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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는 자유·평화의 승리”/김대통령,참전기념비 제막 연설

    ◎공산주의 팽창막아 역사 바꿔/방미 마치고 오늘 하오 귀국 【워싱턴=이목희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7박8일 동안의 미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29일 귀국한다. 김대통령은 28일 낮(현지시간) 특별기편으로 워싱턴 교외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앵커리지를 경유해 29일 하오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지난 22일 서울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를 거쳐 25일 워싱턴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4일동안의 국빈방문 기간중 27일 클린턴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함께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세 등을 집중 논의,북한의 점진적 개방을 위한 공동노력을 경주키로 의견을 모으고 기존의 한미안보협의회(SCM)외에 고위정책 레벨의 대북전략협의체를 신설,공동대처체제를 구축키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28일 워싱턴을 떠나기에 앞서 숙소인 영빈관에서 앨 고어부통령이 마련한 조찬에 참석했으며 이어 워싱턴포스트지의 캐더린 그레이엄 명예회장을 비롯한 간부일행을 접견한 뒤 미국 CNN­TV와 회견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또 이날 하오 중간기착지인 앵커리지에 도착,마이스트롬 앵커리지시장 내외를 만난데 이어 이 지역 교민대표들을 격려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7일 하오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쪽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석,「자유와 평화의 빛나는 승리」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한때 「잊혀진 전쟁」이었던 6·25전쟁이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으로 바뀐 역사의 진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6·25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김대통령은 특히 『자유세계는 6·25 전쟁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처음으로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저지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말하고 『그런 의미에서 6·25는 먼 훗날의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 몰락을 예고한 전쟁이었다』고 강조했다.
  • “한­미 이젠 호혜적 동반관계”/김 대통령

    ◎선진­개도국 연결 역할할것/시카고외교협 연설… 오늘 워싱턴 도착 【워싱턴=이목희 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은 25일 하오(한국시간 26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워싱턴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특별기편으로 도착,3박4일동안의 미국 국빈방문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워싱턴에 도착한 뒤 숙소인 영빈관에서 크리스토퍼 미국국무장관의 예방을 받고 한·미 두 나라의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캐피털 힐튼호텔에서 교민을 초청,리셉션을 가진 뒤 영빈관에서 공식수행원들과 만찬을 나누며 방미 주요현안을 논의한다. 김대통령은 국빈방문 이틀째인 26일에는 알링턴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에 헌화한 뒤 국회의사당을 방문,상·하원합동회의에서 「21세기 아·태시대를 향한 협력,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27일 상오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경수로 지원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미 두 나라의 경제협력방안▲유엔 등 국제무대에서의 양국 협력문제 ▲아·태지역 협조방안등 주요현안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4일 하오 두번째 기착지인 시카고의 아모코빌딩에서 열린 시카고외교협회및 미국중부위원회 초청연설에 참석,「아·태번영의 동반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한·미간의 동반협력이 새로운 차원으로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미국과 한국은 과거 일방적인 지원을 하고 받던 관계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도약했다』면서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할 수 있는 중간적 위치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고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한국정부는 시장개방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또 한·미 두 나라는 아·태지역의 번영을 위해 ▲지속적인 자유무역의 발전 ▲번영의 확산 ▲상호보완협력의 증진 등 세가지 방향에서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두 나라 산업계가 호혜적인 기술협력과 산업협력을 더욱 증진해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댈리 시카고시장과 반갑게 악수/방미여로

    ◎오헤어 공군기지 환영 교민에 악수답례/“한국인 우수성 떨쳤다” 재미과학자 격려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하오(한국시간 25일 새벽·이하 현지시간)2박3일 동안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마치고 두번째 방문지인 시카고에 도착,이틀동안의 방문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휴일인 23일 하오 샌프란시스코의 숙소인 페어몬트호텔로 재미동포 과학자 2백여명을 초청,다과를 나누며 21세기를 향한 우리 과학기술의 비전을 제시했다. ▷시카고 도착◁ ○…김대통령은 이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3시간50분 동안의 비행 끝에 시카고 오헤어 공군예비기지에 도착했다. 김대통령은 기내에서 이창호 총영사와 클라크 시카고시의 전장(여)의 영접을 받고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트랩을 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70여명의 교민들에게 손을 높이 들어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트랩을 내려와 댈리 시카고시장 내외를 비롯한 미국측 인사와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화동인 미쉘 정군(10)과 테레사 김양(10)으로부터 화환을 받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격려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환송행사에서 샌프란시스코 아태지역센터의 바버라 번디 원장과 샌드라 맥켄드리스 한미상공회의소장을 비롯한 미국측 환송인사 및 우리측 인사들과 악수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도열병을 통과,특별기에 탑승했다. 요더 샌프란시스코시 의전장대리 내외는 트랩밑까지 전송하며 김대통령에게 『또다시 뵙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환송행사에는 존 시레겔 샌프란시스코 대학총장도 나와 눈길. ▷재미과학자 간담회◁ ○…김대통령은 23일 하오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가진 재미동포 과학기술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과학기술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로 한국인의 우수성을 떨치고 있는 동포 과학기술자들의 노고를 치하. 김대통령은 『과학기술이야말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전제,『정부는 2010년까지 선진 7개국 수준의 과학기술발전을 목표로 과학기술 인재양성,기초과학진흥,첨단기술확보 등 3대과제에 노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우수과학기술 두뇌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젊은 과학도들이 해외에서 초빙된 석학들의 지도하에 노벨상에 도전하는 실력을 연마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유두영 재미과학 기술자협회 회장 등 역대 회장단과 노벨상후보로 거론되는 김성호 UC버클리대교수,조영충 NASA수석연구원,서남표 MIT대교수 등 재미과학자들과 미국학력평가에서 만점을 받아 클린턴대통령상을 수상한 정재환군 등이 참석했다. ▷손여사 박물관 관람◁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23일 하오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에 있는 아시아박물관을 방문,상설전시장인 한국관을 관람했다. 손여사는 박물관에 도착,사노 박물관장과 한국관 코디네이터인 백금자박사 등의 안내로 한국관내 접견실로 입장,사노 관장과 백박사로부터 각각 아시아박물관과 한국관의 개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한국관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매듭공예 선물 손여사는 이어 박물관 방문기념으로 무형문화재 김희진여사의 작품인 전통공예품 매듭과 한국민요가 담긴 CD를 선물한 뒤 한국관에 전시되고 있는 고려청자와 백자 항아리등 한국유물 5백여점을 둘러보았다.
  • 샌프란시스코시 “김대통령의 날” 선포/김대통령­방미여로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방문 첫날인 22일(한국시간 23일·이하 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랭크 조던시장을 접견하고 공식수행원들과 오찬을 나눈데 이어 교민을 위한 리셉션을 베푸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환영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7박8일동안의 방미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일요일인 23일 재미한국인 과학자들을 초청,간담회를 가진 뒤 24일 아침 다음 기착지인 시카고로 출발한다. ○10여차례 박수갈채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샌프란시스코의 숙소인 페어몬트호텔 1층 연회장에서 교민 6백여명을 초청,다과회를 베풀고 격려했다.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리셉션장 입구에서 박병호 한인회장과 샌프란시스코·서울자매도시 위원회의 김윤원 위원장 등의 영접을 받은 뒤 교민들과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헤드테이블로 이동. 김대통령은 격려사에서 『미국 국빈방문 관례상 몇개 지방도시를 방문해주길 희망해 일제시대미국내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제일 먼저 미국 이민이 시작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하게 됐다』고 방문 의미를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가장 나쁜 병은 부정부패』라고 지적하고 『삼풍 대참사 역시 부실공사와 관계공무원의 부정결탁 때문에 일어났다』며 부정부패의 척결을 거듭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절대로 잊지 말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우리도 삼풍붕괴사고의 충격을 잊지 말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지방자치선거에 대해 『임기중 34년동안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전면 부활시킨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이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이달초 방한한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환영만찬사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룩한 위대한 나라」라고 칭송하며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조국의 발전에 긍지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자매시서 오셨다” 김대통령은 『미국은 이민사회로 비록 여러분이 소수민족이지만 미국의 주인』이라고 전제하고 『훌륭한 미국인이 되는 길만이 조국을 위하는 길인만큼 함께 열심히 뛰자』고 격려했다. 참석교민들은 김대통령이 부정부패척결등 평소 소신을 힘찬 목소리로 피력하자 10여차례 박수를 보내기도. 김대통령은 격려사에 앞서 박한인회장등 참석교민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광복 50주년행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이 유대강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던지는 등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시장접견◁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조던시장을 접견하고 15분간 환담을 나눴다. 샌프란시스코 항구와 금문교가 내려다 보이는 페어몬트호텔 23층에서 조던시장을 만난 김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가 미항인줄 알지만 과거 버클리대에서 연설하기 위해 방문한지 20여년만에 다시 와보니 더욱 아름답다』고 인사를 건넸다. 조던시장은 『2년반전 김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축제분위기가 인상깊었다』고 말하고 『서울의 자매시인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주셔서 더없이 감사한다』고 답례. 김대통령은 접견이 끝난 뒤 곧바로 공식 수행원들과 오찬을 갖고 방미일정을 협의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착◁ ○…서울공항을 출발,11시간의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박건우주미대사와 오더 샌프란시스코시 의전장대리의 기상영접을 받고 부인 손여사와 함께 트랩에 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2백여명의 교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행운의 열쇠」 증정 김대통령 내외는 트랩을 내려와 톰 란토스 미하원의원등 미국측 환영인사 및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도열한 의장대를 지나 공항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조던시장은 『김대통령의 성공적인 미국방문을 기원한다』면서 『오늘을 김대통령의 날로 선포한다』고 환영사를 낭독한 뒤 김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의 날」 선포문과 행운의 열쇠를 증정했다. ○“개혁 YS” 피켓 마중 김대통령은 즉석 연설을통해 『성대한 환영에 감사한다』면서 『한국민과 미국민이 하나가 돼서 양국관계의 발전과 우리 모두가 위대한 승리의 길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교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환영나온 교민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 교민들은 이날 「YS바람 개혁바람」 「세계화는 YS」등의 피켓을 들고 김대통령의 두번째 미국 국빈방문을 환영했다.
  • 김 대통령 샌프란시스코 도착/오늘새벽

