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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북한문제 現대통령이 풀어야”

    DJ “북한문제 現대통령이 풀어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3일 “미국 대선이 끝나면 누가 되든 한반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여당이)적극 대비해야 하며,한반도 주변 4대국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미국은 매우 중요한 동맹국으로,우리가 주변 4대국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미국이 균형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우리 국민의 의사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할 때 이를 어떻게 설득하고 영향을 줄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경제적으로 미국의 도움이 중요하다.”면서 “미국에 오해를 주는 말이나 가볍게 보이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의장은 “당이 적극 나서 미국 인사들과의 접촉을 일상화해 거리감을 좁히는 한편 미 대선 후 신행정부 핵심인사들이 ‘한반도에 전쟁은 안된다.’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 의장은 이어 김 전 대통령 대북 특사론과 관련,“관훈토론회에서 ‘김 전 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맡는 게 어떠냐.’는 패널의 질문에 ‘고맙고 환영할 일’이라고 답한 것이 부풀려졌다.”고 해명한 뒤 “어느 정도 기초작업을 한 뒤 깊은 상의를 드릴테니 방향을 잡아달라.”고 남북관계에서의 ‘역할’을 요청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재 정권이 중요하다.”고 전제,“북한도 나와 합의해서는 책임질 수 없고,현 대통령과 약속해야 책임있게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나라를 위해 나도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고,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사설] ‘대북 특사’ 취지는 좋지만

    현재 남북관계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핵 문제 등 국제적 요인으로 인해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최근 남북간 군사 실무회담이 열렸으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남북대화가 전적으로 주변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관계가 꼬이면서 남북대화가 지지부진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정치권 핵심 인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국제질서 속에서의 남북관계 진전이다.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취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한 것이나,지난 12일 관훈토론회에서 대북특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이 의장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사 역할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 전 대통령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준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하지만 남북관계는 정치적 수사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지난 8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북특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그러나 정부 통일 주무장관의 희망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북한측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 말로 대북특사나 정상회담의 기대만 부풀리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제스처로 보인다.설사 물밑 접촉에서 정상회담이나 특사교환에 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더욱 차분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남북관계다.아무 때나 생색내고 떠들 일은 아닌 것이다.정치인이라면 남북관계가 중요할수록,국제관계가 복잡할수록 말보다 실천이라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盧대통령 “경제정책 급전환 없을것”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인도·베트남 순방 결과를 바탕으로 경제통상외교의 후속조치 마련에 들어갔다.노 대통령의 구상은 카자흐스탄·러시아와 인도·베트남 등의 순방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된 자원·에너지전략의 중장기 플랜 마련에 집중될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중장기 자원·에너지전략을 수립·보완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5∼10년 뒤를 내다보는 중장기 자원·에너지 전략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인프라·플랜트 수출을 위한 일반적인 지원과 자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노 대통령은 해외진출 기업의 투자장애 사유를 해소하기 위해 외교적·행정적 지원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이런 후속 작업은 노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음달 14일 출국하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노 대통령의 기업관 변화는 크지 않을 듯하다.김종민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의 ‘경제 마인드’에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 “후속조치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책 마인드의 변화보다는 팩트(사실)와 정보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경제살리기로 경제정책 방향이 급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정리 같은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분권형 국정운영 방침에 따라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정책은 당정에,입법은 국회에 맡겨놓은 채로 유지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청와대는 대북 특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김 대변인은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대북특사 파견을 거론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의장의 발언 내용을 보면 (보도 내용과)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면서 “이 의장이 노 대통령과 논의한 뒤 발언한 것도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정부 차원에서 특사 문제가 논의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盧대통령 ‘베트남 北核발언’ 싸고 해석분분

