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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증인 피고인신문에 우물쭈물/22차공판 이모저모

    ◎정호용 피고 “본것만 말해라” 증인 힐난/변호인 불참에 국선변호인 즉석 선임 12·12 및 5·18사건의 22차 공판이 15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5·18 당시 지휘권 이원화문제와 발포명령 하달과정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정호용 피고인은 이날 공판에서도 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증인신문 기회를 주자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자신의 공소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전략을 구사. 특히 신문 도중 간간이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보았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라.왜 그렇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느냐』는 등 검찰이나 변호인의 추궁만큼이나 강도 높게 증인들을 힐난. 정피고인은 임헌표 전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을 상대로 『특전사령관이 소장이고,당신도 장군인데 어떻게 광주비행장에 나를 마중나올 수 있느냐』고 추궁,임씨로부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얻어내는 데 성공. 임씨는 김영일 재판장이 재차 『광주비행장으로 정피고인을 마중나갔다고 했는데 같은 장군끼리 마중나가는 경우가 있느냐』라고 묻자 『보통의 경우는 없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답변. 임씨는 또 친필메모의 크기와 메모를 보게 된 경위 및 메모지가 봉투에 들어 있었는지의 여부 등 재판장이 꼬치꼬치 묻자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리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피고인측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재판부는 하오공판에 박준병·허화평 두 피고인의 변호인이 출석지 않자김수연·민인식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즉석에서 선임.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이귀호 5·18 당시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장은 상관으로 모셨던 황영시 육참차장과 윤흥정 전교사령관의 인품 등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해 눈길. 이씨는 윤사령관의 인품과 친분관계를 묻는 변호인의 신문에 대해 『재직 시절 두번 직속상관으로 모셨는데 온화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호평.반면 황차장은 『상당히 독선적이고 과격한 성격이었다』고 평가. 이씨는 80년 5월21일 황씨가 전차부대를 동원,시위를 강경진압하라는 지시를 자신에게 내리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전교사령관을 통해 지시를 내려달라』며 거부했다고 설명.〈박상렬 기자〉
  • 「12·12」 「5·18」 22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황영시씨 전차·무장헬기 동원 진압 지시”­김기석·이귀호 증인/「무리해서라도 조기 진압」 전씨메모 봤다­임헌표 증인/공수단 정보·작전보고 특전사로만 전달­백남이 증인 12·12 및 5·18사건 제22차 공판이 15일 상오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에서는 유병현 당시 합참의장등 7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유병현 증인 ▲이부영 검사=80년 5월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회의 소집 이유를 물었더니 주장관이 엄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외부로부터 요청이 있어 회의를 소집한 것인데 안건이 특이하다』고 말했지요. ▲유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구체적인 안건을 묻자 주피고인이 약간 당황해하며 계엄강화,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 등 3가지 문제라고 대답했고 증인은 국회해산과 비상기구 설치에 반대했나요. ▲유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5월 21일 국방장관실에서 열린 군 자위권 보유천명 논의 모임에서 증인이 담화문 초안을 수정했나요. ▲유증인=수정한 것은 아니고 초안내용이 강도가 높아 국민들에게 「군자위권」이 무엇인지 알리는 수준이면 광주시민들도 자연히 알게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임헌표 증인 ▲채동욱 검사=80년 5월23일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광주에 내려올 당시 증인이 광주비생장에서 수행을 했죠. ▲임증인=그렇습니다. ▲채검사=전교사로 오던중 헬기안에서 정사령관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친필 서명과 함꼐 「무리를 하더라도 시위를 조기 진압하라」는 내용이 담긴 메모를 읽는 걸 목격했죠. ▲임증인=예. (정호용 피고인이 증인신문을 했다) ▲정피고인=그러면 어떻게 메모를 읽어보게 된 것인가요. ▲임증인=단어나 문장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메모를 봤습니다. ○김기석 증인 ▲이재순검사=광주시민들의 시위가 격화된 이후 전교사에서는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려 했으나 육본측에서 「초전박살」이라는 지휘개념하에 강경진압을 하려 했나요. ▲김증인=예.황육참차장으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와 있던 무장헬기와 기갑학교의 전차를 동원,사태수습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검사=20일에서26일 사이 황영시 피고인과 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증인에게 여러차례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강경한 충정작전을 실시하라』고 질책한 사실이 있나요. ▲김증인=있습니다. ▲정영일 변호사=증인은 검찰조사과정에서 『광주진압 작전을 전면에 나서 총지휘한 사람은 황 참모차장』이었다고 진술했는데 확실히 그렇게 진술했습니까. ▲김증인=제가 알기로는 당시 계엄사 부사령관이었던 황장군이 매사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변호사=광주사태 진압기간중 증인은 전차나 무장헬기를 동원한 적이 있었습니까. ▲김증인=진압용이 아닌 위력시위용으로 동원했다가 진압과정에서 잘못된 사례가 있었습니다.