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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곤 회장 일문일답

    ◎성장 잠재력 충분… 「알찬 창업 2세기」에 최선/여건된다면 3∼4년내 경영일선 은퇴 고려 오는 8월1일 국내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창업 1백주년을 맞는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은 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신규사업 진출 계획 등 경영비전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창업 1백주년을 맞는 소감은. ▲기업을 1백년동안 경영해올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사랑과 종업원들의 노력 덕분이다.이를 계기로 창업 2세기를 알차게 꾸려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재계 12위인 두산을 유지할 계획은. ▲두산은 성장속도가 느릴지 몰라도 뻗어나갈 능력이 있다.식음료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고 소재·정보 산업 등 신규사업 참여를 계획중이다. ­후계구도는 어떻게. ▲좀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자격과 능력이 있으면 시킨다.경영에서 손을 떼는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당장이라도 물러날 수 있고 몇년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은 건강이 괜찮아 (회장 업무)를 할 수 있다. ­5년안에 물러날 수 있나. ▲여건만 된다면 5년까지 가지도 않고 3∼4년안에 은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누구에게 물려주든 완전히 물려줄 것이며 그룹 일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우리집안의 4세 회장은 가능하겠지만 5세가 또 회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경영의 좌우명은. 수분(분수를 지킨다)이다. ­두산 본사사옥과 OB베어스 야구팀을 매각하려 한다는 루머에 대해. ▲그런 얘기 한적이 절대 없다. 올해 64세인 박회장은 건강관리를 위해 요즘도 틈만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간다.골프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젊었을 때는 싱글을 유지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으나 요즘은 90타를 넘어선다고.주량은 위스키 반병 정도.담배는 지난해 10월 끊었다.〈손성진 기자〉
  • “정치게임의 자리 아니었는데…”/야 총재회담 무산 청와대 반응

    ◎북 상황 등 진솔한 대화 나눌수 있었을것/돌출문제로 국정논의 기회 놓쳐 아쉬움 김영삼 대통령은 18일 상오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을 집무실로 불렀다.김대통령과 면담을 마친 이수석은 출입기자실을 찾았다.이수석의 기자실 방문은 이례적인 일이다.김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간곡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듯싶었다. 김대통령의 심경을 전하는 이수석의 어휘는 아주 정제된 것이었다.야당총재들과 청와대회담을 가지려 했던 이유,무산된데 대한 느낌,그리고 앞으로의 정국운영기조였다. 이수석은 회담추진 배경과 관련,『북한상황이 간단치 않다.여러명이 모인 자리나 공개석상이 아니고 김대통령과 야당총재 단 두분이 만나면 정말 진솔하게 북한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청와대회담이 무산된데 대해 『몹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이수석은 『이번 청와대회담은 정치게임의 논리로 볼 자리가 아니었다.대통령이 야당 총재들과 만나 북한문제를 포함,국정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자는 것이었는데 일부에서 잘못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때문에 회담의 무산으로 누가 손해보고 이익을 봤다는 식의 분석은 너무 근시안적』이라고 지적했다.국회에서 일어난 「다른 이유」로 더 큰 사안을 논의할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 아쉽다는 설명이다. 이수석은 청와대회담의 무산에도 불구,「화합을 통한 큰 정치」 「21세기 선진정치」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볼때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모처럼 야당 총재들과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가 파기를 당했다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그러나 이수석은 『김대통령은 일반이 추측하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말했다.김대통령의 주변 분위기는 감정이 자제되어 있다. 청와대회담의 무산을 「점잖게」 받아넘김으로써 김대통령은 야당 두 김총재와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정국이 급랭하는 것을 막자는 생각도 깔려있을 것이다.애틀랜타올림픽과 여름휴가철이라는 완충기를 지나 적절한 계기를 잡아 청와대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예상된다.〈이목희 기자〉 ◎여당의 전략/“여론 우리편” 야에 회담동참 강조/“동상이몽… 결국 틈 보일것” 느긋 청와대 영수회담이 무산되면서 신한국당은 수읽기에 골몰하고 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회담을 거부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보다 강경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야권의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논평과 성명등 「입」을 통해 연일 야권의 청와대회담 거부를 맹타하면서도 고위당직자회의 등 「머리」로는 야권행태를 분석하느라 부산하다. 신한국당은 일단 두 김총재가 처음부터 청와대회담에 뜻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회담이 자신들의 정국 주도권 장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과 여야 긴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만들어 낸 결론이라는 것이다. 신한국당은 다만 두 김총재가 이런 공동보조를 이끌어 내기까지 서로가 보인 미묘한 자세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김대중 총재는 끝까지 청와대회담에 미련을 보였다.반면 김종필 총재는 여야대표 4자회담을 역제의한 뒤 적극적으로 청와대회담을 무산시켰다.이는 결국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신한국당은본다.두 총재가 보폭은 같이하지만 역시 방향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위에서 신한국당은 당분간 냉각기를 갖고 두 야당,특히 두 김총재의 행보를 주시한다는 방침이다.18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홍구 대표위원은 『두 김총재가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두 김총재의 청와대회담 거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이런 냉각기가 나쁘지는 않다는 계산이다.어차피 국회 제도개선특위와 총선국정조사특위 활동에서의 여야대립은 불 보듯 뻔한 사안으로 청와대회담 무산때문에 향후 관계가 더 악화되고 말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추이를 관망하면서 두 김총재가 엇갈린 목소리를 낼 때는 틈새를 적극 공략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진경호 기자〉 ◎야당의 입장/비난수위 낮추며 관망 자세­국민회의/긴급의총 열고 당 전열 정비­자민련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이날 영수회담의 무산책임을 정부여권에 돌리면서 「선사과,후회담」의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민회의는 비난수위를 낮추며 여권의 「이중적태도」 부각에 초점을 맞춘 반면 자민련은 긴급의총을 열어 여권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강경자세를 늦추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그러나 야권은 『원인을 제공한 신한국당이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경색정국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틈만나면 야당과 총재들을 흠집내려는 꾀에 의존하는 정치를 청산하라』며 『대화정치의 시작을 위해선 언행일치부터 보여줘야한다』고 비난했다.설훈부대변인도 『정국을 정상화시키려면 여권은 이중플레이부터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대중 총재는 당사에서 특위위원장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영수회담 무산에 관해 일체 언급을 피해,「회담무산」을 주도하지 않았음을 간접으로 입증했다.박상천총무도 『많은 의원들이 4분발언을 신청했지만 국회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일체 허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자민련은 이날 총재단회의와 긴급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당지도부의 영수회담 거부를 추인하는 한편 소속의원들의 의견을 수렴,당의 전열을 정비했다. 김종필 총재는 회의에서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품위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해 국회의 위신과 권위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과를 요구했다』며 『그외 다른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오일만 기자〉
  • 시리즈를 마치며(출발 2002년 월드컵:11·끝)

