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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물가 잡으려 상업은행법 부활하나

    북한이 경제개혁의 시동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금융개혁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경우 물가와 원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없으며 결국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다. 북한에서는 그동안 임금 지급 등 자금 수요가 있을 때마다 화폐를 신규로 발행했고 통화량 증가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배급을 받는 특권층과 일반 주민의 생활 격차는 더욱 커지는 양극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6일 “2002년 7·1조치 이후 최근까지 10년간 북한의 명목 시장물가는 무려 4700배나 올랐다.”고 밝혔다. 임 수석연구원은 “북한 당국이 결정하는 국정 가격은 고정되어 있는데 시장물가가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니 물자와 노동력, 자금이 모두 시장으로 빠져나가면서 공식경제는 계속 ‘속 빈 강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북한의 경제개혁은 금융개혁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7·1조치 이후 개인과 기업의 현금사용을 허용하면서 화폐유통량은 급증했는데 이를 흡수할 금융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오는 25일 열리는 최고인민대회를 통해 2006년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잠시 실시됐던 상업은행법이 본격적으로 부활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당시 경제개혁을 이끌다가 실각된 박봉주 당시 총리가 최근 경제실세(경공업부장)로 부활하며 금융개혁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지난달 1일부터 내각의 지시로 각 지방에서 중앙은행 등 재정회계부문 전문가들을 선발해 새로운 경제 검열조직의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금융개혁 움직임으로 미뤄 이번 개혁조치가 비교적 큰 폭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개혁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 효과는 경제 안정화, 양극화 해소, 외화사용 추세의 억제, 외자 유치 환경 조성 등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경제개혁 차원에서 내각 산하 발권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의 위상을 강화하고 군부나 노동당이 관리하던 은행의 힘을 약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사설] 의원 특권 포기한다더니 세비만 올리나

    19대 국회의원들의 세비 인상은 해도 너무했다. 국민들 몰래 20.3%나 인상했다가 우연찮게 들통난 일은 실망감을 넘어 공분을 일으킨다. 19대 의원들은 18대 의원 평균 세비 1억 1470만원보다 2326만원 많은 1억 3796만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장관급 대우’를 받는 데 따른 합당한 설명이라곤 일언반구도 없다. 지난해 11월 운영위에서 국회 예산을 통과시킬 때만 해도 세비 인상은 논의조차 되지 않다가 12월 말 예결위의 예산안 처리 때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랬더니 제 밥그릇만 챙긴 셈이다. 이런 행태가 어찌 부끄럽지 않을 일인가. 세비 인상은 18대 국회에서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의 주도 아래 결정됐기 때문에 19대 의원들은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19대 의원들이 개원 초반부터 경쟁적으로 벌였던 특권 폐지 추진 정신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불체포특권·면책특권에다 KTX 무료이용 등 200개가 넘는다. 특권 폐지 움직임이 잠시 정국을 달구는가 했더니, 지금은 시들해져 버렸다. 우리 국회가 미적거리는 사이에 일본은 세비를 14% 깎았고 미국도 세비 삭감 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영국도 의원 1인당 의정홍보비를 많이 삭감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비상상황이다. 7월까지 세수가 2조 20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올해 나라살림은 적자가 불가피해졌고, 내년에 균형재정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경기 침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생존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문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가계 빚에 신음하는 서민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이런 사정을 헤아린다면 세비가 많아지는 만큼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될 일 아니냐고 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변협은 석달 전 국회가 개원도 못하면서 세비를 받아가는 게 부당하다면서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집단소송 제기 으름장을 놨다. 이제는 세비 반납 국민운동을 벌이자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여야 의원들은 국민들이 나서기 전에 세비 인상을 원상복구시키기 바란다. 세비를 결정할 때 자문단의 심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국회의원 세비와 수당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대목이다.
  • 19대의원 세비 20%나 올렸다

    ‘세비는 20% 늘었는데 19대 국회의원 생산성은?’ 올해 첫 정기국회를 맞은 19대 국회의원들의 세비가 18대보다 20% 이상 올라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또 속였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4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올해 19대 국회의원의 보수인 세비는 1억 3796만원으로 18대 국회(2008~2011년) 평균인 1억 1470만원보다 2326만원(20.3%) 증가했다. 18대 국회의 세비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억 1304만원으로 동결됐지만 지난해 1억 1969만원으로 665만원(5.9%) 뛰었고 올해 1800만원 가까이 인상되는 등 최근 2년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의원 세비는 기본급에 해당하는 일반 수당 외에도 입법활동비, 급식비 등 각종 수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9대 국회 들어 가장 많이 인상된 것이 입법활동비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를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입법활동비는 2008~2010년에 180만원(월 기준)이었지만 지난해 189만 1800원으로 올랐고 올해는 313만 6000원으로 뛰었다. 여기에 국회의원이 지난해부터 세비와 별도로 국가공무원 가족수당, 학비보조수당 혜택까지 받고 있어 실제 연봉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세비 인상과는 달리 세비를 포함한 전체 국회예산은 지난해 5175억원에서 올해 5060억원으로 115억원(2.2%)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이 같은 세비 인상으로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주장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야가 ‘무노동 무임금’을 비롯해 각종 쇄신을 외쳤음에도 본인들의 세비는 슬쩍 올렸다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8월 임시국회’의 경우 단 한 차례 본회의 개최도 없이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 갔는데도 국회의원 1인당 월 1000만원을 웃도는 세비를 챙겼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대 국회의원 세비를 보면 18대 국회보다 20% 더 늘어 의원 개개인의 생산성이 18대에 비해 올라가야 한다.”면서 “정기국회 때 대충 하다가는 분명히 추가 세비 반납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세비 인상 폭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올해 임금 가이드라인인 2.9% 이내, 노동계의 최소 7% 이상 요구보다 월등히 높아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비 인상 철회를 촉구해 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 관계자는 “국회의원 세비 인상이 생산성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면서 “국민들이 이를 납득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겠다,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에 국민이 또 속았다.”며 혀를 찼다. 또 다른 네티즌은 “국민은 허리가 휘는데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법은 언제쯤 나올지….”라며 분개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英 대헌장은 보장했다…보통사람도 잘사는 세상

