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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청문회 위원들 평가

    지난달 18일에 시작된 경제청문회가 오는 13일 마감된다.경제문제는 어려운데다 일부 증인과 참고인들의 위증과 뻔뻔함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쉽지 않았다.특위 위원별 특성과 색깔도 달랐다. 국민회의 丁世均의원과 자민련 鄭宇澤의원이 돋보였다.청문회에 ‘양(兩)정’이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丁世均의원은 흥분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문제를 쉽게 풀어서 질의해 호평을 받았다.정치개혁 시민연대는 “丁의원은어려운 경제문제를 하나하나 풀어서 해 청문회의 또 다른 의미를 느끼게 했다”고 평가했다.鄭宇澤의원은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답게 해박한 경제지식을 활용해 성가를 높였다.국민회의 金元吉의원은 鄭泰守 전한보그룹총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金泳三전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건넸다”는 진술을 얻어냈다.이번 청문회의 최대 대어(大魚)를 낚으며 정책위의장의 ‘이름값’을했다.자민련 魚浚善의원은 재계출신(안국약품 회장)의 이점을 살려 쉽게 접근하고 증인과 참고인들을 거칠게 대하지 않아 점수를 땄다. 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뻣뻣한 증인과 참고인을 혼내는 ‘군기반장’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그래서 서민층으로부터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하지만 일부 오피니언층에서는 거부감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회의 千正培의원은 鄭泰守전총회장의 신문 때 진가를 발휘했다.97년 초 검찰이 鄭전총회장을 조사할 때 YS에게 정치자금을 준 점을 묻지도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율사출신의 이점을 살린 것으로 풀이된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은 청문회 초부터 모든 문제를 YS와 정경유착 쪽에만 결부시켜 사감(私感)에 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鄭전총회장이 하얏트호텔에서 YS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은 언론인 출신의 감(感)을 갖춰 사직동팀의 실체를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같은당 金榮煥의원은 준비를 많이했다.李錫采 전정통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에 깊이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다.자민련 金七煥의원은 차분히 문제에 접근했다는 평이다. 張在植위원장은 해박한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청문회를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했지만 다른 위원들의 신문 도중에 지나칠 정도로 끼어들어 흐름을 끊었다는 평도 받는다.국민회의 金民錫의원은 97년 4월의 한보청문회 때에는 활약을 했지만 이번에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홍일점인 국민회의 秋美愛의원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郭太憲 tiger@
  • [안테나] 무리한 증인-참고인선정 문제로 남아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는 5일 개인휴대통신(PCS)관련증인·참고인 신문을 끝으로 이번 청문회를 ‘사실상’ 마감했다.다음 주에는 종합정리 청문회를 갖지만 새롭게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공식적’으로는 11일에 증인과 참고인을 소환하는 신문을 끝낼 예정이다. 특위는 청문회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달 16일 증인 45명,참고인 45명 등 90명을 출석대상으로 선정했다.청문회 도중 일부 증인과 참고인이 추가돼 모두 100명으로 늘어났다.지난달 25일부터 증인과 참고인을 신문했지만 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인 賢哲씨와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 등 13명은 배짱과 건강,도피성 외유 등으로 나오지 않았다.8일에 나와야 하는 金 전 대통령도 불출석할 게 뻔하다. 경제청문회의 진실규명이 어려웠던 것도 이런 핵심인사들의 불출석 탓이 크다.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출석한 증인과 참고인들의 뻔뻔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특위도 증인과 참고인 선정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을 것 같다.무더기로 증인과 참고인을선정해놓고 실제 질의는 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청문회에 나와서 진술하기로 돼 있던 증인과 참고인 중 具本英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한 22명에게는 질의를 신청한 특위위원들이 없었다. 처음부터 무리다 싶을 정도로 많은 증인과 참고인을 선정한 탓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당차원에서 증인과 참고인을 선정한 경우도 있고 특위위원들이 개별적으로 필요해서 선정한 경우도 있지만 실제 청문회에서는 그냥 지나친 게 많았던 셈이다. 5일 張喆薰 전 조흥은행장,申復泳 서울은행장,鄭之兌 전 상업은행장은 참고인 자격으로 증언을 하기로 돼 있었지만 청문회장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질의를 신청한 특위위원이 없었기 때문이다.이들은 당초 PCS와 관련해 증인과참고인에 포함시키려던 인사들이 빠지면서 대타(代打)로 들어갔었다.구색맞추기식,끼워넣기식으로 선정했으니 질의가 없는 게 당연했다.