예컨대 핸들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인도로 뛰어들었는가 하면 위협사격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수가 있었습니다. ▲전창렬 변호사=광주비행장에서 정호용 피고인이 공수여단장들을 만나 작전지휘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김증인=참모들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어느 참모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황영시 피고인=증인은 광주사태 초기진압은 내가 지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당시 제가 느끼기에 참모차장이었던 황피고인의 역할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황피고인=증인은 전차를 동원하라는 내 명령을 거부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도 내가 실질적인 지휘자였다고 생각합니까. ▲김증인=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저는 따라야할 명령인지 그렇지 않은 명령인지 구분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증인은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제가 실질적으로 공수여단을 지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당시 정사령관이 전교사에 연락장교도 파견하지 않고 상황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참모들의 보고를 듣고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재판장=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까. ▲김증인=5월19일인지 20일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최초의 시민희생이 발생했을 때 사령부에서는 몰랐는데 특전사령부에는 보고가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이귀호 증인 ▲이재순 검사=80년 5월21일 황영시 피고인이 증인에게 전차 1개대대등 기갑부대를 동원,시위를 강경진압토록 전화로 직접 지시한 사실이 있죠. ▲이증인=예.그렇습니다. ▲이검사=증인은 당시 황피고인의 지시가 지휘계통을 무시한 것이고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에 지시에 불응한 것이지요. ▲이증인=예.전교사 사령관을 통해 지시를 내려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정영일 변호사=증인은 황육군차장이 5월21일 전화로 전차 1개중대를 동원하라고 지시하면서 전차에 시위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감으라고 지시한 것은 전차운영 교본에도 어긋난다고 진술했는데 황차장은 기갑사단을 창설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같이 교본에도 어긋나는 지시를 할 수 있습니까. ▲이증인=다 늙어가면서 과거 전우로서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밀면 어떡합니까.전화를 받은 사실은 확실합니다. ▲황피고인=증인은 내가 전화를 하면서 『이 자식아,전차포를 쏘며 밀고들어가』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는데 내가 쌍소리를 할 정도로 저질 장군으로 봅니까. ▲이증인=과거 전우이기 때문에 결례를 안하려고 했는데 검찰 대질신문에서도 황장군이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김준봉 증인 ▲이부영 검사=23일부터 26일까지 매일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소준렬 전교사령관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던중 26일 하오 10시쯤 계엄사령관이 전교사령관의 도청진압 작전건의에 대해 『이시간 이후 언제든 작전을 실행해도 좋다.단쌍방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었죠.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수연 변호사=80년 5월27일 광주재진입작전은 부득이 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김증인=너무 빨랐거나 너무 늦었을 경우에는 피해가 더 컸을 것입니다. ▲전창렬 변호사=특전사령관이 다른 부대에 배속된 자신의 예하부대에 대한 행정적지원과 배속부대 지휘관을 위한 지휘조언을 위해 현지에 내려와 상황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전변호사=5·18당시 정웅 31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금남로에 출동해 시위를 진압하면서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사단장의 지시가 적절했는지 또는 부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상급자의 작전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병력들을 미리 시내 주요지역에 배치했으면 시위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변호사=80년 5월21일 정웅 31사단장이 2군사령관에게 『광주사태는 군 투입으로 인한 해결보다는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 ▲김증인=처음 듣는 얘깁니다.그런 건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전변호사=계엄상황일지와 작전상황일지를 볼 때 2군사령부와 전교사령부가 기록상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증인=현장에서의 긴박한 상황에서는 실수로 기록을 빠뜨리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변호사=상황일지의 차이를 두고 지휘권 이원화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백남이 증인 ▲이부영 검사=정호용 특전사령관이 5·18당시 전교사 감찰참모실을 개인 사무실로,기밀실을 특전사 상황실로 이용하고 있었죠. ▲백증인=예.사무실등을 본인이 마련해 줬습니다. ▲이검사=시위및 진압현황에 대한 공수부대의 정보보고가 전교사 상황실에는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었는데 전교사는 어떻게 상황을 파악했습니까. ▲백증인=전교사 참모진과 연구관등 병력 15∼20명을 편성,시위현장등에 직접 투입해 상황정보를 파악해 오도록 했습니다. ▲이검사=작전 상황보고가 특전사 상황실로만 전달됐죠. ▲백증인=예. ▲전변호사=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내려가 전교사를 방문했었다고 진술했는데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백증인=광주비행장에 전사령관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상황장교로부터 받았습니다. ▲전변호사=정호용피고인이 전교사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공수여단장들과 수시로 작전회의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언제 보았습니까. ▲백증인=20일날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5·17」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안보사서 소집 지시”

