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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유공자 가족 의료인 정신대할머니 무료 진료(조약돌)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구성된 의료인들이 정신대 할머니들을 무료진료해주는 등 의료봉사 활동을 펴고 있어 화제. 국가유공자 자녀로서 국가로부터 학비지원 등의 혜택을 받아 성장한 의료인들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인 「소금회」는 이달부터 일제때 정신대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 할머니들에게 무료로 치과 질환을 치료해주고 틀니도 제공.이 모임의 대표로 3·1운동 당시 경북 상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성해식선생(1899∼1939)의 손자인 성백균 박사(52)는 지난 86년 소금회를 결성,산간벽지와 도시 빈민촌을 돌면서 1만7천여명에게 사랑의 인술을 베풀어 왔다는 것.〈황성기 기자〉
  • 노인·장애인 서럽지 않게(사설)

    노인과 장애인같은 소외계층을 보살피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오는 98년부터는 70세 이상 노인들의 보청기와 틀니에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장애인의 휠체어나 「흰지팡이」 보청기등의 보장구는 바로 내년이면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그러기 위해 정부는 2조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잘 살되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절대가난을 면하는 것이 목표였던 시대와는 이제 달라진 것이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는 한단계 승화된 삶의 질을 누릴 권리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것이 정부의 과제이기도 하다.이미 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정부는 그 일을 착수해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게 아무리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결실되기는 어렵다.그러므로 2조에 이르는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하기로한 이 복지정책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크다. 특히 우리에게는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면서도 그 혜택에서 소외된 세대가 있다.정책이 실시되기 이전의 세대들이다.이미노년으로 접어들어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이 세대들은 그러나 오늘의 번영을 몸소 이룩해온 세대들이다.가난을 벗기 위해 온갖 시련을 극복해온 세대가 국가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그에 대한 배려가 노인복지정책 의지에 수렴된 것은 잘된 일이다. 또한 한국형 노인복지정책의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면도 눈에 띈다.한방의료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노인성 질환을 위해서 효율적이고 우리 체질에도 맞는다.그것을 위해 보건소를 1차의료기관으로 육성하는 계획은 좋은 발상이다.그리고 노인 시설에 대해 낯가림이 심하고 경로사상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에게는 노인을 노인시설에 보내는 일에 여전히 편견이 심하다.재가노인보호시설의 정책적인 개발은 그런 우리 특성에 맞는 방법이다.이런 계획들이 차질없이 실시되기를 기대한다.
  • 노인·장애인 복지에 2조 투입/복지·민원행정대책

    ◎보청기·틀니·휠체어 의보 적용/장애 3만8천명에 일자리/읍·명·동 사무소 주민복지센터로/“행정정보 개방… 공동활용체제 강구” 김 대통령/세추위 김 대통령에 보고/정보공동센터 설치 오는 98년부터 70세 이상 노인의 틀니와 보청기에 단계적으로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등록 장애인의 휠체어 흰지팡이 보청기 등 보장구도 97년부터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령자 적합 직종도 2001년까지 70종 이상으로 늘어난다. 김양배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이같은 내용의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노인·장애인 복지 종합대책」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노인복지대책에 8천억원,장애인 복지대책에 1조3천억원 등 2001년까지 모두 2조1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98년까지 전 국민에 연금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아무 혜택이 없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생활안정 대책을 연내 마련키로 했다.연금보험료는 내지 않았지만 연금수혜자가 되는 무갹출 연금제 등이 검토되고 있다. 또 97년까지 전국 보건소에 치매상담센터를 설치,운영하고 2005년까지 치매전문병원 및 요양시설을 15곳과 70곳으로 확충하는 등 치매노인 10개년 대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오는 2000년까지 3만8천여명의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장애인의 일자리를 2배로 늘리기로 했다.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법도 제정,99년까지 공공시설 및 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마치도록 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정부기관에 내는 민원서류에는 주민등록 등·초본을 첨부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이들 증명서류 발급을 주업무로 하는 읍·면·동 사무소는 주민복지센터로 기능을 바꾸게된다. 