 한껏 오므려 귀여운데,입속으로 바람을 잡았다.그래서 볼이 부풀어 오른 모양이다.그린 것마냥 또렷한 눈썹에서 한참을 내려온 눈이 총명스럽게 빛난다.그리 크지는 않은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콧날이 길게는 내려왔으나 유순하게 마감되었다.소년신선은 일찍 자기인상을 잡아놓은 것이다. 이마가 넓다.비록 어리기는 하나 도량도 넓을 법하다.쌍뿔머리를 틀고 남은 머리카락으로 넓은 이마를 약간가려놓았다.그리고 소담한 귀를 좀 덮어놓은 머리카락이 귀밑으로 흘러내렸다.쌍뿔머리를 누군가가 댕기로 동여매어 주었다.그래서 헤어스타일이 독특한 소년신선은 얼핏 불가의 동자같기도 하다.그러나 차림새 행색자체가 사뭇 선풍이다. 얼굴이 티없이 해맑은 소년신선은 가랑이가 치렁치렁 내려와 짚신속 발등에 와닿는 긴 바지를 입었다.오른쪽으로 옷섶을 여민 우임의 두루마기 위에 학날개 같은 덧옷을 걸치고는 춤 낮은 대바구니를 메었다.불로장생 먹거리 영지며 솔잎이 바구니에 들었다.어깨너머로 삐죽 고개를 내민 붉은 호리병도 보인다.‘군선도’에 나오는 주량 큰 신선 이철괴가 술 생각이 더 나서 들여다 보았던 그런 호리병이다. 소년신선이 불고있는 악기는 세로로 부는 피리다.세로로 부는 피리를 꼽자면 소,적,통소,단소 등이 있다.이 ‘선동취적도’의 피리는 흔히 퉁수라고도 부르는 통소가 아닌가 한다.통소는 관대의 밑이 막히지 않은 관악기다.이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원의 또다른 ‘선동취적도’(1779년 작품)에 써넣은 글을보면 ‘옥을 뚫어 아홉구멍을 냈으니…’라는 구절이 나온다.조선시대 음악교본인 ‘악학궤범’에서 소를 설명한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인 것이다.〈황규호기자〉
  • 소설가 최일남(이세기의 인물탐구:147)

    ◎직필로 현상통찰… 서민의 ‘등대지기’/어휘마다 야유와 풍자로 해학적 효과 창출/‘거룩한 응달’ 등 30여권… 월탄문학상 등 수상 시인 고은은 그의 시집 ‘만인보’에서 소설가 최일남의 대목을 이렇게 노래부른다. ‘지극히 정다우나 지극히 어꾸수하나/지극히 공적인 사람/한번도 찬란한 적 없으나/어느 곳도/헛디딘 곳이어서는 안되었다/ 그는 그의 과녘적중을 자랑하지 않는다/세월이 갈수록/그는 무서운 사람이어서/…’ ○모든 사물을 좌사우고 고은은 최일남을 ‘거대한 등대지기’로 표현한 적도 있다. ‘작으나 거인이며 대해를 탐조하는 통솔자의 기질이 탁월하다’고 했다.실제로 최일남은 소설가 박경리씨를 향해 “그앞에 서면 왠지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고 했지만 위세나 근엄을 보이지 않아도 후배들은 그를 ‘어려워하고’‘존경’해 마지않는다.전형적인 문인의 소박성을 간직하면서도 섣부른 것을 용납하지 않고 사물을 좌사우고하는 정의감이 투철하다.또 소설가와 언론인의 생활을 병행하는 중에도 매사에 중용을 지키고 자신이 넘나든 다양한 분야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소설을 ‘튼실하게’ 살찌운다.평론가 김병익에 의하면 그의 소설은 ‘평범한 평균치의 소시민을 통해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를 우리시대의 풍속사’로 일관성있게 정리해 나간다.‘문학주의를 과시하거나 거대한 역사를 주장’하기 전에 ‘티나 태를 부리지 않는 격의없는 사고와 말씨’‘공정하고 균형있는 감각’‘번뜩이는 풍자와 분석력으로 당당하고 명쾌하게 우리의 현상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윤식은 그의 문학의 도정을 3기로 나누고 있다.이른바 50년대는 ‘민중을 의식한 고발문학적 성격’을 띤 반면 70년대는 ‘역사적 시각과 정치적 감각’,장년기에 이르러 상실을 테마로 삼아 ‘인간심리의 기미와 우수를 세태삽화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평한다.‘도시적 세련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사진적 묘사와는 다른’ 본격적 세태소설을 정립하고 있다.소시민적 영웅심리의 허상을 희화적으로 그린 ‘홍소’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있는 중년층들의 변화를 그린 ‘서울사람들’‘타령’ 등이 그 예이다.최근의 ‘덧없어라,그 들녘’도 ‘우물안의 개구리신세에 자족하며 사는 한 지역의 유지들과 경박한 세속에 맞서 필마단기로 싸우려드는 돈키호테적 인물,산업개발의 필요성과 문화유적보호의 당위 사이에서 갈등과 알력을 보이는 삶의 양태’를 유창의 직필로 그려낸다.신문사 문화부장시절을 애잔하게 그린 ‘만년필과 파피루스’도 ‘누렇게 바랜 비망록의 화장을 고치거나 삭아내린 비목을 다시 세우려하지 않고 지나간 것들의 실감이 오늘의 문화에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생각하면서 ‘한 시대의 미완성은 정작 완성품보다 훨씬 값지다’는 교훈을 남긴다. ○소년시절에 축구선수로 그의 글쓰기 작업은 반짝이는 기교나 현란한 형용사 이전에 ‘서민적인 구수한 문체’로 최일남만의 독특한 문학을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이미 남이 쓴 문체나 표현을 재현해서 쓰기보다 ‘단어의 처녀성’에 탐착하여 가령 원고지 5장안에서 ‘것’이라는 한마디도 되풀이하는 법이 없다.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확실성은 기본이며 소설은 말이아닌 글이기 때문에 ‘글만의 멋과 맛’을 확고히 지킨다는 주의다.특히 토속적인 부사어인 ‘되나캐나’‘콜딱콜딱’‘쪼속쪼속’‘어세두세’‘으시딱딱’같은 어휘들을 적소에 사용하여 야유와 풍자,해학적 효과를 그때마다 적절하게 창출해 낸다.