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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분석 노무현] (2)정계개편 구상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줄곧 “현재의 지역구도를 깨고 노선에 따라 정계를 개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배경에는 그의 오랜 소신과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87년 양김(兩金) 분열 이전의 상태로 민주화세력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최근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라 이미 수년전부터 나온 얘기라는 게 노 후보측 주장이다.서갑원 정무특보는 “정계개편 주장은 94년 ‘여보 나좀 도와줘’란 노 후보 자서전에도 나온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소신이 지난해 대선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내가 후보가 되면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언급으로 구체화됐다는 설명이다.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지난해 말 노 후보가 만나자고 해 경선에서의 지지를 부탁하는줄 알았는데,정작 ‘내가 후보가 된 뒤 정계개편을 추진할때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며 노 후보의 의지가 간단치 않음을 시사했다. 정치적 득실면에서도 노 후보측은 정계개편론을 유리한 전략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보의 자질보다는 지역감정이 투표성향에 더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정치구도에서는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에서 당선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고,설사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맹목적 비토세력이 존재하는 한 누가 대통령이 돼도 YS(金泳三 전대통령)와 DJ(金大中 대통령)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정계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후보의 최근 언행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정계개편완성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즉,그는“6월 지방선거전에 상징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다음날 부산·경남(PK)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YS를 만났다. 정치권에서는 노 후보가 YS에게 PK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YS와 한나라당이 (표밭을)공점하고있는 PK지역에서 YS를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노풍을영남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계획”이라고 귀띔했다.이에 따라 노 후보가 ‘정계개편 분위기를 조기에 확산시킴으로써 민주당 불모지인 영남권 민심을 흔들어 지방선거에서 승리,자신의 영남득표력을 확인시킨 뒤,이를 동력으로 본격적 정계개편을 추진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김상연기자 carlos@ ■정치학자 평가 “이념·정책중심의 정계개편은 원론적으로 100% 타당하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주장하는 정계개편론에 대해 정치학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하면 이렇다.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실현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평가다. 고려대 임혁백(任爀伯·한국정치) 교수는 “노 후보가 말하는 정계개편이란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점인 지역주의 구도를 어떤 식으로든 바꾼다는 점에서 당위성을 지닌다.”면서 “특히 87년 이전의 지역을 넘어선 민주화 연합을 복원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민의 의사가 표출되는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것”이라며 성급한예단을 피했다. 한국외대 이정희(李政熙·한국정치) 교수도 원론적으론 긍정 평가했다.그는 “한국 정치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민주세력이라는 개념과 정책대결의 구도는 꼭일치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정책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성균관대 김일영(金一榮·한국정치) 교수는 “결국 YS와 DJ를 끌어안아 대선에서 당선되겠다는 새로운 지역연합구도”라며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또 “진정한 이념·정책 중심의 정계개편을 하려면,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노 후보와 정책·이념이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간의 이합집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정계개편 가설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정계개편 발언으로정계개편 방향에 갖가지 가설이 나돌고 있다.민주당 자민련 합당설,민주화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대,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합당설,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 등이다.가설들은 모두 대선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추진 주체에 따라 그 방식은 판이하지만 과거 지역연합 일변도에서 ‘보·혁 연대’나 ‘보·혁 구도’의 형태도 눈에 띈다. [한나라·자민련 합당과 여권 이탈세력 흡수] 노풍(盧風)의 위력에 대한 맞불로 ‘한자 동맹’을 근거로 한 보수대연합이 부상하고 있다.지난 27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된뒤 신민주 대연합을 주창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는 29일 대전지역 TV합동토론에서 “필요하다면 여당도 포함,생각이 같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이날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 후보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이 전 총재에대해서는 연대가능성을 열어뒀다.자민련 정진석(鄭鎭碩) 대변인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한나라당과 이 전 총재에 대해 ‘구국 전선의 잠재적 우군’으로 보고 비판과 공격을 삼갈 것”이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가장 먼저 부상했다.내각제를 연결고리로 각기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있는 민주당과 자민련,민국당이 합쳐야만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분석을 기초로 하고있다.한나라당 이회창 경선후보의 대세론에 대항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컸다. 민주당내 최대 조직이었던 중도개혁포럼이 적극 추진해왔다.자민련과 상당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당시 민주당 최대 주자였던 이인제(李仁濟) 전 고문이 이를 거부하면서 잠복했다. [민주와 산업화의 연대] 지난 2월28일 박근혜(朴槿惠) 의원의 탈당 이후 가설로 등장했다.한나라당 비주류를 포함한정치권의 민주화 세력과 자민련과 민국당이 대거 참여하는신당 창당 구상이다.박근혜 신당에 대한 관심 저하와 노풍으로 가설이 힘을 잃고있다. 박근혜 의원도 일단 ‘한국미래연대’ 창당(5월17일)을 서두르며 독자행보를 하고 있다.후일을 도모하려는 의도다.때문에 이 연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가설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 정계개편 내용은 모두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능성은 불투명한 형국이다.아직 대선가도의유동성이 큰 탓이다. 한나라당 개혁파인 이부영(李富榮) 전 부총재는 노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대선 전략일 뿐”이라며 “DJ와 YS와의 연대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거부의사를 표시했다.한나라당내 개혁파도 아직은 큰 동요가 없다. 