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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백경훈 글

    ‘무스탕’. 겨울철에 입는 옷 얘기가 아니다. 네팔 중북부, 티베트 남쪽과 국경을 마주한,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고원과 협곡의 땅.14세기 나라의 기틀을 세워 역사를 이어오다가 1760년 네팔에 자치권을 빼앗긴 옛 왕국이다.1년 내내 강풍이 불고 물이 귀해 척박한 데다가 해발 4000m를 넘는 고산지대가 대부분이고 외부인의 출입도 자유롭지 않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은둔의 땅’으로 불린다. 여행작가이자 시인 백경훈과 사진작가 이겸이 함께 지은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호미 펴냄)는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로움이 지배하는 네팔 깊숙이 숨겨진 은둔의 땅 ‘무스탕’을 20일 동안 캠핑 트레킹으로 탐사한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히 기록한 국내 최초의 ‘무스탕 여행서’이다. 특히 글을 쓴 백경훈은 우연한 계기로 네팔에 사로잡혀 직장을 관두고 지난 7년간 네팔을 7차례나 다녀온 자칭 ‘네팔병 환자’. 오랜 염원인 무스탕 트레킹을 결심한 것은,‘삶이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일종의 구도 행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한국인은 아직 아무도 간 적이 없는, 이른바 ‘죽음의 코스’를 선택,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통해 무스탕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담았다. 오지 탐험가들에 의해 간간히 소개되던 무스탕의 신비를 한 꺼풀씩 벗겨 보여주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스탕에 첫발을 디딘 저자들은 무스탕을 한마디로 ‘문명의 입김이 닿지 않은 태고의 신비’라며 감탄한다. 거칠고 황량하지만 동시에 휘황하게 아름다운 태곳적 윈시 모습 그대로였다. 히말라야 설산을 굽이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절경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풍경, 윈시의 빛깔로 신비롭게 빛나는 자연의 모습, 마을이 있는 곳마다 하늘에서 펄럭이는 신성한 깃발 ‘룽다’, 척박하고 거센 땅에 맞서 사는 종교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 등이 책 페이지마다 살아 숨쉰다. 저자들은 태초의 하늘 그대로인 무스탕의 하늘을 ‘천공(天空)’이라고 표현한다. 발을 질질 끌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천길 낭떠러지 절벽을 보면서 절망과 희망을 함께 느꼈다는 그들은 무스탕 여정을 끝내면서 “잠시 신(神)과 동행했다.”고 중얼거렸다.20일간 스쳐간 온갖 풍경과 자연에서, 사물과 사람에서, 역경과 고난에서, 희열과 환희에서 그들은 신을 만난 것.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과 순박한 무스탕 사람들의 미소에서 인간의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다.1만 8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6)세계의 음다풍습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6)세계의 음다풍습

    새해다. 아직도 앞산인 달마산은 눈을 모자삼아 구름을 목도리 삼아 유유자적 하늘과 세월을 떠받치고 있다. 새해들어 눈 덮인 골짜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인사를 하러 온 차인들도 많지만 일반 등산객들의 발길도 늘어가고 있다. 하얀 입김을 푸우 푸우 내뿜으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해남의 명산인 두륜산에는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두륜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큰절인 대흥사를 지나 일지암을 지나는 코스와 진불암을 지나는 코스가 있다.200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지암을 찾는 등산객들은 매우 드물었다. 마치 사시사철 선방처럼 한적한 곳이 바로 일지암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큰 절의 수련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등산객까지 일지암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른바 웰빙음료로 각광받고 있는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 것 같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중 가끔씩 차를 청하는 분들이 있다. 일지암에는 좀 독특한 차 풍습이 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아닌, 청하는 손님이 차를 직접 우려내서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당황해 한다. 차를 어떻게 내야 합니까.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형식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쉽게 생각하세요. 직장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마시듯 편안하게 차를 끓여 드시면 됩니다. 우선 유천에서 물을 떠와 차를 끓이는 주전자에 넣고 사람 수에 맞게 잔과 차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물이 끓으면 차 주전자에 물을 붓고 마시면 되는 것이지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하게 따르고 마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차를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안타까워 다시 권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차는 형식과 관념 속에서 머무는 뜬 구름이 아니라 존재와 현실의 내적 욕망을 갈무리하는 청적(淸寂)이 머무는 마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차는 그 자체로 이미 편안함이며 실용적이며 삶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장자의 이야기다. 제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당대최고의 목수인 윤편이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물었다.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지금 살아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 사람의 찌꺼기군요.”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축인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깎아야 할 수레바퀴의 정확한 치수는 있기는 있습니다만 소신은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 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환공과 윤편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형식인 말은 결코 그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차는 거창한 삶의 형식이 결코 아니다는 것이다. 차의 본뜻은 삶의 실용속에서 자신을 발견해가는 작은 기쁨에서 시작되는 일상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구를 갖출 수 있고 차를 마시는 최소한의 지혜를 갖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차는 내 일상의 삶속에서 천연스럽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차는 곧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는 삶의 존재로서 우리에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든 차를 마신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마시는 민족은 어디일까.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티베트다. 그것은 높은 고원지대의 기후 탓이다. 티베트인들은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영양성분을 차로 보충한다. 그들이 마시는 수유차와 수유차를 만들 수 있는 통모, 그리고 차담은 티베트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마시는 민족으로 만들고 있다. 티베트인들의 음다풍속은 매우 자연스럽다. 형식과 격식이 없이 앉는 곳이 바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티베트인들의 찻자리는 그런 점에서 매우 자유롭고 평안하다. 아마도 형식과 격식을 갖추지 않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차가 하나가 되는 찻자리를 펼치는 유일한 민족이 바로 티베트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생산현장에서, 그리고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회의장에서도, 높은 산에서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차를 마신다. 자세히 들여다면 그들의 일상은 이미 차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는 그들의 모든 삶을 씨줄과 날줄로 이어준다. 척박한 문화속에는 아주 조용한 삶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그들의 종교적 성지인 라사의 포탈라궁을 가기 위해 온 가족이 7개월 동안 삼보일배를 한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차문화 공동체는 우리가 향후 지향해야 할 차의 살림살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연구해줄 귀중한 것들이라고 보여진다. 중국 신강 위구르족의 밀크티와 향차(香茶)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들이다. 위구르족의 밀크티와 향차는 한가한 여가시간보다는 식사와 함께 먹는다는 게 특징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식사를 한 뒤나 편안한 시간을 따로내어 차를 마시는 반면 위구르족은 식사와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이다. 위구르족은 북쪽의 민족들은 밀크티를 마시고 남쪽에 사는 민족들은 향차를 마신다. 위구르족의 밀크티는 매우 독특하다. 벽돌차로 불리는 전차를 쪼개 덩어리를 철제주전자나 알루미늄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인다. 차가 적당하게 푹 우러나면 신선한 우유 혹은 양젖을 넣고 다시 소량의 소금을 넣은 뒤 더 끓인다. 그리고 몇분이 지난 뒤 찻잔에 따른후 식사와 함께 차를 마신다. 향차 역시 마찬가지다. 주전자를 사용해 차와 함께 후추나 계피 정향 등 향로가루를 넣고 서서히 물을 부은 뒤 불위에 얹어 4∼5분가량 끓인다. 차 찌꺼기나 향료가루를 찻잔에 함께 나오지 않도록 걸러 마시며 보통 아침 점심 저녁식사와 더불어 차를 마신다. 몽골인들에게도 밀크티가 있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에게는 삼차일반(三茶一飯)의 음다풍습이 있다. 하루에 3번정도 차를 마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과 함께 한번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운남지방에서도 독특한 음다풍습이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음다풍습은 염파차(炎波茶)와 용호투차(龍虎鬪茶)다. 염파차는 차 덩어리를 부숴 작은 토기그릇에 넣은 뒤 토관을 불위에 얹어 찻잎이 “퍽 퍽”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구운 다음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5분정도 끓인다. 그런 후 다시 소금덩어리를 다탕에 넣고 끓여서 짠맛이 나면 화로에서 꺼내어 따른 뒤 각자의 기호에 따라 뜨거운 물을 더 부어 마신다. 운남에서는 염파차를 마실 때 옥수수떡을 함께 먹는 습관도 있다. 용호투차는 밀림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감기치료에 이용하는 비방으로 전해지고 있다. 먼저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차를 알코올 도수 높은 술이 담긴 술잔에 부으면 마치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은 형상을 나타낸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면 땀이 나고 잠을 잘 자게 되고 몸이 가벼워져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인들은 티베트인 다음으로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민족이다. 연간 1인당 차소비량이 약 4.5㎏이 될 정도로 차를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영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습관은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차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아침 식사때 한 잔을 마시며,11시쯤 일을 하거나 대화를 하며 또 차를 한 잔 마신다. 점심식사때 한 잔, 오후 1시부터 4시사이에 한 잔, 잠을 자기 직전에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영국인들의 다시(茶時)다. 영국인들이 세계적으로 차 소비량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에서는 또 ‘5시 차’라는 음다풍습이 있다. 18세기 중엽 베드포드 공작부인인 안나가 고안해낸 방법으로 오후 5시에 많은 사람을 초청해 차와 과자 등을 제공하는 통상적인 차회를 말한다.5시 차회에서는 크래커 과일 등을 바구니에 담아 차와 함께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비해 미국인들은 차가운 차인 ‘아이스티’를 즐겨 먹는다. 차는 통상적으로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신다는 통념을 미국인들은 깨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티는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국제박람회에서 영국인 차업자인 리처드에 의해서 보급됐다. 차를 선전하기 위해 박람회에 온 리처드는 7월이라는 뜨거운 날씨 탓에 아무도 차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자 홍차에 얼음을 넣어 차게 한 다음 차가운 홍차라고 권유했다. 차가운 홍차인 아이스티는 뜻밖에도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고 전세계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 사막의 나라 모로코에서는 박하차를 마신다. 박하차는 차를 넣고 먼저 끓이다 설탕과 함께 박하잎을 넣어 마신다. 차와 설탕 박하가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을 전해주는 것이 바로 모로코의 박하차이다. 이밖에도 차는 유럽 러시아에서도 그 지역의 기후와 문화적 풍습에 알맞게 음용되고 있다. 차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유 설탕, 심지어 박하와 소금까지도 함께 섞어서 음용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차는 형식과 관념의 문제가 아닌 현실 삶의 존재조건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차가 함께 하는 매개고리로써 중요한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일지암 암주 ■ 티베트의 수유차 ‘하루 양식은 없어도 되지만 차 없이는 못산다.’는 민족이 바로 티베트다. 그들은 하루 일과를 차로 시작해 차로 끝낸다. 최소 20∼30잔에서 100잔을 넘게 마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티베트에 가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명물이 바로 ‘통모’라고 부르는 차통이다. 보통 지름이 15∼18㎝이고 길이는 150㎝가량이며 왕대나무를 잘라 차통으로 만든 후 겉에는 아름다운 문양을 새긴다. 차통에는 피스톤 같이 생긴 막대가 끼여 있다. 통모에 야크의 젖으로 만든 버터를 빚어넣고 그위에 끓는 차를 붓는다. 소금과 입맛에 맞는 향로를 또 넣고 피스톤처럼 생긴 자루를 두손으로 잡고 절구질하듯 아래 위로 밀어 넣었다 뺐다 하며 골고루 섞는다. 절구질을 많이 할수록 차는 부드럽고 맛깔이 난다. 수유차라 불리는 이 차는 단백질과 지방질 풍부한 비타민과 카페인이 함유된 버터차가 된다. 쌀뜨물처럼 진한 게 탁한 우유맛이 난다. 수유차를 만들 수 있는 통모는 티베트 사람들의 빈부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신분적 가치를 지닌다. 통모의 겉이나 절구질을 할 수 있는 막대기의 손잡이인 ‘자나’에 부자들은 아주 귀한 보석으로 치장한다. 수천만원이 넘는 귀한 통모가 티베트에는 존재한다. 수유차를 담을 수 있는 보온통인 ‘차담’도 매우 중요한 차 도구 중 하나다. 티베트 사람들은 집집마다 최소한 2∼3개의 통모와 4∼5개 정도의 차담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찻자리가 따로없다. 찻상을 차리거나 차를 마시는 격식 없이 시장바닥이건 회의장에서건 앉는 곳이 바로 찻자리다. 어떤 자리든 앉으면 바로 차가 나오기 때문이다. 티베트 풍습상 손님으로 차를 접대받을 때 찻잔의 차를 모두 마셔서는 안 된다. 차를 모두 마셔버리면 차를 더 이상 마실 의향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더 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더 마시기 위해서는 찻잔에 차를 약간 남겨두어야 한다. 차가 일상화되어 있는 티베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 소비량을 자랑하고 있다.1인당 연간 소비량이 15㎏가량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 [CEO칼럼] 실용주의에 대한 斷想/노영인 동양시멘트·메이저 사장

