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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공소발표문 요지

    ▷12·12사건 관련◁ ○서울지방검찰청은 그동안 특별수사본수를 구성,수사를 전개하여 왔던 세칭 12·12사건등과 관련,오늘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피의자를 서울지방법원에 군형법상의 반란수괴,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공소를 제기하였음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세칭 「10·26사건」이후 피의자 전두환은 국군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동 노태우는 9사단장으로 각 재직하면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군내부인사,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의 의견대립 등으로 마찰을 빚어 오던중 그를 제거하고 불법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구실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로 수도권 핵심지휘 부대장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및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을 만찬을 빌미로 음식점으로 유인하여 육군정규지휘계통의 즉각대응체제를 혼란케 한 다음 ­위 특전사령관,수경사령관 지휘하에 있는 1공수여단장·3공수여단장·5공수여단장·30경비단장 및 수도권 방위의 중핵부대지휘관인 1군단장·수도군단장·9사단장·20사단장·국방부 군수차관보등을 포섭,경복궁 구내에 있는 30경비단에서 회합,지휘부를 형성하여 위 정규지휘부대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정규지휘계통보다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기로 계획한 다음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부하인 보안사령부 인사처장과 육본 헌병대장,수경사 33헌병대장 등으로 하여금 정승화 총장을 총기등으로 강제 체포케 하고 ­육군의 정규지휘계통의 명시적인 출동금지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병력을 동원 △1공수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 검거를 △3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 점거 및 특전사령관의 체포를 △수경사 헌병단은 육본측 장성등 체포를 △5공수여단은 효창운동장 진주를 △9사단 및 2기갑여단은 중앙청 진주를 △30사단은 고려대학교 진주등을 하도록 지휘,군사반란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상관살해,상관살인미수등 인명을 살상하여 국민의 군대로서 맡겨진 임무를 저버리고 하극상의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반란의 최고책임자로서,당시 9사단장인 노태우는 반란의 중요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등이 그 요지임. ▷수뢰 및 축재사건 관련◁ ○검찰은 본건 수사와 더불어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와 축재혐의에 대하여도 수사중에 있음 ­현재까지 기업인등 20여명을 조사하고,금융계좌 추적등을 통해서 수사한 바,친인척등 명의로 된 부동산과 함께 금융자산등 상당히 많은 액수의 축재사실이 발견되어 현재 계속 수사중에 있음 ▷5·18 및 12·12나머지부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됨에 따라 ○5·18사건은 물론 12·12사건의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도 국민의 여망에 귀를 기울이면서 철저한 수사를 전개하여 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임
  • 12·12 5·18 「핵심」 최소한 「불구속 기소」

    ◎나머지 관련자 사법처리 방향/연대·대대장급 16명 기소유예 가능성 검찰이 21일 12·12사건과 관련,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군사반란 등 혐의로 기소함에 따라 핵심 관련자와 단순가담자·부화뇌동자 등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내년 1월 중순쯤 12·12및 5·18 관련자들에 대한 조치를 일괄적으로 내린다는 방침이다.두 사건의 피고소·고발인은 75명.벌써부터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정하기 위한 선별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져졌다. 검찰은 특히 정호용 특전사령관(5·18 당시 직책)·황영시 1군단장(12·12 당시 직책·이하 같음)·차규헌 수도군단장·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박준병 20사단장·최세창 3공수여단장·이학봉 보안사 대공2과장·허화평 보안사령관 비서실장·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등 12·12와 5·18사건에 깊이 연루된 11명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12·12 때의 「경복궁 모임」에서부터 정승화 전계엄사령관 강제 연행을 비롯,5·17 비상계엄 전국확대,5·18 등으로 이어지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검찰의 1차조사 결과 12·12 관련자들은 기소유예 조치 됐지만 이번에는 구속기소는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검찰은 또 5·18사건의 처벌 범위를 주영복 당시 국방부장관·정특전사령관·박20사단장·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군지휘부와 소준렬 전교사사령관·최세창 3공수여단장·최웅 11공수여단장 등 광주현장 지휘자,발포명령과 양민학살의 직접 책임자로 좁힐 것으로 보인다. 5·18사건 자체가 내란으로 규정되는 것도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당시 20사단61연대장이었던 김동진 현합참의장 등 광주에 투입된 연대장과 대대장급 16명에 대해 검찰은 군지휘체제상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고려,기소유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 12·12­5·18 진상규명 가속화/「특별법」제정이후 검찰행보

    ◎“시효 걸림돌 해소” 관련자 소환 박차 5·18특별법이 19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5·18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특별법의 제정으로 재수사의 법적 틀이 새로 마련된데다 공소시효라는 걸림돌도 제거됐기 때문이다.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가능한 빠른 기간안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30일부터 12·12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군형법상 군사반란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전격구속했다.비자금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군사반란죄를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12·12사건 당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는 등 군권장악에 참여한 핵심관련자들은 군사반란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었다. 5·18사건도 마찬가지.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이나 전전대통령의 11대대통령 취임일인 9월1일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재·조법조계에서는 다수를 차지했다.이 경우 전·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됐으며 전·노씨에 대해서도 내란 관련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특별법은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저지른 뒤 대통령이 되었거나 대통령 재임중 이같은 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될 뿐만 아니라 다른 공범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미친다」라고 규정,수사에 따른 법적 장애를 일거에 해소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은 12·12와 5·18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도록 법적인 사정변경사유를 마련해준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법이 소급처벌규정을 담고 있어 위헌소지가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검찰로서는 수사의 진행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특별검사제가 채택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안도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12·12와 연관지어 5·18에 접근하던 예비수사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5·18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자세다. 금명간 정호용 전특전사령관·소준렬 전전투병과교육사령관을 비롯,5·18당시 광주 과잉진압 등에 참여한 관련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특히 이미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허삼수·허화평·권정달·이학봉씨 등 신군부 핵심관련자를 앞으로는 특별법에 의거,피의자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지금까지의 조사만으로도 충분히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및 이에 따른 검찰의 5·18수사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박모변호사는 『특별법이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헌시비가 일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면서 『검찰의 수사에 대해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정호용씨 등 곧 소환/안현태씨 어제 소환 조사