    盧대통령 ‘베트남 北核발언’ 싸고 해석분분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 순방 중에 “북핵 문제가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북핵문제가 워낙 고착상태에 빠져 당분간은 약방문(藥方文) 내기도 어렵다던 터였다.12일 정부 내에서는 주석(註釋)달기에 바빴다. 당장 대통령이 나서 뭔가를 언급해야 할 만한 추가 징후가 생겼느냐는 데 촉각이 모아졌다.미국 대선을 전후한 ‘위기설’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류가 정부 일각에 엄연히 존재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날 대체적인 관측은 “대통령이 나서 따로 ‘안정’을 시켜야 할 만한 추가 요인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관심사는 발언 배경이다.‘대통령 개인의 발상이냐,정부 당국 내부의 전략적 판단이냐.’의 문제다.한 정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의지가 많이 담겼을 것으로 봤다.그는 “‘양날의 칼’이 아니겠느냐.주변국에는 6자회담 등 현 체제를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고,북한에는 무리수를 두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풀이했다. 이럴 경우 미국을 ‘한·중·일·러’에서 따로 떼어놓고 얘기한 부분에 설명이 필요해진다.이에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 주변국가를 포괄해 얘기한 것이지 의도적으로 미국을 빼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KAL기 문제를 들어 북한의 테러 부분을 꺼낸 것은 ‘더 이상 북한이 테러지원국이 아닌 만큼 미국도 일방적으로 북한을 몰아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경수로를 거론하며 일본에 대해 별도로 얘기한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오는 11월 경수로 문제가 구체화하면서 주변국간에 큰 논란이 될 수 있다.경수로는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와 연동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다.이런 견해를 종합하면,노 대통령이 북핵 관련 ‘상황’을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풀이가 가능해진다. 정부 당국의 총체적 상황이 대통령의 발언에 좀 더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쪽도 있다.한 고위 당국자는 “NSC나 정부 일각에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걸 초조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이런 기류가 대통령의 발언을 유도했을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주변 4개국 특사 파견을 제창하고 나선 것도 북핵과 관련,여권 내 교감이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닝푸쿠이 한반도문제 담당대사가 13일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미국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릴레이 양자접촉을 갖는다.6자회담 참가국간에는 미국 대선 직후 4차 회담이 열리지 못하면 미국 내 정치일정 등에 의해 회담이 장기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DJ 대북특사 환영 朴대표도 역할가능”

    “DJ 대북특사 환영 朴대표도 역할가능”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12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특사 파견 방안과 관련,“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해주신다면 적극적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초당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나라당 박 대표는 12일 “북핵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이므로 이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이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과 주변 4개국에 한반도 평화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대통령과 협의해 추진코자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어 ‘대북 특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표를 보낼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13일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그런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을 듣고 많은 말씀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北인권법안 美하원 통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예산지원과 탈북자 망명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북한인권법안이 4일(현지시간) 밤 미국 하원을 통과,행정부로 이송됐다.이에 따라 북한인권법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과 동시에 발효된다. 하원은 당초 지난 7월21일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나,지난달 28일 상원에서 북한인권특사 임명 등의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을 다시 내려보내 이를 재통과시키는 절차를 밟았다.북한인권법안은 ▲북한주민 인권 신장 ▲북한주민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 등 3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으며,북한인권특사 임명과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매년 2400만 달러 한도의 예산을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법안이 발효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의 발빠른 후속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전망했다.‘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선 등 중요한 정치일정 때문에 임명절차는 선거 이후로 넘어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dawn@seoul.co.kr
  • 鄭통일 “남북경색 타개위해 특사파견 추진”

    鄭통일 “남북경색 타개위해 특사파견 추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4일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2000년 6월 약속한 것이며,내년이면 5년이 된다.”면서 “2005년이 지나기 전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그러나 “북핵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현재 추진되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감 답변에서 “남북 경색이 오래 가는 것은 양측에 모두 좋지 않으며 남북대화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재개돼야 한다.”며 남북간 경색 국면 타개를 위한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 장관은 또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에 돈을 노린 브로커들의 개입이 적지 않게 있었다.”면서 “이에 따라 정부는 일시불로 지급하는 정착지원금의 규모를 1000만원으로 줄이는 등 브로커들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정무위 국감 업무보고에서 알카에다의 테러공격 위협과 관련,“외교통상부와 경찰청에 테러업무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정부 안에 ‘테러정보통합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법사 정무 재경 국방 등 14개 상임위를 시작으로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돌입했다. 