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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 거부한 中 공자평화상 코피 아난 前 총장은 받을까

    중국 민간단체가 노벨평화상 ‘대항마’로 제정한 공자평화상 3회 수상자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중국 ‘하이브리드 쌀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안룽핑(袁隆平) 후난(湖南)농업대 교수가 공동 선정됐다.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는 6일 아난 전 총장이 유엔에서 세계 평화의 정착 등을 위해 힘썼을 뿐 아니라 지난 4월 유엔 및 아랍연맹 특사를 맡아 시리아 유혈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위안 교수는 벼 품종 개량을 통해 중국의 식량 혁명을 이룬 업적이 인정됐다는 것. 상금은 각각 10만 위안(약 1740만원)씩이다. 공자평화상은 2010년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이에 맞서 국제평화연구센터가 제정했다. 이 단체가 중국 정부와 연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해 중국 문화부는 시상 계획을 취소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두 차례 모두 시상식은 파행적으로 열렸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시상 계획을 불허하자 홍콩으로 옮겨 강행했지만 2회 수상자로 선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는 시상식에 불참했다. 앞서 2010년 1회 수상자로 선정된 타이완 국민당의 롄잔(連戰) 명예주석도 “아는 바가 없다.”며 시상식에 불참, 공자평화상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바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文 “가장 먼저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일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 처음으로 강원 지역을 방문해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이날 강원 고성·속초 등을 찾아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해 군의 과학화, 강원 평화특별자치도 지정 등을 약속했다. 그는 북한군의 ‘노크 귀순’으로 철책이 뚫렸던 22사단의 한 부대 철책선을 둘러본 뒤 “국내 정보기술(IT)과 과학기술 수준을 보면 폐쇄회로(CC) TV 확대, 철책 감지장치 설치 등 과학적 경계도 가능하다.”면서 “군 경계 시스템 재점검, 과학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병사들의 복지 수준도 높일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면서 “안보에 구멍이 뻥뻥 뚫린 새누리당 정권”이라고 비판한 뒤 자신을 “안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후보”라고 자평했다. 이어 문 후보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주민들과 마을 복지회관에서 만나 “정권교체를 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취임식에 초청하고 가장 먼저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부터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는 강릉 원주대 해람문화관에서 열린 강원도당 선대위 출범식에도 참석해 지역 기반을 다졌다.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올림픽으로 유치하고, 금강산-비무장지대-설악산-평창을 잇는 국제 관광벨트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2일에도 춘천에서 열리는 평화특별자치도 심포지엄과 원주 혁신도시 방문 등 ‘강원 행보’를 이어 간다. 지지율 열세 지역인 데다 방문이 늦은 만큼 일정도 이틀을 잡았다. 고성·속초·강릉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시리아 정부군, 다마스쿠스에 첫 전투기 공습

    시리아 정부군, 다마스쿠스에 첫 전투기 공습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이 이슬람 명절을 맞아 합의했던 나흘간의 임시휴전이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시리아 내전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이 30일(현지시간) 전투기를 동원해 수도 다마스쿠스를 처음으로 공습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의 라미 압델 라흐만 소장은 이날 “공군 전투기가 다마스쿠스 동쪽 조바르 지역에 4개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전했다. 정부군은 그동안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을 상대로 전투기 공습을 감행해왔으나 다마스쿠스를 직접 공습한 것은 사태 발발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공습은 다마스쿠스 외에도 중부도시 홈스 외곽을 비롯해 다마스쿠스와 북부도시 알레포를 잇는 고속도로 인근 마라트 알 누만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현지 활동가들은 마라트 알 누만에서 정부군 공습으로 28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주장하면서 한 남성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어린 딸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정부군은 핵심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수주간 이 지역에 대한 공습을 강화해왔다. 홈스 인근에서도 반군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공습으로 민간인 57명을 포함, 최소 120여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FSA는 이날 인터넷에 공개한 성명에서 전날 밤 발생한 압둘라 마무드 알칼리디 공군 장성 암살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시리아국영방송은 “무장 테러그룹이 다마스쿠스 북부에서 알칼리디 장군을 암살했다.”고 보도했다. 