    英 대헌장은 보장했다…보통사람도 잘사는 세상

    ‘마그나카르타 선언’(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펴냄)은 술술 읽어 나가기엔 녹록지 않다. 서술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맥락의 문제다.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미국인. 거기다 문학적이다. ‘이 정도는 다 알지?’라고 전제를 깔고 글을 풀어 나가는데 맥락이 다른 우리로서는 생소하다. 가령 셰익스피어 작품 ‘존 왕’을 끌어들이는데, ‘존 왕’은 가장 영국 색이 짙다는 이유로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좀처럼 한국 무대에 세워지지 않는다. 또 근엄한 아더왕 신화를 영국식 블랙코미디로 재조립한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손의 현란한 말장난도 등장한다. 전설적 코미디 그룹이고 그나마 ‘스팸 어 랏’이라는 뮤지컬로 국내에 소개되긴 했지만 생소하긴 매한가지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 각급 법원 건물의 그림과 부조들을 분석할 뿐 아니라, 프랑스 인상파를 “파리 코뮌의 물귀신 같은 악몽을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말소”했다고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버리기도 한다. 다소 어리둥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눌러앉아 읽을 만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88만원세대, 양극화,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오늘날의 현상에도 적용가능한 역사적 근거를 아주 근본적으로 복원해 냈기 때문이다. 저자의 출발점은 1215년 존 왕이 선포한 63개 조항의 마그나카르타다. 한국인에게 익숙하게 ‘대헌장’이다. 마그나카르타에 대한 찬사는 화려하다. 정치적 자유를 선언한 최초의 문건이다 보니 억압받는 자는 누구나 마르나카르타를 거론했다. 특히 법 없이 왕이 제 마음대로 인신을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39조는 오늘날 영장 주의, 고문 금지, 배심 재판, 법의 지배 원칙을 확립시키는 주춧돌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역시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한다.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책으로 미국 독립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했던 토머스 페인(1737~1809)은 마그나카르타에 필적하는 대륙헌장을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지금도 미국 헌법에는 마그나카르타의 용어가 남아 있고 대법원 판결문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저자는 “영국이 불문법 국가라는 상식이 잘못됐다.”고까지 하면서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마그나카르타가 개인주의, 사유재산, 자유방임주의 및 영국 문명을 찬양한다는 이야기는 그 위에 칠해진 흰색 도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선언한다. 무기는 마그나카르타 뒤에 숨겨진 16개 조의 삼림헌장(Magna Charta de Foresta)이다. 이 헌장이 마그나카르타와 동시에 작성됐는지, 아니면 나중에 추가됐는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1225년 두 헌장이 동시에 재반포됐고, 1297년 판례법의 지위를 굳혔으며, 1369년 단일한 법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둘을 합쳐 ‘영국의 자유대헌장들’(Magnae Chartae Libertatum Angliae)이라고 분명한 복수형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삼림헌장은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잊혀졌는가. 현대 문명 이전에는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무와 숲에서 얻었다. 그래서 생계 자급을 위해 나무와 숲은 공유지(Commons)로서 모두가 관리하고 모두가 이용가능해야 한다. 이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천연자원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 삶”에까지 연결된다. 진정한 자유는 정치적 자유만으로 불충분하니 사회경제적 자유까지 보장받아야 했고, 그 내용은 개인주의와 사유재산에 터잡은 자유방임주의와는 상극이었다는 얘기다. 즉 자유대헌장들은 공유지(Commons)를 바탕으로 보통 사람들(Commoner)이 공통적으로 행복이나 복지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Common Rights)까지 보장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왕국’(Kingdom) 이후 영국이라는 국가의 명칭에는 코먼웰스(commonwealth)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다. 뛰어난 지배계급의 영도력을 중시하는 공화국(Republic)이나 혈연과 문화적 동질성을 중시하는 좁은 의미의 민족국가(Nation)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홉스와 로크의 경우 코먼웰스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자유대헌장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혹평하는데, 이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잊혀진 이유도 똑같다. 보통사람들의 공통권을 인정하면 특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왕과 귀족들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마그나카르타 해석을 왜곡한 사례, 삼림헌장을 누락하는 사례, 핵심 키워드인 ‘코먼’(Common)이란 단어를 윤색하고 다른 표현으로 갈아치우는 사례 등을 꼼꼼하게 기록해 뒀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행동들은 “공유지의 운명을 양피지의 변덕, 필사자의 실수, 설치류의 관심, 기록보관소의 신비에 맡겼다.”가 된다. 이는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에 비견되는 대륙헌장을 만들었다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건국 때는 마그나카르타를 들먹였지만 일단 나라를 세운 뒤에는 인디언들의 공유지를 빼앗아야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왕의 권위에 맞서는 데 마그나카르타를 활용한 반면, 막상 자신들이 원주민 숲지대를 침입하게 됐을 때는 삼림에 관한 조항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마그나카르타란 “친숙한 동시에 무관심하고, 강박적인 동시에 장식적이며, 근본적인 동시에 부차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자유를 규정한 자유대헌장들이 아주 잊혀질 리는 없다. 공유지에서 함께 살아왔던 오랜 세월의 경험이 한순간 증발할 리 없을뿐더러, 정치적 자유를 고민할수록 사회경제적 자유 또한 필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운데,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단일토지세를 주장한 헨리 조지, 러시아 아나키즘의 원조 표트르 크로포트킨, 영국의 토착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등이 모두 자유대헌장들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 모젤 농민과 마르크 공동체를 겪었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평가한다. 이를 더 연장해 미국의 뉴딜 정책과 2차대전 후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자유대헌장들의 정신, 그러니까 국가는 특권층의 이득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공통된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정신이 면면이 드러난다고 봤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에르너 오스트롬이다. 경제학에서 공유지 하면 대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스트롬은 공유지에서도 희극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해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저자도 한마디 해뒀다. “경제적 이슈로서 공유지는 그림의 떡처럼 보이지만, 학문적 연구는 그 반대로 그것이 현실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800년 전 양피지는 의외로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2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非文 ‘친노 견제’ vs 文 ‘교체·청산’

