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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국은 모면… 「조건부 불씨」 잠복/KBS사태 정상화의 언저리

    ◎노ㆍ사ㆍ정 극한상황 막으려 숨가쁜 접촉/“노조요구 조건 보장” 약속이 변수로 공권력 재투입이라는 극한상황으로 치닫던 한국방송공사(KBS)사태가 사실상 파업 17일째인 28일 하오 진통을 거듭하던 끝에 극적인 타결점을 찾아 일단 파국을 모면했다. 비록 서기원사장 퇴임요구는 계속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KBS사원들은 방송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일단 방송제작에 참여키로 함으로써 국민의 방송인 KBS가 더이상의 파행방송을 중단하고 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KBS사태가 27ㆍ28일 이틀동안 급전을 거듭하면서 자체수습기까지는 살얼음판을 밟는 듯한 숨가쁜 긴장감이 게속됐다. 울산 현대중공업사태와 맞물려 있던 KBS사태는 27일 밤 공권력재투입 결정으로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경찰은 28일 새벽을 기해 병력을 투입,강제진압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에서 초읽기를 하고 있었고 현대 중공업에도 거의 동시에 경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정부는 이날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강영훈국무총리와 서동권안기부장,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내무ㆍ법무ㆍ공보처장관ㆍ검찰총장ㆍ서기원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KBS노조가 이날 밤까지 방송정상화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공권력을 투입키로 하고 그 시기와 방법은 안응모내무장관에게 일임했었다. 한편 KBS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하오 8시쯤 7시간동안의 마라톤회의를 끝내고 「방송재개검토」등의 4개 결의사항을 발표,사태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안내무는 최공보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KBS 비대위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이날 하오 11시쯤 KBS에 대한 경찰투입을 유보하고 현대중공업에만 작전을 전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최공보도 성명을 통해 『KBS가 내부적으로 방송정상화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환영한다』면서 『그러나 28일 하오 2시까지 자체적으로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이어 김우현 치안본부장과 이종국 서울시경국장은 28일 0시10분쯤 여의도에 대기시켰던 경찰병력을 철수했고 서기원사장과 다른 임원들도 9시35분쯤 농성중인 사원들에게 공권력투입 유보사실을 알린 뒤 방송정상화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 뒤 귀가했다. 최공보는 최후교섭을 위해 28일 상오 10시30분쯤 KBS를 방문,서사장과의 면담에 이어 고범중 노조사무차장 등 비상대책위 대표 5명과 접촉했으나 양측의 기본입장만을 재확인 했을뿐 타협점을 찾지 못해 다시 비관적인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KBS사태가 극한 대립상황에서 수습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이날 상오 9시15분쯤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이 노조사무실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김전장관은 노조대표와 만나 『개인자격으로 이번 사태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노조측이 이를 받아들여 상오 9시40분쯤부터 1시간동안 첫 회의가 열렸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나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활약을 받고 왔다』고 전제,『정부로서는 외형상 양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고 노조측도 서사장 퇴진요구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저 사태를 수습하고 사장퇴진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매듭짓도록 보장하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어 하오 1시20분부터 하오 5시까지 비대위 대표와 마라톤 회의를 계속했고 3∼4차례 정회중에는 「외부」와 전화통화를 한 뒤 서사장의 퇴진을 거듭 확인하여 노조측의 호응을 얻어냈다. 안동수 노조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직후 회의결과를 문안으로 작성,『30일부터 방송정상화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서사장의 퇴진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위원장은 이때 김씨를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특사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해 노조간부 불구속문제를 비롯,사태회복 이후에 있을 각종 불이익 처분에 대한 확실한 보장도 함께 받아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KBS시태는 앞으로 30일 하오에 있을 전국사원총회에서 이번 수습안을 추인받는 문제와 서사장 퇴임문제 등의 조건부 불씨를 남기고는 있으나 수습을 위한 정상궤도를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KBS사태 일지 ▲2월6일=감사원 「KBS 89번 법정수당 변태지급」 관련 감사완료. ▲2월26일=감사원 KBS감사결과 발표.