    ◎5·18법 통과따라/전씨 21일 반란혐의 기소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9일 헌정질서 파괴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은 5·18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소환,조사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재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정웅 31사단장,소준렬 전투병과교육사령관 등 관련자와 접촉,금명간 소환 일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정전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특별법에 따라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뒤 선별적으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인 오는 22일 전전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 혐의로 기소하고 5·18관련 내란 혐의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는 계속 조사해 추가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전씨를 기소할 때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태우전대통령에게도 군사반란혐의를 추가,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22일 그동안의 수사 내용을 브리핑하는 형식으로 중간 발표하기로 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이와 관련,『12·12사건에 대한 재수사결과 전전대통령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혐의는 입증했지만 정권을 찬탈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으며 비자금 부분도 이번에 기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씨 비자금을 포함해 그동안의 수사 내용은 브리핑 방식으로 중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12·12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신군부측에 대항한 하소곤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또 이날 전씨의 비자금과 관련,하오 2시15분 안현태 전청와대 경호실장을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해 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안씨를 상대로 김종상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49)에게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을 시중은행에 분산예치토록 지시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지난 15일 김씨를 소환 조사하면서 김씨가 안씨의 지시로 거액을 가차명 계좌로 분산했다는 진술을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관련,방문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데다 공판전 증인신문제도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판단,전전대통령의 공판 때 최전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양정모 전국제그룹회장이 지난 18일 『지난 85년 전씨가 국제그룹을 해체하는 등 78개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인수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고 5천여억원을 상납받았다』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 9사단 서울진입 집중추궁/검찰/안병호·김진선·최광수씨 조사

    ◎「5·18」핵심관련자 내일부터 환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 3차장)는 18일 12·12당시 9사단 작전참모 안병호씨와 수경사 작전처보좌관 김진선씨등 2명을 피고소인자격으로,최규하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최광수씨를 참고인자격으로 각각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 5·18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씨 등 핵심관련자들을 빠르면 20일부터 본격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안씨를 상대로 12·12당시 노태우(노태우)9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동원,서울로 진입하게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또 김진선씨에게 수경사 33헌병대가 수경사령관실에 모여있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윤성민 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을 강제연행한 과정과 상황 등을 신문했다. 검찰은 최광수씨를 상대로 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와 5·17 비상계엄확대조치,80년8월16일 최규하대통령의 하야 등 일련의 과정에서 최전대통령이 취한 조치와 신군부측의 움직임 등에 대해조사했다.
  • 전씨 3차 구류신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4일 두 사건 당시 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 전국방장관을 이날 하오 소환,12·12사건 당일 「경복궁모임」참가 및 중앙청점령경위와 정병주 전특전사령관체포 경위,5·17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상황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날 하오 2시 김상희주임검사 등을 서울구치소에 보내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제3차 구류신문을 실시했다.
  • 「전씨 계좌」 30여개 오늘 압수수색/수백억대 CD관련

    ◎측근들 5공 율곡사업 뒷돈 확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4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측근 3∼4명이 율곡사업과 관련,기업체로부터 뇌물성 자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와 관련,『수사 결과 전씨 재직 당시 율곡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씨의 측근들이 국내 방위산업체와 무기중개상들로부터 떡값을 상납받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이에 따라 전전대통령도 측근들이나 기업체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수사본부는 또 전전대통령 소유로 보이는 30여개의 차명계좌에 대해 15일중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을 벌이기로 했다. 수사본부는 또 실명제가 실시되기 전 서울 명동 등 사채시장에 흘러나온 수천억원대의 양도성 예금증서(CD)와 장기채권 가운데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전씨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본부는 특히 5공 당시 율곡사업의 하나인 K­1전차 포수조준경,잠수함도입 계약과정에서 거액의 리베이트가 건네진 사실을 밝혀내고 육참총장 및 국방장관을 지낸 정호용 전특전사령관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 사법처리 대상 선별 착수/12·12 수사

    ◎최규하씨 법정증인 채택 검토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검사)는 13일 검찰의 1차 방문조사를 거부한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해 앞으로 몇차례 더 방문조사를 시도해 설득해 나가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최씨가 증언을 끝내 거부할 경우 마지막 방법으로 「1차공판전 증인신문제도」를 활용,법정증인으로 채택해 조사키로 내부방침을 결정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소환통보를 받은뒤 잠적한 당시 3공수여단장 최세창 전국방장관을 이날 출국금지조치했으며 해외 체류중인 박희도 전1공수여단장,장기오 전5공수여단장에 대해서도 조기 귀국하도록 이날 가족에게 통보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이날 『지금까지 12·12사건관련 피의자 및 참고인 39명에 대한 소환조사가 거의 마무리됐으며 이제는 중간정리단계』라고 말해 이날부터 사법처리대상자를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했음을 내비췄다. 검찰은 또 국회에서 추진중인 5·18특별법이 제정되는대로 5·18사건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본격소환에 나설 방침이다. 1차 소환대상자는 신현확 전총리,정호용 전특전사령관,정웅전 30사단장,소준렬 전전교사사령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날 소환됐던 장세동씨는 이날 검찰조사가 끝난뒤 『12·12는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군사반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 최 전대통령 진술 거부/검찰 방문조사 실패

    ◎정호용·신현확씨 금명 소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최규하 전대통령의 자택을 방문,조사를 벌이려했으나 최 전대통령은 진술을 거부했다. 최 전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30분쯤 자택을 방문한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 부장검사와 이문호 검사에게 『대통령 재임중 일어난 공적인 사건에 대한 조사에 일일이 응하는 것은 헌정사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을 밝히고 조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부장검사등은 1시간15분만인 하오 5시45분쯤 철수했다. 검찰은 이날 최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대비,▲신군부측의 12·12 사전모의를 알았는지의 여부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재가 과정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중정부장서리 겸직 경위 ▲5·17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상황 보고 경로 ▲대통령직에서 돌연 하야한 경위 등 1백여개의 질문항목을 준비했다. 검찰의 한고위관계자는 『최 전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최 전대통령측과 추가조사 방안을 절충해 나가는 한편 최 전대통령의 비서실장 최광수씨 등을 소환,조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 전대통령으로부터 민족스런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공판전 증언신문절차를 밟아 강제로 참고인진술을 받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12·12 때 최 전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열씨를 소환,정 전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는 과정에서 신군부측이 권총을 휴대했는지 등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또 당시 「경복궁 모임」의 핵심인물인 30경비단장 장세동씨를 비롯,합수부 수사국장 백동림씨,정병주 특전사령관 전속부관 정범주씨 등을 피고소인과 참고인 등 자격으로 소환·조사했으며 정승화 전육참총장도 재소환 했다. 특히 장세동씨를 상대로 12·12사건 전개과정에서의 구체저인 역할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규모·경위,5공의 각종 의혹사건 등에 대해 추궁했다. 한편 검찰은 12·12 당시 50사단장이던 정호용 신한국당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를 금명간 소환하기로 했다.
  • “공수부대 질책하지 말라/전 보안사령관 편지 보내”