    ◎공중도덕 준수 선진질서 도약 기회로/경기시설물보다 시민의식이 성공 열쇠/세계가 유리와 일 국민 주시… 미덕 보여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경기장 안에 있는 안내표지판 9개는 모두 심하게 훼손돼 있다.못으로 일련번호를 심하게 긁었거나 낙서를 해 안내판만 보고는 경기장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설치한 1백91개의 야외조각품들도 사진촬영을 하려고 올라타거나 기대 선 관람객들 때문에 흉물스럽게 파손됐다. 올림픽 공원 시설관리과 김진희씨(42)는 『월드컵 유치로 명실공히 스포츠 선진국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공공시설물 이용에 관한한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우리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공공도덕 의식이 부족한 것은 근대화과정에서 「금권」의 중요성에만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양보의 미덕,즉 우리라는 공동체적 개념에 인색하다는 것이다.지하철에서 노약자나 아이를 업은 부녀자에게 쉽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틈만나면새치기 하려는 이기심이 구체적인 예다. 이런 맥락에서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는 하드웨어(시설물) 보다는 소프트웨어(시민의식)에 달려 있다는데 모두가 공감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는 「공공질서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가 「법준수(Law Obedience)」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지금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반정권 의식이 반질서·반공권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과적차량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거칠게 몸으로 항의하는 운전사들을 종종 보는데 외국 같으면 바로 수갑을 채웁니다』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규제에 순응해야 하며 불편한 것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대목도 고쳐야 할 점이다.간혹 발생하는 경기장 난동도 이와 무관치 않다.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는 조급성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이용필 교수는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에 비추어 2002년 월드컵도 성공리에 끝낼 수 있다고 낙관한다.경기장 무질서 등이 하루아침에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꾸준한 캠페인과 교육,민간단체의 활동 등이 합쳐지면 좋은 결과를 맺을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우리 특유의 무뚝뚝함이 불친절로 비쳐지기가 일쑤다.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상당수 외국인들의 첫 인상은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관청을 들른 외국인이 영어가 숙달된 상담원이 없어 낭패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호주출신의 선교사 엘렌씨(30·여)는 이른 아침에 물건을 사러 택시를 잡으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다 허탕을 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엘렌씨는 「여자를 첫 손님으로 태우면 재수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택시기사들이 꺼린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황당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과 공동개최가 결정됐기 때문에 싫든 좋든 일본국민과 비교가 됩니다.전 세계가 주목할텐데 일본 국민보다 우리가 못하다는 평가가 나와서는 안되겠지요』YWCA 홍정혜 사무총장은 지난 88 올림픽 때의 질서의식을 다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월드컵도 훌륭하게 치를 것이라고 자신했다.〈김성수 기자〉
  • 탈북자 처형 소식에 “이럴수가” 경악/불안속의 러시아 북한인들

    ◎떠돌이생활 불법거주자 5백∼1천명/러시아방송들 NHK인용 즉각 보도 북한당국이 탈출주민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은 국경부근 현장에서 즉각 사살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전해지면서 러시아언론과 시민들은 한마디로 놀라움을 감추지못하고 있다.러시아 방송들은 이날 NHK보도내용을 즉각 속보로 내보내고 있고,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인간이 설마』라는 반응을 보이며 믿으려 들지 않는 모습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27일 이와 관련,『사실여부의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행여 이번 연해주지사의 인터뷰로 북한과의 관계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일부 외무부 관계자들은 『북한은 그러고도 남는 집단』이라며 북한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러시아당국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 공식 파견된 북한인들은 합숙생활을 하는 약 1만명의 벌목공을 제외하면 2백5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40여명이 외교관 신분이고 나머지 2백여명은 기업인을 빙자해 외화벌이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이들중 러시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른바 불법거주 북한인은 5백∼1천명쯤 될 것이라고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고려인단체들은 밝히고 있다.이들이 틈만나면 한국등 제3국으로 탈출하려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불법거주자들은 대부분 모스크바 일부와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주,북한과 가까운 치타주와 크라스노야르스크지방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불법거주자들은 대부분이 벌목공 출신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벌목공들은 하바로프스크주등에 펼쳐져 있는 벌목장에 갇힌채 생활한다.이들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용케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인들은 한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혹은 언론·종교집단을 찾아 망명을 애원한다. 벌목공 다음으로는 사업하는 북한인들이 많다.최근 도피중 기자를 만난 한 북한인 사업가는 『이윤이 생기는대로 바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까지 말한다.이 사업가는『자신은 소환날짜가 지나(북한에서) 내놓은 사람』이라면서 모스크바탈출주선을 서슴없이 부탁하기도 했다.그는 『북한여권으로는 러시아에서도 거주이전이 쉽게 않다』고 어려움을 실토한다.러시아내 북한인 불법거주자들이 한국여권을 선호하는 것은 같은 인종·말씨에 『한국여권을 갖고 있으면 유럽 여러나라를 돌때 까다롭게 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모스크바=류민 특파원〉
  • 식목일 대통령표창 받는 정태선씨

    ◎34만평 임야에 나무심기 열정 20년 20년에 걸쳐 34만여평의 광활한 산지에 꾸준히 나무를 심어온 정태선씨(45·충남 천안시 쌍용동 220의8)가 식목일을 맞아 대통령표창을 받는다.그는 자신이 심은 수림이 울창하게 무럭무럭 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의 보람을 「나무사랑」에서 찾고 있다는 나무인생. 『눈앞의 경제성을 생각하면 나무를 심을 수가 없지요.오로지 후손들에게 신선한 생명력을 물려준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정씨가 조림에 눈을 돌린 것은 76년.모친이 운영하는 불우아동 복지시설인 삼일육아원을 돌보면서 커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보람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던중 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림을 결심했다는 것. 먼 훗날을 기약하며 자신의 소유인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 12만평의 임야에 나무심기를 시작하면서 조림광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뒤 자신의 땅에 조림이 끝나자 인근 국유지 22만5천평을 빌려 해마다 나무를 심은 것이 잣나무 23만그루,낙엽송12만그루,미류나무 6천그루,호두나무 1천7백그루로 모두 35만7천7백그루를 조성했다. 삼일상사를 경영하는 그는 틈만나면 산속으로 달려간다.한그루 한그루에 정성이 담겨있는 조림목중 호두는 2000년대에 이르면 연간 6천만원정도의 소득을 바라보고 있으며 다른 수종도 앞으로 15년 뒤면 훌륭한 목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지난 91년 한국 임업후계자협의회 중앙회장에 추대된 그는 그동안 6천만원의 기금을 선뜻 내놓고 조림자료 수집과 함께 2백66명의 회원을 확보 하는 등 임업후계자의 선도적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부는 치산치수를 앞세우면서도 치수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작 물의 근원인 치산에는 등한시하고 있다』며 조림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를 강조했다.
  • 미 크라이슬러사 매각 “해프닝”/오락산업 재벌서 228억달러 제의