▲3월2일=KBS이사회,서영훈사장 면직제청결정. ▲3월8일=대통령 서사장면직결정. ▲4월3일=KBS이사회 서기원씨를 KBS사장으로 제청키로 결정. ▲4월9일=대통령,서기원씨를 KBS사장으로 임명. ▲4월10일=KBS노조,「관제사장출근저지 전국사원결의대회」 개최. ▲4월11일=서사장 첫 출근 노조원 등 사원들에 의해 저지당함. 하오에 청경과 간부들이 도움으로 사장실에 들어갔으나 다시 쫓겨나옴. ▲4월12일=서사장,출근했다가 사원들이 들이닥치자 경찰투입요청. 경찰,농성해산 시키고 사원 1백17명 연행. 노조원 등 사원들 비상총회 갖고 국ㆍ실별로 제작거부 결의. 이날 하오부터 파행방송. ▲4월13일=노조원 등 사원 3천여명 「전국사원비상총회」 개최. 연행자 1백10명 훈방. ▲4월14일=경찰,KBS내에서 철수. 연행노조간부 7명도 석방. 이를 포함,9명 불구속 입건. ▲4월17일=KBS이사회 「사태수습 4인소위」 구성. ▲4월18일=MBC,동맹파업키로 결의. ▲4월19일=국회문공위,KBS사태 논의. ▲4월21일=서사장,다시 출근저지당함. ▲4월23일=내무ㆍ법무ㆍ노동ㆍ공보 등 4개부처장관 KBS사태에 관한 담화문 발표. 강경대처 시사. ▲4월24일=당정회의서 사태수습논의,KBS 「전국사원비상총회」 개최. ▲4월25일=검찰,본부장급 간부 수명 소환,참고인 조사. KBS노조원 등 사원 2천여명 남산에서 여의도까지 침묵시위. KBS이사회,「방송정상화 후 사태해결 수습방안 제시. ▲4월26일=강원용방송위원장,방송정상화와 서사장 태도변화를 동시 요청하는 수습방안에 관해 기자회견. 종교ㆍ법조ㆍ여성ㆍ학계원로 등 「KBS지키기 시민모임」 결성,사태 중재 나서기로. ▲4월27일=KBS부장 및 실ㆍ국장단,방송정상화 KBS사원에 호소. 정부,총리주재 긴급회의 개최. 검찰,안동수위원장 등 핵심간부 7명 사전구속영장 발부받음. ▲4월28일=정부,하오 2시까지 정상화 촉구 최후통첩,최병렬공보처장관 비대위 간부 만나 선정상화 요구. 비대위 공권력투입 자제 요청.
  • 국익차원서 「구명의 대도」선택/김현희 특사의 배경

    ◎북한만행의 유일한 증인ㆍ전향 참작/2년4개월만에 자유시민으로 새삶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28)에 대한 특별사면단행은 국익차원에서 내려진 조치로 보인다. 1백15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항공기폭파범에 대한 사형집행과 사면의 효과를 저울질한 결과 구명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김현희를 최대한 활용,「실익」을 찾자는 것이 특별사면을 단행한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이 김에대해 사형확정 판결을 내린뒤 정부는 특별사면의 적절한 시기를 모색한 끝에 사면시기가 빠를수록 좋다는 판단에 따라 이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형사소송법에는 「사형집행 명령은 판결확정일로부터 6개월이내로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 규정이 강제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이고 재심청구의 방법도 있어 김의 사면결정은 훨씬 더 늦출수도 있었으나 정부는 더이상 사법적 절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사면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지난 87년 11월29일 버마(미얀마르)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 김에 대한 사법적 절차는 2년4개월여만에 완전 마무리 되었으며 김은 사형수에서 자유인이 돼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새생활을 갖게 됐다. 김에 대한 사면은 당초 검찰이 불구속기소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87년12월1일 김이 바레인에서 검거돼 한국측에 신병이 인도된뒤 14개월만인 89년2월3일에 서울지검이 김을 기소하면서 불구속상태로 처리했고 1ㆍ2심과 대법원상고심 사형선고 이후에도 구치소에 수감하지 않고 계속 불구속상태로 안전가옥에 수용,사형확정 이후의 특별사면을 기정사실화 시켰다. 정부가 김을 특별사면키로 방침을 세운 것은 ▲김이 이 사건의 유일한 역사적 증인으로 북한의 대남적화야욕과 극악한 테러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줄수 있다는 점 ▲모든 범행을 자백하고 북한의 만행을 폭로했다는 점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고 전향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사형을 집행하기 보다는 구명을 통해 김을 계속 활용하는 편이 국익을 위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68년 「1ㆍ21 청와대기습 기도사건」의 생존자 김신조씨의 경우와 같은것으로서 사상 전향자의 경우 우리의 품안으로 받아들인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김신조씨의 경우는 검찰의 「공소보류」로 아예 법원에 기소조차 하지 않았지만 김현희의 경우는 항공기범죄는 엄벌토록 한다는 「몬트리올협약」등 국제법과 희생자 유가족의 감정,국민의 법감정 등이 크게 작용,사형 확정뒤 특별사면의 조치를 취한 점이 다르다. 김은 그동안 안전가옥에서 여자수사관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해 왔는데 앞으로 당분간은 이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김은 최근 안기부가 마련해준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여자수사관과 함께 기거하면서 자신의 성장과정ㆍ범행경위ㆍ북한의 실상 등을 담은 수기를 집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구명하는것이 실익”사면 확실/사법처리 끝난 김현희 어떻게 되나