    [CEO칼럼] 실용주의에 대한 斷想/노영인 동양시멘트·메이저 사장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2005년 11월말 기준 무역흑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908억달러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는 8000억달러에 다다른다.‘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던 중국이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이미 200여년 전에 중국의 저력을 간파했다. 그는 중국 청나라 건륭제 만수절(70세)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중국을 찾은 기행을 ‘열하일기’에 담았다. 그가 북경에서 놀란 것은 화려한 궁성이 아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 동의보감 25권을 간행했다는 사실과 판본 또한 정묘함에 감탄한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수준 높은 문집이나 유학 관련 서적이 많이 발간되었지만, 잡문으로 취급 받았던 실용서는 드물었다. 실용서인 ‘동의보감’이 중국에서 발간돼 요즘 말로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또한 당시 청나라의 국가 이념은 우리와 같은 주자학이었다. 그러나 주자를 정통으로 표방하면서도 불교, 도교 등의 영역을 인정했다. 심지어 건륭제는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 이면에는 강성한 티베트를 억누르려는 정치적인 안배가 숨겨져 있었다. 유목생활에서 비롯된 유연하고 실용적인 청나라의 노마드 정신을 읽은 박지원은 중국을 찾는 조선 선비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주자를 반박하는 이를 만나거든, 부질없이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말고, 그 속까지 스며든다면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혁명 이후 국제 교류에 빗장을 걸고 폐쇄 경제를 지향했다. 실용성과 유연성을 잃은 경제와 문화는 깊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거듭했다.90년대말 국가부도 위기를 겪었지만 ‘산업화에 늦었지만 정보화에서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IT산업을 일으켰다. 그 결과 IT산업 종주국의 위상을 세웠다. 중국은 뒤늦은 1979년 대외경제개방정책을 내놓았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다. 상하이, 선전 등 경제특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지 10여년 만에 중국은 경제규모 면에서 아시아권에서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코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머지않아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초초감마저 들 정도다. 필자가 아는 중국 사람들은 “중국에서 사상은 실용에 복무한다.”고 초고속 성장의 이유를 댔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실종되었던 유연성과 실용성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 일례로 중국 경제특구에서는 5일 만에 공장 설립 인허가가 난다. 인허가뿐만 아니라 기업이 기업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관, 세무 등 다양한 문제를 국가가 앞장서서 전 과정을 처리해준다. 우리나라 지자체도 벤치마킹하여 비슷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법적인 규제의 장벽이 높아 중국을 따라가기가 근본적으로 힘에 부친다. 달라이 라마에게 예를 표하라는 건륭제 앞에서 이단이라 하여 어깃장을 놓은 만수절 축하사절단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형식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이 잔존해 있고 님비 현상이 팽배해 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들이 경제 성장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용후생을 추구했던 연암 박지원의 고언을 되새겨볼 일이다.‘이용(利用)이 있은 후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후에야 정덕(正德)이 될 것이다. 대체 이용이 되지 않고서 후생할 수 있는 이는 드물지니.’ 노영인 동양시멘트·메이저 사장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5) 미국·유럽으로 간 차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5) 미국·유럽으로 간 차