통일부 국방부 등 34개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을 상대로 한 이날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행정수도 이전과 테러 대책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통일부에 대한 통외통위 국감에서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은 테러전문 컨설팅회사인 인텔센터 자료를 인용, “한국인 또는 한국 본토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10월에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최근 미국 상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과 관련,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정부가 초기엔 ‘인권법 통과가 안될 것’으로 분석했고,통과 후엔 ‘핵심조항이 빠져 괜찮다.’고 했다가 이제는 ‘시행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혼란스런 상태”라며 “외교전략 빈곤의 단적인 예”라고 정부측을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성권 의원은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주도권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조용한 외교’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문화관광부를 상대로 한 국회 문광위 국감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사주 중심체제에서 신문의 편집권 독립은 불가능하며,일부 신문들의 시장 독과점은 개선돼야 한다.”며 국회 언론발전위 구성을 통한 언론개혁을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당의 언론개혁안은 사실상 언론통제법안”이라고 반박한 뒤 소유구조와 시장점유율 제한 등 별도로 마련한 개혁방안을 소속의원 9명 이름으로 발표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中, 탈북44명 인도 요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정부가 30일 탈북자 44명이 주중 캐나다 대사관에 진입한 것과 관련,탈북자들을 강력 비난하며 캐나다측에 이들의 신병을 요구했다. 중국의 이같은 요구는 미국 상원의 북한인권 법안 통과를 계기로 ‘탈북자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가 최근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차지,당·정·군을 장악한 상태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공교롭게도 북한인권법안의 미상원 통과 직후인 지난 29일 44명의 탈북자들이 주중 캐나다 대사관에 진입했었다. 선궈팡(沈國放)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30일 이와 관련,이례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갖고 “중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진입한 만큼 캐나다측은 이들을 중국에 넘겨야 한다.”며 탈북자 44명의 신병인도를 요구했다.그는 “우리는 이들을 국제법과 국내법,그리고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처리할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탈북자 9명이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의 미국 국제학교에 진입했으나 학교측에 의해 중국 공안당국에 인계됐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30일 밝혔다.소식통들은 “탈북자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간 지 1시간 뒤 중국 공안들에게 연행됐다.”며 “이들은 ‘도와달라.’고 애원했으나 결국 학교측의 연락을 받은 중국 공안에 넘겨졌다.”고 전했다. 탈북자를 중국 공안에 넘긴 시점은 지난달 28일 미 상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기 전 일이지만,탈북자 처리 문제와 관련한 중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이 반영된 것인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 28일 북한인권담당 특사 임명과 북한 인권증진을 위해 매년 2400만 달러 한도의 지출 승인 등을 골자로 한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이 법안은 비정부기구(NGO)가 개입되는 ‘기획 탈북’을 더욱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국 현지의 분위기이다. 중국 정부가 일단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최근들어 NGO들의 활동이 심상치 않은데다 다양한 탈북 루트가 개발되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과거 탈북자들이 제3국행의 출발점으로 베이징을 선호한 것은 인권단체나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브로커’들이 몰려있었고 비교적 장기간 은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상하이 외국학교 탈북자 진입사건에서 보듯 중국 전역의 대도시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베이징에 경비가 강화되면서 진입이 다소 손쉬운 상하이나 광저우(廣州),칭다오(靑島) 등 중국 전역의 외국 공관 또는 외국인 학교로 진입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 인권법안 통과가 탈북을 희망하는 북한 주민들이나 NGO 모두에게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향후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한·중·미 3국간 외교적 긴장이 더욱 첨예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oilman@seoul.co.kr
  • [美상원 통과 北인권법] 美 국무부에 北인권특사 신설

    [美상원 통과 北인권법] 美 국무부에 北인권특사 신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28일 미국 상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은 ▲북한주민 인권보호 ▲북한주민 지원 ▲탈북자 보호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해마다 최고 2400만달러의 예산을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북 라디오 방송 12시간 연장” 북한인권법안에 따라 미 정부는 북한의 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시장경제 증진 프로그램을 육성하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에 매년 200만달러를 지원할 수 있다.지원대상은 국적에 관계없기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단체들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또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나 ‘라디오자유아시아(Radio Free Asia)’와 같은 대북 방송은 하루 송출을 12시간으로 늘리는 대가로 연간 200만달러를 지원받게 된다. ●對北지원 인권분야 진전여부 연계 나머지 2000만달러는 북한 이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단체 및 개인에게 지급된다.바로 이 자금이 몽골이나 러시아 연해주,중국 일부 지역에 대규모 탈북자 수용소를 짓는 데 사용될 것으로 일부에서는 관측한다. 북한인권법안은 북한 영내의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원조는 “국제적 기준에 따라 분배되고 감시돼야 하며 대 북한 기타 원조는 북한 내 인권 분야 등에서의 실질적 진전 여부 등에 연계돼야 한다.”고 규정했다.