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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제도 개혁’ 밑그림 한창

    ‘3·30 재보선’이 끝남에 따라 정치개혁 협상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여야가 ‘결전’을 앞두고 세미나를 여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개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선거제도에 관한 ‘가닥’이 조만간 잡힐 것 같다. ●여당-국민회의와 자민련은 ‘8인 정치개혁특위’를 조속히 가동,단일안을마련한다는 계획이다.국민회의가 그리고 있는 개혁안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이다.그러나 여야 협상 과정에서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거나 합의가 도출되면 일부 수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자민련은 의외로 사정이 복잡하다.‘내각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1일 오전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당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인 金宗鎬부총재 주재로 특위를열고 빠른 시일 안에 실무안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험로(險路)’가 예상된다. 선거구제에 관한 당론 결집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텃밭’인 충청권 의원대부분이 소선거구제를 선호하는 반면 비충청권과 다선(多選)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국민회의가 내건 정당명부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해왔으나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다소 신축적인 자세도 엿보인다. ●한나라당-선거구제에 대해 서서히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정치구조개혁특위(위원장 邊精一)가 이날 국회에서 李會昌총재와 당 소속 원내외 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여기서 나온 의견을 종합,당론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숭실대 姜京根교수와 영남대 成樂寅교수의 주제발표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열띤 토론을 벌였다.재선으로 서울시지부장인 朴明煥의원은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 완화,정치의 정체성 해소,사표(死票) 최소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찬성했다.반면 부산 출신의 초선인 鄭義和의원은 “소선거제도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국정운영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여당이 ‘동진정책’ ‘전국정당화’ 등을 표방하면서 갑자기 선거구제도를들고나오는 것은 정략적 술수”라고 꼬집었다. 吳豊淵 朴峻奭
  • [국정개혁 보고]산업자원부·中企특위·중기청

    31일 산업자원부 국정개혁과제 보고회의는 무역흑자 250억달러와 외자유치150억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金大中대통령은 수출증진을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긴밀한 협력,중남미·아프리카 등의 틈새시장 개척,외자유치를 위한 노사간 화합 등을 당부했다.金대통령은 먼저 최근의 수출부진을 우려하면서 올 수출목표 달성이 가능할지를 물었다.崔弘健산자부차관은 “금 수출과 유휴설비 이전 등 지난해 1·4분기의 특수요인 때문에 상대적으로 올해 수출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2·4분기부터는 수출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250억달러의 무역흑자 목표는 반드시 달성토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金在哲무역협회장과 孫炳斗전경련부회장에게 잇따라 무역업계의 올 수출전략과 애로사항을 물었다.金회장은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과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가 다소 우려되지만 틈새시장과 틈새상품을 적극 개발하면 올 흑자목표는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孫부회장은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종합상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부채비율 200% 한도적용 대상에서 종합상사를 제외해줄 것을 건의했다. 노사문제도 거론됐다.金相廈대한상공회의소회장이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 노사관계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염려하자 金대통령은 “정부는 노사문제에 공정하게 대처하고 있고 노사도 결국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올봄 노사관계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金대통령은 이어 “지난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400억달러에 가까운 무역흑자와 89억달러의 외자유치에 성공한 산자부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격려하고 “장관 이하 간부들이 수출현장에 직접 나가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등 올해 수출목표를 달성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朴泰榮산업자원부장관은 국정과제 보고를 통해 ▒무역흑자 250억달러달성과 ▒지식기반 신산업 육성 ▒대기업 구조조정 마무리 등 3대 정책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 中企특위·중기청 31일 중소기업특별위원회와 중소기업청의 국정개혁과제 보고회의는 21세기우리 경제의 중심축을 중소기업에 둔다는 정부의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회의에서 金大中대통령은 벤처기업을 필두로 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강조하고,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중소기업의 노력을 당부했다. 회의에서는 우선 벤처기업 육성방안에 관심이 집중됐다.李珉和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기업 운영의 애로점을 묻는 金대통령의 질문에 벤처기업 시장이 시급히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회장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로 매각위기에 놓였던 한글과 소프트사를 예로 들어 “정부부처부터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관행을 척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張英信여성경제인연합회장은 여성들의 창업을 활성화할 여성경제인지원종합센터 건립을 정부에 요청했다.이어 池龍熙서강대교수는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의 문제점을 묻는 金대통령의 질문에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구조를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池교수는 특히 “대학의 우수인력과 중소기업의 자금을 결합하면 대단한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이를 위한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金대통령은 “대만과 이탈리아,독일 등이 모두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20세기 국가경제를 일으켰고 미국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해 상호 발전하고 있다”며 “다품종 소량생산의 21세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생공영의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며,특히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에만 매달리지말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자구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나아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북한의 경제난을 덜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유휴설비를 북한에 이전하는 문제를적극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朴尙奎중소기업특위위원장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위해 엔젤투자자금에 대한 소득공제를 현행 20%에서 30%까지로 늘리는 한편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한도를 확대하고 스톡옵션제도를 활성화해 벤처기업의 전문인력을확충하겠다”고 보고했다.
  • 中企 유휴설비 북한에 보낸다