  • PCS 심사방식 잘못 시인

    국회 ‘국제통화기금(IMF)환란조사특위’는 오는 11일쯤 청문회에 불출석한 金泳三전대통령의 차남 賢哲씨와 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李錫采 전 청와대경제수석,金己燮 전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張在植위원장은 5일 “청문회에 불출석한 증인을 같이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특위는 金전대통령이 8일 출석하지 않으면 함께 고발할 방침이다.국회에서의 증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에대해 검찰에 고발하도록 돼 있다. 개인휴대통신(PCS) 관련 청문회에서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1차 서류심사결과 5개 청문회 항목 중 상당부분 우세했던 삼성과 현대의 연합컨소시엄인에버넷이 청문심사에서는 모두 0점을 받고 LG텔레콤이 만점을 받은 것은 문제”라고 의혹을 제기했다.鄭弘植 전 정보통신부 정보정책실장은 “지금와서 보니 문제가 있는 면도 있다”면서 “실무진에서는 심사방식을 바꾸는 게문제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이 심사방법을 변경했다”고답변했다.
  • [쟁점] PCS 인·허가비리

    문민정부 이권 사업의 하나로 지목된 개인휴대통신(PCS) 인·허가 과정의비리가 도마위에 올랐다.4일 청문회에서 金泳三 전 대통령의 92년 대선 자금이 이슈였다면 5일 청문회는 차남 賢哲씨의 PCS 사업자 선정 개입 여부가 관심사였다. 특위 위원들은 당시 PCS 사업자 선정 기준이 3차례나 변경된 과정과 특혜여부,賢哲씨 등 권력 주변 인물들의 개입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그러나 賢哲씨를 비롯,李錫采 전 정통부장관,金己燮 전 안기부운영차장 등 핵심 증인들이 출석치 않아 연결고리를 푸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청문회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던 PCS 사업과 권력 주변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金 전 대통령의 사위 등 주변 인물이 한전 포철 LG 등 국내기업에 대해 미국 넥스트웨이브사에 대한 투자를 종용했다”면서“특히 LG는 투자 대가로 데이콤 지분 초과 소유 사실을 묵인받고,PCS 사업자에 선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참고인으로 나온 鄭弘植 전 정통부차관으로부터 “李 전 장관이 사업자 선정위원임명을 주도했다”는 답변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자민련 魚浚善의원은 “趙東晩 전 한솔PCS 부회장이 賢哲씨의 비자금 70억원을 金己燮 전 안기부차장을 통해 관리해 왔음이 밝혀진 바 있다”면서 “賢哲씨가 한솔PCS 사업자 선정과정에 어느 정도 개입됐는지 밝혀라”고 촉구했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도 金 전 대통령의 사위인 李병로(부르스 리)씨와韓昇洙 전 청와대비서실장 등이 나서 LG 등에 미국 넥스트웨이브사에 대한투자를 강요한 의혹을 제기했다.자민련 李健介의원도 “李錫采 전 장관이 PCS 사업자 선정방식을 3차례나 수정한 결과,비장비 제조 업체인 한솔이 PCS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鄭 전 정통부차관은 “그 당시에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런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賢哲씨 라인과 PCS사업간에 연결고리가 있었음을 간접 시인했다.하지만 위원들의 호언장담에도 불구,더 이상의 폭탄성 발언은 없어 대화와 화합 정국을 꾀하려는 여권의 기류를 반영했다.
  • 『경제청문회』이모저모

    5일 ‘PCS 사업자 선정 비리의혹’을 파헤치는 경제청문회는 파장분위기가역력했다.이날 PCS 의혹규명을 마지막으로 청문회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데다관련 증인·참고인들이 이 무더기로 불참,맥빠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특위위원들은 이날 동행명령을 거부한 金賢哲씨등 4명의 증인들을 집중 성토했다. 張在植위원장은 “金賢哲씨와 金己燮 전 안기부운영차장,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朴泰重씨 등 4명이 동행명령장을 전달받고도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고 간략히 보고했다.이어 張위원장은 “賢哲씨와 金전차장은 ‘특위취지에 찬성할 수 없다’며,洪전수석과 朴씨는 ‘몸이 아파서 못나가겠다’며 동행명령을 거부했다”고 밝힌 뒤 “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라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이에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金泳三 전 대통령과 賢哲씨가 ‘정치보복적’ 청문회란 이유를 내세워 출석하지 않고 있는데,환란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왈가왈부해선 안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청문회장 밖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국민회의 鄭東泳대변인도 논평을 통해“賢哲씨의 동행 거부는 법질서에 대한 무시이자 국회 권위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국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賢哲씨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대선자금 발언에 대한 야당측의 ‘회유·협박설’에 대한 특위의 반론도 치열했다.국민회의 李允洙 秋美愛의원 등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金전대통령측에서마치 우리 특위위원들이 구치소로 鄭씨를 찾아가 외압을 행사하고 협박을 해,서로 짜고 입을 맞춘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위원회 차원에서의 엄정 대처를 주문했다.이에 張위원장은 “증인 신문이 끝난 뒤 별도로 특위간담회를통해 논의하자”고 밝혔다.▒청문회 ‘국민 감시단’을 가동하고 있는 민주개혁 국민연합은 이날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밝혀내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후한점수를 매겼다. 국민연합은 이날 경제청문회 평가서를 통해 “92년 대선 당시 金泳三후보에게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진술로 97년 11월 환란의 출발점에 대선자금이라는 정경유착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재벌의 과다 차입경영과 과다 투자 ▒금융기관 부실화 ▒정부의 금융기관 감독소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이 총괄적인 환란 원인으로 규명되는 등 정책청문회로서 ‘자리매김’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국민연합은 가치판단이나 정책판단을 강요하는 특위위원들의 질의가 많았고,환란 등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부족해 자신의 논리에만 집착하고,증인의 논리를 반박하는 순발력이 떨어졌다고 혹평도 아끼지 않았다.