당초 하원안은 이같은 조건을 부과하면서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경우 조건 적용을 유보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그러나 상원안은 아예 이 조항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 입장으로 완화했다. ●한국정착 탈북자 미국 망명 제한 북한인권법안은 “북한 주민이 한국 헌법에 따라 향유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적 취득권을 이유로 미국으로의 난민 또는 망명신청 자격을 제한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그러나 이 조항이 모든 탈북자의 망명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미국의 이민 및 국적법을 적용하면 일단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은 망명신청이 제한된다.정치적 박해 등 특별한 사유가 있고,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반면 한국을 경유하지 않은 탈북자는 망명신청이 허용된다.그러나 한국정부가 제공하는 것과 같은 지원은 없다. ●“대량탈북 없을 것” 미국내의 보수적인 북한 인권단체들은 지난여름부터 “일단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면 대규모 탈북사태는 물론 북한 내부에서의 변화도 나타날 것”이라고 호언해 왔다.그러나 미국의 진보적 인권단체들은 북한주민의 대거 미국 망명 가능성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오히려 한국의 일부 단체와 개인들이 탈북자들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dawn@seoul.co.kr
  • 美 年 2400만弗 탈북지원…北인권법 통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상원은 28일 저녁(현지시간) 대 북한 인권 공세를 강화하고,탈북자의 미국 망명 허용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법안은 다음 달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상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에는 하원에서 이송된 기존 법안에 ▲북한인권담당 특사를 임명하고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북한과의 지역인권대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그러나 미국 정부의 대북 원조를 북한의 인권 상황과 연계해야 한다는 하원안의 조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 입장으로 완화됐다.법안에 따라 미 정부는 북한 안팎의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2400만달러(276억원)의 예산을 쓸 수 있게 됐다.새로 임명될 북한인권담당 특사는 북한과의 인권 관련 대화를 추진하며 2400만달러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할도 맡게 될 것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인권법안이 상·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함에 따라 미 행정부는 대북 외교에서 핵과 함께 인권 문제를 본격 거론할 것으로 보여 이 법안을 ‘북한전복법안’이라고 비난해온 북한의 거센 반발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또 한국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안 입법에 반발해 왔기 때문에 한·미 양국의 정치권 사이에도 불편한 기류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인권법안 통과에 앞장서온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캔자스) 상원의원은 이날 저녁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 한인교회연합(KCC) 전국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소련붕괴와 마찬가지로 북한 김정일 정권의 몰락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미 상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을 일부 수정함에 따라 법안은 다시 하원으로 이송돼 재통과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하원을 재통과한 법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면 즉시 발효된다.의회 관계자들은 다음 달 안에 부시 대통령의 서명절차까지 모두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dawn@seoul.co.kr
  • “北·中등 8개국 종교자유 없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국제 종교 자유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거나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투옥,고문을 당하고 일부는 생화학전을 위한 생체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탈북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하고 “북한 정권이 이같은 보고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나,최근 수년간 드러난 인가받지 못한 종교 활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 사례들로 미뤄볼 때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북한은 특히 주민들이 중국 등에서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개종했을 경우 모질게 고문을 가하거나 처형시킨다는 미확인 보고들도 있었다고 이 보고서는 말했다.그러나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미 국무부가 일부 탈북자들의 허황된 발언을 여과없이 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한국의 종교·민간 단체들에 의한 남북간 화해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측간 교류는 제한적이라면서 “그러한 접촉들이 북한의 종교 자유에 효과를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존 한포드 미 국무부 국제종교 자유 담당 특사는 이날 회견을 통해 “북한은 아마 세계 최대의 종교인 수감자를 가진 국가일 것”이라면서 “북한과 같은 종교억압 국가들의 문제는 신앙인들이 잔혹한 탄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과 중국,쿠바,미얀마,이란,수단 등 5개국을 비종교자유국가로 재지정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에리트레아,베트남 등 3개국을 새로 추가했다. dawn@seoul.co.kr
  • 차승원·장서희 주연 ‘귀신이 산다’

    17일 개봉하는 ‘귀신이 산다’(제작 시네마서비스)는 흥행메이커 김상진 감독과 배우 차승원이 또 한번 콤비를 이룬 코미디물. ‘광복절 특사’(2002년) 이후 2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귀신과 인간이 한 집에서 대치한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난한 홀아버지 밑에서 셋방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필기(차승원)는 꼭 집부터 사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마침내 받들었다.밤마다 대리운전을 해가며 모은 돈으로 바닷가 한적한 저택의 주인이 된 것.그러나 기쁨도 잠시.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는가 싶더니 집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귀신(장서희)이 나타나 그를 몰아내려고 갖은 협박을 한다. 황당한 이야기라며 처음부터 마음을 닫아버릴 관객들을 의식해 영화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효과적 장치를 고안했다.주인공이 집을 사기까지의 애환과 곡절이 도입부에서 충분히 압축설명되는 것.그 과정을 지나면서 필기를 향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연민과 동조로 순화된다. 