    ◎사측선 즉각 거부… 주가 폭등 소동 미국 사상 최대의 기업인수가 될뻔 했던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의 인수문제는 일단 무위로 돌아갔다. 미 연예오락산업 재벌인 커크 커코리언씨는 12일 미 3대 자동차 메이커(빅쓰리)중 3위인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겠다고 전격 제의했으나 크라이슬러사가 즉각 이를 거부했다.커코리언은 이날 자신의 라스베이거스 호텔개발업체 트래신더사를 통해 크라이슬러 주식을 하루전 뉴욕증시 폐장가보다 무려 40%높게 쳐서 주당 55달러에 사들이겠다는 제의를 내놓았다.인수총액은 무려 2백28억달러. 만약 이번 제의를 크라이슬러측이 받아들일 경우 이는 지난 88년 콜버그 크라비스가 담배식품업체인 RJR나비스코사를 2백50억달러에 인수한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뉴욕증시는 인수제의가 발표되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주당 12달러가 오른 크라이슬러주식의 활발한 매매와 채권이자율의 소폭 감소등에 힘입어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가 4천2백포인트선까지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버트 이튼 크라이슬러 회장은 수시간뒤 매각할 의사가 없다며 인수제의를 공식 거부했다.크라이슬러는 회사인수를 둘러싼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점잖게 거절한 것이다. 과거 커코리언의 행적을 곰곰이 살펴본다면 크라이슬러측의 이같은 우려는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다.커코리언은 이회사의 주식을 약 10%정도 보유하고 있는데다 지난해 11월이후 틈만나면 크라이슬러 경영진들이 타사들과는 달리 주주에게 기업의 실제가치를 돌려주지 않고 현금축적만 한다며 공공연히 비난을 퍼부어왔다. 커코리언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호텔·카지노·항공업체인 MGM 그랜드사를 소유한 미국내 23번째 거부로 부상한 인물이다.
  • CF광고 모델로 돼지출연/미원 「하이포그 미즈팝」 내일부터 TV에

    ◎윙크등의 동작은 컴퓨터그래픽 처리 돼지도 TV광고 주인공 모델로 나온다. 미원농장의 「하이포크 미즈팝」광고에서 돼지를 주연모델로 채택한 것이다.이 광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돼지 혼자만 나온다. 이 광고에 출연하는 돼지는 미원농장이 자체 사육농장에서 기르는 1만여마리의 돼지 가운데에서 뽑힌 생후 4개월된 70㎏짜리 LYD종 흰색돼지. 보통 1백5㎏짜리가 성숙한 돼지이지만 90㎏이상의 돼지는 너무 무거워 오래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고 귀여운」 돼지를 택했다고 한다. 지난 7월말 CF를 촬영한 제작진은 36∼3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조명때문에 틈만나면 세트장에서 튀어나가려는 돼지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이 때문에 30초짜리 CF촬영을 위해 3일동안 5분 촬영에 10분 휴식이라는 고역을 치렀다. 촬영기간동안 이 돼지는 얼음 마사지에 샴푸로 목욕하고 드라이로 털을 말리는 등 호강을 누렸다.하지만 돼지가 끝내 연기를 거부할 때는 마취를 시킨 뒤 촬영을 하기도했다고 한다. 또 돼지의 표정연기만은 어쩔 수가 없어 윙크,귀의 날개짓등 돼지의 재미있는 모습과 동작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냈다. 제품을 좋은 돼지로 만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든 이 CF는 3일부터 첫 TV광고가 나간다.
  • 「무공해 인간」의 영안/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심명보의원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묘한 감정에 빠졌다.단지 「아깝다」거나 「아쉽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되새김,심의원이 벌써 하늘나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그것은 차라리 「분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92년 초여름 건강진단이나 받아본다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게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이야…. 고 심의원을 향한 감정이 이렇듯 흐르는 것은 그가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발로 뛰는 기자」를 자처하며 언론인으로 20년,이어 가까운 친구의 권유로 나라일에 나서 정치인으로 15년.참으로 열심히 산 그였다.하지만 언론인,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이 훨씬 돋보인 일생이었다. 남의 어려움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발벗고 나서곤 했다.언론숙정이 한창이던 지난 80년 한국일보 편집국장 때 한명의 후배라도 「더 살리려고」 이른바 「실세」앞에 무릎까지 꿇었던 일.곧 이어 집권당 대변인 총재비서실장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여야 정치권은 물론,각계의 길흉사를 앞장서 챙긴 일등.그의 인간적인 일화는 일일이 열거할수 없을 만큼 많다.그리고 그의 사무실 칠판에는 늘 「적덕지가 필유경」이란 글이 씌어있었다. 그는 생전에 틈만나면 고향 얘기를 했다.강원도 두메산골(영월군 주천면)에서 태어나 주천농고를 나왔다.거기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으니 입지전적이라 부를만 하다.어려웠던 과거와 단종애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고향이 그를 「무공해 인간」 「의리의 사나이」로 만든 것 같다. 남에게는 그리 관대해도 스스로에게는 엄청나게 엄격했다.한창 때이던 86년 큰며느리를 맞으면서 가까운 친척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은 지금도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 온다. 그의 장례는 26일 국회장으로 엄수됐다.고인은 타계직전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하지말고 가족장을 지내라』고 유언했다 한다.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보다 남을 생각한 것이다.그를 너무나 아끼던 동료의원들의 간절한 뜻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만섭국회의장은 이날 영결사에서 『자신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하던 고인의 발자취는 후배 언론인과 정치인의 마음속에 영원히남을 것』이라고 했다.김종필민자당대표도 『생전에 희망했듯 이제 고인의 이름과 수많은 업적은 고향의 품에서 모든 이들에 의해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 정부 북핵대응의 아쉬움/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는 계속되는 어려움을 곧잘 「산넘어 산」에 비유한다.북한핵문제가 꼭 그렇다. 될듯하다가 돌아서고,다시 강경분위기가 고개를 들고….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한 지난 한해의 상황은 늘 이런 식이었다. 미국과 북한이 뉴욕에서 4개항에 합의한 뒤 진행된 일련의 과정도 마찬가지다.19일의 남북한 실무접촉을 지켜봐야 하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된게 없다.IAEA의 사찰도 미진했고,지금 상황대로라면 남북한 특사교환도 물을 건너간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핵정책을 보면 늘상 아쉬움이 남는다. 17일의 일이다.정부는 「완전한 사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IAEA의 중간발표가 있고난 직후,『마지막까지 대화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한 당국자는 『완전한 사찰은 아니지만,그것이 곧 심각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관적 관측을 경계했다.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였고,그래서 북한에 재사찰과 남북특사 교환을 촉구하겠다는 것이었다. 틈만나면 갈데까지 가보는 북한이 이런 「맥빠진」요구에 귀나 기울일까.물론 정부도 이러한 주장의 공허함을 잘알고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이는 정부가 항상 주장해온 국제공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그리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대비한 「명분축적」인가.국제사회,특히 중국에 대해 「추가사찰까지 촉구했으나 거부돼 더이상 어쩔수 없다」는 이유를 만드는 과정은 아닌가. 그런데 저녁 때가 되면서 갑자기 정책이 강경쪽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김삼훈핵담당대사는 『모든 가능한 한 방법을 강구해 나가겠다』면서 상오와는 전혀 다른 긴장된 태도였다.『북한과의 대화를 계속해야 할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까지 나왔다.그동안의 정책이 「당근」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채찍을 들겠다」는 정책전환의 변이었다. 물론 이때 정부가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정부의 핵정책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그런대로 1년이상 이어져온 흐름이 있었다.그리고 외교정책이란 되도록 심사숙고해야지 상·하오가 달라지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그런데도 웬지 마치 「봄바람」처럼살랑대는 것 같아 불안스럽기만 하다.
  • 모네서 피카소까지/불 인상파 명작전 모스크바서 성황