    金大中대통령은 31일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유휴설비를 북한에 보내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중소기업특위 대한 국정개혁보고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대만이 중국에 수천개의 유휴설비를 이전해 양쪽 모두 경제적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소개한뒤 “우리도 국내 유휴설비를 북한이나 중국에 이전하는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지시가 실현될 경우 국내 중소기업의 북한 진출 등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중소기업 진흥공단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의 유휴설비규모는 현재 약 32조원으로 추산되며 전체 중소기업의 55%가 유휴설비를 보유하고 있다.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와 신용경색에 따른부도,수주감소 등으로 유휴설비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중소기업들이 유휴시설 북한이전을 바라는 데는 ▒북한의 풍부하고 저렴한노동력 활용 ▒국내기술 이전 용이 ▒원자재 조달 및 판매시장 확보 등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 진출 유망업종으로 꼽고 있는 것은 안정성을 고려,소규모 투자 및 단기간내 자금회수가 가능하고 기술격차가 작은 업종들로 경공업,생활용품분야,전기전자,자동차 부품조립 등이다. 유휴시설 이전방식으로는 ‘설비 제공형 위탁가공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밖에 ▒북한에 중소기업전용공단을 조성해 이전하는 방식 ▒정부나 중소기업지원기관에서 매입해 북한에 제공하는 방식 ▒유휴설비와 북한산 물품을 교환하는 물자교역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중소기업 진흥공단은 유휴설비 대북이전사업 추진때 업체당 평균 5억4,9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의 정책적인 자금지원을 바라고 있다.
  • ‘中企유휴시설 北이전’에 담긴뜻

    우리 중소기업 유휴시설의 북한 이전 방안이 가시화될까.조만간 이를 위한남북간 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金大中대통령이 31일 직접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중소기업특위 국정개혁보고회의 석상에서 “중소기업의 유휴설비를 북한으로 이전,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가능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두마리 토끼를 쫓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남북 양측이 득을 보는 이른바 ‘플러스 섬’게임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우리 경제인들에대해선 비교적 양질에다 값싼 북한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라는 권고다. 물론 여기엔 순수 경제논리를 떠나 북한에 대한 강력한 화해 메시지도 담겨 있다.외환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이 남쪽의 유휴시설을 활용하면 ‘누이좋고매부좋은 일’이 아니냐는 얘기다. 이 방안에 대해 현대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협중앙회 등도 관심을 갖고 있다.특히 현대측이 추진중인 서해안공단 조성사업이 구체화되면 다수의중소기업이 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는 현재 북한측에 대해 해주지역에 공단부지800만평과 배후도시 1,200만평을 포함한 2,000만평 규모의 서해안공단 개발사업을 제안해 놓고 있다. 공단에는 모두 국내 850개 중소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북한이 원한다면 우리 유휴 선박이 북측의 어로작업에 제공될 여지도 있다. 북한 영해나 베링해 등 북측이 확보한 해외수역에서의 공동조업이다. 정부도 측면 지원할 참이다.유휴설비 이전 등 남북 경협에 나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등도 검토중이다. 물론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당국의 결단여부다.북측이 주민의 사상동요 가능성이라는 소승적 이해를 떠나 ‘먹는 문제’해결을 우선하는 대승적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具本永
  • [국무회의]’국민 공감얻게 국민연금 보완후 실시를’

    30일 청와대 국무회의는 추경,정부조직법,인권법 등을 주요 안건이 많아 2시간20여분이 걸렸다. 안건처리가 끝난뒤 金大中대통령은 金成勳농림부장관에게 농·축협 통합 추진상황을 물었다.金장관은 “축협이 통합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며 “농·축·수·임협 등 4개의 협동조합중앙회가 우리나라에만 있고,특히 중앙회조직이 비대해 농민을 위해 반드시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인권법 통과에 따른 의미를 설명했다.“우리 인권법은 유엔의 권고와 세계 각국의 실태를 참고한 것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제정의 목적은 인권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실업대책,추경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와 국민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민연금의 보완후 실시를 역설했다. 끝으로 金鍾泌국무총리는 金농림부장관에게 ‘4월5일 식목일’의 계절적 타당성을 물었다.이에 金장관은 “통일후 남북 기후조건을 고려하면 4월5일이적기”라고 답했다. 이에 앞서 안건처리 과정에서 인권위원회 여성참여 규정 문구를 놓고 국무위원간 긴 논란이 벌어졌다.崔在旭환경장관 등이 “인권위 위원 임명조항에1인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도록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나 姜基遠여성특위위원장 등이 반대의견을 냈고 결국 ‘각 1인 이상’이란표현만 빼기로 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인권법안 ?정부조직법개정안■대통령령안?예산회계법시행령개정안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규정개정안?육군항공사령부령개정안 ?전투경찰대설치법시행령개정안 ?유아교육진흥법시행령개정안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법시행령폐지안 ?과학관육성법시행령개정안 ?농어촌정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산업디자인진흥법시행령개정안 ?혈액관리법시행령개정안 ?한강수계관리위원회규정안 ?공인노무사법시행령개정안 ?도시공원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관리권등록령개정안 ?철도소운송사업법시행령개정안 ?항만법시행령개정안■일반안건?199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1999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지출안(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 사업지원금) ?루마니아와의 관광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안 ?카타르 정부와의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안 ?2000년도 예산안편성지침안■보고안건?공공기관의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현황 ?1999년도 정부입법계획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추진방안
  • 국민회의·한나라 움직임

