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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대북전략회의/정부/남북대화 재개방안 등 논의

    정부는 20일 북한이 미국과의 2단계 제네바회담에서 남북대화재개를 약속함에 따라 21일 하오 황인성총리주재로 고위전략회의를 열어 남북대화 재개방안등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남북대화 형식과 시기는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간의 핵사찰 협의의 추이를 지켜보며 신중히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뿐아니라 남북상호사찰도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를 위해 지난 1월25 이후 중단된 핵통제공동위의 재가동을 북측에 조만간 제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미 내정한 이승곤위원장(외무부본부대사)등 우리측 핵통제공동위 위원 6명을 곧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그러나 기업인방북과 남북한 경협은 이달말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과 IAEA의 협의가 원만하게 타결돼야만 허용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북한측이 핵통제공동위가 아닌 특사교환을 거듭 제의해 올 경우 북측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신중히 대처할 방침이라고 정부관계자가 밝혔다.
  •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자유무역지대 추진/중동평화 청신호

    【카이로 DPA 연합】 이스라엘과 요르단및 팔레스타인등 중동평화협상의 3개 당사자들은 회담의 난항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마련된 자유무역지대(FTA)결성안에 모두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고 한 아랍어 신문이 18일 보도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경제지 알 알람 알윰은 미국 소식통의 말을 인용,최근 이들 당사국을 잇따라 방문한 데니스 로스 미중재특사의 왕복 외교에서 이 문제가 주의제로 떠올랐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전했다.
  • 한 부총리 방미와 북정책/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워싱턴방문은 향후 대북정책수립과 관련하여 여러가지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워싱턴에 머물면서 한부총리가 미국행정부의 대외정책 입안부서 고위관리들을 면담한 것은 북한문제에 대한 양측의 시각과 인식을 근접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부총리는 국무부의 피터 타노프정무차관과 백악관의 새뮤얼 버거 국가안보위원회부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미CIA(중앙정보국)로부터 북한의 핵개발현황에 대한 분석결과를 청취했다. 김영삼대통령정부의 대북·통일관련 정책입안의 총책인 한부총리에게 묻는 미측 질문의 하나는 『지난 5월 북한이 최고위급 특사교환을 제의하면서 북측이 남측 특사로 한부총리를 공개적으로 찍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였다고 한다. 이런 질문의 저변에는 그가 학자출신으로 다소 이상주의자로 느껴지고 한때는 정권의 반대편에 서서 진보적인 통일론을 펴기도 했다는 점 등이 깔려있을 법하다.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한다.『당시 매우 당혹해했다.북한이 가장 상대하기 좋은 남측의 통일·대북정책담당자는 「강경한 반공주의자」일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이 남측 정책 당국자의 반응을 항상 예측할 수 있어 대응이 용이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나처럼 북한을 잘 알면서 대북정책을 신축적으로 추진하는 사람은 그들에게는 예측이 불가능해 다루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과거 한국정치에서는 북한이 이름을 불러주면 그날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부총리 답변의 행간에는 북한이 추켜세워 거명하는 것은 「죽음의 키스」와도 같다는 의미도 있고 자신은 일부의 선입견처럼 결코 환상적 통일론자도 아니라는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미측에 대해 북한핵문제와 관련하여 ▲군사제재는 반대하며 ▲체면유지를 중시하는 북한의 성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도 그는 북한과 접촉할 때는 원칙론에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며 특히 제네바의 미·북한 고위회담에서 북한이 핵사찰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직접 얘기하겠다는 식으로 지연전술을 펼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부총리의 이번 워싱턴방문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간의 또하나의 조율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 유엔­이라크/무기 사찰협상 타결/미사일기지 감시카메라 설치 합의

    ◎군사행동 등 위기해소 【바그다드 AFP 로이터 연합】 무기사찰을 둘러싼 유엔과 이라크간의 갈등이 해소됐으며 이에 따라 대이라크 군사행동의 필요성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해체위원회 위원장인 롤프 에케우스 유엔특사가 19일 발표했다. 에케우스 특사는 이날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미사일기지 2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키로 하는 잠정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이같은 해결방안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 차원에서 양측이 합의한 사항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 수락 내지는 찬성표명을 권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측간 광범위한 정치적·기술적 대화통로를 열게 된 이번 합의가 뉴욕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석유수출 재개협상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겠지만 협정 성사를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케우스특사는 이라크의 미사일기지 카메라 설치 거부와 이에 따른 유엔사찰단의 바그다드 철수로 마찰이 심화되자 지난 15일 이라크에 도착했으며 이후이라크 관리들과 계속 회담을 가졌다.
  • 합의과정(한­대만 새시대:상)