세계화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수성·김진현)는 28일 청와대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민원행정의 세계화방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세추위는 이를 위해 내무부의 주민전산망과 건설교통부의 부동산 전산망 등 정부의 모든 전산망을 통합,행정기관이 직접 필요한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를 97년 상반기까지 설치토록 했다.〈서동철 기자〉 ◎노인복지대책 만전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국민생활과 직결된 민원행정은 대표적인 민생개혁의 대상』이라면서 『각급 행정기관은 행정정보를 적극 개방하여 정부기관간 정보 공동활용체제를 조속히 갖추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세계화추진 보고회의를 주재,「민원행정의 세계화 방안」 「노인 장애인 복지종합대책」 「한·일간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방안」을 보고받은뒤 『앞으로 행정전산망을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민원행정의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목희 기자〉
  • 사랑과 모험의 대륙/작가 김주영(아프리카 기행:2)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카렌 공주집은 박물관으로/덴마크 공주­영 수렵가의 애절한 사연 그대로/처음 만난 케냐 대평원 가시나무 숲 뒤덮이고/나이로비 서쪽 초원엔 용맹한 마사이 부족이… 아프리카에서 자생하고 있는 천여종의 나무와 꽃들을 모두 옮겨다 심었다는 사파리파크호텔 경내를 돌아보며 휴식을 취한 3시간뒤 곧장 나이로비교외에 자리잡은 카렌박물관으로 달려갔다.카렌박물관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현장이기도 하다. ○등잔·가구 등 잘 보존 덴마크의 공주였던 카렌은 1914년 부로어 브릭센 피네케 남작과의 결혼을 위해 혼자서 덴마크를 출발한다.그녀는 한때 아프리카 노예시장의 거점이었고 1907년까지 케냐공화국의 수도였던 케냐의 동쪽 항구 몸바사에 당도한다.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내륙의 나이로비로 향하던 카렌은 가시나무숲으로 뒤덮힌 대평원에서 영국출신 수렵가인 데니스핀치 해턴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남작과 결혼은 하게 되지만 애인 해턴이 1931년 비행기 사고로 숨질때까지 카렌은 이 집을 지키며 고독하게 살았다. 그때 카렌이 쓰던 가구 그리고 그녀의 손때가 묻은 등잔과 책 한권에 이르기까지 훼손없이 보존되고 배치되어 있다.그녀가 커피를 심었던 농장이 지금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이곳의 커피농장은 1914년 그녀가 피네케남작과 결혼한 당시 덴마크의 가족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카렌 블릭센의 원작소설과 영화는 그녀가 이곳에 살면서 애인 해턴과의 밀도있는 사랑,커피농장주로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좌절,그리고 흑인노동자들과의 인간애를 진한 감동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흑인들에게 커피재배를 지도하며 살았지만 해턴의 사망과 때를 같이하여 파산선고를 받았고 덴마크정부는 나중에 이 농장과 땅을 케냐정부의 독립선물로 주었다.그녀가 커피농장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17년동안의 고독은 케냐의 대평원에 흩어져 자생하고 있는 가시나무 숲의 스산한 모습과 상징적으로 대비된다.그녀는 엽색행각과 도박으로 세월을 농하고자 하는 남편 피네케남작을 기약없이기다려야 했고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바람과 같이 종횡무진으로 쏘다니며 수렵생활에 미친 해턴을 또한 기약없이 기다렸다.가뭄에 시달려 항상 수척한 가지와 메마른 가시잎을 허공으로 향한 채 언덕 위에 외롭게 서있는 가시나무의 고독은 오직 두 남자를 기다려 17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카렌의 좌절과 고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였다. ○18세기에 케냐 이주 케냐사람들은 「유럽인들이 케냐를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든 사실이 좋은 일이건 나쁜일이건 카렌의 집은 케냐 역사의 단면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기념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발언 속에는,케냐의 산업화발전과정이 결코 유럽인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기록에 남아있는 케냐 최초의 역사는 남부아라비아와 교역관계를 가졌던 해안지방에 관한 것들이고 내륙은 19세기까지도 외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아랍의 상인들이 케냐 혹은 아프리카 동부내륙으로 진작 침투하지 못했던 까닭은 타루평원의 사막을 횡단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18세기경에 케냐중부로 들어온 매우 용맹스럽고 호전적인 마사이족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냐에는 30여개의 인종집단이 살고 있다.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이들 종족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키쿠유족,루히야족,루오족,캄바족,칼렌진족들이 있지만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다.이들 종족중에서 현재인구 약10만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마사이족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경계지역 가시나무가 많은 초원지대에 거주하고 있다.이 마사이족의 땅에 최초로 도전한 유럽인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리학자 조셉 톰슨이었다.그는 1883년 왕립지리학회의 승인을 받아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다.그 탐험대의 임무는 케냐산 일대의 조사와 우간다의 여러 왕국으로 직행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그는 이 14개월의 탐험에서 호전적인 마사이족뿐만 아니라 키쿠유족과 루오족들과도 만났으나 그때마다 고비를 잘 넘겼다. ○첫 탐험자 톰슨 요절 그것은 톰슨이 가졌던 임기응변과 재치덕분이었다.그는 적의를 드러내는 마사이족을 만나게 되면 대뜸 틀니를 뽑아서 흔들어보인 다음 그것을 다시 잇몸에 끼웠다.