    재·보궐선거 개선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이다.선거때마다 국회를 마비시키고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되는 재·보궐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한다는 여론 때문이다. 여야 수뇌부가 팔을 걷어붙였다.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재보선 개선 방향을 제시할 방침이다.한나라당 安澤秀대변인도30일 주요 당직자회의를 마치고 “과열·타락선거를 막는데 초점을 맞춰 제도 개선책을 마련키로 했다”며 李會昌총재의 의지를 전했다. 여야가 염두에 두는 개선방안은 ?대표성 제고방안 강구 ?선거재판 시한설정 ?재·보선 선거기한 연장 등 세가지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여야의 소모적 정쟁을 방지하자는 취지다.협상창구는 가동중인 국회 정치구조개혁특위가 될 듯하다.정치개혁 협상에 새로운 의제로 상정,적어도 5월 이내에 종료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성 제고 방안은 30%안팎에 머무는 현행 투표율을 높이자는 내용이다.국민회의 鄭東泳대변인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단체장이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거에 적어도 50%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개선안은 공휴일에 투표일을 맞추는 방안이 유력하다. 선거 사범에 대한 ‘공판시한’을 대폭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서울송파갑과 인천 계양 지역구는 무려 3년 가까이 재판을 끌었다.따라서 정치권은 개선방안으로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을 ‘2심,1년 기한’의 선거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선관위와 국민회의는 공식적인 지지 표명을 했고 한나라당도 내심 동조하는 분위기다. 국회의원과 지방단체장 유고시 각각 90일,60일로 돼 있는 재·보궐선거 실시 기한을 180일 이상 1년 이내로 대폭 연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재·보선을 한꺼번에 치러 잦은 선거로 인한 소모적 정쟁과 경제적 낭비를 막자는 취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2∼5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로바뀔 경우 재·보선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한다.한명의 의원이 결원되더라도 다른 의원이 선거구민의 의사를 대변할수 있기 때문이다.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잔여임기가 1년이하라면 부(副)단체장이 대행역할을 맡는방안도 신중히 검토된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부정·타락 선거의 근절방안은 제도적 보완만으론 미흡하다.‘중간평가’로 포장돼 여야가 사생결단식으로 선거를 치르는현재의 정치 풍토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문제다.
  • 자민련 ‘정치개혁특위 인선’ 內訌

    다음주 공동여당의 정치개혁특위 가동을 앞두고 자민련 내에 말들이 많다. 인선 불만이 내홍(內訌)으로 이어지고 있다.지도부도 거센 반발에 당황하는눈치다.결국 전면 재검토로 선회하는 기류다. 불만은 3중으로 겹쳤다.첫째 국민회의측과 격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국민회의는 安東善 지도위의장을 위원장으로 李相洙 千正培 鄭東采의원 등을인선했다.반면 자민련은 金宗鎬 부총재를 위원장으로 기용했다.朴哲彦·李台燮 부총재와 李良熙의원도 뽑혔다.부총재가 3명이나 된다. 더 큰 불만은 위원들 성향에 있다.金宗鎬 朴哲彦 李台燮 부총재는 모두 중대선거구를 선호한다.李良熙의원만 소선거구제쪽이다.그렇지만 중대선거구도 괜찮다는 생각이다.소선거구제 선호의원들의 반발로 연결된다.내년 총선을앞두고 있다 보니 예민한 반응이다. 위원들 대부분은 또 내각제 ‘비둘기파’에 가깝다.‘매파’들의 반발로 이어진다.매파의 선두격인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사전에 인선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인선은 朴泰俊 총재와 朴俊炳 총장라인에서 독자 결정했다. 결국 朴총재를 겨냥한 불만이다. 朴총장은 “지역안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다른 의도는없다”고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그러나 현 위원들로는 협상력이 의문시된다는 분석이다.주류측과 소선거구제 세력들이 흔들어댈 것이 뻔하다.국민회의와 협상이 원만해질 가능성도 희박해진다.지도부는 李의원을 金學元 사무부총장으로 교체키로 했다.金의원은 매파이자 소선거구제 지향이다.이것만으로는 불만 해소에는 못미치는 분위기다.그래서 오는 30일 재·보선이 끝나는대로 인선을 다시 할 모양이다.
  • 경기도 잡아당기고 인천시 붙들고 강화군 ‘팔 떨어질라’

    강화군의 경기도 환원 문제가 경기도의회와 인천시의회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강화·검단 환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위는 해당지역주민 1,034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세금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68%가 경기도로 환원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4일 밝혔다.도의회는 인천시로 편입 경위를 밝히기 위해 당시 林경호지사와 梁인석 강화군수 등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해 조사를 마쳤거나 벌일 예정이다. 도의회는 “강화군의 인천시 편입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유서깊은 강화는 경기도로 환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도의회는 행정자치부 등에 행정구역 재조정을 정식요구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 인천시의회가 발끈하고 나섰다.처음에는 도의회의 행동을 일과성으로 치부하고 대처하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적극 대응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시의회는 23일 성명을 발표,“강화군과 인천시 통합은 국가와 시대적 요청에따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뤄졌는데 4년이 지난 시점에서 환원을 거론하는 것은 정쟁의 불씨와 국력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라고 밝혔다. 환원문제는 군·시 의회의 의결과 50% 이상의 주민찬성 등을 거쳐야지 도의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사항이 아니며,당위성보다는 林昌烈지사의 선거공약이란 미명하에 추진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인천시와 경기도가 최근 수도권종합전시장 유치,쓰레기소각장 건립,철도노선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첨예한 대립을 빚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 與‘정치개혁 단일안’잰걸음