    ◎교역등 현안 늘어나 관계 복원에 “일치”/「오랜 인연」 큰작용… 예상외 급진전/단교후유증 덜기 물밑접촉도 주효 홍순순외무차관과 방금염대만외교차관은 지난 16일 한·대만간 비공식 관계 설정을 위한 협의를 가졌다.양측 차관은 두 차례 협의를 거쳐 조속히 「비공식 관계」를 설정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빠르면 8월말,늦어도 올해 중에는 양측 사이에 민간대표부가 설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차관협의는 대만측의 제의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양측간에 예정됐던 특사급의 일본 오사카회담을 뒤로 미루자면서 방차관이 직접 방한의사를 밝혀 이뤄졌다는 것이다. 협의를 마친뒤 우리측 홍차관은 『비공식 관계 설정에 원칙적 합의를 봤다』며 『한 두차례 회담을 더해야 끝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관계단절로 인한 정치적,심리적 후유증이 있으나 오래 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국호사용,재산문제등 한 두가지 첨예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무리됐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예상보다 양측이 빠른 시일내에 「관계개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양측의 오랜 인연과 빈번한 물밑접촉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8월 24일 한·중 수교과정에 따른 단교조치를 우리측은 발표전날 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대만측은 우리측의 「배신」에 분노,그해 9월 대만을 방문한 김재순전의원등 국회대표단을 홀대함으로써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시했었다.그만큼 국제관행상 양측의 관계복원은 지란한 일로 간주되어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단교이후에도 양측의 무역거래는 꾸준히 느는 추세를 보여왔고,오랫동안 계속됐던 각 분야에서의 돈독한 관계상 협의해야 할 일이 많았다.이를위해 지난해 10월 우리측 김태지대사가 대만을 방문,비공식 관계설정을 위한 비밀접촉을 가진 게 시초.이때 양측은 민간 차원의 임시사무소를 각각 수도에 두고 영사업무를 보는 아주 기본적인 관계만은 유지키로 했다.그뒤 국회 차원에서 여당과 야당의원들이 지난해 말과 올해초 대만행정원등을 잇따라 방문,대만수뇌부측과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힘써왔다. 「외곽대화」만을 나누던 양측이 비공식관계 설정을 위해 본격대화를 시작한 것은 지난 6월중순.대만측의 요청으로 우리측에서는 이현홍본부대사가,대만측에서는 김수기본부대사(전주한대만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석,일본 후쿠오카에서 첫 비밀접촉을 가졌다.당시 대만측은 협의를 비밀로 해줄 것을 우리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 회의에서 대만측은 한·중 수교과정에서 보인 우리측의 태도를 비난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본회의에 들어가자 관계개선에 대한 실무적 접근 자세를 보여 회담전망을 밝게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그때부터 전도가 밝았다는 얘기이다. 사실 과거 양국간 12개의 협정가운데 「국가간 우호협정」을 제외한 11개의 협정은 명칭만 고치면 된다.그러나 아직은 넘어야 할 장애가 많다.화교학교등 재산권 행사,대표부 명칭,국호사용문제등이 그것이다.
  • 이,유엔과 마찰해소위해 특사2명 소말리아 파견

    【나이로비 DPA 로이터 연합】 소말리아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의 임무를 싸고 야기된 유엔과 이탈리아간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 고위 특사 2명이 17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도착,유엔및 미국 관리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특사로 파견된 이탈리아 육군참모차장 마리오 부세미 장군은 이날 소말리아 주재 유엔 특사인 조너선 호우 미예비역장군과 회담을 가졌다.회담 내용은 그러나 즉각 공개되지 않았다. 또 한명의 특사인 이탈리아 외무부 관리 마우리치오 모레노도 유엔평화유지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국무부 관리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 이­유엔갈등…평화군 지휘체계“흔들”/소말리아 과잉군사작전 파문확산