    非文 ‘친노 견제’ vs 文 ‘교체·청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의 대립 전선이 형성되면서 후보 4명의 연설도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주, 강원, 충북, 울산 경선의 연설문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비문(비문재인) 후보들의 친노 견제성 발언은 갈수록 늘었고 문재인 후보의 노무현, 참여정부 언급은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盧 언급 줄어… 손학규는 민생 부각 친노 직계인 문 후보는 4차례 연설문에서 노무현·참여정부를 11차례, 김대중·국민의 정부를 4차례 언급했다. 다른 후보들보다 전 정부를 언급한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대부분은 모바일 투표 불공정 시비가 불거지기 이전인 25일 제주 경선에 집중됐다. 문 후보의 울산 경선 연설문에선 ‘노무현’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지고 참여정부만 3차례 들어갔다. ‘참여정부’마저도 강원 경선과 충북 경선에서 각각 한 차례만 언급됐다. 비문 후보들의 친노 견제가 제주 경선 이후 공격성을 띠며 극대화되자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언급을 대폭 줄인 것으로 보인다. 울산 경선부터는 참여정부를 언급하면서도 반성과 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대신 문 후보는 ‘카르텔, 벽, 특권’이란 단어를 통틀어 14차례 사용하며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고 ‘교체, 청산, 깨끗’을 11차례 언급해 강하고 신선한 신인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변화를 꾀했다. 손학규 후보는 ‘노무현’을 통틀어 3차례 언급했으나 모두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했다. 특히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 구도로는 안 된다.”는 말을 강원에 이어 충북 경선에서도 했다. 또 ‘위기, 불안, 절망’을 통틀어 21차례 사용하며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민생’을 13차례, ‘안정, 희망’을 5차례 언급해 자신의 경륜과 민생 경제론을 부각시켰다. ●김두관, 친노에 강공… 정세균 ‘이변·역전’ 강조 김두관 후보는 친노 세력과 새누리당을 겨냥해 ‘기득권, 특권’을 33차례 언급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14차례 호명하며 공격했으나 경선 파문 이후에는 횟수를 줄이고 친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 후보가 ‘노무현, 친노’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강원 경선 때부터다. 특히 친노를 패권 세력이라고 지칭하며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이와 함께 서민을 30차례, 큰 정부를 25차례, 중산층을 19차례 언급하며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득표율에서 고전하는 정세균 후보는 ‘이변, 역전, 뒤집기’(22차례)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또 당원들의 표심에 호소하고자 ‘당원, 동지’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노무현, 김대중’도 각각 4차례 언급했으나 공격적 표현은 자제했고 대신 박 후보를 14차례 언급하며 비난했다. 경제통임을 강조하고 있는 정 후보의 연설문에는 ‘경제’(18차례)가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했다. 한편 31일 인천 지역 모바일 투표가 시스템 오류로 450여명의 투표값이 기록되지 않아 한때 중단됐다. 즉각 복구에 나서 정상화됐지만 비문 후보 측은 경위 설명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이현정·이영준·송수연기자 hjlee@seoul.co.kr
  •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1948년 그 모습을 드러냈던 건국헌법에 대해 널리 알려진 해석은 한마디로 ‘날림 공사’다.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을 쓰자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어수선하던 해방 공간에서, 더구나 다가오는 광복 3주년에 맞춰 하루빨리 건국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급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을 꼭 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조항은 얼렁뚱땅 통과시키면서도 내각제만큼은 엄청난 몽니를 부려 대통령제로 뒤집었다는 정도다. 이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 그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정 정도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 주장이 한발 더 나아가면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독재자들은 시대 상황상 무죄라는 논리에 가닿는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 수준이 그 모양인데 그 좋다는 해외 명품을 가져다 놔 봤자 어디에다 쓰겠냐는, 대개 국민을 비하하고 독재의 불가피성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민도’(民度)라는 표현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 부분에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건국헌법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만 어색해진다. 헌법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건국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대거 포함했다고 평가했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이승만 정권에다 헌법상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을 정도로 좌편향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흥재 서울대 교수는 기업 이윤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라고 못 박아 둔 건국헌법 18조, 소위 말하는 ‘이익균점권’ 조항이 경제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립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얘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이란 표현이 성립하느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김육훈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1948년 시한이 촉박했던 헌법기초위원회에서 건국헌법이 성립됐다는 그동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 광복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적 시야 아래 건국헌법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에 망조가 들 무렵부터 광복한 직후까지 한국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저자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역사교과서모임 회장을 지냈고 초중고 및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의 연구모임인 역사교육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현직 역사 교사다. 그래서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듯 부드럽게 풀어 쓴 서술 또한 매력적이다. 저자는 3·1운동을 핵심에 놓는다. 그러니까 그 이전 시기는 왕조를 부활할까, 왕정보다는 그래도 입헌군주제가 낫지 않을까, 아니 차라리 왕정을 없애고 공화주의로 나갈까라는 각기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던 시기로 본다. 그러나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마침내 왕정 복고 운동은 종말을 맞고 공화주의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근거를 든다. 3·1운동 와중에 고종의 친아들 이강을 상하이로 빼돌려 황제 중심의 임시정부를 구성하려다 실패한 대동단 사건이다. 오랜 습관 때문에 왕조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벌어진 일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 왕조 부활 운동은 사라진다. 또 하나는 3·1운동 이후 각종 임시정부의 설립 운동이다. 대조선공화국을 내건 한성정부, 신한민국을 내건 경성독립단에다 너무도 잘 알려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들 모두 각기 다른 국가명과 정부 조직 체계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이들 모두 왕정 폐지와 공화주의를 선언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다 ‘3·1운동’을 못 박아 둔 것은 3·1운동이 일제에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이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작업에 관여한 이동년 임시의정원 의장은 “우리는 이제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해 뒀다. 이승만도 1948년 제헌의회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뒤 기념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1919년의 민국을 재건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니까 3·1운동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피땀 흘려 싸워서 되찾아야 할 나라는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합의에 모두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봐야 할 점은 이때의 민주공화국이 ‘우파 정체성’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조소앙이다. 그의 지향점은 1917년 상하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대동단결선언’에서 이미 확인된다.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등이 관여한 이 문건에는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요,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초의 하루다. (중략) 그러므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들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우리 동지들은 당연히 주권을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라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대한제국 끝, 공화주의 시작’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이 논리 아래 조소앙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등 헌법에 준하는 각종 문건 제정 작업에 참여했다. 그 내용도 눈길을 끈다. 조소앙은 기본적으로 우파였으나 좌우파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치열한 항일투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받아들일 내용이 많다는 점도 인정”했으나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무산자 독재란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가 소멸되고 있음을 준열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돈 많은 이들과 많이 배운 이들의 독재가 이뤄진다.”고 봐서다.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를 배격한 자신의 주장을 조소앙은 ‘신민주주의’라 불렀다. 이제는 한물간 듯한 표현을 빌리자면 조소앙식 제3의 길이었던 셈이다. 조소앙이 통합시켜 놓은 이런 큰 물줄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남한의 건국헌법이 “자유경제를 주장하면서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북한의 첫 헌법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두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소앙을 일컬어 “헌법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서희경 지음, 창비 펴냄)을 참고해도 좋다. 헌정사 연구자인 저자는 만민공동회에서 시작해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헌법과 규약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 헌법의 원형질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앞선 저자의 논지와 일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동시에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공화주의의 효시로 꼽고 이에 참여한 조소앙의 중요성을 부각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동안은 유진오가 그런 인물에 해당한다고 평가됐다. 1945~48년만을 놓고 보면 유진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조소앙의 역할이 한층 더 근본적이고 유진오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해뒀다. 더 두껍고 학술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입체적 묘사가 돋보인다. 각 권 1만 5000원, 3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블랙 파워 설루트’ 동조해 욕먹은 노먼 44년 만에 호주 의회로부터 사과받아

    ‘블랙 파워 설루트’ 동조해 욕먹은 노먼 44년 만에 호주 의회로부터 사과받아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육상 남자 200m 시상식 도중 정치적 의사 표현을 했던 미국의 흑인 선수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조국 호주에서 배척된 피터 노먼(왼쪽·1942~2006)이 하늘에서나마 명예를 되찾았다. 22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의회의 앤드루 레이 연방의원은 “노먼의 행동은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렀다.”며 “그 행동으로 노먼은 너무 가혹한 처벌을 당했다.”고 말했다. 존 알렉산더 의원은 “노먼은 호주 언론과 경기단체로부터 배척을 당했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호주의회가 44년 만에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올림픽에 앞서 자메이카에서 열린 영연방 게임 육상 200m에서 동메달을 딴 노먼은 국가대표로 발탁돼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노먼은 올림픽 200m 결선에서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가운데),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와 박빙의 경쟁을 펼친 끝에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런데 스미스와 카를로스 두 흑인 선수는 시상식에서 흑인 인권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뻗기로 한 것이다. 당시 조국에서 번지던 흑인운동에 찬동함을 상징하는 ‘블랙 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를 한 것. 스미스 등은 노먼에게도 함께하겠느냐고 제안했고, 노먼도 고민 끝에 동의했다. 올림픽에서의 민권운동을 고취하는 배지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을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한 벌밖에 없던 장갑을 한 짝씩 나눠 끼라고 조언한 것도 노먼이었다. 이 세리머니는 수많은 흑인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했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며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선수촌에서 추방했다. 메달리스트의 특권을 빼앗은 것은 물론이었다. 노먼 역시 호주올림픽위원회로부터 엄중한 문책을 받고 차기 올림픽 출전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역적’ 취급을 당했다. 선수와 코치로 여러 팀을 전전하던 노먼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2006년 심장마비로 64년의 삶을 쓸쓸히 마쳤다.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관을 운구했다. 국내에서도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를 계기로 이 사건이 새삼스레 주목받았다. 미리 준비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한 것에 대해서도 메달을 박탈하지 않았는데 박종우의 메달을 뺏는 것은 지나치다는 논거로 활용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2012 대선공약 대해부-경제분야] (2)대·중소기업 동반성장