그의 일련의 소설들은 ‘신문기사의 규칙’속에 갇히지 않은 인간의 사연을 자연스럽고도 관곡하게 성취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53년 ‘문예’지 ‘쑥이야기’ 발표 그는 전주시 다가동에서 태어났다.소학교 시절에는 축구선수로 뽑히기도 하고 노래부르기와 글짓기를 좋아했다.6·25때 중학교 교장이던 부친이 납치당하고 하나밖에 없는 형이 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되었으나 외로움과 슬픔은 참을수 있어도 ‘배고픔’만은 견딜수 없었다고 고백한다.문학청년시절에는 이태준과 박태원에 탐닉하고 ‘젊음과 진보를 믿는다’는 ‘노신’에서 직접 간접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주사범을 졸업하던 다음해인 53년에 김동리씨의 기대에 찬 추천사로 ‘문예’지에 소설 ‘쑥이야기’를 발표했고 서울대 졸업후 ‘여원’지 편집장을 거쳐 59년부터 언론사에 재직해 왔다.동아일보 문화부장 17년째인 지난 80년,언론인 해직과 관련하여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이 됐을때 검사앞에 불려가 “전과기록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미안하지만 여지껏 파출소에 불려간 적도 없다”고 답변하여 검사도 그도 ‘슬몃’ 웃을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도 견고하고 수위높은 주장과 사물을 꿰뚫는 비판정신으로 여러 신문에다 정치·사회·문화에 걸친 당대의 문제들을 짚어내어 각층의 공감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그는 80년대 후반부터 전업작가로 돌게 되었고 ‘산문은 20대가 팔 구멍이 있고 60대가 팔 광맥도 많다’는 자세로 ‘예술’의 이름에 갇히지 않은 소박한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 나간다.자녀는 결혼하여 분가하고 강남구청앞 오래된 해청아파트에서 부부만이 살고 있다. ○80년대 후반 전업작가로 ‘큰새’는 좁은 새장안에 갇히지 않는 법,어떤 칸막이에도 속하지않는 평범한 삶의 진실속에서 그는 여전히 소설청탁에 심화를 끓이면서 ‘죽어서나 이 짓을 면할까 보냐?’ ‘어떻게 사느냐?’를 시시때때로 자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그리고 자신의 심경을 ‘외람되나 금아선생의 옛 수필’을 인용하여 ‘아무려나 50년 나와 함께하여 헐어진 책등같이된 이름,금박으로 빛낸 적도 없었다.그런대로 아껴 과히 더럽히지나 않았으면 한다’고 전한다. ‘지극히 정답고’‘지극히 어꾸수하나’ 아마도 어떤 삶의 형태에서도 결단코 ‘타락을 모르는 무서운 사람이어서’ 그는 천명을 들썩이지 않는 초연의 자세로 ‘무구한 명예’를 지켜나가게 될 것이다. □연보 ▲1932년 전북 전주 출생 ▲1952년 전주사범 졸업 ▲1953년 ‘문예’지 소설추천 ▲1956년 현대문학지 소설추천완료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졸업,‘여원’ 편집장,단편 ‘진달래’ 등 발표 ▲1959년 민국일보 문화부장 ▲1960년 고려대 대학원 졸업 ▲1963∼77년 동아일보 문화부장 ▲1978년 동아일보 편집부국장 ▲1980년 동아일보 해직 ▲1984∼87년 동아일보 논설위원 ▷작품집◁ 창작집 ‘서울 사람들’(75년 세대사) ‘타령’(민음사)·‘흔들리는 성’(삼중당)·‘홰치는 소리’(81년 창인사) ‘누님의 겨울’(정음사)‘그때 말이 있었네’(89년 나남) ‘히틀러나 진달래’(91년 한길사),장편소설 ‘거룩한 응달’(82년 동아일보출판국)‘그리고 흔들리는 배’(84년 동아일보출판국)·‘덧없어라 그 들녁’(고려원)·‘시작은 아름답다’(96년 해냄)·‘만년필과 파피루스’(97년 강)와 콩트집 ‘생활속으로’(78년 월간독서)와 에세이집 등 30여권 ▷수상◁ 월탄문학상(75년) 소설문학상(79년) 한국일보문학상(81년) 이상문학상(86년) 가톨릭언론문화상(88년) 인촌문학상(94년) 위암 장지연언론상(95년)
  • 경차 수출 잘된다/대우 티코 작년보다 78.7% 증가

    ◎현대 아토스 내수 한달새 6천대 경차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1일 대우자동차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경승용차 ‘티코’의 수출물량은 5만5천85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7%나 늘어났다.또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도 이 기간 동안 6천892대가 수출돼 지난해보다 165.5%나 늘었다.경차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은 올들어 국내 경차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음에 따라 수출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우측은 설명했다. 티코의 내수판매량은 8월에는 3천89대로 저조했으나 지난달에는 4천327대로 다소 늘었으며 9월 1일부터 시판된 현대자동차의 새 경차인 ‘아토스’는 한달동안 6천350대가 팔렸다. 한편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아자동차는 9월 한달동안 내수가 3만2천785대로 8월보다 22.3%나 줄었으며 수출은 2만1천226대로 두달째 2만대 수준에 머무르는 등 판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현대자동차는 9월 내수 판매가 8월보다 10% 가량 줄어든 6만174대를 기록했고 대우자동차는 내수가 3만1천336대로 8월보다 2.8% 감소했으며 수출은 3만8천616대로 21.2% 증가했다.