  • ‘핵폭탄급 서면답변’ 할까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의 서면 답변이 정가의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오는 9일 IMF환란조사특위에 제출될 서면 답변의 내용을 놓고 정가는 벌써부터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鄭전총회장은 지난 4일 청문회에서 미묘한 사안에 대해 대부분 피해나갔다.“변호사와 상의해서 상세히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답변이 고작이었다.‘150억원 대선자금 제공’에 이어 정가를 발칵뒤집어놓을 핵폭탄급 발언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된 사안은 단연 92년 대선자금 제공 규모다.鄭전총회장이 4일 청문회에서 인정한 200억원 이외에 ‘+α 대선자금’을 규명하는문제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이 청문회 초반부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800억원 대선자금 제공설’과 국민회의 金元吉의원의 ‘300억원 제공설’ 등의여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5조원이 넘는 은행 대출금 가운데 행방이 묘연한 1조2,000억원 이상의 비자금도 관심사항이다.鄭전총회장은 4일 답변에서 ‘자금 조성비용’ 등 일부비자금의 용도를 밝혔지만 정치권에 뿌려진 비자금은 입을 다물었다.문민정부 당시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살포된 정치권 비자금 유입규모와 정치인들의 명단이 나올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다. 한보비리 조사 당시 검찰의 행태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국민회의千正培의원은 “검찰이 야당총재에 대한 자금제공을 인정하면 아들 譜根씨를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했었다”고 주장했고 鄭전총회장은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응수했다.
  • 鄭씨 회사돈 내돈처럼 사용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어머어마한 비자금을 어떻게 조달했을까.한마디로 한보철강을 鄭전총회장의 개인사유물로 여겼던 데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鄭譜根 당시 한보철강사장은 4일 국회 ‘IMF환란조사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자신이 횡령(유용)한 1,700억원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계열사 증자에참여해 자본금을 늘릴 때에는 개인명의로 했다고 털어놨다.회사공금을 사(私)금고처럼 이용했다는 얘기다. 鄭전총회장은 막대한 자금을 쓴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회계장부 정리를엉터리로 하는 기법을 썼다.돈은 빠져나갔는데 회계장부상으로는 ‘지출’로 잡지 않거나 횡령자금이 당진제철소 공장 건설에 투입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鄭전총회장은 이미 써버린 유용·횡령자금을 94∼96년에 당진공장 건설에쓴 것처럼 건설가계정에 5,352억5,300여만원을 부풀렸다.이로 인해 건설자금이자 579억7,700만원을 갚지 않았음에도 지급된 것처럼 건설가계정에 과대계상했다. 95년에는 당진공장에 설치할 기계장치를 한보철강이 수입한 뒤 건설을 맡고 있던 (주)한보에 팔면서 얻은 이익금 567억9,600만원은 ‘고정자산 처분이익’으로 회계장부에 올리면 안되는 데도 이를 반영,건설자금이자 99억8,000만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 비자금 조성을 위해 사채업자를 동원하기도 했다.사채업자가 해당 금융기관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예금하게 하고,이 자금을 대출받는 방식이다.금융계에서는 “과거 기업들이 자금 조성을 위해 이런 방식을 공공연히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 ■정치권 반응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의 ‘폭탄선언’으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여권은 즉각 金泳三전대통령이 청문회장에 나서서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반면 7일 인천집회를 준비중인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가 정치권 빅뱅으로이어지지 않을까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청와대측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金전대통령이 청문회장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朴智元청와대대변인은 金전대통령이 鄭씨의 진술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것과 관련,“사실이건 아니건 金전대통령이 법대로 증언대에 서서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그러나 92년 대선자금에 대한 조사 필요성에 대해서는“지금은 그런 문제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며 “국회 IMF환란특위에서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안다”고만 말했다.▒국민회의는 鄭씨의 폭탄발언이 터져나오자 趙世衡총재권한대행 주재로 긴급 구수회의를 가졌다. 鄭東泳대변인은 “鄭씨의 증언으로 한보사건의 몸통이 밝혀지고,환란의 책임소재 일부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IMF사태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정경유착에 있었고,그 상징이 한보 은행대출금의 정치자금 헌납”이라고강조했다.▒반면 한나라당은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安澤秀대변인은 “鄭씨가 경제청문회에서 과거 청문회때와 달리 金泳三전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전달했다고 증언한 것은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밝히고 “鄭씨의 증언이 92년 대선 당시의 자금을 밝히는 차원이라면,그당시 다른 사람의 대선자금도 밝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또 여당소속 경제청문회 위원들이 교도소에 수감중인 鄭씨를 찾아가 형집행정지를 조건으로회유했다고 주장했다.