    ◎특사상신 거쳐 새달중「자유의 몸」될듯/유족감정 고려,모양새 갖추기에 고심 대법원이 27일 대한항공858편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피고인에게 사형판결을 확정함으로써 사건발생 2년4개월만에 사법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김피고인은 이에따라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 원칙이나 당국은 김피고인이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데다 수사과정 및 공판과정에서 범행을 낱낱히 자백한 점등을 감안하고 반공교육의 산 교본으로 삼는다는 국익차원에서 사면을 통해 은전을 베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특히 북한쪽에서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획책한 것으로 밝혀져 그동안 나라 안팎의 관심을 끌었었다. 대법원은 이날 김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원심대로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1백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기 폭파범에 대해 일단 단죄한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초부터 개인의 범행이라기 보다는 북한의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기 때문에 진상을 모두 밝혀낸뒤 김피고인에게는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정부는다만 피해자가족들의 김피고인에 대한 원한이 채가시지 않앗고 바로 사면을 할 경우 이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사면시기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면을 하더라도 신변의 안전등을 고려,신변안전장치를 미리 확보하는 것도 문제다. 사면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는 유가족들을 달래기 위한 당국의 조치도 함께 나와야 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김에 대한 사면절차는 검찰총장의 신청에 의해 사형집행 명령권자인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상신하고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어 이를 심의한뒤 결정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때의 특별사면은 일반사면과 달라 국회의 동의 절차가 필요없다. 법무부의 관계자는 이날 「검찰에서 판결서의 등본 또는 초본등 관계서류를 보내 오는대로 김피고인의 특별사면을 상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형집행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안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김피고인의 사면시기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른시일안에 결정할 것으로 안다」고말해 빠르면 4월안에 사면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별사면은 형의 집행이 면제되는 것으로 이때부터 김피고인은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김은 신변안전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판단될때 까지는 현재 머물고 있는 안전가옥이나 별도의 안전가옥에서 경호원의 경호아래 생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안당국자는 「앞으로 5∼10년동안은 이같은 보호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대한항공기 폭파만행은 최근 버마의 안다만 해역에서 이 비행기의 잔해가 틀림 없는 부유물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김피고인은 87년 11원29일 이 비행기를 폭파한 혐의로 바레인공항에서 체포된뒤 89년 2월3일 국가보안법위반등 혐의로 기소돼 1ㆍ2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 받았었다. 이날 상고심 선고공판이 끝난뒤 김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인 안동일변호사는 「재심사유가 없어 재심을 신청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사형이 확정된 사람은 구치소 또는 미결수용실에 수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검찰은 김의 신변보호를 위해 당분간 안전 가옥에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한편 김은 최근 어릴때부터 성장과정과 북한에서 받은 간첩교육,대한항공기폭파까지의 과정,북한의 실상등을 상세히 담은 수기를 집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AL기 폭파사건 일지 ▲87년11월29일=버마 안다만 해역상공에서 KAL기 858기 폭발 ▲12월1일=바레인 경찰,범인 김현희검거,주범 김승일자살 ▲12월15일=바레인측으로부터 김현희신병인도 ▲12월18일=안다만 해역에서 KAL기1차 잔해 검증 ▲12월19일=폭파주범 김승일사체부검 ▲12월23일=안기부,김현희를 국가보안법 위반등 혐의로 입건 ▲88년1월15일=안기부,수사결과 발표 ▲11월25일=서울지검에 김송치 ▲12월2일∼89년1월31일=서울지검,김현희에 대해 6차례조사 ▲2월3일=서울지검,김현희불구속기소 ▲4월25일=서울형사지법김에 사형선고 ▲7월22일=서울고법 김에 사형선고 ▲90년3월27일=대법원 사형확정
  • 김현희피고 사형 확정/KAL기 폭파관련