알칼리디 장군은 지인의 집을 나서다 총탄에 맞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중국을 방문중인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담당 특사는 31일 중국이 시리아 사태 해결에 적극적 역할을 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브라히미 특사는 지난 29일 모스크바 방문때도 러시아 외무장관과 시리아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간 시리아 폭력 종식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세 차례 반대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시리아 300명 사망 ‘핏빛 휴전’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된 지난 26일(현지시간)부터 사흘째 시리아 전역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해 사망자가 300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군과 최대 반군 조직인 자유시리아연합군(FSA)은 앞서 26일부터 나흘간 임시 휴전에 합의했으나 계속되는 충돌로 사실상 휴전은 파기됐고 시리아 사태 해결도 어렵게 됐다. 시리아인권관측소 라미 압델 라흐만 소장은 “휴전은 끝났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28일 전했다. 이날도 시리아 곳곳에서 정부군 전투기의 폭격과 정부군·반군의 교전 등으로 사상자가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전날 시리아 전역에서 차량 폭탄테러와 양측의 교전 등으로 민간인 47명, 정부군 36명, 반군 31명 등 모두 114명이 사망했다. 휴전 첫날인 26일에도 민간인 53명 등 모두 146명이 숨져 이틀간 26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흘째인 28일 예상되는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3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FSA 알레포 사령관 압델 자바르 알오카이디 대령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방어 조치만 취했을 뿐 휴전 약속을 깨지 않았는데도 일부 전선에서 정부군이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정부군에 돌렸다. 반면 정부군 측은 “무장 테러 단체의 선제 공격에 대응한 것”이라면서 반군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편 희생제 연휴 기간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도 시아파 무슬림을 겨냥한 대규모 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22명이 숨지고 65명이 다쳤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수니파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마틴 코블러 유엔 특사는 “신자들을 겨냥한 테러 행위는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비난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北 ‘한반도 비핵화 목표’ 美에 파기 가능성 시사”

    북한이 최근 미국에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파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21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미국국 부국장은 지난달 말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미국의 클리퍼드 하트 국무부 대북 특사와 만났을 때 “핵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 등을 담은 2005년 6월의 6자회담 공동성명 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7월 20일 성명에서 “제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핵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외무성은 또 8월 31일에는 “우리의 강경입장을 무슨 전술로 보는 것은 오산”이라며 “미국이 끝내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의 핵 억지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올여름에도 미국의 전직 정부 고관에게 비슷한 견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탈레반 피격 소녀 상태 호전

    탈레반의 만행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난주 탈레반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영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파키스탄 소녀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담당 의료진이 16일(현지시간) 밝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버밍엄 퀸엘리자베스병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14)가 “지금까지 치료에 반응하는 것으로 볼 때 잘 회복할 것 같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로서 병원장은 유사프자이의 상태가 호전돼 의료진이 기뻐하고 있다면서, 그녀가 “매우 특별한 의료팀”에 의해 재건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날 유사프자이의 피격은 파키스탄의 모든 소녀에 대한 공격이자 교육과 문명에 대한 공격이라며 탈레반을 비난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유사프자이에게 ‘용기의 메달’을 주기로 했으며, 저격범 현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내걸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또 유사프자이에게 총격을 가한 파키스탄탈레반(TTP)이 전국의 다양한 기관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 대원들을 파견했다는 정보에 따라 전국에 경계령을 내렸다고 현지 일간지 익스프레스 트리뷴이 17일 보도했다. 유사프자이의 피격 사건으로 어린이 교육권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도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인 앤절리나 졸리는 이날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에 ‘우리 모두가 말랄라다.’라는 글을 통해 “전 세계에서 소녀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위협받고 있다. 우리가 모두 행동할 때”라고 강조했다. 가수 마돈나도 지난주 콘서트에서 유사프자이에게 노래를 바치면서 “교육과 여성을 지지하라.”