    ◎「5·18」 22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 22차 공판이 15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재판에는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임헌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이귀호 기갑학교장,김준봉 2군사령부 작전차장,백남이 전교사 작전참모,김충우 보안사 대공처장 등 7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유 전합참의장은 증인 신문에서 『80년 5월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국방장관실에서 주영복 당시 국방장관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키며 「외부의 요청에 의해 회의를 개최하며,안건이 특별하다」고 말했다』며 『불확실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외부」는 보안사나 합수부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계엄 확대 당시 군의 정치개입은 헌법위반이라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장세동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 등 검찰과 변호인단이 신청한 9명을 5·18사건 증인으로 채택했다.〈박상렬 기자〉
  • “광주발포 부대장 판단”/윤흥정씨 진출

    ◎전·노씨 출정… 재판받아/「12·12­5·18」 21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 21차 공판이 11일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5·18 당시 윤흥정·소준렬 전투병과교육사령관,진종채 2군사령관 등 증인 3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20차 재판 때 출정을 거부했던 전두환·노태우피고인도 법정에 나왔다. 윤흥정씨는 『지난 94년 말 검찰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육본의 상황일지를 보고 당시 특전사가 정식 지휘계통과 별도로 지휘 및 작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또 『당시 전교사가 계엄군에게 실탄배분과 발포명령을 내린 적은 없으나 일선부대장들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 「12·12」 「5·18」 21차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공수단 기죽이지 마라」 전씨메모 받았다”·정호용씨와 광주 재진입작전 협의­소준렬 증인/공수부대에 실탄배분한 사실 없어­윤흥정 증인 11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1차공판에서는 윤흥정·소준렬 5·18당시 전교사령관 등 증인 6명에 대한 신문을 계속했다. ○윤흥정 증인 ▲이부영 검사=31사단과 공수여단장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고 실탄을 배분한 사실이 있나요. ▲윤증인=없습니다. ▲이검사=상부에서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나요.있다면 어디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까. ▲윤증인=2군사령부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검사=일선에서는 자위권발동지시를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윤증인=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검사=전교사사령부내 특전사 상황실 무전기를 통해 정호용 피고인이 보고받고 지휘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윤증인=전교사를 통하지 않고 특전사의 활동상황이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증인에 대한 검찰측 증인신문이 끝나자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의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김변호사=당시 자위권발동이 시민들에 대한 발포명령으로 인식된게 사실입니까. ▲윤증인=잘 모르겠지만 자위권은 원래 각 부대에 내려져 있는 것이어서 자위권 발동명령이 시달됐다면 이를 촉구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정호용 피고인의 요청으로 정 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주상 변소사가 윤증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계속했다.) ▲김주상 변호사=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증인은 계엄확대에 반대했습니까. ▲윤증인=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김변호사=전군 주요지회관 회의에서 계엄확대외에 국회해산의 국보위설치 등이 논의됐습니까. ▲윤증인=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김변호사=진종채 2군사령관이 두번째 광주에 내려와 시위대의 도시게릴라식 난동에 대비해 과감한 조기분산 타격을 지시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윤증인=진사령관이 지시한대로 정웅31사단장에게 지시했습니다. ▲김변호사=정웅 31사단장은 증인에게 경찰병력만으로도 시위진압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증인이 세차례에 결쳐 병력출동을 독촉해 정사단장이 마지 못해 출동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윤증인=사실입니다. (김영일 재판장이 윤증인을 상대로 직접 신문을 했다.) ▲김재판장=당시 증인은 직접 예하부대장들에게 진압방법을 지시한 적이 있습니까. ▲윤증인=대대장들이 알아서 판단해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어 김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신문기회를 주자 허화평 피고인이 일어나 윤증인을 상대로 신문했다.) ▲허피고인=상황일지는 부대상황을 그때그때 시간대별로 기록하는 것으로 특히 고급지휘관들의 통화내용의 경우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기재가 되질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증인은 통화내용을 상황일지에 기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정피고인=당시 보안사령관이 31사단이나 특전사에 작전지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소준렬 증인 ▲이부영검사=5월20일 황영시 피고인으로부터 전두환 피고인과 협의하여 증인을 전교사령관에 임명키로 했고 9월 중장으로 진급시킨다는 전화통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소증인=있습니다. ▲이검사=증인은 5월22일전교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광주시민 수습대책위원회와의 간담회도중 군의 과잉진압 사실을 인정했습니까. ▲소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정호용 피고인이 광주 전교사 감찰참모실에서 무전기를 통해 공수여단장들과 진압대책을 논의한 사실을 알았습니까. ▲소증인=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검사=5월23일 광주로 내려온 정호용 피고인으로부터 「소선배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고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마십시오」라는 내용과 전두환피고인의 친필 메모를 전달받은 적이 있습니까. ▲소증인=메모지는 전달받았지만 공수부대원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검찰조사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이검사=증인은 5월24일 15시경 전교사령관 사무실에서 정호용피고인과 광주 재진입작전에 대하여 협의하던중 정피고인이 증인에게 「도청에는 3공수여단을,사직공원에는 7공수여단을,전일빌딩에는 11공수여단을 투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소증인=있습니다. ▲이검사=황영시 피고인이 5월25일 오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와 증인에게 광주 재진입작전을 전달했습니까. ▲소증인=그렇습니다. ▲전창렬 변호사=검찰조사에 따르면 정호용 피고인이 광주에 있는 동안 증인의 지휘권에 자주 간섭하고 광주비행장에서 3공수여단을 직접 지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있는데 사실인가요. ▲소증인=통제나 간섭을 한 것은 아닙니다.효율적인 작전을 위해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고 적어도 내가 부임한 이후에는 「지휘권 이원화」란 얘기는 맞지 않습니다. ▲김재판장=전두환 피고인이 정호용 피고인을 통해 메모를 전달한 것은 증인의 지휘권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까. ▲소증인=공수부대원들 사기 죽이지 말라는 내용에 감정이 약간 상했지만 지휘권에 영향을 주려고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제가 5월23일 상오 서울에 있다가 하오에 내려와서 선배님께 공수부대를 철수시켜야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언제 메모지를 건네줬습니까. ▲소증인=메모지는 확실히 받았습니다.
  • 피고인들도 증인신문… 유리한 답변 유도/21차 공판 이모저모