    ◎7박8일 방미 공식일정 시작/27일 클린턴과 정상회담/“한·미 아태시대 동방자로” 출국인사 【샌프란시스코=이목희 특파원】 방미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은 22일 상오11시(한국시간 23일 새벽3시)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7박8일간의 미국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이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조르단 샌프란시스코시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환영식에 참석,「김영삼 대통령의 날」선포문 및 행운의 열쇠를 증정받았다.김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 여장을 푼뒤 조르단시장내외의 예방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23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머문뒤 시카고(24∼25일)를 경유,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의 공식초청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을 국빈방문한다. 워싱턴 방문중 김대통령은 27일 백악관에서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다지는 한편 ▲21세기에 대비한 안보·통상협력강화 ▲통상마찰등 경제현안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유엔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증대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및 동북아 주변정세등에 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26일에는 미국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21세기 아·태시대에 대비한 미래지향적인 한·미 동반자관계에 대해 연설하고 조지타운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 이어 김대통령은 27일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행사에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참석,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를 회고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2일 출국에 앞서 서울공항에서 가진 환송식에서 인사를 통해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의 연륜을 채우는 해』라면서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미국이 우리에게 긴요한 우방인 것처럼 한국 역시 미국에 중요한 동맹국』이라면서 『두 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맺어진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맞잡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번영하는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미 공식수행원 명단=▲공로명외무부장관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 ▲황창평보훈처장 ▲박건우 주미대사 내외 ▲김동진합참의장 ▲김광석경호실장 ▲한리헌경제수석 ▲유종하외교안보수석 ▲윤여전공보수석 ▲김석우의전수석 ▲문동석외무부의전장 ▲임성준외무부미주국장
  • “「삼풍」 수습전에 출국… 마음 무겁다/김 대통령 방미 여로

    ◎“국익걸린 정상회담 미룰수없어 출발”/행사 간소화… 화동 꽃다발 증정도 생략 방미길에 오른 김영삼대통령은 22일 상오11시(한국시간 23일 새벽 3시)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7박8일간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22일 하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에서 있은 환송식에 참석한 뒤 특별기편으로 출국. ○당초 일정 단축 이홍구 국무총리와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서울공항 환송식 행사장에 입장한 김대통령 내외는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출국인사를 통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게 돼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며 『그러나 우리의 중대한 국익이 걸려 있는 한·미정상회담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당초 일정을 줄여서 다녀 오기로 했다』고 설명. 김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를 채우는 해』라면서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 이어 김대통령은 각부처 장관과 이춘구민자당대표 및 당3역 등 출영나온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특별기에 탑승. ○TV중계 사양 ○…총무처는 백화점 붕괴사고 후 시국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환송식을 간소화해 관례적으로 참석해온 황락주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용준헌법재판소장과 야당인사를 초청하지 않았으며 화동들의 꽃다발 증정도 생략. 한편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해 TV방송사의 환송행사 중계도 정중히 사양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설명. ◎김 대통령 출국인사/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클린턴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국빈으로 공식 방문하기 위해 오늘 국민 여러분 곁을 잠시 떠납니다.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넣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게 되어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안보문제를 비롯한 우리의 중대한 국익이 걸려 있는 한·미정상회담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당초 일정을 줄여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이번 미국방문중저는 클린턴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한반도 한·미간의 경제협력문제를 비롯한 상호관심사를 폭넓게 논의할 것입니다. 특히 최근 북한의 정세변화에 따른 안보문제,남북대화와 미·북관계 진전등은 한·미 정상간에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중요 현안입니다. 저는 또한 미국의회의 초청을 받아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향한 한·미협력을 주제로 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또한 6·25동란 휴전 42주년 기념일을 맞아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합니다.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의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의 연륜을 채우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미국이 우리에게 긴요한 우방인 것처럼 한국 역시 미국에 중요한 동맹국입니다.두 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맺어진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맞잡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번영하는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 미국방문에서 이러한 저의 생각을 미국의 조야지도자들에게 두루 설명하고 그들의 솔직하고 진지한 의견을 청취할 것입니다.오는 29일 돌아와서 다시 국민여러분께 방문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남아공 협력관계 급진전/양국 우호관계 자랑스럽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어제 이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은 8일 『한국과 남아공의 관계는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될 수 있을만큼 협력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상오 국회본회의 연설을 통해 『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우리가 남아공과 주변지역,나아가 아프리카 대륙의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델라 대통령과 조찬을 나누며 양국의 관계증진방안등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낮 2박3일간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특별기 편으로 이한했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요지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평화,번영,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각국이 협력하고 노력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미래는 국가간,지역간의 영원한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합니다.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르네상스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우호관계를 돈독히 다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한국과 같은 경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여러분의 성공에 찬사를 보냅니다.우리 두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해준 전세계 국민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저지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남아공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이미 많은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노력을 보면서 크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양국간 경제적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두나라 관계가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의 13번째로 중요한 무역상대국입니다.비금속과 광물이 남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이고 한국은 기계,섬유,의류,각종용품등을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이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과감한 노력으로 광범위한 잠재력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기업들이 이미 우리나라에서 주택사업 등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어제 양국이 서명한 문화협정과 과학기술협정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과 같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균형된 거시경제의 촉매자로서 또한 감독자로서 정부의 관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남아공은 한국이 대외관계에서 새로 채택한 노선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우리는 아프리카 남부의 인접국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지않아 한국민에게 강요되었던 국토분단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남아공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먼 나라입니다.그러나 공동의 인간애,공동의 희망,평화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공동의 꿈들이 우리를 이웃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 만델라 대통령 방한 첫날 이모저모/서울대서 명예철박학위 받고 연설