    [2012 대선공약 대해부-경제분야] (2)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약에서 여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대기업엔 ‘규제와 채찍’, 중소기업엔 ‘보호와 지원’으로 모아진다. 대기업의 횡포뿐 아니라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고, 중소기업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다. 다만 여야 후보별로 온도 차는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중소기업에 특혜를 주기보다 공무원의 ‘칸막이’를 없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에 쏠려 있다. 문재인·손학규 등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대기업에 강력한 진입 장벽을 세우고, 중소기업 지원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재탕 분위기의 공약들이 없지 않고, 중소기업에 과도한 특혜가 집중된 점이 눈에 띈다. ●野, 대·중소기업 수평적 관계 전환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법과 제도 개편, 정부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기존 ‘갑’과 ‘을’에서 ‘갑’과 ‘갑’의 수평적 관계로 발전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동반성장 공약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납품단가 변동 등 하도급거래의 주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 대기업이 횡포를 부릴 수 없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하청업체에 짬짜미를 강요한 대기업에는 족쇄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즉각 직권조사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또 대기업과 납품단가를 협상할 때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공동 구매나 공동 납품, 공동 교섭을 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 성장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을 논의했지만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적합 업종을 지정해 대기업의 진입을 사전에 막을 계획이며, 상생협력법 개정으로 이익 공유제의 법적 근거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 밖에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부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문 후보는 “대기업이 서로 담합하고,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쩨쩨한 돈벌이는 더 이상 안 된다.”면서 “중소기업도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경제에 활력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손학규 후보는 국책연구개발사업 예산에서 중소기업의 지원 규모를 해마다 10%씩 늘려 4년 후에는 50%가 되도록 하되 의무 할당제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또 그동안 ‘갑’과 ‘을’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상생협력 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성과에 따라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지원하기로 했다. 손 후보 측은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중소기업 정책을 일원화하고, 중소기업 전담 조직의 위상 강화를 위해 현행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두관 후보 측은 중소기업의 고유 업종을 확대하고, 대기업 독점 시장에서의 중소기업 단합을 허용할 계획이다. 대기업의 물품 떠넘기기 방지도 강화하며, 정부의 입찰 사업에 ‘소기업·소상공인 제품’을 우선 구매하기로 했다. 정세균 후보는 중소기업의 제한적 집단교섭 허용과 중소기업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를 주장했다. ●박근혜, 특권 없는 경쟁과 공존 유도 박근혜 후보 측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상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부당한 거래를 요구할 때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제재를 가하고, 중소기업에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과 경쟁 관계가 유지되도록 뒷받침해 줄 예정이다. 특권 없이 제도적인 틀 안에서 경쟁과 공존을 이끌어 내겠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많은 정책들이 부처가 다르거나 공무원의 성의 부족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고 이를 극복할 평가 시스템을 적용할 방침이다. 박 후보의 ‘경제 브레인’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과 세제, 인력, 마케팅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실효성이 있도록 바꿀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위해 중소기업 지원 통합전산망을 구축해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지원과 보호와 관련해 고려할 요소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정치권의 논의는 한 방향으로 쏠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치권에서 법제화하려는 중소기업의 지원 방안들이 해외 사례를 참조한 것이 많아 우선 우리나라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이라는 단어는 해외에선 생소한 개념이어서 다른 국가와의 무역 충돌 가능성도 없지 않아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나, 가까운 것부터 개혁…1 vs 99 없는 ‘100% 한국’ 건설”

    “나, 가까운 것부터 개혁…1 vs 99 없는 ‘100% 한국’ 건설”

    ‘국민 대통합, 정치 개혁, 국민 행복.’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0일 수락 연설을 통해 밝힌 3대 핵심 키워드다. 200자 원고지 20장 분량인 수락 연설문의 서두는 ‘국민 대통합’이 장식했다. 박 후보는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면서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5000만 국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5·16군사정변을 비롯한 역사관 논란, 불통 이미지 등을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통합당이 ‘1% 특권층 대 99% 서민층’이라는 대결 구도를 꺼내 든 것과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도 보인다. 국민 대통합에 이어 두 번째 화두로는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이 제시됐다. 여기에는 박 후보와 당을 옥죄고 있는 공천 헌금 의혹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박 후보는 “진정한 개혁은 나로부터,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와 제 주변부터 더욱 엄격하게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앞세웠던 ‘국민 행복’에도 다시 한번 무게가 실렸다. 박 후보는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제3의 변화, 국민 행복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면서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국민 행복을 위한 핵심 과제로는 경제 민주화와 한국형 복지, 일자리 창출이 꼽혔다.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뜻이다. 이는 향후 박 후보의 핵심 대선 공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락 연설의 끝 부분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이 장식했다. 유럽발 금융 위기, 북핵 위협, 영토 갈등 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박 후보가 다른 야권 후보들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고 평가하는 ‘국정 운영 능력’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후보 언급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공천 헌금 의혹에 대한 대국민 사과, 5·16 관련 추가 발언 등은 이번 수락 연설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씨줄날줄] 재벌총수 연봉/육철수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총소득(근로+사업+부동산+배당+금융소득 등) 상위 0.01%는 1년에 얼마나 버는 사람들일까. 2010년 기준으로 자그마치 11억~27억원을 벌어야 이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1% 안에 들려면 1억~1억 9500만원, 10% 안에 들려면 최소 7200만원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지난 5월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가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파레토의 법칙(소득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을 적용해 추산한 결과다. 김 교수는 20세 이상 인구 3900여만명(평균 소득 1700만원)을 대상으로 총소득 규모와 백분위를 추정했다. 그러면 총소득 10위권(0.000025%)에 나란히 포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벌총수들은 1년에 얼마를 벌어들일까. 김 교수는 0.01%(순위 3900등)의 상한선을 27억원으로 추정했지만, 총수들의 연봉은 이보다 수배~수십배는 족히 될 것 같다. 재벌총수들의 배당금은 해마다 발표되기 때문에 그리 궁금한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근로소득인 연봉은 보통사람들이 절대 알려고 해서는 안 되는 ‘특급비밀’에 속한다. 이들의 연봉 비공개는 법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에 상장사 임원의 개별 연봉을 공시하기 시작했다. 영국도 2002년부터 시행 중이며, 일본은 2년 전부터 등기임원 중 연봉이 1억엔 이상일 때 공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벌총수들의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임금 격차에 과민 반응하고 문화적 차이도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민초들이 아니다. 어느 언론사는 5년 전 건강보험공단의 표준보수월액을 근거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연봉 120억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92억원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등의 등기이사를 그만둔 후로는 몇년째 회사에서 월급을 안 받는다고 한다. 다른 그룹 총수들도 상장사별 임원보수 총액으로 미루어 최소 연봉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 등이 상장사 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시하자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17대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 18대 이정희 의원 등에 이어 세번째 국회 발의다. 총수들의 연봉이 공개되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의 권한이 강화돼 경영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취지란다. 물론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충돌이 또 걱정스럽다. 선진화를 위해 이제는 서로의 특권을 하나 하나 내려놓을 때도 됐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재벌 총수 연봉 공개 법제화 이번엔 성공할까