    ◎전·노씨 여느때와 달리 굳은 표정 입정/국선변호인 전씨 접견… 신문사항 논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불출석선언으로 파행이 우려됐던 21차 공판은 두 피고인의 출석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5·18 사건의 핵심 쟁점인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과 지휘체계 이원화 문제에 대한 증인의 신문과정에서 변호인은 물론 피고인들까지 증인신문에 나서는 등 검찰과 변호인·피고인·증인 4자간의 신경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날 상오 10시 김영일 재판장이 입정한 뒤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자,법정의 모든 시선이 피고인 출입문으로 쏠리는 등 한순간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 그러나 전피고인은 20여초 후 다소 굳은 표정으로 법정으로 들어섰으며 노피고인도 뒤따라 입정. 전·노피고인의 재판 참석은 재판부와 국선변호인,법무부 교정당국자들의 설득과 물밑 노력에 힘입은 것이며 본인들도 강제인치에 따른 여론의 부담을 우려해 마지못해 출석하게 됐다는 후문. ○…전·노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는 지난 8일 선임된 이래처음으로 전 전투병과교육사령관 윤흥정 증인을 상대로 증인신문을 벌였으나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는 데다 이 사건의 복잡한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듯 신문내용이 그리 깊지 못했다는 평. ○…윤씨는 80년 5월22일자로 전교사 사령관직을 소준렬장군에게 넘겨준 소감을 물은 검찰의 신문에 『장수는 물을 건널 때에는 말을 바꾸지 말라는 격언이 있는데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자리를 뜬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유감스러웠다』고 불만을 표출. 윤씨는 체신부장관으로 옮긴 것이 영전이 아니냐는 질문에 『6·25때부터 군생활을 한 사람이 군을 떠나는데 무슨 영광이고 영전이냐』고 흥분. ○…정호용 피고인측 변호인들은 윤씨에게 『무슨 근거로 검찰에서 지휘권이 이원화됐었다고 진술했느냐』고 집중적으로 따져 윤씨가 『전교사 상황일지 보다 계엄사 일지가 더 자세한 것을 보고 독자적으로 판단,그렇게 진술했다』고 하자 흐뭇해 하는 모습. ○…소준렬 당시 전교사령관은 『사령관으로 부임한 22일부터 도청 재진입작전을 벌인 27일까지 모든책임은 내게 있다』,『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지휘권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는 등 책임소재를 명확히하는 발언으로 일관. 특히 전보안사령관의 메모와 관련,『분명히 메모를 받았지만 지휘권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메모 역시 지휘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해 5·18피해자들의 야유를 받기도. ○…정피고인은 하오 재판에서도 직접 신문에 나서 소씨에게 『당시 지휘권 이원화는 없었으며 전교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작전이 수행됐다고 결론을 내려도 되겠느냐』고 질문,『예』라는 답변을 이끌어내자 『껄껄』 웃으며 여유를 과시.〈박홍기 기자〉
  • 「상황일지」 어느것이 진실인가/전교사·계엄사 3가지 내용달라

    ◎「5·18」당시 지휘체계 등 밝힐 결정적 단서로 11일의 21차공판에서는 5·18당시 광주에서의 진압내용을 기록한 군의 3개 상황일지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에 대해 증인으로 나온 윤흥정씨와 허화평 피고인간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검찰과 변호인도 양측을 거들었다. 문제의 일지는 5월18일부터 22일까지의 상황을 적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의 「작전상황일지」와 「전투상보」,계엄사의 「상황일지」. 전교사령관이던 윤씨는 전교사상황일지가,검찰은 계엄사상황일지,변호인과 허피고인은 전투상보가 가장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쟁점은 당시 광주에 파견된 3·7·11공수여단의 지휘체계와 진압작전실태이다. 검찰은 이번 재판에 계엄사상황일지를 증거로 제출하며 당시 지휘권이 이원화됐었다고 밝혔다.즉 이희성 육참총장·진종채 2군사령관,윤전교사사령관,정웅31사단장의 정식 지휘체계와 전두환 보안사령관,황영시육참차장,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 갈렸다는 것.공수부대의 통신과 지휘가 별도로 운영됐다는 얘기다. 윤씨는 11일 『지난 94년말 검찰조사에서 육본의 계엄일지를 읽어보고서야 지휘권이 이원화됐던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여기에는 공수부대의 보고및 작전상황이 자세히 적혀있다.그는 이전까지 2급 비밀이었던 이 문건을 구해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투상보는 한달 뒤 제3자가 기록한 탓에 첨삭의 여지가 있어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상황일지는 참모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진실에 가장 부합된다고 주장했다.반면 진압조치내용이 부실한 점은 인정했다. 허피고인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전사 장교출신인 그는 『상황일지의 경우 고급지휘관들의 유·무선통화나 지시내용은 지휘관이 참모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빠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전투상보는 상황종료된 분기말에 작전에 참여한 중대급이상의 부대가 보고한 작전상황을 종합 정리하기 때문에 가장 정확·상세하다고 주장했다. 단지 끝마무리의 교훈대목만 전사장교의 주관이 개입될뿐 사실에 대한 왜곡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전투상보는 정상결재를 거쳐 육본에 보관중이라고 덧붙였다. 육본 감찰부장을 지낸 전창렬 변호사와 이진강 변호사도 이에 가세했다.전투상보에는 진압조치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돼있어 정확하다는 논리였다. 윤씨는 그러나 내용이 수정되고 신군부에 불리한 부분은 뺐으며 전교사의 소령 결재만을 거쳤다고 반박했다.재판부가 어느 일지를 유·무죄판단의 자료로 삼을지 주목된다.〈박선화 기자〉
  • 「12·12」 신촌 요정 「민마담」 찾았다