귀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그에 맞서 필기는 혼자 필사적인 ‘원맨쇼’를 한다.굿판을 벌이는 등 자잘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들과 차승원의 일인기로 영화는 거의 절반이 채워지다시피 한다. 동어반복의 지루함을 느낄 중반 즈음 여자귀신 연화의 본격 등장으로 드라마는 새 국면을 맞는다.교통사고로 죽은 연화가 남편을 기다리며 옛집에 머물고 있는 사연을 들은 필기는 그녀를 도우며 ‘동거’하기로 마음을 바꾼다.둘의 화해를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갈등장치가 단순한 상황 코미디를 극복하는 처방이 됐다.악덕 부동산업자(진유영)의 위협에 맞서 연화를 위해 집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필기의 모습이 제법 묵직한 감동을 길어올린다.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 컴퓨터그래픽 덕분에 볼거리도 화려한 코미디가 됐다.그러나 지나치게 장황한 설명이 감상의 감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흠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i.kr
  • 러언론 “인명피해 큰건 푸틴탓”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베슬란 인질극이 6일(현지시간)로 발생 닷새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 비판을 금기시해온 러시아 언론들이 인질극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처참한 현장 사진을 신문에 비중 있게 게재한 유력 신문 편집장이 해임된 것으로 알려져 언론 탄압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례적 정부비판 보도 쏟아져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이날 “인질극의 원인이 국제테러리즘 탓이라는 크렘린 주장은 어린이 인질들의 희생이 지난 10년 간 계속된 체첸 내전이 아닌 국제테러리즘 때문이라는 얘기”라며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블라디미르 리츠코프 의원의 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푸틴 대통령과 연방보안국(FSB),내무부가 져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난을 퍼부었다. 비판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현장의 참혹한 사진을 신문에 게재한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 편집장 래프 샤히로프가 그 때문에 해임됐다고 라디오방송 ‘에코 모스크바’가 6일 보도했다. ●“러시아,체첸 반군에 협조 요청” 한편 알렉산드르 자소호프 북오세티야 대통령이 인질극 발생 직후인 2일 체첸 반군의 특사인 아흐메드 자카예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6일 모스크바 타임스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신문은 런던에 망명중인 자카예프의 말을 인용,“자소호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1000명이 넘는 인질이 잡혀 있으니 인질범들과 협상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자카예프는 자소호프 대통령이 크렘린 승인하에 이런 부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체첸 반군과 협상은 없다.’던 푸틴의 정책이 반전됐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용의자 “어린이들에게 미안” 5일 러시아 국영TV ‘채널 1’은 이번 인질극의 범인 가운데 한명으로 러시아군이 생포했다고 알려진 남성의 인터뷰를 내보냈다.그는 기자가 “어린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묻자 “알라에게 맹세컨대 미안했다.나에게도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총을 쐈느냐는 질문엔 “결코 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알라를 언급한 것으로 미뤄 무슬림인 그는 체첸과 북오세티야 등 러시아의 북카프카스 주민처럼 러시아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TV는 이름과 국적을 밝히지 않았고 범인이라는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seoul.co.kr
  • 체첸 대선 친크렘린계 알하노프 압승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저항세력의 암살로 지난 5월 사망한 대통령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29일(현지시간) 실시된 체첸 대통령 선거 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현직 내무장관 알루 알하노프 후보가 당선됐다.크렘린은 이번 선거 결과를 “(체첸) 안정을 위한 진일보”라고 평가했지만 체첸 내부에서는 부정선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저항세력은 이번에 선출된 대통령 역시 암살할 것임을 공언해온 상황이어서 체첸 정국 불안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알하노프 후보는 최종 개표 결과 73.48%의 득표율로 다른 여섯 명의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을 확정지었다고 외신들이 30일 보도했다.AFP통신은 투표율이 약 80%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도 실제 투표소들은 한산했다며 목격자들의 말을 빌려 곳곳에서 부정 행위가 있었다고 전했다.러시아 일부 언론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알하노프 당선자는 분리주의자와 대화할 가능성은 없다며 저항세력과 협상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저항세력을 이끄는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특사 아흐마드 자카예프도 성명을 통해,군사 개입과 검열 등 조직적 선거 개입이 있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연방의 21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인 체첸은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저항세력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왔고 그 때문에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국제 문제화되고 있다.24일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 2대의 추락 사고도 체첸 저항세력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러시아 언론들은 30일 연방보안국(FSB) 관리들의 말을 인용,당국이 이번 사고를 테러에 의한 폭발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벽산 김재우 사장은 영락없는 용장(勇將)의 이미지다.180㎝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삼국지 관운장의 풍모다.올해로 벽산 CEO(최고경영자)가 된 지 7년째.IMF(국제통화기금)사태 속 붕괴 직전에 놓였던 적자회사를 단단한 흑자회사로 돌려놓은 능력이 장수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불황기를 맞아 회사 업무 외에도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바쁜 강연 일정이 잡힌 그를 만나 36년 경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위험+기회’ -1998년 1월3일 사장 취임식장은 바깥 날씨보다 더한 한기가 돌았다.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선언한 지 딱 1개월 되던 시점.40년 된 회사와 1000명 직원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다. 97년 적자는 300억원에 달했고,부채는 1800억원이 넘었다.