고 외쳤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1895년 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간섭에 굴복하여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였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 하겠다는 것과 일본이 아직 그에 맞설 만한 힘을 갖지는 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노출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는 조선의 왕실과 개혁관료들이 힘을 합하여 일본의 간섭을 배제한 근대개혁도 가능한 상황이 왔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이 택한 방법은 왕실을 무력화시키거나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왕실의 반격으로 박영효와 유길준은 권력에서 쫓겨나 오랜 일본 망명생활을 했다. 박영효는 삼국간섭 이후의 정세변화를 이용하여 일본 측의 반대에도 김홍집을 총리대신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박정양, 이완용과 같은 친미근왕적 관료들과 함께 박정양-박영효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 한편, 일본이 강요했던 차관교섭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이때 박영효는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개혁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조선협회를 조직하여 개화세력의 정치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박영효, 왕실 무력화 계획 드러나 ‘몰락’ 그러나 여기서 그는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895년 6월 말 박영효는 당시 궁궐을 지키던 시위대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던 훈련대로 교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왕실마저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고종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으나 박영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종의 과격한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무력으로 왕실을 제압하고 왕비를 폐비시키는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전에 일본인 장사의 편지가 유길준에게 입수되어 고종에게 보고되었고, 7월 6일 궁정회의를 통해 박영효의 체포가 결정되었다. 결국, 박영효는 일본 공사관의 협조를 얻어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하늘을 찌르던 그의 권력은 8개월 만에 좌절되고 만다. 이후 왕실은 본격적으로 왕권 회복을 시도하였다. 근왕세력들을 내각에 포함하는 한편, 유길준을 의주부 관찰사로 좌천시켰다. 왕실 측근 홍계훈을 훈련대 연대장에 임명한 것도 일본의 지휘를 받는 훈련대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무력을 이용한 권력의 재탈환을 위해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군 출신의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파견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민간인이 주도하고 조선의 훈련대가 협력하여 왕비를 시해하고 김홍집-유길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이었다. 유길준이 여기에 직접 개입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그는 왕비를 폐서인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정당화시켜 주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왕비를 ‘세계 역사상 가장 나쁜 여자’라고 하면서 시해를 정당화하는 편지를 미국의 모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왕비 시해사건의 방조자로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유길준, 단발령 반대 의병운동 부딪쳐 ‘추락’ 이후 유길준은 내부대신으로서 김홍집 총리대신과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며 개혁을 주도하여 이 시기를 김홍집-유길준 내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주사에서 대신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도했던 단발령의 시행은 결국 갑오개혁은 물론 그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단발령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길준은 한성을 수비하고 있던 병력을 지방으로 출동시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상황을 이용하여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난 것이었다. 유길준은 체포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결국, 박영효를 왕실에 고발하여 몰락시킨 유길준은 왕실에 의해 자신도 역시 몰락하고 말았다.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일본 망명 시절에도 계속해서 정변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일본 측 정보문서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고베에서 회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망명 기간 내내 별개로 활동하였다. 박영효는 독립협회 활동을 이용하여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하였다. 그는 핵심 측근세력을 귀국시켜 만민공동회를 과격화하고 이를 통해 조성된 정치적 위기를 틈타 정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으나 일본정부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이때 독립협회 내의 추종세력들이 중추원에서 투표를 통해 대신으로 임명할 만한 인물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박영효가 포함돼 있었고 이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고종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고종은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고 말았다. 한편, 유길준은 박영효와 별개로 일본 육사에 유학했던 장교들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혁명일심회 사건을 주도하였다가 1902년에 발각되었다. 이로써 그는 일본의 외딴섬에서 유배생활을 4년 정도 경험해야 했다. 고종은 망명자들을 소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은 고종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이용해 고종이 추진하는 자주적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를 전후하여 일본의 주선으로 귀국하였다. 