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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복지대상 수상한 전북소방본부 백광일 소방위

    동물복지대상 수상한 전북소방본부 백광일 소방위

    “반려동물과 인간은 교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지요” 6일 국회의원 연구단체 동물복지포럼(공동대표 박홍근·이헌승·한정애)에서 ‘동물복지대상’을 수상한 전북 완주소방서 119구조대장 백광일 소방위(53). 그는 “반려동물 천만시대를 맞아 이제는 동물복지를 실현해야 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생명 존중 차원에서 애완동물의 단계를 넘어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물복지포럼에는 여야 국회의원 38명이 활동하고 있다.백 소방위는 이날 동물권 향상과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행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방관으로서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활동뿐 아니라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과 제도, 문화 수준을 높이는데 앞장서 왔다. 특히, 백 소방위는 동물구조활동은 물론 반려인을 위한 반려동물 심폐소생술 등 다양한 교육활동에 솔선수범했다. 전국 최초로 소방서 내 유기동물임시보호소를 설치·운영하는 등 생명존중과 동물복지보호에 모범을 보였다. 그의 동물복지에 대한 헌신과 지속적인 활동, 창의성, 사회적 참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앞서 백 소방위는 동물자유연대가 후원하는 ‘119동물구조대상’도 수상했다. 동물 구조 및 동물보호에 헌신하고 사회적 인식 변화에 노력하는 소방서와 소방대원에게 주는 상이다.특전사 출신인 백 소방위는 2001년 119 구조대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23년간 구조대원으로 활약해온 백 소방위가 동물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건물 붕괴 수색 교육 당시 구조견의 활약을 체험하면서부터다. 2009년 인명탐색장비교육을 받으면서 구조견의 수색 능력을 보고 반려동물에 반해 관심과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이후 반려동물을 이해하기 위해 반려견 지도사, 반려동물 관리사, 행동교정사, 장례지도사, 훈련사 등 관련 자격증 다수 취득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순회하며 실시한 반려동물 심폐소생술 및 개 물림 사고 예방과 대처요령 교육 등으로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사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집 반려동물 심폐소생술 내 손으로, 반려동물 응급처치 매뉴얼 작성, 반려동물 문화 축제 참가 등 열정 넘치는 활동도 화제다.23년 차 베테랑 구조대원인 그는 인명수색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17년 전북 소방관 최초로 중앙구조본부에서 실시하는 핸들러 전문과정을 이수했다. 앞서 반려동물관리사와 반려견지도사 자격도 취득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2017~2019년에는 동반견훈련대회에 참석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제 눈빛만 보아도 반려견의 건강과 심리상태를 알아보는 전문가가 됐다. 그는 전북소방본부에 구조견이 없어 타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 끝에 인명구조견을 직접 양성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훈련사 자격을 갖추고 특수견을 기르기 시작했다. 구조견을 기르기 위해 아파트를 팔고 전주시 외곽에 단독주택을 지어 이사했다. 백 소방관은 “소방청에 등록된 공식 구조견은 아니지만, 훌륭한 수색견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며 “반려인이라면 책임감과 배려심을 가지고 반려동물을 대해야 하고 펫티켓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도 반려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 회상한 文 “실명된 부인이 찾아와”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 회상한 文 “실명된 부인이 찾아와”

    1979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반란군들은 군사반란에 저항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고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하는 바람에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유일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M16 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문 전 대통령이 본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남편의 명예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중령 진급과 무공훈장 추서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현직인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과 군사반란 장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려 했지만 소송을 포기했고, 1991년 6월 28일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일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뒤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라며 백영옥씨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참으로 뼈아픈 역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와 사회에 남긴 상처가 매우 크고 깊다. 아픈 역사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때 그녀는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지극한 슬픔 때문에 눈물로 지내다 완전 실명 상태였고, 그 모습이 애잔했다”며 한 일간지 기자의 소개로 법률상담을 위해 찾아온 김 소령 부인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례 없는 소송이어서 결과를 전망하기 어렵지만, 피해자 개인 차원으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도모할 유일한 길’이라는 의견을 말해줬다. 그런데 소송 의지를 밝혔던 그녀가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기억했다. 문 전 대통령은 “기자로부터 들은 소식은 실족으로 추락사했다는 것”이라며 “장래가 촉망되던 남편에 이어 부인까지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애달픈 일이다. 부디 저승에서 두 분이 이어져 행복하길 비는 마음”이라고 김 소령과 백 여사를 추모했다.지난해 ‘순직’에서 ‘전사’로 기존 군 기록에서는 “출동한 계엄군에게 대항하다가 김오랑 소령이 먼저 사격하자 계엄군이 응사하는 상호 총격전이 벌어져 계엄군이 발사한 M16 소총에 맞아 현장 사살”됐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반란군이 김 중령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난사하며 난입하자 김 중령이 권총을 쏘며 대항하다가 숨졌다는 선후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 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故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 ‘서울의 봄’ 관람한 文 “불의에 대한 분노가 현실 바꾸는 힘 되길”