  • 92년大選때 YS에 150억 직접 건네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92년 대선직전 金泳三민자당후보에게 150억원의대선자금을 건넸다고 밝혀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金전대통령의 대선자금에 대한 사법적 규명작업이 이뤄질 경우 기존 정치구도에 대한 변화는 물론 향후 정계개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여 여권의 정치개혁 행보도 빨라질 전망이다. 鄭씨는 4일 국회 IMF환란조사특위에 증인으로 출석,“그해 12월12일께 하얏트호텔에서 金전대통령에게 100억원을 전달했는가”란 국민회의 金元吉의원의 신문에 “부인할 수 없다”며 전달사실을 사실상 시인했다. 鄭씨는 또“당시 金命潤민자당고문의 자택인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를 수차례 찾아가 金泳三후보를 만나 50억원의 선거자금을 전달했느냐”는 질의에대해서도 “확실치는 않으나 대충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당시 중앙당 재정위원으로서 민자당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50억원의 당비를 냈다”고 덧붙였다. 鄭씨는 그러나 金전대통령이직접 요청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갖다줬는지에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자금출처와 관련,鄭씨는“은행대출은 부동산담보대출이라 사재나 마찬가지”라고 답해 은행에서 대출한 돈이 대선자금으로 건네진 사실을 시인했다. 金전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며 하얏트호텔에서 鄭씨를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했다.金命潤한나라당고문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고,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金榮龜한나라당부총재도 “鄭씨가 당 재정위원으로 있으면서 몇억원씩 당에 낸 적이 있어 액수를 모두 합쳐 50억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선거자금으로 50억원을 당에 낸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 『鄭泰守씨 ‘92대선자금 폭로』경제청문회 鄭씨 신문·답변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4일 국회 ‘IMF환란조사특위’에 증인으로 출석,92년 대선자금 제공사실 등을 비교적 솔직히 시인했다.鄭전총회장은 신문에앞서 자신의 ‘처참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가능한 한 상세히 서면으로 답변하겠다”며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기도 했다.다음은 신문 요지.▒(鄭전총회장) 한보부도 이후 2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몸이 (아주 나빠) 언제 ‘쥐불 꺼지듯’ 꺼질지 모른다.이 마당에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감추고하겠느냐.올해 76세가 됐다.80세 가까운 노인이 직답은 어렵다.상세하고 정확한 답변을 하려면 서면으로 할 수밖에 없다.어려운 건강환경을 참작해 선처해달라.▒(국민회의 金元吉의원) 92년 대선 당시 金泳三전대통령과는 멀지않은 관계인가.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났다.▒민자당 재정위원으로 92년에만 수차례에 걸쳐 50억원의 당비를 냈다는데. 그 정도 낸 것으로 안다.▒92년 대선 일주일 전인 12월12일 하얏트호텔에서 金泳三후보에게 100억원을 직접 전달했나. 기억을 더듬어봐야 하지만^274,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부인할 수는 없다.▒하얏트호텔에서 100억원을 전달할 때 李炯九전산업은행총재와 동행했나.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동행한 사람이 있었다.▒당시 민자당 金命潤고문의 자택인 신동아아파트에서 수차례에 걸쳐 金泳三대통령 후보를 만나 총 50억원의 선거자금을 전달했나. 확실한 금액은 모르지만 대충 그 정도 될 것이다.▒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사재가 아니고 은행 대출자금을 전달한 것 아닌가. 은행 대출금도 사재나 마찬가지이다.개인재산을 담보로 제공해 대출받았기때문이다.▒사과박스에 현금을 담아 전달했다고 하는 소문도 있었는데 수표로 줬나. 그렇다.▒대선자금 전달은 金泳三후보가 직접 요청했나,李炯九산은총재가 권유했나. 기억이 잘 안난다.