외상매출의 5분의1 정도는 대금을 못받는 악성채권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패닉상태였다.새 사장은 건축자재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었고,직원들은 극도의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합친 말 아닌가.”취임한 지 3개월째 들면서 지난 2개월동안의 구상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우선 직원을 980명에서 45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하지만 사람들을 그냥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150명에게 우리회사 제품의 총판점을 차릴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했다.건축자재 시장이 불황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수요를 잘 예측·분석하는 최일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노련한 벽산의 직원들이야말로 우리 제품을 제대로 팔아줄 사람들이었다.당시 2∼3명씩 한 조가 돼 창업한 총판점 가운데는 현재 연 매출액이 100억원에 가까운 곳도 있다. -당시 금리는 살인적이었다.1개월짜리 CP(기업어음) 이자가 연 30%에 달했다.반면 회사매출의 60%는 외상거래여서 자금이 제대로 안돌았다.그나마 이 중 30%는 부도 등으로 대금을 고스란히 떼이는 판이었다.차라리 물건을 안 파는 게 나았다.거래처를 4000개에서 400개로 10%만 남기고 다 없앴다.판매목표는 전년의 60%로 낮췄다.목표를 무리하게 잡아 ‘부실판매’를 낳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대신에 거래조건은 강화해 반드시 담보가 있는 곳에만 납품하게 했다.그 외에는 100% 현금거래였다.얼마 안 지나 취임 때 16%에 달하던 부실채권 발생률이 0.1% 이하로 떨어졌다. -인력과 고객의 구조조정에 이어 그해 5월에는 의사결정의 슬림화에 착수했다.내가 가진 결정권을 10%로 줄이고 일선 책임자에게 90%를 넘겼다.조직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CEO가 바빠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미국의 경영학자 알프레드 스로운의 “1%를 경영하라.”는 말처럼 CEO가 바쁜 이유가 책상에 앉아 결재할 서류 때문이어서는 안된다.지금도 나는 “반드시 내 결재가 필요한 일인가.” 자문해 본 뒤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몇십억원이 집행되는 일이라도 직원들에게 맡긴다.CEO가 바쁘면 변화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나한테 걸레면 남한테도 걸레” -그해 8월6일 워크아웃이 시작됐다.회사 전체매출의 40%를 차지하던 전남 여수와 경남 진해의 석고보드 공장을 프랑스 라파즈(유럽 최대의 시멘트 골조회사)에 매각했다.생산량의 절반은 우리가 판매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벽산의 대명사 ‘석고보드’를 매각하려는 데 임직원의 반대가 거셌지만 나는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며 일축했다.나에게 소중한 것을 팔아야 남이 사준다는 얘기였다.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한 구상이 있었다.“글로벌화는 불가피하다.하지만 우리 업역의 특성이나 규모로 볼 때 글로벌화를 선도하기는 어렵다.그렇다면 글로벌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지금도 여수·진해 공장에서 생산된 석고보드는 각각 50%씩 ‘벽산 석고보드’와 ‘라파즈 석고보드’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던 2001년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경영정상화 성공사례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임직원 30여명과 함께 97년 300억원 적자회사에서 2000년 30억원 흑자회사로 전환시킨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냈다.제목은 ‘누가 그래? 우리 회사 망한다고’.이어 2002년 워크아웃 공식졸업 이후에는 2탄으로 ‘거봐! 안망한다고 했지’를 출간했다.벽산이 금세라도 망할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던진 성공리포트였다. -70년대 중동에서 불모의 열사를 누볐던 일들은 두고두고 나에게 재산이 됐다.특히 75년 1억달러 수주기록은 김재우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각인시킨 일로 남아 있다.73년 나는 30세에 삼성물산 영국 런던지사장으로 갔다.이제 막 산업화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진국.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이듬해 나는 레바논 베이루트지사장으로 발령났다.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던 당시는 거꾸로 중동 ‘오일달러’를 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회사에서는 해결사로 나를 보냈지만 나의 상심은 대단했다.여유로운 생활은 물론이고 그룹내 최고의 영어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아랍의 현자(賢者) 한사람을 만났다.그는 “사람의 운명은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당신은 경쟁자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나았기에 원치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장기적으로 더 나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뜨거운 모랫바람을 맞아가며 중동 각국의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만났다.어느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성 관료가 나를 찾았다.“군복,탄띠,요대 등 군대 비축물품을 300여가지 장만하려는데 삼성물산에서 공급할 수 있겠느냐.”그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있게 “예스”라고 했다. 수주금액은 무려 1억 100만달러.당시 삼성물산의 연간 전체 수출액이 2억달러였다.다행히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서 나와 회사는 중동지역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81년 우리나라가 이라크와 국교수립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교류단장으로 미력이나마 공헌한 것도 그때 인연이 컸다. -우리 직원들은 매월 한권씩 책을 돌려본다.같은 책을 150권 사서 서로 돌려보고 독후감을 작성한다.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50여권을 읽었다.책 한권을 고르기 위해 나는 두 세권을 읽는다.얼마 전에는 조난당한 남극탐험대원 27명을 2년 만에 무사히 생환시킨 어니스트 새클턴 함장의 이야기를 다룬 ‘인듀어런스’를 감명깊게 봤다.고등학교 때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만큼 큰 감동이었다.둘 다 살아있는 한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마찬가지로 요기 베라(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의 명언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다.‘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회의시간에 고개 숙이고 자료 읽는 사람과는 얘기를 안한다.생각을 안해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즈를 자주 인용한다.생각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내는 홈즈와 단서를 뻔히 눈앞에 보고서도 추리를 하지 않는 그의 친구 존 왓슨이 비교대상이다.내가 최고로 치는 가치도 의사결정의 속도다.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언제’(When)”라고 했다.빨리 내린 잘못된 결정이 늦게 내린 바른 결정보다 차라리 낫다는게 내 신조다.나는 회의를 마칠 때 반드시 논의된 사항들의 중간점검을 하게 한다.