    ◎한­남아공 압제 이겨낸 공통 역사­만델라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6일 하오 공식 방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서울공항 환영식 참석에 이어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서울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이날 저녁에는 이홍구국무총리가 주최한 비공식 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공항행사◁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1시 알프레드 은조 외무장관등 15명의 공식수행원과 함께 팔콘 900A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특별기에서 내린 만델라 대통령은 영접나온 공로명 외무부장관 내외 및 문동석 외무부의전장과 악수를 나눈 뒤 공장관에게 스와질랜드 국왕의 동생과 결혼한 딸 제나니 만델라 들라미니씨(37)와 각료급 수행원등을 소개. 만델라 대통령은 이어 도보로 3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문의전장 안내로 우리측 환영인사와 인사를 나누고 딸과 함께 박재준군(상명사대부국 5년)과 조은정양(신동국 5년)으로부터 화환을 전달받았다. 이어 승용차편으로 국립묘지에도착한 만델라대통령은 국립묘지관리소장의 안내로 일행과 함께 현충탑으로 이동,헌화하고 묵념. ▷박사학위 수여식◁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30분 서울대 문화관대강당에서 이수성 서울대총장으로부터 인류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만델라 대통령은 학위 수락 연설에서 『대한민국 땅을 밟은지 불과 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인들의 호의를 물씬 느낄 수 있다』고 말문을 연 뒤 『본인과 남아공 모든 국민에게 영광스러운 명예박사학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어 『한국과 남아공은 식민지 지배와 압제를 이겨낸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이에 양국은 저항과 대립의 자세에서 벗어나 탐구와 발전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학문을 통한 인재양성, 국가발전, 인류번영에의 기여라는 서울대의 교육목표는 세계 각처에서 지식에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총장,윤천주·권이혁·조완규·김종운전총장,김재순동창회장 등 서울대측 관계자들과 만델라대통령의 공식수행원 등 4백50여명이 참석했다. ▷만찬◁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숙소인 신라호텔 23층 에뜨왈룸에서 이총리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이날 만찬은 이총리가 만델라 대통령의 카운터파트가 아닌 관계로 비공식으로 진행됐으며 『만찬사도 없는 글자 그대로 저녁을 나누며 우의를 다지는 환영만찬이었다』고 총리실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우리측에서는 이총리 외에 공외무장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 최상덕 주남아공대사 송태호 총리비서실장 이양 외무부서아시아아프리카국장이 참석했고 남아공측에서는 은조 외무장관 마뉴엘 상공장관 에반스 외무차관 네시텐제 공보실장 환세일 주한남아공대사가 참석했다.
  • 오늘 한­남아공 정상회담/만델라 어제 내한

    김영삼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 유지와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김대통령과 만델라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개혁등 관심사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다. 이에 앞서 만델라 대통령은 공식수행단과 함께 6일 하오 특별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공항 환영행사를 마친뒤 국립묘지에 헌화하고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으며,저녁에는 이홍구 국무총리가 주최하는 비공식 만찬에 참석했다.
  •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출발” 모스크바(시베리아 대탐방:16)

