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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정상회담합의 성사 뒷 이야기

    북한은 정상회담개최 협상과정에서 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들고 나왔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고 고위당국자가 10일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측이 지난달 17일 상하이(上海)접촉에서 정상회담의 성사조건으로 무상지원 등 대북 경제원조를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이에대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있어서 조건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북협상과정에서 북측에게 대북 경제협력 문제등 대규모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자고 고수하여 이를 관철시켰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고위 외교당국자는 “최근 미국 의회관계자와 행정부의 일각에서정부에 남북당국자 회담 추진 과정에 대해 깊은 관심과 함께 의구심도 전달해 온 적이 있으나 외교적 통로를 통해 이해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분위기 조성에 큰 도움을주어 왔다면서 한반도 냉전해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상당한 결실을 거둔결과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상회담의 추진은 지난 3월 11일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북한이 베를린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급진전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특사인 박지원(朴智元)장관과 송호경(宋浩景)아·태평화위 부원장이 상하이에서 첫 접촉을 가진 것은 지난 3월17일.보도진 등 한국인들이 많은 베이징을 피해 이 지역을 택했다. 이후 주중대사관 관계자와 베이징에 파견된 정부 실무관계자들은 북측과 꾸준한 접촉을 벌이며 이견을 조정했고 마침내 4월8일 베이징 차이나월드호텔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사이 북한은 각종 통로를 통해 우리측에 비료와 유류 지원 등을 요구했고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이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며 문서로 된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이석우 오일만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민간차원 지원설 안팎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 성사 뒤에 현대가 있나?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민간대표격인 송호경 아·태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임명한 특사였을 뿐 우리 민간기업 차원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현대측도 “협조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송호경 부위원장은 현대의 대북경협 북한측 창구이며,지난해 12월에는 현대가 주관한 통일농구경기대회의 북한 방문단을 이끌고 서울을 다녀가기도 했다.따라서 현대가 어떤 식으로든 정부 당국자와 송호경 부위원장간만남을 위해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현대측에서 대북 접촉을 주로 맡아온 정몽헌(鄭夢憲) 회장과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의 3월 이후 행적으로 미뤄 북경에서 송호경 부위원장을 2∼3차례 만난 것으로 추정돼 현대의 조력(助力)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익치 회장은 현대 인사파문 와중인 지난달 17일 중국 상해를 방문했다.현대증권의 상해지점설치 문제 및 현지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북경협 문제도 포함됐던 것으로 밝혀져 이 회장도 이번회담 성사에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몽헌 회장도 지난달 24일 일본에서 귀국하기 전인 22일 북경에 들러 이익치 회장과 K반점 커피숍에서 만난 뒤 함께 송호경 부위원장을 접촉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에도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경단연(經團連) 관계자 등을 만나 경인운하사업 등 현대의 사회간접자본(SOC)사업 투자유치 활동을 벌였다.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 및 현대아산 사장은 지난 7일 귀국하면서 “대북경협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북한 SOC 투자유치를 위한 활동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박지원 장관이 북경에서 송호경 부위원장과 만나기 하루전인 지난 7일 일본에 있던 정몽헌 회장과 일본에서 귀국했던 이익치 회장이 당일로 급히 북경을 방문한 점도 이번 회담과의 관련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육철수기자
  • YS시절 남북 회담추진 과정

    김영삼(金泳三) 정권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이는 최초 문민정부였다는 강점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전대통령은 93년2월 대통령취임 이후 줄곧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보였다. 김영삼 정부의 이런 노력은 94년에야 나타났다.당시 남북은 그해 7월25∼27일까지 사흘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전격적으로 합의했다.그러나정상회담을 보름여 남겨두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사실 당시까지 남북긴장이 지속되고 있었다.93년에 이어 94년 3월까지 계속된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이 북측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무산된 상태였다.또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탈퇴 등으로 회담분위기가조성되지 않았다. 이런 긴장 분위기를 정상회담 분위기로 바꾼 것은 카터 전미국대통령이었다.그는 94년 6월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김일성주석이 정상회담에 동의했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후 정상회담은 급류를 타게 됐다.남북 양측은 그해 6월28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정상회담 일정에 전격 합의했다.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실무자 접촉을 갖고 순조롭게 세부일정을 합의했다.사상 최초로 남북정상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었다. 그러나 7월8일 김주석의 사망으로 상황은 돌변했다.북측은 며칠 뒤 정상회담 연기의사를 전해왔다. 김영삼정권 이전에도 막후에서 정상회담 노력이 있었다.박정희(朴正熙) 정권때부터 비공식적인 접촉이 추진돼 5공때는 장세동(張世東) 안기부장이,6공때는 박철언(朴哲彦) 청와대특보가 ‘메신저’역할을 했다.그러나 이승만(李承晩) 정권때는 ‘북진통일’이 국시였던 만큼 정상회담은 상상할 수 없었다. 박준석기자 pjs@
  • 南北 화해시대 열렸다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사상 처음으로 오는 6월 평양에서 열린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과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은 10일 오전정부 중앙청사 통일부 회의실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6월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도 우리 정부와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공식 발표했다. 박 통일장관은 “6월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 협력 및 민족의장래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결의 냉전질서를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 역사를 열어나가는,분단사에 획을 긋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통일장관은 “지난 3월17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남북 당국간 첫 접촉을 가진 이래 베이징(北京)에서 수 차례 비공개 협의를 가진 결과,4월8일 우리측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 사이에 최종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히고 “쌍방은 가까운 4월 중에 절차문제 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남북이 동시에 공개한 합의서는 “남과 북은 7·4 남북 공동성명에서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교류와 협력,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합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사 역할을 한 박지원 문화관광 장관은 “정상회담 의제는 비밀접촉에서논의가 됐지만 합의되지 않아 준비접촉에서 절차와 의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주의적 사안과 경제협력,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협력할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폭넓게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원 장관은 “실무접촉은 남북간에 구성할 직통전화로 공개적으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고,박재규 장관은 “준비접촉은 남북 양측에서 3∼4명의실무 대표를 선정,정상회담 일정을 비롯한 준비과정 전반을 논의해 확정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박지원 장관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과 관련,“다음 정상회담 (개최) 문제는 두 정상이 만나서 논의할 것”이라며 “7·4 공동성명에서도 이미 합의한 정신을 지킬 것”이라고 밝혀 가능성을 배제하지않았다. 박지원장관은 “북한은 이번 합의에 사전 요구조건을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후 박 통일장관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이번주중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접촉 일시와 장소,대표단의 규모및 대표의 급,협의방식 등에 관한 북한측의 의사를 타진하기로했다. 