박영효는 고종의 강제퇴위 이전에 1907년 6월 비밀리에 귀국하였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의 특별사면을 주선하여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제병합 후 박영효는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이 되었으며 일제의 지배 아래서 대표적 친일파로 활동하다가 1937년 79세로 생을 마쳤다. 한편, 유길준은 고종이 강제로 퇴위된 이후인 1907년 8월 순종의 특사령에 따라 귀국한다. 그는 귀국 후 일본이 보호조약을 맺은 진의는 평화에 있고, 대한제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통감정치는 한국외교의 대변이며 내정의 지도라고 옹호하였다. 또한, 헤이그 특사사건은 경거망동이었고 의병운동은 시국을 오해한 오합지졸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철저히 일본의 통감정치에 협력하였다. 유길준은 다시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활동에 주력하면서 친일적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성부민회를 조직하여 일본 통감의 부임 환영행사에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안중근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자 이완용 등과 함께 중국까지 가서 조문하였고, 이토의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이 강제병합을 당한 후 주어진 작위를 반납하였다. 그가 지향한 것은 일본의 지도로 자강을 이룩하는 것이었지 식민지배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1914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나마 부끄러움을 알았던 그의 처신은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다. ●朴 끝까지 친일·兪 식민지배 반대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당대에 가장 깊이 있는 문명개화론을 바탕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개화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현실개혁을 주도했던 시기는 각각 1년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세월은 대부분 망명과 유배생활로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것도 일본의 절대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을 모델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왕권과 대립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명목상의 군주였던 일본의 천황과 달리 조선의 국왕은 국가권력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권을 조선 근대화의 걸림돌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려 하였고 전복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힘에 의존하여 왕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곧 일본의 침략이 확대됨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시도는 친일매국으로 치부되었고 몰락을 초래했던 것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하여 국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따라서 왕권과 개혁관료들이 일치단결하여 외압에 맞서면서 근대개혁을 추진하였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은 서로 끊임없이 반목하면서도 공통으로 왕권과 대립하고, 일본에 의존한 근대개혁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는 대한제국의 개혁사업 실패와 보호국화 그리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근대지상주의가 민족의식과 유리되었을 때 국가는 물론 개인들에게 어떤 비극이 나타나는지를 박영효와 유길준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한미 대선 앞두고… 美 “北 도발말라” 北 “적대말라”

    한미 대선 앞두고… 美 “北 도발말라” 北 “적대말라”

    북한과 미국이 지난 27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 기회에 별도의 비공식 접촉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소식통은 28일 “어제(27일) 저녁 양측 참석자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과 클리퍼드 하트 미국 국무부 대북특사가 주최 측에서 연 만찬에 참석한 다음 따로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비공식 접촉은 NEACD 만찬이 끝난 오후 8시 이후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희 부국장도 28일 NEACD 참석 직전에 “어제 미측과 만났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만났습니다.”라며 접촉 사실을 확인했다. 최 부국장은 대화 분위기에 대한 질문에는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했고, 회담 시간은 “1시간”이라고 전했다. 최 부국장과 함께 참석한 북한의 한성렬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도 취재진의 질문에 미국과 “쌍무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북미 고위 관리의 직접 접촉은 지난 7월 말∼8월 초 하트 특사와 한성렬 주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간 뉴욕 채널을 통한 만남 이후 2개월 정도 만이다. 