    ◎「광주」 진압지휘 소준열씨 밝혀 【광주=최치봉 기자】 5·18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사령관으로 전남도청 진압작전 등을 지휘한 소준열(64)씨는 『80년5월23일 사령관 부임직후 「공수부대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라는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소씨는 9일자 「전남일보」와 인터뷰에서 『부임직후 사태악화의 책임을 물어 「너희 때문에 시민의 눈이 뒤집혔다」며 공수부대 지휘책임자인 최웅·최세창 여단장을 질책하고 공수부대를 광주비행장으로 철수시켰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5월24일 전씨가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16절지 크기 한면에 친필로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지나친 질책은 곤란하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왔다는 것이다.그러나 친서는 보관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소씨는 또 80년5월25일 광주를 방문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군이(진압)작전을 해서는 안된다.희생자가 많으면 국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강경진압에 반대했다고 증언했다. ◎전씨측 “사실 아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양우 변호사는 10일 5·18당시 전씨가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의 친필서한을 보냈다는 소준열 전광주전투병과 교육사령관의 주장에 대해 『그런 서한을 보낸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 「12·12 핵심부분」 접근하는 검찰

    ◎「반란」 매듭단계… 「내란」 입증에 박차/「보안사팀」 곧 소환… 「사전계획」유무 규명/「대통령에 협박」 최규하씨 증언에 승부 검찰이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출두통보와 함께 12·12사건 재수사가 점차 핵심부인 내란죄 입증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검찰은 유학성씨 등에 이어 8일에도 차규헌·김진영씨등 경복궁모임의 핵심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다음주부터는 내란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전대통령과 이른바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검찰의 이번 12·12 및 5·18 재수사가 신군부측의 반란죄에 그친 지난해 수사와는 달리 내란죄까지 규명하는 데 최종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검찰의 재수사가 핵심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반란죄에 이어 내란죄를 입증할 핵심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도 의미한다. 반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는 이미 소환되고 있는 「경복궁모임」 참가자들이고 내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란 대통령 재가시 협박여부를 증언해줄 최전대통령과 정권창출을 위한 장기계획의 실존여부를 확인해줄 이른바 「보안사팀」이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모임」에 대한 핵심인물인 유학성·차규헌·김진영씨등에 이어 조만간 장세동·박희도씨등 나머지 핵심인물에 대한 조사를 끝내면 「경복궁모임」을 중심으로 한 반란행위 수사는 일단락된다. 검찰은 반란죄→내란죄라는 수사순서에 따라 내주부터는 내란죄을 입증할 핵심인물인 최전대통령과 「보안사팀」에 대한 직접조사에 들어간다. 반란죄 조사에서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가 먼저였듯이 이번에도 7일 전씨에 대한 2차조사가 내란죄 수사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보안사팀」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허삼수,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세간에는 이들이 12·12사건은 물론 5공화국을 탄생시키는 장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장기계획여부를 확인하고 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강압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내란죄을입증할 수 있다. 참모총장에 대한 강제연행과 무단병력동원이 군의 명령계통을 전면부인한 반란죄라면 대통령에 대한 강압은 국정을 무시한 내란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기대를 걸 수 없는 형편이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허화평·허삼수씨는 소환조사가 쉽지 않은 현역 국회의원신분인데다 소환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장기계획여부에 관해 부인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수사기법에만 국한시킨다면 이번 검찰수사의 최대승부처는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다. 대통령에 대한 강압여부를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전대통령 자신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전대통령측은 『일방적인 과거부정의 상황에서는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를 계속 회피하고 있어 검찰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12·12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총장연행 재가」 강요­차규헌씨/육본 수뇌부 무장해제­신윤희씨/「경복궁 모임」 참여 핵심­김진영씨/병력 출동… 중앙청 점거­구창회씨 12·12사건과 관련,8일 검찰에 소환된 5명의 참고인 가운데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은 거사를 모의한 「경복궁모임」의 핵심 멤버.사건 당일인 12일 하오 9시30분 최규하 전대통령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해 재가를 거부하자 전두환 합수본부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대통령관저인 총리공관을 찾아가 최전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요했다.그는 최전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자 경복궁의 30경비단으로 돌아와 병력을 동원,육군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차씨는 거사가 성공한 뒤 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했다.국보위 위원과 교통부장관(86∼88년)을 지냈으나 골프장 내인가관련 뇌물수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은 장세동 30경비단장과 함께 대령급으로 경복궁모임에 참여한 전씨의 핵심측근.5·6공 때 정치군인의 대표격으로 꼽혔으며 수방사령관·교육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다.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단부단장은 지난 4일 소환,조사를 받은 조홍 당시 헌병단장과 함께 「거사」다음날인 13일 상오 3시40분 수경사 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신씨는 수방사 헌병단장을 거쳐 헌병감에 올랐다가 4년전 예편했다. 구창회 9사단 참모장은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의 지시로 13일 상오 1시30분 전방에 주둔하던 9사단 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거하고 신군부 반대진영의 병력동원을 저지했다.노씨의 군맥인 「9·9인맥」의 핵심인 구씨는 6공 때 수방사령관과 보안사령관을 역임했다. 이날 소환된 5명 가운데 이건영 당시 3군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전두환씨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에 대항해 병력을 동원,저지하려다 80년 강제예편된 피해자측인물이다.그는 한국마사회장을 거쳐 14대 총선 때 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옮겼다.
  • 12·12당시 박준병·고명승씨 역할