    ‘서울의 봄’ 관람한 文 “불의에 대한 분노가 현실 바꾸는 힘 되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뒤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참으로 뼈아픈 역사입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와 사회에 남긴 상처가 매우 크고 깊습니다”라며 “아픈 역사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 삼아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특전사령관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김오랑 소령의 부인을 만난 사실을 회고했다. 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으로부터 10년쯤 지난 무렵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 여사를 두어번 만난 일이 있었다”며 “그때 그녀는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지극한 슬픔 때문에 눈물로 지내다 완전 실명 상태였고 그 모습이 애잔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한겨레신문 부산 주재 기자였던 이수윤 기자가 그녀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권유하면서 법률상담차 내 사무실로 모시고 왔다”며 “전례 없는 소송이어서 결과를 전망하기 어렵지만 피해자 개인 차원으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도모해 볼 유일한 길이라는 의견을 말해줬다”고 기억했다. 그는 “하지만 소송 의지를 밝혔던 김오랑 소령의 부인은 그 후 연락이 끊겼고, 얼마 후 이수윤 기자로부터 실족으로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장래가 촉망되던 남편에 이어 부인까지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애달픈 일이다. 부디 저승에서 두 분이 이어져 행복하길 비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 ‘서울의 봄’ 수경사·특전사 촬영지?…모두 이 대학이다

    ‘서울의 봄’ 수경사·특전사 촬영지?…모두 이 대학이다

    한남대가 한창 흥행몰이 중인 영화 ‘서울의 봄’ 촬영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한남대는 지난해 3월 교내 사범대와 탈메이지기념관에서 이 영화가 촬영됐다고 5일 밝혔다. 사범대는 ‘수도경비사령부’로, 탈메이지기념관은 ‘특전사령부’로 나온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 반란이 배경이다. 개봉과 동시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심박수 인증’ 등 화제를 낳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인 배우 정우성이 사범대 잔디밭에서 본관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를 SNS에 올리면서 오래 전부터 영화·드라마의 촬영 명소로 꼽힌 이 대학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한남대는 2006년 ‘그해 여름’(주연 이병헌, 수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5편 이상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쓰였다. 대전시문화재로 지정된 교내 선교사촌에서 영화 ‘덕혜옹주’(2016)·‘살인자의 기억법’(2017)·‘정직한 후보’(2020)와 드라마 ‘마더’(2018) 등이 촬영됐다. 송중기 주연의 ‘보고타’(미개봉) 영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또 대운동장은 ‘코리아’(2012), 학생회관은 ‘변호인’(2013), 계의돈기념관은 ‘1987’(2017), 사범대 잔디광장은 ‘쎄시봉’(2015) 등 영화가 촬영됐다. 드라마 올해 ‘비질란테’, 지난해 ‘모범형사2’도 찍었다.
  • “역적이 잘 사는 역사 반복돼선 안 돼”…12·12 맞선 故김오랑 조카의 당부

    “역적이 잘 사는 역사 반복돼선 안 돼”…12·12 맞선 故김오랑 조카의 당부

    1979년 12월 13일 0시 20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반란을 진압하려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했기 때문에 정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뿐이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2일째 4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66)씨가 영화를 본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정해인) 배우가 삼촌과 많이 닮아서 보기 좋았다”면서 “삼촌이 죽는 장면은 눈물이 나서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김 소령은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델이다.김 중령의 부고 소식은 12·12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가족에게 전달됐다.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총탄을 맞은 김 중령의 시신은 거의 두 동강이 났고, 신군부는 김 소령의 시신을 특전사 뒷산에 암매장했다. 김씨는 “온 집안이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삼촌이 머지않아 별을 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며 “집안의 희망이었던 삼촌이 처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동네 강아지처럼 야산에 묻힌 충격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김 중령의 아내 백영옥 여사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한 후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김씨는 “수사관들이 숙모의 죽음은 실족사니까 너무 떠들지 말라고 하더라”며 “정병주 전 사령관 역시 숙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야산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까지 생각해보면 숙모의 죽음도 타살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2014년 정부는 김 중령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했다. 김 중령이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여하거나 접적 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무공훈장 추서 요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었다. 지난해 11월 국방부는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김씨는 “정부도 삼촌이 ‘전사’한 것이라고 결정한 만큼 이제라도 무공훈장으로 바꿔주는 게 맞다고 본다”며 “육군사관학교와 특전사령부 안에 삼촌의 흉상까지 세워진다면 그토록 매달렸던 명예 회복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국방부는 김 소령의 사망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김씨는 “요즘 보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지 걱정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19년 한 유튜브에 출연해 “12·12는 나라를 구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신 장관은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고, 대한민국 현실에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그때 (방송에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앞뒤 맥락을 좀 자르고 이야기한 것 같다. 저는 그(12·12)에 관한 대법원 확정판결과 정부 공식 입장을 100%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기도 안 찬다. 어떻게 반란을 편드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될 수가 있느냐”면서 “이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판단이 다 끝난 사안에 대해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다. 그러면 우리가 역적의 가족이란 소리냐”고 되물었다.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두고 김씨는 “시간이 흐르며 삼촌의 이름이 잊히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촌은 나라를 지키고 상관을 구하기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의 귀감이었다”며 “많은 분이 영화를 보고 삼촌의 희생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역적들은 편안하게 잘 살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은 고통받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의 봄’ 정해인이 연기한 ‘참군인’…일가족 실명·사망