북·미 간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양측은 이번 접촉에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미 양국의 대선을 앞두고 도발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북한에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에 비핵화 사전조치 등 신뢰구축 조치를 먼저 취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북한 대표단은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정책을 버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미는 이날 오전 NEACD 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를 놓고 일종의 책임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국장이 북한의 핵개발 이유를 미국의 적대정책에서 찾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하트 미 국무부 대북특사는 북한이 기존 합의를 어긴 것이 문제라고 강하게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통상적인 만남이었으며 서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각국의 6자 회담 차석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NEACD는 28일 종료됐으며,우리 측 참가자인 이도훈 외교부 북핵기획단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이 별도로 접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종교벽 넘어 600리 求道순례 오세요”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종교의 벽을 넘어 600리 구도(求道)의 길을 함께 걷는 순례대회가 열린다. 종교의 벽을 뛰어 넘는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은 오는 11월 1∼11일 4대 종단 지도자와 신도 등 1만여명이 참가하는 세계순례대회를 전북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1일부터 9박10일 간 걷고 10일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종교화합 한마당이, 11일에는 세계순례포럼이 개최된다. 포럼에서는 티베트 종교문화부 삐마친조르 장관(불교), 세계평화회의 공동 대표인 이오은 교무(원불교), 로마 교황청 순례특사인 조셉 칼라피 파람빌 대주교(천주교) 등이 순례와 종교 화합의 상관관계를 조명한다. 순례대회가 열리는 순례길은 각 종단과 연구원이 2009년 전주∼완주∼김제∼익산을 잇는 240㎞를 연결하면서 ‘아름다운 순례길’이란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순례길은 1845년 한국인 첫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익산시 망성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10여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완주군 비봉면), 불교문화의 정수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전주시 다가동),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완주군 소양면) 등으로 연결된다. 순례길 선포 이후 전국에서 해마다 1만여명이 이 길을 걷고 있다. 신도는 물론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지자 문화재청은 이곳을 ‘2010년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매달 한 구간씩 나누어 순례하는 ‘도보 카페’가 마련되는 등 전국적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순례길은 성지와 함께 지역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길이다. 이들 성지에서는 신부와 목사, 스님, 교무 등 각 종단이 깨달음을 전하는 ‘종교 교류의 장’도 마련되고 일부 교회와 절 등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김수곤 조직위원장은 “순례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종교의 상생과 화합을 위해 탄생했다.”면서 “4대 종교가 순례길을 통해 통합하듯 길을 걸으며 분열과 반목의 사회가 진정으로 하나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文 “北에 특사 보내 취임식 초청”

    文 “北에 특사 보내 취임식 초청”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게 24일은 내부 전열 정비와 함께 표심 모으기에 공들인 하루였다. 후보가 유권자를 만나 정책을 설명하고 유권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타운홀 미팅’으로 정책 행보를 이어가는 한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며 호남 민심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문 후보는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카페에서 ‘문재인의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타운홀 미팅’을 갖고 시민들이 정책제안 사이트 ‘국민명령 1호’에 올린 공약들에 귀를 기울였다. 일종의 ‘정책 공모’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직접 민주주의를 부분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여자 화장실 개선, 예술인 생계 지원,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 추진 등의 생활 밀착형 공약 제안이 이어졌다. 앞서 문 후보는 오전에 이 여사를 예방했다. 최근 민주당 전통적 표밭인 호남 지역에서 문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안 후보보다 낮게 나와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차원에서다. 마포구 동교동 사저 옆 김대중도서관에서 문 후보를 맞이한 이 여사는 문 후보에게 “꼭 당선될 것 같다. 정권교체가 아주 중요하다.”라고 덕담을 건넨 뒤 “서민경제 이뤄서 많은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남북통일에 매진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에 문 후보는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여사님이 가르침을 줘서 민주개혁 진영으로선 정말 큰 힘이 된다.”면서 “당선되면 곧바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서 취임식에 초청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 후보의 선대위 진용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문 후보는 이날 후속 인선에서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인 3선 노영민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노 의원 자리는 재선인 이인영 의원이 이어받았다. 캠프 살림을 도맡아 할 총무본부장에는 재선인 우원식 의원을, 캠프의 입인 대변인에는 초선 진성준 의원을 추가로 임명했다. 대변인단은 진선미·진성준 의원 공동체제가 됐다. 진선미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GT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핵심 인사들로 중용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같은 GT계열인 박선숙 전 의원이 안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한 ‘맞불’ 겸 문단속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2주간 잠수 탔던 시진핑 센카쿠 대응전략 세웠다”