이 자리에서 박 통일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게 된 것은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힘을 모아준 덕분”이라며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은 지난 94년 7월25일부터 27일까지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합의했으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담이 무산됐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청와대·정부 움직임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는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따른 준비작업에착수했다.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NSC)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조만간 열릴 실무 준비접촉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했다. 통일부와 경제부처 등 관련 부처들도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와 관련자료수집에 들어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대북포용정책의 개가로 평가했다.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30여년 동안대북정책을 준비해왔고, 그 내용이 대북포용정책으로 집약된 것”이라며 “북한은 처음에는 이 정책을 자신들의 체제를 흔들기 위한 것으로 의심했지만,일관되게 추진하자 진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베를린선언이 인식변화를 가져온 주요 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이 선언이후 포용정책의 참뜻이 화해와 협력의 정신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회담을 갖자고 나온 것”이라고강조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연말쯤 이뤄질 것으로 본 탓인지놀라움을감추지 못한 분위기다. 박 대변인은 “이렇게 빨리 성사될 줄은 몰랐다. 김대통령도 놀라워 한다”고 전하고 “내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대통령의 구상과 정부부처의 준비사항 등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외교안보부처] 긴장감을 보이며 본격적인 회담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통일부는 “교착상태의 남북관계가 도약의 기회를 맞게됐다”며 환영하면서 “회담준비 주무부처로서 냉전구조 해체와 남북 평화공존 계기를 만들 수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또 “비공개 접촉의 보안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장·차관 등 몇몇을 제외하곤 진행사항을 몰랐다”고놀라와 하면서도 “94년 정상회담을 준비한 경험이 있어 준비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사전통보하는등 후속 조치에 분주했다. 9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국 등에게 회담개최 합의 사실을 알렸다. 이와함께 북한에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러시아와도 한반도평화와 화해를 위한 협력관계를 강화,남북관계 진전에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국방부는 공식논평을 내지는 않았으나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고 환영하는 분위기다.특히 6·25전쟁 50주년에 역사적인 회담이 열리게 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경제 및 문화 부처] 본격적인 대북경협에 대비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특히그동안 민간차원의 단편적 교류가 정부간 협력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으로 종합적인 교류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재경부는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 방지협정,결제제도 등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남북경협이 시작된지 10년이 됐으나 민간차원의 경협은 적지않은 한계를 지니고 이어 남북 정부간 대화가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비료지원 등 남북협력 방안을 준비해온 농림부도 고무된 분위기다.남북한의농업기술을 상호보완하고 구제역 방역과 산불방지,솔잎혹파리 방제 등 공통현안에 대한 공동연구와 작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보통신부는 남북이산가족 문제등의 진전과 함께 남북간 통신문제 해소가최우선시될 것으로 내다봤다.한 관계자는 “남북교류가 본격화될 경우 남북통신문제가 유선전화는 물론 이동전화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본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는 정부예산에서 지원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중이다.또 내년 예산편성때 남북협력기금을 대폭확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해양수산부는 남북한간 컨테이너 직항로 및 백두산 항로 개설과 남북 민간단체간 합의한 동해 남북공동어로 조업을 당국의 지원아래 성사시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박지원(朴智元)장관이 측근들도 모르게 베이징을 오가며 대북특사 역할을 했다는데 놀라워했다.기자회견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박장관은 “문화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실·국장들로 팀을 구성하여 앞으로의 남북 문화교류에 대비할 생각”이라고 한걸음 나아간 계획을 밝혔다. 박장관은 “북한쪽과 접촉해보니 언어부터가 서로 달라져 애로가 많아 언어와 문화재 분야는 당장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체육분야도 북한은 고지대의 마라톤연습장 등을 제공하고,우리도 겨울철에 북한선수들이기후가 따뜻한 지역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협력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피력했다. 양승현 노주석 서동철 김환용기자 yangbak@
  • 남북 정상회담/ 박재규·박지원 장관 문답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은 오는 6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10일 오전 통일부 회의실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갖고 “4월 중 남북한이 각각 3∼4명으로 대표단을 구성,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준비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박 통일부장관은 “실무회담에서는 정상회담과 관련한 전반적인 스케줄을조정해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박 문화부장관은 “양측이 적극 협력하기로 한 만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인 문제,경제 협력문제 등을 실무접촉에서 논의한 뒤 정상회담에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은 언제,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열리나. (박 통일)이달 중으로 남북한이 각기 3∼4명의 대표를 구성할 것이며 여기서 구체적인 날짜 등을 협의할 것이다. (박 문화)준비 및 실무 접촉은 통일부가 주관해 남북간 직통전화로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평양 방문시 의제는 무엇인가. (박 문화)비밀 접촉에서도 의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실무접촉에서 (계속) 협의키로 했다.남북 이산가족 등 인도주의 문제,경제협력,세계평화를 위해 협력할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다. ■송호경 아ㆍ태부위원장과는 몇차례나 만났나.합의 과정은. (박 문화)지난달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만난 이후 베이징에서 비공개로 여러 차례 만났다.지난 7일 북측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8일 베이징에서 오후 4시부터 회담을 했다.이 자리에서 송호경 부위원장과 최종 합의문을 만들고 7시25분 서명했다. ■4월7일 북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나. (박 문화)비밀 접촉 과정에서의 논의 내용을 밝히는 것은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정상회담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가나. (박 문화)구체적인 합의는 4월에 열리는 양측 실무자회담에서 결정될 것이다.의제,절차 등의 구체적인 문제도 여기서 논의한다.비밀 접촉에서는 이런문제들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문제도 논의됐나. (박 통일)다음 정상회담은 양측 정상들이 만나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 ■비료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박 통일)비료와 식량 지원은 전년도에도 했다.앞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대규모 남북 경제협력 등 사전 조건은 있나. (박 문화)없다.북측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접촉하면서 느낀 바로는북측의 태도가 적극적이고 건설적이었다는 것이다.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북의 태도가 확실히 변했다.회담 과정에서 체제 선전 등은 전혀 없었다.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베를린선언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경제협력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남북간,국제기구,외국자본이협력할 것이다. 몇가지 느낀 점은 북측이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없이는 국제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세계 여론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까지 중국과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나. (박 통일)중국과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포용정책에 대해 북한에 지속적으로설명해왔다. 그리고 남북한이 여러 분야에서 협조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필요하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94년에 합의된 바 있다.이번 합의도 그 연장선상인가,당시 합의된 사항들은 유효한가. (박 통일)이번 합의사항은 김영삼 정부때의 것과 다르다.당시와는 의제도다르다. ■남북한 접촉시 남한의 총선 일정이 감안됐나. (박 문화)그렇지 않다.북측은 ‘남측이 총선을 앞두고 회담 성사를 서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그러나 남북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을 강조했다.3월22일 베이징 접촉에서 우리측생각을 최종 통보했고 그 이상의 접촉은 않겠으니 최종 입장을 기다리겠다고말했다.민족의 대(大) 경사를 그런 식(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대북 특사로 결정됐나. (박 문화)지난달 15일 대통령께서 관저에서 만나자고 해 갔더니 말씀을 하셨다.