    공동여당이 24일 ‘8인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정치개혁안에 대한 여권 단일안을 마련키 위한 잰걸음이다.정치개혁특위의 비중을 고려해 대표는 부총재급으로 했다.국민회의 安東善지도위의장,자민련 金宗鎬부총재가양당의 대표다. 국민회의 鄭均桓·자민련 朴俊炳총장은 이날 만나 위원 선임문제를 최종 조율했다.정치개혁특위는 구성됐지만 본격 가동은 ‘3·30 재·보선’이 끝난4월 초부터다.요즘은 양당의 지도부들과 특위위원들이 재·보선 현장에 출동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 정치개혁 특위를 일단 구성해 단일안 마련을 위한 토대는 마련했지만 단일안이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자민련은 그동안주장했던 ‘선(先) 내각제 논의,후(後) 정치개혁 협상’에서 한발 물러나 내각제와 정치개혁을 분리해 협상하는 쪽으로 바뀌기는 했다.하지만 내각제를전제로 하는 협상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지난 22일 총재단회의에서도 이렇게 입장을 정리했다. 인사청문회 대상을 제외한 국회법분야는 여야간에도 거의 합의를 한 상태에서 공동여당의 8인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선거와 정당분야의 정치개혁이 주로논의된다.현재 국민회의의 당론인 정당명부제에 대해 자민련은 내각제를 전제로 찬성한다는 쪽이다.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놓고도 서로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이해가 엇갈린 사안이 아닌 의원정수 문제에는 단일안 마련이 어렵지 않을것 같다.국민회의는 당초 현재의 299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안을 마련했지만 자민련이 주장하는 270명선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의원을 덜 줄이겠다는 데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제를 전제로 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도 2대 1로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당초 국민회의는 1대 1,자민련은 3대 1을 주장했다. 정치개혁에 관한 공동여당의 단일안을 마련하는 1차 시험도 어렵지만 한나라당과의 최종 담판인 2차 시험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 부·처·위원회 특색

    정부조직 개편에서 17부 2처 4위원회 16청이 17부 4처 4위원회 15청으로 바뀐다.새로 기획예산처와 국정홍보처가 등장했다.‘부’의 총 숫자는 변동이없으며 예산청은 폐지된다.기획예산위원회가 폐지되는 반면 중앙인사위원회가 신설돼 위원회 숫자는 현재와 같다. ‘처’는 대통령이나 총리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국정을 총괄한다.일반 ‘부’가 헌법에 정한 국가 기능을 수행하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것과대비된다.청은 ‘부’ 밑에 둔다. 대개 처장은 차관급으로 두지만 신설되는 기획예산처장은 현재 기획예산위원장 직급에 준해 장관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소속 위원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합의제 기관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장관·차관 또는 1급으로도 둘 수 있다. 중소기업특위나 여성특위처럼 ‘특별위원회’는 정치적인 조직이다. 지금까지 기획예산위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었고 따라서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신설될 기획예산처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하게된다.국정홍보처장은그러나 차관급이기 때문에 과거 공보처장관과는 달리국무위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부·처·위원회와 특위 기능 분류는 법에 정의된 것은 아니며 모두 행정학 교과서에 근거한 분류라고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지적했다.
  • 조직개편안 여·야 반응

    23일 확정된 정부조직개편안을 둘러싸고 여야의 반응이 엇갈린다.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도 심의과정에서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여당은 “기능 중심의 재편”이라고 긍정 평가한 반면 한나라당은 “용두사미(龍頭蛇尾)식 개편안”이라고 폄하했다. 국민회의는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가 신설되고 국정홍보 기능이 통합되는등 당론이 관철된 데 만족해 했다. 鄭東泳대변인은 “이번 개편안은 정부조직을 기능 중심으로 재편성,재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강조했다.특히 기획예산처와 국정홍보처를 총리직속기구로 두고 부처 통폐합을 백지화하는 등 金鍾泌총리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여여 공조가 강화되기를 기대했다. 자민련은 당초 개편안이 수정,기획예산처와 국정홍보처가 총리 직속으로 편성된 대목에 의미를 두었다. 李圭陽부대변인은 “공직사회의 안정을 존중한 개편안”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개편안”이라고 혹평했다. 당 행정개혁특위는 ▒공무원 임용 개방 제도의 부작용 방지책마련 ▒중앙인사위의 총리실 산하 설치 ▒기획예산처 신설 반대,재경부 산하 예산실 설치▒정부부채관리위원회 신설 ▒국정홍보처 신설 반대,현 공보실 제도 유지 ▒제2건국위,노사정위,민화협,인권위 폐지 등을 주장했다. 李會昌총재는 “4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정부진단을 했는데도 출범 초 단행한 정부개혁을 되돌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홍보처 신설과 관련,성명을 통해 “현 여당이 야당일 때 정부홍보와 언론통제를 일삼는다고 비난하다 정권출범 직후 폐지했던 공보처를 1년만에 부활한 것은 자가당착적 발상”이라며즉각 철회를 주장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29)