    ◎박주병­노국방에 「정총장 연행」 결재 강요/고명승씨는 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하나회 주요멤버·대예편 등 공통점 박준병 자민련의원(62)과 고명승씨(60)는 검찰이 12·12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한 뒤 처음으로 소환한 하나회의 핵심 회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준병씨는 79년 12월 12·12사건 당시 수도권인 성남 육군 종합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의 사단장이었다. 육사 12기 가운데 선두주자였던 박의원은 당시 육사 선배이자 하나회 선배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연락을 받고 경복궁내 수경사 30경비단 모임에 참가했다. 박의원은 이어 신군부측과 육군본부측의 무력충돌이 일어나자 자신이 지휘하는 20사단 참모장에게 전화로 자신의 육성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 그가 지휘하던 20사단 61연대 병력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이후 서울 장충동으로 출동했었다. 박의원은 보안사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승화총장 연행문서에 결재하라고 강요한 인사 가운데 한사람이기도 하다. 박의원은 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될 때 주요 군 지휘관회의에서 지지발언을 한뒤 5월21일 20사단 병력을 이끌고 광주로 출동해 진압 작전을 지휘,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박의원은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반란모의 참여 및 주요임무종사·불법진퇴·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 미수·초병살해등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박의원은 81년 7월∼84년 7월까지 국군보안사령관을 역임하고 84년 대장으로 예편,고향인 충북 옥천 영동 보은 지구에서 12·13·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지난 10월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으로 옮겼다. 육사 15기인 고명승씨는 12·12사건 당시 대령으로 청와대 경호실 작전담당관 겸 상황실장이었다. 고씨는 12·12사건 당일 신군부측이 정총장 연행에 대한 대통령 결재를 받는 동안 외부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는 당시 경복궁에 주둔하고 있던 경호실 55경비대대 3개제대,101경비단 1개소대 병력을 무단 출동시켜 총리공관을 경비하고 있던 구정길 총리공관 특별경비대장과 특별경호대 헌병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시키고 총리공관을 장악하였다. 이때문에 지난해 검찰의 12·12사건 수사에서 반란 주요임무 종사죄에 대해 집중조사를 받았다. 고씨는 이후 80년 청와대 경호실차장,83년 백마사단장,85년 수도방위사령관,86년 국군보안사령관 등 군요직을 두루거친 뒤 89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병석의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쓴「휠체어에 사랑을 싣고」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2년부터 민자당 전북 부안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시 작점참모부장 보좌관 김광해씨 문답/“「권총위협」 작전참가 대가 들려줘”/총리공관 점령뒤 창문통해 현장 목격 12·12당시 반란군측의 총격으로 부상을 당한 하소곤 당시 육본작전참모부장의 보좌관이었던 김광해씨(52·「12·12쿠데타진상규명위원회」간사)는 6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뒤 『합수부측이 총리공관을 장악했을 때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이 권총을 휘두르며 최규하전대통령을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목격자의 신원은. ▲당시 총리공관 접수작전에참가했던 육사출신의 최모대위다.소속은 30경비단인지,101경비단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당시 중대장이었다. ­최대위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듣게 된 경위는. ▲동해경비사령부 정훈참모로 근무하던 80년말∼81년초 이 부대로 전입한 최대위가 찾아와 「참모님도 12·12의 피해자라고 들었다.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목격담을 들려줬다. ­당시 최대위가 말한 내용은. ▲총리공관을 점령한 뒤 창문을 통해 전씨가 최전대통령을 협박하는 장면을 보았다며 이처럼 군의 명예가 실추된 상황에서 더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전씨가 어떻게 협박했다고 했나. ▲심하게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들었다.자세한 것은 검찰조사에서 진술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총을 사용했나. ▲군인이 협박하려면 뭘로 하겠나.최대위 말로는 전씨가 대통령 면전에서 권총을 꺼내 휘둘렀으며 대통령은 꼼짝도 못하더라고 했다. ­최대위는 지금 어디있나. ▲81년 제대해 사무관으로 임용됐다.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으나 밝히기는 곤란하다.
  • 「12·12」 관련 검찰소환 4인의 행적

    ◎유학성씨 최 대통령에 정 총장 연행 재가 요구/조홍씨 수도권 핵심지휘관들 격리·체포/노재현씨 정 육참총장 연행 사후재가 중개/성환옥씨 총장공관서 총격… 총장연행 실행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4·5일 잇따라 소환한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과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와 성환옥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등의 사건 당시 행적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핵심 관련자인 유씨는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중장)로 수경사 30경비단 「경복궁 모임」에 적극 가담,12·12를 주도한 인물중의 한명이다.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에 대해 요청한 재가를 최규하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하자 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집단으로 몰려가 최대통령에게 재가를 요청했다.육참총장 석방을 요구하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에게 신군부측에 가담하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3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전두환씨의 후임으로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85년 12대 총선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원내에 진출,13·14대 총선 때 경북 예천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내리 당선됐다.문민정부 출범후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축재사실이 드러나 의원직을 사퇴했다. 조홍 수경사헌병단장(대령)은 5·6공 시절 주요 직책을 맡지는 못했지만 당시엔 중요한 두가지 역할을 했다.전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신군부 핵심이 30경비단에 모이는 시각에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헌병감 등 수도권 핵심지휘관들을 격리하는 역할을 맡았다.『전보안사령관이 초대했다』며 하오 6시 30분쯤 장수경사령관 등이 연희동 요정에 모이자 『합수부장이 대통령보고 때문에 총리공관으로 갔는데 하오 8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하며 하오 7시35분까지 1시간 남짓 붙잡아 둔다. 이어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 등의 체포에도 핵심 역할을 맡는다. 육본 헌병감을 거쳐 82년 준장으로 예편,재향군인회 사업국장,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손보협회 회장을 지냈다. 참고인으로 소환된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은 신군부측이 정승화총장의 연행과 관련,최대통령으로부터 사후재가를 받는데 중개자 역할을 했다. 정전총장이 연행된 12일 하오 7시10분쯤 총장공관쪽에서 총성이 나자 인근 단국대 체육관으로 가족들과 함께 피신한뒤 여의도에 있는 이경률 당시 합참 작전국장의 집에 가족들을 데려다 놓고 하오 9시30분쯤 육본 B2벙커로 돌아온다.1공수여단의 국방부진입 소식을 듣고 국방부 건물 지하실 계단밑에 피신한다.13일 상오 3시50분쯤 보안사 요원들에게 발견된 뒤 연행돼 신군부측의 강압에 못이겨 정총장의 연행을 사후 결재했다.5시15분쯤엔 총리공관에서 최대통령을 만나 신현확 국무총리,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사태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결재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최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도록 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성환옥씨는 허삼수·우경윤 대령 등과 보안사 수사관 및 수경사 33헌병대 1개중대 등 60여명으로 하오 7시10분쯤 육참총장 공관에 도착,이재천 총장수행부관과 경호장교에게 총격을 가한뒤 정총장 연행에 성공했다. 85년 준장으로 예편한뒤 86년대통령경호실 차장,90년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냈다.
  • 「반란」구체증거 확보“시간문제”/12·12 경복궁 모임 수사안팎