강동형기자 yunbin@ ■역대 대선 분석 지난 87년 대통령직선제가 재도입된뒤 5년마다 실시돼온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어김없이 세력판도를 바꾸기위한 정계개편이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가장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해는 87년 13대대선 때다.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되자 85년 구신민당 중진과 민추협이 공동으로 만든 신한민주당에서 당시김대중(金大中)·김영삼(金泳三)씨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새로 만들어졌다.그러나 양김씨도 대선직전 분열,통일민주당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이 빠져나와 평화민주당을 창당했고,당시 김종필(金鍾泌)씨도 신민주공화당을창당해 대선에 뛰어들면서 3김 시대가 만개했다.물론 야권의 분열로 집권 민정당 후보로 나선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도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있었다.90년 1월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구국의 결단이라며 3당 합당을 단행,민자당을 탄생시켰다.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총선과 대선에 참여했고,김대중 대통령의 당시 신민당도 3당합당을 거부한 이른바 ‘꼬마 민주당’과 합당,통합민주당을 만들어 대선에 나섰지만 3당 합당의 위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는 집권여당이 먼저 분열했다.95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가 민자당에서 나와 자민련을 창당,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곧이어 92년 대선패배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대통령이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야권의 중심이었던 민주당이 재분열됐다.대선직전에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DJP연합을 통해 공동정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춘규기자 taein@
  • 노무현-YS회동 안팎/ 고밀도 ‘정치대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선후보와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30일 회동은 노 후보가 ‘신민주 대연합론’을주창한 뒤 첫 정치적 행보여서 정가의 관심을 끌었다. 노 후보는 회동 예정시간보다 5분여 일찍 YS의 상도동 집을 방문,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노 후보는 당초 “예의에 어긋나는 주제는 말씀 안 하고 윗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정도”라고 말했지만 무려 1시간20분이나 대화를 나눠 두 사람간에 옛 민주세력 재결집등 깊숙한 논의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YS측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옛날 얘기를많이 했고 정치전반에 대해 얘기를 나누셨다.”는 짤막한브리핑을 한 뒤 함구했다. 노 후보측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금융실명제,하나회 척결,5공청문회,정계 입문과 과거 통일민주당에 함께 있을 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면서 “과거 기억 중 기분 좋은 것만 꺼내 얘기하면서 갈망(desire)을 포함하는 고도의 정치성 대화가 있었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양측은 회동 결과에 대해 정치적 수사(修辭)를 동원해 핵심을 피했지만 ▲신민주 대연합론 등 정계개편 ▲부산·경남·울산 지방선거 공천문제 ▲대선정국에서의 협력방안 등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두 사람은 이날 회동에서 서로를 치켜세우는 등 향후 정국에서 협력 가능성을 열어 놓은 분위기였다. 노 후보는 지난 88년 정계 입문당시 YS와 첫만남에 대해“처음 뵈니 멋있어 보였다.말씀이 적으셨고 (제가) 얼어가지고 말도 못했다.”고 언급한 뒤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예전에 김 전 대통령께서 일본 도이 다카고 총리를만나고 돌아오시면서 주신 것인데 오늘 차고 왔다.”며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이에 YS는 “여당후보가 된다는 게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노 후보가 대단히 장하다.”며 답례했다. 한편 이날 회동에 동행한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은 YS가 최근 일본 방문때 일본 정치가들로부터 노 후보에 대한 문의를 받고 “(노 후보는)사상이 합리적이다.내가 정계에 입문시켰다.”며 일본 정객들을 안심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심층분석 노무현] (1)노풍의 실체와 동인(動因)

    ■노풍의 실체 “노무현씨가 출마한다 했을 때 제 심정은 ‘되면 좋지….그러나 되겠어?’였습니다.그런데 노무현씨가 경선에서 승승장구한다는 기사를 보고 잃어버렸던 소망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서울의 32세 여성) 지난달 16일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광주 경선에서 영남 출신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극적으로 1등을 차지하자,그의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는 ‘감격의 글’들이 쏟아졌다.TV 앞에서,술자리에서 ‘노무현’이 화제로 떠올랐다.언론은 이를 ‘노풍(盧風)’이라 불렀다. 노 후보가 지난 28일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됨에 따라 이제 노풍이 거품이라는 얘기는 더이상 나오기 힘들 게 됐다.그렇다면 노풍의 실체는 무엇일까.참여연대 이태호(李泰浩) 정책실장은 “구태정치에 환멸을 느껴 변화에 목말라하던 국민들이 노무현이란 개혁적 인물의 당선가능성이 발견되자,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실체’를 요약했다. 인터넷 여론조사회사인 폴앤폴의 조용휴(趙龍休) 사장은근거를 제시했다.그는 “지난 수년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李會昌)·이인제(李仁濟)씨가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지지후보가 없다는 정치혐오성 무응답자가 40%이상이나 됐다.”며 “노풍을 계기로 무응답층이 15%대로 줄어든 점을 볼 때 이들이 노풍의 동력이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조사장은 “97년 대선 직전 20%대였던 무응답층이 노풍 이전 40%대까지 늘어난 것은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개혁진도에 실망한 수도권 거주 호남 유권자와 30대 화이트칼라가 무당파로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무응답층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여기에 한나라당 이회창 경선후보의 ‘빌라게이트’와 박근혜(朴槿惠) 의원 탈당이 발생했던 2월을 기점으로 영남출신 수도권 거주자들 상당수가 지지후보를 이 후보에서영남 출신의 노 후보와 박근혜 의원쪽으로 바꾼 움직임도일부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이미 포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전제로 종합해 보면,노풍은 지난 2월 이회창 후보에게 실망한 한나라당 지지자중 일부가 노 후보쪽으로 돌아서면서 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이어3월10일 울산경선에서 노 후보가 종합 1위로 부상하자 DJ에 실망해 있던 젊은 무응답층이 대거 가세,13일 TN소프레스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처음으로 누르는 현상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호남지역의 본류와 영남 일부는 광주 경선이후 본격 노풍에 합류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여론조사상 가장 먼저 노 후보 지지로 돌아선 30대의 ‘역사적 특수성’은 노풍이 거품이 아니라는 근거로 제시된다.서울대 최인철(崔仁哲·심리학) 교수는 “노풍은 앞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현상”이라고 전제한뒤 “노 후보의주 지지층은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사회 변혁을 이뤄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집단”이라면서 “이들이 IMF 외환위기라는 큰 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 특유의 연고·혈연주의와 공정한 규칙의 결여 상황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깨달았고,이러한 자각이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이는 노풍이 단순한 정치적 현상을 넘어 사회적 현상이라는 해석으로까지 확대된다.