  • 대만,티베트 대표부 설치 승인/연합보 보도

    ◎망명정부와 관계개선… 중 반발 예상 【대북 AFP 연합】 대만 당국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대북시에 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연합보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티베트 대표부 설치허용이 대만과 티베트 관계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될 수 있으나 이미 냉각돼 있는 대만과 본토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오 쿵­리안 몽장(몽코­티베트) 위원회 위원장은 연합보와의 회견에서 “이 조치는 한족과 티베트족간의 문화교류를 촉진하고 대만내의 불교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티베트 망명정부의 대북 대표부 설치를 은밀히 승인했으며 정부차원에서는 티베트 망명정부에 ‘단 한푼의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불교협회는 티베트 대북대표부가 대만 불교도들이 낸 3천만 대만달러(1백5만달러) 미만의 기금으로 설립되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이기금의 이사장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티베트측은 1백만 대만달러 가량만 부담할 것으로 전해졌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3월 이뤄진 6일간의 대만방문을 통해 대만 불교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1천8백만 대만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이등휘 총통 등 대만관리들과의 면담을 통해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부 설치를 허용해줄 것을 촉구해 중국측의 반발을 산바 있다.
  • 미 ‘뉴 러퍼블릭’지 스틸 논설위원 칼럼 요지(해외논단)

    ◎‘대중 경계론’을 경계하자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된다는 소리가 미국내에서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 정치주간지 ‘뉴 리퍼블릭’의 로널드 스틸 논설위원은 최근호를 통해 이같은 중국경계론은 미국의 패권주의,자국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통렬히 반박했다.미국 언론계의 대중국 및 아시아관의 일면을 읽을수 있는 그의 풍자적인 컬럼 ‘다시 동쪽으로 방향 바꾸기‘를 소개한다. 냉전때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두고 말했던 ‘악의 제국’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단지 동쪽으로 이동해 다른 색깔을 띄었을 따름이다.미국의 이 새로운 악한은 말할것 없이 중국이며,새로운 위험은 오래된 것으로 즉 황화다.한다하는 미국 신문잡지들은 이런 식으로 북경 관리들의 교활한 책동을 독자들에게 숨가쁘게 경계시키기 바쁘며 곧 임전태세령을 발하기라도 할 태세이다.소련 제국의 멸망을 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할 일이 없어져 곤란해진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일본을 미국의 다음 최대 위험으로 지목했었다.당시 막강한 엔화와 미국 부동산을 깎지 않고 덤썩덤썩 사들여가는 일본인의 구매 바람은 미대륙을 일본에게 매입당한다는 상상에 기름을 끼얹었다.지금은 어떤가. ○‘중국=대적’ 책 불티 일본과의 전쟁은 피할수 없다고 요란을 피우던 책들은 파쇄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대신,작자는 다르지만 메시지는 비슷한 채 중국을 대적으로 지목하는 책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일본은 끝없이 더 부유해졌지만 중국인은 더 끝없이 많기도 해 인해에 의한 침몰의 공포를 일으킨다.미국은 분명 킹은 킹인데 왕관이 불안하게 얹혀져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나 할까.미국내에서 평소 같으면 상종도 하지 않을 냉전때의 진보파,기독교 원리주의자,인권 절대주의자,전통적 반공주의자 등이 동쪽으로부터의 ‘새’ 위협에 대해 미국을 분기시키기 위해 어색한 연합전선을 구축한 양상이다. 미 공화당은 중국정부가 불법적으로 민주당에 돈을 흘려보내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고 주장한다.“공산정권의 불법 현찰에 백악관이 매수됐다”는 문안과 함께 공화당은 자당 정치자금 모집서한을 보냈다.그러자 외국인들이 미국 정치인들을 로비하려 한다는 것에 화가 난 열성당원들로부터 수만장의 수표가 쏟아졌다.그러나 중국이든 그 이전의 일본,대만이든 간에 외국정부가 미국 선거를 돈으로 사려고 했다는 혐의는 한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설사 어느 정부가 이를 꾀했다 하더라도 이는 다름아닌 미국이 닦아놓은 길을 뒤따랐다고 말할수 있다.