    ◎이 사령관 소환 요구에 “주권침해” 반발/전투력 우선 미 태도에 거부감… 내분 심화 소말리아 파견 이탈리아군 사령관의 소환문제를 놓고 유엔과 이탈리아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는 유엔의 소환주장을 일축하고 이번 주말 특사를 유엔에 파견,외교문제화하려 하고 있으며 유럽공동체 안보회의를 소집해 적절한 대응책을 준비중에 있다. 반면 유엔측과 유엔군을 실질적으로 손아귀에 넣고 있는 미국은 영국 등 우방의 지지를 업고 이탈리아군사령관에 대한 소환을 계속 주장,소말리아 군벌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외교력보다는 전투력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반발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어 이번 갈등이 조기에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23개국,2만여명의 소말리아파견 유엔 평화유지군의 지휘체계가 붕괴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15일 파비오 파브리 국방장관과 챔피 총리까지 나서 지휘통제불가를 이유로 브루노 로이 이탈리아군사령관을 소환하라는 코피 아난 평화유지군 담당 유엔사무차장의 발언에 대해 『이탈리아 파견군에 대한 명령은 본국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라며 불복의사를 밝혔다. 소말리아 주둔 2만여명의 평화유지군(미군4천,이탈리아 2천6백명)을 실제 지휘하고 있는 미국과 이탈리아와의 갈등의 빌미는 지난 12일 유엔군의 모가디슈대공습.민간인만 54명이 숨진 것으로 밝혀진 당시 공습에 대해 이탈리아의 로이 사령관은 『비인도적이었다』는 한마디로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로이장군은 이어 『이런 식이라면 군대를 모가디슈 북쪽으로 이동시키겠다』고 했고 이에 반발한 미국은 코피 아난 유엔사무차장을 통해 로이장군의 소환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와 유엔은 이전에도 소말리아내 군벌에 대한 무장해제문제를 놓고 방법에 이견을 보였으며 이때마다 이탈리아측은 『미국이 유엔을 군사적 충돌로만 몰아가고 있다』며 비난해왔다. 사실 이탈리아가 「인도주의」운운하며 유엔의 슈퍼파워에 도전한 것은 이탈리아를 떼어놓고는 소말리아 역사를 생각할 수 없는 「연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1889년 에티오피아정복을 위해 인도양 이웃 소말리아에 보호령을 처음 구축했으며 1921년까지 소말리아 북부지역을 놓고 영국과 다퉈오다 23년 파시스트정권이 들어서면서 영국보호령 일부까지 흡수했다. 이후 36년엔 아예 식민지화,2차세계대전과 유엔의 신탁통치 기간이 끝난 1960까지 영국·프랑스와 각축을 벌이며 실질적으로 소말리아를 지배해왔던 것. 이번 사령관 소환문제를 놓고 프랑스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도 당시 영토확장과정중 이탈리아에 밀려 소외된 프랑스(소말리아북부 지부티는 프랑스령)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이탈리아가 든 「반기」뒤에는 이같은 이탈리아인의 친소말리아 정서가 개재돼 있으며 이로 인한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놓고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로스 미 중동특사/라빈총리와 회담

    【예루살렘 AFP 연합】 중동을 방문중인 데니스 로스 미중동 특사는 13일 예루살렘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3차 회담을 갖고 난후 중동평화협상 조정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중동평화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아랍과 이스라엘간을 오가며 거중조정에 나서고 있는 로스 특사는 자신의 협상정지작업이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견해 차이를 좁히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중재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 보스니아정부,분국안 수용/내전종식 발판 마련