    차기 공산당 총서기로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달 초 공식석상에 모습을 감췄던 2주일 동안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둘러싼 양국 간 위기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다음 달 열리는 공산당 18기 전국대표대회(전대)의 인사문제를 조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에 서버를 둔 반체제 성향의 포털 보쉰(博訊)은 이달 초 시 부주석이 2주간 잠적한 것은 수영하다 등을 다친 비교적 가벼운 부상 탓이라고 소개한 뒤 이 기간 동안 시 부주석이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고 23일 보도했다. 보쉰은 또 시 부주석의 댜오위다오 위기대응 방식은 군사행동을 준비하는 동시에 외교 협상을 병행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시 부주석이 군사적 충돌에 대비해 핵 잠수함을 댜오위다오 부근 해역에 배치했는데, 이는 미국과 일본을 위협함으로써 중국의 외교적 주도권 장악으로 연결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베이징을 방문 중이던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과 만나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패네타 장관으로부터 “미국은 댜오위다오 주권 귀속 문제에 대해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답을 유도해 냈다고 지적했다. 보쉰은 이와 함께 시 부주석이 잠적 기간 동안 18기 전대 인사 문제를 조정했다고 전했다. 시 부주석은 전대 인사에서 가급적 연공서열 위주의 안배 대신 능력 위주의 원칙을 적용해 원래 명단에 이름이 없던 많은 인사가 막판에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난징(南京) 군구 사령관 자오커스(趙克石) 상장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총후근부장에 내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편 시 부주석은 지난 21일 광시(廣西)좡족자치구 난닝(南寧)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국·아세안 엑스포 행사장에서 필리핀 대통령 특사 마르 록사스를 만나 “중국과 필리핀 관계는 한동안 어려움에 봉착한 바 있지만 일련의 소통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 만큼 향후 (소란이) 더 이상 번복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일 간 분쟁이 확산된 상황에서 필리핀이 동중국해 문제를 확대하지 말라는 경고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IAEA “핵개발 중단” 대북 결의안 채택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북한에 핵개발 중단을 요구하고 IAEA와의 협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IAEA는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안을 통해 북한에 핵 비확산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고, 2005년 6자회담 참가국들이 발표한 성명(9·19 공동성명)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IAEA는 이번 결의안이 “북한의 완벽하고 확실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달성하고자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로버트 우드 IAEA 주재 미국 특사는 이 결의안이 “북한이 비핵화 의무와 약속을 준수하도록 국제사회가 계속 힘써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은 즉시 모든 핵 활동을 중단하고 IAEA가 이를 장기간 감시하고 확인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AEA는 지난해 총회에서도 핵개발 중단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킹 美북한인권특사 22일 방한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22일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미 국무부는 20일(현지시간) “킹 특사가 서울에서 한국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당국자들을 만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킹 특사는 또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북한 전문가들도 만나 북한인권 실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日 “외교회담 추진”…시진핑 “평화해결”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를 투입해 중국 측 동향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중국 측의 반발과 맞대응이 예상된다. 일본 자위대가 최근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조기경보기(E2C), 화상정보수집기(OP3)를 센카쿠열도 상공에 보내 중국 군함이나 해양감시선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고 21일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과 만나 미국의 개입을 경고하고,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를 ‘웃기는 짓’이라고 강력 비난했던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평화해결”을 강조하는 등 한발 물러섰다. 