    ‘서울의 봄’ 정해인이 연기한 ‘참군인’…일가족 실명·사망

    1979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반란군들은 군사반란에 저항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고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하는 바람에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유일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M16 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김오랑 중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한 후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6일 만에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김오랑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27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배우의) 얼굴 자체가 삼촌 젊었을 때와 좀 많이 닮은 형태라, 베레모 쓰고 해놓으니까 생각이 많이 나더라”라고 전했다. 김씨는 김오랑 중령을 살해한 박종규 중령이 임종 직전 남긴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박 중령이) 자기가 죽으면 ‘오랑이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다’는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그렇다”라고 울먹였다. 김씨는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하면 다 아는 그런 계기가 됐으니까 이 영화 만든 사람한테 고맙다고 이야기나 한번 해주이소”라며 사과받지 못한 마음이 그저 답답하게 사무치면서도 역사를 다시 한번 남겨 줘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지난해 ‘순직’에서 ‘전사’로 기존 군 기록에서는 “출동한 계엄군에게 대항하다가 김오랑 소령이 먼저 사격하자 계엄군이 응사하는 상호 총격전이 벌어져 계엄군이 발사한 M16 소총에 맞아 현장 사살”됐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반란군이 김 중령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난사하며 난입하자 김 중령이 권총을 쏘며 대항하다가 숨졌다는 선후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 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故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 ‘원장 공백’ 국정원 새벽 긴급 회의… “조직 기강 확립”

    ‘원장 공백’ 국정원 새벽 긴급 회의… “조직 기강 확립”

    국가정보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홍장원 1차장이 28일 새벽 서울 서초구 내곡동 본청에서 긴급 전 부서장회의를 개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 내 인사 잡음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수뇌부 3명을 모두 경질한 가운데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국정원의 긴급 전 부서장회의 소집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이다. 이날 국정원에 따르면 홍 1차장은 긴급회의에서 철저한 조직 기강 확립을 주문하고 원장 직무대행체제에서 한 치의 정보 공백이나 국민 불안도 없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또 홍 1차장은 북한의 최전방 군사초소 중무장, 군사정찰위성 발사 후속 동향 등 군사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고 미중 간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사이버 해킹 같은 안보 위협 요인에 기민하게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앞서 국정원 간부 인사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수습되지 않자 윤 대통령은 영국·프랑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26일 김규현 전 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후임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때까지 홍 1차장이 원장 직무를 대행한다. 홍 1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특전사 707 특임대대 중대장(대위)을 지냈고 영국 공사와 국정원장 비서실장, 국정원장 대북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김 전 원장은 전날 이임식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던 국정원이 방향을 정하고 직원 모두가 다 함께 큰 걸음을 내디딘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면서도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충분히 기대에 부응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 [최보기의 책보기] 승패는 누가 뭐래도 지휘관에게 달렸다

    [최보기의 책보기] 승패는 누가 뭐래도 지휘관에게 달렸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서울의 봄>이 전국 남녀노소를 강타하고 있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의 쿠데타에 맞서 이를 저지하려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분)과 그를 지키려다 반란군의 총에 맞고 죽은 비서실장 오진호 중령(정해인 분) 등이 벌이는 아홉 시간의 긴박했던 상황을 그린 팩션이다. 진압군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에서 중과부적인 데다 승패를 가를 ‘통신-정보’를 반란군 측이 장악하고 있어 이미 결과가 예정된 싸움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군에게 패망의 분수령은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이 전투는 지휘관의 문제보다 미군의 역 정보전에 낚여 일본 함대의 공격 지점이 미리 노출된 탓이 컸다. 그러나 동남아에서 영국군, 중국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일본 육군이 궤멸하다시피 무너졌던 1944년의 인도 동부 군사 요충지 임팔(Imphal) 전투 패인은 희대의 두 명장(?) 무다구치 렌야와 하나야 다다시 탓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들을 일러 소위 ‘똥별’이라 했던 만큼 지휘관 한 명의 무능과 교만이 어떻게 10만 병사를 사지로 몰아넣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전투였다. 중국 본토의 장제스가 적지 않은 무력과 병력에도 불구하고 버마와 본토에서 일본군에게 밀렸던 데는 미국에서 파견 나온 명장(?) 조지프 워런 스틸웰이 있었다. 1940년 유럽 최강 전력의 프랑스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에게 무너진 데는 또 한 명의 탁월한 바보, 프랑스군 총사령관 모리스 귀스타브 가믈랭 원수가 있었다. 물론 우리라고 그런 명장이 없었겠는가? 인터넷에 근거 없이 떠도는 ‘한민족 3대 패전’은 임진왜란의 칠천량해전, 병자호란의 쌍령전투, 그리고 6.25 전쟁 때 중국군의 5차 공세가 있었던 동부전선의 현리전투이다. 현리전투 이후 한국군 제3군단이 해체됐고 작전지휘권이 연합군(미군)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를 다룬 『별들의 흑역사』는 동서고금 명장(?)들이 발군의 패배를 보여줬던 12건의 전쟁(전투)을 다뤘다. <서울의 봄>에 편승해 시간 죽이기(killing time)용으로 읽어보기 딱 재미있는 책이다.
  • 4일만에 100만 관객 돌파 ‘서울의 봄’··· 이건 알고 보자, 관전포인트 셋 [시네마랑]