    눈 덮인 일지암에 새해들어 반가운 손님이 왔다. 자우홍련사 툇마루 앞에 흰 눈 속을 뚫고 홍매화 한 송이가 핀 것이다. 순백의 눈 위로 피어난 홍매화 한 송이는 마치 하늘에서 천리향을 품고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다. 자우홍련사 툇마루를 따라,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춤추는 풍경을 따라 홍매화향은 천리 만리를 가며 고통스러운 삶에 부대끼는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쉬게 한다. 부글부글 끓는 찻물을 하얀 백찻잔에 따라 다시 찾아온 홍매화에 헌다한다. 다시 이곳을 찾아와 생명의 거룩함을 알리는 그 홍매화는 늘 나를 일깨운다. 생명을 피워내기 위한 거룩한 고행이 모든 삶의 첫 출발이라고. 그런 점에서 홍매화는 긴 겨울 안거를 지내며 내 삶의 영혼을 피워올리는 부처인 것이다. 홍매화는 또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봄의 소리를 전해주는 전령사다. 겨울이 가고 곧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가시가 촘촘히 배어난 앙상한 홍매화의 굵은 마디들은 이리저리 굽어지고 휘어지며 세월의 연륜을 안으로 품고 있다. 휘어지며 굽어지며 볼품없는 세월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매화는 동토의 땅에서 그 무엇도 흉내낼 수 없는 찬란한 생명을 피워낸다. 차도 마찬가지다. 초의스님은 동다송의 맨 첫장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하늘이 이 신령스러운 나무를 귤나무의 덕과 짝지었으니, 천명대로 옮기지 않고, 남쪽에서만 자란다네. 우거진 잎 모진 추위와 싸우며 겨우내 푸르고 서리에 씻겨 가을 정취 풍기는 하얀꽃, 고야선녀의 흰 살결처럼 고우며 염부단금 같은 황금꽃술 맺혔네.” 차 역시 긴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며 우리 삶의 일상 속으로 걸어들어온다. 우리가 걸어온 차의 역사는 그런 점에서 많은 일화와 신화를 남기고 있다. 동양에서 꽃핀 차문화는 지금 어디까지 걸어가고 있을까. 매우 궁금한 대목 중 하나다. 중국에서 싹튼 차는 한국을 지나 일본을 건너 지금 미국과 유럽까지 진출해 있다. 현대 기술문명의 이기 속에서 고도로 발달한 철학적 사유체계를 가진 문명이 탄생할 것이라는 서구철학은 그 한계와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적 사유, 고도로 발달한 생명공학은 인간의 이성을 싹트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극대화하는 개인문명으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 그룹들은 동양의 철학 속에서 인류문명의 새로운 이정표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티베트불교, 일본불교, 그리고 한국의 선불교가 미국·유럽의 명문대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은 그같은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지식인 그룹들은 실천적인 불교식 명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선원과 명상센터를 찾아가 직접 체험하며 새로운 문명과 호흡하기에 여념이 없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서구는 상위문명이요 동양은 하위문명이라는 도식적인 문명론의 환상이 깨지고 자연과 인간, 더 나아가 우주와 함께 유동하는 삶으로서 동양문명에 대해 서구의 지식인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실천적이다 못해 체험적이기도 하다. 얼마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은 그같은 현상을 매우 잘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선(禪)과 차(茶)를 제일과제로 선정해 세계 최대규모의 도서전에서 선보이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결단은 대성공을 거뒀다. 현지 언론뿐만 아니라 참여한 전 언론의 관심사가 바로 선과 차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을 통해 차를 배우고 있다. 얼마전 독일에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한국의 차를 보급할 수 있는 차카페를 만들어보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곳은 일본인들이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일본 차문화를 보급했던 곳이다. 일본은 그 도시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오랫동안 산업적 성과를 그곳에서 거두고 있다. 일본의 거리에 독일인과 일본인들을 위한 차카페를 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지인의 생각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일본의 차문화가 독일인들과 현지 일본인들에게 호응을 받았다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한국의 차문화 역시 하나의 문화로 호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20년 넘게 무역업을 하고 있는 그는 한국 차문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원을 투자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독일뿐만 아니다. 프랑스, 영국에서 차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단지 그 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지금 유럽과 미국인들 사이에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 어떤 형태로 재편되어 자리잡아야 하는가는 문화전파자들의 몫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으로 차는 어떻게 전파되었을까. 한가지 유념할 것은 우리와 다르게 유럽과 미국의 차는 역사를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유럽에 차가 보급된 것은 17세기 당시 가장 활발한 무역업을 하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을 통해서다. 중국의 차가 처음 보급될 무렵 유럽사회는 물과 술을 주음료로 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술의 피해는 심각할 정도였다. 유럽 차 보급은 영국 왕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영국의 찰스 2세에게 시집을 간 캐서린 공주는 술에 취하는 악습을 없애기 위해 차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캐서린 공주는 차의 좋은 점을 알리기 위해 ‘티파티’(차회)를 열었다. 캐서린 공주의 차회는 당시 상류사회의 부인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낮밤을 가릴 것 없이 술에 취해 사는 상류사회의 문화에 그 부인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 없이 담소를 나누며 교류를 이끌어가는 ‘티파티’는 삽시간에 유럽 상류사회를 휩쓸었다. 당시 상류사회의 중요한 소통수단인 티파티는 결국 주류문화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폐단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일본의 다도의례를 흉내낸 상류계층의 티파티가 고비용이 드는 호화로움의 극치로 치달았던 것이다. 마치 일본 막부시대 때 황금찻잔을 만들어 화려하다 못해 퇴폐적인 찻자리를 낳았던 것처럼 유럽의 티파티도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가 선정한 지난 1000년간의 100대사건 중 차의 유럽 전래가 보여준 삶의 패턴변화가 28위로 꼽혔다는 사실이 이같은 변화를 입증한다. 차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역사는 바로 고속범선의 출현을 앞당겼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차의 수요가 급증하자 그 운반 속도문제 해결이 큰 고민거리였다. 당시 중국남부에서 인도양을 지나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을 북상, 런던으로 오는 무역로는 1년 내지 1년반의 기간이 걸렸다. 긴 항해는 차의 맛을 변질시켰다. 그럼에도 차값은 그 폭발적인 수요를 견디지 못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것이다. 상인들이 이같은 호재를 놓칠 리 없었다. 범선의 개량에 들어간 것이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선체를 늘씬하게 하고 바람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돛대와 돛을 키워버린 것이다.‘클리퍼’라 불렸던 이 범선의 출현은 중국과 런던을 오가는 기간을 단 100일로 줄여버리는 신기원을 이룩해냈다. 당시 가장 빠른 범선은 하루에 무려 800㎞를 항해하는 놀라운 일을 해내기도 했다.19세기 중엽에는 ‘차 빨리 운반하기’경쟁이 생길 정도였다. 코스는 늘 똑같았다고 한다. 중국을 출발해 동중국해를 남하하고 인도양을 지나 남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을 거슬러올라가 아조레스 제도를 지나 런던으로 들어온 후에 예인선에 끌려 템스강을 올라와서 선착장에 누가 먼저 찻짐을 내리는가 하는 경쟁은 몇 분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빨랐던가를 알 수 있다. 차가 또 미국 독립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빠뜨릴 수 없다, 18세기 중반 신대륙의 개척자들은 영국정부가 그들에게 부과하는 과도한 세금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신대륙의 개척자들은 영국의 화물선이 주로 입항하는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무거운 세금에 대해 엄중한 항의를 계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재정의 중요한 창구였던 동인도회사의 경영난을 덜고자 새로운 관세조치인 ‘차조례’를 발표했다. 당시 신대륙의 개척자들에게 차는 섬유 공산품 다음으로 많이 수입되는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그들은 ‘차조례’를 악법으로 규정하고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펼쳐나갔다. 그 운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요항구에서 차가 내리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당시 차는 주요무역품으로서 매우 값비싼 것이기도 했다. 신대륙 개척자들은 보스턴항에 정박해 있던 배를 습격,350여개에 이르는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에 영국정부는 영국의회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보스턴항을 폐쇄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정부와 식민지간의 갈등은 마침내 1775년 무력충돌로 이어졌고 이듬해 대륙회의는 독립선언을 발표해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차는 이렇게 유럽과 미국사회에 전해졌으며 그후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사회에 차가 본격적인 문화로 자리잡지 못한 것은 커피의 전래때문이다. 커피는 복잡한 의례를 행할 필요없이 즉석에서 마실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산업기술문명과 결합했고 지금도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차는 지금 또다시 새로운 문화로, 음료로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고 있다. 그 문화의 형태가 어떤 형태로 변화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차는 하나의 정신문화로서 동서양을 떠나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순한 공간과 문화의 수출이 아닌 차의 정신, 곧 현대적인 삶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삶의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정적인 문화로서 차가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차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차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리더들은 새로운 영역의 확대에 눈을 떠야 하며 긴 안목으로 세계의 차시장을 바로 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차가 21세기의 새로운 대체음료로서 각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지암 암주 ■ 中·英 아편전쟁 발단은 차분쟁 차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은 매우 많다. 아주 우화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신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봤듯 차는 하나의 삶을 바꾸는 문화로서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영국과 중국이 벌인 아편전쟁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영국의 국운이 걸린 한판 전쟁이기도 했던 아편전쟁의 숨은 공신이 바로 차다. 차인의 입장에서 볼때 아편전쟁을 차의 전쟁으로 불러도 될 정도로 아편전쟁의 핵심은 차 였기 때문이다.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19세기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다원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중국을 중심으로한 차시장 분할에 영국이 직접 뛰어든 것이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주축으로 삼아 인도에 대규모의 근대적 다원을 열고 본격적인 생산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중국이 세계적인 차시장에 대해 갖는 독점적인 지위를 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체제를 갖추기 전까지 중국은 세계 차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은 무역의 주 결제수단으로 은을 사용했다. 차 주수입국이었던 영국은 엄청난 양의 은 결제수단을 찾지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영국정부가 고안해낸 것이 바로 아편 무역이었던 것이다. 영국은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팔면서 그 결제를 모두 은으로 했고 그 은을 다시 청나라에 결제해주었다. 중국은 차를 팔아 아편을 사게된 것이었다. 이같은 사실을 안 청나라 정부는 그 같은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청나라 정부는 임금의 특명을 받은 임칙서를 광주로 파견,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2만상자를 압수해 주강 하구의 해변에서 석회를 부어가며 20여일에 걸쳐 바다 속에 수장시켜버렸다. 이 사건으로 영국과 중국은 아편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 결과 청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된 것이다. 차를 대부분 중국에 의존해야 했던 유럽에서는 직접 차를 재배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어졌다.1823년 스코틀랜드 기지 사령관이었던 부르스는 인도의 북동쪽 아셈지방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를 발견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만 차나무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같은 사실을 뒤집은 아셈지방의 자생적 차나무에 대해 유럽은 열광했다.1834년 차위원회를 결성, 인도에서 차를 재배키로 결정한다. 그때부터 유럽은 자체적으로 차를 생산할 준비를 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인류의 건강과 정신을 책임질 수 있는 신음료인 차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동양도 마찬가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차의 전쟁이 동양의 대표 삼국인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벌어질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차 음료 개발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이같은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 충견 상징 ‘오수개’ 다시 태어난다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주인을 구하고 죽은 ‘오수의견’(獒樹義犬)을 복원하는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1일 전북 임실군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지역의 대표설화를 바탕으로 오수개 특징에 맞는 견종을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군은 오수면 오수리에 마련된 ‘오수개 육종사업장’에 모두 70여마리의 오수개 후보견종을 확보, 오수견의 특성에 가장 가까운 품종육성에 나선 것. 군과 오수의견연구회는 이를 위해 설화 등 각종 문헌과 민화, 고대 동북아지역 개의 혈통, 유적지에서 발굴된 개뼈 등을 토대로 오수개는 ‘티베트산 마스티프’종이 국내로 들어와 토종화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체중 28∼30㎏의 중간 크기에 온후한 인상으로 귀가 처지고 꼬리는 말아 올려졌으며 물을 충분히 적실 수 있는 10㎝가량 길이의 검정·황색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외양적 특징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티프종 순종교배를 통해 복원되는 오수개 후보견들은 태어난 지 45일쯤 지난 외모로 1차 선별되고 6개월째에 활동성 등 성격으로 2차 선별을 거친다.정관일(36) 오수개 육종사업소장은 “올해 태어난 후보견들은 다른 짐승에게는 굉장히 사납지만 사람한테는 순한 성격에 각종 훈련 습득도 빠르다.”고 말했다.그는 또 “몸집을 줄이고 민첩성만 갖추면 2007년부터는 형질고정과 보급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임실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16세 소년 ‘꿈의 에베레스트’ 등반기