문화관광부장관은 적임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통일부 장·차관이나 실무자가 가면 비밀이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가라고 하셨다.그래서 박재규 장관으로부터 지침과 요령 등을 들으며 긴밀히 협의해 진행했고,좋은 결과가 나왔다. ■송호경이 부위원장으로 있는 아·태평화위는 민간기구다.이번 당국간 합의서에 송호경이 민간기구의 대표로서 서명했는데 합의서는 유효한가. (박 문화)송호경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북한측의 공식 특사로서 임명받은 것이다.합의서에도 ‘상부의 뜻’임을 표시하고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의하여’라는 점을 명기했다.김 위원장은 특사로서 충분한 자격과 권한을 가졌다. ■급작스럽게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박 문화)대통령은 취임사부터 정상회담을 제의했고 베를린선언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3월17일부터 수차례 비공개 접촉을 가졌고 의견 조정의 시간을보냈다.4월7일 수용하겠으니 8일 만나자고 해서 합의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사건이라는 점에서나 보안문제상 정상회담 내용을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북한도 이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북한이 강조한 점은 세계가 주시하는 만큼 외신에도 충분히 알려야 하고 전 주민이 알수 있도록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단 55년 만의 민족 대경사가 이루어졌고 세계의 축복을 받을 일인 만큼 남북한이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지운기자 jj@
  • 남북 정상회담/ 회담준비 어떻게

    남북 양측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우선 실무진간의 전화 접촉을 4월 중 갖는다. 남북은 이 접촉에서 실무진의 범위와 회동 일정 등을 마련하게 된다.실무진의 회동은 판문점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10일 “남북에서 각각 3∼4명으로 이뤄진 실무진이 정상회담 준비를 담당하며 세부 일정을 조정·확정해 나갈 것”이라고말했다. 실무진의 접촉·회동에선 정상회담의 의제 등을 확정하고 회담 대표단의 규모와 구성,회담진행의 형식,선발대 파견 일정과 내용,왕래 절차 및 교통수단,신변안전 보장,각종 편의 보장 등을 논의한 뒤 문서로 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합의문’을 확정해야 한다. 장관급이 특사로 나서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낸 만큼 실무진은 통일부 차관을 대표로 청와대 비서관,보좌관급 3∼4명으로 이뤄질 전망이다.북측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인사들의 참여가 예상된다. 또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한 뒤 통신,경호,이동 등 세부 분과별 접촉도 있게된다. 이를테면 ‘남북 통신관계 실무자 접촉’,‘남북경호관계 실무자 접촉’ 등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경호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북과평양 체류에 따른 경호범위와 경호방법 등이 경호 책임자간에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정상간의 호칭,국가 연주문제,회담 배석자 등의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논의해야 하는 만큼 오는 6월 이전에 수없이 많은 접촉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 접촉에선 선발대 파견문제,남북 직통전화 및 휴대용 위성통신 전화의사용,방북 취재단의 규모 등도 상세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정상회담의 의전과 관련,정부 관계자는 “두 정상이 편안하고 허심탄회하게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만 선례가 없어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성사되기까지

    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의 산물이다.김 대통령은 지난 98년 2월25일 취임식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의한 이래 줄기차게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 필요성을강조해왔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에 북한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98년 4월11일 중국베이징에서 남북 당국자회담이 개최된 이래 공식·비공식적 접촉이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연평해전과 잠수정 침투 등 크고 작은 긴장상황이 조성됐지만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금강산관광 등을 통해 북한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됐다.또 양측 당국간에 어느 정도 신뢰도 쌓여갔다. 이런 배경에서 3월10일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다.북한도 전 세계적 지지를 얻은 베를린선언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평양에서도 “서울을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로 나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이후로 정상회담을 전제로 한 양측의 물밑 접촉이 활발해지고특사 회담이 합의됐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통령은 3월15일 박지원 장관을 관저로 불러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특사역할을 맡겼다.박 장관은 “문화부장관은 적임이 아니다”며 사양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이 직접나서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박 장관에게 특사를 맡겼다. 북한도 이번 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남북관계 전문가이면서도 일단 당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측의 통치권자가 임명한 특사 자격으로서 만난 것이다.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처음 만나게 된다.이후베이징에서 몇차례 비밀회담이 이어졌다.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대체로파악됐다. 우리측은 3월22일 베이징에서 최종입장을 통보했다.더 이상의 접촉은 하지않겠으니 북한의 입장이 결정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지난 7일 북한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이에 따라 8일 4시부터 베이징에서 박·송 회담이 재개됐다.얘기는 잘 풀려나갔다.북한측이적극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합의문을 만들었고 10일 오전 10시에양측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오후 7시25분(한국시간 8시25분)합의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도운기자 dawn@
  • 남북 정상회담/ 발표 배경

    청와대는 10일 남북 정상회담 합의내용의 ‘갑작스런’ 발표는 갑작스러운상황 진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여당이 ‘총선 후 중대 발표’라는 당초입장을 바꾼 것은 총선을 의식한 때문”이라는 야당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과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한 뒤 1주일쯤 지나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박 장관이 특사로 나서 협상이 시작됐지만,남북 양측의 이견으로 별 진전이 없어 오는 5,6월쯤 돼서야 협의가 구체화될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관측이었다. 그러던 중 북측이 지난 7일 ‘남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할 테니 8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자’고 제안을 해와 갑작스럽게 회담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남북이 이 회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함에 따라 10일 발표를 하게됐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회담 진척이 더딘 까닭에 그동안 김 대통령도 각종 회견을통해 올 연말쯤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며 근거를 뒷받침했다.특히 “시기적으로 (야당이)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또 “깜짝쇼를 하겠다고 해서 반세기 분단사에 획기적 이정표가 될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김한길 선대위대변인도 “북측이 논의단계에서 ‘남한이 선거 이전합의를 끌어내려 하지 않겠느냐’는 지레 짐작으로 상당히 고(高)자세를 유지했지만 우리 측이 ‘굳이 선거 전에 합의할 필요가 없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북측이 회담을 제안해오는 등 결실을 거둔 것으로 안다”고소개했다.이어 “회담이나 협상은 상대가 있는 법”이라며 “동시에 발표키로 했는데,우리가 선거가 있으니 늦추자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지운기자
  • 유엔, 阿 북동부7국 대기근 경고

    [유엔본부 AP 연합] 유엔은 30일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동북부 7개국이 근 1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지난 80년대 중반과 같은 가뭄과 기근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캐롤린 매카스키 유엔 긴급구조 부(副)조정관은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소말리아,수단,케냐,우간다,지부티 등 7개국에서 거의 비가 내리지 않고 있으며 수단과 소말리아,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난민이 이동함에 따라 큰 재난이 일어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매카스키 부조정관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같은 위기에 대해 관심을 끌고 필요한 구조작전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 캐서린 버티니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을 특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매카스키 특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앞으로 두달 내에 또 다른 재난에직면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같은 재난은 원조가 적절히 제공만 되면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은 기근 위기에 처해 있는 이들 7개국 1억 2,400만 국민들에게 필요한371만t의 식량과 다른 원조물자를 제공하는데 2억 500만 달러의 자금이 들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관리들은 이 위기가 종국에는 탄자니아,르완다,부룬디의 1,600만 국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94만t의 식량 원조가 더 필요하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천수이볜의 타이완](상)향후 진로와 과제