    ◎1백20점 한자리에… 연일 대만원/러시아 부호가 수집… 26년간 창고서 썩다 “햇빛” 피카소,모네,세잔,고갱,고흐,앙리 마티스 등 프랑스 초기인상파 화가 20여명의 작품 1백20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전시장인 모스크바시내 중심가의 푸시킨 미술관은 러시아전역과 유럽각지에서 몰려온 미술애호가들로 연일 대만원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시작돼 오는 2월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여러면에서 단순한 인상파전이 아니다.전시작품들은 모두 러시아국내에 소장돼 있는 작품들인데 초기인상파의 명작 대부분이 러시아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이 작품들의 원소장자가 러시아제국말기 2명의 러시아 부호였다는 점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거부로 미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이반 모로조프,세르게이 슈힌 두 사람은 20세기초 틈만나면 프랑스를 드나들며 작품들을 사모았는데 이번 전시회는 바로 작품의 원소장자인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전시회 이름도 「러시아의 수집가,모로조프와 슈힌­모네부터 피카소까지」. 1871년생인 모로조프는 벨벳과 실크무역을 해 섬유왕국을 건설한 조부의 부를 물려받은 당대 러시아의 거부.예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그는 1921년 사망할때까지 초기인상파 화가들의 예술실험을 높이 사 친구이기도 한 슈힌과 함께 파리를 오가며 이 작품들을 사모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모은 그림들을 집에다 전시했는데 방마다 「모네홀」 「고갱홀」하는 식으로 꾸며져 당시 이들의 집은 미술관을 방불케했다.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8년 레닌은 모로조프의 집을 몰수해 「새서구미술관」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사람이 수집한 그림들을 함께 소장케 했다. 그뒤 이 그림들은 48년 스탈린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영구 금지시키면서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푸슈킨미술관의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이 그림들이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4년에 가서이다. 푸슈킨미술관 관장인 마리나 베소노바여사는 『이 두사람이 아니었다면 20세기 미술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것』이라고 말한다.마티스는 인상파실험을하던 무명일때 슈힌이 사준 그림값으로 화실을 열고 작업을 계속할수 있었다.슈힌은 당시 미친사람 취급받던 고갱의 재능을 인정해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고갱의 그림을 산뒤 그가 『미친 화가의 그림을 미친 수집가가 샀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모로조프는 피카소가 큐비즘이라는 생소한 실험을 할때 1905년작 「공위의 소녀」등 유화 수점을 사주어 큐비즘운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 미술비평가들은 또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시 러시아미술계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바실리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전위미술 「아방가르드운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모은 작품들은 러시아에 남아있지만 두사람은 혁명뒤 모두 유럽으로 망명,고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슈힌은 1936년 프랑스에서 사망직전 소련을 상대로 작품반환소송을 내라는 주위의 권고에 대해 『나는 러시아국민 모두를 위해 작품들을 모았다.내가 어디에 있건 그 작품들은 러시아땅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중­일,“아시아맹주” 쟁탈전 가열/미 뉴스위크지 커버스토리

    ◎“대중화”­“대동아” 표방,곳곳서 마찰/「APEC」 계기 더욱심화… 미선 “주시” 『사무라이와 드래곤의 아시아맹주 쟁탈전이 시작됐다』 미국 시애틀에서의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0일부터 일본및 아시아지역 판매에 들어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의 커버 스토리 제목이다.뉴스위크는 정상회담 주최국인 미국이 그동안 아시아는 물론 세계만방에 홍보해온 「APEC 15개 회원국간의 우의를 돈독히 한다」는 슬로건 따위는 아예 모른 체하고 이 역사적 회동 뒤에 숨어있는 아시아 두 주축간의 상호경계와 갈등을 강렬한 톤으로 부각시켰다.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이다. 그간 명칭만 떠들썩하게 알려진 「태평양시대」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질 이번 합동정상회담에서 특히 미국·중국·일본의 세 지도자들은 이 만남이 미래의 황금기에 초석을 놓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이 멋진 비전에 마냥 흐뭇해하기에는 이 3대 강국의 자부심은 너무나 크고 뿌리 깊다.이 3개국의 만남과 접촉은 서로 얽히고설킨 과거역사의 인연으로 인해 화학적인 폭발성을 안고 있는데 특히 새로운 경제적 풍요로 일본과 중국 두나라에는 자기나라가 최고라는 국민정서가 높아만 가고 있다. 과거에도 어찌됐든 아시아정치의 최강국이었던 중국은 이제 경제 거국으로 변신중이다.아시아의 경제 초강국인 일본은 부에 걸맞는 정치력을 발휘하고자 한다.이같은 경향이 계속되면 양국간의 경쟁의식과 그 실제 양상은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지금도 대만 북동쪽의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섬 자체 보다는 기선제압의 심리적 측면이 엿보인다.아시아개발은행에서 가입순으론 후배중의 후배인 중국이 이 은행의 돈줄인 일본에 고분고분하기는 커녕 틈만나면 맞서 경제강국으로 입지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저의가 드러나곤 했다. 일본과 중국은 또 중동지역에 누가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두고 조용하나 결의에 찬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말할 것도 없이 중동은 양국에 석유 공급국으로서 언제나 안전한 파이프라인이 확보돼야 한다. 이 중동석유와 관련,동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해상로 요충인 말라카해협의 경유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말라카해협 뿐아니라 동남아는 양국 경제적 주도권 싸움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다.홍콩과 동남아제국의 화교경제력은 중국 남부지역과 연결돼 흔히 「대중화」로 확장 지칭된다.그런데 화교의 경제지배력이 뚜렷한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경제발전이 연계되는 정도가 아주 심하다.조금 과장해 이 지역을 일본의 「대동아」로 부르기도 하는데 중요한 점은 대중화와 일본의 대동아가 갈수록 충돌이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제3의 축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아시아는 일본과 중국간에 한쪽의 우세를 용납하지 않는 끊임없는 상호견제로 이번 시애틀회담의 슬로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위기의 시대」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 김기수 경찰청차장(새 경찰수뇌부 4인 프로필)

    ◎차분한 일처리… 독서광 온화한 성격에 일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처리한다.모나지 않은 성품에 부하직원들에게 자상해 잘 따른다는 평.독서를 좋아해 틈만나면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이나 이것이 업무처리에도 도움을 많이 준다고 말한다.부인 이상호씨(53)와 1남1녀. ▲강원도 평창출신·57세 ▲서울대법대졸·행시11기 ▲강원평창서장 ▲치안본부 장비·외사과장 ▲LA총영사관 주재관 ▲치안본부4차장 ▲경찰대 교수부장 ▲부산경찰청장
  • 브라질 남부 3개주 주민/“분리독립” 높은 목소리