숙명여대 정외교과 이남영(李南永) 교수는 “노풍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퇴행적이고 수구적인 한국정치 지형의 공백을 메워 나가는 과정”이라며 “박정희 시대와 이의 반(反)명제인 3김 정치의 종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상지대 정외과서동만(徐東晩)교수도 “보·혁대립을 근간으로 한 냉전의식이 본격 해체되는 조짐으로 느껴진다.”고 진단했다. 경희대 사회과학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노풍은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참다참다 못해 일거에 분출한 것”이라고 진단했고,서울시립대 이건(李健·사회학) 교수는 “노풍은 노무현이라는 정치 상품이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며 생성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상연 전영우기자 carlos@ ■탈권위적 스타일 지난해 ‘노무현(盧武鉉) 캠프’에 합류한 50대의 한 참모는 노 후보가 주재하는 공식회의 석상에서 30대 젊은 참모들의 버릇없는(?)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감히 ‘보스’인 노 후보 앞에서 버젓이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게 아닌가.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노후보의 반응이다.이 참모가 “자세들이 그래서 되겠느냐.”고 힐책하자,오히려 노 고문은 “괜찮습니다.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렸다는 것이다. 물론 젊은 참모들 중에는 10년 이상 노 후보와 고락을 같이해온 ‘동지’들도 끼여있긴 하지만,근본적으로 노 후보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자연스레 배어드는 ‘권위’와는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게 측근들의 평가다. 실제 노 후보는 자기 방으로 참모를 부르기보다는 지나가다가 불쑥 들러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한 측근은 “화장실에서 노 후보와 나란히 소변을 보다가 지시를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얼마전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기자들 앞에서 노 후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러시면 안됩니다.이제 야당후보도 아닌데 자신있게 나가야죠…”라고 ‘충고’하듯말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측근들은 노 후보가 밑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면 선뜻 자기주장을 접고 건의를 받아들인다고 말한다.염동연(廉東淵) 사무총장은 “전에 다른 조직에서 일할때는 위에서 이런저런 간섭이 많아 힘들었는데,지금은 노후보가 실무자에게 철저히 맡기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더책임이 무겁고 부담이 간다.”고 말했다. 회의에서도 노 후보는 자신이 얘기를 많이 하기보다는 우선 참모들의 얘기를 돌아가며 전부 듣고 의견을 피력하는스타일로 알려진다. 측근들은 노 후보를 가리켜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노 후보의 이같은 특성 때문에 경선에서 경쟁했던 이인제(李仁濟·54) 전 고문이 2살 더 어리지만,노 후보가 인터넷세대에 훨씬 더 어필하는 것이라고 노 후보측은 주장했다.예컨대 올 신정연휴때 이 전 고문은 자택을 개방해 대대적으로 하례객을 맞았지만,노 후보는 “구식이다.”며 개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지지자들이 본 노후보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실제로 지지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밝히는 그의 매력은 ‘서민적’이란 점이다.또 젊고 개혁적인 점을 드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정치가 맑고 깨끗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호남지역 지지자들은 노 후보를 민주당의 새로운 ‘대안론’으로 바라봤으며 반면 영남지역 지지자들은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부산출신 대통령 배출하는 것이지 소속정당이 뭐 대수냐는 투였다. 전직 초등학교 교장인 신종덕(66·광주)씨는 “본인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좌(左)편향이라는 이념 문제 역시 선거가 과열되면서 다소 부풀려진 것이지,실제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영상(44·경기도 고양시 일산)씨는 “노 후보는 낡고 후진적인 정치의 틀을 깨트릴 수 있는 최적의 인물로 생각한다.그와 일부 언론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관계 역시 다소 우려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쉽게타협하지 않는 자세는 대단한 뚝심이라고 생각한다.”고밝혔다. 미술학원 강사 한모(35·여·경기도 부천시)씨는 “가장의식이깨어있고 개혁적인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타 후보를 거칠게 자극하지 않는 모습도 이채로웠다”고 말했다.전주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이의영(55)씨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이름을 내걸고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수 있는 사람이 노 후보 말고 없지 않으냐.”고 정치 현실을 지적하며 “같은 법조인 출신이면서도 엘리트형인 이회창·이인제 후보와는 달리 소탈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음모론과 노풍 함수 민주당 대선후보를 뽑는 국민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음모론’의 요체는 “여권핵심이 전국 순회경선에 조직적으로 개입,노무현(盧武鉉) 후보를 당선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음모론이 최초로 거론된 것은 3월16일 광주경선에서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노무현 후보가 당시까지만해도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인제(李仁濟)후보를 누른 직후였다. 당초엔 일부 언론이 ‘보이지 않는 손’이 민주경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선에서 음모론을 제기했다.그 후 이인제 후보가 3월21일 강원지역의 후보자 합동TV토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선이 움직인다는 취지로 음모론을 공론화됐다. 특히 이 후보가 그 다음날 여권실세 P,L,K씨 등 3명을 지목,이들을 중심으로 노 후보측이 인위적으로 노풍(盧風)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진행중이라고 주장하며 음모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당시 총재와의 양자대결 지지도에서 앞서는 여론조사를 문항까지 조작,무차별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민주당 일각,특히 이인제 전 고문을 지지했던 일부 인사들이 아직까지도 음모론을 거두지 않고 있다.그러나 1개월이상 음모론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지만 노풍을 꺾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노 후보진영 및 민주당측의 주장이다.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풍이 주춤거리는 것은 김대통령의 세아들 비리 의혹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인제 전 고문측 일각에서조차 “노풍이 음모론에 의한것이기보다는 노무현 후보진영의 첨단전자매체를 이용한과학적 선거전과함께 기성 정치권의 획기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여론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발생했다.”고 분석할 정도다. 이춘규기자 taein@
  • 노무현후보 사조직 해체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29일 올해 대통령선거전에서 사조직을 일절 활용하지 않기로 하고 대선후보경선캠프 해체와 자원봉사자 등 경선 선거운동원의 해산을 결정했다. 노 후보는 아울러 지난 93년 원외(院外)때 만들어 이번경선에서 활용했던 자치경영연구원도 당분간 서류상 사단법인으로 유지하지만,곧 이사회 의결을 거쳐 폐쇄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당내경선캠프로 활용해온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 3층과 한양빌딩 7층 등 임대사무실 2곳이 조만간 폐쇄되고 전국에서 ‘노무현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란 이름아래 노 후보 선거운동을 도와온 자원봉사 인력 300여명도일단 활동을 중단한다. 노 후보의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전날 캠프 소속 팀장급 이상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정해 이날 노 후보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유 특보는 “이는 선거운동을 사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하게 당을 중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노 후보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노사모’에 대해선 “노사모가 대선에서 활동하게 되면 사조직 활동으로 간주돼 선거법 위반이라는선관위 의견을 존중하지만,해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정치인 노무현’의 팬클럽으로 활동을 계속하게 할뜻을 시사,앞으로 선관위와 야당측의 문제제기 여하에 따라 논란 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홍원상기자 wshong@