    반민특위 ‘검거 제1호’ 박흥식(朴興植)이 특위로 잡혀온 것은 1949년 1월8일 오후 4시30분.특위 부위원장 김상돈(金相敦)의 지시를 받은 조사관 김용희(金容熙)와 서기관 박희상(朴喜祥)은 특경대원 7명을 데리고 서울 종로 네거리 화신백화점 사장실을 급습하였다.당시 특위가 박흥식을 첫 검거대상자로 지목한 것은 그가 미국도피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특위 조사관 일행이 화신 사장실을 급습할 당시 박흥식은 외무부 관계자들과 미국여행권(여권번호 00130호)관계로 대화를 나누고있었다.신분을 밝히고 동행을 요구하자 박흥식은 영국제 고급담배를 꺼내 조사관들에게 권하며 “정리할 서류가 좀 있으니 5분만 시간을 주시오”라며지연작전을 폈다.‘독안에 든 쥐’라고 판단한 조사관들이 이를 허락하자 박흥식은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그새 비밀문을 통해 박흥식은 다른 방으로 가서는 모처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그의 구원요청은 허사로 돌아가고 그의 양손에는 마침내 수갑이 채워졌다. 한 때 ‘조선 제일의 부자’로 불리던 박흥식(1903∼1994)은 평남 용강군에서 소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그곳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가족 부양을위해 진남포에서 미곡상을 시작으로 사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천부적인 상술과 뛰어난 친화력으로 그는 1924년 고향에서 불입자본금 10만원으로 선광당인쇄소를 시작하였다. 2년 뒤 그는 사업무대를 서울로 옮겨 선일지물을 창립하였다.그때 그의 나이 26세였다.자본금 25만원인 이 회사에 그는 6만5,000원을 불입하였는데 이 돈은 토지를 담보로 식산은행에서 대출받은 5만원과 나머지 일부를 그가 부담한 것이었다.그는 주로 총독부 당국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식산은행·한성은행 등의 은행돈을 최고 수 천만원까지 끌어다가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금융가에서 그는 최고대우를 받고 있었다. 한편 종로 네거리에서 공동경영하던 금은방·잡화상을 매수,1931년 화신백화점을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가 그의 모기업이 되었다.화신백화점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사은경품판매,연쇄점 운영 등의 경영기법을 도입,승승장구하였다.이어 1936년에 설립한 화신연쇄점은 최고 번성기를 구가하던 37년경에는 전국에 연쇄점 수만 350개가 넘었다. 당시 그는 총독부의 도움으로 식산은행에서 3,000만원을 대부받았는데 그로서는 자본과 신용만 중요할 뿐 자본의 성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화신의 자본을 두고 ‘매판적 상업자본’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자본의 성격과 함께 사업방식도 그렇다.화신백화점과 함께 화신연쇄점은 일본 오사카(大阪)의 영업소를 통해 일본상품을 다량 수입,국내에 살포함으로써 국내시장을 일제상품의 소비처로 전락시켰는데 이는 당시 일제의 대표적인 식민지 지배정책이었다.이 때문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은행대출과 관련,하등의 통제도 받지 않았었다. 한편 반민특위에 검거된 그는 제3조사부의 예비조사를 마치고 특별검찰부로 송치되었다.검거된지 47일만인 3월22일 기소되었는데 검찰측 조사기록은 무려 6,000 페이지에 달했다.그의 기소장에 나타난 죄명은 반민법 제4조 7항(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제7조(범죄자 옹호·도피 협조자)위반이었다. 반민특위에서 지목한 그의 대표적인 반민족행위는 일제말기 비행기공장을만들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한 점과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점이었다. 태평양전쟁이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렀을 때인 1944년 2월 그는 일본의 항공전력 증대를 목적으로 조선비행기공업(주) 설립허가를 총독부와 일본내각에제출하였다. 수차례 일본을 다녀온 끝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회사 설립허가를 받은 그는 그 해 10월 자신이 대표가 되어 주식을 공모하였다.그는 총독부의 힘을빌어 조선직물회사와 동양방적 안양공장을 접수하였고 인근 토지를 몰수하여비행기공장을 건설하였다.비행기 생산시설은 조선군사령부 병참부의 중개로관동군의 지원을 받았는데 대가로 조선의 해산물·직물 등을 송출하였다. 공장의 노무인력은 전적으로 징용자였다.44년 11월부터 총4회에 걸쳐 1,717명을 선발한 후 1개월간 경기도 광주에서 조선군의 지도로 기본훈련을 시킨후 다시 일본 나고야(名古屋)나 만주로 보내 실습을 시킨 다음 안양공장이나만주비행기공장으로 보내 비행기 제조에 종사시켰다. 흔히 박흥식의 조선비행기(주)는 비행기를 만들려다 일제 패망으로 그만둔것으로만 알려져 있다.그러나 특위의 조사내용에 따르면,45년 5월 당시 제1호기의 주익(主翼)·동체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작업을 마치고 8월에 시험비행을 하였으며 2·3호기도 부분품 제작중에 있었으며 9월말 작업을 완료할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박흥식은 자신이 경영하던 광신상업학교를 조선비행기공업학교로 개편,비행기 기술공을 양성하려 했던 사실도 조사과정에서 새로 밝혀졌다.실제로 전장에 투입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비행기제조계획은 거의 완성된 단계였다. 일제패망후 그는 조선군사령부로부터 조선비행기에 투자한 금액과 격려금까지 받았으나 이중 일부를 주주들에게 나눠주고는 대부분 착복하였다. 한편 그의 친일은 각종 친일단체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30년대 후반 그는조선총독부 주최 산업경제조사회와 시국대책조사회에 조선대표로 참여하여일제의 시국대응책에 대해 자문역할을 하였다.또 각종 전쟁협력행위에 가담하였는데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이사·배영동지회 상담역을 비롯해 임전대책협의회·조선임전보국단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특히 임전대책협의회 발족시 민규식(閔奎植) 김연수(金秊洙) 등과 함께 각각 20만원씩을 기부하였으며 전시채권 가두판매에 나서기도 했다.징병제 찬양이나 학병 권유에 나선 것은 물론이다.총독부 고관을 비롯해 군부 경찰 금융계 등 광범위한 권력층과 사귀면서 이들의 비호를 받던 그는 제6대 조선총독 우가키(宇垣一成)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특위 조사과정에서 우가키를 ‘숭배’하였다고 실토한 바 있다. 바로 우가키가 총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화신백화점·화신연쇄점이 최고의전성기를 누린 점은 두 사람의 친분관계와 무관치 않다.미나미(南次郞)총독과도 유착관계가 남달라 그가 조선총독에서 이임,귀국하자 ‘영원히 못잊을자부(慈父)’라는 담화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특위가 그를 ‘검거대상 1호’로 지목한 것은 그의 미국 도피음모 이외에도 그가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려 했기때문이었다.특위의 활동개시가 예견되자 그는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장직상(張稷相) 등과만나 모종의 음모를 꾀하였다.그는 당시 수도청 수사과장으로 있던 친일경찰 최란수(崔蘭洙)에게 수사비 명목으로 10만원을 지원한 사실이 특위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기소 1주일만인 3월 28일 반민특위의 첫 공판이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열렸다.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의 재판은 구속 103일만인 4월20일 그의 병보석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특별재판부가 병보석으로 그를풀어주자 당시 특별검찰부 검찰관 9명은 전원 사표로 이에 맞섰고 사회·정당단체에서도 격렬한 성명으로 특별재판부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해 9월26일 그는 ‘공민권정지 2년’이라는 가벼운 구형에이어 당일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이유는 그가 군수공장을 경영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비행기를 제작,일제에 지원하지는 않았고,또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것은 피동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특별재판부가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린 데는 속사정이 있었다.친일경찰의 반민특위습격사건(일명 ‘6·6사건’)에 이어 ‘국회프락치사건’으로 특위의 중심인물이었던 소장파 의원들이 대거 제거된데다 6월29일 백범 김구선생의 피살로 친일파척결의 정신적 기둥마저 상실한 상태였다.법적으로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역사의 법정에서 그는 여전히 ‘유죄’로 남아있다. 해방후 그는 사업재기를 노렸지만 80년 화신산업의 부도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부채청산을 위해 자신이 수십년간 살아오던 집까지 내놓았지만 ‘물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종로 네거리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는 어느새 새 임자가 나타나 그의 부(富)를 되살리려는듯 현재 빌딩공사가 한창이다. 정운현
  • [오늘의 눈]정치개혁 쉬운 것부터