    ◎「우발충돌」 뒤집을 「한달전 모의」 입증/「12·12」­「전씨 대권취임」 한과정으로 파악 검찰이 4일 12·12 사건 당일 경복궁 모임을 주도했던 신군부 인사 가운데 첫 소환자로 조홍 전수경사헌병단장을 선택한 것은 신군부가 사전모의를 통해 군사반란을 일으켰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검찰은 「반란의 시작이자 모체」인 30경비단 모임 가담자에 대한 수사로부터 12·12 사건 재수사의 첫발을 디딘 셈이다.이는 30경비단에 모인 목적·모임의 계기,모임자들의 관계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히면 반란죄여부를 규명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이 지난 3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구속 수감한 직후 11시간 넘게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이날 전씨에 대한 조사를 유보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전씨가 검찰조사에서 반란혐의에 대해 전면 부정했기 때문에 관련자의 진술을 통해 전씨의 항복을 받아내거나 공소유지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이해된다. 검찰은 따라서 지난 번 12·12사건 수사 때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이라는 「표면적」 사건에만 집착했으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전씨 등 신군부측이 「12·12사건은 정게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충돌」이라고 주장한데 대한 반증을 확보하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분석된다.12·12에 대한 사전모의는 한달쯤 전인 11월 중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조씨등을 상대로 내란 혐의에 대해서도 추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검찰은 지난 12·12사건 수사결과 발표문에서 「10·26사건 수사와 직무상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방부 군수차관보,일선 군단장과 사단장,특전사 여단장 등과…협의하고」라고 명시,반란이라고 규정하면서도 5·18사건과의 연계성 여부까지는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검찰은 그러나 이번에는 12·12사건 이후 벌어진 5·17 전국계엄확대∼5·18 광주사태∼8·16 최규하대통령 하야∼9월1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추대에 따른 대통령 취임∼81년 1월14일 계엄해제∼3월3일 12대 대통령 취임 등을 일련의 내란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날 최환 서울지검장도 『5·18사건에 대한 수사는 특별법이 제정된 후 진행될 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또 이날 조씨와 함께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을 소환한 것은 79년 12월13일 상오 3시50분 전씨등 내란세력에 의해 연행돼 정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승인한 뒤 최규하 전대통령으로부터 사후재가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신군부의 강압이 있었느냐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신군부측은 합동수사본부의 조사권은 국방부장관의 사전결재가 없이도 행사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이기 때문에,정계엄사령관을 연행하기 전에 최전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사후 재가까지 받았으므로 법적하자가 없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만약 노 전장관으로부터 재가과정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면 신군부측의 주장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다. 검찰은 앞으로 계속 12·12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어서 비록 조전단장과 노전장관으로부터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반란혐의 전반에 대한 증거를 포착하는 것은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 노재현 전국방 소환 조사/검찰 12·12 특수부

    ◎정총장 연행 재가경위 추궁/조홍 전수경사 헌병단장도 환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검사)는 4일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과 조홍수경사헌병단장 등 2명을 소환하는 등 12·12사건 관련자 32명에 대한 본격적인 재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노 전국방장관을 상대로 79년 12월 12일 정승화 육참총장에 대한 합수부측의 연행을 재가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으며 조전헌 병단장에게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김진기 헌병감 등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지휘부대와 격리한 배경 등에 대해 밤늦게까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노·조씨에 이어 12·12관련자 32명 가운데 유학성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 등 이른바 「경복궁 모임」참가자 12명을 5일부터 소환조사할 방침이다.또 허삼수전보안사 인사처장·허화평 전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 「보안사팀」에 대해서도 이달 중순까지 계속해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최환 검사장은 이날 『우선 12·12관련자 전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전·노씨와 관련자들의 반란죄부분의 혐의를 입증할 예정이며 5·18관련자에 대한 조사는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이날 전씨에 대한 2차 출장조사를 벌이지 않고 노·조씨를 우선 소환조사한 것은 전씨가 『법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거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당시 관련된 신군부측인사에 대한 조사를 먼저 실시해 이를 근거로 전씨를 추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와 함께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를 추진하고 있으나 최전대통령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므로 조사도 불필요하다』며 검찰조사를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종찬 본부장도 이날 『5일중으로는 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상오 김상희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을 서울구치소에 보내 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2차 출장조사를 벌였다. 이에 앞서 김상희 부장검사 등은 3일 안양교도소를 방문,전씨를 상대로 11시간동안 조사를 벌인 결과 전씨로부터 정총장을 연행토록 지시한 사실은 시인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는 그러나 『정총장 연행은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이었다』며 반란죄에 대한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3백여항목 미묘한 사안마다 함구/전씨 구속­검찰 신문 내용