    ◎총길이 9,288㎞… 러시아의 대동맥/시경계 벗어나면 별장 「다차촌」이 눈앞에/출발 1시간만에 차창밖은 침엽수림으로/철길따라 늘어선 「베료자」 숲은 “러시아인의 정서” 서울신문 창간50주년기념 특별기획연재물 「시베리아 대탐방」은 지난 주 15회로 1부를 끝내고 이번 주 16회부터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시작한다.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과 사진부 송기석 특파원이 20여일동안 이 열차를 탑승,철도주변의 모습과 자원,자연환경 등을 컬러사진과 함께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시베리아 대탐방 제2부는 주2회 수요일과 목요일에 연재한다. 하오 2시 정각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기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을 출발했다.출발한지 불과 35분만에 북부시경계를 벗어나 모스크바주(오블라스치)로 들어서자 곧바로 확트인 대지가 차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그리고 대지와 숲 사이로 러시아인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재산목록 1호 「다차」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다차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별장」이지만 호사스런 별장이 아니라 그곳에서 남새도 키우고 신선한 공기속에 이웃들과 보드카도 실컷 마시는 주말농장같은 곳이다. 다차의 어원은 러시아어 「다바치(받다)」에서 유래된 것.제정 러시아시절 황제 차르가 총애하는 귀족들에게 땅떼기를 선사한데서 나온 말이지만 소비에트시절 일반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보급돼 지금은 모스크바시민 70∼80%가 다차의 주인이다.5월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9월까지 매주 금요일 하오만 되면 다차로 향하는 시민들로 모스크바시의 외곽도로는 지독한 교통체증을 빚을 정도다.물론 주말이면 모스크바 시내는 완전히 빈도시가 되다시피 한다. 다차 마당에 나와 감자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러시아인들은 봄 5월15일을 기준으로 감자씨를 뿌리기 시작한다.특별한 이름이 붙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날이 지나면 혹독한 추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차촌이 시작되며 러시아인들의 정서적인 심벌,「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난다.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시베리아끝까지 줄곧 길동무가 될 나무들이다.우리의 백양목과 비슷한데 우랄에서 동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겨울이 물러가면서 연푸른 잎을 달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베리아 횡단길에 계절의 경계를 알려주는 「잎의 화신」역할을 하게된다.우리에게는 베료스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베료자에 예쁘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 「카」가 덧붙은 말이다. 다차촌은 모스크바 시경계를 중심으로 반경 2백50㎞까지 계속된다.그리고는 황량한 대지와 베료자숲이 계속되다가 다음 도시의 다차촌이 또 나타난다.대도시 주위에는 반드시 다차촌이 형성돼있다. 출발 한시간이 지나자 푸슈킨의 이름을 딴 푸슈키노역이 지나고 역한편에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인 사일로같이 생긴 물탱크가 지나간다.높이 20여m에 붉은벽돌과 나무로 만들어 지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시베리아철도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을 제외 하고는 전구간이 전철화됐다.따라서 물태크는 이제 역할이 없어진 철도의 장식품에불과하다. 우리가 탄 차는 종착역이 블라디보스토크인 「러시아2호」특급열차.방 하나에 침대 2개가 마련돼 있어 객차 한칸에 승객수는 20명안팎에 불과한 최고급 이다.격일로 홀수날만 모스크바를 출발하는데 종착역까지 계속 갈 경우 6박7일이 걸리기 때문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게 보통 복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야로슬라블까지를 시베리아철도의 제1구간으로 부르는데 이는 건설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구간은 두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구간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기예프 파사드까지로 1862년에 건설됐다.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뻗는 최초의 철도인 것이다.이 선은 1870년에 2단계로 야로슬라블까지 연장됐다.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종교적인 수도였다.지난 91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볼셰비키의 이름을 딴 자고르스크로 불렸으며 모스크바에 들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승지다.그 다음 야로슬라블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모스크바에 있는 공장들을 볼가강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산업적인 고려 때문에 건설됐다.이구간이 개통됨으로써 모스크바에서 생산된 각종 공산품들은 당시 가장 가까운 볼가강 항구인 이 야로슬라블을 통해 카스트로마·니즈니노보고르드·체복사리·카잔등 볼가강변의 크고 작은 도시들로 공급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베리아행 열차의 종착역은 야로슬라블이었는데 이 때문에 모스크바의 시베리아철도 출발역 이름은 야로슬라블역이다.모스크바의 역 이름은 모두 행선지 이름을 따서 만든게 재미있다.예를들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은 레닌그라드역이다.키예프로 가는 열차는 키예프역,백러시아로 가는 열차는 백러시아역…하는 식이다. 출발 1시간이 지나면서 차창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침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침엽수·활엽수의 혼재상태가 이어진다.벌써 타이가(삼림지대)의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그리고 타이가에 가까워질 수록 침엽수의 몫이 더 많아진다. 계속되던 다차촌은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0년대 최대 출판단지(콤비나트)였던 프라우다신문이 종업원들을 위해 만든 다차촌 「프라브딘스키」역을 지나면서 다시 막막한 베료자숲이 대지를 수놓기 시작했다. ◎횡단철도란/수도 모스크바서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연결/1891년 첫삽,25년만에 완공… 6박7일 걸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길이 9천2백88㎞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철로이다.특급열차로 달릴 경우 꼬박 6박7일이 걸리는 거리다.지구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시간이 바뀌는 시간대만도 7개나 지난다.일명 「대시베리아철도」로도 불리는 이 철도는 제정러시아 때인 1891년5월19일 착공돼 25년만인 1916년 쿠즈네츠∼하바로프스크 구간을 끝으로 완공됐다.물론 많은 구간은 기존 노선을 보완해 연결했다.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최대 자원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개발의 계기를 맞았다.인구유입이 촉진돼 철로변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도시가 등장했고 대학·도서관·극장등이 들어서 문화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2차세계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 유럽쪽에 있던 많은 공장·문화기관들이 이 철도를 따라 대거 시베리아로 옮겨져 이 지역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지금은 최대 공업지대인 우랄지구·쿠즈네츠탄전·북부의 석유·가스산지를 유럽쪽으로 연결해 주는 러시아의 산업 대동맥 구실을 하고있다. 2차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노선의 전철화가 시작돼 75년 거의 마무리됐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구간을 제외한 전구간이 전철화됐다.현재 대시베리아철도는 연방철도부 산하에 반독립기구로 우랄철도부·옴스크철도부·사할린철도부 등 약 20개의 지방 철도부가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앞으로 전구간 복선화·전철화,그리고 바이칼∼아무르구간(BAM철도)완공과 함께 만성 적자를 탈피하기 위한 서비스 개선,경영합리화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유럽으로 가는 우리나라 화물의 일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값싸고 빠르게 운송되고 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원만히 풀리면 직접 육로로 유럽까지 연결해줄 철도가 바로 시베리아 철도라 이 철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 하다.
  • 재야·학생 쟁의개입 엄단/정부대책회의/「노­학 불법연대」철저 차단

    ◎공익사업장 분규 즉각 직권중재/9개부 합동대책위 한달간 운영 정부는 4일 한국통신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민주노총준비위원회」등 재야세력들이 개별사업장의 쟁의행위에 개입하거나 운동권 학생들이 근로자와 연대투쟁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노사분규를 부추기는 제3자 개입행위에 대한 증거수집 및 사법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지하철이나 병원등 공익사업장에서 쟁의가 일어날 때는 노동쟁의조정법에 따라 곧바로 직권중재에 나서 사태를 수습하고 한국통신의 노사분규는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노조간부들을 조속히 검거해 사태를 정상화 한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정부는 이날 상오 진념 노동부장관 주재로 재정경제원,통상산업·건설교통·정보통신부등 9개부처 차관이 참석한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관련부처 합동으로 「노사관계 합동대책위원회」를 구성,이달 한달동안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가 한시적인 노사대책기구를 구성한 것은 처음으로 오는 27일의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이달중순쯤 이른바 「민주노총」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들이 연대투쟁을 벌이려는데 대해 부처간 공조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대책위는 노동부차관을 위원장,9개 부처 차관보·실장을 위원으로 구성돼 노사관계를 총체적으로 지도점검하고 각 부처에도 특별기구를 따로 두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국통신사태의 원만한 수습과 서울지하철공사의 임금 및 단체협상 결과가 공공부문은 물론 모든 산업체의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관건』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들 사업장의 노사안정을 위해 관계 부처가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다. 또 한국통신사태로 근로자와 학생이 연대하여 대규모 집회 및 시위를 벌이는 이른바 「노·학연계」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재야 및 운동권과 법외노동단체등 제3자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기로 했다. 노동부 주관으로 5개 노사관계 순회 점검반을 편성,전국의 주요 대기업 및 노사관계가 불안한 공공부문의 45개 사업장과 울산·창원등 취약 지역을 수시로 점검하고 필요하면 현지에 특별지도반을 파견하기로 했다. 진 장관은 『파업을 막는데만 급급한 노사분규 대처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지적,『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법과 질서를 철저히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해 근로자들의 무리한 주장이나 불법 집단행동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 시인 박두진(이세기의 인물탐구:75)