지난 50년동안 미국정부는 대개 CIA를 통해,여러 외국 정부를 세우고 전복시키고 와해시켜 왔었다.비밀리에 외국정당에 자금을 대줬고,쿠데타를 부추겼으며,정치가들을 매수했고,수십억달러를 들여 여론을 형성시켜 왔다.더 나아가 카스트로의 예에서 보듯 외국 정치가의 살인을 기도했었다.이런 기록들을 굽어 살펴서 제발 외국정부가 돈으로 우리 미국정치를 매수하려고 했다며 공포와 충격에 빠진 ‘척’하는 짓거리는 그만두자. ○CIA 대외공작은 뭔가 대체 중국이 무엇을 했길래 중국경계론자들의 목소리는 그리도 불길한가.‘중국과의 분쟁이 다가온다’의 저자들은 “중국은 이 지역의어느 국가도 중국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행동해선 안된다는 주의다”고 말한다.미국이 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집하고 있는 정책이 바로 이것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거의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의 이것은 그렇게까지 놀라운 야망은 아니다.그러나 미국이 무한정하게 동아시아에서 우세한 힘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여기는 인사들에겐 이것은 문제로 보일 것이다.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기색 하나하나가 미국의 현 패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도 일본도,미국이 이 지역에서 우세한 힘을 지닐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게 될 것이다.미국의 한 전문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갈수록 동아시아에서 안정을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문제는 미의 패권주의 결국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은 아시아인들 끼리 구해질 것이다.미국은 태평양의 한 세력이지 아시아 본토의 세력은 아니다.미국이 아시아의 패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미국이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이아메리카의 패자가 될 권리를 요구하는 것 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남아있는 유일한 슈퍼파워’라는 위치가,여타 모든 나라들의 이해는 어떠어떠해야 된다고 결정할 권리를 주었다는 생각을 우리 미국은 버려야 한다.세계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우리 미국이 이 점을 깨닫기를 거부하면 우리는 큰 일을 당하고 말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얼굴은 조순 골격은 KT/민주당 부총재단 이 전 총재측근 많아

    민주당 조순 총재가 30일 총재단을 새로 구성하는 등 대선을 겨냥한 본격적인 당 체제정비에 나섰다.민주당은 이날 부총재 인선에 이어 내주중 당무위원과 주요당직자들에 대한 인선을 매듭짓고 대선기획단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조총재의 이날 부총재단 인선은 기존 이기택 체제를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이뤄진 모습이다.강창성 하경근 장경우 조중연 부총재 등 이 전 총재측 인사 4명을 유임 또는 추가 임명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이에 미뤄볼때 당무위원 및 주요당직자 인선 역시 현재의 민주당 골격을 유지한 가운데 일부만을 보완하게 될 전망이다.강창성 총재대행은 “기존 당무위원이나 중하위 당직자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유임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조직정비 역시 112개의 사고지구당만 보강하는 선에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총재의 체제정비는 민주당의 전면개수가 아니라 부분보수인 셈이다.이를 놓고 당내 일각과 민주당 이탈세력인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측에서는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사실상 이기택 전 총재의 섭정이시작된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이날 부총재에 임명된 통추측의 김정길 제정구 부총재도 “개별적인 민주당 합류는 있을수 없다”며 당무복귀를 거부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그러나 단기필마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이 전 총재의 도움이 절대 필요한 조총재로서는 당분간 이 전 총재와의 공생이 불가피해 보인다. 조총재는 다음달 2일 취임후 처음으로 당사를 방문,당직자회의를 주재할 계획이다.여전히 ‘손님’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조총재가 과연 ‘주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낼지,향후 대권구도와 결부지어 흥미로운 대목이다.