    [타이베이 김규환특파원] 18일 실시된 타이완(臺灣) 총통선거에서 야당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 당선은 51년 동안의 국민당 통치를 종식시키고 정권교체를 통해 새 시대를 연 역사적인 쾌거다.21세기를 맞아 타이완인들의 독립 의지,민주정치 열망 등 ‘바꿔 열풍’이 국민당의 장기독재·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정치의 새 판을 짠 것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해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이라는 작은 섬으로 쫓겨온 국민당은 51년 동안 일당 독재정치속에서 타이완을 ‘아시아의 4룡(龍)’으로 부상시키는 경제적 성공을 일궈냈다.그러나 국민당이 민주정치에 재갈을 물리고 개혁을 외면한 끝에 집권세력내에서 부정부패와 ‘헤이진(黑金·검은 돈) 정치’,성(性)스캔들 등 각종 스캔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반사적으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타이완인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타이완에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커지면 중국은 “타이완이 독립하려는움직임을 보이면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안정’을 내세운 국민당에 몰표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개혁의 날개를 번번이 접어야 했다.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국민당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스캔들에 염증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했다.97년 12월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23개현중 13개 의석을 휩쓴 반면 국민당은 8개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국민당의 민심이반을 절실하게 예고해 줬다. 이번 선거에서 천의 승리요인은 장기집권의 국민당 부패에다 천의 민주화의지,청렴성 및 개혁성향 등이 젊은층과 서민층을 파고든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18일 천이 당선후 처음으로 행한 대중연설에 몰려든 30만명 이상의 타이완인들이 ‘까이거(改革)’를 소리 높여 연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안정희구 세력들의 분열도 천의 승리에 일조(一助)했다.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와 국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가 ‘안정’을 모토로 내걸어 안정세력이 롄과 쑹으로 나뉘어지며 적전분열(敵前分列)의 모습을 보여줬다.총통선거를 사흘 앞둔 15일 중국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위협발언도 오히려 타이완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득표에 도움을 줬다.주총리의 위협발언 이후 탕베이(唐飛)타이완 국방부장(장관)이 즉각 “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두려워하지도 않는다(不求戰 不懼戰)”고 단호한 의지를 밝혀 타이완인들의 동요를 막아 준 것도 ‘호재’였다. 그러나 천의 타이완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타이완 정치대 우둥야(吳東野)교수는 “천당선자는 양안관계의 긴장완화·정치개혁 등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며 천의 당선을 노골적으로 저지하려던 중국의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려 양안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천정부 성패의 가장 큰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천의 득표율이 40%에 미치지 못해 안정을 우선시하는 하는 듯한 나머지 60% 이상의 타이완인들을 천의 개혁노선에 어떻게 동참시킬지,선거전에서 드러난 ‘헤이진’을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도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경제적숙제도 있다.중국의 무력위협으로 연일 곤두박질하던 주식시장의 주가가 증시안정기금의 유입으로 가까스로 진정된 점을 감안하면 천이 주식투자자들에게 ‘안정속 개혁’의 확신을 어떻게 심어주느냐도 큰 문제다. khkim@. *타이완 정국 우리정부 시각. 타이완(臺灣)의 정권교체에 대해 정부는 매우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의 양자관계를 넘어 한·중과 중·미,남·북 관계 등 동북아시아 전체의 세력 구도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19일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한국과 타이완간의 실질적 관계 발전 기대 ▲중국과 타이완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 기대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라는 기본입장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타이완 선거는 ‘중국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구체적인 언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주(駐)타이완 한국대표부의 윤해중(尹海重)대표를 통해 18일 타이완의 제10대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가 승리해 50년 만의첫 정권교체를 이룬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부는 타이완 독립을 주창해온 천후보의 당선으로 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의 개입이 확산돼 동북아 전체에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각국언론의 분석에는 동감하지 않는다.정부 당국자는 “중국 정부나 타이완 당국이나 서로 조심할 것”이라면서 “어느쪽도 파국은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박태준(朴泰俊)국무총리도 지난 17일 한국에 주재중인 중국언론사 특파원들과 회견한 자리에서 중국측의 무력사용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중국과 타이완측이 대화를 통해 서로 유익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천후보의 당선으로 오히려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있다. 한국과 단교한 국민당 정권이 바뀌었고,천당선자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천당선자는 한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받은 바 있다. 경제계에서는 반도체 부품 수출입 등 양측간 경제통상 관계가한층 두터워질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5월20일 열리는 천후보의 총통 취임식에 특사를 보내지 않을 방침이다.그 대신 한·타이완 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손세일(孫世一)의원등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도운기자 dawn@
  • [타이완 총통선거] 오늘투표…이모저모

    [타이베이(臺北)김규환특파원]18일의 역사적 총통선거를 하루 앞두고 중국의 군사행동 위협에 맞서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타이완에서는 막판 부동표를 겨냥한 후보들간 비방유세가 극에 달했다.선거유세가 워낙 치열해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고 벌써부터 지지들간의 반목 등 선거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한편 미국은 무력위협을 하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기위해 특사를 급파했다. ●세 후보 진영사이에 ‘치바오’(棄保) 선전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치바오란 지지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가장 바람직스럽지 않은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지지후보를 버리고(棄),차선의 후보를 택하는(保) 타이완 특유의 선거전략. 쑹 진영은 국민당 지지자에게 “독립지향의 천 후보가 당선되면 전쟁이 난다.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롄을 버리고 쑹을 밀어야 한다”는 ‘치롄바오쑹’(棄連保宋)을 호소.반면 롄 진영은 ‘바오쑹’(保宋)은 천 후보에게 어부지리(漁夫之利)만 안겨준다며 역으로 ‘치쑹바오롄’(棄宋保連)을 주장. 천 진영은“대륙출신 쑹의 당선을 저지해 타이완 출신 총통을 뽑아야 한다”고 ‘치롄바오천’(棄連保陳)을 외치고 있다.여기에 최근 국민당 지도부가 ‘치롄바오천’(棄連保陳)을 결정했다는 소문마저 나돌아 치바오 선전은 유권자들의 투표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무력침공 위협 발언으로 타이완 정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고 있는 가운데 17일 후보 사퇴와 쑹 후보 지지를 발표한 신당의 리아오(李敖) 후보는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의 미사일 공격 경고에 떨고 있는데 유독 천수이볜 지지자들만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 같다”고 비아냥. ●타이완 남부에 있는 가오슝(高雄)의 한 실업고등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후보 지지도 조사를 실시,특정 후보 지지자에게 욕을 퍼부어 말썽.연합만보(聯合晩報)에 따르면 이 교사는 최근 학생들에게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거수로 표시하도록 지시,마을 이장 아들인 한 학생이 국민당의 롄잔을 지지하자 “롄잔을 지지한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놀려댔으며 이에 대해 학생이 반발하자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욕설을퍼부었다는 것. ●선거를 하루 앞두고까지 당선자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등 혼전 양상이계속되는 가운데 신경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타이베이 궈타이(國泰) 신경정신병원의 천궈화(陳國華) 박사는 최근 한 달간 선거 후유증으로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거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20∼30% 늘고 있다고 말했다.