    ◎신·자연·인간을 노래한 “해의 시인”/불의·적당주의·시속과 타협 단호히 거부/독학으로 인생행로 개척한 극기의 인물/등산·수석채집 30여년… 붓글씨·서화에도 능해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산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혜산 박두진의 「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인 그를 일컬어 문단은 「해의 시인」으로 부르고 있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인환(고대교수)은 『밤과 밤을 몰아내는 해와의 대조위에 전개되는 「해」에는 혜산이 희망하는 세계가 투영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세계는 꽃과 새와 사슴과 칡범과 인간이 한 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동심을 이루고 있지만 과연 현실이 기다림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그의 시적 변모는 이러한 질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혜산 박두진의 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한 줄기 정신은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신앙의 영향은그로하여금 인간중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고 가장 위대하게 사랑한 예수의 생애를 통해 언덕과 하늘과,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집단이 감동속에 결속되고 있음을 「갈보리의 노래」로 절규하고 있다. ○“위선과 탐욕 버려야”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같은 치욕을,불붙는 분노를,에어내는 비애를,물새같은 고독을,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꽝꽝 쳐 못을 박고,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달아 죽이려는,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우주의 생명과 우주의 질서」에 눈을 돌려 「이제 사물과 인간은 우주적 무도에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하나의 사건이 되고,가식과 위선과 탐욕을 버리기만 하면 누구나 생명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의 특징은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상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다.86년 한 신문에 발표한 칠순기념 특별기고에서 「가난이라든가 개인적인 슬픔,사람에 대한 배반감이나 기쁨을 시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문학은 인간 누구나가 느끼는 인류공동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 천착하여 진실에 대한 투시력을 보여야 한다」고 논한 바 있다.즉 「시의 사상,시의 윤리,시의 심미적 창조가치는 언제나 그 창조의 주체인 시인에 의해서만 시적 진실이 획득된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개탄하면서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젊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을 업고 나와 학연·지연을 앞세워 설쳐대는 것은 문학의 권위와 문학인의 자존심을 잃는 일」이라고 우려해 마지않았다. 혜산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일컬어 「극기의 인물」로 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앙상하리만큼 야윈 체구에 오랜 등산과 수석채집으로 다져진 강단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굴하거나 적당주의나 시속의 타협이 없이 무엇을 하든 정의감과 선비적 자세를 지켜왔고 그의 시의 소재들은 이런 다양한 지란을 이겨낸 심혼의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인 신대철은 팔순을바라보는 나이에도 언제나 꼿꼿한 자세와 순수무결한 시심을 잃지 않는 혜산을 향해 『자기초월의지를 가진 인격과 고고한 학자의 기풍과 시인의 기상을 흐트리지 않아 문단에서는 물론 대학에서도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안성 「고장치기」로 불리는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청렴한 선비이던 선친으로부터 일찍이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고 안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 외엔 그는 혼자서 독학으로 인생행로를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4세때 「문장」지에 등단 24세에 「문장」지의 시 추천을 거쳐 문학활동을 전개하기 이전까지 그는 측량소·경성부청·금융조합원 생활을 전전했고 45년 해방과 함께 그 당시 유일한 출판사이던 을유문화사에 입사한 것이 조지훈·박목월과 만나 「청록집」을 출간하는 계기가 된다.이후 자연과 신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더니 60년대말부터 수석취미에 침몰하여 「돌」 하나만을 주제로 하는 「수석열전」시리즈를 「현대문학」지에 수년간 연재,지금은 「돌의 시」로써 시인만의 청복을 누리는 시기다. 서대문구 창천동 그의 집에 가보면 마당과 거실과 서재와 베란다는 「뇌뢰낙락하고 고하고 괴하면서 관용자수 한 명석」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고 그의 돌에 대한 사랑은 3천여편 이르는 시작 외에도 서화나 수필에 넘치도록 표현되어 있다. 「작은 한개의 돌이 갖는 형태미와 색채미는 어떤 조각품에도 견줄 수 없는 묘막한 조형미가 갖춰져 있다.난이 정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 극치,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면 수석은 웅혼섬세하고 표일 불기이면서 차라리 성자롭다」등,그리고 「시를 쓸 때의 사무사의 맑은 마음,맑은 눈만이 석격이 심웅하고 석품이 우귀」한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혜산의 취미는 다양하다.시를 쓰는 것과 동시에 30년남짓 등산을 하고 난을 키웠으나 그는 이를 굳이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붓글씨와 서화에 능하여 앞을 향해 질주하는 듯 한 아름다운 필체는 「혜산체」로 일가를 이루고 있으나 서도를 감히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것은 너무 높은 경지라그렇고,어떤 것은 나 자신이 족히 미치지 못해 모자라는 것을 취미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시를 좋아하면서 산을 좋아했는지 산을 좋아하다가 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나 산은 심약한 그를 「의지적 인간」으로 바꾸어놓았고 일목일초에 기울이는 정서적·감각적 운치를 알게 했으며 「한개의 돌에 얽힌 정신적 파동」은 그의 시심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돌아본다. 문단의 교분은 다양하진 않지만 월탄이 생존해 계실 때는 종로구 충신동 월탄댁에 가끔 모여 「문주반생기」의 무애 양주동,「명정사십년」의 수주 변영로,공초 오상순,연포 이하윤등 문단의 주호들과 맥주 두잔의 술실력으로 「도도한 무애의 웅변,월탄의 호통,공초의 무언,수주의 독설속에서 시를 주고받고 휘호를 치면서 철저하게 밤을 새운 이야기」는 문단사의 향기로운 추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수석에 물을 뿌리고 돌보면서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그럼에도 자신을 「시인으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의식해 본 일이 없다」고 끝내 도도하다.다만 「시는 한낱 감상이 아닌 인간이 신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덕윤과 경외의 념」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할 뿐이다.언제나 쓸 것이 밀려 있고 생각에 쫓겨 「한없이 즐겁고 한없이 탄력을 느끼면서 고양된 감정,맑은 생각,투지와 저항,여유와 절박감이 뒤섞인 속에서」 그는 총체적으로는 어떤 즐거움과 보람같은 것을 느껴왔다고 수필집 「돌과 사랑」에서 밝히고 있다. 연세대 교수 정년퇴직후엔 일주일에 두번 추계예술대 강의,그외엔 2박3일정도로 수석채집을 위한 여행길에 오르고 수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지루해 하지 않는다.가족은 동화작가인 이희성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4형제. 『시인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기꺼워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내부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 워즈워스의 말은 그를 두고 적절하다.혜산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 속에는 시가 있고 시를 상실한 사람은 인간의 순수성을 상실한 사람이며 시는 본질적으로 진실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신의말씀」이라는 그의 시론을 시로써 실천해냈고 마지막 붓끝까지도 신과 자연과 인간의 결속을 불후의 명시로 성취할 이 시대 진정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연보 ▲19 16년 경기도 안성출신,호 혜산 ▲39년 「향현」「묘지송」등이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 ▲46년 첫시집 조지훈·박목월등과 「청록집」(을유문화사)출간 ▲48년 한국청년문학협회 시부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49년 제2시집 「해」(청만사)출간,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51∼81년 연세대 교수 ▲65년 우석대 조교수 ▲70년 이화여대 부교수 ▲81년 단국대 초빙교수 ▲86∼현재 추계예대 전임대우교수 시집 「오도(오도)」(54년)「박두진 시선」(56년),수필집 「시인의 고향」(58년),시론집 「시와 사랑」(60년),시집 「거미와 성좌(성좌)」(61년)「인간밀림(인간밀림)」(63년)「하얀날개」(67년)「청록집·기타」「청록집 이후」(68년),시론집 「한국현대시론」,수상집 「생각하는 갈대」(70년),영역시선집 에드워드 W 포이트라스역 「Sea of Tomorrow」(71년),수상집 「언덕에 이는 바람」,시집 「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시론집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한국현대시문학대계 「박두진」(73년),시집 「속·수석열전」(76년)「야생대」(77년),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시집 「포옹무한」「하늘까지 닿는 소리」「박두진 전집」(범조사 81년)「나 여기에 있나이다,주여」(82년)「청록시집」(83년),수상집 「돌과의 사랑」「그래도 해는 뜬다」,시선집 「일어서는 바다」(86년) 「불사조의 노래」(87년),시집 「빙벽을 깬다」(90년),산문전집 「햇살,햇볕,햇빛」(91년)「박두진 전집」(신원문화사 95년) 아세아자유문학상(56년) 서울시문화상(63년) 3·1문화상 예술상(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76년) 인촌(인촌)상(88년) 지용문학상(89년)
  • 김일성·스탈린 모스크바 비밀회담(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5)