  • 조선후기 심사정의 ‘절로도해’(한국인의 얼굴:113)

    ◎선승 달마 전설 그림으로 묘사/손가락으로 그린 도석인물화 조선시대 후기에 활약한 현재 심사정(1707∼1769)은 도석인물화를 많이 남긴 당대의 선비화가다.그를 가리켜 꽃과 풀벌레를 잘 그린 화가라고 말한 이도 있기는 하다.그보다 후대를 산 강세황의 평이 그러하고 보면,꽃 그림 화훼나 풀과 벌레 그림 초충을 꽤나 그렸던 모양이다.그러나 오늘날 전해오는 작품은 오히려 도서인물화의 비중이 더 크다. 그의 ‘절로도해’는 독특한 화풍의 도석인물화다.파도가 출렁대는 바다위에 두건을 쓴 사람이 떠있는 것을 묘사했다.그런데 바다에 뜬 사람은 갈대잎을 밟고 서있다.바로 중국 남북조때의 선승 모습이다.그것은 살아 생전의 달마가 아니다.그가 죽고나서 자신의 고향인 남인도땅 향지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전설을 담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달마는 전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달마상을 약간 비켜갔다.부리부리한 서역인 눈매에서 벗어났다.눈매에서 넘치는 기력을 찾아볼 수 없다.달마가 사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설내용을그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로도해’속의 달마는 추워 보인다.볼품없는 옷자락이 해풍에 흐느끼듯 더펄대서일까….맨살의 정강다리까지 드러나 더욱 을씨년스러운 달마가 되었다. 그래도 달마의 코는 크다.두건 아래 눈썹이 짙고 수염 역시 검게 자랐다.그러고 보면 달마가 서역인 티를 다 벗지는 못했다.이런 달마를 그린 화가는 심사정 말고 아무도 없다.몸골과 입성을 그린 솜씨는 전통 동양화기법이라기보다는 얼핏 양화의 느낌이 와닿는다.이를테면 먹물이 뭉친 듯 뭉툭한 오른쪽 눈썹과 눈,옷을 처리한 선묘는 전통화법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그 이유를 알고보면 그림을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손가락으로 그린 지두기법을 쓴 탓일 것이다.연한 갈색을 칠한 얼굴에도 더러 색깔이 뭉쳤다.지두로 묘사한 풍랑이 높은데,바다 물빛은 엷은 청색이다.종이에 먼저 물을 바르고 먹물을 칠하는 선염기법으로 처리한 반투명한 옷자락 가장자리가 너불거린다.달마가 남인도 고향으로 가던 바닷길은 험란했던 모양이다.비록 손가락 그림이긴 하나 갈대가 어줍지않다. 중국 땅에서 죽은 달마가 다시 살아서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는 이야기는 전설에 나온다.송운이라는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바다에서 사후의 달마를 보았다는 것이다.〈황규호 기자〉
  • 독일 뷔르츠부르크(세계 문화유산 순례:37)

    ◎13세기 축조 거대한 성채요새 우뚝/왕족겸 주교가 외세막기위해 강언덕에 세워/70여년 걸쳐 건설한 사찰관 ‘레지덴츠’ 한눈에 모차르트는 말년에 독일 중남부 뷔르츠부르크(Wurtzburg)를 들른 적이 있다.‘진혼미사곡’을 작곡하고 숨을 거두기 2년전인 1789년의 일이다.자신의 활동무대 비엔나를 떠나 레오폴드 2세의 황제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이었다.지친 말을 갈아 타고 커피나 한잔하면서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는데,그만 1년동안을 뷔르츠부르크에 눌러앉고 말았다. 모차르트 자신이 뷔르츠부르크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이 도시의 강렬한 인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는지 모른다.뷔르츠부르크에 매료된 사람이 어디 모차르트 뿐이겠는가.12세기초 문인 고트프리트 폰 비에트로는 뷔르츠부르크를 ‘지상낙원’이라고 찬양했다.또 헤르만 헤세가 1930년 “만일 내가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뷔르츠부르크를 택할것”이라고 부러워했던 곳도 여기다. ○모차르트의 휴식처로 여름 한 철을 빼고는 잿빛 하늘로 뒤덮인 뷔르츠부르크.그러나 ‘지상낙원’으로 꼽혔던 까닭을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곧 바로 알아 차릴수 있다.풀잎이라는 뜻의 ‘뷔르츠(Wurz)’와 언덕이라는 의미의 ‘부르크(burg)’에서 알 수 있듯 뷔르츠부르크는 ‘풀잎이 많은 언덕’이다.마인츠 강이 도시의 중심을 가로 질러 흐르고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포도나무는 옛날 약초언덕의 명성을 그대로 떠올려 주었다.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산위에 우뚝한 마리엔부르크 요새가 사람들을 압도한다.1천200년전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고성이기도 한데,옛 이름은 뷔르츠부르크요새였다.그러니까 요새는 뷔르츠부르크라는 도시 역사의 시원이다.요새의 주인은 당시 세력을 떨치던 왕족이면서 주교직을 겸한 이른바 ‘왕족­주교’들이었다.