    ◎대통령,“느슨한 연방 가능” 【사라예보 AFP 연합】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이슬람정부 대통령은 8일 그간 완강히 거부해온 민족별 보스니아 분국안을 사실상 수락했다.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및 크로아티아계는 이미 이 나라를 3개국으로 나누는 이 안을 수용키로 합의한 바 있다.이로써 2차대전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전쟁으로 지난 15개월여간 이어져온 현지 내전을 끝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은 이날 사라예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스니아의 분국이 내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보스니아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이슬람계에 의한 느슨한 형태의 연방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분국안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그는 보스니아가 『분국 아니면 끝없는 내전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면서 『자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보스니아의 이들 3대 민족세력은 지난달 제네바에서 유엔과 유럽공동체(EC)특사들의 중재로 분국안 수용 문제를 협의하려 했으나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슬람계 “쓰디쓴 양보”/3국분할안 수용 배경/내전 15개월동안 “최대의 희생”/세르비아­크로아계 「동맹압박」 보스니아 회교도 대통령의 민족별 분국안 수락의사 표명으로 16개월째에 접어든 보스니아 내전의 종결 전망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이 전쟁종식을 향한 희망찬 방향전환은 최대의 희생자인 회교도주민의 쓰디쓴 양보를 추진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어 약자의 피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의 분국안에 대한 태도변화는 보스니아 회교도주민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이 강요한 것으로 「추악하지만 유일한」 선택이라는 대통령 자신의 용어가 실감있게 들려온다.지난해 4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이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선언에서 발발된 보스니아내전은 1년이 지난 올 4월 희생과 수세 일변도에 몰려있던 회교도주민에 우호적인 전기가 마련됐었다.극히 수동적인 유엔평화유지군 파견과 대유고 경제봉쇄조치 등 미온적대응에 머물렀던 국제사회의 개입이 미국 클린턴대통령의 강경선회 방침과 함께 적극화할 기운을 띤 것이다. 그러나 회교도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하고 세르비아 포진지에 대한 공습을 실행하고자 했던 클린턴대통령의 방안은 무력충돌의 악화와 자국 유엔군의 위험을 이유로 한 유럽 여러 나라의 반대로 무산됐다.미국의 강경 분위기에 눌려 10개단위 영토분할의 종전안에 1차서명까지 했던 세르비아계는 국민투표반대를 명분으로 철회,회교도 거주지 강점을 재개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3주전,서로 적대시하던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갑자기 동맹적 관계를 맺더니 「민족별 분국안」을 회교도에 들이댄 것이다. 느슨한 국가연합 방식인 3개민족 분국안은 중앙정부는 명목에 그치고 각 지역이 실제 자치권을 소유하고 있어 회교도 세력의 강한 중앙정부하 연방안과는 큰 차이가 난다. 게다가 각 민족별 분국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70%와 20%를 차지한 현황을 근본으로 하면서 아드리아해로의 접근이 차단된 내륙지역에 회교도 분국을 밀어넣고 있다.분국안대로 실현될 경우 회교도들은 대세르비아와 대크로아티아에 꼼짝없이 갇혀있게 돼 얼마 동안이나 영토를 보전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철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5적 처단 실패후 대종교 창시/32세때 관직 버리고 유신회 조직… 항일/합방후 “민족정기수호” 단군신앙 포교/“암흑시대 겨레의 횃불”… 독립운동 정신적 지주로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 선생은 1863년 12월 2일 전남 낙안현 남상면 금곡리(현 보성군 벌교읍 금곡리)에서 부친 나용집씨와 모친 송씨 사이에서 3형제중 둘째아들로 출생했다.족보명은 두영이었으나 인영으로 개명한뒤 대종교 창교후 철로 바꿨다. ○전남 보성서 출생 1902년 29세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선생은 32세때 징세서장으로 있다가 일제의 침략야욕이 내정간섭으로 나타나자 1905년 5월 일제부패관리의 실상을 좌시할 수 없다며 관직을 사임했다.그뒤 강진출신 오기호지사등을 중심으로 비밀결사인 유신회를 조직,구국운동에 앞장선다.그해 미국 포츠마츠에서 노일전쟁의 종전을 위한 강화회담이 열리게 되자 우리의 입장을 미국조야에 호소하기 위해 도미할 것을 결심,미국행을 시도했으나 일본측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6월 유람을 빙자,일본 도쿄에 가게 된다.거기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조선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특별전권대사로 조선에 파견된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진정한 평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하자 일왕궁성 앞에서 3일동안 단식하며 항쟁하기도 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을사5조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기호와 함께 『매국노를 모두 죽이면 국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며 칼 2자루를 행낭에 감추어 11월30일 귀국한다.이듬해 1월 선생과 오기호는 학부대신리완용 외부대신박재순 군부대신리근택 내부대신리지용 농상공부대신권중현등 세칭 「5적대신」을 일시에 처단할 것을 계획했다.동지들을 규합,자금도 모으고 권총 8정도 구입했다.각국에 보내는 공문과 내외국민들에게 보내는 포고문도 작성했다.첫번째 거사일을 음력 정월 초하루(2월13일)로 정하고 5적이 신년하례를 드리기 위해 입궐하는 기회를 이용,처단하려 했으나 결사대들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 실패했다.이후 4차례에 걸친 처단시도는 이런저런이유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체포된 동지 한명이 고문에 못이겨 거사전말을 실토하면서 동지들이 차례로 붙잡혀가자 선생은 제발로 일제 수사기관에 출두,1907년 7월3일 유배 10년형을 받는다.그는 지도로 유배지가 결정돼 헌병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29일 인천을 출발했다.그러나 운이 좋았던지 유배 4개월여만에 오기호등과 함께 특사로 풀려난다. 1910년 8월 경술7조약 체결로 일제는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았다.너무도 치욕적인 조약이어서 선생은 새로운 구국운동과 민족중흥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교육의 잘못에 있음을 깨닫게 됐다.선생은 흔들리는 민족전통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단군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작업에 착수했다.단군의 정신으로 민족고유의 종교역사를 완성하고 민족정기를 새롭게 하여 보국안민과 제인구세를 기해 보자는 의도였다. 선생은 1909년 정월 15일 평소 뜻을 같이 하던 오기호등 수십명과 함께 서울 제동 취운정에서 제천의식을 갖추고 단군교를공식 종교로 공표하고 통상의 건국기원에 1백24년이 앞선 4366년을 개천의 기념으로 삼았다. ○초대교주로 추대 모든 교인들로부터 교주인 도사교로 추대된 선생은 1910년 7월30일 칙령을 발표,그때까지 한얼교 또는 천신교로 불리던 단군교를 대종교로 개명하고 대종교의 창시자가 된다.대종교는 이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구심점이 돼 급속도로 발전한다.선생은 대종교의 도사교가 되면서 이름을 인영에서 철로 바꾼다. 선생은 경술7조약이후 일제침략세력을 몰아내는 일이 어렵게 되자 성지순례의 길을 나서게 된다.그 옛날 단군이 남긴 손길과 발자취를 몸소 알고 역사와 교훈을 깨달아 겨레의 나아갈 길을 믿아보려고 한 것이다.두만강을 건너 백두산 아래의 중국 동삼성에 이르러서는 대종교의 확대포교를 구상하게 된다.이 곳이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이 살던 곳이었고 수많은 애국독립지사가 정착하고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선생의 노력으로 대종교는 이 곳에서 크게 번창했다.선생은 한편으로 교인과 교포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교육시설도마련,민족교육을 실시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시켜 나갔다. 선생의 이같은 행동은 일제의 대종교에 대한 탄압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국내에서는 탄압이 더욱 심해져 마침내 선생은 총본사가 있던 화룡면 청파호에서 귀국을 서두르게 된다.당시 일제는 신포교규칙에 의한 종교등록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대종교에서는 완벽한 서류를 냈으나 군소종교단체는 모두 등록을 받아주면서도 대종교의 등록서류는 신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송했다.가증스런 종교탄압이었다.선생의 신변도 위협해왔다.창교이래의 최대의 시련이었다. ○구월산에서 순교 선생은 순교와 수도의 길중 택일을 위해 매일을 기원했다.이윽고 구월산 삼성사 참배계획을 공지하는데 이는 단군 성적지를 믿아 순교하려는 결단이었다.1916년 음력 8월4일 참배길을 떠나 이틀뒤 삼성사에 도착한다.8월 한가위 동네 교인들과 제례를 올린 선생은 『오늘부터 3일간 절식수도에 들어갈 것이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방문을 봉하게 하고는 순교의 길을 택한다.다음날 제자들이 선생을 믿았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여러 유서들이 나왔으나 모두 죽음으로써 침략자들에게 항쟁한다는 뜻이었다.선생의 나이 54세. 정부는 이같은 선생의 항일공훈을 추앙하여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미,베트남차관제공 승인/실종 미군문제 협조 인정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베트남전의 실종미군문제에 관한 베트남측의 협조노력을 인정,국제금융기관의 베트남에 대한 차관제공을 승인키로 결정했다고 행정부 관리들이 지난 30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들은 클린턴대통령이 또한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특사를 하노이에 보내기로 결정할지도 모른다고 전하고 이에 대한 공식발표가 2일중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관들의 대베트남 차관공여를 승인키로 결정했다는 관리들의 이같은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베트남전 미군포로(POW)나 실종미군(MIA)의 실태규명과 관련,베트남측이 보여준 협조의 대가로 주어지는 최초의 보상인 셈이다.
  • 돌아온 최형우의원…거취에 촉각/「13일간 방중」마치고 조용한 귀국