    ◎대법원,상고기각… 원심대로 선고/정부,곧 대통령에 특사건의 대한항공 858편여객기 폭파범 김현희피고인(28)의 사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주한대법관)는 27일 하오 김피고인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 등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가담행위를 강요된 행위로 볼 수 없고 김승일과 공동정범으로 보아 마땅하며 원심의 양형이 부당하지 않다』고 상고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피고인에게는 국가보안법ㆍ항공법ㆍ항공기 운항안전법 등 모두 6개죄목이 적용됐다. 재판부는 『김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에 직접가담하여 실질적인 임무를 분담수행했을 뿐 아니라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수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한 국제민간항공기를 폭파시킨 비윤리적인 범행에 비추어 원심의 사형선고는 지나친 것으로 볼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김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범행한 하수인에 불과하고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데다 역사적 사건의 유일한 증인 이어서 살려두는게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빠른 시일안에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김피고인을 구명할 방침이다. 김피고인에 대한 사면은 빠르면 4월안에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정에는 사고항공기의 희생자 유족들 모임인 「858 유족회」 회원30여명이 나와 재판과정을 지켜보다가 김피고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김현희를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들은 또 『특별사면이란 있을 수 없다』 『김현희를 극형에 처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 박준규 특사 귀국

    민자당의 박준규상임고문은 노태우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칠레및 브라질의 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하고 24일 하오 귀국했다.
  • 김영삼 최고위원,모스크바에 왜 또 가나

    ◎“한ㆍ소수교 촉진”… 첫 국정분담의 여로/고르비 면담여부가 최대 관심사/소의 대한시각 호전… 가시적 결실 기대/박 정무는 대북관계 개선에 초점 맞출 듯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이번 두번째 방소는 지난해의 방문이 제3당총재로서 미수교국 소련에 대한 탐험여행이었던 데 비해 집권당의 공동대표로서 수교촉진특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야할 듯 싶다. 특히 정부의 북방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박철언정무1장관이 동행함으로써 이번 방문을 통해 한소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격」있는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방소를 앞두고 다양하게 나타난 일련의 양국간 관계개선 징후들은 그의 방문기간중 수교로 가는 큰매듭이 풀리는 것 아닌가하는 희망적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 16일 취임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양국간의 관계개선은 『매우 좋은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소련 최고지도자가 직접 한소 관계개선에 관해 이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은 처음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빠른 시일내의 수교를 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일 방한중이던 아나톨리 로구노프 모스크바대총장이 노태우대통령에게 임기중 소련을 방문해달라고 초청한 바 있다. 특히 최근들어 소련의 유력지 노보에 브레미아가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고 나선것 등은 소련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한수교를 희망하는 외교적 시사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소 관계는 그동안 소련측이 북한의 반발등을 고려해 경제협력강화를 우선시킴으로써 외교적으로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달들어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방소를 통해 20억달러짜리 공사에 참여키로 합의한 것을 비롯,외교적 뒷받침이 필요한 단계로 경협규모가 커졌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으로 한소 수교 견제세력이라할 당내보수파의 입김으로부터 정치ㆍ경제개혁의 운신이 한결 자유로워 졌다는 점도 한소 수교를 앞당길 수 있는 긍정적 여건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방소결과를 예측케할 모스크바에서의 1주일간 체류일정은 상당부분이 미정상태에 있다. 또한 일부 일정은 「보안」에 붙여지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소련측이 발표한 김최고위원 모스크바 일정에는 소련최고회의 외교분과위에서 「한소 관계와 동북아의 평화」를 주제로 연설하는 것 외에 예고르 리즈코프총리,예브게니 프리마코프연방회의의장 등을 만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아직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일정은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1주일 동안 계속 면담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일종의 한소 간접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김최고위원의 모스크바 일정외에 박정무장관의 모스크바 일정도 관심을 끌고 있다. 