    ◎“장태완 사령관 등 격리 목적” 검찰서 진술 지난 79년 12월12일 하오 6시30분.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운명을 가른 이른바 「신촌 모임」.베일에 가려졌던 신촌의 요정 주인이 공개됐다.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9일 신군부측이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기 직전 장사령관·정사령관을 격리할 목적으로 마련했던 만찬모임의 비밀요정 주인을 찾아내 이달초 조사했다고 밝혔다. 3공때 이름을 날린 속칭 「민마담」인 김모씨(53·서울 서초구 서초동).연희동 노태우 전대통령의 집에서 5백m 떨어진 대지 1백16평의 2층 기와집이 만찬장소였다. 민마담은 검찰에서 당시 보안사로부터 『조용한 곳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생의 집에 만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또 『나중에야 장사령관 등을 격리하는 차원에서 만찬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종업원이던 문모씨(40)는 『참석자들이 한두잔 밖에 양주를 들지 않았다』고 증언,장사령관의 만취설을 일축했다. 민마담은 12·12당시 서울장충동의 고급요정인 「대화」와 성산동의 「아리랑」을 운영했던 화류계의 히로인.이곳에는 당대의 내노라하는 정·관·재계 인사와 장성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박정희 전대통령도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민마담이 「요정 정치」의 안방마담 역할을 한 셈이다.한량들사이에는 아직까지 민마담의 이야기가 구전된다. 그녀는 합의이혼후 현재 고급주택가에서 조용히 살고 있으며 며느리가 일본서 활동중인 여가수 K이다.〈박선화 기자〉
  • 12·12 20차 공판/오늘 증인 9명 신문

    12·12 및 5·18사건 20차 공판이 8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려 김종환 전 내무부장관 등 증인 9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된다. 증인은 12·12사건과 관련,김인선 당시 육참총장 경호장교와 김진기 헌병감,장범주 특전사령관 부관 등 3명,5·17 및 5·18사건과 관련해 성환옥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김 내무부 장관·양병호 대법원 판사·박동원 수경사 작전참모,길기상 국회사무차장·김만기 사회정화위원장 등 6명이다. 공판에는 19차 공판 때 참석하지 않았던 이양우·전상석·석진강변호사 등 변호인단 전원이 참석,이미 검찰측 증인으로 신문을 받은 정승화·장태완·노재현·백동림씨 등 4명을 증인으로 재신청할 방침이다.〈박홍기 기자〉
  • 서울·부산 지하철/비상수송 작전

    ◎경력기관사 총동원·개인택시부제 해제/한통 핵심시설에 통신병 배치 경찰은 19일 서울지하철·한국통신 등 공공부문 노조가 20일 불법 연대파업에 들어가면 국가 기간산업보호 차원에서 엄정 대처키로 했다.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에는 전동차마다 정복 경찰관을 태워 운행방해 행위를 막고 주요 환승역에서도 질서유지 및 경계업무를 맡도록 할 방침이다.차량기지와 승무사무소에도 경찰관을 배치해 전동차 키 탈취,입·출고 방해 등에 대비키로 했다. 주요 시설을 점거해 농성하면 경찰력을 투입해 해산하고 기물 파괴자 등 극렬행위자는 전원 사법처리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서울지하철 노조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 기관사 경력을 가진 간부 직원들을 동원,정상 운행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파업에 가담하지 않는 경력 기관사를 비롯,자체 승무인력과 경찰·철도청의 지원인력 등 모두 3천6백60명으로 지하철을 2주동안 정상 운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자치구·지하철 공사에 비상수송 대책본부를 설치,비상수송대책을 시행키로 했다.지하철역을 연결하는 26개 노선 5백13대의 시내버스의 운행구간을 조정하고 14개 임시 노선에 1백73대의 전세버스도 운행한다.마을버스도 1백7개 노선에 5백29대를 연장 운행하고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한다. 공무원과 국영 기업체,금융기관 등은 출근 시차제를 실시토록 할 방침이다. 한국통신도 쟁의행위에 돌입할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인력 투입,주요 통신시설 보호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1단계로 비노조원과 기술직 관리자를,2단계로 공사업체 및 자회사 전문요원을,3단계로 한국통신 근무자 가운데 군에 입대한 통신병을 투입할 계획이다. 한편 국방부는 서울 및 부산 지하철노조의 파업에 대비,정밀훈련을 받은 특전사 요원과 철도기관사로 일한 적이 있는 군 경력자 및 철도고교 출신자 등 철도 운송경험자 4백여명을 투입할 방침이다.〈박현갑 기자〉
  • 전씨“「광주」진압 개입 안했다”/공수부대 지휘권 2원화 사실부인

    ◎「5·18」 14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14차 공판이 17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려 전두환피고인 등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됐다.〈관련기사 18·19면〉 전피고인은 5·18 사건과 관련,『지난 80년 5월21일의 자위권 천명은 당시 진종채 2군사령관의 건의를 받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주영복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발표하고 전국의 계엄군에게 훈령을 통해 지시했다』며 자신이 실질적인 발포 명령자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전피고인은 『자위권 보유 천명 초안을 이계엄 사령관에게 전달토록 지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5월18일부터 5월21일까지 공수부대의 시위진압도 윤흥정 전교사사령관과 정웅 31사단장의 책임 아래 이뤄졌으며,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별도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진술,지휘권의 2원화를 부인했다. 전피고인은 『5·18 사건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로서 계엄군의 작전지휘 체계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포등 진압작전에 관여한 바 없다』고 진술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거규헌·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 피고인 4명을 상대로 5·17 사건에 대한 반대신문도 진행됐다.〈박상렬 기자〉
  • 신씨 등 3인이 밝힌 상관연행 경위

