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고전을 읽는 대통령
정치권이 혼란스럽다.희망과 비전은 없고 비판과 독설만 가득하다.관용과 설득보다는 대결과 독선만이 날카롭게 마주치고 있다.죽이느냐,죽음을 당하느냐 하는 살얼음판이다.광복 후 반세기를 넘은 지금까지 우리는 남북대결과 남남갈등,동서갈등,여야갈등 등 첨예한 갈등과 반목 속에서 살아왔다.하루라도 진정으로 갈등 없는 평화의 날을 지내본 적이 없다.오랜 세월속에 체질화되어버린 불신과 적대적인 갈등의식은 우리 각자 마음속에 어느덧 차가운 빙벽을 높이 쌓아왔다.
출범 6개월이 지난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해 언론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러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만큼 이제 그 문제점들에 대해 냉정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비판을 넘어 야유에 가까운 독설들도 난무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한나라당은 색깔론과 지역할거주의의 한계 속에서 구태의연한 야당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정치 선진국에서 관행처럼 지켜져 온 언론과의 밀월기간도 없었다.처음부터 막 가자는 것이었다.새 살림을 차리는데 도와주지는못할망정 조금은 지켜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았을까.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이었던 민주당의 지지력을 완전히 확보하지도 못했다.참여정부는 출발부터 외롭고 쓸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에 맞는 사람들끼리의 정치를 앞세워 통합보다는 배타적인 면을 보여주었다.이것은 스스로 표방했던 ‘참여정부’라는 말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여기에 취임 초부터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발언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등 경솔하고 직설적인 발언들과 인터넷 국정홍보신문 계획 등 감정적인 정책들은 뜻 있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미국 방문 때의 발언,특검법 처리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혼란스럽게 했다.사실 대선 전 노무현 후보의 모습과는 거리를 갖는 것이었다.정치적 혼란 속에서 급기야는 최근에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까지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 이전의 어느 대통령보다 탈(脫)권위주의적이고 서민적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기존의 때묻은 정치권의 영향을벗어나 무엇인가 참신한 개혁정치를 기대해보고 싶었다.그러나 취임 초부터 노 대통령은 토론정부를 내세우면서 절제되지 않은 말과 정책들을 혼란스럽게 자주 던져 놓았다.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신뢰감이 떨어지고 지도자로서의 권위도 사라진다.많은 말보다는 차분하게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철학을 연마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런 의미에서 중국 마오쩌둥의 지도력을 다시 되새겨 보고 싶다.
10억 인민을 다스렸던 마오쩌둥의 생활은 놀랍게도 지극히 단순했다.물론 국가적인 주요 행사나 국빈을 접견하는 일에는 빠질 수 없었지만 그 외의 일상은 주로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그 옆에 침대를 놓아두고 누워서 책을 읽는 일이었다.국가는 공산당의 조직과 제도 속에서 운영되었다.그는 당과 국가의 중요한 줄기만 잘 간추리면서 조용히 책 속에 묻혀 인민을 다스리는 통치술을 연마했다.
그에 관한 일화 한마디.1949년 국공내전에서 어렵게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국의 서울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이었다.그의 일용품들은 먼저 보내졌지만 최후적으로 그가 탄 지프 좌석 옆에는 전쟁 중에도 언제나 끼고 지낸 두툼한 책 뭉치가 놓여 있었다.역대 황제와 제후장상의 통치내력을 담은 사기(史記)와 자치통감,그리고 중국어 어휘사전,어원사전이 그것이었다.그는 베이징의 거소에서도 그 고전들을 손이 닿는 침실에 쌓아두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곤 했다.중국의 역대 어느 황제보다 강력한 통치자로 인민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은 거친 말보다는 고전 속에 담긴 통치자들의 지혜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지도력을 세워나갔던 것이다.우리도 고전 속의 지혜를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신 일 섭 호남대교수 역사문화학