    ◎백인들 우월의식 팽배… 소득도 월등/“북부 못살아 피해” 팜파스국 내걸어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가의 속성과는 반대로 최근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을 두개의 나라로 가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움트기 시작한 이같은 국가분리 움직임은 최근들어 각 주의 소득의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면서 남부주의 일부 도시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투표단계까지 비화되고 있다. ○찬반투표 준비중 국가분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는 「팜파스연방공화국 추진모임」.대부분 남부지역 백인들로 구성된 이 단체의 요구사항은 남부지역의 리오그란데 도술,파라나,산타 카타리나등 3개주를 묶어「팜파스 연방공화국」을 만들자는 것. 이 단체가 만들려고 하는 이 「공화국」의 면적은 3개주를 합해 브라질 전체 면적의 6.8%인 57만7천㎦로 한반도의 약 2.5배. 인구는 1억5천만 브라질 인구의 15%정도로 살기좋은 「팜파스공화국」을 만들어 아예 독립하자는 것이다. 이들 브라질 남부지역 주민들이 국가분리를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같은 브라질이지만 3개주 주민의 선조가 독일이나 이탈리아계 백인들로 구성돼 있어 북부지역(대부분이 메스티조 또는 흑인)과는 다르다는 점이 명분으로 작용했다. ○독·이인후예들 살아 그러나 「분리」를 내세우는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즉 경제적인 소득격차나 문화수준의 차이가 커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정서가 남부사람사이에 팽배하고 있는 것이다. 남부 3개주의 1인당 연평균소득은 4천달러.브라질의 평균 3천달러 보다 1천달러가 높고 대부분이 농부,광원인 북부지역보다는 무려 2.5배나 많다. 여기에 남부 3개주의 평균수명도 북부보다 10살이나 많은 67세여서 이같은 생활패턴의 우위도 다른 지역과 구분지으려는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때문에 남부사람들에게는 북부사람들이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틈만나면 카니발에만 빠지는 촌뜨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감정대립으로 비화 북부사람들은 『인종주의적 편견에 가득찬 사람들』이라며 남부사람들을 깎아내린다.또 『남부지역 사람들이 자원이 풍부한 북부의 원자재를 싸게 사다 완제품을 만들어 북부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아먹는 몰염치한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북부지역주민들도 남부지역이 「독립」운동을 펴는 한 이에 맞서 원자재의 공급을 중단하는등의 분리주의 운동으로 대응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부지역 주민들의 국가분리운동은 아직 행동으로 옮겨질만큼 폭넓은 지지를 받고있는 것은 아니다.
  • 우이천 개구리가 줄 해답은?(박갑천칼럼)

    1861년,미국 네바다주 버지니아시에 사는 신문기자 새뮤얼 클레멘스는 뉴욕의 한 신문사로 그가 쓴 최초의 단편 「캘라버라스군(군)의 뛰는 개구리」를 보낸다.그 글은 곧 활자화했다.필명이 마크 트웨인이었고 이 작품으로써 그는 유머작가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내기를 좋아하는 스마일리는 개구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뛰는 훈련을 시킨다.이름까지 대널 웨브스터라 붙여놓고서.틈만나면 많이 뛰기 내기를 건다.어느날 타관에서 온 사람에게 내기를 제의한다.타관사람이 내기할 개구리가 없다고하자 스마일리는 자기가 잡아다주겠다면서 나간다.그사이 타관사람은 대널(개구리)의 입에 메추리사냥용 산탄을 잔뜩 집어넣는다.스마일리가 돌아와 40달러씩 건 내기는 시작된다.『하나둘셋!』하면서 등을 때리면 뛰쳐오르게 되어있다.그런데 산탄먹은 대널이 뛰어오를 수 있겠는가.그는 내기에 졌다.나중에 사정을 알고 뒤쫓았으나 멀리 도망가버린 뒤였다.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대체로 대널 웨브스터 같이 펄쩍펄쩍 뛰는게 개구리이다.또 거의가 운다.한국개구리는개굴개굴 울고 일본개구리는 게로게로 울며 미국개구리는 크록(croak)크록 운다.그러니까 「삼국유사」의 선덕여왕 지기삼사(지기삼사:미리 알아낸 세가지일)에 보이는 겨울개구리도 울기는 개굴개굴 울었던 것이리라.영묘사의 옥문지에서 겨울인데도 개구리가 3∼4일을 두고 우는 이변에 선덕여왕은 알천·필탄을 서교의 여근곡으로 보내어 적군을 섬멸시킨다.『개구리가 노한 현상은 병사의 형상』이라는 풀이였고 그 다음으로도 핑크빛 해석이 따름은 익히 알고들 있는 일이다. 개구리논쟁이 일고 있다.『개구리 삼킨 뱀의 배』라는 속담은 꼿꼿하여 주장이 센 경우를 이르는데 서울의 도봉구청과 녹색당이 바로 그짝났다.얼마전 도봉구청에서는 맑아진 우이천의 멋을 더욱 살릴양으로 경기도 포천 산골에서 무당개구리 1천5백여마리를 잡아다 방생한바 있다.강제이주가 서러워서인지 무당 푸다꺼리판의 음악회인지는 몰라도 개구리들은 밤낮없이 울어예어 도시속의 전원을 연출해내고 있다한다.이에대해 녹색당이 반기를 든다.이와같은 인위·강제행위는 생태계를위협하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수질을 악화시킬수 있다면서.물론 구청쪽도 굽히지 않는다. 울음의 성질을 해득할수 없으니 개구리심정을 어찌 알랴.하지만 결과는 멀잖아 판명될 것이다.스마일리가 여기 끼어든다면 어느쪽엔가 거는 내기를 하자고 하겠지.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 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6)

    ◎생과 사의 경계선:가/쥐까지 잡아먹는 「빠삐용인생」/봄엔 도롱뇽·뱀사냥으로 허기 채워/강냉이배급 절대 부족/생존위한 몸부림 처절 「바퀴벌레 한마리가 독방의 어둠을 뚫고 기어 나온다.도망다니는 벌레를 손으로 덮치길 여러번,어렵사리 잡은뒤 멀건 물뿐인 밥그릇에 담는다.그 속엔 토막난 지네 한마리가 떠있다.그걸 마시듯 먹는다…그로부터 며칠뒤,굶주려 축 늘어진 방주인의 몸주위를 바퀴벌레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닌다.어둠 속에서 방주인은 미동도 않고 길게 누워있다…」 언제 보아도 뭉클한 프랑스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다.이 영화는 굶주림과 억압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빠삐용의 처절한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안혁 강철환 두사람은 최근 이 영화를 봤다고 했다.『북한의 수용소생활은 그 이상이야요.훨씬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아요』 주저함없이 털어놓은 두사람의 한결같은 감상 소감이었다. 해괴한 먹이사냥에 대한 이들의 기억은 정말 그랬다. 이곳에선 특식에 속하는 도롱뇽에대한 강씨의 설명은 오히려 더욱 실감나는 얘기였다­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깰때쯤인 수용소에서의 첫해 봄 어느날,옥수수를 심기위해 밭에 나갔다.한창 일을 하고있는데 비교적 오래된 친구 서너명이 밭에서 잡은 도롱뇽을 보여주며 휴식시간에 몰래 나눠 먹자고 했다.『죽으면 죽었지 그딴걸 어떻게 먹나』 하며 거절했다. 그런데 휴식시간이 되자 보위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보초를 세워놓고 돌아가며 구워 먹었다.무척 맛있어 보였다.머뭇거리며 다가갔더니 한 친구가 멋적은 표정으로 어른스럽게 『살려면 별수없어』라며 주머니속에서 한마리를 꺼내 주었다. 머뭇거리다 가르쳐준대로 직접 만든 나무칼로 껍질을 벗기고 나니 너무 작아 잘라낼 곳도 없었다.질끈 눈을 감고 통째로 씹었다.갑자기 쓰디 쓴물이 입안에 가득했다.『욱』하며 넘어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삼켜버렸다. 두 세번까지는 같은 맛이었다.그 뒤 도롱뇽 사냥에 선수가 됐고,가장 앞장서는 사냥꾼이었다. 봄에는 도롱뇽과 함께 개구리알도 좋은 먹이감이다.틈만나면 개울가를 찾는 게일이며 개구리나 뱀은 봤다하면 끝까지 쫓아 그 자리에서 구워 먹는다. 무엇보다도 요긴한 고깃감은 겨울철의 쥐이다.쥐고기를 먹는 날은 더할나위 없이 기쁜날 이라는 것이 이들의 얘기였다.첫 겨울엔 잘몰라 나뭇가지 끝을 뾰족하게 깎아 「쥐창」을 만들어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쥐창으로 잡으면 피가 튀어 요리하기가 어렵다.어느정도 적응이 된 뒤에는 그래서 가는 철사나 헝겊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잡게 된다. 시간이 좀더 흐르게 되면 강냉이 밥보다 훨씬 「고급음식」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굶어 가면서 쥐를 사육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쥐가 잘 다니는 곳에 강냉이 알을 뿌려놓는가 하면 쥐를 봐도 애써 외면하거나 놀래 달아날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한다.어쩌다 찾은 귀한 손님 대하듯 한다는 것이다. 안씨는 『그러다 보면 사람을 봐도 달아나지 않게 돼 수월한 사냥감이 된다』며 『약간 찌린내가 나서 그렇지 고기는 쫄깃한 게 아주 고급』이라고 말한다. 너나 할것없이 이렇게 겨울을 견디다 보면 봄철에는 아예 쥐의 씨가 말라버린다.『빠삐용보다 더 했다』는 말을 이들은 또다시 되풀이 했다.
  • “장애인 피나눈 형제로 생각하죠”(이런 공무원)