일반 시민들이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 정도의 위세를 누렸던 그들은 위세와 명성에 걸맞는 거처를 필요로 했다.그래서 1253년 거처이자 성채이기도 한 요새를 축조했던 것이다. 마리엔부르크 성채의 권력자들은 물론 주민들을 호령했고 성채는 행정보다는 튼튼한 요새의 성격이 강했다.마리엔부르크 성채는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빈번했던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요새였지만 유지비 조달과 주민 통치에 불편에는 많은 문제점이 뒤따랐다.그러는 사이 분열된 독일연방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침입자의 위험성도 점차 사라졌다. 그래서 요새의 권력자들은 산에서 내려왔다.마리엔부르크 요새에서 내려다 보면 도심 한 가운데 성당으로 둘러싸인 레지덴츠가 한 눈에 들어왔다.왕족 출신의 쇤보른 주교가 1719년부터 1795년까지 70여년동안에 걸쳐 평지에 건설한 새로운 권력의 아성이다.주민들의 부역과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는 레지덴츠의 위용은 지금도 대단하다. 레지덴츠 입구의 분수대는 무심히 넘길수 없는 유적이다.분수대에는 레지덴츠를 만든 건축가와 화가·조각가들이 서 있다.중세풍의 고압적이고 투박한 여느 건축물과는 달리 레지덴츠는 우아한 바로코풍을 자랑한다.오죽했으면 프랑스의 나폴레옹황제조차 혀를 내둘렀을까.레지덴츠에 들러 하루밤을 보낸 황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제관”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풀잎이 많은 언덕’으로 건축가 빌타자르 노이만이 기둥없는 특수공법으로 건축한 레지덴츠는 2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건축가들로부터 격찬의 대상이 되고 있다.레지덴츠 입구에서 50마르크짜리 지폐를 새삼스레 꺼내 보았다.왜냐하면 그 속에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가 노이만의 얼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뛰어난 음향효과를 가진 황제의 방에서는 지금도 모짜르트 음악만을 주제로 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티에폴로는 당대의 미켈란젤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였다.미켈란젤로가 로마 중심의 화가였다면,티에폴로는 독일을 주무대로 활약했던 거장이었다.티에폴로가 천정화를 만드는데 사용된 비용은 요즘 독일 화폐로 따져 150만마르크(한화 약 7억5천만원)로 추산됐다. ○나폴레옹 황제도 감탄 정원을 거닐다 만나는 조각들은 거의가 틸만 슈나이더의 작품이다. 우아하고 섬세한 선을 조화롭게 표현한 독일 후기 고딕시대의 대표적인 조각가의 작품인 것이다.왼팔이 떨어져 나간 ‘아담과 이브’에서는 슈나이더의 뛰어난 손길을 느낄수 있다.지금은 레지덴츠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등록돼 마리엔베르크성의 박물관에 보관됐다.레지덴츠는 지난 1945년 2차세계전쟁 당시 전파됐으나 독일이 갖고 있던 자료로 거의 원상에 가깝도록 복원해 해놓았다. ◎여행가이드/프랑크푸르트서 동남쪽 100㎞ 위치 프랑크푸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100㎞ 떨어진 뷔르츠부르크는 유명한 로만티크가도의 시발점.로만티크가도는 낭만가도라는 뜻이 아니라 알프스 산을 넘어 로마에 이르는 통상로라는 의미이다.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접경 마을 퓌센까지 350㎞에 이르는 로만티크 가도는 낭만에 젖어있다. 뷔르츠부르크 시내의 넘치는 활력은 독일 도시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노상 카페가 늘어선 거리는 독일이라기보다는 프랑스에 와있다는 착각을 전해줄 정도이다.성자들의 석상이 늘어서 있는 돌다리 알테마인다리(18세기초) 아래로는 뷔르츠부르크의 낭만이 흐른다.
  • 비포장 콩나물 7종 발암성 농약 검출

    재래시장에서 시판중인 일부 비포장 콩나물에서 암이나 기형아출산 등을 일으킬수 있는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19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5대 도시에서 판매 중인 포장콩나물 5종과 비포장 콩나물 30종 등 35종의 콩나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재래시장에서 통에 담아 파는 비포장 콩나물 7종에서 「티오파네이트메틸」이라는 발암성 농약 성분이 0.2ppm∼7.7ppm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티오파네이트메틸은 볍씨 양파 콩 참깨 등을 작물로 재배하기 위해 파종전 종자 소독을 위해 사용하는 농약인 「호마이」의 주성분으로 콩나물 재배에 사용할 경우 콩나물 자체의 대사에 의해 기형아 출산이나 암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인 카벤다짐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금지돼 있다.