    4일만에 100만 관객 돌파 ‘서울의 봄’··· 이건 알고 보자, 관전포인트 셋 [시네마랑]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4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이날 오후 1시 35분 기준 누적 관객 100만명을 넘겼다. ‘범죄도시3’(누적 관객 1068만명), ‘밀수’(514만명), ‘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명)와 버금가는 속도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러닝타임은 141분. ‘서울의 봄’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봤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한국 남자 배우들 여기 다 있다'··· 주요 캐릭터만 68명‘서울의 봄’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주요 인물만 68명이다. 이외에도 비중있는 연기가 필요한 배우 77명 등을 포함해 극을 채우는 배우가 총 224명에 달한다. 신군부의 핵심 인물인 전두광 보안사령관은 황정민이, 신군부에 맞서 서울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정우성이 연기했다.이외에도 이성민(정상호 참모총장 역), 박해준(노태건 9사단장 역), 김성균(김준엽 헌병감 역) 등이 열연한다. 특별출연으로는 정만식(공수혁 헌병대장 특전사령관 역)과 정해인(오진호 소령 역) 등이 나온다. 한마디로 빈틈없는 라인업이다. 배역이 많다 보니 ‘한국 영화계에서 존재감 있는 아저씨들이 다 나와 연기 차력 쇼를 펼친다’는 재미있는 평도 나오고 있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의 재해석을 위해 실존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지 않았다. 극 중 전두광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주역 전두환을, 이태신은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한 장태완 소장을 모티브로 한다. 이성민이 연기한 정상호 역의 실제인물은 대한민국 제22대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다. 노태건 역의 실제인물은 이름에서 쉽게 추측되듯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태우다. 노태우는 박정희 정부 당시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결성했다.김성수 감독은 (캐릭터를) 가명으로 이름을 바꾸는 순간 자유로워졌고, 더 주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역의 실존 인물 정태완 소장은 실제로 불같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활화산 같은 ‘전두광’과 대비되는 ‘흔들림 없고, 지조 있는 선비’ 같아야 더 설득력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외롭게 혼자 남는 이태신이 완성됐다. 필요한 경우 캐릭터의 성격을 바꾸기도 하며 12·12사태 속 인물들을 재해석한 ‘서울의 봄’. 각기 다른 목적의식을 가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길 바란다. 진실 혹은 각색‘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각색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면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는 세종로에서 수도경비사령부 병력과 반란군이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극 몰입감을 위해 연출된 장면으로 사실과 다르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극중 이태신 역)은 병력을 소집해 출동을 준비했으나 전두환(극중 전두광 역)의 신군부가 이미 육군본부를 장악하며 ‘장태완 사살 명령’을 내린 탓에 실제로 출동하진 못했다. 반란군 진압에 실패한 이태신이 전두광과 대면하는 장면 역시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이 씬은 이태신이 전두광에게 건내는 짤막한 대사 한 줄을 위한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떤 대사인지는 영화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김성수 감독은 9일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역사와 제 상상을 놓고 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역사 속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반란의 계기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감독의 상상력이 투영됐다는 것. 그렇게 역사적 사건에 장르적 고민까지 더해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 넘치는 텐션을 유지한 ‘서울의 봄’이 완성됐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두광도 이태신도 아닌 ‘아무개’영화의 클라이막스에 극 내 비중이 적은 공수혁 헌병대장 특전사령관(배우 정만식)과 오진호 소령(배우 정해인)의 비극 씬이 등장한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적도 아군도 아닌 이들에게 맞서야 했던 그들의 비참한 최후가 약 8분가량 그려진다. 관찰자 시점으로 사건 전개에만 몰두했던 영화의 건조한 톤과는 상반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특별출연의 작은 배역이 극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에 길게 등장하는 만큼 감독의 의도가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의 통일성을 해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씬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씨네플레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씬이 영화에서 ‘튀어나온 모서리’같이 보일지라도 꼭 넣고 싶었다. 그런 비극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는데, 오직 자리를 지켰다는 이유로 너무 큰 불행을 겪지 않았나. 특전사령관과 비서실장, 육본 헌병감 같은 사람들이 곧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군인이다. 그들이야말로 역사 속에 있는 진짜 군인이다” 감독은 ‘그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보일 순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만큼은 한 치의 꾸밈도 없는 온전한 진실’이라며 헌병대장 특전사령관과 소령의 죽음에 관한 자료조사를 하다 눈물을 쏟았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12월 12일 그날 밤, 도망치는 대신 죽음을 불사하고 군인으서 명예를 지켰던 평범한 병사들이야말로 오늘날 서울의 봄을 만들어낸 주역이 아닐까.
  • 과연 자매선…브리태닉, 타이태닉 비슷한 곳에서 침몰 ‘비운’[지구촌 소사]