    ◎소외이웃 돌보기 20년 임영우씨 서울시복지계주사보/틈만나면 복지시설 찾아 “손발돼주기”/실직자 직장알선… 박봉털어 등록금도/자신포함 일가 4명 사후에 안구 기증키로 2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장애자와 부랑인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에만 매달려 왔지만 한번도 고달프다거나 고통스럽게 느껴본 적이 없다. 스스로 「쓸모없는 인생」이라는 절망감을 육신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으로 느끼며 방황과 자학속에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살피는 것이야말로 공복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보건사회국 사회과 장애자복지계 주사보(7급) 임영우씨(47). 지난73년 9급의 말단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임씨는 강산이 두번이나 바뀐 세월을 서울시 각구청과 동사무소 등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늘 같은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왔다. 요즈음은 일선 동사무를 벗어나 본청에서 복지시설의 지원계획 등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여기저기 복지시설에 나가 장애인들과 마음을 나누며 그들의 손발이 돼주곤한다. 임씨가 인생의 전부를 던지게 된 사회복지관련업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공직생활에 발을 디딘 이듬해인 74년부터.서울 종암2동사무소에서 철거지역주민들의 이주업무를 맡게 되면서 사회복지업무에 눈을 뜨게 돼 관내의 소외된 주민들의 고충을 함께 걱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보다는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생활이 어려운 이웃이 일자리를 잃으면 직장을 마련해주기 위해,장마철에 물난리를 만나면 구호물자를 좀더 모으기 위해 신발끈을 졸라맸고 자녀들의 등록금을 못내 애태우는 이웃에게는 박봉을 털어 도왔다. 그러다 85년 11월 7급으로 승진해 도봉구청 사회복지과에서 복지시설 관련업무를 맡게 되면서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는데 더욱더 앞장서게 된다.장애인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해 곳곳에 사회복지시설이 새로 세워질 무렵이었다.도봉구청 관내인 중계동 상계동에도 부랑아·장애인 수용시설인 천애재활원 등 각종 복지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이들 시설도 건물은 새로 지어 번듯했지만입고 먹는 것은 항상 아쉽게 느껴졌다. 복지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항상 생필품이 부족하고 주거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처지였다. 임씨는 이들에게 소외감을 떨쳐주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하던 끝에 86년 가을 천애재활원의 지하식당에 교회를 열였다. 외부인들의 참여를 유도해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할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도움을 줄수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곳까지 예배를 보러오거나 관심을 갖는사람은 거의 없었다.임씨 가족들이 교회에서 장애자들과 어울리는 유일한 벗이었다.임씨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각급학교나 기관등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교회참석자도 하나 둘 늘어 마침내 버젓한 모습을 갖추게됐다. 임씨의 노력으로 조달청,농협,서울시립대,덕성여대,제주의 삼성여고 학생및 직원등이 이곳과 자매결연을 해 지금도 발걸음을 잇고 있다. 임씨는 형제처럼 아끼는 장애인들에게 『마음만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밝고 건강하게 갖고 생활하자』고 당부한다.더나아가 남들로부터 도움을 받는것을 부끄러워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남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주문한다. 임씨는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위해 지난해 3월 자신을 포함,일가족 4명이 안구를 사후에 기증하는 기증서를 경희대부속병원에 냈다. 이때 천애재활원의 장애인 10명도 동참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내가 남을 도왔다』는 사실에 더없이 흐뭇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불우해도 남을 도울수 있는 길은 어딘가 열려있다』는 깨우침과 함께 『나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것이다. 임씨는 『복지사업은 정신적인 지원과 물질적인 지원이 조화를 이룰때 그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면서 『특히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 청백리의 귀감 이호종 청양군수(이런 공무원)