  • 민주 대선 후보 노무현/ ‘오늘’을 만든 사람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데 가장 큰밑거름이 된 노 후보 캠프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려하기보다는 실무적 진용을 갖추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노무현 캠프의 거점인 ‘자치경영연구원’은 이사장인 국민대 김병준(金秉準) 교수와 전 연청회장인 염동연(廉東淵)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두 개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93년 9월 당시 원외 최고위원이었던 노 후보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출범할 때부터 동고동락을 해온 386세대의 젊은 인력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이광재 기획팀장,안희정 행정지원팀장,서갑원(徐甲源) 정무특보,김만수(金晩洙) 공보팀장 등이다.특히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 후보와 인연을 맺은 이 팀장과 안 팀장은 노 후보의 ‘핵심 측근’으로 통한다. 지난해 3월 노 후보가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합류한 40∼50대 그룹이 전문분야별 실무책임을 맡고 있다.기자출신인 유종필(柳鍾珌·전청와대 정무비서관) 언론특보,윤석규(尹錫奎·전 청와대 정책기획실 국장) 상황실장,윤태영(尹太瀛·전 이기택 총재보좌관) 홍보팀장,배기찬(裵紀澯·세종리더십개발원 소장)정책팀장,손주석(孫周錫) 조직팀장,이충렬(李忠烈·전 노사정위원회 심의위원) 정책특보 등이 맹 활약중이다. 최근 당내 경선이 시작된 이후로는 천정배(千正培) 의원이사실상 선대본부장을 맡은 데 이어 김원기(金元基) 상임고문,신기남(辛基南) 이재정(李在禎) 임종석(任鍾晳)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혔다. 외곽 지원그룹이 풍부한 점도 다른 대선캠프에서는 보기힘든 노 캠프의 특장이다.대학교수 922명,국책·민간 연구소 연구원 375명,법조인 39명,보건·의료계 89명,회계사·변리사 41명 등 1700여명의 전문직 종사자가 ‘온라인 정책자문단’으로 분야별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변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법조인 모임)’‘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등 다양한 팬 클럽도 노 후보를 위해 뛰고 있다. 홍원상기자 wshong@
  • [대한광장] ‘색깔론’ 경선과 남북관계

    여야의 대통령 후보 경선전이 막바지 국면이다.과연 이번 경선이 단순한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아니면 새로운 정치적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정치적 혁명의 단초가 될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치열했던 그동안의 경선을 되돌아보면 여야가 상대당이나 경쟁후보에 대한 과거의 개인적인 비리폭로전으로 뒤범벅됐다.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상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이상 건강한 비판은 있을 수 있다.그러나 거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국민의 기본권 행사도국가안전보장,공공복리,질서유지 또는 타인의 기본권 존중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여야의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크게우려되는 것은 여야가 아직도 색깔론을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색깔론적 논쟁이 도가 지나치면 헌법 제13조 3항에서 보장된 ‘모든 국민은 자기의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아니한다.’는 연좌제금지(連坐制禁止) 원칙을 위반하지않을까 하는 점이 크게 우려된다.뿐만 아니라 이러한 남북문제의 지나친 정치적 정쟁화는 지난 4월 임동원 특보 방북 이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화해·협력이라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깰까도 염려된다. 21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최소한도 평화공존이 확고하게 정착돼야 한다는 점에는 절대적인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그 때문에 미국이 비록 우리의 우방이지만,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악의 축’ 발언에 대해서는 보혁을 초월한 국민적 강한 저항이 있었다.따라서 아무리 정권에 눈이 팔려도 민족문제를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이용하는것은 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왜냐하면 정권은짧고 민족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21세기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은 민족관·역사관 그리고 세계관이 열려 있어야 한다.한민족의 많은 인간적 고통과 사회적 모순 및 갈등은 분단체제의 극복 없이는 불가능하다.북한이 본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체제유지와 생존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 큰 변화를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북한이 안심하고 개혁과 개방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지난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에도 조금씩 신뢰가 싹트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우리는 남북관계에서 이렇게 힘들게 싹트는 평화와 신뢰의 싹을 인내심을 갖고 소중하게 키우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여타 문제는 몰라도 여야는 국회에서 민생문제와 남북문제만은 정쟁화하는 것을 극히 삼가야 할 것이다. 지난 국회에서 여야는 지나친 정쟁으로 민생 관련 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당했고,남북이 합의한 경협 4대 법안에 대한 비준동의도 처리하지 못해남북경협 추진에 차질을 빚었다.여당은 지나치게 오만하지 말고 야당을 남북관계 진행과정에 참여시키고,주요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보고를 하고 정보를 공유해야한다. 한편 야당도 정권적 차원에서 올해 초 남북교류기금법의개악을 무리하게 시도한 것처럼 남북문제의 큰 흐름의 발목을 잡는 일을 삼가야 한다.야당도 사안별로 여당이 잘한 점은 정직하게 인정하고,비판할 것은 객관적 근거하에 정책적으로 비판하면서,국정의 동반자로서 책임있는 자세를보여야 한다.이제 우리 국민들이 매우 성숙돼 야당의 색깔론적 소모전과 여당의 오만함에 매우 식상해하고 있다. 여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되면 후보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더이상 남북문제를 선거중은 물론이고 선거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약속해 주기를 권고한다.그래서 정권 교체기와 선거철마다 북풍과 훈풍으로 남북관계에 대해 국민들이 혼란을 겪는 일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선거때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권을 침해당했는가.이번 대통령 선거는 광주 국민경선에서 보여주었듯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남북관계를 한 단계 성숙하게발전시키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외대 법대학장