    과연 자매선…브리태닉, 타이태닉 비슷한 곳에서 침몰 ‘비운’[지구촌 소사]

    처녀 출항에서 침몰한 비운의 호화유람선 ‘타이태닉호’엔 동생이 있었다. 영국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 선사의 자매선 ‘브리태닉호’ 역시 항해 중 침몰이라는 비운을 맞는다. 하필 참변을 당한 위치도 엇비슷하니 참으로 묘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11월 21일 오전 8시 12분쯤 영국 해군의 병원선 ‘브리태닉호’가 그리스 에게해의 케이스 섬을 지나던 도중 갑자기 우현에서 커다란 섬광과 함께 폭발음을 울렸다. 배수량 4만 8158t이나 되는 거대한 선박은 엄청나게 높아진 물결에 휩싸여 뒤뚱거렸다. 덩달아 탑승한 부상병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얄궂게도 아주 청명한 날씨였다. 침몰의 원인이 독일군 특전사 유보트(U-Boat)의 공격인지, 기뢰에 의한 폭발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군대의 공격에 의한 것임은 분명했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브리태닉 선장 존 코로퍼(1864~1916)는 인근 케오스 섬까지 항해한 뒤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모면하려 했지만 결국 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울어져 희망을 꺾어버렸다. 다만 구명정 하나가 전속력 추진 중인 배의 왼쪽 스크류에 걸려 3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바틀렛 선장 또한 침몰하는 배에서 침착하게 빠져나와 근처 구명정으로 헤엄친 뒤 구조 작업을 전두지휘했다고 한다. 탑승객 1066명 중 대부분이던 환자와 의료인들은 승조원들의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탈출했다. 브리태닉은 사고 후 55분 만에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사람들을 전원 구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구명정이 프로펠러 날에 찢겨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타이태닉 침몰 때의 뼈아픈 경험을 살려 크레인까지 설치해 구명정을 최대 한계치로 갖춘 덕분에 사상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브리태닉의 선상 간호사 바이올릿 제솝(1887~1971)은 올림픽호 충돌사고 때에도 배에서 근무했고, 타이태닉 사고 생존자 710명 중 1명이었으며, 이후 브리태닉에서 근무하다 또 다시 사고를 당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미스 불침몰’(Miss Unsinkable)이라는 흥미로운 별명을 얻었다. 1986년 에게해에서 브리태닉의 잔해가 발견됐다. 브리태닉호는 ‘언니’ 타이태닉호처럼 두동강으로 산산조각나지는 않았다. 해저 146m의 그다지 깊지 않은 연안에 침몰해서인지 멀쩡하게 형상이 남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최대 상선이란 기록을 남겼다. 화이트 스타 라인에 따르면 브리태닉은 당초 대서양을 운항하기 위해 올림픽급으로 만든 세 번째 선박이었다. 첫 번째 올림픽호, 두 번째는 타이태닉이다. 올림픽급 여객선은 1907년 경쟁사인 큐나드 라인의 주력 여객선이었던 루시타니아와 모리타니아를 뛰어넘는 더 크고 호화롭게 만들려는 화이트 스타 라인 경영진의 의지를 담은 선박이다. 올림픽과 타이태닉이 각각 올림푸스족과 타이탄족에서 이름을 땄듯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이갠틱(Gigantic)이라고 명명했다가 침몰한 타이태닉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바꿨다. 결국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뽐내려는 의도였다. 타이태닉 침몰 사고로 올림픽급 선박에 치명적인 결함이 밝혀지자 건조 중이던 브리태닉의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의 설계를 뜯어 고치느라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다. 어쨌거나 1914년 2월 26일 진수된 뒤 여객선으로 활용되나 싶었으나 7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듬해 병원선으로 징발돼 개조를 거쳤다. 화이트 스타 라인의 첫 번째 올림픽급 선박인 올림픽호는 1911년 6월 14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까지 무난하게 첫 항해를 마쳤다. 그러나 다섯 번째 항해를 하던 9월 20일 영국 해군의 순양함과 충돌해 선수 우현에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6주간에 걸친 수리를 통해 11월 29일 운항을 재개했다. 타이태닉은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을 향해 출항한 지 닷새 후인 1912년 4월 10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로부터 동남쪽 700㎞ 지점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탑승자 2224명 중 15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배수량 5만 2310t으로 세계 최대의 유람선이던 타이태닉호는 선내에 레스토랑은 물론 개인 목욕탕과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흡연실, 그 외의 호화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느슨한 규제 탓에 구명정은 20척밖에 없었다. 구명정 20척의 최대 정원은 1178명이었다.
  • [포토] 육군특수전사령부, 특공무술 경연대회 진행