그래야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아무 것도 결정짓지 못하는 회의는 쓰레기다. -벽산은 98년 워크아웃 개시와 동시에 정보화 투자를 시작했다.전 사원이 상여금을 반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추진한 게 ‘1인 1PC 갖기’였다.이를 ‘사치’라고 느낀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평생직장은 없다.이곳을 떠나 다른 조직에 가더라도 정보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며 다독거렸다.우리가 빠르게 수렁에서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화를 통한 생산효율 향상이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 중 업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하지만 그는 만 80이 된 지금도 대통령 특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그는 ‘희망보다 후회가 많을 때 늙는다.’고 했다.나는 항상 ‘오늘은 내 여생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직원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그런 점에서 아침시간은 ‘황금을 물고 있는’ 귀한 시간이다.하루에 1시간만 일찍 움직이면 1년에 보름이 내 손에 들어온다. ■ 김재우 사장은 ㈜벽산 김재우(金在祐·61) 사장은 별명이 많다.삼성에 있을 때에는 ‘일공일’(101)로 통했다.197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1백만달러(1억 100만달러) 납품을 따낸 게 인연이 됐다.98년 벽산에 온 뒤에는 ‘구조조정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요즘은 온갖 강연이나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받는 ‘스타 강사’다.30년 삼성맨 생활을 마치고 벽산의 최고경영자로 와서 경영권한 이양,매출목표 감축,거래선 축소 등 역(逆)발상을 통해 회사를 빠르게 정상화시켰다.97년 1816억원(부채비율 297.1%)이던 부채는 현재 210억원(59.2%)에 불과하다.지난해 매출은 2000억원이며 OA플로어,슬레이트,재래식 천장,미네랄 울,압출발포 폴리스틸렌 등에서 업계 1위다.그의 경영철학은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다.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 지 알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44년 경남 마산 출생 ▲경북사대부고·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삼성물산 특수사업본부장·정보산업 총괄전무,삼성항공·삼성물산·삼성중공업 부사장 ▲97년 벽산건설 사장 ▲98년 벽산 사장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엇박자 黨 누구말을 믿나

    열린우리당을 진앙지로 한 ‘당·정·청’간 엇박자가 다시 시작됐다.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참여정부가 중시하는 중소기업 정책과 관련,여당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청와대는 집권여당 의장이 밝힌 ‘8·15 특별사면 적극검토’를 “계획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당에서 한다면 합니다”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의장과 안병엽 제3정조위원장 등은 27일 전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간담회에서 밝힌 단체수의계약 폐지방침에 대해 “어제 말한 대로 한다.”고 재확인했다.홍 의장은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중소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를 재고해 달라.”는 건의에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는 1∼2년간 유예하고 그 사이에 중소기업도 살고 공정경쟁도 이룰 수 있는 보완적 방법을 행정부와 협의해서 추진하겠다.”고 이들에게 ‘선물’을 줬다. 그러나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에 대해 “일괄폐지 방침에서 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정부는 지난 22일 공공기관 수요품을 중소기업조합을 통해 우선 구매토록 한 단체수의 계약제를 40년 만에 없애고 중소기업간 경쟁제도를 도입키로 확정,발표했었다. 여당의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 유예방침은 최근 감사원에서도 전면 재검토 및 개편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중소기업 정책 조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해서 챙기겠다고 했을 정도로 참여정부가 중요시하는 정책이다.지난 7일 청와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중소기업 정책을 보다 실효성있게 추진하기 위해 중소기업 특위를 재구성하고 기능을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기특위 간사를 산자부 장관이 맡으라고 지시했다.구체적인 안이 마련될 때까지 당분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해서 중소기업 정책 조정기능을 활성화하고 중소기업 대책을 차질없이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고 했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당에서 정부측과 협의없이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주는’식으로 정부정책을 뒷다리 잡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당 안팎서도 “사고력 부재” 비판 신기남 의장은 지난 19일 민주화실천가족 운동협의회 대표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8·15 특별사면과 관련,“특사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 가능한 만큼 법무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이들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까지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하기 위한 어떠한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으며,계획도 없는 상태”라고 언급,신 의장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런 문제가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최근 북방한계선(NLL) 사태를 두고 혼선을 빚은 것에서 드러나듯 여당의 정보력 부재,전략적 사고 부재 등을 나타낸 것 아니냐.”고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수단 학살’ 국제사회 제재 나섰다