    “실패가 성공보다 더 자주 일어나니까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게 되는 실패는 모두 또 하나의 발걸음이다.” 이 얘기는 연륜을 감출 수 없는 나이의 노인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후배들에게 남기는 조언이 아니다. 학교생활이 전부인 16살 소년 마크 페처.12살에 처음으로 암벽등반을 한 뒤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꾼 이 소년은 꿈을 이루기 위해 네팔 트레킹부터 시작했다. 강도 높은 육체적 훈련은 물론 경비 5000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저명한 인사들에게 후원을 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지극 정성을 들였다. ‘꿈의 높이 8848미터’(마크 페처·잭 갤빈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는 어린 소년 마크가 꿈을 실현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마크는 많은 등반을 통해 산악 등반사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쌓았다.14살에 페루에 있는 피스코산 등의 최연소 등정자가 됐고,15살에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의 정상에 오르며 에베레스트 산에 첫 도전장을 냈다. 비록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했지만 7620m를 등반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만 8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폭풍으로 7925m까지의 등정만 가능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과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8201m인 티베트의 초유를 최연소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1만 2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책꽂이]

    |실용경제|●대한민국에서 아들 공부시키기(김숙희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여인천하의 시대에 아들 공부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한 공부 길 찾기를 소개.1만2000원.●인생을 바꿔사는 51가지 방법(캐롤라인 수 등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 펴냄)새해를 맞아 새로운 삶은 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아이디어를 묶은 책.8900원.●성공의 법(오오카와 류우호오 지음, 행복의 과학 옮김, 범우사 펴냄)현대인의 성공 철학을 다룬 자기 계발서.9000원.●부모의 심리학(이보연 지음,21세기 북스 펴냄)공부보다 중요한 아이들의 마음 읽어주기를 강조하는 교육서. 9800원.●시대가 만든 천재, 손정의(야기 츠토무지음, 김진연옮김,sb펴냄)천재사업가 손정의와 그가 만든 셔틀 소프트뱅크의 실상을 파헤친 비즈니스북.1만2000원.|아동|●티베트(피터 시스 글·그림, 엄혜숙 옮김, 마루벌 펴냄)아빠의 빨간상자안에 담긴 아버지의 빛바랜 읽기속에는 티베트 여행이야기와 그림들로 가득찼다.1만 5000원.●울고 있을때 읽어봐(위기철 지음, 엘레나 샐리바노 그림, 청년사 펴냄)슬픔으로 가득찬 울보아가씨의 해피앤딩 스토리.8500원●행운을 드려요(하인츠 야니쉬 글, 젤다 마를린 조간치 그림, 엄현아 옮김, 넥서스 주니어 펴냄)불행이라고 생각하던 일도 바꿔놓고 보면 행운을 줄 수 있는 일이 많다.8500원.●꼬마 딱새의 겨울나기(안네 뮐러 글·그림, 조국현 옮김, 소년 한길 펴냄)눈밭의 딱새가 어떻게 하면 겨울을 나는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9000원.●환경이란 얼마나 친하세요(데이비드 벨라미 지음, 페니 단 그림, 목정임 옮김, 계림북스쿨 펴냄)일상 생활에서하는 작은 실천들이 고래와 새와 나무를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는 내용이 담겼다.9000원.●누가 따라 오는 걸까(앙투안 길로페 지음, 어린이 작가정신 펴냄)흑백의 대비가 인상적인 글없는 그림책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살아움직인다.8000원.|청소년|●기적의 독서법(기적의학습법연구회 지음, 길벗 펴냄)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하루 10분, 큰 소리로 읽으면 두뇌개발은 물론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독서법을 담은 책. 초·중·고급 3권. 각 8000원.●바칼로레아 과학편(로렝 드고 등 지음, 김희경 등 옮김, 민음in 펴냄)청소년이 알아야 할 문제나 뉴스, 신문에서 보는 최신 쟁점에 대해 분야별 전문가들이 답해주는 형식의 교양시리즈 10권. 복제와 기후, 자연, 동물 등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이 담겨있다. 각 6500원.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지난 6월,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계명대 산악회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떠난 엄홍길(46·트렉스타 기술이사) 대장의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박무택 대원의 유품을 안고 귀국했다. 세계 등반사상 유례 없는 ‘죽음의 지대’ 8000m 고도에서의 시신 운구작업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대장정은 성공을 거뒀다.365일간의 준비와 77일간의 사투 끝에 엄 대장은 마침내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눈 파트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친구여, 이제 편히 잠드소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그는 지난해엔 또 하나의 고봉 얄룽캉(8505m)에 올랐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로체샤르(8400m)마저 완등하면 그는 세계 최초의 ‘14+2’ 등반 계획을 마무리짓게 된다. “로체샤르를 등정한 다음엔 8000m 이하의 미답봉(未踏峰)에 오를 생각입니다. 조난당한 네팔 현지의 셰르파와 한국의 산악인 유족들을 돕는 일도 하고 싶어요. 꿈은 이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희망대로 그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지난 11월부터 ‘히말라야 휴먼장학금’을 산악인 유자녀들에게 전달해오고 있다. 메말라만 가는 이 시대, 진정한 산사나이의 따뜻한 행보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 대장은 세 살 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의정부 도봉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산사람의 운명은 이미 이때부터 예정된 셈이다. “어머님이 산 입구에서 음식 장사를 했어요. 어머니 등에 엎혀 하루에도 몇번씩 등산로를 오르내리곤 했지요. 어떨 땐 내가 전생에 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 대장은 1985년부터 20년 동안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에 36번 도전해 15번 성공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의 희망의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별명대로 ‘히말라야의 탱크’다. 마흔둘의 나이에 대학(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에 입학한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티베트 등을 오가며 정말 필요했던 것이 중국어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젠 산의 속마음, 그 은밀한 속살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 대장. 그는 지금 ‘자연탐험학교’(가칭)를 세우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꿔가고 있다.“자기절제력이 부족하고, 뭐든지 쉽게 포기하고, 주변을 배려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히말라야 같은 대자연의 기상을 심어주고 싶어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지요.”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박완서 여행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출간