    [포토] 육군특수전사령부, 특공무술 경연대회 진행

    육군 정예 장병들이 유사시 근접격투에서 적을 일격에 제압할 수 있는 특공무술 최강자 자리를 놓고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육군특수전사령부는 지난 11일부터 3일간 경기도 이천에 있는 특전사령부에서 ‘제3회 특수전사령관기 특공무술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대회는 장병들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전력 강화에 기여함은 물론, 특공무술 저변 확대를 위해 마련됐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는 특전사를 포함한 2신속대응사단, 군단 특공연대 등 14개 부대, 200여 명의 장병들이 참가해 겨루기(개인·단체), 품새, 격파 등 3개 종목에서 기량을 뽐내고 있다. 한편, 특공무술은 신체와 대검, 야전삽 등의 장비를 활용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적을 일격에 제압하는 무술이다. 특전사는 기존 근접전투기술을 체계화해 1978년 특공무술을 만들었다. 특전사는 이후 특공무술의 위상을 높이고자 교범 발간, 전문교관 양성, 육군 공인 자격증 신설 등을 진행해왔다.
  • 특전사 부사관, 술 마시던 부대원 흉기로 찔러 현행범 체포

    특전사 부사관, 술 마시던 부대원 흉기로 찔러 현행범 체포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부대원을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특전사 부사관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1일 살인미수 혐의로 특전사 부사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이날 오전 6시쯤 경기도 수원의 한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부대원 B씨의 가슴 부위를 흉기로 두차례 찌른 혐의(살인미수)를 받는다. B씨는 가슴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 종업원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체포했다. 이들은 다른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사건이 발생한 주점에 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허탕을 치자,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B씨는 같은 부대 소속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A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면서 “조만간 군 헌병대에 인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특전사 부사관끼리 술집서 싸우다 흉기로 동료 가슴 찔러

    특전사 부사관끼리 술집서 싸우다 흉기로 동료 가슴 찔러

    추석 연휴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부대 동료를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특전사 부사관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1일 살인미수 혐의로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A씨는 이날 오전 6시쯤 경기 수원시의 한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B씨의 가슴 부위를 식당 주방에 있던 흉기로 두차례 찌른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있다. 식당 종업원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붙잡았다. 이들은 다른 술집에서 술을 마신 후 사건이 발생한 주점에 또 다른 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허탕을 치자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같은 부대 소속인 두 대원이 싸우다가 범행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며 “A씨를 곧 군 군사경찰에 인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특전사 출신 女, 고공강하 훈련 중 뇌진탕…“부모님 기억 안나”

    특전사 출신 女, 고공강하 훈련 중 뇌진탕…“부모님 기억 안나”

    특전사 출신 여성 예비군 소대장 강은미가 군 시절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순간을 털어놓았다. 17일 방송된 KBS 1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강은미가 출연했다. 이날 강은미는 그동안 받은 훈련 중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고공강하를 언급했다. 그는 “고공강하 훈련을 하는데 4차선 고속도로 위로 하강한 적도 있고, 반바지를 입고 인조 잔디 위에 착륙했는데 다리가 뜨거워서 보니까 뒤에 살점이 떨어져 있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착지할 때 강풍이 불어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100m 정도 끌려갔다. 새 헬멧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였다”면서 “그때 다들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구토하고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CT를 찍었는데 의사가 부모님 성함을 묻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군복을 왜 입었는지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몰랐다”며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강은미는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기억이 돌아오더라”라고 덧붙였다. 한편 8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국내 최초 특전사 출신 여성 예비군 소대장인 된 강은미는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에서 군인 팀으로 출연했다.
  • 미스코리아·특전사·국가대표 모두 ‘이 사람’…최종 목표는