    ◎“전투 피하려 장 사령관 체포” 신윤희/박종규·허삼수 『상급자 명령 따랐을뿐” 3일 12·12 사건 11차 공판에서 허삼수피고인(구속)과 박종규·신윤희피고인(불구속) 등 3명은 12·12 당시 상관들을 체포,연행한 경위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체포한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은 『장사령관이 야포와 전차를 동원해 30경비단을 공격,모두 사살하라고 지시하자 동료 장교들이 몰려와 장사령관의 행동을 제지토록 건의해 체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장사령관의 사살 명령 이후 수경사 인사·정보 참모,직할 전차대대장 등 선배·동료 장교들이 『같은 편끼리 전투를 하면 큰일난다』고 호소했다는 설명이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박종규 당시 3공수 15대대장은 12·12 당일 5분대기조 대대장으로 있다가 직속 상관인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명령에 따랐다. 박피고인은 『최여단장의 명령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데다가 나를 신임해 어렵운 임무를 부여한 상급자의 명령을 회피하는 것은 참다운 군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진술했다. 박피고인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때 『여단장의 지시대로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면 하극상으로,여단장 지시에 따르지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사형을 당할 것으로 생각해 어차피 죽은 목숨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었다. 정승화 총장을 연행한 허삼수 합수부 조정통제국장은 당초 연행팀이었던 이학봉 합수부수사국장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러가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수행하자 연행팀에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허피고인은 『처음에 연행임무를 부여받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상관의 명령이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박상렬 기자〉
  • 경복궁모임·신촌모임·전씨 최 대통령 면담/왜 같은 시각에 열렸나

    ◎검찰·전씨 “고의”­“우연” 공방/검찰­경복궁모임은 사전모의 쿠데타 실행과정·정 총장 연행위해 장태완씨 등 「신촌」에 격리/전씨­신촌모임은 조홍씨가 진급 자축위해 마련/대통령 면담일정은 비서실서 지정 통보 12·12 당시 「경복궁 모임」과 「신촌 모임」,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최규하 대통령 면담 등 세가지 일정은 공교롭게 하오 6시30분으로 잡혔었다.고의인가,우연의 일치인가. 「경복궁 모임」은 유학성·황영시·노태우 장군 등 신군부가 수경사 30경비단에서 만나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회동을 말한다. 「신촌 모임」은 수경사 조홍 헌병단장이 준장에 진급한 것을 자축한다는 명목으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신촌의 한식집에서 저녁을 대접한 자리다. 검찰은 경복궁 모임이 신군부의 치밀한 쿠데타 사전모의와 실행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한다.전 사령관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일을 12일로 잡고 노씨 등에게 미리 모이라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신군부는 정 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육본측 병력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신촌 모임은 정총장 연행을 위해 정총장 계열인 장사령관 등을 격리키 위한 술책,즉 「양동작전」이었다고 밝혔다. 전 피고인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정총장 연행 배경을 원로 장성과 소장파 장성들에게 알려 협조를 얻기 위한 게 경복궁 모임의 취지라는 주장이다.신촌 모임은 조단장이 마련한 자리로 자신도 초청대상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조단장이 추천한 날짜를 자신이 12일로 바꿨다고 밝혔다. 최대통령의 면담 스케줄도 비서실이 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당일 상오 면담을 요청했더니 비서실이 하오 6시30분으로 정해주었다는 것이다. 면담의 목적은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얻기 위해서였다.면담과 보고는 제때 이뤄졌다.그러나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배석시키라는 최대통령의 지시와 노국방부장관의 소재파악이 안 돼 결재는 13일 상오 5시10분쯤 이뤄졌다. 전사령관은 신촌 모임에 불참했고,경복궁에는 당일 하오 9시부터 30분 동안 머물렀다. 이양우 변호사는 『대통령 면담일정이 당일에 결정됐기 때문에,두 모임에 이를 맞췄다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간에 있었던 세 모임의 실체가 12·12 진상규명의 열쇠인 셈이다.〈박선화 기자〉
  • 전씨가 말하는 「정승화 총장 군맥」

    ◎김재규 도움으로 총장에… 군인사 장악/장태완·이건영·김진기씨 등 요직 앉혀/신군부 동조 차규헌·황영시씨도 포함 “이채” 전두환 피고인은 20일 공판의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군맥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전씨는 「정승화계열 군부」라고 지칭했으며 정총장이 김재규의 도움으로 총장 자리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피고인은 거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의 비호와 노재현 국방부장관의 추천으로 보안사령관에 임명 됐었다. 전피고인은 정총장이 김재규와 동향으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밝혔다.지난 77년 12월 정총장이 1군사령관에 보임된 이후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다.김재규가 시국관이 같은 정 사령관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강력히 추천,참모총장에 앉혔다는 것이다. 정총장은 79년 11월 중순에 단행된 인사에서 자신과 김재규 계열 장성들을 요직에 배치,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정총장 계열의 핵심장성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장태완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발탁했고,7사단장 시절 작전참모와 1군사령관 때 참모장을 지낸 하소곤 소장을 육본 작전참모부장에 임명했다. 3군사령관인 이건영 장군은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 때 1차장으로 임명한 측근이라고 밝혔다.김진기 육본 헌병감과 손길남 수도기계화사단장,배정도 26사단장,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정총장 계열의 핵심장성으로 분류했다. 특히 「신군부」 세력에 가담한 거규헌 수도군단장과 황영시 1군단장을 정총장 측근으로 분류해 이채롭다.거장군은 정총장이 방첩부대장 때 정보처장을 지냈고 참모총장의 직계장성이 맡는 게 관례인 장성진급 심사위원장을 79년에 지냈다는 점을 들었다.황장군은 정총장이 1군 참모장 시절 작전참모로 근무한 인연으로 의형제와 같은 친분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윤성민 참모차장과 이재전 청와대 경호실차장,문홍구 합참본부장,윤흥기 9공수여단장도 정총장 계열 군부로 지목했다. 전씨는 대통령 시절 장태완·이건영·문홍구씨 등 정총장 계열 퇴역장성들에게 『12·12 당시 자기계보의 수장을 위했다는 인간적인 측면을 고려해 국영기업체 이사장과 마사회장등의 자리를 주었다』고 덧붙였다.〈박선화 기자〉
  • 특전사요원 투입 서울서 화랑훈련/14일부터 5일간