    늘 그래왔지만 ‘정치개혁’은 시대의 요청이다.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아온 정치권이 최근 정치개혁에 한 목소리를 내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정치에 ‘염증’을 느껴온 국민들로서는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도 지난 17일 총재회담에서 “정치개혁 입법을 본격 추진해 조속히 합의처리한다”고 대(對)국민 약속을 했다.정치개혁의 마지막 키를 쥐고 있는 여야 총재가 머리를 맞대 합의도출한 ‘총론’이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사정이 복잡해진다.자민련은 내각제개헌문제와 정치개혁입법 논의를 연계하는 ‘포괄협상론’을 들고 나왔다.내각제 밀어붙이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기세다.야당인 한나라당의 ‘발목잡기’징후도 엿보인다.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틈새’를 노려 ‘잇속’을챙기려는 속내인듯하다. 李총재가 총재회담에서 정치개혁에 앞서 ‘내각제’ 개헌여부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헌법상 권력구조 문제는 국회·정당·선거제도 등 정치관계법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법리(法理)논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李총재의 지적이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순서는 그 것이 옳다.그러나 선후를 따지는 이 방법만이 능사(能事)일까.지난해 12월 거창하게 발족한 ‘국회정치구조개혁특위’만 해도 그렇다.정당법 및 선거법과 달리 ‘이해관계’가 크게 갈리지 않았던 국회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활동시한을 3월말에서5월말로 2개월 연장했다. 앞으로 ‘정치개혁’이 순탄하지 않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권력구조(내각제)문제에만 너무 집착하다 정치개혁은 입 언저리에서 맴돌다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여야 모두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의 흑백논리(黑白論理)를 고집하면 그 길은 더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진다.우선 ‘쉬운 것’,‘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면 된다.金대통령도 “선거법과 정당법은 현재의 권력체계내에서 개정가능하다”고 방법을 예시했다.정치개혁이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해서는 안된다. 오풍연 정치팀 차장
  • 여야, 정치개혁협상 본격화

    여야는 이르면 이번 주에 국회 정치구조개혁특위와 사무총장 회담을 통해정치개혁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국민회의는 18일 당 3역회의를 통해 자민련과의 단일안 마련에 즉각 착수하고 정당명부제 뿐 아니라 중·대선구제 도입 문제도 논의하기로 했다.鄭東泳 대변인은 “정당명부제를 포함해 선거구제를 개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회의는 상반기내에 정치개혁 입법을 끝내겠다는 목표로 자민련과의 단일안 협상,한나라당과의 여야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한나라당은 19일 선거법관련 공청회를 거쳐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조정 등에 대한 당론을 결정한 뒤본격적인 협상을 할 방침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이달 말로 된 국회 정치구조개혁 특위의 활동시한을 5월 말까지로 2개월 연장했다.여야는 의원정수를 30명쯤 축소한다는데에는 인식을 같이하지만 金大中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 DJ, 개각人事 ‘심사숙고’ 이유 뭘까

    金大中대통령이 집권 2차 연도의 인사를 놓고 숙고의 시간을 길게 갖는 것같다.국민통합과 개혁성,참신성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탓이지만,이는인재풀(Pool)에 대한 고민의 반증으로도 보인다.여기에 “일할 시간을 주는것이 자주 바꾸는 것보다 낫다”는 金대통령의 인사철학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신임 姜基遠여성특위위원장 임명과정이 그 좋은 예이다.대학총장을 포함해4명의 후보를 놓고 많은 검증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청와대 한고위관계자는 “마땅한 인물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전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달라 조율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조율의 과정을 거쳐 합의점을 찾은 셈이다.인사행태의 변화를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새로운 인물의 발굴과 연(緣)을 둘러싼 잡음을 최소하겠다는 의지다. 이벤트화하지 않으려는 金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익히 알려진 바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대폭,중폭의 시각으로 개각을 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최근 국무회의에서도 밝혔듯이집권 2차 연도를 맞아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는 게 金대통령의 생각이다.이제는 정치적 배려보다 정책혼선을 최소화하면서 국정을 원활히 이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라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金장관의 경질 등 후속인사의 규모와 인물이 당초 예상을 빗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분’이나 ‘땜질식’이 아닌 본질적인 검토가 이뤄진 뒤 단행될 전망이다.
  • 새 여성특별위원장 姜基遠 변호사