    소설가 박완서가 남도에서 티베트, 에티오피아, 바티칸 등 국내외를 여행하며 쓴 기행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이 나왔다. 깊은 연륜으로 삶을 통찰하고, 자연에의 끝없는 경외를 드러낸 글 12편을 모았다. 표제작 ‘잃어버린 여행가방’은 오래 전 여행 가방을 분실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인생의 의미를 사색한 글이다.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누군가 열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후 여행을 떠날 때는 양말이나 속옷을 그날그날 빨아서 입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는 작가의 성찰은 이렇게 이어진다.‘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63쪽) 책의 첫 부분은 작가가 ‘신이 온갖 좋은 것을 다 모아다가 공들여 꾸민 정원 같다.’고 감탄해마지 않는 우리 국토를 여행하며 쓴 산문들이다. 남도, 하회마을, 섬진강 벚꽃길, 쌍계사, 오대산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름 없는 세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이어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장례식에 참석해 쓴 ‘그 자리에 있다는 감동, 바티칸 기행’, 역사학자 이이화, 송우혜와 함께 중국과 백두산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한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등이 실렸다. 기아와 가난으로 고통받는 에티오피아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뒤에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생명의 숙연함을 되새긴다. 1997년 출간된 산문집 ‘모독’에 실린 글 일부분과 새롭게 쓴 여행산문들을 작가가 손수 골라 엮었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눈덮인 겨울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이 있고, 한적한 득량만 포구의 갈매기 날갯짓이 정겹게 다가온다. 태백 산맥의 무대인 벌교에 가면 소설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녹차·해수탕에서 겨울 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제철 만난 벌교의 특산물 ‘벌교 꼬막’이 겨울 입맛을 돋운다.‘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내년 3월까지 계속돼 해가 진 뒤 녹차밭에는 화려한 불꽃이 반긴다. # 눈덮인 녹차밭의 낭만 속으로 하얀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차밭의 풍경은 장시간의 여행 피로를 한순간에 풀어준다.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에 6시간 남짓한 여행길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먼저 들른 곳은 각종 영화, 드라마,CF의 단골 촬영지인 대한다업(061-852-2593).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700여m 길이의 터널같은 삼나무 숲길이 반긴다.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이어진 뾰족한 삼나무 길은 마치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삼나무 꽃말은 연인들에게 길의 의미를 더해 준다. 미끄러운 나무 계단을 오르자 흰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차밭이 등고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물결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차밭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은 눈꽃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보성 차밭은 1940년 경작되기 시작, 연간 5000여t의 차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5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맑고 고온다습한 날씨와 토양덕에 품질 또한 으뜸으로 친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차밭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낭만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으로 졸업여행을 온 안양여중 학생들이 “눈쌓인 차밭이 환상적”이라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노해나(16·안양여중 3년)양은 “멋진 차밭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헤어질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녹차 시음장에 들르면 따뜻한 녹차 한잔으로 추위를 녹일 수 있다. 시음료 1000원만 내면 향기로운 녹차를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녹차는 등급에 따라 우전, 곡우, 세작, 중작, 대작, 엽차 등으로 나뉘는 데 곡우를 전후해 따 수제로 만든 최고급 녹차인 우전 100g에 5만 5000원이며, 대작은 1만원이다. 여기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10여분쯤 내려가면 나오는 봇재다원(061-853-1117)에서는 영천저수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계단식 차밭의 풍광을 만난다. 도로변에 있는 다향각에 오르면 힘들이지 않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곳은 지난 15일부터 ‘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으로 내년 3월까지 녹차밭을 따라 만들어진 멋진 조명을 볼 수 있다. 멀리 활성산 자락의 녹차밭에 높이 120m, 폭 130m 크기의 대형 트리 조명을 설치해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축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되며, 조명은 해가 진 뒤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힌다. # 녹차 해수탕에서 피로를 씻고 아침 일찍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면 남해 바다로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겨울 바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위로는 한 쌍의 갈매기가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 오른다. 한적한 겨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묻어난다. 바닷가와 인접한 보성군 직영 ‘율포 해수·녹차탕’(061-853-4566)에서는 바닷가 통유리를 통해 목욕을 즐기며 겨울 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하 120m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탕과 보성 녹차를 원료로 한 녹차 해수탕은 피부를 통해 녹차 성분이 흡수돼 피부탄력을 유지하고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 입욕료는 5000원. 아울러 보성은 남도 정서를 애절한 소리로 승화시킨 서편제의 고장. 대원군에게 총애를 받은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의 창법이 정응민에게 이어지고 정응민은 독특한 보성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보성은 삼보향(三寶鄕)으로 불리는데 차의 본고향인 다향(茶鄕), 소리의 고향 예향(藝鄕), 충의열사가 많은 의향(義鄕)이 합쳐진 별칭이다. #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벌교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벌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도시로 벌교라는 이름은 지금 홍교(보물 제304호)가 있던 자리에 ‘뗏목 다리’가 있어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벌교 읍내 전체는 태백산맥 유적지로 가득하다. 첫번째 답사 코스는 ‘철다리’.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도 목포∼부산을 운행하는 서부 경전선이 운행한다. 인근에 있는 중도방죽은 일본인 나카시마(中島)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간척사업을 해 만든 곳으로 지금은 방죽위에 황톳길을 깔아 산책로로 이용된다. 홍교는 세 칸짜리 무지개 다리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벌교천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 소화다리에 이르는데 원래는 부용교였으며, 소설 속에서 좌·우익 서로간에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밀물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남도여관은 소설 속에 등장한 여관으로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 소설속 무대로 김범우의 집, 벌교역, 회정리교회, 현부자집, 진트재 등이 있으며, 태백산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조정래 작가(www.jojungrae.com), 벌교 사랑회(www.beolgyosarang.com) 등이 있다. # 제철 만난 벌교 꼬막의 맛 보성에는 녹차 성분이 함유된 녹차 수제비와 녹차떡국, 녹돈, 녹우 등 녹차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겨울 먹거리는 역시 벌교 꼬막. 예로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으며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풍미가 일품이다. 꼬막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식품으로 소화 흡수가 잘돼 어린 아이에게도 좋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대표적인 생산지 인데 이 곳의 개펄은 모래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참펄로 다른 곳의 꼬막과는 달리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물이 빠지면 어부들이 널빤지에 갈고리가 달린 펄배를 타고 나가서 꼬막을 캐온다. 연간 2000t 정도가 생산되는데 재래시장 등에서 20㎏짜리 1깡(그물망)에 6만∼6만 5000원에 판매한다. 벌교 꼬막은 삶아서 까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삶는 방법도 다른 곳과 다르다. 우선 80∼90도(중불)에 꼬막을 넣은 뒤 한쪽 방향으로 돌려 삶는다. 이때 꼬막의 껍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살짝 데친다. 꼬막이 물에서 검붉은 물을 쏟아낼때 꺼내 껍질을 손으로 벗겨낼 수 있으면 다 삶아진 것이다. 꼬막 전문식당으로는 홍도회관(061-857-8088)이 있다. 꼬막정식 1인분에 1만 2000원인데 삶은 꼬막과 꼬막전, 꼬막회무침, 양념꼬막, 꼬막된장국 등 각종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여행길에 동행했던 문화유산해설사 김영희씨가 선물이라며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부용산은 벌교 인근에 있는 산으로 박기동 시인이 꽃다운 16살의 나이로 폐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산에 묻고 돌아오며 지은 시에 이 지역 음악교사였던 안성현 선생이 곡을 붙인 애절한 노래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었구나/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여행정보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화순·능주를 거쳐 40분쯤 달리면 보성군이다. 서울에서 5시간30분쯤 걸린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보성역까지 무궁화호가 하루 한차례 운행하며, 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 호남선에서 고속버스가 오전 8시20분과 오후 3시20분 2회 운행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백제의 고찰 대원사와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티베트박물관, 세계 최대규모의 공룡알 집단산란지인 비봉공룡알 화석지, 보성소리 전수관, 정응민 예적지 등이 있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 850-5223, www.boseong.go.kr 글·사진 보성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부드러운 동작·명상’심신의 건강’ 찾는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부드러운 동작·명상’심신의 건강’ 찾는다