강경 입장이 ‘중국 위협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 부주석은 이날 광시(廣西)좡족자치구 난닝(南寧)에서 열린 중국·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엑스포 개막식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는 국가 주권과 안보, 영토를 굳건히 지켜 나가겠지만 이웃 나라와의 영토, 영해, 해양 권익 분쟁 문제를 우호적인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센카쿠열도 해역의 대치 국면은 장기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 중국 관공선은 지난 14일과 18일 센카쿠열도 해역에 두 차례 진입한 뒤 추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접속수역 바깥쪽에서 항해하고 있는 중국 해양감시선 등 모두 13척을 경계, 감시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중국 어선들은 센카쿠열도에서 200㎞ 이상 떨어진 해역에서 조업 중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오후 8시 20분쯤 우오쓰리섬 접속수역(24해리·44㎞) 안에서 타이완 해안순방서(해경) 경비함 ‘허싱(和星) 101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타이완 정부 선박이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지난 19일 중국에 특사 파견 방침을 밝힌 데 이어 20일에도 ‘적당한 시기’를 잡아 중국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연일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25일 열리는 유엔 총회 기간에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측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는 있지만 중국은 대화 재개의 선결 조건으로 국유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대화 성사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경제보복 움직임은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베이징시 당국이 지난 14일 시내 일부 출판사에 일본 관련 서적을 출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일본과의 문화 교류 등도 금지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특히 일본 우익단체인 ‘분기일본전국행동위원회’는 22일 주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수천명이 모이는 대규모 반중 시위를 벌일 예정이어서 진정단계로 들어간 양국 관계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1972년 중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센카쿠열도 문제 논의를 보류하기로 합의했지만 일본이 공식 기록에서 이런 내용을 삭제하고 합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일본의 중국 문제 전문가 다바타 히카리가 주장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인민해방군 3급 전투대비태세 발령

    中, 인민해방군 3급 전투대비태세 발령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대치가 군사 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센카쿠열도 대치 국면은 중국의 해양감시선, 어업지도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사이의 비무장 근접 대치와 양국 군함 간 원거리 무장 대치라는 복잡한 양상으로 변했다. 중국은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 군함을 파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인민해방군 산하 7대 군구 가운데 5대 군구에 3급 전투대비태세(전비태세)를 발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군의 전비태세는 4단계로 1급이 발령되면 임전태세에 돌입하고 3급이 발령되면 전투 요원의 휴가, 외출 금지와 장비의 검사 및 보충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중국 군은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3급 전비태세를 발령한 바 있다. 중국은 무력 시위의 수위를 한껏 높이는 기세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영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국제 사회에는 센카쿠열도가 분쟁 지역임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에 어업지도선과 해양감시선을 증강해 상시 배치하기로 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중국 농업부 어정국 관계자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보여주기 위해 상시적으로 댜오위다오 주변에 감시선을 파상적으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어선 보호를 명목으로 필요할 때마다 감시선을 파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센카쿠열도 해역에 연중 감시선과 지도선을 배치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내에서는 일본의 자위대가 센카쿠열도에 출동할 경우 군사 행동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잇따르고 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문회보에 따르면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중국군 장성 5명 가운데 한 명은 “일본 자위대가 댜오위다오의 중국 해역 12해리 내에 진입하거나 중국의 민간 선박이 공격받을 경우 단호하게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나머지 4명도 주전론을 전개했다. 반일 시위는 지난 18일 이후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센카쿠열도로 가려던 홍콩 시위대는 출항을 포기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 때문에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제안한 림팩(환태평양훈련)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도 양국은 대화 통로를 열어 놓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센카쿠열도 국유화 의도 등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외교부도 대변인 브리핑 등을 통해 “일본 정부는 담판을 통한 문제 해결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며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중국 세관 당국은 일본 상품에 대한 통관을 전방위로 강화하며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다. 2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중국 톈진시 세관 당국은 복수의 일본계 기업에 대해 전자제품 등의 원재료 수입과 관련한 검사 비율을 강화하겠다고 통보했다. 상하이 세관 당국은 일본에 수출되는 화학제품 원재료를 대상으로 통상 10% 정도의 검사 비율을 100%로 올려 전량 검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일본 정부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중국의 통관 강화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앤젤리나 졸리, 유엔 깃발 들고 시리아 간 까닭은