▒(자민련 李健介의원) 대선 전 두차례에 걸쳐 800억원을 줬고 당선 이후엔100억원을 축하금으로 줬다는 증거가 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당선 이후 (金전대통령을) 만나보지도 못했다.▒한보부도가 환란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보부도의 원흉은 李錫采전경제수석이다.그 사람이 잘했으면 왜 하와이로도망가서 안 오겠는가.산업은행이 설비자금 3,000억원을 대출하지 않아 결국부도가 난 것이다.한보가 환란의 원인이 아니다.▒(국민회의 張誠源의원) 당시 600억∼1,000억원 정도의 정치자금을 썼다고하는데. 당시 검찰에서 내가 權魯甲전의원에게 5,000만원을 줬다고 분명히 말했는데신문보도에 5억원으로 됐다.똑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대선자금으로) 200억원 이상 준 것은 확실한가 서면으로 상세히 보고하겠다.▒洪仁吉씨가 한보 의혹의 깃털이고 몸통은 金泳三전대통령이라는 것이 입증됐다.맞는가. 몸통인지 깃털인지 잘 모르겠다.▒(자민련 鄭宇澤의원) 그동안 1조2,0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검찰조사로도 4,000억원 이상이 용도 불명이다.총비자금의 조성규모와 사용내역을 밝혀달라. 일례를 들겠다.내가 사업을 할 때 명동에 사채이자 자금조성비용이 있었다.은행에서 1조원을 빌리면 7,000억원의 지급보증을 해준다.그러면 (지급보증서를 갖고) 단자회사로 가는데 단자사는 돈이 없어 자금조성전문인에게 의뢰한다.1억원당 1년에 1,200만원,1조원이면 1,200억원의 조성비용이 든다.이런 자금을 4∼5년 동안 1조원을 쓰면 5,000∼6,000억원이 구멍이 난다.이것이비자금이다.▒(자민련 魚浚善의원) 한보부도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생각하는데. 물이 흘러서 내려오니까 내가 부도를 낼 때는 몰랐다.97년 한보청문회 당시 시설의 90%를 완공했다.준공을 불과 몇개월 남긴 시점에서 시설자금 3,000억원을 안줘 부도로 처리했다.당시 정부가 정권수행 능력이 없다는 단적인예다.▒(국민회의 千正培의원) 한보부도 이후 검찰조사 당시 金전대통령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시인했나. 그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검찰이) 묻지도 않았다.
  • ‘모르쇠’ 鄭씨 심경변화 이유는

    ‘모르쇠’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심경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뭘까.그는 4일 金泳三전대통령에게 92년의 대선자금으로 150억원을 전달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97년 4월의 한보청문회에서는 정치자금 얘기만 나오면 일관되게“모른다” “공식적인 자금 외에는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모르쇠’다. 鄭전총회장이 심경변화를 일으킨 데는 국민회의·자민련 특위위원들의 집요한 설득이 큰 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정권교체라는 환경변화도 그의 입을 열게 하는 여건을 제공했다.이날 국민회의 金元吉정책위의장이 질의에 들어가기 전 “97년 4월 당시에는 우리가세(勢)가 약해 많은 것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정권도 바뀌었다”고 운을 뗀 데서도 감지된다.金의장은 “사실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된 연결고리가 있다”고도 말했다.정권교체로 정보와 제보도 당연히 폭주했다는 뜻이다. 청문회를 앞두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鄭전총회장에게 사실대로 증언하라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집요하게 전달하기도 했다.金의장은 鄭전총회장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느니 사실대로 밝히는 게 좋다’는 뜻을 전했다. 자민련 李健介의원은 지난달 28일 안양병원에서 鄭전총회장을 만나 공소시효도 끝났고 처벌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진솔하게 사실대로 말하도록 권유하기도 했다.이 자리에서 鄭전총회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요즘 같은 풍토에서는 사업을 못하겠으니 정치나 해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鄭전총회장의 진술을 빅딜로 해석하기도 한다.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인정하면 건강이 좋지 않은 鄭씨를 병보석으로 풀어줄 수도 있다는 뜻을 제시했을것이라는 설도 나돈다.야당가 주변에서 그럴싸하게 떠도는 설이다.