    ◎“정승화 총장 10·26가담 증거있나” “…”/“중앙청·육군본부 점경 지시했나” “…” 3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은 특별수사부의 김상희 주임검사로부터 12·12사건에관해 집중적인 신문을 받았다.김검사는 이날 상오11시35분부터 밤늦게까지 전씨를 끈질기게 추궁했다. 전씨 신문내용을 검찰의 브리핑등을 토대로 재구성해본다.전씨는 수사당시 제출했던 서면답변서의 답변내용을 반복하거나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묵비권행사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3백50여개 신문항목은 12·12사건에 국한됐으며 편의상 이를 12·12사건 전개의 시간대별로 정리한다. 김검사=12·12 당일 경복궁 30경비단에 노태우9사단장 등 8명을 모이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전씨=당시 국가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김=사전에 참석자들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계획을 알려주었습니까. 전=노씨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검찰조사결과 노씨이외의 참석자들이 사전에 모두 정승화씨 연행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일부는 피의자에게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이 모임을 알리는데 사전에 결정된 암호명을 사용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참석자들은 「하나회」회원으로 평소 시국이나 군내부 제로 자주 모임을 가졌다는데 사실입니까. 전=「하나회」는 친목단체였을 뿐입니다. 김=정승화씨를 연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상 불가피했습니다. 김=당시 합수부측은 군최고책임자였던 정씨가 사건발생장소 부근에 있었고 계엄사령관이 된 이후 합수부의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방조혐의를 주장했지만 살해사건에 가담했다는 정확한 증거가 있었습니까. 전=…. 김=정씨의 혐의가 분명하고 연행이 불가피했다면 왜 사전에 대통령의 재가를 얻지 않았습니까. 전=당시 상황이 사전 재가를 얻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김=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건의하러 가기 30분쯤전인 하오6시쯤 이미 허삼수·우경윤대령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경사 30헌병대 헌병 60여명이 보안사에 집결,하오6시50분에 연행을 위해 출동했는데 결국 사전재가를 얻지 않고 행동한 것 아닙니까. 전=…. 김=참모총장공관에 도착한 수사관들이 일방적으로 재가를 얻었다며 총장을 연행하려 했는데 이를 사전에 지시했습니까. 전=연행하도록만 지시했습니다. 김=공관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이재천수행부관 등에게 총기를 발사,사상자가 났는데 사전에 발포를 명령한 바 있습니까. 전=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김=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모든 상황이 끝난 뒤인 새벽 5시쯤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의 배석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김=하오9시30분쯤 2차 재가요청시 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 등 5명의 장성들과 함께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국방장관의 소재파악보다 대통령의 재가를 호소하자는 의견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김=최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협박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맞습니까. 전=재가를 건의했을 뿐입니다. 김=재가요청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까. 전=아닙니다.김=정승화씨 연행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제1공수여단 등 군병력동원을 지시했습니까. 전=우발적인 충돌결과였습니다. 김=윤성민 참모차장등 육군참모진이 임의로 육본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무력반발에 동조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총장계열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강행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참모총장의 연행이나 해임에 대한 국가원수의 재가가 없는 상황에서 임의연행한 것에 대해 육본참모진이 경계태세를 갖춘 것은 정당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까. 전=…. 김=이날 공수여단,9사단 29연대 등을 동원해 중앙청과 육군본부 등을 점령하고 육군수뇌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입니까. 전=아는바 없습니다.
  • 전씨,노씨등과 작당해 군사반란/전씨 구속­주요 혐의 내용

    ◎수차례 회합… 군권 장악계획 음모­반란 모의/총장공관 무력 점거… 정 총장 연행­반란 실행 3일 구속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적용하고 있는 범죄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화려」하다.영장요지를 분석한 전씨의 주요 범죄혐의 내용을 정리한다. ○거사일정 등 논의 ▷반란모의◁ 10·26사건 합수본부장인 전씨는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되고 권한 남용 문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어 인사조치당할 우려가 있자 정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79년 11월 중순부터 노태우 9사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박준병 20사단장 등과 수차례 회합,논의한 끝에 12월12일을 정총장 연행 거사일로 정했다.정총장 연행에 반발,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하오 6시30분 만찬초청 명목으로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전씨 등은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제압하기로 모의했다. ○초병 현장서 살해 ▷반란실행◁ 12일 하오 7시경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헌병을 동원,총장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제압한 뒤 하오 7시30분경 정총장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하오 9시30분쯤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고명승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등이 경호실 병력을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씨 등은 최규하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 하오 11시30분경 최세창 3공수여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은 특전사령관실에 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박희도 1공수여단장·서수렬 1공수여단 2대대장 등은 13일 0시30분경 1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거하고 노재현 국방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신윤희 헌병부단장 등은 김진선 수경사 상황실장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한 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전씨 수괴역 담당 ▷혐의내용◁ 전씨는 수괴로서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키고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동원해 중요 지점을 점거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또 김오낭을 살해하고 정병주와 하소곤·이재천·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특별법제정 발표에서 전씨 구속수감까지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연내제정 발표 ▲29일=정동년 등 5·18 고소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소취하 ▲30일=헌재,「5·18선고」 연기 공식발표 ▲12월1일 하오 6시10분=검찰,전두환씨 2일 하오 3시까지 출두통보 ▲2일 상오 9시=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고향인 합천으로 출발 ▲하오 6시10분=검찰,반란수괴등 6개죄를 적용,사전구속영장 청구 ▲하오 11시23분=법원,구속영장발부 ▲밤 12시=서울지검 수사1과장 등 수사관 9명,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합천 전규명씨 집으로 급파 ▲3일 상오 5시57분=수사관 9명,합천 도착 ▲6시9분=전씨에게 영장제시 ▲6시 34분=전씨,영장집행 완료 ▲6시 37분=전씨 호송차량 합천 출발 ▲10시 37분=안양교도소 도착,수감
  • 전두환 전대통령 구속영장 전문