    ◎스탈린,김에 「3단계 남침계획」 수립지시/스탈린/“「엘리트 공격사단」·추가부대 창설을”/김일성/“모택동 동지도 조선해방 지원약속”/모택동,“김­스탈린 남침합의” 듣고 「조선인 사단 파견」 결정 □3단계 작전계획 ①38선 가까이에 병력집결 ②북에서 먼저 평화안 제의 ③평화안 거부땐 기습공격 김일성이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로 제의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1950년3월23일·슈티코프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 「1.남북조선 통일방안 및 방법(의도는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임) 2.경제문제. ⓐ)북조선 경제개발.개발계획의 방향·기간.2·3·5년? 남조선 개발문제는? ⓑ)북조선 철도의 전기화. ⓒ)소련으로부터 산업장비·자동차 추가수입문제. ⓓ)북조선 농업개발문제. ⓔ)소련전문가 파견. 3.중조관계. ⓐ)모택동과의 회담. ⓑ)중국과의 조약체결문제. ⓒ)중국거주 조선인,조선거주 중국인문제. 4.아시아 공산당·노동당간 협조문제.」 ○소서 특별기 제공 이 전문을 보낸 이튿날 슈티코프대사는 재차 김일성과 만나 스탈린이 김과 박헌영 두 사람을 만나는 데 동의했다고 통보했다.김일성은 출발일을 3월30일로 잡겠다고 말했고 이에 슈티코프는 특별기를 이용해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물론 이 특별기는 소련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었다.슈티코프대사는 3월24일자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이 특별기는 3월29일 평양에 도착해야 함.비행기가 못올 경우 원산에서 군함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 뒤 그곳에서 특별객차를 단 기차를 이용,모스크바로 가야 함」 이렇게 해서 김은 소련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거의 한달을 그곳에 머물렀다.이 기간중 김일성은 세차례 스탈린과 회담했다.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시간·장소별로 별도기록한 문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아마도 보안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아예 대화속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하지만 이들의 회담내용은 당시 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이 내용을 종합한 상세한 보고서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귀한 자료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전재하기로 한다(1950년3월30∼4월25일.김일성의 소련방문건.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작성). 「스탈린동지는 김일성에게 국제환경과 국내상황이 모두 조선통일에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강조했다.국제적 여건으로는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해 승리를 거둔 덕분에 조선에서의 행동개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중국은 이제 국내문제로 인한 시름을 덜었기 때문에 관심과 에너지를 조선지원에 쏟을 수 있게 됐다.중국은 이제 필요하다면 자기군대를 무리없이 조선에다 투입할 수 있다.중국의 승리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하다.이는 아시아 해방의 기운을 증명했고 대신 아시아 반동세력과 그들의 주인인 미국·서방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미국은 중국에서 물러나 이제 더이상 군사적으로 새 중국당국에 도전치 못한다. 이제 중국은 소련과 동맹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세력에 대한 도전을 더 망설일 것이다.미국에서 오는 정보에 의하면 미국내에도 타국에 개입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소련이 원자탄을 보유하고 유럽에서의 위상이 강화됨으로써 이런 불개입분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 해방의 찬반을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첫째 미국이 개입할지 여부를 검토하고,둘째 중국지도부가 이를 승인하는 경우에 한해 해방작전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투수단 기계화 김일성은 미국이 개입치 않을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그것은 북조선 뒤에 소련·중국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고 미국 스스로 대규모전쟁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내용. 김일성=모택동동지는 항상 조선전체를 해방하는 우리의 희망을 지지했습니다.모택동동지는 중국혁명만 완성되면 우리를 돕고,필요할 경우 병력도 지원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조선통일을 이루겠습니다.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탈린=완벽한 전쟁준비가 필수입니다.무엇보다 군사력의 준비태세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엘리트 공격사단을 창설하고 추가 부대창설을 서두르시오.사단의 무기보유를 늘리고 이동·전투수단을 기계화해야 합니다.이와 관련된 귀하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상세한 공격계획이 수립돼야 합니다.기본적으로 공격은 3단계로 작성하시오.(1)38도선 가까이 특정지역으로 병력집결.(2)북조선당국이 평화통일에 관해 계속 새로운 제의를 내놓을 것.상대는 분명 이를 거부할 것임.(3)상대가 평화제의를 거부한 뒤 기습공격을 가할 것. 옹진반도를 점령하겠다는 귀하의 계획에 동의합니다.공격을 개시한 측의 의도를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북측의 선제공격과 남측의 대응공격이 있은 뒤 전선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오.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합니다.남조선과 미국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강력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소련이 전쟁에 직접개입하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소련은 다른 지역,특히 서방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다시 한번 모택동과의논할 것을 강조했다.모택동이 아시아문제에 정통하다는 점을 덧붙였다.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낼지 모르기 때문에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일성은 전쟁승리에 대한 강한 자심감을 내 보이며 스탈린을 안심시키려 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 보고서의 계속. 「김일성은 스탈린동지에게 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인지 상세한 분석을 해 보였다.공격은 신속히 수행돼 3일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한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이 강화돼 대규모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미국은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전체 조선국민은 열렬히 새 정부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강조했음.박헌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음.그는 20만 당원이 그곳에서 대규모폭동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음」 이 회담에서 김일성과 스탈린 두 사람은 1950년 여름까지 북조선군이 완전한 동원태세를 갖추고 북조선군 총참모부가 소련고문단의 지원을 받아 구체적인 남침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모스크바회담을 계기로 남침계획수립의 주도권은 어느덧 김일성으로부터 스탈린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남침승인과 함께 스탈린은 즉석에서 구체적인 3단계 작전방향까지 김에게 제시했던 것이다.한편으로 스탈린은 모택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한국전쟁을 아시아공산화운동의 일환으로 만들고자 했음이 이 문서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일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중 누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두 사람은 때론 경쟁적으로,때론 상대측에 일을 떠넘기는 식으로 김일성을 지원했다.우선 중국은 1940년대말부터 김일성의 권력강화와 군사력강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국민당과의 내전중에도 모택동은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필요하다면 병력지원까지 할 것을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다만 중국내전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은 남침문제를 주제로 회담도 가졌다.그래서 스탈린과 김일성 두 사람이 모스크바회담에서 모택동을 제외한 채 무력남침에 합의했다는 보고를 받고 모택동은 매우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모택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의사를 재삼 다짐했다. ○방소결과 중 통보 김일성은 49년3월 모스크바를 다녀온 뒤,5월초 인민군 정치보위국장이며 당중앙위원인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김일성은 5월14일 슈티코프대사를 만나 김일의 방중결과를 통보했다(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보고전문.5월15일).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방문목적은 중국공산당중앙위와 교류를 맺고 중국군내 조선인사단(만주출신 조선인으로 구성)에 관해 협의하기 위해서다」 하고 김일성은 설명했다.김일은 4월30일 고강(고강)을 만나 중국공산당 중앙위로 안내됐다.그러나 김일의 진짜방문목적은 조선군 사단을 북한으로 전출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모택동은 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일을 통해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친서를 전달했다.친서에는 조선군 전출문제 외에도 남침문제가 언급돼 있었다.이에 대해 모택동은 『군사행동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답했다.시기적으로 스탈린보다 모택동이 먼저,더 적극적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지지한 것이다.
  • 중 「정치 경위국」 창설/강택민이 통제