  • ■‘해방전후사의 인식’

    ▒8·15의 민족사적 인식=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책은 모두 당시의직책임)▒미군정의 정치사적 인식=진덕규 이대 교수▒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김학준 서울대 교수▒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오익환 경향신문 기자▒일제말 친일군상의 실태=임종국 저술가▒8·15직전의 독립운동과 그 시련=조동걸 안동대 교수▒김구의 사상과 행동의 재조명=백기완 백범사상연구소장▒이승만 노선의 재검토=김도현 영남일보 편집부장▒8·15를 전후한 여운형의 정치활동=이동화 성균관대 교수▒해방후 농지개혁의 전개과정과 성격=유인호 중앙대 교수▒미군정 경제의 역사적 성격=이종훈 중앙대 교수▒소설을 통해 본 해방 직후의 사회상=염무웅 문학평론가
  • 『경제청문회』林昌烈씨 대질신문 ‘쟁점’

    국회 ‘국제통화기금(IMF)환란조사특위’는 3일 다음주에 주요 증인과 참고인의 대질(對質)신문을 하기로 했다.증인과 참고인의 엇갈리는 진술을 바로잡기 위해서다.경제청문회의 목적대로 진실규명을 하려면 대질신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위는 외환관리 책임과 姜慶植전부총리의 IMF행 인지시점을 놓고 姜전부총리와 李經植전한국은행총재를 대질신문하기로 했다.IMF행 보고시점에 관해다른 진술을 한 金仁浩전청와대 경제수석과 尹鎭植전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도 대질신문한다.삼성음모설 및 기아사태 처리지연과 관련해 의견이 상반되는 姜전부총리와 金善弘전기아그룹회장의 대질신문도 검토하기로 했다.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최대 이슈로까지 떠오른 林昌烈전경제부총리가 취임식날인 97년 11월19일에 IMF에 가는 것을 알았는지에 대해 사실을 밝히려는 대질신문은 확정되지 않았다.林전부총리는 지난달 25일 청문회에 나와 “IMF로가는 것을 몰랐고 다만 협상하는 정도로만 알았다”면서 “金泳三전대통령이 말하지도 않았다”고 답변했었다.姜전부총리와 金永燮전청와대 경제수석은 180도 다른 얘기를 했다.姜전부총리는 “林전부총리는 취임하기 이틀 전인 11월17일에도 IMF로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金전경제수석은 지난 2일 청문회에서 “金泳三전대통령은 97년 11월19일 임명장을 준 뒤 林전부총리에게 ‘IMF를 포함해 전직 부총리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했다.이런배경으로 자민련은 반드시 林전부총리도 대질신문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입장이지만 국민회의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국민회의 소속인 張在植특위위원장은 “林전부총리가 취임식날 IMF행을 알았느냐 여부는 환란의 주요한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반면 자민련의 魚浚善 金七煥 鄭宇澤의원은 “姜전부총리와 林전부총리의 대질신문이 이뤄지지 않으면 청문회가 무의미하다”고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林전부총리의 대질신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郭太憲 tiger@
  • 『경제청문회』안테나…賢哲씨 동행명령 거부땐 고발

    3일 청문회에서는 金泳三전대통령과 차남 賢哲씨의 출석문제를 둘러싸고 특위위원들간에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 문제를 본격 거론했다.金의원은“金전대통령을 청문회에 세우기 위해 ‘특별성명’을 채택할 것”을 제의했다.나아가 張在植위원장이 상도동을 즉각 방문해 출석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鄭宇澤의원도 ‘상도동 방문’을 거들고 나섰다.鄭의원은“金전대통령 부자가 출석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며 張위원장에게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은 “金전대통령이 나오면 정중하게 예우를 할 것”이라며 가세했다. 그러나 자민련 李健介의원은 ‘법대로’를 주장했다“인민재판식으로 매도하지 말고 출석통지날짜까지 기다린 뒤 법적 절차를 밟자”고 제동을 걸었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도“출석통지를 보냈는데 상도동까지 찾아가서 종용할필요가 없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특위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자 오후 간사회의가 열렸다.金賢哲씨와 金己燮씨는5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동행명령을 내리고,이에도 응하지않을 경우 검찰에 고발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건강을 이유로 출석연기를 신청한 洪仁吉전청와대 총무수석은 대구교도소에서 영등포교도소로 이감,4일청문회에 출석토록 하기로 했다.그러나 정작 金전대통령에 대해서는 결정을내리지 못했다. 이에 앞서 張위원장은 “許文道,李相宰씨와 崔圭夏전대통령 등이 고발됐고,崔전대통령과 全斗煥전대통령 및 부인 李順子씨는 동행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며 과거 5공특위 사례를 소개했다.崔光淑 bori@,