    수도방위사령부는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북한 특수군을 가장한 우리 특전사 요원을 투입하고 이를 방어하는 「96 화랑훈련」을 서울시 전역에서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서울시와 수방사가 합동으로 주관하는 이 훈련은 지난해 전남북도에 이어 4년만에 서울에서 실시되는 정례훈련으로 민·관·군 17만여명이 참가,적 특수전 부대의 수도권 침투에 대비한 후방작전과 정규전에 대비한 서울 방어작전으로 이뤄진다.
  • 보안사 기안 「자위권」 발동/「자위권 보유」로 다시 바꿔

    ◎“초안에 시민 자극 문구도 많았다”/주영복·이희성씨 진술 모두 비슷/“31사단장 제안” 전씨 주장 뒤엎어 5·18 사건 당시 집단 발포의 계기가 된 자위권 보유 천명 문서는 보안사에서 기안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피고인은 6일 열린 5·18 사건 7차 공판에서 이를 부인했다.80년 5월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것은 광주 시위 진압 책임자인 31사단장 정웅 장군이 제안해 진종채 2군사령관이 이 계엄사령관에게 정식 건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보안사는 상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희성피고인의 진술은 다소 달랐다.이피고인은 『당시 누가 작성해 갖다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계엄사령관 집무실에서 자위권 발동 문서 초안을 발견,주영복 국방장관실로 찾아갔다』고 진술했다.이어 주장관,이계엄 사령관,유병현 합참의장,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이 『언제 어디서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는 메모를 전달받아 국방장관을 찾아가 의논한다는것이 말이 되느냐』고 추궁하자 『보안사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주영복 피고인의 진술도 비슷했다.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자위권 발동 초안을 가져와 함께 검토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이 과정에서 『총을 쏘겠다는 것이냐』며 과격하게 대응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자 이계엄사령관도 광주 시민들을 자극하는 문구가 너무 많아 장관의 자문을 구하러 왔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주피고인은 유병현 합참의장도 이에 동조,결국 「자위권 발동」이라고 돼 있던 초안을 「자위권 보유」라는 문구로 바꿨다고 진술했다.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피고인은 『당시 광주 현지에서는 자위권 보유 천명이 발포 명령으로 알았다』고 진술,집단 발포의 계기가 됐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피고인을 비롯,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당시 광주 시민들이 총격을 받은 사실 등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못했거나 뒤늦게 알았다고 진술했다.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박은호 기자〉
  • 이종찬 특수본부장­전·노씨 인생유전

    ◎대위·준장으로 만난 인연/검사·피고로 재회 어제는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검찰관과 여단장.당시의 대위와 준장이 오늘은 수사본부장과 내란죄의 피고인으로 만났다.인생유전의 기연이다. 전자는 12·12 및 5·18사건의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검사이고 후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다. 이본부장은 지난 70년 사시 12회에 합격한 뒤 73년부터 75년까지 특전사에서 검찰관으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했다.당시 사령관은 조문환소장(예비역 중장·87년 작고)이고,1공수특전단장이 전두환준장. 복무중 사령관이 조장군에서 정병주소장으로 바뀌었고 3공수여단장은 노태우준장,7공수여단장이 정호용준장이었다.이검찰관은 정사령관(89년 작고)과 전·노·정여단장을 모신 셈이다. 묘하게도 이들의 개인적 인연은 거의 없었다.단지 검찰관으로서 사령부의 공식회의나 행사장에서 경례를 붙이는 정도였다. 검찰관이 당시의 상관들을 기억할 뿐,그들이 당시의 검찰관을 기억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이검찰관은 군에서결혼하던 75년 상관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5∼6공시절에도 군에서의 인연을 가슴에 묻고 주어진 자리를 지켰다.혹시라도 시류에 영합했다면 그들의 변호인으로 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본부장은 오는 11일의 12·12 및 5·18사건 첫 공판준비에 바쁘다.군대에서의 상관이었지만 이제는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여야 할 상대다. 이본부장은 『피고인들을 일반인처럼 철저히 신문하되 전직대통령인 만큼 예우를 갖추라』고 수사검사들에게 주문한다.특별한 심경이 배어 있는 것인지 흥미롭다.
  • “미,광주 군투입에 부정적 태도”/미 국방부 백서형식 성명서주장