    ◎당원로·정치국원 등 요인 보호 【홍콩 연합】 중국의 군통수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주석 강택민)는 당정치국원들과 원로들을 포함한 「국가지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위내에 「정치경위(경호)국」이라 명명된 특별기구를 창설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북경의 외교소식통들을 인용,18일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외교소식통들은 강택민이 이처럼 우수한 경호원들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한 것은 최고 지도자 등소평 사후 권력투쟁이 발생하면 그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포스트지는 말했다. 이 기구는 지난 50년대 이후 줄곧 고위 간부들을 경호해온 당중앙위원회 산하 경위국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 새/세계의 관상용 한자리에/2백여종 출품… 어린이 산 교육장으로

    ◎서울신문 후원 「조류전시회」 서울과학관서 내일 개막 어린이들이 살아있는 새를 직접 만져보고 관찰하며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마련된다.국립서울과학관은 동서조류연구소(소장 이정우)주최 서울신문 후원으로 어린이 날 특별기획 「어린이와 함께 하는 세계의 새」전시회를 2일 하오2시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국립서울과학관 4층 특별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조류연구가 이정우소장과 조류애호가 10여명이 길러온 세계 각국의 진기한 관상조류 2백여품종 1천여마리가 출품되는 이 전시회는 참관을 한층 흥미있고 유익하게 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5개로 세분했으며 예쁜 새이름을 지어주는 어린이에게는 새 한쌍을 증정하는 등 참관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5개의 전시공간별로 전시내용을 살펴보면 제1실은 「세계의 미조」를 주제로 핀치 카나리아 앵무등 약1백50품종의 멋쟁이 새들이 전시되며 제2실은 「말하는 새」를 주제로 구관조 앵무류등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새들이 전시된다.회색앵무 청머리앵무 왕관앵무등 말잘하는 새로 소문난 새 외에 사랑앵무는 이번에 처음 말하는 새로 확인돼 전시대상에 올랐다.한켠에는 어린이들이 새들에게 말을 가르쳐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제3전시실 「손노리개새」는 길들이기에 따라 사람의 손이나 어깨에 앉아 노는 새를 말하는데 30여마리가 전시돼 이 코너에서도 역시 실제 새길들이기를 해볼 수 있다.제4전시실 「노래 잘하는새」코너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해 세계의 「명가수」가 전시돼 신선한 자연의 소리를 들려줄 계획. 제5전시실 「생태교실」은 교육적 효과를 한껏 높이는 코너로 새들의 집짓기에서부터 짝짓기 알낳기 알품기 새끼기르는 과정까지를 직접 관찰할 수 있게 꾸며지며 그밖에 세계 각국의 새장과 조류사육기구,장난감등도 선보인다. 특별프로그램 새증정 행사는 아직 애칭을 얻지못한 오린 손노리개 새에게 예쁜 새이름을 지어주는 어린이에게 관상조류 1쌍씩을 증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새기르기는 환경파괴로 세계 각국에서 야생조류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희귀조를 보존할 수있는 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스스로 40년동안 새를 길러온 이정우소장은 『도시어린이들이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어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하고 『이번 전시회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흥미와 친화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살아있는 새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강주영양 유괴사건/오늘 항소심 공판

    【부산=김정한 기자】 부산 만덕국교생 강주영(8)양 유괴살해사건 항소심 1차공판이 26일 하오4시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공현부장판사)심리로 열린다. 이 공판에서는 1심에서 무죄로 석방된 원종성피고인(23)등 3명의 알리바이와 서울대 법의학교실의 머리카락 감정결과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놓고 검찰측과 변호인측간의 열띤 공방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였던 부산지법 제3형사부(당시 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는 지난 2월24일 원피고인과 옥영민(26),남모(19·여)피고인 등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반면 강양의 이종사촌언니 이모양(19)에 대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죄(약취유인)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자 검찰이 불복,항소했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큰 관심을 모았지만 특별기일을 지정하지않고 일반 형사사건과 같이 심리를 열기로 하고 사형이 선고된 이피고인(19)과 무죄가 선고된 원피고인(25)등 3명의 피고인을 분리하지않고 함께 심리키로 했다.
  • 28일 원불교 대각개교절/신도 120만명 전국서 기념행사

    ◎「물질­마음­몸의 한삶」운동도 펼쳐 28일은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916년 「큰 깨달음」을 얻어 원불교를 창시한 대각개교절이다. 원불교는 최대경축일인 제80회 대각개교절을 맞아 원불교 중앙총부(종법사 좌산 이광정 법사)를 비롯한 전국 12개 교구및 4백여 교당 1백20만 신도는 일제히 경축기념행사를 갖는다.이광법 종법사는 기념식사를 통해 『새 시대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님을 믿고 모시며 거룩하게 우러러받들어야 한다』며 『새 교법을 철저히 실행하며 온세상 생령에게 고루 베푸는 데 앞장서자』고 강조했다. 경축기념식은 28일 상오10시 중앙총부 기념관에서 열리며 분단 50주년의 조국의 평화적 통일기원과 인류의 평화를 위한 특별기도가 있다. 원불교 중앙청년회는 지난 15일부터 5월31일까지 북한동포를 위한 남북 한삶운동을 전개하며 물질의 한삶,마음의 한삶,몸의 한삶 운동을 전개한다. 원불교 서울사무소장 백동호 교무는 『대각개교절을 맞아 신앙·교화·봉사라는 원불교의 3대활동을 더욱 활발히펼쳐나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새달 23일까지 러시아 전