    |파리 함혜리특파원|“눈을 감으세요. 지금까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든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세요. 호흡을 가다듬고 신체의 불편한 부분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잔잔한 바다, 저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상상하세요. 머릿속을 비우고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을 떠올려 보세요….” 파리에 있는 스포츠센터 포레스틸의 소프롤로지 시간. 강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주문’에 걸린 듯 강사의 말을 따라 조용히 명상의 세계로 빠져 든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추구 올해 38세인 로랑스. 엔지니어링 전문회사의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혼한 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 육아 및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까지 겹쳐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심리상담도 해 보았고, 에어로빅으로 활력을 찾아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지친 몸과 마음은 자꾸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로랑스는 지난 여름 친구 권유로 에렌프리드 요법을 접하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동양의 기공체조 일종인 타이치(태극권)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부드러운 동작과 명상, 호흡은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 사이에 요즘 웰빙 체조가 색다른 건강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요가, 타이치, 기공 등 동양에서 기원된 기(氣) 체조부터 스트레칭, 보디 밸런스, 필라테스 등 서양식 체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소프롤로지, 펠덴크라이스, 에렌프리드 등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과학적 효능을 인정받고 있는 치료요법들도 웰빙 붐을 타고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서점에는 ‘치유의 심리·생리학’‘신체와 정신’‘신체를 깨우는 움직임들’‘중국 마사지의 비밀’‘명상’ 등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선(zen)에 입문하기, 웰빙과 대체의학, 다르게 살기 등 다양한 웰빙 페어들이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웰빙 체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발맞춰 포레스틸, 클럽메드 등 헬스클럽에서는 정기 강좌를 개설하고 일요일을 이용해 특별강좌를 마련하기도 한다. 체조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포레스틸 체육클럽의 필라테스 강사인 카리나는 “바쁜 도시생활에 지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심신의 안정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면서 “근육과 심폐기관에 자극을 주는 격렬한 운동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유연성을 기르고 균형감각을 찾게 해주는 체조가 인기”라고 말했다. ●신체와 정신은 ‘하나’ 전통적인 체조와 구분하기 위해 ‘정적인 체조’라고도 불리는 웰빙 체조는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방식이 약간씩 다를 뿐 기본 원리는 같다. 부드러운 동작과 호흡, 그리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찾는다는 것이다. 웰빙개념을 도입한 체조들이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동양식 명상과 서양식 치료요법을 접목해 꾸준히 할 경우 균형성, 내구력, 유연성을 키워주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무심(無心)의 상태가 되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명상은 몸 안의 ‘탁한 기운’을 없애는 물리적 효과도 가져다 준다. 탁한 기운은 주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데 몸에 쌓일 경우 질병을 유발하고 잡념 때문에 마음의 병을 만든다. 명상으로 이런 탁한 기운을 빼냄으로써 몸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열량소비 커 다이어트 효과 여기에 해부학과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 서양의 과학적 학문이 추가됐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웰빙체조는 또 동작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신체조건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운동선수 출신인 프랑수아는 “펠덴크라이스 요법을 시작한 뒤 내 신체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게 됐다. 관절이 훨씬 유연해지고, 특히 마음이 평온하고 긴장감이 완화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웰빙 체조는 동작이 단순해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정확한 동작을 할 경우 근력과 관절이 강화되고 균형감각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며 “열량 소비가 크기 때문에 꾸준히 실시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일에는 필라테스를 하고 일요일에는 소프롤로지 강의에 참가한다는 클로딘(26·교사)은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운동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참석하면서 몸의 균형이 잡히고 마음이 조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월요일을 맞는 것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일의 능률도 훨씬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상쾌한 몸·마음 스트레스 몰라요” |파리 함혜리특파원|웰빙 체조를 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정신세계에 집중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파리 7대학 동양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마누엘(20)도 그 중의 한 명. 두달째 파리에 있는 명상센터 마음수련원에 다니고 있는 그는 “아직 초보단계여서 명상의 세계를 깊이 체험하지 못했지만 전에 비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 것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수련원의 전체 8과정 가운데 1과정을 마친 상태다.2과정까지가 마음을 비우고 나와 우주가 하나임을 인식하는 단계에 속한다. 마누엘은 고등학교 때 쿵푸를 배우면서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어를 하는 프랑스인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어를 전공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명상을 시작한 동기는 학업에 따른 과중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보고서도 내야 하고, 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졸업논문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명상을 시작하고 전에 갖고 있던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면서 “아마도 내 자신이 변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가부좌를 하고 두시간 이상 버티는 것도 힘들지만 매일매일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조용히 미소지었다. lotus@ seoul.co.kr ■ 새롭게 각광받는 웰빙체조 4選 21세기의 새로운 건강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웰빙 체조로는 에렌프리드 체조, 펠덴크라이스 요법, 소프롤로지, 필라테스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에렌프리드(Ehrenfried) 체조 모든 신체의 움직임은 다른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원리에 따라 아주 느리면서도 단순한 동작을 리듬에 맞춰 반복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찾아 자연치유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운동요법. 독일 태생의 의사인 릴리 에렌프리드(1896∼1994) 박사가 1933년 파리로 이주한 뒤 스승인 엘자 긴들러(1885∼1961) 박사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운동치료사들인 제자들과 함께 발전시켰다. 우리 신체를 초기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찾게 함으로써 잘못된 습관과 동작, 스트레스 등으로 얽매어 있던 자신의 잠재력을 해방시키고 심신의 평정을 찾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펠덴크라이스(Feldenkreis) 요법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물리학자인 모쉬 펠덴크라이스(1903∼1984) 박사가 무릎 부상으로 심하게 손상된 자신의 다리를 직접 고치기 위해 물리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해부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치료법이자 보조 운동법. 인체구조에 가장 적합한 부드러운 자세와 동작들을 통해 뇌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신체의 근육활동을 개선하고 정신적 안정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 눕거나 앉아서 양팔, 혹은 양다리의 길이를 비교해 보는 식의 아주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이 요법은 신체에 균형을 찾아주고 의식의 세계를 넓혀 주기 때문에 머리와 목, 어깨의 만성적 통증을 완화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소프롤로지(Sophrologie) 콜롬비아 태생의 정신분석학자인 알퐁소 카이세도 교수가 최면치료법에 인도의 요가, 티베트 불교의 명상, 일본의 선 등 동양의 정신수양법을 접목시켜 만든 종합적인 의식의 과학.1960년 바르셀로나에 소프롤로지 클리닉을 개설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프롤로지는 눈을 감은 채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의식을 집중하며 근육을 이완하는 것으로 시작해 증오, 고통, 긴장,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린 뒤 이를 몰아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특히 분만을 앞둔 산모, 큰 수술을 앞둔 환자, 스포츠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 시험을 앞둔 수험생, 면접을 앞둔 입사지원자 등에게 심리안정의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에는 소프롤로지 분만법이 소개돼 있다. ●필라테스(Pilates) 1900년대 초 독일의 조제프 필라테스에 의해 처음 개발된 정신 수련법이자 호흡법으로 근육 운동을 뜻한다. 서양의 스트레칭과 중국의 기예, 인도의 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동기법을 적용해 근육강화, 통증완화 등 신체적인 효과뿐 아니라 정신 수양, 명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원래 재활치료를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되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특정한 호흡과 동작으로 신체의 중심을 안정화시키는 운동이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후진타오 ‘상하이 결투’ 승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반대를 꺾고 상하이(上海)시 당서기와 시장직을 자신의 측근으로 교체했다고 타이완 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후 주석의 핵심 측근인 류옌둥(劉延東·60·여) 중앙통일전선부장이 상하이시 당서기에 임명됐으며, 자오러지(趙樂際) 칭하이(靑海)성 당서기도 조만간 상하이 시장에 임명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23일 본인들에게 통보됐다고 덧붙였다. 류옌둥은 칭화대 화학부를 졸업, 지난 1982년부터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주석 등을 역임, 학력·정치 경력상 후 주석의 직속 후배이자 최고 심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상하이는 장 전 주석의 핵심 측근인 천량위(陳良宇) 당서기와 한정(韓正) 시장이 장악한 ‘상하이방(上海幇)’의 근거지다. 그러나 후 주석의 ‘상하이 접수’ 보도의 신빙성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 27일 당중앙이 장칭리(張慶黎·54)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당부서기를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당 서기로 임명하면서 상하이시 당서기의 교체를 숨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후진타오-상하이방이 분점한 중국 권력구도가 요동치면서 치열한 권력투쟁기에 접어들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홍콩 시사월간지 광각경(廣角鏡) 최신호는 후 주석이 2002년 11월 당총서기 선출 이후 권력장악을 위해 150여명의 공청단 출신 인사를 차관·부성장급 이상 고위직에 진출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장쩌민의 심복으로 불렸던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이 후 주석과 손을 잡고 상하이방의 ‘고사전략’에 협력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oilman@seoul.co.kr
  • 실속있는 서울 동네박물관

    실속있는 서울 동네박물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은 문화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빗살무늬토기나 훈민정음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의 교육열에 자칫 ‘박물관=지루한 곳’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갔다왔다면 동네 박물관을 들르는 게 어떨까. 로봇, 부엉이, 장신구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전시물을 즐길 수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한 주제에 천착한 뚝심도 빛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 삼청동 주변 박물관 ‘문화의 거리’로 떠오른 삼청동 일대에는 박물관들도 아기자기하게 몰려 있다. 낡은 건물 사이로 오밀조밀한 골목을 거닐며 박물관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는 삼청동 유람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와도 같다. 부엉이박물관 부엉이박물관에는 부엉이가 없다. 대신 부엉이가 그려진 접시, 부엉이가 주인공인 그림, 부엉이 조각 등 부엉이와 관련된 물건 2000여점이 있다.27년 동안 전업주부였던 배명희 관장이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모은 것이다.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며 곡식을 보호하는 익조라는 게 수집의 이유.‘관장님’보다는 ‘부엉이 엄마’로 불리고 싶어하는 배 관장은 박물관 카페에서 쌍화차도 대접한다. 세계장신구박물관 장신구가 말을 한다. 결혼식에 썼건, 장례식에 썼건 모든 장신구들은 착용한 사람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뜻이다.25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닌 김승영 전 대사의 아내인 이강원 박물관 관장이 각국의 재래시장 등지에서 현지인의 숨결이 담긴 장신구를 수집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50여개국의 장신구 1000여점이 ‘UN 모의 총회’라도 하는 듯 전시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티벳박물관 ‘티벳에서의 7년’ 정도로만 티베트를 알고 있었다면, 이 곳에서는 티베트의 문화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옴 마니 팟 메훔’이라는 이국적인 음색의 불경이 들린다.‘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라’는 뜻. 두개골로 만든 공양기(퇴방)와 넙적다리뼈로 만든 나팔(깔링), 인골 염주는 인생을 덧없다고 여긴 티베트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하는 신영우 관장이 수십년 동안 티베트를 드나들며 모은 13∼20세기 유물 1200여점 가운데 300여점을 돌아가면서 전시하고 있다. 떡·부엌살림박물관 쑥을 넣어 빻은 멥쌀가루를 떡살로 찍으니 쑥개떡이 나오네.50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은 1인당 1만원에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떡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시절(時節)마다 차렸던 옛 음식,5첩반상, 전통혼례상이 전시된 부엌살림박물관과 오메기떡, 닭알떡, 노티떡, 구름떡 등 갖가지 떡이 있는 떡박물관으로 나뉜다. 어릴적 아궁이에 불을 지펴본 어르신부터 우리 부엌 문화를 궁금해하는 어린이까지 두루 즐길 수 있다. 김유영 이두걸기자 carilips@seoul.co.kr ■ 대학로 일대 박물관 문화의 거리 대학로도 삼청동 못지않은 ‘박물街’이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로봇박물관 40여개국에서 온 3500여점의 추억의 로봇들이 총출동하는 곳이다. 세계 최초, 최대의 로봇박물관이다. 수집가로 유명한 서울 명지전문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백성현 교수의 로봇벽(癖) 덕분에 태어났다. 이곳의 주인공은 태권브이, 마징가Z, 그랜다이저, 아톰, 건담 등 70,80년대를 풍미했던 ‘정의의 사도’들이다. 아이들보다 아버지들이 이곳에서 더 열광하는 이유다.1900년대 초 독일에서 만든 양철로봇 틴맨,1926년 여성로봇으로는 처음 등장한 마리아 등 희귀로봇도 만날 수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근처다. 쇳대박물관 다양한 쇳대(열쇠)를 전시한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시뻘겋게 녹슨 철판으로 된 외관으로 더욱 유명하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작품이다. 고려·조선시대 서민들이 사용한 무쇠자물쇠는 물론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왕실 자물쇠, 유럽·아프리카 등 국내외의 300여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것도 철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최홍규(48) 대표가 소유한 3000여점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낙산 쪽으로 5분 거리다. 짚풀생활사박물관 농경민족인 우리 선조들이 짚과 풀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가마니, 삼태기, 짚신, 삿갓 등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매주 토·일요일에 체험 교육이 열린다. 강의별로 1만원 안쪽의 체험학습비를 내야 한다. 체험학습 특별전도 열린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혜화로터리를 지나 바로 왼쪽에 있다. 의학박물관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의학박물관에는 근대의학 도입 이후 각종 문서 및 의료기기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1900년대 초반 쓰였던 현미경, 필름판독기, 점빼는 기구 등도 볼거리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체체험과 의료기구체험’도 운영된다. 어린이가 직접 청진기를 끼고 자신의 심박동·폐음을 들어보게 한다. 또 혈압 측정하기, 맥박 측정하기, 심장 박동수 듣기 등을 통해 몸에 대한 상식을 알려준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기타지역 박물관 도심에만 박물관이 있는 건 아니다. 주택가에도 재미있는 박물관들이 시민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IQ박물관 은평구 불광동 팜스퀘어 쇼핑몰 6층에 있는 IQ박물관은 두뇌를 쓰는 장난감의 천국이다. 수수께끼, 체스 등 6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관장 김혁(41)씨가 30년 가까이 모은 물건들이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간단한 퍼즐을 풀고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집트·몽골의 체스, 큐빅 등 다양한 장난감들을 보고 직접 즐길 수 있는 체험식 박물관이다. 특히 병을 통과한 나무화살, 좁은 병 안의 실패와 꽃 등 임파서블 퍼즐(impossible puzzle)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웬만큼 퍼즐에 자신있는 사람들은 ‘악마의 퍼즐’이라는 이름의 몽골 퍼즐에 도전해 볼 만하다.10분 안에 풀면 황금 100돈을 준다. 물론 지금껏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별난물건박물관 이름 그대로 별난 물건들만 모아둔 곳이다. 소리, 빛, 과학, 생활, 움직임 등 5가지 주제의 작품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등에 바를 수 있도록 긴 막대가 달린 독신자용 물파스, 말하는 변기, 어깨견착식 우산 등 신기한 물건들이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포구 동교동에 있다. 삼성어린이박물관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학생 전문 체험박물관이다. 어린이의 탐구력과 표현력 증진을 위해 인체탐구, 과학탐구, 사회문화 등 11개 영역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감상할 수 있는 ‘아트갤러리’, 성장과 노화를 다룬 ‘인체탐험관’, 방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 방송국’ 등도 운영한다. 특히 이번달에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나무 블록으로 고층 건물 쌓기, 카우보이 활동 체험 등 미국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하철2호선 잠실역 8번 출구 시그마타워 뒤편에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대문구 연희3동에 있는 구립 자연사박물관은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이다. 지역 환경의 지질학적, 생물학적 사실에 대한 증거와 기록을 보존·연구하며 전시하는 장소다. 포유류·파충류 등 동물과 속씨·겉씨 등 식물, 그리고 다양한 화석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밖에 도봉구 쌍문동 옹기민속박물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김치박물관, 구로구 오류동 평강제일교회 교육관에 있는 성서유물박물관, 종로구 원서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도 아이들과 나들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두걸 김유영기자 douzirl@seoul.co.kr
  • 韓·中 정상회담 이모저모