    金大中대통령은 18일 尹厚淨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나 공석중인 여성특위위원장(장관급)에 姜基遠변호사를 임명했다. 梁承賢
  • 3黨입장과 움직임

    여야가 정치개혁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17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와 만나 정치개혁 입법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18일에는자민련 朴泰俊총재와 만나 공동여당의 단일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것이다.국민회의는 18일 당 3역회의를 열고 정당명부제 뿐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한나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갖고 중·대선거구제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는 18일 정치개혁특위의 활동기간을 5월 말까지로 2개월 연장하기로 했다.총재회담 직후 나온 첫 움직임이다.여야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도정치개혁 협상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다.한나라당 李富榮 총무는 의원총회에서 지난 11일 시흥지구당 임시대회에서 金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을 공식 사과했다.여야총무회담의 걸림돌을 없앤 셈이다. ▒여당 국민회의는 당 3역회의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鄭東泳 대변인은 “1단계로 자민련과 단일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정당명부제와 선거구 획정 등 정치개혁이슈들을 개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입장을정리했다.당론인 소선구제와 정당명부제 뿐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총재,총장,총무회담 등 각급 레벨에서 단일안 마련을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현재 구성된 특위에서 공동여당의 단일안을 마련할 지,별도의협의기구를 설치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공동여당의 단일안을 마련하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특히 선거제도에관해서 그렇다.당의 이해 뿐 아니라 의원들의 이해도 첨예하게 엇갈리는 탓이다.국민회의의 선거제도 당론은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다.하지만 자민련은 내각제 채택을 전제로 정당명부제를 찬성하고 있다.국민회의의 호남권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에 대체로 관심이 없다.자민련의 비충청권 의원들은대체로 중·대선거구에 매력을 느끼지만 충청권 의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 辛卿植 총장은 의총에서 “소선거구제라는 당의 방침에 변화가있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그러나 많은 의원이나 위원장들이 중·대선구제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 심도있게 다루겠다”고 보고했다.현재 원내외 위원장 60∼70명 정도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주로 호남,대전,충남·북 지역 출신들이다.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말’조차 안나온다. 당정치개혁특위(위원장 邊精一)는 19일 국회에서 세미나를 열고 당내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이 자리에서 대략 ‘윤곽’이 잡힐 것 같다.이와 관련,李會昌총재는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문제에 관해 당에서 신중히 검토·논의하고 있다”면서 “당론이 정해지는 대로 여권과 논의를 전개하겠다”고밝혔다.
  • 姜基遠 여성특위 위원장

    姜基遠 신임 여성특위 위원장은 그동안 여성관련 사업과 법률제정에 자문역할을 수행하는 등 여성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해온 법조인.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정계 및 학계 등에 친분이 넓어 마당발로 통한다. ‘500명 이상 여성근로자 고용사업장의 탁아시설 설치 의무화’법안 통과와지난해‘채용시 제대군인 가산점 위헌소송’제기에 앞장서 여성계의 인망이높다. 여성계는 姜위원장의 임명 소식에 “여성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적임자”라며 반겼다. 특히 여성특위 관계자들은 “‘남녀차별금지법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위한 후속조치 마련을 앞두고 법률전문가가 임명돼 다행스럽다”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은 오는 7월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조용한 尹厚淨 전위원장과 스타일이 달라,관료사회에 변화가 초래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남편 金學俊 인천대 총장(59)의 권유로 대학 졸업 6년만에 사법시험에 도전,판사생활을 하다 지난 8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金총장과의 사이에 출가한딸 恩秀씨(32)를 두고 있다. ▲전북 이리(57)▲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서울민사 형사지법,가정법원 판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 ▲청조법무법인 대표 ▲서울시 여성위원
  • EU 부패얼룩 집행위원 전원사퇴…40년래 최대 위기

    연초 단일통화를 출범시키며 결속을 과시했던 유럽연합(EU)이 부정비리의혹으로 집행위원 전원이 사임키로 함으로써 40년래 최대 고비를 맞았다. 자크 상테르 EU집행위 의장은 16일 “특별위원회 보고서를 감안,집행위원전원의 사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U집행위원은 역내에 적용되는 법률 제안과 집행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으며 15개 회원국 20명의 위원으로 각국 정부가 임명한다. 이들이 사임키로 함으로써 옛 동구권 국가의 EU편입에 따른 예산분담금 협상 등 다음주로 예정된 EU정상회담이 차질을 빚게 되고 회원국내에서는 정치바람이 불 전망이다. 특위는 지난 1월 이후 6주간의 조사를 마친뒤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집행위원이 비리에 개입한 명백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으나 집행위원이나 집행위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할 비리사례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崔麟