    재벌 총수 연봉 공개 법제화 이번엔 성공할까

    재벌 총수들의 연봉 공개가 다시 추진된다. 지금은 상장사 임원들의 연봉 지급 총액만이 공개돼 재벌 총수들의 개인 연봉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진국들도 임원 개개인의 연봉을 공개하는 추세이고 성과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개별 공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재계는 반발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이목희 민주통합당 의원 등 10명은 19대 국회에 상장사 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내용은 공시 대상인 ‘임원 보수’를 ‘임원의 개인별 보수’로 바꾸고,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방법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지금은 사업보고서에 등기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 총액만을 기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정몽구 회장 등 사내이사 4명에게 총 83억 9900만원이 지급된 것만이 공개돼 있다. 정 회장 개인의 연봉은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SK이노베이션도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 3인에게 139억 42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공개했다. 최 회장이 이 가운데 얼마나 수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시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은 1992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영국은 2002년부터 시행했다. 일본도 2010년 등기임원 중 연봉이 1억엔 이상인 경우 공시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마련했다. 이기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간사는 “임원의 보수가 개별 공개되면 주주의 권한 강화와 사회적인 피드백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도입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17, 18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조차 안 되고 폐기 처분된 점을 들어 19대 국회의 ‘의지’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재벌 때리기가 지나치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벌들에게는 일종의 ‘금기 영역’인 총수들에게 직접 화살이 겨눠지는 점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가뜩이나 재벌 총수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고액 연봉’까지 공개되면 여론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기류도 적지 않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특정 개인에 대한 임금은 회사가 성과나 형편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책정하는 것인데 굳이 개인별로 공개하는 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특정인의 고액 연봉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임금 격차에 대해 과민 반응하는 문화적인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주 등 특정인이 아닌 일반인 전체에게 공개하는 것은 논쟁거리와 사회적 편 가르기를 만들려는 의도”라면서 “총수의 고액 연봉을 문제 삼기 전에 정치인들의 특권을 먼저 내려놓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경두·이두걸기자 golder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19세기 후반 세계는 해양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이 조선을 변화시켰다. 정치적·군사적 외압을 바탕으로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대립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조선 측의 대응도 있었다. 외압에 대응해 조선 역시 열강과 외교라는 수단을 통해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일본과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자 조선과 국경을 맞댄 나라였다. 조선은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일본, 청국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전략으로 공러(恐)의식을 조작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원군과 명성황후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대원군, 러 견제위해 佛신부와 접촉도 1863년 12월 철종(哲宗)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작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섭정 초기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최고의 권력기구로서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되었던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다. 그리고 의정부와 동일한 위상을 갖는 최고의 군사기관으로 삼군부를 설치하였다. 을미사변의 주역인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는 “흥선대원군이 국제 정세만 정확히 파악하면 동양의 뛰어난 외교가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1860~1870년대 서구열강과의 접촉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직접 경험했고, 러시아 또는 미국 등 서구열강 일국에 편중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그 배경에는 흥선대원군이 외교관계의 미묘한 변화와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860년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연해주(沿海州)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과 새로 국경을 접한 러시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잠입해 있던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신부들과의 접촉은 프랑스 및 영국과의 제휴도 염두에 둔 파격적인 시도였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도발은 흥선대원군의 강렬한 척화정책을 북돋았다. 거기에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 J. Oppert, 吳拜)가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南延君)묘를 도굴한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서양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시켰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외세를 물리쳤다는 강한 자부심을 얻었으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성은 정권 초기보다도 경직되었다.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으면서 흥선대원군정권은 강력한 군사력 편성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에 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포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에서는 청나라와, 갑오개혁 때는 일본과 각각 대립했다. 흥선대원군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고종으로부터 사태수습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고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톈진(天津)으로 납치되었고 1885년 겨우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대의 ‘경복궁침입사건’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한 일본공사 오토리(大鳥圭介)와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가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했다. ●1895년 개국기원절 日인사 초청 놓고 반일친러 분위기 형성 명성황후는 외교 분야의 현안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록(行錄)을 살펴보면 “짐이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 주었다.”, “심지어 교섭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는 나를 권해서 먼 곳을 안정시키도록 했다.” 등이 기록되었다. 1895년 9월 4일 왕실은 조선왕조 504년 건국 기념일인 ‘개국기원절’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행사의 준비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중 궁내부 고문관(宮內府 顧問官) 러젠드르 장군,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부인의 자매이자 궁내부에 소속된 손탁 여사, 그리고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친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러젠드르 장군은 사무장(事務長)이라는 명예위원으로 외국인들을 접대하였고, 손탁 여사는 음식과 식탁 준비를 담당했으며, 사바친은 식장의 장식 부분을 총괄했다. 당시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조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손탁을 궁내부에 고용하도록 추천했다. 독일 엘자스(Elsass) 출신인 손탁은 궁궐에서 유럽식 향연을 준비하면서 명성황후를 자주 만나 2~3시간씩 연속으로 황후와 대화했다. 이날 회의에서 행사와 관련된 한 명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식탁 시중을 위해서 일본 급사를 초청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의 이름이 나오자, 손탁 여사는 얼굴을 찡그렸고, 일본인들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침까지 내뱉었다. 그러자 러젠드르 장군은 마치 귀부인에게 시중드는 유명한 기사처럼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손탁 여사는 왕실로부터 자신의 개인 집을 짓기 위해 약 1만 달러를 받았고, 그녀의 지도 아래 조선 여인들이 다양한 수공예를 배울 수 있는 학교 설립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사바친은 일본공사관의 외교관 및 일본과 연대하고 있는 조선 관료들의 명성황후를 향한 적개심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때 사바친은 “이것이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작은 사건 같지만, 이와 비슷한 작은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어떤 음모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손탁과의 관계 속에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지원을 예상하고 평소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반일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둘러싸고 일본이 외교적으로 패배하자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명성황후 주변의 미국인도 자국의 이권과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만일 황후가 유럽인들로부터 보호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유럽인들의 약속을 받았고, 유럽인들이 궁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신은 조심하는 자를 보살필 뿐이었다. ●명성황후, 왕실 日세력 제거… 日 ‘친러’ 비판하며 을미사변 개국기원절 행사 이후 왕실은 1895년 9월 재정, 법률, 내각, 군대 등에 대한 조직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 일본공사관과 연대하는 정치 세력을 점차 제거했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도 공사 이노우에 공사가 9월 17일 귀국길에 오르자 왕실이 갑오개혁 이후 설치된 “신제도와 신군대의 파괴에 착수했다.”고 분노했다. 왕실은 1895년 9월 20일 기존 법률과 칙령 번호를 무시하고 새롭게 칙령 1호를 발표했다. 왕실은 궁내부의 핵심인물인 이범진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임명하면서, 반대세력인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을 파면하고 내무협판 유길준을 의주관찰사로 전출시켰다. 무엇보다도 왕실은 일본 장교에 의해 교육받은 훈련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홍계훈을 훈련대의 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명성황후는 훈련대를 해산, 김홍집 내각을 약화시켜 갑오개혁 이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우라 공사는 히로시마재판소에서 1895년 9월 1일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한 이후 “궁중에 온전한 권세가 날로 심하여, 망령되게 나라 정사를 간섭했다.”며 왕실의 권력 장악을 비난했다. 그는 “훈련대를 흩어지게 하며 그 사관을 내치고자 하는 무리가 일본을 박대했다.”며 궁중의 일본 ‘박대론’을 주장했다. 그는 “독립의 실상을 실행하는 내각 관원들을 내치고, 혹 살육하여 정권을 궁중에 거두고자 하는 계교가 있었다.”며 궁중이 김홍집 내각을 제거하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해를 받음이 적지 아니하니, 일본의 위엄과 믿음을 보존할 것을 생각했다.”며 일본의 ‘국익’을 위한 정변 실행을 결심했다. 그는 ‘박대’와 ‘계교’라는 용어를 쓰면서 궁중을 비난하고 일본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미우라 공사는 황후의 ‘친러정책’에서 일본의 ‘국익 보존’으로 을미사변 원인에 관한 초점을 옮겼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을 언급하면서 명성황후 암살을 변명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국익 보존이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국제세력에 맞서 왕실 보호를 위해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상층부 두 인물의 핵심 세력은 각각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로 갈렸다. 하지만 들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는 법이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까지입술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반이었지만 한번도 같이 어울리지 못한 것도 맞다. 여학생보다 체구가 작아 항상 맨 앞줄에 앉곤 했는데, 어쩌다 보면 입술이 질린 듯 새파랬다. 얼굴도 파리해 농촌에서 선머슴처럼 자란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를 특정할 가장 또렷한 기억은 아침 조회 때마다 혼자 화단 돌턱에 덩그마니 앉아 있거나 체육시간이면 늘 혼자 은단풍나무 밑에서 다른 아이들 노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아이가 ‘열외’인 것을 다른 아이들은 무슨 특권처럼 부러워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선생님은 “몸이 아파서 그런다.”고만 할 뿐이었다. 바람이 제법 부드러웠으니 아마 4월쯤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학교를 마친 애들이 우르르 교문을 나서다 몇 놈이 한 덩어리로 넘어졌는데, 맨 밑에 그 아이가 깔렸다. 다들 툭툭 털고 일어났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맨땅에 얼굴을 댄 채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가만 보니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있고, 숨길도 가빠 보였다. 어디가 안 좋은지는 모르지만 그가 아프다는 건 다들 아는 일이어서 일으켜주려다 깜짝 놀랐다. 팔로 껴안은 몸통이 너무 왜소하기도 했지만 기력이 없어 마치 시든 파처럼 축 늘어지는 게 아닌가. 얼른 교무실로 쫓아가 선생님께 알렸고, 놀란 선생님은 슬리퍼 차림으로 그를 안아다 교무실 한 편에 눕혔다. 그 후 그 애를 다시 보지 못했다. 병을 고치려 가족이 대처로 이사 갔고, 그 애가 심장병을 가졌다고 들은 건 그 후의 일이었다. 언제나 입술이 새파래 아이들이 “입술이 까지(가지) 같다.”고 수군댔고 더러는 ‘까지입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것이 선천성 심장질환의 증상인 청색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얼마 전이다. 요즘 같으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그 아이는 다 자라도록 홀로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으니, ‘병은 안 걸리는 게 좋고, 걸리려면 나중에 걸려야 한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항상 시진하게 풀죽어 가던 그 아이는 어디서 살까. jeshim@seoul.co.kr
  • 얼굴없는 여왕, 조선의 멸망을 부르다