    ◎“개인자격” 불구 「실력자」 예우/의회차원 한·중협력방안 모색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형우 민자당전사무총장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최전총장의 방중은 57일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재개한 첫 외부활동으로 앞으로의 거취와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개혁의 일선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성급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그의 방중 일정에 대해 일단 주목하고 있다.중국에서 보여준 활동상이 곧바로 현재의 위상으로 직결됨은 물론 앞으로의 역할을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최전총장 본인은 이번 방중에 대해 애써 단순한 개인차원의 외유로 치부하고 있다.그는 국회의원의 입장내지는 개인차원에서 안중근의사가 처형 당한 여순감옥소,상해임시정부 청사,북경대학 등을 다녀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밖의 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외유에는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려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그는 중국에 13일동안 머물면서 중국정부로부터 「상당한」 예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의 일개 국회의원으로서는 다소 과분할 정도로 「귀한 손님」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상해·청도·대연·북경 등 4개 도시를 순방하는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한인교포와 중국인 통역관 2명을 줄곧 수행토록 해 「편안한 여행」을 배려했다.주용기부총리를 비롯,전기운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상임부위원장,등소평의 사위인 장굉중국과학기술총공사 부총재 등 실력자와도 만났다. 중국측은 앞으로 구성될 한중의원친선협의회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그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세심함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일의원친선협의회 부회장의 경우 외무·국방위의 부위원장인데 비해 우리측과의 협의회는 주양외무·국방위 위원장이 회장직을 맡아 격이 한층 높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중국정부가 자국민은 물론 웬만한 국가원수급에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 명소에도 초청받았다는 후문이다.한국의 「특사」내지는 「실력자」에 걸맞는 예우를 했다는 반증이다. 그는 귀국하기에 앞서 중국측에서 보여준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그곳의 거물급 실력자에게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전총장은 귀국후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은 자숙하며 의회차원의 한중협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장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지않겠느냐는 기대의 표시라는 분석도 가능하다.따라서 그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 PKO주둔지 3종경계망 구축/선발대 소말리아발진… 임무와 안전대책