박정무장관의 측근들은 그가 김최고위원과는 별도의 일정으로 움직이게 될것이며 「정부대표」로 모스크바에 체류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그의 측근들은 『한소 수교는 어차피 시간상의 문제인 만큼 박장관이 모스크바에서 그릴 행적은 한소 관계개선보다 남북 관계개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해 관심도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박장관 측근들의 전망과,그가 청와대를 물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남북관계의 막후채널로 활동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북한측 고위관계자의 비밀접촉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점쳐볼 수 있다. 때문에 모스크바에서는 김최고위원이 소련과의 공식대화 창구로,박정무가 대소 및 대북한 막후창구로 활동하는 역할 분담을 할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정부 입장에서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은 한소 관계는 물론 동북아정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직후에 이뤄지는 김최고위원과 박정무장관의 방소는 이 사건의 파장과 의미를 직접 파악하고 새로운 지도체제하의 소련과의 수교시간표를 확정하거나 기존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다. 김최고위원의 방소는 국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여권내 김최고위원의 향후 위상을 점칠 수 있는 또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김최고위원으로서는 북방외교 개척자중의 1인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함으로써 정계개편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그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처음으로 구체적인 국정의 일부분을 자신의 책임과 지휘아래 분담하게 됨으로써 노대통령과의 동지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미래 집권담당자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으로서는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 외에 별다른 방소성과가 없었을 경우의 여론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방문단만 공식ㆍ비공식을 합쳐 40명선에 이르고 있고 대구서갑 보궐선거 기간중에 치러지는 장기외유라는 점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을 경우 당내외로부터 비난을 받을 소지도 없지 않다. 방소를 전후해 일본에 들러 가이후수상 및 도이사회당 위원장등과 잇단 접촉을 갖기로 한 것은 이런 불안에 대한 대비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김최고위원의 방소에 앞서 준비기획단을 만들어 준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노대통령이 17일 청남대에서 김종필최고위원까지를 포함해 환송회동을 가져준점,박정무장관을 동행케 한 점 등도 김최고위원의 방소와 관련,위상제고를 위한 적극적 지원이었다. 그러나 박장관의 모스크바일정이 분리되는 점등은 향후 기존여권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 수도 있는 부분들이다.
  • 「3ㆍ1절 석방」 확대/미전향자 특별사면은 부정적/정부 고위당국자

    정부는 3ㆍ1절을 맞아 형행성적이 우수하고 형기가 확정된 기결수를 최대한 석방시킨다는 방침아래 가석방요건을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3일 『이번 3ㆍ1절을 맞아 정계개편 이후 국민사이에 조성되기 시작한 화합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대규모 가석방조치가 단행될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과거에는 형기의 90% 이상을 복역하고 형행성적이 1ㆍ2급인 기결수만 가석방대상이 됐으나 이번에는 형기의 75%이상,형행성적 3급까지 가석방대상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면복권 문제와 관련,『이번 3ㆍ1절 특사조치에는 사면 복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의 경우 전향서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석방하게 되면 국가안보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혀 장기수 석방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 “3ㆍ1절 특사 선별작업중” 김영삼 최고위원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20일 『구속자 석방과 사면ㆍ복권이 3ㆍ1절을 기해 특사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현재 관계당국에서 구체적 선별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국회에서 처음으로 민자당 당직자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고 『국회 회기가 25일로 늘어나 일정이 촉박하나 3월 중순의 소련방문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면서 『오는 24일 초대 소련영사처장인 공로명대사와 만나 구체적인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 칠레ㆍ브라질 대통령/새달 취임특사 파견

    정부는 19일 박준규 전민정당대표위원을 대통령특사로 임명,오는 3월11일과 15일에 각각 있을 아일윈 칠레대통령과 콜로르 브라질대통령 취임식에 파견키로 했다. 이에따라 박전대표는 3월4일 출국,17일까지 칠레및 브라질에 머물면서 노태우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할 예정이다.