    ‘수단 학살극’을 막기 위해 마침내 국제사회가 팔을 걷어붙였다.유엔과 미·영은 군사 개입을 포함한 제재방안을 모색하고 있고,교황청에서는 특사를 파견했다.현재 아프리카에서 국토면적이 가장 큰 국가인 수단에서는 ‘인종청소’를 방불케 하는 끔찍한 학살과 성폭행 등이 이어지고 있다. ●미 의회,수단 제재 결의안 통과 22일(현지시간) 미 상·하 양원은 수단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행위를 대량학살로 규정,백악관에 폭력사태 종식을 위해 다각적 또는 단독으로라도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 수단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수단 정부가 30일 안에 학살극을 주도해온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 지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무기금수를 포함한 각종 제재를 가하자는 내용이다. 영국은 ‘군사 개입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토니 블레어 총리는 22일 아난 총장과의 통화에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아직 군사 개입을 결정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혀 군사 개입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앞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정부가 수단 파병계획을 완료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도 거들고 나섰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단 정부에 폭력과 인권유린 종식을 촉구하면서 파울 조세프 코르데스 대주교를 특사로 임명,수단의 수도 하르툼으로 보냈다. ●종교와 인종 문제로 얼룩진 수단 가뭄과 방목지 부족으로 터전을 잃은 사하라 지역 아랍 유목민들은 서서히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으로 이동해왔다.숫자가 많아지면서 원주민과 유목민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다르푸르는 수단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기도 하다.지난 2003년 2월 흑인 원주민으로 구성된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은 ‘중앙정부가 다르푸르 원주민을 무시하고 버렸다.’면서 무장봉기했다. 이들 단체는 수단의 야당 지도자 하산 알 투라비를 지지한다.또 수단 원주민들은 토속종교를 믿고 있다.반면 수단의 통치세력은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슬람 군부와 이슬람계 정당국민의회당(NCP)의 연합세력이다. 수단 정부는 잔자위드를 내세워 살인과 성폭력,가옥 파괴 등 잔인한 방법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지난 19일 국제사면위원회(AI)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민병대가 남자들은 학살하고 여성들은 조직적으로 공개 성폭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성폭행 대상은 8세부터 80세까지 노소를 가리지 않으며,여성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고문을 하기도 한다.인구가 670만명인 다르푸르에서 지금까지 1만∼3만명이 살해됐고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동안 미국은 수단 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추방하는 등 대테러 정책에 협조해왔고,아프리카에서 수단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단“군사 개입시 ‘제2의 이라크’ 될 것” 수단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무스타파 이스마일 수단 외무장관은 “미·영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수단 정부군은 다르푸르에서 철수하겠다.”면서 “영·미는 이라크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다른 한편으로 수단 정부는 잔자위드와 무관함을 강조하면서 ‘잔자위드를 무장 해제시키고 인권감독관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이라크 인질납치 무차별 확산

    이라크의 인질 납치 사태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파병국에서 비파병국 외국인들로 대상이 확대됐던 인질 납치 사태가 급기야 이라크 국민들을 대상으로 돈을 노린 납치로 번지면서 이라크 내 치안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최근 들어 이라크 국민을 겨냥한 납치가 크게 늘어 하루에 10∼30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라크 내무부 관리들은 보고 있다. 한편 케냐 정부는 22일(현지시간) 이라크내 자국민의 철수를 강력 요청하고 나섰다.자국민 3명과 인도·이집트인 등 7명을 납치한 저항단체의 요구에 가장 먼저 응한 셈이다. 이 결정에 대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런 식으로 협상하게 되면 납치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요르단 출신으로 저항세력의 지도자인 테러범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은신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팔루자의 한 가옥에 정밀타격을 가했다.이달 들어 벌써 5번째 자르카위의 테러조직을 겨냥한 표적 공격이다. 이런 가운데 참수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시체가 이날 티그리스 강변에서 발견됐다.현지 경찰이 잘려진 머리가 들어있는 가방과 함께 붉은 색 점퍼의 시신을 발견했다.불가리아 정부는 자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한 무장 저항단체에 의해 납치된 2명 중 1명의 시신인 것으로 추정하고 확인작업 중이다.나머지 1명도 참수돼 지난 15일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외국인에 대한 납치가 횡행하자 역내 순방에 나선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의 파병요청에 아랍국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이라크 상황이 워낙 복잡해 섣불리 이라크에 개입,화를 자초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아슈라프 카지 신임 이라크 특사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이라크를 방문하겠지만 치안문제로 대규모 유엔 직원들을 이라크로 파견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의문사조사관 ‘간첩전과’ 논란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민간인 출신 조사관 3명이 간첩죄와 반국가단체 가입죄 등으로 복역했던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돼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는 15일 “이미 수년전 사면복권된 조사관들을 문제삼는 것은 위원회의 위상을 손상시키려는 악의적 호도이며 인격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의문사위와 검찰 등에 따르면 1기 때도 활동한 조사관 H씨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연락국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1990년 구속된 뒤 8년간 복역하고 만기출소했다.이후 2000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L씨는 1986년 군 복무중 “군은 정권획득을 위한 수단일뿐 우리 현실에는 공산주의가 더 적합하다.”고 발언했다가 1년간 복역한 뒤 1987년 12월 사면 복권됐다. K씨는 1992년 재일간첩에 포섭돼 국내의 군사기밀자료를 북한측에 넘겨주고 공작금 60만엔을 받은 혐의로 4년을 복역한 뒤 1997년 만기출소했다.이후 1999년 2월 대통령 취임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이들은 군 관련 사건을 다루는 조사3과 소속으로 최근 논란이 됐던 비전향 장기수의 민주화운동 인정 사건 담당은 아니었다. 의문사위는 “3명 모두 지난해 2기 의문사위 출범 때 필기와 면접 등을 거쳐 공개 채용된 전문위원으로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 전문위원은 직급에 따라 4∼7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현재 의문사위 조사관은 64명이며 이 가운데 37명은 민간인 출신,나머지는 검찰과 경찰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5개 단체는 이날 공동 논평을 내고 “의문사위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색깔 덧씌우기”라면서 “일부 언론이 문제삼은 조사관들이 국가보안법과 프락치 공작에 의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과거사 청산과 의문사 진상규명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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