    ◎무장군벌 힘 못미치는 “안전지대”/4백50㎞ 파손 도로보수 주임무/기습적 도발대비 소총 등 개인화기 무장 소말리아 평화유지군(PKO)상록수부대 선발대원 60명이 29일 현지로 「발진」함으로써 PKO장병들의 안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발렌트웬에 이르는 4백50㎞의 도로 보수공사에 투입될 상록수부대의 안전을 위협하는 최대요인은 소말리아 파벌간의 암투및 분쟁에서 비롯된 무정부상태의 지속과 무장군벌의 출현,그리고 호전적인 현지주민들의 성향등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주둔지 환경등을 고려해 볼때 그렇게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우리 장병들이 주둔할 발라드는 모가디슈에서 북방으로 30㎞떨어진 곳으로 그런대로 안전한 곳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한동안 소말리아 사태가 혼미하는 바람에 국방부등 관계당국에서는 대책마련을 하느라 비상이 걸리기도 했었다. 소말리아 사태는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동안 계속된 미국 주도의 「희망작전」이 성공리에 끝나 다소 안정을 찾았으나 유엔이 소말리아사태 해결의 2단계인 「평화유지활동」에 돌입한 이후 지난달 초 소말리아 최대 군벌세력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파가 파키스탄 PKO군을 공격, 23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유엔군이 아이디드 거점에 대한 보복으로 지상작전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한때 악화됐었다.이후 관계당국은 다각적인 정보채널을 총동원,사태를 분석한 결과 우리 장병이 배치될 발라드 지역은 아이디드파등 군벌세력의 힘이 못미치는 곳인 것으로 평가,「발진 이상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방부는 일단 한국군의 PKO활동에는 이렇다할 위험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 병력이 현지에 도착하는대로 체빅 비어 현지유엔군사령관(터키군 중장)과 하우 모가디슈 유엔특사등 PKO관계자들과 한국군 경계지원등 신변안전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우리 PKO부대는 주민들과의 유대강화에 우선 역점을 두기로 하고 숙영지 앞에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를 도우러 왔다」는 대형 입간판을 세워 파병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주민유대강화를 위한각종 사업을 펼 방침이다.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군부파벌의 도발에 대비,부대 주변에 철조망·방벽·마대등으로 3중 경계망을 설치해 부대원들의 안전을 도모키로 했다.장병들에게는 이미 사격·특공훈련등 전투화 교육을 실시했으며 K2소총·권총등 개인화기를 지급했다. 또한 주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우발적인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현지 습관에 대해서도 특별교육을 시켰다.소말리아인과 악수를 할때는 왼손을 사용하지 말라,소말리아 여자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든 포옹 또는 볼 키스를 하지 말라,약속시간이 늦더라도 이를 지나치게 탓하지 말라는 등의 금기사항도 가르쳤다
  • 북의 「특사제의」 철회 배경과 우리대응