그것으로 사람의 코나 눈도 자유자재로 뗐다붙였다 할수 있는 마력의 소유자로 믿게 만들어서 마사이족들을 겁주어 내치었다.그가 마사이족들에게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요술로는 갈바니전지(이탈리아 해부학자인 갈바니가 개구리 해부도중에 발견한 원리)를 써서 마사이족에 따끔한 전기충격을 맛보게 하여 겁을 주는 것과 각 소금을 유리컵의 물속으로 떨어뜨려 컵속의 물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그러나 톰슨이 가진 결정적인 힘은 그들 마사이족들에게 소의 페스트를 치료하는 전문가로 믿게 한 것이었다. 대체로 이런 기지를 발휘해 그때마다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톰슨은 동아프리카 북부지역의 탐험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탐험 도중 들소의 뿔에 받혀 2개월간이나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킬리만자로산의 가장자리를 돌아 오늘날의 나이로비 북쪽 80㎞지점까지 진출하였었다.그의 아프리카 탐험은 네차례에 걸쳐 실시되었고 이때 수많은 동아프리카 추장들과 무역협정을 맺었다.37세 나이로 죽기까지 영국에 머물렀지만 입버릇처럼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로비에서 하룻밤을 쉰 필자는 이튿날 마사이마라를 향해 차를 달렸다.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1백70마일.경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육로여행으로 바꿨다.이동하고 있는 동물들과 마사이족들의 생활을 좀 더 소상하게 살피기 위함이었다.케냐정부는 마사이들이 현대적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병원과 학교를 제공하려들지만 그들은 거부하고 유목과 사냥에 의존하며 메마른 초원을 쉴새없이 옮겨다니며 살고 있다.그들의 젊은 전사들은 전통적으로 창 하나로 수사자를 사냥함으로써 그 부족들에게 용맹을 증거해 보이려하지만 지금 사자사냥은 금지되어 있다.
  • 맹수석조물 송곳니 “수난시대”/전국곳곳서 파손 잇따라

    지역사회보호 또는 불을 막는 상징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진 호랑이·사자 등의 석조조형물 송곳니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잘라져 없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들 석조상은 풍수지리설 또는 전래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지역사회 보호의 상징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맹수의 송곳니가 불치병치료 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무참히 뽑혀지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맹수석조상들은 원래의 송곳니 대신 틀니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잇는 한남대교의 양쪽 끝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4마리의 호랑이및 사자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입을 벌리고 앉아있다. 지난 69년 당시 「제3한강교」의 이름으로 다리를 준공할 때 서울시가 석상조각가인 홍익대 전뢰진교수(64·조소과)에게 특별히 부탁해 한강과 대교의 수호상으로 만든 것이다. 강남쪽에는 암수사자 2마리가,강북쪽에는 호랑이 2마리가 각각 한강을 등진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며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 길이 2m,높이 1m 정도의 실제크기로 1·5m 높이의 기단위에 받쳐져 있다. 이가운데 북쪽의 오른쪽 호랑이는 아랫송곳니 2개,왼쪽 호랑이는 윗송곳니 1개를 틀니로 갈아끼웠다. 또 남쪽의 오른쪽 암사자도 아랫송곳니 1개를 새것으로 바꿨다. 모두가 10㎝쯤 되는 송곳니의 절반이상이 부서져 수호상으로서의 위용에 상처를 입었다. 자식없는 부부나 대입수험생을 둔 학부모,몹쓸병에 걸린 환자들이 근거없는 민간신앙에 빠져 한밤에 몰래 사다리까지 동원해 망치등으로 이빨을 부순뒤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거나 갈아서 물에 타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면 부처의 힘을 빌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술신앙」이나 명망있는 문인의 비문을 갖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한다는 민간의 「기복신앙」에 기인한다. 즉 힘이나 기적을 상징하는 물건을 몸안에 지니면 똑같은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유감주술의 영향이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험을 느꼈다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신앙때문에 이빠진 제왕들이 「틀니」일망정 뒤늦게 제모습을갖춘것은 지난 9월말. 차를 타고 우연히 한남대교를 지나던 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이 이를 보고 이상배서울시장에게 시민의 입장에서 『사소한 것일수록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며 보치를 귀뜸해준 것. 이시장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장안의 유명한 석수장이 김세중씨(38)에게 틀니 제작을 의뢰했다. 김씨는 훼손된 부분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강력접착제를 쓰기위해 쌓인 때를 염산으로 3일동안이나 씻었다고 했다. 또 며칠만에 가까스로 찾은 똑같은 석재에 강력접착제를 바른뒤 부서진 이빨주위에 시멘트로 보강했다. 처음 석상을 만든 홍익대 전교수는 『비록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지만 이빨이 부서져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말못하는 석상이라 해도 허황된 믿음때문에 시민의 재산인 수호상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계도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사이비 믿음때문에 전국의 오래되고 유명한 석불이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코가 거의 남아나지 않았으며 치악산 용머리상의 뿔과 소요산 사자상의 이빨도모두 뽑혀져 있다.