  • “美 對北강경책 효과”최외교 방미발언 파문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주 미국 방문 기간중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 는 발언을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3일 보도,파문이 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프레드 하이어트 논설실장은 이날 ‘북한:큰 채찍으로 할 수 있는 것(N.Korea:What a Big Stick Can Do)’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결실을 거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을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기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대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부시 행정부에 설명하기 위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최 장관이 “때때로 큰 채찍을 갖고 있는 점이 북한을 앞으로 나오게 한다.”며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이 최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미 대사관은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국이)큰 채찍을 들고 있더라도(carry a big stick) 부드럽게 말하라(speak softly).”는 최 장관의 의도가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주미대사관은 임 특보의 방북을 계기로 촉발된 화해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했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두둔하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이인제고문 ‘주변 정리’

    지난 17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이인제(李仁濟) 전 상임고문이 그동안 이끌어 왔던 경선조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전 고문은 후보직 사퇴 후 1주일만인 24일 특보단 30여명을 서울 자곡동 자택 부근 한 음식점으로 초청,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캠프 해체를 공식화했다. 이 전 고문은 이 자리에서 “예전의 자기 일에 충실하기를바란다.앞으로는 (이인제의) 특보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알았던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해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그동안 경선대책본부 사무실로 사용했던 여의도동우빌딩 사무실을 폐쇄키로 했다.정우빌딩 사무실도 이 전고문의 주변정리가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하다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한편 점심이 끝난뒤 이 고문은 후보직 사퇴로 순회경선을치르지 못한 부산과 자신의 고향인 논산 방문길에 올랐다.그는 한 언론이 ‘올해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긍정도,부정도 하지 않아 앞으로의 행보에 길을 열어 놓았다. 홍원상기자 wshong@
  • 박지원 실장 대외활동 개시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총재를 잇따라 예방하고 취임 인사를 했다.장관급인 정책특보로 있다가 지난 15일 비서실 총사령탑에 오른뒤 1주일만에 ‘대외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박 실장에게 “사심을 버리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잘 보필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전직대통령도 밖에서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통령에게 충고를 하려면 직접 만나든지 비서진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어“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 오해를 받기 쉬우나 나중엔 다 풀린다.”고 말해 최근 세 아들 등의 문제로 심기가 불편해진 김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위로했다.전 전 대통령과 박 실장은 배석자 없이 5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박 실장은 이날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김 대통령의 의지를 거듭 설명하고 경제 회복과 국가재도약을 위한 초당적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박 실장은 이어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민주당 김영배(金令培) 대표직무대행,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총재권한대행,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도 예방할 계획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정치 뉴스라인/ “”노무현 내주초 YS방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오는 28일 대선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내주초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방문,협력을 요청할 것이라고 신상우(辛相佑)전 국회부의장이 22일 밝혔다. 그러나 노 고문의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찾아뵙고 얘기를 들을 것’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을 뿐,일정을 조정중이거나 확정된 게 없다.”고해명했다. ●한나라당 소장파 원내외 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공동대표 이성헌·오세훈)가 당 최고위원 경선에 초선인 김부겸(金富謙·경기 군포) 의원을 단일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김의원은 23일 출마선언을 한다. 미래연대는 21일 오후 최고위원 경선참여 방식을 집중 토론,이같이 결정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 최규선 정국/ 여야 정치인 누구 만났나

    여야의 경계를 무시하면서 행동반경을 꾸준히 넓혀온 최규선(崔圭善·구속·미래도시환경대표)씨가 만난 여야 정치인들과 주변인사들은 누구 누구인가. 권력의 흐름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 최씨의 행보로 미뤄볼 때 그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권의 유력인사는 별로 없어 보인다. 최씨만이 활용할 수 있는 미국내 인맥이나,그의 처세술,또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데 사용한 인간적인 풍모는이미 정치권이나 그를 아는 지인에게는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인사들과 접촉을 했는지,그리고 어떤구체적인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당사자들은 “도와주겠다고 왔으나 물리쳤다.”는 식으로 극구 부인하고있다. [여권] 이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러나 청와대에입성하지 못해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의 보좌역으로 활동했으나 공용카드로 비행기 1등석을 이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버림을 받았다.최씨는 이 때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친분을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 수행비서인 청와대 이재만(李在萬) 전 행정관과는오래전부터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도 만난 것으로알려졌다.이에 노 고문측은 미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최씨의 제안이 황당해 물리쳤다는 후문이다. [야당] 이회창(李會昌) 전총재의 핵심인사인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은 6∼7차례 만났다고 밝혔다.이 전 총재도 “지난 1월17일 홍사덕(洪思德) 의원이 개최한 ‘용산기지 관련 세미나’에서 악수를 했다.”고 말했다.최씨는 또 미국 UC버클리대 출신인 정재문(鄭在文) 의원에게접근했으며,이회창 전 총재의 한 언론 특보와도 구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최씨는 지난 96년에는 당시 여권 실세였던 최형우(崔炯佑) 전 의원에게 줄을 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5공화국 때는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 동생 경환(敬煥)씨를 도왔다는 얘기가 있으나 확실치 않다. 강동형기자 yunbin@