    ◎「정년군수」 전재산이 달동네 13평 집/민원인이 놓고간 쇠고기 문밖에 매달고/직원 숙소 현관서 청탁막아 「문지기」 별명/결혼 축의금도 돌려보내는 “결벽”… 가족들이 토끼 길러 생계 보태 「청백리」 예부터 이들이 많으면 국운이 성했고 적으면 그렇지 못했다. 한결같이 이들은 국가를 지탱하는 동량으로 국난을 타개 했으며 국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인공위성이 날고 달을 정복한지도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들을 국가는 원하며 상을 내리기도 한다. 「깨끗해야 백성이 따른다」는 이치를 단지 「모든일을 내집일 같이 하되 신세는 지지 않는다」는 소박한 신조로 실천해온 오늘의「청백이」는 천안에서도 승용차로 족히 2시간은 가야하는 내륙의 오지인 충남 청양군에 있었다. 이호종청양군수(59)는 단벌 양복을 5∼6년씩 입으며 한때는 점심을 소금밥으로 대용하는등 근검 절약하는 내핍생활을 해오면서도 그동안 31년간의 공직생활중에서 주위의 유혹에 한눈판 일 없이 오직 「정의」로만 봉직해온 공무원이었다. 그는 지난달에 퇴직원을 내놓았다.면사무소 서기보로 출발해 군수자리까지 올라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그의 전재산은 대전시 중구 대사동 산중턱 달동네에 있는 13평짜리 집이 고작이다. 『공무원은 주민을 위해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야지요』그는 공무원이 청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자세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군수의 이런 자세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활신조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아니면 반드시 청내식당을 이용한다. 공무외에는 관용차를 절대로 타지 않았고,대전시청과 충남도청에 근무할 때는 버스타기도 꺼려 대사동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어 출퇴근했다는 것이 주위의 이야기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4명의 누이동생을 출가시켰죠.아들 두명은 대학을 나와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남들은 박봉이라 할지 모르지만 국가에 봉사한 만큼의 월급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어요.공무원의 의무는 무한정합니다.그렇다고 남의 신세를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세안지기 신조로 한때는 「결벽증」이 심하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했다. 공무원의 의무가 무한정하다는 말은 지나온 그의 발자국을 조명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40여차례에 걸친 전보 또는 승진발령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발령사실조차 주위에서 알려줄 정도로 무관심했다고 한다. 언제 어떤자리로 옮겨가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지난 84년 대전시 감사실장에서 충남도 감사담당관으로 발령을 받았었습니다.감사실장은 지방서기관이고 감사담당관은 국가사무관으로 강등이 된 셈이었지요.그래도 저는 그 자리로 기꺼이 갔습니다』 꼭 자신이 적임자라서 불렀다면 오히려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사실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감사·기획·예산·법무계통의 자리에 오랜기간을 있었다. 『공직생활 자체가 보람이었지만 굳이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아산군수 시절 군청사를 새로 지어 옮긴 것입니다』 구청사를 팔 때는 일부업자로부터 「싸게 팔면 거액을 건네주겠다」는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6개월간 업자들과 승강이를 벌인 끝에 예상가격보다 5억원을 더 받아 냈다.당시 이 일을 놓고 「관청이 도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감사관 시절에는 직원들의 숙소 현관 옆방을 차지하고 외부인들의 청탁을 막아내 「문지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4명의 여동생과 두아들을 결혼시키는 동안 단한차례도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도 그의 곧은 성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70년 논산군 감사실장시절 둘째누이를 결혼시켰을 당시 유일하게 동료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때는 신랑측에서 보낸 청첩장을 보고 왔으나 이들이 낸 축의금은 곧 돌려 주었을 정도였다. 충남지방공무원 교육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3월 맏아들 결혼식 때였다.교육원 간부 한명이 이를 알고 「동료직원만이라도 참석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러면 날짜를 바꾸겠다』고 해 직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행사를 치르고 나면 그는 꼭 부하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평소 때처럼 저녁식사를 함께 해오곤 했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건은 두차례의 「고기 소동」이었다. 처음은 부인 신부희씨(53)와 결혼한지 채 몇달도 되지않았던 60년의 일이었다.동료 2명이 결혼축하차 쇠고기 두근을 사들고 갔다가 부인 신씨만 있어 고기를 건네주고 그대로 돌아갔다.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이군수는 신부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꾸짖었다. 이를 본 주위사람들이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는 『앞으로 오랜기간 공직에 머무를 텐데 지금부터 집사람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공주군청 행정계장으로 있을 때의 「고기소동」이었다.그때도 누군가가 쇠고기 두근을 집으로 전달했다.부인은 한번 혼난 일이 있어 되돌려주려 했으나 고기를 갖고 온 사람이 그대로 가버려 돌려 줄 수가 없자 대문기둥에 이틀동안이나 매달아 놓았다.결국 고기는 썩어 못먹게 되었고 이를 안 동료들이 이웃집에라도 주지 그랬느냐고 하자 『어떻게 옳지 못한 뜻을 남에게 전해주느냐』고 했다는 것이다.이밖에 한 여직원이 이군수가 떨어진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양말을 선물했다가 돌려 받은 일등 그의 신세 안지기 일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제가 오랜 공직생활동안 한결같이 자세를 흐트러 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집사람,그리고 두아들과 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토끼를 길렀고 두아들과 딸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스스로 「서울 유학」을 포기하고 가까운 충남대학에 진학했다. 『공무원은 언제나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틈만나면 「독행불책영 독침불책금」이라는 한학자 김집선생의 말씀을 후배공무원들에게 말해주곤 합니다』 공무원은 혼자 가더라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혼자 잠을 자더라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후배공무원들에게 꼭 남겨주고 공직을 떠나겠다는 그에게서 자랑스런 공무원의 참모습을 보았다.
  • 대학원생 사망사건 경위와 전망

    ◎“직격탄­유탄 여부 부검해야 판명”/“정조준으론 1백m 명중 불가능… 공포 추정”/전문가/총기 사용 정당성 논란 거세질듯/운동권 반발 예상… 안정저해 우려 ▷사건경위◁ 서울대학생 2백여명은 지난 17일 하오 10시10분쯤 관악구 신림2동 파출소앞에 집결했다. 이때 파출소안에 있던 직원 6명 가운데 4명은 옥상으로,소장 조동부경위(42)등 2명은 1층 사무실안에서 파출소 철제 셔터문을 걸어 잠그고 자체경비에 들어갔다. 하오 10시12분쯤 파출소 좌우로 몰려든 시위대 학생들이 「구속학생 석방하라」는등의 구호를 외치며 돌과 화염병 1백여개를 파출소로 던지기 시작했다. 옥상위에 있던 경찰관들은 아래쪽에 있는 시위대를 향해 사과탄 70여발을 던졌고 1층에 있던 조경위등 2명은 휴대하고 있던 권총으로 각각 2발씩 모두 4발의 공포탄을 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다. 당시 파출소안은 연기로 가득찼고 사과탄 분말로 뒤범벅이 된데다 전기불마저 나가버려 극심한 혼돈상태에 빠졌다. 하오 10시20분쯤 한국원씨는 부인 서윤경씨(25)와 택시를 타고집으로 가다 시위로 통행이 막히자 신림9동 가나다제과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신림2동 파출소와는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1백m쯤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때 파출소안에 있던 조경위는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과 돌이 계속 파출소안으로 날아들자 뒷문으로 파출소뒤 복음전파사 빈터로 자리를 옮겼다. 공포탄 2발을 이미 쏘았던 조경위는 1분간격으로 실탄 4발을 쏘았다. 이어 옆에 있던 변두환경장(40)으로부터 실탄 2발을 다시 받아 위협사격을 했다. 하오 10시25분쯤 길건너에 있던 한씨가 갑자기 쓰러졌고 한씨는 부인과 옆에 있던 학생 김완기군(22·공법학과 3년)등에 의해 이웃 관악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학생들이 파출소를 습격한 것은 관악경찰서가 서울대 이웃으로 옮겨오는 것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연행돼 구속된 김명찬군(21·농화학과 2년)등 이 학교학생 2명의 석방을 요구한데서 비롯됐다. 학생들은 이들이 구속된뒤 틈만나면 이 파출소앞에 몰려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여왔다. 사고진단1백m가량 떨어진 곳에서 38구경 권총에 맞아 희생자가 난데 대해 18년동안 미국 FBI에서 사격교관을 지냈던 이진호씨(49·현대알루미늄회장)는 『38구경 리벌버의 경우 정조준해 사격하면 총알이 1백m까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이 때문에 1백m밖의 사람이 권총실탄에 맞아 죽었다면 총구를 하늘로 향해 쏜 것이 틀림없다』고 진단했다. 이는 조경위가 45도 이상상행사격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켰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38구경권총의 최대사거리가 1천5백m이고 유효사거리가 50m인 점을 들어 실측결과 100.7m 떨어진 지점에 서있던 한씨가 어떻게 총에 맞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한씨의 사체를 부검해야만 직격탄에 의해 숨졌는지 유탄에 맞았는지를 확실히 가려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모든 외근 경찰관에게 실탄을 지급,그동안 흉악범등을 검거하는데 큰 성과를 올렸다. 총기사용과 관련,경찰관직무집행법 제11조는 「경찰관은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방호,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형법에 규정한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때등을 제외하고는 사람에게 위해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사태전망◁ 소련사태등의 여파로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재야학생운동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정부 공세를 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모처럼 평온을 되찾아가는 사회분위기가 다시 술렁거리지 않나 하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학생운동권은 그동안 국민들은 물론 일반학생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지못해 고립된 나머지 지난 10일에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노량진경찰서 명수대파출소를 점거하는등 과격시위로 일반의 시선을 끌어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는 행동을 취해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시위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등 자유민주화와 안정을 갈망하는 사회분위기가 더욱 단단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사건의 여파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유전공학 지망한 산골의 수재/숨진 한국원씨는 한국원씨(27)는 교수의 꿈을 키워오던 신혼의 유전공학자 지망생이었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가 고향인 한씨는 탁주양조장에서 경리일을 보고있는 아버지 한주희씨(55)와 어머니 고영옥씨(52)의 3남2녀 가운데 넷째로 구례중·순천고를 졸업하고 지난 83년 서울대 공업화학과에 입학,87년 졸업때까지 줄곧 과수석을 해 장학금을 받았다. 89년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뒤 유전공학자가 되기위해 곧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한 한씨는 재학중 서클에도 가입하지 않고 공부만 해온 「공부벌레」였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이대영어교육과출신의 부인 서윤경씨(24)와는 지난해 12월 23일 결혼,학교이웃 신림9동 251에 보증금 9백만원 월세 6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하며 부부가 고교생을 상대로 과외교습을 해 학비를 벌어왔다.
  • “선행 37년”… 「오장동 냉면할머니」 별세