  • 「마이 프렌드 쿠」와 동심 찾아가기

    ◎아기도깨비 등 한국적인 캐릭터 등장/성우들이 더빙… 한편의 동화 듣는 느낌 「마이 프렌드 쿠」(My Friend Koo)는 (주)에스 티 엔터테인먼트(02­3442­5155)에서 개발한 국산게임. 에스 티 엔터테인먼트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포인세티아」,「천하무적」 등을 제작,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은 게임 개발업체다. 폭력적인 게임이 난무하는 요즘 아기도깨비와 요정의 모습을 담은 한국적인 캐릭터(쿠)로 국산게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드밴처가 가미된 정통 액션게임으로 세련된 그래픽과 성우들의 음성더빙까지 등장,한 편의 동화를 읽는 느낌을 준다. 지난 달 문화체육부가 시상하는 「이 달의 우수게임」으로 선정됐다. 게임의 목적은 동심의 세계를 찾는 것.쿠가 여행하게 되는 동화나라에는 그곳을 지켜 주는 동심의 상징이 사악한 기운으로 봉인돼 있다.쿠는 이 봉인을 풀고 동심의 상징을 얻어야 한다. 게임은 모두 7개의 세계와 27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돼 있다.「동화나라」,「피터팬의 나라」,「백설공주의 나라」,「인어공주의 나라」,「오즈의 마법사의 나라」,「피노키오의 나라」,「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나라」 등이다. 게이머는 첫번째부터 여섯번째 스테이지에서 각각의 나라에 해당하는 보물을 얻고 마지막 세계에서 마도사와 아이들의 동심을 담보로 한 판 승부를 벌인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순수하고 여린 마음씨의 초승달 정령 「쿠」와 개구장이 석연이,쿠와 석연이가 합친 또다른 모습의 「쿠」,시간을 멈추게 하는 「쥰」,쿠가 하늘을 날게 도와주는 「윈디」,적을 공격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니콘」,신비의 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있는 「아더」 등이다. 캐릭터들은 모두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고 동작 또한 아주 부드럽다. 적을 물리치고,공중에서 떨어지는 돌을 피하고,점프하여 이동하는 식의 전형적인 슈팅방식에 이벤트와 대화를 통해 힌트를 얻는 어드벤처 성격이 첨가된게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대화와 이벤트를 주의깊게 관찰,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필요한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점프」도 잘해야한다.아무리 에너지가 많아도 점프를 잘못하면 한번에 죽는 경우가 많다. 쿠는 주먹과 발을 쓰는 것외에도 마법과 아이템을 사용할수 있다.등장하는 마법은 모두 세 종류,불·물·바람의 마법이다. 아이템은 주인공의 체력을 돕는 성수·생명수·과일,게임 진행을 돕는 바람개비·열쇠·화살,이벤트 아이템으로 목걸이·팔지·가방·자루 등이 등장한다.적들을 아이템으로 만드는 기능도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스테이지 마다 마법과 아이템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게임을 쉽게 풀어나갈수 있다. 공격할때는 주먹은 상당히 빠르지만 파워가 약하고,발공격은 파워는 세지만 빠르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주먹으로 적의 기선을 제압하고 발로 적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하면 에너지 소모도 줄이면서 적을 빨리 물리칠수 있다. 또 알아둘것은 「모든 적들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는 것」.적과 싸우지 않고도 다음 장소로 이동할수 있다면 이편이 훨씬 낫다. 주인공들의 공격 패턴이 다소 단순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도스 5.0이상·윈도 95호환.2만3천원.
  • 고건 총리 취임 100일/“축하받기보다 무거운 책임 느껴”

    ◎코리아컵축구 시호… 귀가길 간부들과 소주잔 고건 국무총리가 12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고총리는 이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부들과 「티 타임」을 갖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고총리는 축하인사를 건네는 간부들에게 『축하받기 보다는 더욱 무거운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총리는 이 자리에서 『내각과 공직사회가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는 법이니 다시 한번 현장행정을 확실하게 챙기는 것이 좋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무엇을 하겠다고 발표하면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챙겨야지,할 수도 없는 것은 발표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한다고 하면 끝까지 밀어붙여 끝장을 보라는 것이었다. 고총리는 이날 「티 타임」에 이어 강경식 경제부총리로 부터 자신의 「취임 일성」이기도 한 규제완화추진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곧바로 팔당상수원관리를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세미나에 참석했다.하오에는 다시 집무실에서 재향군인회회장단과 이임하는 주한 오스트리아대사를 접견했다. 취임 이후 가장 바쁜 날이었을 이날 고총리의 공식일정은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시축을 하고,우리나라와 이집트의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그러나 그가 총리실 간부들과 강남의 한 냉면집에서 소줏잔을 기울인뒤 삼청동 공관으로 돌아간 때는 이미 「취임 101일째」로 접어들어 있었다.