  • 최씨,이회창 측근에 돈줬다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은 19일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先·42·구속)씨가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총재의 측근인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통해 이 전 총재에게 2억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설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청화아파트 윤 의원의 자택에서 ‘이 총재의 방미활동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돈을 전달했다.”면서 “당시 최씨는윤 의원과의 대화내용을 녹음했으며 그 녹음 테이프는 현재 최씨의 측근이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회창 전 총재는 “야당과 대선 예비후보를 음해하고 탄압하려는 것”이라며 법적대응을 천명하고,윤 의원도 “설 의원과 나 중 한 사람은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서 진위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주목된다. 최씨는 이날 밤 구속수감되면서 이 전 총재측에 돈을 전달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설 의원은 “증인을 복수로 확보하고 있고 증거도 여러가지 있다.”면서 “녹음 테이프 확보 여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대응을 보고 차근차근 대응하겠다.”고말했다. 그는 특히 “이 전 총재는 윤 의원을 통해 거액을 전달받았는지 여부를 국민 앞에 분명히 공개해야 하며 전달받았다면 어떤 명목으로 받은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최씨와 이 전 총재의 인연은 지난해 11월15일부터 18일까지 방한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면담을 최씨가 주선하면서 이뤄졌다.”면서 “최씨는 자신과 미국 버클리대 동문인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 의원과 함께 이 전 총재의 방미 준비작업에 참여했고,이 전 총재와도몇 차례 면담했으며,이 전 총재의 국제담당특보로 사실상내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설 의원은 또 “최씨는 윤 의원의 측근인 문모씨를 통해이 전 총재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를 3∼4차례 만났으며,이 전 총재 방미 당시 한씨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와의 면담을 추진했다.”면서 “최씨가 활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 전 총재 부부의 비호가 있었는지 밝히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이와 함께 “최씨는 이 전총재의 큰아들인 정연씨가 필리핀 아시아 개발은행에 근무할 당시부터 밀접한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최씨가 정연씨에게 용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씨의 비서 천호영씨가 경실련 홈페이지에 올린최씨의 비위사실을 다음날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도 올렸으나 특별한 이유없이 30분 만에 삭제됐다.”면서 “이는 최씨가 윤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삭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 의원은 이날 밤 설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이춘규 이지운기자 taein@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황사와 자연의 섭리

    비는 비대로 눈은 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각각 낭만과애환이 있지만 여러 기상현상 중 주로 봄철에 나타나는 황사는 낭만보다는 생활에 불편함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오고,고구려 보장왕 때인 서기 644년 10월“평양에 내린 눈이 붉은 색이었다.”,고려 명종 16년 “눈비가 속리산에 내려 녹아서 물이 되었는데 그 색이 핏빛과 같았다.”,조선 명종 5년 3월22일 “서울에 흙비가 내렸다.”는 기록을 보면 황사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관측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사는 입자의 크기가 약 1∼10㎛로 미세한 누런 흙먼지다.중국에서 날아오면서 큰 입자는 지면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까지 날아오는 황사는 주로 알갱이가 작은 것들로 황사의 발원지에서 1∼5일 걸려 이동해 온 것이다.발원지에서 불려 올라간 먼지량을 100%라 할 때 보통 30%가 발원지에 다시 가라앉고,20%는 주변지역으로 수송되며,50%가 한국,일본,태평양,미국까지 날려간다. 황사가 주로 봄에 나타나는 것은 겨울철 얼어있던 황사발원지의 건조한 토양이 부서지면서 흙먼지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한반도주변의 기온,강수,풍향 등의 조건 때문에 여름,가을,겨울철보다는 봄에 더 자주 발생한다. 황사는 폭우나 태풍과는 달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는 기상재해로 취급되지 않았다.그러나 최근 발생 횟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올 봄 들어 숨쉬기가 거북하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농도가 짙은 황사가발생해 초등학교가 휴교하는 등 큰 불편을 가져와 사회적인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기상청은 올 4월부터 황사를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기상현상으로 인식하고 강한 황사가 올 것으로 예상되면 호우,폭설,태풍처럼 기상특보를 발표하게 되었다.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황사의 이동 경로와 정량적인 예측을 위해 장단기 계획을 세웠다. 국내에 황사 관측망을 늘릴 뿐만 아니라 중국의 관측자가 지상에서 육안으로 관측해 보내오는 자료나 위성으로 추정한 영상자료 이외에 우리나라가 직접 황사 발원지인중국에 관측망을 깔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 불려 올라갔는지를 알고,이러한 정량적인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수치모델 개발을 서둘러서 황사 예측의 정확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황사 먼지로 인해 호흡기 질환,안질환 등 보건위생학적인 피해와 함께 태양빛을 차단시켜 시정이 악화되고,항공기엔진,반도체와 같은 정밀기계 손상과 가축의 질병 발생 등 황사가 주는 피해는 다양하다.하지만 토양의 산성화를 막고,해양 생태계에 영양을 공급해주고,토양 속에 숨겨있는다양한 성분을 날라다 주는 등 긍정적인 도움도 준다. 며칠 전에 황사가 올 것을 예측한다고 한들 우리 인간이이를 피할 수는 없는 일.올 봄 황사를 겪으면서 흙먼지를멀리까지 옮겨주는 자연의 섭리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황사 발원지인 그 곳,척박한 흙먼지 속에서도 웃음짓고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기상청 탐사단의 보고다. 안명환 기상청장
  • [워싱턴 엿보기] 최성홍장관 訪美행보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 장관의 방미 일정을 두고 다소 ‘한가한’ 행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최 장관은 지난 16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 참석차 워싱턴에 도착했다.임동원 특보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북·미 대화재개를 위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서다.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에회담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신임 최 장관의 상견례 행사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한 심도깊은 논의보다는 워싱턴 조야에 한국외교총책의 얼굴을 내미는 일과성 측면이 강했다.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만나지 못한 것을 문제삼자는 게 아니다.중동사태 중재 때문에 그의 귀국이 늦어진 것을 탓할 수는없다.그만한 정보수집 능력이 없다고 외교관계자를 지적하는 것도 접어두자. 문제는 그 이후다.최 장관이 워싱턴에 도착한 16일 낮 12시.이미 외무장관 회담은 외무회담으로 격이 낮춰졌다.파월 장관이 회담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측은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과의 면담으로 대체했다.외교관례상아미티지 부장관과의 면담이 불가피했다고 한다면 최소한그 자리에서 한·미간의 주요 현안은 심도있게 논의됐어야 맞다.그래야 상견례 행사도 더욱 빛이 났다. 그러나 최 장관은 잭 프리처드 대사가 서울에서 전해들은 임 특보의 방북결과를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그 스스로밝혔듯 북한에 대한 핵사찰 문제나 미국이 문제삼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4월말로 예정된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대상 발표에 북한이 포함되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나누지 않았다고 한다.그렇다면 인사만 나누고 나왔단 얘기인가. 최 장관은 워싱턴에서의 첫날을 대부분 대사관 직원들 및 한국전문가들과의 오찬 및 만찬으로 보냈다.아미티지 부장관과는 오찬을 제외하면 굳이 외교통상부 장관이 아니라 주미 대사가 대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리였다.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미 상·하원 국제관계위원장들과는 각 30분씩 만났으나 미국으로서는 중동사태등에 밀려 화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었다. 백문일특파원 mip@