천 박사는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좌절감이나 박탈감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약 60%의 유권자가 이같은 선거증후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지 후보를 놓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간에도 의견 충돌로 반목하는 사례도 크게 늘어 타이완 사회가 선거 후 한동안 심각한 선거 후유증에 시달릴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 ●미국은 16일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확인하고 타이완해협 양안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 입장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신봉과 폭력의 사용에 대한 반대,양측 대화의 촉진”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처드 홀브룩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기 위해 타이완 총통선거 다음날인 19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할 것이라고 중국 외교부 소식통들이 16일 밝혔다. ●380만명에 이르는 타이완의 20,30대 유권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 동안의 관례를 깨고 중국의 무력사용 위협 이후 총통선거에 적극적인 관심을보이기 시작.천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인 젊은 층은 중국의 무력사용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입장.타이베이에서 만난 한 의대생은 천 후보에게한 표를 던질 것이라면서 “전쟁위협은 걱정하지 않는다.천 후보가 이기더라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천후보가 당선될 경우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여당측의 주장을 일축. *陳후보 당선 유력… 정권교체 가능성.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총통선거를 하루 앞둔 17일 타이완(臺灣)에서는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비 뿌리는 타이베이시 중심부의 충샤오시루(忠孝西路) 다아(大亞)백화점앞.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이동 유세장에는 5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아볜(阿扁·천의 애칭)”,“아볜”을 연호하며 지지분위기를 북돋우고 있었다.지지자외에 시민들도 일부 가세해 300∼400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소리치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반면 옆의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와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 유세장에서는 20∼30명의 길가는 시민들이 잠시 연설과 구호를 지켜보다 이내 발길을돌려 뜨거운 열기의 천 후보측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린궈밍(林國明·44)씨는 “국민당의 롄과 무소속 쑹이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그래도 국민당 부패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진정한 인물은 천수이볜 밖에 없다”며 “타이완도 정권을 바꿔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회사원 펑위린(馮玉麟·37)씨는 “97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압승했을 때 정권교체는 이미 예견돼왔다”면서 “국민당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측근들이 천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것을 보면 천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점쳤다. 천 후보는 지난 일요일 대회전에서 롄,쑹 두 후보의 집회열기를 압도한데이어,타이완의 우상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리위안저(李遠哲) 전 중앙연구원장과 리 총통의 측근 쉬원룽(許文龍) 기미실업 회장 등을 끌여들여 팽팽했던 3자구도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롄측도 천의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장제스(蔣介石) 초대총통의 미망인 쑹메이링(宋美齡)여사,재계 거물 왕융칭(王永慶) 타이완 플라스틱 회장 등을 끌어들였으나 중량감에서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게 대체적인 평가. 여기에 부정부패,섹스 스캔들,검은 돈 정치 등 국민당의 각종 폐해가 롄 후보에게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대학생 딩시정(丁希正·20)씨는 “이번선거전을 통해 롄과 국민당 출신 쑹이 부패와 스캔들을 폭로하며 서로 헐뜯는 꼴은 이제 더이상 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앞서 민진당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권교체의 교두보를마련했다.97년 12월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23개 현에서 13개현을 휩쓴 반면,국민당은 8개현을 확보하는데 그쳐 민심은 이미 국민당을떠났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khkim@. *총통후보 부인 3명 내조경쟁도 '후끈'. 타이완(臺灣)의 직선 제2대 퍼스트레이디는 누가될까.타이완 총통선거에서막바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3후보 부인들의 내조경쟁이 치열하다.언론 역시 리덩후이(李登輝)현 타이완 총통의 부인인 청원후이(曾文惠·73)를 잇는퍼스트 레이디감을 집중 조명하고 있고 후보 부인들도 매체와 대중 집회를이용한 막판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가장 이목을 끄는 이는 최근 여론 조사에서 우위를 달리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의 부인 위수전(禹淑珍·45).천후보의 정치적 동지다.85년 여당의 암살기도로 보이는 3차례의 트럭 충돌로 하반신이 마비됐다.휠체어를 탄채 남편의 유세현장에 나가고 있는데 상당한 동정표를 얻는 동시에 남편의투쟁 역정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45세의 젊은 나이와 꾸밈없는 미소,솔직하고 대중적인 대화자세는 그녀의최고 매력 포인트.그러나 최근 TV인터뷰에서천후보가 ‘정치와 법률외에는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무뚝뚝하고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먼 남자,집안에서는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지나친 솔직함’으로 참모진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국민당 롄잔(連戰)후보의 부인 팡위(方瑀·56)는 타이베이 둥우(東吾)대 교수 출신.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조용한 내조에 치중,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을 들어왔다.그러나 최근 남편이 수세에 몰리자 재향군인회청중들 앞에서 “당신들의 연금을 올려 줄 수 있는 후보는 국민당의 롄잔 뿐”이라고 연설하는 등 적극 내조로 돌아섰다.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의 부인 천완수이(陳萬水·59)는 선거 막바지에남편 등 가족들의 사랑을 담은 회고록을 발간,쑹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며 지원하고 있다.언론 매체 인터뷰에서 그녀의 공략 목표는 쑹후보의 목을 죄고 있는 국민당 자금 유용스캔들을 씻어내는 것.쑹은 국민당 간부로 있던 90년대 당 공금으로 미 캘리포니아에 아들 명의의 호화주택 5채를 구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그녀는 최근 TV에서 격앙된 제스처와 눈물로 결백을호소,국민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사설] 아직 冷戰사고 못버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10 베를린 선언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여론조사 결과 우리국민의 73.5%가 베를린 선언에 공감과 지지를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대북 포용정책 추진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미국,일본정부도 베를린 선언을 지지한 가운데 대북접근정책을 강화하고 있다.유럽연합(EU)4개국도 베를린 선언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도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한 가운데 10일자 인민일보는 “북한은 마땅히 한국의 특사교환 제의를 받아들이고 이산가족 상봉제안을 수용해야 한다”며 비교적 강도높은 지지논평을 냈다.그러나 베를린 선언에 대한이같은 국내외의 긍정적 반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부에서 논란을 빚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베를린 선언을 총선용의 ‘신북풍론’이라며 정치공세를 제기한 것이 그것이다.또 일부언론은 북한의 반응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남북대화를 구걸하고 있다는 식의 악의적인비판도 하고 있다. 우리는 베를린 선언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 반향은 냉전적 대북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아직도 냉전인식을 버리지 못한 아집과 편견에서 바뀌는 시대적 실상(實相)을보지 못하는 괴리현상이다.다시말해 민족분단 반세기 동안 ‘정형화’된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북한을 상대하는 냉전적 발상의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것이다.물론 북한의 대남전략이 포기되지 않았고 한반도 안보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화해·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현실적 방안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만약일부의 주장대로 대북 포용정책이 비현실적 방안이라면 생산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그러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명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식상한 정치적 공세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욱이 “봉쇄정책이 옳으냐 포용정책이 옳으냐”또는 “대북지원을 할거냐 말거냐”하는식의 한물간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해선 안된다.북한에 대한 냉전적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적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도 최근 폐쇄주의 노선에서 국제화·개방화의 길을 모색하는 징후가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언어의 유희일 뿐인 비생산적 논쟁을 지양하고 북한과 북한주민을 함께 살아갈 우리의 반쪽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민족분단의 역사를 종식시킬 것인가 하는 대승적 문제에 관심을모아야 할때라고 생각된다.