  • 청문회,金賢哲씨 내일 출석 않을땐 동행명령 내리기로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특위’는 3일 金泳三전대통령의 차남인賢哲씨가 5일 오전까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동행명령을 내리기로했다. 특위는 이날 낮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사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張在植위원장은 “金賢哲씨와 金己燮 전 안전기획부 차장이 5일 오전 10시까지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동행명령을 내리기로 했다”면서 “동행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밝혔다.郭太憲tiger@
  • 『경제청문회』증인·참고인 신문 이모저모

    이틀째 종합금융사 인·허가 비리의혹에 대한 신문을 벌인 3일의 국회‘국제통화기금(IMF)환란조사특위’는 중량급 증인,참고인이 없는 탔인지 다소긴장감이 떨어진 분위기였다.▒자민련 魚浚善의원과 金七煥의원이 재정경제원의 감사가 제대로 됐는지를추궁하자 許萬貴전경남종금사장은 “96년까지 외국환업무에 관해 재경원의감사를 받지 못했다”면서 “감사를 철저히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답변해 재경원의 부실감사 사실을 시인했다.▒특위위원들도 연이은 청문회 준비로 지친 탓인 듯 ‘실수’도 나왔다.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오전 許萬貴전경남종합금융사장에 대한 신문에서 “종금사로 전환하면서 96년의 총선을 전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내지 않았느냐”고 추궁했으나 “모른다”라는 답변만 들었다.그 뒤 金의원은 오후 청문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경남종금이 2차 전환사(96년 7월)인 줄 착각하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질의를 했다”면서 “許전사장이 역임한 새한종금이 기존 종금사인데 1차 전환사인 것으로 깜빡했다”고 실수를 시인했다.▒자민련 鄭宇澤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성실하지도 못하고 철면피를 하는 증인과 참고인 많다”면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鄭의원은 “다음주에는 반드시 대질신문을 벌여 위증(僞證) 여부를 밝혀야한다”고 강조했다.郭太憲
  • 2與 결속 다지기 잦은 접촉

    두 여(與)가 얼굴을 자주 맞대고 있다.결속을 다지는 행사가 잦아졌다.내각제문제는 물론 합당설,정계개편설 등과 맞물려 주목되는 변화다. 金鍾泌총리는 지난 1일 국민회의 權魯甲전부총재와 저녁회동을 가졌다.자민련에서는 金龍煥수석부총재가 함께했다.DJP 두 핵심 측근들이 모인 셈이다.국민회의에서는 韓光玉부총재,張在植국회IMF환란조사특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金正吉행자부장관,朴泰榮산자부장관 등 정부측 인사들도 자리했다. 외교활동에도 공조에 나서고 있다.지난 2일 순방외교길에 나선 金총리를 국민회의 張永達수석부총무가 수행했다.자민련 李良熙수석부총무도 함께 갔다.JP가 국회에서 애를 쓴 두 사람을 격려하는 차원이다. 오는 12일에는 청와대에서 ‘화합행사’가 계획되어 있다.金大中대통령이양당 주요 당직자,의원,청와대 관계자를 초청,만찬을 주재한다.부부동반이다.350명이 참석하는 매머드급 행사다.23일에는 양당 대선 자원봉사자 250명을 초청해 만찬을 갖는다.이틀 뒤 취임 1주년을 자축하는 취지다. ‘영남 민심 달래기’에도 함께하고 있다.金총리는 출국 전 金대통령에게구미방문 결과를 보고했다.구미4공단 조성과 관련,미보상 700억원을 정부가책임지고 보상토록 건의해 金대통령으로부터 승낙을 받아냈다.지난달 30,31일에는 대구와 부산을 찾아 험악해진 민심을 달랬다.李揆成재경부장관도 4일 대구에서 경제 관련 간담회를 예정하고 있다. 국민회의측은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다.자민련과의 공조가 절대 필요하다.합당은 국민회의에 최상의 선택이다.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그렇지만 일련의 화합 행보를 놓고 이런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위한 정지(整地)라는 해석도 있다. 양측은 합당설 등을 부인하고 있다.金대통령이나 金총리나 일축하기는 마찬가지다.그럼에도 서로에 가깝게 접근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마음은 몰라도 최소한 몸은 그렇다.자민련이 반대해온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긍정 검토하는 것도 또다른 사례다.朴大出 dcpark@
  • 안테나-YS측근들도 출석 거부

    환란진상 규명을 위한 이번 청문회는 ‘상도동’을 겨냥하고 있는 측면이있다.하지만 청문회장에서 ‘상도동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증인·참고인으로 이름이 오른 인사들 대부분이 출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金泳三전대통령이 밝힌 ‘청문회 거부’방침을 측근들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환란의 총 책임자인 金전대통령을 비롯,지근거리에서 金전대통령을 보필해온 핵심측근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야 할 입장이다.그런데도 이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청문회행(行)을 피하고 있다. 상도동측은 ‘특위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이번 경제청문회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이번 청문회가 정략적이고 정치보복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주장