    피의자는 55년 9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 제1공수특전단장,제1사단장을 거쳐 79년 3월5일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재직중 같은 해 10월26일 소위 「10·26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계엄사령부 소속 「고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거쳐 80년 8월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80년 9월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80년 10월27일 제8차 개헌에 의해 실시된 81년 2월25일 제12대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81년 3월3일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88년 2월24일 임기 만료로 대통령직에서 퇴임하여 현재 일정한 직업이 없는 자인 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중인 79년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유신헌법을 개정해 민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새로운 헌법질서 창출이 모색되는등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 군 내부에서도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에 즈음, 합수부 본부장인 피의자의 권한 남용으로 인해 정승화 계엄사령관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는 한편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피의자를 중심으로 한 소위 「하나회」 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될 뿐 아니라 피의자의 여러 가지 월권 등이 문제가 되어 정승화총장이 이를 이유로 인사조치할 기미를 보이자 정승화총장을 김재규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육군 소장으로 제9사단장인 노태우,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군수차관보인 유학성,육군 소장으로 제20사단장인 박준병,육군 준장으로 제71방위사단장인 백운택,육군 준장으로 특전사령부 제1공수여단장인 박희도,육군 준장으로 특전사 제3공수여단장인 최세창,육군 준장으로 특전사 제5공수여단장인 장기오,육군 대령으로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인 장세동,육군 대령으로 수경사 제33경비단장인 김진영,육군 대령으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인 허화평,육군 중령으로 보안사 대공처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인 이학봉,육군 대령으로 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인 허삼수,육군 대령으로 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 합수부 수사2국장인 우경윤,육군 중령으로 수경사 제33헌병대장인 최석립,육군 중령으로 육본 헌병대장인 이종민,육군 준장으로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인 정동호,육군 대령으로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인 고명승,육군 대령으로 수경사 헌병단장인 조홍,육군 중령으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인 신윤희,육군 대령으로 보안사 보안처장인 정도영,육군 소장으로 제30사단장인 박희모,육군 대령으로 제30사단 제90연대장인 송응섭,육군 준장으로 제1군단 제2기갑여단장인 이상규,육군 대령으로 제9사단 참모장인 구창회,육군 대령으로 제9사단 제29연대장인 이필섭,육군 중령으로 제9사단 작전참모인 안병호,육군 중령으로 특전사 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인 서수열,육군 중령으로 특전사 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인 박덕화,육군 중령으로 특전사 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인 박종규,육군 대령으로 보안사 정보처장인 권정달등과 공모하여, 1979년 11월 중순경부터 피의자는 상피의자 노태우및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장세동 김진영 허화평 이학봉 허삼수 등과 수차례 회합하여 정승화 총장 연행·조사 문제등을 논의한 끝에 같은해 12월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먼저 정승화 총장 연행에 반발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18시30분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 지휘를 사전 차단하고,피의자를 비롯한 위 15명은 거사 당일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승화 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하기로 모의하고, 이에따라 피의자는 위 허화평 이학봉 허삼수 우경윤 등에게 지시,정승화 총장 연행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연행에 필요한 인원의 차출과 차량,권총,M16소총및 실탄을 준비하게 한후, 같은해 12월12일 18시30분경 위 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노태우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장세동 김진영 등은 수경사 제30경비단실에 집결,보안사에 있는 피의자및 위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과 함께 지휘부를 구성하고 위 조홍 등은 피의자 등의 지시에 따라 같은 시각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육본 헌병감 등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하여 놓은뒤, 같은날 19시경 위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최석립 이종민 등은 무장한 보안사 수사관 7명과 수경사 제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동원하여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정승화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하여 이들을 제압한 다음 같은날 19시30분경 정승화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고, 피의자와 위 이학봉은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하여,『정승화 총장이 10·26사건에 연루된 새로운 혐의사실이 발견되었으므로 연행·조사하겠다』면서 그 재가를 요구하였으나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한 상황에서 정승화 총장 강제연행 사실을 인지한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등이 정승화총장을 원상복귀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같은날 21시30분경 위 정동호 고명승 등이 대통령 경호실 병력을 무단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피의자및 위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희도 백운택 등이 집단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하여 재차 정승화 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것을 다시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하고, 같은날 23시경 피의자는 위 박희도에게는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 올 것을,위 최세창에게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와 휘하 병력의 경복궁 출동을,위 장기오에게는 휘하 병력의 육본 출동을 각 지시하고,상피의자 노태우는 위 구창회에게 휘하 병력의 중앙청 출동을 지시하고,위 황영시는 위 박희도에게 휘하 병력의 고려대학교 진주를 지시하고,위 황영시 백운택은 위 이상규에게 전차부대의 중앙청 출동을 지시하고 위 정도영 등은 위 김정룡 신우식에게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작전 지원을 지시하고 위정도영 허화평 허삼수 권정달 등은 피의자를 비롯한 지휘부에 각 지휘관의 전화도청및 각 부대 보안부대장의 보고를 통한 각 부대 이동상황을 수시로 보고토록 하는 한편,제26사단 제30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의 지휘관·참모 및 보안부대장에게 합수부측의 위와 같은 조치에 동조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 이에따라 같은날 23시30분경 위 최세창 박종규는 특전사령관실에 제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하여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그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는 한편 같은달 13일 2시경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에 진주시키고, 위 박희도 서수열 박덕화 등은 같은 날 0시30분경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고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 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위 장기오는 같은 날 3시경 제5공수여단 병력을 효창운동장으로 진주시키고 위 구창회 이필섭 안병호 등은 같은 날 1시30분경 제9사단 제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같은 날 3시30분경 중앙청을 점령하고 위 박희모 송응섭은 같은 날 3시30분경 제30사단 제90연대 병력을 고려대학교에 진주시키고 위 이상규는 같은 날 1시30분경 제2기갑여단 제16 전차대대 병력을 출동시켜 같은 날 3시30분경 중앙청을 점령하고, 위 조홍 신윤희는 같은 날 3시40분경 위 김진선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 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하고 부상을 입게 한 후 육본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흥주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함으로써 피의자는 수괴로서,상 피의자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휴대하고 반란하고, 위 노태우 등과 공동하여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 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중요지점을 점령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하고, 위 노태우 등과 공동하여 위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위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위 노태우 등과 공동하여 위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위 노태우 등과 공동하여 위 이재천 김인선을 각 살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 자로서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는 자임.
  • 「12·12주역」… 어제와 오늘