  • 베를린선언 외신 반응

    세계 각국의 언론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주요기사로보도하고 정부의 대북 화해 노력을 평가했다. 미국도 뉴욕에서 현재 진행중인 북·미 고위급 준비회담을 통해 “김대통령의 제의에 긍정적으로 호응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하는 등 베를린선언에 대한 국제적 지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한·미 양국도 14일워싱턴에서 열린 외무장관회담에서 베를린선언의 취지를 살려 남북 당국자대화 재개에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독일의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는 10일자에 김대통령의 베를린자유대학 강연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한국인들이 독일인들과 같은 통일의 희망을 품고 있으며,독일 통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역시 독일의 디 타게스자이퉁은 11일자에서 “김대통령은 빌리 브란트의 정신적 후계자”라고 지칭하고 “김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의 신뢰 확보를 위해북한과 미·중·러에 연설문을 사전에 전달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10일자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의 경제난 극복을 지원할예정”이라고 소개하고 “북한은 마땅히 한국의 특사교환 건의를 받아들이고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해야 한다”고 적극적인 지지논평을 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0일자에서 “김대통령은 독일 방문중 90년 통일을 이룩한 독일 국민들을 칭송하고 북한과 화해·협력하면서 공존·공영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주요 일간지들도 대부분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자세하게 보도했다.마이니치는 11일자에서 “베를린선언은 북한의 적극적 외교공세에 대한반격 선언이자 햇볕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재삼 촉구한 것”이라고분석했다. 아사히는 10일 석간판에서 “베를린선언이 북한에 이익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한국측 주도에 대해서는 반발과 경계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도쿄신문은 10일자 기사에서 김대통령의 남북특사 교환 제안에 초점을맞춰 보도했다. 요미우리와 닛케이도 10일자에서 “김대통령이 북한의 농업개혁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고 소개했다.산케이는 10일자 석간판에서 “베를린선언은 햇볕정책의 질적 전환을 강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도운기자 dawn@
  • 통일부 성인 1,000명조사 “베를린선언 공감” 73%

    대다수 국민은 ‘베를린선언’에 대해 북한이 당장 응답할 가능성은 그리높지 않지만 선언 자체는 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북 특사 교환이 이뤄질 경우 이산가족 상봉을 최우선적으로 실현시키고 경협 활성화를 그 다음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평가했다. 통일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소프레스 글로벌 리서치’의 이같은 조사결과를 14일 공개했다.조사는 12∼13일 이틀 동안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대상으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자의 73.5%는 선언내용에 공감한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24.4%에 불과했다.또 75.7%는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고 평가했다.또 발표 전에 북한에 미리 통보한 것에 대해서도 75.7%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50.2%는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고 45.2%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특사 교환이 이뤄지면 우선적으로 협의해야 할 대상으로 이산가족 상봉(35.4%),경협 활성화(17.2%),정상회담 개최(15.2%)등을 꼽았고 대북지원 확대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2.2%) 대상으로 평가했다. 북한 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에 대해선 43%가 비료,농기구,관개시설 개선 등농업구조 개혁 지원을 들었고 23.6%는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대한포럼] 베를린 자유대학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Free University)은 독일내 300여개 대학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독일은 중세이후 군주들이 영지별로 학교를 설립,오늘에 이르러 대학들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세계대전후 서베를린을 관할하게 된 연합국은 구소련 관할지역에 있는 훔볼트대학에 상응하는 대학의 필요성이 절실했다.서방진영,특히 포드재단이 주도해 1948년 개교한 자유대학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는데 앞장서 왔다. 냉전시대 서방의 필요에 의해 미군사령부 인근에 설립된 자유대학은 처음부터 200년 전통을 가진 훔볼트대학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프로이센제국이 설립,언어학자이자 교육개혁가의 이름을 딴 훔볼트대학은 연륜과 더불어법률·의학·철학·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철학자 헤겔·피히테와 칼마르크스가 이 대학서 강의했으며 아인슈타인등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했다. 서베를린의 자유대학은 그러나 냉전중 자유민주사상의 전파자로서 독보적인위치를 굳혔다.자유대학은 훔볼트대학이 공산정권에 접수된뒤 마르크스주의를강요받자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탈출해 옮겨옴으로써 짧은 기간내 명문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자유대학은 인문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시장경제와 민주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미국식 캠퍼스 유형을 도입한 자유대학은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엔 반공산,반동독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베를린 봉쇄기간인 63년 케네디미국대통령이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고 자유대학에서 메달을 받은뒤 학생들의 반소운동이 절정을 이루자 당황한 연합군측이 이를 완화하도록 학교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은 이 대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그후 학생수가 2만여명으로 늘었으며 베를린 장벽이붕괴된 80년대말에는 5만명에 이르렀다. 학교 건물도 자유대학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데 비해 훔볼트대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다.통일후 두 대학 모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자유대학은 민간단체의 지원이 크게 줄고 학생들이 훔볼트대학을 선호하고 있어려움이 더욱 크다.이같은 어려움은 시대적 변화이기도 하나자유대학의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변함 없으리라는 것이 베를린 시민들 믿음이다. 베를린은 유럽 중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역사적으로 갈등과 화해의 중심무대가 되어 왔다.냉전시대엔 동서의 지도자들이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무대로,데탕트이후에는 화해와 협력의 현장으로 베를린이 갖는 의미는 크다. 베를린은 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적 의미때문에 화해와 통일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독일통일의 배경에는 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이 정신적 뒷받침이되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자유대학은 자유와 민주의 상징이다.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0일 자유대학에서 남북정부당국간 대화를 제안한 것은 베를린의 지리적 특성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을 담고 있어 유럽순방 외교의 절정으로 꼽힌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 대학 교수와 학생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설에서 “베를린 자유대학과이 대학 출신들이 개교이래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독일통일을 앞장서이끌어온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위해 이 대학을 찾았다”고 운을 뗀 것은 베를린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으로인해 의미가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이 “뜻깊은 자유대학을 방문한 이 자리를 빌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와 남북간의 화해 협력을 이루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정부당국간 협력 및 특사 교환 등4가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것은 극적 감동을 더했다고 하겠다.연설이끝나자 좌석에 앉아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것은 단순히 한외국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이 대학의 역사적 배경과 연설이 일치했기때문이라 하겠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 [특별대담] 베를린선언 이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난 10일 베를린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및동북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베를린선언은 ▲정부 당국간 대화 ▲화해와 협력 제안 적극 호응 ▲이산가족 문제 해결 ▲특사교환 제의 수락 등 4개항을 북한에 촉구하고 있다.