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등급제 어떻게 풀 것인가-해법] “대학 자율 맡겨야” vs “법으로 규제해야”
■ 납득할 수 있는 고교평가 기준 마련- 강태중 중앙대 교수
고교등급제에 대한 비난과 옹호가 팽팽하다. 양측 논리가 모두 일리 있다는 뜻이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통속 취급하는 ‘동문 연좌제’라고 비난하는 것이나, 전형 대상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출신 학교를 살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하는 것이나, 모두 고교등급제의 한 단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방(攻防)이 각각 일리 있다는 것은 서로를 정확하게 겨누고 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모두 자신의 입장만 부각시키고 있어서 공방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엇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에서는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어렵다. 정직한 토론은 없고 문제에 대한 과장이나 은폐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해법이 구안된 대도 양측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
한 쪽의 찬성은 곧 다른 쪽의 반대를 불러 일으키는, 비유컨대,‘분쟁의 블랙홀’이 형성되는 형국이어서 어떤 대안도 타협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교등급제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문제 ‘사실’에 대하여 포괄적이고 바른 이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했을 때, 그 문제 해결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 교육은 자율을 바탕으로 성숙하고 피어날 수 있다. 고교등급제로 비난받는 대학의 이번 행위들도 자율적인 것이었다. 해당 대학들은 허용된 권한 안에서 나름의 자율을 구사했다고 말하고 있다. 부풀려진 내신 성적을 감안하면 각 지원자에 대하여 전국 단위 상대적 성적을 유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대학들은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부 조사로 알려진 바와 같이, 대학 나름의 학교차 고려 방식을 고안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며 적용하였던 것 같지는 않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선택했던 방법이었다는 것이 해당 대학들의 말이다. 대학은 명실상부한 자율을 통하여 이와 같이 수세적이며 소극적인 입장을 초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입학전형의 문제만 두고 본다면,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역량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대학은 자율 명분을 지니게 된다. 대학들이 입학 지원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데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출신학교를 살피는 것에 대해서도 가타부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출신학교 고려가 자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방법으로 지원자 개개인을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대학은 정보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지원자들의 학교 배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 대학이 직접 나서야 할 것이다. 원서를 읽고 평가할 전문가들이 이를테면 지역별로 나누어 평소에 잠재적인 지원자들의 학교를 파악하고 자료를 누적시켜 두어야 한다. 학교를 방문 관찰하고 교사들을 만나보는 것은 기본이다. 이렇게 얻게 되는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이 관장하는 지역의 지원자들을 좀 더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교 내신이 부풀려져서 문제라면 달리 평가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대학 수학 잠재력이나 인성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이른바 본고사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면접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 여건을 모르는 제안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성을 현실의 이름으로 유지하려 드는 한 개선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수능과 같은 전국 표준 시험을 잣대로 삼는 것이 최선이라는 고정관념도 극복하여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을 재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수능’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나름의 전형 도구와 방법도 찾아야 한다. 대학이 독자적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데는 물론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특히 우리 교육사가 주는 구속은 엄청나다. 그러나 한 사회의 교육은 대학이 이끌어야 한다. 교육부의 지원도 교사나 학부모의 동참도 필요하다면 대학이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 상대평가도입…내신 변별력 제고를-손지희 전교조 정책국장
고교등급제는 명백한 입시부정이요, 부당한 교육차별이다. 은밀한 내부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입시혼란을 가중시키고 수험생과 학부모, 국민을 기만했다. 결과적으로 계층간 위화감을 증폭시켜 대학 스스로가 사회적 분란을 야기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불가를 천명했으면서도 몇 년 전부터의 등급제 적용 의혹에 대해서 별다른 조사도,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누적되어 버렸고, 불신을 자초했다. 학부모들은 이번 2학기 수시에서도 등급제를 적용한 게 분명하다며 여전히 교육부를 미더워하지 않는다. 국민의 상처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빨리 추스르고 문제 발생의 원인을 짚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겠다. 시민 사회단체들이 제시한 대로 해당 대학에 대해 특별감사를 단행하고, 억울하게 차별받은 학생들을 즉각 구제해야 한다. 재발방지를 위해 등급제 불가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해당 대학에 대해 대학정원 축소, 재정지원 삭감 등의 행·재정적 제재는 물론 책임자에 대해 즉각 형사 고발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교육부 역시 ‘공모’의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선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문제는 남는다. 학교간 학력차와 내신부풀리기를 이유로 등급제 불가피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일부대학이 저지른 입시부정 기법이 일반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대학서열이 있는 한 등급제의 칼날을 휘둘러 이득을 볼 대학은 상위 몇 개에 불과하다. 고교등급제를 정당화하려는 일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해서도 안 되거니와 설사 학력차와 내신부풀리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등급제가 일반화되면 더 많은 문제를 낳는다. 학력차가 만약 있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여 ‘어떻게 줄일까.’를 정책방향으로 삼으면 되지 입시에 반영할 방법만 궁리하는 것은 교육은 아예 포기하고 분리와 선발에만 치중하겠다는 역할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등급제 없이도 선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차피 지금은 입시변화를 시도하는 때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가 선보인 대입안은 대학 서열을 그대로 둔 채 내신과 수능 등급제로 변별력을 약화시키고 대학의 선발자율권을 확대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등급제를 발생시키게 되어 있다. 대학이 서열화돼 있는 한 변별력은 대학입시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사교육문제 해결, 교육차별 근절, 학생부담 완화, 초·중등교육의 정상화가 새 대입제도가 지향해야 할 원칙이 되어야 한다. 대학 서열화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위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행가능한 해법은 내신을 통한 변별력 제고밖에 없다. 내신의 실질 반영률은 8%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은 서열화되어 있고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을 좌우하는데 내신은 평어반영을 ‘권장’하다 보니 형식적으로 부풀리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학서열화가 있는 한 내신의 변별력 제고를 위해서는 당분간 내신 상대평가는 불가피하고 이것이 입시를 위해 특정지역 및 특목고로의 쏠림현상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당장은 내신의 실질 반영률을 5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수능은 자격고사로 돌리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 이 얘기를 하면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학교교육은 왜곡시키면서 사교육 및 수험생의 부담, 교육 불평등을 가중시킨 것이 수능의 역할이었다. 학교 교육과정과 수능이 따로 놀다 보니 따로 준비해야 하고 따라서 값비싼 사교육으로 적응력을 기른 층에게 유리해진 것이 아닌가. 수능 때만 되면 삶을 포기하는 일이 어김없이 일어난다는 것도 명심하자.
특목고가 사회를 위한 엘리트 양성을 위한 공간이려면 입시명문의 ‘명예’에 집착하지 않도록 동일계 입학을 전제로 운영하면 된다. 대학은 우수학생 유치에 기울이는 노력보다는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우리 사회는 대학서열체제에서의 입시경쟁으로 너무 많은 낭비를 해왔다. 발상을 전환할 때다.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른 만큼, 신중히 입시변화를 꾀하되 국공립대평준화라는 대학서열완화의 첫발 떼기도 더 이상 미루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