    “한국민들이 많이 기다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다섯번째 만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이례적으로 반겼다. 노 대통령은 회담 전 “중국 국가 주석으로서는 두번째 한국방문이다.10년 만이다.”면서 후 주석의 방한 의미를 부각시켰다. 이어 “양국관계는 누가 뭐라고 설명할 필요 없이 아주 좋은 상태”라면서 “후 주석의 방한이 한 단계 더 긴밀히 발전시킬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후 주석은 “7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돼 특별히 친근감이 든다.”고 화답했다. 후 주석은 부주석이던 1998년 5월 방한한 적이 있다. 정상회담은 보통 1시간 안팎이 걸리는데 이날 회담은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후 주석 초청 국빈 만찬에서도 칭하이∼티베트 철도 완공과 두번째 유인우주선 발사성공 등을 들면서 “각하의 지도력과 중국 국민의 저력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만찬에는 국내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13명의 재벌 총수들이 참석했다. 김재철 무역협회장, 오상봉 산업연구원장,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 이원태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사장, 양흥준 LG생명과학 대표,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정귀래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등도 참석했다. 노 대통령 주최 국빈 오·만찬에 재계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지만 이날은 재계 인사의 규모가 유달리 컸다. 만찬에는 중국에서 한류를 이끌고 있는 문화·스포츠계 인사들도 참석했다.‘중화권 한류스타’로 꼽히는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중국문화 홍보대사), 탤런트 송일국(중국문화 홍보대사)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패션쇼를 열었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참석했다. 만찬에는 한방 전복 갈비찜을 비롯한 한식이 김치·백김치 등과 함께 식탁에 올랐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부시, 경제 실리 위해 ‘입조심’

    실리 앞엔 명분 없다? 미국의 대중국 외교가 보다 확실한 실리외교로 선회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WSJ은 부시 외교팀이 과거 중·미관계의 단골 메뉴였던 인권 및 민주화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고 대신 경제 및 안보협력에서의 실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유의 확산’과 ‘폭정 종식’을 외교 기조라고 강조해 오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19·20일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입 조심’ 중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처럼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촉구하고 티베트 등 소수민족 문제를 들춰내 중국을 자극하는 대신 위안화 절상, 금융부문 등 시장개방 확대 등 ‘발등의 불’을 끄고 실질적인 이득을 얻어내는 데 주력하겠다는 자세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 워싱턴을 방문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만나면서도 전과 달리 관련 사진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고 기자들을 부르지도 않는 등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다. 지난주 홍콩 봉황TV와의 회견에서도 부시는 “무역, 지적재산권, 북한, 이란과 에너지, 반테러협력 등이 베이징 방문중 논의될 사항”이라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자유와 민주’는 거론하지도 않고 실질적 협력과제만 나열했다. WSJ는 “중국의 전제정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신보수주의자들의 영향력보다 중국과의 협력확대를 요구하는 기업계 인사들의 입김이 커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부시 외교팀에서도 “중국을 자극해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규칙과 제도안에 포용해 나가야 한다.”는 대화 주장파들의 목소리가 커진 까닭이다.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도 중·미 관계가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미묘한 관계임을 전제하면서도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도 ‘건설적 자세’로 접근했었다.”며 협력관계의 확대를 강조했다. 민주화, 인권, 소수민족문제 등에 있어선 유연한 자세로 후진타오 정권의 체면을 세워주는 대신 무역역조, 위안화 절상 등에선 보다 확실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이다. 클린턴 대통령때 중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세서는 “중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미국이 깨달았다.”며 실용적인 외교로의 변화를 환영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때 주중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도 “민주화문제 같은 것이 미·중 협력관계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변화된 상황을 지적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한국화에 담은 남도의 멋과 철학

    깊어가는 가을 남도 예향의 멋과 철학이 담긴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2일 개막해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대원전’은 한국화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회다. 그동안 진경 산수 작업에 매진하던 김 교수(조선대 미대)는 이번 전시에서 한지나 수묵 등 전통적인 재료와 테크닉을 과감히 떨치고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종전 활달한 운필로 실경 산수를 담았던 화면은 조형성에 더 중점을 두고 정신의 세계, 내면의 세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한국화를 그릴 때 쓰는 모필에 아크릴을 묻혀 캔버스에 담아낸 필치는 서양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운생동이 느껴진다. 분방하게 흐트러지는 듯 격렬한 에너지가 넘쳐 나면서도 안으로는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서정을 뿜어낸다. 특히 수묵과 담채가 어우러진 화면에서는 색채의 운용과 조형적 표현이 돋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산수색채에서 뛰쳐나온 화가가 새롭게 모색하는 전조이기도 하다. 서양화, 한국화의 장벽을 훌훌 털고 일어선 새 작품들에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 정신이 엿보인다. 인도와 티베트 여행을 통해 얻은 정신적 자유는 작품 ‘새벽의 종소리’‘윤회’‘비움의 자유’등에 잘 투영되고 있다. 김 교수는 “현대적 수묵작업을 통해 한국화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시도했다.”고 밝혔다.(02)733-9512. 한편 15일까지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백순실전’에서는 황토빛 남도 땅과 차(茶)향이 맴도는 그림들로 가득찼다. 차에 대한 애정을 화폭에 담아온 그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동다송(東茶頌)시리즈를 내놓았다. 동다송이란 초의선사가 쓴 차문화에 대한 책. 그의 작품들에선 소리로 치면 남도 민요가 흘러 나오고, 영화로 치면 서편제를 보는 듯한 한국미가 물씬 풍긴다. 새 작품들은 색채를 거의 쓰지 않은 게 특징이다. 땅의 갈색을 빼곤 모두 검정, 흰색 등 무채색의 선과 형태만으로 독특한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02)2117-2117.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부산 누빈 亞영화학도들의 504시간