  • 키신저의 충고(외언내언)

    통일 베트남의 부총리 구엔 티 빈여사는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리평화회담」때 헨리 키신저를 상대로 단호하고 신랄한 면모를 과시했던 월맹측 대표다.근년에 그가 당시의 키신저박사를 평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그는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다.다만 정당하지 못한 주장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 당시의 그의 불행이었다』 키신저는 그때 월남측에 서 있었다. 아직도 승자의 우월감이 남아있는 빈여사의 그 인상적 어투를 15일 아침의 키신저씨는 기억나게 했다.그때(회담에서) 월남을 참여시키지 않은 미국의 개입방법이 잘못이었다는 것이 지금의 그의 생각이라는 것.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이 주최한 조찬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것은 북한과의 문제에서 어떤 경우라도 한국이 주도권을 갖도록 하라는 충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는 거듭거듭 그것을 강조했다. 외교란 우방을 즐겁게 하는 것이어야지 적을 즐겁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그가 해준 충고는 그밖에도 많다.북한에 대한식량지원이 이른바 연착륙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라 평양의 체제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그는 가졌고 그 견해가 미국정부의 입장과 다른점이라는 사실도 언명했다. 『지금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자기들 시대에 볼 의사도 없고 통일의 비용을 댈 의사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대목도 그의 말에는 있었다.그점에서는 한국의 모든 이웃이 다 그럴 것이라고 부연도 했다.요컨대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그러도록 미국도 돕는 것이 「우방을 즐겁게 하는 외교」의 태도라는 뜻을 명백하게 밝혔다. 자기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한국에 와서 제대로 된 한국의 의견을 더 많이 듣고 가기를 원한다며 경청의 태도를 견지하던 그가 끝내기에서 던진 한마디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약한 적이 낫다.북한에서의 체제변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 연초록 꼬까의 5월을 기리노니(박갑천 칼럼)

    5월은 연초록 웃음으로 문을 연다.진초록으로 가는 여린 푸르름.어머니 입김같은 명지바람인데도 행여 다칠까 마음죄게 하는 생명들이 점지받은 이승을 노래한다.계절의 어린이다. 그렇다.이윽고 헤살부려올 모진 비바람 모르는 양 웃는 어린이의 모습이 5월이다.「맹자」(리루하)는 『대인이란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마음을 지니는 사람』이라고 했다.연초록 꼬까에 티없이 방실거리는 5월은 그래서 대인이다.대인의 보법을 보인다.저 물쩡해뵈는 잎이 추위에 어찌 앙버티면서 딴딴하고도 억센 장벽을 뚫고나온 것인고.「노자」가 말한 유능제강(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김)의 철리를 새삼 곱씹어보게 하는 눈엽의 5월이다. 왜 그러는걸까.진달래 개나리하며 목련 등은 꽃부터 핀다.그게 섭리의 웃음인 봄꽃의 눈비음.그것도 유능제강을 보이기 위함이던가.그 웃음을 거둬들이면서 잎을 틔운다.웃음에 갈음하여 솟구치는 잎은 그러므로 생명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가르친다.파란 부활.생명의 영원을 약속하는 섭리의 결연한 의지이다.그걸 펼쳐뵈는 5월은 위대하다.두견을 울게하고 꾀꼬리를 미치게하는 달이 5월이라고 했던 사람은 김영랑이었지,아마.어디 꾀꼬리만 미치게 하는 것이던가.그에 앞서 5월의 여린 잎들은 장끼와 까투리의 미침도 잊은 정사부터 엿보던 것을.그러고서 5월은 피토하는 두견의 울음소리를 보내어 다가올 세파를 미리 알린다.그 옛날 슬프디 슬프게 영월땅으로 쫓겨간 단종임금도 들었던 두견(자규)의 울음소리.자신의 신세를 거기 엇섞은 시가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애끊는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달 5월이다. 지금은 남의 얘기다.하나 50년대까지만 해도 넘기가 아프고 서러운 보릿고개를 안았던 5월.풀뿌리 캐먹고 나무속껍질 핥던 그 시절의 5월 하루해는 왜그리 길던 것인고.『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이나 산단 말이냐…』고 구성지게 울먹이던 육찬이의 육자배기가락은 아지랭이속으로 가물가물 스러져갔거니.가난한 죄로 「장가한번」 못간 그 상머슴이 살아있다면 지금쯤 여든도 넘어있는 것이리라. 해마다 5월은 왜오는가.꽃피고서 시들고 사랑하고서 미우며 가멸진 다음 가난해지고 젊은 다음 늙어가는… 돌고도는 이치 알려주고자 온다고 해두자.그걸 느끼는 가운데 가정의 달 5월을 푸르고 싱싱하게 보내야겠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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