    얼굴없는 여왕, 조선의 멸망을 부르다

    ‘순원왕후 독재와 19세기 조선사회의 동요’(변원림 지음, 일지사 펴냄)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영·정조 치세기에 대한 평가, 그 이후 19세기 조선의 멸망사에 관심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이 부분은 지난해 이덕일(‘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역사의아침 펴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과 정병설(‘권력과 인간’·문학동네 펴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간 치열한 논쟁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독일 유학 때 현지인과 결혼해 쭉 독일에 머문 64세의 역사학자 변원림은 이 논쟁에 한발 담그면서 19세기 조선멸망사에 집중한다. 저자의 주장은 꽤 파격적이다. 일단 19세기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것은 왕비의 친정 가문 중심의 세도(勢道)가 아니라 대비가 아들인 어린 왕을 대신해 대권을 잡아 통치해 나가는 세도(世道)로 본다. 세(勢)가 외척의 권세라면, 세(世)는 여자의 신분으로 세상일에 나섰다는 의미다. “19세기 권력의 전이를 보면 왕비보다는 대비의 친가가 득세했다. 정치가들이 딸을 매개로 권력을 쥐었다기보다 대비가 아들인 왕을 조종하여 그들의 친정인들에게 권세를 주었던 사실이 보인다.” 이들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여자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세도(世道)보다 외척 남자들이 설쳐대는 세도(勢道)가 남성 위주의 지식인 집단에서 더 받아들여지기 쉽다. 저자는 대권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여군(女君)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아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라는 두 씨족의 대립과 갈등도 부정한다. 저자는 씨족 간 대립 갈등보다는 안동 김씨 가문 중심의 대규모 외척 네트워크가 작동했다고 본다. 그 핵심인물로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이자 정조의 며느리이며, 순조의 부인이자 헌종의 할머니로서 헌종과 철종 때 두 차례에 걸쳐 수렴청정했고 성모(聖母)라고까지 추앙받은 순원왕후를 지목했다. 순원왕후가 대체 왜 그랬을까를 추적하다 보니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에게로 가닿는 역순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했고 정순왕후가 정조를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이덕일의 주장도 부인한다. 정조의 죽음은 독살이 아닐뿐더러, 사도세자의 죽음 역시 사도세자의 개인적인 억울함보다는 영조의 정치적 패배로 해석한다. 동시에 정병설이 주요 사료로 취급한 미친 사도세자가 영조까지 죽이려 들었다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대해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또 한 가지는 근대의 맹아라 칭송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이다. 영·정조시대인 18세기에 이앙법이 나오고, 상업을 진흥해 근대의 맹아가 싹트지만 19세기 중앙정부의 무능으로 각종 민란으로 번졌다고 흔히 알려져 온 사실을 부정한다. 일단 근대의 맹아라는 것이 영·정조의 치세가 탁월해서 사회가 진보해 나가다 생긴 현상이라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오면서 농업 생산력이 극히 낮아져 어쩔 수 없이 생긴 현상이라 본다. 19세기 민란이라는 것도 평민이나 노비가 차별과 억압에 항거한 사건이 아니라 중앙 권력 다툼에서 소외된 지방 양반들이 중앙정부에 도전한 것에 가까웠다고 본다. 민중항쟁이라기보다 “신라 말 각간(왕자·제후)들의 싸움”에 가깝다는 것이다. 19세기는 봉건질서 해체기가 아니라 1000년 전 봉건 질서로 되돌아간 시기라는 것이다. 이메일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보냈다.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여성들의 이중성과 정치적 잘못을 일일이 지적해뒀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보면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물론 19세기 조선멸망사가 그들만의 탓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선을 지구 유일의 문명국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고립시킨 조선 지식인 일반의 편협한 사고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럼에도 정순왕후와 순원왕후는 역사 전환기에, 혜경궁 홍씨는 노론의 일당전제를 가능하게 했으니 19세기 조선사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함께 이뤘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라서 여성의 행동을 옳은 쪽으로만 보려 한다면 순원왕후나 혜경궁 홍씨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내 편이면 옳고 내 편이 아니면 그르다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책 전반에 왕권 강화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22살에 요절한 헌종에 대한 높은 평가도 눈에 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헌종이 오래 살아 정상적으로 왕권을 행사했다면 식민지를 면할 수 있었을까. -18세기 초부터 상업을 장려했다면 조선이 소빙기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영·정조를 두고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이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본다. 영조는 상업을 억눌러 조선을 국제무역시장에서 차단해 버렸고, 정조는 문치에 치중해 국방을 소홀히 했다. 영·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으나 중요한 것은 왕권 자체보다 그 왕권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사실 이번 연구 이전엔 헌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순원왕후 문제를 다루면서 헌종의 명석함에 놀랐다. 기존 특권층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신적 독립성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현실을 파악하는 눈이 날카로웠다. 이 책을 쓰면서 헌종이 일찍 죽지 않고 개혁정책을 성사시켰다면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정조의 인기는 대단하다. 철인정치가의 현신 같은 분위기다. 물론 ‘사기의 제왕’이라 평하는 정병설 같은 이도 있지만. 어떻게 보나. -정조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다. 순원왕후에 대해 쓰면서 그의 문제가 영·정조 때 이미 배태되어 순원왕후에 와서 더 심화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정조 시대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정조는 스스로 철인정치가로 알려지길 원했고, 오늘날 정조를 다룬 수많은 책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러나 말과 행동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기존 연구는 주로 사상 연구여서 실제 행한 정치에 대한 연구를 찾기 어렵다. 나 역시 이제 시작 단계라 확답하긴 어렵지만 순원왕후와 마찬가지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왕이 아니었을까 의심한다. 가령 빈민 구휼 자금이라는 정리곡 문제만 봐도, 정조는 자기가 은혜를 베푼 것처럼 얘기했지만 그것은 새로 만든 화성 경영비를 위한 고리대 강제차관이었다. →다음 연구 주제는 당연히 정조인가. -그렇다. 정조와 정순왕후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전 생애를 동반했고 정조 사후 섭정을 한 왕후다. 계비라는 위치 때문에 정조 독살설에 연루될 정도로 많은 의심을 받았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앞서 말한 바처럼 정조에 대해서도 의심이 있다. 순원왕후처럼 정조도 말과 행동을 실제 비교해 보겠다. 그 결과는 지금으로선 나도 알 수 없다. 자료를 계속 볼 뿐이다. →책 앞부분에서 기존 시파, 벽파 구분을 비판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 국내 사학자들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독일에서 따로 연구한 덕분인가. -한국의 사학자들은 스승이나 선배의 설을 비판 못하기 때문에 한번 잘못된 설이 백 년 지나도 계속된다. 근대 맹아설 같은 것도 유럽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하다가 1980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아 극복됐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걸로 조선의 18~19세기에다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다. 시파, 벽파 문제도 그렇다. 최근 정조어찰집이 나와서 심환지가 정조의 주구 노릇을 한 심복임이 명백히 드러났는데, 아직도 심환지는 벽파니까 정조의 반대파라는 설을 고수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와중이라면 벽파가 무엇이고 그 말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독일에서 그 많은 자료는 어떻게 다 구하나. -인터넷 시대라 괜찮다. 그리고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한국 도서가 충분하다. 급할 때면 한국에 있는 지인들 도움도 받고. 다만, 한국학술정보 논문검색서비스(Kiss)를 학술기관 소속 연구자에게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해둔 점은 아쉽다. 가을쯤 한국에 들어가 정조 관련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고, 그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자료 목록을 만들고 있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학 교수 52명 안철수 지지선언