대한매일은 이호재(李昊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교수와 이장희(李長熙) 외국어대 법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베를린선언의 의의와 가시화 전망,후속조치 및 바람직한 대북정책의 좌표 등을 짚어봤다. ◆이호재 교수 베를린 선언은 남북한만이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남북 직접대화’ ‘양자 회담’으로의 복귀선언이란 의미를 담고있습니다.“‘당사자 해결’원칙 아래 다시 남북관계를 시작해 보자”는 메시지며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처럼 남북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대장정을 걷는 주체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선언은 남북합의를 추구하는 대장정의 한 과정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발표장소가 분단극복의 현장이란 점은 과거 남북관계의 반성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의지를상징한다고 봅니다.특히 최근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권이 ‘북한 핵문제’로 인해 남북협상 아닌 북·미 위주가 됐습니다.북방외교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해결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엔 한계가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베를린 선언은 남북이 문제해결의 주체임을 세계적으로 재강조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장희 교수 이번 선언은 북한 정권을 안정시키고 북한의 생존권 확보에우리가 적극 나설 것을 국제적으로 공표한 것입니다.특사교환 제의는 실천가능성이 큽니다.북한은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즉각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앞으로도 신뢰구축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이산가족문제는 북한에선 정치적 사안입니다.당분간 현재처럼 민간교류 주선단체들의 활동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냉전시대의 법령개폐 등 국내에서 할 수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호재 포용정책은 합리성을 지닌 시대적 대로(大路)며,정도(正道)라고생각합니다.다만 이 정책에 대한 국내 정치 세력간에 합의·조율과 초당적협력이 더 필요합니다.대북정책이 국내정치 쟁점이 되지 않도록 초당적으로끌고 나가야 합니다.합리적이고 옳은 정책이더라도 국내정치의 논쟁거리가돼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장희 이교수님이 지적하신 국민적인 합의 유도 노력에 대해 동감합니다.내부 지지가 확고해야 북한과의 협상력도 높아집니다.현 정부는 과거와 달리 북한과 제3국간의 관계개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북한의 개혁개방의 진전은 남북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지요.독일의 경우도 교류협력은 민족자결 원칙에서 서독의 노력이 중심이 됐습니다.동·서독의 강한 결속이 국제적 지지를 얻는 힘이 됐습니다.우리의 경우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도 있습니다.김대중 정권이 얼마나 끈질기게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과 대화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습니다.북한도 94년 정상회담의 유효성을 취소하지않고 있습니다.남북대화를 위한 물밑접촉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호재 베를린 선언은 급진전되고 있는북·미 국교 정상화 협상과정에서나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그러나 이번 선언에도 불구,남북대화 재개에 북한이 당장 호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북한은 미·일과의 국교 정상화 등 관계개선을 이뤄 유리한 입장을 만든 뒤 남북대화에 임하려고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번 제의가 민족의 양심을 담은 것이란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더라도 북한도 필요로 하고 이익이 되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문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나가느냐입니다.포용정책에 반응이 없다는 등의 비난과 조바심에 초연할 수있어야겠지요. ◆이장희 북한과의 대화에 앞서 국내여론의 합의 도출인 ‘남남 대화’는필수적입니다.베를린 선언은 평화유지를 위한 분단과정의 관리와 국제적 성격을 띤 냉전구조 해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이 두가지를 베를린 선언에선혼합하려고 노력했습니다.국제적 지지 확보에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가많습니다.우려되는 점은 일방적 선언이란 점입니다.이 경우 북한 반응에 연연하지 말고 할 일을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김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서 화해협력 일환으로 아무 전제조건 없이 요청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내용도 구체화돼 있습니다.냉전종식 해체와관련,국제적 지지확보와 함께 정치적 해결 방법인 특사교환도 시도했습니다. 국가역량 확대에 기반을 둔 이같은 제안의 성패는 후속조치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실천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여론지도층 등의 폭넓은 국민적 참여를유도해야 합니다. ◆이호재 남북 양자관계로 볼 때는 대체로 낙관적입니다.틀이 잡혀있다고할 수 있습니다.92년 기본합의서는 남북문제의 중요한 두가지 원칙을 합의한바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 직접대화고 다른 하나는 정치문제를 포함한 모든현안을 동시에 논의해 나가자는 것입니다.남북의 상호이해에 따라 각종 문제를 다원적으로,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접근 가능한 문제부터 먼저 추진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한 가지가 성공하면 다른 것에 영향을 줄 것이고 하나의 문제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시대 착오입니다.앞으로도북한의 미사일,핵문제는 다시 쟁점화될 수 있고 이때 그동안 쌓아온 교류협력의 성과를 날려버려선 안될 것입니다.과거 정권에서는 북한 미사일문제로남북 관계발전을 거부했습니다.그 결과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미국에게 빼앗겼습니다. 특히 남북문제를 두고 여야가 흙탕물 싸움을 벌여선 안될 것입니다.여당은역사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껴안으려 노력을 해야 합니다.물을 담아야 하지 독을 깨서는 안됩니다.남북문제는 어느당의 전유물도 아닙니다.우리가 민족자결권을 회복하고 민족다움과 생존을확보하는 문제입니다.국내적 합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남북정책입니다. ◆이장희 북한이 소련,중국 사이에서 지켜온 자존심을 인정하고 긍정해주는인식 변화도 필요합니다. 북한핵회담 이후 남북간의 본질적 정치현안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베를린 선언은 정치문제를 남북당국이 나서 풀어보겠다는시도란 점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이호재 초강대국 중국에대한 미국의 우려,중국을 겨냥한 미국,일본의 군사안보동맹의 강화,이에 대항하는 중국·러시아의 동맹강화 등 동북아는 탈냉전이란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안보블록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강대국 패권주의에 따른 블록화현상은 북한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남측은 미·일동맹에 일방적으로 편입되고 북측은 중국측에 기울어지기 쉽습니다.남북은 민족공영과 자존을 위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합니다.21세기 한국외교의 키 포인트가 여기에 있습니다.강대국간에 대치하는 블록관계가 강화될 때 민족의 통일과 번영은 더욱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남북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이장희 일본의 우경화,미·일방위협력지침,미·일방위사무소 설치 등 미·일 군사동맹체제의 강화는 중국의 군사패권주의를 자극,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상호주의 포기에 대한 일부 비판도있습니다.남북간 20배 가량의 국력의 차이가 나는 ‘힘의 비대칭관계’에서상호주의 주장은의미가 없습니다.어떤 형식이든 남북이 민족 공동이익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화해협력으로 민족 공동이익을 추구해야 합니다.이 점에서베를린 선언은 국제적으로나 북한에 대해서나 구두선은 아니며 진실한 의지를 전하는 약속이 될 수 있습니다.본격적인 경제협력,근본적인 농업구조개혁도 언급돼 있습니다.다만 야당과의 충분한 논의,국민적 의견수렴 등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이호재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미국이 북한을 대중국 견제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한다면 남북관계개선은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우리는 미국의 ‘참여와 개입정책’이 동북아에서 공존을 유지하고 균형있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이번 선언은 민간협력의 한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에 초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간협력을 약화시킨다든가 통제하면 안될 것입니다.현재 경제·민간협력은 초보단계며 계속강화,확대해야 나가야 합니다.민간협력은 남북관계,정치협력에 도움이 됩니다.한민족 전체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비전을 갖고 남북협력에 임해야 합니다.동북아에서 한민족의 역량은 너무 미미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장희 당국이 나서면 민간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역할분담이 해답입니다.정부는 군사 정치분야에서 나서야 합니다. 경제 사회분야는 민간주도로 이뤄지도록 하면 됩니다.민간이 해도 한계가 있어요.투자보장,제도적·근본적인 문제를 정부가 맡으면 됩니다.이번 선언을 계기로 정부는 포용정책의 국민합의를 위해 더욱 통일·평화교육에 힘썼으면 합니다.통일정책을 여야 막론하고 정치적 시각으로 이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북한으로부터도 성급한 응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평화메시지를 계속 재확인하고 전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호재 김대중 정부의 화해정책은 역사흐름에 순응하는 합리적 선언이며평화공존단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냉전의 유산인 대북대결의식은 폭넓은 대북정책의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냉전세력조차도 품에 안아함께 통일문제의 대화자로서 끌고가려는 노력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동의 없이는 성공적인 대북정책의 수행은 어려울것입니다. 특히 한반도 주변정세는 낙관할 수 없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북한과 주변국가와의 관계 진전이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남북간의 합의와 협력이 이뤄지지 못했을 때 양측은 모든 발전과 자존에 한계를 갖게 될 것이며 이 점을 북측이 받아들여 대화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격화될 때 남북화해는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정리 이석우 박준석기자 swlee@