  • 김영삼 최고위원 관훈클럽 토론내용

    ◎“노대통령 연정 제의해와 합당 응수했다”/국민은 극렬투쟁 일삼는 야당에 신물/재야와도 대화 용의… 폭력엔 절대 반대 김영삼 민주자유당최고위원은 12일 중견언론인 친목모임인 관훈토론회에 참석,유근일조선일보논설위원,황소웅한국일보편집부국장,김기덕KBS방송위원,송도균MBC부국장 등 4명의 토론자와 함께 정계개편의 배경및 향후 정국운영 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벌였다. ­정계개편의 자세한 경위는. ▲지난해 6월 방소후 노태우대통령과 단독회담에서 노대통령이 연정제의를 했었다. 이때 나는 「4당체제가 문제가 있으나 일단 5공청산을 해야 한다」고 한바 있었다. 그후 지난 1월12일 다시 만났을 때 내가 「4당체제를 없애야 하며 이를 3당이라도 합의하자」고 말했다. 또 2공화국시절 민주당의 예를 들며 「연정은 안된다. 우리가 정말 나라를 구하려면 민정당을 해체하는 것이 과거청산에 결정적인 일이며 그럴 경우 나도 야당을 청산하겠으니 같이 깨고 새출발하자」고 말했다. 노대통령으로서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그리고 노대통령에게 「결심이 서면 통보해 달라. 공화당이 동조하면 같이하자」는 말을 했다. 이 문제는 92년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 ­1노2김이 노대통령 다음에는 김영삼최고위원,그 다음에는 김종필최고위원이 대권을 맡는다는 밀약을 했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한데. ▲전혀 그같은 사실이 없다. ­앞으로의 대평민당및 김대중총재와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 또 호남을 고립시켰다는 지적이 있는데. ▲김대중총재가 정치해나가는 데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호남고립이라는 견해에는 반대한다. 김대중총재는 「4당구조는 국민이 선택한 것」이라고 해 스스로 정계개편에서 빠진 것이며 평민당이 곧 호남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통합구상을 지난해 6월에 했다면 그동안 속으로는 이같은 생각을 해오면서 표면적으로는 야3당 공조를 강조해온 것이 된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는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야3당이 같이 가기로 약속한 것은 5공 청산때까지다. 이는 전부 공개적으로 말해온 것이다. 그후에는 도저히 같이갈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 부끄러움 없는 일이다. ­김최고위원은 민정ㆍ공화 등 집권세력의 세연합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든지 민주화와 개혁의 역사 전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든지 둘중의 하나로 가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일련의 법률개폐및 경제개혁은 어찌되나. ▲일부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속는 것 아니냐」고들 하는데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속일 사람도 속을 사람도 없다. 꾸준한 개혁으로 민주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다음에는 문민정치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다. ­앞으로의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가 될 것인가 내각제가 될 것인가에 대해,또 국회의원 선거법이 현행 소선거구 유지냐 중선거구로의 전환이냐에 대해 밝혀 달라. ▲대통령직선제를 실시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그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최고위원이 문제제기를 하면 논의하지 말자고는 않겠다. 국회의원 선거구제도 우리가 얘기하지는 않았으나 소선거구제가 바람직하다.­내각개편은 언제하며 내용은 어떻게 되나. ▲국가경영을 세사람이 공동책임지는 만큼 협의해야 할 것이다. 개각이 너무 늦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3당뿐 아니라 밖에서도 좋은 사람을 찾아 인물중심ㆍ능력본위가 돼야 한다고 본다. ­오는 3월 방소때 특사나 밀사의 임무가 있으며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과 만날 것인가.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이번 소련방문은 야당총재로서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이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와 같이 민주당 사람만 수행하지 않고 민자당 동지들과도 함께 갈 것이다.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야당이 극렬투쟁을 전개,오히려 정치 불안이 가중되는 것이 아닌가. ▲극한 투쟁은 불가능할 것이고 국민은 그런 야당을 지지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지자제실시 시기는. ▲이미 결정난대로 변함없이 실시될 것이다. 그러나 매년 선거실시에 따른 폐단의 지적이 있으므로 3인대표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대협ㆍ전노협 등에 대해 공안당국과 의견을 같이 할 것인지. ▲노동자든 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어느 사람과도 대화를 하겠다. 그러나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방청석 질문)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입장과 93년 노대통령퇴임이후 여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밝혀달라. ▲지난 연말 증언이 국민에게 사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노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안정시킨 훌륭한 대통령으로서 퇴임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가장 훌륭한 협력관계를 이뤄 나갈 것이다.