    ◎「한·미 핵공조」 깨기 “의도적 긴장조성”/대미협상 테이블서 실리극대화 속셈/정상회담 제의,「핵개발 시간벌기」 입증/우리측 “핵양보 불가” 방침과 맞물려 대화 힘들듯 북한이 26일 일방적으로 특사교환접촉이 무산됐다고 선언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또다시 긴장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측은 지난 24일접촉제의에대한 우리측동의를 아무의사표시없이 묵살한채 25일밤 당외곽조직인 조평통 명의로 격렬한 대남 비방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이날 정무원 강성산총리 담화를 통해 대화무산을 발표하면서 그 책임을 우리측에 일방적으로 전가했다.강총리가 『남측의 부당한 태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특사교환이 실현될 수 없게 됐다』고 강변한 것은 당분간 남북간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갖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라는게 정부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과 관련,북·미 협상을 통해서 북한의 NPT복귀와 IAEA의 특별사찰을 수용케 하고 남북대화를 통해 상호사찰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한미양국의 전략이었다.그러나 이번 북측의 반응은 한미양국의 그러한 2트랙 방식의 협상전략에 대한 명백한 거부의사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같은 북측의 태도는 핵문제와 관련해 우리측에 발목을 잡히지 않으면서 6월말이나 7월초로 예정된 미국과의 협상에서 실리를 극대화하겠다는 속셈을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이라는 북측의 제의자체가 핵문제와 관련한 시간벌기전략이었다는 심증을 더욱 굳혀주는 것이기도 하다.즉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회담이 성사됐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북측이 10대강령과 주한미군철수등 이른바 4개항의 대남 요구조건을 들고 나와 핵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시간만 끌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 동안 통일원·외무부·안기부 등 우리측 관계당국은 한결같이 이같은 가능성을 우려했으나 부처간에 강온의 인식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최근 북한을 둘러싼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북측의 시간끌기에 더 이상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이 그동안미국과의 1단계 협상에서 영변의 2개 미신고시설에 대한 IAEA의 특별사찰을 주한미군기지사찰등과 연계시키면서도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남북간 핵논의,즉 상호사찰 규정마련에 그토록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 이같은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되고 있다.이스라엘이 중동국가로의 수출을 저지키위해 협상을 제의할 정도로 문제시되고 있는 북한의 신형미사일 대량 제조능력도 무시할 수없는 요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측으로선 핵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긴 하나 아직은 북한측에 퇴로를 열어주면서 실마리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인 듯하다.북한측의 대화단절 선언에 대해 오인환 정부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겠다』고 밝힌데서도 이같은 기류를 엿볼 수 있다.정부는 미·북간 제네바에서의 2단계 접촉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당분간 한미간 공조를 긴밀히 해 북한측이 요구하고 있는 핵문제해결의 선결조건인 주한미군기지사찰등도 남북대화가 전제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측에주지시킨다는 방침이다.
  • “핵대화 회피로 초래된 결과/북한은 응분의 책임져야”

    ◎오 정부대변인,대북 유감·경고 성명/북,「특사교환」 일방 폐기/강성산총리/남북관계 당분간 경색 예상 정부는 26일 우리측의 남북실무대표접촉제의를 북한측이 거부한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고 남북대화에 북한측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거듭 촉구했다. 정부는 이날 오린환공보처장관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북한의 실무대표접촉거부는 남북한 신뢰회복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고대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저버리는 것으로 내외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없이는 남북한 화해나 평화·통일 어느 것도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 핵문제는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히고 『북한측이 핵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에만 관심을 쏟으며 우리측의 핵문제해결노력에 호응하지 않는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어 『우리측은 지난 5월20일 국무총리의 대북서한을 통해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제의한 이래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대승적 입장에서 회담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북측의 주장을 수용해 왔다』고 전제하고 『북한이 계속 핵문제해결을 회피하려 한다면 이로인해 초래될 결과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것』이라고 경고했다. ◎“핵논의 고집” 주장 북한은 26일 강성산정무원총리 담화를 통해 특사교환제의가 사실상 무산됐다면서 더이상 남북한 접촉을 제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총리는 이날 상오 7시10분 중앙방송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한달동안에 걸친 인내성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측의 부당한 태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특사교환제의가 실현될 수 없게 된데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강총리의 이같은 담화는 특사교환제의가 무산됐음을 선언하고 더이상 남북접촉을 제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강총리는 이어 『앞으로 조선반도에서 우리민족의 이익에 배치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이 지게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총리는 또 『남측은 지난 22일 전화통지문에서 실무급이 마주앉아 핵문제에 관한 기초적 협의를 할 것을 고집함으로써 시실상 우리의 특사교환제의를 전면거부하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며 우리측을 비난했다. 강총리는 『남조선집권자가 취임 1백일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없다」고 한 말도 특사교환제의를 거부하는 행동이었다』며 김영삼대통령의 발언을 비방했다. 강총리는 을지훈련에 대해서도 『손을 잡으려는 동족에게 칼을 내미는 행동이며 대화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측의 이같은 담화발표로 남북한 접촉은 당분간 어렵게 됐으며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간 긴장이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 “프놈펜 곧 귀환”/키우삼판

    【프놈펜 AFP 연합】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은 24일 앞으로 두달 후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프놈펜으로 귀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삼판은 캄보디아 최고민족회의(SNC) 노로돔 시아누크 의장에게 보낸 이날자 서한에서 이같이 전하고 그의 귀환문제를 프놈펜측과 협의하기 위해 특사를 먼저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 24일접촉 우리 제의/북,“후에답신” 통보

    북한은 24일 상오 10시 판문점 실무접촉을 통해 핵문제에 관한 기초적 협의와 특사교환을 위한 절차문제 논의를 병행하자는 우리측 전화통지문에 대해 『답신을 후에 보내겠다』고 23일 통보해 왔다. 이에 따라 24일의 남북실무접촉은 성사되기 어렵게 됐다.
  • 24일접촉 제의 수용/황 총리,북에 전통문