  • 「의치심기」 기술경쟁 치열(해외의학)

    ◎치근에 구멍뚫어 티타늄뿌리기둥 심어/틀니보다 씹기쉬워 환자들에 인기높아 「의치심기」가 틀니를 밀어내고 치과계통의 보편적인 치료방법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특허분쟁 등 관련기업들간에 시장석권을 위한 기술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썩은 이가 남긴 치근에 구멍뚫고 의치를 심는 이 방법은 틀니보다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음식물을 씹기 용이하고 건사가 쉬울 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치아에게 나쁜 영향을 덜 미친다는 점에서 의사·환자 모두에게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현재 미국 한 나라만해도 지난 91년 한해 이 「의치심기」의 시장수요는 1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또 이 나라의 틀니사용자는 4천만명 정도며 치아 하나 이상을 결손한 사람이 6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어 그 잠재시장은 더욱 짭짤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대학에는 치대에 의치심기와 관련한 전문학과가 설치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의치심기는 남아있는 치근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그 곳에 티타늄으로 된 「뿌리 기둥」을 심는다. 이 기둥은 볼트 너트식으로 그 위에 돌출되는 기둥을 조립해 이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뒤 3단계로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 등으로 만들어진 가짜이를 지탱시킬 철제프레임을 씌우고 그 위에 의치를 결합시킨다. 「의치심기」 방법은 현재 40여가지. 그 각각의 디자인이나 조립방법 등이 모두 다 특허 등 산업재산권으로 출원돼 있다. 의치 심는 방법까지도 팔 물건의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엔 ITI기법이라 불리우는 스위스식 의치심기 방법이 빠른 속도로 고객을 확보해 나가면서 기존시장 점유상황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방법은 기존의 의치심기에서 필요한 두차례 시술을 한차례로 줄였다는 편리성도 갖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시장점유를 위한 끊임없는 기술개발은 기업간의 특허분쟁 등을 수반하고 있다. 기록과 관련학자들에 의하면 의치심기는 이미 4천여년전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 나무 등이 쓰이던 재료는 금세기에는 각종 합금으로 대치됐지만 60년대에 티타늄이 쓰이기 전까지는 의치가 몇년 이상을 버텨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의치주위 잇몸 피부조직이 세균에 감염되는등 보편적인 이용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문제에 돌파구가 된 것은 티타늄. 지난 52년 스웨덴의 퍼­잉그바르 브란넨마크 교수가 살아있는 뼈가 어떻게 손상을 회복해 나가는가를 연구관찰하는 도중에 티타늄이 뼈의 조직과 엉겨붙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티타늄은 「의치심기」를 보편화시켰다.
  • 외언내언

    중국 협서성 중부에 있는 성도 서안. 주의 호경,진의 함양,한의 장안 등 역대 왕조의 도읍이 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수·당의 장안은 가장 번성했던 도읍. 당이 멸망하면서부터 쇠락하여 간다. ◆그곳에서 1036년 12월12일 이른바 서안사건이 일어난다. 국부군의 공산군 토벌 총사령관 대리 장학량이 장개석총통을 감금한 사건. 12월12일로 12가 겹쳐 「쌍십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중국판 「12·12」다. 그 옛날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다는 온천 화청지에서 잠자던 장총통은 장의 동북군 1개사단과 양호성의 서북군 1개 연대에 포위당한다. 급해진 장총통은 틀니를 목욕탕 선반에 두고 잠옷 바람으로 탈출했다가 뒷산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장총통은 먼저 나라안을 평정하고 나중에 외적을 몰아낸다는 정책을 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과 타협하며 모택동의 공산당 토벌에만 전력을 기울였던 것. 군벌이었던 아버지 장작림을 일본군에 의해 잃은 장학량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먼저 몰아내야 한다는 「일치항일」론자. 그래서 국부군이 공산군 토벌을 독려하러 온 장총통을 감금,국공협상을 주선한다. 국민당 정부의 약화는 이 때부터라고 해야겠다. ◆풀려난 장총통은 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그리고 금고 10년형을 받은 그를 이튿날 사면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후 50여년에 걸친 연금­유폐의 시작. 감시의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만으로 쫓겨간 다음에도 마찬가지. 연금생활은 장총통 사후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1일 90회 생일을 맞으면서 자유에의 바람이 불었다. 정부가 나서서 망백연을 열어주면서 이등휘총통 등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만정부의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린 제스처일 수도 있다. 또 그의 민족단결정신을 뒤늦게나마 인정한 장씨 아닌 이씨 정권의 배려였다 할수도 있겠고. 그가 10일 미국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처와 자녀들을 만날 목적으로. 이 또한 시대의 흐름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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