  • 최규선 누구인가/ 이회창 전총재측에도 접근 ‘양다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3남 홍걸씨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장남 정연(正淵)씨와의 친분관계를 내세우며 여야를 넘나들면서 정치권을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있는 최규선(崔圭先·구속)씨는 주변에서 “봉이 김선달”“도깨비”로 불리고 있다. 최씨의 행태로 미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만나 친분을 과시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최규선의 이력= 그는 1959년생으로 외대를 중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8년가량 생활했으며,버클리대 정치학과를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동아시아전문가인 석학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직접 99년 12월호 월간조선에 기고한 ‘스칼라피노교수’에 대한 글에서 그는 89년 버클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 처음으로 강의를 듣고,10년 동안 친하게 지냈다고적고 있다. 그는 김대중 총재 보좌역이라는 직함으로 97년 대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선발대 4인방에 낄 정도로 정치력을 보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위험한 인물’에찍혀 청와대입성이 좌절되기도 했다. ●끈질긴 접근 방식= 그는 자신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만나 뜻을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마이클 잭슨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앞세워 일주일 동안 마이클 잭슨 집 앞에서 기다리다 결국에는 만났다는 일화도 있다. 여권의 실세 K씨와 접촉할 때는 K씨가 잘 가는 호텔앞에서 기다리며 만남을 성사시키기도 했다.그는 K씨 측근에게 스칼라피노 교수가 초청을 원한다며 접근한 것으로전해졌다. 최씨를 지켜본 한 인사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며,세계에서는 비슷한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의원과 절친한 K를 통해홍 의원과도 친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이회창 전 총재도 홍 의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최씨와 만났다고 밝혔다. 문민정부 때도 당시 대통령 통역이었던 현 한나라당 이전 총재의 P특보에게 접근했을 정도로 저돌적이고 독톡하다. ●예측 불허의 행동= 최씨는 외화 도입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서 삼성그룹의 비행기를 타고 갔다왔다고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지난 2000년 모 방송사가 보도한“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보좌역을 사칭,비행기 1등석을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뉴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뒤부터 K씨 근처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야당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동형기자
  • 후보사퇴 이인제 행보/ 정계개편 과정 재기 승부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이인제(李仁濟) 전상임고문은 18일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자곡동 자택에 머물며 재기를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이 전 고문의 김윤수(金允秀) 공보특보는 “한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특보 등 측근들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전 고문은 이날 고향인 충남 논산을 방문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결국 취소했다. 27일 전당대회 때까지는 서울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한 측근은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27일 전당대회에 이 전 고문이 당원으로서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후에는 머리도 식히고,경제·정보통신(IT)분야를공부하기 위해 잠시 외국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 전 고문은 칩거(蟄居)기간 대선후보로서 재기하기 위한숙고(熟考)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지난 97년 대선 당시 경선에 불복한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이 전 고문으로서는 또다시 탈당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가이날 이인제 전 고문에게 공개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마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고문의 마음이 퍽 공허할 텐데 고향선배로서 메워주고 싶다.”며 “골프라도 같이 치면서 위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JP가 이날 언론을 빌려 이 전 고문에게 제휴의 손짓을 보낸 형국이다.JP의 ‘구애’에 이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지금은 어떤 말도 밝힐 때가 아니라는 것이 이 전 고문의 입장”이라고 일단 즉답을 피했다.그러나 향후 정계개편 등으로 정국지형이 변화할 때 두 사람이 연대할 여지도 없지 않다는관측도 제기된다. 진경호 홍원상기자 wshong@
  • 최규선 커넥션…인수위 참여뒤 ‘권력’과 인맥쌓기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42)씨는 9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권력기관과 인맥을 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최씨는 국민회의 총재특보(대선 직전),대통령당선자 보좌역(대선 직후),대통령인수위가 가동될 때에는 인수위원장 보좌역 등의 명함을 들고 다니며 권력 실세의 주변인물임을 과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신건 국정원장은 97년 10월 국민회의 총재특보(북풍대책담당)를 거쳐 그해 12월 인수위 정책분과위원을 맡았다.김은성 전 2차장(수감 중)은 전문위원으로 인수위에 가담했다. 서기관급∼이사관급 국정원 간부 3명도 파견됐다.이 때 최씨는 이종찬 인수위원장 보좌역을 자처하며 이들과 수시로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에 출입했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최씨는 학력과전과 등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인수위에 파견됐던 경찰간부는 A총경,B경정 등 2명이었다.이들은 최씨와의 접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당시 최씨는 경찰관계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는 게 주변인사들의 증언이다.98년 3월 김세옥 경찰청장 체제 출범후 정치권에 20∼30명의 ‘형님’을 둔 경찰 간부가 최씨 주변에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특히 그해 9월 모 기업의 외자도입과 관련,최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경찰 고위간부 K씨가 수시로 수사진행 상황을 물어봤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권노갑 캠프도 활용] 4·13총선 직후인 2000년 6월 최씨는 서울 광화문에 마련된 ‘권노갑 캠프’에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비롯,박홍엽 전 민주당부대변인,김현종 전 청와대행정관 등과 합류했다. 김문기자 km@
  • 이인제 사퇴 배경·진로/ ‘꿈’정말 접었나?