    정부는 22일 하오 황인성총리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북한정무원 강성산총리 앞으로 보내 『오는 24일 판문점 실무대표접촉에서 핵문제에 관한 기초적 협의와 함께 특사교환을 위한 절차문제 협의를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 「핵·특사」 동시논의 고수/정부 고위전략회의

    ◎오늘 북에 기존입장 통보 정부는 특사교환만을 논의키 위한 북한의 제의를 그대로 받이들이기 어렵다고 보고 22일 대북 전화통지문을 통해 특사교환문제와 핵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북한측에 통보키로 했다. 정부는 21일 총리공관에서 황인성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고위전략회의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22일 한완상통일원장관겸 부총리 주재로 다시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우리측 입장을 최종 정리키로했다. 정부는 이번 대북통지문에 핵문제를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되 접촉일자는 북측이 제의한 24일 대신 북·미 2단계 고위급회담이 끝나는 오는 7월초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2일 통일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북측 제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최종정리,발표할 방침』이라면서 『우리측 입장은 그러나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의제를 명시하지 않은 채 일단 만나자는 우리측 제의에 대해 지난 15일 전화통지문을 보내 특사교환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24일 갖자고 제의했었다.
  • 경제회복·유럽통합 중점토의/EC12국 정상회담 개막/외무 장관들

    ◎보스니아 3국 분할안 추진 【코펜하겐 AFP AP 연합】 유럽공동체(EC) 12개국은 21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경제회복및 실업퇴치 ▲구유고사태등을 토의하기위한 이틀간의 정상회담에 들어갔다. 에곤 클렙시 유럽의회 의장은 정상회담 개막 연설을 통해 EC역내의 경제가 침체돼 있을뿐 아니라 내년 실업률이 1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치인들과 EC산하 기구들의 신뢰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실업문제를 해소할 진정한 대책을 찾아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도 경제회복을 위한 8개항의 계획을 제시하고 현 경제위기의 해결책으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밝히면서 아울러 다국간 상호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환경문제와 사회문제를 함께 고려할수 있는 세계 무역기구의 설립을 촉구했다. 지난 5월 덴마크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EC정상들은 최대의 현안인 경기침체로부터의 탈출 방안및 실업감축을 위한 중·단기 대책을 중점 논의한다. EC 정상들은 또보스니아내전문제에 관한 입장을 정리할 예정인데 각국 외무장관들은 20일밤 오웬 EC 특사와 회담을 마친뒤 보스니아의 영토적 통합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C 소식통들은 이와 관련,회원국들이 보스니아를 3개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세력의 제안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제안내용을 수정,영토분할이 보스니아 회교세력에게도 공평한 것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부양·실업대책·UR타결 주의제/대중·동구국 시장확대개방안도 마련(해설) 유럽공동체(EC)의 실질경제성장률이 지난 75년이래 18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내년도 실업률이 12%에 달해 실업자가 2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전 유럽이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가운데 EC정상회담이 21일 개막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유럽통합과 EC의 회원국 확대,우루과이라운드(UR)의 조기타결,중·동구국가들및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보스니아내전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유럽의장래에 대한 불안이 점증,유럽통합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게 분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재의 불황으로부터의 탈출이다.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도 경기회복과 실업대처문제가 가장 비중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는 비단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어서 이번 회의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수립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지난해 에딘버러정상회담에서 합의된 EC의 경기부양책을 강화하는 한편 단일시장으로서의 EC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거시경제적 정책수립 등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EC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직업교육및 훈련제도의 개혁,노동시장의 신축성 제고방안 등도 모색될게 틀림없다.이와함께 유럽통화통합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각국의 재정적자 팽창(지난 16일 발표된 EC집행위의 경기전망에 따르면 93년도 EC각국의 재정적자는 평균 GDP의 6·25%에 달해 목표인 3%를 두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과 관련,사회복지비의 지출감소방안등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또 UR협상의 조기타결을 위한 유럽측의 공동입장 정리도 이번 회담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과거의 사회주의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제도의 정착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동구및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과 정치관계 강화는 지난해 에딘버러 정상회담이후 계속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폴란드와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불가리아 등 6개국은 언젠가 EC에 가입하게 될 것이지만 EC는 그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되고 이들 나라들의 경제가 안정수준까지 도달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그 시기는 못박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동구국가들은 서구로의 수출증대를 위해 시장개방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몇몇 나라들이 자국의 산업이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시장개방을 꺼리고 있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이들 국가에 대한 EC시장개방확대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오스트리아와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의 4개국은 95년 EC가입을 목표로 올초부터 회담을 갖고 있다. 보스니아내전을 종식시킬 방안마련은 유럽의 최고 관심사로 이번 회담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게 틀림없으나 획기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제까지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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