    부산 누빈 亞영화학도들의 504시간

    ‘아시아 영화학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주목받았던 행사 가운데 하나가 아시안필름아카데미(AF A)였다. 올해 처음 실시된 AFA는 아시아권의 영화 전문가 발굴과 육성을 목표로 해 베테랑 감독들의 지도 아래 예비 영화인들이 실제 단편영화를 만들어보는 프로젝트.19개국 164명의 영화학도들이 지원했고, 엄정한 심사를 통해 17개국 28명을 선발, 영화제 기간 동안 단편 영화 2편을 제작했다. ‘비정성시’ 등으로 유명한 허우 샤오셴(타이완) 감독을 교장으로,‘방콕 데인저러스’의 논지 니미부트르(태국) 감독,‘소무’의 유릭와이(중국) 촬영감독,‘모텔 선인장’의 박기용(한국) 감독,‘친구’의 황기석(한국) 촬영감독 등이 함께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앞두고 “창작은 가르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경험 있는 감독들과 생활하며, 배우들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젊은 감독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케이블 영화전문채널 홈CGV가 지난달 24일부터 10월14일까지 21일 동안 진행된 제1기 AFA 과정을 고스란히 다큐멘터리로 옮겼다. 오는 28일 오후 8시20분 국경과 언어 장벽을 넘어 하나가 된 아시아 영화학도의 열정을 담은 ‘아시안 필름메이커, 미래를 꿈꾸다’를 방영한다. 제1기 AFA 학생들은 한국에 도착한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 남양주 촬영소, 동서대학교 스튜디오 등에서 실습과 분석 중심의 집중 교육을 받았다. 크지스토프 자누시(폴란드) 감독과 허우 샤오셴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 연출에 대한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PIFF 기간 동안 부산에서 두 팀으로 나뉘어 실제 촬영에 돌입했고,1주일 정도 후반 작업을 거쳤다.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천장’과 ‘국제영화제’라는 단편영화가 태어나 13일 시사회를 갖는 순간까지 카메라가 부지런히 뒤를 쫓는다. 특히 논지 니미부트르-황기석 감독팀이 제작한 단편영화 ‘천장’에는 한국 배우 한채영과 그룹 god 멤버 손호영의 누나 손정민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티베트에서 한국을 찾았던 톈진(그는 우수학생으로 뽑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1년 동안의 연수 자격을 얻었다.)은 “언제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기술과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서 “AFA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녹색공간] ‘국민 총행복’의 기수 부탄 王/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동화 속의 왕 같이 빼어나게 잘 생긴 지그메 싱예 왕추크왕은 우리 일행을 따뜻이 맞아 주었다. 갈색과 겨자색이 어울린 세련된 디자인으로 단장한 부탄 왕의 집정실에서 만난 국왕은 50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30대 청년같은 젊음과 정기가 있었다. 소왕국 부탄은 중국의 티베트자치국과 인도 국경사이 히말라야 대간에 자리잡았고, 수도 팀부는 해발 2500m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작은 계곡에 위치하였다. 방콕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6시부터 서둘러 부탄 국적기 두르크 항공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콜카타를 거쳐 파로공항에 도착하였다. 골짜기 작은 강가에 위치한 이 공항은 100여명의 승객이 내리기에 적합하였다. 지난 10월초 유엔 환경프로그램(유네프)의 퉤퍼 사무총장과 관련인사 7명은 초청자인 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예정된 30분의 시간이 1시간으로 길어진 대담시간 동안 왕추크 왕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찬찬히 밝혔다. 이미 전 지구적 관심이 된 ‘국민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에 대하여 왕으로부터 직접 듣는 영광의 자리였다. 특히 동·서남아시아에 대한 왕의 소상한 이해는 방문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필리핀의 환경장관 출신 하비토 교수가 자국으로 돌아가 칼럼을 쓰겠다고 하자 왕은 “당신국가 지도자가 불행해할 걸요?”라고 방문자들을 웃게 하는 재치까지 보였다. 10월4일 뉴욕타임스에 ‘행복한 작은 왕국의 새 행복척도’라는 기사가 실린 후 한국의 일간지들에도 부탄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부탄의 행복척도에 대하여 묻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3만 8394㎢, 인구 70만명의 소국 부탄은 30여년전부터 왕추크 왕의 영도아래 국가 발전의 철학과 정책을 국민들의 행복에 맞추어 왔다.‘국민총행복’의 개념은 4개 영역을 균형되게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즉 부탄의 문화적 전통의 유지, 교육과 건강에 대한 복지, 친 환경적 노력 및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를 ‘행복만들기’ 정책의 기본으로 잡고 있다. 경제적 발전보다 국민들의 정신적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국민들의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독특한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환경저명인사 7명만이 참여한 2일간의 유엔환경프로그램 정책 지역협의회는 개회식 의장 틴리 총리가 환경부장관, 문화부장관을 배석하고 스님 세명과 함께 주관하였다. 회의 개회식에 신을 부르는 부탄의 전통의례는 국민 총행복의 문화전통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목축국가의 표상인 우유를 가득 담은 함지박을 가운데 놓고 스님들의 찬송 속에 의례 주례자가 회의장 밖에 우유를 담은 국자 같은 기구를 들고 들락거리며 정중하게 진행하였다. 한국 전통사회의 굿의례에서 첫거리에 등장하는 청신의례와 의미가 같았다. 길에 걸어다니는 부탄인은 누구나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무릎길이의 ‘고’라고 하는 남자들의 허리를 묶은 간단한 옷과 ‘기라’라고 하는 여자들의 긴치마이다. 내 평생에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다양한 다리를 가장 많이 본 사흘간이었다. 반면에 여성들은 긴치마로 몸을 가리고 있다. 부탄의 모든 교육은 무상이다. 하나밖에 없는 대학까지도 무상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병원비도 무료라서 우리 같은 여행객도 부탄에서는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에 한두편의 두르크항공기만으로 제한하는 정책은, 물론 파로공항의 자연적 입지로 인한 운항의 난점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환경을 인간들의 무차별관광으로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순간 느꼈던 그 짜릿한 강한 햇살과 맑디맑은 공기 속에 순간적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위성에 온 것 같던 느낌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감각속에 살아 있어 다시 맛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유발한다. ‘국민총행복’의 네 번째 요소인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는 지난 30여년간 왕추크왕이 키워 온 국민총행복의 개념과 정책은 물론 2008년에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켜서 왕의 자리를 명예직으로 바꾸려는 왕추크왕의 집념속에 잘 녹아 있다. 네 명의 여자형제를 왕비로 거느린 동화 속 왕추크왕의 모습에 알현 인사하였던 필자는 1시간의 대담 후 부탄사회의 현명한 영도자의 모습에 작별 인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 [데스크시각] ‘장자종단’이라 함은?/김성호 문화부장

    세계적으로 불교의 선(禪)풍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서도 한국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선 불교는 중국에서 발아해 찬란하게 꽃피웠지만 정작 그 종주국인 중국에선 사실상 명맥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 정신과 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서구인들은 티베트 불교를 비롯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기 수행방식인 위파사나를 따르는 미얀마·실론 등의 남방불교를 선호해 왔지만 최근 들어 이들이 한국 선불교에 쏟는 관심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만 가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1700년 선불교의 맥을 이어온 중추 종단은 이른바 ‘장자종단’이라고 불리는 조계종이다. 전국 25개 교구에서 총 3000개의 본·말사를 거느리는 장자종단 조계종에 적을 두고 있는 신도는 전체 불교신자 1000만명중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조계종에 귀의한 뒤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푸른 눈’의 납자들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조계종은 이제 한국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종단이 된 것이다. 이 세계적인 불교종단 조계종의 수장이 바로 총무원장으로, 맘 먹기에 따라서 엄청난 세력을 부릴 수도 있는 막강한 지위다.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불교계 전체의 대표성을 띠는, 사실상 한국불교의 최고 지위랄 수 있다. 그 때문에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거듭 빚어졌던 조계종단의 마찰과 내홍은 씻을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지난 94년,98년 조계종 수장 자리다툼의 와중에서 멸빈(승적박탈)된 적지 않은 스님들이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법장 스님 입적후 새 총무원장 선출을 놓고 조계종이 고질을 반복해 앓을 전망이다. 법장 스님이 시신을 사회에 기증한 뒤 오랜만에 한국 선불교에서 자비행과 회향정신이 살아났다는 세간의 고운 시선과 존경심을 짓밟기라도 하듯 그 분위기가 혼탁상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법장 스님 입적후 얼마간 종단에서는 종전과 달리 추대를 통한 총무원장 세우기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얼마 안돼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마치 예정된 것처럼) 현 종단의 여권에서 추대위를 구성해 단일후보까지 뽑았지만 야권이 선출된 후보에 반발해 자신들의 후보를 추대할 움직임이다. 이와는 별도로 개별 후보까지 출마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어 종단 전체의 단독 후보 추대는 물 건너갔고 결국 선관위에서 21일부터 후보 등록을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기야 종정 스님이 나서 공정한 선거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고 전국의 7000여 비구니들도 ‘우리가 원하는 총무원장 스님’이라는 성명을 내 들뜬 분위기를 지적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번 선거는 조계종 내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부터 혹독한 심판과 외면을 받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반대로 지금까지의 오욕을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31일 선거일정이 잡혀있는 만큼 전대미문의 아름다운 선례를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광복 직후인 1947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행하던 성철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 스님 등 젊은 스님 20여명이 집결해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그 유명한 ‘봉암사 결사’다. 이들은 스스로 밥하고 나무하며 마을로 탁발을 나가 양식을 조달했다. 신도들로부터는 개인적으로 일절 시주를 받지 않음으로써 생활상의 평등을 실천했으며 이후 이들의 전설적인 수행 기풍은 조계종의 으뜸 귀감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장자종단 조계종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 고승대덕들의 뜻을 진중하게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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