    1949년 3월 20일 서울지방법원(구 대법원 건물)대법정.법정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이었다.오후 1시 정각 검찰관과 재판관이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재판관의 뒤로 법정 정면에는 중앙에 태극기를 두고 한 쪽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휘호가 걸려 있고 다른 한 쪽에는 ‘3·1독립선언서’가 걸려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백발에 수척한 모습의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의 나이 71세,이름은 최린(崔麟)이었다.‘3·1의거’ 당시 오세창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던 바로 그 최린이었다.그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지 5일만인 49년 1월 13일 명륜동 자택에서 체포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중의 한 사람으로,청장년 시절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그가 해방된 조국의 법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는 것은 민족의비극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성달(徐成達) 검찰관이 그의 죄상을 읽어내려갔다.‘▒죄명:반민법 제4조 2항(중추원 참의),3항(칙임관이상의 고관),10항(친일단체의 수뇌간부)위반.▒범죄사실:피고인 최린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보성중학교장 및 보성전문 강사를 역임하고,기미독립운동시 33인의 1인으로서 천도교회의 대표로 기독교,기타 종교단체와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음으로 인하여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그 후 천도교 중앙종리원 등 장로로 있었던 자인 바, 1)1934년 이른 봄부터 1937년까지의 약 2년여,193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시까지의 약 5년여에 도합 7년여간 조선총독부의 유일한 자문기관인 중추원 칙임 참의로서 조선총독의 자문에 의하여 총독정치에 기여하고, 2)…’.이어서 검찰관이 기소장 낭독을 마치자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서순영(徐淳永) 재판장이 경력을 물은 뒤에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피고가 왜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그는 “기미년 당시 일제에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뿐이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린(1878∼?,창씨명 佳山麟)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다.그의 집안은 중인출신으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고 한다.후에 그가 출세와 신분 상승을 위해권력에 집착한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같은중인 출신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변절에 대해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는 견해도 있다. 청년시절 그가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자임은 사실이나 그 무렵그의 민족의식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는 견해도 만만찮다.1909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천도교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는 1차대전 종결후 ‘민족자결주의’ 물결과 1919년 2월 도쿄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선포하자 이에 고무돼 ‘3·1독립선언’에 가담하였다. ‘3·1의거’ 당시 그의 민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가 이 일로 체포돼 재판정에서 행한 발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그는 “조선이 병합된 것은 러일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또 당시 조선의 정치는 지독한 악정이어서도저히 조선의 안녕·행복을 유지·증진하기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병합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919.7.17 예심조서)고 진술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선포와 관련,“…본래의 의사는 극히 온건한 수단에 의하여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민을 선동하는 것 같은 문귀 등은피한 것이므로 우리들의 선언서를 본 사람은 그러한 폭동에 가담할 리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일자 미상)고 진술하였다. 첫번째 진술은 일제의 ‘한일합병’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두번째 진술내용은 자신들이 주도한 ‘3·1의거’를 ‘폭동’ 운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민족대표’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또 재판장이 ‘현재의 조선인의 지모와 실력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일본정부의 도움을 얻으면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결국 그가 말한 ‘독립국’은 일제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치국’ 정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나중에‘자치운동’에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 ‘3·1의거’로 의거 당일 일경에 체포된 그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12월 22일 일제당국의 ‘배려’로 가출옥하였다.‘3·1의거’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총독은 그가 표방한 ‘문화정치’의 전위대로 최린을 이용할 작정이었다.그의 가출옥 배경에는 사이토의 정치참모인 아베(阿部充家,‘京城日報’사장 역임)의 공작이 있었다. 그가 가출옥한 직후 아베가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날의 형세로보아 민원식·선우순 따위의 운동으로는 도저히 일대 세력을 이룩하기는 어렵고,간접사격으로…일을 꾸미자면…여기에는 이번에 가출옥한 위인들 중 최린이 안성맞춤의 친구입니다…’(1921년 12월 29일자)라는 귀절이 보인다.‘기미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최린보다 앞서 가출옥(1921.10.19)한 육당 최남선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이번에 최린군을비롯하여 제군의 출감을 보면서 백열(柏悅)의 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특히 당사자들도 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있습니다… ’(1921년 12월 25일자,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서 입수) 1926년 9월 그는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구미 각처로 여행을 떠났다.당시 파리에 체류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가 바로이 무렵이었다.그 해 10월말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시 아베를 만나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선의회 설치가 조선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하고,나도 민중의 신임만 얻으면 조선의회의 한 사람이 되기를 사양치 않겠다”며 ‘조선자치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친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1933년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부터다.이듬해 4월 그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더니 8월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동아(東亞) 제(諸)민족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매진할 것,특히 조선은 일선융합(日鮮融合)·공존공영이 민족갱생의 길’이라고 외쳤다. 37년 다시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해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보도를 적극 독려하였다.이 무렵 그는 총독부의 전시 최고심의기구인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후방지원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에 참여하면서 전쟁지원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 1941년 8월에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을 거쳐 10월 이 단체가 윤치호(尹致昊)계열의 흥아보국단과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자 단장에 취임하였다.징병제 선전과 학병권유에 앞선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일제 패망직전인 45년 6월에는 조선언론보국회라는 친일언론단체를 조직,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짧은 ‘항일’에 비하면 그의 ‘친일’은 길고 열렬했다.해방후 천도교측은 그의 죄를 물어 은퇴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거부하다가 결국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다.반민특위에 구속돼 민족반역자로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 49년4월 20일 3회 공판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됐다.재판과정에서 그는 다른 피고인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참회로 재판부와 방청객들로부터 동정을 샀다.심지어 그는 “민족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고 사죄해 법정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이후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 그는 친일한 동기를 ‘늙은 노모에게 불효를 할 수 없어 망명도,자살도 하지 못하고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했다’고 털어놓았다.결국 그는 부모에 대한 효(孝) 위에 나라에 대한 효,즉 충(忠)이 있음을 몰랐던 셈이다.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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