  • 석방 대상자 확대 시기도 앞당길 것/김영삼총재

    김영삼 민주당총재는 3일 청와대회동을 마친 뒤 당사에 돌아와 『2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은 물론 지자제법ㆍ광주보상법ㆍ농어촌발전 관계법ㆍ교원지위향상에 관한 법률 등을 함께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당초 20여명 규모로 알려진 3ㆍ1절 시국사범 특사와 관련,『보다 범위가 넓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으며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 “「힘의 균형」 지탱에 미ㆍ중 우호 필수적”

    ◎홍콩지,「닉슨 방중 비망록」 공개/“극좌성향 회귀땐 서방에 큰 위협/소 철권정치 복귀ㆍ일 군사 대국화도 견제” 지난해 10월말 미국정부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미대통령이 미ㆍ중 우호관계 회복을 강조한 「방중 비밀 비망록」의 내용이 친중국계 홍콩신문인 대공보 7일자에 상세히 보도했다. 대공보는 이 비망록이 지난 5일 비공식 경로를 통해 입수됐음을 밝히고 닉슨은 지난해 10월28일부터 11월2일까지의 방중일정을 마치고 귀국,이 비망록을 작성해서 부시 대통령과 상ㆍ하 양원의장 등 몇몇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인사들에게만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비망록은 특히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실패로 끝나고 소련에 보수적인 철권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예견,주목을 끌고 있다. 또 일본이 2천년대에 들어 군사ㆍ정치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미측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닉슨은 이 비망록에서 고르바초프의 현 정책은 지금까지 미국이 소련의 사회주의에서 느꼈던 위협을 크게 덜어주고 있으나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에 대비하고 장기적인 전략이익을 위해 6ㆍ4 천안문사건 이후 소원해진 미ㆍ중관계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ㆍ중 양국의 우호적인 협력없이는 세계적인 핵무기 확산 금지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힘들고 한반도와 대만등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닉슨은 이와함께 중국이 언젠가는 경제ㆍ군사 강국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측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하등의 이익이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지구 환경문제만 하더라도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을 제외시키고는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비망록은 미ㆍ중 우호가 소ㆍ일의 견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동ㆍ서진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한 시장원리에 대한 저항으로 경제개혁은 실패할 것이고 민주ㆍ자유화 개혁도 좌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소수민족은 복잡하게 구성돼 있고 종교ㆍ역사적으로도 상호 강압과 핍박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소에 민주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할 경우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은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소련에선 보수강경세력이 대두,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팽개치고 중앙통제의 철권정치를 하게 됨으로써 미ㆍ소 데탕트가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지속시켜 소와의 새로운 대결에 대비해야 힘의 균형이 이뤄져 세계평화에 도움이 된다는게 비망록의 견해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닉슨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장래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입으로만 누누이 자국의 경제중시정책과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정치ㆍ군사적 역량은 날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망록은 멀지않은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많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미국이 중국을 도와야만 아시아 지역에서 힘의 안배가 이뤄져 무력분쟁의 가능성을 잠재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이 중국에대한 제재를 장기화하고 다른 서방국가들이 이에 동조할 경우 중국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극좌 보수색채를 강하게 띠어 서방세계를 위헙하게 될 것이므로 제재의 고삐를 될수 있는한 빠른 시일안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6ㆍ4천안문사건으로 크게 움츠러든 중국의 개방ㆍ개혁정책이 다시 활기를 띨수 있게끔 미국의 다각적인 정책배려가 있어야만 중국은 경제발전을 통해 정치ㆍ사회의 안정을 기할수 있다고 분석했다. 닉슨의 비망록이 어느정도의 영향을 발휘했는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미국은 지난 12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을 북경에 보내 양국 현안을 논의했고,미국이 최대 출자국으로 있는 세계은행(IBRD)은 최근 3억5천만달러의 중국 철도건설 차관공여를 재개키로 결정했다.
  • 부시,중남미에 특사 파견/파나마침공 관련/외교적손상 만회 설득작업

    【워싱턴 로이터 AFP 연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앞서 미국의 파나마침공이 외교적인 측면에서 피해를 가져왔음을 시인하면서 특히 중남미지역에서의 이같은 외교적 손상을 만회하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지지를 모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를 위해 댄 퀘일 부통령을 중남미에 파견,이들 국가들에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 『양키포함외교』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킬 방침이다. 부시 대통령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계획을 밝히면서 파나마의 실력자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을 전복시키고 그를 미법정에 세우기 위해 감행했던 파나마에 대한 무력침공이 미국의 대중남미 외교관계를 긴장시켰다고 시인하면서도 그러나 이같은 외교적 마이너스 요인은 시정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퀘일 부통령의 중남미 순방일정 및 계획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나 부시는 퀘일의 방문이 중남미국가들에 미국은 우호적이며 이들을 지지하는 공손한 이웃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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