    미스코리아·특전사·국가대표 모두 ‘이 사람’…최종 목표는

    “특전사 군복과 맞바꾼 대회다. 반드시 아시아 정상에 서겠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카바디 여자 국가대표 우희준(29)이 화려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희준은 2016년 울산대에 입학해 7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19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혔다. 미스코리아 지원 당시에도 “비인기종목인 카바디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참가를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희준은 졸업 후 2020년 ROTC 59기로 임관했다. 2021년부터 육군특수전사령부 국제평화지원단에서 근무했다. 이 기간 그는 통역 장교로 레바논 파병을 다녀오기도 했다. 입대 후에도 소대원들에게 카바디를 알려주던 그는 국가대표의 꿈을 위해 지난 6월 중위로 전역했다. 우희준은 “아시아선수권 대회나 다른 대회에서는 금메달이나 1위를 한 경험이 있지만 가장 큰 대회에서 메달이 없다는 게 선수 입장에서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았다”고 말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카바디는 힌디어로 숨을 참는다는 뜻으로 술래잡기와 격투기가 섞인 종목이다. 7명씩 이뤄진 두 팀이 경기를 하며 한 팀의 공격수가 수비수를 터치한 뒤 자기 진영으로 무사히 되돌아오면 점수를 얻는다. 반대로 터치 당한 수비수들이 그 공격수가 자기 진영까지 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되려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공격수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갈 때면 ‘카바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쳐야 하는 것도 큰 특징이다.우희준은 최근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리그’에 출연해 “아버지가 전 태권도 선수셨고, 강력계 형사 생활을 오래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 아버지처럼 국위선양을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며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우리 남자팀이 종주국 인도를 물리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우희준이 출전했던 여자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다.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단 우희준은 오는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부산에서 맹훈련 중이다. 제19회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2022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연기돼 올해 열린다. 이달 23일 시작해 10월 8일에 막을 내린다.
  •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육군협회 석좌위원 위촉돼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육군협회 석좌위원 위촉돼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예비역 중장)이 미육군협회(AUSA·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 Army)의 석좌위원으로 위촉됐다. 21일 국방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육군협회가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석좌위원으로 위촉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1950년 설립된 미육군협회는 미국 육군의 최신 교리와 군사 전략, 복지 향상 방안 등을 연구하고 알리는 예비역 단체다. 전 세계에 122개 지부, 회원 15만명을 두고 있다. 석좌위원들은 미육군협회 회원들과 지역 지도자, 대중에게 군사 분야에 대한 전문적 강의를 제공한다. 전 전 사령관은 대표적인 미국통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육군사관학교 37기로 2005년 미국 동성훈장, 2016년 미군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 등 한미 정부로부터 11개의 훈장을 받았다. 전 전 사령관은 주한미군, 미국 주요 단체 등에서 한미 군사 관계 강화 방안과 북한의 위협 등을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전 전 사령관은 “최선을 다해 한미동맹 강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 ‘코로나 동선 거짓 진술 벌금형’ 백경현 구리시장 항소

    ‘코로나 동선 거짓 진술 벌금형’ 백경현 구리시장 항소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동선을 허위로 진술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백경현 경기 구리시장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17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 따르면 백 시장은 지난 16일 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 이유서는 아직 내지 않았으나 백 시장은 1심 재판 과정에서 “무자격자가 역학 조사해 위법하고, 이동 경로를 허위로 진술하지 않았다”는 주장해 왔다. 당시 역학조사 경험이 있는 특전사 장교가 파견돼 백 시장의 동선을 조사했다. 백 시장은 제8회 지방선거 전인 2021년 12월 1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받은 뒤 역학조사 때 동선을 속인 혐의(감염병의 예방·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다. 그는 확진 판정 이틀 전 수원시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으나 역학조사 때는 집에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백 시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백 시장은 무죄를 주장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단독 최치봉 판사는 지난 10일 백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역학조사반원이 위촉장을 받지는 않았지만 관련 규정에 따라 파견된 만큼 역학조사 지위가 보장된다고 봐야 한다”며 “피고인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피고인은 현재 시장으로서 대규모 감염병이 다시 유행하면 역학조사를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만큼 이 사건에서 거짓으로 진술한 행위는 공직자로서 용납하기 어려워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콜롬비아 마약왕 ‘오토니엘’ 징역 45년 선고

    콜롬비아 마약왕 ‘오토니엘’ 징역 45년 선고

    세계 최대 규모 마약 조직을 이끌었던 콜롬비아의 마약왕 ‘오토니엘’이 미국에서 45년 징역을 살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이 마약 조직 ‘걸프 클랜’의 두목 다이로 안토니오 우수가(51·일명 오토니엘)에게 징역형과 함께 2억 달러(약 2850억원)가 넘는 범죄수익 몰수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6000명이 넘는 마약조직을 이끌던 오토니엘은 2021년 콜롬비아에서 체포됐다. 파나마 국경과 카리브해 일대를 장악하고 월평균 20t의 코카인을 세계 각국에 공급했다. 사실상 군사 조직에 가깝던 오토니엘의 조직은 경쟁 조직원과 일반 시민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해 악명을 떨쳤다. 그의 명령으로 목숨을 잃은 콜롬비아 군경도 200명을 넘어섰다. 오토니엘에 대한 정보에 최대 30억 페소(약 9억 40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건 콜롬비아 정부는 특전사 500여명과 무장 헬리콥터 22대를 동원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밀매범’을 생포했다. 콜롬비아는 1970년대부터 ‘마약 왕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내전 와중에 정치진영은 좌우익 모두 자금 조달을 위해 마약 카르텔에 의지했다. ‘원조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는 파나마를 오가며 미국에서 코카인을 유통해 재미를 봤다. 무장군단 조직을 이끌며 대통령을 꿈꾸었고 1982년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콜럼비아 정부의 공조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 쫓기다가 1993년 특수부대와의 교전 중 사살됐다.
  • 콜롬비아 마약 흑역사 “하나 추가요”