    ◎허삼수·허화평씨 14대 지역구 현역의원/황영시씨 육참총장 거쳐 감사원장 역임/장세동씨 두차례 투옥… 박희도씨는 도미 검찰에 고소·고발됐던 12·12 관련자들은 모두 38명.이들 대부분은 군 사조직인 「하나회」회원들로 5공과 6공을 거치면서 정·관계의 핵심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육군참모총장이던 정승화씨를 연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허삼수 당시 보안사인사처장은 5공초 「파워게임」에서 밀려나 오랫동안 낭인생활을 하다 지난 14대 총선 때 부산지역에서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허씨와 함께 총장공관에 갔던 우경윤 육군범죄수사단장은 정씨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측의 오인 사격을 받아 하반신 불구가 된 뒤 소장으로 예편했다.5공 때 골프장 사장을 지냈다. 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은 5공초 허삼수씨와 함께 「거세」돼 미국에서 지내다 6공초에 귀국했다.지난번 총선 때 무소속으로 포항에서 출마,당선된 뒤 민자당에 입당했다. 권정달 정보처장과 이학봉 합수부수사1국장은 지난 89년 5공청산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시작했다.이씨는 14대 총선 때 김해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박희도 1공수여단장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무력점거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12·12 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박씨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5·18에 대한 재수사 방침이 발표된 직후 미국으로 출국,로스앤젤레스의 차남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씨는 합참의장직에 올랐다가 예편,광업진흥공사사장과 국방부장관을 거쳐 현재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다.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청와대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거치면서 권세를 누렸으나 5공비리와 「용팔이 사건」으로 두차례 옥살이를 했다. 하나회 후견인 역할을 했던 유학성 군수차관보는 안기부장을 거쳐 정계에 진출,12·13·14대 의원에 당선됐으나 93년 재산공개 파문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황영시1군단장은 83년 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뒤 84년부터 88년까지 감사원장을 지냈다.차규헌 수도군단장은 육사교장을 지내고 군수사령관으로 예편,5공 때 교통부장관을 지냈으나 장관 재직시절의 골프장 내인가와 관련,뇌물수수혐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6공까지 군에 남았던 가담자들도 승진을 거듭하며 요직을 거쳤으나 문민정부들어 철퇴를 맞았다. 김진영 33경비단장은 수방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고 9사단 29연대장으로 중앙청으로 출동했던 이필섭씨와 장태완 수경사령관 체포를 지휘했던 수경사상황실장(중령) 김진선씨도 문민정부 출범 직후 합참의장과 2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났다.
  • 전두환씨 오늘 구속/반란수괴 등 6개죄 적용 영장

    ◎전씨,소환 불응 선언… 합천행/검찰,서울 압송 방침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소환에 불응함에 따라 전전대통령에 대해 군사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이날 하오 11시23분 발부받았다. 구속영장은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가 청구했으며 서울지법 형사항소3부 신흥철 판사가 심리,발부했다. 이에 따라 수사본부는 이날 자정쯤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관 9명을 승용차편으로 전씨가 머물고 있는 경남 합천으로 급파했다. 검찰은 전씨에게 영장을 제시한 뒤 신병을 확보하는대로 안양교도소로 압송,수감해 조사하기로 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전씨를 검찰청사로 데려 오지 않고 수감 즉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또 비자금사건과 관련,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단 오는 4일 기소한 뒤 군사반란혐의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날 출국금지된 전전대통령에게적용된 죄목은 반란수괴죄를 비롯,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불법진퇴 등 6가지다. 수사본부는 영장에서 『전전대통령은 수괴로 노태우전대통령 등과 작당해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켰으며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 없이 부대를 인솔,중요한 지점을 점령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면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10·26 직후 보안사령관과 합수본부장으로 군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최규하대통령의 재가 없이 공수부대와 20사단 등을 동원,정승화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하는 한편 특전사령관실에서 총을 발사,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소령을 살해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2명을 숨지게 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영장에는 피살자로 김소령과 초병인 정선엽병장,살해미수 대상으로는 하소곤 당시 육군작전 참모부장,이재천 육참총장수행부관,경호장교 김인선대위 등이 명시됐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전전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검찰의 소환요구에 협조하지 않겠으며 사법처리를 하려면 이미 제출된 자료에 의거해 진행하라고 밝힌 만큼 소환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진술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12·12에 국한해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했다. 수사본부는 전전대통령에 대한 5·18사건 수사를 앞으로 제정될 특별법의 내용에 따라 진행할 계획이며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면 일단 구속기소한 뒤 조사하기로 했다. 수사본부는 또 이날 상오 11시40분쯤 채동욱·임성덕·이재순검사 등 검사 3명을 비롯한 수사팀 8명을 서울구치소에 파견,노태우전대통령을 상대로 12·12 및 5·18사건 때의 구체적인 역할분담 등 사건의 전개과정에 대해 3시간 남짓 집중 조사했다. 수사본부는 이와 함께 최규하전대통령에 대해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를 벌인다는 방침 아래 최전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조사여부를 협의중이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민 도덕성 공격 전두환 전 대통령은 2일 12·12 및 5·18과 관련한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또 현정부의 도덕성과 이념을 공격함으로써 5·18특별법 제정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씨는 이날 연희동 자택 앞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재개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현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봐 소환요구 등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수사에 대한 전면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다만 검찰이 사법처리를 하려한다면 이미 제출한 자료에 의해 진행해주기 바란다』며 『그에 따른 사법부의 어떠한 조치든 수용하고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검찰소환 불응이유에 대해 『지난 13대국회 청문회와 장기간에 걸친 검찰 수사과정을 통해 12·12,5·17,5·18사건과 관련,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했으며 검찰도 적법절차를 거쳐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6년전인 89년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야당총재의 영수회담 결정에 따라 국회 증언대에서 과거문제를 매듭짓게 됐음에도 이문제가 또다시 제기돼 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현정부의 통치이념등에 대한 김대통령의 설명을 요구했다. 전씨는 3당합당을 거론하며 『내가 국가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내란세력과 야합한 김대통령 자신도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통령이 이승만 정권을 친일정부로,3·5·6공화국을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좌파운동권의 운동방향과 같다』며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성명발표 직후 측근들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고향인 합천으로 떠났다. 한편 전씨의 핵심측근인 이양우 변호사는 이날 전씨의 대국민성명 발표후 시내 장교동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대응방안과 관련,『가능한 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또 『이같은 대응은 검찰의 수사방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정치적 대응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덧붙였다. 이씨는 5공 출범전후를 소재로 한 정치드라마를 방영중인 SBS와 MBC 양TV방송사에 대해 『민사·형사를 모두 포함해 즉각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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