  • 종금사 무더기인허가 집중추궁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는 2일 지난 94년과 96년 투자금융사를 종합금융사로 무더기로 전환하는 과정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은 “지난 92년 대선에서 金泳三 후보가 당선된 후 9개 투금사가 종금사로 전격 인가되고,96년엔 4·11 총선을 앞두고 15개 종금사의 내인가 결정이 이뤄지는 등 정치적 뒷거래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丁世均의원,자민련 鄭宇澤의원 등은 “24개의 투금사가 무더기로종금사로 전환되면서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국제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준게 환란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洪在馨 전경제부총리는 “정치인들의 압력을 받은 적은 없다”고 정치논리를 부인했다.郭太憲 tiger@
  • 洪在馨 전경제부총리 신문 답변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특위는 2일 洪在馨·羅雄培 전경제부총리등을 소환해 투자금융사를 종합금융사로 전환시켜준 정치적인 배경을 추궁했다.능력도 없는 전환 종금사에 대해 국제금융업무를 처음부터 해줘 환란의중요한 원인이 됐다는 점도 집중적으로 따졌다.▒(자민련 李健介의원)종금사가 환란의 원인이냐. 환란을 촉발하는 데 일부 요인은 됐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94년에 1차로 종금사로 전환해줄 때는 정치논리 때문에 해준 것 아닌가. 아니다.경제논리로 했다.▒경남투금과 반도투금(후에 고려종금)은 정치적인 논리로 해줬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93년에 전환원칙을 정하고 그 요건에 충족하는 투금사는 어떤회사라도 전환해주기로 했다.투명하고 공정하게 했다.▒지역적인 특혜는 없었나. 없었다.93년 12월에 발표한 기준에 맞춰서 전환을 해줬다.당시 부산·경남(PK)에 투금사는 6개가 있었다.이중 4개사가 1차전환을 신청했었다.모든 투금사의 전환조건이 같다.▒종금사에 대한 감독이 부실했는데. 외국환업무 감독은재경원장관이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원수나 전문성 조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은에 위임돼 있다.검사문제는 은행감독원에 있었다.▒(국민회의 千正培의원)대기업들이 방만한 차입과 과잉 중복투자를 하도록돈을 빌려준 책임이 종금사에 있다.그래서 종금사가 외환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는데. 종금사는 주로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큰기업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대출을 많이 해준 것으로 보인다.▒(자민련 金七煥의원)기존 종금사들은 1년에 200억∼3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종금사를 안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그래서 비리의혹이 나온다. 그래서 진입장벽을 낮춰 종금사가 경쟁체제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종금사에서 돈을 꾸는 사람에게 이익이 더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종금사를 더 많이 만들 필요도 있다.▒종금사는 허가만 받으면 엄청난 이익이 된다.K모,H모에게 수십억원씩 줬다는 게 파다했다.들은 적 있나. 없다.그 때도 그런 문제가 있었으면 국회에서도 질의가 있었을 텐데 그런질의가 없었다.기준을마련해줬는데 몇십억원씩 싸들고 다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1차로 종금사로 전환된 9개사중 특정지역(PK)에 4개가 포함된 게 특혜가아닌가. 신규로 허가하는 게 아니고 기존의 투금사를 전환해준 것이다.모체가 되는지방 투금사가 몇개 있었느냐가 중요하다.전부 16개가 있었고 경제력이 커서 그런지 마산까지 합하면 PK에 6개가 있었다.정부가 공고한 요건을 갖추면전환되는 것이다.▒1차전환사중 5개가 폐쇄됐다.전환이 잘못됐다는 반증 아니냐.. 9개 전환 종금사중 많은 게 퇴출됐다.하지만 기존 (6개)종금사도 하나가 퇴출됐다.합병으로 하나만 남게돼 있다(실제는 3개가 남게 된다).▒(국민회의 金榮煥의원)94년의 1차전환은 金泳三대통령이 당선에 따른 보상으로 이뤄진 것이다.96년의 2차전환은 그해 있었던 15대 총선용이다.정치논리였다고 보는데.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그렇지 않다.정치적인 배경은 없다.▒92년 6월 13일 당시 李龍萬장관이 종금사 업무전환을 발표했는데.당시 금융발전심의위원회의 일부위원들이 반대해 유보됐나. 그렇다.그 때는신규허가가 초점이었다.일부 위원들이 반대해서 신규허가는 완전히 유보됐다.그 때 기존 투금사의 전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1차전환기준은 93년 12월에 만들었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당초 정부는 92년 6월 종금사를 신설하려고 했을 때 대선자금을 모집한다는 설이 있었는데. 모른다.▒전환과 관련해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적은. 없다.▒마산의 姜모,부산의 朴모·韓모의원이 종금사 전환과 관련해 압력이 있었나. 기준이 있는데 충족하면 되지 무슨 압력이 필요한가.▒(자민련 魚浚善의원)전환된 종금사의 업무영역을 처음부터 너무 확대한 게 아니냐.그래서 전환 종금사의 부실은 환란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모든 대출보증도 법에서 규정한 한도에 포함시키도록 했다.95,96년에만 해도 전환 종금사는 큰 문제가 없었다.그런데 97년 대기업의 부도가 연이어 터지면서 종금사의 자금사정이 어렵게 된 것이다.┑정당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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