    할리우드의 여전사 앤젤리나 졸리가 시리아 난민돕기에 발벗고 나섰다. CNN등 외신들에 의하면 11년째 유엔 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를 맡고있는 졸리는UNHCR 특사 자격으로 15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의 시리아 난민캠프를 찾아 후슈야르 지바리(Hoshyar Zebari) 외무장관 등과 난민 지원책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지바리 장관은 졸리에게 시리아 난민 수가 2만1000명으로 증가했으며 대부분 이라크 서부 안바와 북부 두혹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졸리는 이에 앞서 터키, 레바논, 요르단에 있는 난민캠프를 방문해, 국제사회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도적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아이 6명을 키우는 졸리는 많은 시리아 고아들이 느끼는 공포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인터넷 뉴스팀
  • 대장균 검출된 민물장어집…경기도 14곳 무더기 적발

    수족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대장균이 검출된 경기도 내 민물장어집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달 22일 군포·의왕·안양의 150㎡ 규모 이상 장어취급점 16곳의 위생실태를 점검한 결과 14곳이 부적합했다고 12일 밝혔다. 안양시의 A업소는 수족관 물에서 대장균군이 기준치(1000CFU/㎖)를 160배 초과한 16만CFU/㎖가 검출됐고, 일반세균도 기준치(10만CFU/㎖)보다 17배를 초과했다. 나머지 5개 업소에서는 기준치 10배 이상의 대장균군이 발견됐고 일반세균 기준치를 웃도는 곳도 4곳으로 조사됐다. 이들 10개 업소 외에 나머지 4개 업소는 미신고 영업,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을 팔아 식품위생법 관리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도 특사경은 적발 업소에 대해 형사처벌과 함께 해당 지자체에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하도록 통보했다. 강희진 도 특별사법경찰단장은 “민물장어 취급업소들의 수족관 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대북 수해지원 밀가루 500t 11일 첫 전달

    대북 수해지원용 밀가루가 오는 11일 처음으로 북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통일부는 6일 “월드비전이 신청한 대북 수해지원용 밀가루 500t(2억 5000만원 상당)의 반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월드비전은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11일 육로로 북한 개성에 밀가루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 밀가루는 평안남도 안주시와 개천시에 분배될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월드비전 측이 분배계획서에 대해 북측과 합의해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51개 대북 인도지원단체의 협의체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도 수해지원용으로 밀가루 1000t의 지원을 추진 중이다. 통일부는 또 ‘섬김’이 신청한 3000만원 상당의 빵 반출을 승인했다. 이는 수해지원과 다른 일반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 나선지역의 탁아소와 소학교에 전달될 예정이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 수해 지원에 당장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4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홍수 피해 실태를 주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북한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지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킹 특사는 북한 새 지도부가 지원 요청을 할 경우에 대해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검토해 볼 것”이라며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판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킹 특사는 또 현재 미국과 북한이 ‘뉴욕채널’을 통해 “필요할 때 소통을 하고 있으나 이 창구를 통해 대북 지원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오일만·김미경기자 oilman@seoul.co.kr
  • 시리아, 8월에만 5440명 사망

    시리아에서 지난달 내전으로 발생한 사망자 수가 5000명을 넘겨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래 월간 사망자 수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지난 8월 한 달 동안 시리아에서 민간인 4114명을 포함해 모두 5440명이 사망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또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후 17개월 동안 민간인 1만 8500명을 포함해 모두 2만 6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매달 1500여명씩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볼 때 지난 한 달간 사망자 수는 이전 평균의 3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사망자가 급증한 원인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달 초부터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공군력을 투입했고, 인구가 밀집한 알레포에 집중포격이 이뤄진 탓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3일에도 시리아 전투기가 알레포 대피소 건물을 폭격해 최소 1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활동가들은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외곽 도시 하자에서도 학살을 저질렀다며 수십 구의 시신 장면이 담긴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렸다. 한편 지난 1일부터 공식 임무를 시작한 라흐다르 브라히미 유엔시리아 특사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해결 방안을 찾기가)거의 불가능하다.”고 언급해 사태 해결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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