    콜롬비아 마약 흑역사 “하나 추가요”

    세계 최대규모 마약 조직을 이끌었던 콜롬비아의 마약왕 ‘오토니엘’이 미국에서 45년 징역을 살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이 마약 조직 ‘걸프 클랜’(스페인어로 클란 델 골포)의 두목이었던 다이로 안토니오 우수가(51·일명 오토니엘)에게 이와 함께 2억 1600만 달러(약 2851억 원)에 달하는 범죄수익 몰수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2021년 10월 콜롬비아에서 체포된 오토니엘은 미국으로 넘겨져 올해 초 마약과 관련한 각종 혐의를 시인했다. 그가 이끌던 마약 조직에 몸담은 조직원은 한때 6000명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 국경과 카리브해에 접한 넓은 지역을 장악한 오토니엘의 조직은 국제 마약 조직들과 제휴해 월평균 20t의 코카인을 세계 각국에 공급했다. 최근 우리나라 배우 Y씨의 마약복용 혐의 조사에서 밝혀진 코카인의 1㎏ 판매 가격은 15만 달러(1억 7000만 원)에 이른다. 걸프 클랜은 월 340조원을 챙겼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604조 4000억 원)의 절반을 한층 웃돈다. 가히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상 군사 조직에 가깝던 오토니엘의 조직은 유명 인사들과 경쟁 카르텔 조직원, 일반 시민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은 콜롬비아 군경도 200명을 넘어섰다. 콜롬비아는 오토니엘에 대한 정보에 최대 30억 페소(약 9억 4000만 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미국도 500만 달러(약 59억 원)의 포상금을 책정하고 있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특전사 500여명과 무장 헬리콥터 22대를 동원해 특수작전을 펼친 끝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밀매범’을 생포했다. 오토니엘은 2009년 뉴욕에서 궐석 기소된 상태였다. 콜롬비아는 1970년대부터 ‘마약 왕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수요가 급증할 무렵이다. 조직들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내전 와중에 정치권에선 좌우익 모두 자금 조달을 위해 마약 카르텔에 의지하고 있었다. ‘원조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는 파나마를 오가며 미국에서 코카인을 유통시켜 재미를 봤다. 고향 이름을 딴 조직 ‘매데인 카르텔’을 이끌며 무장군단에다 항공기 15대와 헬리콥터 6대를 갖추기도 했다. 대통령을 꿈꾸며 1982년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직후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공조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 쫓기다가 1993년 12월 특수부대와 교전 중 사살됐다. ‘칼리 카르텔’은 1980년대 후반 매데인 카르텔과 필적하며 테러 등 소란을 피우는 대신 뒷돈을 주고 루트를 뚫는 방식을 즐겼다. 칼리 시 전역에 걸쳐 감청하고 정보를 얻었다. 미국 마약수사국(DEA)은 그들을 역사상 최악의 범죄 조직으로 불렀다. 한때 세계 코카인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그러다가 두목 힐베르토 로드리게스 오레후엘라(1939~2022)가 미국 옥중에서 사망하면서 와해했다.
  • 아시아나항공, 난동승객 대응위해 특공무술 등 보안훈련 강화

    아시아나항공, 난동승객 대응위해 특공무술 등 보안훈련 강화

    지난 5월 착륙하던 항공기의 비상탈출구 출입문이 열려 승객이 위험에 처하는 사고를 당한 아시아나항공이 특수전사령부 대테러요원을 초청해 난동승객을 제압하는 훈련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교육훈련동에서 보안전문가를 초빙해 캐빈승무원을 교육하는 보안교관을 대상으로 특공무술, 난동승객 제압, 전자충격기 사용법, 사격 훈련 등을 진행했다고 2일 밝혔다. 보안교관 훈련은 특수전사령부 대터러요원이 직접 이론을 설명하고, 노하우 전수, 일대일 코칭까지 전체적인 훈련을 진행했다. 또 연발사격이 가능한 전자충격기를 도입한 것과 관려해 제작업체 보안전문가가 사용법과 사격을 교육했다. 지난 5월 제주발 대구행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항공기에서 A씨가 시속 260㎞로 하강하던 도중 비상 탈출구 출입문 레버를 조작해 개방해 승객 190여명이 위험에 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특전사 대테러요원 및 보안전문가에게 전수받은 실무 노하우를 모든 캐빈승무원이 매년 이수하는 정기안전훈련에 적용해 기내보안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캐빈승무원은 기내 폭행, 조종실 진입시도, 기기 조작행위 등 기내안전을 위협하는 협박∙위계행위 승객에 대해서 신속히 제압 및 구금 조치를 실시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승객이 안심하고 탑승하실 수 있도록 기내보안요원인 캐빈승무원의 보안역량강화에 항상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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