    ◎50년12월 월남… 실향민의 지주로 한몫/어렵게 모은 재산 장학사업등에 “선뜻” ○…「오장동 냉면 할머니」 한혜선씨(76)가 고혈압·당뇨등 숙환으로 2일 상오 별세했다. 한씨는 1·4후퇴 직전인 지난 50년 12월 고향인 함경남도 흥남에서 남편 문존덕씨(73년 작고)와 함께 월남,경남 거제에서 피란생활을 한뒤 54년 서울로 올라와 냉면장사를 시작해 함흥냉면의 독특한 맛을 선보였다. 한씨는 이듬해인 55년 중구 오장동 지금의 자리로 옮긴뒤 37년간 이북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주었고 이남 사람들에게는 별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씨는 돈과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틈만나면 양로원·고아원과 군부대를 방문하고 불우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등 선행을 베풀었지만 주위사람들은 물론 가족들조차 눈치채지 못할만큼 남모르게 해왔다. 한씨는 20년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문성준씨(44)등 2남2녀와 함께 냉면가게를 꾸려오면서 흥남시 장학회이사를 맡는등 실향민들의 정신적 지주로서도 한몫 해왔다. 한편 한씨는 박준병민자당의원이 육군 제3하사관학교장으로 재직할때 학교를 방문,후보생에게 냉면을 한그릇씩 돌리는등 인연을 맺기도해 박의원이 중구 신당2동 상가에 직접 조문을 하기도 했다. 발인은 4일 상오 장지는 경기도 모과면 서경리 가족묘지이다.
  • “오름세 신호냐 조정지속이냐”/8일만의 주가상승… 엇갈린 전망

    ◎미수정리ㆍ월말수요 겹쳐 일시 하락/「대세전환 전야」 진단… 투매자제 권고/실물경제 회복ㆍ자금유입 없는 한 오름세 속단 일러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럼질 치던 주가가 8일만에 일단 멎었다. 그러나 이같은 속락세의 진정이 진정한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29일의 주식시장은 7일 연속의 하락세에서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장은 시작되기 전부터 투자자와 증시관계자들의 비상한 주목거리였다. 지난 21일부터 나타난 연중 최장의 이번 속락국면은 딱 떨어지는 그 원인을 쉽게 끄집어낼 수 없다는 데 특징이 있다. 단기적 측면으로만 보면 미수금의 정리매물화를 지적할 수 있다. 3월말 결산법인인 증권사는 각종 인허가 사항의 우대여부가 걸려있는 당국의 경영평점제를 의식,결산기를 맞아 되도록 좋은 경영실적이 나타나도록 해야 하는 처지였다. 미수금정리는 당국이 틈만나면 채근했던 조항으로 경영평가에 중요한 대목으로 쓰일 게 틀림없었던 것이다. 증권사는 미수금이 걸린 투자자들에게 강제적인 반대매매를 통해 이를 정리하겠다고 을러댔는데 3일이내 결제 방식상 29일이 투자자나 증권사나 3월말까지의 미수금을 정리할 수 있는 최종일이었던 것이다. 7일 연속하락과 함께 종합주가지수가 8백10대로 추락한 28일 장이 끝나자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정리매물이 대거 쏟아질 게 자명한 내일 장이 이번 속락국면의 고비』라고 입을 모았었다. 거래량이 평일장 수준을 크게 웃돌았던 이날 장은 초반부터 상승세를 탔고 내내 뚜렷한 오름세 신호를 나타내 장기하락 시황을 역전 시켰다. 이날의 역전으로 이번 속락국면에 완전한 종지부가 찍힌 것인지,앞으로 주가는 위로만 치솟을 것인지. 7일간의 속락을 증시침체 탈피의 마지막 조정단계로 파악,대세상승 전야의 급락이라고 진단,투매를 삼가라던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29일 시장은 미수정리 뿐만 아니라 법인세 납부등 월말 자금 수요까지 겹쳐 우선적으로 팔아야 할 물량이 쌓일 수 밖에 없었는 데 속락 추세에 기대지 않고 전날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겠다는 매수세력의 압도적 등장은 「바닥권 탈피」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곁들여이들은 상당수의 전문가들 마저 고개를 흔들었던 이번 속락세의 「이상함」도 따지고 보면 「진정한 바닥을 단단하게 다지는」 데서 나왔다고 해석한다. 7일동안 장이 내림세로 일관했지만 그 낱낱의 장면들은 「내림세를 멈출듯 하다가 다시 조금 내리고 마는」 장중 소폭속락을 어김없이 드러내곤 했다. 이같은 현상을 최저점이 연신 경신된 27일과 28일 후장에서 거래량이 상당폭 늘어나는 것과 연관시켜 볼 때 매수세력의 점진적 증가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이 내부의견을 조정하지 못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결과 악재적 요인으로 바뀌었다는 설명도 있으나 증시와 금융실명제를 묶어놓고 볼때 최저점 하향돌파를 납득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직전 최저점이 기록될 때보다 수출등 경기회복ㆍ증시수급불균형 완화를 부인하기 어려운 마당에 주가가 아래로만 치달았던 것은 1년 가까이 끌어온 증시침체의 최종적인 조정국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이날의 반등세가 일시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이날 반등세는 바닥에 닿았다고 확인한 매수층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증권주의 주식배당 권리가 이날을 시한으로 끝남에 따라 이를 노린 일부 큰손들의 매집에서 나왔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2월26일의 직전 최저점 이후 주가동향이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차츰 한단계씩 내려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곧 28일의 최저점 보다 낮은데로 미끄러질 소지가 많다는 예상이다. 이들은 투자자들이 여간한 호재가 아니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장세에 지쳐있다고 지적,7일간의 속락세는 일면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호재적 여건에도 불구,최저수준이 잇따라 기록된 것은 그동안 고객예탁금의 감소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증시 이탈현상이 심도있게 표면화된 실례라는 것이다. 시중 부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는 징후를 찾아 볼 수 없는 한 속락세가 진정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와함께 수출ㆍ경기의 회복 추세가 지표상으로는 그렇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어느때보다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이 이를 감지하기에는 아직 무리라고 보고 있다. 이밖에 지난 1년새 25억주에서 42억주로 급격히 불어난 증시의 볼륨도 두고두고 걸리적 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김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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