    ◎러 아방가르드 미술 진수 한눈에/칸딘스키·곤차로바 등 27명의 86점 전시/1905∼25년 제작,러 현대 미술 이해 도움 현대예술의 기원을 이루는 20세기초 러시아 아방가르드미술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 11일 막을 올린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1905 ∼ 1925년전」이 그것. 칸딘스키,말레비치,곤차로바,라리오노프 등 천재적인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가 27명의 걸작 86점이 선보이고 있다.러시아 문화성의 전시조직센터(ROSIZO)가 국립러시아미술관을 비롯 러시아 전역의 13개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2년여동안 모은 것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창조적 예술정신과 현대예술의 이해를 도울 이번 전시회는 예술의 전당이 「미술의 해」와 한·러수교 5주년을 기념해 특별기획한 행사다. 전시작품은 추상회화의 시조인 칸딘스키의 「즉흥209」(1917년) 「서곡,보랏빛 쐐기」(1919년)를 비롯해 절대주의를 창조한 말레비치의 「추상적 구성」(1915년) 「건초만드는 사람」(1912년),광선주의창시자 곤차로바의 「화가의 스튜디오」(1908년)등 러시아 예술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인 1905년부터 1925년까지 20년간 제작된 것들.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대부분이 미술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예술의 암흑기에 60여년간 미술관 창고에서 잠들어 있어야 했던 걸작들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20세기초 러시아 미술은 사회주의 혁명(1917년) 등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사상 유례없는 모험과 파란을 겪었다.기존의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든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추상미술,입체주의,기계주의,절대주의,광선주의,미래주의 등 다양한 표현양식들은 러시아 전위예술의 역사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발발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안정되면서 전위미술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게 되자 칸딘스키를 비롯한 많은 전위예술가들이 망명의 길을 떠나고 러시아에 남아있는 예술가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주의라는 낙인과 함께 미술계에서 축출당한다.전위미술은 스탈린 사망후 해빙기운이 감돌면서부터 겨우 빛을 보게됐고 80년대초 러시아에서 전위미술에 대한 금지가 해제되면서 세계 무대에 소개돼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됐다. 이번 전시회는 5월23일까지 계속된다.
  • 한­베트남 「밀월시대」연다/도 무오이 베트남 서기장 방한 이모저모

    ◎도 무오이 “한국처럼 될수 있게 도움 기대”/체한일정중 대부분 「경제발전 모델」견학 베트남의 최고 실력자인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이 11일 방한함으로써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국교를 맺은지 3년만에 명실상부한 밀월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도 무오이 서기장은 이날 하오 숙소인 서울 신라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민자당사로 이춘구 대표를 방문한 데 이어 저녁에는 이 대표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두 나라가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역설하고 협력을 강조했다. ○…도 무오이 서기장의 방한은 민자당과 베트남 공산당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처음에는 민자당 초청으로 추진된 것. 그러나 베트남이 주석과 수상,당 서기장의 3두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도 무오이 서기장이 실질적인 최고실력자라는 점에서 정부 초청으로 격상시켰다는 후문. 「도이 모이」라는 개혁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도 무오이 서기장은 지난 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수립된 뒤 경제정책에서 한국을 모델로 삼고 있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번 방한에는 13명의 공식수행원과 15명의 실무직원,8명의 기자단등 모두 43명이 수행,베트남측의 기대를 짐작케 하기도. 특히 공식수행원에는 우엔 마인 컴 정치국원겸 외무장관과 천 득 르엉 중앙위원겸 산업담당부수상,도 쿠옥삼 중앙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레 반 치엣 중앙위원겸 무역장관 등 당과 정부의 통상·산업책임자들을 망라. 도 무오이 서기장의 아들인 우엔 두이 충씨와 딸인 우엔 탄 투이씨도 이번 수행원에 포함되어 있어 눈길. 도 무오이 서기장은 1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 말고는 증권거래소와 수원 삼성전자,울산 현대자동차,포항제철,창원 한국중공업,옥포 대우조선,여천 호남정유를 방문하는 등 17일까지 모든 일정을 「베트남 경제발전의 모델」 견학에 할애. ○…도 무오이 서기장은 이날 하오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공로명 외무부장관과 민자당 박정수 세계화추진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도 무오이 서기장 일행은 숙소인 신라호텔에 여장을 푼 뒤 여의도 민자당사로 직행,현관에서 강용식 총재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이대표가 기다리고 있는 3층 대회의실에 입장. 이 자리에는 우리쪽에서 남재두 한·베트남의원친선협 회장과 하순봉 국제협력위원장·박범진 대변인,베트남쪽에서 홍하 국제담당의장과 우엔 푸 빈 주한베트남대사·팜 반 추옹 국제담당부의장 등이 배석. 이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만찬에는 민자당의 김덕룡 사무총장 현경대 원내총무 이승윤 정책위의장 김윤환 정무제1장관 정재철 전당대회의장 등 고위당직자들이 대거 참석. ◎혁명 1세대… 베트남 개혁진두지휘/도 무오이 서기장은 누구인가 11일 우리나라를 찾은 도 무오이 베트남 서기장은 91년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도이모이」(개혁)정책을 진두지휘해 온 혁명1세대 인물. 1917년 하노이에서 태어난 그는 19세때인 지난 36년 베트남 공산당에 들어가 항불운동에 참가했다.41년 그는 무장 독립운동 끝에 프랑스군에 붙잡혀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으며 45년 독립과함께 출옥했다.당으로부터 탁월한 조직력과 행정력을 인정받은 그는 55년 하노이 이웃 하이퐁시 당서기및 군사행정위 위원장에 선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내전기간이었던 56년부터 73년까지 상무부 장관,국가 가격위 위원장,건설부장관,부총리를 고루 역임하면서 베트남 경제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내전때는 무기공급루트인 「호치민 도로」건설을 직접 지휘했으며,75년 사이공 함락후 남부지역을 사회주의 경제구조로 개선하는데도 정열을 쏟았다.이 과정에서 전임자였던 린 서기장과 인연을 맺고 그의 오른팔이 됐으며 91년 건강을 이유로 사임한 린의 뒤를 이었다. 82년 정치국원,87년 서기국원 등 공산당 요직을 거쳤으며 88년 6월부터 총리직을 맡아왔다.취미로 외국 지도자들의 사상을 연구할 정도로 연구심이 강하고 독서를 즐긴다.술과 차를 즐기고 음식은 신맛이 있거나 매운 것은 피한다.부인은 이미 사망했고 이번 방한에는 아들 구엔 두이 충씨와 딸 탄투이씨를 동반했다.
  • 황사/안개/발묶인 공항 “북새통”/제주·김포 등 60여편 회·결항

    ◎신혼부부 등 아우성 【제주=김영주 기자】 9일 상오 남부지방에 시정 1백50m 안팎의 짙은 안개가 끼는 바람에 제주·여수·목포공항의 항공기 이착륙이 하오 1시까지 전면통제됐다. 이때문에 제주공항에는 신혼부부와 주말관광객 등 5천여명의 승객들이 발이 묶여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고 결혼 길일을 맞아 제주도 등지로 떠나려던 신혼부부들도 김포공항에서 발을 굴렀으며 제때에 비행기를 타지 못한 일부 승객들은 특별기 투입을 요구하며 항의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건설교통부 제주항공관리사무소는 『상오 8시20분부터 안개주의보가 내려져 하오 1시까지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통제돼 도착 25편과 출발 24편 등 모두 49편의 여객기가 결항됐다』고 밝혔다.제주공항측은 안개주의보가 발효중인 가운데 시계가 다소 나아진 하오 1시쯤부터 서울 3편,부산 2편 등 출발편만 부분 재개,모두 1천여명의 승객들만 제주를 떠났다. 이날 안개로 운행이 중단됐거나 김포공항으로 회항한 항공기는 제주 24편을 비롯,울산 10편,목포 4편,여수 12편,진주 2편,광주 2편,부산 10편 등이다. 그러나 김해공항의 경우는 상오 11시부터,여수·목포공항은 하오 1시쯤부터 각각 여객기 운항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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