    대학 교수 52명 안철수 지지선언

    대학교수 등 전문가 모임인 ‘한국비전 2050포럼’ 소속 교수 52명은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안철수는 국민에게 발견된 대선 후보”라며 안 원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천명했다. 포럼 대표인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는 “안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자신이 나라를 맡는다면 이렇게 경영하겠다는 매뉴얼을 밝혔고 국민의 화답과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대학교수가 누군가를 공개 지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화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창립한 한국비전 2050포럼은 교수와 전문인, 시민사회 인사 5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새누리당과 현 정권이 추진한 재벌보호정책과 4대강 사업 등으로 국민의 고통지수가 한계치를 넘었고 민주당 역시 계보정치와 특권 챙기기로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국민 스스로 지도자를 세우겠다는 교감이 형성됐고 이에 교수들이 국민들에게 용기를 줘야겠다는 뜻에서 지지 선언을 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지 선언에 참가한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국민의 열망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 냈다.”고 전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12월 19일을 안 원장과 국민이 승리하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며 안 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부탁하기도 했다. 포럼 관계자는 “이번 회견은 안 원장과 직접적인 교감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박근혜, 신자유주의 접는다

    박근혜, 신자유주의 접는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8·20 전당대회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16일 박근혜 경선 후보는 수락 연설문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자유주의 노선으로부터의 탈피, 고강도 정치 개혁안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부패관련 누구도 예외없다” 캠프 안팎에서는 지난달 10일 대선 경선 출마 선언문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신자유주의 탈피는 여야가 공통으로 추진하는 경제민주화를 훨씬 상회하는 개념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반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쥘 이슈가 될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이를 위해 최근 내부 연찬회를 가졌으며, 여기서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의 김종인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은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성장 우선론’에 대해 “대선 전에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 박 전 위원장은 국민 신뢰를 완전히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공천 헌금 의혹을 계기로 대대적인 정치 개혁안을 꺼내들 가능성도 높다. 대통령 측근·친인척 비리 척결을 위해 특별감찰관제를 조기 도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등 이른바 사회특권층 범죄의 경우 형량을 더 강하게 부과하고 원칙적으로 사면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박 후보는 이날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대선 주자 합동연설회에서 “정치 개혁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만들 것”이라며 “부패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고, 권력형 비리는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 정치 개혁을 통해 현 위기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5·16, 정치변혁으로 입장 수정? 연설문에 담기지는 않겠지만, 박 후보는 공천 헌금 의혹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당 지도부가 대국민 사과의 필요성을 결정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5·16에 대한 입장은 교과서 대부분이 정의한 대로 중립적 학술 단어인 ‘정치변혁’이 선택될 것으로 보인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열린세상] ‘지공거사’를 뵙고 나서/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열린세상] ‘지공거사’를 뵙고 나서/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난 주말 대학 동창들과 등산을 다녀왔다. 한 선배가 만 65세가 되면서 받은 시니어 패스(서울시 발행 교통카드)를 보여 준다. ‘지공(지하철 공짜)거사’가 되어 ‘전공노(전철 공짜 노인)’에 가입하였단다. 그 선배에게서는 결코 노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퇴직 후 하모니카를 배우기도 하고 동창들과 등산을 하며 보낸다는 말에서 현업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찌 이 선배뿐이랴. 그나마 친목 모임에 나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낫다. 모아 둔 것이 없이 퇴직해 하염없이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 그것을 견뎌야 하는 가족들은 어떨까. 요즘 문상을 가 보면 웬만하면 향년 90세 이상이다. 환갑, 칠순, 팔순도 가족끼리만 기념하는 통상의 생일이다. 그것도 젊은이들과 마찬가지의 체력이 유지되는 건강한 상태에서 오래 산다. 심지어 70대 어부가 젊은 남녀들을 연쇄살인한 사례도 있듯이, 나이로는 결코 사람의 체력과 건강을 단정할 수 없다. 최근 서울시가 ‘노인’이라는 말이 부정적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어르신’이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 나이 든 사람이 신체적으로 약하고 의존적이라는 편견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상하지만, 나이를 차별의 요소로 삼지 않아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무임승차를 비롯한 특권이든 직업에서의 배제라는 차별이든 고령자를 구별하여 취급하는 제도 운영이 계속된다면,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을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다. 그가 일하지 않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적인 여가를 위한 교통비를 공적 부담으로 하는 것은 낭비를 추가한다. 오죽하면 지하철 무임승차 때문에 발생하는 한해 2000억원의 손실을 서울시가 부담하고 있으니 중앙정부가 부담하라고 서울시장이 대통령에게 이야기했겠는가. 사실 고령자 무임승차는 역진적인 분배효과를 가진다.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소득과 체력이 있는 사람에게 혜택이 미친다. 차별을 감수하고 조금이라도 벌어야 하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과 병 들어 다니기 힘든 이들에게 무임승차는 그림의 떡이다. 노년 빈곤은 현실적 문제이다. 효도는 이제 과거의 역사이다. 부모를 부양하면서 과외비 등 자녀들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들이 부모들에게 했던 것을 자식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대부분 그들에게 남은 자산은 집 한 채뿐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한 거품 붕괴로 집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젊은 세대마저 주택 구입을 포기하면서 집값은 더 떨어질 상황이다. 그나마 삶의 터전인 주택을 짊어지고 가기 위해서 그들은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0대에 은퇴해 40대에 돈 벌고 50대에 베푼 뒤 60대에 놀 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했다는 장미란 선수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을 확대하는 것은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 부담을 주는 일이니 지속가능성 여부를 떠나 정당하지 못하다. 많은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상복지가 아니라 일자리이다. 우리는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도와야 한다. 그들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인생을 늘려 살 필요가 있다. 해고라는 차별도 무임승차의 특권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 적용하자. 지금의 제도는 남자나 여자나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고 20대 말이면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기에 정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을 7, 8년 걸려 졸업하고 좋은 취업 자리를 위하여 스펙을 쌓느라 사회생활의 시작도 늦고 결혼도 대략 30대 중반 이후가 되는 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고령자가 연금이나 복지에 의존하여 세월을 보내는 대신에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하철도 웬만하면 돈 내고 타게 하자. 젊은 세대의 납세 부담을 줄여주자. 지금 정년을 연장하는 혜택은 앞으로 그들도 나이 들어갈 젊은이들에게도 돌아간다.
  • [시론] 사법부는 법조의 전유물인가/정용상 동국대 법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