    ◎한국특수근은 미 승인없이 작전통제 가능/위컴 “20사단 어디로 이동하는지 몰랐다” 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때 미국은 과연 어느정도의 역할을 했을까. 미 통상전문지 저널 오브 커머스지가 27일(이하 미국시간) 80년 5월8일자 미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건을 보도한 이후 국무부나 당사자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대사의 해명성 발언이 이어지면서 당시 미국 역할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커머스지는 『미정부는 한국군부의 무력투입 비상계획을 지지했었다』고 보도,미국이 광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미국무부는 지난 89년 작성돼 한국에 전달됐던 「10·26에서 전두환씨 취임까지」라는 제목이 붙은 백서 형식의 성명을 예로 들어 『미국은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글라이스틴 전대사 역시 논평을 통해 『커머스지의 보도는 사실이지만 단편적인 것으로 인용이 본래의 뉘앙스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신군부에) 매우 강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었다』고 밝혔다. 미국역할 부분이 이같이논쟁거리로 대두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이 특전사의 광주 투입을 미리 알았는지,20사단 투입을 언제 알았으며 부대투입을 승인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다른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 관련,커머스지는 ▲미국은 광주에 대한 비상계획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글라이스틴 전대사를 통해 신군부에 전달했고 ▲80년5월22일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이 직접 무력개입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며 ▲같은날 20사단의 광주 추가투입을 승인했고 ▲비상계획에 공수부대 투입이 포함돼있음을 사전에 미국이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무부는 이 성명에서 ▲미국은 16일 한국군이 연합사에 20사단 60연대 등을 작전통제권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해왔고 ▲한국군은 연합사의 작전통제를 받는 부대를 통고만으로 해제시키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연합사령관은 이 통고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80년 5월19일 광주미문화원장이 대사관에 걸어온 전화로 최초의 단편적 정보를 입수,민간 및 군사경로를 통해 (한국정부가) 군사력의 지나친 사용에 대한 사과나 유감의 뜻을 표할 것을 종용했으며 ▲특전사부대들이 광주로 이동된 것을 몰랐고 ▲글라이스틴대사가 미국이 20사단의 이동을 승인했다고 말했으나 한국정부는 작통권을 가진 부대에 대해 미국의 견해와 관계없이 부대를 이동시킬 수 있으며 ▲광주에서 라디오방송으로 『미국측이 특전사부대의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취소할 것을 한국정부에 정식요구했으나 무시됐다고 조목조목 밝혔다. 글라이스틴 전대사는 『89년의 성명이 매우 정확한 문건』이라면서 『향후 1∼2년안에 갖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책을 써 정확한 실상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존 위컴 전 연합사령관은 『한국군측이 폭동통제를 위한 훈련용이라며 합법적으로 20사단의 이동을 요청해 이동을 승인했으나 이 부대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특수군은 한국측이 미측에 알리거나 승인받을 필요없이 국내안보 목적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승인을 해주면서도 『대포등 중무기는 북한쪽으로 그대로 놓아둔다는 조건으로 승인했다』고 강조했다.
  • 「광주항쟁 무력진압 승인」 미 문서 내용

    ◎“한국군부서 병력이동 요청땐 동의할 것/질서회복위해 미군병력 사용 배제안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해서 글라이스틴 전주한미대사가 본국정부에 보낸 비밀전문과 백악관회의록 등을 날짜별로 정리한다. ▲80년 5월7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워싱톤에 보낸 「한국정부,특전사를 이동시키다」는 제목의 비밀전문=한국 군부는 우발적 상황과 학생들의 시위 가능성에 대비해 2개 공수여단을 서울과 김포공항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사실을 주한미군 지휘관들에게 알려왔다.13공수여단은 8일 특전사본부로 이동할 것이고 11공수여단은 김포지역으로 이동해 1공수여단과 함께 주둔할 것이다.주한미군은 포항의 해병1사단이 대전 및 부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다.한국 군부로부터 병력이동 요청이 오면 미군사령부는 동의할 것이다. ▲5월8일 국방정보국이 국방부·합참에 보낸 비밀전문=특전사부대가 비상대기중이며 서울 외곽에 남은 부대는 7공수여단뿐으로 이 부대는 전주와 광주지역 학생소요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9일 글라이스틴 대사와 크리스토퍼 부장관 교신내용=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경우 경찰에 군을 가세시킨다는 한국정부의 비상계획에 대해 미정부가 반대한다는 여하한의 시사도 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법적용이 자제 속에 신중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그 위험이 급증할 것임을 귀하(글라이스틴)가 전(두환)과 최(규하)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5월19일 글라이스틴대사의 전문=서울에 퍼진 루머에 따르면 특수부대 병력이 (광주)학생들에게 총검을 사용해 많은 사상자가 났다. ▲5월22일 백악관 정책검토위원회 회의록(참석자:머스키 장관,크리스토퍼 부장관,홀브룩 차관보,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헤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등 15명)=지금까지 가져온 태도 이상의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데 의견일치.미군의 추가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데 동의.미국은 자제를 촉구했으나 질서회복을 위해 필요시 병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많은 인명손실을 가져온채 광주사태가 수습되면 다시 정책검토위원회를 소집해 추후대책을 논의.
  • 박준병·장세동·최세창씨 구속/검찰/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경복궁 모임 참석·주선… 별력 불법 출동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2일 12·12사건과 관련,박준병 의원(자민련)을 군형법의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12·12 당시의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씨와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도 이 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서울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20부 김문관판사는 이 날 검찰이 청구한 박의원의 구속영장과 장·최씨의 영장을 함께 발부했다. 검찰은 상관살해 및 살해미수 혐의가 드러난 당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씨와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는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미국에 도피 중인 당시 1공수여단장 박희도씨와 5공수여단장 장기오씨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검찰에서 두차례 조사를 받고 지난 달 캐나다로 몰래 출국한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씨도 기소중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12·12 및 5·18 사건으로 사법처리됐거나 될 사람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정호용의원 등 현역 의원 4명을 포함,모두 19명이다. 박의원은 12·12 당시 반란을 모의한 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고 20사단 병력을 동원,육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출동하려던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을 사전에 저지하는 등 반란에 가담한 혐의이다. 장씨는 30경비단장실을 「경복궁 모임」의 장소로 제공,반란모의에 적극 가담했으며 정승화 전 육참총장을 연행할 때 30경비단 5분대기조 병력 70여명을 출동시켰다. 최씨는 12·12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에게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을 연행토록 명령,이 과정에서 김오낭 전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 사살당했으며 특전사 2개대대의 병력 6백여명을 경복궁으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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