  • 정부, ‘베를린선언’후속조치 구체화

    정부는 대북지원과 경제교류를 일방적인 지원형식이 아닌 호혜에 입각한 신축적인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해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또 북한의 농업지원을 위한 대북 비료공급도 이 원칙에 따라 이산가족문제와 연계해 풀어나갈 계획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2일 “정부는 대북경협과 관련,당국간 협력과 민간교류가 함께 병행해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며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대북 사회간접자본(SOC)건설지원은 남북 당국간의 직접 접촉을 통한협력사업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방식은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이 당국자는 “북한의 동의가 있을 경우 정부기금,국채발행,세계금융기구의 대북지원에 대한 채무보증 등 다양한 방법이 채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럽 4개국 순방을 마치고 11일 귀국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서울공항에서 가진 귀국보고에서 대북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 조달 방법등과 관련,“정부가 조금 내고 전망이 있으면 국민도 투자하고,세계은행이나 외국투자자를 유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방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경제투자는 시혜적 지원과 달리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며 “경협이 본격화되면 북한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상당한 경제적 이득이 돌아올 것”으로 전망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뜨고 있기 때문에 남북이산가족상봉사업은 늦출 수 없으며,특사교환도 이미 남북사이에 합의된 것인만큼 수용해 한다”고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도 세일즈 정상외교를 계속하기 위해 오는 5월 일본방문은 세일즈외교 중심으로 하고 싶고,올해나 내년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남미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승현 이석우기자 yangbak@
  • 베를린선언 후속조치 마련

    정부는 대북지원 확대를 위해 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융자를 적극 지원·알선하는 한편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대폭늘려나가기로 했다.또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과거 북한의 대남 테러행위 등에 대해서도 문제삼지 않고 북·미간의 테러국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북측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 대해호응해 올 경우 사회간접시설 건설 등 북한의 경제회복을 위해 남북교류협력기금 확대,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융자에 대한 알선·보장 등을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기구의 대북지원과 관련,이 관계자는 “북측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경우 정부는 국제금융기구의 대북차관지원 등에 채무보증을 해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반테러협약 등 국제적 기준준수를 약속하면 과거 테러행위에 대해선 문제삼지 않고 국제기구 가입 등 국제사회 복귀를 적극 지원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정부는 이와함께 대북 사회간접시설 건설계획에 따라 지난해 통일부가 마련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을 이달 안에 1차로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특사교환을 위한 예비접촉은 차관급으로,특사는 장관급으로 진행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또 이달 안에 남북교류협력추진 실무위원회를 열어 정부 차원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방안을 마무리하고 종합적인 후속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다방면에서의 남북교류확대를 위해 문화사업에도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 반응과무관하게 물류비 인하,위탁가공교역 활성화 등 남북경협 지원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베를린선언 후속대책

    정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부처별로 후속조치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북한의 호응이 있으면 신속하게 대응,남북 화해·협력의 기반 조성의 계기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북측이 적어도 1∼2달 안에 우회적이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파종기를 앞두고 80만t 가량의 비료가 부족한 상황인 만큼 이를 빌미로 대화의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정부 당국자는 그러나 “그냥 기다리지 않고 국제 사회와의 공조 속에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사 교환] 특사 교환을 위한 예비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특사는통일부장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특사 교환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차관급을 대표로 한 예비 접촉을 준비 중이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전력 등 에너지,통신,도로·항만·철도건설 등 각분야에 걸쳐 통일부가 지난해 국책 연구기관과 함께 추진 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각 부처의 검토작업이 진행 중이다.북측은 전력설비의 개보수 및설비 확충과 전력 및 에너지 지원을 여러 통로로 요구하고 있다.단기적으론북한의 발전량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남북 송전교류,합작 정유소 및 발전소 건설,자원의 공동개발 등을 계획하고 있다.정부는 사회간접자본 건설에서 우선적인 것은 경의선 등남북한 철도 연결과 도로 연결로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남측에선 도로 매입등을 장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재원 조달 방법] 정부 채권을 발행,남북교류협력기금을 대폭 확충하고 필요하다면 국제 금융기구의 대북 융자 채무를 보증한다는 방침이다.현재 교류협력기금은 3,900억원이고 이 가운데 1,900억원은 실제 기금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농업 협력] 북한에 대한 일회성 식량 지원보다는 구조개선을 위한 협력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우선 감자 재배 확대,농기자재 제공,농업기술 교류,합영농장,계약 재배 등으로 북한의 시급한 식량난을 해결한 뒤 교역·유통 분야로 협력사업을 확대해나가자는 게 정부 생각이다. 또 대규모 협력프로젝트와국제 사회와의 컨소시엄도 고려 중이다. 이석우기자 swlee@. *北, 대남 유화분위기 뚜렷. 북한의 대남 태도가 부드러워지고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10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보도 매체들은 최근 남측에 대한 보도에서 원색적 표현을 자제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특히 남북 대화나 경제협력과 관련한 남측 제의에 대해 거부 의사를 보이지않고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유화적 입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경제공동체 제의에 대해서도 북한은 오히려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하면서 국책 연구기관간의 접촉이 미흡하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은 ‘역도’ 등의표현 등 구체적인 비난을 삼가고 있다. 4·13총선과 관련,과거와 달리 남측 정치권 전체를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다.과거엔 집권당 후보를 공격하거나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을 강력히 비난했다. 정부에 대해선 적대적 입장을 취하며 일반대중에 대한 선전선동과 통일전선전술을 활용했으나 올해엔 ‘정당단체연합회의’ 개최도 자제하면서 상황을관망하고 있다. 또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서도 남측 정부에 대한 비난과 반정부 선동은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합참은 10일 지난 2월 한달 동안 북한의 대남 심리전 활동을 분석한 자료에 근거,지난달에 비해 대남 확성기 방송시간이 늘었지만 반정부 선동·비방은 1월보다 12%나 줄어들었다고밝혔다.이는 지난해 1월에 비해서도 7% 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와 관련,통일부 당국자는 10일“북한은 남한의 총선 정국과 미국의 대선정국을 관망하고 있다”고 전제하고“북측이 대미,대일 협상 및 대 서방외교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긴장을 조성하는 극렬한 비방과돌출행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또 북한의 태도는 4·13총선까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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