    17일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경선후보의 측근들에 따르면,이 후보는 14일 전남 경선 패배 직후부터 이미 사퇴를 고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는 그날 밤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측근들에게 “경선을 계속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이때 한 측근 의원이 “경기도에서도 지면 자존심을 세울 수 없다.”며 사퇴를 건의했지만,부인 김은숙(金銀淑)씨 등이 극구 만류해일단 경기지역 선거운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던 이 후보가 사흘만에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은 스스로 ‘제2의 고향’이라고까지 지칭해온 경기도의 불리한 판세가 결정적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실제 이 후보가 16일밤 특보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대다수가 “경기·서울의선거인단 가운데 호남출신이 60% 이상이라 역부족”이라며사퇴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아침 이 후보가 김기재(金杞載)·원유철(元裕哲)·이희규(李熙圭) 이용삼(李龍三) 전용학(田溶鶴) 이근진(李根鎭) 의원 등에게 최종 의견을 물었을 때도 같은 의견이었다고 한다. 이 후보로서는 끝까지 가서실력을 다 드러낼 바에는,1위노무현(盧武鉉) 후보와의 득표율차가 7.5%포인트밖에 안되는 비등한 시점에서 중도사퇴를 하는 게 향후 정치적 재기를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만일 이 후보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마저 노 후보에게 패한다면,충청권 지역맹주로 입지가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이 후보로서는 최선의선택을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가 사퇴하긴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오는 12월 대선에 출마하는 길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일때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할 것이란 전망이다.실제 이 후보는 이날 경선 승복의사를 밝히지 않은데다,노 후보와의 노선차이를 거듭 강조,뼈 있는 여운을 남겼다. 특히 이 후보의 대변인격인 전용학 의원은 그동안 ‘음모론’의 배후로 지목해온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을다시 겨냥,“최근 박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도사퇴의 원인이 된 것 같다.”는 심상찮은 말을 던지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DJ노믹스 이끄는 ‘EPB사단’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 경제관료들이 ‘DJ노믹스’(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마무리 투수로 전면에 나섰다. 경제부총리에 지난 15일 전윤철(田允喆·행시 4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발탁됨으로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임기말 경제팀은 명실상부하게 EPB 선후배로 짜졌다.전 부총리를 정점으로 이기호(李起浩·행시 7회) 청와대 경제복지노동특보,장승우(張丞玗·행시 7회) 기획예산처장관,이남기(李南基·행시 7회) 공정거래위원장,한덕수(韓悳洙·행시 8회) 청와대 경제수석,김호식(金昊植·행시 11회) 국무조정실장 등이 라인업을 이루고 있다. 외곽에는 싱크탱크 역할을 맡는 강봉균(康奉均·행시 6회) 한국개발연구원장,이진설(李鎭卨·고시 13회) 공적자금관리위원장 등이 진치고 있다. 현정부 들어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MOF)를 합친 재정경제부의 수장은 MOF-EPB 출신인사가 번갈아 맡았다. 즉,외환 및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 이규성(李揆成) 장관이 등장한 이래 강봉균 장관-이헌재(李憲宰) 장관-진념 부총리로 이어졌다.공교롭게도 경제의 흐름에 따라 금융 등 미시정책 전문가와 성장 등 거시정책 전문가가 교대로 등용된 것이다. 이번에는 전반적인 경기회복과 안정책을 구사하기 위해 EPB 출신인 전 부총리가 기용된 점이 이채롭다. EPB 출신들은 기획·예산·공정거래분야 등을 두루 섭렵하며 거시경제에 대한 폭넓은 노하우를 인정받은 인물들이다. DJ정부의 금융·기업·공공·노사부문의 4대 개혁을 마무리짓기 위해 무엇보다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필요해 EPB팀이 구성됐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반면 MOF 출신은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윤진식(尹鎭植) 재경부차관,김진표(金振杓)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정건용(鄭健溶) 산업은행총재 등이 있다. 이들은 경제회생을 담보할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EPB 출신들은 대부(代父)로 얼마전 서울산업대 총장에서 컴백한 이진설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든다. ‘꼼꼼한 선비형’인 이 위원장은 지난 70년대 경제개발을 주도한 김학렬(金鶴烈) 부총리로부터 당대의 3대 사무관으로 꼽혔다. 나머지 2인은 ‘직설적 천재형’인 최수병 전 한전사장과 ‘꾀돌이’란 별명이 붙은 진념 전 부총리이다.진 전 부총리는 일전에 “이 위원장의 꼼꼼함과 최 사장의 판단력을장점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 게 관료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추진력을 갖춘 전 부총리와 기획통인 강 원장,풍부한 경력의 이 특보는 ‘EPB사단’의 리더군이라고 할 수 있다. 전 부총리의 비서실장 재직 시절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주요 보직에는 차세대 주자들이 대거 포진해 향후 정책조율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MOF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시장에 어두운 EPB 인사들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박승(朴昇)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과 정책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도 관건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인사는 “과거 EPB와 MOF는 오랫동안 서로 견제하면서 경쟁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서로간의 노하우가 화학적으로 융합된 상태라 시행착오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선화기자 pshnoq@
  • 盧 “후보자격 재평가 받겠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당의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경남·울산 광역단체장 가운데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할 경우 후보자격을 재평가 받겠다.’던 지난해11월 한 연설에서 했던 자신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노 후보는 16일 경기 수원 팔달지구당에서 이와 관련한질문을 받고 “쓸데 없는 얘기를 했다는 사람도 있으나,이제는 상황이 좋아져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약속은 실현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노 후보는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과 관련,“당이 진행하고 있는 대로 진념 전 부총리를 추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 후보측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파장을 우려한 듯 “노 후보의 말은 임창열(林昌烈) 지사가 재판중이므로, 진 부총리를 추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였을뿐, 김영환(金榮煥) 의원 등 다른 출마자와의 경선 자체를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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