    [시론] 사법부는 법조의 전유물인가/정용상 동국대 법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

    국회 청문회가 열릴 무렵이면 은근히 겁이 난다. 절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우리 사회에 절망하고 있는 터에, 청문 후보자의 왜곡된 삶의 궤적과 사고의 틀을 확인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 된다. 최근 사회 전 분야에서 극단적 분열과 갈등이 심화돼 소통 없는 불통, 통합 없는 분열의 가속화 속에서 가진 자들끼리의 잔치, 그들만의 리그만 있을 뿐 더불어 사는 공존과 상생의 조화로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대법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4명의 후보 중 3명이 종교 편향, 친재벌 편향, 부동산 투기 등 의혹이 있어 논란을 빚다가 결국 한 후보가 대법관 청문회 역사상 최초로 낙마했다. 이 후보는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저축은행 사건 개입 의혹 등 10여 가지의 의혹에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한 채 대법관 구성이 지연되는 빌미를 제공하다가 결국 자진사퇴했다. 의혹 제기 자체가 사실과 거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정황 증거의 언저리에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보다도 훨씬 부도덕하거나 반(反)법치적인 사고가 만연했고, 사회지도층으로서 품격 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대법원은 재판부 구성이 안돼 한 재판관이 두 재판부에 겹치기로 참여하는 대직(代職) 체제로 재판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행정부도 손 놓고 내팽개쳐진 대법원의 기능마비 상태는 결국은 국민의 사법 편익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기에 궁극적으로 국민의 불편을 그들이 합작한 꼴이 된 셈이다. 법을 다루는 국가기관들의 안중에 국민은 없는 것 같다. 후보자를 추천하고 임명 제청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국회는 이를 정파적 이해 득실의 저울에 달아, 서로 배수의 진을 치고 정쟁만 하려 할 뿐 협상도 타협도 없다.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에 대한 접근은 아예 없다. 사법부는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버팀목이다. 그러므로 대법관 후보는 다른 어떤 직책보다 높은 수준의 정직성, 청렴성,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국민이 재판의 결과에 승복할 수 있으며, 사법 피해나 재판 불신의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는 절차나 과정상 외연이 좀 더 확장되어야 한다. 사법부가 마치 법조의 전유물인 것처럼 법조인만 후보 자격이 있는 현재의 사법구조는 다양화·전문화·글로벌화의 시대적 수요에 맞지 않다. 대법원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성 원칙이 정립되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한 사법 서비스, 특히 소수자를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므로 그 구성의 실질적 다양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법조인에 한정하여 그 안에서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만의 내부적 분배율의 문제일 뿐이지 진정한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법원도, 헌법재판소도 모두 법조인 출신만으로 구성하면서 검찰 몫이니, 여성 몫이니 하는 식의 한정적 다양화는 결국은 특권적 지위에 있는 법조만의 독식구조일 뿐 국민의 사법부다운 구성체제는 아니다. 그러므로 그 구성의 범위를 더 확장해야 한다. 법학자나 법률 행정가, 인권 및 시민단체 활동가 등의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법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최상의 방향으로 대법원 구성의 표준모델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위해서라도 대법관 구성을 위한 후보자 추천과정과 청문절차의 선진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공급자인 법조 직역끼리의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수요자인 국민의 정서와 시대적 요구를 우선하여 구성하면 된다. 사법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대전제에서 그 구성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무한신뢰를 받을 수 있다. 두 번 다시 영화 ‘부러진 화살’의 광풍에 사법부 권위가 초토화(?)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 사법부 공백 22일 만에 일단락

    국회는 1일 본회의를 열어 고영한·김신·김창석 등 3명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임명동의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다. 고 후보자의 경우 찬성 226명, 반대 39명, 기권 5명이었다. 김창석 후보자는 173명이 찬성하고 94명이 반대, 3명이 기권했다. 김신 후보자는 찬성 162명, 반대 107명, 기권 1명이었다. 상대적으로 반대가 많은 김신·김창석 후보자의 경우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임 대법관 4명의 임기가 만료된 지난달 10일부터 지속된 사법부 공백사태가 22일 만에 일부 수습됐다. 지난달 27일 자진 사퇴한 김병화 후보자의 자리만 공석으로 남게 됐다. 대법원은 조만간 김병화 후보자 대신 새 후보자를 추천할 예정이다. ●민주당 자유 투표로 결정 김병화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논란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 등으로 인해 난항을 겪었던 임명동의안 처리는 지난달 26일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전날 박 원내대표의 검찰 자진 출석으로 논란이 해소되면서 큰 잡음 없이 의결됐다. 민주당은 김신·김창석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종교 편향, 친재벌 성향 판결 등을 이유로 인사청문심사 보고서에 부적격을 명시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본회의에 앞서 소집한 의원총회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를 당론으로 명시하지 않고 자유 투표로 결정했다. 이는 앞서 제일저축은행 수사개입과 위장전입, 아들 병역특혜 등 각종 의혹으로 야당의 거센 반대를 받아 온 김병화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면서 세 후보자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보고서를 채택했고 거부 시 대법관 공백이 길어지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르면 오늘부터 6년 임기 시작 본회의 임명안이 처리되자 대법원은 본격적인 취임식과 재판부 구성 등 신임 대법관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갔다. 휴가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이르면 2일 전자결재를 통해 임명하면 6년의 대법관 임기가 공식 시작된다. 취임식은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하는 오는 6일 이후 이뤄질 예정이다. 한편 본회의 표결 과정에서 동명이인의 의원들이 있어 한글과 한자로 된 이름을 가려내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선진통일당의 각 김영주 의원, 새누리당에는 이재영 의원이 각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으로 있다. 5분 자유발언을 통한 여야 신경전도 벌어졌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민주당의 8월 임시국회 소집과 관련, “국회가 제왕적 특권 원내대표 ‘박지원 구하기’ 방탄국회가 됐다.”며 8월 임시국회 철회를 촉구했다. 이에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검찰의 무리한 소환 요구에 자진 출석해 모든 문제를 풀었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개원 합의를 지키고 8월 국회 소집에 응하라.”고 반박했다. 장세훈·강주리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박지원 원내대표 검찰 출석 잘한 일이다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받아온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어제 검찰에 전격 출두했다.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방패 삼아 버티던 그가 “검찰에 출석해 결백을 설명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길을 두고 뫼로 가려던 그가 뒤늦게나마 정공법을 선택한 것은 다행스럽다. 우리는 누차 박 원내대표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 진위를 가리는 게 정도라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당 측에도 당론으로 그를 구하기 위한 ‘방탄국회’를 열 생각을 말라고 촉구했다. 그가 정말 죄가 없다면 체포동의안 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몸싸움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과 친형까지 검찰 조사를 받았거나 구속된 마당에 유독 박 원내대표만을 위해 국회 제도와 의원 특권이 악용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박 원내대표가 검찰조사에 응한 것은 그래서 잘한 일이라고 본다. 만일 그가 2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까지 버텼다면 민주당 의원들은 줄줄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을 것이다. 박 원내대표 한 사람으로 인해 국회에서 그런 파행이 빚어진다면 대선을 앞둔 민주당으로선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런 괴이한 장면이 전세계 언론에 타전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 19대 국회의 위상과 도덕성은 땅에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세 차례 소환에 불응하던 박 원내대표가 마음을 바꿈으로써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엄정히 수사해 뒷말을 남겨선 안 될 것이다. 그렇잖아도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를 여권의 대선자금 의혹에 물타기 하려는 ‘공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이런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증거에 입각해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정치권이 방탄국회에 의존해온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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